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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순에게 답함 병자년(1936) 答田士順 丙子 선장(先丈)이 살아계실 때, 선사의 연보(年譜)를 초안하여 반절쯤 완성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선인(先人)이 봉루사(鳳樓寺)87)에 거주한 이후는 모쪼록 고명(高明)이 기록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고, 이후 현동(玄洞)에서 초본(草本)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조금 수정을 한 후에 보내줄 테니 이어서 완성하는 책임은 수고를 사양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공경히 대답하기를 "비록 적임자가 아니지만 선사와 관계된 일이니 어찌 감히 수고롭다는 이유로 사양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것은 하늘이라 이 몇 개월 사이에 선장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매 불민하여 이전에 조문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만났는데 저간의 사정을 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선장의 정중한 수필(手筆)이 상자에 있고 간곡하게 부탁한 말이 귀에 생생하니, 이 일의 책임을 끝내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만사를 제치고 일을 시작하여 돌아가신 분의 부탁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속히 연보의 초고를 보내 주어 때를 놓치는 한탄이 없게 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先丈在世日,草成先師年譜至半,貽書澤述曰: "先人住鳳樓寺以後,望須高明記之." 後於玄洞以所草本示之曰: "俟稍加修整後付送矣.續成之任,勿辭其勞也." 澤述敬對曰: "顧雖非其人,事係先師,豈敢以勤勞辭?" 天難諶,斯數月之間,先丈遽沒,夫復何言? 自惟不敏,前於吊哭歸路暫面,不遑告由矣.但念先丈鄭重之手筆在笥,丁寧之言囑在耳,此事之任,終有不可已者.竊欲從今掃萬試役,庶副幽明之託望,須亟以譜草送來,俾無失時之歡.如何如何? 봉루사(鳳樓寺) 봉서사(鳳棲寺)의 오기인 듯하다. 봉서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 사이에 있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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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암 김장태희에게 보냄 임오년(1942) 與堅菴金丈泰熙 ○壬午 선사의 원고 중에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179)는 어른의 선조를 위해 지은 것이고 어른의 청에 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박공이 선조 기축년(1589)에 죽고, 김공이 임진왜란을 겪은 것으로 질정해 보면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분명하니 마땅히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렇지만 저 음성의 오진영이 어른께서 스승을 속여 글을 얻었다고 하면서 죄인 취급 하는 것은 그가 험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사의 명철하고 박식함으로도 오히려 미처 살피지 못하시고 지었으니, 어른께서 집안에 전해온 만시(挽詩)를 인하여 글을 청하신 것을 또한 어느 겨를에 논하겠습니까? 어른을 두고 '선사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기필코 말을 한다면 이것은 선사를 두고 '사기를 당한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잔인한 마음으로 스승을 폄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많이 변척할 것도 못 됩니다. 가만히 그 사실과 어긋난 까닭을 생각해보았는데, 근래에 황이재(黃頤齋 황윤석(黃胤錫))의 문집을 보니 박사암과 성명이 같은 자가 있는데, 일찍이 부안현감을 지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재공은 부안 사람이니, 만시를 지은 사람이 부안현감인데 사암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先師稿中, 跋朴思菴挽金止齊詩, 是爲尊先祖作, 而副丈之請者也.然考以朴公卒於宣廟已丑, 金公經壬辰亂者, 而質之, 則爽實明矣, 在所當剛.是則然矣, 而彼陰震之謂丈欺師得文, 而罪之者, 可見其險心擠人.以先師之明博, 尙未及察而作之, 則丈之因家傳挽詩而請文, 又何暇論? 必謂丈爲欺師之詐, 則是謂師爲見欺之暗也.又見其忍心貶師也, 不足多辨.竊思其所以爽實之故, 則近見黃頤齊集, 有與朴思菴, 同姓名者, 嘗宰扶安之語, 止齋公, 是扶安人, 則作挽詩者, 無乃扶宰, 而誤認爲思菴歟?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 《간재집(艮齋集)前篇》 제16권 〈제발(題跋)〉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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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순 일건에게 답함 기축년(1949) 答田士順鎰健 ○乙丑 부친이 양을 훔치지 않았는데 자식 하나가 그것을 증명한다면86) 다른 여러 자식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변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친의 무함을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선사의 무함도 유추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父未嘗攘羊,而有子一人證之,其他諸子可不明辨無是於鄉黨衆中哉? 