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경수 상길의 자사 【신유년(1921)】 李敬修【相吉】字辭 【辛酉】 세차가 중광277)인 신(辛)의 해 維歲重光,양의 효 둘인 섣달의 二陽之月,길일 정묘일278)에 吉日丁卯,아침 해 바야흐로 오르는데, 瑞旭方出.수재 이상길(李相吉)이 李秀相吉,우뚝한 관을 쓰고, 有弁其突,경수(敬修)를 자로 붙이며 爰字敬修,예의 형식을 다 갖추네. 式禮莫闕.《서경》 오십여 편은 書凡五十,경(敬)을 근본으로 삼고 敬爲之祖,《대학》의 여덟 조목279)은 大學八條,수신을 주인으로 삼네. 修身是主.성인 공부의 한 줄기 혈맥 聖學一脈,문호에 밝게 게시되었으니 昭示門户,만약 이 문을 다니지 않으면 苟不由此,바른 길은 이제 우거지리. 正路其莽.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다 敬勝者吉,태공망(太公望)이 말하였고280) 聞之太公,군자는 닦아서 길하다 君子修吉,주렴계(舟濂溪)도 말하였네.281) 亦自濂翁.그 중 하나를 어기어도 一有悖之,그 덕 이내 흉이 되니, 厥德乃凶,고금의 흥성과 패망이 今古興敗,손바닥 안에 역력히 보이네. 歷歷掌中.그대는 부디 의(義)를 생각하고 維爾思義,부끄러운 이름 짓지 말지니 無作名羞,무엇을 그 주인 삼을까 其主維何,여유로운 오관(五官)의 임금282)이네 天君休休.마음 하나 능히 바르게 지니면 一心克正,백 가지 복록이 함께 오리 百祿攸遒,경수여 공경히 닦소 敬修敬修,경수여 공경히 닦소 敬修敬修. 維歲重光, 二陽之月, 吉日丁卯, 瑞旭方出。 李秀相吉, 有弁其突, 爰字敬修, 式禮莫闕。 書凡五十, 敬爲之祖, 大學八條, 修身是主。 聖學一脈, 昭示門户, 苟不由此, 正路其莽。 敬勝者吉, 聞之太公, 君子修吉, 亦自濂翁。 一有悖之, 厥德乃凶, 今古興敗, 歷歷掌中。 維爾思義, 無作名羞, 其主維何, 天君休休。 一心克正, 百祿攸遒, 敬修敬修, 敬修敬修。 중광(重光) 중광(重光)은 천간 신(辛)을 말한다. 길일(吉日) 정묘일 1921년 음력 12월 1일은 병인일이고, 정묘일은 2일이다. 여덟 조목 송나라 주희(朱熹)가 정리한 《대학장구》의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공경이……말하였네 주 무왕(周武王)의 사부인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고, 태만이 공경을 이기면 멸망한다.[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大戴禮記》 군자는……말하였네 송나라의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한 라을 인용하였다. 오관(五官)의 임금 원문은 '천군(天君)'인데, 마음[心]이 오관의 작용을 주재하는 천신이라고 말한 《순자(荀子)‧천론(天論)》의 말을 인용하였다.[心居中虛,以治五官,夫是之謂天君。]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김자유 인술의 자사 【신유년(1921, 대한민국3)】 金子由【仁述】字辭 【辛酉】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人之爲人,크고 큰 인도(仁道)인데, 仁道孔丕,무엇이 그것을 상처낼까 誰其賊之,작고 작은 이기의 사심이네. 藐爾己私.어떻게 그것을 이겨내나 克之惟何,네 가지 비례276)를 금할지니, 一禮四勿,천하를 인에 귀속케 함은 天下歸仁,하루의 노력에 달려있네. 功在一日.그것을 조종하는 자루는 孰操其柄,바로 자기 손에 쥐여있네 亦係乎己,자기가 자기를 이겨내니 以己克己,진실로 미묘하네. 亶其妙矣.인(仁)의 실행은 자신에서 말미암는다 爲仁由己,성인의 가르침 어찌 거짓이랴, 聖訓豈欺,가슴에 새겨 받든 안자(顔子) 顔氏服膺,백대의 스승 되었네. 百世之師.아아, 인(仁)을 펼치는 김인술 維金仁述,삼가 자유(子由)를 자로 주니 欽子由甫,이름자 보며 뜻을 생각함 顧名思義,옛 사람이 일찌기 하던 바이네. 古人曾取.높고 멀다 말하지 말소 莫曰高遠,내가 원하면 가 닿으리니 我欲則來,다른 사람 바라보지 말고 莫仰他人,자신의 재능 스스로 다 쏟으시게. 我竭我才.이 말들 마음에 새기어 庸作銘辭,사람 된 직분에 노력하소 勉爾人職,힘써 그대로부터 말미암으며 勖哉子由,평생토록 흐트러지지 말소. 畢生無斁. 人之爲人, 仁道孔丕, 誰其賊之, 藐爾己私。 