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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의 자에 대한 설 朴景立字說 사람이 학문에 종사하는 것은 집을 짓는 일과 서로 비슷하다. 용마루는 태극(太極)에 대비되고 귀퉁이를 마주하고 떠받치는 것은 사덕(四德)86)에 대비되고 서까래와 문설주가 종횡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3천 곡례(曲禮)87)에 대비된다. 먹줄, 수평기, 자는 용모와 행동거지를 점검 단속하는 것이고 벽에 회칠하고 무늬를 넣는 것은 문장(文章)이 드러나는 것이고 당(堂)에 오르고 방에 들어가는 것은 도(道)로 들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기에 모이는 것은 거처의 편안함이고, 종묘(宗廟)와 백관(百官)의 아름다움은 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88) 천하의 빈한한 선비를 크게 감싸주는 것은 은혜를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89)이다.그러나 먼저 알맞은 터를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면 많은 사물이 모두 똑바로 설 곳이 없게 되니 언제 눈앞에 높이 솟은 이 모습을 보겠는가. 반드시 탁 트이게 하여 막히거나 장애가 되는 우환을 없게 하고 다지고 쌓아서 기울거나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하늘에서 비를 내리기 전에 계획을 하고 집을 지으며 길옆에 지나면서 전해주는 다른 말을 끊어 버리고 자신의 부친이 이미 다다른 법도를 생각한다면 넓은 집에 머무르고 바른 자리에 서게 되니90) 아득한 팔황(八荒 온세상)이 모두 내 문지방 안에 놓이게 된다.아, 기초가 있어도 서지 못하는 자가 많다. 하물며 기초도 없이 스스로 수립할 수 있겠는가. 학자가 만약 큰 뜻을 확정하여 성신(聖神)91)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천지를 동체(同體)로 여기지 않는다면 허다한 공부를 장차 어디에서 수립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학문은 반드시 먼저 기초를 갖추어야 하고 기초가 갖추어진 뒤에는 반드시 수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초를 갖추고 수립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도에 가깝지 않겠는가.나의 벗 박준기(朴準基)가 자(字)를 경립(景立)이라고 하였으니 취한 뜻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 人之爲學。與建屋子相似。屋脊方太極。對隅支柱方四德。榱櫨居楔縱橫塡補方曲禮三千。繩墨準尺者。容儀之檢束也。塗墍繪畵者。文章之著見也。升堂入室者。入道之等位也。歌於斯聚於斯。居之安也。宗廟百官之美。資之深也。大庇天下寒士。博施濟衆也。然不先有以辨得其基。則許多物事。都無立定處。而何時眼前見此突兀哉。必須展之拓之。使無阻礙之患。杵之築之。使無傾頹之慮。然後迨天未雨。經之營之。絶道傍携貳之言。念闕考已底之法。則居廣居立正位。而茫茫入荒。皆在我闥矣。嗚呼。有基而不能立者多矣。況無基而能自樹立乎。學者苟不確定大志。以聖神爲已任。以天地爲同體。則多少大功夫。將何自而能樹立哉。要爲學必。先有其基。旣有其基。必要有其立。有基有立。其亦庶幾乎。吾友朴準基字以景立。其取義固在此矣。 사덕(四德) 원래는 《주역(周易)》에서 말한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 즉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을 이르는데, 주자는 이를 사람 마음에 적용시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성(性)의 사덕이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6 四端義》 3천 곡례(曲禮) 《예기(禮記)》 〈예기(禮器)〉의 "경례가 3백 가지이고 곡례가 3천 가지인데, 그 정신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에서 유래하였다. 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 맹자가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쓰는 데에서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孟子 離婁下》 은혜를……것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내용이다. 넓은……되니 넓은 집은 인(仁)을, 바른 자리는 예(禮)를 비유하는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는 대장부를 말하면서 "천하의 넓은 집[仁]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그 도를 행하며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해서, 부귀로도 흔들 수 없으며 빈천해도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로도 굽히게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을 두고 대장부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성신(聖神)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크면서도 그 큼을 볼 수 없게 화할 수 있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지극히 신묘한 그 성스러움을 측량할 수 없는 사람을 '신인(神人)'이라 이른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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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92)에게 써 보이다 書示黃景涵 성(性)은 도(道)의 형체(形體)이고 심(心)은 성(性)의 부곽(郛郭 성곽(城郭))이며 신(身)은 심(心)의 구우(區宇 구역(區域))이고 물(物)은 신(身)의 주거(舟車)이다.93) 이것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를 가지고 정밀함으로부터 조악함으로 나아가 말한 것이며 강절(康節 소옹(邵雍))이 이른 "기(氣)는 신(神)의 집이고 체(體)는 기(氣)의 집이다."94)라는 것이다. 이(理)는 형체가 없지만 성(性)이 감싸고 있으므로 형체(形體)라고 하고, 심(心)은 성(性)을 담고 있으므로 부곽이라고 하고, 신(身)은 심(心)을 담고 있으므로 구우라고 하고, 신(身)은 물(物)을 이용하여 물(物)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주거(舟車)라고 한다.그렇다면 부곽은 기(氣)의 정령(精靈)으로 말하는 것이고 구우는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 그 정조(精粗)와 선후(先後)가 뚜렷하지 않겠는가. 주자(朱子)가 언급한 주재(主宰)와 부곽(郛郭)은 각각 별개의 설이니 연관 지어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노사 선사(蘆沙先師)의 기질설(氣質說)도 본래 이것 때문에 펼친 것이 아니다. 선사께서는 두 개의 기질이 잘못됨을 변별한 것이지, 어찌 일찍이 기질은 있지만 정령은 없다고 하셨는가. 부곽(郛郭)은 부곽일 뿐이지 어찌 부곽이 주재(主宰)와 묘용(妙用)의 뜻을 지녔겠는가. 부곽을 주재(主宰)로 여긴다면 저 세 번 신칙하고 다섯 번 명령하거나95), 잡았다 풀어주면서 기미에 따라 처리하는 사람은 또 주재자의 주재이겠는가. 만 리나 되는 성도 성이 스스로 굳건하지 못하고 7리짜리 곽(郭 외성(外城))도 곽(郭)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주재의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끝내 조리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처중(處中)96)과 논의하라. 절충한 논의를 듣고자 한다. 性者道之形體。心者性之郛郭。身者心之區宇。物者身之舟車。此以形氣神理。而由精趨粗說。如康節所謂氣者神之宅。體者氣之宅也。理無形而性爲結窠故曰形體。心具性故曰郛郭。身具心故曰區宇。身藉於物而能運物故曰舟車。然則郛郭以氣之精爽而言。區宇以人之軀殼而言。其精粗先後。不其瞭然乎。朱子主宰及郛郭。各是一說。不可連累看。且蘆沙先師氣質說。本非爲此而發也。先師辨兩箇氣質之非。何嘗言有氣質而無精爽乎。郛郭只是郛郭安有以郛郭而有主宰妙用之義。若以郛郭爲主宰。則彼三申五令操縱合變之人。是又主宰之主宰乎。萬里之城。城不能自固。七里之郭。郭不能自守。則烏在其主宰之義乎。思之思之。終是不倫。未知以爲如何。且與處中講質焉。願聞折中之論。 황경함(黃景涵) 경함은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의 자이다. 호는 중헌(重軒)‧은구재(隱求齋)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외필변변(猥筆辨辨)〉‧〈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납량사의기의추록변(納凉私議記疑追錄辨)〉을 지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리설(性理說)을 논박하였다. 저서로 《중헌집(重軒集)》이 있다. 성(性)은……수레이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자서(自序)〉에 나오는 말이다. 기(氣)는……집이다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나오는 말이다. 세 번……명령하거나 손자(孫子)가 오왕(吳王) 합려(闔閭) 앞에서 여자들을 부하로 삼아 시범을 보일 적에 "일단 약속을 정하여 선포한 다음에 부월을 설치해 놓고는 곧바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신칙하였다.[約束旣布, 乃設鈇鉞, 卽三令五申之.]"라는 말이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온다. 