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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정45)을 찾아가 過皇華亭 황화정 밭두둑가에 석양이 질 때 皇華亭畔夕陽時행인의 옛시절 슬픈 마음 일어나는구나 惹出行人感舊悲만리 조선과 명나라의 예전 의로움이 萬里朝明前日義지금 한 이끼 낀 비석에서 확인할 수 있네 至今證看一苔碑 皇華亭畔夕陽時,惹出行人感舊悲.萬里朝明前日義,至今證看一苔碑. 황화정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던 정자이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땅이 아니라 전라도 여산읍 소속이었다. 이곳에서 전라도 관찰사가 임무를 교대하던 곳으로 우암 송시열이 지은 〈황화정기(皇華亭記)〉 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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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과 태아의 시를 보고 차운하여 부치다 見汝重和泰兒韻 因次寄之 〈양춘곡〉516)에 굳이 〈파인곡〉517)으로 화답하랴 陽春何苦和巴吟주옥같은 편지 어지러운 눈이 들이치듯 날아왔네 瓊翰飛颺亂雪侵본래 고상한 기풍은 후진이 가상히 여겼고 自是高風嘉後進예로부터 좋은 일은 우리 사림에서 보았지 從來好事見吾林공교히 어긋나 기러기 발자국 남았다518) 한탄치 말게 巧違莫嘆鴻留爪중부는 응당 학이 그늘에 있는 것과 같으니519) 中孚應如鶴在陰돌봐준 정에 고마워하는 마음 끝내 변치 않으리니 總荷眷情終不替푸르고 푸른 맑은 땅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네 蒼蒼淨土古猶今 《陽春》何苦和《巴吟》, 瓊翰飛颺亂雪侵.自是高風嘉後進, 從來好事見吾林.巧違莫嘆鴻留瓜, 中孚應如鶴在陰.總荷眷情終不替, 蒼蒼淨土古猶今. 양춘곡(陽春曲)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 이름으로,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화답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는 데서, 전하여 뛰어난 시가에 비유된다. 파인곡(巴人曲) 하리파인곡(下里巴人曲)을 말한 것이다. 《문선(文選)》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어떤 나그네가 영중(郢中)에서 노래하는데 처음에 하리파인곡을 부르니, 화답하는 자 수천 명에 달했다." 하였다. 여기는 자기의 글을 낮추어 말한 것이다. 기러기 발자국 남았다 일이 지난 뒤에 남은 흔적을 비유하는 말로, 덧없음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에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과 같을꼬, 응당 눈 위에 발자국 남긴 기러기 같으리. 눈 녹은 물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겼지만,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리오.〔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 중부(中孚)는……같으니 《주역》 〈중부(中孚) 구이(九二)〉에 나오는 말이다. 중부는 《주역》의 괘명(卦名)으로, 손괘(巽卦)와 태괘(兌卦)가 합하여 가운데 두 효(爻)가 음효(陰爻)이므로 부신(孚信)의 상(象)이 있다고 한다. 이 효에 "우는 학이 음지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鳴鶴在陰, 其子和之.]"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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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 규영의 자사 【갑인년(1914)】 李禹錫【圭榮】字辭 【甲寅】 옛날의 사씨(姒氏) 성인 하우(夏禹)는 稽古娰聖,그 덕이 높고 컸으니 巍巍厥德,홍수를 다스린 후 洚水底平,검은 규홀 바치며 업적 아뢰었고, 玄圭吿績,그 공효 하민에 끼쳐 功施下民,만 대에 은택이 내렸네. 萬世蒙澤.이제 이규영(李圭榮)은 維李圭榮,우뚝한 관을 쓰니 旣弁而突,나는 선왕 하우를 들어 我稱先王,우석(禹錫)이라 자를 주네. 欽之禹錫.오늘날 하늘이 앙화를 내려 今天下禍,홍수가 이토록 혹심하니 洪流是酷,섬나라 짐승은 때리며 깨물고 島獸搏噬,요괴와 이류가 가득히 들끓는데 妖異充斥,쫓아내고 물리치는데 驅之闢之,어찌 방법이 없겠는가? 豈其無法.내 몸을 돌이켜 보아 盍反吾身,이 마음 쓰는 법을 다스릴지니 治厥心術,어떻게 하여 다스릴까 何以治之,역시 저 정일(精一)이네. 亦粤精一.기(氣)의 욕망 함부로 넘쳐나면 氣慾橫流,언덕 삼키는 홍수 막을 길 없으니 懷襄莫遏,오로지 반성하고 극복하여 惟省惟克,진학과 치지 두 바퀴 함께 이루소. 交致輪翼.《중용》을 선택하여 擇彼中庸,부디 그 가운데를 잡을지니, 我其允執,많은 공로와 큰 업적은 豊功偉業,모두 여기서 나온다네. 皆從此出.성인 도학의 미묘한 가르침 聖學妙諦,이것이 궁극의 지도리이니 是爲樞極,말하건대 그대 우석 曰汝禹錫,부디 더욱 힘쓰시라. 尙其加勖. 稽古娰聖, 巍巍厥德, 洚水底平, 玄圭吿績。 功施下民, 萬世蒙澤。 維李圭榮, 旣弁而突, 我稱先王, 欽之禹錫。 今天下禍, 洪流是酷。 島獸搏噬, 妖異充斥, 驅之闢之, 豈其無法。 盍反吾身, 治厥心術, 何以治之, 亦粤精一。 氣慾橫流, 懷襄莫遏, 惟省惟克, 交致輪翼。 擇彼中庸, 我其允執, 豊功偉業, 皆從此出。 聖學妙諦, 是爲樞極, 曰汝禹錫, 尙其加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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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무인년(1938) 與季弟汝安 戊寅 이렇게 단발(斷髮) 풍조가 한창 성행하여 필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구나. 몇 년 전부터 늘 산에 들어가 생을 마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비록 늦었지만 또한 실행할 수 있다.변산(邊山)은 후미진 곳인데다 또 화도(華島)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거의 선사(先師)의 유풍을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면려하여 실추시키는 데 이르지 않을 게다. 다만 오히려 거리가 가까운 것이 꺼림칙한데 종족과 친구들이 끊임없이 묻고 듣는 것이 편치 않구나. 오직 첩첩 지리산이 가장 좋지만 또 너무 낯설구나. 두 산 중 어디가 좋을지 모르겠다. 만약 지리산이 괜찮으면 올 겨울에 우선 풍곡재(風谷齋)99)에서 머무르며 조짐을 살피려한다. 모름지기 세세히 상량해보고 그 방편을 헤아려 알려주어라. 단발 풍조는 이곳 군(郡)이 심하고, 이곳 면(面)은 더욱 심하단다. 