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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 答趙受卿 戊子 물으신 동사(東史)의 의론은 큰 제목(題目)이다. 평소에 사학(史學)에 어둡고 동사(東事)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니 참으로 막막하여 대답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매번 사우(士友)들을 만날 때마다 번번이 편지에서 말씀하신 '기자(箕子)를 삭출해야 한다.[黜箕]'는 의리를 가지고 강론하고 질문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두가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최근에 한 친구의 말을 들었는데, "기자가 우리나라로 온 곳은 지금의 평양(平壤)이 아니고 바로 요동(遼東)에 있었는데, 이미 박연암(朴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설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말하기를 "요동은 조선의 옛 땅이고, 또 종통왕(宗綂王 기부(箕否))가 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무동왕(武東王 기준(箕準))이 익산(益山)에 와서 거주하였다. 이것은 실제의 일이니, 그렇다면 어찌 우리나라와 관련이 없다 하여 삭제하여 없앨 수가 있겠는가. 또 '출기(黜箕)' 두 글자는 어감이 좋지 않고, '대금(大金)과 대청(大淸)이 송(宋)을 도살하고 명(明)을 멸망시켰다.'는 말도 또한 사납고 성급하니, 모두 수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어떠합니까? 俯詢東史議論,是大題目.素昧史學,而尤甚於東事者,實茫然不省所對.每遇士友,輒以盛喻"黜箕"之義講質,則亦皆莫敢措一語.最後得一友之言,曰: "箕子東來,非今之平壤,乃在遼東,已有朴燕巖說." 然又以爲"遼東是朝鮮故地,且宗綂王否徙都今之平壤,武東王準來居益山,自是實事,則安得謂無關於東國而刪沒乎? 且'黜箕'二字,口氣不好,'大金大清屠宋滅明'之云,亦傷悍快,并加修正恐好"云.未知此言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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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답함 정축년(1937) 答金聖九 丁丑 졸렬하고 재주가 낮아서 이미 사우들이 같은 축으로 끼워주지 않으며, 나이가 많고 행실이 어긋나서 친지들에게도 배척을 당합니다. 집에 거미줄이 쳐지고 편지의 소식도 끊어졌으며,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고 사람을 만나도 더불어 할 말이 없습니다. 옛 사람 중에 정말로 교유를 끊기를 바라는 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침 교유를 끊기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끊기게 되었습니다. 일이 줄어들고 마음이 깨끗해졌다고 느껴지니 또한 절로 방애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진 그대가 깊이 서로 기대한 것은 보통의 교유에 비할 바가 아닌데도 아득히 소식조차 들리지 않은 지가 몇 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찍이 마음속으로 자책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특별히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 생사를 물으시고 이어서 누추한 이곳을 왕림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고마움은 형용하여 말씀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바르고 어질고 학식이 많은 그대에게 유익함을 받을 날이 다시 있게 되었으니, 아마도 행실을 고치고 자질을 변화시켜서 끝내 세상에 버림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에 옛사람이 바랐던 것은 한때 원인이 있어 한 말이고 평소의 중정(中正)한 의론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孱劣而材下, 既爲士友之不齒; 老大而行戾, 又見親知之擯斥.蜘蛛網戶, 魚鴈斷信, 出門無可往, 見人無與語.古人固有願息交而絕遊者, 則今適不求息絕, 而自至息絕, 覺得事省心清, 亦自不妨.但念於仁執之深相期待, 非比平常交遊者, 幷致漠然無聞, 爲積有年所, 則未嘗不自訟于中矣.豈圖特惠崇翰, 問訊死生, 繼有枉臨陋地之敎? 其爲感謝, 不待形喩.直諒多聞之見益, 復有其日, 而庶得以改行變材, 不終見棄於世矣.又何幸如之? 乃知古人之願, 是一時有爲之言, 非平日中正之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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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임장병룡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讓村林丈秉龍 ○乙亥 옛날 어른의 집에서 어른을 모시고 시들어 가는 국화를 두고 시를 지었는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요. 