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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매화 古梅 늙은 매화 찾아가노니 꽃은 피었는가 行尋古梅問著花바로 적막한 물가에 있었네 乃在寂寞水之涯줄기와 가지 오히려 서로 사귈 수 있는데 幹梢猶能相交義뿌리와 밑둥 일찍이 토사로 북돋아 주지 않았네 根柢曾不培土沙어젯밤에 내린 봄비는 노을처럼 가늘었건만 昨夜春雨細如霞홀연히 온갖 나무의 꽃들이 활짝 피었네 忽焉開盡萬樹葩향기 진동하니 어찌 바람을 보내 차단하리 香動怎遣風斷遮그림자 성기니 더욱더 달이 떠서 기쁘네 影疎更喜月來加아리따운 자태는 미인처럼 아름답고 娉婷姿態美人姱맑고 여윈 기상은 고사처럼 훌륭하네 淸瘦氣像高士佳수레 백 대에 실린 수많은 꽃 돌아보니 回看衆芳載百車모두 어지럽게 〈하리파인〉254)을 부르네 盡是紛紛下里巴하손255)은 오지 않고 임포256)는 멀리 있으니 何遜不來林逋遐그대를 사랑하는 이 오늘 다시 누구이겠는가 愛君今日復誰耶향기 머금고 천진 보존함은 모두 자신의 몫 含薰葆眞皆自家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지도 않네 不向世上別人誇 行尋古梅問著花? 乃在寂寞水之涯.幹梢猶能相交義, 根柢曾不培土沙.昨夜春雨細如霞, 忽焉開盡萬樹葩.香動怎遣風斷遮, 影疎更喜月來加.娉婷姿態美人姱, 淸瘦氣像高士佳.回看衆芳載百車, 盡是紛紛《下里巴》.何遜不來林逋遐, 愛君今日復誰耶?含薰葆眞皆自家, 不向世上別人誇. 하리파인(下里巴人) 전국 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민간 가곡으로, 수준이 낮은 평범한 음악을 말한다. '하리'는 시골, '파인'은 파촉인(巴蜀人)을 말한다. 하손(何遜) 472~519. 남조(南朝) 양(梁)나라 사람이다. 그는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때 관청 뜰의 매화가 시흥(詩興)을 발동시켜 그 나무 아래서 시를 읊곤 하였다. 그후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주길 청하여 양주에 당도항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기에 매화 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고 한다. 《梁書 卷49 何遜列傳》 임포(林逋) 967~1028.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사니, 당시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하였다고 칭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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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석계에게 드리다 2수 病中呈石溪【二首】 공산207)에서 오랜 비로 행인 걸음 묶였더니 公山久雨滯行人돌아온 뒤 이로 인해 병든 사람이 되었다오 歸後因成病中人삼십 리208) 떨어진 공의 집209)에 아직 가지 못하니 一舍仙庄猶未進백일을 헛되이 보낸 박정한 사람이 가증스럽구나210) 可憎百日薄情人병이 깊어 장수할 사람211) 되기가 어려우니 病重難爲久視人명산 그 어디에 선인을 이장할 수 있으랴212) 名山何處葬先人그저 일찌감치 공의 높은 안목에 도움 받아 但祈及早憑高眼천추의 불효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免作千秋不孝人 公山久雨滯行人, 歸後因成病中人.一舍仙庄猶未進, 可憎百日薄情人.病重難爲久視人, 名山何處葬先人?但祈及早憑高眼, 免作千秋不孝人. 공산(公山) 충청도 공주(公州)에 위치한 산 이름인데, 공주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삼십 리 원문의 사(舍)는 원래 머물러 유숙하는 것인데, 옛날 군대가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으므로 30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공(公)의 집 원문의 선장(仙莊)은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른 것이다. 백일을……가증스럽구나 후창이 집으로 돌아온 뒤 병석에 눕게 되어 공의 집에 백일 동안 찾아가지 못하였기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장수(長壽)할 사람 원문의 '구시(久視)'는 오래도록 본다는 뜻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 즉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덕경(道德經)》 59장에 "나라를 소유한 모는 장구할 수 있으니 이는 뿌리를 깊이 하고, 꼭지를 단단히 하여 길이 살아 오래도록 보는 도라 한다.〔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蔕, 長生久視之道.〕"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명산……있으랴 후창은 26세가 되는 1909년에 부친인 김낙진(金洛進)의 상을 당하였으니, 이때는 선인(先人)의 이장(移葬)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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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운【정섭】에게 답함 答尹子運【定燮】 헤어진 지가 여러 달이 지났는데 소식이 전혀 없으니 평소 거처하면서 마음이 서글펐다네. 뜻밖에 덕수가 와서 그대의 편지를 전해주니, 고마운 마음은 평소에 배가 되었다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온화하고 화열하며 건강도 좋다가 하니,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네. 그대의 학과(學課)는 비록 근래 어떤 양상으로 절도를 지키며 행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깨닫지 못해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기며69) 뉘우치는 뜻이 지면에 넘치는 것을 보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놓이네. 나의 몸은 노쇠하고 마음은 병들어감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데 반드시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니, 흘러가는 데로 맡겨둘 따름이네. 다만 오래 배운 학업은 성취하지 못하고 이전부터 품어온 뜻은 물거품이 되었는데, 교유하는 벗 사이에서 분연히 힘을 쏟아 마음을 둘 만한 곳이 없으니 이것이 대단히 한스럽네. 원컨대 자운은 이렇게 젊을 때 맹렬하게 정채를 쏟아 공부함이 어떻겠는가.질문 : 힘쓰는 것을 잊거나 조장하는 병을 구원하고자 한다면70) 아마도 '경(敬)' 한 글자가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답변 : 그럭저럭 한가롭게 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에 가까우며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조장함에 가깝네. 공부의 핵심은 바로 이곳에 있으니, 경을 견지하여 점차로 익숙하게 된다면 절로 이런 폐단이 없게 되네. 分手數朔。音聞漠然。居常馳悵。謂外德受來。承惠墨。感豁倍常。仍審侍省怡愉。體事沖裕。何慰如之。盛課雖不詳其近日節度之果作何狀。而見憤悱悔悟之意。溢於紙面。可想其不悠悠浪過也。尤庸豁然。義林衰相病情。日甚一日。必非久於世者。任之而已。但舊業未就。宿心歸虛。而交遊之間。又無奮然用力可以寄意處。是爲悢悢耳。願子運趁此少壯時。猛着精彩如何。欲救勿忘勿助之病。恐以敬一字爲良劑。悠泛近於忘。急迫近於助。功夫要處。正在於此。持敬浸熟。自無此獘。 깨닫지……여기며 앞의 〈답황신여(答黃新汝)〉에 보인다. 힘쓰는……한다면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반드시 일삼아서 미리 기필치 말고서 마음으로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勿助長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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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삼130)에 대한 제문 祭朴正三文 천태산(天台山) 아래 문산(文山)과 덕봉(德峯) 사이에 덕을 숨기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함께 서로 잘 아는 사람으로는 오직 우당(愚堂)과 덕헌(德軒)131) 및 공이 이런 사람이네. 이윽고 우당과 덕헌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나고 오직 공만 살아 있었네. 여러 옥과 이어진 구슬이 서로 비추며 서로 윤택하였던 것은 비록 옛날에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외로운 거문고 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아끼고 남은 향기가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 것은 그 마음이 실로 무궁하였는데, 공이 조금 더 살지 못하고 또 다시 문득 가버릴 줄 어찌 알았으랴! 