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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견에게 답함 答金叔見 앓고 있는 것이 오래 묵은 병인가, 아니면 또 다른 병인가. 어찌 그리 수시로 증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이처럼 지리하게 끄는가. 이는 피곤이 쌓인 나머지 혈기가 펼쳐지지 못하여 생긴 것이니, 있는 힘을 다해 조섭하여 머지않아 회복되기를 깊이 바라네. 나는 옛날의 병이 비록 약간은 차도가 있는 듯하지만 정신과 근력은 붙들어 세울 수 없는데다가 숙견이 곁에 없으니 홀로 쓸쓸하게 거처하며 더욱 의지할 곳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대저 이 몸은 노쇠한 나이에 병으로 칩거하고 붕우들은 흩어져 떨어져 있는데, 가까운 이웃에 다행히 우리 숙견이 있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부축해주는데 목이 마를 때 따뜻한 마음으로 적셔주는 것 그 이상이니, 이 몸이 숙견에게 의지하는 것에 대해 내 마음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원컨대 더욱 몸을 아끼고 조섭하여 고통 받고 있는 병이 햇볕에 비친 눈처럼 사라지길 바라네.질문 : 마음[心]과 성(性)은 하나이면서 둘인데, "심은 태극이다."83)라고 하며 또는 "성은 태극이다."84)라고 하여 분간이 없는 듯합니다.답변 : 성이 태극이 된다는 것은 나눠서 말한 것이요, 심이 태극이 된다는 것은 하나로 합하여 말한 것이네.질문 : 심과 명덕은 본래 한 사물이니, 즉 성과 정이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이 명덕입니까. 답변 : 심과 명덕은 본래 한 사물이라고 한 것은 대단히 명쾌하게 말한 듯하네.질문 : 성은 심의 체이며, 정은 심의 용이니, 리(理)로써 말한다면 심, 성, 정은 모두 리이며, 기로써 말한다면 심, 성, 정은 모두 기입니다.답변 : 심, 성, 정이 모두 리라고 한다면 괜찮지만, 심, 성, 정이 모두 기라고 한다면 옳지 않네.질문 :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은 광경이 드러난 것 아님이 없으니, 광경은 기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사물에 체화(體化)되어 빠트린 것이 없는 것은 이런 이치가 아닙니까.답변 : 그렇다네.질문 : 심(心)자의 본래 명목은 성(性)과 지각(知覺)을 합쳐야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심을 기라고 해도 참으로 불가함이 없으며, 심을 리라고 해도 또한 불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을 기라고 하니, 중점을 두는 바는 리에 있습니다.답변 : '그러나[然]' 이하는 삭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질문 : 성은 심의 체이고 정은 심의 용이니 그렇다면 심의 본연은 성정의 덕이 아닙니까.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명덕의 본질은 순수하게 신령하며 진실한 리(理)이니, 애초부터 아주 조금의 형기도 섞이지 않은 것입니다.답변 : 신령 두 글자는 삭제하는 것이 좋은 듯하니, 논한 바는 아마도 옳은 듯하네.질문 : 심은 곧 명덕이며 명덕은 곧 심이니, 애초부터 심 밖에 따로 덕이 있는 것이 아니며, 덕 밖에 따로 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나아가 명목을 세밀하게 나눠보면, 심은 도와 기(器)를 겸하였으나 덕은 다만 도로써 말하였고, 심은 리와 기를 합하였으나 덕은 다만 리로써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심은 망령됨이 없을 수가 없으나 덕은 참되어 망령되지 않고, 심은 사특함이 없을 수가 없으나 덕은 올발라서 사특함이 없습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성은 곧 정이고 정은 곧 성인데, 다만 동과 정의 구분이 있을 뿐 애초부터 판연히 두 사물이 아닙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성인의 마음은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 어여쁨과 추함이 저쪽에 있습니다."공자는 조문을 가서 곡한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85)라고 하였는데, 성인의 마음도 또한 밖의 상황에 구애되어 이끌려 가는 것이 있습니까.답변 : 성인의 마음은 굳어서 막힘이 없으며 또한 뒤섞여 잡스러움이 없으니, 천지의 조화가 봄에는 오로지 봄이고 여름에는 오로지 여름인 것과 같네. 그러나 운행을 점차적으로 하니, 추위와 더위에 살리고 죽이는 것이 그 때가 같지 않네. 所苦是宿證耶。或是別證耶。何其進退無常而支離乃爾。此是積瘁之餘。血氣不暢之致。千萬攝理。不遠復常。是祝是祝。義林昔者之疾。雖若少間。而精神筋力。扶竪不得。加以叔見不在傍。踽踽索居。尤無聊賴。奈何奈何。大抵此身。衰年病蟄。知舊散落。而比隣之近。幸有我叔見。爲之慰我扶我。不啻渴涸之照濡。則此身之所以奇倚於叔見者。其心果何如哉。願加愛加護。使區區見苦之證。如雪見晛也。心性一而二。而曰心爲太極。曰性爲太極。似無分間。性爲太極。是分開說。心爲太極。是合一說。心與明德。本是一物。則性情之涵於心裏者。卽明德耶。心與明德本是一物云者。恐說得太快。性是心之體。情是心之用。則心之本然。非性情之德耶。好。性者心之體。情者心之用。以理言則心性情皆理也。以氣言則心性情皆氣也。謂心性情皆理可。謂心性情皆氣不可。盈天地之間者。無非光景之露面。光景莫非氣也。而鬼神之體物不遺。非此理耶然。心字本來名目。合性與知覺而得之。故以心爲氣。固無不可。以心爲理。亦無不可。然以心爲氣。其所重則在理。然字以下。刪之似宜。性是心之體。情是心之用。則心之本然。非性情之德耶。好。明德本地。純是神靈眞實之理。而初不雜一毫形氣之爲。神靈二字。刪之似宜。所論恐得之。心卽明德。明德卽心。初非心外別有德德外別有心。就其中。細分名目。則心兼道器。而德則惟以道言之。心合理氣。而德則惟以理言。故心不能無妄。而德則眞而不妄。心不能無邪。而德則正而不邪。好。性卽情。情卽性。只有動靜之分。初非判然二物。好。聖人之心。如鑑之照物。姸媸在彼。夫子之於是日哭則不歌。聖人之心。亦有拘牽於彼者乎。聖人之心。無所固滯。而亦無混雜。如天地之化。春專於春。夏專於夏。然運行有漸。而寒暑生殺。不同其時。 심은 태극이다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권14 〈관물 외편 하(觀物外篇下)〉에 ㅂ이는 말이다. 성은 태극이다 《주자어류》 권5에 보이는 말이다. 공자는……않았다. 《논어》 〈술이(述而)〉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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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실【현채】에게 답함 答鄭元實【現采】 서로 모여지내다가 갑자기 헤어지니 서글픈 마음은 배나 더하여 멈추질 않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하다고 하니, 실로 걱정하던 마음이 놓이네. 나는 모든 것이 전날과 같네. 보내준 편지에서 길고 자세하게 말한 것에서 뜻을 세워 부지런히 공부함을 알 수 있으니 기특한 마음이 그치지 않았네. '마음은 하늘과 같다.…'라 하였는데,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네. 그렇다면 그대처럼 말하여도 무방하고 애장(艾丈)86)처럼 말하여도 무방하니, 어찌 일정하여 바뀌지 않겠는가. 본연의 심(心)과 기질의 심이라고 한 부분도 또한 자못 온당하지 않네. 성은 하나인데, 다만 그 성을 가리키면 본연의 성이라 하고 기를 겸하여 가리키면 기질지성이라 하네. 지금 만약 이로써 비준하여 '다만 그 심을 가리켜 본연의 심이라고 하고 그 기를 겸하여 가리키면 기질의 심이라 한다.'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온당하지 않은 것 같네. 심이란 사물은 본래 단지 리(理)자만으로 마칠 수 없고 또한 단지 기(氣)자 만으로 마칠 수 없으니, 반드시 리와 기가 합한 뒤에 이름을 얻은 것이라면 아마도 성(性)자의 본연이나 기질로 논할 수 없는 것 같네. 또한 본연의 심을 도심(道心)에 대응시키고 기질의 심을 인심(人心)에 대응시킨 것도 또한 옳지 않은 것 같네. 비록 성인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다면 또한 기질의 심이 없을 수 없는 것 아닌가.마음이 비록 미발과 이발의 다름이 있지만 기(氣)로써 리(理)를 싣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미발을 다만 리라고 이르고 이발을 전적으로 기라고 이를 수 있는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에 대해 논한 것은 말이 혹 통창하지 못하지만 뜻은 괜찮네. 다만 마지막 단락의 '성(性)과 정(情) 이외에 다시 마음이 없다.……'라 한 것은 아마도 옳지 않은 듯하네. 성과 정이 비록 마음의 체와 용이기는 하지만 성과 정을 주재하는 것은 마음이 아닌가. 이 의미를 다시 더욱 정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뒤에 보낸 편지에서 《주역》 괘효와 무극 태극에 대하여 논하였는데, 일단 이것은 한쪽으로 제쳐두고서 견해가 한 층 더 발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저 평소 눈앞에 보이는 일과 사물에 나아가 그 소당연(所當然)과 소이연(所以然)을 궁구하는 것이 바로 절실하게 묻고 자신의 가까이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학문이 이에 근거하여 추측하는 곳이 있게 되네. 만약 이를 도외시하고 마음을 현묘하여 알기 어려운 곳에 내달린다면 바람과 달을 붙잡으려 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질문 :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은 인(仁)이며 벗이 먼 곳에서 온 것은 예(禮)이며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의(義)인데, 지(知)와 신(信)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세 가지를 잘 다스리면 말하지 않아도 이 세 가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답변 : '기쁘다[悅]'는 말에는 인의 뜻이 있고 '즐겁다[樂]'는 말에는 예의 뜻이 있고 '성내지 않는다[不慍]'는 말에는 의의 뜻이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때로 익히는 것이 인이 되며 벗이 찾아오는 것이 예가 되겠는가. 지(知)란 다만 이것을 아는 것이요, 신(信)이란 이것을 신실하게 하는 것이네.질문 : "성은 서로 가깝다."87)는 것에 대해 정자는 전적으로 기질지성이라고 하였고 주자는 기질을 겸하여 말하였다고 하였는데,88) '겸(兼)'자는 대단히 정밀합니다. 대개 성이 서로 가까운 것은 바로 본연지성이 기질의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기질을 따라 따로 한 성이 되었지만 그 본연의 것은 항상 주인이 되니 그러므로 기질을 겸하였다고 말하였으며 전적으로 기질을 주로 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답변 :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본래 서로 다른 두 성이 아니니, 정자와 주자의 말씀이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相聚之餘。遽爾分張。悵悢之懷。一倍難任。因詢侍旁學履。一視崇謐實副懸情。義林一如前日而已。示喩縷縷。可見存意之勤。感感亡已。心如天云云。此在人所見之如何。然則如賢說亦得。如艾丈說亦得。豈有一定不易者哉。本然之心。氣質之心。亦頗未穩。性一也。而單指其性。則曰本然之性。兼指其氣則曰氣質之性。今若以此準之。而曰單指其心則曰本然之心。兼指其氣則曰氣質之心。則恐不穩當矣。心之爲物。本非單理字可了。又非單氣字可了。必是理與氣合而得名者。則恐不似性字之以本然氣質論也。且以本然之心配道心。氣質之心配人心。亦恐不然。雖聖人不能無人心。則亦不能無氣質之心耶。心雖有未發已發之殊。而其爲以氣載理則均矣。豈何以未發獨謂之理。而已發專謂之氣哉。形氣神理以下。語或未暢而意則可矣。但末段性情之外更無心云云。恐未然。性情雖爲心之體用。而所以主宰性情者。非心耶。此意更加細思如何。後書周易卦爻。無極太極之說。姑且倚閣。以俟所見之長得一格如何。