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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원로 신조공 형기 의 장례에 스승을 위한 상복이 여전히 몸에 있어 만사를 짓지 못했는데 지금 비로소 뒤늦게나마 올림 갑자년(1924) 겨울 ○이하 동일하다. 族老信潮公【炯基】之葬也 師服在身 未致挽詞 今始追呈 【甲子冬○下同】 의를 행함은 동중서와 부합되고207) 行義稱董子효성과 근심은 석씨라 불렸네208) 孝謹聞石君온화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진중하여 溫溫席上珍몇 번이나 연사께서 탄식하게 했나 幾發淵師歎어찌해서 짐승에게 짓밟힌 때 如何蹄跡日법도를 많이도 잃어버리나 法器多喪淪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덕을 입었고 從少久飽德게다가 다시 같은 파의 친척임에서랴 矧復同派親다만 한스러운 건 삼십 년 동안 只恨三十載한 글자도 서로 이르지 못한 것 一字不相及곡이 끝나고 사람들 보이지 않는데 哭罷人不見봉래산에 구름 만겹이구나 蓬山雲萬疊 行義稱董子,孝謹聞石君.溫溫席上珍,幾發淵師歎.如何蹄跡日?法器多喪淪.從少久飽德,矧復同派親.只恨三十載,一字不相及.哭罷人不見,蓬山雲萬疊. 의를……부합되고 한나라 동중서(董仲舒)는 "어진 사람은 의리를 바르게 행하고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도를 밝히고 공을 따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의를 행한 인물이다. 효성과……불렸네 석씨 집안은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하는데, 석분은 여러모로 살펴 두루 깊이 삼갔고, 그 네 아들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도 효도하며 조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석경은 태복(太僕)으로 있을 때 한 무제(漢武帝)가 수레 끄는 말이 몇 필이냐고 묻자 채찍으로 세어 보고 난 다음 여섯 필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니, 근신한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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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辛酉 신유년(1921)제가 삼가 들으니 계화재(繼華齋)에 책 읽는 소리가 갑자기 줄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작은 근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풍조가 크게 변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의 자제도 때때로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머리를 깎고 신학에 들어가는 것을 즐비하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들 수 있으니, 어찌 우리 집 아이들이 이처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일체(一體)라는 관점에서 보면, 남의 집 자제도 곧 나의 자제이니 다른 집 자제가 모두 이런 지경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하였다면, 어찌 우리의 자제가 다행히도 면한 것을 기뻐만 할 수 있겠습니까?대개 오늘날의 청년은 훗날 세도(世道)를 책임질 사람들인데 모두가 짐승 같은 상황에 빠져버리고 몇 명 살아있는 옛 학자마저 늙어서 사라진다면 윤리의 학문은 세상에 영원히 끊어지고 부자의 사당도 풀이 한길이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찌 시운에다만 맡기고서 끝내 만회할 방법을 조금이나마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걱정스럽고 또한 개탄스럽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생께서 세상을 근심하는 간절함은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르니 이런 일들을 듣는다면 애달프게 한숨만 쉴 것입니다. 竊聞繼華齋中, 書聲頓減, 此非細憂.目今風潮一變, 守舊家子弟, 往往有不告父兄剃髮入新學者, 見聞所及, 比比焉, 安知吾家子弟之亦不如此也? 且以一體視之, 人之子弟, 即吾之子弟, 人家子弟舉不免入此, 則安可以吾之子弟幸免爲喜也哉? 蓋今日青年, 即後日任世道者, 而皆淪於翔走, 幾箇舊學人老而沒, 則倫理之學, 永絕於世, 而夫子廟庭草深一丈矣.柰之何! 奈之何! 豈可任之時運, 而終無少試挽回之道耶? 可憫亦可慨也.伏想先生憂世之切, 有異餘人, 聞此爲之惻然一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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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答靜齋田丈 甲戌 갑술년(1934)옛날에 한 위공(韓魏公 한기(韓琦))의 아들이 수도 낙양에 정자와 동산을 만들어, 한 위공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곳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위공이 말하기를 "지금 내 나이가 이미 70으로 형해(形骸)조차 도외시하는데, 어찌 정원을 가지겠는가?"