형관(炯觀)이는 일을 마친 후 잠시 목동(木洞)과 내기(內基)100) 등지에 머물며 형세를 살피어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見此薙風方盛, 必不但已.前此幾年, 常欲入山終身而未果.今雖晩矣, 亦可行也.邊山旣是一隅, 且與華島相望.正宜想先師遺風而策勵身心, 庶不至頹墮.但尙嫌淺近, 而宗族知舊問聞不絶, 亦不穩便.惟萬疊智異之山最好, 而又太生疏.未知二山何者爲得.如以智異爲優, 則欲於今冬, 先住風谷齋以爲之兆耳.須細入思議, 量其方便而示之也.此風此郡爲甚, 此面又爲尤.觀兒令了役後, 姑留木洞內基等地, 觀勢歸家如何? 풍곡재(風谷齋) 풍곡재는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의 재실로 남원 운봉 근처에 위치한다. 김택술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에 따르면 김택술은 1934년 3월 19일~4월 7일에 지리산을 유람하였으며 3월 27일 풍곡재를 방문하였다. 목동(木洞)과 내기(內基) 지리산 아래 남원에서 운봉(雲峯) 넘어가는 고개 여원치(女院峙) 아래 있는 마을이다. 김택술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에 따르면, 김택술이 풍곡재를 방문하면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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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 인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李敬循仁矩 ○丙寅 선사가 훈계하여 인가받는 것을 금한 것은 가장 중요한 의리이니, 문인이 선사의 훈계를 지키는 것은 또한 원고를 발간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원고를 발간하는 것과 유훈을 지키는 것을 병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는 방도를 얻었습니까? 아니면 형세에 구속되고 공을 이루고자 해서 훈계를 지키지 못할 바가 있습니까? 저는 단지 훈계를 지키다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인데, 오히려 또한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도 혐의로 삼지 않으니 집사의 일을 알 수가 있었으며, 전에 '내가 차라리 알지 못할지언정 인가한 원고를 읽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으니 집사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감히 지나치게 염려하겠습니까?다만 호대(浩大)한 일은 진실로 은밀히 도모하기 어렵고, 끝나가는 일은 또한 갑자기 중지하기 어려우니, 끝내 선사를 훈계를 저버리는 것은 일의 기미와 정세로 볼 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집사를 위하여 삼가 염려하고 감히 의론하는 말석에 참여하여 들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先師之垂訓禁認,義之最重者,門人之守師訓,又有重於刊稿者.未知果得刊稿守訓并行不悖之道乎? 抑勢之所拘,功之求成,訓有所不得守乎? 鄙但知守訓至死靡悔者,而猶且不嫌議及,則可以知執事之事矣; 前承"吾寧無識,不讀認稿"之語,則可以知執事之心矣.吾何敢過慮? 但浩大之事,誠難密圖,垂畢之役,又難遽輟,終不免犯訓,則事機情勢之未保必無者.此區區所以爲執事奉慮而不敢參聽於議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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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갑신년(1944) 與崔汝重 甲申 지난번 이별 후에 현금 20원을 태아(泰兒 후창의 아들)에게 두고 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생일 이바지로 보태라' 한 뜻이라면 나는 세상 사람들의 그날 오락에 대해 심히 비웃을 뿐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그대도 잘 알 것입니다. '궁한 살림에 반찬값이라도 보태라'라고 한 뜻이라면 거친 보리밥과 맑은 된장국이 나의 일상 분수이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물며 생일이 가까워오는데 반찬값을 주는 것은 이름만 다르지 실제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우리 벗은 재물을 통용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의리를 지녔으니 비록 이보다 더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찌 꼭 사양하겠습니까만 다만 이 선물에 대해서는 받고서 불안한 마음이 있어서 태아로 하여금 곧 돌려드리려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주자(朱子)같은 대 현인께서도 생일날 아침에 진동보(陳同甫)가 보낸 좋은 과일과 옷감의 선물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후학인 내가 옛 현자인 주자에 대해서 다른 것은 하나도 미치지 못하면서 유독 이것만 지나치다면 왜곡된 정(情)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동보가 주자를 친애하는 것보다 더 깊지 않습니까? 이러한 점이 끝내 불공스럽게 물리치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선 생일을 지나 이 돈을 써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대우한 그대의 은혜를 잘 마치겠습니다. 向別後, 置二十圓金于泰兒而去何也? 謂資晬辰之供也, 則鄙於世人之此日娛樂, 不惟笑之甚而疾之, 賢所知也.謂助窮饌需也, 則麥飯之麤, 土醬之淡, 是其常分, 毋庸爲也.矧此近晬而助饌, 豈非名殊而實同乎? 噫! 吾友之賢, 義可以通財矣, 雖大於此者, 何必辭之, 但於此餽, 受之不安, 卽令泰兒還呈矣.旋復思之, 以朱子之大賢, 於其生朝, 猶不却陳同甫香果裘材之遺, 後學之於昔賢.他不一及而獨此過之, 似近矯情, 且况賢之愛我深於陳之親朱乎, 此所以不敢終爲不恭.且當過晬用之, 以卒老老之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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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전장에게 보냄 與鍊心田丈 戊寅 무인년(1938)이전 편지에 대해 답장이 없는 것은, 혐의를 피하기 위해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는 없으실 듯합니다. 초삼일에 저의 종중 대회에서 제가 말하기를, "당초에 비석 앞면을 고쳐 새기는 것은 원래 망령된 잘못이다. 