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통론 【1908년】 叔孫通論 【戊申】 근씨(靳氏 근재지(靳裁之))가 말하기를 "선비의 등급에 세 가지가 있으니, 도덕(道德)에 뜻을 둔 자는 공명(功名)이 그 마음을 괴롭힐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이는 부귀(富貴)가 그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며, 부귀에만 뜻을 둔 자는 못하는 짓이 없다.209)"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말한 고루한 사람이다. 한(漢)나라의 숙손통(叔孫通)210)이 예악(禮樂)을 만들려고 할 때 이를 따르지 않는 노(魯)나라 유생들에 대해 고루한 선비라고 하였는데, 내 입장에서 논하면 노나라 유생들이 고루한 선비가 아니고 숙손통이 고루한 선비이다.도학(道學)이 쇠퇴한 때로부터 열국(列國)의 시대에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여 좋은 값에 팔려 하고, 무덤가에서 구걸하면서 배불리 먹는 선비가 서로 이어졌다. 아침에는 위(魏)나라에서, 저녁에는 진(秦)나라에서 신하가 되고, 오늘은 제(齊)나라를, 다음 날은 초(楚)나라를 섬겼으니, 그 권모(權謀)와 변설(辯說)하는 무리를 진실로 도리로 일일이 꾸짖을 수 없다.숙손통 같은 경우에는 성현의 글을 외우고 본받은 몸으로서 분서갱유(焚書坑儒)한 조정을 섬겨서 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하는 아부의 말을 바치고211), 유관(儒冠)에 오줌을 눈 자에게 굽혀212)서 초(楚)나라 복식의 짧은 옷으로 바꿔 입었으니213), 구차하게 녹과 이익을 향해 쫓아가는 것이 파리가 냄새를 맡고 개가 쌀겨를 핥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진나라에 아부하여 그것을 얻었고, 끝내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면 초나라로 돌아갔으며, 초나라에서 얻지 못하면 또 한나라로 돌아갔다.'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한다.'는 말을 보니, 생사(生死)가 앞에 닥치면 부(父)와 군(君)을 시해할지라도 장차 좇을 것이고, '초(楚)나라 복식의 짧은 옷으로 바꿔 입었다.'는 행위를 보니, 부귀(富貴)를 얻을 수 있다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좌임을 하는 오랑캐의 풍습을 따를지라도 꺼리지 않을 것이니, 조금 전에 이른바 '비루한 사람은 못하는 짓이 없는 자이다.'라고 한 것은 숙손통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노나라 유생이 '공이 열 명의 임금을 섬기고, 면전에서 아첨하여 귀함을 얻었다.'라고 꾸짖은 것은 바로 죄를 헤아려 범죄의 실정을 알아낸 것이다. 그가 만일 양심이 있다면 장차 부끄러워 죽을 겨를도 없을 것이거늘 도리어 고루한 선비라 이르고 이들을 비웃었다. 이는 노나라 유생이 시세를 쫓지 않으려는 것이 고루함이 되는 줄만 알고, 자신의 더러운 행실이 고루함이 되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또한 우습지 않은가.이 때문에 나는 "숙손통이 예악을 제정하는 것은 바로 백정의 집에서 예불(禮佛)하고, 기생의 집에서 《예기(禮記)》를 읽는 것이다."라고 하겠다. 아! 선유(先儒) 중에 숙손통을 도적 같은 선비로 여기는 자가 있으니, 내가 도적 같은 선비에 대해서 또 무슨 논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다만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숙손통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한 일을 생각했으며, 예를 만들고 진퇴를 시세의 변화에 맞추어 마침내 한나라 유학의 종정[儒宗]이 되었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길은 원래 구불구불한 것이니, 아마 숙손통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214)"라고 하였다.