라 하고 드디어 그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원은 심대하게 해로운 것은 없는데도 오히려 형해조차 도외시한다는 것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어른의 나이도 70이니 어찌 다시 연연해하는 것이 있어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할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혹 자손 때문에 구애가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자손이 내 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여 남겨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을 남겨주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지금 해야 할 도리는 오직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 확실하게 행동하여 훗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 있을 할 뿐입니다. 오진영의 무리가 올리는 제기를 어찌 차마 선친의 영정 앞에 진설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이 당일에 한 말이 엄하지 못한 것은 이미 흠결의 일이나 오늘에 이르러서 오히려 나재(懶齋)와 신헌(愼軒)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받지 말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진영을 끊는다는 명백한 문장일 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昔韓魏公之子, 欲治亭園於京洛, 以爲魏公逸老地.魏公曰: "吾今年已七十, 則形骸可外, 何有亭園?" 遂禁其事.竊以爲亭園, 無甚大害者, 猶然以形骸可外禁之.今吾丈之年, 亦已七十矣, 豈可復有所顧戀, 而不能行其所當行者哉? 若或以子孫爲拘云, 則子孫於我何加焉? 况以所當行者行而遺之, 遺爲莫大者乎? 在吾丈今日之道, 惟有斬釘截鐵, 可無他日之悔耳.震黨所進祭器, 安忍陳列於先人影幀之前也? 吾丈當日言之不嚴, 已是欠事, 及今猶可致書於懶齋愼軒, 使之勿受, 可也.此正爲絶震之明文耳.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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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金 己卯 당신 조부의 유고는 아마 간행하여 배포한지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인데 저는 아직까지 받아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잘 모르겠으나, 무슨 곡절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연고가 있어서 아직까지 간행의 일을 마치지 못한 것입니까?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받들어 고할 일이 있습니다. 간옹선사(전우)가 선생에게 적통을 전한 직접적 근거는 편찬한 행장과 제문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노인오(노동원)에게 답한 편지와〈눈 내리는 군산에서 김덕경을 추억하다[羣山雪中憶金德卿]〉의 시에서만 보이는데, 그 시는 원고에 들어가 있지 않고 편지는 진주본에서 삭제를 당했습니다. 비록 화도수정본과 용동본 두 책에 실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미 진주본이 성행하고 있으니, 사람 중에 진주본만 본 자는 어떻게 선생에게 적통이 전해진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생각할 때, 간행된 원고에는 반드시〈부록〉·〈행장〉·〈제문〉·〈만사〉 등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을 위해 지은 것으로 쓸 수 있는 모든 것은 마땅히 모두 다 기록해야 하고, 간옹이 노인오에게 답한 편지와〈군산설중억김덕경〉시도 함께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생에게 적통이 전해졌다는 것을 명확히 알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尊王考遺稿, 想刊布已久, 而鄙人則尚未奉讀, 未知何委? 抑有他故, 猶未訖役? 願聞願聞.又有所奉告者, 艮翁先師傳統先生之直據, 不見於所撰《行狀》·《祭文》, 惟見於答盧仁吾書, 及《羣山雪中》詩, 而詩則不入稿, 書又刪於晉本.雖其載於華龍二本, 今既晉本盛行, 則人之但見晉本者, 何以知得傳統於先生乎? 故鄙意以爲刊稿必有《附錄》·《行狀》·《祭文》·《挽詞》.凡爲先生作而可書者, 宜皆備錄, 而艮翁答盧書․《羣山》詩, 幷書之, 使人明知傳統於先生,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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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25) 김 어른【치희】에게 답함 答愛日堂金丈【致熙】 특별하게 찾아와 주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위문 편지를 또 보냈기에 돌보아 주시는 마음을 알았으니,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환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염려스러웠습니다. 철에 따라 몸을 잘 조리하여 오직 빨리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중년 이후로 눈이 어두워 힘을 붙여 글을 읽지 못하고 한가한 가운데 고요히 앉아 몸과 마음을 수렴하니 자못 득력하는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문장(文丈)께서 눈이 어두운 나이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병든 몸을 요양하는 여가에 이 말을 체득하여 묵묵히 깨닫는 것이 있으십니까? 