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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의 시에 차운하다 次汝安 집안 번창과 세도 부지는 근본을 회복함에 있으니 昌家扶世在還元뿌리가 견고하면 지엽이 번성함을 보리라 根固從看枝葉繁아위의 싯구를 폐한 지도 이미 이십년378) 已廢卄年莪蔚句삼십리 길 고향379) 마을 서로 그리워하구나 相思一舍梓桑村정문의 이자380)처럼 되기는 참으로 어려우나 程門二子眞難得한대의 쌍방381)은 오히려 논해보고 싶구나 漢代雙方尙欲論너와 내가 매진해 서로 권면의 말을 하고 我邁爾征交勉語완구382)의 지극한 뜻을 새겨서 익혀야 하리 宛鳩至意可尋溫 昌家扶世在還元, 根固從看枝葉繁.已廢卄年莪蔚句, 相思一舍梓桑村.程門二子眞難得, 漢代雙方尙欲論.我邁爾征交勉語, 宛鳩至意可尋溫. 아위의……이십년 부모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원문의 '아위(莪蔚)'는 《시경》 〈육아(蓼莪)〉 시에 "길고 큰 아름다운 쑥이라 여겼더니, 아름다운 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로다.[蓼蓼者莪, 匪莪伊蔚.]"라고 한데서 인용한 것으로, 돌아가신 부모를 슬퍼하는 시이다. 진(晉)나라 왕부(王裒)가 이 시의 '슬프다 우리 부모, 나를 낳아 얼마나 고생하셨나.[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참형을 당해 죽은 부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수업을 받는 문인들이 〈육아〉를 폐(廢)했다고 한다. 《晉書 卷88 王裒列傳》 삼십리 길 고향 원문의 '일사(一舍)'는 삼십리 거리를 말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28년 조에 "삼사를 후퇴해 피하는 것은 그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退三舍辟之, 所以報也.]"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에 "일사는 30리이다.[一舍三十里.]"라고 하였다. 또 원문의 '재상(梓桑)'은 《시경》 〈소반(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부모가 살던 고향을 뜻한다. 정문의 이자[程門二子] 북송의 대학자인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를 말한다.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일컬어지며 존경 받았다. 그들의 사상은 주자에게 전해져 성리학의 정초(定礎)가 되었다. 한대의 쌍방[漢代雙方] 후한(後漢) 말 진식(陳寔)의 큰아들 진원방(陳元方)과 넷째 아들 진계방(陳季方)을 가리킨다. 이 형제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통곡하다가 피를 토하고 기절하였다. 예주 자사(豫州刺史)가 그 상황을 위에 아뢰면서 그림을 그려 올리자, 여러 성에 그 그림을 걸어 놓고서 풍속을 가다듬게 하였다. 《後漢書 卷62 陳寔列傳》 완구(宛鳩) 《시경》 〈소완(小宛)〉에 "작은 저 명구여, 날아 하늘에 이르도다. 내 마음 근심하니, 옛 선인을 생각하노라.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여, 부모님 두 분을 그리노라.[宛彼鳴鳩, 翰飛戾天. 我心憂傷, 念昔先人. 明發不寐, 有懷二人.]" 하였는데,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형제간에 서로 화(禍)를 면하도록 경계하고, 그로 인해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느라 날이 밝도록 잠들지 못한다는 뜻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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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심연(宋心淵) 병석(秉錫)의 자사(字辭) 【병인년(1926, 대한민국8)】 宋心淵【秉錫】字辭 【丙寅】 《시경》에 군자를 찬탄하기를 詩讚君子,품은 마음이 깊은 못을 채운다네,288) 秉心塞淵,나 이제 송병석에게 維宋秉錫,삼가 심연(心淵)으로 자를 주네. 余欽心淵.사람의 마음 일정치 않아 人心莫定,하늘을 날고 못에 빠지니, 飛天淪淵,어떻게 그 마음을 지닐까 秉之若何,심연(深淵) 가에 선 듯 조심조심. 戰兢臨淵.증자(曾子)는 하루 세 가지 반성하고289) 三省有輿,안연(顔淵)은 비례(非禮) 넷을 하지 않았네.290) 四勿是淵,이러한 공부가 지극함에 이르러 厥功斯至,참으로 성실하고 진실로 깊으면 允塞允淵,차츰차츰 순조로이 큰 덕을 이루리니 馴致盛德,심연(心淵)은 심연(深淵)처럼 깊고 넓으리. 淵淵其淵. 詩讚君子, 秉心塞淵, 維宋秉錫, 余欽心淵。 人心莫定, 飛天淪淵, 秉之若何, 戰兢臨淵。 三省有輿, 四勿是淵, 厥功斯至, 允塞允淵。 馴致盛德, 淵淵其淵。 품은……채운다네 《시경(詩經)》 〈정지방중(定之方中)〉편에 "그 마음 가짐 착실하고 깊어서, 큰 암말이 삼천 필이나 되네."[秉心塞淵, 騋牝三千。]라는 구절이 있다. 