지금은 다만 옛 상태로 복원하는 한 가지 일만이 상책인데, 하물며 감히 기문까지 모두 갈아서 제거하고자 함에 있어서랴?" 하였습니다. 【여름에 종중에 보낸 편지의 내용 또한 이와 같습니다.】 상리에 사는 친구 경종(卿宗)이 이 말을 듣고 저에게 일러 말하기를, "후창이 결의에 참여하지 않고 그 일을 찬성하지 않은 것을 이제야 비로소 그런 줄을 분명하게 알아 의혹이 깨졌다." 했습니다. 경종의 말로 헤아려볼 때, 이 사람이 오래도록 부북(扶北)의 사우와 종족들에게 의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호라, 평일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여 이런 구설을 초래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불찰을 허물할 겨를이 없이 스스로 한스러워할 뿐입니다. 前書無答, 似避嫌而然, 恐不必爾也.初三日鄙宗中大會, 澤述言, "當初碑面改刻, 元是妄錯." 今只有復舊一事爲上策, 而况敢欲幷與磨去記文乎? 【夏間致宗中書意亦如此】 上里佑卿宗, 聞此言謂澤述曰: "後滄之不參決議不可其事, 今始明知其然而破惑矣.蓋度以佑言, 可知此漢久見疑於扶北士友宗族間也.鳴呼, 平日言行, 不足取信於人, 致此多口, 不暇尤人之不察, 而自恨也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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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田士狷 丙寅 갑자(甲子) 동짓달 20일에 존부장께서 옹정(甕井)15)에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무리 가운데서 말씀하여 이르기를, "홍희(洪憙)는 어디로부터 현동(玄洞)16)의 통문을 얻어 볼 수 있었습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삼가 통문을 공경히 읽어보았습니다" 라고 운운하시고, "김택술 군의 이름도 통문에 들어있었습니다"라고 하였으며, 아마도 여러 해 동안 많은 세월을 스승 간재를 따랐으니 반드시 터득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옛 도리를 능히 지키지 못해 이 벗 김택술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라고 존부장은 말씀하셨습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제가 홍희를 만나기를 이 앞부터였더라면, 나는 이미 홍희에게 천대를 받으니 어찌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겸연쩍게 부끄러워한다는 말이 있겠으며, 이 뒤부터였더라면, 천하에 어찌 내 자신은 선사의 훈계를 지키고 선사를 무함(誣陷)했던 자를 토벌하며, 선사를 위하여 죽음을 허여한 주체가 되었다고 나라 사람들의 이목에 알려져 있는데, 도리어 저 관부의 사령인 오진영에게 구차히 아부하는 김택술이 될 수 있겠습니까? 甲子至月念, 聞尊府丈到甕井言於衆中曰.洪憙從何而得見玄洞通文.致書于余曰敬讀通文云云, 金澤述君名參通文, 想其積年從師, 必有所得.吾則不能守舊, 有愧此友云云.或說弟之見洪, 前乎此云耶, 則我己爲洪之所賤, 何以有此想慕歉愧語, 後乎此云耶.則天下安有身爲守訓討誣爲師許死之大骨子于國人耳目, 而反營營彼府使令之金澤述乎. 옹정(甕井) 남원군 기지면 옹정 지역으로 항아리처럼 생긴 우물이 있어 '독우물' 또는 '옹정'이라 하였다. 현동(玄洞) 전남 익산시 삼기면 기산면리로 현산(玄山)에는 간재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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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백 병일에게 드림 갑자년(1924) 與林敬伯 秉一 甲子 지난번 댁에 갔을 때 집안이 깨끗하고 책들이 가득 찬 가운데 옥 같은 사람이 고문(古文)을 낭송하는데 금석 악기 소리 같았습니다. '땅이 신령해야 인걸이 나온다.'라는 말이 진실로 마땅한 듯 했습니다. 어진 선조들이 계셔서 즐거움의 흥취를 깊이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규모와 배치가 그처럼 성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정에 어진 부조(父祖)가 계시고 아름다운 산수를 차지하여 좋은 서적들을 다 읽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말하는 삼대 소원과 세간의 완전한 복을 그대는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그대 가문에서는 어진 자식을 얻었고 우리 당(黨)은 그대 같은 빼어난 선비가 있으니 그 복을 또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 이처럼 두텁고, 친척들이 나를 우러르며, 사람들의 나에 대한 믿음이 이같이 깊고 무거우니, 만일 인도(人道)를 다하고 천직(天職)에 힘써 달효(達孝)를 이루지 못한다면 내 복을 누리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세도(世道)의 복마저 손상시키는 것이니 어찌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뜻이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는 힘쓰십시오. 이 도가 상해서 혼란한 날을 맞아 훌륭한 재주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사람을 오랜 친분이 있는 자식에게서 보게 되니 기쁨을 이기지 못해 이처럼 속마음을 내어 보입니다. 부디 헤아려 정을 받아주기 바랍니다. 頃入仙室, 境落淸爽, 緗帙充棟, 中有玉人, 朗誦古文, 聲出金石.雖地靈人傑之相得, 固其宜也.非有賢父祖深知樂要之趣, 安得經營舖置之此盛哉? 家有賢父祖, 占得佳山水, 觀盡好書籍, 人所稱三大願者, 世間完福, 高明旣兼有之矣.在尊門而得高明之賢子, 在吾黨而有高明之秀士, 其福又何可量? 天之所付我者, 若是之厚, 親之望我, 人之恃我, 又此深重, 如不能盡人道致天職成達孝, 豈惟不享己福, 并與世道之福而損之, 豈上天畀付之意? 願高明勉之.當此道喪混亂之日, 見英材碩器於舊要之子, 喜不自勝, 敢此衷告.庶或見諒領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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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깊어 가는 겨울에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시절에 맞추어 만강(萬康)하신지요. 지난번 한사(漢師 서울)에서 강상(江上)에 도착하여 삼가 우리 선생님께서 음식을 드시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는 것을 보고서 사사로운 정리에 기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물러나 속으로 말하기를 "오늘 사문(師門)에 절하고 내일은 부모님을 뵐 텐데 부모님의 기후 또한 강녕하시다면 멀리 원유한 나머지에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행차가 광주(光州)에 도착하여 어버이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하니, 부친의 건강이 이미 회복되었습니다. 