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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와 내장사 등 여러 명승지를 유람하는 서후태·박진호 군 및 관아를 전송하며 送徐君厚泰、朴郞珍浩及觀兒遊白羊、內藏諸勝 백양사 내장사506) 옛 도량에서 멋진 유람하니 羊藏古道勝遊場시인은 풍류의 정취를 잠시도 잊지 못하리라 騷客風情暫不忘쌍계루507) 우뚝 솟아 흉금은 시원해지겠으나 樓屹雙溪應灑落수많은 단풍나무가 시들어 상할까 걱정이네 楓丹萬樹恐凋傷안개 낀 경치가 심신을 평안케 하기에 좋으니 好將煙景怡神觀어찌 맛난 음식이 위장을 즐겁게 함보다 못하랴 豈下肥甘悅胃腸부끄럽게도 난 젊은이들 걸음을 따르기 어려워 愧我難追年少步진종일 서재에서 홀로 글줄이나 찾고 있었네508) 芸牕盡日獨尋行 羊藏古道勝遊場, 騷客風情暫不忘.樓屹雙溪應灑落, 楓丹萬樹恐凋傷.好將煙景怡神觀, 豈下肥甘悅胃腸?愧我難追年少步, 芸牕盡日獨尋行. 백양사(白羊寺) 내장사(內藏寺) 백양사는 631년(백제 무왕32)에 세워진 사찰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北下面) 약수리(藥水里) 백암산(白巖山)에 있으며, 내장사는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로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內藏山)에 있다. 쌍계루(雙溪樓) 백암산 백양사 입구에 있는 누각이다. 1370년에 무너진 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정도전ㆍ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의하면 이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글줄이나 찾고 있었네 원문의 '심항(尋行)'은 심항수묵(尋行數墨)의 준말로, 글줄을 찾고 글자를 센다는 뜻으로 문자만을 따지고 문자 뒤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전등록(傳燈錄)》에 "불법의 원만 구족함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불경 속의 문자에 매달려 헛수고만 하고 있다.[不解佛法圓通, 徒勞尋行數墨.]"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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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족숙이 찾아와 2수 松坡族叔來訪【二首】 궁벽한 집에 칩거하며 홀로 경서를 껴안고 跧伏窮廬獨抱經세상 물정도 모두 몸뚱이와 함께 잊었네 世情幷與忘身形오늘 아침에 친족500)을 만나 정말 기뻤는데 今朝正喜逢花樹오랜 이별에 사물과 별 바뀌어501) 깜짝 놀랐네 久別飜驚換物星국화 늦게 피어도 적막함 부끄러운 적 없는데 菊晩不曾羞寂寞기러기 높이 날며 강녕함을 뽐내는 듯하구나 鴈高有若詑康寧한마음으로 도리어 삼려502)의 소원을 품었으니 一心還有三閭願봉래산 신선을 찾아가려면 만년이 지나야 하리 欲訪蓬仙度萬齡고상한 길손이 찾아와 삭거503)를 깨뜨리니 高客臨門破索居요사이 유쾌한 일 중에 이만한 게 없었다네 邇來快事此無如가을철이 다 가는데 서리는 어찌 그리 늦는가 九秋將盡霜何晩쉰 살이 닥쳐와도 학문은 오히려 처음과 같네 半百當頭學尙初멍청한 계산으로 선조의 가업 이미 포기했으나 迂算已抛先祖業어리석은 맘에도 옛사람의 글만은 소중히 여겼네 癡心但寶古人書실정에 지나친 칭송은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니나 過情推獎非深愛오랜 친척의 정분 또한 털어놓을 만하구나 百世親情也可攄 跧伏窮廬獨抱經, 世情幷與忘身形.今朝正喜逢花樹, 久別飜驚換物星.菊晩不曾羞寂寞, 鴈高有若詑康寧.一心還有三閭願, 欲訪蓬仙度萬齡.高客臨門破索居, 邇來快事此無如.九秋將盡霜何晩? 半百當頭學尙初.迂筭已抛先祖業, 癡心但寶古人書.過情推獎非深愛, 百世親情也可攄. 친족 원문의 '화수(花樹)'는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한 자리에 모여서 골육의 정을 도탑게 하는 일을 말한다. 잠삼(岑參)의 시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에서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려.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나니,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로워라.〔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물과 별 바뀌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뜻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시(滕王閣詩)에 "한가론 구름과 못 그림자만 날로 아득하여라, 사물 바뀌고 별자리 옮겨 몇 해나 지났는고.