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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스승께서 퇴계의 가재 시에 차운한 작품에 차운함 謹次師門所次退溪石蟹韻 퇴계 선생께서 15세에 가재에 대해 읊은 시에, "돌을 지고 모래 파서 스스로 집 짓고,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나는데 다리조차 많구나. 찬 샘 한 굽이 평생 충분하니, 강호의 물이 얼마인지 묻지도 않네."라고 하였다. 근래 일종의 험한 말을 하는 사람이 이 시를 간재 선생의 작품이라 하고 억지로 주석을 붙여, "국난에 달려가지 않고서 스스로 신명을 보전한다."라는 뜻을 써서,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 많았으니, 사람 마음이 불량한 것이 어찌 이처럼 극도에 이를 수 있는가? 선생께서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퇴계의 시가 전가에서 나왔다 잘못 알고,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오류46)가 많으니 웃겨 죽겠구나. 다만 묵묵히 더 공부하기만 구할 뿐, 인간들이 얼마나 비방이 어떤지는 묻지 않으리. 다만 다른 집을 관리하려다 자기 집을 버릴 뿐이라, 집안에 가시를 방치하게 한 일 많구나. 자기 집은 도리어 다른 집에서 안타까워하니 그대의 성이 그와 같으니 어찌 하리오."라고 하였다. 나 역시도 감히 스승의 시에 차운해서, 소인의 천한 견식으로 현자의 출처를 망령되이 논의한 것을 비판한다.얕은 산과 시냇가에 스스로 집을 지었으니 淺淺山溪自作家미련한 그놈 견식이 참으로 없구나 嗤渠見識已無多아득한 동해엔 깊이가 천 길이나 되니 渺茫東海深千尺신룡의 변화가 얼마인지 어찌 알리오 豈識神龍變化何 退溪先生十五歲時,咏石蟹曰,負石穽沙自作家,進前退後足偏多.寒泉一曲生涯足,不問江湖水幾何?近來一種險口,以此爲艮齋田先生作强爲註釋,作不赴國難,自保身命之意毁謗多,端人心不良,胡至此極.先生次退溪詩曰;"陶詩誤認出田家,笑殺郢書燕說多.只求黙黙加功去,不問人間謗幾何?只管他家棄自家,放敎荊棘室中多.自家還被他家惜,子聖其如可柰何?" 余亦敢次師韻,以譏小人淺見妄論,賢者出處云爾.淺淺山溪自作家,嗤渠見識已無多.渺茫東海深千尺,豈識神龍變化何?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오류 본래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와전(訛傳)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의 영(郢) 지방 사람이 연(燕)나라 상국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있었는데, 등불이 어두워 옆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 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편지에 '촛불을 들라'고 썼다. 그런데 연나라 재상이 그 편지를 받아 보고는 기뻐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현자를 천거해 쓰라는 말일 것이다."라 하고는 임금에게 아뢰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니, 연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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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씀 2수 寫志 【二首】 솔바람 부는 오월에 대나무 창은 차갑기만 하고 松風五月竹牕寒초각에서 조심하는 늙은이와 견주니 우습구나 笑比夔翁草閣看잡념을 없애려면 큰 술잔41)을 기울여야 하고 消慮只宜傾大白선학을 배우려 해도 영단을 구우려 하지 않네 學仙不欲煮靈丹사람들과 함께 높고 낮음 따름을 끝내 부끄러워 與人終愧隨低昂마땅한 일 쉽고 어려움 가림을 어찌 용납하리오 應事何容揀易難조용한 방에서 경서를 궁구해도 오히려 스스로 즐거우니 靜室窮經猶自樂굳이 붉은 난간 있는 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으리 未須ㅁ勝訪朱欄인정을 번복함이 마치 바둑판과 같으니 人情翻覆似碁枰뉘라서 의리를 장차 경중 분별할 수 있으랴 義理誰將辨重輕바닷가 산천 그 어디에도 즐거운 땅 없어 海上山川無樂土문앞 비바람에도 세속 소리 싫어하네 門前風雨厭塵聲멋진 유람하려는 평소 뜻으로 회수에 떠 있어도 壯遊素志浮淮水나라를 걱정하는 단심에 낙성을 바라보네 憂國丹忱望洛城말세의 삶과 죽음 고목과 기러기42) 보듯하니 衰世死生看木鴈재주도 없으면서 왜 굳이 명예 구하는 데 힘쓰는가 不才何必務求名 松風五月竹牕寒,笑比夔翁草閣看.消慮只宜傾大白,學仙不欲煮靈丹.與人終愧隨低昂,應事何容揀易難?靜室窮經猶自樂,未須ㅁ勝訪朱欄.人情翻覆似碁枰,義理誰將辨重輕.海上山川無樂土,門前風雨厭塵聲.壯遊素志浮淮水,憂國丹忱望洛城.衰世死生看木鴈,不才何必務求名? 큰 술잔 원문 '대백(大白)'은 술잔 이름이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시에 "모름지기 오늘의 기쁨을 다하려 할진대, 유쾌한 뜻으로 큰 술잔을 들어야 하리.〔須窮今日懽, 快意浮大白.〕"라고 한 예가 있다. 《宋百家詩存 卷5 昔別贈宋復古張景淳》 고목과 기러기 고목은 재주가 없어 오래 사는 사람을 비유하고 기러기는 재주가 없어 일찍 죽음을 당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재주가 없어 오래 살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가름할 수 없다는 말이다. 《莊子》 〈山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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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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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선생 차운시 附 先生次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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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천태 부군이 초록한 《태을통종보감》 뒤에 삼가 쓰다 敬題曾祖考天台府君手鈔太乙統宗寶鑑後 아! 