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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범(李顯泛)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從弟 從弟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종제가 쓴 종형 이현범의 제문 모년에 종제(從弟)가 쓴 종형(從兄) 이현범(李顯泛)의 제문(祭文)이다. 날짜는 미상이다. 종형은 자질이 강명(剛明)하고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스러웠으며 재주는 많았으나 단명(短命)하였다. 자신과 함께 연방(蓮榜, 과거합격자 명부)에 올랐고, 백부는 검소하게 사랑으로 길러주셨고, 선고(先考)께서 애지중지(愛之重之)하셨다. 한 가문을 주관하며 선조를 받들고 효도하며 집을 가지런히 함에 법도가 있었다. 자신에게 어려서부터 매우 자상하게 경책(警責)해 주었으며, 모든 후생들이 의지하였으니, 친척들이 슬퍼하고 사우(師友)들이 탄식하며, 사사로운 정이 배나 깊은 자신은 애통해 하며 추모를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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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찬(李明燦)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明燦 李明燦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이명찬이 남강 한헌, 토사 임중, 한탑 등으로 표현한 동일 인물이 수신자에게 보낸 3편의 안부편지 모년에 이명찬(李明燦)이 남강 한헌, 토사 임중, 한탑 등으로 표현한 동일 인물에게 보낸 3편의 안부편지이다. 날짜를 적지 않고 발신자의 이름은 적어놓았다. 1. 이명찬(李明燦)이 남강(南崗) 한헌(閑軒)에게 쌓였던 얘기를 펼쳐야 되지 않느냐고 하며, 서로 거리가 심히 멀지 않는 땅인데도 문득 쉽게 얻지 못할 일이니, 속세의 일은 진실로 이와 같다고 하며 서글피 탄식하고, 쇠함이 점점 심해서 연래(年來)로 양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2. 이명찬(李明燦)이 토사(土司) 임중(任中)에게 공무(公務)로 바빠서 창망(悵惘)하리라 생각하고 식구들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나 진세(塵世)의 어지러움과 짝을 하며 쇠퇴(衰頹)함이 날로 심해지니 앞으로 좋은 재미도 없을 것이 자연의 이치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3. 못난 사람[拙欠]이 한탑(閑榻)으로 곧바로 전한 편지로 여름에 종상(終祥, 대상)할 때에 가려고 했으나 심부름꾼이 두증(痘症)을 앓아 참석을 못하여 혐창(嫌悵)한 마음 그지없고, 자신은 시끄러운 세상이 오히려 겹쳐져 쇠한 모습이 갈수록 심해져 질병을 앓으며 버텨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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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허성환(許聖煥)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五月二十六日 許性煥 李敎成 癸酉五月二十六日 許性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87_001 1933년 5월 26일에 허성환이 이교성에게 유동의 상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주는 간찰 1933년 5월 26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유동(柳童)의 상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주는 간찰이다. 잘 돌아갔는지와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때 수룡동으로 갔다고 하였다. 유동(柳童)은 골격이 건장하고, 얼굴이 검은색에 가까우나 다른 흠은 없고, 다만 눈빛이 드러나서 온화한 기운이 부족한 듯하나, 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나의 육안을 불신하면, 다시 안목 있는 사람에게 보내서 상세히 보게 하여 만에 하나 나중의 근심할 여지를 없게 할 것을 제안하고, 하루 이틀 뒤에 가서 뵙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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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鄕路左 拜謁已久 隔歲阻信 鬱陶之懷 曷有其極 伏未審春寒 尙峭靜養 氣體候迓新萬祉 大小宅內諸節 均吉否 並伏溸區區無任之至 族弟 姑依宿昔 而別無大警 是爲私幸耳 就物旺里諸宗 亦爲一安 而所在宗畓 昨年洪水 所敗不小 數次防備 而尙未完築 鄙處宗人 若非?(貧)寒 宜當販費防築 而百尺竿頭 勢無奈何 ??以仰達 以此下諒 費冗條參拾원付送 起境築岸 以爲完畓之地 千萬切企切企耳 餘在續後傳信 姑留不備上丙寅 二月 初八日 族弟 宜容(印) 拜上<피봉>全羅南道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李冕容氏 殿 大至急急京富川郡 蘇萊面 茂芝洞 李宜容 大正十五年 舊二月 初八日 出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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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상중인 사람이 성주에게 찾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새 달력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는 것과, 보내준 편지를 바로 받지 못해 바로 답장을 못해 죄송하다는 것과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3편의 답장 편지 모년에 상중(喪中)인 사람이 성주(城主)에게 찾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새 달력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고, 보내준 편지는 바로 받지 못해 답장도 못했다고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답장 편지이다. 고을 수령에게 보내는 편지 3편을 베껴놓은 것이다. 1. 궁벽한 오두막에 엎드려 지내니 온갖 감정이 들끓고, 흉년으로 눈에 보이는 마을의 걱정은 스스로 답답하고 가련하다. 자신의 생애에 골몰하느라 한 번도 나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보내주신 새 달력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았다. 2. 보내 주신 편지를 형제들이 받지 못해서 마땅히 마음으로 송구스럽다. 모든 일에 큰 비용은 들지 않았는지 묻고 삼가 위로되고 축원(祝願)한다고 하였다. 비록 근래 뒤미처 답장할 겨를이 없었으며 나이는 어리고 용렬하여 공의 문하에서 머뭇거리기만 해서 황공했다고 하였다. 3. 관아의 하인이 직접 편지를 가지고 와서 황송(惶悚)하였다. 공무(公務)가 어지럽고 괴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운 마음 가누지 못하겠다. 자신은 부모님 모시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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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목수 조병정(曺秉淀)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舊十一月二十一日 趙秉淀 李氏門長 甲戌舊十一月二十一日 趙秉淀 李氏門長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11월 21일에 목수 조병정(曺秉淀) 등이 상량(上樑)에 쓸 물품을 보내달라고 이씨문장(李氏門長)에게 청하는 간찰(簡札) 1934년 11월 21일에 목수 조병정(曺秉淀) 등이 상량(上樑)에 쓸 물품을 보내달라고 이씨문장(李氏門長)에게 청하는 간찰이다. 국한문혼용체이다. 