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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천상규에게 답함 임오년(1942) 答蘇芝泉尚奎 ○壬午 편지에서 말씀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선척(先戚)의 도리와 장유(長幼)의 분수로 헤아려 보면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의 부친과 조부 이상 여러 대가 장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극한 원통함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다른 사람의 회갑과 회근(回巹)15)의 잔치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하하는 시와 문장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을 운용하여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30년 동안 항상 줄곧 이런 법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은 치우치고 고루하게 되며 감정은 두루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여기니,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중도를 얻었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후에 스승의 원고를 읽었는데,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로 부친의 수연(晬宴)을 마련하지 못하고, 이어서 부친이 세상을 떠나 미처 효도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신 뒤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슬픔을 간직하고서 절대로 다른 사람의 수연에 대해 시나 서문을 짓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스승께서 먼저 저와 같은 마음을 터득하셨음을 알고는 저의 견해가 스승의 태도와 암암리에 부합함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제 와서 또한 감히 계율을 깨고 명에 부응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가련하게 여겨 주시고 심하게 책망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示意謹悉. 揆以先戚之誼․長少之分, 敢不惟命? 但念父祖以上累世無壽, 至冤貫心, 凡於人家周甲回?之宴, 非惟足自不能進步, 至於祝詩賀章, 心自不能運思. 故孤露後三十年來, 純用一切法. 然猶自以事涉偏固, 情闕周偏, 不自知此果得中與否.後讀師稿, 有以丙寅洋亂不得爲大人設晬宴, 而因哭風樹, 終身含恤, 絕不作人晬壽詩序之語. 然後始知先師之先獲我心, 而自幸淺見之亦與暗合也. 今亦未敢破戒副命, 或可哀矜而不深罪否? 회근(回巹) 회근례(回巹禮)로 혼인을 한지 6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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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일 立春日 따뜻한 동풍에 하늘에선 비 내려 㬉起東風雨太虛입춘의 기후가 늦은 봄과 같구나 立春天氣暮春如도부를 벽에 붙이는 건 전해오는 풍속이니 桃符貼壁傳遺俗태사가 임금께 올린 옛 글52)을 생각하네 太史呈君憶古書시골 노인은 자주 농사 풍년을 점쳐보고 野老頻占禾穀稔경서 읽는 서생은 또 백발 성글어질까 걱정하네 經生却怕鬢毛疏아이들이 다투어 기도하는 것을 도리어 막으니 還禁兒輩爭祈祝선을 쌓아야 결국 남은 경사가 있음을 알아서지53) 善積終知慶有餘 暖起東風雨太虛, 立春天氣暮春如.桃符貼壁傳遺俗, 太史呈君憶古書.野老頻占禾穀稔, 經生却怕鬢毛疏.還禁兒輩爭祈祝, 善積終知慶有餘. 태사가……글 덕을 베풀고 영(令)을 선포하여 경사를 행하고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예기》 〈월령(月令)〉에 "이 달에 입춘이 든다. 입춘 사흘 전에 태사가 천자를 알현하고 '아무 날이 입춘이니, 하늘의 성대한 덕이 목에 있습니다.'라고 아뢰면 천자가 곧 재계를 한다. 입춘날에 천자가 친히 삼공과 구경과 제후와 대부를 거느리고 동교에서 봄을 맞는다. ……재상을 명하여 덕을 펴고 법령을 온화하게 하며, 경축을 행하고 혜택을 베푼다.[是月也, 以立春. 先立春三日, 太史謁之天子曰, 某日立春. 盛德在木, 天子乃齊. 立春之日,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 以迎春於東郊.……命相布德和令, 行慶施惠.]"라고 하였다. 선을……알아서지 선대에 선을 행하여 덕을 쌓으면 그 후손이 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나머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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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跋 나의 벗 일신재(日新齋) 정공(鄭公)은 일찍 노사(蘆沙)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장려해 주는 은혜를 입었다. 그리하여 다른 제자들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었기에 성명(性命)의 오묘한 이치와 이기(理氣)의 미묘한 이치에 이르기까지 질의하고 문답하지 않음이 없어 환하게 마음에 얻은 것이 있었다. 이를 정성스럽게 가슴에 새겨 저버리지 않아 넉넉하게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확립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에게 들은 것으로 생도를 가르치니 생도들이 날로 늘어나 하분(河汾)1)과 호소(湖蘇)2)의 풍습이 있었다. 대개 그 조행이 순수하고 독실함과 논변이 정밀하고 확실함에 대해서 문하에 이른 선비들이 모두 참된 마음으로 기뻐하고 복종하여 종신토록 잊지 않았다. 이미 그 유문(遺文)을 간행하여 유포하였고, 지금 또 동문 제자(諸子)의 성명을 모아 1책으로 만들었으니, 강직하고 화락하게 나란히 시립하여 서로 칙려(勅勵)하는 듯하다. 스승이 이끌어 준 뜻을 저버리지 않고 신학문과 이단의 사설에 빠지지 않았으니, 이 문인록(門人錄)이 세교(世敎)에 관계되는 것이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대저 사제 간에 서로 의지하는 의리가 크니, 그 도를 선하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스승을 높여야 한다. 