克之惟何, 一禮四勿, 天下歸仁, 功在一日。 孰操其柄, 亦係乎己, 以己克己, 亶其妙矣。 爲仁由己, 聖訓豈欺, 顔氏服膺, 百世之師。 維金仁述, 欽子由甫, 顧名思義, 古人曾取。 莫曰高遠, 我欲則來, 莫仰他人, 我竭我才。 庸作銘辭, 勉爾人職, 勖哉子由, 畢生無斁。 네 가지 비례(非禮) 공자와 정이(程頤)가 말한 바, 예법에 어긋난 보기[視] 듣기[聽] 말하기[言] 움직이기[動]의 네 가지를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장남 김형복245) 혼서 【무오년(1918)】 長子炯復昏書 【戊午】 누대의 덕업과 휴암(休菴)246) 공의 유택(遺澤)을 우러르며, 옛 전례(典禮)를 따른 예물로써 마침내 가문을 튼 친척이 되고자 하오니, 성예(聲譽)가 못 미침을 양해하심에 저희는 마음 깊이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영애(令愛)께서는 부인의 사덕(四德)247)으로 칭찬이 높아, 천품의 자질과 품행이 삼의(三宜)248)를 갖춘 데다 규문의 법도를 물려받으셨다 합니다. 저의 장남 김형복(金炯復)은 천품과 자질이 좋지 못해 왕가(王家)의 사위249)에는 견주지 못하고, 언동이 가볍고 거칠어 공자(孔子)의 조카사위250)에는 못 미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끼자루의 의논251)이 잘못 들어맞아 문미(門楣)252)의 여식을 하락받게 되었습니다.정직과 성실 두터이 하여 순박한 옛 풍속을 흠모하고, 풍성과 검약을 가리지 않아 말세의 비루한 풍조를 고치고자 합니다. 용 타는 기쁨253)을 못 드릴 신랑이지만, 사슴 수레로 짝해줄 숙덕의 신부254)를 기다리겠습니다. 수많은 드릴 말씀 다 못 하오며 두루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仰世德之蟬聯, 不斬休菴之澤, 用舊典之皮幣, 遂成通家之親, 諒聲猷之不侔, 寔慶幸於私分。 伏惟令愛譽夙著於四德, 旣禀天資行, 亶合於三宜, 亦襲閫範。 僕之長子炯復, 品質庸下, 豈擬王家之東床, 言動輕麤, 有愧孔門之南适。 何圖柯議之誤叶, 聿見楣諾之欽承。 直信斯敦, 慕古昔之淳俗, 豊儉勿問, 懲叔季之陋風, 雖乘龍之喜心未能仰副, 庶挽鹿之淑德佇俟見稱。 罔克罄敷, 統希鑑念。 김형복 1903~1960, 자는 극수(克修), 호는 창정(滄庭)이다. 부인 수원백씨는 1901년생이며, 그 부친은 백낙영(白樂英), 조부는 백용수(白龍洙)이다.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의 호이며, 자는 사위(士偉)이다.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이율곡ㆍ성혼과 함께 성리학을 토론하였다. 파주의 파산서원(坡山書院)과 남평(南平)의 봉산서원(蓬山書院)에 제향되었다. 김형복의 부인 수원백씨는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이다. 사덕(四德) 부인이 갖출 품덕 네 가지로서, 정순(貞順)한 덕행, 아름다운[辭令] 말, 정숙한[婉娩] 용모,길쌈[絲枲]의 공능을 말한다. 《周禮‧天官》〈鄭玄注〉 삼의(三宜) 부인이 지킬 삼종지도(三從之道) 즉, 여자가 차례로 부친 남편 아들을 의지하고 따르는 도리를 말한 듯하다. 왕가(王家)의 사위 문벌 출신의 훌륭한 신랑감인, 중국 동진시대의 왕희지(王羲之)를 말한다. 태위(太尉) 치감(郗鑒)이 왕씨(王氏) 가문에 사람을 보내 사윗감을 고를 때, 모두들 의관(衣冠)을 갖추고 공경하였는데 왕희지(王羲之)는 아랑곳 않고 동상(東床 동쪽채의 방)에 배를 내놓고 누워 호떡을 먹고 있었고, 그러자 치감은 왕희지를 사위 삼았다.《世說新語 雅量》 공자(孔子)의 조카사위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을 말하는데, '남용(南容), 남궁도(南宮韜)'로도 불린다. 신실하여 언사에 조심할 것을 말하는 〈백규(白圭)〉의 시를 날마다 세 번 읊는 것을 보고 공자가 칭찬하고 조카사위를 삼았다 한다. 도끼자루의 의논 혼담을 말한다. 원효대사가 '자루 없는 도끼를 달라,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오겠다'고 외친 후 요석공주(瑤石公主)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문미(門楣) 본의는 문 위에 높다랗게 가로댄 나무인데, 여기서는 가문의 자랑인 딸의 뜻이다. 