大抵就日用眼前事事物物上。究覈其所當然與所以然。此是切問近思。有依據捉摸處。若外此而馳心於玄妙怳惚之間。與捕風捉月。何異哉。學而時習仁。朋自遠方禮。不知不慍義也。知與信不參何也。治此三者。則不言而在此三者之中耶。悅有仁底意。樂有禮底意。不慍有義底意云耳。何嘗以時習爲仁朋來爲禮耶。知只是知此者也。信只是實此者也。性相近。程子專以爲氣質之性。朱子以爲兼氣質而言。兼字尤精。盖其所以相近者。正以本然之性。寓在氣質之中也。雖隨氣質。各爲一性。而其本然者。常爲之主。故兼氣質而言。非專主氣質而言也。本然氣質。本非兩性。則程子朱子之訓。亦豈有不同。 애장(艾丈) 애산(艾山) 정재규를 가리킨다. 성은 서로 가깝다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의해 멀어진다.〔性相近也 習相遠也〕" 하였다. 정자는……하였는데 정자는 "이는 '기질의 성〔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지 성(性)의 본연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 본연을 말하면 성(性)이 곧 이(理)이고 이(理)는 불선함이 없으니……어찌 비슷함이 있겠는가?〔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何相近之有哉〕"라고 하였고, 주자는 여기에서 말한 성(性)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기질의 성〔氣質之性〕'은 본디 아름답고 추악한 차이가 있지만, 처음 상태로 말하면 모두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선을 익히면 선해지고 악을 익히면 악해지니, 이리하여 비로소 차이가 크게 되는 것이다.〔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 習於惡則惡 於是始相遠耳〕"라고 하였다. 〈양화〉의 장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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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수【승복】에게 답함. 答李德受【承福】 항상 분하고 답답하게 여겨89) 참으로 독실하게 공부하는 우리 벗의 마음을 보는데, 이는 오늘날 실로 보기 드문 경우라네. 이 때문에 사색이 열려 원활하고 사의(辭意)가 치밀하게 되었는데 날로 달로 크게 발전한다고 이를 수 있으니, 대단히 아끼며 칭송하네. 이로 말미암아 더욱 의지를 굳게 하여 마침내 원대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네. 천하의 사물은 리(理)가 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리가 없으면 어찌 이 사물이 있겠는가. 사람 한 몸의 사지와 온갖 신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네. 맑음과 탁함, 순수함과 잡박함, 혼매함과 총명함, 강함과 약함의 구분 같은 것은 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를 수 없으니, 이미 리가 본래 가진 것이 아니라면 그 허물을 기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네. 예를 들면, 물이 아래로 달려가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인데, 물을 쳐서 이마를 넘어가거나 산꼭대기에 있는 것은 그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네. 이로써 미뤄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네.질문 : 어떤 사람이 주자에게 묻기를 "이 장90)은 본래 절조와 재주를 겸하여 말하였는데, 그러나 긴요한 곳은 바로 절조91) 상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주자는 "그렇지 않다. 세 구는 모두 같은 것을 말하였으니, 모름지기 재주와 절조를 완전히 겸비하여 완전하여야 바야흐로 군자라고 이를 수 있다."92)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래 문장에서 다시 정자가 절조를 말한 것93)을 인용한 것은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정자는 특별히 절조에 대해 말하였는데, 주자가 장하(章下)에 인용하였으니, 그 은미한 뜻을 알 수 있네.질문 : 어찌하여 유독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까.94) 대개 '하지 않으면 안 된다.[不可以不]'는 구절은 선비는 이와 같지 않음을 용납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말한 것입니다. 대개 인도(仁道)는 대단히 큰데, 선비의 책임은 인을 구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인은 본체를 온전히 하여 그치지 않음95)을 이르는 것인데, 오직 체를 온전히 하기 때문에 한 리(理)도 포함하지 않음이 없으니 도량이 드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오직 그치지 않기 때문에 한 생각도 간단이 없으니 굳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비의 책임이 무겁고 길이 먼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겠습니까.답변 : 선비는 학자를 통칭하는 말이네. 그대가 말한 전체불식의 뜻은 훌륭하네.질문 : 《대학》은 공부의 차례를 말한 것인데, 다만 성의(誠意)를 말하고 성정(誠情)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뜻[意]은 따져보고 헤아려보는 것으로 그 기미가 느슨하여 나에게 달려 있으며, 정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발하여 나와서 자신을 말미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공부가 더욱 어렵습니다.답변 : 그렇다네.질문 : 기로써 말한다면 바르고 통한 것을 얻으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으면 사물이 됩니다. 바르고 통함과 치우치고 막힌다[正通偏塞]는 네 글자 중에서 바름과 치우침, 치우침과 바름은 서로 반대가 되어 서로 합할 수 없습니다.96) 그 아래 문장의 맑고 탁함과 아름답고 나쁜 것97)은 바르고 통한 가운데 다만 아주 조금 같지 않은 곳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탁한 것도 변하여 맑은 것이 되며 나쁜 것도 변하여 아름답게 될 수 있는데, 다만 사물의 치우치고 막힌 것은 견고하여 변할 수 없습니다.답변 : 그렇다네.질문 : 경(敬)에 대해 정자는 마음을 집중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것[主一無適]으로 말하였고 또한 외면을 정제하고 엄숙해야 함[整齊嚴肅]으로서 말하였는데,98) 아래 문장의 소주에서 "주일무적은 경의 완성이요, 정제엄숙은 경의 시작이다."99)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말은 내외를 합하고 시종을 포함하여 말한 것입니다.답변 : 옳은 말이네.질문 : 오행의 신령함은 각각 이 리(理)를 갖췄으니 오직 오령을 가리켜서 곧 마음이라 일러서는 안 됩니다.답변 : 그러하네.질문 : 덕은 망령됨이 없음[無妄]의 본체로, 무망은 곧 성(誠)입니다. 성과 덕은 피차간에 다름이 없습니까.답변 : 덕이라고도 하고 성이라고도 하여 말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이네. 이치가 비록 하나지만 가리키는 뜻의 곡절은 똑같은 말로 다할 수 없네.질문 : 옥계 노씨가 '허(虛)는 마음의 고요함이요, 령(靈)은 마음의 감응이다.'100)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 의심이 있습니다. 이른바 허(虛)란 것은 마음이 아는 곳인데, 비록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도 신령함은 참으로 원래부터 있는 것이니, 마음의 감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답변 : 비록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도 신령함은 참으로 원래부터 있다는 말은 매우 좋네. 다만 '이른바 허란 것은 마음이 아는 곳'이란 구절은 마땅히 '허령한 것은 마음의 본체'로 고치면 어떻겠는가.질문 : 어떤 이가 "허(虛)자는 리(理)자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허자가 과연 리라면 리는 리를 갖출 수 없으니, 그 아래에 어찌 다시 여러 이치를 갖추었다고 말하였습니까.101)답변 : 허령은 심(心)상에 나아가 말한 것이요, 리상에 나아가 말한 것이 아니네.질문 : 사람이 태어나서 천지의 리(理)를 얻고 또한 천지의 기(氣)를 얻는데, 리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리이며 기는 수화목금(水火木金)의 기입니다. 리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는데,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의 부림을 받고, 형체가 없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의 주인이 됩니다. 기가 아니면 리가 깃들일 곳이 없고 리가 아니면 기가 헛된 그릇이 되니, 이에서 리기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의 신령함에도 그 아는 바는 정욕(情欲)과 이해(利害)의 사사로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그 인의예지의 리를 끊어내 버렸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는 그 리가 없는데도 기가 스스로 왕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본래 밝은 체를 하늘에서 얻었기에 끝내 사라질 수가 없는데, 곡직이 종횡하는 사이에 발용하는 바가 다만 과와 불급의 어긋남이 있어서 절도에 맞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와 같으니 또한 천지 사이에 본래 악이 되는 리는 없으며 그 악이 된 것은 대개 선이 완성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심(心)은 리기(理氣)를 합하여 이름을 이룬 것입니다. 전적으로 기(氣)자로서 부를 수 없으며 전적으로 리(理)자로서 부를 수 없습니다. 만약 심을 리라고 이른다면 이는 기를 리로 아는 것이며 성을 작용으로 아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리를 갖추었다'고 한 것은 다만 리로서 리를 갖춘 실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옛사람이 글자에 의미를 담아 부르는 것과 자리를 차지하는 분수는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심을 리라고 이르는 것은, 대개 리가 리라고 명명된 것102)이 기에 나아가 기가 된 바를 살펴보면 바로 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자가 육자정에게 답한 편지에서 "한번 음되고 한번 양되는 것이 비록 형기에 속하지만 그러나 한번 음되고 한번 양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도체(道體)가 하는 것임을 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103)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또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답변 : 논한 바가 아마도 옳은 듯하네.질문 : 그 기가 오르내리고 날아올라서 일찍이 그쳐 쉬지 않으니, 그러므로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않아 만 가지 변화가 생겨나는데 형적(形迹)에 건넜기 때문에 본말과 선후가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기가 함이 있고 형체가 있지 않는다면 천지는 공허하여 사물이 붙잡을 곳이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직 그 리는 함이 없고 형체도 없지만 다만 오묘합니다。