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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읽음 6월 觀史 【六月】 처연한 바람 슬픈 비에 개인 날 없어 悽風悲雨無日晴크게는 나라를 무너트리고 작게는 성을 공격하네 大之屠國小攻城흥하고 망함은 하늘의 때가 정한다 말하지 마라 興亡莫道天時定성패는 모두 사람의 일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盛敗總由人事生천지가 뒤집혀도 흙과 지푸라기로 돌아가고 揭地掀天歸土芥용호가 싸워도 모기와 등에처럼 되었지 驤龍鬪虎等蚊蝱사천 년 이래 어지러운 세계에 四千年來紛紛界진정한 영웅 몇 명이나 이름 남겼던가 眞正英雄幾有名 悽風悲雨無日晴,大之屠國小攻城.興亡莫道天時定,盛敗總由人事生.揭地掀天歸土芥,驤龍鬪虎等蚊蝱.四千年來紛紛界,眞正英雄幾有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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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천 김 어른 형재 이 방문하셨기에 무신년(1908) ○이하 같다. 鶴川金丈【衡載】見訪 【戊申○下同】 팔도의 혼란한 거리 이 시절 이르러 八表昏衢到此時정정하신 학천 어른 함께 돌아오셨네 亭亭鶴老可同歸구월에 한 번 이별하고 삼 개월 지나 九秋一別經三月섣달에 서로 만났으니 석양빛 애석하다 臘雪相逢惜落暉고상한 취미에 도원량의 국화 응당 심으시고78) 高趣應栽元亮菊가난을 편히 여기니 중유의 옷 부끄럽지 않네79) 安貧不恥仲由衣신선 같은 별장이라 영주산이 근처임을 알겠으니 仙庄知是瀛山近창 앞에서 오래 마주하니 푸른 산빛 떨어지네 長對牕前滴翠微 八表昏衢到此時,亭亭鶴老可同歸.九秋一別經三月,臘雪相逢惜落暉.高趣應栽元亮菊,安貧不恥仲由衣.仙庄知是瀛山近,長對牕前滴翠微. 도원량의……심으시고 원량은 진(晉)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의 자이며, 그가 국화를 심은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가난을……않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빈부에 마음을 동요하지 아니하고 도(道)에 나아가는 자로(子路)를 칭찬하여 "해진 솜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같이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아마 자로일 것이다.〔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 其由也與〕"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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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탄식 偶歎 늙은 농부 기꺼이 따르니 번지를 배운 것이요127) 甘從老圃學樊遲아버지의 장작을 지지 못했으니 자사께 부끄럽네128) 未荷親薪愧子思속절없이 반평생 보내고 이룬 것 없어 遽遽半生無所就나의 반백 머리에 서쪽 바람 불어 흔드네 西風拂我二毛吹 甘從老圃學樊遲,未荷親薪愧子思.遽遽半生無所就,西風拂我二毛吹. 늙은……것이요 원문 '번지(樊遲)'는 공자의 제자이다. 번지가 일찍이 곡식을 심어 가꾸는 일을 배우기〔學稼〕를 청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吾不如老農〕" 하였고, 번지가 또 채소 가꾸는 일을 배우기〔學圃〕를 청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吾不如老圃〕"고 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論語 子路》 아버지의……부끄럽네 자식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지 못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孔叢子 記問》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연로하여 손자 자사에게 "아버지가 장작을 갈라놓았으나, 그 아들이 짐을 질 수 없구나.〔其父析薪 其子不克負荷〕"라고 하니, 자사가 짐을 지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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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승 종섬 이 보낸 시에 화답함 和金允升【鍾暹】見贈 서로 인사했던 날을 생각해보니 追思傾蓋日순식간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네 忽忽送年靑금단129)의 소식 아직 보지 못했는데 未見金丹報낙엽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 幾驚落木聲나라가 달라져 마음도 아픈데 傷心疆土異만나볼 수 없어 머리도 질끈하네 疾首跡蹄橫저물녁에 찬 비가 매교에 내리니 寒雨梅橋夕한 잔 술에 만고의 정 부쳐본다 一杯萬古情 追思傾蓋日,忽忽送年靑.