효우(孝友)132)하고 화락한 기풍과 온량(溫良)하고 근칙(謹勅)한 위의는 태허의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로 연기와 구름처럼 사라져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네.오호라! 덕봉(德峯) 아래에 살던 평소133)의 벗들을 지금은 모두 잃었고 오직 수석과 풍월만 남았으니, 나로 하여금 바라보고 상상함에 다하지 않는 슬픔이 있게 하네. 天台之下。文山德峯之間。多隱德之人。余與之相熟者。惟愚堂德軒及公是也。旣而愚堂德軒。相繼謝世。惟公在焉。其群玉聯珠。交映而互潤。雖不及曩時。而所以惜孤絃之未絶。愛餘芳之未歇者。其心固無窮已。豈知公不少延。而又復奄忽耶。孝及愷悌之風。溫良謹勅之儀。烟消雲散於太虛冥冥之中。而不可復見矣。嗚呼。年生知舊在於德峯下者。今皆失之。而惟有水石風月。令人有瞻想不盡之悲。 박정삼(朴正三) 박준원(朴準元, 1849∼1908)을 말한다. 자는 정삼(正三), 호는 덕와(德窩),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20 〈덕와 박공 유사장(德窩朴公遺事狀)〉에 보인다. 덕헌(德軒) 박준채(朴準彩, 1839∼?)의 호이다. 자는 우서(禹瑞),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효우(孝友) 저본에는 '효급(孝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 수정하였다. 평소 저본에는 '연생(年生)'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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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유124)에 대한 제문 祭宋德裕文 홍양125)의 구족이고영남의 명가이네자상하고 화락하니그 사람 매우 아름답네중간에 온갖 어려움 겪어떠돌며 겨를이 없었네잠깐 금북에 유랑하다가만년에 천태산 남쪽에 집을 지었네형제가 서로 의지하며어려움 애써 헤쳐왔네모든 것들 대강 모았고옛 학문 더욱 힘썼네나는 누추한 사람이라늙어서야 직접 보았네이미 인척이 되었고또 이웃에 살게 되었네밤낮으로 서로 따르며창수하지 않은 날 없었네운치는 훈지126)가 합한 듯 하고기운은 교칠127) 같았네돌아보건대 외롭고 쓸쓸한 나는이것을 얻은 것이 족하였네스스로 생각건대 여생에길이 이 즐거움 보리라 여겼네누가 생각했으랴 하루 저녁에갑자기 이렇게 버리고 떠날 줄을마치 패가 낭을 잃은 것128) 같고마치 공이 거를 잃은 것129) 같네나의 말과 나의 생각누구와 통하며 누구와 지극히 논할까슬픈 바람 뼈에 서늘하고지는 달은 빛을 잃었네달려가 한 번 곡하니눈물이 뺨에 줄줄 흐르네제문으로 제사 드리니영령이여 흠향하소서 洪陽舊族。永南名家。慈詳愷悌。其人孔嘉。中嬰百艱。流離靡遑。薄遊錦北。晩築台陽。兄弟相依。拮据艱關。凡百粗集。舊學加勉。義也陋生。老而見親。旣荷結姻。又從接隣。日夕相隨。唱酬靡闕。韻合塤箎。氣若膠漆。顧惟踽凉。得此爲足。自擬餘日。永視此樂。誰謂一夕。遽爾見棄。如狽失狼。若蛩失蚷。我言我懷。誰因誰極。悲風凄骨。落月無色。奔走一號。涕泗交頤。操文致侑。靈其饗之。 송덕유(宋德裕) 송연식(宋演植, 1897∼?)을 말한다. 자는 덕유, 호는 계은(溪隱),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홍양(洪陽) 충청남도 홍성(洪城)의 옛 이름이다. 훈지(壎篪) 고대의 악기 이름으로, '훈'은 흙을 구어서 만든 나팔이고 '지'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데, 이 두 악기를 합주할 경우 성음이 잘 조화되기 때문에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백씨가 훈을 불면, 중씨가 지를 부네.[伯氏吹壎, 仲氏吹篪.]"라고 하였다.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같은 . 패(狽)가……것 패는 앞다리가 짧아 다닐 때 낭(狼)에 기대야 하기 때문에 낭을 잃으면 다닐 수 없다. 세상일이 어긋날 때를 낭패라고 한다. 여기서는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공(蛩)이……것 공은 공공(蛩蛩)이고 거는 거허(蚷虛)인데, 전설상의 두 짐승의 이름이다. 공공은 북해 가운데 있다는 말 비슷한 짐승이고 거허는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난 짐승인데, 늘 같이 따라 다닌다고 한다. 교분이 두터워 항상 같이 다니는 친한 관계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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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 문경 형익 의 〈탄치화음〉에 차운하다 2수 次族姪文卿【炯翼】《嘆薙禍吟》【二首】 더위와 추위처럼 치세와 난세가 번갈아 오니 治亂相禪若暑寒이 세상 이치에 달관하면 또 무엇을 한탄하랴 達觀此世亦何歎의리를 헤아려 칼로 자르듯이 구할 뿐이요 但求裁義如刀截애타는 마음으로 불기운 일으키듯 하지 않네 不用薰心動火煓원나라 청나라와 견주면 오히려 조금 멀지만 視彼元淸猶稍闊용화산115)에 숨는 게 어찌 끝내 어려운 일이겠나 隱於龍華豈終難온전히 돌아가고자116) 웅어117)의 뜻을 두었다면 全歸如有熊魚志먼저 스스로 곤궁하게 살며 편안함은 잊어야겠지 先自居窮忘快安음기 가득한 세상에 홀로 양기 보존했으니 擧世窮陰獨保陽누가 함부로 병들어 쓸쓸하다고 기롱하겠나 何人妄譏病凉凉노재는 도를 행함이 끝내 구차하게 되었고118) 魯齋行道終爲苟동해는 형체 보전해 결국 장수할 수 있었네 東海全形竟得長불 속에 들어간 금과 동은 더욱 단련되고 入火金銅增鍛鍊겨울을 지난 소나무 잣나무는 뒤에 시드네 經冬松柏後凋黃그대는 하늘이 옥성119)하려는 뜻을 아는가 君知天意玉成否역경에 처함이 도리어 안락한 곳이 된다네 逆境還爲安樂鄕 治亂相禪若暑寒, 違觀此世亦何歎?但求裁義如刀截, 不用薰心動火煓.視彼元、淸猶稍闊, 隱於龍華豈終難?全歸如有熊魚志, 先自居窮忘快安.擧世窮陰獨保陽, 何人妄譏病凉凉?魯齋行道終爲苟, 東海全形竟得長.入火金銅增鍜鍊, 經冬松柏後凋黃.君知天意玉成否? 逆境還爲安樂鄕. 용화산(龍華山) 전라북도 익산(益山)의 북쪽에 있는 산이다. 온전히 돌아가고자 부모가 온전히 낳아 주신 몸에 손상을 끼치지 않고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고 죽는 것을 말한다. 증자(曾子)의 제자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부모가 온전히 낳아 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만 효도라 할 것이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祭義》 웅어(熊魚) 취하고 버릴 바에 대해 판단할 줄 안다는 의미로, 주로 의리를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생선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바이며 곰 발바닥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노재(魯齋)는……되었고 노재는 허형(許衡, 1209~1281)의 호이다. 자는 중평(仲平),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성리학에 전념하여 북방에 성리학을 일으켰으나, 후대에 송나라를 저버리고 원나라에 출사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을 말한다. 주자학자로서 원나라 초기, 주자학의 기초를 닦았는데, 원나라 세조가 그의 제자 왕재(王梓)ㆍ유계위(劉季偉)ㆍ한사영(韓思永) 등 12인을 불러 국자감(國子監)의 재장(齋長)으로 삼았다. 저서에 《독역사언(讀易私言)》ㆍ《노재심법(魯齋心法)》ㆍ《허노재집(許魯齋集)》이 있다. 옥성(玉成) 하늘이 온갖 시련을 주어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였다. 《張子全書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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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백남주에게 주다 贈白秀才南柱 세월을 단단히 붙잡아 촌음도 아끼니 緊把光陰惜寸分어린 나이 알찬 학업 누가 그대 같으랴 童年實業孰如君손가락 끝으로 돌구멍 끝내 뚫을 수 있으니 指端石竇終能透귀 밖에 속세의 소음을 들으려 하지 말게나 耳外塵喧不欲聞의리에 처해서는 물 먹은 진흙처럼 되지 말며368) 處義莫令泥帶水마음을 밝힘에는 구름을 헤친 달 같아야하리 明心要似月披雲백세를 감화시킨 이가 휴암369) 노인이시라 風乎百世休菴老선조에 스승 계시니 어찌 문왕을 기다리랴370) 師在家先豈待文 緊把光陰惜寸分, 童年實業孰如君.指端石竇終能透, 耳外塵喧不欲聞.處義莫令泥帶水, 明心要似月披雲.風乎百世休菴老, 師在家先豈待文. 물을 …… 말며 어물어물하지 말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니대수(泥帶水)'는 '화니대수(和泥帶水)'의 뜻으로 선(善)ㆍ악(惡)ㆍ시(是)ㆍ비(非) 등이 뒤섞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음을 말한다.