증자는……반성하고 《논어》 〈학이(學而)〉 편에 증자가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며 충성을 어겼는가? 벗과 사귀며 믿음을 어겼는가? 배워 얻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한 구절이 있다. 안연……하지 않았네 《논어》 〈안연(顔淵)〉 편에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네 조목으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이라 한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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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률 관술 자사 【무진년(1928)】 金而栗【寬述】字辭 【戊辰】 상고해보면 옛 도통은 稽古道統,우순(虞舜)의 조정에서 시작되었고 虞廷自出,하우(夏禹)에게 전하며 爰命伯禹,집중(執中)과 정일(精一)을 명하였네. 執中精一.자식에게 넘겨주는 가르침에도 亦越敎子,너그러움과 엄숙함이었고 惟寬而栗,그 중도(中道)를 본받고 헤아려 用擬厥中,크고 작음 따라 분별하였네. 小大若別.만약 그 몸을 온전히 갖추면 苟全其體,함께 참된 비결로 돌아가리니 同歸眞訣,견강(堅强)하면 엄숙히 삼갈[栗] 것이고 堅强者栗,광대(廣大)하면 관대히 늦출[寬] 것이네. 廣大則寬.선비는 넓고 굳셈이 의당하다 士當弘毅,공자 문하에 세운 가르침이니, 立敎孔門,전후의 여러 성인들 前聖後聖,그 법도는 모두 같네. 其揆同然.정직하고 온화함 견강하고 간소함 直溫剛簡,나란히 함께 논하는데 雖則幷論,잘 추연하여 크게 쓰고 善推大用,잘 견주어 제 몸에 맞추라. 此較切身.동족의 아우 관술(寬述)은 族弟寬述,천성이 관후하고 화평하여 天性寬和,관후함에 관(寬)자 이름으로 받아 命寬于寬,물에 물을 다시 보탰는데287) 水水相加,자로써 그것을 건져내니 字以濟之,이률(而栗)이 매우 아름답네. 而栗孔嘉.관대히 늦추면서 엄숙히 삼가지 않으면 寬而不栗,그 병통은 어디에 있을까? 厥病在何,이를 일러 한갓된 넓음이라 하고 是謂徒弘,굳센 기강 없어 바로 서기 어려우니 無毅難立.의리를 생각하며 제 몸을 살펴보아 思義省躬,어쩌다가 못 미치는 일 없이 하라. 罔或不及.조심조심 삼가고 두려워하며 夔夔齊栗,순(舜)임금은 아버지를 섬기었고 舜之事親,벌벌 떨며 겁먹어 두려워하며 栗栗危懼,탕(湯)임금은 인민을 다스렸네. 湯之治民.나는 이를 추연하고 유추하여 我其推類,크고 작은 모든 일을 한결로 하리라. 巨細惟均.조금씩 순조롭게 성대한 덕 이루며 馴致盛德,공순(恭順)하고 엄격한 그 사람 恂栗其人,그 모습 옥과도 닮았네 有玉可譬,부드러움과 단단함을 함께 가졌네. 溫栗兼全. 稽古道統, 虞廷自出, 爰命伯禹, 執中精一。 亦越敎子, 惟寬而栗, 用擬厥中, 小大若別。 苟全其體, 同歸眞訣, 堅强者栗, 廣大則寬。 士當弘毅, 立敎孔門, 前聖後聖, 其揆同然。 直溫剛簡, 雖則幷論, 善推大用, 此較切身。 族弟寬述, 天性寬和, 命寬于寬, 水水相加。 字以濟之, 而栗孔嘉, 寬而不栗, 厥病在何。 是謂徒弘, 無毅難立, 思義省躬, 罔或不及。 夔夔齊栗, 舜之事親, 栗栗危懼, 湯之治民。 我其推類, 巨細惟均, 馴致盛德, 恂栗其人。 有玉可譬, 溫栗兼全。 물에……보탰는데 천성도 물처럼 너그러운데 이름도 물같이 너그러운[寬] 글자를 지었음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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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손통론 【1908년】 叔孫通論 【戊申】 근씨(靳氏 근재지(靳裁之))가 말하기를 "선비의 등급에 세 가지가 있으니, 도덕(道德)에 뜻을 둔 자는 공명(功名)이 그 마음을 괴롭힐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이는 부귀(富貴)가 그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며, 부귀에만 뜻을 둔 자는 못하는 짓이 없다.209)"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말한 고루한 사람이다. 한(漢)나라의 숙손통(叔孫通)210)이 예악(禮樂)을 만들려고 할 때 이를 따르지 않는 노(魯)나라 유생들에 대해 고루한 선비라고 하였는데, 내 입장에서 논하면 노나라 유생들이 고루한 선비가 아니고 숙손통이 고루한 선비이다.도학(道學)이 쇠퇴한 때로부터 열국(列國)의 시대에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여 좋은 값에 팔려 하고, 무덤가에서 구걸하면서 배불리 먹는 선비가 서로 이어졌다. 아침에는 위(魏)나라에서, 저녁에는 진(秦)나라에서 신하가 되고, 오늘은 제(齊)나라를, 다음 날은 초(楚)나라를 섬겼으니, 그 권모(權謀)와 변설(辯說)하는 무리를 진실로 도리로 일일이 꾸짖을 수 없다.숙손통 같은 경우에는 성현의 글을 외우고 본받은 몸으로서 분서갱유(焚書坑儒)한 조정을 섬겨서 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하는 아부의 말을 바치고211), 유관(儒冠)에 오줌을 눈 자에게 굽혀212)서 초(楚)나라 복식의 짧은 옷으로 바꿔 입었으니213), 구차하게 녹과 이익을 향해 쫓아가는 것이 파리가 냄새를 맡고 개가 쌀겨를 핥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진나라에 아부하여 그것을 얻었고, 끝내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면 초나라로 돌아갔으며, 초나라에서 얻지 못하면 또 한나라로 돌아갔다.'