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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浦停車 上去時下鄕車入安山自京去亨齋公山所四十里 高陽郡碧蹄面仙遊里出西大門○越舞鶴峙 ○過綠蟠곡ᄋᆞㅣ二 ○過剝石곡ᄋᆞㅣ 過舊擺撥 ○過ᄆᆞㅣ암이곡ᄋᆞㅣ二 ○過산즉극ᄋᆞㅣ 當仙遊里墓直成壽奉家 二五四番地 成壽奉從叔成鍾煥二七四番地 出后從叔汶容氏墓直成乭夢也鶴庵公家世系 應協 子 趾烈 無子 子 顯烈 子 載忠 納伯氏 趾烈 子 箕錫 系子 漢容 生父 箕柱 平壤公派 子 箕欽 系子 汶容 奉事公派惟我 始祖顯于新羅之季 而其下失傳 又八傳而壠西公克開 厥後窃稽陽川許譜 詳載始祖五代下名諱 則自始祖至壠西公 固爲十二代 而壠西公譜序云 新羅宰相某寔公十二代祖 則十二代祖至公 豈非十三代乎 別檢公墓碣云 新羅宰臣某十二代孫 某則此亦十三代之證也 豈爲序爲碣者不究乎 上下十二代之爲祖爲孫 捨已當云 十一代而遽下祖孫字於十二代之下乎 抑爲許譜者 或於十二代祖孫之文 不察夫 兼已當爲十三代而泛稱十二代乎 然則始祖下失傳之爲三代爲四代 未可知也 況舊譜以一十一代祖爲始祖十六代孫 而自始祖至壠西公爲二十代者 於何考也 蓋序碣與許譜相近 而與〈이하 탈락〉楊州蘆原中契墓直朴順成 下契墓直姜元信永平楸洞山所路記〈今爲抱川云云〉當南大門登驛 上元山行全谷車 費一圓五錢 過龍山驛 過西氷庫驛車 過往十里驛車 過淸涼里驛車〈自京若去則出東大門登此車〉 過蒼庫驛車〈卽蒼洞也 楊州蘆原上中下契在前〉 過議政府驛車〈野名議政也〉 過德亭車 過東荳川車 至全谷車〈下〉 問高灘里津〈船價五錢〉 問白蟻津〈船價五錢〉 問바람올酒店前江〈船價五錢〉 問抱川郡去路至小嶝問獜鳳洞 卽楸洞也 新洞名으로 注院里區 獜鳳洞隱庵公八世孫〈黃鍾(字聲汝) 應鍾(字復汝)〉 抱川郡 蒼水面 注院里〈獜鳳洞〉 三五四番地回記自全谷車下蒼洞車 費七十錢也 問蘆原中契〈自蒼洞至中契五里〉抱川郡 蒼水面 注院里 獜鳳洞 三五四番地 李應鍾 仁川 府內里 五十二番地 李敎洪 敎應其伯氏也 京南大門 外吉野町 壹丁目 百十八番地 李敎煥 京城 嘉會洞 百四十三番地 李瓘 號敬庵 水原郡 峯潭面 柳里 李仁淳 字聖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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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하보관(河甫寬) 수표(手票) 고문서-증빙류-수표 光緖十二年八月二十五日 河甫寬 光緖十二年八月二十五日 河甫寬 전라남도 보성군 증인 1인[着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6년 8월 25일에 하보관(河甫寬)이 양례를 위해 척치촌의 사자 답을 저당하고 차용한 금액에 대한 수표 1886년 8월 25일에 표주(票主) 하보관(河甫寬)이 양례(襄禮)를 위해 척치촌의 사자 답을 저당하고 차용한 금액에 대한 보증 수표이다. 하보관이 상을 당해 장사를 치를 길이 없어 보성군 문전면(文田面) 척치촌(尺峙村) 전평의 사자(仕字) 답(畓) 1두(斗) 3승락지 부수(負數) 6복(卜)을 전문 12냥에 전당 잡히고 12월 그믐 안으로 본전과 이자를 차례로 힘써 갚겠다고 하고서 발급한 증서이다. 표주(票主) 하보관(河甫寬)과 증인(證人) 이규용(李奎容)의 이름이 있고 증인은 서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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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五年南下面遯溪里戶籍單子苐 統苐三戶幼學金應相年五十丙申 本扶寜父學生 命河祖學生 道明曾祖學生 德濂外祖學生柳壽期 本高興妻梁氏歲三十一乙卯籍南原父學生 應澤祖學生 履元曾祖學生 斌信外祖學生朴啓東 本密陽率子童蒙聖黙年二十一乙丑外祖學生林命燁 本沃溝賤口秩小娘一所生逃亡奴有辰年五十六婢元礼年四十二壬午戶口相凖者[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 [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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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一年乙酉十一月初四日 手標右標事切有緊用之處故右錢壹百兩以周年肆里例得用之限來年十月晦內備報之意如是成標爲乎乙事此亦中典當文券二丈標主 幼學 金洛晉[着名]證人 幼學 金炳亮[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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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一年乙酉十一月初四日 手標右標事切有緊用之處故右錢壹百兩以周年肆里例得用之限來年十月晦內備報之意如是成標爲乎乙事此亦中典當文券二丈標主 幼學 金洛晉[着名]證人 幼學 金炳亮[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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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二年丙戌三月初十日 