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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塘崔先生墓道碑銘湖之南完山之東有玉流洞山高水淸木石秀異盖月塘崔先生菟裘也公諱霮全州人高麗侍中諡文成公諱阿之曾孫中郎將諱龍鳳之孫同正諱乙仁之子也公生于丙戌四月五日壬寅中司馬試丁巳文科官至檢校戶曺叅議集賢殿直提學甲寅六月二十五日卒享年八十九葬于全州周德山庚坐原淑夫人全州朴氏經德齋從壽女擧四男長匡之仲直之叔得之季德之伯仲季皆文科直提學叔生進少尹後承繁衍不必盡錄而季子德之長孫生明曾孫秀孫忠成玄孫弼成繼成連孫五世孫活希汀六世孫命龍八世孫安俱以學行與俎豆之典其餘忠孝節烈德行文章科宦勳閱步武燀爀盡是法家拂士公天性好學德器夙成在家孝謹萬石君之質行立朝謇侃陳太傅之淸節年七十一休退九溪上玉流洞搆寒碧之堂日吟哦其間優遊自適當時諸賢若節齋金宗瑞晩六崔瀁陽村權近以道義交若安平大君大提學權孟孫文靖公安止爭相尊慕形諸吟詠以誦其德業節孝推此可以知公之所以爲公而累經兵燹其嘉言懿行如杞宋之無徵然一洞溪山曾經題品墨蹟尙{金+免/免+免}在石面曰光風霽月鳶飛魚躍者以寓其活潑工夫灑落氣像金繩鐵索盤紆詰屈凜然有不可犯之勢學問之正大氣像之發越從可以默想矣噫龍歸滄海餘雲尙濕鳳飛丹山落羽可玩公之世已遠矣而其剩馥餘韻猶有存者南方之章甫至今景仰而不衰歌頌而不忘宜其揭諸阡道垂之無窮百世之下論其時聞其風尙識其爲有道有德之君子銘曰後素之質尙絅之文 謙惟德本孝爲行源 愷悌君子展也民望旣揚王庭遽脫名韁 遵彼湖堧有石有泉 邁軸嘉遯其樂陶然大耋康强高朗令終 積善裕後詵詵斯螽 周德之岡衣履攸藏先生遺風山水同長著雍敦牂黃華節通政大夫前承旨安東金寗漢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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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김영한(金寗漢) 월당(月塘) 최담(崔霮) 묘도비명(墓道碑銘) 초(草)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金寗漢 金寗漢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8년 김영한이 지은 월당 최담의 묘도비명 1918년 통정대부전승지(通政大夫前承旨)인 김영한(金寗漢)이 지은 월당(月塘) 최담(崔霮) 묘도비명(墓道碑銘) 초안(草案)이다. 연필로 쓰여 있다. 이 묘도비명을 비석에 새길 때, 글씨는 최영조(崔永祚)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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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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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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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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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최기홍(崔基洪) 서류(書類)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辯護士 崔秉錫法律事務所 崔基洪 崔秉錫法律事務所 崔基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기홍이 변호사 최병석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봉투 최기홍(崔基洪)이 변호사(辯護士) 최병석(崔秉錫)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피봉(皮封)이다. 재판 결과에 관한 서류가 들어 있었던 듯하다. 최기홍인 살고 있는 주소는 부안군 부령면(扶寧面) 옹중리(瓮井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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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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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 김규상(金珪相) 가처분결정서(假處分決定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大正十年十一月三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大正十年十一月三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의 가처분결정서 1921년 11월 3일에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이 김규상((金珪相) 등의 가처분신청(假處分申請)에 대해 내린 가처분결정서이다.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김규상・김석술(金錫述)과 보안면(保安面)에 사는 최병욱(崔炳郁) 등이 신청한 가처분신청(假處分申請)에 대해 재판소는 채권자(債權者)의 신청을 상당하다고 인정하여 보증금 20원을 공탁하도록 하고, 피신청인은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에 쌓아둔 솔가지 1,000속을 매매, 양도, 전당 등 일체 처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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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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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民籍簿照合濟[印]申告書申告年月日 : 大正 年 月 日總代認印 : [印][印]所有者綠故者住所氏名印 : 全羅北道扶安郡保安面牛東里五百八十九番 崔炳郁[印]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及住所氏名印 : (資格) 道 郡 面 里 番土地所在 : 扶安郡扶寧面蓮谷里(席洞山西麓)地目 : 林野四標 : 東 金光彦林 南 路西 路 北 本人林面積 : 六町0000地籍届 : 隆熙四年六月九日 名義人 : 崔炳郁證明又登記種類番號年月日舊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新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貸付年月日及指令番號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事由其他參考事項 : 十四代祖崔生明以下宗中財産證據書類一通地籍届面積十二町六反二畝十五步內綠故林野所有權査定願表記申告書記載의綠故林野을綠故者 