여지껏 그 스승을 높이지 않고 그 도를 선하게 한 자는 없었다. 제현들의 이 일은 또한 스승을 높이고 도를 선하게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 사문 준기(朴斯文準基)가 실로 이 일을 주관하여 그 족인(族人) 병해(炳海)를 시켜 나에게 한마디 말을 책 뒤에 써 주기를 부탁하게 하였다. 내가 "문인록에 어찌 발문을 쓰겠는가."라고 하니, 병해가 말하기를 "송사(松沙) 기 선생(奇先生)이 찬술한 행장이 늦게 나와서 원집(原集)에 부록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 문인록에 함께 실으려고 하니, 원하건대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내가 일신재에 대해서 동문수학한 우의(友誼)가 있기에 끝내 사양하지 못하였다.정묘년(1927) 9월 일 금성(錦城) 오준선(吳駿善)이 쓰다. 吾友日新鄭公。早登蘆沙老先生門。蒙被奬詡。得聞他弟子所不得聞者。以至性命之蘊奧。理氣之微妙。無不講質而答問。犁然有得於心。眷眷服膺而勿失。優入於道成德立之地。以所得於先生者。訓誨生徒。生徒日進。有河汾胡蘇之風焉。蓋其操履純篤。辨論精確。及門之士。皆心悅誠服。至於沒世而不忘。旣刊布其遺文。今又聚會同門諸子姓名。備載一冊。有若誾侃列侍。互相勅勵。不負師門遵迪之意。不爲新學邪說所移。是錄之有關於世敎者。曷可小哉。夫師資相須之義大矣。欲善其道。必隆其師。未有不隆其師而能善其道者也。諸賢此擧。亦可謂隆師善道者非耶。朴斯文準基。實主是役。使其族人炳海。屬余一言題其後。余謂門人錄安用序跋爲哉。炳海曰。松沙奇先生所撰行狀晩出。未及原集附錄。今將竝載是錄。願有以記之也。余於日新。有同門之誼。不得終辭。丁卯菊秋日。錦城吳駿善書。 하분(河汾) 수(隋)나라 왕통(王通)이 문제(文帝)에게 태평십이책(太平十二策)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황하와 분수[河汾] 사이로 돌아와 1000여 명의 제자를 가르친 고사가 있다. 《文中子世家》 호소(湖蘇) 호주(湖州)와 소주(蘇州)이다. 송(宋)나라 때 호원(胡瑗)이 일찍이 호주와 소주의 교수(敎授)가 되어 조약(條約)을 엄격히 정해서 제생(諸生)을 교도(敎導)하되, 경서(經書)의 뜻에 따라 학문을 닦고 행실을 힘써 숭상하게 한 것을 가리킨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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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열에게 작별하며 주다 4수 贈別丁金烈【四首】 멀리 떨어진54) 푸른 산속 집을 거듭 찾아가니 重尋七舍碧山居젊은이의 높은 기품 그 누가 그대와 같을까 年少高標復孰如백발로 남에게 미칠 선이 없음이 부끄러우니 白首愧無及人善어찌 그대 위해 띠에 쓸 가르침55)을 준비했으리오 何能爲子備紳書그대와 날마다 함께 기거함이 기뻤는데 喜君日日接興居이내 이별의 한이 생기니 어찌한단 말인가 別恨旋生其柰如단지 마음속에 간직한 뜻 같기를 바랄 뿐이니 只要所存歸一致무상하게 만나고 헤어짐을 굳이 쓸 것 없다오 無常聚散不須書지행을 함께 진전시키고 경에 거해야 하니 知行幷進敬爲居학문의 요결은 종전부터 늘 똑같았다오 學訣從前一轍如처음으로 공부에 착수할 곳을 찾고자 한다면 欲尋下工端始處사서와 육경 책을 익숙히 보아야 한다네 熟觀四子六經書인을 행함은 내게 달려 있고56) 편안한 집57)에 있어야 하니 爲仁由己作安居시작만 있고 끝은 없음보다 부끄러운 게 없다네 有始無終恥莫如간곡하게 권면하여 서로 힘쓰는 날에 勸戒丁寧交勖日석 잔의 이별주로 맹서의 뜻을 정하노라 三盃離酒定盟書 重尋七舍碧山居, 年少高標復孰如?白首愧無及人善, 何能爲子備紳書.喜君日日接興居, 別恨旋生其柰如?只要所存歸一致, 無常聚散不須書.知行幷進敬爲居, 學訣從前一轍如.欲尋下工端始處, 熟觀四子六經書.爲仁由己作安居, 有始無終恥莫如.勸戒丁寧交勖日, 三盃離酒定盟書. 멀리 떨어진 원문의 칠사(七舍)는 210리의 거리를 이른다. 사(舍)는 원래 머물러 유숙하는 것인데, 옛날 군대가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으므로 30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띠에 쓸 가르침 원문의 신서(紳書)는 중요한 말을 잊지 않도록 허리에 맨 띠에 적어 두는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듣고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큰 띠에 써서 기록하였다[書諸紳]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인(仁)을……있고 《논어》 〈안연(顔淵)〉에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편안한 집 인(仁)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고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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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 가로막혀 있으니, 더욱 마음이 아프네. 그러나 그대는 병이 들고 나는 얽매어 있으니 형세가 참으로 그렇게 되었네. 다만 그대 병이 조금 나아 이전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여 의심난 조목이 편지에 가득하니, 학문을 즐기는 독실함이 이와 같기에 대단히 기쁘네. 그러나 오랫동안 병을 앓은 뒤에 마땅히 한가롭게 노닐면서 성정(性情)을 함양하여야 하며, 모름지기 정신을 힘들게 하면서 괴롭게 궁리하여 조섭을 해쳐서는 안 되네. 이미 사색한 것이 있다면 또한 평소 대하는 사물에 나아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切問近思] 공부를 행하며, 반드시 성명(性命)의 허원(虛遠)한 것을 더듬어 상상할 필요는 없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한 여러 조목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으로 대략 답을 할 것이니, 만일 온당하지 않다고 여기면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성(性)은 곧 기(氣)이며, 기는 곧 성이다[性卽氣, 氣卽性]"4)라는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이(理)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네. 그러나 '이는[是]'이라고 하지 않고 '곧[卽]'이라고 하였으니, 또한 섞이지 않는다는 뜻도 볼 수 있네.