처중(處中) 양회락(梁會洛, 1862∼1935)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납량 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 등을 마음속으로 터득하고, 주리론(主理論)을 발휘하고 천명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사 심제설(性師心弟說)을 통렬히 반박하였다. 문집에 《동계당 유고(東溪堂遺稿)》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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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써 주다 書贈吳汝周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하려고 하는 것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의 다툼일 뿐이다."97)라고 하였다. 대체로 기품(氣稟)이 편벽되어 기호(嗜好)가 다르고 견문(見聞)에 얽매어서 추향(趨向)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평생토록 독서를 해도 읽는 내용이 무슨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유(交遊)하는 이들 사이에서 말이 간혹 여기에 이르면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굴거나 반드시 멍하니 반성하지 못하여 인가하고 승낙하는 자가 대체로 적었다.병술년(1910, 순종4) 봄, 내가 오봉(五峯)에서 객지 생활을 할 때 오군 여주(吳君汝周)가 날마다 나를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 또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학문의 기회를 놓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간절히 이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하니 경계가 되는 한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자네가 이미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 내 말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중(輕重)의 권도(權道)가 내면에 명확하지 않고 취사(取捨)의 분별이 외부에서 결정되지 않으면 길을 나섰다가 전도 착란(轉倒錯亂)되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을 여주(汝周)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의 일생에서 미리 정해진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仁義)는 사람의 마음에 고유(固有)한 성(性)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벼운가? 무엇이 추구할 수 있고 무엇이 추구할 수 없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입각(立脚)98) 초기에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99)를 헤아려 변별해야 한다. 이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면 또 하나의 험난한 관문이 나타나 눈에 힘을 주어야 할 곳이 있으니 위기(爲己)와 위인(爲人)100)이 그것이다.일찍이 생각해보니,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은 모든 이치와 모든 법칙은 저절로 해야 하는 일인가, 외부의 사물을 쫓아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인가? 일상생활에서 이르는 곳마다 성찰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본령(本領)이 수립된다. 이로 말미암아 정밀하고 투철하며 숙련되고 정통한 단계에 이르는 것은 곧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맹자(孟子)가 "천하의 넓은 집[인(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의(義)]를 행하고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한다."101)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비로소 남아 대장부의 일이다. 바라건대 여주(汝周)는 힘쓰거라! 朱子曰。人之爲學。只爭箇肯與不肯。蓋氣稟所偏。嗜好不同。見聞所拘。趨向不一。是以終身讀書。而不知是所讀爲何事者多。交遊之間語或及此。則非悍然不顧。必茫然不省。其印可而肯諾者蓋少矣。丙戌春。余客於五峯吳君汝周。日來相從。且曰。因循失學久矣。自今切欲留心此事。願賜一言警砭也。予曰子旣有肯可之意。何須於我言。然輕重之權。不明於內。取舍之分。不決於外。則未有不臨途顚錯半上落下者。此則不可不爲汝周告之。夫富貴貧賤。人生素定之分也。道德仁義。人心固有之性也。然則何者爲重。何者爲輕。何者可求。何者不可求。何者當求。何者不當求。立脚之初。所當商量辨別八字打開處。過此以往。又有一層重關猛着眼目處。如爲己爲人是也。試思天命人受。萬理萬法。是自然合做底事耶。是徇外自私底物耶。日用之間。隨處省察。不容放過。則本領立矣。由此而至於精透純熟。則在乎勉焉爾。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如此方是男兒事。願汝周勉之。 사람이……뿐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독해학법(讀大學法)〉에 나오는 내용이다. 입각(立脚)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몸을 의연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 팔자 모양의 형태로 문을 활짝 열어젖혀서 가려져 있던 앞산을 보여 주었다는 뜻으로,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희의 편지에 "요즈음 《대학》을 보다가 이러한 뜻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현이 이미 '팔(八)' 자가 벌어지듯 활짝 펼쳐 주었건만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오히려 밖으로 미친 듯이 치달리고 있다.[近日因看大學, 見得此意甚分明, 聖賢已是八字打開了. 但人自不領會, 却向外狂走耳.]"라고 하였다. 《晦庵集 卷35 與劉子澄》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을 한다."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천하의……못한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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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배의 자에 대한 설 吳景拜字說 사문(斯文) 오창호(吳昌鎬)가 관례(冠禮)를 치른 지 이미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자(字)가 여주(汝周)였는데 나중에 송사(松沙) 기장(奇丈)102)께서 경배(景拜)로 고쳤다. 대체로 《서경(書經)》의 "우(禹)가 고요(皐陶)의 좋은 말을 듣고는 절을 하였다."103)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시험삼아 한번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징험해 보니,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발끈하며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여 잘못되고 그릇된 일을 문식(文飾)한 뒤에야 그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분을 참으면서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실제로 마음속으로는 용납하지 않다. 이것은 모두가 성실하게 선(善)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미친 사람에게도 가려서 들을 만한 말이 있고 나무꾼에게도 물을 수 있다. 하물며 강직하게 간언(諫言)하고 보필(輔弼)하는 것이 마치 정문(頂門)에 침을 놓고 등에 채찍을 가하는 것과 같음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사랑이 그치지 않으면 진실로 공경해야 하고 공경스러움이 그치지 않으면 진실로 절을 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뜻을 낮추고 온 마을에서 하는 말을 아울러 받아들이면 마을 전체의 훌륭한 선비가 되고, 온 나라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나라 전체의 훌륭한 선비가 되고, 천하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천하의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백 번 절을 한 다음에 한마디 말을 듣고자 하고 천 리 먼 곳에서 가르침 하나를 구했던 까닭이다.아, 대우(大禹)는 성인이었건만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하물며 그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원하건대 경배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한다.'라는 부적(符籍)을 학문 세계에 진입하는 나침판으로 삼아 부지런히 노력하고 착실히 법도를 지켜나가 천하의 선(善)이 모이고 빠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이것이 어찌 송사 장(松沙丈)께서 진중하게 이름을 정한 뜻이 아니겠는가. 吳斯文昌鎬。冠已久矣。表德初以汝周。後松沙奇丈改以景拜。蓋取書經禹拜昌言之義也。嘗驗之於人。聞有一言逆耳。