의所有에御査定하기로別紙證據書類寫相添林野調査令施行規則第九條에依야出願홈大正 年 月 日 右全羅北道知事 殿一, 申告書은一里洞마다調製야他의里洞의分을混入치말事二, 住所氏名은本籍地居住者에在야民籍簿又은戶籍簿와一致케고寄留者에在야寄留者의登錄簿又은寄留簿와一致케야此와同一의文字를用야明瞭히記載이可홈但申告者가林野所在面外에居住境過에前記書類의抄本을添付홈이可홈三, 林野內에介在土地는地籍圖에登錄치아니것슨林野가아니라도總히申告이可홈 地籍圖에登記林野는申告치아니홈四, 地目은土地調査令第二條의規定에依할事五, 利害關係人으로부터申告할경우에는其住所▣▣▣▣▣▣(利害關係人될)事及氏名을(▣(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欄에記入▣()이可홈六, 共有地의申告書에는代表者의住所氏名을記入▣()고別히各自의住所氏名을記載連名書을添付이可홈七, 表中(證明)은土地에關舊證明規則及不動産証明令에依證明(登記)은不動産登記令에依야登記(地籍届)는舊森林法第十九條의地籍届(貸付)는國有地貸付에係할者로홈前記의關係가有土地는此를別筆로셔申告이可홈八, 官廳에셔通知書는(申告書)을(通知書)로이可홈九, 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立旨,立案,完文又는賜牌等을有것슨其寫를添付이可홈十, 所有者又는綠故者住所氏名欄은所有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綠故者)의三字을抹消고綠故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所有者)의三字을抹消이可홈十一, 登記又證明의種類年月日番號欄의內明治四十五年▣(三)月三十一日以前에受것은舊欄에記入이可홈十二, 貸付年月日及指令欄에는國有地의▣▣(貸付)에限야記載할것스로셔種類의下에有料無料의別을記入이可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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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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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지적계유무증명원(地籍屆有無證明願)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大正拾年拾壱月壱日 崔炳郁 扶安郡守 大正拾年拾壱月壱日 崔炳郁 扶安郡守 전라북도 부안군 [署押]2개 원형 적색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에 최병욱이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에 있는 임야의 소유 사실을 부안군으로부터 증명을 받기 위하여 제출하고 받은 지적계유무증명원. 1921년에 최병욱(崔炳郁)이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에 있는 임야의 소유 사실을 부안군으로부터 증명을 받기 위하여 제출하고 받은 지적계유무증명원이다. 최병욱은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면서 연곡리에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록하여 부안군에 제출하였다. 소유하고 있는 임야는 12정(町)이다. 부안군수는 이것이 사실과 다름이 없다고 확인하고 관인으로 날인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임야약도(林野略圖)가 첨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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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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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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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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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1년 최기홍(崔璂洪) 약정서(約定書)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昭和六年五月二十一日 崔基洪 崔秉錫 昭和六年五月二十一日 崔基洪 崔秉錫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군 보안면 우동이에 사는 최기홍 등과 변호사 최병석 사이에 작성한 약정서 1931년 5월 21일,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사는 최기홍(崔基洪) 등이 변호사 최병석(崔秉錫)과 작성한 약정서(約定書)이다.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蓮谷里)에 소재한 임야(林野)의 소유권과 관련한 재판을 최병석에게 의뢰하면서 작성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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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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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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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1년 태극교본부(太極敎本部)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二年三月 日 李東奭 太極敎 儒林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二年三月 日 李東奭 太極敎 儒林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방형 적색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에 이동석이 태극교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1921년에 이동석(李東奭)이 태극교(太極敎)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태극교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따르는 단체이다. 따라서 태극교본부(太極敎本部) 도유사(都有司)인 이동석이 공자의 가르침을 중단없이 이어가기 위하여 경성(京城)에서 강회가 열린다면서 각 유림(儒林)들에게 알린 내용이다. 