소생은 성현의 책을 읽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지만 부침을 거듭하여 배우지 않은 사람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책망을 받을 일이라는 것을 또한 어찌 모르겠습니까. 처음에 《소학(小學)》에서 말하는 존양(存養)에 힘쓰지 않고 다만 애매모호하고 분잡한 사이에 생각을 두고 모색하여 이렇게 무한한 병통을 초래하여 졸지에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습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학문하는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잃어버린 마음을 구할 따름이다."라고 하였고, 주자가 홍경(洪慶)에게 고하기를 "우선 모름지기 단정하고 장엄하게 존양할 것이요, 정력을 허비하여 종이 위의 말만 뚫어지게 쳐다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26)라고 하였으니, 이 몇 마디 말에서 공부의 선후를 대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학자는 입만 열면 곧 성명(性命)을 말하지만 이러한 의체(義諦 사물의 근본 뜻)에 대해서는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으니, 들은 것을 기억하고 외고 말하거나 안배하고 조작하는 데로 귀결되지 않는 자가 거의 드뭅니다. 소생은 근래 대략 이러한 폐단을 궁구하며 매일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기에 마음을 두고자 하지만 옛 것만 답습한 지 오래되어 깨달아 힘을 얻기가 매우 어려우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직 문장(文丈)께서는 30년 동안 독서하였으니, 필시 고생하며 이미 징험한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소생을 위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寵顧未幾。委存踵至。仰認傾眷。感荷亡量。愆候之報。驚慮萬萬。節宣調護。惟望不遠復。朱子云。中年以後。目昏不能着力讀書。閒中靜坐。收斂身心。頗覺得力。今文丈雖不至目昏時節。養病之暇。體認此語。而有黙會者否。生讀聖賢書。已有年所。而浮浮沈沈。與不學人無毫髮差殊。其受病之端。亦豈不知哉。初無小學存養之力而但有以懸想模索於疑似紛雜之間。致此無限病痛。而至於猝不可收殺之地。悔之何及。孟子曰。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朱子告洪慶曰。且須端莊存養。不須枉費功夫鑽紙上語。於此數語。其用功先後。槩可知矣。世之學者。開口便說性命。而於此等義諦不甚着力其不爲記問誦說安排造作之歸者。幾希。生近來粗究此獘。每日下功。雖欲留心於此。而因循之久。得力甚難。奈何。惟文丈三十年讀書。必有幸苦已驗之方。幸爲小生告之。 애일당(愛日堂) 김치희(金致煕, 1828~?)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장여(章汝), 호는 애일재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낙안(樂安)에 거주하였다. 주자가……것이다 제자 홍경(洪慶)이 돌아가려 할 때, 주희(朱熹)가 "지금 공부를 하려 한다면 우선 모름지기 단정하고 장엄하게 존양하고 밝고 드넓은 근원의 경지를 홀로 관찰할 것이요, 정력을 허비하여 종이 위의 말만 뚫어지게 쳐다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如今要下工夫, 且須端莊存養, 獨觀昭曠之原, 不須枉費工夫鑽紙上語.]"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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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정축년(1925) 答鄭國振 丁丑 편지에 "마귀가 물러나는 날을 조금 얻어서 기필코 심중(心中)의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마귀는 무엇입니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변괴가 밖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마치 귀신이 시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내가 능히 물리칠 수 없는 것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질병(疾病), 화환(禍患), 수화(水火), 도적(盜賊) 이외에 마땅히 이른바 마귀란 것은 없습니다. 형의 지금 분란한 것에 대해 응해야 하므로 응하는 경우는 이는 내 일을 도모하는 조건이니, 진실로 마귀라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응해서는 안 되는데 태만하게 우선 응하는 경우 이것을 마귀라 말한다면 결국 스스로 마귀를 만드는 것이고 진짜 마귀가 아닙니다. 이를 물리치는 방도는 또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물리치는 것뿐이니, 진실로 물리치고자 한다면 손을 한 번 뒤집는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선 행하지 않고 앉아서 마귀가 물러가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그런 날은 없을 것이고, 심중의 일도 영원히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자(禪子)의 게송에 "해를 차갑게 할 수 있고 달을 뜨겁게 할 수 있어도, 뭇 마귀는 감히 진결을 파괴시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 사도(邪道)가 진짜 마귀에 대해서도 오히려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정학(定學)으로 스스로 만든 마귀에 대하여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형은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來狀喻以稍得魔退之日,期圖心中之事.