양귀비(楊貴妃)를 노래하는 싯구 "아들 낳았다고 기뻐 말고 딸 낳았다고 슬퍼 마소, 지금 보소 딸이 훌륭한 문미 되었네. [生男勿喜女勿悲, 君今看女作門楣。]"를 인용한 것이다. 용 타는 기쁨 후한(後漢)의 손준(孫雋)과 이응(李膺)이 모두 태위(太尉)인 환현(桓玄)의 두 딸을 아내로 맞자, 사람들이 환씨 댁 딸들이 모두 용을 탔다고 하였다. 《楚國先賢傳》 사슴 수레 전한(前漢) 말기에 발해(渤海)의 환소군(桓少君)이 청빈한 포선(鮑宣)과 결혼하면서 호사로웠던 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사슴 수레를 끌고 삼베 치마로 시집 와서 스스로 집안 일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小學 善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혼서 昏書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화암 전회빈 공을 위한 찬 【을축년(1925)】 和菴田公【繪彬】贊 【乙丑】 내가 간재 선생님을 봉산(蓬山)의 절에서 배알한 것은 17세 때였는데, 그때 화암 전회빈(和菴田繪彬) 공께서 나를 불러 보아 주셨다. 그 뒤로 공께서 나를 아껴주신 것이 거의 20년이고, 또 나의 아버님과도 서로 좋아하셨다. 그런데 공께서 별세하신지 3년인데 나는 뇌사(誄辭) 한 글자도 못 썼다. 그때 마침 복상 중이기 때문이었지만 내가 어찌 하루라도 그것을 잊었겠는가? 공의 아들 전희문(田熙文) 씨가 공의 행장 한 통을 보여주며 글을 청하였다. 행장을 조심스럽게 받아 읽어보니, 공의 강직한 기풍이 늠름하게 사람들을 감동시키던 당시의 모습이 완연히 보였다. 아아! 양의 기운 큰 공께서 조금만 더 계시면서 오늘의 완악(頑惡)한 음의 기운을 깨뜨리지 못 한 것이 한스럽다. 공께서 임종할 때 선생님보다 앞서 떠나는 것을 한스러워 하신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니었을까?239) 삼가 찬사(讚辭) 몇 련을 행장 뒤에 이어 써서 공을 앙모하는 내 마음의 감개를 실을 뿐이다.담담하네 그 강직한 성품 侃侃乎其剛直之性,줄기차네 그 독실한 공부, 矻矻乎其勤篤之學.돼지 참새들 도망쳐 숨으며 감히 나서지 못하였는데 屛豕竄雀之莫干乎前,나는 아네, 공의 척사(斥邪)는 준엄하고 급박했네. 吾知公之斥邪嚴疾惡急.종이 삼키고 개 끌어안기240) 누구보다 심하였으니 呑紙抱狗而莫尙乎此,나는 아네, 노익장(老益壯)의 공은 빈궁 속에도 확고했네. 吾知公之老益壯窮且確.묘적(墓籍) 등록241) 거부하고 서양 옷 꾸짖으며 漏籍叱服,대한의 국민으로 당당하였네. 堂堂乎大韓之民,천도를 믿고 어버이를 섬기는듯 信天尊父,확연한 구산(臼山)242) 문하의 제자였네. 斷斷乎臼門之足.대개 공의 타고난 자질이 그러하여 蓋公禀質則然,학문의 역량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네. 而不可誣學問之力也.저기 저 봉래산(蓬萊山)243)의 울울창창한 모습 瞻彼蓬萊之山鬱矗矗,지금도 눈에 보이네 공의 높은 풍도(風度). 尙想象乎公之標格. 余年十七, 拜先師于蓬山僧寺也。 和菴田公實引見之。 玆後公之眷余, 殆二十年, 又與先君相善。 而公沒三霜, 余無一字誄者, 爲時適居憂爾, 然何嘗一日忘也? 日公之子熙文氏示以行狀一通, 請余一言, 謹受而讀之, 宛然當日剛風直氣之凜凜動人也。 噫! 以公太陽, 恨不能少俟, 以破今日之頑陰也。 抑公臨終所恨先先生而逝者, 以此也歟? 謹書贊辭數聯于狀末, 庸寓慕仰感慨之私云爾。 侃侃乎其剛直之性, 矻矻乎其勤篤之學, 屛豕竄雀之莫干乎前, 吾知公之斥邪嚴疾惡急, 呑紙抱狗而莫尙乎此。 吾知公之老益壯窮且確, 漏籍叱服, 堂堂乎大韓之民, 信天尊父, 斷斷乎臼門之足, 蓋公禀質則然, 而不可誣學問之力也。 瞻彼蓬萊之山鬱矗矗尙, 想象乎公之標格。 공께서……아니었을까 전회빈(田繪彬)의 생몰년은 잘 알 수 없는데, 《간재집》후편 권18에는 그를 위해 1916년에 쓴 전우의 제문이 보인다. 전우는 1922년에 별세하였다. 종이 삼키고 개 끌어안기 빈한(貧寒)의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 종이를 삼켜 배를 채우고 개를 끌어안아 온기를 취한다는 말이다. 