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한다.'는 말을 보니, 생사(生死)가 앞에 닥치면 부(父)와 군(君)을 시해할지라도 장차 좇을 것이고, '초(楚)나라 복식의 짧은 옷으로 바꿔 입었다.'는 행위를 보니, 부귀(富貴)를 얻을 수 있다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좌임을 하는 오랑캐의 풍습을 따를지라도 꺼리지 않을 것이니, 조금 전에 이른바 '비루한 사람은 못하는 짓이 없는 자이다.'라고 한 것은 숙손통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노나라 유생이 '공이 열 명의 임금을 섬기고, 면전에서 아첨하여 귀함을 얻었다.'라고 꾸짖은 것은 바로 죄를 헤아려 범죄의 실정을 알아낸 것이다. 그가 만일 양심이 있다면 장차 부끄러워 죽을 겨를도 없을 것이거늘 도리어 고루한 선비라 이르고 이들을 비웃었다. 이는 노나라 유생이 시세를 쫓지 않으려는 것이 고루함이 되는 줄만 알고, 자신의 더러운 행실이 고루함이 되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또한 우습지 않은가.이 때문에 나는 "숙손통이 예악을 제정하는 것은 바로 백정의 집에서 예불(禮佛)하고, 기생의 집에서 《예기(禮記)》를 읽는 것이다."라고 하겠다. 아! 선유(先儒) 중에 숙손통을 도적 같은 선비로 여기는 자가 있으니, 내가 도적 같은 선비에 대해서 또 무슨 논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다만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숙손통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한 일을 생각했으며, 예를 만들고 진퇴를 시세의 변화에 맞추어 마침내 한나라 유학의 종정[儒宗]이 되었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길은 원래 구불구불한 것이니, 아마 숙손통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214)"라고 하였다.그래서 내가 태사공의 잘못된 장려를 괴이하게 여겼으니, 분서갱유한 진나라를 섬기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말을 바친 자를 유종(儒宗)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진나라를 섬겼다가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겼다가 아침에는 한나라를 섬긴 자를 유종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법복(法服)을 버리고 짧은 옷을 입은 자를 유종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 동중서(董仲舒)215)와 유향(劉向)216) 등 제유(諸儒)도 그를 높여서 한나라의 유종으로 삼았는지 모르겠다.나는 후세 사람들 가운데 시세(時勢)를 바라면서 행동이 개나 돼지와 같은데도 스스로 법도를 제정하여 천하에 이익과 혜택을 준다고 여기며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실로 태사공이 숙손통을 칭찬한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이러한 것을 논한 것은 숙손통 때문이 아니고 태사공 때문이다. 靳氏有言曰: "士之品有三, 志於道德者, 功名不足以累其心, 志於功名者, 富貴不足以累其心, 志於富貴而已者, 則亦無所不至而已矣.", 孔子所謂鄙夫也. 漢之叔孫通, 欲制禮樂, 以魯生之不從謂鄙儒, 以余論之, 魯生非鄙儒, 通眞鄙儒也. 夫自道學衰, 列國之世, 衒玉求售, 乞墦求飽之士, 踵相尋也. 朝臣於魏而夕於秦, 今日事齊而明日於楚, 彼權謀辯說之徒, 固未可一一責之以道. 至若通以誦法聖賢之身, 事焚書坑儒之朝, 而獻鼠竊狗盜之諛, 屈於溲溺儒冠之人, 而變短衣楚製之衣, 苟趨祿利, 若蠅之逐臭, 犬之䑛糠. 其未得之也, 諛於秦而得之, 恐其不得於終則歸於楚, 不得於楚, 而又歸漢. 觀鼠竊狗盜之語, 則苟死生逼前, 雖弑父與君, 將可從也, 觀短衣楚製之爲, 則苟富貴可得, 雖被髮左袵, 亦不憚也, 向所謂鄙夫之無所不至者, 非通之謂耶? 魯生所責公事十主, 面諛得貴之云, 正是勘罪得情, 彼苟有良心, 將愧死之不暇, 乃反謂鄙儒而笑之. 蓋徒知魯生不肯趨時之爲鄙, 而不知自己汙行之爲鄙, 不亦笑哉? 余故曰: "叔孫通之制禮樂, 乃屠家之禮佛, 娼家之讀《禮》也.". 噫! 先儒有以通爲盜儒者, 余於盜儒, 又何足論? 但太史公之言曰: "叔孫通希世度務, 制禮進退, 與時變化, 卒爲漢家儒宗, 大直若詘, 道固委蛇, 蓋謂是乎!". 余竊怪夫太史公之謬奬也, 未知事焚坑之秦而面獻阿諛者, 是可謂儒宗乎? 朝事秦而夕事楚, 夕事楚而朝事漢者, 是可謂儒宗乎? 棄法服而服短衣者, 是可謂儒宗乎? 又未知董仲舒, 劉向諸儒, 其亦尊以爲漢家儒宗乎否? 余謂後人之希覬時勢, 行同犬彘, 自以爲制定法度, 利澤天下而靦然無恥, 實自太史公贊叔孫通啓之也. 余之論此也, 非爲叔孫通也, 爲太史公也. 