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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明治四十四年十二月日 李敎成 明治四十四年十二月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1년 12월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약도인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 1911년 12월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약도인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이다. 1200분의 1 축척이다. 산림 소재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문전면 가천리 뒤의 신각금산(新閣今山)이다. 면적은 5반(反) 6무(畝) 14보(步)이다. 소유주는 이교성(李敎成)이다. 소재지는 여러 기호와 자번(字番)을 사용하여 표시하였다. 여러 기호는 범례라고 하여 소개하고 있다. 끝에는 날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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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李鐺)의 소유토지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李鐺 李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이다. 가지번(假地番)과 면적으로 구분하여 일곱 곳의 현황을 적어놓았다. 아래와 옆에는 면적당 가격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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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도(地籍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지적도(地籍圖) 지적도이다. 산(山)120림(林) 아래에 좌우로 길게 퍼져있는 토지를 주홍색으로 칠해 표시하였다. 글씨와 선이 흐려 분간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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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6_001 1902년 2월 5일에 사제 윤기섭이 가천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간찰 1902년 2월 5일에 사제(査弟) 윤기섭(尹璂燮)이 가천(可川)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답장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2월에 아드님이 직접 편지를 가지고 와서 위로가 되었다고 하고, 형제분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는 다행히 편안하신데, 맏형이 아프셔서 여러 지방의 약이 되는 음식을 부수적으로 먹고 있다. 일간 나아가 뵈올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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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寅二月五日 尹璂燮 壬寅二月五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6_001 1902년 2월 5일에 사생 윤기섭이 양가의 가족 안부를 여쭙는 간찰 1902년 2월 5일에 사생(査生) 윤기섭(尹璂燮)이 가천의 사돈댁에 보내 양가의 가족 안부를 여쭙는 편지이다. 사돈의 안부를 여쭙고, 자신은 어버이께서는 겨우 편안하시고, 형님은 치발(致發)한 지 오래되어 앙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며느리이자 자신의 딸이 무탈하다니 매우 다행이고, 아드님은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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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종(戚從)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戚從 戚從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척종 아무개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내년 봄에 만나기를 갈망한다는 간찰 모년 척종(戚從) 아무개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내년 봄에 만나기를 갈망한다는 편지이다. 어린 날의 깊은 정을 느끼지만 두 곳이 떨어져 있어 만나 이야기할 기약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고, 독서에 흠은 없는지 궁금해 하였다. 여름 동안 끽긴(喫緊)하게 공부하여 주옥같은 글귀를 달빛 이슬 아래서 소리 내어 읊조리는 것을 매우 부러워한다고 하고, 자신은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형님은 아프셔서 근심으로 속이 매우 타고 있으나 대소가는 무탈하여 다행이라고 하고, 새봄에 만날 수 있기를 갈망한다는 내용이다. 여러 군데 수정한 곳이 있으며, 말미에 문장 종결이 되지 않아 낙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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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미상인이 상대방의 빛나는 재주에 앞길이 창창하기를 빌고 그동안 회포를 풀지 못했으나 다음 달초에 찾아가겠다고 한 간찰 모년에 미상인(未詳人)이 상대방의 빛나는 재주에 앞길이 창창하기를 빌고 그동안 회포를 풀지 못했으나 다음 달초에 찾아가겠다고 한 간찰이다. 날짜와 발·수신자는 미상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정(情)이 아니면 이렇게 편지를 써서 정서를 펴지도 못할 것이며, 이것은 몇 백 리에 떨어져 있는 안범(顔範)을 대신할 수 있어서 매시간 읽고 두터운 우의를 느끼고 실감한지 여러 날이 되었다. 여러분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원외에서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나갈 수 없는 처지다. 빛나는 재주를 논하자면 축하할 것도 없지만, 정원의 난초가 계속 피는 가운데 독서하고 새집을 지은 것을 돌아보면 그대의 앞길은 춘색이 더욱 아름다워 끝이 없을 것이니 정으로 두 손 모아 빈다. 진즉 직접 가서 막혔던 회포를 풀어야 했는데 못했다. 저 좋은 땅을 골라서 집을 지었는가 물어보고, 노인을 모시는 인사는 매번 뜻과 같지 못하다고 하고서 다음 달 초에 미리 기약할 수는 없지만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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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이남섭(李南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辰陰閏二月八日 李南燮 李生員日彦宅 戊辰陰閏二月八日 李南燮 李生員日彦宅 전라남도 곡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8년 윤2월 8일에 상중인 족종 이남섭이 아무개에게 묘각과 면사무소 담 수선과 기와에 대한 구매 상황을 전하는 간찰 1928년 윤2월 8일에 상중인 족종 이남섭(李南燮)이 아무개에게 묘각(墓閣)과 면사무소 담[墻垣] 수선(修善)과 기와에 대한 영업 상황을 말한 편지이다. 상중인 자신은 비봉(飛鳳)의 묘각(墓閣)의 모든 일을 이미 상의하는 중에 판매(販賣)할 계획인데 아직 적절한 방도가 없다. 가까운 곳에 면사무소의 담을 수선하는 것에 대하여 매도할 결의를 타협하고, 수키와와 암키와 3천 장을 바라고 있지만 9, 10월에 내지 못할 것이니 깊이 헤아려 계산해야 한다. 지금의 소액(少額)은 뒤에 쓸모가 없는 것 보다는 낳으니 만약 원하는 가격이 있으면 이 약속을 잊지 말고 사람을 보내어 대신 수습하게 한 뒤에 줄 계획이 좋을 듯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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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辰落梧日 尹在晉 甲辰落梧日 尹在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40_001 1904년에 척질 윤재진이 바로 답장하지 못한 죄송함과 학문의 발전에 대한 축하, 가을에 왕림 요청, 보내준 석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간찰 1904년 가을에 척질(戚姪) 윤재진(尹在晉)이 보낸 답장 편지이다. 바로 답장하지 못한 죄송함과 학문의 발전에 대한 축하, 가을에 한 번 왕림하여 함께 글을 짓기를 바라고, 보내준 석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석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봉이 있다. 타지에 있어 답장을 못하였다. 금을 정련하고 옥을 쪼듯 학업을 하여 광명(光明)하고 순숙(純熟)한 지경에 나아간 것을 축하하고, 긴 여름장마와 더위가 지나고 가을에 날씨가 맑고 길이 평평할 때 빨리 한 번 왕림해 주길 청하였다. 