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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변론 【1940년】 不得罪於巨室論 【庚辰】 맹자가 말하기를 "거실(巨室 대신의 집안)에 원망을 사지 말아야 한다.258)"라고 하였는데, 주자는 이를 해석하여 "원망을 산다는 것은 몸이 바르지 못하여 원망과 노여움을 사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등퇴암(鄧退菴 등림(鄧林))은 이를 해석하여 "원망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아 원망을 사지 않는 것을 이르고, 법을 왜곡하여 받드는 것이 아니다.259)"라고 하였다.그런데 지금 선비들은 그렇지 않으니, 사문(斯文)의 시비(是非)에 대해 이미 마음속으로 그 곡직(曲直)을 알고 있지만 또 다시 때로 말과 얼굴빛에 나타내면서 곧바로 번번이 핑계를 대며 말하기를 "맹자가 거실에 원망을 사지 말라고 이르지 않았던가. 가령 저들이 바르지 않고 잘못되었을지라도 나이가 많고 박식하며 패거리가 많으니, 또한 사림(士林) 가운데 거실이다. 내가 어떻게 저들에게 원망을 사겠는가."라고 한다.아! '거실', '거실'이 어찌 아버지와 스승보다 높기에 아버지와 스승은 버릴 수 있고 거실은 버려서는 안 되겠는가. 이는 바로 그 자신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서 원망과 노여움을 피하고, 정리(正理)를 버리면서 원망을 사지 않으며, 법을 왜곡하면서 거실을 받드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어찌 맹자의 뜻이겠는가. 성인의 가르침을 가지고 이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룬다면, 그 죄가 어찌 다만 성인을 업신여기는 것일 뿐이겠는가. 또 어찌 이러한 사람에 대해서 선비답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孟子有言: "不得罪於巨室.", 朱子釋之曰: "得罪, 謂身不正而取怨怒也.", 鄧退菴解之曰: "不得罪, 謂合理而不致怨, 非曲法以奉之也.". 今之士子則不然, 於斯文是非者, 旣心知其曲直矣, 亦復時見於辭色, 而旋輒諉之曰: "孟子不云乎! 不得罪於巨室. 雖使彼曲且非焉, 年長也, 識博也, 黨衆也, 則亦士林中巨室, 我何以得罪於彼也?". 嗚呼! 巨室巨室, 豈其尊於父師者, 而父師可棄, 巨室不可貳乎? 此乃不正其身而避怨怒, 舍正理而不致怨, 曲法而奉之也, 是豈孟子之意哉? 將聖訓而美之以濟己私, 其罪豈但爲侮聖乎? 於斯人也, 又何足責以士子? 맹자가……한다:《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등퇴암(鄧退菴 등림(鄧林))은……아니다:이는 등림의 말이 아니고, 주희에게 수학한 진식(陳埴, ? ~ ?)의 《목종집(木鐘集)》 권2 〈맹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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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에게 답함 기미년(1909) 答朴受卿 己酉 오늘 아침은 새해의 첫 번째 길일입니다. 하늘에는 삼양(三陽)이 회태하여25) 만물이 새롭게 바뀌는 때이고, 나라에는 인정(仁政)을 베풀어 그 명을 새롭게 하는 때이니, 인사에 있어서도 어찌 과실을 뉘우치고 반성하여 그 덕을 스스로 새롭게 하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형은 평소에 감백(甘白)의 자질로 화채(和采)의 수식을 더하여26) 문학과 행실을 겸비하고 명성과 실지가 모두 융성하여 사우(士友)의 기대가 참으로 작지 않습니다. 이번에 실수한 바는 평소의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매우 달랐으니, 이에 연성(連城)의 백옥27)에 하나의 하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덕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실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아(宰我)는 공자 문하의 십철(十哲)이면서도 오히려 상기(喪期)를 단축하고 취렴(聚斂)하는 실수가 있었으니,28) 하물며 나머지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의 스스로 수행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이것에 핑계를 대고서 해될 것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통렬히 옛 과실을 징계하여 새로운 덕으로 옮겨가도록 해야 합니다.형의 편지를 보니, 후회하는 말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왔으니 스스로 반성하는 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상심하고 기운이 꺾인 뜻이 많고, 힘써 닦아서 옮겨서 나아가려는 기운이 적으니, 이것은 타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형의 실수는 형의 연고로 그런 것이 아니고 부친의 명을 감히 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로써 부친을 깨우칠 수 없어서 부친의 명령을 따르는 효도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이 실수를 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장차 이것에 얽매어 부끄러워하고 한탄만 하다가 마침내 나아가지 못하고 그칠 뿐이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더욱 다리 힘을 씩씩하게 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간 뒤에 그치겠습니까. 