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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관련 출리기(出利記)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丙申十一月十三日 丙申十一月十三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병신년 11월 13일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된 출리기. 병신년(丙申年) 11월 13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출리기(出利記)이다. 신석제(新石堤)와 성암리(星岩里) 두 곳이 적혀진 간략한 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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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원적(院籍)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정치/행정-조직/운영-선생안 萬曆四十八年庚申二月十九日 萬曆四十八年庚申二月十九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620년에 작성한 원생들의 명부 19세기 전반에 작성한 원생들의 명단이다.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에 있는 도동서원(道東書院)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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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한긍호(韓肯鎬) 사은재기(沙隱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歲庚辰九月下澣 韓肯鎬 歲庚辰九月下澣 1940 韓肯鎬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0년 9월에 한긍호가 최의호의 사은재를 위해 지은 기문. 1940년 9월에 가선대부(嘉善大夫)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한긍호(韓肯鎬)가 최의호(崔義鎬)의 사은재(沙隱齋)를 위해 지은 기문이다. 순천(順天) 남쪽에 앵무산이 있고, 앵무산 아래에는 죽동촌(竹洞村)이 있다. 이곳은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가 낙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시가를 짓고, 예법을 지키며 대를 이어가며 효우(孝友)를 전하였던 명문 완산최씨(完山崔氏)의 고향이다. 그 후손 사은(沙隱) 최의호가 뛰어난 덕행(德行)으로 향리에서 칭송을 받았는데, 나이를 먹었지만 성품이 순수하고 더욱 건장하자 그 아들 최낙영(崔洛永)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몇 칸 집을 새로 지어 사은재라고 편액을 달았다. 그리고는 최낙영이 먼 길을 달려와 한긍호에게 사은재를 위하여 기문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자 이에 화답하여 한긍호가 이 기문을 써서 준 것이다. 한긍호는 초명이 한인호(韓麟鎬)였으며, 고종 말년에 학부협판(學部協辦)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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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隱齋記湖南之順天古昇平府也郡南一舍有鸚鵡山山下有竹洞村卽完山崔氏烟村先生後裔沙浦公以下世居之鄕而詩禮家法孝友相傳蔚爲一鄕望族矣今者沙隱崔翁義鎬箕裘繼業孝友俱篤隣里咸稱其德行翁則至老所〔不〕衰粹而益壯胤君洛永克承親志嘗搆數椽于一處扁其齋曰沙隱齋盖其志非取山林泉石之勝風花雪月之媚乃怡養靜修之所左有智異之逶迤前臨瀛海之渺茫笙鶴之影有時髣髴乎雲端此眞烟火上可道之資也隱居雖非絶世一切處遊語對之事似出世外書史作師係竹石資友朋花爲僮僕鳥當笑談優哉沙翁之樂也崔君千里行駕來請余一辭難孤其誠意玆摭刱築之梗染焉歲庚辰九月下澣嘉善大夫宮內府特進官前成均舘大司成海石韓肯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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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최주홍(崔朱洪) 봉덕재기(奉德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酉冬 朱洪 丁酉冬 崔朱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유년에 최주홍이 봉덕재의 재건을 바라면서 작성한 기문. 정유년에 최주홍(崔朱洪)이 봉덕재(奉德齋)의 재건(再建)을 바라면서 작성한 기문이다. 봉덕재는 최주홍의 10세조인 최선립(崔善立) 때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건립되었다. 이곳은 서쪽으로는 봉악산이 서 있고, 동쪽으로는 영주(瀛州)로 나가고, 앞쪽으로는 전주최씨가의 선조들이 묻힌 석동산(席洞山)이 바라보이는 명당 터이다. 봉덕재는 단지 몸을 닦고 수련하는 곳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쌓은 업적을 계승하고 그 덕업에 누를 끼치지 않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었다. 이런 까닭에 후손들이 그동안 때마다 찾아오고 일년에 한 번 제사를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중간에 변고가 생겨 묘재(墓齋)와 인사(人事)가 겨우 형태만 남아 내실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주홍은, 기문의 끝에서 이제 오늘에 이르러 사나운 풍랑은 사라지고 평안한 시기가 찾아와 다시 대본(大本)을 떨칠 시점에 이르렀으니, 동족들끼리 사사로운 감정을 잊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한다면, 조상에 보답하고 후손을 번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위의 최선립은 전주최씨(全州崔氏)로서 부안에 처음 들어온 옹암공(瓮菴公) 최생명(崔生明)의 현손(玄孫)이다. 최생명의 아들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은 뒤에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되었을 만큼 이름난 학자였으며 부안 전주최씨의 재실인 유절암(留節庵)을 창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또 그의 다섯 아들 가운데 둘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넷이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아들 중 최계성(崔繼成)이 최선립의 조부이며, 아버지는 최활(崔活)이다. 