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천태 부군이 초록한 《태을통종보감》 뒤에 삼가 쓰다 敬題曾祖考天台府君手鈔太乙統宗寶鑑後 아! 이 《태을통종보감(太乙統宗寶鑑)》 열네 책은 나의 증조부 천태거사185) 부군께서 직접 베껴쓰신 것이다. 나 김택술이 어렸을 때 할머니 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네 증조부께서 일찍이 친구 댁에 가셔서 좋아하는 책 십여 권을 보시고는 베껴 쓰겠다며 빌려주기를 청하셨지. 주인이 선뜻 허락하지 않자, 십여 일 동안 한번 읽어 보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얻었어. 돌아오자마자 시작하여 열흘 안에 베껴 쓰신 다음 돌려주셨어. 그러자 주인이 놀라며 고마워하였단다. 이 이야기를 나는 시어머니께 들었지."라고 하셨다.내가 지금 이 책을 보니 끝에 '임진 정월 하순에 천태거사가 쓰다[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라는 열 한 글자가 있다. 옛날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곧 이것이다. 판은 550여 개이고 비록 잡다한 다른 필체가 섞여 있으나 반 이상은 부군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함부로 거칠게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그 민첩하고 조심스서운 솜씨가 이렇게 손때 묻은 서책에 담겨 있으니, 지극히 보배롭고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나 아둔한지, 책 안에 실려 있는 하늘과 사람에 대한 논설들과 그 광대하고 오묘한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고, 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186)만 할 뿐이었다.이 책 서문을 가만히 보니 이르기를 '인군(人君)이 그것을 쓰면 가히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고, 인신(人臣)이 그것을 쓰면 가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부군께서는 재주가 높고 뜻이 크셨으니, 마땅히 그 내용을 매우 좋아하셨고 그래서 그것을 베껴 쓰는 속도가 빨랐을 것이다. 다만 하늘이 수명을 더 주지 않아서 배움을 이루고 세상에 쓰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 그렇지만 글은 여기 굳게 보존되어 있으니, 뒷사람 중에 재주와 뜻이 있으면서 장수할 이가 나와서, 이 책을 궁구하고 큰 쓰임을 얻어서 부군의 한을 깨끗이 씻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것으로는 그 밖에도 《사기(史記)》, 《소서(素書)》187), 《음부보감전서(陰符寶鑑全書)》, 《영귀침법(靈龜針法)》,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188) 《부령김씨세헌록(扶寧金氏世獻錄)》 등이 있었는데 지금도 모두 다 보존되어 있다. 오직 이 책만이 큰 분량의 거질(巨帙)이라서 삼가 한 마디 말을 적어서 애모하는 내 마음을 부친다. 경진년(1940) 유두일에 증손 김택술 삼가 쓰다. 嗚呼! 此太乙統宗寶鑑十四冊, 我曾祖天台居士府君所鈔也。 澤述幼時承王母金氏語曰: 汝曾王考嘗往友人家, 見有好書十餘冊, 請借謄。 主人不肯, 乃請旬日一覽, 許之。 歸而卽於旬日內了謄而還之。 主人驚謝。 此, 吾所聞於先姑者也。 今觀是書卷末所題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十一字, 昔年王母所語者, 卽此也。 板爲五百五十有餘, 雖雜他筆强半出府君手, 而無一字放荒, 其敏速謹愼, 如此手澤攸存, 極其寶重。 然柰此鈍根, 於書中所載說天說人, 廣大奧妙, 略不領會, 徒切望洋之歎。 竊觀序此書者有曰: 人君用之, 可以使民爲堯舜之民, 人臣用之, 可以致君爲堯舜之君。 府君才高志大, 宜其好之篤而謄之速也。 但天不假壽, 未及成其學而用之世, 痛哉! 然書固自在, 未知後承有才志而壽者, 出究是編而得大用, 以洩府君之恨也否? 府君手鈔又有史記素書陰符寶鑑全書靈龜針法烟波釣叟歌扶寧金氏世獻錄等書, 今俱存, 而惟此書爲大部, 故謹書一語, 庸寓感慕之私云爾。 歲在庚辰流頭日, 曾孫澤述謹書。 천태거사 김석규(金錫圭, 1804~1835)이다. 자는 내삼(乃三)ㆍ희백(希伯), 호는 유죽헌(幽竹軒)ㆍ천태거사(天台居士), 초명은 석노(錫魯)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望洋之歎]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 渤海)의 끝없는 파도를 보며 자신의 좁은 소견을 탄식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秋水〉 《소서(素書)》 황석공(黃石公)이 한 고조의 책사 장량(張良)에게 전해주었다는 병서이다.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 기문둔갑(奇門遁甲)의 대강을 포함하는 시결(詩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