원컨대 형은 하늘의 해에 맹세하고 백배로 힘을 써서 스스로 그 덕을 새롭게 하여 옛날의 허물을 능히 고친다면, 동우(東隅)에서 잃은 것을 장차 상유(桑楡)에서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29) 힘쓰고 힘쓰기 바랍니다. 今朝新年第一吉日也.在天則爲三陽回泰,萬物賁新之時; 在邦國則爲發政施仁,維新其命之會; 其在人事,豈不爲悔過修省自新厥德之機耶? 兄素以甘白之質,加以和采之飾,文行兼備,名實俱隆,士友之期待,實非淺淺地也.今此所失,殊異乎平日之云爲,於是乎連城之璧,有一點之瑕矣.人非成德,不能無失.故宰我以孔門之十哲,尚有短喪聚斂之失,况餘人乎? 然在吾人自修之道,則不可諉之於此而以爲無傷,只當痛懲舊過,以遷新德可也.竊觀兄書 怨艾之辭,出於肺肝,可謂得自修之道矣.但隕廓沮喪之意多,淬礪遷進之氣少,此不當然也.且兄之所失,非兄之故,出於親命之不敢違也.不能喻父於道,而未免從親令之孝,此其所以爲失也.其將坐此而羞愧憂歡,遂止不進而已乎? 其將益壯脚力,任重致遠而後已乎? 願兄指天誓日,百倍用功,使自新之德,能改舊愆,則東隅之失,將復有桑榆之收矣.勉旃勉旃. 삼양(三陽)이 회태(回泰)하여 신년(新年)을 축하하는 말이다. 10월의 순음(純陰)에서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양효(陽爻)가 하나씩 살아나서, 1월이 되면 양효가 셋이 생겨 태괘(泰卦)가 되는데, 이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며 음(陰)이 소멸하고 양(陽)이 신장(伸長)하여, 길형(吉亨)의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신년을 축하하는 말로 쓰인다. 감백(甘白)의……더하여 충신(忠信)한 자질로 예의를 익혔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단맛은 모든 맛의 근본이라서 백미(百味)를 조화시키고, 흰색은 모든 색의 근본이라서 어떤 채색이나 받아들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직 충신한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甘受和, 白受采, 忠信之人, 可以學禮]"라고 하였다. 연성(連城)의 백옥 값이 성(城) 몇 개와 대등한 옥이란 말이다. 전국 시대에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이 화씨벽(和氏璧)을 구하여 얻었는데, 진(秦) 나라 소왕(昭王)이 듣고서 조왕(趙王)에게 사람을 보내어 열다섯 성과 바꾸기를 청했었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閵相如列傳)〉에 내용이 보인다. 재아(宰我)는……있었으니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재아가 어버이의 복을 1년만 입기를 청하자 공자가 책망하며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이다.(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하였는데도 염구가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재산을 늘려 주었다.[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라고 하였다. 동우(東隅)에서……것입니다 《후한서(後漢書)》 〈풍이열전(馮異列傳)〉에 "동우에서 잃었으나 상유에서 수습한다.(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다. 동우(東隅)는 동쪽 해가 뜨는 곳이니 젊은 시절을 말하고, 상유(桑楡)는 서방 해가 지는 곳으로 만년(晩年)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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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 耕隱說 【丁亥】 내가 부풍(扶風)의 부곡(富谷)을 지나다가, 벗 정덕중(鄭德重)이 거처하는 곳에 편액을 했는데 '경은(耕隱)'으로 한 것을 보고 묻기를 "함께 짝이 되어 밭을 갈았던 장저(長沮)와 걸익(桀溺)150)은 옛날에 은거할 때에 중도에 지나치고 정도를 잃은 자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들을 사모하는가."라고 하니, 주인이 놀라서 말하기를 "내가 창평(昌平)에서 와서 이 땅에서 농사지은 지가 이미 30년이 되었으니, 다만 사실을 기록한 것은 모두 우연한 뜻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장저와 걸익에 혐의가 있다면, 빨리 이를 없애겠다."라고 하였다.이에 내가 말하기를 "상심하지 말라. 본래 일에는 이름은 같지만 실상이 다른 경우가 있으니, 동일한 학문이지만 위기(爲己)와 위인(爲人)151)의 구분이 있고, 동일한 인정(仁政)이지만 행동으로 하고 거짓으로 하는 다름이 있다. 그러니 저들이 은거하여 농사지으며 조수(鳥獸)와 함께 무리지어 산 것이 그대가 은거하여 농사지으면서 부모를 섬기고 자녀를 기르는데 책임을 다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겠는가.게다가 지금 자네는 피로하여 이제 막 야전(野田)의 농사를 그만두고, 연전(硯田 문필)의 농사에 전념하여 문청공(文淸公)152)의 가학(家學)을 이엇다. 그리고 마침 나라가 새롭게 되었으니, 마음과 힘이 쇠하지 않고 평소의 뜻을 굳세게 실천하여 포부를 펼칠 날이 있다면, 어찌 일찍이 공부한 예학(禮學)으로써 상하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153) 대종백(大宗伯 예조 판서)의 다스림을 도와서 이루지 못할 줄을 알겠는가. 만일 이와 같이 된다면 비록 오랫동안 경(耕)에 은거하고 싶어도 그렇게 될 수 없으니, 그대로 써두고 기다려라."라고 하였다. 余過扶風之富谷, 見鄭友德重扁居而以耕隱, 問之曰: "耦耕沮溺, 古隱之過中失正者, 子何慕焉?", 主人瞿然曰: "吾自昌平來, 耕玆土已三十年, 只以記實, 幷非偶意. 然如其嫌於沮溺也, 請亟去之.". 余曰: "毋傷也. 事固有名同而實異者, 同一學問而有爲己爲人之分, 同一仁政而有以行以假之殊, 彼之隱耕而鳥獸同群, 何與於吾之隱耕而事育盡責乎? 