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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律云暮懸 想殊切卽 惟玆者履事珍勝遠溸溸 第向日宗會 花樹春風 衆議協同 至於無事現定 使幾絶之門運 復續庶望進就之期 幸莫大焉 會議錄玆付送 配定金無違期限 另圖送付于寶城郡文德面龍巖里(舊長洞) 鍾煥宅 千萬至企耳 餘不宣庚辰 陰十二月 念一日 門長 敎先 頓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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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巳六月初二日 尹在晉 乙巳六月初二日 尹在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40_001 1905년 6월 2일에 윤재진이 안부를 여쭙고 자신과 권속들의 처지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협지가 있다는 간찰 1905년 6월 2일에 윤재진(尹在晉)이 안부를 여쭙고 척손(戚孫)인 자신과 권속(眷屬)들의 처지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협지가 있다는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자신은 다행히 병이 없고 권속들의 근심은 때마다 끊이지 않는데 더위 때문에 건강하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나머지 말씀드릴 것은 협지에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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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巳七月十七日 尹璂燮 乙巳七月十七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5_001 1905년 7월 17일에 윤기섭이 가천 사돈께 며느리의 유종과 자신이 더위로 인해 설사를 앓은 것과 가을걷이 등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05년 7월 17일에 사하(査下) 윤기섭(尹璂燮)이 가천(可川) 사돈께 며느리의 유종(乳腫)과 자신이 더위로 인한 설사를 앓은 것과 가을걷이에 관한 내용을 말한 안부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윤기섭이 자신의 사돈에게 가을이 되어 안부가 어떠한지 자세히 묻고, 어버이의 안부는 건강상의 위태로움을 면하였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딸이자 자신의 며느리는 유종으로 다섯 달 정도 고생했는데 아직 완쾌가 안 되었고, 자신은 더위로 인한 설사병이 걸려 고생하고 있다. 올해 농사는 도처에 거둘 것이 있어 크게 다행이라고 하고 사돈의 농장은 어떠한가 물었다. 지난번에 뵙고 나서 노쇠해져 생긴 병이라 생각되지만 이제 해로워지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니, 철에 따라 몸조리 잘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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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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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4년 가선대부행동지중추부사 이기두(李箕斗) 호구단자(戶口單子)(87세) 고문서-증빙류-호적 甲午 李箕斗 甲午 李箕斗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04_001 1894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가선대부행동지중추부사 이기두가 관에 제출하고자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894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가선대부행동지중추부사 이기두가 관에 제출하고자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내용은 호주의 가족구성과 천구질(노비 명단)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의 사조(四祖)는 동거 가족이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에 따라 기재한 것이다. 문전면은 보성군에 속한 면이다. 리명과 통호수는 모두 생략하였다. 호주는 이기두인데, 직역이 가선대부행동지중추부사이며, 나이가 87세(무진생)이고 본관이 성주이다. 본관 아래에는 고(故)자를 써서 고인임을 나타냈다. 그의 사조는 부(父)가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유원, 조가 증통정대부이조참의 국진, 증조가 증통훈대부사복시정 규명이다. 외조는 나상좌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호주에게 아들 둘이 있는데, 장자가 면용이다. 직역이 유학이고 나이가 46세(기유생)이다. 맏며느리는 조씨인데, 나이가 51세(갑진생)이며 본관이 한양이다. 차자는 우용인데, 직역이 유학이며 나이가 37세(무오생)이다. 둘째며느리는 나씨인데, 나이가 41세(갑인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천구질에는 비 2명과 노 1명이 기재되어 있다. 비는 둑덕(51세)과 분순(31세)이며, 노는 부문(35세)이다. 끝에 적은 신묘식(辛卯式)은 신묘식년의 호적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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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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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병자년(1936) 與鄭國振 丙子 지난번 선장(仙庄 상대의 집)에 나아가 달을 감상하고 시를 읊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는 섣달이 되어 거의 일 년이 다 되었습니다. 풍조(風潮)가 더욱 심해져서 성학(聖學)이 장차 끊어지고, 인심이 더욱 변하여 대의(大義)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와 그대들이 비록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서 덕을 세우고 학문을 전하며 윤리를 바루고 의리를 돕는 방도를 강구해 밝히더라도 오히려 공을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만나고 편지를 보내는 것도 모두 막혀 걸핏하면 한 해를 넘기니, 어떻게 우뚝한 지혜를 세우고 확연한 논리를 세워 조금이라도 쓰러져가는 풍속을 구하겠습니까? 바라보아도 다가갈 수 없어서 진실로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노형은 고명한 견해와 강직한 기운을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일반사람보다 뛰어납니다. 덕과 학문을 닦고 세상에 법도를 맑게 하는데 마땅히 스스로 이룸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치는 반드시 궁구한 이후에 더욱 밝아지고 기운은 반드시 함양한 이후에 더욱 굳세게 됩니다. 이치가 더욱 밝아져서 지극한 밝음에 이르고 기운이 더욱 굳세져서 지극한 굳셈에 이른 이후에 그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고자 하는 자는 강학(講學)이 아니면 할 수가 없고, 강학을 하고자 한다면 붕우와 서로 도움을 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형은 방술이 갈래가 많고 응대하는 것이 매우 번잡합니다. 도는 비록 여기에서도 볼만한 것이 있으나 만약 이같이 한다면 혼란스럽게 세월만 보내며 그칠 때가 없으면, 아마도 이치를 궁구하고 기운을 함양하는 공부에 정밀함을 다하여 지극히 밝고 지극히 굳센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형은 이 점에 유의하여 응대는 조금 줄이고 강학은 조금 늘려서 이것을 중시하고 저것을 경시하며 이것을 주인으로 삼고 저것을 손님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되면 정치하게 이치를 궁구하고 기운을 함양하는 방도에 있어서 이미 절반은 이루게 될 것입니다. 현광(玄狂)은 지난 섣달에 선장에서 함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는데, 어찌 갑자기 죽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의 높은 재주와 바른 의론을 다시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당(吾黨)의 불행이고 음당(陰黨)의 기뻐할 바이니, 옛사람의 이른바 "하늘도 이 무리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준다."