夫魔者, 何也? 非謂不自我致而變自外來,有若鬼神猜之而又非吾之所能退者乎? 然則疾病、禍患、水火、盜賊以外,宜無所謂魔者也.若兄之目下紛擾,其當應而應之者, 旣此是圖吾事之條件也,固不可謂魔.其不當應而謾且應之者,以是謂魔,則究是自魔,非眞魔也.退之之方,亦在我自退之而已,茍欲退之,在一反手之間耳.然且不爲而坐待魔退,則是終無其日,而心中之事,永不可圖矣.禪子之偈曰: "日可冷,月可熱,衆魔不敢壞眞訣." 彼邪道之於眞魔猶然,況以吾正學,其於自魔也何有? 惟兄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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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 임 좨주29) 어른【헌회】에게 올림 上全齋任祭酒丈【憲晦】 의림(義林)은 삼가 아룁니다. 예부터 사문에 이름이 있었던 군자는 모두 사우의 도움을 받아 그 학문을 성취하였습니다. 비록 안자(顔子), 증자(曾子),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현인이라도 반드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뒤에 더욱 그 덕을 드러내었습니다. 더구나 그 아랫사람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를테면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시대 절의와 문장이 있는 선비는 그 재주와 그 인품을 가지고 만약 공자(孔子)를 만나 배웠다면 그 성취한 것이 어찌 한 기예와 한 행적이 드러난 선비 정도에서 그쳤겠습니까. 매번 《한서(漢書)》와 《당서(唐書)》를 읽을 적에 일찍이 이러한 인물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의림의 혼우한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심하고 거처하는 곳은 매우 외지며, 또 이끌어 주는 어진 사우가 없어 갈팡질팡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마땅히 문을 닫고 스스로 수양하여 우선 학업에 조금 진보한 뒤에 세상에 나가서 도가 있는 문하에 나아가 질정해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하여 몇 년 동안 학문하였지만 더 진보하지 않았고, 금곡(錦谷), 삼계(三溪), 화서(華西)와 같은 선생들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외롭게 오늘날 세도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이에 평소의 계획이 허사가 될까 매우 두려워 여러 날 힘들게 가서 문하에 절하였으니, 소생의 평소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치쯤 되는 가는 죽간으로는 큰 종을 울릴 수 없고, 썩은 나무는 봄 햇살을 받아 살 수 없으니, 이른바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소생에게 해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문장(文丈)께서는 특별히 포용해 주시는 은혜를 내리고 가르쳐 주시는 정성을 곡진히 쏟아 오랫동안 중병을 앓는 이에게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게 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마땅히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 평소 수용할 자료로 삼겠습니다. 생은 출발에 앞서 구구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미진한 뜻을 삼가 서신으로 감히 이렇게 번독스럽게 아뢰니, 너무나 송구한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義林伏以自古君子之有名於斯門者。莫不由師友之助而成就其學焉。雖顔曾程朱之賢。必待其師而益彰其德。況其下者乎。如漢唐之世節義文章之士。其才器也。其人品也。若遇孔子而從事。則其所就進。豈止於一藝一行之士而已哉。每讀漢唐書。未嘗不爲此等人物而惜之也。義林才稟昏愚最出人下。所居深僻。又無賢師友之指引。擿埴倀倀者。已二十有餘年矣。初以爲吾當杜門自養。姑俟學業之少進然後。出而就正於有道之門矣。因以有年學不加進。而如錦谷三溪華西諸先生。相繼下世則煢煢爲今日世道之望者。爲幾人乎哉。於是切懼素計之歸虛。累日跋涉。獲拜門下。小生平日之願。可謂遂矣。然寸筳不能發洪鍾之音。朽木不能受陽春之化。所謂下愚不移。未始非此生也。伏願文丈特軫包荒之惠。曲加俯就之敎。使積年膏肓。如得對證單方也。第當書紳服膺。以爲平日受用之資。生將臨行。不勝區區。未盡之意。謹以咫尺之書。敢此煩瀆。不任悚仄之至。 임 좨주(任祭酒)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ㆍ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1874년에 이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헌ㆍ좨주 등에 임명되었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낙론(洛論)의 대가로서 이이(李珥)ㆍ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그의 제자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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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갑술년(1934) 答崔汝重 甲戌 자유(子由)의 죽음은 참혹하여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음란한 이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말이 거꾸로 시행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그대의 말씀과 같습니다. 