未見金丹報,幾驚落木聲.傷心疆土異,疾首跡蹄橫.寒雨梅橋夕,一杯萬古情. 금단 도가에서 불로장생하는 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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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명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楊克明 戊辰 편지를 받고 그대 선조의 문집이 인출된 곡절을 다 알았습니다. 세상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된다는 것이 이런 경우입니다. 저도 전일에 원대하지 않은 견해로 정력을 망령되이 허비한 것을 이제 와서 뒤늦게 후회한들 미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은 발문은 간행된 판본에 넣어서는 안 되고 변란 후에 스스로 교정한 것을 인증하여 본 초고에 회송하시는 것이 참으로 옳을 것입니다. 대저 이 일은 그대가 궁핍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주관할 수 없음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니 정상(情狀)과 사실이 보지 않아도 불 보듯 합니다. 일이 잘못된 것이 그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데도 어찌 어른을 끊었다는 죄로 스스로를 질책하시는지요? 承書備悉尊先集印出曲折.所謂世間事不如意者, 十常八九者此也.鄙之前日以不遠之見, 妄費精力者, 至今追悔莫及.所撰跋語, 不可使入印本, 而自證校正於變亂之後, 本草回送, 至可至可.大抵此事, 總由高明貧乏, 不能自主致然, 情狀事實, 不見若火.事不由高明, 何可以絶長者之罪, 自訟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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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과 최여중이 찾아오기에 2수 田士狷、崔汝重見訪【二首】 아득한 이별의 회포에 세월을 느끼니 別懷渺渺感年光그대들이 면장509) 깨뜨려주길 늘 생각하네 每想高論破面墻빗속에 머물게 된 인연이 참으로 유쾌하고 雨裏留緣眞快適책 속에서 본 시구가 더욱 향기로워라 卷中詩句更芬芳길이 운당포에 삼수510)의 슬픔을 남기는데 長敎篔鋪悲三秀소동파는 어디서 한쪽의 미인 바라봤을까511) 何處坡仙望一方그저 총총히 왔다 다시 떠나가느라 只恐悤悤來復去이단512) 막는 사업을 마치기를 잊을까 걱정이네 距閑卒業付遺忘겨울철에 백 리 길 찾아오기 쉽지 않은데 不易冬天百里尋늙은 얼굴로 마주하니 세한의 마음513)일세 蒼顔相對歲寒心벽에 걸린 등불은 밤새도록 깜박거리고 壁燈明滅終宵在창가에 뜬 달은 은근히 높은 곳에 이르네 牕月殷勤特地臨널리 듣고 많이 본 사람 벗하면 유익하단 말 참으로 믿음직하고 定信聞多曾有益사귐을 잘하여 오래되어도 공경한다는 것 생각했네 更思交善久而欽통쾌하게 읊지만 도리어 참된 뜻을 방해하니 劇吟還覺妨眞意뜰 앞 한 자 깊이 눈 속에 앉아서 잊었다네514) 坐忘庭前尺雪深 別懷渺渺感年光, 每想高論破面墻.雨裏留緣眞快適, 卷中詩句更芬芳.長敎篔鋪悲三秀, 何處坡仙望一方?.只恐悤悤來復去, 距閑卒業付遺忘.不易冬天百里尋, 蒼顔相對歲寒心.壁燈明滅終宵在, 牕月殷勤特地臨.定信聞多曾有益, 更思交善久而欽.劇吟還覺妨眞意, 坐忘庭前尺雪深. 면장(面墻) 담장을 마주하고 섰다는 뜻으로, 학문을 하지 않아서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처럼 눈앞이 꽉 막혀 아무런 이치도 알지 못함을 이른다. 공자(孔子)가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詩)를 배울 것을 권하며 말하기를, "너는 주남과 소남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과 같게 된다.[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운당포(篔簹浦)에 삼수(三秀) 삼수는 일 년에 세 번 꽃이 피는 것으로, 영지(靈芝)의 다른 이름이다. 주자가 운당포란 곳을 지나다가 그곳에 적혀 있는, "찬란한 영지여 일 년에 세 번 줄기가 뻗도다. 나는 홀로 어찌하여 뜻이 있으나 이루지 못하는가.〔煌煌靈芝, 一年三秀.予獨何爲, 有志不就?〕"란 구절을 보았는데, 40년 뒤에 다시 그곳을 지나다 보니 그 구절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지난 일을 회상하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소동파(蘇東坡)는……바라봤을까 소동파는 송(宋)나라 소식(蘇軾, 1037~1101)을 말한다.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당송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로는 《소동파전집》이 있다.