이(理)에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기품에 맑음과 탁함, 순수함과 잡박함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악도 또한 성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의 발용에 과와 불급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이처럼 말이 절로 같지 않네.천하의 사물이 동(動)할 때 이(理)가 타고 기가 발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기가 동하여 이가 따르고 이가 동하여 기를 끼고 있는 때가 있겠는가. 면재(勉齋) 황간(黃幹)의 이 말은 본래 의심스럽네.천하에 성(性)이 없는 사물이 없으니 즉 또한 인(仁)이 없는 물건이 없네. 그러나 또한 사람의 인으로 사물에게 인을 책임 지워서는 안 되네.'의도가 없다.'는 말에서의 '의(意)'는 사사로운 의이네. 만약 의(意)자를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대학》에서 어찌 '뜻을 끊어버린다.'고 하지 않고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고 하였겠는가. 咫尺阻閡。尤庸悵然。然君病我縶。勢固然矣。但美痾稍間溫理舊業。疑難滿紙。其嗜學之篤如此。慰悅萬萬。然久愆之餘。正宜優閒遊泳以養情性。不須勞神苦索以害攝理也。旣有思索。且從日用事物上。下切問近思之功。不必摸想於性命虛遠之地。如何如何。諸條謹以鄙意略略塡去。如有未穩。更以回示也。性卽氣。氣卽性。此固理氣不離處。然不曰是而曰卽。亦可見其有不雜底義。理有善惡。以人之氣稟淸濁粹駁而言。惡亦不可不謂之性。以心之發用有過不及而言。言自不同。天下之動。無非理乘氣發。安有氣動理隨理動氣挾時節耶。勉齋此說。本涉可疑。天下無無性之物。則亦無無仁之物。然亦不可以人之仁。去責那仁。無意之意。是私意也。若以意字都作不好看。則大學何不曰絶意而曰誠意耶。 성(性)은……성(性)이다 《근사록》에 보이는 정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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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보냄 신미년(1931) 與李愼軒 辛未 근래에 존자께서 걸음하여 그사이 고창의 유영선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그가 스스로 와서 거절을 못했거나 길에서 만나 말을 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어찌하여 친히 몸을 굽혀 찾아가기까지 하신단 말입니까? 음성(陰城)의 오진영을 성토하는 일을 어른이 참으로 제창했고 "신헌이 또 일어남에 천백 명을 창도했다."는 말이 오진영의 편지가 아닙니까? 어른은 참으로 저쪽에서 뼈 속까지 호남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뼈가 이미 단단하지 않으니 살은 장차 스스로 떨어져나갈 것이다." 한다면 저들이 이미 잘못 안 것이고 어른도 듣기 싫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으로 그 자취를 본다면 혹 그렇기도 할 것입니다. 당여를 먼저 다스리자는 성토문은 어른이 함께 지은 것이고, 음성 오진영의 골수 몇 사람을 제외하고 다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른이 평소에 한 말입니다. 유영선이 비록 최원(崔愿), 김세기(金世基), 정운한(鄭雲翰), 박제철(朴濟喆)과 같지 않고 권순명과 김용승과는 틈이 있다고 하나 그러나 그는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큰소리로 말했으며, 오진영과 함께 스승의 원고를 고친 진주본 간행에 시종 일을 주선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사람이 음성 오진영의 골수 몇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는 자입니까? 삼가 어른께서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나는 유영선에게 오래된 원망도 없으며 어른에게 감히 하자를 찾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일이 대의(大義)와 관련되는데, 어른은 의리를 제창한 사람이고 유영선은 또한 저쪽의 명인이라 피차가 서로 함께할 즈음에 단지 어른 한 사람만 관계될 뿐만이 아닌 만큼 감히 경솔히 할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比聞尊駕間訪敞柳, 信然否? 彼自來而不拒, 遇諸塗而與言, 猶可也, 何至於親屈耶? 夫討陰之役, 丈實倡之, 愼又起, 倡千百人, 非震書乎? 丈, 固彼邊所認爲骨湖者.彼若曰: "骨已不硬, 肉將自脫", 則彼旣誤認, 丈又惡聞.然昧心見迹, 似或然矣.先治黨與之討文, 尊所共製也.骨陰幾人外, 不當盡絶, 尊所雅言也.柳雖與愿世翰喆不同, 又與權金有間, 然其謂震非誣師, 則衆中大言, 而與震終始周旋於改稿之晉印矣.未知此人不入骨陰幾人中者耶? 竊恐丈於此不及細思也.吾於柳非有舊怨, 於丈非敢索瑕, 特以事關大義, 而丈是倡義者, 柳亦彼邊名人, 彼此相與之際, 非但關尊一身, 而有不敢率爾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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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戊辰 무진년(1928)지난겨울에 답해주신 편지를 얼굴을 씻고 세 번 거듭 읽음에 더욱더 정당한 의리와 명확한 의론에 감복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을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치는 책임을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책임을 지우기까지 하신 것은 바로 맹자가 세 성인을 계승한 공과 같은 것이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마다 나서서 말할 수 있는〔人人能言〕' 대열에 참여해 있게 하고자 하신다면 감히 많이 사양하여 덕으로 사랑해주신 은혜를 저버리지는 않겠습니다.