이른바 '없다'는 것은 그런 일이 없음을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는 기가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리가 오묘한 것입니다.답변 : 묘(妙)자를 주자는 운용과 주재함으로 해석하였으니, 이는 〈태극도설〉의 '묘합(妙合)'104)의 묘자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 每覵吾友憤悱誠篤之意。在今日實所罕見。是以其思索之開滑。辭意之綢繆。可謂日就而月將。極可愛賞。願因是而益着脊樑。卒究遠大也。天下之物。莫非理之所爲。無此理。安有此物。人之一身。四肢百體。千差萬別。而皆理之所本有也。若其淸濁粹駁昏明强弱之分。則不可謂理之所本有也。旣非理之所本有。則不可不歸咎於氣。如水之就下。其本然也。而過頹在山。則其勢使然也。以此推之。其義可見。或問於朱子曰。此章本是兼節才說。然緊要處。却在節上。朱子曰。不然。三句都是一般說。須是才節兼全。方可謂之君子。至下文。復引程子節操說何。程子特說節操。而朱子引之章下。其微意可見。如何獨士不可以不弘毅盖不可以不一句甚說士不容不如此。盖仁道最大。而士之任。莫大於求仁。仁是全體不息之謂。惟其全體也。則無一理之不該。所以不可以不弘。惟其不息也。則無一念之間斷。所以不可以不毅。士之任重道遠如此。豈他人比哉。士是學者之通稱。所言全體不息之義好。大學是工夫次第。而但言誠意而不言誠情者。意是恁地計較商量底。其機緩而在我。情是不知不覺發出來。不由自家。故其功夫爲尤難也。然以氣而言之。則得其正且通者爲人。得其偏且塞者爲物。其正通偏塞四字。則正之於偏。偏之於正也。相反而不可以相八也。至若下文淸濁美惡。則於正通中特其小小不同處耳。是以濁者可變而爲淸。惡者可變而爲美。惟物之偏塞。則牢不可變。然。敬者。程子以主一無適言。又整齊嚴肅言。下文小註。主一無適者。敬之成也。整齊嚴肅者。敬之始也。此兩語。是合內外該始終而言也。是。五行之靈。各具是理。不可單指五靈而便謂之心。然德指無妄之本體。無妄卽誠也。誠與德。無彼此之殊耶。曰德曰誠。言雖殊而理則一。理雖一。而其旨意曲折。有不可一言而盡。玉溪所謂虛者心之寂。靈者心之感也。此說有疑所謂虛者心之知處。雖未感物。靈固自若。不可曰心之感也。雖未感物。靈固自在。此說甚好。但所謂虛者心之知處一句。當改之曰虛靈者心之本體。如何。或曰以虛字帶理字看。虛字果是理。則理不能具理。其下安得復言具衆理乎。虛靈是心上說。非理上說。人生得天地之理。又得天地之氣。理是仁義禮智之理。氣是水火金木之氣。理無形。氣有形。有形者。爲無形之使。無形者。爲有形之主也。非氣則理無所寓。非理則氣爲虛器。此可見理氣之不可相無也。然以人心之靈。其所知。不過情欲利害之私觀之。則絶其仁義禮智之理者也。然而不卽死而生存者。何耶。此非無其理而氣自往來也。盖以其本明之體得之於天者。則終有不可得而滅矣。縱橫曲直之間。其所以發用者。特有過不及之差而不中於節耳。若是則又可見天地間。本無爲惡之理。而其惡者。盖善之未成者也。好。心是合理氣而成名者也。不以一氣字名之也。不以一理字名之也。若以心謂理。則是認氣爲理也。認性爲作用。而又曰具衆理云。則不惟有以理具理之失。古人名字之義。位置之分。恐不如此。以心謂理者。盖理之得名爲名。以其卽氣而觀氣之所以爲氣者。乃理也。朱子答陸子靜書云。正所以見一陰一陽雖屬形氣。然其所以一陰而一陽者。是道體之所爲也。此亦可以見。所論恐得之。其氣升降飛揚。未嘗止息。故參差不齊。而萬變生焉。涉於形迹。而有本末先後也。若非氣之有爲有形。則天地空虛。無物把捉處耶。惟其理則無爲無形。但其妙耳。所謂無者。謂無其事。然則畢竟非其氣自爾。而理之妙也。妙字。朱子以運用主宰爲訓。是指圖說妙合之妙而爲言。 분하고 답답하게 여겨 앞의 〈답황신여(答黃新汝)〉에 보인다. 이 장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육척의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제후국의 명을 부탁할 만하며, 큰 절조를 세울 때를 당하여 굽히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군자이다.[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절조 정의림은 '절재(節才)'라고 하였으나, 이글의 원문에는 '절조(節操)'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있다 이 문답은 《어류》 34권에 보이는데, 〈탁육척지고장(託六尺之孤)〉의 소주(小注)에도 보인다. 정자가……말한 것 장하주에서 정자는"절조가 이와 같으면 군자라고 이를 수 있다.〔節操如是 可謂君子矣〕"라고 하였다. 선비는……하였습니까 《논어(論語)》 〈태백(泰伯)〉에서 증자가 "선비는 그릇이 큼직하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나니,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라 한 것을 가리킨다. 인은……그치지 않음 성인(聖人)의 인(仁)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기품(氣稟)과 사욕에 은폐됨이 없이 온전히 보존되고 유행하는 것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공야장(公冶長)〉 옹야인이불녕장(雍也仁而不佞章)에 "인(仁)의 도는 지극히 커서 체(體)를 온전히 하여 그치지 않는 자가 아니면 해당될 수 없다.〔仁道至大 非全體而不息者 不足而當之〕"라 하였다. 기로써……없습니다 《대학혹문(大學或問)》 권1 〈경 1장(經一章)〉에 보인다. "그러나 그 이치로써 말하면 만물은 하나의 근원이니 참으로 사람과 물에 귀함과 천함의 차이가 없고, 기로써 말하면 바르고 통하는 것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되기 때문에 귀해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저 천하여 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고, 오직 태어나면서부터 바르고 통하는 기운을 얻은 사람만이 그 본성이 가장 귀하게 되기 때문에 방촌의 사이가 허령하고 통철하여 모든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요순이 되어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을 도울 수 있는 것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명덕이라는 것이다.[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蓋其所以異於禽獸者, 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讚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아래……나쁜 것 《대학혹문》 바로 앞의 주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그러나 그 통함에 혹 청탁의 다름이 없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바름에 혹 미악의 다름이 없지 않을 수 없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는 구절을 가리킨다. 정자는……말하였는데 《대학혹문》 〈총론〉에 보이는 내용이다. 주일무적은……시작이다 물재 정씨가 한 말로 "정재엄숙과 수렴하여 한 물건도 담아두지 않는 것은 경의 시작이요, 주일무적과 항상 마음이 깨어 있는 것은 경의 완성이다.〔整齊嚴肅 及收斂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 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라 하였다. 옥계 노씨가……감응이다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 수장의 소주에 "옥계 노씨가 말하기를 '밝은 덕이라는 것은 단지 본마음이다. 허라는 것은 마음의 고요함이고, 영이라는 것은 마음의 감응이다.' 하였다.〔玉溪盧氏曰 明德只是本心 虛者心之寂 靈者心之感〕" 한 것을 가리킨다. 여러……말하였습니까 이 구절의 내용은 《대학》 〈경일장〉의 명덕에 대한 설명을 가리킨다. 즉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텅 비고 신령스럽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를 구비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는 말에 대한 논의이다. 본문의 뒤의 명(名)자는 내용상 리(理)자의 오류로 보인다。 한번…… 때문입니다 《주자대전》 권35 1188년에 육자정에게 보낸 편지에 보인다. 〈태극도설〉의 묘합 〈태극도설(太極圖說)〉의 "무극의 진리와 이기오행(二氣五行)의 정기가 묘하게 합하고 엉겨서 건도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는 여(女)를 이루어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민자중【병두】에게 답함 答閔子仰【丙斗】 두 편지에 문목을 수십 마디의 말로 길게 펼쳐놓았는데, 근래 공부를 허투루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집안에 상이 동시에 나면, 장사 지낼 때는 가벼운 이를 먼저 지내고 무거운 이를 나중에 지내며 제사는 무거운 이를 먼저 지내고 가벼운 이를 나중에 지내네. 초상 중에는 담제(禫祭)107)를 지내지 않고 담제 지낼 달이 이미 지났으면 또한 담제를 지내지 않네. 그러므로 신위를 설치하여 곡하고 상복을 벗는다네. 부친이 만약 먼저 돌아가시면 비록 뒤에 상이 있더라도 부친을 장사지내기 전에 항상 부친의 상복을 유지해야 하니, 전헌(奠獻)을 행하고 제사를 행함에 어찌 두 곳이 있으랴. 고비(考妣)의 신주를 합독(合櫝)하는 것은 길제(吉祭)108)할 때 하니, 즉 지방에 열거하여 쓰는 것을 마땅히 평소와 같게 하네. 상제(常祭)는 평소 행한다는 뜻이며, 대상(大祥)은 길함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네. 남의 후사로 간 자나 시집 간 자의 지방에 대하여 말한 것은 보내준 편지의 내용이 옳네. 수(嫂)는 형수를 이르는 것이니, 아우의 부인에게는 마땅히 수(嫂)자를 써서는 안 되네. 마땅히 제부(弟婦)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네. '부군(府君)'이란 두 글자를 아우에 사용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선과 악은 모두 천리라고 하였는데, 악은 천리가 되지 않네. 그것이 천리에 뿌리를 두었으나 과와 불급이 있음을 이르는 것이네. 노사의 말은 곧 정자의 뜻과 같네. 마음에 인심과 도심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괜찮지만 본연지심과 기질지심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중(中)'자에는 중(中)자의 리기가 있고 화(和)자에는 화(和)자의 리기가 있다고 한 한 단락은 말이 되지 않네. 대저 이러한 리기에 대한 의론은 현재 우리 벗의 급한 일이 아니니, 모름지기 평소에 평이하며 자신에게 매우 가까운 것에 나아가 하나하나 연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부친을 장사 지낸 후에 뒤에 일어난 상의 복을 유지하다가 뒤에 일어난 상을 장사지내기 전에 허위(虛位)를 만들어 곡을 하고 상복을 벗는데, 어찌 일찍이 술을 올리는 절차가 있겠는가. 축이 없는 여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네. 죽은 아들에 대하여 이름을 쓰는데, 죽은 아우에 대하여 이름을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것 같네. 다만 학생(學生)이라고 쓰는 것이 괜찮을 것 같네. 두 담제는 반드시 상순과 중순으로 나눠서 행할 필요는 없으니,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행하는 것이 좋겠네.'하늘이 명한 성(性)'과 '능히 다한다는 성'109)은 모두 부여받은 본연지성이니, 마땅히 기질로 보아서는 안 되네. '하늘이 명하였다[天命]'는 '명(命)'은 리로써 말한 것이며, '하늘이 반드시 명하였다.[天必命之]'110)의 '명(命)'은 리와 기를 겸한 것으로 보아야 하네. 《소학》책은 《대학》처럼 공자의 말을 어찌 외워서 전하였겠는가. 명덕(明德)은 천명의 온전한 체를 내가 얻어서 심과 성정을 통솔한 것이네. '경전을 뒤섞어 인용하였기'111)에 그러므로 정비된 맥락이 없는 것 같네. '다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생각을 극진히 하게 만들려는 것이네.질문 : '머리 빗어서 머리싸개로 싸매고 비녀[笄]로 지르고 끈으로 머리를 묶는다.'112)고 하니, 남자도 또한 비녀를 질렀습니까. 