선비의 …… 없다 《논어집주》 〈양화(陽貨)〉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숙손통(叔孫通) 진(秦)나라 말에서 한(漢)나라 초기에 활동한 문신이다. 호는 직사군(稷嗣君)이다. 한 고조(高祖) 때 조의(朝儀)를 제정하였으며, 혜제(惠帝) 때 종묘(宗廟) 등의 의법(儀法)을 정하고 태자 태부(太子太傅)를 지냈다. 쥐가 …… 바치고 진승(陳勝)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숙손통이 이들의 무리를 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하는[鼠竊狗盜] 정도여서 근심할 것이 못 된다고 속이자 진이세(秦二世)가 기뻐하였다. 《사기》 권99 〈숙손통열전(叔孫通列傳)〉 유관(儒冠)에 …… 굽혀 《사기》 권97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 "패공이 유사를 좋아하지 않아 제객(諸客) 가운데 유관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매번 패공이 그 관을 벗기고 그 안에 소변을 보았다.[沛公不好儒, 諸客冠儒冠來者, 沛公輒解其冠, 溲溺其中.]"라는 말이 나온다. 초(楚)나라 …… 입었으니 《사기》 권99 〈숙손통열전〉에 "숙손통이 유생의 옷을 입고 있어 한왕이 몹시 싫어했다. 이에 그 옷을 바꿔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초나라의 복식이라 한왕이 기뻐했다.[叔孫通儒服, 漢王憎之. 乃變其服, 服短衣, 楚制, 漢王喜.]"라는 말이 나온다. 숙손통은 …… 것이다 《사기》 권99 〈숙손통열전〉에 나온다. 동중서(董仲舒) B.C.176?~B.C.104. 호는 계암자(桂巖子)이고, 중국 전한(前漢)의 유학자이다. 유향(劉向) B.C.77?~B.C.6. 자는 자정(子政)이고 중국 전한 시대의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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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론 하 【1944년】 正統論下 【甲申】 묻기를 "만일 중국의 백성들이 몰살되고 있는데, 이적(夷狄)201)의 임금이 들어와 주인이 되어 인과 덕으로 포악한 난을 제거하고 온 백성을 다스려 천하를 모두 소유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을 것이다. 또 선왕(先王)의 도를 준수하여 윤상(倫常)과 예악이 한결같이 바른 데서 나온다면 마땅히 정통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춘추(春秋)》의 의리가 그렇지 않은가. 이적이 중국(中國)으로 나아가면 중국으로 대우하고, 중국이 오랑캐로 들어가면 오랑캐로 대우하니202), 이것은 판단할 수 있다. 대개 중화(中華)와 오랑캐의 구분은 도와 부도(不道), 예와 비례(非禮)에 있고, 지역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늘이 낳아주고 땅이 길러주는 바이니, 천지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이 사람이다. 오성(五性)203), 칠정(七情)204), 구규(九竅)205), 백해(百骸)206)는 (이 중에서) 한쪽은 온전하고 다른 쪽을 빠진 것이 아니니, 어찌 내외와 원근의 다름이 있겠는가. 도와 예에 맞으면 비록 오랑캐의 종족일지라도 중화와 같고, 도와 예에 맞지 않으면 비록 중화의 종족일지라도 오랑캐와 같으니, 정통을 이루었는데도 오직 지역과 인종을 구별하여 인정하지 않으면 이것이 어찌 천지의 지극히 공평한 마음이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여후(女后 황후)는 어떠한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하늘이 부여한 남녀의 모습과 음양은 이미 정해졌고, 대소(大小), 장단(長短), 동정(動靜), 강약(强弱)은 원래 존비의 지위가 있는데, 어찌 여자가 장부의 위에 올라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여치(呂雉)207)와 무조(武曌)208)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뒤에 큰 변고가 될 것이니, 비록 현명하고 지혜로움이 있을지라도 지아비와 아들이 천자가 되는 것을 정당하게 보좌해야 할 뿐이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임금이 되었다면 이는 이미 큰 변고이니, 또 무슨 정통의 여부를 논하겠는가."라고 하였다. 若夫中國生靈, 盡爲魚肉, 而夷狄之君入主, 能以仁德, 除暴亂治萬姓, 而盡有天下, 衆推以爲帝矣. 又能遵先王之道, 倫常禮樂一出於正, 則當與以正統乎否? 曰: "《春秋》之義, 不然乎? 夷狄而進於中國, 則中國之, 中國而入於夷狄, 則夷狄之, 此可以斷之. 蓋華夷之分, 在於道與不道, 禮與非禮, 非以地方別也. 人者天之所生, 地之所養, 自天地而視之, 均是人也. 五性七情九竅百骸, 非一全一闕, 豈有內外遠近之殊乎? 苟合道禮, 雖夷種, 猶華也, 不合道禮, 雖華種, 猶夷也, 能正統矣, 而惟地與種是別而不與之, 是豈天地至公之心乎?". 女后則如何? 曰: "天之所賦男女之形陰陽已定, 大小長短動靜强弱, 元自有尊卑之勢, 安得以女子, 加於丈夫之上而爲主乎? 