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의 호이며, 자는 사위(士偉)이다.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이율곡ㆍ성혼과 함께 성리학을 토론하였다. 파주의 파산서원(坡山書院)과 남평(南平)의 봉산서원(蓬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선조 …… 기다리랴 스승은 백인걸을 말한다. 백남주는 혼자서도 스스로 분발하는 선비라는 말이다. 맹자가 "문왕 같은 통치자가 나온 뒤에야 흥기하는 것은 일반 백성이니, 호걸스러운 선비로 말하면 문왕이 없더라도 홀로 흥기한다.[待文王而後興者, 凡民也. 若夫豪傑之士, 雖無文王獨興.]" 하였다. 《孟子 盡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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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이구214)에게 부치다 4수 病中寄以求【四首】 오랜 객지에서 삼경215) 만남이 근년에 드물었는데 久旅三庚罕近年우사216)가 비를 뿌려 죄수처럼 나를 잡아 두는구나 雨師拘我若囚然일찍 돌아가 다시 그대를 찾아갈 수 있다면 早歸如得重尋子해가 저물도록 이내 충정을 남김없이 토로하리 吐盡衷情到暮天거상하여 삼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으니 居喪不出限三年부득이한 상황에서 나온 일은 미진함이 있었네 事出無何未盡然하루에 두 번 성묘하니 돌아가는 길에 日再省墳歸去路그대가 날 찾아옴이 어찌 하늘을 어기는 일이겠는가 子能過我豈違天큰 병 걸린 처지로 막 일흔 살을 맞이하니 大病初當七十年좋은 의원도 손 못 쓰고 바보처럼 앉아 있네 良醫束手坐呆然이런 몸을 가지고 어디로 갈 수 있으려나 此身把得投何處귀신이 될지 사람이 될지 하늘에 달려 있도다 作鬼成人在上天낙척하여 한 일 없이 고령에 이르렀는데도 落拓無爲到耋年첩첩의 파란이 일어 도리어 분잡하기 그지없네 波瀾疊疊却紛然바라노니 자식이 사후의 일을 잘 처리하여 冀子善裁身後事남과 내가 서로 편안해 절로 하늘에 합하기를 物我相安自合天 久旅三庚罕近年, 雨師拘我若囚然.早歸如得重尋子, 吐盡衷情到暮天.居喪不出限三年, 事出無何未盡然.日再省墳歸去路, 子能過我豈違天大病初當七十年, 良醫束手坐呆然.此身把得投何處? 作鬼成人在上天.落拓無爲到耋年, 波瀾疊疊却紛然.冀子善裁身後事, 物我相安自合天. 이구(以求) 최민열(崔敏烈)로, 이구는 그의 자이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후창집》 권11에 후창이 그에게 보낸 편지 몇 편이 실려 있다. 삼경(三庚) 1년 중 가장 더운 한여름의 세 번의 경일(庚日), 즉 삼복(三伏)을 이른다. 하지(夏至) 후 세 번째 경일을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 번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우사(雨師) 고대 전설상에 비를 관장하는 신(神)이다. 《주례》 〈대종백(大宗伯)〉에, "희생(犧牲)을 쌓아 놓은 섶 위에 올려놓고 태워서 사중(司中)ㆍ사명(司命)ㆍ풍사(飌師)ㆍ우사(雨師)에게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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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244)에 오르다 上天台山 병이 낫자 흥이 일어 높은 산에 오르니 病蘇興發上高山칠 척의 몸이 천지 사방을 여유롭게 노니는구나 七尺優遊六合間머리가 하얗게 셌지만 마음만은 늙지 않았고 白髮惟能心不老맥추인지라 여름에도 서늘한 게 괴이하지 않네 麥秋無怪夏猶寒사람들은 모두 바쁘니 번잡하게 왔다가 분란하게 가고245) 熙來穰往人皆忙구름은 절로 한가하니246) 저녁에 걷혔다가 아침에 퍼지누나 暮卷朝舒雲自閑무엇보다도 내 생애에 바람 쐬고 시 읊는 곳이니 最是吾生風詠處봉황이 다시 천길 높이 나는 걸247) 자랑할 만 하여라 可詑千仞鳳翔還 病蘇興發上高山, 七尺優遊六合間.白髮惟能心不老, 麥秋無怪夏猶寒.熙來穰往人皆忙, 暮卷朝舒雲自閑.3)最是吾生風詠處, 可詑千仞鳳翔還. 천태산(天台山) 전라북도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산이다. 번잡하게……가고 원문의 희(煕)와 양(穰)은 사람들이 이익을 좇아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史記)》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천하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오는 것이요, 천하 사람들이 분란하게 가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가는 것이다.[天下煕煕,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라고 하였다. 양(壤)과 양(穰)은 통용된다. 구름이 절로 한가하니 저본에는 '운자간(雲自間)'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간(間)을 한(閑)으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봉황이……걸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이 천 길 높이 낢이여, 덕이 빛남을 보고 내려오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閑:底本에는 "間".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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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마을 집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過全州村舍 聞讀書聲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나니 何處讀書聲보내온 충고인 듯 나그네가 듣네 來砭客子聽처음엔 단산235)의 정상에서 初認丹山頂봉황새가 화락하게 운 줄 알았네 噦噦鳳鳥鳴다시 균천광악236)인 듯 기뻐했으니 再喜均天樂우르릉 천둥 소리 동정호에서 듣는 듯 轟轟聞洞庭때까치 소리237)가 천하에 가득하건만 鵙舌盈天下이 소리가 어찌해 생겨났는가 此聲胡爲生이레 동안 우레를 남겨 둔 것238) 留作七日雷하늘도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無乃天有情생각하니 옛날 주나라가 쇠퇴했을 때 念昔周衰日공자가 무성에서 빙그레 웃었네239) 夫子莞武城지금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인가 此世又何世마음과 눈이 깨어있지 않구나 有不心目醒사문이 어찌 끝내 망하겠는가마는 斯文豈終喪아마도 태평한 정치를 기다려야 하리 庶以待治平 何處讀書聲, 來砭客子聽.初認丹山頂, 噦噦鳳鳥鳴.再喜均天樂, 轟轟聞洞庭.鵙舌盈天下, 此聲胡爲生?留作七日雷, 無乃天有情?念昔周衰日, 夫子莞武城.此世又何世? 有不心目醒.斯文豈終喪? 庶以待治平. 단산(丹山) 봉황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 이름으로, 단혈(丹穴)이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새가 사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 무늬가 있으니,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丹穴之山…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皇.]"라는 구절이 보인다. 균천광악(鈞天廣樂)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列子 周穆王 註》 때까치 소리 다른 나라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지금 남만의 때까치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이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는 말이 나온다. 이레……것 복괘의 괘사(卦辭)에 "그 도를 반복하여 7일 만에 와서 회복하니, 가는 것이 이로우니라.〔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웃었네 공자께서 자유(子游)가 다스리는 무성(武城)에 가서 현가(弦歌)를 들으시고 빙그레 웃으셨다.[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는 일을 말한다.《論語 陽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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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읊다 謾吟 성도에 팔백 그루 뽕나무도 심지 못했고317) 未種成都八百桑집에 간직한 것은 적적하여 책상 하나네 家藏寂寂一書床달빛이 집을 비춰 정다운 벗이 되어주고 月光入戶爲情友솔잎은 산을 채워 양식 걱정은 아니하네 松葉盈山不慮粮일이 없을 때도 도리어 항상 두려워하고 無事還能常惕惕곤궁하게 살아도 다시 절로 양양318)하네 居窮亦復自陽陽이내 생애의 뜻과 사업이 이같을 뿐인데 此生志業如斯已누가 허명으로 분수 밖의 일을 취하리오 誰遣虛名取濫觴 未種成都八百桑, 家藏寂寂一書床.