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05년 참봉 기우만(奇宇萬) 공사(供辭) 고문서-증빙류-초사 奇參奉宇萬 奇宇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조약을 체결한 을사오조약에 대한 기우만의 공사(供辭)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에 대한 기우만(奇宇萬)의 공사(供辭)이다. 나라는 비록 망하나 의(義)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며, 작년[1904년] 겨울 5조(條)를 허가한다는 말을 듣고 임금은 빈 종이 한 장으로 앉아서 전국을 잃었고, 조정에 있는 신하는 한 사람도 오적(五賊)을 반격하여 죽이는 사람이 없었다. 국가는 스스로 친 후에야 남이 이를 치는 것이다.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이[1905년] 일본이 아니라 오적인데, 오적은 왕실의 의친(懿親)이요 교목세가(喬木世家)로 무슨 심보로 5백 년을 전복시키는가? 국가의 원수가 5백 년 종사를 전복하니 3천 리 강토를 함부로 허락하여, 고함을 쳐도 분이 오히려 남아있다. 황천(皇天)이 하민(下民)을 인애(仁愛)하여 이 강토가 경계가 없이 모두 장구히 안녕하고, 이름 없는 스승이 일어나 죄 없는 모든 백성이 참혹하게 죽지 않기를 바라고, 하늘이 꾸짖고 귀신이 노하지만 망인의 나라는 저절로 망함에 이르니 두렵고 두렵다는 내용이다.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은 본관이 행주(幸州), 자가 회일(會一), 호가 송사(松沙)이다. 참봉을 지내 기 참봉으로 불렸다. 호남의 거유(巨儒)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서 그 학업을 이어받아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씨 제군에게 주다 贈崔氏諸君 산남362)의 종족이 성대했던 게 옛날 언제였나 山南盛族昔何年적선한 그대들 집안이 다시 그러기를 기대하네 積善君家期復然이미 순박한 기풍이 석씨에게 돌아갔다 읊었고363) 已誦淳風歸石氏때로 고상한 선비를 보면 진연을 베풀었네364) 時看高士下陳筵얼마나 많은 학업을 모래로 옥을 다듬듯했나 幾多學業沙磨玉게다가 지닌 강한 심장은 철을 솜에 싼듯하네 更有剛腸鐵裹綿모든 건 후생이 부지런히 잇는 데 달렸으니 總在後生勤繼述바다와 같은 복을 끝없이 드넓게 해야 하리 須令福海浩無邊 山南盛族昔何年, 積善君家期復然.已誦淳風歸石氏, 時看高士下陳筵.幾多學業沙磨玉, 更有剛腸鐵裏綿.總在後生勤繼述, 須令福海浩無邊. 산남(山南) 당(唐)나라 때 산남서도 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를 지낸 최관(崔琯)을 말한다. 최관의 증조모 장손 부인(長孫夫人)이 나이가 많아 치아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자, 최관의 조모 당 부인(唐夫人)이 수년 동안 시어머니인 장손 부인에게 젖을 먹이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장손 부인은 임종에 "며느리의 은혜를 갚을 수 없으니, 며느리의 자손들이 모두 며느리처럼 효도하고 공경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최씨의 가문이 어찌 창대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 이미……읊었고 최씨 집안이 석씨처럼 순박한 기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석씨(石氏)'는 한 경제(漢景帝) 때의 대부(大夫)였던 석분(石奮)을 말한다. 그와 아들 네 명이 2000석(石)의 봉록을 받았으므로 만석군으로 일컬어졌는데 "만석군의 집안은 효성과 근신함으로 군국에 알려졌는데 비록 제나라와 노나라의 유학자들도 질박한 행실에는 모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萬石君家以孝謹聞乎郡國, 雖齊魯諸儒質行, 皆自以爲不及也.]"라고 하였다. 《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때로……베풀었네 빈객들을 후대했다는 뜻이다. '진연(陳筵)'은 진준(陳遵)의 잔치를 말한다. 《한서(漢書)》 권92 〈진준전(陳遵傳)〉에 "진준은 술을 좋아했다. 매번 큰 술자리를 베풀어서 빈객들이 당에 가득하면 곧 문을 잠그고 객의 수레 빗장을 우물 안에 던져버렸기에,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갈 수 없었다.[每大飮, 賓客滿堂, 輒關門, 取客車轄投井中, 雖有急, 終不得去.]"라고 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조자정에게 답함 기유년(1909) 答趙子貞 己酉 문왕은 24세에 백읍고(伯邑考)를 낳고 공자는 19세에 백어(伯魚)를 낳았습니다. 이를 가지고 살펴보면 비록 옛 성현이라도 30세가 되어서 부인을 맞이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애공(哀公)이 "남자가 30세에 부인을 두는 것이 어찌 늦지 않겠습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대체는 예는 그 극단의 경우를 말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48) 비록 30세에 미치지 못하여 부인을 두더라도 그것에 대해 극단의 경우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옳지만 굳이 예를 잃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례》에 정한 "남자는 16세에서 30세에 이르기까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영원히 폐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부인이 관(冠)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내칙(內則)〉의 '빗질하고, 머리를 싸매고, 동곳을 꽂고, 상투를 싼다."라고 한 문장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사상례(士喪禮)〉 소(疏)에도 "비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머리를 안정되게 하는 비녀는 남자와 부인이 모두 있고, 관에 사용하는 비녀는 오직 남자만 있고 부인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자는 "부인은 관을 쓰지 않으니, 이른바 비녀는 곧 상투를 고정시키기에 사용하는 것으로 피변(皮弁)과 작변(爵弁)의 비녀와는 같지 않다."라고 하고, 보주(補註)에 또 "부인은 관을 쓰지 않으니, 비녀로 상투를 고정시킬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설을 근거해 보면 더욱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명나라 제도에 처음으로 봉관(鳳冠)을 사용하여 명부(命婦)의 복장으로 삼았는데, 속칭 화관(華冠)이 이것입니다. 오늘날 풍습에서 사용하는 족두리(簇道里)는 또한 화관의 잘못된 제도입니다. 원삼(圓杉)은 또한 우리나라 풍속의 제도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이미 논한 것이 있습니다.다발머리[髦]는 부모의 생육에 대한 은혜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니, 부모가 살아있으면 머리에 붙이고 돌아가시면 제거합니다. 비록 남자가 양자로 가서 그 후사를 잇고 여자가 이미 시집을 갔더라도 낳아주신 부모가 살아계시면 다발머리를 제거할 이치는 없을 듯합니다. 文王二十四生伯邑考,孔子十九歲生伯魚.以此觀之,雖古聖賢,鮮有三十而有室者矣.哀公問: "男子三十而有室,豈不晚哉?" 孔子曰: "夫禮言其極." 蓋雖不及三十而有室,謂之未至於極則可矣,而不必謂之失禮也.《家禮》所定"男子年十六至三十,乃可成昏"者,可萬世無獘也.婦人無冠,非惟《內則》"櫛縰笄總"之文爲然,《士喪禮》疏曰: "笄有二種,安髪之笄,男子婦人俱有,冠笄惟男子有,而婦人無也." 朱子曰: "婦人不冠,所謂笄即爲固髻之用,非如二弁之簪." 補註亦云: "婦人不冠,以簪固髻而已." 據此諸說,則尤曉然無疑矣.明制始用鳳冠爲命婦服,俗稱華冠是也.今俗所用簇道里者,又是華冠之誤制也.圓杉亦我國之俗制,此則陶菴《便覽》已有所論耳.髦所以表生育之恩,父母生則戴之,死則去之,雖男出後女已嫁者,其所生之父母存,則恐無去髦之理. 애공(哀公)이……하였습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본명해(本命解)〉에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수경 채환에게 보냄 계묘년(1903) 與朴受卿彩煥 ○癸卯 배우는 자가 스승에게 전수받아 용처로 삼는 것은 많은 것에 있지 않고 다만 스스로 떠맡아서 한두 글자를 얻어 자신의 밑천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원성(元城 유안세((劉安世))은 온공(溫恭 사마광(司馬光))에게 '성(誠)' 한 글자를 받아서 종신토록 행하였고15), 중거(仲車 서적(徐積))는 안정(安定 호원(胡瑗))에게 '직(直)' 한 글자를 받아서 평생토록 사용하였습니다.16) 아우는 형이 간옹에게 전수받은 '용(勇)' 자도 이와 같다고 여깁니다.대저 더디고 유약한 것은 배우는 자의 병통이니, 다만 '용(勇)' 한 글자야말로 귀신이 전수한 한 알의 영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勇)과 불용(不勇)은 이 학문의 성패를 가를 기틀입니다. "스스로 힘써서 쉬지 않는다."17)는 것도 다만 용이며, "죽은 이후에 그친다."18)도 다만 용입니다. 그리고 안자(顔子)가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19)라고 하고, 자로(子路)가 "듣고서 행하지 못함이 있으면 다시 들을 것을 두려워했다."20)라고 한 것도 모두 능히 용을 실천하여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된 것입니다. "한 삼태기가 부족하여 산을 이루지 못하고 그치었다."21)는 것과 "싹은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 경우도 있다."22)는 것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염구(冉求)의 자획(自畫)23)과 재여(宰予)의 주침(晝寢)24)도 결국에는 또한 용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간옹이 형에게 '용'을 말씀해 주신 것은 그 뜻이 어찌 얕은 것이겠습니까. 천만 스스로 힘을 써서 종신토록 수용하여 쓴다면 또한 원성(元城)과 중거(仲車)와 같게 될 것입니다. 형이 스스로 용기가 없다고 말씀한 것은 비록 겸양에서 나온 것이지만 제가 보기에 한 가지 일에 근사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 외람되게 번거로이 떠들었습니다. 형은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대저 사람이 상지(上知)가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룬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만법의 근원입니다. 천하에 지극히 귀한 것은 도이며 지극히 높은 것은 덕인데, 스승의 강수(講授)로 말미암아 귀하고도 높은 것을 얻으니 은혜와 의리가 깊고도 무거움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날부터 성현마다 이 일을 조기에 정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안자(顔子)가 공자를 따라 배운 것도 그 나이가 14세였고, 자하(子夏)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공자를 따른 것도 그 나이가 18세였으며, 이천(伊川)은 15세에 염계(濂溪)에게 배웠고, 회옹(晦翁)은 24세에 연평(延平)을 뵈었습니다. 이제 형이 간옹을 뵌 것은 이상의 여러 성현과 비교해 볼 때 조금 늦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굳은 마음으로 스승과 제자의 분수를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용기가 없는 것과 근사한 점이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근래에 제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박모(朴某)는 순실하여 함께 할만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참으로 듣기가 쉽지 않고 그 뜻 또한 의미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현의 시대와 멀고 인물도 없어서 학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사장(詞章)을 추구하는 속학(俗學)의 무리야 진실로 물을 것이 없으나, 도학(道學)을 한다 말하면서 서로 전수한 종지를 위반하고 별도로 자신의 법문을 세워서 의관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심성의 나뉨을 혼란시키는 자들이 또한 많으니, 온 나라를 둘러보아도 어디에 발길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이 한번 어긋나면 비록 허다한 심력을 모두 쏟고 수많은 말로 꾸민다 하더라도, 끝내는 성학의 참뜻과는 향기로운 풀과 누린내 풀처럼 서로 반대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신중히 살펴서 추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받들어 언급하였습니다.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學者之所受於師而爲用者,不在於多,只在自家擔夯,得一兩字做家計.是以元城受一誠字於溫公,爲終身之行; 仲車受一直字於安定,作一生之用.弟竊以爲兄之所受於艮翁之勇字,亦猶是也.夫遲回懦弱,學者之通病,而只是一箇勇字,可謂神傳鬼授之一粒靈丹也.故勇與不勇,此學成敗之機."自強不息",亦只是勇; "死而後已",亦只是勇.至於顏子之"舜何人,余何人",子路之"有聞未行,唯恐有聞",亦皆能其勇而爲聖爲賢也.若乃"未成一簣而止"者與"苗而不秀,秀而不實"者,勇不足故也.冉求之"自畫",宰予之"畫寢",究亦不過無勇之致.艮翁之語兄以勇,其意豈淺淺也哉? 千萬自力,做畢生受用之需,亦如元城、仲車也.兄自謂無勇,雖出於撝謙,然以弟觀之,似有一事近似者,猥此煩聒,願兄留心焉.夫人非上知,未有不待師教而成者.故師生者,萬法之源也.天下至貴者道,至尊者德,乃由其講授,得其貴且尊者有之,其恩義深重,顧何如哉? 故從古聖賢,未有不早定此事者.顏子之從孔子學也,時年十四; 子夏之從孔子於陳、蔡也,時年十八; 伊川十五而學濂溪; 晦翁二十四而見延平.今兄之見艮翁,視以上諸聖賢,可謂差晚,而猶不決意以定師生之分.故曰有一事近似於無勇也.頃承師教云: '朴某醇實,可與有爲.' 誠不易得此,其志亦有在也.世遠人亡,學術多岐.俗學詞章之輩,固無足問,號爲道學,而繆戾相傳宗旨,別立自家法門,顚倒衣冠之儀,乖亂心性之分者亦多,顧瞻宇內,罔知投蹤.路陌一差,雖費盡得許多心力,粧撰得許多辭說,終與聖學眞趣,若薫蕕之相反矣.此吾儕所當審愼而趨向者,故奉及焉,幸有以諒之. 원성(元城)은……행하였고 유안세가 사마광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닦는 요체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誠)일 것이다." 하였다. 이에 다시 유안세가 "그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였다. 《소학집주(小學集註) 권6 〈선행(善行)〉 유안세는 강직한 성품으로 직간을 하여, 전상호(殿上虎)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거(仲車)는……사용하셨습니다 서적이 스승인 호원(胡瑗)을 뵙고 나올 때에 머리의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호원이 갑자기 큰소리로 "머리를 곧게 세워라.[頭容直]"라고 하였다. 서적은 이 말을 듣고 머리를 곧게 세워야 할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곧아야 한다고 스스로 깨닫고, 이후로 부정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소학집주(小學集註) 권6 〈선행(善行)〉 스스로……않는다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라고 하였다. 죽은……그친다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보이는데,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않은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하였다. 순(舜)은……사람인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보이는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같이 될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자로(子路)는……두려워했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본래는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을 미처 실천하지 못했으면 유독 다른 가르침을 듣기 두려워했다.[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이다. 한 삼태기가……그치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이는데, "비유하면 산을 만드는 데에 한 삼태기를 더하지 않고서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평지에 한 삼태기를 붓더라도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라고 하였다. 싹은……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이는데, "싹이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라고 하였다. 이는 원래 학문을 하면서 완성에 이르지 못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의미를 전용하여 사용하였다. 염구(冉求)의 자획(自畫) 《논어(論語)》 〈옹야장(雍也)〉에 보인다.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非不悅子之道, 力不足也.]"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그은 것이다.[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라고 하였다. 재여(宰予)의 주침(晝寢)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는 아로새길 수 없고 분토의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不可杇也.]"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백 순준에게 보냄 갑술년(1934) 與崔伯舜 濬 ○甲戌 봄 사이 왕림하여 안부를 물어주신 것은 참으로 저를 멀리하지 않는 성대한 뜻에서 나왔으니 감격스러워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다만 길이 바빠서 차분히 토론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작별을 고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도가 만약 같으면 천 년 전의 사람도 오히려 벗을 삼아 서로 멀다 여기지 않는 반면, 도가 진실로 같지 않으면 아침저녁으로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더불어서 도의 같음을 구하는데 급급해야지 이합과 원근에 구질구질할 필요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도의 같음을 구하려면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함의 사이에서 강론하여 연마하여 서로 진보시켜야 함이 분명합니다. 우러러 청하건대 그대는 최근에 무슨 책을 읽으며 무슨 의리를 강구하십니까? 널리 묻고 정밀히 살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히 밝혀서 이른바 도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그만두지 않는 공부와 밝아지고 굳세지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8) 제가 흠송한 나머지 또 감히 얕고 비루한 소견으로 받들어 묻고 가르침을 청하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최근에 선사의 유고를 읽다가 그 해와 별처럼 밝은 논리와 못을 끊고 쇠를 자를 것 같은 굳건한 의리를 보았는데, 어찌 이리도 분명하면서도 엄격하단 말입니까. 저 김평묵(金平黙)이 제문에 전옹(全翁 임헌회(任憲晦))을 비난하고 폄하하자 선사가 홀로 맞부딪쳐서 그 문장을 배척하고 그 무함함을 변론하셨는데,9) 송골매가 떨치고 일어나서 참새를 쫓듯이 하였고 운무를 헤치고 하늘의 해를 바라듯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괴이한 것은 당시에 전옹 문하의 여러 제자 중에서 두세 명만을 제외하고는 그를 도와 힘을 보태는 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내 또 불만을 갖고서 말하는 자도 있었으며 심한 자는 기꺼이 저쪽의 앞잡이가 되어 오히려 이쪽을 헐뜯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겉으로는 스승을 따라 도를 배운다고 하지만 의리에 얻음이 없기 때문에 사사로운 마음이 틈을 타고 일어나, 작게는 혐의를 피하고 크게는 권세를 두려워하여 자기도 모르게 스승을 잊고 적을 도운 것입니다. 