是則不待呂雉武曌, 而後爲大變也, 雖有賢智, 正當補佐夫與子之爲天子者而已. 自立爲主, 已是變之大者, 又何論正統與否?". 이적(夷狄) 동방(東方)의 오랑캐와 북방(北方)의 오랑캐를 말한다. 이적이 …… 대우하니 《고문진보전집(古文眞寶後集)》 권2 〈원도(原道)〉에서 한유(韓愈)가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제후가 오랑캐의 예법을 사용하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오랑캐가 중국으로 나아가면 중국으로 대우하였다.[孔子之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오성(五性)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가리킨다. 칠정(七情)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을 가리킨다. 구규(九竅) 사람의 몸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을 가리킨다. 백해(百骸) 온몸을 이루는 모든 뼈를 가리킨다. 여치(呂雉) ?~B.C.180. 한 고조의 황후이다. 고조를 보좌하여 진(秦)나라 말기에서 한(漢)나라 초기의 국난을 수습하였으나, 고조가 죽은 뒤 실권을 장악하여 유씨 일족을 압박하여 그의 사후에 여씨(呂氏)의 난을 초래하였다. 무조(武曌) 624?~705. 당나라 고종의 황후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제(女帝)로 고종을 대신하여 실권을 쥐고, 두 아들을 차례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성신 황제(聖神皇帝)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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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집》을 읽고 讀靖節集 담박한 정절집이요 冲淡靖節集훌륭하신 도선생이라 卓犖陶先生오직 시만 가지고 언급한 게 아니라 尙論匪直詩나는 그 불후한 이름 사랑하노라 我愛不杇名슬프다 저 유씨 집안 아이 噫彼劉家兒방자하여 하늘의 밝음 없애려 했네198) 恣縱蔑天明산하가 이미 색이 변했고 山河已改色풍요는 옛 소리 아니도다 風謠非舊聲홀로 망복의 의리199) 지니고서 獨抱罔僕義유연히 남은 세월 보냈지 悠然送殘齡울타리의 국화 가을에 시들지 않고 籬菊秋不老나물 캐서 광주리 가득 채우노라 采采盈筐傾진중하게 자양께서 붓을 들어 珍重紫陽筆한 자 한 자 후하게 평하셨지200) 一字袞褒榮인간사 지금 어느 때인가 人間今何日천 년이나 한 마음인데 千載同一情자나깨나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寤寐何能忘한밤중 꿈이 성사되기도 하니 中宵夢或成 冲淡靖節集,卓犖陶先生.尙論匪直詩,我愛不杇名.噫彼劉家兒,恣縱蔑天明.山河已改色,風謠非舊聲.獨抱罔僕義,悠然送殘齡.籬菊秋不老,采采盈筐傾.珍重紫陽筆,一字袞褒榮.人間今何日?千載同一情.寤寐何能忘?中宵夢或成. 슬프다……했네 동진(東晉) 때 유송(劉宋)에 의해 동진이 멸망한 일을 가리킨다. 망복의 의리 망국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이 되지 않으려는 절조를 말한다. 은(殷) 나라가 장차 망하려 할 무렵 기자(箕子)가 "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남의 신복이 되지 않으리라.〔商其淪喪 我罔爲臣僕〕"라는 말에서 유래함. 《書經 微子》 진중하게……평하셨지 원문 '자양(紫陽)'은 송나라 주희(朱熹)를 말한다. 그는 도연명의 사당을 따로 세울 정도로 흠모하기도 하였으며, 시 작품에도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인용하기도 했으며, 도연명의 호방한 풍격에 대해 "도연명의 시에 대하여 사람들은 모두 평담하다고들 말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호방하다. 그저 호방함을 깨닫지 못할 따름이다. 본래 모습이 드러난 것은 〈형가를 읊다〉라는 시 한 편이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언어를 말해 낼 수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시평을 하기도 했다. 《朱子語類 卷140 論文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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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삼아 어떤 사람의 시에 화답하다 처음엔 8음(音)15) 글자를 쓰고 가운데는 28수(宿)16) 글자를 쓰고 맨 뒤에는 64괘 글자를 썼다. 戲和人詩【上用八音字, 中用二十八宿字, 下用六十四卦字.】 한 말만한 금인장을 찬 오랑캐17) 몇인가 金章如斗幾侏離석우18)는 마음이 같아 가까이 할만 하네 石友同心隣可比별이 도는 생사 고깔은 세속의 시선 의심케 하고19) 絲弁轉星疑俗觀벽에 걸린 죽등은 내 스승이 되어주네20) 竹燈掛壁作吾師박이 위장을 달게 하니 몸에 피곤함 없고 匏甘腸胃身無困창우21)를 흙처럼 보니 화가 따르지 않네 土視倉牛禍莫隨혁명의 운이 규수에 모이는 걸 보려나22) 革運聚奎將見否목거사23)는 책을 보며 정도를 기르리라 木居佔畢且貞頤 金章如斗幾侏離, 石友同心隣可比.