소자가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부모님과 선생님뿐인데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모두 이처럼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것을 보니, 저 푸른 하늘에 백번 절하며 감사하고 송축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두문불출한 채 스스로 책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근은 종종 외물에 얽매이는 근심이 있었기에 돌아보고 망연자실하였으니, 열흘이나 한 달의 공부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병통을 다스려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급급하게 덕을 닦고 반성하여 이 평생의 대사를 혹 우리 선생님께서 건강하실 때 성취할 가망이 있게 한다면 선생님께서 교육한 의리와 소자가 가슴에 새기고 전수받은 은혜에 거의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평소의 일은 걸핏하면 이리저리 얽매여 학문에 힘쓰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철에 따라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문득 돌아가야 하니, 어찌 여유롭게 탐구하며 교화에 젖어서 이 쌓인 기습(氣習)의 병통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아, 성인의 시대는 멀어지고 말씀은 사라져 세상의 조류와 함께 도도하게 흘러가 버리니, 온 천하에 우리 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의 추이는 단서가 많고 선비들의 의론은 여러 갈래여서 나누어진 가운데 또 나누어져 지금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심력을 크게 가지고 출입하여 바로잡은 연후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자와 같은 후생이 누구를 따라서 취사할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아마도 끝내 그 책임을 사양하지 못하실 듯합니다. 다만 배움을 청하는 반열에 저를 일깨워 도와줄 사람이 없지만 미묘한 진리를 열어서 마음에 보존하여 서로 전수하는 규범으로 삼고자 하기에, 소자는 그 사이에서 감개함이 없을 수 없어서 부지런히 하여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몇 조목의 설은 별지에 적습니다."성인이 중ㆍ정ㆍ인ㆍ의로써 정하되 정을 주로 한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라는 대목에서 정(定)과 주(主) 두 자를 가지고 살펴보면 도리(道理)는 사람의 배정(排定)을 기다리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대저 인의(仁義)와 동정(動靜)은 실로 천연적인 것이라 절로 인력으로 범하지 못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이것을 밝힐 따름이니 어찌 정하고 주로 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이 한 구절은 바로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修道之謂敎]'라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정(定)"과 "주(主)" 2자는 바로 수도(修道)를 이른 것입니까? 지난번 선생님과 강론하는 자리에서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를 가지고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하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도는 사람과 만물이 화생(化生)하기 전에 있고,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 이하 여러 성인은 모두 이 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니, 이는 이단의 사설(邪說)과 둔사(遁辭) 가운데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우리 선생님께서 세도(世道)를 위해 분명하게 밝히고 지극히 힘쓴 곳입니다. 소자가 받아 읽고서는 저도 모르게 송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저의 소견으로는 끝내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대저 소자의 뜻은 형상(形上)과 형하(形下)를 분명하게 선후(先後)로 삼지 않는 것은 마치 오늘은 형이상자(形而上者)가 있는데 내일은 형이하자(形而下者)가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한 물건을 가지고 그 소종래(所從來)를 궁구하되, 모름지기 이 이치가 먼저 있었다고 말한다면 이 물건이 형상을 갖추기 전에 먼저 이 물건의 이치가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글자를 전후로 간주한 까닭입니다. 만약 곧장 상하(上下)의 글자로 간주한다면 한 물건의 상하 사이에 이(理)와 기(氣)로 구분하는 것이니 너무 엉성한 듯합니다. 주자(朱子)가 "형이상하로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自形而上下言 豈無先後]"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선후' 자가 어찌 소자가 말하는 '전후(前後)'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권상리(權上里)에게 답한 편지에 "이(理)는 기(氣)에 섞이지 않고, 이가 먼저이고 기가 뒤이다."라는 설을 누누이 권면하고 경계하셨는데 소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처럼 반대로 말씀하시니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까.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려고 하면 해이해지기 쉽고, 엄숙하게 가지려고 하면 좁아지기가 쉽습니다. 대저 의도적으로 한다면 크고 넓은 것과 엄숙하게 가지는 양쪽의 뜻을 실로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는 것이 어떻습니까?