그때 만약 선사께서 일만 번 죽을힘을 내어서 물리치지 않았다면 전옹의 도가 어찌 오늘에 전해질 수 있었겠습니까? 적이 이것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 문하의 일을 미루어 살펴보면 이른바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다"10)라는 것입니다.아, 자신의 원고를 인가받아 간행토록 했다는 것의 의리가 없음은 본성을 감추고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 심하니, '힘을 헤아려 하라.'고 했다거나 '불언지교(不言之敎'라고 한 것은 암암리에 기롱하고 폄하한 것만이 아닙니다.11) 스승을 무함한 죄는 또한 벗을 무함한 죄보다 더욱 중합니다. 그렇다면 오진영의 스승을 무함한 흉악함은 김평묵이 지은 제문의 변고보다도 큰일이고, 또 1500명은 전옹을 따르던 자들보다 많으니, 마땅히 그 죄를 명확하게 정하여 한 명의 적을 일제히 성토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도가 더욱 낮아지고 의리가 더욱 어두워져, 앞잡이가 되어 도리어 헐뜯는 이씨와 정씨 같은 자가 줄지어 나오고,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돕는 윤씨와 서씨 같은 자는 거의 없으며, 그 일을 주관하는 자도 도학의 명망과 지위가 있는 자가 아니니, 어찌 하겠습니까. 선사께서 당일에 도적을 소탕하고 사문을 안정시킨 일 같음도 진실로 기필할 수 없었거니와 그 패망하여 사멸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습니다.그런데 이러한 때에 그를 위해서 말을 하는 자가 "그가 비록 죄가 있지만 참으로 스승을 존중하여 한 것이니 용서해야 마땅하고 성토하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하니, 한 사람이 제창함에 백 사람이 화답하여 스스로 공론이라 자처하며 거리낌 없이 저쪽의 세력을 돕고 이쪽의 힘을 어렵게 하니, 아, 너무도 잔인한 마음입니다. 이는 곧 주자가 '도적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바로 도적 편의 사람이다.'12)라고 한 격이니, 위에서 말한 불만을 갖고서 말을 하는 자에 비할 뿐만이 아닙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고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는 이와 같은 사람들은 또 무엇을 하는 자들입니까? 만약 그가 무함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면 이는 밝지 못한 것이고, 그가 무함한 것임을 알았는데도 오히려 침묵했다면 이는 어질지 못한 것입니다. 밝지 못한 잘못은 작으니, 이는 오히려 그가 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니 그래도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질지 못한 죄는 크니, 이는 오히려 그가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잡지 않은 것이니 더욱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밝지 못한 자와 어질지 못한 자는 모두 위에서 말한 힘을 내어 돕지 않은 경우이지만, 저 어질지 못한 자는 또한 도적 쪽의 사람일 뿐입니다.대저 전옹 문하에서 이미 그랬던 행적으로 우리 문하에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헤아려 보면 그 시비와 득실이 어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선사께서는 비록 한때에 혐노(嫌怒)를 실컷 받았지만 끝내 대의(大義)를 영원히 펴서 그 광화(光華)가 차서 넘치고 사방에서 전송하고 있습니다. 반면 저 침묵하고 배반하여 스승을 잊고 적을 도운 자들은 비록 한때에 편안함을 차지했지만 더러운 행적이 환히 알려져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먼 훗날에 오늘을 살펴본다면 그 영광과 욕됨이 또한 오늘날에 옛날을 살피는 것과 같을 것임은 더욱 명백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가만히 살펴보니 그대는 성품과 도량이 뛰어나서 진실로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적을 보고도 붙잡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문식 또한 뛰어나니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여 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자는 아니니, 마땅히 밝게 분변하고 엄하게 성토하여 지금과 후세에 할 말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조용하여 들리는 말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저 의리가 더욱더 어두워져서 더불어 말할 자가 없기 때문에 저계야(褚季野)의 피리(皮裏)13)를 본받으려 하는 것입니까? 아마도 할 말이 있을 것인데 그 화변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하여 할 말을 숨겨서 이전 사람이 했던 것처럼 후세 사람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모두 할 말이 있습니다. 만약 보통의 시비일 뿐이라면 모두 안 될 것이 없지만 지극히 큰일과 관계되어 죽은 스승을 무함하고 잔약한 명맥을 끊어 끊어버린 것이니, 마땅히 맹자가 말한 불공대천의 원수로 간주하여 끝까지 성토하여 남김 없게 해야 하고 다른 것은 고려할 것도 없습니다.그대는 진실로 선사의 밝은 이치를 강론할 수 있고 선사의 굳건한 의리를 지녀서, 오진영의 무함을 분별하여 물리치기를 선사가 김평묵의 뇌문(誄文)을 배척한 것처럼 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평소의 밝은 안목과 뛰어난 학식으로 반드시 조마경(照魔鏡)이 번개처럼 빛나고 파음부(破陰斧)가 우레처럼 울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사의 해처럼 찬란하고 옥처럼 고결함이 온전히 드러나고, 우리 군대의 의로운 명성과 올바른 기상이 배로 신장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여 이른바 도가 같은 자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어찌 가장 크고도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이를 도모하시기 바랍니다.선사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눈으로 부친과 스승이 무함을 당한 것을 보고도 분변하여 성토할 줄 모르는 자는 칼로 손가락을 잘라도 고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라고 했고, 또 말씀하시기를 "문인제자로서 다른 사람과 친화를 잃게 되는 작은 혐의를 피하려 하다가 스승을 위해 무함을 변론하는 대의를 잊는다면 스승과 제자의 윤리가 폐해질 것이고, 스승과 제자의 윤리가 폐해지면 삼강(三綱)과 구법(九法)14)이 또한 의지하여 설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교훈을 세 번씩 반복할 때마다 심목(心目)이 송연해지는데 저 스승을 무함하고 스승을 잊은 무리들은 또한 무슨 마음이란 말입니까. 내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대의 현명함은 실로 능히 면할 수 있음을 잘 압니다. 모두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春間枉存,寔出不遐之盛,其爲感荷無容云喻.而行李恖恖,未克穩討,旋卽賦別,至今以爲悵.雖然道若相同,千載尚友未爲遠; 道茍不同,雖朝暮遇不相爲謀矣.然則吾人只當實心相與,汲汲求道之所同,不必屑屑於離合遠近之間明矣.欲求道之所同,不可不講磨相長於學問思辨之間也亦明矣.仰請執事近日所讀者何書、所究者何義? 其於博審愼明以求所謂道者,想有不措之功、明強之效矣.區區欽誦之餘,亦敢以淺陋之見奉質而請教,幸垂察焉.近讀先師遺稿,見其日昭星晳之理、釘斬鐵截之義,何若是明且嚴也! 方嘉金祭文之譏貶全翁也,先師獨當其衝,斥其文而辨其誣,若奮鷹鸇而逐鳥雀,披雲霧而睹天日矣.獨怪夫當時全門諸人,除二三子外,不惟不助之出力,乃復不滿而有言,甚者甘作彼倀而反噬之也.夫如此者何也? 名爲從師學道,而無得於義理,故私邪闖發,小則避嫌 大則畏勢,自不覺忘師而助賊矣.向使先師不出萬死之力以排闢之,全翁之道豈得傳至于今耶? 竊嘗以此推觀於今日吾門之事,所謂殷鑑不遠者也.噫! 認刊己稿之無義,甚於儉德媚世,料量爲之、不言之教之云,非暗譏隱貶,誣師之罪,又重於誣友.然則震誣之凶大於金誄之變,且千五百人多於全翁之從,宜其明定其罪,齊討一賊,易易如也.奈之何世級愈降,義理愈晦,作倀反噬之李、鄭,比肩而接踵,同心協力之尹、徐,絕無而僅有,而主其事者又非有道學名位.如先師當日掃盪寇盜,奠安斯文,固未可必,而其免敗亡滅死者,亦云幸矣.乃於此時,有爲之說者曰: "彼雖有罪,實因尊師而作,宜在所恕,聲討則過." 一唱百和,自居公論,不憚助彼之勢而艱此之力,鳴乎! 其忍心甚矣.此卽朱子所謂"道賊可恕,便是賊邊人",不啻向者所謂不滿有言者比也.若乃不彼不此,無可無否,這一般人又何爲者也?如不知其爲誣也,則是不明也; 知其爲誣,猶且含黙,則是不仁也.不明之過小,是猶不知其爲賊,猶可說也.不仁之罪大,是猶知其爲賊而故不捉也,更不可說.不明不仁,俱是向者所謂不助之出力者,而其不仁者則是亦賊邊已矣.蓋以全門已然之跡,揆吾門之處義,其是非得失,豈不較然明著乎? 先師雖則飽受嫌怒於一時,終伸大義於百世,光華盈溢,四方傳誦.彼諸人之噤黙違反忘師助賊者,雖則自占便宜於一時,穢辱彰聞,百世莫改.由後視今,其可榮可辱,亦當如今之視昔也更明矣,可不畏哉?竊觀執事性度傑然,固非挾私邪而見賊不捉者,文識亦優,又非見理不明而不知其爲賊者,宜有明辨嚴討 有辭於今與後者,而尚寥寥無聞何也? 以其義理愈晦無可與語者,故欲效褚季野之皮裏歟? 蓋有之矣,而以其禍變益奇 祕之以待後世如前人之爲歟? 此二者俱有說焉.如尋常是非而已,則皆無不可者,關係至大,䧟死師剝殘脉者,則當如孟子不共戴天之讐,討之不遺餘力,其他非所恤也.執事誠能講先師昭晳之理,持先師斬截之義,辨斥震誣,若先師之於金誄,則以若平日之明眼巨擘,必見照魔之鏡燁然如電,破陰之斧轟然如雷,先師之日光玉潔,全軆呈露,吾軍之義聲直氣一倍用張矣.此於吾人愽審眞明以求所謂道之所同者,豈非最大且急者乎? 惟執事圖之.先師嘗有言曰: "目見父師被誣而不知辨討者,刀截而不知痛者." 又曰: "門人弟子避與人失和之小嫌,而忘爲師辨誣之大義,則師生之倫廢矣; 師生之倫廢,則三網九法亦無所頼而立矣." 每三復此訓,竦然心目,彼䧟師忘師者流,亦何心哉? 吾雖無似,自謂知足以知執事之賢果能免矣.統希究裁. 널리……생각합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하여야 한다.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댄 능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진댄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할진댄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분변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변할진댄 분명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댄 독실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아야 한다. …… 과연 이 도에 능하면 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유약하나 반드시 강해진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有弗學, 學之, 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 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 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 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 弗篤弗措也.……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라고 하였다. 저 김평묵(金平黙)이……변론하셨는데 김평묵이 임헌회의 제문을 지었는데, 임헌회를 호안국(胡安國)과 사마광(司馬光)에게 비유했다 해서 전우와 임헌회의 아들 임진재(任震宰)가 편지를 보내어 절교를 선언하고 제문을 돌려보낸 일을 말한다. 《간재집(艮齋集)前篇》권2〈답유치정(答柳穉程)〉 은나라의……않다 《시경(詩經)》 〈탕(湯)〉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으니, 하후의 세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왕(文王)이 은나라 주(紂)의 실정을 경계한 말로, 은 왕조의 운명은 하(夏) 왕조를 멸망시킨 걸(桀)에서 교훈을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아닙니다 전우가 오진영을 불러서 '문집 인간(印刊)의 일은 자네가 알아서 행하라'라고 했다는 것을 말하는데, 평소 간재 전우가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도적도……사람이다 주자가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도적을 보고도 잡지 않는다면 그는 곧 도적의 무리이니, 도적은 사람들의 마음에 마땅히 싫어하는 것이다. 만약 '도적을 잡아 주벌해야 마땅하다'고 한다면 이는 주인 편의 사람이고, 만약 '도적은 잡을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이는 도적 편의 사람이다.[有人見了自不與捉, 這便喚做是賊之黨, 賊是人情之所當惡. 若說道賊當捉當誅, 這便是主人邊人, 若說道賊也可捉可恕, 這只喚做賊邊人.]"라고 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55 〈맹자孟子55조〉 저계야(褚季野)의 피리(皮裏) 진(晉) 나라 환이(桓彛)가 저계야(褚季野)를 평하기를, "계야는 껍질 속에 춘추(春秋)가 있어 비록 말하지 않아도 사시(四時)의 기운이 갖추어 있다." 하였다. 그것은 겉으로 말을 잘하지 않으면서도 속에는 시비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구법(九法) 《주례(周禮)》 하관(夏官) 대사마(大司馬)에, "방국(邦國)에 구법(九法)을 세워 왕을 보좌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였으니, 경기(京畿)를 제정하고 나라를 봉하여 방국을 바로잡으며, 의례(儀禮)의 직위(職位)를 설정하여 나라의 등급을 정하며, 현인(賢人)을 올리고 공을 이루어 나라를 건설하고, 감(監), 목(牧)을 세워서 나라의 벼리를 정하고 군제(軍制)와 금고(禁錮)를 만들어 나라를 바로잡고, 공물(貢物)을 베풀고 직분을 나누어 나라 일에 임하고, 향민(鄕民)을 뽑아 나라 일에 쓰고, 고루 법을 지키어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겨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변복삼 규원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邊復三圭源 ○乙丑 제가 힘을 헤아리지 않고 스승을 무함한 적을 성토하는데 참여했다가 큰 재앙을 만나 생사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형이 쇠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두 번이나 찾아와 돌보아주셨으니, 뜻과 의리가 오늘날 서로 같지 않았다면 어찌 이처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호라! 십시(十侍)4)와 백마(白馬)5)의 화(禍)는 포악하긴 포악하였지만 환관은 조신(朝臣)과 다른 부류이고, 유자광(柳子光)과 이극돈(李克墩)6), 남곤(南袞)과 심정(沈貞)7)의 해독은 참혹하긴 참혹하였지만 오히려 본조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오진영(吳震泳)과 같이 바깥 오랑캐 왜인의 손을 빌려 동문을 죽인 경우가 있었겠습니까. 이번에 저는 또한 무사하였으나 통문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은 형세 상 여러 번 왜경에게 불려가 심문을 당한 뒤에나 그칠 것이니, 형 또한 어찌 반드시 홀로 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면할 수 없다면 장황하게 얘기하지 마시고, "나는 오진영이 선사를 무함하고 가르침을 어긴 것을 성토하였다. 사문의 난적이라 한 것은 오진영을 가리킨 것이지 강태걸(姜泰杰)을 가리킨 것이 아니니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우리 선사의 유서에 인가를 받아 간행하는 것을 금한 원고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 의해 경영될 물건이 아니었으니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강력하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일이 사실에 부합하고 의리가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弟不自量力,參討誣師之賊,遭罹大禍,死生莫測.乃兄遠程曳衰,再度見顧,非志義今日之同,烏能如此? 鳴呼! 十侍、白馬之禍,烈則烈矣,閹宦之於朝士異類也; 光、墩、袞、貞之毒,慘則慘矣,猶爲起事於本朝也.古今天下,安有假手外夷戕殺同門如震賊者乎? 今番弟行,亦且無事.然參通諸人,勢將累呼究問而後已,兄亦安能必其獨免? 如不得免,則除却支辭蔓語,但力言"吾討吳震泳誣師違訓.師門悖賊.是指吳非指姜,名譽損害非所當.且吾先師遺書禁認之稿,初不當爲人營業物,則業務妨害,亦不當也"云,則事得實而義不屈矣. 십시(十侍) 십상시(十常侍)의 약어이다. 후한 영제(後漢靈帝) 때 권세를 부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장양(張讓)ㆍ조충(趙忠) 등 12인의 환관을 말하는데, 그 명단과 실상이 《후한서(後漢書)》 권78 〈환자열전(宦者列傳) 장양(張讓)〉에 자세히 나온다. 백마(白馬) 당(唐)나라 천우 2년(905), 마지막 황제인 소선제(昭宣帝) 때 권신(權臣) 주온(朱溫)이 배추(裵樞) 등 조정의 선비 30여 명을 백마역에 모아서 하루 저녁에 다 죽이고 그 시체를 황하(黃河)에 던져 넣은 사건을 말한다.《당서(唐書)》권240〈배추열전(裵樞列傳)〉단, 문맥으로 볼 때 이는 백마역 사건이 아니고, 동한(東漢) 말 당고지화(黨錮之禍)를 가리킨 듯한데, 우선 원문대로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참고로 당고지화는 환제(桓帝), 영제(靈帝) 때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국사를 마음대로 하자 사대부인 이응(李膺), 진번(陳蕃) 등이 태학생들과 연대하여 환관들을 맹렬히 탄핵하였는데, 이로 인해 환관들이 도리어 이들을 종신 금고(禁錮)에 처하여 벼슬길을 막아 버린 사건이다.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열전(黨錮列傳)〉 유자광(柳子光)과 이극돈(李克墩) 연산군(燕山君) 때의 훈구파 수장들이다. 신진 사림파와 반목하여 김일손(金馹孫) 등을 탄핵해서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다. 남곤(南袞)과 심정(沈貞) 이들은 중종(中宗) 때의 훈구 재상(勳舊宰相)으로 신진 사류(新進士類)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등을 일망타진한 장본인들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주동 인물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기설 제2 【1919년】 自欺說第二 【己未】 내가 이미 앞에서 설을 지었는데 나에게 힐난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자기(自欺)라고 여기는 것은 지(知)의 과실이 아니니, 지가 뜻을 성실하게 하는데 조금도 간섭함이 없는 것 같다."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아! 무슨 말인가? 천하에 어찌 지가 지극하지 않은 성의(誠意)가 있겠는가. 또 어찌 내가 전에 뜻이 성실하지 않은 것이 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던가. 대체로 고금의 학자 중에 지가 지극하지 못하여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지 못하는 자가 있고, 또 지가 비록 지극할지라도 실제로 그 힘을 쓰지 않는 자가 있다. 지가 지극하지 못하여 정성스럽지 못한 자로 말하면 정성스럽지 못한 것은 정성스럽지 못한 것이지만 자기는 아니니, 무엇 때문인가? 그 견해가 도달하지 못하여 실제로 속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가 비록 지극하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힘을 쓰지 않는 자에 이르러서는 바로 자기이니, 무엇 때문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않아서 본심(本心)의 밝음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기(自欺)는 지의 과실이 아니라 바로 뜻의 사사로움이다.'라고 한다.만약 자기가 지의 지극하지 못함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가 지극한 자는 저절로 마땅히 자기가 없을 것이다. 