知親誣之不可不辨,則知師誣之可反隅矣. 부친이……증명한다면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 자식이 증언했다.[其父攘羊, 其子證之]"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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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族弟希淑 甲戌 그대는 답장에서 조정의 명령으로 철폐한 서원을 신설(新設)하는 것과 복설(復設)하는 것은 모두 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 또한 일찍이 김성구(金聖九)의 설을 옳다고 여겼다. 이제 편지에서 "'옛 서원도 오히려 철폐하는데, 하물며 그 신설을 용납할 것인가'라고 한 것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말을 받아 보니 매우 이치에 합당한 말이라 다시 의심할 것이 없다. 惠覆朝令撤院, 新設復, 俱不可爲.鄙亦曾以金聖九說爲是.今承舊者猶撤, 况容其新, 不待多言之喩, 理到之言, 無復可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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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族弟希淑 甲戌 그대가 보낸 편지에서 《주연집(珠淵集)》의 〈퇴송복원소유교문(退送復院䟽)〉와 〈유교문(儒敎文〉을 근거로 서원의 신설과 복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옳다. 고려시대의 여러 현인들도 본조(本朝)의 포상과 금지를 따라야 한다는 것도 옳다. 대저 원우(院宇)의 설치는 비록 현자를 높이고 강학하는 장소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만일 내외(內外)의 분수를 안다면 다만 그 마음이 없을까를 근심하지 그 장소가 없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어찌 괴롭게도 옥사(屋社)하여 임금이 없는 날에 선제(先帝 고종)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설립한다는 말인가. 요컨대 마땅히 본조가 중흥하는 날에 조정에 요청하여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왕자(王者)가 흥기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우리들은 이 점에 있어서 논의가 결정됐다고 이를만하다. 來書據《珠淵集》退送復院䟽儒敎文, 斷以不容新復設院者是矣.麗朝諸賢, 從本朝褒禁者亦是矣.大抵院宇之設, 雖曰尊賢講學之所, 然苟有知內外之分, 只患無其心, 不患無其所.何苦於屋社無君之日, 違先帝之令而擅設乎? 要之當於本朝中興之日, 請而行之.不然則俟有王者作焉已矣.吾輩於是乎可謂論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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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기유년(1909) 上艮齋先生 己酉 저번에 선친(先親)에 관한 글을 써 주시기를 간청하였는데, (선생님께서) 거절하지 않아 주셨으니 감읍(感泣)할 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행장(行狀)의 초본(草本)이 천루(淺陋)한지라 선친의 실덕(實德)을 잘 밝히지 못하였기에 헤아려 선택하실 수 있는 자료가 되지 못하니 이 점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삼가 생각해 보니, 선친께서는 일찍이 빼어난 자질을 타고나서 도(道)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질정(質正)하였을 뿐 과거 공부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선생을 배알하고서 성현(聖賢)의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사고(事故)가 몸을 얽어매어 날마다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곡례(曲禮)의 세세한 절차, 심성(心性)의 담론 등 정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비록 힘을 쏟을 수 없었지만 훌륭한 덕행과 고상한 절조는 족히 퇴폐한 풍속을 바로잡아 후세의 사표가 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큰 것을 들어 말한다면, 성심(誠心)으로 부모를 섬기고, 의로움으로 자식을 가르치며, 옛 성현의 학문을 배울 뿐 오늘날의 신학을 끊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며,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 것 등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옛 사람에 비교해 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듯하다고 삼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식으로서 사적인 감정으로 아부하는 말이 아니니, 