이 《태을통종보감(太乙統宗寶鑑)》 열네 책은 나의 증조부 천태거사185) 부군께서 직접 베껴쓰신 것이다. 나 김택술이 어렸을 때 할머니 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네 증조부께서 일찍이 친구 댁에 가셔서 좋아하는 책 십여 권을 보시고는 베껴 쓰겠다며 빌려주기를 청하셨지. 주인이 선뜻 허락하지 않자, 십여 일 동안 한번 읽어 보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얻었어. 돌아오자마자 시작하여 열흘 안에 베껴 쓰신 다음 돌려주셨어. 그러자 주인이 놀라며 고마워하였단다. 이 이야기를 나는 시어머니께 들었지."라고 하셨다.내가 지금 이 책을 보니 끝에 '임진 정월 하순에 천태거사가 쓰다[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라는 열 한 글자가 있다. 옛날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곧 이것이다. 판은 550여 개이고 비록 잡다한 다른 필체가 섞여 있으나 반 이상은 부군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함부로 거칠게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그 민첩하고 조심스서운 솜씨가 이렇게 손때 묻은 서책에 담겨 있으니, 지극히 보배롭고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나 아둔한지, 책 안에 실려 있는 하늘과 사람에 대한 논설들과 그 광대하고 오묘한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고, 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186)만 할 뿐이었다.이 책 서문을 가만히 보니 이르기를 '인군(人君)이 그것을 쓰면 가히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고, 인신(人臣)이 그것을 쓰면 가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부군께서는 재주가 높고 뜻이 크셨으니, 마땅히 그 내용을 매우 좋아하셨고 그래서 그것을 베껴 쓰는 속도가 빨랐을 것이다. 다만 하늘이 수명을 더 주지 않아서 배움을 이루고 세상에 쓰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 그렇지만 글은 여기 굳게 보존되어 있으니, 뒷사람 중에 재주와 뜻이 있으면서 장수할 이가 나와서, 이 책을 궁구하고 큰 쓰임을 얻어서 부군의 한을 깨끗이 씻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것으로는 그 밖에도 《사기(史記)》, 《소서(素書)》187), 《음부보감전서(陰符寶鑑全書)》, 《영귀침법(靈龜針法)》,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188) 《부령김씨세헌록(扶寧金氏世獻錄)》 등이 있었는데 지금도 모두 다 보존되어 있다. 오직 이 책만이 큰 분량의 거질(巨帙)이라서 삼가 한 마디 말을 적어서 애모하는 내 마음을 부친다. 경진년(1940) 유두일에 증손 김택술 삼가 쓰다. 嗚呼! 此太乙統宗寶鑑十四冊, 我曾祖天台居士府君所鈔也。 澤述幼時承王母金氏語曰: 汝曾王考嘗往友人家, 見有好書十餘冊, 請借謄。 主人不肯, 乃請旬日一覽, 許之。 歸而卽於旬日內了謄而還之。 主人驚謝。 此, 吾所聞於先姑者也。 今觀是書卷末所題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十一字, 昔年王母所語者, 卽此也。 板爲五百五十有餘, 雖雜他筆强半出府君手, 而無一字放荒, 其敏速謹愼, 如此手澤攸存, 極其寶重。 然柰此鈍根, 於書中所載說天說人, 廣大奧妙, 略不領會, 徒切望洋之歎。 竊觀序此書者有曰: 人君用之, 可以使民爲堯舜之民, 人臣用之, 可以致君爲堯舜之君。 府君才高志大, 宜其好之篤而謄之速也。 但天不假壽, 未及成其學而用之世, 痛哉! 然書固自在, 未知後承有才志而壽者, 出究是編而得大用, 以洩府君之恨也否? 府君手鈔又有史記素書陰符寶鑑全書靈龜針法烟波釣叟歌扶寧金氏世獻錄等書, 今俱存, 而惟此書爲大部, 故謹書一語, 庸寓感慕之私云爾。 歲在庚辰流頭日, 曾孫澤述謹書。 천태거사 김석규(金錫圭, 1804~1835)이다. 자는 내삼(乃三)ㆍ희백(希伯), 호는 유죽헌(幽竹軒)ㆍ천태거사(天台居士), 초명은 석노(錫魯)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望洋之歎]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 渤海)의 끝없는 파도를 보며 자신의 좁은 소견을 탄식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秋水〉 《소서(素書)》 황석공(黃石公)이 한 고조의 책사 장량(張良)에게 전해주었다는 병서이다.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 기문둔갑(奇門遁甲)의 대강을 포함하는 시결(詩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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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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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84_001 1935년 10월 4일에 외종질 나수열이 김상두 집안의 17세 규수를 소개하고 선을 볼 날짜와 장동의 혼처에 대해 논의하고자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0월 4일에 전남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삼가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체후와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외종질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역전(驛前)에 사는 종증손이 어린데 무슨 병이 들어 생사를 알 수 없으니 통탄스럽고 염려가 된다고 하고, 두 번째로 몸소 김길중(金吉中)의 집에 가서 여러 가지를 말하였으나 단연코 듣지 않으니 이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사는 장성군 북이면(北二面) 신팽리(莘伻里)의 김상두(金相斗) 집에 규수가 있는데, 나이가 17세로 우산(牛山) 안자수(安自秀)씨 외종(外從)인 주서(注書)의 사촌 동생이라며 이달 11일 안에 선을 본 뒤에 김상두도 자신의 조카를 만나볼 것이니, 선을 보는 기일을 완전히 정하여 미리 자신이 있는 곳에 날짜를 보내주면 그날 장성역(長城驛)에 도착하여 기다릴 것이라고 하였다. 