無不勃然而怒。嘵嘵然。文其過餙其非而後已。不然則强意忍忿。外若容受而內實氷炭矣。此皆無誠實爲善之心故也。如有誠實爲善之心。則狂夫可擇。蒭蕘可詢。況强諫直輔。若針頂鞭肯之爲耶。愛之無已。固當敬之敬之無已。固當拜之。虛心遜志。兼受一鄕之言。則爲一鄕之善士。受一國之言。則爲一國之善士。受天下之言。則爲天下之善士。此古人所以乞一言於百拜之餘。求一敎於千里之遠者也。嗚呼。大禹聖人。猶拜昌言。況其下者乎。願景拜以拜昌言三字符。爲入學指南。勉勉循循。以至於集天下之善而無闕焉。則豈非松沙丈珍重命名之意耶。 송사(松沙) 기장(奇丈)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이다. 참봉을 지내 기 참봉으로 불렸으며, 호남의 거유(巨儒)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우(禹)가……하였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우가 고요의 좋은 말을 듣고는 절하며 옳다고 하였다."라는 말이 나오고,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우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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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탕446)을 준 가석에게 이천의 시를 차운하여 사례하다 謝可石贈大補湯用伊川韻 약을 주어 내 정신을 보양해준 그댈 흠모하며 感君投藥補吾神행여 삼려447)를 세상 처신의 법도로 삼으려 하네 儻擬三閭度世身배불리 먹으면 외려 은거 소원 이루기 어렵나니 飽喫猶難成晦願서산에서 먼저 은나라 백성이 굶주려 죽었다지448) 西山先作餓殷民 感君投藥補吾神, 儻擬三閭度世身.飽喫猶難成晦願, 西山先作餓殷民. 대보탕(大補湯) 마음과 몸의 활동력을 돕는 약을 말하는데, 숙지황(熟地黃)ㆍ백작약(白芍藥)ㆍ천궁(川芎)ㆍ당귀(當歸)ㆍ인삼ㆍ백출(白朮)ㆍ백복령(白茯笭)ㆍ감초ㆍ황기(黃芪)ㆍ육계(肉桂)를 넣어 만든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을 말한다.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호에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라고 하였다. 《詳說古文眞寶大全 後集 卷1》 서산(西山)에서……죽었다지 은(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를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는, 서산(西山) 즉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서 채미가(采薇歌)를 부르며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은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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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이십구일에 暮春小晦 종일토록 거센 바람 불어 너무도 무정한데 狂風盡日太無情남은 꽃마저 떨어져 한바탕 깨끗이 쓸어버렸네 飄落殘花一掃淸수심은 외로이 살게 되면 쉽사리 몰려들고 愁待索居容易集시는 참된 경지를 어기면 억지로 이루기 어렵네 詩違眞境强難成귀밑머리 성성하니 반백의 나이가 되었고 霜鬢星星年半白초당은 적막하고 밤은 깊어 삼경이로세 草堂寂寂夜三更천금도 도리어 좋은 날의 빚 갚기엔 적은데 千金還少良辰債또 돌아가는 봄날이 내일 아침으로 잡혔구나 又是春歸在翌朝 狂風盡日太無情, 飄落殘花一掃淸.愁待索居容易集, 詩違眞境强難成.霜鬢星星年半白, 草堂寂寂夜三更.千金還少良辰債, 又是春歸在翌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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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보이다 示志 원래 머리털은 부모가 남겨 준 것이나 元來頭髮是親遺분명히 중국의 제도가 또 여기에 있네 華制分明更在斯천하의 대방296)은 감히 어길 수 없으나 天下大防無敢越정수리의 한 움큼297)이 어찌 미미한 것이랴 頂中一撮豈其微백운고사298)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白雲高士今何處화망건 선생299)은 함께 돌아갈 수 있으리라 畫網300)先生可與歸가을 달이 오랫동안 마음과 함께 비춰주니 秋月長時心共照외로운 넋은 백세토록 슬퍼할 필요 없겠네 孤魂百歲不須悲 元來頭髮是親遺, 華制分明更在斯.天下大防無敢越, 頂中一撮豈其微?白雲高士今何處? 畵綱先生可與歸.秋月長時心共照, 孤魂百歲不須悲. 대방(大防) 흘러넘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큰 제방(堤防)이라는 뜻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예법(禮法)을 일컫는다. 정수리의 한 움큼 상투를 말한다. 백운고사(白雲高士) 당(唐)나라 때 도사(道士)인 사마승정(司馬承禎)으로, 백운거사는 그의 호이다. 음양술수학에 심취했으며, 연단술을 익혔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전서를 잘 썼다고 한다. 진자앙(陳子昻), 이백(李白), 맹호연(孟浩然) 등과 교유하였다. 〈좌망론(坐忘論)〉 등을 지어 자신의 노장 철학을 피력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있어 '도선합일(道禪合一)'의 독특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노자도덕경》의 정본을 만들었고, 저술로 《좌망론(坐忘論)》이 있다. 《唐書 卷196 司馬承禎列傳》 화망건 선생(畫網巾先生) 청(淸)나라 때 문학가인 대명세(戴名世)가 지은 《화망건선생전(畫網巾先生傳)》에 의하면 선생의 이름과 작위는 알 수 없으며 민족지사이다. 새로운 영(令)으로 치발(薙髮)하고 의관을 바꾸니, 망건(網巾)이 없어지자 머리에 망건을 그리고서 갓[冠]을 썼기에 사람들이 화망건이라 불렀다고 한다. 網 底本에는 "綱". 필사의 오류로 보아 수정. 아래도 이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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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의 자설 洪士拯字說 옛적에 소환(蘇渙)의 표덕(表德 자(字))을 처음에는 '공군(公群)'으로 했었는데, 그의 동생 소순(蘇洵)이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루는지라 크게 길하다.[渙其群元吉]"41)에서 뜻을 취하는 것이 다만 "바람이 물 위에 불 때 문양을 이룬다.[風水成文]"라는 뜻을 취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인하여 '문보(文甫)'로 바꾸었다.내가 살펴보건대, 바람이 물 위에 부는 때를 만나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단지 그 문양만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만물이 흩어져 달라지지만 유행은 합쳐져 같게 되고, 억조창생이 지극히 많지만 정신은 감응하여 모이며, 예의(禮義)가 매우 많지만 모두 상세히 알아 통달하는 것은 또한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룬다는 뜻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군자가 하루라도 힘쓰지 않는 것이겠는가. 한가로이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오히려 화방(畫舫)을 명(銘)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데42), 하물며 흩어지는 때를 만나 어려움을 사양한 채 스스로 편안히 지낼 수 있겠는가.지극한 보배가 깊은 곳에 있거든 배를 타는 괴로움을 꺼려하지 않아서 솜으로 물이 새는 것을 대비하고 밧줄로 짐을 고정해 두면 하룻밤 봄물이 불어나는 때에 이르러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몽충(蒙衝) 같은 큰 전함이 하나의 터럭만큼이나 가볍게 떠 갈 것이니, 홍수나 큰 하천을 건너게 하더라도 거침없이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흩어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어느 때라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다.홍씨(洪氏)의 자손 승환(承渙)은 젊은 나이에 준걸차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나에게 표덕(表德 자(字))을 묻기에 내가 "흩어짐을 구제함에 무리를 이루는 것이 길하다.[用拯群吉]"라는 뜻을 취하여 '사증(士拯)'이라 명명하였다. 아, 사증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선대부(先大夫) 봉남공(鳳南公)이 명명한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昔蘇渙表德。初以公群。其弟洵以爲取諸渙其群元吉。不如只取風水成文之義。因以文甫易之。以予觀之當風行水上之時。不圖所以拯救之方。而任其渙散。只取其文者。未見其爲至當也。萬物散殊而流行合同。億兆至衆而精神感聚。禮義優優而纖悉會通者。亦莫非渙群之義也。豈君子一日而不勉者乎。人有燕居思危。而猶以畵舫爲銘。況當其渙而辭難自便乎。至寶在深。不憚勤航。袽以備其漏。維以固其載。至於一夜春水。不勞推移之力。而蒙衝巨艦。輕如一毛。則使之涉大浸濟巨川。沛有餘裕矣。然則吾之所以拯渙者。將無時不可矣。洪氏子承渙。妙齡雋異。問表德於予。予取用拯群吉之義。命之曰士拯。嗚呼。士拯顧名思義。必有不負其先大父鳳南公命名之義者矣。 흩어짐에……길하다 《주역》 〈환괘(渙卦) 육사(六四)〉에 나오는 말이다. 