신령에게 질정하여도 의혹이 없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선생께서는 이를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다섯 가지를 지을 글의 대지(大旨)로 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묘표(墓表)와 전(傳)이 오래도록 전해지는 것은 동일하지만 단지 문자로만 전해지기보다는 차라리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워 새기는 것이 더욱 낫다고 생각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선생께서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묘표로 써 주신다면 더욱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向懇先人文字, 旣蒙不却, 感泣何言? 但狀草淺陋, 不能發實德而爲裁擇之資, 是爲可愧. 竊伏念先人夙負卓姿而就正, 無所費心於功令之業. 晚拜先生, 立志於聖賢之學, 而事故纒身, 日不暇給, 於曲禮細節談性說心精細去處, 雖不能致力, 然其懿德高節, 有足以厲頹俗而師來世者. 若擧其大者而言之, 則事親以誠, 敎子以義, 學古絶今, 好善惡惡, 尊華攘夷是也. 此五者, 竊以爲擬諸古人, 似無愧也. 此非人子阿私之言, 可質神明而不惑也. 未知先生以爲然乎? 如以爲然, 則以此五者, 爲下筆之大旨, 如何? 表與傳, 傳久則一也, 與其只傳諸文字, 孰若顯刻墓道之爲尤著也? 伏乞先生再思以墓表下筆, 則尤爲千萬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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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보냄 신사년(1941) 與金聖九 辛巳 어느 가을인가 찾아뵙고 문안드린 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일 때문에 문으로 들어갔더니, 작은 집은 쓸쓸하여 청풍만 집에 가득하고 옛날에 대그릇에 밥을 받아먹었던 사람이 지금은 표주박의 물만 받아 마실 뿐이었으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찍이 최현위(崔玄暐)의 어머니 노씨(盧氏)가 신현어(辛玄馭)의 말을 인용하여 자식을 경계한 내용을 읽고 감개한 바가 있었습니다. 노씨가 "자식이 벼슬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면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만약 재화가 풍족하다면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77)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은 어떤 때가 되었으며, 선비는 또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날에 선비를 살펴보면, 좋은 소식을 만들려는 자가 또한 어찌 유독 이것으로 표준을 삼지 않겠습니까. 아, 그대는 지산옹(志山翁)의 뜻과 사업을 계승한 훌륭한 아들로서 어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않다면 또한 어찌 세상에서 김노동(金魯東)이라 일컫겠습니까. 나는 그러므로 축하드릴지언정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여기십니까? 秋間造拜, 十七年後, 初事入門, 則環堵蕭然, 清風滿室, 昔之供簞食者, 今焉瓢飲而已, 則宜若使觀者可悶.然鄙嘗讀崔玄暐母舉辛玄馭語以戒子者, 而有所感槩矣.不曰"兒子從宦者, 有人來云'貧乏不能存', 此好消息.若財貨充足, 此惡消息"乎? 今日何日? 士子又何人也? 觀士於今日, 而爲好消息者, 亦何獨不以此作準乎? 噫, 賢座以志山翁繼述之肖子, 安得不然? 不然, 亦何所稱金魯東於世間哉? 吾故曰可賀, 而不可吊也.未知識者以爲如何? 자식이……소식이다 《구당서(舊唐書)》 권91 〈최현위열전(崔玄暐列傳)〉에 보인다. 최현위(崔玄暐)의 이름은 엽(曄)이고, 박릉(博陵) 사람으로 나중에 벼슬이 재상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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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갑자년(1924) 11월 與靜齋田丈 甲子十一月 생각해보면,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서와 문생이 스승에 대해서 모두 목숨을 바칠 의리가 있습니다.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부친을 존경하는 지극한 정성은 천륜에서 나왔으니 어찌 쇄소응대(灑掃應對)183)하는 제자들과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늙는 것은 사람이고, 머무르게 할 수 없는 것은 시간입니다. 우리 어른의 나이가 거의 60에 가까우니, 선조와 선사를 높이는 중대한 일에 대해 미진한 것을 병들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물러나 천고의 한을 초래하지 않을 것을 여겨집니다.하물며 지금 오진영이 더욱더 방자하게 흉악한 독기를 부려 이쪽 사람들을 배일당(排日黨)이라는 죄목으로 얽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황이 현재 목전에 있습니다. 원컨대 우리 어른께서 우뚝 확고하게 스스로 담당하여 이해와 화복의 밖에 몸을 두고 광명정대한 위로 선친을 높여서 세도가 이에 힘입게 하고 사문이 다행스럽게 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竊念子之於父, 生之於師, 俱有致死之義.而在吾丈, 尊親之至誠, 出於天倫, 豈備列灑掃者比哉? 易老者人, 莫畱者辰.