희로(喜怒) 등 칠정(七情)5)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정이 없습니다. 내가 남을 응대하는 일과 같은 것은 별도로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슬퍼하고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니, 어떤 정에 속하는 것입니까? 비록 기뻐하고 노여워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고 그렇지 않은지의 분별이 있으니, 마땅히 이것으로써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을 분별하여 보아야 합니까?삼가 살피건대, 「기선악도(幾善惡圖)」6)는 '성(誠)' 자 아래에 '기(幾)' 자가 있고, '기' 자 아래에 선기(善幾)와 악기(惡幾)의 권(圈)이 있습니다. 대저 발하자마자 곧 선과 악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한 '기(幾)' 자를 특별히 세운 뒤에 선기와 악기의 권(圈)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幾)의 제1층은 선과 악이 없고, 제2층에 이르러 마침내 선악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 두 기(幾) 자는 다만 한 기의 뜻을 풀이한 것입니까? 모름지기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하여 한 몸의 생리를 두루 흘러 통하게 한다면 지각(知覺)도 날로 열리니, 이른바 체와 용을 모두 들되 인(仁)이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으뜸이 된다는 것도 이 뜻입니까?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편지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곳이 있으니, 말해 보겠네. 그대는 타고난 자품이 화락하고 식견이 뛰어나기에 내심 아끼는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말을 하면 받아들이기만 하고 따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 점이 늘 의아하고 답답하였네. 내 말이 어떻게 매번 도리에 맞을 수가 있겠는가. 설령 도리에 맞을지라도 어떻게 매번 서로 부합하겠는가. 그 사이에 말하지 않고 숨긴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편지를 보고 나서 지난날 의심이 활짝 안개가 걷힌 듯하였으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이 편지를 본보기로 삼아 조금이라도 온당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끝까지 논박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구구한 나의 바람일세. 별지의 여러 조항은 자잘하게 대답할 만한 것이 없지 않지만 큰 기쁨이 여기에 있기에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네. 게다가 오전에 붕우에게 답서 한 통을 쓰느라 매우 어지러우니, 후일 인편을 기다려 주게나.【답목(答目)은 아래에 있다.】 冬令垂深。禾審燕印道體對時萬康。向自漢師到江上。伏見我先生飮饍酬應之節。不異平常。私心喜幸。退語于心曰。今日拜師門。明日拜親庭。而親而親庭氣候。亦且康適。則千里遠遊之餘。爲幸莫大矣。行到光州。聞有親癠之急。侵晨而發。比暮抵家。則親候己復常。小子依歸之地。惟親惟師。而親師之間。俱見慶幸如此。百拜彼蒼。感頌無任。返巢以後。杜門掃却。自爲看書之筞。然心地病根。種種有惹絆之患。回顧茫然。難以旬月工夫可能捄治而去之也。汲汲修省。使此平生大事。或有所成就之望於我先生康寧之日。則先生敎育之義。小子服受之恩。庶乎無憾矣。但平日事。動輒纒繞。不惟學問之不力。而隨序供候。旋卽告歸。其安能優遊薰蒸變此氣習之積病㢤。嗚乎聖遠言湮。同流滔滔。舉天之下知有吾道者。誰歟。況世趍多端。士論不一。分之又分。至於今日而極矣。則其勢。不得不有大心力人出而正之然後。可也。不然。小子後生。安知適從而取舍耶。恐先生終不得以辭其責也。但摳衣之列。無起予相長之人。而闡微發奧。以爲存心相傳之䂓。小子不能無慨然於其間而孜孜不能者也。數條說。錄在別紙。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静。以定主兩字觀之。道理似有俟人排定之意。夫仁義動靜。固天然。自有不犯人力底道理也。學問者。所以明此而已。何待於定之主之㢤。朱子曰此一節。是聖人修道之謂敎處。定主兩字。卽修道之謂歟。向於函筵。小子以形而上下之上下。看作前後之義。先生曰。然則道在人物化生之前。而羲農以下羣聖人。皆未與於斯道。此異端邪遁之尤者。此亦我先生。爲世道明辨極力處也。小子受讀。不覺悚然。然愚迷之見。終未回曉。大抵小子之意。不以形上形下爲判然先後。如今日有形而上者。明日有形而下者也。卽一物而究其所從來。須說先有此理。則此物成形之前。先有此物之理者。不其然乎。此小子所以形而上下字。作前後看矣。若直以上下字看之。則一物上下之間。分理分氣。似乎太闊矣。朱子曰。自形而上下言。豈無先後。此先後字。豈非小子所謂前後者歟。先生答權上里書。以理不雜氣。理先氣後之說。累累䂓戒。而於小子之問。如是反之。未知有何義也。心欲弘廣則易解㪚。欲莊矝則易挾隘。大抵着意爲之。則弘廣與莊矝兩段意。固難倂存。須於氣象上體認得之。何如。喜怒等七情外。更無他情。若吾之所以應於人者。別非可喜可怒可哀可懼之事。則當屬於何情耶。雖非可喜可怒。而猶有然不然之分。則當以此而分其喜怒看耶。?按幾善惡圖。誠字下有幾字。幾字下有善幾惡幾之圈。夫纔發便有善有惡。何必特立一幾字而后。又有善幾惡幾之圈耶。然則幾之第一層。無善無惡。而至於第二層。而乃有善惡耶。抑或二幾字。只是註解一幾之義者歟。須收斂管攝。使一身生理。周流通徹。則知覺亦日開。所謂體用兼舉。而仁爲四德之長者。亦此義歟。答附畧曰。書中有開眼處。請言之左右天姿樂易。見識超詣。心乎愛矣。實不淺尠。而每瞽說之下。見其領受。不見其詰難。此一節心常訝欝。吾之言安能每每當理。設或當理。安能每相符合。無乃其間有未發之隱情乎。見此書而後。宿昔所疑。霍然霧除。豈非䙡事。繼今而往復。須以此書爲法。少有未安。勿憚到底掊擊。是區區之望也。別紙諸條。非無可小小仰復者。所大喜在此。不暇他及。且午前。作答書一幅於朋友。眩甚容竢後便。【答目在下】 칠정(七情) 《예기》〈예운(禮運)〉에 "무엇을 인정이라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이니, 7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다.[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弗學而能.]"라고 하였다. 기선악도(幾善惡圖)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통서(統書)》에 나온다. 