시들었던 국화는 지금 다시 피어 노란 꽃잎이 사랑스러운데 우리들은 시들어 다시 소생할 기약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식물만 못한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국화의 성쇠는 일 년으로 계산하지만, 사림의 성쇠는 천년으로 계산하니, 요컨대 장구함과 짧음의 다름이 있을 뿐입니다. 또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사람이건 식물이건 지금 비록 시들었더라도 후에 반드시 번성하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으로 말하자면 선사의 도덕과 절의가 바로 그 뿌리입니다. 지금 마침내 뿌리를 찍어내고 손상시키는 오 씨와 김 씨가 있는데, 문하의 여러 사람들이 일찍이 그 사람들을 금하지도 않고 뿌리를 보호하지도 않다가 금하고 보호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다시 일종의 사람들은 진(秦)나라 사람 야윈 것을 보듯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아서 모두 손상이 되든 말든 보호를 하든 말든 묻지도 않으니, 동문을 두루 돌아봐도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훗날 우리의 도가 성대해지기를 기필할 수 없을까 염려스러우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疇昔仙庄, 陪賦'枯菊'之詩, 日月幾何? 菊之枯者, 今焉重發, 金朶可愛, 而吾人之枯, 回蘇無期, 可以人而不如物乎? 否, 不然.菊之盛枯, 以一歲計, 士林盛枯, 以千載計, 要之自有久近之異爾, 又何悶焉? 蓋不論人與物, 今雖枯而後必盛者, 以有根本在也.以吾黨言之, 先師之道德節義, 卽其根本也.今乃有斫傷之吳金, 而門下諸人, 曾不禁其人護其根, 其有禁護者, 則又以爲不必爲也.更有一般視同秦瘠, 而幷不問傷與不傷, 護與不護, 環顧同門, 無可與語者.竊恐異日, 吾道之盛, 有不可必矣, 柰如之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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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효비추기 【임신년(1932)】 純孝碑追記 【壬申】 아, 이것은 우리 종족의 선조이신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 만휴당공(晩休堂公 김억일(金億鎰))의 순효비(純孝碑)이니, 비석의 전말이 판서(判書) 서공(徐公 서준보(徐俊輔))의 명(銘)에 실려 있다.삼가 생각건대, 공은 부친의 등창에서 고름을 빨아내고, 겨울에 제비가 이르게 하였으며46), 양친의 상에 시묘살이를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순수한 효가 된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을 간절하게 간하고, 임진왜란 때 떨쳐 일어나 의병을 일으킨 것은 단지 나라가 있는 줄 알고 몸이 있는 줄 몰랐으니, 충성 또한 순수하다고 이를 만하다.순효비를 세울 당시에 충성까지 아울러 정표(旌表)했어야 했는데 미처 시행되지 못하였다가 고종 갑술년에 이르러서 충성과 효성이 뛰어나고 남다르다 하여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하였으니, 대체로 기다림 끝에 시행된 일인지라 이에 남은 유감이 없지만 명 중에 보이지 않은 것은 때가 늦었기 때문이다.지금 비석을 옮겨 건립하면서 앞면에는 증직을 첨가해 새기고, 뒷면에는 그 사실을 추가해 기록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자세한 내용을 취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종10대손 택술이 삼가 기록하였다. 嗚呼, 此我族先祖掌樂院主簿晩休堂公純孝碑也.碑之顚末, 有判書徐公銘在.竊惟公之親疽吮汁, 冬月致鷰, 二喪廬墓, 固爲純孝矣.其切諫冊儲光海, 奮擧龍蛇義旅, 只知有國而不知有身者忠亦可謂純矣 宜得幷旌其忠於當日而未及焉, 至高宗甲戌, 以忠孝卓異, 命贈通政大夫吏曹參議, 蓋有待也.於是無餘憾, 而銘中無見, 以時後也.今於移建, 添刻贈職於前, 追記其實於後, 以備觀者取詳焉.從十世孫澤述謹記. 겨울에 …… 하였으며 여름 철새인 제비가 겨울에 찾아오는 것을 효성에 감응한 일로 여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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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최춘열에게 보냄 계해년(1923) 與崔甥春烈 癸亥 옛말에 이르길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사람이 도를 알지 못하면 사람이지만 사람이 되지 못함을 말한 것입니다. 헌헌한 7척의 한갓 형체만 갖추고 오랜 백년 세월의 일생을 헛되게 보낸다면 어찌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진실심지각고공부(眞實心地刻苦工夫)102)" 이 여덟 자의 비결을 그대를 위해 읊어 주겠습니다. 모름지기 선현(先賢)의 격언을 기억하고 그 마음에 갖추어진 덕과 애(愛)를 인식하고 취하십시오. 또 사서육경(四書六經)103)을 생계로 삼고, 삼대(三代, 하 은 주)의 인물을 귀의처로 삼아서 도(道)를 회자(膾炙)처럼 즐기고 연안(燕安)을 짐독(鴆毒)같이 보면서, 앞에 놓여있는 한 길을 나아가고 나아감에 흐르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점의 찌꺼기도 남기지 말아서 온전히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古語云人不學不知道, 此言人不知道人不爲人.軒軒七尺, 徒爾具形, 鼎鼎百年, 枉過一生, 豈不惕念? 眞實心地刻苦工夫八字訣, 爲汝誦之.須記取前修格言, 認取此心德愛.