묘적(墓籍) 등록 일제 통감부는 식민지배와 수탈을 위해 1912년에 토지조사령을 발표하고, 선조의 무덤을 묘적에 등록하도록 하였다. 구산(臼山) 전우(田愚, 1841~1922) 선생의 호이다. 그는 자가 자명(子明)이고, 구산 이외의 다른 호로 추담(秋潭)과 간재(艮齋)를 썼다. 봉래산(蓬萊山)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의 산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장행가 長行歌 때는 무신년(1908) 가을, 적(일본)의 창궐이 매우 심하여 단발령을 강제로 시행하였다. 간재 선생께서 바다로 가려고 하실 때, 내가 해암에 이르러 전송하려는데 마음이 매우 슬펐다. 마침 최경존이 장편 한 수를 지어 이별의 마음을 썼기에 나 역시도 붓을 움직여 시를 적는다.만 리 큰 바다는 드넓어 끝이 없고 萬里滄溟浩無邊한 점 왕등도는 아득하기도 하여라 暀嶝一點正蒼茫어찌 나로 하여금 눈물 떨구게 하나 夫何使我雙涕零이 마음은 취한 듯 또 미친 듯하네 此心如醉復如狂나라의 운명 하늘이 돕지 않아 오랑캐 활개치고 邦運不天島夷猾우리의 의관을 훼손하여 오랑캐로 만들었네97) 毁我冠裳作裔戒춘추의 대의는 해와 별처럼 빛나 陽秋大義昭日星만세에 부자의 궁장을 우러러 보았네 萬世瞻仰夫子宮생각하건대 옛날 공자는 세도를 상심하는 뜻 품고 憶昔夫子傷世志하나의 뗏목을 바다로 가서 가는 대로 맡기려 하였네98) 一桴浮海任所之선생께서 외로운 섬 가리키며 행차하려니 先生此行指孤嶼고금 천년에 공자와 같은 때이로다 古今千載同一時나루터에서 이별하니 마음 가누기 어렵거니와 渡頭別離難爲懷다만 한스러운 건 자로처럼 따르지 못함이라 只恨未作由也從바람이 앙상한 나무에 부니 슬픔 거문고처럼 보내오고 風從落木悲送瑟조수가 옛 바위에 부딪치니 노여움 종소리처럼 들린다 潮激古石怒聽鍾외로운 돛 아득하게 점차 멀어짐을 바라보니 孤帆渺渺看漸遠가슴 가득 답답해서 기운이 평온하지 못하네 滿腔鬱鬱氣不平그대 보지 못했는가 추운 겨울 서리와 눈이 다시 봄이 되는 것을 君不見大冬霜雪還爲春모든 음의 극처에는 하나의 양이 생긴다네 衆陰極處一陽生기대하노라 맑은 때 노를 돌리는 날에는 佇待淸時回棹日직과 설99)의 훌륭한 계책으로 세상에 보탬되리 稷契訏謨裨世程 歲戊申秋,周夷猖獗益甚,勒行薙髮,艮翁先生作浮海之擧,余送至海岸,心甚悵然,適崔敬存作長篇一首,叙別離之情,余亦走筆步韻.萬里滄溟浩無邊,暀嶝一點正蒼茫.夫何使我雙涕零?此心如醉復如狂.邦運不天島夷猾,毁我冠裳作裔戒.陽秋大義昭日星,萬世瞻仰夫子冠.憶昔夫子傷世志,一桴浮海任所之.先生此行指孤嶼,古今千載同一時.渡頭別離難爲懷,只恨未作由也從.風從落木悲送瑟,潮激古石怒聽鍾.孤帆渺渺看漸遠,滿腔鬱鬱氣不平.君不見大冬霜雪還爲春,衆陰極處一陽生.佇待淸時回棹日,稷契訏謨裨世程. 우리의……만들었네 여기서 관상(冠裳)은 유품을 말한다. 《주역》에서 공자의 사당을 허물고 공자의 위패를 불태우려고 보니 거기에 "후세에 어떤 남자가 내 사당에 들어가 내 의관과 옷을 훼손하면 사구평대에서 죽으리라〔後世有一男子, 入我堂, 毁我冠裳, 卒於沙丘平臺〕"라는 글귀를 보고 두려워 결국 공자의 사당을 허물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하나의……하였네 공자가 난세(亂世)를 개탄하면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말한 내용이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직과 설 요(堯) 임금의 현신(賢臣)들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부질없이 지음 3수 漫題【三首】 가슴 속 회포 천 겹이나 쌓여 끝없으니 胸懷千疊正無窮두 눈에 구름과 안개가 스며드는구나 領畧雲烟雙眼中물가에선 오랜 연꽃 가을 되어 떨어지고 荷老汀洲秋淅瀝정자에선 달무리 밤에 영롱하다 月籠臺榭夜玲瓏소년의 장쾌한 뜻 남해를 도모하고94) 少年壯志圖南海한 나라의 슬픈 노래 시경 비풍95)처럼 들리네 一國悲歌聽匪風우리 삶 즐기는 자 아니라면 不是吾生盤樂者두산 동쪽 오랜 여행 조롱하지나 마시오 莫嘲久旅斗山東남아의 큰 뜻은 호기롭고 끝없으니 男兒大志浩無窮곧장 우주의 안을 지탱하고자 하네 直欲撑持宇宙中서리와 눈 마음을 흥기시켜 깨끗함을 다투고 