한가로이……있는데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조칙에 응해 글을 올려 여러 폐단을 진언하였다가 외직으로 좌천되어 활주(滑州)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자신의 집무실 곁에 방을 만들고 화방재((畫舫齋)라 명명한 뒤에 〈화방재기(畫舫齋記)〉를 지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감정을 서술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文忠集 卷39 畫舫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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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 원경의 자설 李生元敬字說 이생(李生) 기일(基一)이 원경(元敬)을 표덕(表德 자(字))으로 삼았으니, 내가 일찍이 명명해 준 것이다. 하루는 그에 대한 설(說)을 지어 줄 것을 청하기에 그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의지할 곳이 없음에도 오히려 학문에 힘쓰고자 하는 뜻을 잊지 않는 것을 가엾게 여겨 삼가 '일(一)'에 부응하는 말을 들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지어 보낸다.아, '일'의 뜻은 한 가지가 아니다. 순수하여 섞임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로움이나 망령됨이 있다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간단(間斷)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눈을 한 번 깜박이거나 숨을 한 번 쉬는 짧은 시간이라도 간단함이 있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빠뜨린 것 없이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만 가지 선 가운데에 한 가지 선이라도 갖추지 않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천지조화의 근원이며, 성신(聖神)이 신묘하게 작용하는 본원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고 이것을 체득하게 하는 것은 오직 '경(敬)'일 뿐이다. '경'은 '주일(主一)'의 뜻이니,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는 것39)을 '경'이라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갖기만 하면 마음이 전일하게 된다."40)라고 하였다.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하는 것이 학자에게 주일(主一)의 시작이 되니, 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李生基一表德元敬。余嘗所命也。一日請爲其說。哀其早孤靡依。猶不忘勉學之志。謹擧一副語。以效其一分之助。嗚呼。一之義不一。純粹無雜之謂一。以爲纔有纖毫私妄。便不是一也。終始無間之謂一。以爲纔有瞬息間斷。便不是一也。該括無遺之謂一。以爲萬善之中。一善未備。便不是一也。此是天地造化之原。聖神妙用之本。然其所以致此而體此者。其惟敬乎。敬者主一之義也。不二以二。不三以三。惟心惟一。萬變是監。非敬之謂耶。程子曰。纔整齊嚴肅。則心便一。整齊嚴肅。是學者主一之始也。勉之哉。 두……것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 제6장에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라.[弗貳以二, 弗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라는 구절이 보인다. 외면을……된다 정이천(程伊川)이 제시한 수양법으로, 《근사록(近思錄)》 4권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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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현【장현】57)에게 답함 答朴而顯【章鉉】 금옥과 같은 형제들이 편지【雙魚】58)를 동봉(同封)하였고, 편지를 가지고 온 자는 또 그대의 당질이었습니다. 누추한 저희집에 만 갈래의 빛이 드리우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만 당시에 마침 밖에 있어 서로 어긋났기에, 옛날 천 리 밖에서 정신으로 사귀는 것에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편지를 받은 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시탕(侍湯)하는 사이에 동정(動靜)과 기거(起居)는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먼 곳에서 염려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존종씨(尊從氏)59)가 순절(殉節)하신 거룩한 자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충분합니다. 우선 본장(本狀)60)에 근거하여 대략 서술하였는데 이는 구구하게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61)으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안(公案)으로 정본(定本)을 만들지 말고 거듭 대방가(大方家)의 큰선비를 구하여 후손에게 찬양하도록 하여 세도(世道)를 위한 계책으로 삼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각각의 편지에 답장을 드리는 것이 도리에 합당한 일이지만 이처럼 예(禮)를 생략하였습니다. 공경함이 부족하여 자못 황공합니다. 부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金昆玉季。雙魚同封。將之者。又其賢堂咸也。足令陋室光紫萬丈。但時適在外。交相差池。其有愧於古之千里神交者。多矣。信後有日。未審侍湯之餘。動靜起居。不至有損。遠外貢慮。不勝耿耿。尊從氏殉節偉蹟足以不朽百世。姑據本狀。而序述梗槪。此是區區緇衣之誠有不能自己也。勿以爲定本公案。更求之大方巨手。以揄揚於來許爲世道計。如何如何。理合各幅。而若是省禮。欠敬殊惶。俯諒如何。 박장현(朴章鉉) 호는 이현(而顯) 자는 정일(正一)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1916년에 출생하였고 고창(高敞)에 거주하였다. 스승으로 기우만(奇宇萬) 등이 있다. 편지【雙魚】 멀리서 보내 온 두 마리의 잉어 뱃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서신(書信)을 의미한다. 쌍리(雙鯉), 혹은 이소(鯉素)라고도 한다. 존종씨(尊從氏) 상대방의 조카에 대한 존칭이다. 본장(本狀) 편지에서는 박장현(朴章鉉)이 정의림(鄭義林)에게 존종씨(尊從氏)에 대한 글을 요구하였는데, 그 글을 쓰기 위한 근거가 되는 글로 보인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家狀)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 치의(緇衣)는 《시경》의 편명으로 현인(賢人)을 사모하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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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경【진호】에게 답함 答金春卿【震浩】 세월은 효자(孝子)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아 예복을 길복(吉服)으로 바꾸어 입은 것이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극한 마음으로 개확(慨廓)62)하셨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친구의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서 달려가 조문을 하는 예의를 갖추지도 못하였으니 이 무슨 이치이겠습니까? 실로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큰 도량으로 살펴주시고, 남들과 같지 않음을 따지지 않고서 욕되게 편지를 보내주시어 아주 정성스러운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감동하고 슬퍼서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어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절선(節宣)63)이 편안하고 진중해짐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은 소식이었습니다. 용렬한 저는 몸이 쇠퇴하여 부탁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예전에 그곳의 사우(士友)들과 고흥(高興)과 낙안(樂安) 사이에서 강론하러 모인 적이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 이미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함께 따라 노닐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지고 말았으니, 매번 그때를 떠올리면 매우 마음이 아파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또 나의 좌우(左右) 같이 어진 그곳의 사우들과 더불어 다시 예전 그날처럼 따라 노니는 즐거움을 도모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더없이 감격스럽습니다. 강회(講會)에 왕림(枉臨)하여주심을 미리 간절히 기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日月不爲孝子留。而巾堂就吉。計已久矣。伏惟至情慨廓。何以堪支。忝在知舊之末。而竟闕匍匐之儀。此何事理。愧負實深。然而盛鑑大度。不較不猶。辱賜惠存。致意繾綣。執書感惻。不知所以爲答。因審侍省節宣安重。尤叶願聞。義林衰頹淟劣。無足奉煩。竊念頃年與貴中士友。講聚於興樂之間者。累矣。而苒苒歲月。已四十餘年矣。所與遊從擧皆零散。每不勝追傷之至ㅡ豈知今日又與貴中士友賢如吾左右。復圖遊從之樂如前日耶。尤用感感。講會枉臨。預切欣企。 개확(慨廓)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을 지낸 것을 말한다. 