〔閑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하였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을 말한다. 일찍이 회왕(懷王)을 보좌하여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냈으나 참소를 받아 관직을 떠났으며, 양왕(襄王) 때 다시 참소를 당하여 강남(江南)으로 추방되자 〈어부사(漁父辭)〉 등을 지어 자신의 뜻을 밝히고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저서에 우국충정을 서술한 《이소(離騷)》ㆍ《구가(九歌)》ㆍ《구장(九章)》 등이 있다. 삭거(索居) 이군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다는 뜻이다.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나는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 또한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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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경술년(1910) 上艮齋先生 庚戌 조국이 망했으니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건대, 옛날 단발령(斷髮令)의 재앙이 있었을 때 선친이 선생께 편지를 보내 죽음으로 맹세하고서 태도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선친이 오늘날 살아계신다면 무슨 마음을 지니실까 더욱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풍수지탄(風樹之歎)27)의 고통과 〈하천(下泉)〉28)의 생각이 마음속에 절절히 교차하여 저도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찾아뵐 기약은 아득하여 정해진 것이 없으니 편지를 마주함에 매우 슬픕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조국은 이미 기울어졌고, 그대 선친은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울지 마시게. 내 몸은 노환이 날로 더 심해져서 곧 죽을 것 같네. 아마도 다시는 우리 종현(鐘賢 김택술(金澤述))을 보지 못하고 죽을 듯하네. 죽기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서로 마주할 수가 없으니 몹시 슬프고 한스럽네." 宗國旣亡, 不忍言不忍言. 憶昔薙髪之禍, 先人致書先生以死自誓而不變. 若使先人今日而在者, 又未知見作何懷也? 言念及此, 風樹之痛, 下泉之思, 交切于中, 不覺哽塞而淚迸也. 進謁之期茫無所定, 臨紙悵菀.○ 先生答書曰: "宗國已傾, 先丈又不可見, 如之何? 勿泣. 賤身癃疾, 日以盆深, 行將逝矣. 恐不復見吾鐘賢而死. 死前所欲奉託者在, 而莫可相對, 殊庸悵恨." 풍수지탄(風樹之嘆) 부모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의미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夫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천(下泉)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이다. 내용은 현인이 국가의 쇠망을 걱정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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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답함 정해년(1947) 答金聖九 丁亥 지난 그믐에 전보를 받으니 셋째 아들 형관을 초청하셨는데, 형관은 마침 수종다리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전보로 답장을 드릴 즈음에 이달 초하루에 보내신 편지를 받아 읽고서 9월 22일 모임에 당신의 뜻으로 제 이름을 윤시문(輪示文)에 썼다는 것을 알았는데, 뜻밖의 일이라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에 만났을 때 그대와 나는 모두 단지 제 아들 형관만 말하고 늙은 사람은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 갑자기 제 이름을 드러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물며 큰 병을 앓은 이후로 정신이 희미하고 멍하여 인형처럼 말이 어눌하다가 마침내 반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추한 모습으로 창발하는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받기에 족합니다. 