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아득하고 아득한 내 마음이여, 하늘 한쪽의 미인을 바라보도다.〔渺渺兮余懷, 望美人兮天一方.〕"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미인은 임금을 가리킨다. 이단 《맹자》〈등문공 하(滕文公下)〉의 "선성의 도를 보위하여 양묵을 막는다.〔閑先聖之道 距楊墨〕"에서 나온 말로, 이단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세한(歲寒)의 마음 곤궁함 속에서도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하여, 시련이 닥친 뒤라야 절의를 지키는 군자의 본모습이 확연히 드러남을 비유하여 말하였다. 앉아 잊었다네 원문의 '좌망(坐忘)'은 도가(道家)의 용어로, 물아(物我)를 다 잊고 도(道)와 합일(合一)하는 정신의 세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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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金 己卯 지난번에 편지를 보낸 이후에 다시 선사가 신유년 동짓달에 이기환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보았는데, 또 적통을 당신의 조부에게 전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대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에게 와서 교유한 자 중에서 오직 김덕경(김준영) 한 사람이 도를 배반하지 않고 뒷날을 기다릴 가망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갑자기 죽었으니, 매우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나머지 여러 제자들은 각각 하나의 장점은 있지만 또 치우친 결점이 없지 않다. 잘 모르겠으나, 훗날 과연 정맥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삼가 살펴보니, 이 편지는 선사가 죽기 1년 전에 쓴 것입니다. 저쪽 사람들이 적통을 음성의 오진영에게 전했다고 주장하는 말이 어찌 타당하겠습니까?】 이 편지 또한 원고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매우 한스럽습니다. 이제 특별히 뒤미처 고하는 것은 부록에 넣기를 바라서입니다. 向日發書後, 復覓得先師辛酉至月與李起煥書, 又有言傳統於尊王考者.其書畧曰: "從余遊者, 惟金德卿一人, 可望其不畔乎道, 而有待於後者, 不幸遽已逝矣, 深可痛悼.自餘諸子, 各有一長, 而又未免於偏駁之病, 不知異日果能不失正脈否?"【謹按, 此書在先師下世前一年矣.一邊人傳統陰吳之說, 豈所當乎?】此書亦不及入稿, 甚可恨也.今專追告者, 欲其幷入附錄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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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與靜齋田丈 甲戌 갑술년(1934)옛날 정미년(1907)에 임경소(林敬所) 어른이 내방하여 사문의 언행과 사실을 부탁했을 때 곁에 모시고 있어서 자세히 기억하는데, 돌아가신 뒤의 연보를 준비하시며 "이 이전의 것은 내가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집안에 자연 편을 이룬 책자가 있을 듯합니다만 이 어른이 죽은 후로 가사가 완전히 쓰러졌다고 하니, 과연 보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찾아서 얻어두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昔丁未年間, 敬所林丈來訪, 託以師門言行事實, 侍側詳記, 用備身後年譜曰: "自此以前, 吾有所錄." 想其家自有成編冊子, 而此丈沒後, 家事蕩然云.未知果能保在, 詳探求得, 甚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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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존장자 율재공 형관 을 뒤늦게 애도함 追挽宗老栗齋公【炯寬】 늘 겸손하사 옷을 이기지 못하는 듯209) 謙謙不勝衣신중하사 말에 능하지 않은 듯210) 恂恂不能言너그러운 고인의 마음이여 休休古人心아름다운 자질은 본래 타고난 것 美質稟自然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여쭤봤더니 所求問何事이십 년간 구산의 문하211)에 있었네 卄載臼山門구옹께서 홀연 돌아가시더니 臼翁忽騎箕뒤이어 선생께서도 돌아가셨구나 後先陪九天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했으니 多少未卒業다시 중천에서 강학하겠지 也應講重泉뿌리도 같고 배움도 같아 同根兼同學애사를 지음에 눈물 흐르네 題哀淚沾巾 謙謙不勝衣,恂恂不能言.