자기가 없는 것이 어찌 뜻이 이미 성실한 자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다면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한 장으로 이미 족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다시 성의와 정심(正心) 이하의 허다한 공부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주 선생(朱先生 주자)이 진실로 '지가 이미 지극해지면 뜻이 성실해질 수 있다.108)'라고 하였고, 일찍이 '지가 이미 지극하면 뜻이 저절로 성실해진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余旣爲前說, 有難余者曰: "子以爲自欺, 非知之過, 恐知之於誠意, 了沒干涉.", 曰: "惡! 何言? 天下焉有知不至之誠意? 余又何嘗道意未誠, 非知之過? 蓋古今學者, 有知之不至而不能誠其意者, 亦有知之雖至, 而不實用其力者. 知不至而不誠者, 不誠則不誠矣, 而自欺則非也, 何也? 以其見之未到而實無所欺也. 至於知雖至而不實用力者, 乃自欺也, 何也? 以其已知而不爲, 爲欺其本心之明也. 吾故曰: '自欺者非知之過, 乃意之私也'. 苟謂自欺是知不至之故, 則知之至者, 自當無自欺矣, 無自欺者, 豈非意已誠者乎? 如此則《大學》格致一章已足矣, 何復用誠正以下許多工夫乎? 朱先生固曰; '知旣盡則意可得而實矣.', 不曾曰: '知旣盡則意自誠矣.'". 지가 …… 있다 《대학장구》 경(經) 1장에서 주자가 "지가 이미 지극해지면 뜻이 성실해질 수 있고, 뜻이 이미 성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知旣盡則意可得而實矣, 意旣實則心可得而正矣.]"라고 주석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쥐에 대한 설 【1939년】 蝙蝠說 【己卯】 나의 새로 지은 초가집이 소나무 숲속에 있는데, 학동(學童)이 담벼락 사이에서 동물 한 마리를 잡았다. 이를 우족(羽族)144)이라고 이르자니 깃이 없으나 능히 날 수 있고, 모족(毛族)145)이라고 이르자니 발이 없으나 능히 달릴 수 있었다. 몸 양쪽 곁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얇은 살이 있는데 그 사이가 단단한 근육으로 되어 있어, 펼치면 두 날개가 되어 날 수 있고 거두어들이면 네 발이 되어 달릴 수 있으니, 기이하고 이상하다. 그러니 우족인지 모족인지, 난다고 해야 할지 달린다고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다.내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옛날에 곤륜산(崑崙山)에서 우족과 모족 사이에 큰 전쟁을 일어나 서로 살상을 하였고, 이 때문에 원수 사이가 되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한 곤충이 있었으니 달릴 수도, 날 수도 있지만, 우족과 모족에게 한 번도 싸움에 도와준 적 없이 오직 자신만의 보존을 도모하였다.어느 날 모충(毛蟲)이 그 곤충이 잘 날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가서 따져 묻기를 "너는 나의 원수가 아니냐."라고 하니, 그 곤충은 두 날개를 접고 네 발을 나누어 만들고는 날쌔게 달리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우족이겠는가. 나는 너희들과 똑같다."라고 하였다. 또 어느 날 우충(羽蟲)이 그 곤충이 잘 달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서 따져 물으니, 그 곤충은 곧 두 날개를 펼쳐 훨훨 날면서 말하기를 "누가 나더러 모족이라 하느냐. 너희들과 무슨 원수이겠는냐."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우족과 모족에게 모두 싫어하는 틈이 없었으니, 그 이름을 '박쥐[蝙蝠]'라 한다. 네가 바로 이와 같은가? 네가 진실로 이와 같다. 아! 오늘날 시비의 논쟁에 지조 없이 오락가락하는 선비들이 또 너에게서 처세술을 본받았나 보다. 余之新築茅堂在松林中, 書童於墻壁間, 獲一動物, 謂之羽族則無羽然而能飛, 謂之毛族則無足然而能走. 蓋身之兩傍, 有薄肉掌廣, 而間以勁筋, 張則爲兩翅而飛, 斂則爲四足而走, 奇乎異哉! 族之羽毛, 名之飛走, 不可得而定矣. 余嘗聞昔者崑崙之山, 羽毛二族大起戰爭, 互有殺傷, 因成仇隙, 久而不解. 有一蟲焉, 雖能走能飛乎, 於羽於毛, 一無助戰, 惟自保身是謀. 一日, 毛蟲聞其能飛, 往詰之曰: "爾非吾仇乎?", 則斂其兩翅, 分作四足, 銳然而走曰: "吾豈是羽族? 吾與爾一也.". 又一日, 羽蟲聞其能走, 亦往詰之, 則張其兩翅, 奮然而飛曰: "孰謂吾毛族, 與爾何仇?". 是以於羽於毛, 俱無嫌隙, 其名曰蝙蝠. 爾則是耶? 爾眞是也. 嗚呼! 今之士之依違於是非爭論者, 其亦取法於爾歟? 우족(羽族) 날아다니는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모족(毛族) 털을 가진 네발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변'자설 【1940년】 辨字說 【庚辰】 〈열명(說命)〉에서 처음으로 지(知)와 행(行)을 상대하여 거론하자119), 사람들은 모두 "성인의 학문은 지와 행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대성인(大聖人)이니,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120)은 학문의 큰 조목이다. 대성(大聖 공자)이 학문의 큰 조목을 세우는데 지와 행 두 글자를 상대시키지 않고, 바로 학문사변(學問思辨)121) 네 글자를 행(行 독행) 한 글자에 상대시켰지만, 학문사(學問思)122) 세 글자는 또한 모두 명변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변(辨)'자는 바로 '지(知)'자를 대신하는 말로, '행(行)'자의 적확한 상대가 되니, 변이 바로 지이고 지가 바로 변이기에 또한 성문의 학문은 변과 행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중용》의 명변(明辨)이 바로 《대학》의 치지(致知)이다."라고 말하겠다. 행은 한 조목일 뿐인데 변이 네 조목을 합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행은 오직 일심(一心)의 추기(樞機)123)와 관계되지만, 변은 대부분 온갖 이치의 두서(頭緖)를 일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지의 방법을 논하면 천하의 물리를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성의(誠意)의 요점을 말하면 '스스로 속이지 마라[毋自欺]'는 세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평생 하는 독서(讀書), 강의(講義), 잠심(潛心), 연기(硏幾 기미를 궁구함), 종사(從師), 문학(問學), 자우(資友 벗에 의지함), 광문(廣聞), 입론(立論), 진견(陳見 견해를 말함), 기의(記疑)124), 대오(待悟) 등 허다한 일들이 '변'자 공부가 아님이 없다. 행에 이르러서는 이것을 들어 조처하는 것으로, 다만 심력(心力)을 전일하게 하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덕(成德)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행도(行道)'라고 하지 않고 '지도(知道)'라고 하니, 《주역》의 〈문언(文言)〉에서 말한 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知)' 한 글자로 덮었다. 무릇 세상에서 성인에 대해 말하는 자들은 반드시 '무슨 일이든지 두루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중용》에서는 순임금을 '대지(大知)'라고 일컬었으니125), 그 의사의 귀추를 알 수 있다.예로부터 성현이 스스로 행했던 사업에 이르러서는, 공자는 《춘추(春秋)》를 지어 향원(鄕原)126)을 미워했고, 맹자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치고127) 제동(齊東)128)을 배척하였으며, 주자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여 육구연(陸九淵)129)과 진량(陳亮)130)을 논하였으며, 우리 선사 간옹이 심종(心宗)을 논박하고131) 김평묵(金平默)132)의 뇌문(誄文 제문(祭文))을 물리치는데 이르러서는133), 한 번도 '변'자로 뜻을 주로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개 이러한 분들은 평소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에 성위(誠僞)의 기미와 사정(邪正)의 구분을 자세히 헤아려서 조금의 사특함이 혹시라도 잠복해 있지 않게 하였고, 목전에서 응접할 때에 득실(得失)과 당부(當否)의 관계를 정밀히 살펴서 혹시라도 과실이 남아 있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또한 사람의 선악, 덕의 진가(眞假), 학문의 정이(正異), 말의 허실(虛實)에 스스로 지나쳐 버려 자기 시비의 본심을 어둡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니, 이를 두고 내외가 서로 합하고 심사(心事)가 일치한다고 이르는 것이다. 군부(君父)와 성현과 사우(師友)와 관계된 것과 같은 것은 일이 또 특별하여 더욱 그만둘 수 없다. 괴이하다! 지금의 학자들은 옛날 현성(賢聖)이 행한 것을 스스로 힘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사람들이 부사(父師)의 무고(誣告)를 분변하는 것에 대해서 다투는 마음과 이기려는 기개로 돌려서 이를 경시하니, 어쩌면 이러한 사람들은 평소에 마음의 숙특(淑慝 선악)과 일의 가부(可否)를 분변한 적이 없기에 또한 이러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134)"라고 하고, 또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135)"라고 하였으니, 사람으로서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어찌 그 지를 다할 수 있겠으며, 또한 어찌 알지 못하고서 행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이러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평상시에 말하는 지와 행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성문(聖門)의 학문은 변과 행일 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듣는 사람과 이를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슬프구나! 自〈說命〉始以知行對擧, 人皆曰: "聖門之學, 知與行而已.". 然而孔子大聖人也, 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 學之大目也. 以大聖立學之大目, 不以知與行二字相對, 乃以學問思辨四字對一行字, 而學問思三字, 又皆所以爲明辨地也. 然則辨字卽知字之代辭, 乃行字之的對, 辨卽知, 知卽辨, 而亦可曰聖門之學辨與行而已. 吾故曰: "《中庸》之明辨卽《大學》之致知也.". 行只一目, 辨合四目者, 何也? 行單係於一心之樞機, 辨多事於萬理之頭緖. 故論致知之方, 則天下物理無不窮之, 語誠意之要, 則不過毋自欺三字. 是故學者一生, 讀書, 講義, 潛心, 硏幾, 從師, 問學, 資友, 廣聞, 立論, 陳見, 記疑, 待悟許多事, 無非辨字工夫. 至於行則擧此而措之, 只得心力專一則斯可已. 故及其成德也, 不曰行道者, 而曰知道, 《易》之〈文言〉語君子, 則以知之一字冒始終. 凡世之語聖人者, 必曰無不通知, 《中庸》稱舜爲大知, 其意思歸趣可知矣. 至於從古以來聖賢所自爲之事業, 則孔子之修《春秋》, 惡鄕原, 孟子之闢楊墨, 斥齊東, 朱子之編《綱目》, 論陸陳, 以至我先師艮翁之駁心宗, 逐金誄, 無一非辨字主義. 蓋其平日心上意念, 誠僞之幾, 邪正之分, 細勘之, 不使纖慝之或藏, 目前應接, 得失之係, 當否之關, 精察之, 不欲過錯之或留. 故亦於人之善惡, 德之眞假, 學之正異, 言之虛實, 自不容放過以昧我是非之本心, 此之謂內外相合, 心事一致也. 若其關於君父聖賢師友者, 則事又自別而尤不容己也. 異哉! 今之學者, 非惟不以古昔賢聖所爲自勉, 更於人之辨父師誣也, 歸之爭心勝氣而鄙夷之, 豈此輩人不曾辨心之淑慝, 事之可否於平日, 故亦於此, 自不能不爾歟. 孟子曰: "是非之心, 智之端.", 又曰: "無是非之心, 非人.", 人而無是非, 安能以致其知? 亦安有不知而能行者乎? 於此人乎, 尙難以語恒言之知與行, 況可與言聖門之學辨與行而已之創聞者乎? 噫! 〈열명(說命)〉에서 …… 거론하자 《서경》 〈열명〉에서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艱, 行之惟艱.]"라고 하였다. 박학(博學) …… 독행(篤行) 《중용장구(中庸章句)》 20장에 "이를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해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고 하였다. 학문사변(學問思辨) 박학, 심문, 신사, 명변이다. 학문사(學問思) 박학, 심문, 신사이다. 추기(樞機) 사물의 관건이나 핵심, 근본을 뜻하는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이다.[言行君子之樞機.]"라고 하였다. 기의(記疑) 의심나는 곳을 기록하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 일컬으니 《중용장구(中庸章句)》 제6장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은 매우 지혜로운 분이시다.[舜其大知也與!]"라고 하였다. 향원(鄕原)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德之賊也.]"라고 하였다. 양주(楊朱)와 …… 물리치고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호하여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고, 부정한 말을 추방하여 삿된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라고 하였다. 제동(齊東)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맹자가 "이것은 군자의 말이 아니고, 제나라 동쪽 야인들의 말이다.[此非君子之言, 齊東野人之語也.]"라고 말한 데서 나온 말로, 이는 제나라 동쪽에 사는 야인들이 길에서 퍼뜨리는 근거 없는 말을 뜻한다. 육구연(陸九淵) 1139~1193. 자는 자정(子靜)이고, 호는 상산(象山) 또는 존재(存齋)이다. '마음이 곧 이(理)이다.[心卽理]'라는 설을 주장하였다. 유교의 고전인 육경(六經)도 '내 마음의 주각(註脚)'이라 하여 주자와 대립하였다. 진량(陳亮) 1143~1194. 송대(宋代)의 사상가이다. 원래 이름은 여능(汝能)인데 뒤에 량(亮)으로 개명하였다. 자(字)는 동보(同甫)이고 학자들이 용천 선생(龍川先生)이라고 불렀다. 주희(朱熹)가 진량에게 편지를 보내서 '의리쌍행(義利䨇行), 왕패병용(王霸並用)' 8글자에 대해 경계했다는 내용이 《회암집(晦庵集)》 권36 〈여진동보(與陳同甫)〉에 나온다. 심종(心宗)을 논박하고 간재는 성사심제(性師心弟)를 기본 강령으로 하여, 심을 이(理)와 스승로 보는 심종을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서 반박하고 있다. 김평묵(金平默) 1819~1891. 호는 중암(重菴)이고, 자는 치장(穉章)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김평묵(金平默)의 …… 이르러서는 김평묵이 임헌회(任憲晦)의 제문을 지었는데, 여기에 기롱하는 뜻이 있었다. 이에 간재와 임헌회의 아들 임진재(任震宰)가 편지를 보내 절교를 선언하고 제문을 돌려보낸 일을 말한다. 《간재집 전편(艮齋集前篇)》 권2 〈답유치정(答柳穉程)〉. 시비지심은 …… 단서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라고 하였다. 시비지심이 …… 아니다 《맹자》 〈공손추 상〉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럽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삼남 김형관265) 혼서 【신미년(1931)】 三子炯觀昏書 【辛未】 같은 기운은 서로 찾고,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는데, 혼탁한 말세에는 한 마음의 짝 찾기 어렵습니다. 남자가 아내를 얻고, 여자가 집을 가짐은 부모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전해온 옛 전례에 따른 폐백 올리며, 감히 품었던 생각 곧게 말씀드립니다.생각건대 귀 댁 네째 따님은 유덕한 가문에 태어나 자라서, 타고난 용모와 자질이 본래 단아하고 화순(和順)한데다 의례의 가르침을 받아 규범을 따름이 조신하고 엄정합니다. 저의 삼남 김형관(金炯觀)은 부질없이 헛되이 이름만 날렸을 뿐 백규(白圭)의 노래 반복하는 군자266)로는 실로 부끄럽습니다. 품격이 고상하지 못하여 범상한 새[鳳]267)에 그칠 뿐입니다.그런데 뜻밖에도 선비들이 도끼 이야기268)를 하여 주었고, 넓으신 아량으로 천금 같은 허락을 하여 주시었습니다. 이제 이지러지고 버려진 육례(六禮)를 모두 갖추어 중인의 눈길을 놀래켜 깨우고, 집안 경제의 형편은 묻지 말아서 관습을 넘어서고자 합니다. 용을 타는 기쁨을 갑자기 존하께 드릴 수는 없겠사오나, 빈한한 가문에 기린 같은 자손을 깊이 경축하는 노래를 기대합니다. 지극히 감사하고 기쁜 마음 이루 다 적지 못 합니다. 氣相求, 聲相應, 難得叔季之同心, 男有室, 女有家, 豈非父母之所願? 玆因皮幣之遺典, 敢告肺肝之直辭。 伏惟令季女生長德門, 旣賦容質之端順, 承受義敎, 亦循規範之謹嚴。 澤述第三子炯觀聲聞虛馳, 實有慙乎圭復, 品格凡下, 奈不免於鳳題。 何圖多士之發斧言, 乃蒙雅量之賜金諾。 悉擧廢缺之六禮, 聳動衆瞻, 不問豊約於兩家, 超出本俗。 豈乘龍之遽擬於尊座, 庶咏麟之深祝於寒門。 其爲感欣, 罔極輸罄。 김형관 1915년 출생, 자는 극부(克孚), 호는 건암(健菴)ㆍ기산(麒山)이며, 기린정사(麒麟精舍)를 세우고 남고(南皐)서원ㆍ동죽(東竹)서원ㆍ고부문묘(古阜文廟)의 장의(掌議)를 하였다. 부인 전주최씨의 생몰년은 1917~1968년이고, 그 부친은 경재 최병찬(敬齋崔秉瓚), 조부는 성암 최익홍(誠菴崔益洪)이다. 백규……군자 공자의 조카사위가 된 신실한 남궁괄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앞 〈장남 김형복 혼서〉의 주석 참조. 범상한 새 봉(鳳)자를 범(凡)과 조(鳥)로 파자하여 해석한 것이다. 위진(魏晉)시대의 여안(呂安)이 마음의 벗 혜강(嵇康)을 찾아왔다가 출타하여 못 보고 돌아가면서 문에 봉(鳳)자를 써 문자의 유희를 하였다한다. 《世說新語.簡傲》 도끼 이야기 혼담을 말한다. 앞 〈장남 김형복 혼서〉의 주석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기설 【1919년】 自欺說 【己未】 무릇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데도 이와 반대로 자신에게 베푸는 것으로는 '자신을 꾸짖음[自責]', '자신을 다스림[自治]', '자신을 원망함[自怨]', '자신을 비웃음[自笑]' 같은 등속이 진실로 많다. 그런데 유독 '자신을 속인다[自欺]'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欺)는 이쪽에서 저쪽을 어둡게 하는 것을 이른다. 한 사람인데 과연 누가 속이고, 누가 속는 것인가?이에 《대학》의 경문(經文) 및 장구(章句)를 취하여 반복하고 숙독한 뒤에, 자기(自欺)는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속인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찌하여 그렇게 이르는가. 선은 마땅히 실천하고 악은 마땅히 제거해야 하는 것은 지(知)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뜻이 그 지를 채워 성실하게 하지 못하면, 이는 뜻이 지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도 마음의 지이고, 뜻도 마음의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마음을 속인다.'라고 하겠다.묻기를 "그렇다면 과연 지가 뜻에게 어두워짐을 당하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지는 지이고 뜻은 뜻일 뿐이니, 어찌 어두워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묻기를 "어두워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것을 기라고 이르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내가 비록 어둡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이 실제로 어둡게 한다면, 어떻게 이것을 기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의 간과 폐를 보듯 훤히 꿰뚫어보는 군자가 한가하게 지내는 소인에게 속지 않았으면, 이를 두고 소인이 군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그렇다면 뜻이 성실하지 않을 때 지가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이때를 당하여 뜻은 한창 용사(用事)하고, 지는 공을 이루고 떠나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니, 어떻게 그것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이 지(知)는 과연 충분히 다하여 한 점의 누도 없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그렇다. 