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 일은 진실로 삼강오륜을 부지(扶持)하고 성현을 존중하여 경전을 강론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실효를 거둔다면 국가와 천하의 많은 일들은 모두 그 속에 포함되게 됩니다. 다만 이런 뜻으로 입장문을 작성하고, 몇 해 전에 이른바 유교부식회처럼 '유교(儒敎)'·'유회(儒會)'라 이름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찌 굳이 좌우를 망라하여 '대동(大同)'이라 이름 짓고 먼저 자주독립의 기초라 큰소리를 치며 뚜렷하게 정당으로 자처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아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제 견해는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으나, 고견은 어떻습니까? 去晦承電報, 請觀兒, 觀適以瘇毒見苦.方以此電答之際, 拜讀今初一書, 知有九月卄二之會, 以尊意書賤名於輪示文, 事出料外, 莫省所喩.夏間之晤, 尊與我皆只以觀兒言, 老者無與, 而今忽露賤名, 何也? 矧自大病以後, 精遁而呆, 若偶人語鈍, 而遂成半啞.以此醜狀, 書名倡發之首, 非所以藉重於人, 適足以受侮於人也.抑有所仰告者, 今此之舉, 亶在於扶綱常․尊聖賢․講經傳, 於此三者從事者衆, 而實效之得, 則家國天下許多事業皆在其中.只以此意立文, 名之以儒敎儒會, 若年前所謂扶植會之類, 可也, 何必欲網羅左右, 名以大同, 先自大言自主獨立之基, 而顯然以政黨自居, 受人注目, 而或至取敗乎? 陋見如此, 未知高見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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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崔以求 己卯 그대는 지난날 태용(泰庸) 신경재(申敬齊)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지요? 그때 구암집(苟庵集)11)을 간행하지 않고 깊이 소장한 것은 완순(完順)군이 저들(총독부)의 인가를 요청하여 구옹(苟翁)께 누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완순군은 도를 배운 군자가 아닌데도 오히려 이 의리를 압니다. 하물며 우리 간옹선사는 일생 도를 배워 당대 유학의 종장이었는데, 저들의 인가를 내서 원고를 간행하라는 교시가 있었단 말입니까? 오진영이 인가(認可) 내는 일로 누를 끼치는 것으로도 부족해 또 이러한 설로 무함(誣陷)하니, 오호라! 애통합니다. 君不記向日申敬齋泰庸之言乎? 其不曰苟庵集之不刊行而深藏, 以完順君之不欲請彼認而累苟翁乎? 完順非學道君子, 猶知此義.矧乎吾艮翁先師一生學道, 爲當世儒宗, 而有出認刊稿之敎乎? 吳也認累之不足, 而又以此說誣之, 鳴乎! 痛矣. 구암집(苟庵集) 구암은 신응조(申應朝, 1804~1899)의 호이다. 1852년(철종3)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이조, 예조 판서를 지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재집권하게 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저서로 《구암집(苟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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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유에게 보냄 임오년(1942) 與李士裕 壬午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이문회우(以文會友)하고 이우보인(以友輔仁)18)한다"고 했습니다. 금일의 선비들은 애초에 문(文)으로 모임이 없으니 어찌 보인(輔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끝내 벗과 모이지 못하고 인(仁)을 보충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책 가운데 현인이 있으니 서로 만날 수 있고, 지난 행실에 인이 있으니 도울 수 있으며, 또 나아가 마음과 이치로 만난다면 그 인(仁)이 나의 인(仁)이 될 것이니 보인(輔仁)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와 내가 힘이 들고 길이 막혀서 서로 만날 길이 없지만, 그러나 모두 시서가 갖추어져 있고 서책 가운데 현철(賢哲)이 들어 있으니 이와 같은 만남 없는 만남이 될 것인즉, 누가 금하여 행(行 독서)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우리들은 각각 그 몸을 공경히 하고 힘쓸 따름입니다. 