且子今亦倦矣, 方舍野田之耕, 而專硯田之耕, 用紹文淸家學, 適玆邦國維新, 心力不衰, 壯行素志, 展步有日, 安知不以所嘗用功於禮學者, 助成大宗伯辨上下定民志之治也乎? 苟如是也, 雖欲久隱於耕, 亦不可得矣, 請書而俟之."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춘추 시대 초나라 은자(隱者)이다. 이들에 관한 내용이 《논어》 〈미자(微子)〉에 나온다.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 《논어》 〈헌문〉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문청공(文淸公) 정철(鄭澈, 1536~1593)의 시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은 돈녕부판관 정유침(鄭惟沈)이다. 상하를 …… 안정시키는 《주역》 〈이괘(履卦) 대상전(大象傳)〉에 "위의 하늘과 아래의 못이 이(履)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 상하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킨다.[上天下澤履, 君子以, 辨上下, 定民志.]"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상하존비(上下尊卑)의 위계질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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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집 서구272)의 자사 【갑신년(1944)】 黃舜輯【瑞九】字辭 【甲申】 순(舜)이 천자가 되니 舜爲天子,다섯 서옥(瑞玉)이 다 모였네273) 五瑞畢輯,어떻게 그것을 이루었을까 何以致之,제 몸에 성스런 덕을 지녀서네. 身有聖德.높고도 높은 그 덕 維德巍巍,그 발자취 누가 능히 뒤밟을까? 孰能追跡,안씨(顔氏) 집에 한 아들 있어 有顔氏子,순(舜)에 닿을 만 했다 하고, 謂舜可及.또 저 추나라의 맹씨(孟氏)는 亦粤鄒孟,순(舜)처럼 구휼하라 하였네.274) 如舜是恤,내 벗 황서구(黃瑞九)가 黃友瑞九,순집(舜輯)이라 자를 붙이니 舜輯字曰,그 자질이 아름다운데다 旣美者質,공부에도 부지런한데 亦勤于學,마음에 그리는 바를 보건데 觀厥所慕,안자 맹자가 갔던 길과 같네. 顔孟同轍.그런데 근본의 궁구가 없이 然不究本,한갓 사모함만으로는 얻지 못하니 徒慕無得,그 근본은 무엇인가? 其本伊何,정일(精一)을 이루어 惟精惟一,준철ㆍ문명ㆍ온공ㆍ윤색하고 哲明恭塞,시중(時中)을 잡으라. 時中之執.정일(精一)은 무엇인가 精一伊何,진리를 알고 실지를 밟음이네 知眞踐實,어떻게 그것을 배울까 我何以學,성의(誠意)하고 격물(格物)하라 誠意格物,성(誠)과 격(格) 이루고 나면 旣格旣誠,그것을 일러 상달(上達)이라 하니 是謂上達,안자의 바램과 맹자의 근심이 顔願孟憂,얻어지고 풀릴 날이 멀지 않으리라. 酬解有日.이로써 순(舜)처럼 집(輯 모음)하는 玆爲舜輯,미묘한 비결을 봉정하니 奉呈要訣,일념으로 두루 돌아보며 一念周旋,하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하리라. 宜無敢忽. 舜爲天子, 五瑞畢輯, 何以致之, 身有聖德。 維德巍巍, 孰能追跡, 有顔氏子, 謂舜可及。 亦粤鄒孟, 如舜是恤, 黃友瑞九, 舜輯字曰。 旣美者質, 亦勤于學, 觀厥所慕, 顔孟同轍。 然不究本, 徒慕無得, 其本伊何, 惟精惟一。 哲明恭塞, 時中之執, 精一伊何, 知眞踐實。 我何以學, 誠意格物, 旣格旣誠, 是謂上達。 顔願孟憂, 酬解有日, 玆爲舜輯, 奉呈要訣。 一念周旋, 宜無敢忽。 황순집 서구 1896~1966,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순집(舜輯)이다. 구대조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속고(頤齋續藁)》와 팔대조 만은(晩隱) 황전(黃㙻, ?~1771)의 《만은유고(晩隱遺稿)》를 간행하였으며, 고창군 흥덕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민족 교육을 위한 흥동장학회(興東獎學會)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다섯 서옥……모였네 다섯 서옥[五瑞]은 천자가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의 다섯 등급의 제후에게 반사(頒賜)한 신분표시의 옥패이다. 여기서는 전국 각 지역을 다스리는 크고 작은 부족장들이 모두 와 복종하며 신하가 되었다는 말이다. 안씨(顔氏) 집……구휼하라 하네 《맹자》〈등문공(滕文公)〉편에서 안연(顔淵)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말하고, 〈이루(離婁)〉편에서 맹자(孟子)는 "순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순임금과 같이 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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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김형구270) 혼서 【임술년(1922)】 從子炯龜昏書 【壬戌】 마음을 주어 지란(芝蘭)의 벗을 맺고, 대를 이은 교분을 이루었던지라, 중매의 의논을 기다리지 않고, 만나서 얼굴 보고 송라(松蘿)의 혼인을 얽었습니다. 양가의 덕과 지위가 비슷하니, 어찌 온후한 말씀과 정성스런 폐백을 갖추지 않겠습니까?생각건대 존하의 차남 소생의 손녀는 덕스런 용모와 훌륭한 언사를 함께 갖추어, 구름 위 난새와 오동 숲의 봉황 같은 탁월한 자질을 지녔습니다. 제 중제(仲弟) 김봉술(金鳳述)의 아들 형구(炯龜)는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의 경전 다 못 배워서 산야의 노루 사슴과 가깝습니다. 재주와 품성이 부족함을 혜량하시고, 부끄럽게 그에게 짝을 정해 주셨습니다. 예물의 풍부함과 검약함을 묻지 말아서 용문(龍門) 사람의 오랑캐 계칙271)을 잘 준수하고, 소박한 예물에 온 정을 다 담아서 번거로운 예법을 생략한 순후하고 예스러운 풍도를 완연히 보고자 합니다.