標右標事切有緊用處故右錢伍拾兩以每朔五分例得用之限則來十一月備報之意如是成標事標主 幼學 金極化[着名]證人 幼學 朴應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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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宗稧) 서문(序文) 고문서-시문류-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종계를 닦아서 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봉행하자고 하는 서문 종계(宗稧)를 닦아서 분묘(墳墓)를 수호(守護)하고 제사를 봉행하자고 하는 서문이다. 나무가 그 근원(根源)이 견고하지 않으면 가지가 마르고, 물이 그 근원이 깊지 않으면 물줄기가 마르듯이, 사람의 근원은 4단(端) 7정(情)인데 그 근원이 없으면 자손이 영창(榮昌)하고 문호(門戶)가 성대(盛大)할 리가 없다. 사람의 근원은 조종(祖宗)에 있고, 조종은 분묘에 있으니 잘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노소가 모두 모여 종계(宗稧)를 설립하고 모두 합심해서 시조(始祖) 농서공(隴西公)부터 고조(高祖) 복정공(僕正公)까지 16세의 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봉행하기를 정성을 다하고 예를 다하자고 호소하는 종계의 서문이다. 농서공은 성주이씨 이장경이며, 복정공은 이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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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天地間萬物 必皆有根源 而成就焉 根固源深 然後可以大達繁茂 每觀木之枝 達水之派 分最明白可知矣 木而其根不固 則枝枯 水而其源不深 則波渴 此天地間必然之理也 能成扶廈之材 能就達海之功者 其豈偶然成就者哉 噫 彼衆物之無情 亦皆有根源而成就 況人而具四端七情 爲萬物中最靈者 豈其無所本而有子孫榮昌門戶盛大之理乎 讀古觀今 子孫賢哲 氏族繁茂 稱以國士大夫之家 必自祖宗積德累仁 固樹基本 如木之根固 水之源深 然後百子千孫 繼繼承承 世愈遠而連綿不絶 輝赫當世 芳流百代 或有愚子頑孫 不脩孝悌之行 毁祖之仁 損祖之德 悖誼傷倫 墳墓不守 祭祀不誠 則根枯源塞 而運衰祚薄 門寒身孤 然則人之根源 在乎祖宗 祖宗墳墓 不可不守護也 祖宗祭祀 不可不誠奉也 故朱夫子居家要訣 祖宗雖遠 祭祀不可不誠云者 寔由是耳 前賢豈欺後生哉 嗚呼 我李自高祖考僕正公 落南居鄕 祖宗墳墓 嶺右京北 間隔千里 守護奉祀之節 行員來往之費 極難方便 弱子孱孫 有志莫遂 今年壬戌 始發門議 老少咸集 脩我宗稧 諸從昆季 並心合力 逐年畜大 廣置義田 分定位土 自始祖隴西公 以至高祖僕正公 十六世墳墓守護 祭祀奉行之節 竭誠盡禮 神鬼安享 子孫保全 我祖宗創樹無窮之志 庶幾報效其萬一 而吾族敦睦之誼 亦隨而愈厚尤篤 則范文正義庄 不足專美於古 而隴西桃李 復有不言成蹊之春矣 惟吾族勉乎哉 惟吾族勉乎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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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冤枉情由段民之親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民以遠在他鄕之致中間再逢偸葬於左右麓而積年訟掘昭在於前狀中矣不意去丙寅年知何許人偸葬於白虎已掘之下故仰訴于 前城主則 題內廣覓塚主如法處斷行下而民數年廣探今始得聞則古阜居名不知朴哥也今春右偸塚之傍又逢一偸葬故探聞則亦古阜居名不知金哥也嗚呼以定山直數十年守護之地幾至北邙纍纍之境則爲人子者豈不泣血寒心乎緣由帖連泣訴爲去乎參商敎是後朴金兩偸埋人卽爲捉囚督掘以雪幽明之寃千萬望良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己巳十一月 日泰仁官[着押][題辭]若此偸葬孰保先塋近日此習去益▣▣爲先杖囚嚴懲次兩漢星火捉來向事差使 初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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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民之親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守護數十年之間龍虎階下偸塚三人自 官庭依法已掘矣不意去正月良中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親山單主龍壓脉五步之地不得已掘漑圍棘然後塚主現發乃已故玆敢仰訴爲去乎洞燭敎是事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泰仁城主 處分庚午二月 日泰仁官[着押][題辭]何必掘漑塚主搜覓向事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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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憫迫情由段民之慈母墳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定山直守護數十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敢爲偸葬於民之慈母山靑龍白虎麓者間或有之然而義理爭訟之下渠輩皆屈於訟理已爲掘去者昭在於前 