曾子曰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今日士子, 初無文會, 安有輔仁? 然則竟無可會之友可輔之仁乎? 曰否不然.卷中有人, 可以相會, 往行有仁, 可以爲輔, 又進乎此而心與理會, 則仁卽吾仁而無待乎輔矣.貴與我力艱道梗, 無由相會, 然彼此俱有詩書, 書中俱有賢哲, 若此無會之會, 則爲誰之禁而不爲也? 只此吾輩各敬其身而勉之而已.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 《논어》 〈안연(顔淵)〉에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 인을 돕는다.'[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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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 사일 형술에게 보냄 계미년(1943) 與族兄士一 坰述 癸未 어제 환철(煥喆)이 광주 윤씨와 함께 와서 윤씨 부친의 행장을 의뢰하였습니다. 이 행장이란 게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같아 한 터럭이라도 유사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이 됩니다. 초상을 그리기도 어려운 일이라 비록 여러 날 직접 대면해도 오히려 닮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처음부터 얼굴도 모르니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일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마다하니, 윤씨가 말하길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하였습니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 일은 스스로 정해진 분수가 있어서 권세가나 부자가 은혜를 베풀어서 행하는 것과, 의사나 지관(地官)이 성의를 보고 행해주는 것과도 다릅니다. 다시 와서 요구해봤자 끝내 무익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환철이를 불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못 오게 일러, 피차 번거롭고 성가신 처지가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나를 매우 아껴주는 것입니다. 깊이 믿고 믿겠습니다. 昨日煥喆同光州尹氏來, 介尹父狀文.此文若寫眞, 然一髮不似, 便是別人.寫眞之難, 雖累日親臨, 猶恐不肖, 況初不識面乎! 今日之事, 何以異此.以此說與而辭之, 則尹謂"他日再來." 吾又爲言"此事自有定分, 非如權家富人之施恩而爲之, 醫生地師之觀誠而爲之.雖再來究, 無益."云矣.幸招煥喆, 喩以俾其人勿再來, 無至彼此煩擾之地.是爲愛我之深.深恃深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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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의 발문 【무인년(1938)】 門案跋 【戊寅】 삼가 종중에 보관하고 있는 선대의 세보(世譜)와 문안(門案 문중계원 명부)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각 파를 구분하고 성명을 적어 놓았을 뿐 아무개의 아들 ․ 아무개의 손자 ․ 아무개 공의 후예를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부터 왔는지의 유래를 알 수 없으니, 이는 너무 소략한 것이다. 우리 직장공(直長公)파의 문안을 지금 수정하게 되었는데, 여러 어른들이 교정하는 일을 나에게 맡기셔서 이윽고 큰 파 속의 작은 파를 다시 나누고 성명 아래 주석을 달기를 "《정미보(丁未譜)》몇 권 몇 판을 보라" 하였다.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의 손자 아무개 공의 파라는 것이 이미 《정미보》에 써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이 그 내력을 환히 알도록 하는 데는 이 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래서 이 문안에 족보 작성법을 사용하여, 후대 자손으로 하여금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竊觀宗中所藏先世累度門案, 區分各派, 只書姓名, 而不云某之子、某之孫、某公之後, 則無由知其所自來, 是爲太略。 今於吾直長公派門案之修正也, 諸長老任余以校正之役, 乃復分派中之派, 而姓名之下懸注, 以見丁未譜幾卷幾板。 則某子某孫某公派旣在於譜, 而使人昭然知其來歷, 莫尙於此。 