장동(長洞) 혼처(婚處)는 어떻게 정해졌는지, 수산(水山) 한익(漢翼) 형의 손주도 결정하였는지 묻고, 이것을 형제분이 서로 상의하여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장동의 숙부에게 각각 서찰을 쓰지 않았으니 알려주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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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宋氏贈貞夫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妣 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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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李有源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考 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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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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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李氏封貞夫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妻 依法典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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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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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李氏贈貞夫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妣 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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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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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羅氏贈貞夫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妣 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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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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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李箕斗爲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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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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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박상기(朴祥驥)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豊八年臘月二十七日 朴祥驥 李孟先 咸豊八年臘月二十七日 朴祥驥 李孟先 전라남도 보성군 朴祥驥 외 1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8년 12월 27일에 박상기(朴祥驥)가 이맹선(李孟先)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58년 12월 27일에 박상기(朴祥驥)가 이맹선(李孟先)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 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긴요하게 쓸 일로 보성 문전면 장동촌 전평 화자(和字) 1두3승락지 부수(負數) 3복(卜)을 전문(錢文) 60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답주와 증필(證筆)이 기재되어 있는데, 답주는 박상기이며, 증필은 공일환이다. 답주는 착서하지 않고 증필의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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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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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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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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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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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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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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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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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1916년 