月光入戶爲情友, 松葉盈山不慮粮.無事還能常惕惕, 居窮亦復自陽陽.此生志業如斯已, 誰遣虛名取濫觴. 성도에……못했고 유산으로 남길 만한 넉넉한 재산이 없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죽음에 임해 촉한(蜀漢)의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표(表)에서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와 척박한 땅 15경(頃)이 있으니 자손들의 의식은 절로 충분합니다.[成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孫衣食自有餘饒.]"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三國志 卷35 諸葛亮傳》 양양 원문의 '양양(陽陽)'은 '양양(揚揚)'과 같은데, 득의(得意)한 모습이다. 《시경》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가 양양하여, 왼손에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론 날 방으로 부르니, 아 참으로 즐겁네.[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 其樂只且.]"라고 하였다. 주희 집전에 "양양은, 득의한 모습이다.[陽陽,得志之貌.]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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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종형 김경문 태현 을 애도하다 ○무자년(1948) 悼外從兄金景文【泰鉉○戊子】 함께 나고 함께 죽는 것은 俱生與俱死오직 가난일 뿐이라네 惟是一貧字효성과 공손은 일신의 직분이요 孝恭一身職굳세고 깨끗함은 평생의 뜻일세 介潔平生志집안에 혈혈단신인 아들이 있는데 家有孑孑子나가서는 그와 견줄 사람이 없다네 出無一人比공의 행적이 향리에 묻히니 足跡埋鄕里그 이름을 그 누가 다시 알리오 姓名誰復識한 번 황천에 들어간 뒤로 一入黃泉後염두에 두는 사람이 전혀 없구나 無人念頭置나 홀로 애통해하기를 마지않는 건 余獨慟不已참으로 공의 특출함 때문이라네 良亦祗以異공의 솜 속의 쇠219) 같은 성품을 흠모하니 欽公綿中鐵죽어도 줏대 없이 굽실거리지 않았고 死不作骫骳공의 적자의 마음220)을 사랑하니 愛公赤子心살아서 교활한 꾀를 부리지 않았다오 生不作巧智어찌 단지 중표221) 사이일 뿐이었겠는가 豈適以中表친형제처럼 여겨 우애가 두터웠네 視若親兄誼일찍이 친애하는 정을 느꼈으니 曾經親愛情말도 하기 전에 먼저 눈물이 쏟아지네 未言先傾淚슬픈 마음이 너무나 심한지라 還恐悲太劇애사를 지으려다 그만둘까 염려된다오 欲題旋自閟 俱生與俱死, 惟是一貧字.孝恭一身職, 介潔平生志.家有孑孑子, 出無一人比.足跡埋鄕里, 姓名誰復識?一入黃泉後, 無人念頭置.余獨慟不已, 良亦祗以異.欽公綿中鐵, 死不作骫骳.愛公赤子心, 生不作巧智.豈適以中表? 視若親兄誼.曾經親愛情, 未言先傾淚.還恐悲太劇, 欲題旋自閟. 솜 속의 쇠 원문의 면중철(綿中鐵)은 용면과철(用綿裹鐵), 과철이면(裹鐵以綿), 이서과철(以絮裹鐵)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모두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성품을 비유한 말이다. 적자(赤子)의 마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여 거짓이 없는 본연의 마음을 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적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중표(中表) 내외종(內外從) 사촌 형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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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석에게 지어 주다 贈崔正錫 군의 객지 생활이 너무 청한함을 걱정하니 憫君旅況太淸寒찬 구들방과 거친 음식이 어찌 어렵지 않으랴 冷突粗飯豈不難두 끼로 죽을 나눠 먹었던 범로248)의 고사를 들었고 粥畫兩時聞范老눈 덮여 봉해진 한 방에 누워 있던 원안249)을 생각하네 雪封一室憶袁安옥성시킴이250) 어찌 하늘에게 아무 뜻이 없으랴 玉成豈是天無意재주 쓰임을 장차 사람들이 통쾌하게 보리라 器用應將人快看늙은이의 복 많음을 스스로 축하하노니 自賀衰翁福分好이렇게 수재를 얻어 기쁨으로 삼았구나 得玆秀士作欣歡 憫君旅況太淸寒, 冷突粗飯豈不難?粥畫兩時聞范老, 雪封一室憶袁安.玉成豈是天無意? 器用應將人快看.自賀衰翁福分好, 得玆秀士作欣歡. 두……범로(范老) 범로는 소범 노자(小范老子)로 불렸던 송(宋)나라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으로,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범중엄이 젊은 시절에 친구 한 명과 함께 산사(山寺)에 들어가 3년 동안 학문에 힘썼는데, 단지 좁쌀 두 되를 삶아 죽 한 그릇을 쑤어 놓고는 하룻밤이 지나 마침내 죽이 굳으면 칼로 나눠 네 덩이를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두 덩이씩 취해 먹었던[惟煮粟米二升, 作粥一器, 經宿遂凝, 以刀畫爲四塊, 早晚取二塊.] 고사가 있다. 《五朝名臣言行錄 卷7 參政范文定公》 눈……원안(袁安) 원안은 후한 화제(和帝) 때의 충신으로, 효성과 청렴으로 추천되어 초군 태수(楚郡太守)를 거쳐 정승을 지냈다. 원안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렸다.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을 치우고 나와서 걸식(乞食)을 하고 있는데, 원안의 집만 유독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았더니 원안이 방 안에 태연히 누워있는 것이었다.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남에게 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에 낙양 영이 원안을 어진 사람이라 하여 효렴(孝濂)으로 천거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한 고사가 있다. 후에 이를 '원안고와(袁安高臥)'라 하여 선비가 곤궁함에 처해서도 굳게 지조를 지키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옥성(玉成)시킴이 옥성은 사람을 옥처럼 훌륭히 완성시켜 준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우척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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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苦熱 돌도 녹고 또 쇠도 녹는 때를 당하니 時當石爍又金流무더위 속에 유인의 머리가 다 희었다오 苦熱幽人白盡頭두자의 높은 누대는 눈 위를 밟는 듯하고254) 杜子高樓如踏雪청련의 큰 부채는 가을인 줄 의심하였네255) 靑蓮大扇却疑秋인연 있다면 어찌 천금 주고 사는 걸 아끼랴 有緣何惜千金買계책 없으니 한갓 시름 하나만 더할 뿐일세 無計徒添一種愁후회하노니 금년 정월 대보름날에 悔不今年上元節더위 파는256) 아이들의 노래를 함께 읊지 않음을 共吟賣暑小兒謳 時當石爍又金流, 苦熱幽人白盡頭.杜子高樓如踏雪, 靑蓮大扇却疑秋.有緣何惜千金買? 無計徒添一種愁.悔不今年上元節, 共吟賣暑小兒謳. 두자(杜子)의……듯하고 두자는 당(唐)나라 시인인 두보(杜甫)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높은 누대'는 두보의 시 〈중야(中夜)〉에 "깊은 밤 강산은 고요한데, 높은 누대에서 북신을 바라본다.[中夜江山靜, 危樓望北辰.]"라고 한 시구 가운데 위루(危樓)를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높은 누대가 하얀 구름 위로 솟아 있어 마치 눈 위를 밟고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청련(靑蓮)의……의심하였네 청련(靑蓮)은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큰 부채'는 이백의 시 〈여름날 산중에서[夏日山中]〉에 "백우선을 게을리 부치며, 푸른 숲속에 벗은 채로 있다오.[嬾搖白羽扇, 躶體靑林中.]"라고 한 시구 가운데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인 '백우선(白羽扇)'을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큰 부채를 부치니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이 일어 마침 가을인 줄 의심했다는 뜻이다. 