성의(誠意)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그 지를 지극히 함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에 자기(自欺)의 여부가 정해진다. 이는 분명히 성의 가운에의 일이니, 비록 지에 누를 끼치려고 하지만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이것은 그렇지만, 그대는 어찌 《주자어류(朱子語類)》와 《혹문(或問)》을 보지 않는가. 지가 미진(未盡)하면 자기(自欺)에 이르니 자기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 선은 참으로 좋아할 만하고 악은 참으로 미워할 만한 줄을 모른다면,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104) 이와 같은 등속은 장차 어떻게 구분하여 처리해야 하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이것은 과연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대학장구》의 '자기라고 이른 것는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마음의 발하는 바가 성실하지 못함이 있다.105)'라는 문장을 가지고 보면 결국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이미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으니, 이 지가 어찌 일찍이 거짓되고 미진한 지이겠는가.또 '마음의 발한 바에 미진한 것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과연 뜻이 스스로 재앙을 짓고 지와 죄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대학장구》를 정론(定論)으로 삼는다면 후학들이 여기에 저절로 의지하여 따를 것이 있을 것이다. 또 공부의 차례와 사리의 구경(究竟)으로 미루어 보면 말할 만한 것이 있다.무릇 세상에서 지를 다하지 못하여 뜻을 성실히 할 수 없는 자가 진실로 많으니, 이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이다. 군자는 '무심코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이를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속이는 자에 이르러서는 바로 이미 알면서 스스로 성실히 하지 못한 자이니, 이런 경우는 마땅히 유심(有心 의도적인)의 사사로움으로 귀결시켜 용서하지 않는 조목에 두어야 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지가 미진한 자는 진실로 그 뜻을 성실하게 할 수 없지만, 지가 미진한 데서 사사로움이 있는 자기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진실로 의심이 없을 수 없다고 본다.다만 《대학장구》의 장(章) 밖의 주에 '심체의 밝음이 미진하면 발하는 바가 성실하지 않아 스스로 속이게 된다.106)'라고 이른 것은 결국 지(知) 한쪽을 중시한 설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바로 성의(誠意)를 따로 세우고 단독으로 전하여 치지(致知)와 연결시키지 않았으니, 이는 사람들이 윗 장을 이어 통틀어 상고하지 않거나, 치지를 먼저 하지 않고 다만 뜻을 성실히 하려고 하면 크게 해가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위에서부터 근원을 미루어 지의 미진에 대해 말하면 뜻을 성실히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기는 바로 성실하지 않는 진장(眞贓 확실한 증거물)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대해서 말해나간 것이고, 심체의 밝음이 미진한 것으로써 스스로 속이는 것의 실병(實病 실제의 병)을 말한 것은 아니다. 수절(首節) 《대학장구》의 자기의 해석 가운데 넣지 않고 장(章) 밖에 둔 것으로 보면 자기의 실병을 볼 수 있으니, 그 아래 글에서 이른바 '이미 밝게 알았더라도 이를 삼가지 않으면107)[已明而不謹乎此]'이라고 말한 한 구는 여기에 해당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다. 凡人之可施於人, 而反之以自施者, 如自責自治自怨自笑之類固多矣. 獨自欺者何說焉? 欺者以此昧彼之謂也. 一人焉, 而果誰昧之? 果誰受昧? 乃取《大學》經文及《章句》, 反覆熟讀然後, 知自欺者以吾心欺吾心也, 曷謂焉? 善當爲, 惡當去, 非知之所已識乎? 而所謂意者不能充其知而實之, 斯非意欺知乎? 然知亦心之知也, 意亦心之意也. 故曰: "心欺心也.". "然則知果爲意所昧乎?", 曰: "知自知意自意, 焉得昧?". "爲不昧, 胡謂之欺?", "吾雖不昧, 彼實昧之, 安得不謂之欺? 如見肺肝之君子, 不見欺於閒居小人, 謂小人不欺君子可乎?". 曰: "然則意之不實也, 知可以管他而不能, 何也?", 曰: "當是時也, 意方用事, 知則成功者去, 不在其位, 如何管得他?". 曰: "此知也果十分盡而無一點累者乎?", 曰: "然. 誠意是格致以後事. 故不曰所謂誠其意在致其知, 而只曰誠其意者毋自欺也, 於是乎自欺與否定, 定是誠意中事, 雖欲貽累於知, 得乎?". 曰: "是則然矣, 子盍觀乎《語類》, 《或問》乎? 知之未盡, 至於自欺, 自欺是半知半不知底人, 不知善之眞可好, 惡之眞可惡, 則不免於自欺諸. 如此類, 將何以區處?", 曰: "此則果有難言者, 但以《章句》自欺云者, 知爲善而去惡, 心之所發, 有未實之文觀之, 終有不然. 旣云知爲善而去惡, 則是知也, 何嘗是虛假未盡之知乎? 又云心之所發, 有未盡則是未實也, 果非意之自作孼而可分罪於知者乎? 故若以《章句》爲定論, 則後學於此, 自有所適從矣. 且以工夫次序事理究竟推之, 亦有可說者. 凡世之知未盡而不能誠意者, 固多有之矣, 是則欲而未能者. 君子以爲無心之失而恕之也, 至於自欺者, 乃已知而不自實者, 此則當歸之於有心之私, 而在不恕之科也. 故妄意以爲知未盡者, 固不能誠其意, 至謂有私之自欺, 出於知之未盡, 則誠不能無疑也. 獨《章句》章外註心體之明未盡, 則所發不實而自欺云者, 終似重知一邊說. 然此則正以其誠意之別立單傳, 而不連致知, 恐人不承上章而通考之, 或不先致知而徒欲誠意, 則爲害大矣. 故從上推原說知未盡, 則意不可得以誠, 而自欺者乃不誠之眞贓也. 故自然連帶說去, 非以心明之未盡語自欺之實病也. 以其不入首節《章句》自欺訓釋之中, 而置之章外者觀之, 可見若乃自欺之實病, 則其下文所謂已明而不謹乎此一句, 正可以當之矣.". 자기는 ……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6 〈대학 삼(大學三)〉에서 주자가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 선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선을 실천하지 못하고, 악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그만두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 却不十分去爲善, 知道惡不可作, 却是自家所愛, 舍他不得, 這便是自欺,]"라고 하였다. 《대학장구》 전(傳) 6장 성의(誠意) 부분에서 주자가 주석한 내용이다. 심체의 …… 된다 《대학장구》 전 6장의 맨 끝부분에는 "심체의 밝음이 미진한 바가 있으면 그 발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게 된다.[蓋心體之明, 有所未盡, 則其所發必有不能實用其力, 而苟焉以自欺者.]"라고 되어 있다. 이미 …… 않으면 《대학장구》 전 6장 맨 끝부분에 "그러나 혹 이미 밝게 알았더라도 이를 삼가지 않으면, 그 밝힌 것이 또 자기의 소유가 아니어서 덕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 없다.[然或已明而不謹乎此, 則其所明又非己有, 而無以爲進德之基.]"라는 주자의 주가 나온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진년 생일 아침에 감회를 기록함 庚辰生朝識感 올해 경진년(1940)은 내 나이가 57세이고, 오늘 아침 6월 6일은 바로 내 생일이다. 예전 20여세 때에 선친이 관상쟁이를 불러서 내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관상쟁이가 나의 평생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고 끝에 "수(壽)가 57세에 불과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선친이 기뻐하지 않고 그만두었다. 올해가 바로 그때에 해당되고 해가 또 장차 반이 되어가는데, 관상쟁이의 말이 참으로 증험이 있는지 모르겠다.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심(心)은 신(身)의 주인이니 심신이 모두 오래 산 뒤에야 장수라 이를 수 있고, 신은 죽었지만 심이 살아서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하여 이름이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다면 역시 장수이다. 반면에 심이 죽고 신이 산다면 비록 백년 동안 오래 살지라도 다만 어리석은 자일 뿐이니, 장수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무엇을 심에 생사(生死)가 있다고 이르는가? 심이 스스로 능히 스스로 주관하여 성리(性理)와 예법(禮法)을 따르는 것을 생이라 이르고, 스스로 주관하지 못하여 기의 욕심과 습염(習染)100)에 부림을 당하는 것을 사라 이른다.나는 자질이 아름답지 않고 학문도 거칠고 잘못되었으며, 마음이 스스로 단속하지 못해서 허물과 악이 날로 쌓이고, 마음이 스스로 제재(制裁)하지 못하여 언행이 더욱 어그러지며, 마음이 근심과 걱정에 매여서 질병이 침범하고, 마음이 게으름에 빠져서 육신의 추위와 굶주림이 심하며, 마음이 남을 용납하지 않아서 원망과 미움이 눈 앞에 가득하고, 마음에 덕화(德化)가 부족하여 처자가 명령을 어겨서 마음속에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으니, 과연 온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시변(時變)이 날로 극심하여 닥친 상황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또한 앞으로 수립할 것도 고인(古人)이 성취(成取)한 것과 같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아! 삶은 내가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반드시 마음이 산 뒤에 기뻐할 만하고, 죽음은 내가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반드시 마음이 죽은 뒤에 싫어할 만하다. 그러니 내 마음이 만일 지난날을 징계하여 후일을 삼가되 탁월하게 일체의 기의 욕심과 습염을 주관하여 그 사이를 간섭하는 일이 없게 하고, 단호하게 오직 성리와 예법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에 표준으로 삼는다면, 일일귀인(一日歸仁)101)과 조문석가(朝聞夕可)102)의 성인의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관상쟁이로 하여금 죽을 날을 증험하는 날을 말하게 할지라도 살아있는 해와 같을 것이다.이는 내가 스스로 바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선친이 평소에 바라던 것이니, 혼령이 저승에서 감동하여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혹시라도 이와 반대가 된다면, 비록 수가 모기(耄期)103)에까지 올라서 관상쟁이로 하여금 증험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결국 마음이 죽는 데에 도움이 없을 것이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 今歲庚辰, 余年五十七, 今朝六月六日, 卽余弧辰. 昔余年二十餘, 先考召相者, 令觀不肖, 相者略言平生, 終曰: "壽不過五十七.", 先考不樂而罷. 今年正當其時, 歲且將半, 未知其言信驗乎否. 然而竊念人之爲生, 心者身之主也, 心身俱久生, 然後可謂之壽, 身死心生而成仁取義, 名可久傳亦壽也. 心死而身生, 雖永百年, 徒蠢物耳, 可云壽乎哉? 何謂心之有死生? 心能自主而循夫性理禮法, 謂之生, 不能自主而役於氣慾習染, 謂之死. 余質之不美, 學又疏繆, 心不自檢, 咎惡日積, 心不自制, 言動倍戾, 心纏憂愁, 疾病侵尋, 心汨懶惰, 凍餓切身, 心不容物, 怨嫉滿前, 心乏德化, 妻子違令, 靈臺之中, 生意不敷, 未知果不至全死否. 且時變日極, 所遭難測, 亦未知前頭樹立, 亦能如古人成取否. 嗚呼! 生吾非不喜, 必心生而後可喜, 死吾非不惡, 必心死而後可惡, 吾之心苟能懲前毖後, 而卓然有主一切氣慾習染, 莫干其間, 斷然惟以性理禮法, 準的乎思慮言動之際, 則一日歸仁, 朝聞夕可, 聖人有言, 雖卽使相者言驗死之日, 猶生之年也. 非惟吾所自期, 亦先考所望於平日者, 不昧之靈, 動喜於冥冥. 如或反是, 雖壽躋耄期, 使相者不驗, 究無補於心死矣, 何足道哉? 습염(習染) 습관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깊이 배는 것을 말한다. 일일귀인(一日歸仁) 《논어》 〈안연(顔淵)〉에서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조문석가(朝聞夕可)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하였다. 모기(耄期) 8, 90세부터 100세까지의 나이를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우연히 기록하다 偶書 내가 매번 일에 응하여 마땅함을 잃으면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여러 날 동안 가시지 않았는데, 이는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병을 얻는 것이니, 어째서인가. 이미 처음에 잘 살피지 못한 병이 있고, 뒤에 다시 유소(有所)의 병58)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일에 응할 때에는 반드시 정밀하게 살펴서 착오가 없는 것이 가장 좋고, 일에 마땅함을 잃었을지라도 경계하여 뉘우치기만 하고 마음에 오랫동안 남겨 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다음이 된다.【병오년(1906)】부지런함은 집안을 일으키는 복록(福祿)이고 게으름은 몸을 망치는 짐독(鴆毒)59)이다.공경하는 마음을 한번 세우면 온갖 사특함이 물러나 순종하고, 나태한 마음이 한번 싹트면 온갖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경과 나태의 사이가 흥망의 기틀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가(齊家)의 어려움이 치국(治國)보다 심하니, 치국자는 교화로 인도하여 행해지지 않으면 형벌을 두어 그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는 교화가 행해지지 않아서 형벌을 쓰고자 하면 은애(恩愛)가 먼저 떠나니, 은애가 이미 떠나면 어떻게 제가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제가의 어려움이 치국보다 심하다고 하는 것이다.하늘의 운행(運行)은 강건하여 쉬지 않고 능히 만물을 내지만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며, 성인의 마음은 부지런하고 힘써 행하여 나태하지 않고 능히 만사에 응하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으니, 사람은 능히 하늘을 본받아 하늘과 하나가 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다.남과 사귈 때에 나에게 있는 도리를 다했는데도 맞지 않으면 또한 그만둘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회호(回互)60)하여 남들이 좋게 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이는 자기를 굽혀서 남을 따르는 것이다. 맹자가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61)"라고 말한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무신년(1908)】상(喪)을 틈타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에 대해서는 송(宋)나라 사마온공(司馬溫公)62)이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63)'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근세에 상기(喪紀 상사(喪事))가 완전히 무너져 상이 있는데도 시집가고 장가가지 않는 자는 열에 한둘도 없다.그런데도 사람들은 편안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때에 미쳐 권도(權道)를 행하라고 장려한다. 그런데도 혹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예를 지키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때를 잃어 오활(迂闊)하다고 비웃으니, 이러한 일이 어찌 우리나라 초기에 정법(定法)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겠는가. 다만 군상(君相)이 일찍이 진실한 마음으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역법(曆法)에 윤달을 두지 않으면 한서(寒暑)가 계절에 맞지 않고 세공(歲功)64)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는 제요(帝堯)가 "아! 너희 희씨와 화씨야.65)"라고 말한 이유이다. 지금 이른바 양력(陽曆)은 윤달을 두지 않아서 1년의 윤달이 모두 12개월 안으로 나누어 들어간다. 그러므로 1년이 꼭 366일이 되고 절기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제요의 역법에서 12개월로 나눈 것은 해가 29일 반강(半强 1일의 3/4)을 운행하여 달과 만나서 삭(朔)이 된다. 그래서 한 번 합삭(合朔)66)하는 것을 '1월'이라 하고, 두 번 합삭하는 것을 '2월'이라고 이른다. 그런데 저들의 양력은 합삭을 취하지 않아 해는 해이고 달은 달인데도 오히려 억지로 이름하여 '1월', '2월'이라고 하니 매우 부당하다.저들은 우리의 역법이 달[月]의 삭망(朔望)을 취하여 12개월을 정했기 때문에 이를 음력(陽曆)이라 하고, 저들의 역법은 다만 태양[日]으로 수를 계산했기 때문에 이를 양력(陽曆)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천지의 도는 음양이 서로 의지해야 생성할 수 있고 양 단독으로는 만물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을 매우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우리나라를 병합하려고 하기 때문에 양이 음을 겸한다는 뜻을 취하여 명명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그러한 칭호를 좇는다. 심지어 부첩(簿牒)67)과 서사(書詞 편지)에 저들의 연월일(年月日)을 사용하고 그 위에 우리나라의 연호(年號)를 더하니 매우 미혹한 일이다.《논어》에서 '인(仁)'자(字)가 오로지 성리(性理)를 가리키는 것이 있는데, 위【행한다.】인[爲仁]68), 성인(成仁)69), 이인(利仁)70)과 같은 인이 이러한 경우이니, 이는 본래 있는[自在] 것으로 인위(人爲)와는 관계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인심(人心)이 성취한 바의 덕을 가리킨 것이 있는데, 선의인(鮮矣仁)71), 삼인(三仁)72), 언득인(焉得仁)73), 미지기인(未知其仁)74)과 같은 인이 이러한 경우이니, 이것은 한다[爲之], 이룬다[成之], 편안히 여긴다[安之], 이롭게 여긴다[利之]는 공을 아울러 모두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 이 두 항목의 뜻은 명백할 뿐만 아니고, 《논어》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 가운데 허다한 '인'자를 다만 두 가지 뜻에서 간파한다면 바로 많은 일을 줄일 수 있다.성리의 인은 마음에 갖춰진 이(理)이니, 주자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이다.75)"라고 주석(註釋)한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 성덕(成德)의 인은 마음에 현존하는 이이니, 주자가 "사욕이 없어 그 덕이 있는 것이다.76)"라고 말한 것과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다.77)"라고 주석한 등속이 이러한 경우이다.어떤 이가 의심하여 "인은 오성(五性)78)의 일원(一原)이고 형이상자(形而上者)79)인데, 만약 성덕의 인이라고 하면 이것은 이가 마음에 현존하는 것으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는 것이니, 어찌 온당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이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로써 덕을 주관하여 그 성인(成仁)의 공을 논하면 진실로 마음이 능히 하는 것이니, 형이하자에 속할 수 있고, 만약 이로써 인을 주관하여 그 현존의 이(理)를 논하면 바로 이것은 마음에 갖춰진 본성이니, 저절로 마땅히 형이상에 속해야 한다."라고 하였다.