딸이 제 집에 나아가고 아들이 아내를 맞이함을 완연히 보며 부모의 마음은 또 간절할 것이니, 양(陽)이 강(剛)으로 피우고 음(陰)이 유(柔)로 받음에, 복록의 샘물이 멀리 흐르리니, 두 가문의 경사가 여기에 있고, 만 대의 시초가 여기서 말미암을 것입니다. 우러러 낮은 정성을 아뢰오니 높으신 눈으로 굽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心許而結芝蘭之契, 夙講世交, 面約而成松蘿之親, 不俟媒議。 旣德齊而地醜, 盍辭腆而幣誠? 伏惟令第二房孫女, 德容言功兼全, 卓矣雲鸞梧鳳之質。 澤述仲弟鳳述之子炯龜, 詩書禮樂幷闕, 幾乎山鹿野麋之儔, 諒才性之不侔, 愧配偶之是定。 豊約不問, 龍門夷虜之戒宜遵, 檏素盡情, 皮禮淳古之風宛覩。 女歸家, 男授室, 父母之心亦勤。 陽倡剛, 陰承柔, 福祿之源孔遠, 兩家之慶在是, 萬世之始從玆。 仰陳卑誠, 俯賜尊鑑。 김형구 1907~1978, 자는 극범(克範), 호는 농헌(農軒)이며, 김택술의 중제(仲弟) 김봉술(金鳳述)의 아들이다. 부인 전주최씨는 1906년 출생이고, 그 부친은 최장렬(崔長烈), 조부는 최병우(崔秉宇)이다. 용문……계칙 《소학》〈가언(嘉言)〉편에 왕통(王通)이 '혼인 할 때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짓이다. [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라고 하였다. 왕통(王通)은 수나라의 용문(龍門) 출신의 대학자로 시호 문중자(文仲子)로 통칭되며, 당나라의 현신 위징(魏徵)과 방현령(房玄齡)의 스승이고, 시인 왕발(王勃)의 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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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 소휘식235) 공을 위한 찬 【을해년(1935, 대한민국17)】 晩齋蘇公【輝植】贊 【乙亥】 스스로 닦아 기룬 것은 修諸己者,진실한 효도와 우애이고, 孝友之實;하늘에서 받은 것은 得乎天者,특별한 자질이네. 姿質之異.희현당(希顯堂)236)ㆍ성균관에 이름이 높아 名敭於希顯、成均,사장(詞章) 짓기에 대적할 짝이 없었고, 無敵者詞章;인산(仁山)237)ㆍ간재(艮齋)와 벗을 맺어 交結於仁山、艮齋도(道)와 의(義)에 성실한 믿음 있었네. 有孚者道義.외로운 충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며 憂國孤忠,비풍(匪風)과 하천(下泉)238) 슬피 노래하고, 發風泉之悲歌;세상의 도의를 부축하고자 고심하며 扶世苦心,서양 오랑캐의 신학(新學)을 배척하였네. 斥洋夷之新學.우뚝한 주장으로 옛 사람을 흠모하고 嘐嘐乎其古人之慕,간절한 정성으로 후진을 깨우쳤네. 惓惓乎其後進之覺.입으로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何啻口出,기쁜 마음으로 선(善)을 따라 닦았고, 休休焉好善之切;나이들어 늙는 줄도 모르고 不知老至,부지런히 도학 공부에 노력하였네. 孜孜焉求道之勤.물려받은 가르침을 해석하고 貽謨傳析,선대의 학업을 이어 책을 쓰니 荷世業著書,사문(斯文)의 큰 우익이 되었네. 垂羽翼斯文.이 모두가 기초한 바는 是蓋基礎,충(忠)과 신(信)의 강령이고 忠信綱領,성(誠)과 경(敬)의 아언(雅言)이니, 誠敬雅言,주자의 글과 율곡의 문집 朱書栗集,우리의 스승 여기 계시네. 吾師在此.이러한 까닭에 此其所以학문에 근원이 있고 學有自而덕이 훌륭하였음이리라! 德之盛也歟! 修諸己者, 孝友之實; 得乎天者, 姿質之異。 名敭於希顯ㆍ成均, 無敵者詞章; 交結於仁山ㆍ艮齋, 有孚者道義。 憂國孤忠, 發風泉之悲歌, 扶世苦心, 斥洋夷之新學。 嘐嘐乎其古人之慕, 惓惓乎其後進之覺, 何啻口出。 休休焉好善之切, 不知老至; 孜孜焉求道之勤, 貽謨傳析。 荷世業著書, 垂羽翼斯文, 是蓋基礎忠信綱領, 誠敬雅言, 朱書栗集, 吾師在此。 此其所以學有自而德之盛也歟! 소휘식 1837∼1910,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수(致秀), 호는 만재(晩齋)이며, 완주군 용진면 출신이다. 1879년에 진사로 장원급제했으나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를 개탄하며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 희현당(希顯堂) 전라감사 김시걸(金時傑, 1653~1701)이 1699년(숙종25)에 전주(全州)에 세운 학당 이름이다. 인산(仁山) 익산 사람 소휘면(蘇輝冕)의 호이다. 1814~1889,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여(純汝)이다. 어려서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홍직필(洪直弼)을 사사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과 전설시별제(典設寺別提)의 벼슬을 받았다. 비풍(匪風)과 하천(下泉) 《시경》의 편명으로, 둘 다 나라의 쇠망을 걱정하며 슬퍼하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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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생찬233) 【병자년(1936, 대한민국18)】 穆生贊 【丙子】 남쪽으로 떠나시는 목생 先生去楚,강남 가는 기러기 같으시니, 有若鴻擧.모르는 사람은 감주의 일로 알고 不知者醴,아는 이는 예법 때문인 줄을 알았네. 知者爲禮.목생이 이와 같이 乃若先生,도(道)를 위해 떠나가심은, 爲道而行.수사(洙泗) 성인의 선례 있으니 有同洙泗,사직의 제육(祭肉) 오지 않음에 以膰不至.기미를 본 밝은 철인(哲人) 見幾明哲,하루를 다 기다리지 않았네.234) 不俟終日.초연히 치욕을 비켜나니 超然免辱,세상 탁한 먼지 옥을 못 더럽히네. 塵不染玉.만류하던 저 신공(申公)과 백생(白生) 彼哉申白,얼마나 심한 치욕 당하였던가! 其恥何極.고원(高遠)한 목생과 견줘보면 視先生高,전혀 다른 부류였네. 殊類異曹.