선사의 행장과 연보는 일찍이 임경소(林敬所) 어른을 믿고 있었으니, 일문(一門)이 부탁하는 뜻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맡은 바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른이 불행히도 먼저 돌아가셨고, 지금 또한 변고가 생긴 이후로 노성한 분 가운데 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일은 오직 우리 어른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빠를 시일 내에 생각하고 의논하여 곧바로 초안하여 큰일을 마치기를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근래에 호남의 유림이 공자의 가르침이 사라졌다고 애통해 하면서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를 세우고 시생에게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미 사라진 나머지에서 반이나마 구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이미 지극하고 마음도 서글픕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일은 성공할 만한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저 일인(日人)에게 해악을 받음을 면치 못할 우려가 있으니, 도를 붙들어 지키는 방도가 도리어 먼저 도를 굽히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사양하고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만, 감히 이렇게 우러러 질정합니다. 부디 밝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客冬下覆, 盥讀三復, 益服正當之義, 明確之論, 而至以閑闢之任, 責之無似者, 則此正孟子所承三聖之功者, 何敢當何敢當? 但欲參在人人能言之列, 則不敢多讓, 以負德愛之惠也.先師行狀年譜, 曾侍敬所林丈, 非惟一門之屬意, 亦其所自任者, 而此丈不幸先沒, 今且變出之後, 老成中, 無人可爲, 此日此役, 惟吾丈可以當之.幸早入思議, 隨得起草, 期卒大事之地, 如何?近日湖中儒林, 痛孔敎之亡, 立儒敎扶植會, 要侍生同事.其欲捄一半分於已亡之餘者, 意旣至矣, 情亦戚矣.然今日吾輩作事, 非惟無可成之望, 且有不免見累於彼人之慮, 則其所以扶道者, 乃先枉其道也.故辭謝不參, 而敢此仰質, 幸明敎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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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씨의 사계정사158)에서 일재159)ㆍ남명160)ㆍ월사161)의 시에 차운하다 房氏沙溪精舍次一齋南冥月沙韻 오백 년 내려온 가업이 우리나라에선 드문데 半千世業罕吾東문헌은 정사에서 징험하기에 충분하였네 文獻足徵精舍中현판 위엔 일찍이 선현들의 필적 많이 있고 板上曾多先輩筆창문 앞엔 벌써 열 아름의 소나무가 되었네 牕前已老十圍松종정162)에 새기던 그때 뜬구름은 엷었고 鼎鍾當日浮雲薄강학하여 서로 전하니 다듬은 옥처럼 영롱했네 講學相傳琢玉瓏시험 삼아 보니 사계에 끊임없이 물 흐르듯 試看沙溪流不盡덕 있는 가문에 끼친 음덕 또한 끝이 없어라 德門遺蔭也無窮 半千世業罕吾東, 文獻足徵精舍中.板上曾多先輩筆, 牕前已老十圍松.鼎鍾當日浮雲薄, 講學相傳琢玉瓏.試看沙溪流不盡, 德門遺蔭也無窮. 사계정사(沙溪精舍) 원래 방원진(房元震)의 조부로 호가 사계인 방응현(房應賢, 1524~1589)의 정사인데, 병화로 소실된 것을 방원진이 다시 수축하였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7에 〈사계정사기(沙溪精舍記)〉가 실려 있다.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으로, 일재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항지(恒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노진(盧禛)ㆍ김인후(金麟厚)ㆍ유희춘(柳希春)ㆍ기대승(奇大升)과 함께 '호남 5현'이라 일컬어졌다. 저서에 《일재집(一齋集)》이 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호이다. 자는 건중(楗仲), 다른 호는 산해(山海)ㆍ방장노자(方丈老子)ㆍ방장산인(方丈山人), 본관은 창녕(昌寧),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에 《남명집》ㆍ《남명학기유편(南冥學記類編)》ㆍ《신명사도(神明舍圖)》 등이 있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호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90년(선조33)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중기 4대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에 《월사집》이 있다. 정종(鼎鍾) 동(銅)으로 주조한 솥과 종의 합칭으로, 옛날에는 공훈을 표하는 문자를 대부분 이 종과 솥의 겉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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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 초하루에 현광과 함께 읊다 仲秋初吉 同玄狂吟 산재에 가랑비 내려 흥이 조금 좋은데 小雨山齋興稍佳안중에는 가을 색이 정히 끝이 없구나 眼中秋色正無涯곡식이 머지않아 마당에 돌아오고191) 嘉禾不日將歸圃시든 잎은 바람 없어도 절로 섬돌에 지네 病葉無風自墜階세상에 머물며 함께 우거할지 뉘 알았으리 住世誰知同寄寓시를 지어서 마땅히 회포를 토로해야지 寫詩端合吐情懷옛적의 현달한 이들을 그대 응당 알리라 古來賢達君應識사천필의 말192)도 헌신짝처럼 여겼다네 千駟還如一弊鞋 小雨山齋興稍佳, 眼中秋色正無涯.嘉禾不日將歸圃, 病葉無風自墜階.住世誰知同寄寓, 寫詩端合吐情懷.古來賢達君應識, 千駟還如一弊鞋. 곡식이……돌아오고 곡식을 수확하여 타작하기 위해 마당에 가져오는 것이다.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구월에는 채마밭에다 타작마당을 닦고, 시월에는 온갖 곡식을 거둬들인다.[九月築場圃, 十月納禾稼.]"는 말이 나온다. '가화(嘉禾)'는 본래 옛날 사람들이 길조로 여겼던 특이한 형태의 벼인데 여기서는 곡식을 말한다. 《尙書注疏 微子之命》 사천필의 말 원문의 '천사(千駟)'는 매우 부귀한 것을 말한다. 사(駟)는 말 네 필을 말하므로 천사는 사천 마리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이윤(伊尹)은 "말 사천 마리가 묶여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繫馬千駟, 弗視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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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삼가 생각건대, 봄추위에 기체(氣體)가 강녕하시며, 작은사랑의 병환은 근래 회복되었으며, 우거하시는 나머지에 온갖 일은 괴로움을 끼치는 데 이르지 않았겠지요? 