라는 경우란 말입니까. 아! 슬픕니다. 曩造仙庄,賞月賦詩,居諸幾何,窮臘冰雪,恰滿一周矣.風潮益甚,聖學將絕; 人心益渝,大義難明.當此時也,吾儕若爾人,雖日夕聚首,講明立德傳學正倫扶義之方,猶懼不克奏功.乃者面書俱阻,動輒經歲,其何以立卓然之知,立確然之論,而少救靡然之俗乎? 瞻望靡及,良可於邑如.老兄者,高明之見,剛直之氣,得之天資,超乎凡輩.其於修德學而淑世程也,宜有以自成而不須乎人.但理必窮而後愈明,氣必養而後愈剛,愈明而至於至明,愈剛而至於至剛而後已.欲如此者,非講學不能; 欲講學,非朋友麗澤不能也.竊覸兄方術多門,酬應甚煩,道雖於此,亦有可觀,然若如此紛汨度日,無有已時,則吾恐其無以致精於窮理養氣之功而至至明至剛之域也.願兄加意於此,就酬應而減却分數,就講學而添却分數,要使此爲重而彼爲輕,此爲主而彼爲賓,則其於致精窮養之道,思過半矣.玄狂是客臘仙庄鼎坐中一人,豈意其遽爾觀化? 其高才正論,更於何而得見? 此吾黨之不幸而陰黨之所喜也,古人所謂天亦爲此曹報仇者耶? 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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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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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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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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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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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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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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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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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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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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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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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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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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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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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趙子貞 戊寅 지난번 위재(危齋)가 지은 귀보(貴譜)의 발문(跋文)에 미진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빌려서 뒤미처 윤색을 하려고 한다고 논했는데, 적이 불가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자(程子)〈역전서(易傳序)〉의 '연(沿)' 자는 문리로 따져보면 비록 분명히 '소(遡)' 자의 잘못이라고 말해도 되었지만 주자(朱子)는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남헌(南軒)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면서도 엄하게 말씀하였습니다.61) 다만 이것이 오늘의 일을 단정할 수 있습니다.금석문자는 그 소중함이 자별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대등한 자 이하의 생존한 자에게 글을 받아도 오히려 감히 사사로이 고쳐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위재장은 선배이고 또한 이미 작고를 했으니, 어찌 후인이 감히 경솔하게 손을 댈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글이 의리를 이루지 못하고 내용도 말이 되지 않는다면 당일에 반드시 고치지 않을 이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시에 그러함을 알지 못하고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고 한다면 차라리 그 글을 사용하지 않고 본가로 돌려보내고 그 연유를 말해주면 될 것입니다.또한 지난번 그대가 외운 위재가 쓴 발문의 내용을 들었더니, 또한 절로 의리를 이루었고 내용도 인가의 금석문이 되기에 해롭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대가 완전히 좋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이런 습속은 길러서는 안 되며 이런 풍속은 매우 두려워 할 만합니다. 습속이 자라나고 기풍이 행해져서 한층 진일보하게 되면 멋대로 선사의 글을 고친 음성의 오진영 같은 자가 또한 어찌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남헌에게 보낸 편지는 진실로 후인들이 경솔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열어주는 폐단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昨論危齋所作貴譜跋語有未盡者,故欲借人追加修潤者,竊以爲不可也.程子《易傳序》"沿"字, 以文理求之,雖謂明是"遡"字之誤可矣, 而朱子謂不當改, 與書南軒不啻詳且嚴矣.只此可以斷今日事也.金石文字所重自別, 受文於人於敵以下之生存者,猶不敢私改,況於危丈先進而亦已作故之地,何許後人敢爾下手耶? 若文不成義理不成說辭,則當日必無不改之理; 若云當時不知其然,而今始知之,則寧不用其文,還送本家而語其故可也.且昨聞貴所誦危跋語云云,則亦自成義理, 說辭不害爲人家金石文.今之爲貴言未盡善者,吾不知其何義也.此習不可長,此風甚可畏.習之所長,風之所行,其進一層,而擅改師文如陰震者,亦豈無之? 故朱子與南軒書固以啟後人輕肆之獘爲憂矣. 정자……말씀하였습니다 〈역전서(易傳序)〉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서 근원을 찾는다.[沿流而求源]'라는 구절의 '沿' 자에 대해 남헌(南軒) 장식(張栻)은 '연(沿)' 자를 '소(泝)' 자로 고치는 것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는데, 주자는 '연(沿)' 자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연(沿) 자는 뜻이 자못 관서(寬舒)하고 소(泝) 자는 기상이 박급(迫急)하다"고 하였다. 《朱子大全(주자대전)》 권30 〈여장흠부론정집개자(與張欽夫論程集改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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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의 음과 뜻 【1944년】 告字音義 【甲申】 선사(先師 간재)는 평소에 《논어》 곡삭장(告朔章) 대문(大文)339) 아래 소주(小註)의 고고독반(告古篤反)340)에 근거하여 말하기를 "곡삭은 사당에 고유(告由)하는 예이니, 제사 지낼 때 축문에서 감히 밝게 고한다[敢昭告]의 '고(告)'자의 음도 마땅히 이처럼 읽어야 한다. 무릇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고할 때의 고는 모두 마땅히 이처럼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하에 들어온 선비들이 이를 똑같이 준행(遵行)하였다.