아아, 현철하신 목생 보며 嗟先生賢,천년 뒷 사람이 청렴한 뜻 세우네. 廉立來千.구천에서 선생 일어나 오신다면 如作九原,원컨대 내가 말 채찍 잡아드리리. 我願執鞭. 先生去楚, 有若鴻擧, 不知者醴, 知者爲禮。 乃若先生, 爲道而行, 有同洙泗, 以膰不至。 見幾明哲, 不俟終日, 超然免辱, 塵不染玉。 彼哉申白, 其恥何極, 視先生高, 殊類異曹。 嗟先生賢, 廉立來千, 如作九原, 我願執鞭。 목생찬 술 안 마신 목생(穆生)에 대한 찬송이다. 목생은 전한(前漢) 초 원왕(楚元王)의 현신이었는데, 원왕이 주연을 베풀 때는 목생이 술을 안 좋아하는 것을 알고 따로 감주[醴]를 내놓았다. 그런데 원왕의 손자가 왕이 되어 주연을 베풀면서 깜박 잊고 감주를 내놓지 않자, 목생은 "이제 떠나 가야겠다. 감주가 안 나온 것은 왕의 뜻이 태만해진 것이다." 하고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남쪽으로 떠나갔다. 그를 만류하던 동료 신공(申公)과 백생(白生)은 결국 죄수가 되어 심한 치욕을 당하였다. 《漢書 卷36 楚元王傳》 수사……않았네 수사(洙泗)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강물 이름인데, 공자가 고향과 가까운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들어 공자와 유가(儒家)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공자가 노(魯)나라의 사구(司寇)를 하던 중 교제(郊祭)에 참여하였으나 조정에서 제사에 쓴 고기[膰]를 보내오지 않자, 즉시 벼슬을 버리고 노나라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말한다.《孟子.告子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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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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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가을 영주정사에 이르러 창암과 중당 박수 두 어른과 함께 연일 수창함 4수 早秋到瀛洲精舍同蒼巖中堂【朴銖】二丈連日唱酬 【四首】 명승지에 노닐며 수심을 없애고자 하는데 勝地遨遊欲擺愁어찌 되려 세상 길 걱정하는가 如何却把世程憂십 년 동안 좀을 잡으며 오직 책 붙들고서 十年打蠹惟黃卷온 나무에서 매미소리 들리더니 다시 가을이네 萬樹聞蟬又素秋풀이 뜨락에 가득하여 제거하기 어렵고 蓁塞門庭難掃闢비가 지게문에 들이치니 누가 미리 막을까83) 雨侵牖戶孰綢繆초가을 칠월 칠일 좋은 시절 제외하면 除非七七良辰節출렁이는 술동이의 막걸리에 또 쉬지 못하리 蕩漾樽醪且未休낮잠 홀연히 깨니 가을 기운 새롭고 午夢忽醒秋氣新강가 성의 만물 빛깔 시인의 감정 일으키네 江城物色感詩人푸른 나무에 바람이 부니 그늘이 점차 사라지고 臨風碧樹陰將薄초여름 매미 더위에 지쳐 지저귐 거의 없네 病暑初蟬語未頻조금 취해 한낮에 누워도 뭔 상관이랴 微醉何妨傾晝日멋진 인연이라 앞 봄을 이을 만한데 勝緣且可續前春저녁 되어 조용히 회옹의 가르침 바라봤더니 晩來靜看晦翁訓가슴 속 깨끗해져 세속에서 멀리 벗어나네 脫灑胸衿逈出塵멀리 바라보니 뭇 신선 한 곳에 있고 遙望羣仙在一方십주84)의 진경이라 푸르고 아득하구나 十洲眞境正蒼茫마음이 밝은 달 따라 천고와 함께 하고 心隨明月同千古몸은 긴 바람을 타고 팔황을 달리네 身駕長風騖八荒세상길 험난한 일 많음을 본래 알았는데 世路從知多嶮巇인생은 무슨 일로 괴로이 미쳐 날뛰나 人生何事苦顚狂남쪽으로 와서 영주산 아래 다시 들어가 南來轉入瀛山下밤에 높은 누각에 올라 다시 향을 피운다 夜向高樓却炷香푸른 하늘 이슬 방울지고 달그림자 옮겨가니 露滴淸空月影移또 나그네에게 산골 마을에 머물 꿈 꾸게 하네 重敎旅夢寄山扉높은 누각에 가벼운 안개 서탑에서 생겨나고 樓高輕靄生書榻이른 가을에 추위 적어도 갈옷을 위협하는구나 秋早微凉劫葛衣가슴속 큰 뜻은 서까래만 한 붓에 떨어지고 肚裏壯心椽筆落술 안에 호탕한 기운 담아 술잔에 날린다 酒中豪氣羽觴飛함께 멋진 풍경 들어와 기쁨 끝없으니 同來眞境歡難極봉래산에 오신 님들 돌아가지 마시오 蓬島遊人且莫歸 勝地遨遊欲擺愁,如何却把世程憂?十年打蠹惟黃卷,萬樹聞蟬又素秋.蓁塞門庭難掃闢,雨侵牖戶孰綢繆.除非七七良辰節,蕩漾樽醪且未休.午夢忽醒秋氣新,江城物色感詩人.臨風碧樹陰將薄,病暑初蟬語未頻.微醉何妨傾晝日?勝緣且可續前春.晩來靜看晦翁訓,脫灑胸衿逈出塵.遙望羣仙在一方,十洲眞境正蒼茫.心隨明月同千古,身駕長風騖八荒.世路從知多嶮巇,人生何事苦顚狂?南來轉入瀛山下,夜向高樓却炷香.露滴淸空月影移,重敎旅夢寄山扉.樓高輕靄生書榻,秋早微凉劫葛衣.肚裏壯心椽筆落,酒中豪氣羽觴飛.同來眞境歡難極,蓬島遊人且莫歸. 비가……막을까 《시경(詩經)》 〈빈풍(豳風) 치효(鴟鴞)〉 에 치효새는 비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얽어서 새둥우리의 빈틈을 막는다고 한 내용을 전용한 것으로 미리 걱정거리를 막는다는 뜻이다. 십주 신선이 산다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열 곳의 섬, 곧 조주(祖洲)ㆍ영주(瀛洲)ㆍ현주(玄洲)ㆍ염주(炎洲)ㆍ장주(長洲)ㆍ원주(元洲)ㆍ유주(流洲)ㆍ생주(生洲)ㆍ봉린주(鳳麟洲)ㆍ취굴주(聚窟洲) 등을 말한다. 《海內十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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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간재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양계초80)를 논함 4수 敬次艮齋先生詩論梁啓超【四首】 애석하다 양씨 집안에 한 후손이여 可惜梁家有一孫좋은 재능과 기량을 지녀 무리에서 우뚝 서 好將才器出倫身사수81)에서는 본래 밝은 학문 열었으나 泗洙自有開明學서구 학풍에 취해 경도되어 도리어 신명 잃었으니 醉倒歐風却失神석씨 육상산 왕양명 예수 네 분 후손은 釋陸王穌四氏孫마치 순보가 후세에 다시 온 것으로 여기리 恰如純甫後來身공자께서도 함께 목욕했다고82) 귀결하지 마라 莫將宣聖歸同浴공자께서는 오히려 귀신을 노하게 했다 하리라 宣聖猶應怒鬼神순보는 금나라 시대의 문장가로서 노자, 석가, 공자, 맹자, 장자 등을 존숭하여 다섯 성인이라 하고, 송나라 시대 여러 현인은 그의 책망과 질책을 입는 것에서 한 명도 벗어날 자가 없었다. 