四子六經作家計, 三代上人爲依歸, 嗜道義作膾炙, 視宴安如酖毒, 進進一路在前, 冉冉光陰可惜.一點莫留査滓, 十分成就好人. 진실심지각고공부(眞實心地刻苦工夫) 주희의 문인인 황간(黃榦)이 제자를 받아들일 때에 "학문은 반드시 진실한 마음 바탕 위에서 각고의 공부를 해야만 가능하다〔必有眞實心地 刻苦工夫 然後可〕"라고 일러 주었다. 《송사(宋史)》 권438 〈하기전(何基傳)〉 사서육경(四書六經) 원문에는 '書'자 대신 '字'로 되어있는데, 오자로 보아 書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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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잠 【무인년(1938)】 愼言箴 【戊寅】 금인(金人)225)의 입은 왜 봉함했나 金口胡緘,백규(白圭)의 시226)는 왜 반복하나, 白圭胡復,말은 중요한 쇠뇌의 방아쇠이니 言爲樞機,길상과 재앙이 여기서 갈리네. 吉凶是卜.옛 시와 잠언을 惟詩與箴,누구라서 독송하지 않았으랴, 疇不誦讀,그러나 얼핏 소홀히 하여 然而忽易,하릴없이 질책과 치욕을 겪네. 無由責辱.상등의 선비는 이치를 통달하여 上士達理,아무 일 없어도 정숙하고, 無事亦肅,중등의 사람은 경계할 줄 알아 中人知戒,책망을 들으면 애써 노력하네. 見責而勖.아침에 뉘우치고 저녁에 반복하는 朝悔暮復,하등의 우맹(愚氓)은 바삐 고생하니, 下愚碌碌,오호, 어린 아이들아 嗚呼小子,너희를 위하여 충고하노라. 爲爾忠告. 金口胡緘, 白圭胡復, 言爲樞機, 吉凶是卜。 惟詩與箴, 疇不誦讀, 然而忽易, 無由責辱。 上士達理, 無事亦肅, 中人知戒, 見責而勖。 朝悔暮復, 下愚碌碌, 嗚呼小子, 爲爾忠告。 금인(金人)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보았는데, 태묘(太廟)의 오른쪽 뜰에 구리로 된 사람[金人]이 서 있는데, 그 입이 세 겹으로 봉함되어 있고, 등에 '옛날의 말을 삼가던 사람'이라 새겨져 있었다 한다. 《說苑.敬愼》 백규(白圭)의 시 《시경.》의 〈억(抑)〉 중에 나오는 "흰 옥돌의 흠은 그래도 갈아 없앨 수 있지, 말 잘못해 생긴 오점은 어찌 해 볼 수가 없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구절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이 이 구절을 매일 세 번 반복해 외우자, 공자가 훌륭하게 여겨 자신의 조카사위를 삼았다 한다.《論語.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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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보냄 기사년(1929) 與族弟希淑 己巳 "천리(天理)와 인심(人心)은 절로 지당함이 있는데, 나는 순응하고 저는 거슬러서 체세(體勢)가 서로 같지가 않다. 이 때문에 우리 쪽 학자들은 깊이 거절하고 힘써 배격하여 저들과 화합하기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저쪽 학자들은 지리한 말과 번다한 설명으로 오직 우리에게 절교(絶交)될까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도 아마 불안한 점이 있는듯하다." 이것은 주자(朱子)가 이심경(李深卿)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 말은 우리 사문(師門)의 시비를 따지는 즈음에도 인용하여 유시할 수 있다. 지난날 희숙(希淑)이 목리(木里)에서 권순명(權純命)을 만나서 이원재(李遠齋)가 두 사람이 서로 통관(通款)하기를 요청했을 때, 권순명이 말하기를 "내가 감히 먼저 요청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뚜렷하게 통관을 '본디 바라던 바.'라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우리들에게 절교 될까를 두려워해서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희숙이 말하기를 "선사(先師)를 섬기는 자로서 저들과 통관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깊이 거절하고 힘써 배격하여 일찍이 저들과 화합하기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이 한 가지일로도 저들과 우리의 순역(順逆)과 당부(當否)를 또한 판정할 수가 있다. 天理人心, 自有至當, 我順彼逆, 體勢不侔.是以爲吾學者, 深拒力排, 未嘗求合於彼, 而爲彼學者, 支辭蔓說, 惟恐見絶於我, 是於其心, 疑亦有所不安矣.此朱子答李深卿書也.此可以引喩於吾門是非之際也.向日希淑之遇權純命於木里, 而李遠齋之請兩相通款也, 彼曰我不敢先請, 顯有固所願之意.是所謂恐見絶於我, 而心有所不安者也.希淑曰事先師者, 不敢通彼者, 是所謂深排力拒, 未嘗求合於彼者也.卽此一事, 彼與我之順逆黨否, 亦可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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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 答趙受卿 戊子 스스로 묘갈(墓碣)을 만드는 것에 대해 형은 단지 이것만 알고 그 잘못을 알지 못하십니다. 완용(完用)의 적퇴석(賊退石)을 사용하여 선사의 묘갈을 만들었다가 공론으로 인하여 세우지 못한 일을 어찌 듣지 못했습니까. 이 때문에 바깥사람들이 간재(艮齋) 문인(門人)을 모조리 성토하는 설이 있게 되었습니다. 연보(年譜)를 장차 개편하려 한다면 영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진실로 좋을 것인데, 하필이면 저에게 부탁하십니까? 