絲弁轉星疑俗觀, 竹燈掛壁作吾師.匏甘腸冒身無困, 土視倉牛禍莫隨.革運聚奎將見否, 木居佔畢且貞頣. 8음(音) 8가지 재질로 만든 악기로서 악기의 총칭을 뜻한다. 8가지 재질은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토(土)ㆍ목(木)ㆍ혁(革)ㆍ포(匏)이다. 28수(宿)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사용되어 온 황도와 천구의 적도 주변에 있는 28개의 별자리이다. 오랑캐 원문의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오랑캐를 비유한 것이다. 석우(石友) 변치 않는 돌을 벗에 비유한 것이다. 별이……하니 옛 의관을 착용하니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본다는 뜻이다. 별[星]은 고깔에 장식한 구슬을 가리킨다.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위 무공(衛武公)을 칭송하면서 "고깔에 장식한 구슬이 별처럼 빛난다.[會弁如星]"라고 하였다. 벽에……되어주네 벽에 걸린 등불이 책을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을 말한다. 창우(倉牛) '청우(靑牛)'를 가리키는 듯하다. '倉'은 '蒼'과 통하며 청색을 말한다. 신선이나 도사들이 타고 다닌다는 푸른 소이다.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떠날 때 윤희(尹喜)가 함곡관 위에 자기(紫氣)가 서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노자가 푸른 소〔靑牛〕를 타고 오니 윤희가 그에게 부탁하여 《도덕경(道德經)》 오천언(五千言)을 받았다. 《列仙傳》 혁명의……보려나 '세상이 바뀌어 태평성대를 볼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묻는 것이다. 원문의 '취규(聚奎)'는 다섯 별이 규수에 모인 것인데, 상서로운 조짐을 말한다. 《송사(宋史)》 〈천문지(天文志)〉에 "남송 태조(太祖) 건덕(乾德) 5년인 967년에 다섯 별이 규수에 모여들었다[太祖乾德五年丁卯, 五星聚奎.]"라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섭채(葉采)의 〈진근사록표(進近思錄表)〉에 "하늘이 송나라의 국운을 열어, 별들이 규수에 모였다.[天開皇宋, 星聚文奎.]"라고 하였다. 목거사 '목거(木居)'는 쓸모없어서 오래 사는 복을 누리는 사람을 뜻하는 '목거사(木居士)'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제목거사(題木居士)〉에 "불길이 파고 물결이 뚫어 나이를 모를 지경인데 뿌리는 얼굴과 같고 줄기는 몸과 같아라. 우연히 시를 지어 목거사라 부르니, 문득 무궁하게 복을 구하는 사람이 있도다.[火透波穿不計春, 根如頭面幹如身. 偶然題作木居士, 便有無窮求福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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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어른께서 앞 시에 차운하여 보내주셨기에 첩운을 써서 감사의 마음을 보냄 遠齋李丈次前韻見贈 因疊韻回謝 문장은 반고와 사마천142)을 배우고 文章學班馬일은 두여회와 방현령143)을 기약했는데 事業期杜房변변찮은 속세의 사람들은 碌碌俗子輩명성과 이끗으로 생각이 많네 名利一念長어릴 적부터 원대한 포부를 가져 小少志太迂그 곁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네 不欲涉其傍도를 구하였으나 도가 나가지 않아 求道道不進넋두리로 삼십 년이나 지났네 喫過三十霜마음을 오래도록 다스리지 않아 心田久不治띠 뿌리에 날로 황량해졌지 茅根日荒凉위대하구나 봉남의 어른께서는 偉哉蓬南叟세운 학설이 높은 경지에 거의 다다르셨네 所立庶升堂욕심을 막으려 문지방을 철로 감쌌고144) 防慾鐵門限곤궁을 인내하려 마음을 돌처럼 단단히 했네145) 忍窮石心腸세밑 눈이 남은 저녁에 歲暮殘雪夕화산의 별장에서 서로 마주했네 相守華山莊옥 같은 시구 고상하고 전아하니 瑗什古且雅나를 위해 담 마주함을 열어주었네146) 爲我開面墻지금부터 소원을 이루는 것은 從今酬發願진실로 남은 빛을 빌려주는 데 있으리 亶在借餘光어느 한가롭고 넓은 곳에 처하여 何處間曠境이웃 맺고 함께 소요147)할까 結隣共相羊 文章學班馬,事業期杜房.碌碌俗子輩,名利一念長.小少志太迂,不欲涉其傍.求道道不進,喫過三十霜.心田久不治,茅根日荒凉.偉哉蓬南叟,所立庶升堂.防慾鐵門限,忍窮石心腸.歲暮殘雪夕,相守華山莊.瑗什古且雅,爲我開面墻.從今酬發願,亶在借餘光.何處間曠境?結隣共相羊. 반고와 사마천 원문 '반마(班馬)'는 중국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키며 이들은 문장을 짓는 데 모범으로 삼을 정도로 저명했다. 두여회와 방현령 원문 '두방(杜房)'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상이었던 두여회(杜如晦)와 방현령(房玄齡)을 가리킨다. 두여회는 결단에 뛰어났고, 방현령은 모책에 뛰어났다고 한다. 