官時也去己巳年良中白虎麓又逢偸葬幸蒙 城主執法之澤卽刻督掘矣不意再昨夜萬頃居名不知李哥偸葬於已掘處若此不已遠居孤弱之民何以保先壟乎前呈文卷帖連仰籲於 明政之下上項李哥卽爲捉囚督掘以雪幽明之寃以保孤弱之民先壟千萬望良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未五月 日泰仁官[着押][題辭]農務方劇潦水又漲則雖是▣(情)勢旣迫訟理且(背面)直姑俟移秧更擧則斷當捉囚督掘向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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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十月十二日 李福容 李冕容 甲子十月十二日 李福容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27_001 1924년 10월 12일에 족제 이복용이 수신자에게 자신의 사촌이 새로 두옥을 장만하느라 현금 22원을 대용했으나 차차 갚아나가겠다고 한 간찰 1924년 10월 12일에 족제(族弟) 이복용(李福容)이 수신자에게 자신의 사촌이 새로 두옥(斗屋)을 장만하느라 위토로 불린 금액에서 현금 22원을 대용했으나 자신도 도움을 못 주어 막대한 죄를 지었으나 차차 갚아나가겠다는 편지이다. 물항동(勿項洞) 위토(位土) 이전(移轉)에 대한 일에 대하여, 이자를 불리는 것을 위탁(委託)한 일은 홍순(洪淳) 편에 상세히 상달(上達)했으니 살펴달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촌이 여러 해 전에 재산을 다 잃어 떠돌다가 지난해에 몇 간의 두옥(斗屋)을 사서 예전처럼 편안히 지내나, 식리조(殖利條) 현금 22원(圓)을 빌려 쓴 것이 있다. 자신도 가난하여 확실하게 갚지 못하고 있으니 죄가 막대하다고 하며 차차 갚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피봉이 있는데, 발신자가 의용(宜容)으로 원문의 발신자와 다르며, 수신자가 이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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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 七月 十六日 李福容 李冕容 庚申 七月 十六日 李福容 李冕容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7월 16일에 족제 이복용이 물경동 선영 아래의 조포(租包) 식리(殖利)에 대해 묻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0년 7월 16일에 족제 이복용이 물경동 선영 아래의 조포(租包) 식리(殖利)에 대해 묻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족제 자신은 열악한 상태가 여전하다고 하였다. 말씀드릴 것은 지난 6월에 아드님이 문중의 일로 내방하였는데 양주 선영에 비석 세우는 일이 있다. 비석 세우는 일이 그 사이에 완성되었는지 물었다. 이곳 물경동 선영 아래의 조포(租包)의 식리에 관한 일은 해마다 본전을 놔두고 이자를 취한 것이 각 사람들의 이름 아래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다. 그 중간에 잡다한 말들이 간혹 들린다고 해서 연전에 족질 이교인이 여기에 왔을 때 족제에게 허급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어찌 말이 되는가? 이곳은 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하는데 귀하도 그러냐고 묻고, 이 글을 본 후에 바로 회신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발신자는 부천군 소래면 무지동에 사는 이복용이고,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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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酉陰十一月三日 李福容 李敎燮 辛酉陰十一月三日 李福容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27_001 1921년 음력 11월 3일에 족종 이복용이 이교섭에게 안산군 물항동 소재 산소의 교선 왕림, 종제 선용의 작고, 승현의 불운에 대한 탄식, 대조(垈租)의 처리 등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 1921년 음력 11월 3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 사는 족종(族從) 이복용(李福容)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안산군(安山郡) 물항동(勿項洞) 소재 산소에 교선(敎先)이 1차로 왕림하였는데 믿지 않고서 갔다. 