休休古人心,美質稟自然.所求問何事?卄載臼山門.臼翁忽騎箕,後先陪九天.多少未卒業,也應講重泉.同根兼同學,題哀淚沾巾. 옷을……듯 몸가짐이 매우 공근(恭謹)하여 겁약(怯弱)한 것처럼 보이고 말을 늘 근신(謹愼)하여 어눌한 것처럼 보일 정도라는 것이다. 주공(周公)이 부친 문왕(文王)을 섬길 때에 너무도 공손하여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듯하고 말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듯했다.〔身若不勝衣 言若不出口〕"라고 했다는 전거가 있다. 《淮南子 氾論》 신중하사……듯 원문 '순순(恂恂)'은 《논어》〈향당(鄕黨)〉의 "공자가 향당에 있을 때에는 신중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였다.〔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에서 인용한 말이다. 구산의 문하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별호(別號)가 구산(丘山)이므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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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 어른께 올림 呈蒼巖丈 큰어른께선 굴레 벗어나 숲속 언덕에 자리잡고 碩人寬軸卜林邱문 닫고 수년 동안 늘그막의 발자취 거두네 閉戶多年晩跡收긴 날 맑은 바람 누각 안에 생기고 永日淸風生閣裏온 하늘 갠 달이 누각 꼭대기에 오른다 一天霽月上樓頭강호에선 흰머리로 세속 일 거의 없는데 江湖白髮稀塵事서울에선 붉은 깃발로 옛유람이 있겠지 洛陌朱旛屬舊遊가련토다 영웅호걸도 늙음을 어찌할 수 없으니 可惜英豪無柰老세월의 화려함도 또 기다려주지 않구나 歲華又是不淹留 碩人寬軸卜林邱,閉戶多年晩跡收.永日淸風生閣裏,一天霽月上樓頭.江湖白髮稀塵事,洛陌朱旛屬舊遊.可惜英豪無柰老,歲華又是不淹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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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 익유 과 이별함 別洪韋軒【翼裕】 옛 겸와노인 떠올리니 憶昔謙窩老늠름한 세한의 소나무 같아라 凜凜歲寒松천리 우뚝한 교남의 길에서 千里嶠南路외람되이 창동리를 찾아오셨네 枉過滄之東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친은 恭惟我先子강직한 고인의 풍모 있었다네 侃侃古人風한 번 만남에 지기를 허락하자 一見許知己마음과 취미는 또 어찌나 같은지 氣味一何同교유 뜻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珍重定交意천년 마칠 것을 함께 기약했지 共期千載終이러한 분과 그날 맺은 것을 斯翁當日契추억하니 한스러움 끝없어라 追念恨無窮화산의 흰 눈 속에서 華山白雪裏악수하며 그대 만났지 握手與君逢두 집안 모두 부모님 여의어서132) 兩家蓼莪通말할 때마다 가슴에 눈물 흘리네 言之淚沾胸오직 시와 예의 가르침 있어 惟有詩禮訓집 안에 가득하였네 洋溢家庭中돌아가 각자 힘을 써서 歸去各努力다만 그 덕이 숭상해지길 구하네 但求厥德崇부모의 신령은 어둡지 않을 것이니 親靈應不昧구천에선 그때마다 기쁜 모습 보이리라 九原動喜容아득히 먼 관서와 호서에서의 이별이여 落落關湖別한마디 말에 온갖 생각 들도다 一言意萬重 憶昔謙窩老,凜凜歲寒松.千里嶠南路,枉過滄之東.恭惟我先子,侃侃古人風.一見許知己,氣味一何同!珍重定交意,共期千載終.斯翁當日契,追念恨無窮.華山白雪裏,握手與君逢.兩家蓼莪通,言之淚沾胸.惟有詩禮訓,洋溢家庭中.歸去各努力,但求厥德崇.親靈應不昧,九原動喜容.落落關湖別,一言意萬重. 부모님 여의어서 원문 '육아(蓼莪)'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인데, 이 시의 내용이, 효자가 자기 어버이를 끝내 잘 봉양하지 못한 것을 상심하여 부른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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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보에게 보냄 정축년(1925) 與文聖甫 丁丑 〈순전(舜典)〉에 사람의 범죄를 논함에 생재(眚灾)와 호종(怙終)의 구분이 있었습니다.123) 생재란 알지 못하고 과오로 범한 것이고, 호종(怙終)은 알고도 일부러 범한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재판관이 사람의 죄를 판단하여 내보내거나 집어넣을 때에 법에 근거하지 않고 죄를 판단하는 경우에도 생재와 호종을 구분의 있습니다. 유죄임을 알지 못하고 잘못 내보내거나 혹은 무죄임을 알지 못하고 잘못 집어넣는 것은 생재입니다. 