내가 일찍이 요왈장(堯曰章)의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341)'의 '고'자를 들어서 질문하기를 "이는 다만 축사(祝辭)를 가리킬 뿐이니 예를 행할 것을 청하는[請行禮] 것과 비교되지 않고, 고독반의 주도 없으니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註)가 있으니 무릇 높이는 대상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은 것이니, 어찌 반드시 다시 주를 달아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붕우는 동료인데,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342)에서 '공독반(工毒反)'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붕우는 마땅히 서로 공경해야 하니, 어찌 높이는 대상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붕우가 높이는 대상이라면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가 있어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았는데, 다시 '공독반'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다시 답하지 않았고, 그때의 분위기가 엄해서 감히 다시 묻지 못하였다.물러 나와 여러 《자서(字書)》와 경전을 조사해보았는데 알지 못하여 의혹만 많아졌고, 이 때문에 의심을 쌓은 지가 30년이 되었다. 《규장전운(奎章全韻)》343)에서는 '고'자에 대해 '알리다[報], 아뢰다[啓]는 고도절(古到切)로, 청하다[請], 보이다[示]는 고옥절(古沃切)'로 주를 달았다. 《옥편(玉篇)》과 《자전(字典)》에서는 '보(報)'와 '계(啓)'는 같고, 말미나 휴가를 청하다[請告]는 또한 거성(去聲)이고 배알하기를 청하다[謁請]는 입성(入聲)인데,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344)의 글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높이는 대상에게 고하여 입성이 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보'와 '계'에 이르러서는 《자전(字典)》에서 이미 '위에 고하는 것은 곡이라 하고 (위에서 아래로) 아랫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고(誥)이다.'라고 한 《광운(廣韻)》345)의 설을 인용하고, 또 《서경》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46)'와 《시경》의 '사씨에게 여쭈었다.347)'라는 것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또한 높이는 대상이 아닌가. 그런데도 거성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가령 《시경》 〈남산(南山)〉에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348)……'라고 한 것의 입성은 진실로 높이는 대상이다. 그러나 간모(干旄)〉에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349)'라고 한 것은 오히려 대부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이를 수 있고, 그 나머지 가령 〈고반(考槃)〉에 '(남에게) 말하지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350)'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은 어찌 높이는 대상이겠는가?또 예컨대 〈기취(旣醉)〉에 '공시(公尸)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351)'와 《주역》 〈몽괘(蒙卦〉)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352)'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신이 인간에게 알리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러주는 경우인데도 입성이 되었다.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었다.353)'와 〈강한(江漢)〉에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354)'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뢰는 경우인데도 거성이 되었으니, 무엇 때문인가?《서경》 〈우공(禹貢)〉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55)', 〈탕고(湯誥)〉의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356)'와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었다.357)', 〈반경(盤庚)〉의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는가.358)'와 '그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크게 우리 고후에게 고한다.359)', 〈서백감려(西伯戡黎)〉의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360)', 〈무성(武成)〉의 '황천과 후토에 고유한다.361)', 〈금등(金縢)〉의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362)'와 '내가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363)', 〈입정(立政)〉의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께 고합니다.364)'와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365)'와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366)', 〈강왕지고(康王之誥)〉의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367)', 《주역》 〈익괘(益卦)〉의 '공에게 아뢸 때 규를 쓰듯 하리라.368)'와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369)', 《논어》의 '애공(哀公)에게 고하였다.370)'와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371)', 《맹자》의 '자로가 이 말을 고하였다.372)'와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다.373)'와 '제가 인군께 아뢰었습니다.374)'와 '공도자가 이 말을 아뢰었다.375)'와 '진자가 시자의 말을 아뢰었다.376)'와 '고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7)'와 '서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8)'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379)'라고 한 등속은, 어떤 경우에는 임금과 스승에게 고하고, 어떤 경우에는 부조(父祖)와 천지에 고하여 그 높이는 대상이 이보다 막중함이 없는데, 아울러 모두 거성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이 또한 마땅히 '곡삭장의 주를 예로 삼아 반드시 주를 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아마 이러한 이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구구한 내가 주제넘게 생각하기를 "'고'자의 거성과 입성은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으나, 다만 경전에서 이를 찾는다면 일삼을 것이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곡삭', '출곡', '충곡'은 '청하다', '보이다'의 뜻이고, 《시경》과 《주역》에서의 입성은 같은 운(韻)을 취하고 다른 뜻은 없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다."라고 여긴다. 그러니 축문에서 반드시 입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삼가 의심스러운 것을 기록하여 뒷날 다시 더욱 사색하여 마침내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을 자료로 삼노라. 先師平日據《論語》告朔章大文下小註告古篤反謂: "告朔是告廟之禮, 則祭祀祝文敢昭告之告字音, 當如此讀之, 凡下告上之告, 皆當如此也". 故及門之士, 遵行無異. 澤述嘗擧堯曰章敢昭告于皇皇后帝之告字以質之曰: "此爲直指祝辭, 非但請行禮之比, 而無古篤反之註, 恐不必然.". 先師曰: "告朔章旣有此註, 凡於所尊可知, 餘皆倣此, 豈必再註?". 對曰: "然則朋友是同儕也, 而忠告善道章註, 以工毒反, 何也?", 先師曰: "朋友當相敬, 豈非所尊乎?". 對曰: "朋友是所尊, 則告朔章旣有此註可知, 餘皆倣此, 而復以工毒反註之, 何也?", 先師不復答, 于時嚴不敢再問. 退而考諸《字書》經傳之間, 則有未達而滋惑者, 庸是蓄疑爲三十年矣. 《奎章全韻》告字, 註報也啓也古到切, 請也示也古沃切. 《玉篇》, 《字典》, 報也啓也同, 而請告也亦去聲, 謁請也則入聲, 而引〈曲禮〉出必告之文而證之, 此爲告所尊而入聲則然矣. 至於報也啓也, 《字典》旣引《廣韻》告上曰告, 發下則誥之說, 又引《書》之告厥成功, 《詩》之言告師氏而證之, 此亦非所尊乎? 而去聲何也? 若乃《詩》 〈南山〉之必告父母, 旣曰告之之入聲, 固爲所尊, 〈干旄〉之何以告之, 尙可謂用於大夫之尊, 其餘若〈考槃〉之永矢不告, 何所尊乎? 又如〈旣醉〉之公尸嘉告, 《易》 〈蒙〉之初筮告, 瀆則不告, 是神告於人, 則上之告下者而爲入聲. 