自作墓碣,兄但知此,不知其尤者,豈不聞用完用賊退石作師碣,因公論未竪乎? 是以外人有艮門人一并聲討之說矣.年譜如將改編,自嶠南誠好矣,何必推托於弟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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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답함 기묘년(1939) 答崔以求 己卯 지난번 그대가 윤월에 돌아가신 분의 상기일자(祥忌日子)에 대해 물으시기에 윤달에 붙은 달과 날을 쓴다고 답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고 윤달의 다음 달 날짜를 쓰려고 하니, 가히 근거로 삼아 이들을 배척할 수 있는 예서(禮書)를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고찰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쟁변하는 것이 또한 수고롭지 않은가요? 세속은 무지한 데다 더욱 겸하여 이기기를 좋아합니다. 무지한자는 참으로 가엷지만 이기기 좋아하는 자는 증오스럽습니다. 무지한 자는 깨우쳐줄 수 있지만 이기기 좋아하는 자는 깨우쳐줄 수도 없습니다. 1년 전에 호중(湖中)의 어떤 사람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예설을 근거로 장례식장에서 힘써 변론했다가 어떤 사람에게 뺨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 일이 참으로 우습고 이러한 풍토가 참으로 두렵습니다. 호승(好勝)의 폐단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의 일로 보건대 그대는 가히 예를 그르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을만한데도 도리어 믿지 않고, 모 성씨의 하는 바가 이와 같다느니, 모 서원의 중론이 이와 같다느니 주장들 합니다. 아! 모성(某姓) 현조(顯祖)의 선현이 지금 생존해 계시다면 행할 바일까요? 오늘날 서원은 진실로 독서하고 강례(講禮)하는 곳입니까? 이같이 명백하고 쉽게 알 수 있는 예도 오히려 이와 같은 설로 사람들을 압도하려고 하니 그들의 이기기 좋아하는 습성을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하는 대로 방임하고 쟁변하지 않는 것이 아마도 말할 때와 침묵할 때의 올바른 도리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向問以閏月亡者祥忌日子, 答以閏所附之月日.今又以人不見信而欲用閏之此月之日, 索可據而斥之之禮書, 故考出寫送.然與此等人爭辨, 不亦勞乎? 世俗無知, 更兼好勝.無知者可哀, 好勝者可惡.無知者可喩, 好勝者不可喩.年前湖中有人據沙溪禮說, 力辨於葬會中, 被人批頰云.此事可笑, 此風可怕.而好勝之弊, 以至於此.以今事論之, 高明卽可信其爲不誤禮之人, 及不之信而曰某姓氏所行如此, 某書院僉論如此.噫! 某姓顯祖之先賢, 今生存而所行乎? 今之書院, 眞讀書講禮之所乎? 似此明白易知之禮, 猶欲以此等說, 壓倒人, 其好勝之習, 如何抵當得? 任其所爲, 勿與之辨, 恐得爲語嘿之道.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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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보냄 신미년(1931) 與族弟希淑 辛未 옛날에 반계(磻溪) 유공(柳公 유형원)은 매번 해가 질 때마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오늘을 또 헛되이 보냈구나!" 하였다. 그 스스로 안타까워한 것을 살펴보면 바로 지업(志業)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공이 장정을 뽑아서 무예를 강명(講明)한 일과 정치에 관해서 저술한 서적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가 있다. 나 같은 자는 유공의 경륜(經綸)과 도략(韜略)이 있지는 않지만, 매번 세모(歲暮)에 당해서는 문득 '금년을 헛되이 보냈구나.'하는 탄식을 발한다. 무엇 때문인지, 나 스스로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탄식은 해를 기준으로 하고 날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으니, 내 뜻이 크고 절실하지 않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만일 나의 마음을 풀어주는 자가 말하기를 "유공의 탄식은 뜻이 방국(邦國)의 경륜에 있고, 김택술의 탄식은 뜻이 신심(身心)의 학문에 있으니, 그 크고 작음과 느슨함과 절실함은 비록 다르지만, (뜻이) 모두 사사로운 사특함에 있지 않고 공정함에 있는 것은 동일하다."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과 훗날의 식자도 그렇게 여길지는 모르겠다. 우리 아우도 평정(評定)을 덧붙이기를 바라노라. 昔磻溪柳公, 每日暮輒歎曰: 今日又虛度矣.跡其所以自悼, 乃志業之未展也.觀其選丁講武之擧, 著述政治之書, 其心可知已.如余者, 非有柳公之經綸韜略, 而每當歲暮, 輒發今年虛度之歎何哉? 亦不自知其故也, 然其歎也, 以年而不以日, 其志之不大且切則可知已.如有解之者曰: 柳公之歎, 志在邦國經綸, 金某之歎, 志在身心學問, 其大小慢切雖殊, 俱不在乎私邪而在乎公正則一也.未知今與後之識者以爲然否.望吾弟之加以評定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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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기 【병자년(1936)】 復泉記 【丙子】 정읍군(井邑郡) 망제봉(望帝峯) 아래, 송씨(宋氏)의 묘재(墓齋) 뒤에 샘이 있는데, 샘물이 때때로 흘렀다 그쳤다 하였으며, 또한 일정한 때가 없었다. 