제각(祭閣)의 상량(上樑) 때 귀 문중에서 사례(事例)로 준 건기(件記) 중 당목(唐木) 1필과 초대(草代) 1원을 진작 하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밤낮으로 매우 절실해 이에 고하니 선조를 위하는 물품을 내려주어 빈 당(堂)에서 먼저 밤마다의 수심을 풀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발신인은 목수들로서 조병정을 비롯하여 모두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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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炎霖支離 氣體候連亨萬康 令允安侍均吉 大孝諸節均慶 姑伏溸區區不任斗祝 族弟 劣狀姑依 ??門內 萬無顯警 伏幸伏幸 就白 去六月分 令允以門中事來訪矣 楊州先塋成碑事 果其間完成耶 此處勿頃洞先塋下 租包殖利事 年年存本取利 各人名下分明載在 而其間中間 亂說或聞云 年前族侄敎仁來此 時許給于族弟云 是豈成說耶 孝勿遵信 伏仰事 此處年形豐登云 而貴下亦然耶 能覽後卽爲回示 伏?事 餘?擾不備上候禮庚申 七月 十六日 族弟 李福容 再拜<피봉>富川郡 蘇萊面 茂芝洞 李福容 謹封全南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李冕容氏 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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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인(李敎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至月七日 李敎仁 至月七日 李敎仁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11월 7일에 삼종질 이교인이 수신자에게 족숙의 편지에 화조를 먹는 자가 핑계를 댄다고 하며 그 대비책에 대하여 서술한 간찰 모년 11월 7일에 삼종질(三從姪) 이교인(李敎仁)이 수신자에게 복용(福容) 족숙(族叔)의 편지에 화조(禾租)를 먹은 자가 핑계를 댄다고 하며 그 대비책에 대하여 서술한 간찰이다. 자신은 장시간 건강치 못하여 답답하게 지낸다. 오늘 복용 족숙의 편지를 보니 화조(禾租, 稻租)를 먹은 자가 핑계를 댄다고 하였는데, 자신의 생각에는 산지기를 바꾸어 정한 연후에 후일의 폐단을 막을 수 있고, 또 곧바로 전답을 이전(移轉)한 연후에 온전히 할 수 있다. 금년 내에 이전 비용을 논의하여 정원(定員)을 수합(收合)하여 올려 보내주면 괜찮을 것이며, 산지기도 의논을 수합하여 바꾸어서 정하면 좋을 것이니 발문(發文)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고, 신기(身氣)가 조금 나으면 직접 찾아가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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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단자(四柱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사주단자 모(某)의 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사주는 갑인년(1914년) 정월 29일 묘시(卯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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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병원(李秉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十一月十日 李秉元 壬申十一月十日 李秉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2년 11월 10일에 아우 이병원이 형님에게 《주례》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고, 책값을 보내고 시렁에 쌓아둔 책도 보낸다고 한 간찰 1932년 11월 10일에 아우 이병원(李秉元)이 형님에게 각종 책자를 잘 받았는데 《주례》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고, 책값을 보내고 시렁에 쌓아둔 책도 보낸다는 편지이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자신은 날마다 어지러운 가운데 각종 책자를 잘 받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다만 《주례(周禮)》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였다. 《팔자백선(八子百選)》 값 2원(圓)은 올려 보내고, 《예기(禮記)》와 《좌전(左傳)》을 보내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보내는 책은 불필요해서 시렁에 쌓아두었던 것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보낸다고 하고, 《주서(朱書)》 한 권도 첨부하니 군더더기는 아닐 것이라면서 받은 책과 보낸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별지가 있는데, 각 책의 가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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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순(李毅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卽日 李毅淳 大父 卽日 李毅淳 大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60_001 모년 족손 이의순이 대부에게 추운 날씨에 무사히 행차를 마쳐서 위로된다고 하고, 자신은 돈이 없어 이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간찰 모년 즉일(卽日)에 족손(族孫) 이의순(李毅淳)이 대부(大父)께 추운 날씨에 무사히 행차를 마쳐서 위로된다고 하고, 자신은 돈이 없어 이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편지이다. 편지 받은 그 날에 이의순이 대부께 얼음 얼고 눈이 내리는 가운데 여정을 별일 없이 행차하셨다고 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자신은 빈손인 자로 스스로 불쌍히 여길 뿐인데, 이 일은 돈이 있었다면 마침내 끝났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니 서글프고 탄식함이 어찌 끝이 있었겠느냐는 내용이다. 오른쪽 부분이 일부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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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의순(李毅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60_001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이 족조인 모에게 산소의 일을 할 목수의 식주를 정하는 일에 대하여 논의한 간찰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李毅淳)이 족조인 모에게 편지를 받자마자 보낸 답장이다. 묘(墓)의 일이 급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목수의 식주(食主)를 주막에서 먹는 것으로 정했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 묻고, 그 사이 이해(利害)를 따져서 견주어 보았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 실지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잘 말했다. 