삼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소생은 겨울 초에 사상(沙上)에서 돌아왔는데, 양친께서 연달아 건강이 좋지 못하였다가 세모가 되어서 겨우 위급한 상황을 넘겼습니다. 이어서 신고(身故)로 또 달포 정도 괴로움을 겪었으니, 이른바 글공부하는 일은 묶어서 시렁 위에 올려놓은 채 겨울을 넘길 따름입니다. 접때 선생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을 때 김석귀(金錫龜), 정재규(鄭載圭)가 전후로 때마침 이르러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나머지에 서로 강마(講磨)하여 천년 뒤에 수사(洙泗)의 위의(威儀)21)를 보는 듯하였습니다. 소생처럼 혼미하고 어리석은 이도 비록 눈으로 보고서 마음으로 느끼는 유익함이 없지 않았지만 또 어떻게 하면 강마한 것을 깨달아 밝히는 바가 있어서 이 모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종전에 힘쓰지 못하였다는 탄식이 여기에서 배로 간절하였고,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도 이로부터 더 보태졌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해를 넘기면서 예전처럼 그대로 답습하며 그 뜻이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또 이러한 모임이 또 어느 때 있을지 모르니, 구구한 소생의 마음에 어찌 서운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선생님께서 이사하여 해가 바뀐 때 몸을 빼 문후하지 못하니, 죄송합니다. 삼가 절서에 따라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답장을 덧붙임해가 바뀌어 그리워하는 마음 간절하던 차에 방금 편지를 보았네. 매우 자세히 적었기에 귀중함이 어찌 보배로운 구슬에 견주겠는가. 다만 책을 보는 한 가지 일은 자못 근심스러운 일로 방해를 받았으니, 세월이 자못 애석할 따름이네. 병든 사람의 노쇠함은 금년 들어 다시 더할 것이 없네. 기력은 기어서 계단을 내려갈 정도이고 정신은 거의 숙맥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이네.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아 이러한 업보를 받는 것이라 부끄럽고 부끄럽네. 여러 가지 사연은 붓을 들 마음이 없어 우선 그만두고, 예만 갖출 따름이네. 이만 줄이고 삼가 사례하네. 伏惟春寒。氣體康寧。小舍廊患節。近見天和。僑寓之餘。凡百不至貽惱否。伏慕不任。小生冬初自沙上還。兩庭連有欠和之節。至於歲未。纔免危津。繼以身故。又經旬月之苦。所謂佔畢之業。束閣過冬而已。曩於侍敎之日。錫龜載圭前後適至。坐春立雪之餘。互相講磨。使千載之下。如見洙泗之儀。昏愚如小生。雖不無觀感之益。而又安能有所發明以不負此會哉。從前不力之歎。倍切於此。而追後圖勉之心。又自此而不能無有加矣。然歸家踰年因循如古。而落落分散。又未知此會之復在何時。則區區下情。曷勝悵然。當此杖屨移寓歲次翻易之際。而未得抽身承候。罪悚。伏乞循序康衛。答附歲翻。懷人切矣。卽見手字極覼縷。寶重奚啻拱璧。第佔畢一事。頗爲憂故所魔。歲月殊可惜。病人衰敗。至于今年。無以復加矣。氣力則匍匐而下階。精神幾乎菽麥不以辨。少不勤學。其果報如此。可愧可愧。諸般說。無心戀筆墨。只得且休。備禮而已。不宣謹謝。 수사(洙泗)의 위의(威儀) 수사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인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이다.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의 학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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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재 박 선생21)에 대한 제문 祭無邪齋朴先生文 선생은 호걸의 자질로 학문의 공을 거두었습니다.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였고, 잡아 지키는 것이 굳고 안정되었으며, 정밀하고 은미한 것을 깊이 연구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해박하였습니다. 학문은 온전하고 덕은 확립되어 시원스럽고 화락하였으며, 천고를 통찰하고 한 시대를 아울렀습니다. 성 동쪽에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광채와 자취 숨기고 감추어 죽을 때까지 스스로 즐겼습니다. 어찌하여 한 번의 운수가 만년에 더욱 기구하여 상사가 거듭하고 식구들이 흩어졌습니다. 백리의 광산(光山)에 거처를 옮겼는데, 거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습니다.22) 오호라! 하늘이 선생을 내신 것은 무슨 뜻이며 쫓아서 곤액을 준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소자의 거처가 가장 가깝고 감복함이 가장 깊어 들어가서는 궤석에서 모시고 나가서는 장구를 모신지 십여 년이 됩니다. 순순하게 기대하고 면려함에 간곡하지 않음이 없었지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어 그 만분에 하나의 뜻도 부응함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의지하여 우러름에 뒤따르려 해도 미칠 수 없습니다. 단지 용산(龍山)의 수석만 여전히 옛날과 같아 저로 하여금 첨모(瞻慕)함에 다하지 못하는 한이 있게 할 뿐입니다. 눈물을 닦고 슬픈 마음 엮어 감히 이렇게 영결을 고합니다. 先生以豪傑之姿。收學問之功。臨深履薄。持守堅定。硏精鑽微抱負該洽。學全德立。淸通和樂。洞視千古。範圍一世。卜築城東。寄我翱翔。潛光歛跡。卒歳自娛。云何一運。晩而愈奇。死喪相仍。室家分離。光山百里。杖屨移臨。居未幾何。山樑遽折。嗚乎。天之生先生何意。而從而厄之。又何意耶。小子居最近而服最湥。入侍几席。出陪杖屨。爲十餘年矣。諄諄期勉。非不懇至。而因循等待。未有以副其萬一之意。今焉依仰。追從莫及。只有龍山水石。依然如古。而令人有瞻慕不盡之恨而已。抆淚綴哀。敢此告訣。 무사재(無邪齋) 박 선생(朴先生) 박영주(朴永柱, 1803∼1874)를 말한다.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관수재(觀水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인이다. 