그 책에 "성무위(誠無爲) 기선악(幾善惡)"이라고 하였는데, 성(誠)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기(幾)는 선악(善惡)이 갈리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도식(圖式)이 《심경(心經)》 2권 2장에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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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에 원재 어른의 시에 차운함 除夜次遠丈韻 세밑에 객창 아래 멍하니 앉아서는 歲暮羇牕坐嗒然책상 위의 옛사람 책을 어루만진다 摩挲案上古人篇한밤중 여기저기 산엔 눈 남아있고 亂山殘雪三更夜만리 하늘 밝은 은하수엔 별 성그네 明漢疎星萬里天솥 안에 금단 생기기만 부질없이 기다리며 空待金丹生鼎裏머리끝에 흰 서리 내릴까 겁나는구나 怕將霜白撲頭邊누가 나를 일으켜 진경을 찾게 할까 誰歟起我尋眞境고상한 풍격 갖추신 어진 원로 계시니 爲有高風遠老賢 歲暮羇牕坐嗒然,摩挲案上古人篇.亂山殘雪三更夜,明漢疎星萬里天.空待金丹生鼎裏,怕將霜白撲頭邊.誰歟起我尋眞境,爲有高風遠老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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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 자정이 왔기에 南山齋子貞見訪 눈 내린 달밤 조각 배로 서로 찾다보니 一棹相尋雪月天산음에서의 옛일이 다시 금년에도 있구나 山陰故事又今年희미한 등잔 외로운 마을 밖에서 깜빡이고 殘燈點點孤村外푸른 하늘 외기러기 나는 곳까지 아득하네 碧落迢迢獨鴈邊오랜 바위 비 오는 산장에서 택수212)를 생각하고 石老雨庄懷澤叟티끌 사라진 두악에서 영주의 신선산인가 물었지 塵晴斗岳問瀛仙나아가고 숨는 도처엔 불필요한 물건 없어 行藏到處無長物두 소매에 이는 맑은 바람 시원함을 깨닫네 雙袖淸風覺爽然 一棹相尋雪月天,山陰故事又今年.殘燈點點孤村外,碧落迢迢獨鴈邊.石老雨庄懷澤叟,塵晴斗岳問瀛仙.行藏到處無長物,雙袖淸風覺爽然. 택수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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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서 여러분과 송별함 別南山齋諸君 한 해 마지막에 남산에서 객들 읊조리며 돌아가는데 歲暮南山客賦歸바닷가 하늘은 고요하고 기러기 소리마저 드물구나 海天寥廓鴈聲稀파도가 옛 나루터를 울리니 한스러움 아득하고 波鳴古渡悠悠恨바람이 긴 길에 불어오니 옷이 살랑거린다 風送長程拂拂衣너무 쉽게 늙어 알려진 것 없는 내가 부끄럽고 愧我無聞偏易老굳건히 날 듯 뛰어나게 걷는 그대들 두렵구나 畏君逸步健如飛봉래산 영주산 지척에 명승지가 많이 있으니 蓬瀛咫尺多名勝내년 봄에 바람 쐬고 읊는 기약 어기지나 마시오 風咏來春且莫違 歲暮南山客賦歸,海天寥廓鴈聲稀.波鳴古渡悠悠恨,風送長程拂拂衣.愧我無聞偏易老,畏君逸步健如飛.蓬瀛咫尺多名勝,風咏來春且莫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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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한 피인의 질문에 의답함 擬答彼人不薙髪理由之問 머리카락은 부모가 남겨주고 스승이 가르쳐주고 성인이 법으로 삼는 것으로서 몸의 문장(文章)입니다. 머리카락을 없애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고, 스승을 무시하는 것은 성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스승을 무시하고 성인을 무시하여 몸의 문장을 없앤다면, 이것은 죽은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과 똑같다면,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죽은 상태가 되는 것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지키며 변치 않으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를 빼앗지 않는 것도 오늘날 세상에서 공인하는 것인데, 어찌 굳이 우리 유자들에 대해서 의심을 한단 말입니까? 髪者, 親之遺, 師之敎, 聖之法, 而爲身之章者也.無髪是無親, 無親是無師, 無師是無聖也.無親無師無聖, 而去身之章, 是庸有別於死人矣乎? 同是死人, 則無戴吾髪而死, 得以無愧於吾心之爲愈.故守而不移者, 此其由也.不奪人之信敎, 亦今世之公認, 何必至於吾而疑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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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洪韋軒 戊寅 당신 아버지의 비석 세우는 일에 보낸 원조금이 이처럼 적은데, 성대한 마음이라 말해주시고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니, 부끄러워 감히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편지에서 남방에 70여질의 문집을 보냈는데 한 사람도 힘을 보탠 자가 없다는 것은 무슨 곡절입니까? 아니 70여 집이 모두 가난하여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인색하여 그런 것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리와 이익의 관계에 투철하지 못한 소치이고, 또한 이로써 오늘날 학자들을 살필 수 있으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敬碑助金, 若是薄者, 謂之盛念, 謂之感謝, 愧不敢言.但所喩南方七十餘帙, 無一助力者, 則是何委歟? 豈七十餘家, 皆窶者歟? 吝者歟? 有不可知, 然大都是透不得義利關之致, 而亦可以觀今世學者矣, 可歎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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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문 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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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영모재 상량문 密陽朴氏永慕齋上樑文 먼 조상을 추모하여 그 생각 보존하니이에 전대에 지었던 것 보겠네뜻을 잘 계승하여 그 일 전술하니이에 오늘의 긍당이 있게 되었네이것이 자손이 우러러 사모하는 방법이요생도들이 학업을 익힐 장소를 얻게 되었네생각건대 밀양 박씨는 대대로 벼슬한 집안으로능주 서쪽 토구의 고을을 지켰네당부114) 같은 것은의리를 보관한 것 길이 받들고모 수 모 언덕에선영의 나무 그늘 대대로 보호하네한 구역 기둥과 글방은실로 진군의 정자115)이고백년의 구림은이 어찌 계씨의 침문이겠는가상로 내릴 때 처창한 생각116) 깃들이고조석으로 바라보며 절하는 정성 펼치네동상과 서실에서친척의 정 즐거워 하고봄가을 예서와 경서로자제들의 학업 점검하네이에 지은 지 오래되어서는기울고 넘어지는 근심 없지 않네담장은 다시 높아진 위태로움 보겠고서까래는 너무 지나치게 꺾임이 있네낙양의 정자117)는비록 족히 말할 