〈葛覃〉之言告師氏, 〈江漢〉之告于文人, 是下之告上者而爲去聲, 何也? 《書》 〈禹貢〉之告厥成功, 〈湯誥〉之幷告無辜于上下神祇, 敢昭告于上天神后, 〈盤庚〉之汝曷不告朕, 乃祖乃父, 告我高后, 〈西伯戡黎〉之祖伊奔告于王, 〈武成〉之告于皇天后土, 〈金縢〉之乃告太王王季文王, 我無以告我先王, 〈立政〉之告嗣天子王, 乃敢告敎厥后, 咸告孺子王, 〈康王之誥〉之敢敬告天子, 《易》 〈益〉之告公用圭, 告公從, 《論語》之告於哀公, 不敢不告, 子路以告, 《孟子》之有司莫以告, 克告於君, 公都子以告, 陳子以時子之言告, 高子以告, 徐子以告, 告齊宣王之類, 或爲告君告師, 或爲告父祖告天地, 其爲所尊莫重於此, 而幷皆爲去聲, 何也? 凡此亦當曰以告朔章註爲例, 而不必再註乎? 竊恐無是理矣. 故區區妄意以爲"告字去入, 元無分於上下, 但以經傳求之, 則行其所無事矣. 告朔出告忠告, 請也示也之義, 《詩》, 《易》之入聲者, 取其同韻而無他意, 其餘皆元無分於上下者也.". 然則祝文之必作入聲讀, 吾斯之未能信者, 謹記所疑, 爲異日更加思索, 卒悟師敎之資焉. 《논어》 …… 대문(大文) 《논어》 〈팔일(八佾)〉에 "자공이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희생 양을 없애고자 하였다.[子貢欲去告朔之餼羊.]"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문은 이 부분을 말한다. 고고독반(告古篤反) '고(告)'는 '고(古)'와 '독(篤)'의 반절음(反切音)으로, '곡'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감히 …… 아룁니다 《논어》 〈요왈(堯曰)〉에 "나 소자 이는 검은 희생을 써서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가 "충심으로 말해주고 잘 인도하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해야 한다.[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규장전운(奎章全韻)》 1796(정조 20)년에 왕명에 따라 이덕무(李德懋) 등이 규장각에서 펴낸 운서(韻書)이다.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무릇 남의 자식된 자는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광운(廣韻)》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고대 운서이다. 원명은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으로, 송대(宋代:960~1279)의 진팽년(陳彭年)과 구옹(邱雍) 등이 당시에 유행하던 운서와 자서를 종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여쭈었다 《시경》 〈주남(周南)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반드시 …… 아뢰었는데 《시경》 〈제풍(齊風) 남산(南山)〉에 "아내를 취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 어찌하여 또 (욕심을) 극에 달하게 하는가.[取妻如之何? 必告父母. 旣曰告止, 曷又鞠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무엇을 …… 주려는가 《시경》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저 아름다운 그대여,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彼姝者子, 何以告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말하지 …… 맹세하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홀로 자다 잠 깨어 누워, 즐거움 남에게 말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獨寐寤宿, 永矢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시(公尸)가 …… 고하였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마침을 잘함이 시작이 있으니, 공시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令終有俶, 公尸嘉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처음 …… 않는다 《주역》 〈몽괘(蒙卦) 괘사(卦辭)〉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두 번 세 번 거듭 물으면 번독하니,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 여쭈었다 《시경》 〈주남 갈담〉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 《시경》 〈대아 강한(江漢)〉에 "너에게 규찬과 검은 기장술 한 동이를 내려주며 문인(文人 문왕)에게 아뢰어 산천과 토지를 하사한다.[釐爾圭瓚, 秬鬯一卣. 告于文人, 錫山土田.]"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하소연하였다 《서경》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하나라 왕이 덕을 멸하고 위세를 부려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夏王滅德作威, 并告無辜于上下神祇.]"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상천과 …… 아뢰었다 《서경》 〈상서 탕고(湯誥)〉에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어 하나라에 죄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敢昭告于上天神后, 請罪有夏.]"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너희들은 …… 않는가 《서경》 〈상서 반경 상(盤庚上)〉에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고, 서로 부언으로 선동하여 사람들을 공동(恐動)시키고 빠지게 하는가.[汝曷弗告朕, 而胥動以浮言, 恐沈于衆?]"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서경》 〈상서 반경 중(盤庚中)〉에 나온다. 조이가 …… 아뢰었다 《서경》 〈상서 서백감려(西伯戡黎)〉에 "서백이 여 나라를 이기자,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西伯旣戡黎, 祖伊恐奔告于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황천과 …… 고유한다 《서경》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상나라의 죄를 지극히 하여 황천과 후토와 지나가는 곳의 명산, 대천에 고유한다.[底商之罪, 告于皇天后土所過名山大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태왕 …… 고유하였다 《서경》 〈주서 금등(金縢)〉에 "주공이 여기에 서서 벽을 놓고 규를 잡으며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周公立焉, 植璧秉珪, 乃告太王王季文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내가 …… 것이다 《서경》 〈주서 금등〉에서 주공(周公)이 "내가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我之弗辟, 我無以告我先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천자의 …… 고합니다 《서경》 〈주서 입정(立政)〉에서 주공(周公)이 "손을 이마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님께 고합니다.[拜手稽首, 告嗣天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마침내 …… 가르쳤다 《서경》 〈주서 입정〉에서 주공이 "옛사람들은 이 도를 잘 행하였으니 ......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古之人迪 ...... 乃敢告敎厥后.]"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아뢰었습니다 《서경》 〈주서 입정〉에 "나 단은 이미 남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말을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予旦已受人之徽言, 咸告孺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아룁니다 《서경》 〈주서 강왕지고(康王之誥)〉에 "태보와 예백이 함께 나아가 서로 읍하고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라고 하였다.[太保曁芮伯, 咸進相揖, 皆再拜稽首曰: '敢敬告天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하리라 《주역》 〈익괘(益卦)〉 육삼효(六三爻)의 효사에 "진실한 정성이 있고 중도로 해야 공에게 아뢸 때에 규를 쓰듯 하리라.[有孚中行, 告公用圭.]"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것이다 《주역》 〈익괘〉 육사효(六三爻)의 효사에 "중도로 하면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中行, 告公從.]"