《논어집주》의 '도체는 무위(無爲)하다.80)'라는 것은 이기(理氣)의 계분(界分 경계(境界))에 나아가 도체의 본색(本色)을 말한 것이고,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이(理)에 동정(動靜)이 있다.81)'라는 것은 이기가 유행(流行)하는 데 나아가 이가 기(氣)의 주재(主宰)가 됨을 말한 것이다. 비록 '무위'라고 했지만 주재하지 않는 주재가 되는 데 해가 되지 않고, '동정'이라 했지만 무위의 본체는 진실로 본래 있는 것이다.【갑인년(1914)】'사람이 요순(堯舜)이 아니니, 어찌 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82)[人非堯舜, 豈能盡善]'라는 8글자는, 이로써 남을 용서하면 괜찮지만, 이로써 스스로를 용서하면 몸을 해치는 짐독(鴆毒)83)이 될 것이다.【병진년(1916)】실수한 것이 조금 무겁더라도 무심(無心)에서 나왔다면 그 허물이 되는 데 해롭지 않고, 그 실수가 비록 가벼울지라도 유심(有心)에서 나왔다면 악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부유함은 덕을 쌓는 것보다 부유한 것이 없고, 가난함은 들은 것이 적은 것보다 가난한 것이 없으며, 즐거움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고, 슬픔은 자신을 해치는 것보다 슬픈 것이 없다.죄를 꾸짖어 자책하는 것이 비록 없을 수 없지만, 만일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좌절하는 마음이 발생한다면, 이는 한 번 넘어져서 천 리 길을 그만두고, 점으로 오염되었다고 하여 입는 옷 전부를 버리는 것이니, 세상에 이와 같은 자가 많은 것은 잘못이다.우리나라의 선현(先賢) 중에 학문을 논설하여 사람들에게 감발(感發 감동하여 분발함)하는 취지를 있게 한 자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만한 자가 없고, 성리(性理)를 환히 밝혀서 사람들에게 원위(源委 본말(本末))의 자세함을 알게 한 자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만한 자가 없다.내 입장에서 구산옹(臼山翁)84)을 보면, 명리(名理)를 분석한 것은 진실로 확실히 아는 견문에서 나왔고, 반드시 치심(治心)과 성기(省己)에 나아가 자세하게 체득하고 알아내어 학자들에게 의거하여 착수할 곳이 있게 하였으니, 퇴계의 논학(論學)과 율곡의 명리(明理)를 합하고 하나로 하여 소유한 자는 구옹(臼翁 간재)일 것이다.궁핍할수록 더욱더 그 뜻을 굳건히 해야 하고, 가난할수록 더욱더 그 청렴을 지켜야 하며, 세상이 혼란할수록 더욱더 그 절개를 힘써야 한다.치국(治國)에 하나의 '인(仁)'자가 부족하면 나라가 망하고, 치가(治家)에 하나의 '예(禮)'자가 부족하면 집안이 망하며, 치신(治身)에 하나의 '경(敬)'자가 부족하면 몸이 죽게 된다.누더기를 입고 굶주리는 것은 슬퍼할 만한 것이 아니고, 슬퍼할 만한 것은 어버이를 생전에 봉양할 때 자미(滋味)85)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실 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자로(子路)의 탄식86)은 실제로 자신이 직접 겪어온 것에서 나왔고, 공자의 기쁨을 다하고87) 재산에 맞게 하라88)는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분수에 따라 정성을 다하고 형편에 따라 이치에 맞게 한 것이니, 입언(立言)하여 사람을 가르치는 성인의 법은 진실로 마땅하다. 슬퍼하는 정과 같은 것은 비록 가령 성인이 그러한 상황에 당했더라도, 어찌 이러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옛사람이 이르기를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기르고 홀로 즐거운 곳을 찾는다.89)"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비록 두려움, 근심, 슬픔이 있을지라도 이로써 그 마음을 괴롭혀서는 안 되고, 마땅히 도의(道義)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말이 도에 어긋나고 행실이 의에 어그러지는 것을 아는 때에 이르면, 바야흐로 장차 뉘우치고 부끄러워할 것이니, 이른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잘못을 하고 이를 제대로 알면 곧 기쁠 수 있고, 잘못을 알고 이를 잘 고치면 곧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겠다.사군자(士君子)의 훌륭한 명성은 평소에 마음을 다하여 힘을 쌓은 뒤에 얻지만, 간혹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은 때에 잃기도 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외면의 허물과 내면의 사특함을 지극히 치밀하게 성찰할 때에, 이 마음이 두려워하고 위태로워 바늘방석과 바닥에 물이 새는 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구속되어 편치 않은 병이 있음을 아는 것 같은 것과 어지럽고 해이해져 뉘우치고 한탄해도 망각(罔覺)해버리는 것 가운데, 후자와 전자를 바꾼다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겠는가. 하물며 이를 말미암아 익힌다면 결국 광반(廣胖)의 즐거움90)이 있겠는가.부유하고 영달하면서 의(義)를 행하는 것은 물길을 따라 배를 운행하는 것과 같아 일은 절반만 하지만 공은 배가 되고, 빈궁하면서 의를 행하는 것은 물길을 거슬러 배를 운행하는 것과 같아 부지런히 노력은 하지만 얻는 것이 적다. 행동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는 것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고, 아는 것이 밝지 못한 것은 평소에 강(講)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해서인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어찌하여 그 사람에게 직접 고하지 않는가. 이것은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에게도 이러한 것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라면, 어찌하여 안으로 마음을 성찰하여 반드시 입으로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상대방과 나의 품평(品評)은 저절로 공론(公論)이 있어 나의 말이 우열(優劣)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위험할 뿐만 아니라 또한 어리석은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일을 하여 여러 악이 갖추어지는 것은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악은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보다 갖춰진 것이 없음은 진실로 마땅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우러러 존경받는 자가 언행에 과오(過誤)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게다가 앞다투어 사모하고 본받아 세도(世道)에 해를 끼치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말해야 한다.부유하면서 날마다 그 어버이에게 삼생(三牲)91)을 받들어 올리는 자가 그 뜻을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가난하면서 직접 자미(滋味)92)를 극진히 하는 자가 뜻을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동일한 명(名)이지만 명리(名利)와 명절(名節)의 차이가 있다. 인(仁)을 빌리고 의(義)를 꾸미며, 진심을 숨기고 명예를 구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은 명리이니,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다93)'는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 충을 수립하고 효도를 실천하며, 자신을 선하게 하고 덕을 세워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것은 명절이니, '군자는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94)'는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매사에 제1등의 도리를 구하여 거기에 처하고자 하면, 제1등을 비록 반드시 얻지는 못할지라도 그다음이 되는 것을 잃지 않는다. 만일 '내가 어찌 감히 제1등을 바랄 수 있겠는가. 우선 제2등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제2등을 결코 얻을 수 없어 제일 낮은 등급을 얻게 될 것이니, 뜻을 세울 때 높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곽거(郭巨)가 아들을 묻으려고 한 일95)에 대해 방손지(方遜志)96)는 "부모를 불의에 빠뜨렸으니97) 죄가 막대하다."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에 곽거는 참으로 죄가 있지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 죄를 주고 그의 마음에 대해서는 죄를 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곽거가 이러한 일을 한 것은 다만 어버이가 있는 줄만 알고 자식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아울러 하늘을 감동시켜 명예를 구하려는 뜻이 없었으니, 그의 마음에 어찌 일찍이 죄가 있었겠는가.그가 도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이렇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으니, 이에 행적에는 죄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허물을 보면 그 사람의 인(仁)을 알 수 있다.98)"라고 하였고, 또 "인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리석게 된다.99)"라고 하였으니, 이는 곽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실상 없는 이름은 하늘이 반드시 이를 싫어하여 반드시 파탄(破綻)내는 날이 있을 것이고,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면 하늘이 반드시 원통하게 여겨 반드시 씻고 결백하게 해 주는 때가 있을 것이다.어버이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효자(孝子)가 되며, 나라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충신(忠臣)이 되며, 지아비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열녀(烈女)가 되며, 도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진유(眞儒)가 된다.선비가 쇠락한 시대에 태어나 도의(道義)를 배우고 싶다면, 마땅히 먼저 참는 것과 굶는 것을 배워야 한다.허물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이를 알면 이는 기뻐할 만하고, 허물이 있지만 스스로 아는 것도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길 만하다. 불행하게도 슬퍼할 만한 것은 허물이 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허물은 꾸짖음을 받아 고칠 수 있고, 스스로 알고 있는 허물은 마음속으로 자책하여 고칠 수 있지만, 알지 못하는 허물은 영원히 고칠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다.한때의 분발은 처음에는 쉽지만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 것이 어렵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기는 쉽지만 평생 잘 마치기는 어렵다. 자질이 좋아 선을 행하기는 쉽지만 허물을 고쳐 의를 실천하는 것이 어렵고, 허물을 고쳐 의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만 기질을 변화시켜 덕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성인은 천리에 합하고 현자는 천리를 받들며, 군자는 천리를 두려워하고 학자는 천리를 찾으며, 중인은 천리에 어둡고 소인은 천리를 어긴다.벗 한 명이 나에게 말하기를 "세상의 변화가 날로 심해지니 나는 다만 굶어 죽는 것이 두렵네."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선비는 마땅히 이러한 세상에서 다만 굶어 죽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야 하니, 굶어 죽지 않는다면 그 욕됨이 굶어 죽는 것보다 심한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벗이 매우 옳다고 하였다. 余每應事失宜, 悔懊之心, 累日不已, 此一擧而得二病, 何者? 初旣有不審之病, 後復有有所之病也. 凡應事, 須要精審而不錯者上也, 事雖失宜, 只當警悔而已, 不長留在心胸, 猶爲其次也.【丙午】勤者起家之福祿, 怠者亡身之鴆毒.敬心一立, 則百邪退聽, 怠心一萌, 則百事無成. 敬怠之間, 興亡之機, 可不懼哉? 齊家之難, 甚於治國, 治國者導之以敎化而不行, 則有刑罰, 可以補其不足. 至於齊家, 敎化不行而欲用刑罰, 則恩愛先離矣, 恩愛旣離, 則何齊家之有? 故曰齊家之難, 甚於治國.上天之行, 剛健不息, 能生萬物, 而無不周徧, 聖人之心, 勤勵不懈, 能應萬事, 而無所遺漏, 人能體天而與天爲一 然後, 始可謂人矣.與人交盡在我之道, 而不合則亦已矣, 必要回互, 得他人道好, 是枉己徇人也. 孟子曰: "無欲其所不欲.", 此之謂也.【戊申】乘喪嫁娶者, 宋司馬溫公以爲國有正1)法, 此不復論, 而近世喪紀全壞, 以有喪而不嫁娶者, 十無一二. 人亦不惟恬不爲怪, 反奬其及時行權, 其或有不行者, 則人亦不惟不善其守禮, 反笑其失時迂闊, 此豈我國初, 無定法而然哉? 特緣君相未嘗實心施行, 馴致於此耳.曆法不置閏, 則寒暑失節, 歲功不成. 此帝堯所以"咨! 羲和也.". 今所謂陽曆不置閏, 而一歲閏, 率分入於十二月中. 故一歲恰滿三百六十六日, 而節氣亦無差. 然堯曆之分十二月者, 日行二十九半强, 與月合而爲朔. 故以其一合朔而謂之一月, 再合朔而謂之二月. 彼則不取合朔, 而日自日, 月自月矣, 猶且强名之曰一月二月, 無謂甚矣.彼以我曆之取月之朔望而定十二月故, 謂之陰曆, 以彼曆只以日計數故, 謂之陽曆, 殊不知天地之道, 陰陽相資, 乃能生成, 而獨陽不能生物也. 且彼欲幷我國, 故取陽兼陰之義而名之, 我人不之覺, 隨以從其稱號. 甚至簿牒書詞, 用彼年月日, 加我國年號於其上, 迷惑甚矣.《論語》中仁字, 有專指性理者, 如爲【行也】仁, 成仁, 利仁之仁是也, 此以自在而不涉人爲言. 有指人心所成之德者, 如鮮矣仁, 三仁, 焉得仁, 未知其仁之仁是也, 此幷包爲之成之安之利之之功而言. 此兩款之義, 不啻明白, 非惟《論語》, 凡經傳中許多仁字, 只從兩義看破, 便省得多少事.性理之仁, 是具於心之理, 朱子所釋心之德, 愛之理是也. 成德之仁, 是見存於心之理, 朱子所釋無私欲而有其德, 當理而無私心之類是也. 或疑仁五性之一原, 是形而上者, 若謂成德之仁, 是理之見存於心者, 是屬於形而下也, 豈非未安耶? 曰: "此不須疑也. 若以之主德而論其成仁之功, 則固心之所能也, 可屬於形而下者, 若以之主仁而論其見存之理, 則乃是具於心之本性也, 自當屬於形而上也.".《論語集註》之道體無爲, 是就理氣界分上, 說道體之本色, 《語類》之理動靜, 是就理氣流行上, 說理爲氣宰也. 雖曰無爲, 而不害爲不宰之宰也, 雖曰動靜, 而其無爲之體, 固自在也.【甲寅】'人非堯舜豈能盡善?'八字, 以之恕人則可, 以之自恕, 則戕身之鴆毒.【丙辰】所失稍重, 出於無心, 則不害其爲過, 其失雖輕, 出於有心, 則難免其爲惡.富莫富於畜德, 貧莫貧於寡聞, 樂莫樂於無怍, 悲莫悲於自賊.訟罪責己, 雖不可無, 若因一失而生沮廢之心, 是一蹉而止千里之行, 點汙而棄全襲之衣, 世多有若此者謬哉.我東先賢論說學問, 使人有感發之趣者, 莫如退溪, 洞明性理, 使人知源委之詳者, 莫如栗谷. 以余觀於臼山翁, 其剖析名理, 固發於眞知的見, 而必就治心省己上體貼出來, 使學者有依據下手處, 退溪之論學, 栗谷之明理, 合一而有之者, 其臼翁乎.窮當益堅其志, 貧當益守其廉, 世亂當益勵其節.治國少一仁字, 是無國, 治家少一禮字, 是無家, 治身少一敬字, 是無身.鶉結枵腹, 不足悲也, 所可悲者, 養生不極滋味, 送終不得恔心. 子路之歎, 實自身親經歷來, 孔子盡歡稱財之訓, 使人隨分竭誠, 順境合理, 聖人立言敎人之法則固也. 若其傷哉之情, 雖使聖人當之, 安得無是哉?昔人云: "常養喜神, 獨尋樂處.", 此言雖有恐懼憂戚, 不可以此累其心, 當以道義爲喜樂也. 然若至覺得言違乎道, 行悖乎義之時, 方且悔懊慚忿, 所謂喜樂者, 又何處見得? 曰: "過而能知, 便可喜也, 知而能改, 便可樂也.".士君子令名, 得於生平竭心積力之餘, 而或失於一言一行不加思省之際, 可不愼哉?外過內慝, 省到極, 察到密時, 此心夔夔遫遫, 如坐針氊漏船, 似覺有拘速不寧之病然, 與其泯泯沓沓, 以致悔吝而罔覺, 以此易彼, 孰得孰失? 而況由此而熟之, 終有廣胖之樂者乎?富達而行義, 如順流行舟, 事半而功倍, 貧窮而行義, 如逆流行舟, 力勤而獲少, 行之有失, 由於知之不明, 知之不明, 由於講之無素.言人之過, 欲何爲哉? 爲其人之改之也, 則何不於其人親告之乎? 此不忠也. 爲恐己亦有是也, 則何不內省于心, 而必言之于口也? 此不誠也. 爲其貶彼而尊己也, 則彼我品藻, 自有公論, 非吾言之所得而高下, 非惟險也, 亦癡也. 一擧而衆惡備, 莫如言人過.惡莫備於言人過固也. 但人之爲世宗仰者, 言行有過誤, 而衆莫之悟, 且爭慕效有害世道, 則不得不言之.富而日奉三牲於其親者, 不能養其志, 則或有之, 貧而親極滋味者, 未有不能養志也.同一名也, 而有名利名節之異, 假仁飭義, 矯情干譽以求人知者, 爲名利也, "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者是也. 樹忠服孝, 淑身立德, 可傳後世者, 爲名節也, 疾沒世而名不稱者是也. 每事欲求第一等道理而處之, 第一等雖未必得, 而不失爲抑其次者. 若道我何敢望第一等? 不如且做第二等, 則第二等決不可得, 而歸於最下品, 立志可不高哉?郭巨埋子, 方遜志以爲"陷親不義, 罪莫大焉", 余謂巨信有罪矣, 罪其迹而不罪其心可也. 巨之爲此也, 但知有親而不知有子, 幷無感天要名之意, 其心何嘗有罪乎? 由其未聞道, 而徑情自遂, 有此悖理之擧, 於是乎跡則有罪矣. 孔子曰: "觀過斯知仁.", 又曰: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巨之謂也.無實之名, 天必忌之, 必有破綻之日, 無罪之誣, 天必寃之, 必有雪白之時.只知有親而不知有他, 然後爲孝子, 只知有國而不知有他, 然後爲忠臣, 只知有夫而不知有他, 然後爲烈女, 只知有道而不知有他, 然後爲眞儒.士生衰世, 欲學道義, 當先學忍飢.有過而人知之, 是可喜也, 有過而自知之, 猶可幸也. 不幸而可悲者, 其有過而不自知乎. 人知之過, 得以受責而改之, 自知之過, 得以內訟而改之, 不知之過, 永無可改之日矣.一時之奮始易, 中途之不廢難, 中途之不廢易, 畢生之克終難, 質美而爲善易, 改過而徙義難, 改過而徙義易, 變質而成德難.聖人合天, 賢者奉天, 君子畏天, 學者求天, 衆人昧天, 小人違天.一友人謂余曰: "世變日甚, 吾輩只怕餓死.". 余曰: "士當此世, 只怕不餓死, 不餓死則其辱有甚於餓死者.", 友人深以爲然. 유소(有所)의 병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7장에서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데 방해하는 네 가지를 말하였는데, "마음에 분노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고 하였다.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독(猛毒)이다. 회호(回互) 잘못을 거짓으로 꾸미거나 변명하는 일이다. 하고자 …… 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사마온공(司馬溫公) 중국 북송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다. 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부(迂夫), 우수(迂叟)이고 사마온공이라고도 한다. 나라에서 …… 있다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상중에 있으면서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는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其居喪, 聽樂及嫁娶者, 國有正法.]"라고 하였다. 《소학(小學)》 〈가언(嘉言)〉 세공(歲功) 한 해의 농사나 수확이다. 아! …… 화씨야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서 제요(帝堯)가 말하기를 "아! 너희 희씨와 화씨야. 1년은 366일이니, 윤달을 사용해야 사시를 정하여 해를 이룬다.[咨! 汝羲曁和. 朞三百有六旬有六日, 以閏月, 定四時成歲.]"라고 하였다. 합삭(合朔) 해와 달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합삭은 대략 매달 음력 초하루 전후에 일어난다. 《후한서(後漢書)》 〈율력지(律曆志)〉 부첩(簿牒) 관아의 장부와 문서이다. 《논어》 〈학이(學而)〉에서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발생한다. 효와 제라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하였다. 성인(成仁)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지사와 인인은 살기를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하였다. 이인(利仁)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하였다. 