상을 당한 처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충충(充充)'이라 하고, 빈소(殯所)에 봉안한 다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구구(瞿瞿)'라 하고, 소상 때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개(慨)'라 하고, 대상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확(廓)'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절선(節宣) 철에 따라 몸을 조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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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427)에서 우암과 수암428) 두 선생의 초상화에 참배하다 南澗精舍, 拜尤遂二先生遺像 회덕 남쪽 개울가에 정사가 있는데 懷南精舍澗之邊대로429)의 초상화가 엄숙히 임했네 大老遺眞臨肅然옥을 쪼듯 당시에 학업 닦은 곳이요 琢玉當年修業地들보 꺾이자 삼년간 상생한 자리네430) 摧樑三載象生筵텅 빈 산의 초목에도 광채가 남아 있고 空山草木留光彩온 나라의 사대부들은 경건함을 다했네 擧國衣冠致敬虔또한 같은 당에 의발431) 전한 제자 있으니 更有同堂衣鉢弟서로 전수한 심법이 일치하여 온전하였네 相傳心法一規全 懷南精舍澗之邊, 大老遺眞臨肅然.琢玉當年修業地, 摧樑三載象生筵.空山草木留光彩, 擧國衣冠致敬虔.更有同堂衣鉢弟, 相傳心法一規全. 남간정사(南澗精舍) 송시열(宋時烈)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3년(숙종9)에 회덕(懷德) 소제동(蘇堤洞)에 세운 강학당이다. 우암(尤庵)과 수암(遂庵) 우암은 송시열의 호이고, 수암은 권상하(權尙夏)의 호이다. 대로(大老) 덕과 명망이 높은, 나라의 큰 어른을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백이와 태공) 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인데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간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그 자제들이 어디로 가겠는가.〔二老者, 天下之大老也, 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天下之父歸之, 其子焉往?〕" 하였다. 들보……자리네 원문의 '최량(摧樑)'은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꺾인다는 '산량퇴괴(山梁頹壞)'를 뜻하는 말로, 스승이나 철인(哲人)의 죽음을 의미한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은 죽은 자를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 의복과 기물 및 의식 절차를 살아 있는 이에 준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의발(衣鉢) 본디 불교(佛敎)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전법(傳法)의 표신으로 주는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특히 학문 전수(學問傳授) 등의 경우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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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짓다 偶題 열 식구가 반경의 밭436)을 경작하니 十口佃治半頃田늙을수록 생계가 더욱 빈약해지네 老來活計轉蕭然미몽을 장주의 나비437)와 동일시 않고 不將迷夢同莊蝶홀로 깊은 원망을 품어 두견에게 묻네 獨有深冤問杜鵑취하고 깬 것은 사후에 논해야 하거늘 醉醒自應論死後달고 쓴 것을 하필이면 생전에 따지랴 苦甘何必較生前날씨가 무더운 걸 염려해서가 아니라 未須爲慮天時熱내 갓끈과 두건 씻으러 돌샘으로 가네438) 濯我纓巾向石泉 十口佃治半頃田, 老來活計轉蕭然.不將迷夢同莊蝶, 獨有深冤問杜鵑.醉醒自應論死後, 苦甘何必較生前?未須爲慮天時熱, 濯我纓巾向石泉. 반경(半頃)의 밭 50묘(畝)로, 면적이 좁은 밭을 표현한 말이다. 100보(步)를 묘(畝)라 하니, 이는 길이가 100보에 너비가 1보이며, 100묘를 부(夫)라 하니 이는 1경(頃)이니 길이와 너비가 100보이며, 3부를 옥(屋)이라 하니 이는 3경이니 너비가 300보에 길이가 100보이며, 3옥을 정(井)이라 하니 900묘이니 길이와 너비가 1리이다.〔步百爲畝, 是長一百步, 闊一步. 畝百爲夫, 是一頃, 長闊一百步. 夫三爲屋, 是三頃, 闊三百步, 長一百步. 屋三爲井, 則九百畝也, 長闊一里.〕 《禮記補註》 장주(莊周)의 나비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깬 뒤에, 장주가 나비로 되었는지 또는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판단하기에 애썼다는 고사가 있다. 《莊子 齊物論》 내……가네 세속을 벗어나 고상함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는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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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의 자에 대한 설 曺仲直字說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너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편안히 하라.", "보필하는 신하는 정직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직함[直]은 살아가는 이치이고107) 마음의 덕이며 귀신의 정령(精靈)이다. 만약 경(敬)하여 잘못됨이 없으면 마음에 보존되는 것이 정직하고, 의(義)를 으뜸으로 여긴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직하다. 이것으로 사람을 대하면 내가 남을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되고, 이것으로 벗을 취하면 남이 나를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된다. 혹시 군주의 신임을 받고 때를 만나서 조정의 반열에 서게 된다면 허물을 다스리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를 순치(馴致)108)하는 것 또한 어찌 원개(元凱)109) 등 여러 용110)이 모여서 국사(國事)를 논의하던 성대한 모습에 뒤지겠는가?조생 필승(曺生弼承)이 중직(仲直)을 자(字)로 삼았으니, 취한 뜻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겠다. 평소에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적어 조생에게 알리고자 한다. 虞書曰。安汝止。其弼直。直。生之理也。心之德也。鬼神之情也。苟能敬而無失。則存乎中者直矣。義以爲上。則形於外者直矣。以之而接人。則吾所以弼人者直矣。以之而取友。則人所以弼我者直矣。其或得君遇時。而立於朝著之間。則所以繩愆糾繆而馴致大猷者。亦何讓於元凱群龍。濟濟都兪之盛也。曺生弼承字以仲直。其取義。知不外此。而尋常顧勉。亦豈有窮己哉。請書此而相諗焉。 정직함[直]은……이치이고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사람이 살게 되는 이치는 곧은 데에 있다. 곧지 않은데도 살게 되는 경우는 요행히 면한 것일 따름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순치(馴致) 점차로 진행하여 극성한 데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주역》 〈곤괘(坤卦) 상(象)〉에,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곧 이르게 됨은 음이 비로소 얼기 시작함이니, 그 도를 순조로이 점차로 익히어 가서 단단한 얼음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원개(元凱) 팔원팔개(八元八凱)의 약칭이다.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고신씨(高辛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원'이라고 하였고, 고양씨(高陽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개'라고 하였다. 이들의 후손들이 그 명성을 이어가자, 순 임금이 요 임금에게 이들을 천거하여 등용하였는데, 훌륭한 통치로 이름을 떨쳤다. 여러 용 현신(賢臣)을 비유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0 〈낭의전(郞顗傳)〉에 "요 임금이 제위에 있자 여러 용들이 쓰였고,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덕을 개창함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보필하였다.[唐堯在上, 群龍爲用, 文武創德, 周召作輔.]"라고 보이는데, 이현(李賢)의 주(注)에 "여러 용은 현신을 비유한다.[群龍, 喩賢臣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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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백순의 자에 대한 설 朴伯順字說 내가 일찍이 우인(友人) 박 사문(朴斯文)을 위하여 그의 이름을 효동(孝東)이라 명명하고 자(字)를 백순(伯順)이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사문(斯文)이 나에게 말하기를, "제 이름을 지어 주신 이래로 부형(父兄)이나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고 저의 자(字)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마다 항상 척연히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이름이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대야나 물그릇, 지게문이나 창호(窓戶)에 적는 명문(銘文)보다 큽니다. 