보통의 기문이 새로 지은 서재나 재실을 대상으로 그 재실의 주인되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형식으로 쓰여진 것과는 달리, 이 봉덕재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된 재실을 재건하려는 염원으로 쓰여졌다는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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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사온서동정(司醞暑同正) 최공을인지제단(崔公乙仁之祭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後四乙亥三月二日 顯宇 崇禎後四乙亥三月二日 崔顯宇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5년에 지은 사온서동정 최을인의 제단기 1955년에 지은 최을인(崔乙仁)의 제단기(祭壇記)이다. 제단기란 묘 앞에 있는 제단에 새겨 넣는 글을 말한다. 1815년(순조 15) 후손인 최현우(崔顯宇)가 지은 글을 옮겨 적은 것이다. 최용봉(崔龍鳳)의 아들인 최을인은 사온서동정(司醞暑同正)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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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년 이예(李芮) 연촌선생퇴휴시송별시서(烟村先生退休時送別詩序) 고문서-시문류-서 교육/문화-문학/저술-서 景泰二年辛未仲冬上澣 李芮 景泰二年辛未仲冬上澣 1451 李芮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451년(문종 1)에 향리로 물러나는 연촌 최덕지를 송별하며 이예가 작성한 시서. 1451년(문종 1) 겨울에 향리로 물러나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를 송별하며 이예(李芮, 1419-1480)가 작성한 시서(詩序)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관(史官),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 김제군수(金堤郡守), 남원부사(南原府使) 등을 지냈다. 문종이 즉위한 후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에 기용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 아직 70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임금을 비롯하여 조정의 신료들이 그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으나, 연촌은 전라도 영암에 존양(存養)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소당(小堂)이 있다면서 이제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귀향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그가 귀향할 때 동료들이 시부(詩賦)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그 송별시에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고 이예가 쓴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이예는 본관이 양성(陽城)으로, 1438년(세종 2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군기시(軍器寺) 직장(直長), 종부시(宗簿寺) 직장(直長) 등을 거쳐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가 ?의방유취(醫方類聚)? 등 의서(醫書)와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참여하였다. 성종 때 외직으로 나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이후 이조참판, 대사헌, 개성유수, 공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지내고 형조판서로 있다가 죽었다. 박학(博學) 다문(多聞)으로 명망이 높았다.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이 글은 후대에 누군가가 원문에서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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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扶安郡) 부녕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산약도(山略圖) 2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사회-지리-지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군 부녕면 연곡리에 위치한 석동산의 지도 부안군(扶安郡) 부녕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지도(地圖)이다. 이곳은 전주최씨 부안문중(扶安門中)의 재실(齋室)인 석동재(席洞齋)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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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진사(進土) 최안손(崔顔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丁酉仲春 全義李炳殷撰 丁酉仲春 李炳殷 崔顔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7년 음력 2월에 이병은이 작성한 최안손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957년 음력 2월에 이병은(李炳殷)이 진사공 최안손(崔顔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안손(崔顔孫)의 자는 술성(述聖)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는 한훤(寒暄) 김굉필(金宏弼)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최안손은 어릴 때부터 기질이 강직하고 명민하였으며 고집이 세고 절개가 굳어 남에게 굴종하지 않았다.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에 모두 합격한 뒤에 학문에 매진하면서 당대의 석학인 복재(服齋) 기준(奇遵 1492-1521), 충암(冲菴) 김정(金淨 1486-1520)과 돈독히 교류하였다. 