또한 전쟁을 논하며 세상을 경영하는 것을 잘했다. 지금 양계초도 석씨, 왕양명, 육상산, 예수를 아울러 존숭하면서, 늘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의 구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간재 선생께서 일찍이 계초가 순보의 후신이라고 말했던 것이다.군신과 부부 등은 조상이 후손에게 전한 것이라 君臣夫婦祖傳孫모두 삼강으로 질서 있는 체제이거늘 俱是三綱有秩身어인 일로 도리어 평등의 설을 가지고 何事却將平等說건곤을 뒤집고 인간과 귀신을 뒤섞는가 乾坤飜覆雜人神유가의 죄악은 진시황을 우두머리로 치니 儒門罪惡魁秦皇선비를 묻고 경서를 태워 미친 사람 되었네 坑士焚經自作狂양생이 무슨 생각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不識梁生何意思두 번째 공신이라 감히 칭찬하며 말했는지 功臣第二敢稱揚 可惜梁家有一孫,好將才器出倫身.泗洙自有開明學,醉倒歐風却失神.釋陸王穌四氏孫,恰如純甫後來身.莫將宣聖歸同浴,宣聖猶應怒鬼神.【純甫金代文章,幷尊老釋孔孟莊爲五聖人,宋朝諸賢,被其詬斥無一得免者,亦能談兵經世.今啓超幷尊釋氏王陽明陸象山耶.穌每引孔子之言爲己援,故艮齋先生,嘗謂啓超是純甫後身.】君臣夫婦祖傳孫,俱是三綱有秩身.何事却將平等說?乾坤飜覆雜人神.儒門罪惡魁秦皇,坑士焚經自作狂.不識梁生何意思?功臣第二敢稱揚. 양계초 양계초(1873~1929)는 중국의 사상가, 정치가, 학자이다. 사수 산동성의 두 강 사수(泗水)와 수수(洙水)로 공자가 그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함께 목욕했다고 원문 '동욕(同浴)'은 한유(韓愈)의 〈답장적서(答張籍書)〉에 "그대가 비난하는 것은, 마치 함께 목욕하면서 발가벗었다고 욕을 하는 것과 같다.〔吾子譏之 似同浴而譏裸裎也〕"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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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양유원(梁柳源)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道光十年庚寅正月十七日 梁柳源 李生員壽千 道光十年庚寅正月十七日 梁柳源 李壽千 전라남도 보성군 梁柳源 외 2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0년 정월 17일에 양유원(梁柳源)이 이생원댁 수천(壽千)에게 밭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30년 정월 17일에 양유원(梁柳源)이 이생원댁 수천(壽千)에게 밭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한 밭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移賣)할 일로 보성 문전면 가천촌 뒤의 감산동 부자(夫字) 밭 태종(太種) 2두락지 부수(負數) 3복(卜)6속(束)을 전문(錢文) 9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전주와 증(證), 필(筆)이 기재되어 있는데, 전주는 양유원이며, 증인은 김억만, 필은 선성경이다. 전주 이하 모두의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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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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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윤재준(尹在準)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四月十日, (昭和)2.5.10 尹在準 李敎成 丁卯四月十日, (昭和)2.5.10 尹在準 李敎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3_001 1927년 4월 10일에 윤재준이 부탁한 돈 1냥쭝 송부와 유물(鍮物) 입수 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 1927년 4월 10일에 남원군(南原郡) 시장정(市場町) 공신상회(共信商會)의 윤재준(尹在準)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완산(完山)에서 이별하고 지금까지 마음이 섭섭하며 요즈음에 어버이를 모시고 생활하시는 체후가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며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부탁한 돈 1냥쭝[兩重]은 요사이에 구하여 우편으로 보낼 것이며 유물(鍮物)은 입수하여 말씀대로 보낼 계획이라고 하였다. 또 4부(負)를 동봉하여 올리니 고수(鼓手)를 잘 선택하여 회척(回擲)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아직 구하지 못하였다는 등의 내용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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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윤재원(尹在原)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流月卄三日 尹在原 丁卯流月卄三日 尹在原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6월 23일에 동생 윤재원이 번잡한 일들로 난처한 자신의 근황과 보내준 정의에 감사해하는 등의 내용으로 형제들에게 보낸 간찰 1927년 6월 23일에 장산(長山)에 사는 윤재원(尹在原)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제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뜻밖에 서찰을 받고 감사하다는 말과 부모님을 모시는 상대방과 형제들의 체후가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로가 되며 자신은 이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신은 여러 번잡한 일들로 난처하다고 하였다. 