자(字)를 지어 주고 설명을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일입니다. 어찌 저를 위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그래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서(天舒)와 천질(天秩)105)은 그 단서가 끝이 없이 많지만, 벼리가 되는 큰 이치는 오직 효(孝)가 그것이다. 효는 천하의 대순(大順)이고 순(順)은 천하의 지당(至當)이다. 이는 천심(天心)과 인리(人理)가 끝없이 생겨나 두루 흘러서 바뀌거나 그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효라고 이르는 것이 어찌 단지 슬하에서 부모의 뜻을 받들거나 힘든 일을 하고 봉양하는 것을 이를 뿐이겠는가. 부모가 나에게 온전한 성명(性命)을 남겨주었으니 내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은 모두 효이다. 모름지기 미루어 넓혀나가 흠결이 되는 것이 없으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경지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여 도덕이 완벽한 군자다운 사람이 된다면 효(孝)를 행하고 순(順)을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106)라고 하였다. 사문(斯文)은 힘쓰라!" 余嘗爲友人朴斯文。命其名曰孝東字伯順。久之。斯文向余道。一自錫嘉。在父兄師友之間。聞其名我字我。輒不無惕然愧懼自反自省之意。嘉名之有助於人。過於盤盂戶牖之有銘遠矣。字之有說古也。盍爲我加惠焉。余曰。天舒天秩。其端無窮。而綱理之大。惟孝是己。孝者天下之大順也。順者天下之至當也。此天心人理。生生周流。不容易不容已處。然所謂孝者。豈但承順膝下服勞致養之謂而已耶。父母以性命之全。遺之於我。我之身所當爲者。皆孝也。須推而擴之。無所虧欠。立其身於光明正大之域。而爲全德君子之人。則其爲孝爲順。顧何如哉。程子曰。孝弟順德也。斯文勉之。 천서(天敍)와 천질(天秩) '천서'는 하늘의 윤서(倫敍)로,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ㆍ붕우(朋友)의 윤서를 이르고, '천질'은 하늘의 품질(品秩)로,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의 높고 낮은 품질을 이른다. 《서경》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이 윤서로 법을 두시니 우리 오전을 바로잡아 다섯 가지를 돈후하게 하시며, 하늘이 품질로 예를 두시니 우리 오례로부터 하여 다섯 가지를 떳떳하게 하소서."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학이(學而)〉에 보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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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집【재해】에게 답함 答梁順集【在海】 외람되게도 하문(下問)해 주시니 고마움이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하물며 효자의 비통함은 엄연히 심상(心喪) 중이건만40) 오랜 벗으로서 때맞추어 위문하지 못하고 도리어 먼저 소식을 전하는 수고를 끼쳤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부끄럽고 고마움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서한을 통해 아버님의 안부가 강녕하시고 모시고 생활하는 안부가 더욱 복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기쁘고 후련합니다. 생업과 독서는 서로 방해가 된다는 말씀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주부자(朱夫子)는 이에 대해서 이르기를, "이것은 배를 움직이지 못해서 계곡이 굽은 것을 싫어하는 격이다.41) 만약 배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면 계곡이 굽이치는 험난한 곳일지라도 어찌 내가 힘을 발휘하여 잘 건너갈 곳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의 경우 25개월을 첫 번째 기일로 삼고 치립(緇笠)과 치대(緇帶)를 하면서 27개월의 상제(喪制)를 마칩니다.42) 대체로 27개월의 상【삼년상(三年喪)을 말함】은 사람의 자식이라면 늘이지도 못하고 줄이지도 못합니다. 남의 양자로 간 아들,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간 딸이더라도 역시 이것을 줄이지 못합니다. 또한 치립(緇笠)과 치대(緇帶)는 본래 상복에 규정되지 않은 복이고 단지 길복(吉服)에서 감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꾸고 줄이는 절차 없이 곧장 27개월에 이릅니다. 어리석은 의견은 이와 같습니다만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猥荷辱問。已極感鏤。矧伊孝子哀疚。儼然在心制中。爲知舊者。不能隨時相慰。而反有以獲其先施之勤哉。愧感罔喩。因審庭候康寧。侍旁增祉。尤庸欣豁。産業讀書相妨之喩。此固然矣。然朱夫子於此。有一言焉曰。此不能運船。嫌溪曲者也。苟解運船之術。雖溪曲之險。誰非吾施力利涉之地也。此言當深思之也。父在母喪。二十五月爲初忌。而緇笠緇帶。則然二十七月之制也。大抵二十七月爲人子者。加不得。減不得。雖出后之子。適人之女。亦減此不得也。且緇笠帶。木是非服之服。而只是殺於吉服者。故無變殺之節。而直至二十七月。瞽見如此。未知得否。 심상(心喪) 중이건만 부재 모상(父在母喪)의 경우, 아들이 상주가 아니고 남편이 상주이기 때문에 기년(朞年) 만에 복을 벗는 것이 예제(禮制)이다. 그러나 아들은 복을 벗은 뒤에도 남은 기간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며 복을 입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삼년을 채워 근신한다. 이것은……겪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8권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 나오는 말이다. 뒤의 내용은 출전을 확인할 수 없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의……마칩니다 원문에 따른 번역은 이와 같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은 아버지가 생존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 자식은 아버지가 입는 복과 같은 기년복을 한다. 다만 11개월에 소상제(小祥祭)를 지내고 13개월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내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내 공식적인 상기(喪期)를 마치지만 이후 27개월이 될 때까지 심상(心喪)을 한다. 담제를 지내고 3년상의 기간이 끝나는 27개월까지, 즉 심상을 치르는 동안 조선에서는 관례적으로 치립과 치대를 한 듯하다. 이러한 사실에 따르면 본문의 '二十五月爲初忌 而緇笠緇帶'는 '十五月爲禫 而緇笠緇帶'의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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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대부 호군 만은 백공 묘표 正憲大夫大護軍晩隱白公墓表 장흥(長興) 고읍면(古邑面) 하발촌(下鉢村) 뒤 곤좌간향(坤坤艮向) 언덕에 우뚝한 넉 자의 봉분이 있으니, 바로 고(故) 정헌대부(正憲大夫) 대호군(大護軍) 백공(白公) 휘는 영필(永弼), 자는 경흥(敬興)의 의발이 묻힌 곳이다.공은 순묘(純廟) 경진년(1820, 순조20)에 태어나 금상(今上) 갑오년(1894, 고종31) 12월 15일에 졸하였으니, 향년 94세이다. 타고난 기질과 품성이 온후하고 질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지극한 행실이 있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집안이 대대로 너무나 가난하였기에 부지런히 일하여 부모님을 봉양하였는데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여 올렸다. 병간호할 적에는 집 밖에서 기도하고 약을 올리기 전에 먼저 맛보았으며 밤에도 옷을 벗지 않았다. 질병이 심해지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입에 흘려 살렸다.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슬픔이 지나쳐서 몸을 상할 정도였으므로 이웃에서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장사 지내고 무덤가에 비석을 세우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하였는데 비바람이 치더라도 폐하지 않았다. 4대의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오래 유지할 규정을 만들었다. 또 종가(宗家)를 도와주고 구휼하여 본업을 편안하게 영위하게 하였다.몇 칸의 가숙(家塾)을 지어 서적을 소장하고 곡식을 축적한 다음 원근의 명사를 널리 초빙하여 모여서 서로 강론하여 자손들로 하여금 본받는 바가 있게 하였다. 친척과 벗들 가운데 추위에 떠는 자가 있으면 옷을 마련해주고 굶주린 자가 있으면 음식을 주었다. 성품이 베풀기를 좋아하여 조금도 인색한 적이 없었다. 