더위 파는 옛날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흔히 아이들이 행했던 '더위팔기〔賣暑〕'라는 민속놀이를 가리킨다. 이날 아침에 서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더위를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내가 상대의 더위를 사는 꼴이 된다. 더위를 많이 팔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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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철원236)행 裵哲媛行 배부인이여 진정한 철원이로다 裵夫人眞哲媛하늘이 정해준 윤 의사의 훌륭한 배필이로세 天定良配尹義士의사가 순국한 뒤 더욱 스스로 면려하여 義士沒益自勵시부모를 봉양하고 두 아들을 가르쳤다오 養舅姑敎二子갑자기 부친의 병세를 듣고 가서 살펴보니 忽聞父病往省視증세가 나쁘지 않은지라 어찌 기쁘지 않으랴 證不無幸豈無喜이미 왔고 또 여기에 머물 만하다는 旣來且可此留宿제부의 말이 참으로 은근하였지만 諸父之言良勤止부인은 지금 미망인의 신세로 今爲未亡人오직 몸가짐을 삼가야 하는데 惟當愼持己부친에게 더 이상 근심 없으니 父兮且無虞딸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하였네 女當歸吾里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뜻을 굳혀 言訖卽決意결연히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237) 介然作不俟아아 부인의 말과 행실은 嗟哉夫人言與行참으로 음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온 것이로다238) 中行獨復允是여염 사이에서 생장했다고 들었는데 聞是生長閭閻間어디에서 왔기에 이와 같단 말인가 何處得來乃如此윤 의사와 배 철원이 부부가 된 건 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것이로세 乃天所爲非人爾 裵夫人眞哲媛, 天定良配尹義士.義士沒益自勵, 養舅姑敎二子.忽聞父病往省視, 證不無幸豈無喜?旣來且可此留宿, 諸父之言良勤止.今爲未亡人, 惟當愼持己.父兮且無虞, 女當歸吾里.言訖即決意, 介然作不俟.嗟哉夫人言與行, 中行獨復允是.聞是生長閭閻間, 何處得來乃如此?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 乃天所爲非人爾. 배 철원(裵哲媛) 윤봉길(尹奉吉)의 아내인 배용순(裵用順, 1907~1988)으로, 철원은 명철(明哲)한 부인이라는 뜻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922년 16세에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윤봉길과 결혼하였다. 슬하에 아들 윤종(尹淙), 윤담(尹淡)을 두었다. 남편 윤봉길이 1932년 순국한 뒤 종부로서 50여 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식을 키우며 가정을 지켰다.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 원문의 작불사(作不俟)는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君子見幾而作, 不竢終日.]"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음(陰)……것이로다 《주역》 〈복괘 육사(六四)〉의 효사(爻辭)로, 소인(小人)들이 득세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외롭게 분투하며 바른 도(道)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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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다 登高 노년에 옛 산천을 다시 보노라니 衰年復見舊山川특별한 풍광이 눈앞에 들어오누나 別有風光入眼前강토는 어이하여 남북으로 찢겼는가 疆土如何南北裂전란으로 또다시 아시아와 유럽이 연합하도다 干戈又是亞歐連바다 너머 일천 봉우리엔 청제241)가 돌아오고 千峰海外歸靑帝인간 세상 일만 촌락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네 萬落人間起暮煙산에 올라 한 곡조 부르기로 벗들과 약속하니 約伴登高歌一曲지음이 다시 들새 통해 소식을 전해 오는구나 知音更得野禽傳좋은 술이 동이에 가득하고 안주도 소반에 그득한데 盈樽旨酒滿盤肴자리 위에 의관 갖춘 자들은 모두 옛 친구로구나 座上衣冠盡舊交봄이 지난 뒤라 낙화가 붉은 싸락눈을 이루고 春後落花紅作霰비가 내린 뒤라 방초가 교외에 푸르게 펼쳐지네 雨餘芳草綠鋪郊나라는 이미 새로운 운수가 돌아왔건만 國家已得回新運세도는 어이하여 밑바닥까지 떨어졌는가 世級胡然降末梢온종일 기우에서 풍영하는 흥취242)를 즐기고 盡日沂雩風詠趣돌아와 남은 흥취를 한 서재에 간직한다오 歸藏餘興一書巢 衰年復見舊山川, 別有風光入眼前.疆土如何南北裂, 干戈又是亞歐連.千峰海外歸靑帝, 萬落人間起暮煙.約伴登高歌一曲, 知音更得野禽傳.盈樽旨酒滿盤肴, 座上衣冠盡舊交.春後落花紅作霰, 雨餘芳草綠鋪郊.國家己得回新運, 世級胡然降末梢?盡日沂雩風詠趣, 歸藏餘興一書巢. 청제(靑帝) 봄을 주관하는 신이다. 오행에서 동방은 목(木)에 속하는데, 목은 봄과 청색을 상징하므로. 봄을 주관하는 신을 동황(東皇), 동제(東帝), 청황(靑皇), 청제 등으로 불렀다. 기우(沂雩)에서 풍영(風詠)하는 흥취 기우는 기수(沂水)와 무우(舞雩)를 가리키고,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흥취를 이른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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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재88)를 세운 지 두 번째 주갑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시 병소서 ○병술년(1946) 聚星齋再度周甲紀念詩【幷小序○丙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우리 선조(先祖) 군사공(郡事公)89) 묘소 아래에 예전에는 덕성암(德星菴)이 있었다가 화재를 만나 소실되어 취성재(聚星齋)를 중건하였다. 전후로 지은 이름은 모두 석천(石川) 임 선생(林先生)90)의 '김씨 집안에 덕성이 모였네.[金門聚德星]'91)라는 시구(詩句)의 뜻을 취한 것이다. 취성재를 상량(上樑)한 때가 인릉(仁陵)92) 병술년(1826, 순조26) 2월에 있어 121년이 지났다. 지금 두 번째 주갑(周甲)을 맞이하여 비록 성대한 모임을 가져 잔치를 베풀지 못한다 해도 어찌 기념하고 싶은 감회야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여러 종족(宗族)과 함께 시를 읊어 재실의 고사(故事)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유조엄무(柔兆閹茂)93) 중춘(仲春) 초하루에 군사공(郡事公)의 17세손 택술(澤述)은 삼가 쓴다.재실을 지은 해의 육갑이 거듭 돌아오니 六甲重周築室年덕성의 상서로운 빛이 갑절로 찬란하구나 德星瑞彩倍煌然시운이 중흥으로 돌아온 청구의 날이요 運回興復靑邱日절서가 온화함에 속하는 이월의 하늘일세 序屬溫和二月天진씨 정자94)만 어찌 꼭 예로부터 명성이 최고라 하리오 豈必甄亭名擅古위씨 모임95)만 굳이 전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것 없다오 不須韋會美專前끝없는 서쪽 바다에 봉산96)이 우뚝 솟았으니 西溟無盡蓬山屹이 재실을 잘 보호하여 세상에 길이 전하리라 護得楣樑永世傳 扶安之席洞山我先祖郡事公墓下, 舊有德星菴, 而遭回祿, 重建聚星齋, 前後命名, 皆取林石川先生"金門聚德星"之詩義也.聚星抛樑之時, 在仁陵丙戌二月, 而爲百二十一年矣.今當再度周甲也, 雖不能盛會宴飮, 烏得無紀念之感哉? 玆庸構成一韻, 願與諸宗族聯賦, 以備齋中故事云爾.柔兆閹茂仲春初吉, 郡事公十七世孫澤述謹識.六甲重周築室年, 德星瑞彩倍煌然.運回興復靑邱日, 序屬溫和二月天.豈必甄亭名擅古, 不須韋會美專前.西溟無盡蓬山屹, 護得楣樑永世傳. 취성재(聚星齋)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군사공(郡事公) 후창의 17대조가 되는 김광서(金光敍)를 가리킨다. 그는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예로, 고려 말에 지고부군사공(知古阜郡事公)을 지냈다. 임 선생(林先生)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호는 석천(石川)이다. 박상(朴祥)의 문인이다. 1545년(명종 즉위년) 금산 군수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소윤(小尹)인 동생 백령(百齡)이 대윤(大尹)의 선배들을 내몰자 자책을 느껴 벼슬을 사직하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시집(石川詩集)》이 있다. 김씨……모였네 임억령이 일찍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옹정리(瓮井里)를 찾아가 〈만가(挽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시에 "옹정 마을엔 군자가 많고, 김씨 집안엔 덕성이 모였네.