봄에 흐르기 시작하면 그치는 시기가 여름이 될지 가을이 될지 겨울이 될지 점칠 수 없었고, 여름이나 가을, 겨울에 흘러도 또한 그러하였으며, 그쳤다가 다시 흐르는 시기도 또한 가까울 지 멀 지 이처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묘재 내에 큰 사역(事役)이나 문회(文會)가 있으면 일이 끝날 때를 기한으로 그치지 않고 흘러나와 사용할 물을 공급해 주었으니, 경신년에 묘재를 중수할 때와 병인년에 나와 여러 생도들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가 근래에 경험한 일이었다.샘물이 언제부터 흘러나올 지도 모르고, 그치는 날이 언제일 지도 모르지만, 샘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콸콸 끊임없이 솟아나와 샘을 가득 채우고 흘러내렸으며, 그 기운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웠으며, 그 맛이 달고 그 무게가 무거웠다. 샘물이 그치려고 할 때에는 그 물이 깨끗하지 않았으며, 겨울에는 따뜻하지 않고 여름에는 차갑지 않았으며, 그 맛이 나쁘고 그 무게가 가벼웠다. 이러한 현상이 모두 기이하게 여길 만하였지만, 일이 있으면 오래도록 멈추지 않는 것이 더욱 신령스러움이 있는 듯하였다.대체로 샘이 흘러나오는 것을 허여하고 그치는 것을 허여하지 않는 까닭에 '복천(復泉)'이라 명명하였으니, 아, 땅에서는 샘물이 회복되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하늘은 어찌하여 오래도록 운이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예를 회복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내가 이 샘물을 스승으로 삼아 스스로 힘쓰고자 한다. 井邑郡 望帝峯下, 宋氏墓齋後有泉焉, 水之進退有時, 而亦無定期, 春而進, 則其退之在夏, 秋與冬未可卜, 以夏秋與冬而進, 亦然, 旣退而復進之期, 其久近又復如是.自昔齋中有大事役、大文會, 則限終事不退, 給其資用.庚申歲重修墓齋日、丙寅歲余與諸生留此日, 近事之驗也.其進也, 不知自何, 其退也, 亦不知歸何.旣進則混混不窮, 盈科而流.其氣冬溫而夏冷, 其味甘, 其秤重, 將退也, 則其水不淨, 冬不溫而夏不冷, 其味惡, 其秤輕, 皆可異也.而有事則久不退者, 尤若有靈也.蓋與其進而不與其退.故名之以復泉.噫, 地吾旣見復泉矣, 天胡久不見復運也? 在人之復禮, 則吾欲師是泉而自勖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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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종조부께 올림 병인년(1926) 上再從祖 丙寅 삼가 듣건대, 융희 황제(隆熙皇帝)1)께서 14일 창덕궁에서 승하하시니 모든 천하 신민들의 망극지통(罔極之痛)이 평상시 국상에 비해 몇 곱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얼핏 듣기로 삼종제 혼례를 내일 그대로 치른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상중을 틈탄 혼사는 나라에 정법(正法)이 있거늘 하물며 막중한 국상에 성복(成服 처음 상복을 입는 것)도 하기 전이지 않습니까. 이는 선왕(先王), 선성(先聖), 선조(先祖)에 죄를 얻고, 또 온 나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어 이 세상에 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 소소한 눈앞의 불편으로 만고의 대방(大防 예의)을 범하겠습니까. 천천히 졸곡(卒哭)이 끝나고 나서 행하심이 매우 합당할 것입니다. 나라의 백성 된 의리상 비록 상민이나 천민이라도 오히려 예법을 범하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우리 집안은 수 백 년 동안 전해온 사대부 집안이 아닙니까. 부디 잘 살피시어 속히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伏聞隆熙皇帝以十四日, 昇遐于昌德宮, 凡在普率, 痛隕罔極, 倍蓰平時國恤也.俄聞三從弟婚禮, 欲以明日仍行云, 果然否? 若然則乘喪嫁娶, 國有正法, 況莫重大喪成服前乎! 此爲得罪於先王先聖先祖, 又見唾罵於擧國人士, 難以立於人世矣.豈可以小小目下不便, 犯萬古之大防乎? 徐俟卒哭後行之, 十分丕宜.國民之義, 雖在常賤, 猶不當冒禮犯法, 況吾家數百年士大夫古族乎! 伏乞澄鑑而亟罷焉. 융희 황제(隆熙皇帝)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이다. 1926년 음 3월 14일(양 4월 25일) 오전 6시 15분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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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의 여러 종친에게 보냄 신미년(1931) 與壽洞僉宗座 辛未 만휴당(晩休堂) 공은 순일한 효와 곧은 충절, 명철한 식견과 바른 도리를 가진 분으로 귀 파의 현달한 조상일 뿐 아니라 진실로 우리 김씨 문중의 이름난 명현입니다. 