수암 권상하가 이르기를 "비녀를 상투 가운데로 비껴 찔러 놓는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지금 세속의 머리 위의 비녀[簪]이 아닌 듯합니다.답변 : 계(笄)도 비녀[簪]이네. 수암이 말한 '비껴 찔러 놓는다.'는 것은 치포관의 비녀로써 말한 것이 아닌가하네.질문 : "그 얻지 못하면 얻을 것을 걱정한다.[其未得之也, 患得之]"113)라는 말에서 '기(其)'자는 작록으로 보았는데, 도암 이재는 비루한 사내로 보았습니다.답변 : 도암의 말이 옳네.답변 : 천자와 제후는 대를 이어서 등극하는 것은 참으로 일반적인 일이지만, 경대부가 대를 잇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네. 이 때문에 공자는 《춘추》에서 경을 대대로 지내는 것에 대해 기롱하였으니,114) 이를 알 수 있네. 진의 삼가(三家)와 노의 삼가115)를 어찌 취하여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게나. 二紙問目。張皇數十言。可見近日功夫。有不草草也。何感如之。家有偕喪。葬則先輕後重。祭則先重後輕。喪中不禫禫月已過則亦不禫。故設位而哭除之。父若先亡。則雖有後喪。而父葬前。常持父服。行奠行祭。豈有二處也。考妣合櫝。在吉祭之時。則紙榜列書。亦當如之。常是常行之義。祥是卽吉之義。出后者出嫁者紙榜云云。來示得矣。嫂是兄嫂之謂。於弟之妻。不當下嫂字。當曰弟婦可也。府君二字。用之於弟。似未穩。更詳之如何。善惡皆天理云者。非以惡爲天理也。以其根於天理而有過不及之謂也。蘆沙之言卽程子之意也。以心謂有人心道心則可。謂有本然之心氣質之心則不可。試思之如何。中字上有中字理氣。和字上有和字理氣。此一段不成說。大抵此等理氣說話。非吾友今日之急務。須就日用平易切近處。一一硏究如何。父葬後。持後喪服。以後喪葬前也。設虛位哭除。何嘗有酌獻之節乎。無祝與否。不須說也。於亡子書名。而於亡弟則書名。似未穩。只書學生似可矣。一一禫不必以上中旬分行之。或丁或亥。天命之性。能盡之性。皆是所賦本然之性。恐不當作氣質看。天命之命以理言。天必命之之命。兼理與氣看。小學書。孔子何嘗誦而傳之如大學耶。明德是天命全體。得於已而統心與性情者也。雜引經傳。故若無統紀也。不盡釋。所以使學者自致其思也。櫛縱笄總。男子亦有笄耶。遂庵云橫施此笄于髻中云。則非今世俗上頭之簪也。笄簪也。遂庵所謂橫施。以緇布冠之簪言之耶其未得之也。患得之。其字似以爵祿觀之。而陶庵以鄙夫言之。陶庵說是。天子諸侯。繼世而立。固其常也。而卿大夫之繼世。非其常也。是以孔子於春秋。譏其世卿。此可見也。晉之三家。魯之三家。何足取以爲據哉.更思之也。 담제(禫祭) 대상(大祥)을 지낸 뒤에 한 달을 건너서 지내는 제사이다. 즉 대상을 치른 뒤의 다음다음 달〔中月〕로, 초상부터 윤달을 따지지 않고 27개월이 되는 달의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길제(吉祭) 담제(禫祭)를 지낸 후에 새로 돌아가신 분의 신주를 사당에 들이면서 기존의 신위들과 함께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하늘이……성 '하늘이 명한 성'은 《중용》 수장의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을 이르고, '능히 다한다'는 성은 22장의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어야 본성을 다할 수 있으니, 본성을 다하면 사람의 본성을 다하게 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을 다하면 물건의 본성을 다하게 할 수 있고 물건의 본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는 말에 보인다. 하늘이 반드시 명하였다 〈대학장구서〉 중에 "한 번이라도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천성을 능히 다하는 사람이 그 사이에서 출현하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시어 억조창생의 임금과 스승으로 삼고는 그에게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백성들이 천성을 회복하게 하였다.[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 則天必命之, 以爲億兆之君師, 使之治而敎之, 以復其性.]"에서 '천필명지(天必命之)'를 가리킨다. 경전을 뒤섞어 인용하였기에 《대학장구(大學章句)》의 경문(經文)과 전문(傳文) 사이에 주희가 "무릇 전문은 경전을 섞어 인용하여 정비된 기강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문리가 이어지고 혈맥(血脈)이 관통하여 깊고 얕음과 처음과 끝이 몹시 정밀하니, 익숙히 읽고 자세히 음미하면 오래 시간이 지남에 응당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 풀이하지 않는다.[凡傳文, 雜引經傳, 若無統紀. 然文理接續, 血脈貫通, 深淺始終, 至爲精密, 熟讀詳味, 久當見之, 今不盡釋也.]"라고 하였다. 머리……묶는다 《소학》 〈명륜〉에 보이는 말이다. 그……걱정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비루한 사람과 더불어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부귀를 얻기 전에는 그것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고, 이미 그것을 얻고 나서는 또 잃어버릴까 걱정한다. 진실로 그것을 잃어버릴까 걱정하면 못할 짓이 없게 된다.〔鄙夫, 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라고 하였다. 공자는……기롱하였으니 세경(世卿)은 아비가 죽은 뒤 아들이 세습한 경대부(卿大夫)를 말한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의 "여름 4월에 윤씨가 죽었다.〔夏 四月辛卯 尹氏卒〕"라는 경문에 대해 《공양전(公羊傳)》에서 "윤씨가 누구인가. 천자의 대부이다. 그런데 왜 윤씨라고 칭하였는가. 폄하한 것이다. 왜 폄하했는가. 세경을 비난한 것이니, 세경은 예가 아니기 때문이다.〔尹氏者何 天子之大夫也 其稱尹氏何 貶 曷爲貶 譏世卿 世卿非禮也〕"라고 하였다. 진의 삼가와 노의 삼가 진의 삼가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권세를 잡았던 6족(族) 출신의 6경(卿) 가운데 조씨(趙氏)ㆍ위씨(魏氏)ㆍ한씨(韓氏)를 가리키고, 노의 삼가는 노(魯)나라의 권신(權臣) 맹손씨(孟孫氏)ㆍ숙손씨(叔孫氏)ㆍ계손씨(季孫氏)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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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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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안순견86)에 대한 제문 祭安友舜見文 오호라! 대박(大檏)87)이 한 번 흩어져 기운이 가지런하지 않아 선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얻는 것은 아니고 어진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이 여기에 그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체상(體相)이 단정하고 순수하며 풍의(風儀)가 자상(慈祥)하며 아량(雅量)이 굉후(宏厚)하며, 천리(踐履)가 신밀(愼密)하며, 지절(志節)이 강방(剛方)하며 재성(才性)이 영오(頴悟)함은 실로 천품으로 타고난 것이네. 그리고 출입하며 종유함에 어진 이를 친하게 여기고 단정한 사람을 취하였고, 강토(講討)와 문변(問辨)을 더하고 존양(存養)과 성찰(省察)로 이루었네. 문로(門路)가 이미 바르고 편책(鞭策)이 바야흐로 펼쳐져 안목은 날로 열리고 넓어지며, 근저[脚跟]가 날로 개척되었네. 응수하는 것이 분답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험고함을 만나도 개의치 않았네. 얼굴빛에 드러난 것은 난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고, 마음에 드러난 것은 시기하거나 잔인한 뜻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네. 사람을 접함에는 온화한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었고 사물에 응함에 정성스러운 뜻이 사물을 감동시켰네. 만약 나이를 빌려주어 지극하지 못한 것을 힘쓰게 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천성으로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과 배우기를 좋아하는 독실함으로 반드시 장차 정미함을 끝까지 궁구하여 다스림이 광채를 드러내어 사문(斯文)과 세도(世道)의 책임이 그에게 있지 않았겠는가. 오호라! 하늘의 이치는 알기 어렵고 사람의 일은 도치되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른단 말인가!나와 군은 소년 때부터 알았던 벗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마음을 열어 정성을 드러내어 정히 의리의 교분을 하기에 이른 것은 10여 년 전부터인데 친밀한 정은 교칠(膠漆)88)도 그 깊음을 비유하기에 부족하고, 화합[諧和]하는 의는 궁상(宮商)89)도 그 지극함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네. 스스로 평생을 돌아보건대 한 가지 일도 고인과 견줄 만한 것이 없는데 오직 우리 두 사람을 관포(管鮑)90)와 뇌진(雷陳)91)의 사귐에 비기는 것은 사양하지 않을 바이네. 내가 굶주리고 곤궁한 것을 보면 창고를 다 기울여 도와주고, 내가 병든 것을 보면 의원을 찾고 약을 구해주고, 내가 환란을 당한 것을 보면 밥을 먹다가도 뱉어내고 달려와 주었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문득 편지를 보내 물어주고, 한 가지 의리라도 분명하지 않으면 문득 모여서 분변하였네. 버들 푸른 둑에 석양이 지거나 산 속 누대에 밤에 달이 뜰 때에는 혹 시를 읊조리며 배회하고 혹 술에 취해 강개한 회포 풀면서 유연히 천만 사람이 다하지 못하는 정과 천만 세월이 다하지 못하는 회포를 가졌네. 비록 시국의 상황이 날로 잘못되고 세상의 변화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죽으면 절의로 함께 죽고, 살면 학문으로 서로 마치자고 여겼는데, 군이 조금 더 머물지 않고 나를 버리듯이 떠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갑오년의 변란92) 때 영평(永平)의 지역으로 동시에 달아나 숨었고, 병신년의 변고93) 때 화순[山陽]과 동복[福川] 사이로 손잡고 함께 도망가 숨었네. 앞으로의 풍랑은 이것보다 심함이 있을 것인데 급난(急難)을 주선함에 다시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들어가서는 의지할 곳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하여 만사가 끝났네. 산은 높고 물은 넓으니 이 한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애달픈 마음 진술하여 영결을 고하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오호 통재라! 영령이여 아시겠는지? 嗚呼。大樸一散。氣運不齊。善者未必獲福。仁者未必得壽。而誰謂君之止於斯耶。體相之端粹。風儀之慈祥。雅量之宏厚。踐履之愼密。志節之剛方。才性之頴悟。固得於天資。而出入遊從。親賢取端。加之以講討問辨。濟之以存養省察。門路旣正。鞭策方張。眼目日以開廣。脚跟日以展拓。酬應紛沓而不以經心。遭遇險若而不以介懷。見於色者。未見有暴戾狷忿之態。發於心者。未見有忌克殘忍之意。接人而和氣薰人。應物而誠意動物。若使假之以年。而勉其所未至。則以若天姿之美。好學之篤。必將究極精微。出治光彩。而斯文世道之責。其不有在乎。嗚呼。天理之難諶。人事之倒置。一至於此耶。吾與君。不可謂非少年朋知。而至於開心見誠。定爲義理之交。則自十餘年前。而密勿之情。膠漆不足以喩其深。諧和之義。宮商不足以喩其至。自顧平生無一事。可況於古人。而惟以吾兩人擬之於管鮑雷陳之契。則所不辭也。見我飢困。傾囷倒廩。見我疾病。尋醫問藥。見我患厄。撤食吐哺。一日而不見。則輒書而問之。一義而未瑩。則輒聚而辨之。至於楊堤夕陽。山樓夜月。或吟哦徜徉。或酣醉慷慨。悠然有千萬人不悉之情。千萬古不盡之懷。雖時象日非。世變叵測。而以爲死則以節義同歸。生則以學問相終。豈知君不少留而棄我如遺耶。甲午之亂同時奔竄於永平之地。丙申之變。携手逃匿於山陽福川之間。前頭風浪。如有甚焉。則周旋急難。更與何人共之耶。入無所聊。出無所適。踽踽凉凉。