吾丈春秋, 恰滿六旬, 凡關尊先先師大事未盡者, 想不以病健, 有所進退, 以致千古之恨.况今震也, 益肆凶毒, 構此邊人以排日黨, 致死之地, 現在目前.願吾丈挺然自擔, 置身於利害禍福之外, 尊親於光明正大之上, 使世道賴, 而斯文幸焉. 쇄소응대(灑掃應對) 땅바닥에 물을 뿌려 쓸고서 응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유학에서 교육하고 학습하는 기본 내용 중의 하나이다. 송(宋)나라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王公) 이하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들어가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의 절차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글을 배웠다."라고 하였으며, 〈소학제사〉에 "소학의 교육 방법은,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행동이 혹시라도 여기에서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시경을 외고 서경을 읽으며 읊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어서 생각이 혹시라도 여기에서 넘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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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실 신연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黃致實 信淵 ㅇ己卯 상천이 진노하여 이러한 큰 흉년을 내리니 슬프다 우리 어려운 백성들은 어찌 살아갈까. 오호라 하늘이 순수한 성품과 영명(靈明)한 마음을 중생에게 부여했거늘, 지금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어둡게 하고 그 성품을 해쳐서 의리를 없애버리고 윤리강상을 무너뜨리고 끊어버려 온 세상이 도도(滔滔)하게 함닉(陷溺)하게 되었다. 유자의 복장과 의관을 하고 성현의 글을 읽는 자들 또한 혹여 더욱 심하기도 하니 어찌 하늘의 진노를 범하지 않겠으며, 다 그렇지는 않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또한 모두 연좌의 죄과(罪科)에 들지 않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진노를 공경하여 감히 유희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유희도 감히 못하거늘 하물며 의를 멸하고 윤리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자신(自新)할 바를 생각하지 않으랴. 그러나 세속의 인사는 본디 주관할 수 없으니, 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마땅히 급히 돌이켜 구하여 안으로 반성하여 이르기를 "혹여 한 생각 한 가지 일이라도 마음을 어둡게 하고 성품을 해쳐 의를 멸하고 윤리를 무너뜨리는 종자가 되어, 끝내는 유속(流俗)과 분별이 없이 도리어 유자(儒者)이면서 더욱 심한 자로 귀결되지 않는가."해야 한다. 다 그렇지는 않는다는 자들의 반열에 있는 것을 스스로 의시하여 편안하게 무사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현재 두려워하고 반성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진노를 푸는 방도이다. 비록 몇 사람이 조석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바는 아니나, 또한 필부도 천하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고명한 그대는 어떻게 여기는가. 上天載怒, 降此大無, 哀我㷀獨, 何以聊生.嗚呼! 以純粹之性, 靈明之心, 賦與衆生, 乃今之人, 自昧其心, 自害其性, 以至滅棄義理, 斁絶倫常, 擧世滔滔, 載胥及溺.而儒冠服而誦聖賢者, 亦或甚焉, 如何不干犯天怒, 而其不盡然者, 亦皆入於連坐之科乎.詩云敬天之怒, 毋敢戱豫, 戱豫且不敢, 况於滅義斁倫之事, 而不思所以悔罪自新乎, 然而世俗人事固管他不得, 但在吾輩, 亟宜反求內省曰: 或有一念一事, 昧心害性, 爲滅義斁倫種子, 而終無別於流俗, 却同歸於一種儒而甚焉者否.不容自恃參在不盡然之列, 而恬然無事.此爲目下恐懼修省敬天解怒之方也.雖非幾箇人之所能朝夕秦效者, 亦豈不聞匹夫與有天下責之語乎? 高明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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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 기성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鄭國振基聲 ○乙亥 때때로 친구 전사견(田士狷)을 만나 좌하(座下)의 소식을 들었는데, 법도에 지킴이 있고 절조가 더욱 굳세어 맹세코 치흑(薙黑)119)의 욕됨을 받지 않으며 더욱더 위벽(衛闢)120)의 책임을 다하여 우뚝하게 퇴파(頹波)121)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사견은 눈이 높고 입이 곧아서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칭찬할 사람이 아니니, 나는 이 말을 통해서 좌하가 진실로 이런 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사의 영혼이 어찌 "그 바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정씨의 아들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흠모하여 우러를 뿐만 아니라 우리 당(黨)에 믿을 분이 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좌하가 수립한 것이 이미 이와 같으니, 학문(學問)과 사변(思辨)을 통해 정미(精微)의 것까지 철저히 연구하는 공부에 매진하여 말을 세우고 책을 써서 오묘함을 발휘하여 선사가 전한 도를 광대하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그리하실 수 있는지요? 