그런데도 그 실기(實紀)가 아직 간행 배포되지 않았으니 어찌 유감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본손(本孫)의 근심과 회한은 표현할 길이 없겠으나, 그 방손(傍孫)에게도 또한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라건대, 재실 수리비용을 나누어 간행비로 삼아 오래도록 전해질 방도를 속히 모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설사 재실 일은 완전하게 다 못하더라도 이 일의 성취에 견주면 그 경중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뜻밖의 변고로 끝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우선 만수(萬壽) 문중에서 간역을 주도한다면 귀문중의 모든 파와 대종(大宗)의 각 종파가 어찌 도와서 이룰 길이 없겠습니까? 晩休堂公, 純孝貞忠, 哲識直道, 不惟貴派之顯祖, 寔爲吾金之名賢.而其實紀尙未刊布, 豈非欠事? 本孫之憂恨, 想無容喩, 而其在旁裔, 亦切悶悶.惟願就修齋用中, 分作刊費, 亟圖壽傳如何? 設未盡善於齋役, 視此事之成, 其輕重何如? 如其不然, 不虞之變, 終至遺泯可慮.先自萬壽門中倡設刊役, 則貴全派與大宗各派, 豈無贊成之道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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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협천에게 답함 경신년(1920) 答李協天 庚申 편지를 받아보니 "봄, 여름을 허송하여 독서를 기필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구나. 어찌 분비(憤悱)하고 망식(妄息)하는 정성이 몇 개월간에 안개처럼 사라지고 재처럼 식어버려서 '빨리 나아가면 물러남도 빠르다.'라는 나의 예견을 신명처럼 징험하게 하느냐. 이점에 있어서 나도 사람을 알아보면 철인이라는 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내가 사람을 알아보는 철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대가 불인(不仁)하게 된다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금강산을 여행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큰 망상이다. 해상의 금강이 비록 아름다우나 서책 가운데의 금강이 더욱 아름다움만 같지 못하다. 해상의 기이한 경관은 눈을 즐겁게 하는데 그치지만, 서책 가운데 오묘한 이치를 완색하는 것은 곧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마음과 눈의 경중이 어디에 있겠느냐? 내 마음의 소중함을 안다면 반드시 서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로 그치지 못할 것이다. 부디 급히 수레를 돌려 온고지신(溫故知新)하며 예전처럼 생활하여라. 처음처럼 마지막을 잘 마친다면 시장에서 매를 맞는 부끄러움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면 그대 가문에 뛰어난 오룡(五龍 다섯 형제)이 끝내 한 사람도 식자(識者)가 되지 못할 것이니 거듭 안타깝구나. 辱書有虛送春夏讀書未必等語.何其憤悱妄食之誠, 烟消灰冷於數月之間, 而使淺見進銳退速之憂, 見驗如神耶.於是乎拙者與有知人之哲矣.然終輸知哲於拙者, 則賢者之不仁, 豈不可惜? 金剛之行, 大是妄想.海上金剛雖好, 不如書中金剛之尤好.海上奇觀, 不過爲悅目而止, 書中妙玩, 乃所以悅吾心也.心之與目, 輕重奚在? 知吾心之所以爲重,則書之必讀, 自有不容已矣.幸汲汲回輈, 溫古食舊克終如始.得免市撻之恥如何? 不然君家矯矯五龍, 恐竟無一識字者矣, 重可惜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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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숙 낙조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族叔 洛潮 乙丑 학문에 대해서 논한 말씀은 모두 이치에 맞습니다. 예컨대 "작은 일을 삼가지 않는다면 덕을 넓힐 수 없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쉴 때에도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마땅히 실천해야 할 서적으로는 소학만한 게 없다"라고 하셨는데 금일 청년의 무리 가운데 어디에서 이런 말을 얻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이 어려운 것이 예로부터 환난이었습니다. 만일 일일이 실천하여 말과 행동이 서로를 돌아보게 되면38) 오랜 후에 홀연히 자신도 모르게 고명 광대한 경지에 들어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한때의 이치에 맞는 논설로 도리어 허튼 변론만 조장하여 실사(實事)에 이익이 없다면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이점에 뜻을 더하십시오. 所論爲學, 皆中理.如不謹小節, 莫之弘德.一動一息, 莫不有至理, 當行之籍, 莫如小學之云, 今日靑年叢中, 何處得來? 雖然言之非艱, 行之惟艱, 從古爲患.如得一一實踐, 言行之互顧, 久後忽不自知入於高明廣大之域.如其不然, 一時中理之論說, 反以助浮辯而無益於實事也, 豈非可戒乎? 幸於此又加意焉. 말과……되면 《중용장구》 제13장에 "말할 때는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할 때는 말을 돌아보니 군자가 어찌 독실하지 않겠는가?〔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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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의 《벽봉유고》 첫머리에 전문(傳文) 을 실은 후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遺稿首載傳文後 아아! 