霜雪將心爭皎潔구름과 안개 붓에 들어오니 영롱하게 떨어진다 雲烟入筆落玲瓏밝은 시절 검을 찬 채 아침에 달려가고 明時劒佩趨朝日변방의 깃발들은 새벽바람에 펄럭인다 邊塞旌旗偈曉風다만 한스러운 것은 남은 생애 재주가 없어 只恨殘生才器乏장년 삼십 년을 창동에 누워있는 것 壯年三十臥滄東가슴 속에 누가 장차 표주박 잔을 헤아릴까 胸海誰將測蠡杯유속을 따르지 않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네 不隨流俗往還來성인의 문하 지름길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聖門蹊徑愁難入오랑캐 보루엔 안개와 티끌 열리지 않음이 한스럽네 夷壘烟塵恨未開마음은 한낮의 천리마처럼 달리고 싶으나 心欲驥蹄馳白日몸은 봄 우레를 기다리는 용처럼 움츠려 있네 身似龍蟄待春雷일찍이 한 조각 마음속에서 뜻을 둔 것은 早歸一片丹田裏부지런히 쟁기와 호미 잡고 풀 제거하는 것 勤把犂鋤去草萊 胸懷千疊正無窮,領畧雲烟雙眼中.荷老汀洲秋淅瀝,月籠臺榭夜玲瓏.少年壯志圖南海,一國悲歌聽匪風.不是吾生盤樂者,莫嘲久旅斗山東.男兒大志浩無窮,直欲撑持宇宙中.霜雪將心爭皎潔,雲烟入筆落玲瓏.明時劒佩趨朝日,邊塞旌旗偈曉風.只恨殘生才器乏,壯年三十臥滄東.胸海誰將測蠡杯,不隨流俗往還來.聖門蹊徑愁難入,夷壘烟塵恨未開.心欲驥蹄馳白日,身似龍蟄待春雷.早歸一片丹田裏,勤把犂鋤去草萊. 남해를 도모하고 큰일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에서 붕새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말에서 나온 뜻이다. 시경 비풍 《시경(詩經)》 〈회풍(檜風) 비풍(匪風)〉에 "회오리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요, 수레가 빠르게 질주하는 것도 아닌데, 주도(周道)를 돌아보니 마음이 슬퍼진다.〔匪風發兮 匪車偈兮 顧瞻周道 中心恒兮〕"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원제가 지은 이십이운 시에 차운하여 윤보에게 줌 次遠齋二十二韻贈允寶 천지가 만물을 낳았으니 天地生庶物그 마음 어찌 그리 어진가 厥心一何仁숙였다 들였다 상하를 보니 俯仰觀上下아득하고 커서 경계 없네 茫茫大無垠나는 놈 잠긴 놈 동물과 식물 飛潛與動植사물 종류 또한 분분하네 品彙亦紛紛오직 인간이 그 무리에서 나와 惟人出其類동일선상에서 말할 수는 없지 未可同日論마음 있어 이미 허령불매하니 有心旣虛靈성품 있으니 근본을 받았네 有性稟本源어찌 도리어 스스로 어둡하다고 하며 云何反自昧너무도 많은 실마리를 뒤엎는가 顚倒太萬端나를 위해 누가 길잡이가 될까 爲我孰指南아 옛 성인과 성신이 있다네 粤有古聖神공명과 명철함은 요임금에게서 나왔고 欽明出陶唐큰 덕이 위로 하늘을 본뜬 것이라 大德上準天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유정유일을 전수했고60) 精一姚姒授탕왕과 무왕은 중과 극을 전수했으며61) 中極湯武傳안연에게 극기복례 알렸고62) 克復告顔氏양혜왕에게 의리를 말했으며63) 義利語梁君중화는 자사가 전수했고64) 中和思傳揭명덕과 신민은 증자가 이어 진술하였네65) 明新曾述陳비와 바람이 일천 년 지속되어 風雨一千年해와 달 오래도록 볼 수 없네 日星久未看아, 저 하남의 정호여66) 繄彼河南子한 번 새롭게 개척하였으니 開荒一以新주자67)께서 그 뒤를 이어 考亭繼其後큰 도에 참여해 전해 들은 바 있었지 大道與有聞하학에서 일어나도록 가르쳐 敎自下學起상달로 일이관통 하게 하셨네 上達一貫連옛 성인 아직 밝히지 못한 뜻을 前聖未發旨손바닥 가리키듯 밝게 하셨네 昭晳指掌然나 역시 사문에 종사하여 我其從事斯일일이 그 근원을 고구하였네 一一究厥原시력은 이미 다했기에 目力旣竭矣마음으로 뒤를 이으리68) 心思復繼馬한 점의 눈 스스로 녹더니 一點雪自消삼 년 이후에는 소가 온전해 보이지 않네69) 三年牛無全화기애애 끝없는 즐거움을 融融無窮樂세속 사람들과는 말하기 어려우니 難與俗人言고마우신 윤보 형은 珍重允寶兄교분이 격 없이 친밀하니 交誼密無間다만 이 글을 보낼 뿐 持此只可贈서로 세한을 기다리자 기약하시게 相期待歲寒 天地生庶物,厥心一何仁?俯仰觀上下,茫茫大無垠.飛潛與動植,品彙亦紛紛.惟人出其類,未可同日論.有心旣虛靈,有性稟本源.云何反自昧?顚倒太萬端.爲我孰指南,粤有古聖神.欽明出陶唐,大德上準天.