時逢田友士狷,聞座下繩尺有守,節操彌厲,誓不受薙黑之辱,益盡分衛闢之責,卓然爲頹波之柱.狷友眼高口直,非茍譽人者,吾以是知座下之實有是德也.先師之靈,豈不曰"不失其正者鄭氏子"乎? 欽仰之餘,充然喜吾黨之有所恃也.座下樹立旣如此,更願益加意於學問思辨窮研精微之功,立言著書,發揮奧妙,使先師所傳之道,有以弘大之,如何? 치흑(薙黑) 머리 깎고 얼굴에 먹칠하는 것을 말한다. 위벽(衛闢) 정도(正道)를 보호하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 여기서는 사문(斯文)을 호위하고, 이단을 물리치겠다는 것을 말한다. 퇴파(頹波) 퇴파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황하의 중류에 거센 물결을 막고 있는 지주(砥柱)라는 바위산이 있는데, 이 지주와 함께 '퇴파지주(頹波砥柱)'라고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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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석의 독본 《천자문》 뒤에 쓰다 【병인년(1926)】 題宋仁錫讀本千字文後 【丙寅】 성인(聖人)이 글자를 만드실 적에는 육서(六書)197)의 법에 각각 그 의리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조자법(造字法)의 의리에 어두워 점점 그 근본을 잃고 멀어졌고, 그리하여 사물의 이름을 잘못 붙이고 이치가 뒤얽히게 되었다. 천하의 폐단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랴! 나는 다시 왕이 나타나 문자를 고찰하지 않으면 이 폐해를 구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왔다.그런데 이제 글 가르치는 사람이 어린 아이가 공부를 시작할 때에 글자 공부를 착실히 해두어 나이 든 뒤의 큰 착오를 면하게 한다면,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운다면, 아마도 폐단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내 붓 솜씨가 졸렬하지만 여덟 살 아이 송인석(宋仁錫)을 위해서 《규장전운(奎章全韻)》에 의거하여 내 손으로 천자문을 써서 주는데, 나의 깊은 뜻을 담은 것이다. 인석이는 비록 어리지만 오히려 나의 이런 뜻을 몸받고[體化] 장차 뒷날에 유추확대하여 온 세상이 다시 옛 성인의 조자(造字)의 본의(本義)를 회복하는 데 이르기를 바란다. 聖人造字, 六書之法各有其義。 後世昧於法義, 轉相失本, 以致名物註誤, 經理倒錯, 天下之弊孰大於是! 余謂非復有王者考文, 莫能救此。 然敎人者且自小兒入學時, 俾謹字學, 免夫老大誤錯, 是敎是學, 庶可革弊也。 故顧雖筆拙, 爲八歲童宋仁錫, 依奎章全韻而親書千字文授之, 蓋有深意也。 仁錫雖幼, 尙其體余意, 將異日推類, 而盡以及天下復聖人造字本義哉。 육서(六書) 한자의 글자 만드는 법 즉 조자법(造字法)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항목, 즉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말하는데, 앞의 넷은 한자의 구조를, 뒤의 둘은 한자의 융통활용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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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선영의 자사 【갑인년(1914)】 李舜敬【璿榮】字辭 【甲寅】 하늘에 일곱 다스리는 별 있으니 天有七政,해와 달 그리고 오성이네 日月五星,우(虞)나라 순(舜)임금이 維虞舜氏,선기옥형으로 운행을 관측했네. 乃察璣衡.사시와 해를 셈하고 정하여 授時成歲,많고 큰 일들 다 빛나게 이루는 庶績咸熙,그 일을 다 맡아 해낸 것이 其在乎人,그 사람 한 몸이었다 하네. 一身云爲.성실히 삼가고 밝게 살피며 克謹克審,각지고 둥근 규범 잘 지키고, 循厥矩規,사물을 응대하고 처리함에 酬事應物,백 가지가 다 곧고 참되었다네. 百度皆貞.이씨 댁의 빼어난 수재 李氏之秀,여기 이선영 있으니 爰有璿榮,순경(舜敬)이라 자를 보태 曰舜敬甫,그 덕을 표현하네. 是其表德.순임금 큰 지혜는 본디의 것이고 舜固大知,경(敬)은 배운 규범이었네. 敬乃學則,동정과 표리를 가림 없이 動靜表裡,오직 이 경(敬)을 의지하소. 惟敬是依.몸이 규범에 합치하기가 身之合矩,마치 하늘의 별자리 같아 如天于璣,문채롭고 밝으며 깊고 현철하니 文明濬哲,순(舜)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舜何予何.이로써 자의 뜻을 글로 지으니 我用作辭,다팔머리의 이 가상한 선비여 髦士孔嘉,애써 노력할지니 勉哉强哉,이 하나 밖에 다른 것 없네. 一此靡他. 天有七政, 日月五星, 維虞舜氏, 乃察璣衡。 授時成歲, 庶績咸熙, 其在乎人, 一身云爲。 克謹克審, 循厥矩規, 酬事應物, 百度皆貞。 李氏之秀, 爰有璿榮, 曰舜敬甫, 是其表德。 舜固大知, 敬乃學則, 動靜表裡, 惟敬是依。 身之合矩, 如天于璣, 文明濬哲, 舜何予何。 