[瓮井多君子, 金家聚德星.]"라는 시구에서 보인다. 다만 임억령의 문집에 실린 시에는 김문(金門)의 문(門)이 가(家)로 되어 있다. 《石川詩集 卷3 挽歌》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능호(陵號)이다. 유조엄무(柔兆閹茂) 병술년(1946)을 가리킨다. 유조는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고, '엄무'는 고갑자로 지지(地支) 가운데 술(戌)에 해당한다. 진씨(甄氏) 정자(亭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 사람인 진씨(甄氏)가 부모의 장례를 지낸 뒤 그 곁에 사정(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에 보인다. 여기서는 후창의 부안 김씨(扶安金氏) 집안에서 선조 김광서(金光敍)를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취성재에 비겨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위씨(韋氏) 모임 당(唐)나라 때 명문가였던 위씨(韋氏)들이 종회법(宗會法)을 만들고 화수회(花樹會)를 결성하여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꽃나무 아래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진 고사가 있다. 이로 인해 종친회를 화수회라고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시에 "그대의 집 형제들을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 꽃나무 아래 늘 모이니, 옥 항아리에 꽃이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롭네.[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199 韋員外家花樹歌》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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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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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석이 김염재가 부쳐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지어 주다 申元石示以金念齋所寄詩 次韻以贈 어린 나이에 물고기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니109) 童年嗜學甚於魚멀리서 쇠한 늙은이를 찾아와 고서를 읽는구나 遠訪衰翁讀古書아아 이내 몸은 너에게 모범되기 어려우니 嗟我難能模範汝단지 성현을 스승 삼아 편안히 거할지어다 直師賢聖作安居학량110)의 은혜로 궁한 물고기 신세111)를 구제해주니 學粮惠澤救窮魚김씨 집안의 높은 풍도는 특별히 기록할 만하네 金氏高風可特書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일을 보기 드무니 罕見世間如許事독실하게 힘쓰고 편안히 지낼 겨를 없어야 하리 正宜慥慥不遑居풍협112) 잡고 생선 없다고 한탄하지 않나니 不將馮鋏嘆無魚본래부터 시렁 위에 천편의 책이 있다오 自有千篇架上書객을 대접할 때 좋아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 待客要須知所好주인이 어찌 꼭 가난한 생활을 부끄러워하랴 主人何必愧貧居천리 밖 두류산에서 안어113)가 소식 전해오니 千里頭流來鴈魚바로 한 통의 진중한 염재의 편지일세 一封珍重念齋書어진 스승을 기대하니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賢師期待何能負훗날에 응당 오하에 사는 사람은 아니리라114) 他日應非吳下居홀연히 물고기가 변하여 용 되기115) 어렵나니 難得成龍忽變魚여유 있게 다섯 수레 책116)을 읽어야 한다오 優遊須讀五車書천추의 맹성117)께서 밝은 가르침을 남기셨으니 千秋孟聖留明訣조예가 깊으면 그 거처함을 편안히 할 수 있다고118) 深造可能安厥居 童年嗜學甚於魚, 遠訪衰翁讀古書.嗟我難能模範汝, 直師賢聖作安居.學粮惠澤救窮魚, 金氏高風可特書.罕見世間如許事, 正宜慥慥不遑居.不將馮鋏嘆無魚, 自有千篇架上書.待客要須知所好, 主人何必愧貧居?千里頭流來鴈魚, 一封珍重念齋書.賢師期待何能負? 他日應非吳下居.難得成龍忽變魚, 優遊須讀五車書.千秋孟聖留明訣, 深造可能安厥居. 물고기보다……좋아하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학량(學粮) 학업을 하는 데 필요한 양식 또는 학사(學舍)의 운영 자금을 이른다. 궁한 물고기 신세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에 나오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말라 헐떡이는 붕어와 같은 신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곤경에 처해 다급한 사람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에서 다 죽어 가는 물고기가 약간의 물만 주면 살겠다고 애원을 하면서, 만약 시기를 놓치면 건어물 가게에서나 자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있다. 풍협(馮鋏)……않나니 풍협(馮鋏)은 풍환(馮驩)의 칼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에 풍환이 일찍이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었는데, 맹상군이 후하게 대우하지 않고 좌우로부터 천시를 받자, 풍환이 불만을 품고 손으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먹자 해도 생선이 없구나.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밖에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長鋏歸來乎! 出無車.]"라고 하니, 맹상군이 좌우에게 명하여 풍환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안어(鴈魚) 기러기와 물고기가 서신을 대신 전한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편지를 뜻한다. 물고기는, 《문선(文選)》의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먼 곳에서 손님이 와 두 마리 잉어를 주었는데, 아이를 시켜 요리했더니 배 속에서 비단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来, 遺我䨇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고, 기러기는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흉노에 억류된 소무의 소식이 적힌 비단이 한 소제(昭帝)가 잡은 기러기발에 묶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오하(吳下)에……아니리라 사람의 식견과 학문이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진보함을 비유한 말이다.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처음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그를 군정(軍政)에 참여시키면서 독서할 것을 권하자, 그 후로 여몽이 열심히 공부하여 학식이 높아졌다. 뒤에 노숙(魯肅)이 여몽과 담론하다가 학식이 몰라보게 진보한 것에 탄복하면서 "나는 그대가 무사(武事)만 아는 줄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건대 학식이 깊고 넓으니 더 이상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 아니다.〔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于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라고 칭찬하니, 여몽이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오하(吳下)는 소주(蘇州)를, 아몽(阿蒙)은 여몽을 가리킨 말이다. 물고기가……되기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폭포수는 세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해(江海)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였다가 그 폭포를 뛰어오르는 놈은 변하여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 고사는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다섯 수레 책 원문의 오거서(五車書)는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로 많은 서책이라는 말로 수많은 서책이나 박식함을 뜻하는데,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혜시의 학문은 다방면이어서 그 서책이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이다.