자신의 종제인 선용(善容)이 지난 3월 불행하게도 작고(作故)하여 슬픈 감정을 이길 수 없었는데, 지난 10월 다시 승현(繩絃)을 만나 집안의 운이 불행하여 스스로 탄식하니 어쩌겠는가? 산 아래 텃세(垈租)를 2년 거두어들이는 것은 우선 다 보전하고 아경(雅慶)이가 저축하거나 저장하여 두거나 함부로 빌리든 간에 결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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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백낙필(白樂弼)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正月初二日 白樂弼等 金生員宅 庚午正月初二日 白樂弼 金生員宅 전라북도 전주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 정월 초2일에 백낙필 등이 부안에 사는 김생원댁에게 보낸 서간. 1870년(고종 7) 정월 초2일에 완영(完營)의 백낙필(白樂弼) 등이 부안(扶安)에 사는 김생원댁(金生員宅)에게 보낸 서간이다. 완영은 곧 전라감영(全羅監營)으로, 이 서간을 쓴 백낙필은 감영의 아전이었다. 그는 김생원댁에 보낸 서간에서 당시 부안김씨 집안의 현안인 정려(旌閭) 문제가 도계(道啓)에 들어가 있다고 알리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당시 부안김씨 집안은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받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낙필 등은 정려 요청건을 조정에 올려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청(本廳)에 예목전(禮目錢) 30냥을 바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공적인 용도로 사용된다고 강조하면서 답장을 할 때 돈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예목전은 통상 '禮木錢'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뇌물로 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이 문서에 적혀 있는 것처럼 관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서간을 쓴 백낙필은 대원군의 지지기반으로 포섭된 전국 각처의 아전 중에 들어갈 만큼 전라감영에서는 상당히 영향력 있는 아전들 중 한 사람이었다. 백낙준은 또 전라감사가 올릴 도계의 내용을 베껴서 보내 주는 친절도 베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문서는 고종 연간에 정려가 급격히 증대되고 있는 현실의 속내를 잘 보여주는 문서로 추정된다. 백낙준은 또 부안김씨 집안의 자제가 과거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여 방목(榜目)에 성명이 실려 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는데, 그 시험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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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인순(李寅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十二月二十四日 李寅淳 瑞玉 壬戌十二月二十四日 李寅淳 瑞玉 이인순(인), 이금섭(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2월 24일에 이인순과 이금섭이 서옥에게 상필과 상혁의 납세를 도와주려고 송추를 발매하고 빚을 내어 해결해보자고 하는 간찰 1922년 12월 24일 족종인 인순(寅淳)과 문중의 유사(有司)인 금섭(錦燮)이 시치(矢峙 詩川)의 서옥(瑞玉)에게 우리 종파(宗派)의 상필(相馝)과 상혁(相赫)의 납세를 도와주려고 송추(松楸)를 발매(發賣)하고 빚을 내어 해결해보자고 하는 편지이다. 다만 이동(移動)하는 일은 이것으로써 수고를 끼쳤지만 자신을 끝없이 감동시켜 미안했다. 우리 종파(宗派)의 일은 다소간의 힘은 썼지만 상필과 상혁이 근래 납세하는 것이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하니, 납세를 도와주기 위해 송추를 연내에 발매하면 정초(正初)에는 돈이 마련될 것이다. 귀중(貴中)에서도 어떠한 조건으로든 빚을 내어 당겨쓰면 이자는 당연히 준비해서 보낸다는 내용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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