亦所以寓譜法於此案, 而俾後有考焉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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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우신재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간독 뒤에 삼가 쓰다 敬題祖考又新齋府君手鈔簡牘後 위 간독 한 책은 할아버지 우신재(又新齋) 부군께서 베끼신 것이다. 붓놀림이 조심스럽고 글씨가 정밀한 것이 마치 할아버지의 평소의 마음 씀 및 일 처리와 똑 같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189)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의 친구인 이동욱(李東旭) 공이 "네 할아버지는 작고 가는 글씨를 아주 잘 쓰셔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었고, 평소에 많은 책자들을 베껴 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집의 장서를 살펴보면 보존된 것이 별로 없고, 오직 이 책만은 할아버지께서 손수 베끼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삼가 이렇게 표지를 붙여 뒷날 자손들이 보배롭게 여기며 규범으로 삼도록 한다. 경진년(1940) 유두일(流頭日, 음력 6월 15일)에 손자 김택술 삼가 쓰다. 右簡牘一冊, 我王考又新齋府君所鈔也。 運筆謹愼, 作字精密, 正如府君平日用心行事。 古人云: 心正則筆正, 其此之謂乎! 嘗聞諸府君親友李公東旭氏云: 汝先王考善細書, 儕流莫及, 平日多手鈔冊子。 然而今考家中書藏, 別無見存, 惟此冊明知出自府君手。 故謹玆標識之, 俾後子孫寶重而柯則焉。 歲在庚辰流頭日, 孫澤述謹書。 마음이……바르다 당나라 서예가 유공권(柳公權)이 "붓 놀림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릅니다.[用筆在心, 心正則筆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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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잠 【을유년(1945)】 財箴 【乙酉】 돈 전(錢)자에는 창 과(戈)자가 둘이니 錢帶雙戈,사람 죽이는 기물이고, 殺人之器,이익의 리(利)자는 칼 도(刀)자 곁세웠으니 利傍立刀,이 역시 같은 종류이네. 亦一同類.재산의 재(財)자는 재앙 재(災)와 음이 같고 財音同災,물품의 화(貨)자는 재앙 화(禍)와 소리 같으며, 貨則禍聲,알곡 곡(穀)자는 사람 먹여 살리지만 穀雖活人,몽둥이 수(殳)자가 형부(形符)로 붙었네. 待殳成形.삼가고 경계하기 잠깐만 놓쳐도 少不謹愼,당장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마네. 立喪其生.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胡世之人,이렇게도 탐심을 낼까! 惟是之貪!불쌍하다 북망산의 분묘들 哀哉北邙,원한 맺힌 귀신들 빽빽한 숲이구나. 寃鬼如林. 錢帶雙戈, 殺人之器, 利傍立刀, 亦一同類。 財音同災, 貨則禍聲, 穀雖活人, 待殳成形。 少不謹愼, 立喪其生, 胡世之人, 惟是之貪! 哀哉北邙, 寃鬼如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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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喜雨 남풍에 홀연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南風吹雨忽霏霏산창에서 멀리 바라보니 기쁜 마음 날아갈 듯 推看山牕喜欲飛황금빛 새 보리는 응당 이미 익었겠고 金色新牟應已熟뾰족한 모습의 어린 벼도 어느덧 통통해졌겠지 針形穉稻忽添肥시골 늙은이 지팡이 짚고 왔다갔다 물소리 들으며 村翁扶杖頻聽水마을 사내는 호미 잡고서 다투어 사립문 나가네 巷豎持鋤競出扉단지 바라건대 이 백성 길이 배부르고 즐겁게 지내며 但願斯民長飽樂큰 거리 안개 낀 달39) 온전히 기심을 잊기를 康衢烟月渾忘機 南風吹雨忽霏霏,推看山牕喜欲飛.金色新牟應已熟,針形穉稻忽添肥.村翁扶杖頻聽水,巷豎持鋤競出扉.但願斯民長飽樂,康衢烟月渾忘機. 큰……달 원문 '강구연월(康衢煙月)'은 태평성대를 말한다. 태평성대를 칭송하는 노래로 〈강구연월가(康衢煙月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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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田夫 좋은 경작지 얻어 밭을 갈아 위아래 고르게 하니 耕得良田上下坪일반 들판의 흥취에 더욱 푸름을 느끼네 一般野興覺彌淸앞 모임에선 푹 익은 술로 좋은 시절 수청하고 酒濃前社酬佳節서쪽 밭두둑에 비가 넉넉하니 태평 성세 즐겁다 雨足西疇樂太平종을 불러 묘를 심게 했더니 힘듦 즐거움 같아지고 呼僕治苗均苦樂소를 풀어 풀 먹였더니 종횡으로 임하네 放牛齕草任縱橫지금처럼 나루터 묻는 나그네 만나지 못했으니 如今未遇問津客천년 전 장저와 걸닉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40) 千載誰知沮溺情 耕得良田上下坪,一般野興覺彌淸.