반면에 유죄임을 알고서도 고의로 내보내거나 혹 무죄임을 알고서 고의로 집어넣는 것은 호종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간행을 인가한 뜻으로 선사를 무함하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깊어지고 있는데, 알지 못하고 잘못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좌하가 이미 선사는 분명히 인의(認意)가 없었다고 말했으니, 또한 그가 선사를 무함한 것을 깊이 죄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론하여 성토하지 않고, 또한 극히 존중하였으니, 좌하는 알지 못하고 잘못 내보낸 것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아니면 알고서 고의로 내보낸 것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스스로 알고 있는 밝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舜典》論人之犯罪,有眚灾、怙終之分.眚灾者, 不知而誤犯; 怙終者,知之而故犯也.僕謂士師之出入人罪不以法而以至於罪者,亦有眚灾、怙終之分.不知其有罪而誤出,或不知其無罪而誤入者,眚灾也; 知其有罪而故出,或知其無罪而故入者,怙終也.今人之誣師以認意,愈往愈深,則非不知而誤犯者.座下旣謂先師分明無認意,則亦深罪其誣師矣.然而不辨討之,又極尊之,未知謂座下不知而誤出可乎? 知之而故犯可乎? 願聞自知之明鑑. 순전(舜典)에……있었습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생재(과오와 불행으로 지은 죄)란 풀어 놓아주고, 호종(믿고 끝까지 재범하는 자)이란 죽이는 형벌을 하였다.[眚灾肆赦, 怙終賊刑]"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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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경진년(1940) 與崔汝重 庚辰 그대의 선조 만육(晩六)선생이 우산(牛山)을 팔았다는 설이 수백 년간 유전되면서 충절에 누가 됨이 많았습니다. 오직 그대가 처음으로 변명(辨明)한 의론을 발명하여 제종(諸宗)이 하나로 돌아가 각각 문자를 두게 되었고, 사우(士友)들에게 돌이켜 청하여 돕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후에 의혹이 제거되고 사라져서 마치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으니 비로소 선생의 대의가 드러났습니다. 그대는 진실로 훌륭한 후손이라 이를 만하니 선생의 신령께서 어찌 "나에게 후손이 있도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 간옹(艮翁)선사의 인의인교(認意認敎)에 대한 설은 후래에 누가 나라 안 사림(士林)들을 모아 한마디 말로 변명(辨明)하여 그대가 우산의 문건에 대한 것처럼 할 수 있을까요? 비록 그러하나 일이 기왕에 그런 사실이 없었으니 훗날 이치가 끝내 밝혀질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나는 그대 선조의 우산에 대한 설이 깨끗하게 드러난 것으로, 우리 선사의 인의인교(認意認敎)에 대한 설도 훤하게 밝혀질 날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다만 사람이 통하고 막힘을 만나는 것은, 산자나 죽은 자를 막론하고 각각 길고 짧은 시운이 있고, 하늘이 중론(衆論)을 결정하는 것은 고금을 살펴보건대 또한 빠르고 늦은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 선조의 높은 절개가 어찌 그리 오래도록 허물이 되다가 오늘날에야 비로소 밝게 드러났겠습니까? 아! 우리 선사의 일이 훤히 드러날 날이 조만간 가까이 있을 것인가? 먼 훗날에 있을 것인가? 허전한 마음에 한 숨 한번 짓습니다. 尊先祖晩六先生買牛山之說, 流傳數百年, 有累忠節者多矣.惟高明始發辨明之論, 諸宗歸一, 各置文字, 轉請士友而助之.今而後疑祛惑破, 若披雲覩靑, 先生之大義始著.若高明者眞可謂肖孫, 而先生之靈, 豈不曰余有後乎? 嗟呼! 我艮翁先生認意認敎之說, 後來何人能合國中士林, 而一辭辨之, 如高明之於牛山券也.雖然, 事旣無實於前, 則理終有明於後, 在所必然.吾以今尊先牛山說之破露, 亦知先師認敎說之掃淸有日也.但人之遭通塞, 無論存亡, 自有久近之運, 天之定衆論, 歷觀古今, 亦有早晩之時.不然以尊先先生高節, 何其久見累而今始白哉? 嗟呼! 我先師白脫之日, 在近而早耶, 久而晩耶, 爲之曠然一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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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사유지 첨회소에 보냄 與柳川祠遺址僉會所 가만히 생각할 때, 유천사(柳川祠)는 사현(四賢 ,네 분의 현자)을 타향(妥享)한 곳입니다. 사현을 타향한 것은 그들이 도로써 사람을 착하게 하여 공로가 후학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우(祠宇)는 통칭하면 또한 서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서원은 학자가 책을 읽는 곳입니다. 