은혜로이 보내주신 것은 두터운 정의로 봉주(蓬廚)에 빛이 나며 달게 받겠다는 내용도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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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五月念五日 李敎成 舍弟 庚申五月念五日 李敎成 舍弟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02_001 1920년 5월 25일에 이교성이 서찰과 전보 후 무소식, 재종형 이교환의 집에 유숙, 비석에 관한 일 등의 내용으로 사제에게 보낸 간찰 1920년 5월 25일에 사형(舍兄) 이교성(李敎成)이 사제(舍弟)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달 6일에 부친 서찰이 겨우 들어가고 12일에 전보로 보냈는데 어찌 한마디 말이 없는지 중간에 지체되었는지 궁금해 하며, 이곳의 우편이 소식이 없음이 어찌 이리 심한지 탄식하고 있다. 가천리(可川里) 아버지께서 보내신 서찰은 18일에 나와 21일 서울에 들어와서 경성일보(京城日報)를 살펴보고 모두 알았으며, 재종형 이교환(李敎換)의 집인 남대문 밖 길야정(吉野町) 118번지에 그대로 유숙하면서 기식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평여관(大平旅館) 최명순(崔明順)에게 가서 서찰이 왔는지 물으니, 이교섭(李敎燮)의 서찰이 와 있더라고 하였다. 그 내용 중에 비석(碑石)에 관한 일을 말하였는데 또한 분명하지 않아 다시 보고 회보(回報)한 뒤에 송금한다고 하였다. 전보는 그 방법에 밝지 않더라도 옆사람에게 물어보더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이교환 형과 의논하여 10냥 5전을 주고 특별히 전보하되 우국(郵局) 물어서 하면 날이 저물기 전에 보성군에 들어가고 오늘 밤에는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였다. 비석(碑石)에 관한 일은 내려가서 다 말하겠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편지지 가장자리의 사방을 빙 둘러서 많은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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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四月二十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四月二十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5년 4월 20일에 나수열(羅壽烈)이 복중(福中)의 혼례 등에 관한 소식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전한 간찰(簡札) 1935년 4월 20일에 나수열(羅壽烈)이 복중(福中)의 혼례 등에 관한 소식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전한 간찰이다. 국한문혼용체이다. 길중과 상봉하여 함께 가자고 한 일, 일간 전주와 군산을 갔다가 돌아온 후 동반하여 숙부님댁에 갈 것이라는 사실, 규수의 연기(年記), 김진사댁에 가서 상의한 일, 동지 방학(放學)에 성례(成禮)하는 일 등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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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二月十一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二月十一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84_001 1935년 2월 11일에 나수열(羅壽烈)이 혼사에 맥동리에 사는 김규봉의 딸을 소개하고 좋은지 봐달라고 하는 내용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 1935년 2월 11일에 전남 장성군 삼계면(森溪面)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지난번 서찰은 침체되어 아직 받아 보지 않았는지 암울하다. 삼가 형제분과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외종질 자신은 집안이 모두 별고 없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혼사(婚事)는 자신의 고을 맥동리(麥洞里)에사는 김규봉(金圭鳳)이 하서(河西) 장령(掌令) 집안의 종손인데 그의 규수(閨秀)가 나이 18세라 하였다. 