부음을 듣고 처음에 비통함이 가슴을 메워 자리를 설치하고 바라보며 통곡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내일 장례식에 참석하여 스스로 한번 통곡하려고 오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미 임시 매장하여 혼백을 모셔놓은 자리조차 없었으니 어느 곳에서 슬픔을 폈겠습니까? 그리하여 곧바로 신주를 설치하게 하고 신주가 설치되면 곡을 하려고 했는데, 신주가 설치되는 사이에 참석한 빈객들과 안부를 주고받다보니 슬픔을 잊어서 곡을 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와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있어 다시 조문을 갖추어 묘로 가서 곡을 하려고 합니다. 생각하건대 저 자유는 도(道)를 구하고 학문에 뜻을 둠이 어찌 그리 절실한지 늘 "오늘날의 풍조 속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로다!"라고 했는데 금일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도를 말살하고 저놈들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려고 하는 것인지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묵제(黙齊)거사김군자유지구(柩)"53)라는 10글자를 명정(銘旌)에 써서 그 뜻을 선양하고 나의 마음을 표하고자 하는데도 할 수 없으니 한탄을 그치지 못합니다. 子由不淑, 慘不忍言.福善禍淫, 倒行逆施, 誠如所喩.聞訃之初, 悲慘塡胸, 欲設位望哭.旋思明當會葬, 自當一慟, 今不必爾, 孰謂其業己藁葬? 又無靈筵洩哀之所乎, 卽使之設靈, 靈旣設一哭而歸, 然設具之頃, 不免與衆賓寒暄酬答.哀散而不能成慟, 追思歉然, 更當操文哭其墓爾.念渠求道志學, 何等切實, 常謂當此風潮, 可恃者此人, 今焉至此.天欲抹殺此道而爲時輩報仇也, 痛哉痛哉! 欲以黙齊居士金君子由之柩十字爲書銘旌, 闡其志表我心, 而不可得, 歎恨不能已也. 묵제(黙齊)거사 자유(子由)의 호가 묵제(黙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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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과경【석량】에게 답함 答魏果卿【碩良】 가을 하늘이 바야흐로 높아가니 그대를 그리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네. 뜻밖에 존부장께서 왕림해 주고 겸하여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너무나도 고맙네. 더구나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며 학문도 매우 발전한다고 하니, 멀리서 그리는 마음에 매우 흡족하네. 나는 노쇠함과 병이 서로 도모하여 날로 퇴락하고 있으니, 매번 사우(士友)에게 보낼 편지를 쓸 때면 자랑할 것이 없어서 부끄럽네. 편지 끝에 몇 조목의 의문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서 옛날 배운 것을 다시 익혀 부지런히 멈추지 않고 연구하는 뜻을 볼 수 있으니, 이후로 깨닫지 못함을 어찌 걱정하겠는가. 부지런히 노력하게나.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라는 말은 덕을 숭상하고 덕을 좋아함을 이르니, 그 마음에 보존하고 있는 것이 원래부터 있던 선115)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생각하고서 숭상한 것이 바로 덕이네. 만일 마음에 지닌 바가 아니라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이에 나는 말하노니, "나는 이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뜻을 볼 수 있다."라고 하네. 《중용》에서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116)라는 것을 성인의 도라고 하였으며,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네.117)"라는 것을 지극한 덕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함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네. '머문다[住]'는 말과 '의지한다[倚]'는 같은 뜻이지만, 그러나 불가, 도가가 으뜸으로 삼는 것은 공적(空寂)이기 때문에 '머문다[住]'고 하고, 우리 유가가 주장하는 것은 중용이기 때문에 '의지한다[倚]'고 말하네.118) 정으로 해산물을 보내니, 고맙기 그지없네. 다만 그대 어른에게도 이바지할 음식도 분명히 많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멀리 있는 벗에게까지 보내는가. 마음이 매우 편치 않네. 秋色方高。懐人政勤。謂外尊院府委枉。兼承惠翰。慰感萬萬。矧審重省康寧。學履佳迪。尢叶遠情。義林衰與病謀。日就頽落。每作士友書。愧無以相聞也。紙末数條。可見溫理硏究。舋舋不已之意。率是以徃。何患無得。勉之勉之。懷德如尙德好德之謂。以其所存固有之善。故所思念而慕尙者德也。如非所存。何思念之爲。吾道之吾可見人與天地一體之意。中庸以發育萬物。峻極于天。爲聖人之道。以上天之載。無聲無臭。爲至德不顯之妙。此可見矣。住與倚。自是一義。然佛老所宗者。是空寂故言住。吾儒所主者。是中庸故言倚。海物出於情眖。感戢亡已。但篤老下供具之節。想必浩多。而何以遠及於朋友耶。旋切不安。 군자는……있던 선 《논어》 〈이인(里人)〉에서 공자는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라 하였는데, 주에서 주자는 "덕을 생각하는 것은 원래 있던 선을 보존함을 이른다.〔懷德 謂存其固有之善〕"라 하였다. 만물을……닿았도다 《중용(中庸)》 제27장에서 "위대하다, 성인의 도여. 