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애공에게 …… 고하였다 《논어》 〈헌문〉에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공에게 고하였다.[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없다 《논어》 〈헌문〉에서 공자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자로가 …… 고하였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자로가 이 말을 고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였다.[子路以告, 孔子曰: '有命.'.]"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유사 …… 없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들이 태만하여 아래 백성들을 해친 것입니다.[有司莫以告, 是上慢而殘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제가 …… 아뢰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에 "악정자가 맹자를 뵙고 말하기를 '제가 인군께 아뢰니, 인군께서 와서 뵈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樂正子見孟子曰: '克告於君, 君爲來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온다. 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고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나온다. 서자가 …… 아뢰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제(齊)나라 …… 아뢰었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孟子告齊宣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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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당 이 충숙공337)이 지은 매죽당338) 부군의 묘갈명을 읽고 【1942년】 讀雙柏堂李忠肅公所撰梅竹堂府君墓碣銘 【壬午】 삼가 생각건대 정릉(靖陵 중종)의 시대에 정암(靜菴) 조 선생(趙先生 [조광조(趙光祖)])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현인(賢人)들이 무리지어 나와 지치(至治 지극한 정치)를 일으킬 것을 기대하였다. 당시에 노천(老泉) 김공(金公 김식(金湜)) 같은 사람이 실로 정암과 덕과 공이 같았는데, 부군(府君)이 그들에게 천거를 받았으니, 함께 무리지어 나간 현인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禍)가 일어나자 김공이 또 제일 먼저 정암과 함께 걸렸는데, 부군은 애초에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암, 노천과 함께 화를 입지 않았으니, 이에 기미를 보고 편안히 물러난 한 가지 일이 도리어 혹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부군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은자(隱者)였으니, 가첩(家牒)에서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은거하여 자폐(自廢)했다.'라고 기록한 것은, 이때부터 속세의 생각을 영원히 끊고 아울러 교유(交遊)를 그만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묘갈명(墓碣銘) 서(序)에서 김공이 천거한 것만 말하고 기묘사화를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초연히 홀로 면했다는 뜻을 드러내려고 한 것임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보는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竊惟靖陵之世, 靜菴趙先生之當朝也, 群賢彙征, 期興至治. 時則有若老泉金公, 實與靜菴同德同功, 而府君爲其所薦, 則其爲可與同一彙征之賢審矣. 及其禍作, 金公又首與靜菴同嬰, 而府君初不出仕. 故不與靜泉同禍, 于以見見機恬退一著, 反或優焉. 蓋府君從初一隱者, 家牒所記己卯士禍後, 隱居自廢者, 以其從此永斷世念, 幷息交遊而言也. 銘序只言金公薦, 而不言己卯者, 所以著超然獨免之意, 不待於言也, 覽者詳之. 쌍백당 이 충숙공 이세화(李世華, 1630~1701)이다. 쌍백당(雙柏堂)은 그의 호이다. 충숙(忠肅)은 시호이고 자는 군실(君實)이다.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후창집(後滄集)》 권12 〈분재 문중에 보냄[與粉齋門中]〉에서 후창은 "매죽당공의 묘갈은 외손인 명현 쌍백당의 손에서 나왔다."라고 말하였다. 매죽당 김종(金宗, 1471~1538)이다. 매죽당은 그의 호이고 자는 사앙(士仰),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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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람들에게 보임 【1939년】 示家衆 【己卯】 이러한 큰 흉년을 당하여 구학(溝壑)335)의 걱정은 사람들의 관심이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참상은 곳곳에서 눈에 가득하니 죽고 사는 것은 큰 문제이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자가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백성은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336)"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신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도이니, 한 집안으로 말하면 자식은 효도하고 어버이는 인자하며, 부부는 의롭고 형제는 우애하는 것이다. 지금 보건대 마을의 무지한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먼저 그 마음이 흔들려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리고 스스로 생계의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설령 먹을 것을 구하여 살더라도 이미 사람답게 되는 도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세상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신의가 없이 산다면 살아도 죽은 것과 같고, 신의를 지켜 죽으면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다.원하건대 우리 집안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굳건히 정하여 효자(孝慈)와 우의(友義)를 명맥(命脈)으로 삼고, 한 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뿌리, 줄기, 껍질, 잎사귀[根莖皮葉]로 식품[食料]을 만들어라. 그래서 차라리 신의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신의가 없이 사는 것을 구하지 말라. 게다가 죽고 사는 것에는 명이 있으니, 모여 산다고 하여 반드시 모두 죽는 것도 아니고, 나뉘어 흩어진다고 반드시 모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괴롭게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신의가 없는 것을 범하여 끝내 신의를 지켜 사는 두 가지 얻음[兩得]을 잃어버리겠는가. 그 또한 두려워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値此大無, 溝壑之憂, 人人關心, 流離之慘, 在在滿目, 死生大矣. 常情, 安得不然? 然孔子不云乎?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信者何? 人所以爲人之道, 以一家而言, 則子孝父慈夫婦義兄弟友是也. 今觀鄕里無知之人, 先動其心於死生之際, 棄父母兄弟妻子, 自求就食之方, 政使得食而生, 已失所以爲人之道, 何以立於世乎? 蓋無信而生則生而猶死, 有信而死則死而猶生. 願我家衆, 深究此理, 堅定其心, 以孝慈友義爲命脈, 聚首一室, 同心協力, 以根莖皮葉作食料, 寧可有信而死, 毋求無信而生也. 且死生有命, 聚居而未必皆死, 分散而未必皆生, 則何苦而先犯生而猶死之無信, 而竟失有信而生之兩得矣乎? 其亦惕念乎哉! 구학(溝壑) 흉년과 기근 때문에 굶어서 도랑에 뒹굴어 죽는다는 말이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흉년과 기근에 군주의 백성 가운데 노약자들은 시신이 구렁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간 자들이 몇천 명이나 된다.