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암 선생 김공께 올리는 제문 祭炳庵先生金公文 유세차 정미년(1907) 12월 8일 갑자날에 병암(炳庵)선생 김준영(金駿榮)10)공께서 돌아가셨는데, 모시고 배웠던 부령 사람 김택술은 병란 때문에 길이 막혀 곧바로 달려가 곡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듬해 무신년 9월 14일 병신날에 삼가 제문을 지어 그 사위 전경구(田敬九)11)에게 주며 날짜가 되면 대신 영연에 고하게 합니다.아아, 공께서는 嗚呼惟公,신령한 기운으로 태어나 寔靈攸鍾,도량이 크고 굳세었고 寬弘惟毅,기질은 침중하되 총명하였으며 沈默亦聰,아름다운 천연의 자질을 美哉天質,풍부하게 부여받으셨습니다 旣賦以豐,그 덕은 어떠하였는가 其德伊何,우뚝히 높으셨으니 屹乎其崇,마음은 경계를 가르지 않아 心不畛域,겉과 속이 한결같았고 表裡皆通,행동은 규범을 준수하고 行守塗轍,움직임과 고요함을 함께 닦았으며 動靜均功,실답고도 화려하면서 實而有華,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았으며 和而不同,진실로 군자다워 允矣君子,중도(中道)에 거의 이르셨습니다 庶幾厥中.그 학문은 어떠하였는가 其學伊何,심연처럼 깊고 깊어 淵乎其深,체(體)와 용(用)을 다 갖추었고 該備體用,고금의 일을 관통하였으며 究貫古今,문사(文辭)는 평이함 숭상하였고 辭尙菽粟,이치는 떳떳한 인륜을 구하셨습니다 理求彛倫,먼저 안 사람이 뒷사람을 깨우친다고 先知覺後,옛사람이 말하였으니12) 古人有言,벗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有朋自遠,선비들이 문하에 가득하였는데 衿珮盈門,목마른 이는 물을 배고픈 사람은 밥을 飮渴食飢,각각의 기량에 맞게 채워주셨고 各充其量,가르침을 베풀며 지치지 않았으니 敎惟不倦,애써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匪出勉强.세상이 공의 덕을 알지 못하여 世不知德,훌륭한 도를 실행할 길이 없었고 行道無梯,이에 간직하고 닦기를 힘썼으니 于以藏修,장소는 시내의 서쪽13)이었습니다 于川之西,공께서 구하신 것은 무엇인가 厥求惟何,유신국(有莘國) 옛 사람의 그 뜻이었는데알아주는 군주를 기대하셨는데14) 有莘其志,좋은 재목이 산에서 부질없이 늙어가고 材老于山,아름다운 옥은 그릇 속에 담겨만 있었습니다. 玉藏于器.아, 못난 저는 嗚呼無狀,공 뵙는 소원을 일찍 이루어 荊願早遂,약석(藥石) 같은 가르침으로 藥石之訓,저리고 굳은 곳을 고쳐주셨습니다. 醫我痿痺,안자(顔子)는 사물(四勿)을 일삼았고 顔事四勿,증사는 삼귀(三貴)를 말하였으니15) 曾言三貴,진실로 여기에 힘써 노력하면 苟務乎此,넘어지고 자빠짐을 면하리라 庶免顚躓,저는 그 말씀을 좇아 하면서 我其從斯,감히 걱정하고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敢有虞貳.두 번이나 먼 길을 오셔서 再命遠駕,저의 아버지와 교유하시고 託交家君,낙요재(樂要齋)16)의 기문 지어주시자 樂要之記,저의 집 문미가 밝게 빛났으니 光增楣間,두터운 은혜에 감복하여 感服厚眷,가슴에 새겨두고 잊지 않았습니다. 佩心銘肝.전몽(旃蒙)의 해17)에 歲維旃蒙,공께서 남쪽 행차에서 돌아오시다 公返南旆,고황(膏肓)의 질병18)을 얻게 되어 時嬰二竪,여로에 간고(艱苦)를 겪으셨는데 行李艱憊,멀리까지 나아가 전송하면서 遠于拜送,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했지만 如喉見罣.하늘의 이치는 매우 진실하여 天理孔諶,금방 쾌유되리라 생각했습니다 謂遄痊快,공께서도 저를 위로하시며 公亦慰余,머지않아 다시 만날 터이고 非久可對,만나고 헤어짐은 무상한 것이니 散合無常,어찌 족히 슬퍼하겠는가 하셨습니다. 何足悵慨?그런데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孰謂一病,한 번 든 병에 끝내 돌아가실 줄을19) 竟違妄五?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번의 작별이 孰知此別,천년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永隔千古?