정의림(鄭義林)·이지호(李贄鎬)·최인우(崔仁宇)·공병주(孔炳柱)·조병호(趙秉浩)·구교완(具敎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저서로 《무사재집》이 있다. 산이……꺾였습니다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공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과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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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길을 가며 春日途中 옥중의 죄수처럼 처자식에 매였다고 누가 말하나 獄囚誰道繫妻孥시흥에 문을 나서 멋진 경치를 묘사하네 詩興出門佳景摹백성들이 은택에 젖으나 한나라418) 때와 다르고 黎首恩沾時異漢녹색 털 같은 풀이 가느니 노419)의 땅이 아니네 綠毛草細地非瀘평평한 호수에 낚싯대로 처음 낚시 드리워보고 平湖竿試初垂釣작은 채마밭에 부지런히 호미질하고 박을 딸 준비하네 小圃鋤勤備斷瓠산 남쪽에 은거하는 은자를 만나러 가니 爲訪山南幽隱去날으는 학이 임포에게 알리는 걸 보리라420) 應看飛鶴報林逋 獄囚誰道繫妻孥, 詩興出門佳景摹.黎首恩沾時異漢, 綠毛草細地非瀘.平湖竿試初垂釣, 小圃鋤勤備斷瓠.爲訪山南幽隱去, 應看飛鶴報林逋. 한나라 조선(朝鮮)을 비유한 것이다. 노(瀘) 불모지를 비유한 것이다. 참고로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간다.[五月渡瀘, 深入不毛.]"라는 말이 나온다. 날으는……보리라 학(鶴)이 내가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은자에게 알릴 것이라는 뜻이다. '임포(林逋)'는 은자를 비유한다. 임포는 북송 때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행서와 시에 능하였다. 장가를 들지 않고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즐기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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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대부 석당 선생에게 올림 上族大父石塘先生 문안드린 이후로 편지를 보낼 길이 없어 북쪽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저의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깊어 가는 가을에 한가로이 수양하시는 기체는 한결같이 만강하시며, 가족들은 두루 평안하십니까? 연세가 많고 덕이 높아 사문(斯文)이 기댈 곳이 있으니, 이 어찌 한갓 우리 가문의 다행이겠습니까. 실로 사림과 나라의 복입니다. 보잘것없는 이의 흠모하는 마음은 장수하시기를 항상 간절히 축원합니다. 족손의 가친과 세 형제, 기로(耆老)가 모두 생존하여 하늘이 일락(一樂)22)을 누리게 하였으니 감격스러운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우리 가문은 100여 년 전부터 명성을 떨치지 못하고 날로 영락(零落)하니, 후손이 된 자는 마땅히 몇 배로 노력하여 가업을 계승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소자는 세월만 보내며 머뭇거리니 오히려 보통의 아몽(阿蒙)23)이 됨을 면하지 못하기에 이 때문에 두려울 따름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도학을 앞장서 밝히시어 사방의 학자들이 모두 종사(宗師)로 삼았습니다. 더구나 소자의 입장에서야 의지할 곳으로 여기는 마음이 어찌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하지 않겠습니까마는, 부모님은 늙고 힘은 미약하여 먼 길을 가서 찾아뵙는 것은 기필할 수 없는 점이 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예전에 선생님께서 소자에게 타이르시기를 "기 선생(奇先生)이 근래 그대의 도내에 있는데, 너는 어찌 배우지 않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소자가 이미 공경히 대답하였지만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마땅히 가까운 시일 내에 나아가 배워 선생님의 타이름에 부응하는 것이 또한 어찌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拜違以來。便信無階。北望馳悵。曷任下情。伏未審秋深燕養氣體。一享萬康。眷節均宜。年高德邵。斯文有主。此豈徒吾門之幸。實士林邦國之福。區區顒若。常切榠欞無疆之祝。族孫家親三昆季耆老俱存。天餉一樂。情感無量。吾門自百餘年。聲猷不競。日就零替。爲人後承者。當倍蓰勉力。以圖所以紹述之策。而小子悠悠前却。尙不免爲尋常阿蒙之歸。用是瞿瞿耳。伏惟先生倡明道學。四方學者。無不宗師。況在小子而視爲依歸者。豈不倍蓰餘人。而親老力綿。千里源源。有不可必。奈何。昔者先生戒小子曰。奇先生近在汝省內。汝何不從學也。小子旣敬諾。而尙未遂矣。第當從近負笈以副先生之戒。亦豈非先生敎之耶。 일락(一樂) 맹자는 군자가 인생에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 세 가지를 말하면서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그 첫 번째 즐거움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아몽(阿蒙) 학식이 없고 진보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군무(軍務)에만 종사하다 손권(孫權)의 권유로 열심히 독서하여 노사숙유(老士宿儒)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의 학식을 쌓았는데, 노숙(魯肅)이 도독(都督)으로 와서 여몽과 담론해 보고는 "이미 예전의 오나라의 아몽(阿蒙)이 아니구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三國志 吳書 呂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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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33) 최 어른【익현】에게 올림 上勉菴崔丈【益鉉】 의림(義林)이 약관의 나이에 호중(湖中)을 유람하여 삼가 화서(華西) 선생이 경기(京畿)에서 창도(倡道)하자 원근의 학자가 흡연(翕然)히 따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마땅히 물러나 더욱 힘써서 학문에 조금이라도 진보가 있은 뒤에 선생의 문하에서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몇 