[凶年饑歲, 君之民老弱, 轉于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라고 맹자가 말한 데에서 나왔다. 예로부터 …… 없다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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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와 이관의 자에 대한 설 【1925년】 崔以求以貫字說 【乙丑】 공자가 말하기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하였다.171)"라고 하였으니, 민렬(敏烈)로 이름을, 이구(以求)로 자(字)를 지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말하기를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172)"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일섭(一燮)으로 이름을, 이구(以貫)로 자를 지은 것이다.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된173) 공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마음과 이치에 간격이 없는 묘함이다.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체(體)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용(用)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성(誠)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경(敬)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돈화(敦化)174)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천류(川流)175)이다.그러나 부지런히 구하면 상하로 통하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면 지극한 곳에 나아가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구하는 데 노력하여 점차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데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시작하는 일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것은 마치는 일이니, 시작과 끝이 서로 돕는 것이 사람 중에 형제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제 형을 이구로, 동생을 이관으로 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느냐. 서로 의지하는 형제로서 서로 도움을 주는 학문을 익힌다면 마땅히 이르지 못할 이(理)가 없을 것이니, 두 최군이여 힘써 노력하라! 孔子曰: "好古敏以求之.", 名敏烈而字以求者此也. 又曰: "吾道一以貫之.", 此一燮名而以貫字也. 蓋敏求者心不踰矩之功也, 一貫者心理無間之妙也, 一貫體, 敏求用也, 一貫誠, 敏求敬也, 一貫敦化, 敏求川流也. 然敏求通乎上下, 一貫造其極至, 學者當用力乎敏求而馴致乎一貫也. 然則敏求始之事, 一貫終之事, 始終相資, 有如人之兄弟相須, 今兄以以求, 弟以以貫者, 不亦宜乎? 以相須之兄弟講相資之學, 宜無不至之理, 二崔君勖哉! 옛것을 …… 구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가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하였다. 우리의 …… 관통한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다. 마음이 …… 된 공자가 《논어》 〈위정)〉에서 "70세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돈화(敦化) 《중용장구》 제30장에 "큰 덕은 화를 돈후하게 한다.[大德敦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천류(川流) 《중용장구》 제30장에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다.[小德川流]"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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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자에 대한 설 【1924년】 金聲遠字說 【甲子】 갑자년(1924) 11월 15일 갑자(甲子) 날은 나와 종유한 김씨 수요(秀堯) 종돌(鍾突)이 관례를 치른 때이다. 이미 관례를 치르고 중당(重堂 조부모)의 명을 받들어 나에게 자(字)를 묻기에 내가 '성원(聲遠)'으로 공경하게 하고 또 말하기를 "무릇 종(鍾)은 기물(器物) 가운데 큰 것이니, 기물이 크면 소리가 길고, 소리가 길면 멀리 들리는 것은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사람에게 있는 것도 그러하니, 도가 그 몸에 쌓이고 가르침이 천하에 행해져 훌륭한 명성이 백세(百世)에 길이 이어지는 것이 어찌 사람의 울림이 아니겠는가. 인류가 생긴 이래로 성인들이 크게 이룬 것을 모아서 요임금과 순임금을 존경하고, 탕임금과 문왕을 빛낸 자는 오직 공자이니, 사람으로서 울림이 큰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157)'고 하였고, 한유(韓愈)는 '그 소리가 크게 멀리 들렸다.158)'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로부터 이후는 현철(賢哲)들의 크고 작은 울림이 비록 같지 않지만 큰 것에 나아가 말해보면,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159), 일성(一誠), 삼덕(三德)160)으로서 도학(道學)의 표준을 밝힌 것은 증자와 자사의 울림이다.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것161)과, 선성(先聖)의 도를 보호하여 이단을 물리치는 7편의 웅변(雄辯)162)으로 백세에 밝게 드러나게 한 것은 맹자의 울림이다. 그리고 말이 인멸(湮滅)된 것을 태극도(太極圖)에서 열어주고, 〈서명(西銘)〉을 지어 완고한 자들을 바로잡아 준 것은 주돈이(周敦頤)163)와 장재(張載)의 울림이다.그리고 전해지지 않던 것을 전해오는 경전에서 얻어 수사(洙泗)164)의 전통을 다시 잇고, 백가(百家)의 논을 절충하여 경전의 뜻을 하늘의 해와 별처럼 밝게 드러나게 한 것은 정자(程子 정명도와 정이천)와 주자(朱子)의 울림이고, 도의 근원을 철저하게 밝히고 왕을 도울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춘추(春秋)》의 대의를 잡고 인심(人心)을 바로잡은 것은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울린 것이니, 우리나라의 공자와 주자이다. 율곡과 우암의 뒤를 이어 근세에 울린 자는 구산옹(臼山翁)165)이니, 덕성을 높이고 심종(心宗)을 깨뜨린 울림이 이것이다.성원은 풍채가 좋고 준수하며 재주는 민첩하고 뜻은 돈독하며, 목소리가 맑고 온화하여 좋아할 만하니, 어찌 결국 작은 그릇이 될 자이겠는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공자, 맹자, 정자, 주자, 율곡, 우암의 책이고, 사숙(私淑)하고 있는 것은 구산옹의 뜻과 가르침이다.내가 바라건대 옛사람의 모범을 본받아 자신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마음속에 도탑게 쌓아 이를 드러내어 광원(廣遠)한 창언(昌言 훌륭한 말)과 범범(渢渢)166)한 문장이 되게 하라. 이 천지가 오랫동안 어둡고 만백성이 혼몽(昏夢)한 때를 당하여 맑은 새벽녘에 백 척 높이의 누각 위에서 장장(鏘鏘)167)하게 한 번 큰 종을 치면 맑은 소리가 울려 퍼져서 멀리 6주(洲)와 8방에까지 미쳐 천하의 귀먹은 사람들을 큰 소리로 불러 일깨울 날이 장차 있을 것이니, 바야흐로 바람을 향해 귀 기울여 기다릴 것이다.비록 그렇지만 내가 일찍이 듣건대 진정한 영웅은 전긍임리(戰兢臨履)168)에서 우레처럼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일찍이 연못처럼 고요한[淵默] 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고 하니, 이는 또울림을 크게 하여 소리를 멀게 하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전긍연묵[戰兢淵默]' 4글자 가운데 본래 무한한 일이 있으니, 앞에서 '옛사람을 본받아 도탑게 쌓는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원아, 힘써 노력하라! 몸을 강건하게 하고 마음을 크게 하여 그 도량을 확충하고, 스스로 그 기물(器物)을 손상시켜 작게 하지 말라.공자가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나게 해드린다.169)'.라고 하고, 《시경》에 '길이 천명에 합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다.170)'라고 하였다. 