연산군(燕山君) 때 그가 사망하자 사림(士林) 모두 큰 건물의 대들보와 거목이 부러졌다고 탄식하였다. 최씨의 시조는 문성공(文成公) 아(阿)이며, 그의 선조 최심(崔深), 최구지(崔久之), 최석견(崔石堅) 등 3세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진사공의 부인은 예안김씨(禮安李氏)이며,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의 이름은 한두(漢斗)이고, 사위는 남양홍씨(南陽洪氏)와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손자는 최천일(崔千一), 증손으로달효(達孝) 증효(曾孝) 창효(昌孝) 대효(大孝) 민효(民孝) 등 5명이다. 진사공의 묘는 완산의 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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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在丁酉正月 日旁裔斗洪謹撰)進士崔公諱顔孫墓碣銘 並序 ■■■■■■(中郎將五大孫)成均進士全州崔公諱顔孫字述聖出入寒暄金先生門德學著于時其沒殆四百餘禩而尙未圖顯刻於墓而今焉姑樹之後孫銓木等問序于大耋如炳殷者余何爲哉請益■〔固〕按狀叙次而曰公生于睿宗甲子氣質剛明操守狷介早遊塲屋生進俱中晩入師門於致知力行用功特甚日夕乾惕靜存動察志節冬嶺雪松衿懷秋水寒月晩而喜易凡理氣象数盛衰消長無微不顕時稱易學愽士從遊者當時名碩如奇服齋遵金冲菴凈最相厚而會必談經禮別精微渙然消釋乃已服齋常曰某之深造實得無出其右實我師表觀此槪其人矣成宗癸亥卒士林嗟嘆曰大廈樑折喬木風摧崔氏始祖文成公 阿■朝有諱深大司諫諱久之直提學諱石堅叅議三世俱文科而公之曾祖■■也妣淑夫人達城徐氏配禮安金氏甚有婦德男漢斗進士學行薦叅奉不就孫千一叅奉曾孫達孝曾孝昌孝大孝閔孝二婿南陽洪倜順興安大壽公之墓在完之西■〔道〕吐洞壬坐之原雙兆系以銘曰生長世德之家親灸道學之門趨向旣正愽識多聞推以及人啓発群蒙晩好易象理氣精通至若名利太虛浮雲貞珉不朽於千萬年丁酉仲春上澣全義李炳殷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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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홍(崔斗洪) 열부김씨전(烈婦金氏傳)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두홍이 지은 열부김씨전의 초안 최두홍(崔斗洪)이 지은 것이다. 열부김씨(烈婦金氏)는 본관이 경주(慶州)였다.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김천서(金天瑞)의 후손이요, 김사유(金士有)의 딸이었다. 그리고 부안에 거주하던 최전수(崔銓壽)의 부인이었다. 본 열부김씨전은,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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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최두홍(崔斗洪) 열부윤씨전(烈婦尹氏傳)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丁酉重陽日 斗洪 丁酉重陽日 崔斗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유년에 최두홍이 지은 열부윤씨전의 초안 정유년(丁酉年)인 1957년에 최두홍(崔斗洪)이 지은 것이다. 열부윤씨(烈婦金氏)는 본관이 파평(坡平)이었다.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후손이요, 윤필(尹必)의 딸이었다. 그리고 부안에 거주하던 최윤경(崔潤坰)의 부인이었다. 본 열부김씨전은,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보인다. 탈락 부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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巖溪公諱連孫墓碣銘幷序噫我崔氏出自淸河來此東土卜居全州自高麗至本 朝科甲連出簪纓相繼湖南人物誌云完山崔李壯元郎又云叅議崔霮之父子諸人淸顯無比爲州人之所景慕則完山謂之客山者良以此也門閥之源來久矣中始祖侍中諡文成公諱阿生中郎將諱龍鳳中郎將生司醞直長諱乙仁直長生檢校戶曺叅議集賢殿直提學諱霮是生藝文舘直提學號烟村諱德之是生護軍諱淍是生長興庫副使諱岱是公之考妣陽城李氏吏曺叅判季茂之女生公公諱連孫字子胤號巖溪成廟庚子爲生員壯元己酉登文科仕宦至都承旨判决事以淸白著世江陵有去思碑公自少至老孝於親恭於兄怡聲下氣而養之旣和且湛而事之動靜爲一鄕之矜式言行爲四方之歎服而且於經傳之蘊奧河洛之玄■〔微〕旁通而曲暢雖傳道承統之老師先輩庶乎其優與而深獎之矣公有存養之祖山堂之叔則其淵源之力薰灸之效豈云少哉配全州崔氏兵馬節度使湔之女大提學晩六先生瀁之曾孫也生二男一女男長曰潤祖通德郞次曰渰祖文科監察女適佐郞鄭期壽潤祖娶淳昌薛氏忠蘭之女生一男曰琬將仕郞渰祖娶南原梁氏生一男一女男曰秉忠女適金世圭命龍爲旁孫聞公行業習且詳矣今於請銘之日豈可以文之不足辭乎銘曰操何淸白文及菽栗孝斯父母信厥朋友性成薰陶業慕程朱南州夫子東國善士天慳吉地欝彼乳峙慶及雲仍庶期千春旁孫 命龍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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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參奉) 최경성(崔竟成)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宋秉珣謹撰,從九世孫鼎錫謹識 宋秉珣 崔鼎錫 崔竟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해년 음력 8월에 송병순과 후손 최정석이 작성한 참봉 최경성의 묘갈명 병서와 행적의 초안○ 내용 신해년 음력 8월에 송병순(宋秉珣)과 후손 최정석(崔鼎錫)이 참봉 최경성(崔竟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와 행적(行蹟)의 초안(草案)이다. 신해년에 송병순(宋秉珣)과 후손 최정석(崔鼎錫)이 참봉 최경성(崔竟成)의 묘비에 사적(事蹟)이나 덕행(德行)을 후세에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와 행적(行蹟)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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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최방렬(崔邦烈) 십이대조고조비축문(十二代祖考祖妣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邦烈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崔邦烈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방렬이 1970년에 지은 십이대조고조비축문 최방렬이 1970년에 지은 제문이다. 본인의 십이대조고(十二代祖考)와 십이대조비(十二代祖妣)의 것으로, 제삿날인 9월 15일에 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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