선의인(鮮矣仁)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인한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공자가 《논어》 〈학이〉에서 말하였다. 삼인(三仁) 《논어》 〈미자(微子)〉에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가 '은나라에 세 인자가 있었다.'라고 하였다.[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라는 말이 나온다. 언득인(焉得仁)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자장(子張)이 초(楚)나라 영윤(令尹)을 지낸 자문(子文)과 제(齊)나라 대부 진문자(陳文子)에 대해서 공자에게 묻자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未知. 焉得仁?]"라고 답한 내용이 나온다. 미지기인(未知其仁) 《논어》 〈공야장〉에 맹무백(孟武伯)이 공자에게 자로(子路)가 인하냐고 묻자 "유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다.[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고 답한 내용이 나온다. 마음의 …… 이치이다 《맹자집주》 〈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주자가 말하기를 "인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이다.[仁者, 心之德, 愛之理.]"고 하였다. 사욕이 …… 것이다 《논어집주》 〈옹야(雍也)〉에서 주자가 말하기를 "인은 마음의 덕이니, 마음이 인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이 없어 그 덕이 있는 것이다.[仁者心之德, 心不違仁者, 無私欲而有其德也.]라고 하였다. 이치에 …… 없다 《논어집주》 〈공야장)〉에서 주자가 스승에게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으면 인이다.[當理而無私心則仁矣.]"라고 들은 말을 가리킨다. 오성(五性) 오상(五常)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말한다. 형이상자(形而上者) 《주역》 〈계사 상(繫辭上)〉에 "형이상자를 도라고 하고 형이하자를 기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하였다. 도체는 무위하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서 주자가 "인심은 지각이 있고, 도체는 무위하다.[人心有覺, 而道體無爲.]"라고 하였다. 동정(動靜)이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4 〈태극도(太極圖)〉에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한 것은 태극의 동정이 아니고 단지 이에 동정이 있는 것이다.[陽動陰靜, 非太極動靜, 只是理有動靜.]"라고 하였다. 사람이 …… 있겠는가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 권25 〈표(表) 여한형주서(與韓荆州書)〉에는 "사람이 요순이 아니니, 누가 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人非堯舜, 誰能盡善.]"라고 나온다.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독(猛毒)을 말한다.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여러 가지 호 가운데 하나이다. 자미(滋味) 맛이 좋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이다. 자로(子路)의 탄식 자로가 "슬프다, 가난이여.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에는 봉양할 수 없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를 행할 수 없구나.[傷哉, 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라고 말한 내용이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나온다. 기쁨을 다하고 자로가 가난하여 효도를 제대로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실지라도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다한다면, 이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 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한 내용이 《예기》 〈단궁 하〉에 나온다. 재산에 …… 하라 《예기》 〈단궁 하〉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머리와 발의 형체만 염습하여 바로 장사지내며, 덧널이 없더라도 자기의 재산에 맞게 하면 이것을 예라고 한다.[斂首足形, 還葬而無槨, 稱其財, 斯謂之禮.]"라고 하였다. 항상 …… 찾는다 《명유학안(明儒學案)》 권61 〈동림학안 4(東林學案四)〉에 "출세하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지 않고 곤궁하게 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으며, 항상 희신을 기르고 홀로 즐거운 곳을 찾는다.[不榮通, 不醜窮, 常養喜神, 獨尋樂處.]"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광반(廣胖)의 즐거움 《대학장구》 전 6장(傳六章)에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해야 한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라는 내용이 나온다. 삼생(三牲) 세 가지의 희생으로, 소, 양, 돼지를 말한다. 자미(滋味) 맛이 좋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이다. 명예를 …… 있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할 만한 사람이 못 되면 한 그릇의 밥과 국에도 얼굴빛에 드러난다.[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 見於色.]"라고 하였다. 종신토록 …… 싫어한다 《논어》 〈위령공〉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라고 하였다. 곽거(郭巨)가 …… 일 후한(後漢) 때의 효자 곽거가 가난한 형편에 노모를 극진히 잘 봉양하였는데, 노모가 항상 세 살 된 손자에게 자기 밥을 덜어서 먹였다. 그러자 곽거와 아내가 노모 봉양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아이를 묻으려 하였는데, 갑자기 땅속에서 황금 가득한 가마솥[金釜]이 나왔다. 그래서 아이 묻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노모를 잘 봉양하고 아이도 잘 키웠다고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11. 방손지(方遜志) 손지는 방효유(方孝孺, 1357~1402)의 호이다. 중국 명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자는 희직(希直), 희고(希古)이고, 청렴하고 강직하여 사람들은 그를 방정학(方正學)이라고 불렀다. 부모를 …… 빠뜨렸으니 《맹자집주》 〈이루 상(離婁上)〉에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예에 따르면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부모의 뜻에 아첨하고 무조건 따라서 부모를 불의에 빠뜨리는 것이 첫째이다.[於禮有不孝者三事, 謂阿意曲從, 陷親不義一也.]"라고 하였다. 허물을 …… 있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허물은 각각 그 유대로 하는 것이니, 허물을 보면 그 사람의 인을 알 수 있다.[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斯知仁矣.]"라고 하였다. 인을 …… 된다 《논어》 〈양화(陽貨)〉에 나온다. 正 대본에는 '定'으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 근거하여 '正'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스승의 상 때에 동문들에게 두루 고함 【1922년】 師喪時輪告同門 【壬戍】 무릇 사람으로서 가르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니, 나를 도로써 가르쳐 사람을 만들어 준 자가 어찌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나를 낳아주고 먹고 살게 해 준 군부(君父)와 똑같이 한 몸으로 여겨 치상(致喪), 방상(方喪), 심상(心喪)을 3년 동안 하니, 모두 예서(禮書)에 드러나 있습니다.55) 그렇다면 스승의 3년 상은 바로 영원히 바꾸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세풍(世風)에는 고금의 다름이 있고, 예속(禮俗)에는 통변(通變)의 마땅함이 있으니, 선현이 이에 정을 따르고 능력을 헤아리는 논의를 둔 것은 실정에 맞지 않게 억지로 따르는 것이 도리어 예를 범하여 죄를 짓는 데 이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을 낮추어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사문(斯文)이 불행하여 우리 선생(간재)께서 갑자기 후학을 버리셨으니, 스승을 잃은 아픔이 어찌 그 다함이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동문 중에 바꿀 수 없는 정전(正典)을 똑같이 따를 수 없어 혹 어쩔 수 없이 격을 낮추어 나아가게 한 것을 따르는 자가 만일 3년 상을 치르되 예를 다하지 않는 경우에는 진실로 죄줄 만하고, 이미 3년 상을 하지 않으면서 다시 잘못이 있다면 더욱 죄줄 만합니다. 이는 바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서로 힘써 노력해야 하는데 두렵게도 예를 무너뜨리고 스승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가마(加麻)56)에 이름을 기록하고도 나가서는 저잣거리에서 술과 고기를 먹는 자가 간혹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러한 일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이와 같으니 장차 다가올 미래도 알 수 있고, 밝은 데서도 이미 그러한데 어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짓을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그 마음을 속이고 스승을 속이며,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여 조롱과 비웃음을 사고 명교(名敎)를 무너뜨림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사군자가 한번 실수하면 나머지는 볼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처세할 때 한번 잘못하면 만사가 와해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이 이러한 데까지 이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에 첨좌(僉座 여러분)에게 두루 고하니, 오직 깊이 살펴 실천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힘쓰기를 바랍니다. 신명(身名)을 무너뜨리고 인기(人紀)57)를 어기는 지경에 이름이 없으면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夫人而無敎, 則非人也, 而敎我以道而成人者, 豈非師乎? 是以與生我食我之君父同爲一體, 而致方心三喪, 幷著禮書. 然則師喪三年, 乃萬世不易之典. 然世風有古今之殊, 禮俗有通變之宜, 先賢斯有隨情量力之論, 蓋爲其無實强從, 反以犯禮致罪, 故不得已而遷就之也. 斯文不幸, 我先生奄棄後學, 安仰之痛, 曷有其極? 今我同門未能齊循乎正典之不可易者, 或從乎遷就之不得已者, 如有三年而未盡禮者, 固爲可罪, 旣不三年而復有失, 則尤可罪也. 正宜盡心交勖, 恐恐乎壞禮而負師也. 似聞近日入而錄名於加麻, 出而酒肉於市肆者或有之, 此若謬傳則幸矣. 如其未然, 則目下如此, 將來可知, 昭昭旣然, 冥冥奚論? 其爲欺心, 欺師, 欺人, 欺天, 取譏笑, 敗名敎, 果何如哉? 古人云: "士君子失此一著, 餘無足觀.", 又云: "立身一敗, 萬事瓦裂.", 念到于此, 豈不悚然? 玆以輪告于僉座, 惟願猛省實踐, 有改無勉? 毋至陷身名, 乖人紀之地, 幸甚. 치상(致喪) …… 있습니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부모를 섬기는 데는 숨기는 일은 있어도 범하는 일이 없으며, 좌우에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소가 없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3년 상을 지극히 한다. 군주를 섬기되 범하는 일은 있어도 숨기는 일은 없으며,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소가 있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상을 부모의 3년 상에 준한다. 스승을 섬기되 범하는 일도 없고 숨기는 일도 없으며, 좌우에 나아가 모시는데 일정한 방소가 없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심상(心喪) 3년을 한다.[事親有隱而無犯,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致喪三年.事君有犯而無隱, 左右就養有方, 服勤至死, 方喪三年.事師無犯無隱,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心喪三年.]"고 나온다. 가마(加麻) 문인(門人)이 스승의 상(喪)에 심상(心喪)을 입는 표시로 겉옷에 삼베 조각을 붙이는 것인데, 여기서는 심상을 입는 사람의 명단을 기록하는 가마록(加麻錄)을 가리킨다. 인기(人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선친의 휘일에 감회를 적어 스스로 경계하고 아울러 아이들에게 보임 【1934년 1월 21일】 先君諱日書感自警兼示兒輩 【甲戌元月二十一日】 내가 올해 51세가 되었다. 비록 갑자기 바로 죽더라도 이미 요절은 면한 것이니, 다시 무엇을 한스러워하겠는가. 게다가 생각건대 부친과 조부 이상 4대는 장수한 분이 없고, 내 현재의 나이가 선친의 졸년(卒年)을 꼭 채웠다. 그러나 선친의 후실(厚實 너그럽고 성실함)로도 오히려 회갑(回甲)의 수를 누리지 못했으니, 잔약하고 용렬한 내가 어찌 감히 선친보다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선친께서 임종할 때 나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내 부친이 내 조부보다 11세 더 장수했고 지금 내 나이가 내 부친보다 8세가 더 많으니, 네가 나보다 10년 더 산다면 마땅히 60세가 넘을 것이고 네 아들이 또 마땅히 70세가 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매우 슬픈 것은 여러 대에 단명한 것을 아파하여 후대에 더 살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이러한 마음을 미루어 보면 또 어찌 조금 더 살아서 죽지 않고 10여 년쯤 연명하여 선친의 말을 증험하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력(精力)을 아끼고 기르며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도리에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지금은 오랑캐가 명령을 내려 머리를 깎이게 되는 화가 가까이 닥쳐왔고, 백성들이 먹고살기 어려워 굶어 죽기 직전이니, 이는 바로 인인(仁人)과 지사(志士)가 이치와 몸, 이 둘을 온전히 할 수 없는 때이다.내가 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30년 동안 독서를 한 사람이고, 너희들이 비록 힘써 농사짓고 집안일을 해나가면서 눈앞의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또한 유문(儒門)의 자손이다. 따라서 내가 만약 몸과 목숨을 아껴 오랑캐의 제도를 따르고, 너희들이 만약 굶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불의(不義)한 물건을 먹으며, 이것을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보존하고 아끼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비록 60세, 70세까지 살아서 선친의 말을 증험하더라도 도리어 장수하지 못하는 것이 더 낫고, 그러한 증험은 증험이 아닌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맹자가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나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54)"라고 이르지 않았는가. 이제 오랑캐의 제도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물건을 물리쳐 북쪽 창문 아래서 늙어 죽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또 선친이 평소 나에게 가르쳐준 뜻이니, 나와 너희들이 마땅히 소리 없는 가운데서 듣고 분수에 넘는 것을 깊이 살펴야 한다. 진실로 그렇게 하는 자는 거의 후대에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이고 그 장수하지 못한 수명은 선친이 바라던 바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그 증험하지 못한 것도 증험한 것과 같을 것이니, 어찌 감히 힘써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은 선친께서 돌아가신 날이기에 감회가 있어 이를 쓰노라. 余今年五十一. 雖卽溘然, 已得免夭, 復何所恨? 且念父祖以上四世無壽, 不肖現齡恰滿先君卒年, 先君之厚實, 猶未享回甲之壽, 以不肖之孱劣, 豈敢求多於先君哉? 但先君臨終, 握不肖手謂曰: "吾父加吾祖壽十一, 今吾之壽, 加吾父八歲, 汝若加吾一甲, 則當踰六旬, 汝子又當踰七旬.", 此言絶悲, 蓋痛累代之短壽, 而冀以延於後世也. 推是心也, 則又豈不願少須臾無死, 延十許歲, 俾驗先君之言也? 然則其於愛養精力, 無損遺體之道, 宜不敢忽矣. 顧今夷狄制命, 薙禍迫頭, 生靈艱食, 溝壑在前, 此正仁人, 志士, 不能理形兩全之秋也. 吾雖無成, 是三十年讀書人, 汝輩雖力田幹家, 救急目前, 亦爲儒門子孫, 吾若惜軀命而從夷狄之制, 汝輩若怕餓死而食不義之物, 認此以爲保愛遺體, 雖壽至六七旬而驗先君之言, 反不若無年之爲愈, 而其驗猶不驗也. 然則如之何其可也? 孟子不云乎?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 免夷制, 却汙物, 而得老死牖下則幸矣, 如其不然, 當舍生而取義. 此又先君平日所以敎不肖之意, 吾與汝輩所當聽於無聲而分外猛省也. 誠然者庶有辭於來世, 而其不壽之壽, 不但如先君所期, 而其不驗猶驗也, 曷敢不勖哉? 今日先君下世之辰, 故有感而書之. 두 가지를 …… 취하겠다 《맹자》 〈고자 상〉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나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기미년 생일 아침에 스스로 경계함 己未生朝自警 내가 어려서 조숙하다고 일컬어지고 타고난 바탕이 실제로 허약하여 30세가 못 되어 초라하게 늙은 안색이 있었고, 작악(作噩)50)의 다독(荼毒)에 정신이 이미 쇠약해지고 집서(執徐)51)의 거듭된 화(禍)에 기혈(氣血)도 다하였다. 게다가 10년 동안 가난과 병이 서로 계속 이어져 경학(經學)하는 사람으로서 견디지 못하였고, 금일의 패업(敗業)에 이르러 방황이 극에 달했다. 이 해(1919) 6월 6일은 내가 태어난 날인데, 부모를 그리워하는 슬픔으로 집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하루 전에 화양(華陽)에 들어가 간옹(艮翁 전우(田愚))을 모시고 서론(緖論 강론(講論))을 들으면서 스스로 위로하였다.다음 날 아침에 세수하고 빗질할 때에 갑자기 하나의 흰 물건이 오른쪽 귀밑머리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티끌로 생각하여 닦아냈는데 제거되지 않았고, 실오라기라고 생각하여 잡아당겼는데 나오지 않았으니, 분명히 이는 한 가닥 흰 모발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모발이 흰 것은 간혹 진짜가 아닌 것이 있으나, 오직 귀밑머리가 흰 것은 때가 되지 않으면 희지 않는 만큼 참으로 흰 것이라고 들었다. 아! 모발이 흰 것은 늙었다는 징후이고 늙었다는 것은 죽음의 징후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다.안연(顔淵)의 덕으로도 29세에 머리가 희었고, 문장가인 반악(潘岳, 247~300)은 32세에 백발이 되었는데, 내가 올해 36세이니 어찌 슬퍼하겠는가. 슬픈 점은 고인(古人)과 같은 덕과 문장이 없는 것이고 일찍 머리가 센 것은 고인과 같을 뿐이다. 게다가 생각건대 집안이 대대로 명이 짧아 고조와 증조 이후로 모두 61세를 채우지 못했고, 돌아가신 부친과 조부의 빼어남과 건장함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온갖 근심과 화를 다 겪은 잔약하고 용렬한 나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수명이 늘어 덕을 쌓고 학문을 닦아 물려주신 몸을 이루어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이 거듭 슬퍼할 만하다.