것 없지만안영의 실려118)는절로 전수받은 것이 있네창업하고 보호하여자손들로 하여금 이을 수 있게 하고집을 지음에 법을 이루었으니선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네여러 의론이 일제히 같아공사를 바야흐로 일으키네일은 크고 힘은 부족하니옛날 그대로 따르려 하고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썩으니형세가 장차 다시 새롭게 하는데 이르네이에 깎고 세워계사119)와 당실의 위치 정하고저기에 도끼질 하고 톱질하여동량과 두공의 재목 실어오네목수들은 능히 그 책임 다하고마을 사람들은 즐거이 그 일에 달려가네혼중120)의 익진121)이이괘(離卦)의 문명한 상서에 응하고그림자 측량하니 갑경122)의 방향이라사방의 풍기가 모이는 줄 알겠네그런대로 합하고 아름다우니위나라 형의 선거와 같고123)높고 화려하니장노의 미송을 생각하네124)오직 명예를 길이 마칠 것을 헤아리니장차 며칠 되지 않아 이루어지네긴 들보를 들어 올림에짧은 노래 짓네어영차125)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126)문산의 맑은 기운 성대하네강루127)가 지척이라 추로128)를 바라보니성교가 넘쳐흘러 상서로운 기운 통하네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붓같이 높은 봉우리 삼태성처럼 나열하였네만 리의 무민129) 가까이 바라보이니밤마다 달빛은 가을 연못에 비치네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한 쌍의 벽학이 하늘에 들리도록 우네누가 장차 철곽으로 오랑캐 방어하여우리 의복을 오랑캐 복식으로 바뀌지 않게 할까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지석의 맑은 강 쉼 없이 흐르네하늘 끝에서 북두성에 기대 서울 바라보니바라건대 질병 없이 천수를 누리기를어영차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위에는 덕산이 있어 첩첩의 산 열렸네즐비하게 늘어선 네 척의 봉분에천추토록 향기로운 제향 쇠하지 말라어영차 들보 아래쪽으로 던지니아래엔 후손들 결사를 많이 맺었네구물의 청전130) 여기에서 볼 것이니대대로 이어서 성대하게 유아한 이 많겠네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천지는 고문의 운수 되돌리고산천은 원기의 빼어남 내려주어자식은 효도하고 신하는 충성하여가문의 기업 영원히 전하고집집마다 현송하여대대로 사림의 법도 있게 하소서 追遠而存其思。聿覩前世之創。善繼志而述其事。玆有今日之肯堂。是子孫瞻慕之方。得生徒肄業之所。惟密陽簪纓之族。守綾西菟裘之鄕。若堂若斧。永奉衣履之藏。某水某邱。世護松梓之蔭。一區阿塾。實是甄君之亭。百年邱林。此豈季氏之寢。寓霜露悽愴之思。伸朝夕瞻拜之誠。東廂西室。悅親戚之情。春禮秋書。課子弟之學。玆當經歷之久。不無傾圮之憂。垣墉見復上之隉。榱桷有大過之橈。洛陽亭館。雖不足言。晏嬰室廬。自有所受。創業垂護。使子孫可繼。作室底法。念先考攸休。僉議齊同。功役方作。事巨力綿。非不欲於因舊。歲久物敗。勢將至於改新。鑿斯築斯。定階所堂室之位。斧彼鋸彼。輸棟樑欂櫨之材。梓匠能勝其任。閭里樂赴其役。昏中軫翼。應三离文明之祥。景測甲庚。知四方風氣之聚。始有富有。同衛荊之善居。輪焉煥焉。念張老之美頌。惟永終是度。將不日而成。聊擧修樑。爲述短唱。兒郞偉抛樑東。文山淑氣鬱蔥蔥。降婁咫尺瞻鄒魯。聲敎洋洋瑞彩通。兒郞偉抛樑南。高峰如筆列台三。嫠閩萬里膽望近。夜夜月廻秋水潭。兒郞偉抛樑西。一雙碧鶴聞天啼。誰將鐵郭防洋竺。毋我衣裳易介蹄。兒郞偉抛樑北。砥石江淸流不息。倚斗望京天一方。庶無疾病壽千億。兒郞偉抱樑上。上有德山開疊嶂。累累成行四尺封。千秋不替苾芬餉。兒郞偉抛樑下。下有雲仍多結社。舊物靑氈監在玆。承承濟濟多儒雅。伏願上樑之後。天地回古文之運。山川降元氣之英。子孝臣忠。永傳門戶之基業。家絃戶誦。世有士林之典章。 당부(堂斧) 분묘(墳墓)를 말한다. 《예기》 〈단궁(檀弓)〉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옛날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건대, 봉분하는 것을 마치 마루처럼 쌓아 올린 것이 있고……도끼날처럼 위가 좁게 쌓아 올린 것도 있었으니, 나는 도끼처럼 하는 것을 따르겠다.' 하셨다.[昔者, 夫子言之曰:吾見封之若堂者矣,……見若斧者矣, 從若斧者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진군(甄君)의 정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의 부호였던 진씨(甄氏) 집안이 진군(甄君)의 대(代)에 이르러 빈한해졌다. 그래서 부모 형제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여러 영구(靈柩)를 함께 장사지내고 무덤 가에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을 담은 사정(思亭)을 지었다. 이에 당시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그 내력과 조상을 사모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상로(霜露)……생각 《예기》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낙양(洛陽)의 정자 《주자서절요》 권5 〈답진동보(答陳同甫)〉에 "거센 바람이 불어 정자가 넘어졌는데, 마치 하늘이 때맞추어 일으킨 것 같습니다. 저 낙양의 정자야 심히 부러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大風吹倒亭子, 却似天公會事發. 彼洛陽亭館, 又何足深羡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안영(晏嬰)의 실려(室廬) 안영이 나무로 만든 한 칸의 방에 거처했다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7년에 "제(齊)나라 안환자(晏桓子)가 죽으니, 그의 아들 안영이 거친 상복을 입고 나무로 지은 한 칸의 방에서 거처하였다."라고 하였다. 계사(階戺) 섬돌 양 옆에 비스듬히 놓인 돌인데 당전(堂前)의 의미로 쓰인다. 혼중(昏中) 혼지중성(昏之中星)의 준말로, 28수(宿) 중 초저녁 하늘 중앙의 남방(南方)에 보이는 별을 말하는데, 이 별을 관찰하여 사시(四時)를 확정할 수 있다. 익진(翼軫) 이십팔수 가운데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로, 남방의 별이다. 갑경(甲庚) 길흉이라는 뜻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길하다는 의미이다.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의 선후갑경(先後甲庚)에서 "갑의 앞과 경의 뒤는 길하고 경의 앞과 갑의 뒤는 나쁘다는 것이다. 이 갑과 경의 앞뒤라는 것은 음양학설상 삼합(三合)의 설과 일치된다."라고 하였다. 그런대로……같고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평가하기를 "그는 집에 거처하기를 잘하였다. 처음 소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였고, 조금 더 장만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갖추었다.' 