돌아가신 아버님 유고의 정본(淨本)을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필사를 마쳤는데 문집의 서문을 부탁할 곳이 없다. 그래서 감히 《논어(論語)》․《맹자(孟子)》두 책이 첫머리에 《사기(史記)》〈세가(世家)〉 편을 실은 사례를 채용하여 간재(艮齋) 선생님이 지은 전(傳)195)을 서문으로 삼으며, 의미 없는 일이 안 되기를 바란다.또 이 유고를 생각해보면 시(詩)가 많아서, 전 속에서도 이미 시를 잘 지었다고 칭찬하셨다. 이제 가령 다른 문장 있는 작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어찌 선생님의 한 말씀보다 더 무겁겠는가? 그러니 이 또한 할 말이 있다 할 것이다. 갑신년(1944) 중하(仲夏)에 불초한 아들 김택술 삼가 쓰다. 嗚呼! 先君遺稿久未成淨本, 今始了手, 則弁文之託無其所矣。 敢用論孟二書首載史記世家之例, 弁以艮翁先生所撰傳文, 庶不爲無謂。 且念是稿也, 詩爲多, 而傳中旣稱善爲詩。 今雖得文作家, 何以加重於先生一言乎? 是亦可以有辭云爾。 甲申仲夏日, 不肖子澤述謹書。 감히……삼으니 《논어》와 《맹자》에는 사마천이 《사기》에 작성한 〈공자세가(孔子世家)〉와 〈맹자세가(孟子世家)〉가 주희의 서설에 앞서 게재되어 있어 서문 역할을 하였던 것을 말하는데, 김택술은 부친 김낙진의 유고에 서문을 대신하여 전우가 쓴 〈김벽봉전(金碧峯傳)〉을 서문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김벽봉전〉은 《간재집(艮齋集)》 전편속권(前篇續卷)의 제6권에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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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 문중에 보냄 무인년(1938) 與粉齋門中 戊寅 제가 듣건대, 우리 종파에서 족보를 만들 뜻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은 때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족보는 일족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짓는 것도 참으로 어렵지만 일족의 역사를 짓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역사의 실책은 사실에 어긋나는 데 있지만, 족보의 실책은 윤리가 어긋나는 것에 관계됩니다. 법도를 어기고 족보를 만들면 족보는 그 족보가 아니고, 그 폐해(弊害)는 역사의 실책보다 심하기 때문입니다.보법(譜法)을 행하기 어려움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지금 같은 인심과 세태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는 어느 시절입니까? 누가 나라의 명(命)을 잡고 있습니까? 어찌하여 괴롭게 시대의 법에 제약을 받아가면서까지 선조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때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백번을 생각해봐도 결국 각각 가승(家乘)을 기록하여 대동보를 만들 만한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또 일의 완급으로 말하더라도 직장공의 배위 숙인 이씨 묘 석상이 매우 열악하여 진찬(進饌)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미안함이 어떻겠습니까. 매죽당공의 묘갈은 외손인 명현 쌍백당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는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것이 유일하니 족히 우리 문파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돌이 부풀고 글자가 마모가 되어 판독이 어려우니 그 안타까움이 또한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마땅히 족보 만들 재물을 가지고 매죽당공의 묘갈을 갖추고 숙인의 묘 석상 비용을 성재(星齋) 종중에 청하는 것이 아마도 현재의 온전한 처사라 생각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竊聞自派中, 有修譜之意.區區之見, 以爲此非其時, 不可爲也.譜者族史也.史之作固難, 而族史之作, 尤爲難.何也? 史之失, 在事實差爽, 譜之失, 乃關於倫理舛錯.失法而譜, 則譜非其譜, 而害有甚於史失故也.譜法之難行, 在平世猶然, 況今日之人心世態乎? 故曰非其時也.且此時何時? 何人執命? 何苦被制時律而爲累先之事乎? 故曰:"非其時也." 百爾思之, 終不如各錄家乘, 以待可爲之時之爲得也.且以事之緩急言之, 直長公配位淑人李氏墓石床甚劣, 難容陳饌.其爲未安何如? 梅竹堂公墓碣, 出於外孫名賢有如雙柏堂之手者, 乃席洞全山之獨有, 足爲吾派之生色.而石肥字泐, 難以辨讀, 其爲可悶又何如也.故當以修譜之財, 具梅竹堂公墓碣而因請淑人墓石床費於星齋宗中, 恐爲目下全務, 未知僉座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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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남 김형겸269) 혼서 【병자년(1936)】 四子炯謙昏書 【丙子】 물은 젖은 곳으로 나아가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갑니다. 