선현에게 도가 있으면 존중하고, 존중하면 제향을 하지만 서원은 오로지 타향을 위해 개설한 것은 아닙니다. 서원이 비록 조정의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하더라도 강학까지 금지하지는 않았으니, 어찌 제향을 폐지했다는 이유로 강학까지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서원도 훼철을 면하지 못했으나, 사현의 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서원에 남은 재산도 역시 본래 적지 않습니다. 회비를 절약하여 몇 년 동안 경영한 뒤에 옛터에 강당을 건축하고 사현의 도를 암송하며 본받으면 그 존중함과 사모함이 또한 서원에서 제향 할 때와 같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겨를이 없어 하지 못했던 것은 이미 흠결이거니와 오늘날의 급선무는 아마도 그만두지 못할 것입니다. 잘 모르겠으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竊以柳川祠, 四賢妥享之所也.妥享四賢, 以其以道淑人, 功在後學也.夫祠宇, 通稱之則亦可謂書院.書院, 學者讀書之所, 而爲先賢之有道, 斯尊之; 斯尊之, 斯享之, 院非專爲妥享設也.院雖以朝令見撤, 非幷與講學而禁之, 則豈可以廢享而幷廢講學乎? 是院亦不免撤, 然四賢之道, 未墜於地, 院之遺財, 亦自不少.節縮會費, 幾年經紀, 築講堂於舊址, 誦法四賢之道, 則其爲尊慕也, 亦猶夫院享時矣.前所未遑, 已是欠事, 今日急務, 恐不可已, 未知僉意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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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전장에게 답함 答鋉心田丈 戊寅 무인년(1938)저번 편지에서 변론한 것에 대해 혹 함재(涵齋)와 제가 비석에 관한 일을 금지하지 못하는 것은 시대의 추세를 따르는 논의에 통하지 못해서인가 의심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래도 그 내용을 깊이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당초에 비석에 관한 설들이 분분했던 것은, 우리 종중이 크게 다툰 뒤에 비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당일에 함재 집안의 주장은 모금에 대한 여론을 수습하는 것이었는데 기필코 빗돌을 갈아 다듬고자 한 이후에 다툼이 그쳤습니다.【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청할 때 창암과 함재 두 어른이 스승이신 간옹 앞에서 정했습니다.】저는 함재 어른 집안과 절친했기 때문에 함께 미움을 받았습니다.【저는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세운 이후에 처음 보았습니다.】그렇지 않다면 어찌 비석을 세우고 20여 년이 지나 간옹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비로소 그 단초가 발생할 리가 있겠습니까? 내용이 이와 같으니, 함재와 제가 금지하는 것이 죽도록 투쟁하여 힘이 다한 이후에나 가능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른의 말씀과 같으니, 어찌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마땅히 만나기도 하고 편지도 보내 이치를 근거하고 말을 바르게 하여 그저 선조를 폄하하고 스승을 존중한 비정한 사람이란 비난만 얻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또한 다시 어찌하겠습니까? 종중에 관한 내용은 바깥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드러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곡절은 우리 동문으로 있는 사람이 끝내 몰라서는 안 되는 점이 있고 또 어른은 문정공의 외손이니, 다른 사람과 자별하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고합니다. 비밀리에 보고 묵묵히 이해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向書中所辨, 或疑涵齋與生, 不能禁止碑事, 以不通時色之論者, 得之矣.然猶未深悉其內容也.當初碑說紛紜, 因鄙宗中大競爭後, 以爲碑.是當日, 涵齋家所主, 收拾巴金餘論, 而期欲磨之而後已.【立碑請文時, 鬯涵兩丈定師艮翁前】 生則爲涵丈家所親切.故幷與惡之也.【生於立碑建閣後始見】 不然, 豈有立碑二十餘年, 艮翁下世之後, 始發其端之理乎? 內容如是, 涵齋與生禁止, 非所可說抵死爭闘, 力盡而後可矣.然垂死學者, 誠如尊喩者, 何能有爲? 只當以面以書, 據理正言, 至得貶祖尊師非情之斥, 而不悔焉而已, 亦復奈何? 宗中內容, 不欲向外人道.故尙不佈白.