精一姚姒授,中極湯武傳.克復告顔氏,義利語梁君.中和思傳揭,明新曾述陳.風雨一千年,日星久未看.繄彼河南子,開荒一以新.考亭繼其後,大道與有聞.敎自下學起,上達一貫連.前聖未發旨,昭晳指掌然.我其從事斯,一一究厥原.目力旣竭矣,心思復繼馬.一點雪自消,三年牛無全.融融無窮樂,難與俗人言.珍重允寶兄,交誼密無間.持此只可贈,相期待歲寒. 요임금은……전수했고 원문 '요(妖)'는 당요씨(唐堯氏)의 성, '사(姒)'는 우순씨(虞舜氏)의 성을 각각 가리킨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일관되게 하여 그 중도(中道)를 진실로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이른바 '십육자 심전(十六字心傳)'을 가리킨다. 탕왕과……전수했으며 맹자(孟子)는, "탕은 중도를 지켜서 어진 이를 등용하는 데에 가리지 않았다.〔湯執中立賢無方〕" 하여, 탕이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중도를 지킨 것을 말한다. 《서경》에서는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홍범(洪範)을 들었는데, 거기에 "임금은 그 극진함을 세웠다.〔皇建其有極〕"라고 하였으니, 두 마디 말에서 나온 중(中)과 극(極)을 합쳐서 전용한 것이다. 안연에게……알렸고 《논어》 〈안연(顔淵)〉 1장에서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극기복례가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느냐.'"라고 한 것을 말한다. 양혜왕에게……말했으며 《맹자》〈양혜왕(梁惠王)〉 1장에, 맹자가 양혜왕에게 인의(仁義)에 대해 말한 것을 가리킨다. 중화는……전수했고 자사가 《중용》을 지어 도를 전수한 것을 가리킨다. 명덕과……진술하였네 증자가 《대학》을 지어 진술할 것을 가리킨다. 하남의 정호 원문 '하남자(河南子)'는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를 가리킨다. 주자 원문 '고정(考亭)'은 주자를 지칭한다. 그가 1192년에 복건성 건양(建陽)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을 짓고 학문을 강론했기 때문에 주자학파를 고정학파라고도 한다. 《宋元學案》 마음으로……이으리 원문 '계마(繼馬)'는 진 선제(晉宣帝) 사마의(司馬懿)가 일찍이 '우씨가 사마씨를 대신하여 황제의 자리를 이을 것이다.〔牛繼馬後〕'는 참설(讖說)을 보고는 우씨(牛氏)를 몹시 꺼린 나머지 마침내 그의 장수(將帥) 우금(牛金)을 짐살(鴆殺)했었는데, 뒤에 공왕비(恭王妃) 하후씨(夏侯氏)가 끝내 소리(小吏) 우씨와 간통하여 원제(元帝)를 낳아 진(晉)나라의 뒤를 잇게 되었다는 고사를 말한다. 《晉書 卷6 元帝紀》 삼……않네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칼질하는 솜씨가 매우 능란하니, 문혜군이 포정의 기술에 감탄하고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이에 포정이 대답하기를, '신이 좋아하는 것은 도이니 기술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에 신이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는데 3년이 지난 후에는 온전한 소를 보지 못했습니다.〔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라고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성구용(成九鏞)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月二十七日 成九鏞 李敎成 甲戌十月二十七日 成九鏞 李敎成 세종특별자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96_001 1934년 10월 27일에 성구용이 어르신의 가르침에 부응치 못한 자신의 반성과 선현 필적의 수령여부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4년 10월 27일에 충남 연기군(燕岐郡) 금남면(錦南面) 