그래서 내가 태사공의 잘못된 장려를 괴이하게 여겼으니, 분서갱유한 진나라를 섬기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말을 바친 자를 유종(儒宗)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진나라를 섬겼다가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겼다가 아침에는 한나라를 섬긴 자를 유종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법복(法服)을 버리고 짧은 옷을 입은 자를 유종이라고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 동중서(董仲舒)215)와 유향(劉向)216) 등 제유(諸儒)도 그를 높여서 한나라의 유종으로 삼았는지 모르겠다.나는 후세 사람들 가운데 시세(時勢)를 바라면서 행동이 개나 돼지와 같은데도 스스로 법도를 제정하여 천하에 이익과 혜택을 준다고 여기며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실로 태사공이 숙손통을 칭찬한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이러한 것을 논한 것은 숙손통 때문이 아니고 태사공 때문이다. 靳氏有言曰: "士之品有三, 志於道德者, 功名不足以累其心, 志於功名者, 富貴不足以累其心, 志於富貴而已者, 則亦無所不至而已矣.", 孔子所謂鄙夫也. 漢之叔孫通, 欲制禮樂, 以魯生之不從謂鄙儒, 以余論之, 魯生非鄙儒, 通眞鄙儒也. 夫自道學衰, 列國之世, 衒玉求售, 乞墦求飽之士, 踵相尋也. 朝臣於魏而夕於秦, 今日事齊而明日於楚, 彼權謀辯說之徒, 固未可一一責之以道. 至若通以誦法聖賢之身, 事焚書坑儒之朝, 而獻鼠竊狗盜之諛, 屈於溲溺儒冠之人, 而變短衣楚製之衣, 苟趨祿利, 若蠅之逐臭, 犬之䑛糠. 其未得之也, 諛於秦而得之, 恐其不得於終則歸於楚, 不得於楚, 而又歸漢. 觀鼠竊狗盜之語, 則苟死生逼前, 雖弑父與君, 將可從也, 觀短衣楚製之爲, 則苟富貴可得, 雖被髮左袵, 亦不憚也, 向所謂鄙夫之無所不至者, 非通之謂耶? 魯生所責公事十主, 面諛得貴之云, 正是勘罪得情, 彼苟有良心, 將愧死之不暇, 乃反謂鄙儒而笑之. 蓋徒知魯生不肯趨時之爲鄙, 而不知自己汙行之爲鄙, 不亦笑哉? 余故曰: "叔孫通之制禮樂, 乃屠家之禮佛, 娼家之讀《禮》也.". 噫! 先儒有以通爲盜儒者, 余於盜儒, 又何足論? 但太史公之言曰: "叔孫通希世度務, 制禮進退, 與時變化, 卒爲漢家儒宗, 大直若詘, 道固委蛇, 蓋謂是乎!". 余竊怪夫太史公之謬奬也, 未知事焚坑之秦而面獻阿諛者, 是可謂儒宗乎? 朝事秦而夕事楚, 夕事楚而朝事漢者, 是可謂儒宗乎? 棄法服而服短衣者, 是可謂儒宗乎? 又未知董仲舒, 劉向諸儒, 其亦尊以爲漢家儒宗乎否? 余謂後人之希覬時勢, 行同犬彘, 自以爲制定法度, 利澤天下而靦然無恥, 實自太史公贊叔孫通啓之也. 余之論此也, 非爲叔孫通也, 爲太史公也. 선비의 …… 없다 《논어집주》 〈양화(陽貨)〉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숙손통(叔孫通) 진(秦)나라 말에서 한(漢)나라 초기에 활동한 문신이다. 호는 직사군(稷嗣君)이다. 한 고조(高祖) 때 조의(朝儀)를 제정하였으며, 혜제(惠帝) 때 종묘(宗廟) 등의 의법(儀法)을 정하고 태자 태부(太子太傅)를 지냈다. 쥐가 …… 바치고 진승(陳勝)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숙손통이 이들의 무리를 쥐가 도둑질하고 개가 도둑질하는[鼠竊狗盜] 정도여서 근심할 것이 못 된다고 속이자 진이세(秦二世)가 기뻐하였다. 《사기》 권99 〈숙손통열전(叔孫通列傳)〉 유관(儒冠)에 …… 굽혀 《사기》 권97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 "패공이 유사를 좋아하지 않아 제객(諸客) 가운데 유관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매번 패공이 그 관을 벗기고 그 안에 소변을 보았다.[沛公不好儒, 諸客冠儒冠來者, 沛公輒解其冠, 溲溺其中.]"라는 말이 나온다. 초(楚)나라 …… 입었으니 《사기》 권99 〈숙손통열전〉에 "숙손통이 유생의 옷을 입고 있어 한왕이 몹시 싫어했다. 이에 그 옷을 바꿔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초나라의 복식이라 한왕이 기뻐했다.[叔孫通儒服, 漢王憎之. 乃變其服, 服短衣, 楚制, 漢王喜.]"라는 말이 나온다. 숙손통은 …… 것이다 《사기》 권99 〈숙손통열전〉에 나온다. 동중서(董仲舒) B.C.176?~B.C.104. 호는 계암자(桂巖子)이고, 중국 전한(前漢)의 유학자이다. 유향(劉向) B.C.77?~B.C.6. 자는 자정(子政)이고 중국 전한 시대의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