흉년에는 번번이 인근의 마을에 굶주리는 사람이 몇인지 헤아려 달마다 일정하게 주고서 다음 해 보리를 수확할 때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비석을 세워 칭송하였는데, 그 비문에 대략 "100리 땅 안에 공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굶주리는 우리를 살렸으니 많은 사람에게 비석으로 전한다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빌렸다가 갚지 않은 돈이 수백 금이었는데 ,공의 아들이 관아에 보고하여 독촉하고자 하자, 공이 크게 꾸짖기를 "붕우 간에 재물을 융통하는 것은 의리이고, 가난하여 갚지 못하는 것은 형편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리와 우의로 사귀다가 끝에 가서 다투어 송사하겠는가."라고 하고는 즉시 그 문서를 가져다가 태워 버렸다.일찍이 자식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시례(詩禮)는 선비가 늘 행하는 일상의 다반사이니, 이것을 버린다면 마음 쓸 곳이 없어진다. 우리 선대에서는 문학과 관직이 계속 끊이지 않아 향리에서 명문가가 되었다. 만약 자신을 단속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지 않아서 대대로 전한 옛 가업을 하루아침에 실추하게 한다면 어찌 선조의 죄인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만년에는 집안일을 제쳐두고 세상일도 물리친 다음 별장 한 칸을 짓고 만은(晩隱)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그곳에서 날마다 친족 중의 기로(耆老)들, 향당의 벗들과 더불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유유자적하게 즐기며 애오라지 세월을 보내며 생을 마쳤다. 장수하였다는 이유로 높은 품계에 올랐는데 위로 3대의 선조에까지 추증되었다. 아들 4인 가운데 3인이 과적(科籍)에 올랐으니, 영광이 성대하게 빛났다.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보답한다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다.백씨(白氏)는 관향이 수원(水原)이니, 고려 때 충숙공(忠肅公) 휘 장(莊)이 먼 선조이다. 해성군(海城君) 휘 맹하(孟夏), 정해군(貞海君) 휘 수장(壽長), 술고당(述故堂) 휘 민수(民秀)는 모두 중엽의 현조(顯祖)이다. 증조는 종택(宗澤)인데, 호조 좌랑으로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조부는 휘 유(瑜)인데, 통덕랑(通德郞)으로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남현(南鉉)인데,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모친은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김이효(金利孝)의 따님이다. 공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윤철(崔允喆)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는데, 후사가 없어 다시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종현(金宗鉉)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4남 1녀를 낳았다. 호인(灝寅)은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태인(泰寅)이 있고, 규인(珪寅)은 무과에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지냈다. 우인(禹寅)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딸은 청풍(淸風) 사람 김익천(金益天)에게 출가하였다. 손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호인이 백발의 노년에 백리 길을 고생하며 찾아와서 묘석(墓石)에 기록할 문장을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 잔약하고 용렬한 내가 실로 감히 부탁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부지런한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 삼가 가장(家狀)에 의거하여 대략 보태고 수정하여 짓는다. 長興古邑面下鉢村後坤艮原。有崇四尺。卽故正憲大夫大護軍白公諱永弼字敬興之衣履攸藏也。公生於純廟庚辰。卒於今上甲午十二月十五日。享年九十四。天稟溫厚質慤。自幼有至行。聞於人。家世貧甚。服勤就養。備盡甘胹。侍病露禱嘗藥。衣不解帶。疾革。血指得甦。執喪過毁。隣里感涕。葬而樹碣表阡。朔望展省。風雨不廢。營置四世祭田。定爲久遠之規。又助恤宗家。使之安業。立家塾數間。儲書籍蓄粮穀。廣延遠近名士。聚相講磨。使諸子諸孫。有所矜式。親戚知舊。寒者衣之。飢者食之。性好施予。未有少吝。遇飢歲。輒計鄰近村落飢戶眷口。月給有程。至明年麥登而已。所活甚衆。鄕人立碑誦之。其文略曰。地惟百里。公其一人。活我飢戶。萬口碑傳。有人負債未償者。爲數百金。公之子。欲聞官督之。公大責曰。朋友通財。義也。貧而無償勢也。始以義誼相交。終以爭訟相加耶。卽取其券焚之。嘗戒諸子曰。詩禮是士子日用茶飯。舍此則無所用心。我先世文學仕宦。綿延不絶。爲鄕里名家。若不謹其身。不勉其學。使世傳舊物。一朝墜地。則豈非先朝之罪人乎。及其晩年。掃斥家務。屛除外事。修別庄一室。題其顔曰晩隱。日與族戚者老。鄕黨故舊。賦詩行酒。談笑歌詠。優遊娛樂。聊以卒歲。壽陞祟品。上以追贈三世。子男四人。三陞科籍。光榮赫然。天之報施有德。果爲不虛矣。白氏貫水原。麗朝忠肅公諱莊。其遠祖也。海城君諱孟夏。貞海君諱壽長。述故堂諱民秀。皆中葉顯祖也。曾祖宗澤戶曹佐郎。贈司僕寺正。祖諱瑜通德郞。贈左承旨考諱南鉉。贈戶曹參判。妣光山金氏利孝女。公娶全州崔氏允喆女。無育。繼娶金海金氏宗鉉女。生四男一女。曰灝寅武科五衛將。曰泰寅。曰珪寅武科監察。曰禹寅武科宣傳。女曰金益天淸風人。孫以下不錄。灝寅白首衰境。百里重硏。托以識墓之文。余以殘劣。固知不敢承膺。而難孤勤意。謹据狀而略加增裁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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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고공 묘표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高公墓表 선덕(先德)이 말하기를 "후덕(厚德)한 사람은 반드시 복록과 장수를 누리지만 복택(福澤)은 사악한 사람에게 내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이 말을 가지고 세상에서 이른바 복을 누렸다는 집안을 살펴보건대 그 선대에서 공덕을 쌓은 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지금 우리 고을 고(故) 지재(止齋) 고공(高公)에게서 또한 볼 수 있다.공은 빼어나고 영특한 자질로 경전에 힘쓰고 학문을 쌓았으며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갔으니, 그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신중하고 성실한 행실과 학문하고 시례(詩禮)를 익힌 풍모는 우뚝이 고을에서 명성이 있었다. 평상시 광채를 숨기고 자취를 감춘 채 시속을 따르지 않아, 득실과 이해에 대해서 아득히 알지 못하는 듯이 하였고, 시비와 훼예(毁譽)에 대해서 묵묵히 듣지 못하는 듯이 하였다. 오직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의를 행하는 것에 대해서만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힘썼다.이 때문에 부모를 섬길 적에는 사랑과 공경이 모두 지극하였으며, 형제를 대할 적에는 우애가 아주 넉넉하였으며, 친족을 대할 적에는 은덕과 정의가 두루 퍼졌으며, 벗을 사귈 적에는 신의가 뚜렷이 드러났으며, 생도를 가르칠 적에는 믿고 따르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원망이 없고 원근에서 한목소리로 서로 칭찬하여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후인이 계승하여 선생의 법도가 없어지지 않았고, 신명(神明)이 도와 복록이 끊기지 않았다. 이에 성대하게 한 고을의 모범적인 가문이 되었고 먼 후대에까지 복록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는 이른바 후덕한 사람은 반드시 복록과 장수를 누린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린 바를 살펴보면 그 당시 쌓은 공덕을 알 수 있을 것이다.공의 휘는 인건(仁建), 자는 사영(士英), 지재(止齋)는 그의 호이다. 고씨(高氏)는 계보가 탐라(耽羅)에서 나왔다. 휘 복림(福林)에 이르러 장택군(長澤君)에 봉해졌는데, 자손들이 그대로 관향으로 삼았다. 휘 신전(臣傳)에 이르러 본조에 들어와 호조 참의를 지냈다. 휘 열(悅)은 태종 때 호조 참판을 지냈다. 휘 상덕(尙德)은 지평이고, 휘 자정(自貞)은 문과에 급제하여 경차관(敬差官)으로 본성(本省)을 순도(巡到)하였다. 휘 신긍(愼矜)은 충순위(忠順衛)로 바로 공의 5대조이다. 고조는 휘 익심(益深)인데, 진사로 창릉 참봉(昌陵參奉)이고, 증조는 휘 명진(明進)인데, 통덕랑(通德郞)이다. 조부는 휘 현(鉉)인데, 진사이다. 부친은 휘 경리(景离), 호 둔암(遯庵)으로 은덕(隱德)이 있었다. 모친은 창녕 조씨(昌寧曺氏) 조의수(曺義修)의 따님이다. 온후하고 인애하며 곧고 훌륭하였으며 부덕(婦德)을 갖추었다.공은 인묘(仁廟) 경오년(1630, 인조8)에 태어나 을묘년(1675, 숙종1) 9월 19일에 졸하였으니, 향년 46세이다. 나중에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배위(配位)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김제민(金濟民)의 따님인데, 규중의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여사(女士)의 풍모가 있었다. 묘소는 능주의 이지촌(鯉池村) 오른쪽 언덕 무좌(戌坐)에 있는데, 공과 상하로 봉분을 조성하였다. 아들 둘을 낳았으니, 장자는 대기(大器), 차자는 태익(泰益)이다. 장방손(長房孫)은 진모(振謨)이고, 증손은 명복(命復)이다. 