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왔으니, 개인적으로 놀라고 탄식하며 '나의 학문이 비록 진보하더라도 장차 어디에서 질정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뒤에 신미년(1871, 고종8)에 다시 호중을 유람하다가 삼가 문장(文丈)께서 선생의 고제자로 물러나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어 부모님을 봉양하며 자신이 즐기던 바를 미루어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사사로이 삼가 기뻐하고 다행으로 여기며 '선생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선생의 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남아 있으니, 내 장차 문장께 나아가 절하고 선생의 남은 의론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윽고 문장께서 나와 세도를 위한 계책을 세우셔서 훌륭한 말씀과 곧은 절개가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어질다는 명성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간 것이 또 어찌 구구한 제가 나아가 질정한 뒤에 있겠습니까. 상대가 어질다는 명성이 이미 자자하므로 제가 배우러 간 뒤에 그 명성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인 듯합니다.) 천 리에 큰 물결이 쳐도 동요됨이 없이 머물러 있은 지 몇 년 되었으니, 북두에 의지하고 달빛 아래 거닐고 싶은 생각을 무엇으로 위로하겠습니까. 의림은 궁벽한 고을의 미천한 종적입니다. 어버이는 늙고 집은 가난하여 구차하게 살아남아 생활하니, 10일 간의 여가를 내어 담장 밖에 나아가 오래된 소원을 이루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남쪽으로 영주(瀛洲)를 바라보며 슬픈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안생 진환(安生進煥)이 가는 편에 감히 이렇게 대신 정성을 펴니, 번거롭게 해 드려 너무나 송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더 아끼고 보중하여 나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義林弱冠而遊湖中。伏聞華西先生倡道畿中。遠近學者。翕然從之。自以爲吾當退而加勉。使學有少進而後。有以從事於先生之門也。未幾年。易簀凶音。出於夢外私心驚歎。以爲吾學雖進。將何取正乎。後辛未之年。再遊湖中。伏聞文丈。以先生高弟。退歸田里。躬耕養親。推其所樂。以淑後徒。於是私竊喜幸。以爲先生雖殁。先生之道。猶在於人。則吾且晉拜文丈。得聞先生餘論也。旣而文丈出而爲世道之計。偉韻直節。膾炙萬口。其仁聲之入人也。又豈在於區區就正之下哉。鯨波千里。無撓利稅。而淹留有年。倚斗步月之思。何以自慰耶。義林窮鄕賤蹤也。親老家貧。苟存生活。願得一旬之力。進身棘外。以償宿昔之願。而不可得。南望瀛洲。不勝悵然。玆因安生進煥去。敢此替伸情悃。跡涉煩越。旋切悚仄。伏乞加愛保重。以副家國之望。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격몽요결》,《대학장구》,《논어집주》 등을 통해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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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성·이영규·전용욱에게 답함 答黃 佾性·李永珪·田溶彧 한번 병이 들어 삼년이 되었으니 다스릴 힘도 없습니다. 문에는 참새그물을 칠 정도로 손님이 없고 집은 저승과 같습니다. 어디선가 한바탕 청풍이 불어와 편지를 날려 보냄으로써 저에게 한 줄기 서광을 비쳐주어 오늘은 인간세상의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이보다 큰 다행스러움은 없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지산선생연보〉 발간을 도모하여 시일이 좀 되었음을 말했는데, 이 일은 저 또한 6년 전에 행해(김노동)선생이 저를 손님으로 초청했을 때 교정하느라 힘을 좀 썼습니다. 행해선생이 오래도록 인쇄하려 했지만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착수했다고 하니, 사림 모두의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행해선생의 소식을 이로 인해 아울러 들을 수 있었으니, 저에게는 큰 다행입니다. 편지 한 장을 동봉하여 올리니 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一病三年, 無力可治.門垂雀羅, 室若冥府.何來清風, 颺送華翰, 照我以一點曙光, 今日可謂陽界人, 幸莫大焉.承喩以謀刊《志山先生年譜》之役有日, 是役也, 鄙亦六年前, 因杏海請殯, 費校寫之力.杏海積營剞劂, 而未遑者, 今焉就緒, 又士林公共之幸也.杏海聲光, 因可獲聽, 在我尢幸.一紙胎呈, 傳致仰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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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靜齋田丈 甲戌 연보(年譜) 후반을 저보고 기록하라 하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연월과 사실이 충분히 갖추어졌으니, 우리 어른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감히 마음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장(家狀)을 대신 지으라는 것은 더욱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의 문장으로 족히 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비록 잘 쓰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신 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첨삭하고 윤문하는 것은 사우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年譜後半, 今鄙生記之, 豈敢當, 豈敢當? 但其年月事實, 足以備, 吾丈未悉者, 則敢不用心也? 家狀代撰, 尤非敢當.吾丈之文, 自足爲此, 雖有善手, 不必使代.