물이 넘쳐흐르듯 끝없이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大哉 聖人之道 洋洋乎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 하였다. 하늘이……없네 《중용》 제33장에 보인다. 원래 《시경》 〈대아·문왕〉에 보이는 구절인데, 《중용》에서 인용하여 지극한 덕의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용이기……말하네 《중용장구》 제11장에서 "군자는 중용을 따라 세상에 은둔하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가능하다.〔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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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에게 보냄 경진(1940) 與金振玉 庚辰 애시(哀侍)는48) 나에게 여러 해 동안 서신이 끊겼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강호(江湖)에 사는 나를 잊은 지 오래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 상을 만나 멀리서 부음을 전해오자 비로소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학문을 잊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옛날 우암(尤庵 송시열)이 임금께 고하여 말씀하시길 "전하께서 참연(斬然 끊어질듯 한 마음)히 상중에 계셔서 다만 일단의 순선한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금일 애시(哀侍)의 마음 또한 그러한 때입니다. 옛날에 오염되었던 나쁜 것들이 자연히 얼음처럼 녹아사라질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기회로 인하여 독례(讀禮)의 여가에 더욱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공부를 더하여 끝내 성현의 학문을 이루는 것이 평소 선장(先丈)께서 가졌던 소망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효를 행하는 것이 어찌 검은 얼굴과 수척한 몸으로 거상(居喪)을 잘하는 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哀侍於鄙人, 積歲阻信.意謂江湖之忘久矣.今遭大故, 遠致訃音, 始知其不忘也.其不忘我者, 乃所以不忘學也.昔尤庵之告君曰, 殿下斬然在疚, 只有一端純善之心.今日哀侍之心, 亦其時也.舊梁之汙, 自然氷消矣.惟願因此機會, 更加窮格誠正之功於讀禮之暇, 終以成聖賢之學, 是爲奉副先丈平日之望也.而其爲孝也, 豈但面墨身瘠善居喪比也? 애시(哀侍) 어머니 상중(喪中)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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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태주】에게 답함 答任宇卿【泰桂】 편지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답장을 써도 보낼 인편이 없었는데, 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오늘 용희(龍熙)네 집에 오가는 인편이 있는데도 알지 못할 줄을. 뒤늦게 알아 어쩔 수 없으니 다만 탄식만 이네. 또 들으니 내일 쌍봉(雙峰)댁 인편이 있다고 하기에 이 편지를 써서 보내니, 잘 모르겠네만 옆으로 새지 않았는가.1) 잘 모르겠네만, 세모에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경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은 좋은가. 힘에 맞게 학업을 익힐 테니 이미 날로 높은 경지에 나아갔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소식 듣기를 원하는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형편없는 나는 이전처럼 변함없이 비루하고 저열하며 보잘것없네. 편지에서 리(理)와 이(利)의 구분하기 어려움을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이네. 성찰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 것[切問近思]'이어서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네. 이는 어릿하고 아득하여 형체가 없어서 붙잡을 수 없는 이(理)와 기(氣)에 대해 담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보내준 편지에서 '은미한 생각이 발하고 일을 행할 때 어떤 것이 리(理)이고 어떤 것이 이(利)인지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참으로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이네. 또한 남헌(南軒) 장식(張栻)이 이른바 '바라는 것이 있으면서 하는 것은 이(利)요, 바라는 것이 없으면서 하는 것은 의(義)이다.'라고 한 것은 또한 매우 분명하게 말한 것이니, 평소에 이 말로서 성찰한다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공부를 하는 바탕은 계근(戒謹)과 공구(恐懼)에 있다.'고 한 것은 또한 옳네. 주자가 이른바 '존양의 공부가 정밀하면 취사의 구분이 더욱 밝아진다.'2)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네. 