달전리(達田里)에 사는 성구용(成九鏞)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사문(斯文)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소춘(小春)에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시는 체후와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때 어르신을 모시고서 간옹(艮翁)의 제사에 참여하고 바다를 나와 사우(士友)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예를 행하는 장소에서 주선(周旋)하는 모습을 보고 고론(高論)을 듣기도 함으로써 탕척(蕩滌)되어 텅 빈 마음이었다고 말할 만하나, 재질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확충하지 못해 부끄럽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처음의 생각으로는 신선의 문에 들어가지만 어느 정도 바닥이 드러나 다 없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만하지만, 날짜만 허비하고 성대한 뜻을 받들지 못하니 한스러울 뿐이라고 하였다. 부탁한 선현의 필적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부쳤는데 받아 보았는지 아직 회답이 없어 염려된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孺人尹氏贈淑人者 光緖十三年 四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曾祖妣 依法典追贈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學生李國鎭贈通政大夫吏曹參議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祖考 依法典追贈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孺人尹氏贈淑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曾祖妣 依法典追贈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學生李奎明贈通訓大夫司僕寺正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曾祖考 依法典追贈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孺人鄭氏贈淑夫人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李箕斗祖妣 依法典追贈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3년 종질 교풍(敎豊)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十九年十二月 教風 光緖十九年十二月 教風 전라남도 보성군 教風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3년 12월 그믐에 종질 교풍(敎豊)이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93년 12월 그믐에 종질 교풍(敎豊)이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전래해 온 논을 여러 해 동안 벼를 받았다가 긴요하게 쓸 일로 본군 문전면 가천 가정평(可亭坪) 하자(下字) 3두락 부수(負數) 11복(卜)2속(束)을 전문(錢文) 170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답주의 이름 옆에 수결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21년 종손 이종술(李鍾述)의 복정공 묘지보호 증서(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이다. 이 증서는 6대조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것이다. 산야 소재는 보성군 문덕면 운곡리 9-1번, 112-2번이다. 