我用作辭, 髦士孔嘉, 勉哉强哉, 一此靡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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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간재 선생께서 오상에 대해 읊은 시에 차운함 2수 ○임인년(1902) 謹次艮齋先生五常詠 【二○壬寅】 의인과 중정은 하늘로부터 내린 것 義仁中正降從天모두 만 가지 형상이나 본래 같다네 一切萬形同本然음양과 오행을 모두 갖고 있으니 載在兩儀兼五氣흠결과 남음 거칠고 현묘한 것도 없네 體無欠剩與粗玄인간은 어찌 태어난 이후 모두 마음대로 하여 人豈生來都擅得사물 쓰인 곳에 온전히 통하지 않게 했나 物於用處未通全다만 전해진 학설만 생각하다 잘못 본다면 只被錯看思傳註괴로이 글과 말로써 연구를 낭비한다네 苦將辭說費窮硏형체를 만들고 성을 부여한 것은 하늘이니 成形賦性是爲天만상도 이 본연의 성은 모두 같다네 萬象均同此本然성인과 범인도 모두 본바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聖凡不外皆由質날짐승 길짐승이 어찌 다시 현묘함이 있었던가 翔走何曾更有玄이(理) 안에 분수와 한계 정해져 있다 말하지 마라 休道理中定分限기(氣)에 따라 치우침과 온전함을 볼 뿐이니 直從氣上見偏全어찌 한 본체에서 달리 쓰이는 곳 있지 않으랴 盍於體一用殊處맹렬히 힘쓰고 정밀하게 밝히며 궁구하고 닦아야 하리 猛著精明究且硏 義仁中正降從天,一切萬形同本然.載在兩儀兼五氣,體無欠剩與粗玄.人豈生來都擅得,物於用處未通全.只被錯看思傳註,苦將辭說費窮硏.成形賦性是爲天,萬象均同此本然.聖凡不外皆由質,翔走何曾更有玄?休道理中定分限,直從氣上見偏全.盍於體一用殊處,猛著精明究且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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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菊 진나라 선비는 아침 이슬 베끼고43) 晉士寫朝露초나라 신하는 저녁 꽃을 먹었네44) 楚臣餐夕英고고한 두 분의 절개는 高高二公節천 년이 지나도록 향기로운 이름 남겼네 千載留香名지위와 덕은 자신의 것이 아니면 位德非其人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 自作蚩蚩氓강직한 천성 이 국화 사랑하니 索性愛此物어찌 옛사람의 마음에 견주리오 豈擬古人情맑고 굳은 자태를 사랑하니 只憐淸勁姿유속과 더불어 다투지 않아서라네 不與流俗爭봄날 성에 온갖 꽃 만발해도 春城百花發초연히 홀로 영화로움 감추네 超然獨藏榮서리와 바람 저녁 내내 불어도 霜風一夕吹가지가지 금주머니 가득하다 枝枝金朶盈고개 돌려 먼저 마른 놈을 보니 回看先萎者품격은 말이 없어도 밝구나 品格不言明네가 비록 정이 없는 사물이나 爾雖無情物청컨대 교류하며 동맹을 맺자구나 託交堪同盟 晉士寫朝露,楚臣餐夕英.高高二公節,千載留香名.位德非其人,自作蚩蚩氓.索性愛此物,豈擬古人情.只憐淸勁姿,不與流俗爭.春城百花發,超然獨藏榮.霜風一夕吹,枝枝金朶盈.回看先萎者,品格不言明.爾雖無情物,託交堪同盟. 진나라……베끼고 진나라 선비란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키며, 그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국화를 노래했음을 가리킨다. 초나라……먹었네 초나라 신하는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진 가을 국화꽃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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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靜齋田丈 丁卯 일전에 왕림하신 것은 진실로 후고(後稿)를 찾으러 온 것인데 받들어 부응하지 못하여 마음이 심히 송구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어른도 크게 마음이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해보지 않으십니까? 오진영이 이미 스승을 무함하고 진주에서 인가를 받아 간행하였으니, 사람들이 진실로 선사께서 진짜 '문집 간행을 요량해서 하라'는 말씀과 말로 하지 않은 인가에 대한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합니다. 어른께서 친아들로써 또 용동에서 간행하기 위하여 인가를 받는 데에 참여해 유서를 무시하신다면 사람들이 장차 유서가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무함을 변론하고 유훈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또 원고를 꺼내어 어른에게 주어 그 일이 성사되도록 돕는다면 이것은 선사 문하의 온전한 하나의 의리가 다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침이 없게 되어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해명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선사는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어른께서 진실로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하여 자못 마음속에 불편함을 없애고 제가 가르침을 어긴 것을 죄주지 마십시오. 日前枉臨, 亶出索去後稿, 而未能奉副, 心甚悚息.想丈亦大不平于中也.然何不試一思之? 震旣誣師而認印于晉, 人固疑先師眞有料量不言之認敎.丈以親子, 又參龍刊之認, 而不有遺書, 人將又疑遺書之非其眞.于斯時也, 澤述以主辨誣守訓之人, 又出稿與丈, 助成其事, 則是先師門下, 一副義理, 無復影響, 而世人之疑, 無路可鮮.到此地頭, 先師爲何如人? 