酒濃前社酬佳節,雨足西疇樂太平.呼僕治苗均苦樂,放牛齕草任縱橫.如今未遇問津客,千載誰知沮溺情. 지금처럼……알겠는가 《논어》 〈미자(微子)〉에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을 때 공자(孔子)가 그들 곁을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로 하여금 그들에게 나루터를 물어보게 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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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와 홍주후244) 공을 위한 찬 【기묘년(1939)】 謙窩洪公【疇厚】贊 【己卯】 맑고 강직한 그 성품 淸剛其性,자애롭고 은혜로운 그 자질 慈諒其質,선(善)을 좋아 찾기 목마른 듯하고 好善如渴,악(惡)을 싫어 피하기 전갈 본 듯하네. 惡惡如蠍.죄를 지면서도 노친께 순종하며 負罪順親,굳은 효심으로 정성을 다하였네 孝固盡誠,노년까지 스승께 제축을 올렸으니 減年祝師,충심의 진정 어찌 짐짓 꾸며질까 忠豈矯情.이 모두 진심이 하늘에 닿아서고 是皆眞心之格天,실다운 학문이 뭇사람을 초월해서네. 實學之超倫,나는 그 개략을 서술할 뿐 我述其槩,나머지는 논할 겨를이 없네. 餘不暇論.아아! 嗚呼!하늘의 이치가 깜깜해져 天理之晦,스승과 어버이 존숭 않고, 師親不尊,사람들 마음 비뚤어져 人心之邪,현인과 우맹(愚氓)에 구별이 없네. 賢否莫分.오늘의 학계를 돌아보건대 睠今日之學界,어떡하면 구천에서 공을 모셔올까. 安得起公九原. 淸剛其性, 慈諒其質, 好善如渴, 惡惡如蠍。 負罪順親, 孝固盡誠, 減年祝師, 忠豈矯情。 是皆眞心之格天, 實學之超倫, 我述其槩, 餘不暇論。 嗚呼! 天理之晦, 師親不尊; 人心之邪, 賢否莫分。 睠今日之學界, 安得起公九原。 홍주후 위헌 홍익유(韋軒洪翼裕)의 아버지이다. 김택술이 홍익유(洪翼裕)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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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운을 다시 사용하여 이재언, 김종현에게 답함 이군의 천성은 매우 순수하고, 김군 또한 청명하여 구하여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再疊前韻答李在彦金鍾賢 【李君姿性甚醇, 金君又淸明難得.】 두 사람 자질이 모두 순수하고 청명하니 二君賦質儘醇淸내 늙고 더딤에 그대들 두렵구나6) 而我衰遲畏後生마땅히 장년을 좇아 책을 읽어야 하고 黃卷宜從壯年讀모름지기 늙은 농부와 함께 단전7)을 갈아야 하네 丹田須與老農耕온 세상 누가 동포의 즐거움에 힘을 쓸까 九州誰辦同胞樂만고의 사람들 한 횃불의 밝음을 바라보니 萬古人看一炬明의와 인을 버려두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舍却義仁何所事실정이 없으면 명예도 이룰 수 없음을 알겠으니 可知無實不成名 二君賦質儘醇淸,而我衰遲畏後生.黃卷宜從壯年讀,丹田須與老農耕.九州誰辦同胞樂,萬古人看一炬明.舍却義仁何所事?可知無實不成名. 그대들 두렵구나 원문 '외후생(畏後生)'은 《논어》 자한편(子罕篇)의 "후생(後生)이 두려우니, 후생의 장래가 어찌 지금의 나보다 꼭 못하겠는가? 하지만 40세, 50세가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를 원용한 표현이다. 단전 배꼽에서 한 치쯤 아랫부분을 말한다. 《황정경(黃庭經)》에, "단전 가운데는 정기(精氣)가 아주 미약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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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에서 바로 지음 書室卽事 시 짓는 시름 백등산에서 포위된 것 같아76) 詩愁匝似白登圍방황하며 사립문 나가 걸을 겨를도 없구나 不暇彷徨步出扉얇은 종이로 풀칠한 창엔 바람 뚫고 들어와 薄紙糊牕風氣透남은 기름으로 적신 심지에선 등불이 희미하네 殘油沾炷燭花微억지로 좋은 모임 만드니 도리어 일이 많고 强成勝會還多事거듭 벗들을 만류했더니 돌아갈 줄 모르네 更挽親朋故不歸좋은 날엔 술 얻기 어렵다 말하지 마시오 莫道良辰難得酒모름지기 뭇 아름다움 다하는 건 예로부터 드묾을 아니 須知盡美古來稀 詩愁匝似白登圍,不暇彷徨步出扉.薄紙糊牕風氣透,殘油沾炷燭花微.强成勝會還多事,更挽親朋故不歸.莫道良辰難得酒,須知盡美古來稀. 백등산에서……같아 한 고조(漢高祖)가 흉노(匈奴)를 토벌하러 평성(平城)에 갔다가 백등(白登)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는 수모를 겪은 뒤 진평(陳平)의 계책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던 고사가 있다. 