다만 천운(川雲)과 산월(山月)에게 분부하여 각각 그 경치를 드리고자 문장의 앞길에서 기다릴 터이니, 미리 옥을 연마하여 풍광에 누(陋)를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보내주신 석매(石梅)는 책상 위에 두고 감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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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梧秋旬七 尹璂燮 東床 乙梧秋旬七 尹璂燮 東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5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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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梧月十七日 尹在晉 乙梧月十七日 尹在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40_001 1925년 7월 17일에 족질 윤재진이 수신자의 안부를 물은 후에 가을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면 학문하는 여가에 한 번 왕림해 달라고 한 간찰 1925년 7월 17일에 족질(族姪) 윤재진(尹在晉)이 수신자의 안부를 골고루 물은 뒤에, 자신은 점점 게을러져서 전진(前進)함에 가망이 없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 하고, 오직 다행인 것은 긴 여름 이래로 거듭 숨이 막히는 것은 면했다는 것이다. 가을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면 학문하는 여가에 부디 한 번 왕림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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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이인욱(李寅旭)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八年十一月初十日 李寅旭 道光十八年十一月初十日 李寅旭 전라남도 보성군 李黃旭 외 1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8년 11월 10일에 이인욱(李寅旭)이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38년 11월 10일에 이인욱(李寅旭)이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하고자 문전면 가천촌 아래 괴석 우평(隅坪) 외(外)자와 수(受)자 5두락지 부수(負數) 25복(卜)5속(束)을 전문(錢文) 183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이인욱이며 자필(自筆)하고, 증인은 김문갑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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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김광렬(金光烈)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大淸同治六年臘月旬八日 金光烈 大淸同治六年臘月旬八日 金光烈 전라남도 보성군 金先烈 외 2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7년에 김광렬(金光烈)이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67년에 김광렬(金光烈)이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온 시장(柴場)과 1두락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하고자 문전면 가천촌 뒤의 월곡 화속(火束) 논 1두락과 시장 1갱을 전문 36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 및 시장주는 한량 김광렬이며, 증인은 한량 김응청, 증참(證參)은 한량 오치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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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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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8년 안겸수(安謙洙)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同治七年十一月卄九日 安謙洙 同治七年十一月卄九日 安謙洙 전라남도 보성군 증인 3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8년 11월 29일에 안겸수(安謙洙)가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68년 11월 29일에 안겸수(安謙洙)가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벼를 받다가 상채(喪債)와 아우의 부채를 갚고자 본군 문전면 덕봉촌 전평 등(登)·우(優) 양자 4두락지 부수(負數) 10복(卜)4속(束)을 전문(錢文) 160냥을 받고 3년 내에 환퇴하기로 하고서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와 증필(證筆), 증인이 기재되어 있는데, 답주는 안겸수이며, 증필은 박한표, 증인은 이군서와 김처용이다. 답주 이하 모두의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는데, 답주는 상중이라 착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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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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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8년 김평곤(金平坤)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十月十四日 金平坤 光緖四年十月十四日 金平坤 전라남도 보성군 金平伸 외 1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8년 10월 14일에 김평곤(金平坤)이 밭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78년 10월 14일에 김평곤(金平坤)이 밭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온 밭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사하게 되어 본군 문전면 교촌 마을 아래의 피약동 부(婦)자 피모(皮牟, 겉보리) 2두락지 부수(負數) 3복(卜)4속(束)을 전문(錢文) 10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전주는 한량 김평곤이며, 증필은 한량 양재방이다. 매득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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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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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유인 이씨(孺人李氏) 정부인(貞夫人)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孺人 李氏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孺人 李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추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추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씨는 이기두의 처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렇게 남편이 관직을 취득할 경우에 처는 남편의 관직에 준하는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유인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가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때 추봉된 작위가 정부인이다. 정부인은 외명부(外命婦) 중 문무관의 적처에게 내리는 정・종 2품의 위호이다. 정부인 앞의 증(贈) 자는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내릴 때 붙이는 글자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추봉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남편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비(妣)는 법전에 의거하여 증직한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외명부조에서 봉작(封爵)은 남편의 관직을 따른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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