면적은 280정7무이다. 이것을 본인이 지금 수호하고 있다. 복정공(僕正公) 제사도 체천(遞遷) 시효에도 문장 이면용은 제사 체천을 받아서 제사를 주재(제주)한 지 여러 해이다. 설향(設饗)할 기한이 멀지 않아 결코 이 산야의 수익으로 설향할 계획을 준비하기로 한 즉, 본인은 누세 선조의 열위사업(列位事業)을 단독으로 지배하기에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문장 이면용의 처분에 따라 복정공 자손 내에서 관리인 5원을 선정하여 이 산야 소유권보존 또는 처분 수익사용 등을 전부 이전한다. 본 관리인은 이 산야에서 매년 수익이 나오는 동시에, 문장과의 협의를 통해 이 설향에 관계된 위토와 묘각(墓閣) 등 제반사업을 차제에 함께 세울 것이며, 다소를 불문하고 이 수익은 사용목적을 변치 아니하기로 한다. 그런데 복정공 자손이 결의한 결과 이 산야 280정7부 내 종손보(宗孫保)로 하여 140정미를 본인에게 증여하였다. 본인은 이번에 이를 증여를 받은 바, 이 묘각을 건축할 시에도 묘각 전부 재목료(材木料, 송목)는 본인이 증여를 받은 부분 내에서 대용하기로 약정하고, 일후에 증명하기로 하여 문장에게 이 증서를 공급한다. 이상이 본 증서의 내용이며, 다음에 산야의 규모를 규정하였다. 곧 복정공 묘지보호의 산야 한계는 방하동(芳荷洞)으로부터 복정공묘소의 오른쪽 고개까지(溫水洞)이다. 그리고 종손 보호산야는 온수동 우편부터 호등(虎嶝)까지이다. 증주(證主)는 종손 이종술(李鍾述)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도암 이재가 참봉 한명현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陶庵 李縡 陶庵 李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도암 이재가 참봉 한명현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 도암 이재가 참봉 한명현에게 보낸 편지에서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장에서, 신(神)을 설명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베낀 글이다. 『도암선생집(陶菴先生集)』 권13, 서(書) 5, 답한참봉명현(答韓參奉命玄) 문목(問目)에 수록되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칠언율시 3수(首)의 시문(詩文)과 기문(記文)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칠언율시 3수의 시문과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를 한 기문 칠언율시 3수(首)와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呼訴)하는 기문(記文)이다. 시문은 〈괴석(恠石)〉이란 제목의 시 1수와 〈진영중수운(鎭營重修韻)〉에 대한 시(詩) 2수로 모두 칠언율시 3수이다. 시문 2편의 끝에는 작자의 성명을 기재해 놓았다. 그 뒤에 이어붙인 산문은 앞의 내용과는 상관없다.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사람에 대한 혹평(酷評)을 늘어놓은 산문(散文)이다. 원통하고 분완(憤惋)한 일은 불선(不善)을 쌓는 일인데, 이 불선을 쌓는 일 중 가장 나쁜 것은 남의 처자식을 빼앗는 것이라고 하고, 꾀꼬리와 말과 소 등의 짐승들도 서로 짝을 찾고 새끼를 챙기는데, 사람에게서 인륜의 부부의 정과 부모의 정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가속이 단 3명으로 서로 의탁하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그 두 사람을 잃어버려서,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 할수록 더욱 생각나고 잊기 어려운데, 빼앗은 자가 사또[使道]의 자제인 한림(翰林)이라고 하니, 자신이 호소할 곳이 없어서 매우 많은 사람에게 아뢴다고 호소하고 있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