[惠施多方, 其書五車.]"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맹성(孟聖)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조예가……있다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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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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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천의 임간송134) 호철 을 방문하다 ○9수 公州濟川訪林澗松【浩喆○九首】 독락정135)에서 구산옹136)을 함께 모신 지가 獨樂亭中陪臼山어느덧 사십 칠년 세월이 흘렀구나 忽焉四十七年間어찌 생각했으랴 봄바람 속에 함께 앉았던 이들이 豈料同坐春風伴오늘 아침엔 둘 다 늙은 얼굴로 서로 마주할 줄을 相對今朝兩老顔용사의 액137)을 고하매 갑자기 태산이 무너지니138) 龍蛇告厄遽頹山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양쪽 다 비통하였네 私痛公悲徹兩間현재 무함하는 무리들이 어지러이 날뛰니 脚下紛紛誣衊輩훗날 저승에서 뵐 때 무슨 면목으로 대하리오 他年歸拜作何顔근심의 끝이 우뚝한 남산과 가지런할 뿐만 아니니139) 憂端不啻屹南山목숨 바쳐 스승께 보답함이 우리가 어찌 다르리오 致死報師吾豈間평생 밝게 분변하는 뜻이 한결같고 지성스러우니 斷斷生平明辨志위로 아래로 부끄러울 게 없어140) 당당히 고개 든다오 無慙俯仰正擡顔천리 흐르는 시냇물이 깊은 산중에서 나오고 澗流千里出深山축축 늘어진 소나무가 눈 속에 우뚝 서 있네 落落蒼松立雪間지조와 절개가 원래 저와 같이 드높으니 志節元來高似許마침내 부헌이라 쓴 재실 편액을 본다오 孚軒終見作齋顔구산옹이 부헌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141) 嘉錫孚軒自臼山초당의 현판 사이에서 광채가 나는구나 草堂生色揭楣間교화가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날을 기다려야142) 待看化及豚魚日비로소 사문에 부응하여 공안143)을 기약할 수 있다오 始副師門期孔顔장대한 뜻이 처음엔 아홉 길 산144)을 기필했는데 壯志初期九仞山은근한 가르침을 또한 함장145) 사이에서 받았다오 叮嚀亦受丈函間지금 와서 결국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今來竟作如何狀후창이란 두 자가 너무도 낯부끄럽게 하는구나146) 二字後滄堪愧顔돌아가는 길에 아스라한 상당산147)을 바라보니 歸路迢迢上黨山석별의 정이 아득히 운수148) 사이로 들어가누나 別懷杳入樹雲間집이 멀어서 생각만 할 뿐이라고149) 하지 마소 莫言室遠相思地만년의 절조를 서로 닦아 다시 만나야 하니 晩節交修更接顔백발에 푸른 눈으로150) 서로 만난 옛 사림의 벗이니 白髮靑眸舊士林일찍이 근심이 많았건만 아직도 시름 속에 있구나 曾經憂慮尙欽欽백육 만나151) 도를 잃으니 자신을 해친 듯하였고 道喪百六如戕己삼천리 강토를 회복하니 마음이 다소 위로된다오 疆復三千稍慰心목석 사이에 은거하며 맑아지기를 기다릴 만하니 且可待淸居木石시속과 섞여 살며 금란의 교분152)을 말한 필요 없다오 未須混俗說蘭金서풍은 날마다 수시로 성대하게 불어오는데 西風日競無時定어찌하면 제민153)들이 바른 복식으로 돌아오려나 安得齊民返正襟사문에 아무아무 자들이 수풀처럼 많지만 斯文某某積如林사람에게 흠모의 정을 생기게 하기 어렵구나 難得令人起景欽책방과 같고 자잘한 말을 하면서도154) 부끄러움이 없었고 書肆說鈴曾沒恥높은 관 넓은 띠를 착용하면서155) 도리어 마음을 속이누나 峨冠博帶反欺心아우와 형이 어찌 차마 창칼을 수선하면서156) 弟兄何忍修戈戟의리와 이욕을 모두 잊은 채 쇠와 금을 분변하랴 義利都忘辨鐵金다만 자신이 외려 그 속에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但恐自家還在裡은나라 거울157)을 가지고 내 옷깃을 여며야 하리라 可將殷鑑整吾襟 獨樂亭中陪臼山, 忽焉四十七年間.豈料同坐春風伴, 相對今朝兩老顔?龍蛇告厄遽頹山, 私痛公悲徹兩間.脚下紛紛誣衊輩, 他年歸拜作何顔?憂端不啻屹南山, 致死報師吾豈間?斷斷生平明辨志, 無慙俯仰正擡顔.澗流千里出深山, 落落蒼松立雪間.志節元來高似許, 孚軒終見作齋顔.嘉錫孚軒自臼山, 草堂生色揭楣間.待看化及豚魚日, 始副師門期孔顔.壯志初期九仞山, 叮嚀亦受丈函間.今來竟作如何狀, 二字後滄堪愧顔.歸路迢迢上黨山, 別懷杳入樹雲間.莫言室遠相思地, 晩節交修更接顔.白髮靑眸舊士林, 曾經憂慮尙欽欽.道喪百六如戕己, 疆復三千稍慰心.且可待淸居木石, 未須混俗說蘭金.西風日競無時定, 安得齊民返正襟?斯文某某積如林, 難得令人起景欽.書肆說鈴曾沒恥, 峨冠博帶反欺心.弟兄何忍修戈戟, 義利都忘辨鐵金?但恐自家還在裡, 可將殷鑑整吾襟. 임간송(林澗松) 임호철(林浩喆)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선(敬善), 호는 간송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後滄集答 卷6 答林敬善》 독락정(獨樂亭) 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 있는 정자이다. 임호철의 선조인 임목(林穆, 1371∼1448)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금강팔경(錦江八景)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7 忠淸道 公州牧》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로, 구산은 그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용사(龍蛇)의 액(厄) 사람이 죽는 액운이 든 해를 말하는데, 흔히 현인의 죽음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지내는데, 하루는 꿈에 공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용의 해이고 내년은 뱀의 해이다.[起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 참술(讖術)로 맞추어 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줄 알았더니, 실제로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65 鄭玄列傳》 태산(泰山)이 무너지니 공자(孔子)가 어느 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쓰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서 7일 만에 별세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태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선사(先師)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쓴 말로,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전우(田愚)의 죽음을 가리킨다. 근심의……아니니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근심의 끝이 종남산과 가지런하여, 끝없는 근심을 걷을 수가 없어라.〔憂端齊終南, 鴻洞不可掇.〕"라고 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杜少陸詩集 卷4》 위로……없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원문의 가석(嘉錫)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뜻으로,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황고께서 나의 초년 시절을 관찰하여 헤아리사, 비로소 내게 아름다운 이름을 내리셨으니, 나의 이름을 정칙이라 하시고, 나의 자를 영균이라 하시었네.[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余以嘉名.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교화가……기다려야 원문의 화급돈어(化及豚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단사(彖辭)에 "돼지와 물고기가 길함은 미더움이 돼지와 물고기에 미친 것이다.[豚魚吉, 信及豚魚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말이다. 미더움이 돈어에 미친다는 것은, 성인(聖人)의 덕화가 매우 우둔하고 미천한 동물에까지 미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부헌(孚軒)'이란 명칭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안(孔顔)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를 합칭한 말이다. 