萬事已矣。山長水濶。此恨何極。述哀告訣。淚落懸泉。嗚呼痛哉。靈其知否。 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자는 순견, 호는 송하(松下),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송하거사안공묘갈명(松下居士安公墓碣銘)〉이 실려 있다. 대박(大樸) 원시의 질박한 큰 도를 가리킨다.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가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자, 사람들이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칭찬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궁상(宮商)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가운데 두 음을 가리킨다. 이 두 음은 위아래에서 서로 응하여 소리를 잘 조화시키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흔히 두 사람의 친밀한 정을 궁음과 상음이 서로 떠나지 않고 조화를 잘 이루는 데에 비유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사이의 친밀함을 의미한다. 관포(管鮑) 춘추 시대 끈끈한 우정의 대명사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를 말한다. 뇌진(雷陳) 후한(後漢) 때 우정이 깊었던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을 말한다. 갑오년의 변란 1894년(고종31) 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궁궐을 점령한 사건을 말하는데, 이를 통상 갑오변란(甲午變亂)이라고 한다. 이후 민씨(閔氏) 정권은 붕괴되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섭정하여 제1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을 성립시키고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하여 갑오개혁(甲午改革)을 단행하게 된다. 이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유생(儒生)들은 갑오변란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적 개화 정권의 개혁 정책을 민족 존망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상소를 올리는 한편 의병을 모집하는 활동까지 전개하였다. 《김상기, 조선말 갑오의병전쟁의 전개와 성격,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3권,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편, 지식산업사, 1989》 병신년의 변고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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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파 오공에 대한 제문 祭竹坡吳公文 오호라! 공이 이 세상을 버린 지 세월이 이미 2년이 지나 묘소의 풀이 이미 묵었으니, 예로는 비록 곡하지 않아도 되지만 궤연이 아직 철거되지 않았으니, 정을 말할 수 없겠는가.나는 공과 나이는 같은 연배가 아니고 사는 곳은 또 차이가 나지만 그 취미가 같고 교분이 친밀함은 교칠(膠漆)94)과 같네. 만년에 식구들을 데리고 살면서 오봉산(五峯山)의 풍월을 마주하여 사시로 강마하였고, 영정(詠亭)95)에 함께 모임에 의관이 정연하였고, 나란히 경상 우도를 찾아다니며 자못 유람하며 감상하는 흥취를 다하였고, 천태산(天台山)96)으로 행차하여 이별의 회포를 펼쳤네.오호라! 운명이 아름답지 못하니 서설(棲屑)97)의 외로움을 염려하고 나이가 노년이 되어가니 신관(神觀)이 움츠러드는 것이 걱정이니, 누가 알았으랴 한 번의 병으로 천고에 문득 막힐 줄을!재작년 봄에 영남의 벗 최숙민(崔琡民)98)·정재규(鄭載圭)99)·권기덕(權基德)100) 등 여러 사람이 이 고을을 지나면서 인하여 나와 함께 들어가 궤전(几前)에서 곡하였으니, 고인이 이른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그 곳에 이르니, 그 곳은 있지만 그 사람은 없네."라는 것101)이 정히 이 때의 정경과 합하여 여러 벗들이 슬픔이 넘쳐나 실성하지 않음이 없었네. 공의 영령은 또한 천리에서 좋은 벗들이 온 것을 알아 이 때문에 더욱 감격하여 슬퍼하시겠는가?오호라! 이 몸은 천지가 맡긴 기여서 영췌(榮悴)와 개락(開落)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아 순응하여 받아들일 뿐 나의 의사와 상관이 없으니, 일체의 모든 일을 따질 것이 없네. 또 저승에 대한 말은 참인가, 망령된 것인가? 망령된 것이라면 내 장차 끊임없이 만물의 떠도는 기운과 함께 태허(太虛)의 망망(茫茫)한 가운데 동화되어 털끝만큼도 얽매임이 없을 것이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참이라면 공의 집안의 선친께서 이미 응당 여기에 계실 것이니, 슬하에 나아가 모시면서 당시에 다하지 못하였던 한을 갚을 수 있을 것이네. 나의 선친과 그대의 선친께서는 이승에서 좋은 벗이었으니 저승에서도 또한 마땅히 서로 따를 것인데, 나 또한 늙어 세상의 빚을 갚고 저승에서 선친을 따라 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두 집안의 부자와 두 세대의 좋은 벗이 저승에서 장차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고서 천만년의 무궁한 유람을 할 것이니, 어찌 오늘 유명 간에 잠시 막히게 된 것을 한으로 여기겠는가. 嗚呼。公之棄斯世也。日月已再期矣。墓草已宿。禮雖不哭。几筵未撤。情可無言。吾於公齒非輩行。居又參差。而其臭味之孚。契義之密。如膠如漆。晩年挈寓相對。五峯風月。四時講磨。共聚詠亭。衣冠秩秩。聯筇嶠右。頗盡游賞之趣。枉駕天台。爲敍別離之懷。嗚呼。命道不媚。念棲屑之煢煢。年齡垂暮。憂神觀之蹙蹙。誰知一疾不起千古奄隔哉。昨昨春。嶺友崔琡民鄭載圭權基德諸人。行過此邑。因與我入哭几前。古人所謂思其人至其處。其處在其人亡者。正合此時情景。諸友無不哀溢失聲。公之靈。亦知千里好友之來。而爲之一倍感愴耶。嗚呼。此身是天地之委氣也。榮悴開落。有不在我。順而受之。無容我焉。則一切萬事勿論可也。且冥府之說。眞耶妄耶。妄耶則吾將與萬物遊氣。混混同化於太虛茫茫之中。無纖毫係累。豈不快哉。眞耶則公家先君。已應在此。趨侍膝下。可以酬當日未逮之恨矣。鄙先君與尊先君。陽界好友。在陰界亦應相從。吾亦老矣。致還世債。下從先君將有其日。二家父子。兩世好友。將倂臂携手於泉臺之間。以爲萬萬年無窮之遊。豈以今日幽明小小阻隔爲恨哉。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천태산(天台山):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있는 산이다. 서설(棲屑) 일정한 거처 없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두보의 시 〈영회(詠懷)〉에 "지친 몸 구차히 계책 생각하지만, 그저 분망할 뿐 베풀 곳이 없어라.[疲苶苟懷策, 棲屑無所施.]"라고 하였다. 최숙민(崔琡民) 1837∼1905. 자는 원칙, 호는 계남·존와(存窩),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재규(鄭載圭) 1843∼1911. 자는 영오(英五)·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애산(艾山)·물계(勿溪),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 권기덕(權基德) 1856∼1898. 자는 자후(子厚), 호는 삼산(三山),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저서로는 《삼산유고(三山遺稿)》가 있다. 고인이……것 《자치통감강목》 권10 〈한 장제 건초(漢章帝建初)〉에 "황제가 동평에 이르러 헌왕을 추념해서 그의 여러 아들에게 이르기를 '이분을 사모하여 이 지방에 왔으나 살던 곳만 남아 있고 이분은 안 계시다.' 하고는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帝至東平, 追念獻王, 謂其諸子曰思其人, 至其鄉, 其處在, 其人亡, 因泣下沾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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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兒 天幸爲男子。陰陽秀五行。及時不好學。草木同歸亡。父母兮生鞠。一生不再生。逸遊送歲月。禽獸老前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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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102)에 대한 제문 祭文啓元文 태허(太虛)의 광대한 기가 오르내리며 변화하고 움직여 일찍이 그친 적이 없는데, 맑고 탁하며, 순수하고 섞이며, 길고 짧으며, 통하고 막히는 구분이 생긴다. 이 기를 타고난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으며, 어질고 어질지 못하며, 장수하고 요절하며, 궁하고 영달하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하·은·주 삼대(三代) 이후로 대박(大檏)이 날로 흩어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고 영달하는 것은 아니며, 어리석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반드시 요절하고 궁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총명하고 걸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뜻을 가지고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니, 기수(氣數)가 떳떳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군은 먼 시골에서 우뚝 일어나 천품이 총명하고 일찍 스승의 문하에서 배워 문로가 이미 발랐다.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의 깊은 뜻과 신심(身心)과 성경(誠敬)의 오묘함으로부터 음양의 소장(消長)과 사물의 상수(象數)에 이르기까지 궁구하지 않음이 없어 차례로 펼치고 넓혀서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는 실상103)이 있었는데, 어찌 바야흐로 자라는 나무가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갑자기 풍상에 꺾이게 될 줄 알았으랴!의림(義林)은 화를 당한 끝에 가난과 병이 날로 심해져 다시는 사방으로 행차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여 계원(啓元)과 아침저녁으로 상종하여 다소의 구경(究竟)104)의 효과를 거두어 선친[先人]과 선사(先師)께서 남기신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저버리지 않으려 하였는데,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시는지요? 능운(凌雲)105) 한 편은 단지 어루만지며 애석해 하는 마음만 간절하고 양춘(陽春)106)의 고상한 곡조는 독창(獨唱)의 음인 줄 누가 알겠는가?군이 병이 위독할 때 나를 불러 영결하기를 "지업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문득 죽게 되었으니, 오직 오장(吾丈)께서는 더욱 면려하여 우리 두 사람이 상종한 뜻으로 하여금 길이 후세에 말할 것이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오호라! 기가 빼앗기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여 호흡이 가물가물하였는데도 오히려 또 나를 선으로 면려하였으니, 내가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동할 줄 모르겠는가. 