기질이 서로 맞으면 멀고먼 연나라와 월나라 사람도 뜻을 같이 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얻고, 여자가 집을 가짐은 부모의 바램이라 이웃의 진(秦)나라와 진(晉)나라도 혼인을 맺습니다.이제 전안례(奠鴈禮)의 날을 맞아 공경의 폐백 보내드립니다.생각건대 존하의 둘째 손녀는 대대로 내려온 규중의 의범을 이어받아 평소에 품행이 얌전하고, 타고난 자태에 부인의 덕을 품어 이제 길사(吉士)에 의지할 만하겠습니다.저의 네째 아들 김형겸(金炯謙)은 품격이 고상하지 못하고, 다만 범상한 새[鳳]라 평할 뿐입니다.시(詩)와 예법의 경전 공부에 소홀하였고, 부친의 가정 교육도 원래 못 받았습니다. 그 못 미치는 재주와 품성을 돌아보아, 어찌 금방 좋은 짝을 정할 수 있으리라 하였겠습니까? 외람되이 존하의 가명(嘉命)을 받들게 되었는 바, 이는 또한 크고 길한 하늘의 연분이겠습니다.예법은 고금을 참조하며 선대의 술잔 올리는 의례를 준수하고, 집안 경제의 형편에 맞추어서, 말세의 사치한 풍습을 경계하고자 합니다. 용을 타는 기쁨을 드릴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 부끄러움이 크지만, 사슴 수레로 짝해줄 현명한 덕의 신부를 간절히 바랍니다. 낯 부끄러운 말씀 이렇게 아뢰오니 높으신 눈으로 굽어비춰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水就濕, 火就燥, 聲氣之求雖燕越而同志; 男有室, 女有家, 父母之願遂, 秦晉而結親。 玆値雁朝, 敬將皮幣。 伏惟令第二孫女, 傳閨範於家世, 素有義方, 禀婦德於天姿, 將歸吉士。 澤述之第四子炯謙, 品格庸下, 只合門鳳之題, 詩禮空疎, 元無庭鯉之學, 顧以不侔之才性, 豈圖遽定其配逑? 雖嘉命之猥承, 亦天緣之孔吉。 禮參今古, 遵前輩斟酌之儀, 家稱有無, 戒末俗侈靡之習。 見乘龍之歡喜, 多慙難期, 稱挽鹿之懿賢, 寔切攸望。 腆辭是吿, 尊照伏希。 김형겸 1920년 출생, 자는 극명(克鳴), 호는 근와(勤窩)이다. 부인 진주강씨는 1919년 출생이고, 그 부친은 연은 강채영(蓮隱姜采永)이고, 조부는 강철흠(姜喆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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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족형 연술 에게 전날 선생께 올린 시에 차운하여 올림 呈成菴族兄【淵述】用前日上先生韻 주인의 마음은 어찌 그리 온통 맑으신지 主翁氣味一何淸숲속에 초가 짓고 이처럼 생을 보내시네 林下結廬過此生심양의 강가 도연명 은거지 같고12) 潯陽江上陶潛隱동백의 산속 동소남 경작지 같네13) 桐柏山中董子耕강학을 정밀하게 함이 마치 금을 단련하듯 精治講學如金鍊마음을 수양함이 거울을 밝게 하듯 修養心神較鑑明진중하게 이로부터 천년의 규약 맺어 珍重從玆千載約두 집안 화수14)가 모두 명성 이루리라 兩家花樹共成名 主翁氣味一何淸!林下結廬過此生.潯陽江上陶潛隱,桐柏山中董子耕.精治講學如金鍊,修養心神較鑑明.珍重從玆千載約,兩家花樹共成名. 심양의……같고 심양(潯陽)은 중국의 지명이며, 동진(東晉) 시대의 시인 도잠(陶潛)의 고향이다. 동백의……같네 동백(桐柏)은 중국 지명이며, 동자(董子)는 당(唐)나라 덕종 때의 동소남(董召南)의 동생을 말한다. 그가 동백산에 은거하여 의를 행하고 부모를 잘 봉양하니, 한유(韓愈)가 그를 칭송하여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서 밭을 갈고, 밤이면 돌아와서 고인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쉴 새 없이 혹 산에서 나무하고 혹 물에서 고기를 잡도다. 부엌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하지 않고, 처자는 원망하지 않도다."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50》 화수 원문 '화수(花樹)'는 종족을 뜻한다. 당(唐)나라 위씨(韋氏) 집의 일에서 유래하는데 명자(名字)는 알 수 없으나 옛날 위씨의 종회법(宗會法)이 있었고, 시인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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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정 시에 차운함 만재 소공 휘식이 지은 것을 그의 아들 열재 학규가 중건한 것이다. 次明德亭韻【晩齋蘇公輝植所作,其子悅齋學奎重建】 봉악 서쪽에 열 자의 기둥을 세웠으니 鳳岳之西十尺楹당시 만옹께서 완성한 것을 아스라이 떠올리네 緬思當日晩翁成키와 가죽옷125)의 대업을 현자에게 전하고 箕裘世業傳賢子문조의 유풍을 후손들에게 의뢰하도다 文藻遺風仰後生가을 깨끗하니 모난 못에 물결 없이 고요하고 秋淨方塘波正穩구름 사라지니 푸른 하늘에 달 외로이 떠 가네 雲消碧落月孤行이곳에 오른 건 승경을 탐하려는 것이 아니라 登臨不是耽佳景대학의 공부 스스로 밝히는 데126) 힘쓰는 것이라네 大學工夫勖自明 鳳岳之西十尺楹,緬思當日晩翁成.箕裘世業傳賢子,文藻遺風仰後生.秋淨方塘波正穩,雲消碧落月孤行.登臨不是耽佳景,大學工夫勖自明. 키와 가죽옷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가죽옷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고, 활을 잘 만드는 궁장(弓匠)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키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학의……데 《대학》의 3강령 중 하나인 '명명덕(明明德)'에 힘쓴다는 뜻이다. 대학 전 1장에서 경서에서 인용하여 '명명덕(明明德)'을 풀이하고 "皆自明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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