《漢書 高帝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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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게 화답함 和子貞 오전과 삼강 모두 불에 타 재가 되었으니 五典三綱燼作灰세상에는 눈을 뜨게 해줄 어떤 곳도 없네 世間無處眼堪開만약 미세한 양이 설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如能扶得微陽立허자의 넉넉한 공204)이 땅을 진동하며 오리라 許子豊功揭地來 五典三綱燼作灰,世間無處眼堪開.如能扶得微陽立,許子豊功揭地來. 허자의……공 송(宋)나라 말엽의 학자로 허형(許衡)을 가리킨다. 그는 상소(上疏)하여 "북방의 민족이 중하(中夏)를 차지할 경우엔 반드시 한족(漢族)의 법을 실행해야 국운이 장구할 수 있다." 하여 한족의 문물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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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찾아왔기에 子貞來訪 나그네 먼 태산성으로부터 왔는데 客行遙自泰山城미투리는 하루 만에 온 듯해 恰是芒鞋一日程정토에 구름 잠기니 해는 저무려 하고 淨土雲沈天欲暮오교에 눈 녹으니 물은 더 불어나네 梧橋雪盡水添生한 달여 동안 서로 떨어져 마음은 괴롭지만 三旬相別心何苦여기에서 다시 만나니 눈이 갑자기 밝아진다 此地重逢眼忽明남쪽 고을 티끌 빛이 암울하다 말하지 마소서 休說南州塵色暗우리 집은 그래도 글 읽는 소리 아직 들리니 吾家猶聽讀書聲 客行遙自泰山城,恰是芒鞋一日程.淨土雲沈天欲暮,梧橋雪盡水添生.三旬相別心何苦?此地重逢眼忽明.休說南州塵色暗,吾家猶聽讀書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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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 格浦 옛 진보에 석양빛 옅어지는데 古鎭夕暉薄서생은 뒤늦게 이곳을 찾네 書生晩此尋땅의 경계 다하니 하늘의 형세 아득하고 境窮天勢逈협곡이 빙 둘렀더니 바다 입구 깊구나 峽轉海門深씩씩하게 싸워 방어하던 땅이요 﨣﨣干城地빽빽하게 우거진 초목 짙은 곳이네 蒼蒼草樹陰흥하고 폐하는 이치란 무상한 법이라 無常興廢理깊이 탄식하며 남몰래 마음 아파하네 三歎暗傷心 古鎭夕暉薄,書生晩此尋.境窮天勢逈,峽轉海門深.﨣﨣干城地,蒼蒼草樹陰.無常興廢理,三歎暗傷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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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사124) 남은 터 柳川祠遺趾 영전리의 서쪽 끝 유천의 동쪽에 英田西畔柳川東계곡과 유천사가 몸처럼 보이네 溪谷祠儀一體同잡초 우거진 지 근래 몇 해가 지났나 鞠草邇來經幾歲후손 이곳 들리니 한은 끝이 없다네 後承到此恨無窮 英田西畔柳川東,溪谷祠儀一體同.鞠草邇來經幾歲,後承到此恨無窮. 유천사 전라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에 있었던 서원으로, 1711년(숙종3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허진동(許震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이듬해에 김택삼(金宅三)을 추가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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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일 성묘에 流頭日省楸 한 번 포자산에 봉해져 一封匏子岡우리 부친 이곳에 묻히셨네 吾親此焉藏오동과 대가 가을 잎에 놀라니 梧竹驚秋葉홀연 몇 번이나 서리가 내렸을까 倏忽經幾霜무더위에 와서 통곡하다가 炎天來慟哭한 번은 수박 향도 맡았다네 一瓣西瓜香평생의 끝없는 한스러움은 平生罔極恨망망한 우주처럼 길기만 한데 茫茫宇宙長가장 두려운 건 옳지 않은 곳에 기대는 것 最恐託非地한밤중엔 마음은 절로 미어진다네 中宵心自傷묘자리 새로 씀을 어찌 그만둘 수 있을까 改營豈得已온 산에서 두 다리는 바쁘구나 千山雙脚忙다만 바라는 건 명명한 도움을 주셔서 但願垂冥佑만세토록 좋은 자리 차지하게 해 주소서 萬歲卜允臧 一封匏子岡,吾親此焉藏.梧竹驚秋葉,倏忽經幾霜.炎天來慟哭,一瓣西瓜香.平生罔極恨,茫茫宇宙長.最恐託非地,中宵心自傷.改營豈得已,千山雙脚忙.但願垂冥佑,萬歲卜允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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