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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최병심(崔秉心) 절제사최공모자충렬기적비명(節制使崔公母子忠烈記蹟碑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後五周歲在著雍涒灘暮春上澣 秉心 崇禎紀元後五周歲在著雍涒灘暮春上澣 崔秉心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8년 최병심이 지은 절제사 최공모자 충렬기적비명 등을 합철한 것 전주의 학자 최병심(崔秉心)이 1908년에 지은 절제사최공모자충렬기적비명(節制使崔公母子忠烈記蹟碑銘) 등을 합철(合綴)한 것이다. 최두홍(崔斗洪)과 이희진(李喜璡) 그리고 최전구(崔銓九) 등이 지은 많은 글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 자료는 문집 발간을 위하여 정서해 둔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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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유석승(柳石承) 죽촌최공묘표(竹村崔公墓表)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歲丁酉仲秋日 柳石承 歲丁酉仲秋日 柳石承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7년에 유석승이 작성한 죽촌 최병기의 묘표. 1957년에 유석승(柳石承)이 작성한 죽촌(竹村) 최병기(崔秉璣, 1901-1949)의 묘표(墓表)이다. 죽촌은 월당(月塘) 최담(崔霮), 옹암(甕菴) 최생명(崔生明),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 처사(處士) 최필성(崔弼成) 등 도학과 문장, 그리고 충효와 절행 및 열행으로 이름난 인물들을 배출한 동방대성(東方大姓) 전주최씨(全州崔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만흥(萬興), 증조는 명익(命翼), 조부는 기채(其彩)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죽촌은 일찍부터 자질이 뛰어나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누가 과제를 내어 독촉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독서의 방법을 터득하여 문구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정독하여 그 뜻을 끝내 알아내었다. 소년의 공부가 이처럼 진지하여 일취월장하자 그를 가르치는 선생도 그가 크게 되기를 기대하였으나 때는 나라가 일제에 의하여 무너지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뒤섞여 있는 시기였다. 죽촌은 뜻하는 바가 있어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자 새로운 책(新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머지않아 모든 내용을 통달하자 마을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18세 때 박상기(朴象基), 김봉섭(金琫燮)과 함께 주산학교(舟山學校)를 설립하여 영재를 교육하는 것을 필생의 임무로 삼았다. 그는 배우는 학생들이 내는 월봉(月捧)으로 가까스로 생활을 유지하며 부모를 봉양하였다. 배우는 생도의 수는 때로 수천을 헤아리기도 하였다. 죽촌은 가난하게 생활하였지만, 결코 이를 걱정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권을 가지고 그를 부추겼지만, 그는 결연히 말하기를, "나라가 무너지고 임금도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 저들 원수와 하늘을 함께 지고 사는 것이야 부득이한 일이지만, 부귀(富貴)하게 사는 일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국치(國恥)를 회복할 수 없다면 내가 어찌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우리 국민을 가르쳐 후일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묘표를 지은 유석승은 1961년에 ?호남모의록(湖南募義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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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告右通告事惟我門債非但時急救渴已所稔知然債主督促火在足上將未知何境故玆以定員派送詳聞可悉萬端周旋毋至宗事後悔之地千萬幸甚壬申三月二十二日[着管]席洞齋閣發文都有司崔東漢門有司崔春洪〃 崔秉澔門老 崔漢洪〃 崔仁培〃 崔秉斗各座前再寒碧堂義捐金随所從便并卽修送以免大宗中僉誚之地敬要千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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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石洞齋)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丙戌正月 席洞齋 丙戌正月 席洞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6년 부안 전주최씨 석동재 통문 1946년 1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席洞齋) 도유사(都有司) 최주홍(崔周洪)이 보낸 통문(通文)이다. 