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당90) 박공께 올리는 제문 【기미년(1919)】 祭中堂朴公文【己未】 아아, 우리 박공은 嗚呼惟公,유림들 가운데 빼어난 분이셨습니다. 吾林翹特,악은 병처럼 미워하고 疾惡如厲,선은 마치 자신이 한 듯 좋아했으며91) 善若己出,학문이 깊고 문사에도 통달하여 學邃辭達,사문(斯文)의 우익이 되셨고 斯文羽翼,일의 실정을 잘 파악하여 綜覈事情,정술(政術)에도 뛰어나셨습니다. 可達政術,공의 덕을 살펴보고 이치를 헤아려 보면 諒德揆理.진실로 그에 합당한 복을 받아야 하는데 允膺厥福,어찌하여 한평생 云胡生平,온갖 고난을 겪으셨단 말입니까. 備經艱厄,원안(袁安)처럼 눈 속의 추위를 맛보며92) 酷寒袁雪,범중엄(范仲淹)처럼 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견디고93) 永日范粥,봉산(蓬山)의 바람과 영주(瀛州)의 물을 건너며 蓬風瀛水,구름과 부평초처럼 떠돌며 사셨습니다. 雲蹤萍跡.하늘의 복록이 이처럼 얇았으면 旣薄其祿,수명은 마땅히 두터웠어야 하건만 壽宜不嗇,이제 중년인 55세94)에 中身有五,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遽見折輻.푸르고 푸른 저 하늘이여 蒼蒼者天,누가 일을 주관하는 것입니까. 孰秉其軸,복록과 재앙을 잘못 내린 것이 祥殃錯降,어제 오늘이 아니었으니 匪今伊昔,원헌(原憲)은 굶주리고 양호(陽虎)는 배불렀으며, 餒憲飽虎,안연(顏淵)은 단명하고 도척(盜跖)은 장수하였습니다. 短淵修蹠.기나긴 천고의 세월 동안 悠悠千古,지사(志士)들이 눈물을 흘렸으니 志士涕落,어찌 유독 공에게만 胡獨於公,애석하다 탄식하겠습니까. 咄咄嗟惜.도리어 한 마디 말로 抑有一言,명부의 공을 위로하고자 합니다. 慰公冥漠,살진 고기 먹고 두꺼운 가죽옷 입으며, 肥豢厚貉,붉은 인끈 차고 흰머리로 장수 누린 사람은 紫綬黃髮,무성한 풀처럼 많고 많아서 職職芸芸,그 수를 셀 수도 없는데 厥麗不億,황천에 묻힌 뼈가 다 썩어 가도록 骨朽黃壤,이름도 없이 긴 밤처럼 적막합니다. 長夜寂寞.그런데 우리 박공께서는 豈若吾公,돌아가신 뒤에 명성이 혁혁하니 身後名赫,하늘이 정해준 뜻을 여기서 압니다 天定乃諶,누가 성공했고 누가 실패했는지. 孰得孰失,아, 못난 저를 嗚呼無狀,다행히 공께서는 알아봐 주시어 幸爲公識,대단히 많은 은덕을 내리셨고 蒙賜孔厚,분에 넘치게 인정해주셨습니다. 許己亦切,사람들은 공께서 거칠다 의심했지만 人疑公麤,저는 희고 곧은 분임을 믿었으며 我信白直,사람들은 공의 문식(文飾)을 좋아했지만 人悅公文,저는 공께서 꾸미지 않음을 좋아했습니다. 我喜不飾.제가 집안일에 얽매였을 때 我縶家務,공께서 자식의 직분이라 말씀해 주었고, 公曰子職,저의 주장을 사람들이 그르다고 할 때 我論人否,공께서는 때때로 수긍하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公或肯諾,공께서 낭주(浪州, 전북 부안)에 계실 때 公在浪州,제가 서쪽의 공을 뵙고자 갈망하는 참이면 我想西渴,공께서는 이미 동쪽으로 건너와서 公旣于東,저에게 귀한 백붕(百朋)을 주셨습니다.95) 百朋我錫.공께서 서쪽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見公還西,제 마음 아쉽고 서글펐는데, 我心戚戚,제가 이제 공의 마을에 찾아오니 我來公鄕,공께서는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公入眞宅,사람의 일은 이처럼 어긋나기 십상이니 人事參差,그것을 누가 헤아려 알겠습니까. 疇能測度.지난 해 제 아들 관례 날은 客歲兒冠,공께서 길일을 점찍어 주셨습니다. 筮公維吉,그 때 날씨가 차갑고 于時天沍,비와 눈이 오락가락하였는데, 載雨載雪,공께서는 당신 말을 믿으라며 公謂不信그냥 가자 하셨습니다.96) 若車無軏,진창길을 출발하여 泥濘戒行,칠흑 같은 밤에 고생하며 왔는데 顚倒夜黑,다음날은 날씨가 맑아지고 翌朝淸佳,술과 안주가 맛있고 깔끔하였습니다. 酒旨薦潔.관례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 禮成告歸,다시 만날 날을 손꼽았는데, 後會指日,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때의 작별이 孰謂此別,저승과 이승으로 영원히 갈라질 줄을. 幽明永隔.이산(梨山)97)의 가을 밤에 梨山秋夜,촛불 아래 정담 나누었고, 話心剪燭,두승산(斗升山)98)에 맑은 바람 불 때 斗嶽淸風,주고받은 시가 편지에 넘쳐났습니다. 唱和溢牘.이번 생에 이러한 즐거움 此生此樂,다시 이을 날 없으니 無日再續,예와 지금을 생각하면 俯仰今昔,어찌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寧不忉怛.뛰어난 기상은 傑然之氣,세속을 훌쩍 뛰어넘었고 邁越流俗,대범하고 씩씩한 논변은 雄辯偉論,황하를 매달고 장강을 터놓은 듯하였고 河懸江決.문장은 북두성과 같이 星斗之文,그 빛이 찬란하였으니 爛然厥色,이 세상을 다 둘러보아도 環顧斯世,어디에서 다시 만나겠습니까. 