添刪修潤, 則可與士友共之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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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鄭國振 乙亥 삼가 생각건대, 유자(儒者)가 사설(邪說)을 물리치는 것과 왕자(王者)가 이적(夷狄)을 물리치는 것은 안으로 닦은 것이 굳건해서 의뢰하여 근본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어야만 물리치는 것을 더욱 강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침에 의(義)를 모아 기른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근본을 삼았고, 한유(韓愈)가 불교와 도교를 물리침에 경서(經書)를 통달한 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며, 주자(朱子)가 소식(蘇軾)과 육구연(陸九淵)을 변론함에 시종 일관된 하나의 경(敬)으로 근본을 삼았습니다. 이들은 그 근본이 안에서 굳건함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밖으로 발로된 것이 저처럼 창대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늘의 일에 분수를 다하고 힘을 다한 것은 거의 옛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다만 이른바 근본을 옛사람처럼 할 수 없으면 백세 이후에 어찌 우리의 말을 맹자, 한유, 주자처럼 믿어주겠습니까? 이것이 진실로 돌아보매 두려운 점입니다. 竊念儒者之闢邪說,王者之攘夷狄,有內修之固可藉而爲本地,然後闢之尤爲有力.故孟子之闢楊、墨,本之於集義養氣; 韓子之排佛、老,本之於曉通經書; 朱子之辨蘇、陸,本之於一敬終始.以其本固於內者如此,故發之於外者,如彼其張大也.吾輩今日之役之盡分竭力,庶不愧乎古人,但其所謂本者未得如古人,則百世之下,安可必信吾言如孟、韓、朱乎? 是誠却顧瞿然處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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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긍 종연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金士兢 鍾淵 ○丁卯 중립한 자는 오진영의 당여(黨與)가 되지 않는 자가 드물다고 했는데 극히 옳습니다. 이 사람들은 양쪽의 편의를 차지하고 박쥐의 술수를 번갈아 쓰니 그 간사함이 막심하고 그 병폐를 고치기 어렵습니다. 지성이면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이치가 비록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먼저 선입견이 마음에 있으니 끝내 저들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 때문에 말하기를 "감동하여 깨친 자는 반드시 식견의 잘못은 비교적 많지만 간사에 관계됨은 비교적 적은 자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고명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中立者之鮮不爲震黨, 極是極是.此輩人兩占便宜, 互用蝙蝠, 其奸莫甚, 其病難醫.至誠未有不動, 雖有其理, 此輩則先有物在中, 終動他不得.吾故曰其動而悟者, 必其見識之失較多, 而奸私之係較少者也.未知高明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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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긍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金士兢 丁卯 지난 보름 후에 익산 김윤청이 나를 동곡(東谷)으로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하고 길을 돌아 창동으로 왔습니다. 문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후창은 나를 만나겠는가?" 하기에, 내가 "나를 만나려고 하는 뜻이 무엇인가?" 하였습니다. 김씨가 "호남과 영남 양측이 깨끗이 씻고 화해함이 어떤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만약 오진영이 선사를 무함(誣陷)하고 선사의 손자를 압송하고 사림에 화를 끼친 죄를 현동의 묘소에 자복하고, 또한 진주에서 간행한 난본(亂本)을 거두어 물로 세척하고, 싸리를 지고 사우(士友)에게 사죄한다면 혹 허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이 이미 늦었다. 나의 뜻은 이와 같은데 공론은 또 어떤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김씨가 대답하지 못하고 떠났는데 나의 말이 옳은지 모르겠군요. 去望後, 益山金允淸訪我東谷不遇, 轉至滄東入門曰: 後滄見我乎否乎? 吾曰欲見我何意? 金曰湖嶺兩邊, 蕩滌和解如何? 吾曰約震泳服誣先師押師孫禍士林之罪於玄洞墓所, 又收晉印亂本而水洗之, 負荊謝于士友間, 則或可許否, 然事已晩矣.吾意如何此, 未知公議之又如何? 金無所置對而去, 未知鄙言是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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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화 진석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蘇太化 鎭奭 丙寅 편지를 받고 옥동(玉洞)에서 공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대는 독후(篤厚)함은 남음이 있으나, 소통함은 부족하니 모름지기 더욱 고명한 스승을 따라서 견문을 넓히고 격물치지의 공부를 빌려서, 밝고 굳건함 둘 다 극진한 군자가 되십시오. 대개 초학자의 공부 선후를 말하자면, 실천이 비록 급하지만 최후의 경중으로 말하자면 지(知)가 무겁습니다. 옛사람 가운데 "효제충신인의예양(孝弟忠信仁義禮讓) 하다가 망국패가자(亡國敗家者)가 있다."라고 운운한 이가 있는데, 이는 식견이 밝지 못한 소치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承見住玉洞做業, 甚善甚善.賢篤厚有餘而疏通少遜, 須益從高明之門, 廣聞見藉格致, 用作明剛兩至之君子也.蓋以初學之緩急言, 則行雖急, 以究竟之輕重言, 則知爲重.故昔人云孝弟忠信仁義禮讓而亡國敗家者有之, 此識見不明之致也, 可不懼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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