然念此曲折, 在吾同門, 終有不可不知者, 且丈是文貞公外孫, 則與他自別, 故敢此仰告, 秘覽默會,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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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근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吳學根 ○乙亥 삼가 들으니 어른께서 편찬한 《호남지(湖南誌)》에 저의 이름이 〈학행편(學行篇)〉에 수록되어 이미 인쇄되었는데 당초에 최익구(崔益求) 어른이 단자를 갖추어 넣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저의 종족 연두(煉斗)가 어른으로부터 직접 듣고 전해준 것인데, 이 사람은 믿을만하고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잘못 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학행〉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중대한데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최씨 어른의 뜻이 무슨 의도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처럼 형편없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감히 함부로 이 '학행'이라는 명칭에 이름을 넣어 저의 마음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이에 저의 아들을 특별히 보내어 사실대로 아뢰니 이전에 인쇄된 저의 이름이 실려 있는 조목을 즉시 도려내어 보냄으로써 저의 분수를 편안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맹자는 "자신의 악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14)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와 크게 관계되는 바입니다. 아울러 저의 심정을 살펴주시고 답장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窃聞丈所編《湖南誌》中, 生之姓名入於〈學行〉篇, 已經印出. 而當初崔丈益求氏具單請入云. 鄙宗煉斗親聞於丈而傳之者也, 此人信實, 應非誤傳. 大抵〈學行〉題目何等重大, 而生以何人厠入其間乎? 崔丈之意, 未知出於何意, 而以生無狀決不敢冒當此名, 欺吾靈臺而取人笑囮矣.茲以專遣家兒, 具實仰稟, 切乞前印生之姓名載錄條, 即爲割送, 俾安賤分. 孟子曰 : "無羞惡之心, 非人也." 此係生之羞惡有無之大關. 并望下諒, 更懇回示. 자신의……아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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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첨좌에게 답함 答丁氏僉座 저는 매우 못났으니 언급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 여러분들께서 먼저 훌륭한 편지를 보내고 여러분들의 선조 유헌선생(丁熿)의 전집을 보내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감격스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여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선생께서는 충성이 완벽하고 의리가 정밀했으니, 마땅히 하서 김선생(金麟厚)과 더불어 을사사화 때 절개를 온전히 한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저의 평소 견해가 이와 같습니다. 맹자가 "그 시를 외고 그 책을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114)라고 했으니, 심지어 이미 그 사람을 아는데 그 시를 외고 그 책을 읽지 못한다면 더욱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이제 여러분들의 은혜로 인하여 이런 것을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또 생각하건대, 선생이 선생이 된 이유는 《춘추》라는 위대한 경전을 따랐기 때문이니 전집 중에서 첫 번째 의리도 이것일 따름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춘추》의 의리는 말할 수 있는 곳이 없고 유학자라 이름 한 자들도 또한 대부분 모르니 진실로 개탄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이 책이 발간‧배포되어 사람들이 읽는 것을 보니 거듭 세교(世交)를 위해 다행입니다. 제가 비록 못났지만 감히 경건히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澤述無似爲甚, 靡所齒數.豈意僉座先施巍牘, 惠以尊先祖游軒先生全集? 感與悚幷, 罔知攸謝.竊念先生忠盡義精, 當與河西金先生, 同爲乙巳完節, 區區平日所見如此.