일전에 양형(梁兄) 선부(善夫)가 와서 서로 의논하였는데, 김규봉이 속히 좋은지 봐달라고 하였다고 하니 숙부께서 속히 왕림하여 이렇든 저렇든 간에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장동(長洞)의 숙부에게 서찰을 보내지 않았으니 전보로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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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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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식 군에게 주다 贈景君奉植 배움은 정밀을 추구하되 여유롭게 해야하고 學求精切更優遊활 비율339)은 먼저 과녁의 표적을 봐야하네 彀率先看的在侯칠일이면 어느 때나 우레가 땅을 울리고340) 七日何時雷動地일천 성현의 마음 한결같이 가을 달처럼 맑네 一心千聖月澄秋껍질을 벗기며 세 겹의 속까지 깊이 들어가고 剝皮深入三重內앞으로 내딛어 백척간두에서 높이 나아가야지341) 進步高趨百尺頭뛰어난 자질이 그대와 같기는 쉽지 않으니 妙質如君非易易인을 행할 뿐 다른 것을 따르지 않아야 하리342) 爲仁只可不他由 學求精切更優遊, 彀率先看的在侯.七日何時雷動地, 一心千聖月澄秋.剝皮深入三重內, 進步高趨百尺頭.妙質如君非易易, 爲仁只可不他由. 활 비율 '구율(彀率)'은 활을 당기는 한계를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예는 활 못 쏘는 사람을 위하여 활 당기는 한계를 변경하지 않는다.[羿不爲拙射, 變其彀率.]"라고 하였다. 칠일이면 …… 울리고 7일(日)의 '일(日)'은 '월(月)'의 뜻으로 즉 7개월 만에 양효(陽爻)가 아래에서 하나 생겨나서 양이 회복됨을 말한다. 《주역》 〈복괘(復卦)〉 괘사(卦辭)에 "그 도(道)를 반복하여 7일 만에 와서 회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라고 하였다. '우레[雷]'는 《주역》 〈복괘(復卦) 상(象)〉에 "우레가 땅 가운데 있음이 복(復)이다.[雷在地中, 復]"라고 하였다. 앞으로 …… 나아가야지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더라도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당나라 때의 명승인 초현대사(招賢大師)의 게송(偈頌)에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시방세계의 이치가 이 몸에 온전해지리라.[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라고 하였다. 《景德傳燈錄》 인을 …… 하리 《논어》 〈안연(顔淵)〉에 "인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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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풍 군에게 주다 贈張君然豊 나는 장씨의 아들을 사랑하노니 我愛張氏子순박한 자질이 곤륜산 박옥330) 같지 純質璞在崑기만하지 않음은 군실의 성실이요331) 不欺君實誠부지런히 독서함은 사행의 근면이네332) 劇讀士行勤응당 관문을 뚫는 날을 기다린다면 應待透關日곧 그 근원을 만남333)을 깨달으리 方覺逢其源비유하면 저 다듬고 난 뒤의 옥처럼 譬彼經琢玉휘황한 빛이 정히 찬란하리라 光輝正燦斕얼마나 많던가 가볍고 약싹빠른 무리들 幾多便儇輩월나라 간다면서 왜 북으로 수레 모나334) 適越笑335)北轅단지 원하는 건 경지를 넓히는 것이니 但願拓地步주역에선 관대히 거하라336) 가르쳤다네 大易訓居寬태산337)은 푸름을 변치 않나니 台山靑不改오늘의 말을 저버리지 말게나 莫負此日言 我愛張氏子, 純質璞在崑.不欺君實誠, 劇讀士行勤.應待透關日, 方覺逢其源.譬彼經琢玉, 光輝正燦斕.幾多便儇輩, 適越笑1)北轅.但願拓地步, 大易訓居寬.台山靑不改, 莫負此日言. 곤륜산 박옥 곤륜산(崑崙山)은 옥이 아주 많이 생산되는 곳이고 박옥(璞玉)은 가공하기 전의 순수한 옥이다. 한(漢)나라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 "중국에 희귀한 것을 외국에서는 천히 여긴다. 그러므로 남월에서는 공작의 깃털을 문호에 치장하고, 곤륜산 주위에서는 옥박을 까치에게 던지기도 한다.[中國所鮮, 外國賤之. 故南越以孔雀珥門戶, 崑山之旁, 以玉璞抵鳥鵲.]"라고 하였다. 기만하지 …… 성실이요 장연풍이 매우 성실하다는 뜻이다. '군실(君實)'은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유안세(劉安世)가 스승인 사마광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닦는 요체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일 것이다.[其誠乎.]"라고 하였다. 《小學 卷6 善行》 부지런히 …… 근면이네 장연풍이 매우 부지런히 공부하다는 뜻이다. '사행(士行)'은 진(晉)나라 명장 도간(陶侃)의 자이다. 항상 사람들에게 "대우는 성인인데도 촌음을 아꼈으니,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응당 분음을 아껴야 할 것이다."라고 하는 등 근면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그 근원을 만남[逢其原] 자득(自得)을 통해 학문의 경지가 높아지면, 모든 주변의 사물에서 도(道)의 근원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道)로써 함은 그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라고 하였다. 월나라 …… 모나 수레의 멍에를 북쪽으로 돌리고 도리어 남쪽인 월(越) 나라로 간다는 뜻으로 언행이 상반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戰國策 魏策4》 笑 원문의 '笑'는 '奚'의 잘못인 듯하다. 주역에선 관대히 거하라 관대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주역》에 "군자는 배워서 취합하고 물어서 변별하며 관대하게 거하고 인후하게 행한다.[君子學以聚之, 問以辯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라고 하였다. 《周易 乾卦 文言》 태산(台山) 전라북도 정읍시의 천태산(天台山)을 가리키는 듯하다. 笑 '奚'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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