족보 발행을 위해 2월 30일까지 명단을 보내달라고 하였으며 임원과 규례를 적어 보냈는데 족보 1질은 100원, 수단금은 관자(冠者) 10원 아이 5원, 수단소는 석제(石堤)와 백석리(白石里) 2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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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夫有姓之修譜亶出於昭系收族之原義而惟我提學公派辛亥之家乘譜頗多漏落之人甲子之大同譜未得家家有冊是誠諸族之所同慨歎而且歲紀已週三十滄桑屢回百六死者墓木已拱生者童已抱子矣修譜之期亦云且晩咸願續修維新得以家家有冊其於昭先敦族之義庶有考據之無弊幸甚云故今於寅會僉議齊發玆定任員與規例略列如左輪仰惟願僉族斯速收單今二月晦日內無漏納單于席洞齋爛議開板事丙戌正月日 席洞齋都有司崔周洪規例一譜冊一秩에百円으로磨練事一單金은冠에拾円 童에五円으로磨練事一收單時譜冊申込ᄒᆞ되冊価半額과單金全部를交附할事一納單期限은二月晦日內完定事一收單有司은譜廳任員과同一報酬事一收單所은石堤白石里兩處로定홈譜所任員編輯 崔光煥 崔秉澔校正 崔斗洪 崔基洪掌務 崔春洪 崔在洪監印 崔玉煥 崔墀洪正書 崔敏洪 崔秉甲 崔秉炫收單有司 崔秉淵 崔東周 崔相烈 崔秉浩 崔弘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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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부안군수(扶安郡守) 납세(納稅) 독촉장(督促狀) 1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大正 十一年 三月 二十二日 扶安郡守 崔翊洪 外 五人 大正 十一年 三月 二十二日 扶安郡守 崔翊洪 전라북도 부안군 [署押]1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2년에 부안군수가 부안군 산내면 진서리에 사는 최익홍 등 5명에게 발부한 납세 독촉장. 1922년에 부안군수(扶安郡守)가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 진서리(鎭西里)에 사는 최익홍(崔翊洪) 등 5명에게 발부한 납세 독촉장이다. 부안군수는 산내면 진서리에 사는 최익홍 등 5명이 같은 해 2분기 세금 27전(錢)을 체납(滯納)하였으므로 독촉수수료 10전과 함께 3월 27일까지 납부하여 세금을 완납하라며 발부한 독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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督促狀第 一三0九號 府郡 山內 町面 鎭西 里 番地 崔翊洪 外 五人大正 十年度 大正 十年 二 期分一金 貳拾七錢也 滯納稅金一金 拾錢也 督促手數料右 三月 二十七日限 扶安郡ケ゠納付スヘレ此ノ期限ヲキ完納セサルトキハ財産▣▣ノ處分ヲ▣…大正 十一年 三月 二十二日扶安 府尹郡守[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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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최한홍(崔漢洪) 호적(戶籍)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昭和八年五月壹日 扶安郡上西面長 崔漢洪 昭和八年五月壹日 扶安郡上西面長 崔漢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3년 5월 부안군 부령면 봉덕리에 사는 최한홍이 상서면장으로부터 발급 받은 호적 1933년 5월 3일, 부안군 부령면(扶寧面) 봉덕리(鳳德里)에 사는 최한홍(崔漢洪)이 부안군 상서면장(上西面長)으로부터 발급 받은 호적 등, 여러 호적이 함께 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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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최근대(崔根大)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丙申五月 日 根大 등 19명 粉洞宗中 丙申五月 日 崔根大 粉洞宗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병신년 5월에 최근대 등 19명의 전주최씨 종원들이 4파 합보 간행 정지를 요청하면서 전주최씨종중에 보낸 통문. 병신년(丙申年) 5월에 최근대(崔根大) 등 19명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종원(宗員)들이 전주(全州) 분동(粉洞)에 있는 전주최씨종중(全州崔氏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이들은 기왕에 펴낸 분보(分譜)를 항상 개탄해 왔는데, 이번에 4파(派)에서 이를 통합하여 합보(合譜)를 내기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을 다행한 일이라고 여긴다고 하였다. 