그 세세한 내용은 유림들이 참석할 때 규칙에 따라 예전에 남자들이 머리에 갓을 갖춘 정식 옷차림으로 올 것, 그리고 강회에 도착할 날과 강회가 진행될 날, 그날 배울 학습교재 및 시상식 등 일정이 기록되어 있다. 학습교재는 격몽요결, 소학, 사서오경, 심경, 근사록 등이며, 4 과목 장원과 합격자에게는 시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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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敬通事曾以今春 大享後會講有所仰告者亶出於尊 聖興學之意也盖▣(學)必講而後明禮必習而後行昔 夫子過宋而不廢習禮在匡而不掇絃歌造次顚沛必於是况我後學ノ我 夫子之道而不爲講習也哉玆以擬行講會及飮禮於本敎內定日左列仰告于 僉君子伏願互相傳佈于親知趂期齊臨先知覺後知先覺タ後覺以明吾 夫子全體太極之道千萬幸甚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二年三月 日太極敎本部都有司 李東奭[印]京城府昌成洞九八番地儒林 僉座下巾服隨所有帶來到記四月二十五日陽六月一日講會同月二十六日尊 聖興學論議同月二十七日鄕飮酒禮 同月二十八日應講書籍 擊蒙要訣 小學 四書 五經 心經 近思錄施賞 應講 經義問目 詩論 右四科壯元及入格者分等施賞經義問目 以下製作先送事大學序先儒有作六節看者有作四節看者而其分段似欠詳密恐失朱子之本意其段落之如何貫通之如何可得而聞歟大學註因字凡幾見而因字之義所係如何論語學而章下繼以孝悌孝悌章下繼以巧令何也論語巧令章註專言鮮之專字是何意也孟子首章何以節詳言求利之害而其援證及說明不啻縷縷而未有範言仁義末嘗不利則但以簡單二句明之何也孟子浩然章辭命以下有何關緊而必以此結之耶中庸首章先涵養而後省察末章先省察而後涵養何也庸學註謂章句論孟謂集註詩書謂集傳易經謂傳謂本義何也大全云者又何也律題尺蠖 押身芳草 押靑四律 五七言隨意論題子莫執中[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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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선조묘도비(先祖墓道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己酉四月卄四日 漢洪 鶴洪 己酉四月卄四日 1849 崔漢洪 崔鶴洪 全州崔氏一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49년(헌종 15) 4월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 1849년(헌종 15) 4월 24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문중(門中)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回文)이다. 선조(先祖)의 묘도비(墓道碑) 건립 비용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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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石洞齋)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辛未秋九月十三日 席洞齋 辛未秋九月十三日 1831 席洞齋 全州崔氏一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석동재에서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종원들에게 보낸 1931년(고종 8) 회문 1931년 9월 13일, 석동재(席洞齋)에서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회문을 보낸 이유는 참봉공파(叅奉公派) 추향일자(秋享日字)를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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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부안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甲戌九月十五日 崔成煥 등 3명 吾諸族 甲戌九月十五日 1934 崔成煥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4년 9월 15일에 부안의 석동재에서 전주최씨 문중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통보하기 위하여 전주최씨 족원들에게 보낸 회문. 1934년 9월 15일에 부안(扶安)의 석동재(席洞齋)에서 오랜 산송(山訟)으로 어려워진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의 재정난(財政難)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통보하기 위하여 전주최씨(全州崔氏) 족원(族員)들에게 보낸 회문(回文)이다. 석동산(席洞山)의 문중 묘역을 둘러싸고 부안의 전주최씨와 부안김씨(扶安金氏) 사이에 벌어진 산송(山訟)은 3백여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전주최씨 문중의 재정은 거의 파탄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중은 문중 족원들의 도움이 없이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이달 20일 석동재에서 모임을 갖고 논의를 하고자 하였다. 이 회문은 석동재의 도유사 최성환(崔成煥)과 문유사 최학홍(崔學洪), 최장홍(崔章洪) 등의 이름으로 발송되었다. 문서의 중간 부분에는 이 회문을 열람한 뒤에 날인하여 보내달라고 한 뒤에 각 마을별로 전주최씨 족원들의 성명들이 적혀 있으며, 일부는 날인도 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백석리(白石里)의 최재홍(崔在洪)을 비롯하여 18곳 3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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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己卯十月卄七日 己卯十月卄七日 1879 全州崔氏門中 全州崔氏一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79년(고종 16)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 1879년(고종 16) 10월 7일에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문중(門中)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回文)이다. 제사를 지낼 때 소요되는 비용 배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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