문지방을……감쌌고 얇은 철판으로 문지방을 감싼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출입의 제한을 엄중하게 하는 비유로 쓰였다. 마음을……했네 이른바 철석심장(鐵石心腸)이다. 바르고 강직한 마음을 형용한 말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의 현상(賢相)으로 광평군공(廣平郡公)에 봉해진 송경(宋璟)이 일찍이 매화부(梅花賦)를 지었던바, 뒤에 시인 피일휴(皮日休)가 자신의 도화부 서(桃花賦序)에서 송경의 매화부를 들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재상 송 광평의 바르고 강직한 자질을 사모해왔으니, 그의 철석같은 심장으로는 아마도 유순하고 애교 넘치는 말을 토해낼 줄 모르리라고 여겼었는데, 그의 글을 보다가 매화부가 있어 보니 말이 통창하고도 풍부하고 화려하여 남조의 서유체를 꼭 닮아 그 사람됨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나를……열어주었네 원문 '면장(面墻)'은 사람이 글을 배우지 아니하면 마치 낯을 담장에다 대고 선 것과 같이 답답하다는 말로서, 《서전》 〈주관편(周官篇)〉에, "배우지 않으면 낯을 담장에 댄 것과 같다〔不學墻面〕." 나온다. 소요 원문 '상양(相羊)'은 상양(相佯)과 같은 말로 배회나 소요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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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 족숙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涵齋族叔 癸酉 저번에 김동봉(김시습)과 안중근의 우열을 물으셨는데 물러나 생각을 하니, 두 사람의 품류가 같지 않아서 수립한 것이 각자의 품류를 따랐으니 나란히 비교하여 우열을 논한 수는 없습니다. 동봉은 고아(高雅)한 선비이고 안 씨는 무용(武勇)이 있는 사람이니, 안 씨가 하는 것을 동봉이 반드시 할 수가 없고, 동봉이 하는 것을 안 씨 또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충의(忠義)라는 하나의 절개가 똑같이 지성(至誠)에서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천성의 타고난 본성은 품류 때문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민이 의리를 지켜 천만 번 고초를 겪어도 후회하지 않고, 필부가 용기를 떨쳐서 큰 우두머리를 죽이고 치욕을 설욕한 것은 모두 탁월하고 빛나서 이전의 역사에서 찾아보아도 필적할 사람이 없고 후세에 전하더라도 할 말이 있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행적을 더듬어 중정(中正)의 도로 논한다면144), 동봉은 중이 되어 자식이 없으니 이미 지나친 데에 문제가 있고, 안 씨는 모습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문을 숭상했으니 또한 중도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안 씨가 처형될 때 《상서(尙書)》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니 정밀하고 한결같아야 중도를 잡을 수 있다〔人道危微 精一執中〕'145)는 말을 외웠으며, 양복을 벗고 한복을 입어 바른 죽음의 의미를 얻었으니, 또한 신학문을 한 사람의 소행과는 같지 않거니와 오히려 몸으로는 유학을 통달하고도 끝내 중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자보다 나으니, 또한 숭상할 만합니다. 어른의 견해는 다시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向詢, 金東峰安重根優劣, 退而思之, 二人之品類不同, 其所樹立, 各從其類, 不可得以比並, 而論優劣也.東峰儒雅人, 安氏武勇人, 安氏所爲, 金必不爲, 東峰所爲, 安亦不爲.然其忠義一節, 同出於至誠者何也? 以其天性之秉彝, 不以品類而有間也.蓋其布衣守義, 經千辛而不悔, 匹夫奮勇, 殪巨酋而雪恥, 俱卓然赫然, 求之前史而無匹, 傳之後世而有辭, 詎不偉然? 然迹其行而論以中正之道, 東峰之爲僧無子, 旣失之過, 安氏則非惟變形, 所尙乃新學, 亦不可以語中矣.但安氏之受戮, 誦尙書人道危微精一執中語, 去洋服服韓衣, 而得正終之意, 則又不類新學人所爲.而猶賢於身通儒學而終歸釋形者, 亦可尙也.未審尊見復以爲如何. 그러나……논한다면 출처거취(出處去就)를 중정(中正)한 도리에 맞게 하여 은둔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돈괘(遯卦) 구오(九五)〉에 "아름다운 은둔이니, 정하여 길하다.〔嘉遯貞吉〕"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전(傳)에서 "구오는 중정이니, 은둔하기를 아름답게 한 자이다. 처함이 중정의 도를 얻어서 때에 맞게 멈추고 행함이 이른바 아름다움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정정하여 길함이 된다.〔九五, 中正, 遯之嘉美者也, 處得中正之道, 時止時行, 乃所謂嘉美也, 故爲貞正而吉〕"라고 하였다. 