다만 계원의 뜻을 보건대, 처창(悽愴)하고 불평한 기색이 조금 있었으니, 소년의 씩씩한 기상으로 갑자기 이런 지경을 만남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은 만고에 함께 그러한 것이니, 수명의 많고 적음과 세상 빚을 갚고 못 갚는 것은 다만 그 사이의 소소하게 빠르고 늦는 일일뿐이다. 고금에 어찌 일찍이 일을 마쳤던 사람이 있었던가? 오직 눈을 감는 날이 바로 일을 마치는 때이네.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고, 또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적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해 보건대, 알려짐이 없이 장수하는 것은 알려짐이 있고 요절하는 것만 못하다. 만약 그 사이에 또 장수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공자의 제자 안연[子淵]과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더구나 물아가 일체이고 고금이 한 순간이니, 한 순간 가운데 그 궁달[窮榮]과 요수(夭壽)를 논하는 것은 또한 구구하지 않겠는가. 대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은 입술이 합하듯 차이가 없어 줄지어 왔다가 양양하게 떠나니, 나는 계원의 영령이 반드시 어두운 저승에서 슬퍼하지 않을 것이 있음을 알겠네. 太虛坱圠之氣。升降推盪。未嘗止息。而淸濁粹駁脩短通塞之分生焉。人之稟是氣者。所以有知愚賢不肖壽夭窮榮之不齊也。然三代以降。大樸日散。賢知者。未必壽而榮。愚不肖者。未必夭而窮。往往有聰明魁偉之才。齎志未申。中道夭折。氣數之反常。一至於此耶。君崛起遐隅。天資穎悟。早從師門。門路已正。自天人性命之蘊。身心誠敬之妙。以至陰陽消長。事物象數。無不深究。次第展拓。有闇然日章之實。豈知方長之木。秀而不實。遽爲風霜所摧折哉。義林禍故之餘。貧病日甚。其不得復爲四方之行決矣。擬與啓元晨夕相從。以收多少究竟之效。庶不負先人先師萬一之遺意。天乎胡忍爲此。凌雲一篇。只切撫惜之心。陽春高調。誰知獨唱之音。君之病劇也。速余相訣曰。志業未就。中途奄逝。惟吾丈益加勉勵。使吾兩人相從之意。永有辭於來後也。嗚乎。氣奪神禠。呼吸奄奄。而猶且勉人以善。我非木石。寧不知感。但見啓元之意。微有悽愴不平之色。以少年壯氣。遽遭此境安得不然也。然有生有死。萬古同然。壽限之多不多。世債之了未了。特其間少少早晩事耳。古往今來。何嘗有了事底人惟其瞑目日乃是了事時孔子曰朝聞道。夕死可也。又曰。老而不死賊也。由此言之。無聞而壽。不如有聞而夭。若其間又欲壽考。則此是子淵伯魚所不得之事也。況物我一體。古今一息。一息之中。論其窮榮脩短。不亦區區乎。大化爲徒。脗然無間。于于而來。洋洋而去。吾知啓元之靈。必有不戚戚於冥冥之中者矣。 문계원(文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를 말한다. 자는 계원, 호는 귀암(龜巖)·면수재(勉修齋),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은은하되……실상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너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진다.[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구경(究竟) 불가(佛家)의 용어로, 최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 혹은 최고의 원리(原理)를 말한다. 능운(凌雲) 능운필(凌雲筆)로, 필력이 굳세어서 속태(俗態)를 벗어난 글씨나 문학 작품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희위육절구(戲爲六絶句)〉에 "유신의 문장은 노련하고 완성되어, 구름 뚫는 굳건한 붓 종횡으로 치달리네.[庾信文章老更成, 凌雲健筆意縱橫.]"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1》 양춘(陽春)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상대방의 시를 칭찬할 때 쓰는 용어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곡(下里巴人曲)을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어,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고 한다. 《文選 卷23 對楚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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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현136)에 대한 제문 祭洪文玄文 공은 순후(淳厚)하고 성각(誠慤)한 자질과 침정(沈靜)하고 안상(安詳)한 자태로 가정의 학문을 계승하고 사우의 가르침에 종유하여 효우의 행실과 화락할 기풍이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達)하고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하여 젊어서는 근칙(勤勅)한 선사(善士)가 되고 늙어서는 숙석(宿碩)의 위유(偉儒)가 되었네. 오직 조물주가 좋아하지 않고 운명이 떨쳐지지 못하여 전후의 60년 동안 지내온 사업은 단지 궁벽한 산에 하나의 초당뿐이었으니, 양빈(楊貧)137)과 한궁(韓窮),138) 교한(郊寒)과 도수(島瘦)139)가 처음부터 한 사람의 몸에 모이지 않음이 없었네. 그러나 비색함이 형통한 것140)은 무리 짓지 않았기 때문이고 발꿈치가 꾸며짐141)은 수레를 타지 않기 때문이니, 백발의 한 서생이 세상에서 능히 형통하지 못할 형통함을 가지고 남들이 능히 꾸미지 못할 꾸밈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의림(義林)은 일찍이 그대 중부 봉남옹(鳳南翁)142)과 생사를 함께하는 막역한 교분을 맺었네. 이윽고 옹이 이미 나를 버렸고 그 집안에는 서업을 이어서 전술할 사람은 오직 공이 있었네. 더구나 부조가 대대로 교분을 맺어 어릴 때부터 알아 성기(聲氣)를 함께하여 서로 익숙하고 친밀함은 누가 공보다 앞설 사람이 있겠는가. 풍상에 흔들려 떨어져 어려움 속에 서로 지키던 뜻이 실로 끊임없이 왕래하며 의지할 곳이 있었는데, 어찌 하나의 병이 낫지 않아 마침내 그대가 먼저 감이 이와 같은가. 백아의 거문고 줄이 이미 끊어졌고,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143) 금오(金鰲)의 수석과 침정(枕亭)144)의 풍월에 단지 여생의 다하지 않는 슬픔만 있을 뿐이네. 외롭고 쓸쓸하니, 누가 나의 슬픔을 알리오? 公以淳厚誠慤之質。沈靜安詳之姿。承襲家庭之學。游從師友之敎。孝友之行。愷悌之風。在家必達。在邦必達。少而爲勤勅之善士。老而爲宿碩之偉儒。惟是造物不媚。命道不揚。前後六十年經歷事業。只是窮山一草堂而已。楊貧韓窮。郊寒島瘦。未始不萃於一人之身。然否之亨。以其不群也。趾之賁。以其不乘也。誰知白髮一書生。有世所不能亨之亨。有人所不能賁之賁耶。義林早與尊仲父鳳南翁。爲死生莫逆之契。旣而翁已棄我。而其門庭之內。紹述緖餘。惟公在焉。況父祖世交。童穉舊知。同聲同氣。相熟相密。孰有先於公者乎。風霜搖落。艱關相守之意。實有源源毗倚之地。何其一疾不退。而竟爾先着若是耶。牙琴已斷矣。郢質已亡矣。金鰲水石。枕亭風月。只有餘生不盡之悲而已。踽踽凉凉。孰知我悲。 홍문현(洪文玄) 홍우석(洪祐錫, 1843∼?)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우재(愚齋),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양빈(楊貧)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의 가난을 말한다. 양웅은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은 바 있다. 한궁(韓窮)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궁함을 말한다. 한유가 궁하여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다. 교한(郊寒)과 도수(島瘦) 맹교(孟郊, 751∼814)의 청한과 가도(賈島)779∼843)의 수척함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맹교의 시격은 청한하고, 가도의 시격은 수척하다.[郊寒島瘦]"라고 평가하였는데, 이들은 빈한하고 불우한 삶의 풍경을 시에 그대로 담아내었다. 비색함이 형통한 것 《주역》 〈비괘(否卦) 육이(六二)〉에 "대인비형(大人否亨)은 소인(小人)의 무리에게 어지럽혀지지 않는 것이다.[大人否亨, 不亂群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발꿈치가 꾸며짐 《주역》 〈비괘(賁卦) 초구(初九)〉에 "발을 꾸밈이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賁其趾, 舍車而徒.]"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봉남옹(鳳南翁)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이다. 저서로는 《봉남집》이 있다.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침정(枕亭) 침수정(枕漱亭)을 말한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보리에 있다.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 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고, 그의 6세손인 홍채주가 1885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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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삼145)에 대한 제문 祭尹亨三文 죽마고우로 백수의 노년까지 상종한 이로는 형 입장에서는 오직 나이고 내 입장에서는 오직 형일 뿐입니다. 전후로 60여 년 동안 한묵(翰墨)의 마당, 문주(文酒)의 자리나 길흉사, 행지(行止)의 의리에 같이 하지 않은 일이 없고 같이 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그 승화(乘化)146)하는 한 가지 일에도 마땅히 더불어 함께해야 할 것인데 형이 이에 먼저 가기를 이와 같이 급하게 하시는가! 오호 통재라!형의 선공 삼형제와 저의 선친 삼형제는 연세가 모두 80, 70세에 창백한 얼굴 흰머리로 밤낮으로 마주하기를 마치 수양(睢陽)의 오로(五老)147)와 향산(香山)의 구로(九老)148)와 같았으니, 이것은 태평한 시절에 장수 하였던 좋은 기수(氣數)였네. 형과 나는 함께 아롱진 적삼과 색동옷을 입고 달려가 그 곁에서 응대하였네. 이윽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붙잡을 수 없고 남극성이 빛을 잃자 두 집안의 남은 사람은 모두 부모 잃은 외로운 사람이 되어 서로 덮어주기를 가문 밭의 새싹과 같이 하고 서로 구제해 주기를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의 물고기 같이 하면서 여생의 계획으로 삼았네. 더구나 이렇게 북풍 불고 눈 내리는 것이 질펀하여 끝날 기약이 없는데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조만간 함께 돌아가려 하였는데,149) 유명(幽明)으로 작별함이 갑자기 목전에 있어 인생 만사가 모두 허무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나는 올 초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 갔다가 저물녘에 나의 사촌 집에 들어갔는데, 형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나를 데리고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출발하려 할 때 또 만류하여 이틀 밤을 묵었으니, 어쩌면 형이 돌아가실 날이 장차 임박한 줄 알고서 굳이 머물게 하여 얼굴을 보고서 영결할 계획을 하였던 것인가? 만약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아우가 어찌 하루의 시일을 아까워하여 평생의 벗과 영원히 끝나는 작별을 하지 않았겠는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천 권의 책을 쌓아 두고 천 리에 스승을 따라 몸을 닦고 의를 행한 것이 수십 년 이었으니, 그 빼어난 운치는 남에게 추앙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기러기는 아득한 하늘위로 날아가고 매미는 더럽고 탁한 가운데서 허물을 벗어버리듯 하여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150)과 원우(元祐)의 완인(完人)151)이 되는 것이니, 형은 여기에 대해 또한 유감이 없을 것이네. 