차방손(次房孫)은 응성(應星)이고, 증손은 명집(命集), 명윤(命允)이다. 현손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6세손 진규(鎭圭)가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표를 청하였다. 나는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굳게 사양해도 되지 않아 삼가 가장에 의거하여 글을 짓는다. 先德有言曰。厚德必享祿壽。而福澤不降於滛人。嘗以是說而觀世之所謂享福之家。未有不由其父祖積累之力。今於吾鄕故止齋高公。亦可以見矣。公以挺邁開悟之資。劬經積學。立心飭躬。其孝友謹慤之行。學問詩禮之風。偉然有譽於鄕邦間。平居晦光斂迹。不趨時華。於得失利害。漠然若不省也。於是非毁譽。默然若不聞也。惟於素其位而行其義者。勉勉焉如恐不及。是以事父母而愛敬備至。在兄弟而友悌隆洽。處族戚而恩誼流通。交朋友而信義著行。敎生徒而信從日衆。內外無怨。遠近相得。一口稱賞。無有間言。以至來許承襲而典刑不空。神明扶佑而福祿不替。蔚然爲一鄕法家。百年福宅。此非所謂厚德必享祿壽者耶。觀其所享。而當日之積累。盖可知也已。公諱仁建。字士英。止齋其號也。高氏系出耽羅。至諱福林封長澤君。子孫仍貫焉。至諱臣傳。入我朝。官戶曹參議。諱悅太宗朝戶曹參判。諱尙德持平。諱自貞文科。以敬差官巡到本省。諱愼矜忠順衛。卽公之五世祖也。高祖諱益深進士昌陵參奉。曾祖諱明進通德郞。祖諱鉉進士。考諱景离號遯庵。有隱德。妣昌寧曺氏義修女。溫仁貞嘉。婦德甚備。公以仁廟庚午生。乙卯九月十九日卒。享年四十六。後贈承政院左承旨。配光山金氏濟民女。閫儀無闕。有女士風。墓綾之鯉池村右岡戌坐上下封。有二男。長大器。次泰益。長房孫振謨。曾孫命復。次房孫應星。曾孫命集命允。玄孫以下不能盡錄。六世孫鎭圭。抱家狀。來請表墓之文。余以非其人。牢辭不獲。謹據狀而爲之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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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칠설을 황경함에게 보여주다 四七說示黃景涵 칠정(七情)은 공자가 말한 것으로, 《예경(禮經 예기(禮記))》에 드러나 있다.43) 이것은 사람의 정에 이 일곱 가지가 있음을 통틀어 말한 것인데, 맹자는 어찌하여 공자가 이미 완성해서 말한 칠정을 취하지 않고 도리어 이처럼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따로 말한 것인가?대체로 칠정은 본디 모두 본성에서 발현되어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기제(機制)가 악으로 흐르기 쉬워 모두 반드시 선하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그것을 인용하여 모든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증거로 삼을 수 없다. 때문에 칠정 중에 특별히 모든 사람이 똑같아서 선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을 취하여 실증한 것이니, 그 뜻이 지극하다. 이미 선하지 않을 수 없는 정만을 취한 것이라면 성냄[忿懥]이나 기뻐함[好樂]처럼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이 그 가운데에 있다고 말하더라도 또한 무슨 해가 되겠는가. 선과 악을 겸하기 때문에 사단(四端)을 포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칠정은 본디 대번에 선과 악을 겸한다고 말할 수 없음에랴. 만약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사단이 칠정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오직 '측은(惻隱)' 두 글자만으로도 천하의 정을 포괄할 수 있다. 만약 그 자체로 나누어 말한다면 사단은 그대로 사단일 뿐이고, 칠정을 포괄할 수 없다. 예컨대, 인(仁)을 넓은 의미로 말하면 본디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을 겸하지만, 만약 좁은 의미로 말한다면 인은 그대로 인이고, 의는 그대로 의일 뿐이니, 어찌 서로 섞일 수 있겠는가.또 참조할 만한 말이 한 가지 있다. 《대학(大學)》의 사유소(四有所)44)와 같은 것도 애초에 사덕에서 발현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것을 사단(四端)이라 말하더라도 또한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는 특별히 '측은' 등의 사단을 말하였고, 《대학》에서는 특별히 '분치(忿懥)' 등의 사유소를 말하였으니, 이처럼 같지 않은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또 노사(蘆沙)선생이 사단을 근본으로 여긴다고 말한 것은 그것이 발현되어 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욕에 의해 뒤섞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일 뿐, 우리 벗의 말처럼 칠정을 지엽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 벗의 말처럼 사단을 근본으로 여기고, 칠정을 지엽으로 여긴다면 이것이 무슨 의리이겠는가. 다시 더욱 생각해 보게나. 七情是孔子之說而著於禮經者也。是統言人之情有此七者。則孟子何不取孔子已成說底七情。而乃別說四端之名如是云耶。蓋七情固皆發於性而無不善者。但其機易流於惡。而不能皆保其必善。則引之不足爲人人性善之證案。故乃於七情之中。特取其人人所同然而不得不善之情以實之。其意至矣。旣取其情之不得不善者。則其情之易流於惡者。如忿懥好樂。謂不在其中。亦何害耶。非謂兼善惡之故而能包四端也。況七情本不可遽以兼善惡言之耶。若專言則不惟四端包七情。惟惻隱二字。足以包天下之情。若就當體上分言。則四端自四端。而不能包七情矣。如仁專言。固該四德。若偏言則仁自仁義自義。胡可相混耶。且有一語可旁照者。如大學四有所。亦未始不發於四德。則謂之四端。亦非過語也。然則孟子特言惻隱等四端。大學特言忿懥等四有所。而若是不同何耶。且蘆沙先生以四端爲根本說者。以其發而直遂。不被物欲混淆云耳。非以七情爲枝葉如吾友言也。若如吾友之言。以四端爲本根。以七情爲枝葉。此何義理也。更加思惟也。 칠정(七情)은……있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무엇을 칠정이라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니,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何謂七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 弗學而能.]"라는 구절이 보인다. 사유소(四有所)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네 가지 병통인 '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좋아함[好樂]', '근심[憂患]' 을 말하는 것으로, 《대학장구》 전(傳) 7장에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心有所忿,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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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덕의 자설 宋士德字說 《시경》에 이르기를, "많고 많은 선비들이 문왕의 덕을 잡았네."50)라고 하였으니, 덕이 무슨 물건이라고 잡을 수 있겠는가마는 보존하고 지켜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게 하고, 단속하고 성찰하여 털끝만큼도 어기지 않게 하여 따라 매진하며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는다.[純亦不已]51)"는 경지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한다면 이른바 "문왕이 나의 스승이다."52)라는 말이 참으로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송씨(宋氏)의 자손 병기(秉基)가 삼가례(三加禮)53)를 마치고 사덕(士德)으로 자(字)를 삼았으니, 뜻을 취함이 크지 않는가. 아침저녁으로 힘써서 이 아름다운 자를 지어준 뜻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詩云。濟濟多士。秉文之德。德是何物而可以秉執。操存持守。勿使有須臾之離。提撕省察。勿使有毫忽之違。遵循征邁。馴致乎純亦不已之地。則所謂文王我師者。信不我欺矣。宋氏子秉基。三加告畢。字以士德。其所以取義者。不其大矣乎。夙夜勉勵。母負此錫嘉之意也。 많고……잡았네 《시경》 〈주송(周頌) 청묘(淸廟)〉에 나오는 시구(詩句)이다. 순수함이……않는다 《중용》 제26장의 "문왕이 문왕이 된 까닭은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文王之所以爲文王, 純亦不已.]"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문왕이……스승이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의 말로, 맹자가 이르기를, "공명의가 말하기를, '주공이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고 했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文王我師也, 周公豈欺我哉?]'라고 했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삼가례(三加禮) 관례(冠禮) 때 세 번 관을 갈아 씌우는 의식으로, 초가(初加)ㆍ재가(再加)ㆍ삼가(三加)로 나뉜다. 《가례》 〈관례〉에 의하면, 초가에서 치포관(緇布冠)과 복건(幅巾)을 씌우면 관자(冠者)는 사계삼(四䙆衫)을 벗고 심의(深衣)로 갈아입은 다음 검은 신발[納履]을 신는다. 재가에서 모자(帽子)를 씌우면 관자는 심의를 벗고 조삼(皂衫)으로 갈아입은 다음 혁대(革帶)를 하고 가죽신[繫靴]을 신는다. 삼가에서 복두(幞頭)를 씌우면 관자는 관직이 있는 경우 공복(公服)과 혁대를 하고 가죽신[納靴]을 신고 홀(笏)을 들며 관직이 없는 경우 난삼(襴衫)을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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