비록 그렇지만 맹자가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으면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일이다.52)"라고 이르지 않았는가. 금일에 해야 할 일은 오직 힘써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고 예와 복에 자신을 신칙하며, 조상의 뜻을 대대로 이어나가 불효를 면하는 데 있을 뿐이다. 곁에서 흰 것을 뽑아내라고 권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일부러 듣지 않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니, 공도(公道)53)는 사람들이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이고, 이를 남겨 두어 거울을 잡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료를 갖추려는 것이 하나이다. 余幼以夙成稱, 而稟質實虛, 未三十有老蒼色, 作噩之荼毒, 精魄旣霣, 執徐之荐禍, 氣血亦竭, 加以十年間, 貧病相仍, 經人不堪, 以至今日之敗業, 漂泊而極矣. 是歲之六月六日, 余懸弧辰也, 悲切蓼莪, 不堪家居, 前一日入華陽, 陪聽艮翁緖論而自遣. 翌朝巾櫛之際, 忽見一白物在右鬂邊, 意爲塵芥也, 而拭之不去, 意爲絲縷也, 而抽之不出, 歷歷是一箇白毛. 余聞人之髮白, 容有非眞者, 惟鬂白非時至不白, 乃眞白也. 噫! 毛白者老徵也, 老者死候也. 人生則老, 老則死, 理之常也. 顔淵之德焉, 而卄九而白, 潘岳之文章焉, 而卅二而白, 余今年三十六, 烏足悲也? 所悲者無德與文之似古人者, 惟早白古人是似爾. 且念家世短祚, 自高曾以下, 皆壽不滿周甲, 先父祖之秀俊, 壯完尙如此, 況如不肖之孱庸, 飽經憂禍者, 安敢望假年進修, 成遺體而無忝生乎? 是重可悲也. 雖然, 孟聖不云乎? "殀壽不貳, 修身而俟之, 所以立命也.". 今日之務, 惟在勉遵典訓而飭身禮禔, 繼述先志而獲免不孝已矣. 傍有勸以揥白者, 而余故不聽者有二道, 公道不可以人强一也, 存之以備把鏡警惕之資一也. 작악(作噩) 고갑자(古甲子)에서, 십이지(十二支)의 열째인 유(酉)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기미년(1919) 이전인 기유년(1909)으로 보인다. 집서(執徐) 고갑자에서, 십이지의 다섯째인 진(辰)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병진년(1916)으로 보인다. 요절하거나 …… 일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공도(公道)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는 것을 말한다. 두목(杜牧)의 시에 "세간에 공정한 것은 오직 백발뿐, 귀인의 머리라고 해서 너그럽게 해 주지 않는다.[公道世間惟白髮, 貴人頭上不曾饒.]"라는 구절이 있다. 《번천시집(樊川詩集)》 권4 〈송은자(送隱者)〉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스스로 경계하는 열 가지 조목 【1908년】 自警十則 【戊申】 면재(勉齋)26)가 말하기를 "스스로 자책하여 말에 나타내는 것은 말하지 않으면서 간절히 마음에 자책하는 것만 못하다.27)"라고 하였다. 일찍이 내가 이 말을 음미하고, 겨우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매번 문장을 짓고 안(案)을 짜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마음에 경계할 것을 인하여 갑자기 스스로 명(銘)을 지어 경계하는 뜻을 담을 것을 생각하였으니, 이는 탕왕(湯王)과 무왕(武王) 이후로 혹 이를 폐기한 적이 없다. 나는 생지(生知)28)가 아니니 어떻게 일체의 법을 사용하겠는가. 마침내 지금 바로 힘써야 할 것과 몸소 미치지 못한 것 10칙을 써서 이로써 훗날에 진퇴의 실제를 증험할 것이다. 무신년(1908) 6월 그믐날에 기록한다.큰 뜻 제1지(志)라는 것은 성인(聖人)이 되는 시작이니,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29)"라고 하였고, 뒤의 '법도에 넘지 않았다.30)'라고 한 것은 다만 그 처음을 종결지은 것일 뿐이다.장자(張子)가 말하기를 "뜻이 크면 재주도 크고 사업도 크다.31)"라고 하였으니, 뜻이 크면서 대성(大成)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뜻이 크지 않으면서 대성한 자는 없다.어찌 소장부(小丈夫)처럼 뜻을 세우겠는가. (소장부는) 문장을 과시하여 세상에 자랑하고,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러내어 교만함이 가득하다.부지런히 힘씀 제2모든 일에 부지런하면 성공하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실패하니, 성인은 근심하고 부지런히 힘쓰며 두려워하여 이를 온전하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게으르고 안일함에 빠져 이를 잃는다.농사 짓는 자는 덥고 비가 올 때에도 몹시 힘들고 고생스럽게 일해야 곳간이 차고, 베 짜는 자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해야 장(丈)과 필(疋)을 얻으며, 장인은 종일토록 부지런히 애써 노력해야 수레와 가마가 완성된다.상인은 시세를 좇아 급히 달려가야 재화(貲貨)가 남으니, 선비의 부지런함은 성인이 되는 기초이다.그러므로 천지에 간단(間斷)32)이 있으면 만물이 없어지고, 학문에 간단이 있으면 온갖 행동이 무너진다.《주역》에 말하기를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쉬지 않는다.33)"고 하였다.독서 제3도는 어디에 실려 있는가? 책에 실려 있으니 책을 마땅히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서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가? 이를 사용하여 앎에 이르려고 하며, 앎에 이르는 것은 이를 행하고자 해서이다.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은 봉사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배에 선사(船師)가 없는 것과 같아서 실패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주공(周公)은 아침에 백 편을 읽었고, 중니(仲尼)는 《주역》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으니34) 무엇 때문인가? 이분들은 한가하고 편안할 때에 돌이켜 독서를 생각한 것이다.《주역》에 말하기를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옛 성현들의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쌓는다.35)"라고 하였다.효도와 우애 제4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고 싶다."라고 하지만, 이에 능한 자가 드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어버이에게 순함에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 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할 것이다.36)"라고 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성실한지를 돌이켜 보지 않는단 말인가.지성이 있으면 금석(金石)도 뚫을 수 있는데, 하물며 쉽게 감동하는 천속(天屬 천륜(天倫))에 있어서이겠는가.《시경》에 이르기를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이루고, 부모님 두 분을 생각하노라.37)"고 하였으니, 이는 어버이에 대한 효가 아니겠는가. "형제가 화합하고 나서야 화락하고 또 즐길 수 있다.38)"라고 하였으니, 이는 형제간의 우애가 아니겠는가.효는 어느 것이 큰가? 양지(養志)39)가 크다.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선생에게 드시게 하는 것을 중니(仲尼 공자(孔子))는 효라고 하지 않으셨는데40), 하물며 이러한 것도 오히려 잘하지 못하는 자에 있어서이겠는가.옛날에 유우(有虞 순(舜)임금)는 상(象)을 유비(有庳)에 봉해 주었으며41), 우홍(牛弘)은 (죽은) 소를 포(脯)를 뜨라고 하고 (소를 죽인 동생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으니42), 하물며 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자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허물을 고침 제5최상은 허물이 없는 것이고 그다음은 같은 허물을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며43), 그다음은 허물을 고치면서 허물이 없고자 하지만, 이는 오히려 같은 허물을 다시 범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소인(小人)은 허물을 꾸민다.허물을 고치는 것은 배우는 자의 일이니, 고치고 또 고치면 점점 허물이 없는 데까지 이를 것이지만,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허물을 꾸미는 데에 이를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44)"고 하였다.몸단속 제6마음은 안이고 몸은 밖이니, 안이 옳으면 어찌 몸을 함부로 하겠는가. 어찌 일찍이 맨 몸을 드러내고 팔을 걷어붙이는데도 마음이 사납지 않고, 다리 뻗고 앉거나 벌떡 드러눕는데도 마음이 거만하지 않은 자를 보았는가.그러므로 군자는 몸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몸을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바르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행동이 법도를 잃으며, 행동이 법도를 잃으면 몸 또한 따라서 망한다. 증자(曾子)의 삼귀(三貴)45), 안씨(顔氏 안연(顏淵))의 사물(四勿)46), 중궁(仲弓)의 이여(二如)47)는 모두 몸을 단속하는 데서 나왔다.넓은 도량 제7성인은 천지와 서로 같으니, 일월(日月), 성신(星辰), 산악(山嶽), 하해(河海), 인물(人物), 조수(鳥獸)를 그 안에 수용하여 나아가도 밖이 없고 들어와도 안이 없다. 따라서 양으로 천지에 대해서 말하는 자는 천지를 작게 여기는 것이다.한 번 얻고 한 번 잃으며, 한 번 헐뜯고 한 번 칭찬하면 마음을 괴롭히거나 기세를 올리기도 하니, 슬프다!겸손하게 낮춤 제8《주역》에 "하늘의 도는 가득 차면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한 것을 더해주며,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고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48)"라고 하였으니, 심오하다! 사람은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스스로 높은 체하는 자를 사람들은 낮게 여기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사람들은 높게 보니, 저 하찮은 재주를 가지고 매번 높고 대단한 체하는 자들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이 때문에 바다가 백천(百川)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그 낮음 때문이고, 산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은 그 높음 때문이다.강하고 굳셈 제9천근의 무거움을 지는 자는 강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중도에 그친다.인(仁)은 선비의 천근과도 같은 것이니 유약하고 해이한 자는 이를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높이고 물리침 제10《춘추(春秋)》의 대의는 수십 가지이지만 존양(尊攘)49)이 크다.지금 오랑캐가 가득 차서 우리가 장차 그들에게 배척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그들의 제도를 따르지 않고 죽어야 할 뿐이니, 이것이 바로 물리치는 것이다. 勉齋有言曰: "自訟而見於言, 不若不言而責於心之切.". 余嘗味此語, 竊笑世人纔欲有爲, 輒立文出案矣. 今因有警于心者, 忽自思銘以寓戒, 自湯武來, 未之或廢. 我非生知, 則安用一切法? 遂書目下所務及躬所未逮者十則, 庸驗他日進退之實. 戊申六月晦日書.大志第一志者聖人之始, 孔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後來不踰矩, 只是終其始也.張子曰: "志大則才大, 事業大.", 志大而未大成者有矣, 未有志不大而能大成者也.豈若小丈夫之爲志也? 耀文夸世, 樹功顯名, 而沾沾充盈也.勤勵第二凡事勤則立, 不勤卽廢, 聖人憂勤惕厲全之, 衆人懈怠荒寧失之.耕者暑雨艱難而廩囷實, 織者夙夜孜孜而丈疋得, 匠者終日矻矻而輪輿成, 商者趨時奔逐而貲貨贏, 士之能勤, 作聖之基.故天地間斷, 萬物熄, 學問間斷, 百行墮.《易》曰: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讀書第三道惡乎載? 載乎書, 書宜乎讀. 讀惡乎用? 用以致其知, 致知者欲行之也.不知而行, 瞽之無相, 舟之失師, 鮮有不敗者.周公朝讀百篇, 仲尼韋編三絶, 何? 夫夫反思暇逸.《易》曰: "君子,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孝友第四人皆曰: "我欲孝于親, 友于兄弟.", 鮮能之者, 何? 孔子蓋曰: "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 盍自反乎誠乎?至誠所到, 金石可透, 而況乎天屬之易感者乎?詩云: "夙夜匪懈, 以事二人.", 是非孝乎親乎? "兄弟旣翕, 和樂且湛.", 是非友乎兄弟乎?孝孰爲大? 養志爲大. 服其勞, 先生饌, 仲尼不謂之孝, 而況乎此猶未能者乎?昔者有虞封象于有庳, 牛弘脯牛而不問, 而況乎處常者乎?改過第五太上無過, 其次不貳過, 其次改過而欲無過, 猶不免貳過, 小人文過.改過學者事也, 改之又改, 馴致於無過, 過而不改, 必至於文過.故孔子曰: "過則勿憚改.".檢身第六心內也, 身外也, 內斯可矣, 奚以身爲? 曷嘗見袒裼攘臂而心不暴, 箕踞偃臥而心不慢者乎?故君子不可以不檢身, 身不檢則心不正, 心不正則行敗度, 行敗度則身且從而亡.曾子以三貴, 顔氏以四勿, 仲弓以二如, 皆從檢身上起.恢量第七聖人者, 與天地相似, 日月星辰, 山嶽河海, 人物鳥獸, 容乎其中, 出而無外, 入而無內, 以量言天地者, 小天地者也.爲一得一喪, 一毁一譽, 而動心增氣, 哀哉!謙卑第八《易》曰: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甚哉! 人之不可不謙也.自高者人卑之, 自卑者人尊之, 彼少有才而輒高大者, 不思甚也.是故海之長百川, 以其卑也, 山之見崩頹, 以其高也.剛毅第九負千斤之重者, 不剛則不能起, 不毅則中途而止.仁者士之千斤, 柔弱解弛者, 末如之何也已.尊攘第十《春秋》之義, 數十, 尊攘爲大.今也夷狄盛, 我將爲其所攘, 如之何? 曰: "但不從其制, 有死而已, 便是攘也.". 면재(勉齋) 황간(黃幹, 1152~1221)의 호이다. 남송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다. 자는 직경(直卿)이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주희(朱熹)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스스로 …… 못하다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공야장(公冶長)〉 소주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생지(生知)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 나는 …… 두었다 《논어》 〈위정(爲政)〉에나온다. 법도에 …… 않았다 《논어》 〈위정)〉에 나온다. 뜻이 …… 크다 장재가 《정몽(正蒙)》 〈지당(至當)〉에서 "뜻이 크면 재주도 크고 사업도 크기 때문에 클 수 있다고 한다.[志大則才大, 事業大, 故曰可大.]"라고 하였다. 간단(間斷)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지는 것이다. 하늘의 …… 않는다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중니(仲尼)는 …… 끊어졌으니 공자가 만년에 《주역》 읽기를 좋아해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의 유명한 이야기가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실려 있다. 군자가 …… 쌓는다 《주역》 〈대축(大畜) 상전(象傳)〉에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옛 성현들의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쌓는다.[天在山中, 大畜, 君子以,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라고 한 데서 나왔다. 어버이에게 …… 것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벗에게 믿음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순하지 않으면 벗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에게 순함에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 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할 것이다.[信乎朋友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라고 하였다. 날이 …… 생각하노라 대본에는 "夙夜匪懈, 以事二人"으로 되어 있는데 《시경》 원문에 이러한 말은 없고, 문맥을 살펴볼 때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이루고, 부모님 두 분을 생각하노라.[明發不寐, 有懷二人.]"라고 한 말에서 나왔으므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시경》 〈소아 상체(常棣)〉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양지(養志) 부모를 봉양할 때에 그 뜻에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리는 효를 행한다는 말이다. 그 …… 않으셨는데 《논어》 〈위정(爲政)〉에 자하(子夏)가 효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를 섬김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선생에게 드시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 曾是以爲孝乎?]"라고 하였다. 옛날에 …… 주었으며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순임금이 이복동생인 상을 유비에 봉해 주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홍(牛弘)은 …… 않았으니 수(隋) 나라 이부 상서(吏部尙書) 우홍(牛弘)의 소를 동생 우필(牛弼)이 술김에 쏘아죽였는데, 우홍은 그저 포를 뜨라고 하고는 동생을 질책하지 않고 태연하게 책을 계속 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소학(小學)》 〈선행(善行)〉에 실려 있다. 같은 …… 것이며 《논어》 〈옹야(雍也)〉에 공자가 "안회가 학문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에게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서 죽고 말았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라고 하였다. 《논어》 〈학이(學而)〉에 나온다. 증자(曾子)의 삼귀(三貴) 증자가 《논어》 〈태백(泰伯)〉에서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안색을 바르게 할 때에는 신실함을 가까이하며, 말을 할 때에는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라고 하였다. 안씨(顔氏)의 사물(四勿) 《논어》 〈안연(顏淵)〉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마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다. 중궁(仲弓)의 이여(二如) 《논어》 〈안연〉에, 중궁이 인을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기를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뵙는 듯이 하고,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며,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하였다. 하늘의 …… 좋아한다 《주역》 〈겸괘(謙卦) 단전(彖傳)〉에 나온다. 존양(尊攘) 존중화 양이적(尊中華攘夷狄)의 준말로,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기질성에 대한 문답 【1915년】 氣質性問答 【乙卯】 객이 나에게 묻기를 "성탕(成湯)10) 이후 성현들이 성(性)에 대해 논한 것은 순선(純善)한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말했을 뿐이다. 