구봉(九峯)의 수석과 묵계(墨溪)의 풍월은 백대의 뒤에도 정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어찌 눌와(訥窩) 처사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슬픈 마음 적어 제문을 지어 이렇게 영결을 고하니 영령이여 아실런지요? 以竹馬舊交。而老白首相從。在兄惟我。在我惟兄而已。前後六十餘年。翰墨之場。文酒之席。吉凶之故。行止之義。無事不同。無處不同。則其於乘化一事。亦當與之同之。而兄乃先着若是遽遽耶。嗚呼痛哉。尊先公三昆季。鄙先人三昆季。年皆八十七十。蒼顔白髮。日夕相對。如睢陽之五。香山之九。此是昇平壽域好氣數。兄與我俱以斑衫彩衣。趨走唯喏於其側。旣而西日莫係。南極無光。而兩家餘生。俱俱風樹孤露人。互相芘覆如旱田之苗。互相喣濡如涸轍之鱗。以爲殘生餘日之計。況此北風雨雪。漫無了期。而惠好携手。早晩同歸。豈知幽明去留。遽在目前。而人生萬事。都歸烏有耶。余於歲初。省掃親塋。暮入鄙從家。兄聞之。尋來携去。達夜敍話。其發也。又挽之信宿。豈兄知大限將迫而固留之。爲面訣計耶。若知如此。弟豈悋一日之費。不與平生知舊。爲千古終天之別乎。痛哉痛哉。貯書千卷。從師千里。修身行義數十年。其偉韻逸趣。有以見慕於人者。爲何如耶。鴻飛於冥漠之上。蟬蛻於穢濁之中。而爲元城之好命。元祐之完人者。兄其於此。亦可以無憾矣。九峯水石。墨溪風月。百歲之下。精采可想。人之過之者。豈不曰訥窩處士杖屨之所乎。綴哀緘辭。玆以告訣。靈其知否。 윤형삼(尹亨三):윤자현(尹滋鉉, 1844∼1909)을 말한다. 자는 형삼, 호는 눌와(訥窩),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인으로, 정의림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눌와유집(訥窩遺集)》이 있다. 승화(乘化)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는다는 뜻이다. 수양(睢陽)의 오로(五老) 수양(睢陽)은 남경(南京)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 남쪽의 지명이다. 재상에서 물러난 두연(杜衍)이 80세 때인 송 인종(宋仁宗) 가우(嘉祐) 1년인 1056년 가을에 수양에서 왕환(王渙), 필세장(畢世長), 주관(朱貫), 풍평(馮平)과 오로회(五老會)를 결성하여 시와 술로 서로 즐겼다. 《澠水燕談錄 高逸》 향산(香山)의 구로(九老)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한 뒤, 향산에 기거하면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칭하고, 호고(胡杲)·길교(吉皎)·정거(鄭據)·유진(劉眞)·노정(盧貞)·장혼(張渾)·이원상(李元爽)·여만(如滿) 등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향산구로회라고 일컬었다. 《百香山詩集 卷40 香山九老圖幷書》 북풍……하였는데 《시경》 〈패풍(邶風)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부는 데다 함박눈도 펑펑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함께 떠나가리라.[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攜手同行.]" 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 원성은 송(宋)나라 유안세(劉安世)의 봉호이다. 그는 사마광(司馬光)의 제자로서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는데 논사(論事)에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정강(靖康) 1년에 금군(金軍)이 쳐들어와 경사(京師)를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북으로 잡혀가는 변이 일어났는데, 유안세는 그보다 1년 앞인 선화(宣和 휘종의 연호) 7년에 죽어서 정강의 변을 당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宋史 卷345 劉安世列傳》 원우(元祐)의 완인(完人) 원우는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의 연호이고, 완인은 난세(亂世)에도 실절(失節)하지 않고 횡사(橫死)하지 않아서 신명(身命)과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을 말한다. 본래는 송 철종(宋哲宗) 원우 연간에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를 지낸 유안세(劉安世)를 가리킨다. 그가 조정에서 쫓겨나 여러 유배지를 거쳐 매주(梅州)에 이배(移配)되었을 때 장돈(章惇), 채변(蔡卞) 등이 하수인을 시켜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면하고 뒤에 풀려났다. 그 후 집에 있는 동안 그의 명망이 더욱 높아지자 당시 한창 권력을 행사하던 양사성(梁師成)이 사자(使者)를 시켜 편지를 보내서 크게 등용하겠다는 뜻으로 달래고 또 자손의 장래를 위하는 계책도 세우도록 권하였다. 유안세가 웃으면서 사절하기를 "내가 만일 자손의 계책을 위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우의 완인이 되어 지하에 가서 스승 사마광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吾若爲子孫計, 不至是矣. 吾欲爲元祐全人, 見司馬光于地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劉安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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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154)에 대한 제문 祭李光彬文 공은 풍골(風骨)과 기격(氣格)의 준수하고 시원함은 실로 속세의 인물이 아니고, 강방(剛方)하고 정직(正直)한 행실과 청결(淸潔)하고 견개(狷介)한 지조는 또 한 무리 군자의 유(儒)가 되기에 족하네. 중년 이후로 종유하여 강론하면서 돌이켜 요약하고 근원을 궁구하여 마음은 날로 열려 시원해지고 행보는 날로 펼쳐지고 넓어져 장차 사문의 희망을 맡기고 후학의 터전이 될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이와 같은 선파(璿派)155)의 귀족(貴族)으로 먼 시골에 떠돌며 지내게 되었으니, 그 문벌은 자자한 집안이라 할 수 있고 그 기량은 세상에 쓰일 만 한데도 천진에 맡기고 분수를 미루어 억지로 영위하고 추구하는 것이 없이 손수 농사짓고 몸소 물고기 잡으며 서당을 열고 결사를 맺어 때로 예악을 펼치는 자리에서 시를 읊조리고 산수에 임하여서는 연하(煙霞)의 밖에 마음을 씻어 내었으니, 그 뛰어나고 빼어난 운치와 의표, 맑고 훌륭한 행실과 자취는 실로 보통 사람과 함께 두고 말하지 못할 것이 있네.의림(義林)은 떠돌며 외롭고 괴로워 의지할 곳은 오직 벗들뿐이었는데, 근년 이래 영귀정(詠歸亭)에서 종유하던 동년의 노인들로 문익중(文翊中)156)·박학중(朴學中)157)·김문현(金文見)158)·김보현(金普見)·안순견(安舜見)159)·윤흥서(尹興瑞)160) 등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어서 돌아가시고, 오직 우리 간재(澗齋)만이 우뚝 홀로 살아있어 마치 새벽으로 향하는 별과 같고 가을을 지난 국화 같았네. 적을수록 더욱 귀하고 외로울수록 더욱 친하여 조금 남은 생애 구구하게 의지할 계획으로 삼아 마치 보거(輔車)161)가 서로 기다리고 공거(蛩蚷)가 서로 의지하는 것162) 같이 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고 귀신은 가만히 도와주지 않아 나이 50에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호 통재라!학문의 진전은 아직 힘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강론하며 모이는 규약은 아직 실마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심성(心性)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분변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이 다하지 못한 빚을 가지고 장차 누구에게 설파하겠는가? 또한 묵묵하게 머금고 참아 다만 저승에서 후일의 기약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양호(楊湖)와 음강(陰江), 예성산(禮星山)과 속금산(束金山)은 우리들이 옛날 글을 짓고 술을 마시던 장소가 아니던가. 연운(煙雲)과 수석(水石)은 의연하게 어제와 같은데 함께 유람하며 감상하던 이는 유독 한 사람도 없으니, 인생이 실로 이와 같단 말인가! 눈길 닿고 다니는 곳마다 마음이 상하지 않음이 없네. 거문고 부서지고 줄은 끊어져 만사가 이미 끝났네. 산천이 슬퍼하고 그리하니, 천고에 아득하네. 公風骨氣格。雋茂軒暢。固非俗下人物。而剛方正直之行。淸潔狷介之操。又足以爲一隊君子之儒。中年以來。游從講聚。反約窮源。胸次日以開爽。地步日以展拓。將以寄斯文之望而爲後學之地者。實有不淺。以若璿派貴族。而流落遐荒。其門地可藉矣。其才器可需矣。而任眞推分。無營無求。手把犁鋤。身服漁樵。開塾結社。時以諷詠乎絃俎之場。登山臨水。間以淘暢於煙霞之表。其偉韻遐標。淸裁逸躅。實有非常調人所可同年而語者矣。義林流離孤苦。所賴惟友。比年以來。詠亭游從。年輩耆舊。如文翊中朴學中金文見金普見安舜見尹興瑞諸人。相繼殞逝。惟有我澗齋。屹然獨存。如向晨之星。如經秋之菊。愈少而愈貴。愈孤而愈親。以爲多少餘日區區毗倚之計。如輔車之相須。蛩蚷之相資。誰知天不憖遺。鬼不陰護。而行年五十。遽爾告終耶。嗚呼痛哉。學問進就。尙有未盡力者矣。講聚規約。尙有未盡緖者矣。心性論議。尙有未盡辨者矣。持此未盡之債。其將向誰而說破耶。抑默默含忍。直待泉臺後日之期耶。楊湖陰江禮星束金。其非吾輩疇昔文酒之場耶。烟雲水石。依然如昨。而所與遊賞者。獨無一人焉。人生固如是耶。觸目經行。無非傷心。琴破絃斷。萬事己已。山哀浦思。千古悠悠。 이광빈(李光彬):이기백(李琪白, 1854∼?)이다. 자는 광빈, 호는 간재(澗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선파(璿派) 전주 이씨(全州李氏) 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宗派)를 이른다. 문익중(文翊中)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김문현(金文見) 김규원(金奎源, 1852∼?)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근재(謹齋),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윤흥서(尹興瑞) 윤자선(尹滋宣, 1852∼?)을 말한다. 자는 흥서, 호는 남계(藍溪),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공거(蛩蚷)가……것 공은 공공(蛩蛩)이고 거는 거허(蚷虛)인데, 전설상의 두 짐승의 이름이다. 늘 같이 따라 다닌다고 하여 교분이 두터운 친한 관계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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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三從大父草堂舊墓 溪潤苔圍石。山深樹擁烟。偶逢竪蕘語。尙紀紫芝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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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學孫霜降韻 千林經楚劍。萬木鍊秦兵。獨有庭前菊。黃花保晩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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臘月晦日。送族人晉一歸金谷。 昔我年七歲。受史東谷門。始一終于七。深厚擊蒙恩。如木枝有幹。如水委有源。嗟余才識薄。至今日就昏。幸逢切磋友。子眞東谷孫。年才弱冠餘。從事賢聖言。論孟立其根。詩書達其原。去年四月尾。從我墨坊村。三冬永錫菴。今歲居處爰。吾宗久寂寞。光復於君存。天日在朔易。歲色亦云飜。梅稍雪已盡。柳枝日欲暄。送君歸拜親。采服趨庭園。知有前期在。