於何復覿.저는 세도(世道)를 위해서 我爲世道,슬픔이 너무나도 간절한데, 尤切傷盡,글은 말을 다 못 담아내고 文不盡辭,말은 생각을 다 못 나타냅니다. 辭不盡臆.공의 밝은 혼령이시여 公靈於昭,저의 붉은 마음 살펴주소서! 鑑我衷赤. 嗚呼惟公, 吾林翹特, 疾惡如閭5), 善若己出, 學邃辭達, 斯文羽翼, 綜覈事情, 可達政術, 諒德揆理, 允膺厥福, 云胡生平, 備經艱厄, 酷寒袁雪, 永日范粥, 蓬風瀛水, 雲蹤萍跡, 旣薄其祿, 壽宜不嗇, 中身有五, 遽見折輻, 蒼蒼者天, 孰秉其軸, 祥殃錯降, 匪今伊昔, 餒憲飽虎, 短淵修蹠, 悠悠千古, 志士涕落, 胡獨於公, 咄咄嗟惜, 抑有一言, 慰公冥漠, 肥豢厚貉, 紫綬黃髮, 職職芸芸, 厥麗不億, 骨朽黃壤, 長夜寂寞, 豈若吾公, 身後名赫, 天定乃諶, 孰得孰失, 嗚呼無狀, 幸爲公識, 蒙賜孔厚, 許己亦切, 人疑公麤, 我信白直, 人悅公文, 我喜不飾, 我縶家務, 公曰子職, 我論人否, 公或肯諾, 公在浪州, 我想西渴, 公旣于東, 百朋我錫, 見公還西, 我心戚戚, 我來公鄕, 公入眞宅, 人事參差, 疇能測度, 客歲兒冠, 筮公維吉, 于時天沍, 載雨載雪, 公謂不信, 若車無軏, 泥濘戒行, 顚倒夜黑, 翌朝淸佳, 酒旨薦潔, 禮成告歸, 後會指日, 孰謂此別, 幽明永隔, 梨山秋夜, 話心剪燭, 斗嶽淸風, 唱和溢牘, 此生此樂,無日再續, 俯仰今昔, 寧不忉怛, 傑然之氣, 邁越流俗, 雄辯偉論, 河懸江決, 星斗之文, 爛然厥色, 環顧斯世, 於何復覿, 我爲世道, 尤切傷盡, 文不盡辭, 辭不盡臆, 公靈於昭, 鑑我衷赤。 중당 박수(朴銖 1864~1918)를 말하는데,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형부(衡夫), 호는 중당(中堂)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문집 《중당유고(中堂遺稿)》가 있다. 악은……좋아했으며 《명심보감(明心寶鑑)》〈입교(立敎)〉에 "선을 보거든 내게서 나간 것같이 하며, 악을 보거든 내가 병든 것같이 하라.[見善如己出, 見惡如己病。]"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보면 '려(閭')는 '려(厲), 려(癘)'의 오사(誤寫) 가차자로 볼 수 있다. 원안(袁安)처럼……맛보며 원안은 후한(後漢)의 유명한 재상이다. 원안이 미천했을 때, 한번은 낙양(洛陽)에 큰 눈이 와서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눈을 치우고 걸식(乞食)하는데, 원안의 집만 유독 눈도 치우지 않은 채 방 안에 드러누워 있으므로, 사람을 시켜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원안이 말하기를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남에게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大雪人皆餓, 不宜干人。]"라고 하므로, 낙양 영이 그를 어질게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범중엄(范仲淹)처럼……견디고 범중엄이 죽그릇을 만들어 가운데를 나눈 다음 죽 한 그릇을 가지고 반은 아침에 나머지 반은 저녁에 먹었다. 55세 《서경》〈무일(無逸)〉에 "문왕이 천명을 받은 것이 중년이었는데, 나라를 향유한 것이 50년이었다.[文王受命, 惟中身, 厥享國, 五十年。]" 하였다. 여기서 중신은 중년과 같은 말로 50세를 말한다. 원문에 '유오(有五)'를 55세로 풀이하였다. 백붕을……주셨습니다 《시경》〈청청자아(菁菁者莪)〉에 "무성하고 무성한 새발쑥이여, 저 언덕 가운데 있도다. 이미 군자를 만나 보니 나에게 백붕을 준 듯하여라.[菁菁者莪, 在彼中陵, 旣見君子, 錫我百朋。]"라고 하였다. 백붕(百朋)은 많은 재화를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좋은 시를 지어주었다는 뜻으로 사용한 듯하다. 공께서……하셔서 원문의 '不信若車無軏'는 '믿음이 없으면 수레에 멍에막이[軏]가 없는 것과 같다(아무 일도 할 수 없다)'로 즉, '내 말을 믿으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논어ㆍ위정(爲政)》에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알 수 없다. 큰 수레에 수레채마구리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막이가 없으면, 어떻게 길을 갈 수 있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하였다. 이산(梨山)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산 이름이다. 두승산(斗升山) 전라북도 정주시 고부의 진산이다. 閭 불분명한 저본의 자형이 '려(閭)'와 유사한데, 의미관계상 질병을 뜻하는 '려(癘), 려(厲)'의 오사(誤寫) 가차자인 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