하였고, 부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하였다.[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論語 子路》 높고……생각하네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진(晉)나라 헌문자(憲文子)가 저택을 완성하자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이때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美哉輪焉, 美哉奐焉!]' 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윤(輪)은 높고 큼을 말한 것이고, 환(奐)은 많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영차 원문의 '아랑위(兒郞偉)'는 '어영차'의 의성어로, 상량을 어영차 올린다는 뜻이다. 또는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상량문에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라는 설이 있다.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옛날에 집을 지을 때 길일을 택하여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떡이나 기타 잡물(雜物)을 싸 가지고 와서 축하하면서 이것을 장인(匠人)들에게 먹인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떡을 대들보의 상하 사방으로 던지면서 상량문을 읽고 축원을 한다. 《文體明辯附錄 卷13 上梁文》 강루(降婁)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규성(奎星)과 누성(婁星) 두 별이 위치한 자리를 말한다. 춘분(春分) 무렵 초저녁에 나타난다. 추로(鄒魯)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예교(禮敎)와 학문을 숭상하는 지방을 일컫게 되었다. 무민(婺閩) 무원(婺源)과 민중(閩中)의 병칭으로, 무원은 주자의 선대 고향이고 민중은 주자의 출생지인데, 곧 주자를 가리킨다. 저본의 '嫠'는 '婺'의 오자로 보고 수정하였다. 청전(靑氈)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이나 가문의 전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 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羲之列傳 王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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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음당(陰黨)이 선사의 원고를 고친 죄를 문식(文飾)하여 말하기를 "선사의 오묘한 도와 정밀한 의리는 문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만약 우리 몇 사람이 선사께서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전수한 것으로 개수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원고를 완성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호라! 선사의 80년 동안 진리를 쌓은 공부를 문사가 당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겨서 반드시 저들의 개수와 보완을 기다린 후에 완성된다는 것입니까? 더욱 지극히 통절합니다. 陰黨文飾其改稿之罪曰, 先師之妙道精義, 有非以文字蓋者, 若非吾輩幾人以口傳心授者, 改補之, 稿不得完云.鳴呼.曾謂先師八十年眞積之工, 辭不足達其意, 必待渠輩改補而後得完乎.尢極痛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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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올해도 남은 날이 많지 않습니다. 하늘의 세월은 날마다 줄어들고, 세상의 어두움은 날로 심해지며, 머리털의 상설(霜雪)은 날로 더해지고, 눈앞의 죽음은 날로 핍박해 옵니다. 매번 송구봉(宋龜峰)의 '흉중의 계책은 끝내 무용하니 천하에 남아가 다신 살지 못하리라'는 시구를 낭송하면 비장하고 격렬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그대의 회포도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새해에 만남은 정히 어느 곳일는지요. 바람을 맞으며 서글플 뿐입니다. 此歲又無多月矣.天之歲月日減一日, 世之黑暗日甚一日, 鬂邊霜雪日添一日, 眼前溝壑日迫一日.每誦宋龜峰胷中大計終無用.天下男兒不復生之句.未嘗不悲壯激烈.想高懷之亦一樣也.新歲常着, 定在何地.臨風冲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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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房玉範 丁卯 옛 사람들은 방소(方所)없이 널리 배워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섬기며, 돌아가시면 심상(心喪) 3년을 입는다.67)'라는 말을 보면 군부(君父)와 똑같이 존숭했으니 타인을 재차 스승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후세 사람들은 유현(儒賢)들에게 두루 배사(拜師)할 때마다 사제 관계를 정하는데,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가 죽은 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이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에게서 학업을 마쳤는데도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이는 본받을 만합니다. 더구나 선사의 가르침에, 앞서 이미 한 스승을 함께 섬겼으면 지금 더 이상 사제 관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그 도리가 더욱 정밀합니다. 古人雖博學無方而無常師, 若其服勤至死, 心喪三年, 與君父同尊之, 師宜不再稱於人也. 後世之歷拜儒賢, 輒定師生者, 未知其得當也. 近齋沒後, 梅山卒業于老洲而不稱師弟, 此可法也. 而況先師之訓, 乃謂前旣同事一師則不宜今復爲師生也, 其義尤精矣. 죽을……입는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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