정호(程顥)와 장재(張載) 두 선생에서부터 처음으로 기질성(氣質性)의 설이 있었으니11), 이른바 기질성이란 것은 과연 어떠한 성입니까?"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이른바 기질성이라는 것은 다만 본연성(本然性)이 기질을 따라 저절로 하나의 성이 될 뿐이고, 본연성 밖에 다시 기질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람이 태어날 때 천지의 이(理)를 받은 것이 성이 되고 천지의 기(氣)를 받은 것이 기질이 된다. 이[理]는 형체 없는 물[物]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성이 되고 혼연히 지선(至善)하여 도모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기는 형체 있는 물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기질이 되고 온갖 가지런하지 않아 작용이 무상하다.지선하면서 작위함이 없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으면서 작용하는 것에게 운용되지만, 관섭(管攝)하거나 검제(檢制)할 방법이 없다. 이에 혼연한 지선의 체가 이로 말미암아 드러나지 않고, 기질에 따라 온갖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것만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기질지성으로 지목한다. 그 명칭이 비록 정호와 장재에서부터 시작되어 확립되었을지라도, 실제로는 공자의 성상근(性相近)12), 한자(韓子 한유(韓愈))의 성삼품(性三品)13),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성강유선악(性剛柔善惡)14)의 세 말이 이미 정호와 장재 이전에 설파되었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그렇다면 본연성이 기질을 따라 가지런하지 않은 성이 되니, 순선(純善)한 본체가 또한 속박되고 착상(鑿喪)되어 남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아니다. 어찌 일찍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본 적이 없겠는가. 지극히 밝고 뜨거운 본체가 저렇게 빛나고 붉지만, 구름에 가리고 안개에 막히며 날씨가 써늘하고 한기가 얼어붙게 되면 지극히 밝은 것은 흐려지기도 하고 캄캄해지기도 하며, 지극히 뜨거운 것은 서늘해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지런하지 않은 흐림, 캄캄함, 서늘함, 차가움은 바로구름, 안개, 날씨, 한기의 소치이기 때문에 밝고 뜨거운 태양의 본체에는 본래 손상됨이 없다.이 때문에 사람의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이 모두 기질이 하는 것이고, 성의 본체는 본래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가 어떻게 악하겠는가. 이른바 악이라는 것은 기이다.15)'라고 하였고, 임천 오씨(臨川吳氏)16)가 말하기를 '타고난 기가 맑고 혼탁하며 재질(材質)이 어둡고 밝으니, 이는 고자(告子)의 이른바 생(生)의 본능을 성이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성은 실제로는 기이다.17)'라고 하였으며, 율곡 선생(栗谷先生 이이(李珥))이 말하기를 '기가 치우치면 이도 치우치는데 치우친 것은 이가 아니고 바로 기이며, 기가 악하면 이도 악한데 악한 것은 이가 아니고 바로 기이다.18)'라고 하였으니, 이 세 가지 설은 바꿀 수 없는 지론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그렇다면 기질은 기질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기질성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발휘하고 운용하는 곳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니 품수(稟受)19)할 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정자(程子 정이천)가 '천성인 유완(柔緩)과 강급(剛急)은 타고난 것이다.20)'라는 가르침을 두었고, 율옹(栗翁 이이(李珥))은 '원초(元初)에 기질성을 타고났다.'는 설을 두었는가."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은 비록 기질이 한 것이지만, 기질이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하면 성도 따라서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하기 때문에 성과 뒤섞어 혼륜하게 말하면 '기질성'이라고 말한다. 성의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은 비록 발휘되어 운용되는 곳에서 볼 수 있지만,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한 것은 탁박(濁駁)하고 가지런하지 않은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기를 주로 하여 근원을 궁구하여 말한다면 '원초에 품부하였다.'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말미암아 말한다면 정호와 이이 두 선생의 가르침은 거의 막히는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근래에 기질성을 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그 기질에 따라 각각 다른 이를 받으니 이것이 기질성이 되고, 그중에서 단지(單指)21)하면 이것이 본연성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그러한 설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논자의 이 설은 결국 이치에 어긋나고 참을 어지럽히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하늘이 물(物)을 낳음에 근본을 하나로 하게 하였는데, 만일 이 말과 같다면 이것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다. 본연지성은 천하일원(天下一原)의 성이고 기질지성은 만물부제(萬物不齊)의 성인데, 일원의 성과 부제의 성을 똑같이 품수할 때에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이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을 옳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먼저 부제의 성을 받음을 생각하고 뒤에 일원의 성을 가리켰다. 따라서 이것은 기질성을 본(本)으로 삼고 본연성을 말(末)로 삼아 본말이 뒤바뀌고 천하의 일이 전도(顚倒)되어 창피한 것이니, 어느 곳인들 편안하겠는가.이미 처음 태어날 때 다른 이[異理]의 성을 받았다면 이른바 성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 물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이미 다른 성이 어떻게 갑자기 형체를 바꾸고 삽시간에 태를 변하여 단지할 때에 사람들이 모두 같고 물들이 모두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 단지에서 본연성이라고 한 것은 고기에 붙은 혹과 소금에 절인 건어물에 불과하니, 어찌 족히 말할 거리가 되겠는가.무릇 성을 말하면서 다른 이[異理]를 받은 것으로 주를 삼으면 대성(大聖), 군자(君子), 중인(中人), 하우(下愚)가 모두 처음 태어날 때 똑같이 정해져서 교유(矯糅 잘못을 바로잡음)와 극치(克治)22)의 공을 베풀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23)의 가르침, 맹자가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었다24)는 뜻, 정자(程子)의 '기질을 이겨 본성을 회복한다.'는 가르침, 장자(張子 장재)의 기질을 변화시키는25) 설이 일체 파탄(破綻)을 면치 못할 것이니, 천하에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는가. 이로써 궁구해보면 논자의 설이 이치에 어긋나고 참을 어지럽히는 잘못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客有問於余曰: "成湯以後, 群聖賢之論性, 只言其純善本然之性而已. 自程張二先生, 始有氣質性之說焉, 所謂氣質之性者, 果何性耶?", 余曰: "所謂氣質性者, 只是本然性之隨氣質而自爲一性者, 非本然性之外, 復有氣質之性也. 蓋人之生也, 受天地之理以爲性, 受天地之氣以爲氣質. 理者無形之物, 故在人爲性, 渾然至善而無所猷爲. 氣者有形之物, 故在人爲氣質, 有萬不齊而作用無常. 至善而無爲者, 爲不齊而作用者之所運, 而無管攝檢制之術. 於是渾然至善之體, 因而不著, 而只見其隨氣質而有萬不齊, 故目之以氣質之性. 其名雖肇自程張而立, 其實孔子之性相近, 韓子之性三品, 周子之性剛柔善惡三言, 已道破程張之前矣.". 曰: "然則本然性之隨氣質而爲不齊之性也, 其純善之本體, 亦桎梏鑿喪而無餘矣乎?", 曰: "非也. 盍嘗觀乎中天之太陽乎? 至明至熱之體, 如彼其光且爀也, 而及其雲翳霧塞, 氣肅寒凝也, 至明者或昏或暗, 至熱者或凉或冷. 然昏暗凉冷之不齊者, 乃雲霧氣寒之所致, 太陽明熱之體固無損也. 是故知人之偏全善惡, 皆氣質之所爲, 性之本體, 固自若也. 朱子曰: '理如何得惡? 所謂惡者却是氣.', 臨川吳氏曰: '稟氣淸濁, 材質昏明, 是則告子所謂生之謂性, 是性也實氣也.', 栗谷先生曰: '氣之偏則理亦偏, 所偏非理也, 乃氣也, 氣之惡則理亦惡, 所惡非理也, 乃氣也.', 此三說者, 竊以爲不易之論也.". 曰: "然則氣質只可言氣質而已, 不必曰氣質性, 只可言於發用處而已, 不可言於稟受時, 何程子有天性柔緩剛急所稟受之訓, 栗翁有元初稟賦氣質性之說耶?", 曰: "偏全善惡, 雖是氣質之所爲, 氣質之偏全善惡, 性亦隨而偏全善惡, 故和性而混淪說則曰氣質性. 性之偏全善惡, 雖於發用處可見, 所以偏全善惡者, 以其稟濁駁不齊之氣, 故主氣而推原說則曰元初稟賦. 由此言之, 則程栗二先生之訓, 庶無所礙也.". 客曰: "近有論氣質性者乃曰: '人之始生, 隨其氣質而各稟異理者, 是爲氣質性, 就其中單指, 則是爲本然性.', 吾嘗信其說而不疑矣. 若如子之言, 論者此說, 終不免違理而亂眞耶?", 曰: "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若如此說, 則是二本也. 本然之性, 天下一原之性也, 氣質之性, 萬物不齊之性也, 一原之性, 不齊之性, 均可言於稟受時, 則是非二本而何? 非惟二本之是, 慮先稟不齊之性, 後指一原之性, 是氣質性爲本, 本然性爲末, 本末易置, 天下事顚倒猖披, 何所不有不寧? 惟是旣稟異理之性於始生之時, 則所謂性者人人各異矣, 物物各異矣. 旣異之性, 安得忽地換形, 霎時幻胎, 人人皆同, 物物皆同於單指之際乎? 然則其單指則本然性云者, 不過爲附肉之疣, 加鹽之鮝, 何足爲有無哉? 大抵言性而以稟異理者爲主, 則大聖君子中人下愚, 皆一定於有生之初, 矯糅克治之功, 無所可施也. 孔子克己復禮之敎, 孟子必稱堯舜之旨, 程子勝氣復性之訓, 張子變化氣質之說, 不免一切破綻矣, 天下安有是理哉? 以此究之, 則論者之說, 雖欲免違理亂眞之科, 得乎?". 성탕(成湯) 은(殷)나라 첫 임금인 탕왕(湯王)이다. 본명은 이(履) 또는 천공(天工)이다. 하(夏)의 걸왕(桀王)을 쫓아내고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다. 정호(程顥)와 …… 있었으니 장재가 《정몽(正蒙)》 〈성명편(誠明篇)〉에서 말하기를 "형이 있은 다음에 기질지성이 있다.[形而後有氣質之性]"라고 하였고, 정호는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에서 "생을 성이라 이른다. 성이 곧 기요, 기가 곧 성이니 이것을 생이라고 이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형기(形氣)를 품부 받으면 이치에 선과 악이 있게 된다.[生之謂性. 性卽氣, 氣卽性, 生之謂也. 人生氣稟, 理有善惡.]"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도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성상근(性相近)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은 서로 멀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하였다. 성삼품(性三品) 《창려문집(昌黎文集)》 권11 〈원성(原性)〉에서 한유(韓愈)가 말하기를 "성에는 상중하 세 가지 등급이 있으니, 상품은 선할 뿐이고, 중품은 인도하여 위나 아래로 가게 할 수 있으며, 하품은 악할 뿐이다.[性之品有上中下三, 上焉者善焉而已矣, 中焉者可導而上下也, 下焉者惡焉而已矣.]"라고 하였다. 성강유선악(性剛柔善惡) 《통서(通書)》 〈사 제칠(師第七〉에 주돈이가 말하기를 "성은 강유와 선악의 중일뿐이다.[性者剛柔善惡中而已矣.]"라고 하였다. 이가 …… 기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4 〈성리 일(性理一)〉에 나온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오징(吳澄, 1249~1333)이다. 호는 초려(草廬)이고 자는 유청(幼淸)이며, 무주(撫州) 숭인(崇仁) 사람이다. 송(宋)나라가 망한 뒤 원(元)나라의 국자감 승(國子監丞)이 되었다. 타고난 …… 기이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31 〈성리 삼(性理三)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보인다. 기가 …… 기이다 《율곡전서》 권10 〈서 이(書二)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나온다. 그러나 대본의 "氣之惡則理亦惡, 所惡非理也, 乃氣也."는 《율곡전서》 원문에는 "기가 온전하면 이도 온전한데 온전한 것은 이가 아니고 기이다.[氣之全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 氣也.]"라고 되어 있다. 품수(稟受) 선천적으로 재능이나 성품을 타고나는 것이다. 천성인 ……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 "지금 사람들이 '천성이 유완하고 강급한 것은 모두 이처럼 타고난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품수한 것을 뜻한다.[今人言天性柔緩天性剛急, 皆生來如此, 此訓所禀受也.]"라고 한 말이 《성리대전》 권30 〈성리 이(性理二)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보인다. 단지(單指) 기질(氣質)은 제외하고 이(理)만을 가리켜 말한다는 뜻이다. 극치(克治)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이겨 내어 물리치는 것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논어》 〈안연(顔淵)〉에 안연이 인(仁)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극기복례를 할 수 있다면 온 천하 사람들이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하였다. 맹자가 …… 일컬었다 맹자가 성선(性善)에 대해 말하였는데, 말했다 하면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었다.[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라는 내용이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기질을 변화시키는 《장자전서(張子全書)》 권12 〈어록(語録)〉에 "학문하는 큰 이익은 스스로 기질의 변화를 구하는 데 있다.[爲學大益, 在自求變化氣質.]"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계주잠 【무인년(1938)】 戒酒箴 【戊寅】 옛 사람 어찌하여 매방(妹邦)을 경계하고227) 何誥妹邦,무엇 때문에 의적(儀狄)을 멀리하였나.228) 何疏儀狄,작게는 일을 망치고 小則敗事,크게는 나라를 망쳐서네. 大則亡國.털끝 하나 틀리지 않은 말임은 毫不差爽,옛 일에 모두 증험 있는데 驗諸往迹,그래도 여전히 실수를 하니 然猶有失,스스로 겪어보지 않아서이네. 由不親歷.한 번 실패는 그래도 괜찮지만 一敗猶可,두 번을 망치면 어떻게 하나, 再敗何則,작은 징치(懲治)로 큰 경계(警戒)를 하라 懲小戒大,주역의 큰 가르침이네.229) 訓自大易.실수 하면서도 방비할 줄 모르면 敗不知戒,멸망 빼고는 다른 길 없네. 不亡安適,앙화를 복으로 바꾸어라 轉禍爲福,기회는 경각에 달려있나니. 機在頃刻.점(占)에는 뉘우침[悔]이 있으니, 뉘우침은 길흉의 사이에 있고, 과오는 고쳐야 마땅하니, 고침은 성(聖)과 광(狂)의 갈림길이다. 뉘우치고도 고치지 않으면 흉(凶)이 되고 말 것이며, 고치고도 다시 뉘우칠 일을 하면 광(狂)이 되고 말 것이다. 오호! 뉘우치되 뉘우침이 깊지 않고, 고치되 고침이 참되지 않구나. 자꾸 뉘우치고 자주 고치는 사이에 늙어 죽으리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이 말 조심[愼言]과 술 경계[戒酒]의 두 잠언을 지어, 동생 여안(汝安)230)에게 주며 함께 노력하려 하니, 내 나이는 쉰 하고 다섯이요, 여안은 마흔이다. 何誥妹邦, 何疏儀狄, 小則敗事, 大則亡國。 毫不差爽, 驗諸往迹, 然猶有失, 由不親歷。 一敗猶可, 再敗何則, 懲小戒大, 訓自大易。 敗不知戒, 不亡安適, 轉禍爲福, 機在頃刻。 占有悔, 悔在吉凶之間; 過宜改, 改爲聖狂之幾。 悔而不改, 凶而已矣。 改復有悔, 狂而已矣。 嗚呼! 悔不深悔, 改不眞改。 頻悔頻改之頃, 老且逝矣, 可不悲哉! 作此愼言戒酒二箴, 與舍弟汝安共勉, 余時年五十有五, 汝安四十。 매방(妹邦)을 경계하고 주 성왕(周成王)의 숙부인 강숙(康叔)이 은(殷) 나라의 옛 도읍인 매방(妹邦)에 봉해지자, 주공(周公)이 그를 위해 그곳 백성들이 은나라 주왕(紂王)의 영향으로 술을 즐김을 말하며 경계한 《서경》〈주고(酒誥)〉편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의적(儀狄)을 멀리하였나 옛날에 의적(儀狄)이 처음 술을 만들어 우(禹)임금에 바치자, 우임금이 그것을 좋은 맛을 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하고 의적을 멀리하였다는  《전국책》 〈위책(魏策)〉의 말을 인용하였다. 작은……가르침이네 《주역》〈계사〉에 "작은 것을 징치하여 큰 것을 경계하니, 이는 소인의 복이다.[小懲而大誡, 此小人之福也。]"라고 하였다. 여안(汝安) 김택술의 세째 아우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의 자(字)이다. 처음의 호로는 연강(蓮岡)을 썼으며, 김택술과 마찬가지로 간재 전우의 제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재잠221) 차운 【무신년(1908, 융희2)】 次敬齋箴 【戊申】 마음과 정신을 고요히 모아라 凝爾心神,보고 듣기를 거두어 멈추어라 斂爾聽視,마치 신하가 조정에 서서 如臣在廷,황제의 명을 받는 듯이. 受命于帝.방원(方圓)의 규범을 준수하고 遵爾規矩,삼가고 공경함을 꼭 잡아라 執爾恪恭,마치 제후가 나라를 수호하며 如侯守國,제 맡은 봉토를 잃지 않듯이. 不失其封.작게는 밥 먹을 때나 小而喫飯,크게는 제사 모실 때나 大而承祭,사물에 결을 따라 응대하되 順應事物,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말라. 勿問難易.안으로 정사를 닦거나 內若修政,밖으로 성채를 지키거나 外若防城,공과 사를 조심해 살피고 審愼公私,무겁고 가벼움을 구분하라. 勿混重輕.동서의 방향을 잃지 말고 莫迷東西,남북의 방위를 뒤집지 말며 莫顚南北,천지에 저절로 있는 그 가운데 天然有中,나는 거기에로 나아가리. 我其可適.둘 사이에 의심하지 않으며 不疑於二,셋을 놓고 흔들리지 않고 不惑於三,오직 하나를 지녀 살피면 所存惟一,온갖 이치가 다 보이리. 衆理可監.만약 이와 같이 해낸다면 苟其如此,이를 일러 경(敬)에 능하다 하리니, 是謂能敬,동정(動靜)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動靜不違,표리(表裏)가 서로 맞으리. 表裡交正.순수한 덕으로 틈 하나 두지 말고 純德無間,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을지니, 終始一端,조심하라 잠시 잊고 놓쳐 愼無暫忘,일폭십한(一曝十寒)222)에 이르지 말라. 竟至十寒.지극한 행실에 어긋남 없이 하여 至行無差,정조(精粗)를 구별하지 말지니, 精粗一處,조심하라 얼핏 소홀히 하여 愼無或忽,저절로 무너져 망치지 말라. 順致敗斁.일천 옛 성인의 이 종지를 千聖宗旨,어찌 삼가 받들지 않겠는가. 曷不欽哉,이로써 경계의 잠언을 지어 我庸作箴,마음의 신령한 경대에 새기노라. 銘諸靈臺. 凝爾心神, 斂爾聽視, 如臣在廷, 受命于帝。 遵爾規矩, 執爾恪恭, 如侯守國, 不失其封。 小而喫飯, 大而承祭, 順應事物, 勿問難易。 內若修政, 外若防城, 審愼公私, 勿混重輕。 莫迷東西, 莫顚南北, 天然有中, 我其可適。 不疑於二, 不惑於三, 所存惟一, 衆理可監。 苟其如此, 是謂能敬, 動靜不違, 表裡交正。 純德無間, 終始一端, 愼無暫忘, 竟至十寒。 至行無差, 精粗一處, 愼無或忽, 順致敗斁。 千聖宗旨, 曷不欽哉, 我庸作箴, 銘諸靈臺。 경재잠 주희(朱熹. 1130~1200)가 경(敬)에 관한 격언들을 모아 지은 잠언(箴言)으로, 정주학자들이 애송하였고 퇴계(退溪) 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폭십한(一曝十寒) 《맹자》에 말한 '천하의 잘 자라는 물건도 하루 햇볕 쬐고 열흘을 추위에 떨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으로,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고 끊겨 실패함을 말한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