丈誠能試一思之, 自無不平于中, 而不罪澤述之違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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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鄭國振 乙亥 보내주신 편지를 받들어 읽고서 보존하고 있는 것의 독실함이 과연 들은 바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또 부쳐주신 시(詩)를 읽고서 중화를 지키는 의연한 절개와 무함을 분별하는 절연한 의리를 더욱 잘 알게 되었는데, 언어와 편지로 능히 다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지난번에 전사견(田士狷)의 말로 인하여 제가 편지를 보내고 저의 편지로 인하여 성대한 좋은 시를 얻지 못했다면, 거의 노형을 잘 알지 못한 채 문득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다행입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시세(時勢)는 비록 변할지라도 나는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형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능히 말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칠 수 있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122)라고 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도를 밝히는 책을 저술하기를 맹자의 7편과 정자의 《역전(易傳)》처럼 하여 백세가 넘어서도 앙모하는 것이 이미 수립된 것을 능가할 뿐만 아니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저는 크게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奉拜惠覆,有以見所存篤實,果如所聞.又讀所寄諸詩,益悉守華毅然之節、辨誣截然之義,有非言語書翰之所能悉者.如非向因狷友之言而致惡札,因惡札而獲盛詩,則幾乎淺知老兄而奄過幾年也,何幸何幸! 程子有言曰: "時勢雖變,某安敢變?" 兄實有焉.孟子有言曰: "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 兄即其人.願益加博約之工,著成明道之書,如孟子之七篇、程子之《易傳》,俾百世之景仰,不徒樹立之已然者.區區不勝其厚望焉. 능히……무리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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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병진년(1916) 與季弟汝安 丙辰 오늘이 섣달그믐이구나.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이냐. 우리들이 어버이께 갚을 수 있는 만의 하나는 오직 집상(執喪) 하나에 있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 일 년이 되가는구나. 생활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응대하는 것까지 만약 열심히 노력하여 상을 잘 마치지 않고 슬픔을 잊고 예의를 범하는 데 이르면, 참으로 사람종자가 아니고 신명에게 죄를 얻는 것이다. 네가 어린 나이에 상례를 치르며 진실로 항심(恒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은 비록 이를 아끼지만, 그러나 시간이 오래될수록 쉽게 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나아감이 급하면 물러남이 빠르다.49)"는 옛 성현이 경계한 말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를 편지에 언급하여 서로 면려하는 바탕으로 삼으니 마땅히 헤아려 알기 바란다.집안 부녀자의 분분한 말은 듣는 사람도 참으로 믿어서는 안 되고 당하는 사람도 또한 분변할 필요가 없다. 만약 분변하여 밝히려고 하면 저 또한 단서를 야기하여 더욱 난리를 칠 것이다. 특히 장부의 도량이 아니면 바로 가문의 누가 될 것이다. 단지 나의 말을 신실하게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저가 믿음을 보고 감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今日歲除也.何居諸之迅也.吾輩報親之萬一, 惟在於執喪一節, 而轉眄之間, 歲將一周.自起居飮食, 以至一應應接, 若不加勉而克終, 以致忘哀犯禮, 則眞非人類, 而獲誅神明矣.汝之弱齡執制, 固非無恒者.吾心雖愛之, 然日遠易忘, 人之常情;"進銳退速", 往聖攸戒.故聊此書及, 爲胥勖之資, 想宜諒會也.家間婦女之紛言, 聽之者固不可信, 而遭之者, 亦不須辨.苟欲辨而明之, 彼又惹出端緖, 益致紛騰.殊非丈夫之量, 適爲門戶之累也.只要我之發言也信, 行己也正, 俟彼見孚而感化, 可也. 나아감이……빠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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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의 《벽봉유고》 뒤에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遺稿後 돌아가신 아버님 유고의 정서가 끝나 이제 읽을 만하게 되었다. 아버님께서는 뜻이 독실하고 배움을 좋아하셔서 스스로 얻은 바로써 나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실행하기를 힘쓰지 않아서 늙도록 성취한 바가 없으니 큰 불효이다. 그래서 삶을 마쳐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받아 쓴 바를 더럽히지 않고 앞서 지은 죄를 대속하기를 기대하면서, 후손을 넉넉하게 해 줄 자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유고이다. 마땅히 곧장 인쇄해서 길이 보전할 것을 꾀해야 하지만, 지금은 시절 형편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지난날을 생각건대 아버님께서는 시대의 정의에 대단히 엄격하시어 기유역서(己酉曆書)196)가 새로운 예규를 채용한 것을 보고나서는 절대 다시 그것을 펴보지 않으셨다. 