족보의 편찬이야말로 선조를 추모하고 후손에 선조의 덕업을 계승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전주최씨 문중에서는 계해년을 기점으로 하여 60년마다 족보를 편찬하는 일이 예규(例規)라는 점을 지적하고, 더군다나 근래 종중의 재산이 고갈되었으며, 생업에 종사하느라 종중원들이 어려움이 많은데, 족보 편찬과 같은 대사(大事)를 시작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잠시 이 일을 중지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들은 종중에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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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答通事修譜繫派前賢之嘉謨也敦宗展親後裔之忠厚也惟吾四派前日分譜心常慨歎者久矣何幸今日合譜之議齊發相和抑亦人事之分合關於氣數損益而然那是皆亶出於追先裕後之心則孰不副愜哉然而吾門例規以癸亥周甲爲修譜之期而且近來門財蕩竭生業苟艱若此大事豈可容爲設始乎以淺慮揆之姑爲停止以竢後日如何幸甚右 敬 通 于粉 洞 宗 中丙申五月 日 宗下 根大 尙欽 東潤 相琦 榮燁 命震 鶴奎 正潤 成潤 潤燦 榮殷 榮斌 榮勳 燮奎 昇燦 門燦 暻宇 喆宇 榮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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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師遺書文稿事告諸子孫緊藏以爲後憑(外封)寄諸子孫兼示諸君此紙別藏以俟後憑異時時變稍定之前若請願於彼以爲刊布之計決是自辱諸人雖强之汝等誓守父祖末命愼勿勉從也或遇可爲之時諸家所藏底非惟訛舛甚多去取亦無定準斷不可以之了事若是者事親不孝事師不義切勿生意也[謹按遺訓如是嚴切震也敢毁壤手定本任自改削可勝痛哉]辛亥孟春小念臼翁書于暀嶹寓舘以寄諸子孫仍以轉示諸君使之恪遵無違[此外又有年來文字當別爲編定矣[艮齋]私稿旣已略成定本此外無得妄添一篇此意子孫門人不可不恪遵無違若異日有拘於顔私復行通變之道者是忍死其父師而欺其朽骨無知爾諸子識之癸丑四月九日七十三歲臼山病夫書于繼華村舍時吳君秉勳成君璣運及仲子華九在側因以付之鄙文賢輩視爲可傳而愚則未敢自信非有明眼精選不可示人且有可慮之端近世人心未嘗以物視物而惟人之是侮雖以蘆寒之人地且遭焚毁之說奈何不量人己遽欲傳世以自取辱也又有難言之事不敢形之於紙墨間者只以言於子孫使之密告於一二人而已幸惟精思而審處焉昔尤翁問於畏齋曰先稿何不剞劂而行於世耶曰噫此遺戒也先人嘗自以不滿於意而不足以傳世而示後也故使之不出巾箱但爲子孫之守而已澤堂而且云爾況如愚之陋拙尤何足言也尤菴又序市南集有曰云云胤甫亦下世而世變又如許尤不敢出而示人矣胤甫之孤相基將巾衍以待後世之子雲堯夫終必有所遇矣今如愚者其言不過一時往復記箚之屬時前輩章疏猷謨之有關世道者不啻微塵之於泰山尤何必以汲汲傳示後人爲務耶庚申七月十八日愚書之以俟某某之來示之謹按據上請願自辱之戒則難形紙墨之云指勿認也的矣況先師仲子華九之所親承於當日者乎震泳書敢曰未知其必謂此事其徒權純命又曰可以出認勿認兩般看噫變換師旨破壞道義至此極乎又按先師之前後遺訓如是截嚴而震泳旣敢誣以敎認又使徒其姜泰杰乞認認販所謂節要者其違背詐惡眞師門悖賊悖賊所認刊者僉君子切勿購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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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문계강신(門稧講信)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己亥十一月三日 己亥十一月三日 1839 全州崔氏門中 全州崔氏門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39년(헌종 5)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중원들에게 보낸 회문 1839년(헌종 5) 11월 3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문계강신(門稧講信) 일자(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會計)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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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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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문계(門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辛亥十月初二日 辛亥十月初二日 1851 全州崔氏門中 全州崔氏門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51년(철종 2) 회문 1851년(철종 2) 10월 2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문중계회(門中稧會) 일자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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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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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42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元齋)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寅十一月初二日 壬寅十一月初二日 1842 全州崔氏門中 元齋族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처암공파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42년(헌종 8) 회문 1842년(헌종 8) 11월 2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처암공파(處菴公派)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강신일자(講信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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