아홉 길 산 원문의 구인산(九仞山)은 《서경》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에 끝내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공이 이루어진다는 경계이다. 함장(函丈) 스승의 자리 또는 강학(講學)하는 자리를 뜻한다. 본디 옛날에 스승의 자리와 제자의 자리에 1장(丈)의 사이를 둔 데서 나온 말로, 전하여 스승의 경칭(敬稱)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 전우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만일 음식 대접을 위한 객이 아니고 강문(講問)하러 온 객이거든 자리를 펼 때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라고 하였다. 후창(後滄)이란……하는구나 김택술의 '후창'이란 호는 스승인 간재가 지어준 것이다.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호를 '후율(後栗)'이라고 지었는데, 간재가 이 일을 본떠 남송(南宋)의 호가 창주(滄洲)인 주희(朱熹)를 계승하라는 의미로 '후창'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후창이 자신을 돌아보니 스승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6 答洪韋軒》 상당산(上黨山)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운수(雲樹) 멀리 떨어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에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다시 함께 자세히 글을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집이……뿐이라고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푸른 눈으로 원문의 청모(靑眸)는 청안(靑眼)과 같은 말로, 반가워하는 눈길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완적(阮籍)은 세속(世俗)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을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백육 만나(百六) 백육은 106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액운(厄運)을 말한다.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律歷志上》 금란(金蘭)의 교분 원문의 남금(蘭金)은 돈독한 우의(友誼)를 비유한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단단함이 쇠를 끊을 만하도다.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내가 난초와 같도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민(齊民)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로, 서민(庶民), 평민(平民) 등과 같은 말이다. 책방과……하면서도 원문의 서사(書肆)는 책방의 뜻으로, 책의 요점은 파악하지 못한 채 많이 읽는 것만 욕심낸다면 그저 책을 많이 쌓아둔 책방에 불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설령(說鈴)은 긴요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말을 이른다.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책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긴요하지 않는 것은 책방일 뿐이고, 말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말이다.〔好書而不要諸仲尼, 書肆也, 好說而不見諸仲尼, 說鈴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북송의 정이(程頤)가 일찍이 문인 윤돈(尹焞)에게 이르기를 "공이 학문하는 방도를 알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굳이 많이 볼 필요가 없고 요점을 알아야 하니, 많이 보기만 하고 요점을 알지 못한다면 책방일 뿐이다.[公要知爲學, 須是讀書. 書不必多看, 要知其約, 多看而不知其約, 書肆耳.]"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3》 높은……착용하면서도 원문의 아관박대(峨冠博帶)는 높은 관과 헐렁한 띠로, 사대부의 정장 혹은 조복(朝服)을 의미한다. 창칼을 수선하면서 원문의 수과극(修戈戟)은 《시경》 〈진풍(秦風) 무의(無衣)〉에 "어찌 옷이 없어서, 그대와 솜옷을 함께 입으리오. 왕명으로 군대를 일으키거든, 우리의 창칼을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豈曰無衣, 與子同袍? 王于興師, 修我戈矛, 與子同仇.]"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돈독한 우의(友誼)가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은(殷)나라 거울 원문의 은감(殷鑑)은 《시경》 〈대아(大雅) 탕(蕩)〉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날의 경계로 삼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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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158)의 별장에 이르다 到吳允一庄 한여름에 반천 리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니 炎天來訪半千程그 누가 알리오 이 늙은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誰識老夫相愛情선조 묘비에 정성을 다하니 아름다운 행적 전하고 誠竭祖碑傳懿蹟시골 마을에 덕이 미더우니 어리석은 백성 교화하네 德孚鄕里化蚩氓책 속에 실로 몸 편케 하는 방법이 있거니와 書中儘有安身術세상에 어찌 실상에 부합하는 명성이 없으랴 世上那無副實名그대처럼 근본 서는 건 참으로 쉽지 않나니 本立如君諒匪易이로부터 대도가 자연히 생겨나리라159) 從玆大道自然生상당산성160) 서쪽의 작천 주변에 上黨城西鵲川邊풍광 좋은 골짝 한 구역이 있구나 一區洞壑好風煙기암의 수석은 이름난 승경을 전하고 機巖水石傳名勝목령의 산세는 온전한 기운을 보이네 木嶺岡巒見氣全인정 넘치는 마을엔 옛 풍속이 남아 있고 誼洽一村餘舊俗풍성하게 여문 오곡은 좋은 밭에 무성하여라 年登五穀有良田이곳에 다시 안풍자161)가 있어 斯間復得安豐子평생 주경야독하며 천명을 즐기누나 耕讀生平自樂天서원162)에 먼 길손이 창동에서 찾아온 건 西原遠客自滄東학풍이 좋은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之君好學風시례는 용은 뒤에 여전히 남아 있고163) 詩禮猶餘龍隱後발자취는 목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도다 鞋筇不出鶩山中마음은 섬돌 앞 잣나무와 같아 길이 푸름을 보고 心如砌柏長看翠몸은 정원 속 꽃과 짝하여 홀로 붉음을 보전하누나 身伴庭花獨保紅이별과 만남은 무상하니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離合無常何足道일생토록 마음에 두는 바가 같아야 할 뿐이라네 一生須要所存同 炎天來訪半千程, 誰識老夫相愛情?誠竭祖碑傳懿蹟, 德孚鄕里化蚩氓.書中儘有安身術, 世上那無副實名?本立如君諒匪易, 從玆大道自然生.上黨城西鵲川邊, 一區洞壑好風煙.機巖水石傳名勝, 木嶺岡巒見氣全.誼洽一村餘舊俗, 年登五穀有良田.斯間復得安豐子, 耕讀生平自樂天.西原遠客自滄東, 爲有之君好學風.詩禮猶餘龍隱後, 鞋筇不出鶩山中.心如砌柏長看翠, 身伴庭花獨保紅.離合無常何足道? 一生須要所存同. 오윤일(吳允一) 오원홍(吳源弘)으로, 윤일은 그의 자이다. 그 밖의 사항은 미상이다. 《後滄集 卷4 答吳允一》 그대처럼……생겨나리라 《논어》 〈학이(學而)〉에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성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안풍자(安豐子) 당(唐)나라 때 안풍(安豐)에 은거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을 이른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의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여기서는 오원홍을 안풍자에 비겨 말한 것이다. 《小學 善行》 서원(西原) 청주(淸州)의 별칭이다. 시례(詩禮)는……있고 오원홍이 이곳에 은거한 뒤에도 가학(家學)을 잘 계승하고 전수함을 말한다. 시례는 가정교육 또는 가학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용은(龍隱)은 지명 등의 고유명사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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