지금 이처럼 마음과 정신을 담은 일을 시류(時流)에 구걸하여 진행한다면, 그것은 선사 간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의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히 할 마음이 안 나고, 또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만 몇 권을 베껴 두어, 자손들 더러 각자가 보관하며 하늘에 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하려한다. 몰래 혼자 생각하기를 "그러면 뜻을 기르는 도리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리라" 한다.갑신년(1944) 6월 6일 불초한 아들 김택술의 환갑 아침에 삼가 쓰다. 先君遺稿旣淨書, 可以讀矣。 先君篤志好學, 以得乎己者敎不肖, 而行之不力, 到老無成, 不孝大矣。 然及今畢生受用, 期無忝而贖前罪, 因以作裕後之資者, 惟是稿在耳。 宜卽就印, 用圖壽傳, 第今時律有不得自由者。 念昔先君於時義甚嚴, 見己酉曆書之用新例者, 絶不復觀。 今以心神所寓乞諸時而爲之, 豈非自辱, 如先師艮翁所云乎? 是所不敢, 亦不忍爲, 只欲鈔得數本, 子孫各藏, 以俟天返之日, 竊自謂養志之道, 無間存沒云爾。 甲申六月六日不肖子, 澤述周甲生朝謹書。 기유역서(己酉曆書) 1909년 반포한 《대한융희삼년력》을 말한다. 조선 병탄과 통치 기틀을 마련한 일제 내각이 제정한 것으로 예전의 역법과 크게 달랐는데, 양력 위주로 배치하고 조선 왕조의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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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여직275)의 자사 【신해년(1911)】 舍弟汝直字辭 【辛亥】 하늘이 낳은 뭇 인민에는 天生烝民,선한 이도 악한 이도 있으니 有善有惡,어떻게 구분되나 其分維何,곡(曲)과 직(直)에서 갈린다네. 曰直與曲.공자님 가르치셨네 仲尼有訓,사람이 사는 길은 곧음이라고 人生也直,이로써 후대의 모든 학도들 凡厥後學,바른 표준 삼을 바를 알았네. 知所準的.나의 아우 이름 만술(萬述)은 家弟萬述,돌아가신 아버님이 주시었고, 先君肇錫,이제 너에게 관을 씌워주며 今加爾冠,삼가 여직(汝直)을 자로 준다. 欽以汝直.성인이 일을 대응하는 법은 聖人應事,하나가 아니고 만 가지인데 有萬不一,그 궁극의 귀결을 보면 究厥歸宿,다만 곧음에 있네. 只在乎直.이것은 주자의 요결로서 是爲朱訣,천년을 변치 않으니 千古不易,만 가지 중에 직(直)을 취하라. 於萬取直,이제 그 하려는 말은 玆其可說,너 여직은 '직에로 나아가라'이니 曰汝汝直,어찌 감히 애쓰지 않으랴! 曷敢不勉! 天生烝民, 有善有惡, 其分維何, 曰直與曲。 仲尼有訓, 人生也直, 凡厥後學, 知所準的。 家弟萬述, 先君肇錫, 今加爾冠, 欽以汝直。 聖人應事, 有萬不一, 究厥歸宿, 只在乎直。 是爲朱訣, 千古不易, 於萬取直, 玆其可說。 曰汝汝直, 曷敢不勉! 여직 김택술(金澤述)의 셋째 아우 김만술(金萬述, 1895~1946)의 자이며, 호는 영은(瀛隱)이다. 부친은 김낙진(金洛進, 1859~1909), 조부는 김경순(金景淳, 1825~1867)이다. 부인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생몰년은 1897~1954이며, 그 부친은 김유술(金有述), 조부는 김영근(金永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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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사에 제함 題鳳棲寺 세속 전하는 말에, "봉곡 김공과 진묵15)은 선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루는 진묵의 넋이 서역에 들어갔는데, 봉곡이 그것을 알고 그의 몸을 불사르고 왔다. 진묵의 돌아오는 넋이 봉곡에 대한 원망을 드러낼 바가 없어 계곡을 끊어 마을 앞 시냇물이 땅속으로 흘러들게 했다. 그래서 봉서산은 서쪽으로 겨우 흘러나올 뿐 봉서사 밖은 한줄기 물도 없었다고 하니, 이 말을 믿는다. 봉곡은 학문을 한 군자이나, 이에 다른 사람을 몰래 해를 끼치는 데 이르렀으니 진실로 매우 어그러지고 오만하여 족히 믿을 수 없다. 진묵의 명철함으로도 이미 그의 몸을 보존할 수 없었고 또 육진에 얽매임에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원수를 갚는 데에만 구구했으니, 어찌 능히 그를 이른바 대선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유가는 예로부터 인과 사랑에 힘을 쓰고 儒門自是務仁愛석가는 원래 육신에 중점을 두지 않았네 釋敎元非重肉身만약 봉공이 진묵의 육신을 정말 태웠다면 若使鳳公焚震默사람 죽였을 뿐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라 不徒害物亦愚人세상에선 진묵이 천지와 통한다 전하지만 世傳震默通天地어떻게 칠 척의 몸 하나 간수하지 못했던가 何不能防七尺身시냇물 땅속으로 흐른 것을 다시 논하지 마시오 溪水伏流休更說헛되이 잘못된 사실로 사람들을 의혹하게만 하니 謾將謬訛惑人人 俗傳,鳳谷金公與震默不善.一日,震默魂入西域,鳳谷知之,來燒其身.震默歸魂,無所著怨鳳谷,斷谷,村前溪水,使之伏流.故鳳棲山以西纔出,寺外無一派水云,信斯言也.鳳谷以學問君子,乃至陰害人物,固已悖慢不足信.震默之明,旣不能保其身,又不免六塵之累,而區區於報怨,安得爲渠家,所謂大禪師乎.儒門自是務仁愛,釋敎元非重肉身.若使鳳公焚震默,不徒害物亦愚人.世傳震默通天地,何不能防七尺身?溪水伏流休更說,謾將謬訛惑人人. 봉곡……진묵 봉곡 김공은 전주 유학자 김동준(金東準, 1573~1661)을 말하며, 진묵은 속명 일옥(一玉, 1562~1633)으로 여러 기행과 이적이 있는 인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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