천명에 합하여 몸을 이루고 훌륭한 명성을 드리워 부모를 드러나게 해드린다면 하늘이 이에 복을 내려줄 것이다. 그래서 성원의 관례를 치르고 자(字)를 지을 때에 이러한 설을 지어 힘쓰게 하여 장수와 큰 복을 누리라는 축원을 대신한다."라고 하였다. 維歲甲子陽復之月望日甲子, 從余遊者金氏秀堯鍾突弁之辰也. 旣冠, 奉其重堂之命, 問字於余, 余以聲遠欽之, 且告之曰: "夫鍾器之大者也, 器大則聲長, 聲長則聞遠, 理之固然也. 其存乎人者亦然, 道積于厥躬, 敎加於天下, 令聞長乎百世者, 詎非人中鍾乎? 蓋自生民以來, 集群聖之大成而賢堯舜, 光湯文者, 惟孔子也, 可謂人鍾之大者. 故曰: '天將以夫子爲木鐸.', 韓愈氏以爲'其聲大而遠.', 其信然矣. 自是以後, 群賢哲之鍾, 若大若小, 雖有不同, 就其大者而言之, 三綱八條, 一誠三德, 明道學之準的者, 曾思之鍾也. 遏欲存理, 閑聖闢異, 七篇雄辯, 煌煌百世者 孟子之鍾也. 啓言湮於太極之圖, 訂群頑於〈西銘〉之作, 周張之鍾也. 得不傳於遺經, 洙泗之統復續, 折衷百家之論, 經傳之旨, 日星乎天者, 程朱之鍾也, 至若徹道源而抱王佐, 秉《春秋》而正人心者, 栗尤其鍾, 爲左海孔朱也. 後栗尤而鳴乎近世者臼山翁, 尊德性破心宗之鍾是已. 聲遠頎然而秀, 才敏而志敦, 聲氣淸和可樂, 豈終作小器者哉? 今其所讀者孔孟程朱栗尤之書也, 所私淑者臼山翁之旨敎也, 吾望其鎔鑄乎古人之模範, 而厚積乎虛受之中, 發之爲洋洋昌言, 渢渢文章, 當此乾坤長夜, 萬姓昏夢之日, 鏘鏘然一撞淸晨洪鍾於百尺樓上, 嘹喨聲聲, 遠逮乎六洲八宇, 喚醒天下人聾聵者, 將有日也, 方且向風側耳而俟之. 雖然, 吾嘗聞之, 眞正英雄從戰兢臨履上, 做來雷聲之發, 未嘗不自淵默中出, 此又非洪其鍾遠其聲者之所當知乎? 戰兢淵默四字中, 蓋自有無限事在, 而向所謂範古而積厚者, 非此乎? 聲遠乎! 勉哉! 剛其體宏其中而充其量, 勿自戕其器而少之. 孔子不云乎? '立身揚名以顯父母.'. 詩不云乎? '永言配命, 自求多福.'. 配命成身, 垂令聞而顯親, 天斯錫其祚矣. 故於聲遠之冠而字也, 作此說而勖之, 用替眉壽景福之賓祝.". 하늘이 …… 것이다 《논어》 〈팔일(八佾)〉에 의(儀) 땅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와 공자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무도해진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하였다. 그 …… 들렸다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한유가 말하기를 "주(周)나라가 쇠퇴해지자 공자의 무리들이 소리를 냈으니, 그 소리가 크게 멀리 들렸다.[周之衰, 孔子之徒鳴之, 其聲大而遠.]"라고 하였다.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 《대학》의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이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일성(一誠)과 삼덕(三德) 성은 《중용》의 핵심이고, 세 가지 덕은 《중용장구》 제20장에 "지, 인, 용 이 세 가지는 천하의 공통된 덕이다.[智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인욕을 …… 것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맹자가 호색(好色)하는 마음이 왕도정치와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설득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집주에서 맹자의 이와 같은 대답은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라고 해석하였다. 선성(先聖)의 …… 웅변(雄辯):《맹자(孟子)》를 말하며, 7편(篇)은 《맹자》의 ①〈양혜왕 상(梁惠王上)〉·〈양혜왕 하(梁惠王下)〉, ②〈공손추 상(公孫丑上)〉·〈공손추 하(公孫丑下)〉, ③〈등문공 상(藤文公上)〉·〈등문공 하(藤文公下)〉, ④〈이루 상(離婁上)〉·〈이루 하(離婁下)〉, ➄〈만장 상(萬章上)〉·〈만장 하(萬章下)〉, ➅〈고자 상(告子上)〉·〈고자 하(告子下)〉, ⑦〈진심 상(盡心上)〉·〈진심 하(盡心下)〉 편을 말한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자는 무숙(茂叔)이고 시호는 원공(元公)이다. 그가 염계(濂溪)에 살았으므로 염계 선생이라고도 한다. 이학(理學)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다. 수사(洙泗)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있는 두 개의 강 이름이다. 공자가 이 사이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하여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뜻한다. 구산옹(臼山翁) 구산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호이다. 범범(渢渢) 중용(中庸)에 맞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 29년 조에 춘추 시대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위(魏)나라의 시를 듣고 말하기를 "범범하다. 크면서도 요약되고 검소하여 행하기 쉽다.[渢渢乎! 大而婉, 險而易行.]"라고 하였고, 두예(杜預)는 주에서 '범범'을 '중용의 소리[渢渢, 中庸之聲.]'라고 풀이하였다. 장장(鏘鏘) 맑고 높은 소리를 말한다. 전긍임리(戰兢臨履)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심연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말한 것에서 나온 것으로, 매사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이 몸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입신출세하고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이 나온다. 길이 …… 길이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에 합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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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을 먹는 것에 대한 설 【1926년】 啖松說 【丙寅】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캤다.154)'라는 말이 경전에 보이지 않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있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기도 하고, 반면에 그 믿음이 너무 깊어 꾸짖기를 매우 가혹하게 하는 자는 심지어 백이 숙제가 주나라의 풀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결론적으로 모두 사리에 통달한 의론이 아니니, 경전에 없다고 문득 의심한다면 《사기》는 지을 필요가 없고, 《사기》를 온전히 믿는 것은 또한 《사기》가 없는 것만 못하다. 대개 먹지 않은 것은 주(周)나라의 녹이며 주나라의 곡식이 아니다. 곡식을 먹는 것도 해될 것이 없는데 하물며 풀이겠는가. 사람이 콩과 곡식이 아니면 살 수 없는데, 고사리를 항상 먹을 수 있겠는가. 의심하고 믿는 사이에 백이와 숙제의 심사(心事)를 알 수 있다.그러나 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뿌리, 줄기, 껍질, 잎은 어느 것인들 마땅하지 않겠는가마는, 반드시 맛이 쓴 고사리를 먹고, 캔 것은 반드시 고사리이며, 수양산(首陽山)에서 생산되어야 거기에 맞다고 취하며, 또 기꺼이 다른 물건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아! 돌아보건대, 지금이 어떤 때인가. 도적에게 아부하여 양식을 먹고 사는 자들은 살이 쪄서 돼지처럼 비대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얗게 말라 죽은 누에처럼 굶주려 얼굴이 누렇게 떠있다. 그리고 선비 중에 더욱 심한 자는 자신의 고갈된 재원 때문에 식도(食道 음식의 도)를 끊고 자신을 해치기도 하니, 이는 백이와 숙제의 절개를 기다릴 것도 없고 스스로 어쩔 수 없이 초목(草木)을 먹어야 한다.내가 근년에 산재(山齋)에 여러 번 여행했었는데 도처에 만 그루의 소나무 숲이 있었다. 일찍이 듣건대 솔잎을 복용하면 사람에게 몸을 가볍게 하고 기를 보하며, 심장을 깨끗이 하고 졸음을 적게 하며, 중풍을 치료하고 습기를 제거하며, 담(痰)을 제거하고 해충을 죽이며, 장부(臟腑)를 편안히 하고 근골(筋骨)을 튼튼하게 한다고 하니, 진실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약(良藥)이다. 무엇보다 흉년에 요기(療飢)할 수 있고, 먼 길에 양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정작 오늘날 우리가 한없이 크게 사용하는 것이다.그래서 한가할 때 한 번 시험 삼아 복용해 보았다. 