그러나 전적으로 존양만을 믿어서 궁구하는 공을 보태지 않는 것은 옳지 않으니 반드시 둘 다 공부를 행하여 마치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양 날개 같이 한 연후에 어긋나지 않게 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질없이 말로만 하는 것은 일에 보탬이 되지 않으니 반드시 몸으로 직접 겪어보아야 그 의미의 실상을 알 수 있네. 더욱 힘쓰시게나. 承書月已。修答無階。誰謂今日龍熙家有來往便而不知耶。晩時無及。只用歎歎。且聞明日有雙峯便。故修此以去。未知不至喬沈耶。未詢歲暮重省餘經況。一衛增重。隨力溫業。想已日就佳境。區區願聞。曷有己已。義林無狀。醜差碌碌。依前而已。所喩理利之難辨。此固衆人通患。省察至此。可謂切問近思。不畔於道矣。其談理說氣。怳惚渺茫。無形響沒把捉之比哉。然來諭所謂念慮之微。事爲之際。精察其何者爲彼。何者爲此。此正是窮理之方。且張南軒所謂有所爲而爲者利也。無所爲而爲者義也者。亦說得分明。日用之間。以此省察。思過半矣。來諭又謂下功之地。在於戒謹恐懼者。亦得。朱子所謂存養之功密。則取捨之分益明者。正此意也。然不可專恃存養。而不加窮索之功。必兩下功夫。如車輪鳥翼然後。可以不差矣。如何。徒言不濟事。必身親經歷。可以知其意味之實。勉勉焉。 옆으로 새지 않았는가 진(晉) 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하였다. 은선의 자는 홍교(洪喬)이다. 존양의……밝아진다 《논어》 〈이인(里仁)〉 제3장의 주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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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경오년(1930) 與季弟汝安 庚午 근래 공방형(孔方兄 엽전)을 대면하지 못한 지 40일 남짓 되었다. 상의(上衣)를 바꾸는 것도 여전히 이렇게 쉽지 않구나. 한번 찾아가려고 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궁색함으로 네가 더 심할 줄 알겠다. 아, 사람의 일생이 눈 깜짝할 사이 같구나. 그 사이 고생스런 삶에 대한 근심으로 이처럼 괴로우니 또한 슬프구나.비록 그렇지만 금옥(金玉)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충신(忠信)을 보배로 여기며, 토지를 바라지 않고 입의(立義)를 토지로 여기고, 재물을 많이 쌓기를 바라지 않고 글이 많은 것을 부자로 여기는 것이 유학자의 일이다.그 힘들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순간이나, 순간이 아닌 것이 그 사이에 늘 있어 이것이 사람 마음을 아주 굳세게 한단다. 만약 이 한 가지 일이 없고, 그저 금옥도 없고 토지도 없는 괴로움만 있다면 평생 순간의 슬픔이 장차 끝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현재 깊이 생각할 점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느냐. 近不與孔方兄對面者, 爲四十日餘.改造上衣, 尙此未易.所以欲一進而未果者, 此爾.以吾之見窘, 知汝之尤甚也.噫, 人之一生, 若瞬息也.其間乃以艱生之憂, 辛苦若此, 亦足悲夫.雖然, 不寶金玉, 而忠信以爲寶;不祈土地, 立義以爲土地;不祈多積, 多文以爲富, 儒者事也.其見艱苦者, 眞瞬息, 而不瞬息者, 長存乎其間, 是爲頗强人意.如無此一著, 而徒有無金玉無土地之苦, 則一生瞬息之悲, 將無有窮期也.此非吾儕目下一副深思處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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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女瓦) 등 기와 수량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각 집안별로 여와(女瓦) 등 기와의 수량을 적어놓은 간단한 낱장 문서 각 집안별로 여와(女瓦) 등 기와의 수량을 적어놓은 간단한 낱장 문서이다. 집안은 성내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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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개와가(蓋瓦價) 명부(名簿)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丁巳閏二月 丁巳閏二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7년 윤2월 13명의 택호와 개와가로 입금된 돈을 기록한 장부 1917년 윤2월 13명의 택호(宅號)와 개와가(蓋瓦價)로 입금된 돈을 기록한 장부이다. 노촌댁(老邨宅) 2냥(兩)부터 강구댁(江旧宅) 2냥(兩)까지 모두 13집의 명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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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소유권 비용지출서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토지소유권 관련 각종 공문서 기록과 관련된 수수료를 기재해놓은 문서 토지소유권 관련 각종 공문서 기록과 관련된 수수료를 기재해놓은 문서이다. 먼저 금액을 적고 그 아래에 토지대장등본과 보존등기 등의 문서에 대한 대서료(代書料)라고 썼다. 끝에는 붉은색 글씨로 합계 등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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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李大容) 등의 명단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이다. 주소와 성명을 기재하고 성명 아래에 날인하였는데, 번지수 첨기와 수정 부분들이 있다. 끝에는 주소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기록이 있다. 