이의용(李宜容) 등 통고문(通告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고 大正五年陰十一月十六日 李宜容 寶城門中 大正五年陰十一月十六日 李宜容 寶城門中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음력 11월 16일에 이의용 등 4명이 연명으로 보성 문중에 수봉하는 날에 식리하여 계출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낸 통고문 1916년 음력 11월 16일에 이의용(李宜容) 등 4명이 연명으로 보성 문중에 수봉(收捧)하는 날 식리(殖利)한 것을 계산해 제출하겠다는 통고문이다. 의용‧화용(和容)‧복용(福容)‧선용(善容)이 시제사(時祭事)에 올릴 제수(祭需)는 근래 5말(斗)의 벼로 하고, 대지(垈地)의 도조로 받는 벼는 근래 해마다 수봉하여 선산 수호의 본뜻으로 하였다. 내년 가을부터 수봉하는 날에는 위에서 말한 벼를 본 문중에서 식리(殖利)하여 매년 10월 15일 시제 후 계산하여 제출하겠다. 본 문중과 보성 문중이 각각 완의(完議)를 이루면 이것으로 영원히 본보기로 시행할 일이라고 하였다. 발신자의 이름 아래에는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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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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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7년 이기유(李基瑜)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巳二月二十九日 李基瑜 丁巳二月二十九日 李基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7년 2월 29일에 이기유 등 6명이 외선조 봉사공의 재궁의 중건에 관한 일을 칭찬한 다음 약간의 돈을 찬조하겠다고 한 간찰 1917년 2월 29일에 이기유(李基瑜) 등 6명이 외선조(外先祖) 봉사공(奉事公) 재궁(齋宮)의 중건에 관한 일을 칭찬한 다음 약간의 돈을 찬조하겠다고 한 간찰이다. 이기유‧이기상(李基翔)‧이용회(李龍會)‧이우회(李友會)‧이정회(李正會)‧이태회(李太會)가 재양(載陽, 3월)에 외선조 봉사공의 재궁을 중건하는 일은 계획한 날짜보다 미리 완성되었고, 행인들마다 손으로 가리키며 성주이씨(星州李氏)의 효심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쇠미해진 세상에 무너지는 풍속을 떨쳐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칭찬을 한 후, 연명한 사람들이 외예(外裔)로써 한 팔의 힘도 되지 못하는 약간의 돈 이십 원(円)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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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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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국상322)에 상복을 벗은 뒤 감회를 쓰다 무진년(1928), 아래도 같다. 國恤除服後 感題 【戊辰下同】 승하323)하신 지 삼년이 홀연 지났으니 弓劒三霜倏忽過거친 산에서 한바탕 곡한들 어찌하리오 荒岡一哭柰如何풍천324)에선 천 년 주나라 시절 슬퍼하고 風泉千古周時咽융마325)에는 당대 두보의 한이 많았었지 戎馬當年杜恨多이슬 띤 바위의 꽃은 어리석게 조는 듯하고 帶露巖花癡似睡나른한 봄날의 들새는 권태로이 노래하네 病春野鳥倦呼歌누가 교만한 오랑캐326) 수급을 대나무에 걸고 誰歟竿揭天驕首통쾌하게 만리 강물에 병장기를 씻을 것인가 快洗兵戈萬里河 弓劒三霜倏忽過, 荒岡一哭柰如何.風泉千古周時咽, 戎馬當年杜恨多.帶露巖花癡似睡, 病春野鳥倦呼歌.誰歟竿揭天驕首, 快洗兵戈萬里河. 국상[國恤] 순종황제의 국상을 말한다. 1926년 3월 14일 5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승하 원문의 '궁검(弓劒)'은 활과 검으로 황제의 죽음을 비유한다. 옛날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승천할 때 신하들이 용의 수염을 부여잡고 매달리다가 수염이 끊어지며 떨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황제의 활과 검도 함께 떨어져 신하들이 그 활과 검을 안고 통곡한 데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28 封禪書》 풍천(風泉) 《시경》의 편명인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합칭한 것으로, 모두 주(周)나라 왕실(王室)이 쇠망한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융마(戎馬) 전쟁을 비유한 것이다. 두보(杜甫)가 전란을 피해 떠도는 중 지은 〈등악양루(登岳陽樓)〉에 "관산의 북쪽 중원 땅엔 아직도 전쟁이라, 난간에 기대서니 눈물이 흐르네.[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라고 하였다. 교만한 오랑캐 원문의 '천교(天驕)'는 본래 세력이 강대한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의 선우(單于)가 글을 보내면서 "우리 호인은 하늘의 교만한 아들이다.[胡者, 天之驕子也.]"라고 자칭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漢書 卷94 匈奴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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