매번 먹을 때 조금씩 잘게 썰어 두세 숟가락을 입에 넣고 맑은 물을 마시고 삼켜 넘기자, 시원하게 장에 있는 찌꺼기가 씻어지는 것 같았고, 펄펄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과연 때가 지났는데도 배고프지 않았으니, 궁하여 굶주린 자에게 잠깐의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어서 전에 들었던 것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되었다. 이에 동지들에게 고하기를 "사람은 이미 백이와 숙제가 아니고 지역도 수양이 아니지만, 솔잎과 고사리를 똑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동일하다. 게다가 쓴 것을 먹는 것과 항상 먹지 못하는 근심이 없고, 삶을 지키고 병을 제거하는 유익함이 있다. 이것은 사람은 비록 같지 않지만 물건은 다시 도리어 나으니, 어찌 우리들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또 한 가지 말할 것이 있으니, 맹자가 말하기를 '백세 위에 분발하거든 백세의 아래에서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다.155)'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감히 '진실로 능히 저들의 음식을 먹지 않고 이 솔잎을 먹는 자들은 처음부터 백이와 숙제의 풍도(風度)를 듣지 못한 자가 아니다.156)'라고 말하겠다. 동지들이여, 힘써 노력하라!"라고 하였다. 夷齊採薇, 經傳無見, 有疑馬《史》之非其實者, 其信太深責太苛者, 至有愧食周草之語, 要之俱非通論, 無經傳而輒疑之, 《史》可以無作, 盡信《史》又不如無《史》. 蓋所不食者周祿也, 非粟也. 粟且無傷, 況乎草乎? 人非菽粟, 不生, 薇可以常食乎? 疑與信之間, 可以知夷齊之心與事矣. 然獨疑根莖皮葉, 何所不宜, 而必味苦之薇, 採爲是必薇, 爲首陽之産而取其適然, 又不肯屑屑求他物爾. 噫! 顧今日何日也? 惟附賊食料者, 腯腯然豕肥, 餘皆頷頷然蠶殭, 而士尤甚焉者, 以彼竭財源絶食道而魚肉我也, 是不待有夷齊之節, 而自不得不草木食矣. 余比年多旅山齋, 到處是萬株松林中, 嘗聞服松葉, 令人輕身益氣, 淸心少睡, 治風去濕, 消痰殺蟲, 安臟腑壯筋骨, 誠不費之良藥, 最是荒年可以療飢, 遠路可以代粮者, 正作吾人今日無量大用. 故閒嘗試服, 每食少遠細切, 數匙納口, 飮淸水呑下, 灑灑然腸滌塵, 習習然腋生風, 旣而腹果然過時不乏, 可供窮餓者間助, 而信前聞之不誣也. 乃告同志曰: "人旣非夷齊, 地又非首陽, 松與薇均爲可食則同. 且無味苦不常食之患, 而有衛生去疾之益, 是則人雖不倫, 物復反勝, 詎非吾人福幸? 抑有一焉, 孟子曰: '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其風者, 莫不興起.'. 吾於是敢曰: '苟能不食彼食而啖此松者, 未始非聞夷齊之風者也.'. 同志乎! 勉乎哉!". 백이(伯夷)와 …… 캤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무왕이 이미 어지러운 은나라를 평정하자 천하가 주나라를 숭상하였는데,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서 먹고 살다가 아사(餓死)하였다.[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隠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백세 …… 없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백세 위에 분발하거든 백세의 아래에서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라는 말이 나온다. 백이와 …… 아니다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에서 맹자가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뜻을 세우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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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 溪隱說 【丁亥】 객이 나를 찾아와 묻기를 "공자가 말하기를 '천지가 닫히면 현인(賢人)이 은둔한다.146)'고 하였고, 또 '은거하여 그 뜻을 구하고, 나는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147)'라고 하였다. 현인이 이미 세상에 항상 있지 않고 그러한 자를 또 볼 수 없다면, 이른바 '은자(隱者)'라는 것이 어찌 지극히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근세 이후로 사대부를 배우는 사람으로부터 서민과 시정인(市井人)에 이르기까지 '은(隱)'을 표방하는 자가 많은가."라고 하기에, 내가 이를 위해 알아듣도록 타일러 말하기를 "이는 그 설을 얻을 수 있지 있지 않겠는가. 현인이 비록 항상 있지 않다고 하지만, 《논어》에서 '태사(太師) 이하 8인이 제(齊)나라로 가고 한(漢)나라로 들어갔다는 것148)과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라는 것149)'으로 본다면, 당시에도 이미 많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일세(一世)의 현재(賢才)가 될 만하였으니, 아마도 반드시 성인에 버금가는 대현(大賢)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라고 한 것은 '의를 행하며 그 도를 행한다.'라는 것을 모두 들어서 말한 것이고, 다만 은거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표방하고 스스로 자랑하여 실상 없이 이름을 훔친 자는 진실로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말세에 태어나서 마음으로 옛것을 보존하고 사모하는 것은 현인의 덕이며, 구하는 것은 도의(道義)의 뜻이지만 몸이 이미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면, 처한 곳에 따라 '은'으로써 스스로 이름하는 것이 어째서 불가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질문한 자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깨닫고 말하기를 "예예. 이는 《논어》를 숙독하지 못한 잘못이다. 만일 이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시냇가에 지내면서 '계은(溪隱)'으로 일컫는 부풍(扶風 부안(扶安))의 김공 같은 자가 어찌 그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바로 나의 뜻이다. 이 김공은 모습은 예스럽고 마음은 도타워 남과 다툼이 없고, 성품은 경적(經籍)을 좋아하며, 덕은 향당에서 신임을 받고 있으니, 비록 옛날 8인과 7인의 부류와 견주더라도 누가 낫고 못한가. 말세에 위학(僞學)으로 함부로 차지한 탐욕스런 자들이 부끄러워 죽게 할 바를 알게 할 수 있으니, 참으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客有過余而問者曰: "孔子曰: '天地閉, 賢人隱.', 又曰: '隱居以求其志, 吾未見其人.'. 賢人旣世不常有, 其人者又不可見, 則所謂隱者, 豈非至難做底事乎? 而夫何近世以來, 自學士大夫至匹庶市井, 以隱標榜者之多也.". 余爲之解而喩之曰: "是不可以得其說乎? 賢人雖曰不常有, 以《論語》所稱大師以下八人適齊入漢及作者七人而觀之, 則在當時亦已多矣. 蓋皆足爲一世之賢才, 豈必謂亞於聖人之大賢也? 至於吾未見其人, 則幷擧行義以達其道而言, 非但指隱居者也. 夫世之標榜自衒, 無實盜名者, 固不足道, 若乃生乎叔季而心存古昔, 所慕者賢人之德, 所求者道義之志, 身旣不出, 則隨所處而以隱自名, 有何不可?". 問者幡然悟曰: "唯唯. 是不熟讀《論語》之過也. 苟以是也, 他不暇言, 如扶風金公之居乎溪而謂溪隱, 豈非其人耶?". 余曰: "正吾意也. 是公也貌古而心厚, 與物無競, 性好經籍, 德孚鄕黨, 雖視古八人七人者流, 孰爲優劣? 而足使末劫僞學貪漢之冒居者, 知所愧死, 則信其無辭也.". 천지가 …… 은둔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온다. 은거하여 …… 못했다 《논어》 〈계씨(季氏)〉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은거하여 그 뜻을 구하고, 의를 행하며 그 도를 행하는 것을 나는 그러한 말만 들었고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라고 하였다. 《논어》에서 …… 들어갔다는 것 《논어》 〈미자(微子〉에 "태사 지는 제나라로 가고, 아반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료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결은 진나라로 가고, 북을 치는 방숙은 하내로 들어가고, 소고를 흔드는 무는 한중으로 들어가고, 소사 양과 경쇠를 치는 양은 해도로 들어갔다.[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 擊磬襄入於海.]"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어나 …… 사람이었다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作者七人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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