수록된 인원수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 274번지의 이대용(李大容)을 비롯하여 모두 16명이다. 별지가 붙어있는데, 여기에도 주소의 번지와 씨명을 참고해서 각 기입처에 일일이 기입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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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종중재산 연서(連署) 관리자 명단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 종중재산을 연서(連署)하는 일을 관리할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놓은 문서 보성 종중재산을 연서(連署)하는 일을 관리할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놓은 문서이다.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의 이교재(李敎在)를 비롯하여 모두 14인이다. 하단에는 이교재 외에 13인으로 하시던지 종중재산으로 하고 이상 14인을 관리자로 하시던지 양단간에 편리한 대로 작성해 보내라고 통지하는 글이 있다. 끝에는 약간의 추기사항이 있다. 상단에 간인(間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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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楸洞) 산소 노정기(路程記)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應鍾 李應鍾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다섯 명의 후손이 함께 영평 추동 산소에 가고 온 여정을 기록하고, 시조부터 20대 농서공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노정기 다섯 명의 후손이 함께 영평(永平) 추동(楸洞) 산소(山所)에 가고 오는 노정을 기록하고, 시조부터 20대 농서공(壠西公)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노정기(路程記)이다. 포천군(抱川郡)의 이응종(李應鍾), 인천(仁川)의 이교홍(李敎洪), 서울 남대문외(南大門外) 길야정(吉野町)의 이교환(李敎煥), 경성(京城) 가회동(嘉會洞)의 이관(李瓘), 수원(水原)의 이인순(李仁淳) 등 5명이 묘지기 2명과 함께 영평(永平) 추동 산소에 갔다 왔다. 이 노정기는 남대문 밖 길야정에 살고 있는 이교환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남대문역­용산역­서빙고역­왕십리역…동두천­전곡­고난리진­백의진­포천군 인봉동(麟鳳洞, 추동(楸洞))의 산소까지의 노정에 있어 보행‧차편‧선박편의 교통수단과 비용을 기록하였다. 추동은 은암공(隱庵公) 8세손(世孫) 이응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산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회기(回記)도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시조부터 20대 농서공까지의 계보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서갈(序碣)〉과 〈허보(許譜)〉를 참고해서 시조 이후 3, 4대가 실전(失傳)되어 20대 농서공이 16대손이 된다고 설명하고, 그 이하는 생략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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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물항동 소재 산소의 사초(莎草) 비용 내역서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丙辰十一月四日 丙辰十一月四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1월 4일에 물항동 소재 산소 삼위(三位)의 사초(莎草)에 소요된 비용 내역서 1916년 11월 4일에 물항동 소재 산소 삼위(三位)의 사초(莎草)에 소요된 비용 내역서이다. 산소는 경기도 안산군 물항동에 소재해 있다. 사초는 묘소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일을 가리킨다. 4일부터 17일까지의 기록이며, 내역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다. 국문과 한문을 혼용하여 썼다. 먼저 사용액수를 쓰고 나서 사용처를 기록하였다. 4일에는 사평시장에서의 식사 한 가지만이 기재되었으며, 이후 점차 사용내역이 증가하였다. 4일부터 8일까지는 거주지에서 물항동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에 따른 비용이며, 그 이후로는 주로 사초와 제전답 등에 관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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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반리 등 소재 토지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낱장 문서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낱장 문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연반리(蓮盤里)와 방송리(芳松里), 당월리(堂月里) 등이며, 각 지번을 적고 그 아래에 지가와 세액을 적어놓았다. 끝에는 지가와 세액의 합계를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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