孟子曰: "誦其詩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至於既知其人, 而不得誦其詩讀其書, 則尢當如何哉? 今因僉執事之惠, 得免於是者, 爲可幸也.又念先生之所以爲先生, 以用《春秋》大經》, 而全集中第一義蓋是已.見今之世,《春秋》之義, 無地可講, 而以儒爲名者, 亦多昧然, 誠用慨歎.乃於此時, 得見是書之刊布, 人得而讀之, 重爲世敎幸也.顧雖無似, 敢不虔圖? 期不負惠也. 그 시를……되겠는가 《맹자(孟子)》 〈만장(萬章)〉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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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수성에게 답함 경오년(1930) 答金振玉 秀聲 庚午 대저 뜻이란 백행(百行)의 근원이요, 만선(萬善)의 기초입니다. 어찌 일찍이 근원 없이 흐름을 구하고, 기초 없이 집을 축조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천루한 내가 지난번 정성스럽게 알려준 것과 그대가 이번 편지에서 누누이 말한 것이 모두 이 때문입니다. 열명(說命 《서경》의 편명)에 이르길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오직 어렵다."라고 하였고, 주자서에서도 "만약 이같이 하는 것이 병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와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뜻이 정성스럽지 못함이 병통임을 알고서도 다시 옛 자취를 답습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이는 나아갈 수 있는데도 스스로 선을 긋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나귀처럼 앞발자취만 즐겨 밟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앞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함께 원대한 경지에 나아가고자 하나 어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나와 그대가 깊이 반성해야 할 바입니다. 夫志者百行之源本, 萬善之基礎.曷嘗見無源而求流, 無基而築室者乎? 淺陋向告之懇懇, 高明今書之縷縷, 蓋以此也.〈說明〉曰非知之艱, 行之惟艱, 朱書曰若知如此是病, 不如此是藥.旣知志不誠之爲病, 而不免復蹈舊轍, 是能進而自畫, 甘作磨驢之踏, 舊跡也.雖欲偕進於遠大如前書之云, 豈可得乎? 此正吾與賢者之分外猛省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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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돗자리의 명 【임오년(1942, 대한민국24)】 細莞席銘 【壬午】 아, 이 자리 아버님이 짜셨지, 嗟玆席, 先人織;가늘어 곱고 배어 촘촘한 모습, 細而精, 緻而密;삼십 년 전의 일 마치 어제 같네. 歷三紀, 完如昨.아버님이 새기신 글자 차마 읽지 못하니, 父沒書, 不忍讀;어이하여 그러나, 손때 묻은 자국 때문이네. 胡爲然? 有手澤.이 물건 어찌 감히 곱게 아껴 是物乎, 豈不亦;마주 받드는 보옥처럼 간직하지 않으랴. 寶藏之, 愈拱璧.제사 때라야 꺼내 깔뿐 於祭也藉用,다른 일에는 감히 못 쓰리라. 或外不敢保.영력(永曆) 임오년 12월 15일, 아들 김택술 삼가 새김. 嗟! 玆席先人織細而精緻, 而密歷三紀, 完如昨父沒書不忍讀胡爲然有手澤是物乎? 豈不亦寶藏之愈拱璧於祭也? 藉用或外不敢保? 永曆壬午臘十五日, 敬爲銘, 子澤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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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밤에 간재 선생을 모시고 완남의 여관에 머물렀는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어 씀 除夕 陪艮齋先生 留完南旅舍 懷鄕有作 섣달그믐 밤 차가운 창가에 객의 마음 끝없으니 寒牕除夕客懷長여기부터 백 리 길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생각 때문 百里迢迢隔故鄕선묘에서 차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未參先廟點茶席고당에서 축수 잔을 올리지 못하네 不及高堂獻壽觴벗들 그리움에 꿈속에서나 만날까 노심초사하고 親朋有思應勞夢많은 제자 초대하여 얼마나 멀리 바라보았나 羣弟相招幾遠望다만 스승님 모시고 동문들과 가는 해 지키면서 秖賴陪師同守歲귀한 말씀 기쁘게 들었더니 시름 말끔히 사라지네 喜聽旨訣罷愁腸 寒牕除夕客懷長,百里迢迢隔故鄕.未參先廟點茶席,不及高堂獻壽觴.親朋有思應勞夢,羣弟相招幾遠望.秖賴陪師同守歲,喜聽旨訣罷愁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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