三陽方燠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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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1945)에서 병술년(1946)으로 바뀌는 새해 정월 초하루79)에 일을 기록하다 乙丙獻發記事 늙은이 마음에 막내80)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니 老思季也懷彌切함께 수세하기로 약속한 지 이미 열흘이 되었네 約同守歲己浹旬조물주는 무슨 일로 짐짓 장난질을 쳐서 化工底事故戱劇온 천하에 홀연히 눈바람을 휘날리게 하는가 滿天風雪忽紛紛외론 등불은 깜박이고 새벽닭이 마구 우는데 孤燈耿耿鷄亂唱홀로 앉아 송구영신하여 좋은 날을 저버리누나 獨坐餞迎負良辰이윽고 상서로운 해가 부상에서 떠오르니 少焉瑞日出扶桑사당에 차를 따르고81) 세배를 올렸다오 點茶家廟拜新年문득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니 却聞戶外有跫音참으로 고생스럽게도 그대가 새벽길을 재촉해 왔도다 良苦君行犯淸晨바라건대 십년 뒤에도 이런 기쁨을 얻어 幸得此喜十載後네 형제82)가 정답게 앉아 화기가 넘치기를 四棣團坐和氣臻곧바로 작별을 고하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旋生別離是何語예로부터 궁귀83)가 친밀한 정분을 손상시켰다오 從來窮鬼敗情親날씨가 아직 매서운데 어떻게 돌아가려 하는가 天氣尙嚴何以歸아득한 봉산84)을 바라보매 서글픔만 새로 더하누나 蓬山杳杳悵恨新 老思季也懷彌切, 約同守歲己浹旬.化工底事故戱劇, 滿天風雪忽紛紛?孤燈耿耿鷄亂唱, 獨坐餞迎負良辰.少焉瑞日出扶桑, 點茶家廟拜新年.却聞戶外有跫音, 良苦君行犯淸晨.幸得此喜十載後, 四棣團坐和氣臻.旋生別離是何語? 從來窮鬼敗情親.天氣尙嚴何以歸, 蓬山杳杳悵恨新. 새해 정월 초하루 원문의 헌발(獻發)은 새해가 오고 봄기운이 발양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정월 초하루를 의미한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해가 새로이 이르고 봄기운이 발양하건만, 나만 혼자 쫓겨나서 남으로 가네.[獻歲發春兮, 汨吾南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막내 후창의 셋째 아우이자 막내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로, 자는 여안(汝安), 호는 연강(蓮岡) 또는 척재(拓齋)이다. 또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척재집(拓齋集)》이 있다. 차를 따르고 원문의 점다(點茶)는 찻물을 찻잔에 따르는 행위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 〈사당(祠堂)〉에 정월 초하루에 사당에 참배할 때 주부가 올라와서 다선(茶筅)을 잡고, 집사(執事)가 탕병(湯甁)을 가지고 뒤따라 이전과 같이 점다(點茶)한다고 하였다. 《가례집람(家禮輯覽)》 〈사당〉에서 이에 대해 "옛날 사람들은 차를 마실 때에 분말을 만들어서 타 마셨는데, 이른바 점다(點茶)라는 것은 먼저 그릇에 차 분말을 넣은 다음에 끓인 물을 붓고서 다시 차가운 물을 조금씩 넣어 다선을 가지고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네 형제 원문의 사체(四棣)는 네 명의 형제를 뜻한다. 체(棣)는 상체(常棣) 즉 아가위나무인데, 형제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아가위나무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은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느니라.[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후창은 장남으로 세 아우를 두었는데, 첫째 아우 김봉술(金鳳述), 둘째 아우 김만술(金萬述), 막내아우 김억술(金億述)이다. 궁귀(窮鬼)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귀신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에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가 자기를 따르면서 곤궁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3》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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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짓다 2수 偶題【二首】 숲 아래 집에 등불이 파르스름 靑燈林下屋사람과 경계가 모두 그윽하네 人與境俱幽까마득한 희헌의 세상197)이 渺渺羲軒世만 년이나 먼 일인 걸 모르네 不知隔萬秋비오는 창가에 사람은 오지 않고 雨牕人不到밤이 되니 작은 산이 그윽하구나 入夜小山幽지나온 자취 묵묵히 자책하나니 黙訟曾經迹취했다 깨었다 오십년이 되었네 醉醒五十秋 靑燈林下屋, 人與境俱幽.渺渺羲軒世, 不知隔萬秋.雨牕人不到, 入夜小山幽.黙訟曾經迹, 醉醒五十秋. 희헌의 세상 태평성대를 비유한 것이다. '희헌(羲軒)'은 중국 상고 시대의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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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보름날에 계모임의 제군에게 속마음을 말하다 2수 十月望日 契會諸君話心【二首】 맑은 밤에 손님 맞이해 운루에 오르니 淸宵迎客芸樓登모두 평소에 관선106)하는 벗들이네 盡是生平觀善朋괄목상대107)할 새 공부는 옥처럼 정밀하고 刮目新工精似玉마음 아픈 세상일은 새끼줄처럼 어지럽네 傷心世事亂如繩가을 끝에 늦게 핀 국화 나처럼 쇠약하고 秋餘晩菊衰同我서리 내린 뒤 온 숲은 중의 머리 되었네 霜後千林禿作僧밝은 달 아래서 《맹자》를 다 읽고 나니 讀罷鄒經明月下태산의 깎아지른 절벽이 층층이 서 있네 台山絶壁立層層시름이 만 겹으로 에워싸 백등108)과 같았는데 萬疊愁圍似白登회포가 풀려 비로소 멀리서 온 벗을 만났네 開懷始見遠來朋이 유학 누가 미약한 학맥을 연장할 수 있을까 斯文誰得延微線순후한 풍속은 아득히 결승109) 때 생각케 하네 淳俗遙思用結繩마땅히 인산처럼 깊숙이 은둔하면 될110) 일 端合仁山深隱遯매월당처럼 늙은 선승 될 필요는 없으리111) 不須梅月老禪僧이 모임을 연례행사로 열지 말게나 莫將此會爲年例반드시 마음공부에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니 管取心工進一層 淸宵迎客芸樓登, 盡是生平觀善朋.刮目新工精似玉, 傷心世事亂如繩.秋餘晩菊衰同我, 霜後千林禿作僧.讀罷《鄒經》明月下, 台山絶壁立層層.萬疊愁圍似白登, 開懷始見遠來朋.斯文誰得延微線? 淳俗遙思用結繩.端合仁山深隱遯, 不須梅月老禪僧.莫將此會爲年例, 管取心工進一層. 관선(觀善) 친구들끼리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豫)라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時)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孫)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摩)라고 한다. 이 네 가지가 교육이 흥한 이유이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 此四者敎之所由興也.〕"라는 말이 나온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상대방의 학식이 몰라보게 진전되어서 눈을 씻고 다시 보게 된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노숙(魯肅)에게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三國志 卷54 吳志 呂蒙傳》 백등(白登) 중국 산서성(山西省) 대동현(大同縣) 동쪽에 있는 산이다.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흉노를 정벌하러 나갔다가 7일간 이 산에서 포위를 당하고 있었는데, 흉노의 선우 묵특(冒頓)이 포위망 한 쪽을 터주어 탈출하였고, 이후 흉노와 화친을 맺었다고 한다. 결승(結繩) 글자가 없었던 상고시대에 매듭지어 그 모양과 수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인산(仁山)처럼……일 인산은 송나라 말기, 원나라 초기의 학자인 김이상(金履祥)을 말한다. 인산은 그의 호인데, 만년에 인산(仁山)에 은거하여 이렇게 칭한다. 자가 길보(吉甫), 호가 차농(次農), 시호가 문안(文安)이다. 하기(何基)와 왕백(王柏)에게 정주학(程朱學)을 배워 주자의 학통을 이었다. 송나라가 멸망하자 벼슬하지 않고 금화산(金華山)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인산으로 옮겨 살았다. 매월당(梅月堂)처럼……없으리 매월당은 김시습(金時習, 1435~1493)으로 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는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그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저서에 《금오신화(金鰲新話)》ㆍ《매월당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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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보름날 천태산 상봉에 올라서 四月望日 上天台上峯 우연히 풍욕하며 두건의 먼지 턴 일 생각하다 偶思風浴拂塵巾마침 맑고 화창한 정오 무렵을 만났구나 適値淸和近午天내린 비에 꽃 연지가 땅에 붉게 물들었고 落雨花臙紅著地부는 바람에 보리 물결이 밭에 푸르게 이네 飜風麥浪翠浮田인생에서 무슨 일이 옛 일이 되지 않던가 人生何事非陳迹성학에서 참된 공부는 만년에 달렸다네 聖學眞工在暮年흥이 난 노인은 시 짓느라 귀로가 늦어지고 興老詩成歸路晩꾀꼬리는 또 즐거워 좋은 소리 전해오네 流鶯復喜好音傳 偶思風浴拂塵巾, 適値淸和近午天.落雨花臙紅著地, 飜風麥浪翠浮田.人生何事非陳迹, 聖學眞工在暮年.興老詩成歸路晩, 流鶯復喜好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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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호대에 제하다 천태산 제3봉 위의 큰 바위를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題風乎臺【台山第三峯上大石, 名之以此,】 수사302)에서 천년이나 멀어져 洙泗千年遠풍진 세상은 팔방이 어둡구나 風塵八表昏영귀303)의 귀하고 무거운 뜻을 詠歸珍重意오늘엔 누구의 문하에 맡길꼬 今日屬誰門 洙泗千年遠, 風塵八表昏.詠歸珍重意, 今日屬誰門. 수사(洙泗) 춘추 시대 노(魯)나라 수도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과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孔子)나 유학을 가리킨다. 영귀(詠歸) 물욕을 떠나 초연히 산수에서 노니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하였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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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재에서 여러 벗들과 수창하다 禮川齋酬諸益 난리 통에 만나는 게 예전과 다르니 亂離相會異前時봄바람에 돌아갈 길 더디다 말하지 말게 休道春風歸路遲천 점은 공연히 두 귀밑털만 희게 하고 千點空成雙鬢白온갖 꽃은 작년 가지에서 거듭 피었네 百花重發去年枝황금이 다한 곳엔 사람 몰골 말이 아니나 黃金盡處人無色좋은 달이 뜬 곳엔 잔에 술 가득하네 好月來邊酒滿巵산중에 고사를 전할 줄 뉘 알았으랴 誰識山中傳故事영주산엔 단지 영지가 있다고 믿을 뿐 瀛岑只信有靈知 亂離相會異前時, 休道春風歸路遲.千點空成雙鬢白, 百花重發去年枝.黃金盡處人無色, 好月來邊酒滿巵.誰識山中傳故事? 瀛岑只信有靈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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