인심은……있다 원문의 '인도위미 정일집중(人道危微精一執中)'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서 순(舜) 임금이 우(禹)에게 "인심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심은 미약하기만 하니, 오직 정밀하게 살피면서 한결같이 행해야만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당부한 16자(字)를 압축한 말인데, 정주학(程朱學)에서 이것을 유가(儒家)의 도통(道統)인 십육자 심전(十六字心傳)으로 강조하면서 개인의 수양과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의 원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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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錢借用證書一. 金貳拾圓也 但利息은 月三割의 比價로 定홈右金圓은 借用한 事가 確實인 바 返濟期언 大正四年舊乙卯四月三十日로 約定니되 貴殿에 迷惑을 相掛치 안코 右限에 並本利ᄒᆞ야 無滯備報ᄒᆞ기로 金錢借用證一張如件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右證主 李敎先 (印)李龍淳 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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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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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錢借用證一. 金參圓五拾錢也右金員을 借用한 事가 實正이고 返濟期은 大正四年舊乙卯十月十五日로 約定이되 貴前의 迷惑을 相掛치 안고 年三割利息으로 幷本利하야 右限에 無滯備報ᄒᆞ기로 金錢借用證一張如件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右證主 李敎英 (印)李龍淳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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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3년 성기운(成璣運)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元月九日 成璣運 李敎成 癸酉元月九日 成璣運 李敎成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96_001 1933년 1월 9일에 성기운이 나라의 형세를 한탄하고 《소학집주증보》를 새기는 데의 부담과 《존선시편》 필사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3년 1월 9일 성기운(成璣運)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체도가 강건한지 안부를 묻고, 지금 온 나라의 남은 백성은 누구라도 가마솥의 물고기 신세가 되었으니 신년의 경복(慶福)을 어떻게 서로 하례하겠는지 한없는 염려만 있을 뿐이라고 하여 나라의 형세를 먼저 언급하였다. 자신은 근래에 주제넘게 《소학집주증보(小學集註增補)》를 새기는 데에 뜻을 둔지 반쯤에 이르렀지만 난쟁이에게 천 균(勻)의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아 아침저녁으로 전쟁이라고 하고, 부탁한 《존선시편(尊先詩篇)》을 베껴 쓰는 일은 거칠고 졸렬하여 매번 바라볼 때마다 크게 한숨만 나온다고 하였다. 일이 이와 같으나 거칠게라도 써서 드리는데, 장식(粧飾)하지 않고 여러 세대를 전할 것이니, 한 번 보고 불에 태우기 바란다고 하였다. 별지가 있는데, 그 외에 또 한 본(本)은 혹 앞에서 시도한 것보다 낫길 바라면서 필사하였으므로 아울러 보내드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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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선동창(宣東昌)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四年二月初九日 宣東昌 乾隆五十四年二月初九日 宣東昌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89년 2월 9일에 선동창(宣東昌)에게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789년 2월 9일에 선동창(宣東昌)에게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중간에 상하로 비껴 잘려져 나가 일부의 내용을 알 수 없다. '답주가 절실히 쓸 곳이 있어 문전면 가천촌 전평 부자(夫字) 논 3두락지 복수(卜數) 13복7속(束)'이라 하고, 이하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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