산에서 급히 다시 식주를 정하면 만약 좋지 않아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급하게 거행하더라도 논책(論責)은 면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어찌 하나의 규각(圭角)이라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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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福容 李冕容 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福容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음력 11월 11일에 이복용이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관한 건으로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0년 음력 11월 11일에 이복용이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관한 건으로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서 썼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발신자인 족제(族弟)는 일양하며 물경동의 산소도 안녕하다고 하였다. 말씀드릴 것은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대한 것이다. 정사년과 기미년조는 이미 받아서 이식하고 있으나, 무오년조는 묘지기 이도순이 물경동의 제종과 상의하여 7대조의 시사(時祀)에 내준 비용이 약소함에 따라 제종이 각각 몇 두씩 내놓고, 해당 도조 1석2두를 추가로 넣었으나 종계 설립을 칭탁하고서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이미 다 말씀드렸다. 그런데 지난 6월 아드님이 올라왔을 때에도 서로 상의한 바, 이달 시사 때 본 이자를 독촉하니, 각각 자손을 위하는 것은 일반이라 하고서 영영 지급하지 않고 있으니, 일이 매우 고민스럽다. 이 문제를 살핀 후에 해당 사건을 묘지기 이도순에게 통지하여 독촉해서 받아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말미에는 한글로 쓴 추신이 있다. 누차 독촉하자 묘지기가 최치복을 주려고 하였다는 등 광언망설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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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九月念三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九月念三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025_001 1921년 9월 6일에 숙부 이교성(李敎成)이 좋은 시세에 계책도 없이 손이 묶여 낭패라며 좋은 도리가 있으면 답장하라는 내용으로 재종질(再從姪)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보내준 편지를 받고 바삐 열어 읽어보니 얼굴을 본 듯하여 나그네살이에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금년에 제일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집안의 안부를 묻고 백출산(白朮山)에 관계된 것으로 목포(木浦)를 오고간 일, 온 편지를 보고 금년 인천 객일 뿐이니 치패(致敗)되어 좋은 시세(時勢)에 끝내 하나의 계책도 없이 손이 묶여 당초에 말과는 달리 낭패되었다는 내용, 자신과 자리를 같이 한다면 그 자세한 것이 어떠한지를 논의할 것이나 수삼백 리에 떨어져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여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괴롭다는 내용이 있고, 만약 올라가서 오종(吾從)에게 좋은 도리(道理)가 있으면 즉시 이정호(李禎鎬)에게 답장을 써달라고 하였다. 그믐 안에는 집에 있겠다고 하고 다음 달에는 어느 곳으로 가는지 한 번 만나 만에 하나라도 토론하도록 한 번 내려오라고 하였다. 한 몸의 일이 이와 같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고, 노친이 직접 삼세독자와 귀가할 생각이 열에 하나 있을 뿐이라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그믐날 안에 올라가는 것이 마음에 몹시도 간절하다면서 즉시 회답해주고, 마땅히 올라가서 20일은 객중에 있는 사람이라 차비를 마련한다면 즉시 올라갈 생각이나 그럴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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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유인 이씨(孺人李氏) 정부인(貞夫人)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孺人 李氏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孺人 李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씨는 이기두의 처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렇게 남편이 관직을 취득할 경우에 처는 남편의 관직에 준하는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유인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가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때의 봉작이 정부인이다. 정부인은 외명부(外命婦) 중 문무관의 적처에게 내리는 정・종 2품의 위호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봉작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남편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처는 법전에 의거하여 남편의 직을 따른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외명부조에서 봉작(封爵)은 남편의 관직을 따른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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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유원(李有源) 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有源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有源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학생 이유원을 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학생 이유원을 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유원은 이기두의 부친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때 부친의 직역은 학생이었다가 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로 증직되었다. 학생은 유학(幼學)이 죽어서 사용하는 호칭이다. 가선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2품의 하계(下階)이다. 이조참판은 이조에 속한 종2품의 벼슬이며, 의금부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인 동지의금부사직을 겸하였다. 가선대부 앞의 증(贈) 자는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내릴 때 붙이는 글자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증직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아들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고(考)는 법전에 의거하여 추증한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추증조에서 '종친 및 문무관으로 실직 2품 이상은 3대를 추증한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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