우뚝이 높으신 그 덕을 有屹其德,이제 저는 어디서 우러러보고 我仰何所?심연처럼 깊으신 그 학문을 有淵其學,이제 저는 어디에서 구합니까 我於何求?후배들이 가르침 받을 곳을 잃었으니 後生失敎,길 잃은 수레들을 누가 인도하며 孰導迷輈?큰 뜻을 펼치지 못하셨으니 大志未展,세상의 벼리를 이제 누가 지탱합니까 孰扶世綱?아, 온 세상 사람들이 嗟幷世人,사도(斯道)를 위해 가슴아파합니다. 爲道盡傷,하물며 공의 덕행은 矧公德行,간재 선생님 문하의 고족으로서 艮翁高足,순수함이 특히 아름다워서 嘉乃純粹,사문(師門)이 기뻐하였고 師門所悅,마치 공자의 삼천 제자 중에 有似三千,안자와 증자의 반열이었으니 顔曾之列.애통하신 간재 선생님의 슬픔은20) 夫人之慟,더 말해 무엇 하겠으며 尙復何說,모든 동문들도 凡在同門,다 같이 슬퍼하였습니다. 亦均忉怛.아, 예전에 공께서는 嗚呼昔公,저를 자식처럼 대하고 視我骨肉,가르칠 만하다 여기며 謂我可敎,큰 덕의 군자를 기대하셨고 期我大德,저도 공을 뵙기를 余亦視公,백부 숙부로 여겨 諸父伯叔,의심나고 모르는 것을 나아가 묻고 就質疑晦,점괘처럼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如信筮卜,그런데 어찌하여 끝까지 은혜 주지 않고 胡不卒惠,이처럼 갑자기 버리고 떠나신단 말입니까. 棄之若遺?아,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噫人於世,가까운 친지(親知)라 할지라도 雖曰親知,마음 주는 지기(知己)를 얻는 것은 許心相得,먼 옛날부터 드물었습니다 邃古幾希.공께서는 현명하시고 저는 범상하여 公我賢凡,진실로 용과 돼지처럼 달랐으니21) 固判豬龍,일의 가부(可否)를 정함에 이르러 事有可否,사람들은 모두 동쪽으로 가고 衆皆從東,저만 홀로 서쪽으로 가도 我獨于西,공께서는 간혹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公或見從,평생에 다행으로 여긴 것이 自幸生世,공께 버림받지 않음이었는데 不棄于公,이제는 모두 끝났으니 今焉已矣,그 누가 제 마음을 알아준단 말입니까 孰諒此衷?이처럼 혼란한 시대를 만나 値此時亂,전란의 먼지가 사방에 가득하여 兵塵四塞,편찮으실 때 문병도 못하고 病不聞善,장례 때 상여 끈도 못 잡았습니다 葬未執紼,거친 글과 간소한 제수로 蕪辭菲奠,이제야 한 번 곡하는데 始展一哭,제 슬픈 곡 소리 구천에 닿을지 聲徹九原,흐르는 눈물 양 손에 가득합니다 淚盈雙掬.아아, 높으신 혼령께서는 嗚呼尊靈,밝게 임하시어 이 마음 받으소서! 尙垂昭格! 維歲次丁未十二月八日甲子, 炳庵先生金公棄後學。 侍敎生扶寧金澤述阻於兵亂, 未卽奔哭, 乃於翼年戊申九月十四日丙申, 謹具文奠, 屬其外甥田敬九, 以至日替告于靈筵, 曰:嗚呼惟公, 寔靈攸鍾, 寬弘惟毅, 沈默亦聰, 美哉天質, 旣賦以豐, 其德伊何, 屹乎其崇, 心不畛域, 表裡皆通, 行守塗轍, 動靜均功, 實而有華, 和而不同, 允矣君子, 庶幾厥中。 其學伊何, 淵乎其深, 該備體用, 究貫古今, 辭尙菽粟, 理求彛倫, 先知覺後, 古人有言, 有朋自遠, 衿珮盈門, 飮渴食飢, 各充其量, 敎惟不倦, 匪出勉强。 世不知德, 行道無梯, 于以藏修, 于川之西, 厥求惟何, 有莘其志, 材老于山, 玉藏于器。 嗚呼無狀, 荊願早遂, 藥石之訓, 醫我痿痺, 顔事四勿, 曾言三貴, 苟務乎此, 庶免顚躓, 我其從斯, 敢有虞貳, 再命遠駕, 託交家君, 樂要之記, 光增楣間, 感服厚眷, 佩心銘肝。 歲維旃蒙, 公返南旆, 時嬰二竪, 行李艱憊, 遠于拜送, 如喉見罣。 天理孔諶, 謂遄痊快, 公亦慰余, 非久可對, 散合無常, 何足悵慨? 孰謂一病竟違妄五, 孰知此別永隔千古? 有屹其德, 我仰何所? 有淵其學, 我於何求? 後生失敎, 孰導迷輈? 大志未展, 孰扶世綱? 嗟幷世人, 爲道盡傷, 矧公德行, 艮翁高足, 嘉乃純粹, 師門所悅, 有似三千, 顔曾之列。 夫人之慟, 尙復何說, 凡在同門, 亦均忉怛1)。 嗚呼昔公, 視我骨肉, 謂我可敎, 期我大德, 余亦視公, 諸父伯叔。 就質疑晦, 如信筮卜, 胡不卒惠, 棄之若遺? 噫人於世, 雖曰親知, 許心相得, 邃古幾希, 公我賢凡, 固判豬龍, 事有可否, 衆皆從東, 我獨于西, 公或見從。 自幸生世, 不棄于公, 今焉已矣, 孰諒此衷? 値此時亂, 兵塵四塞, 病不聞善, 葬未執紼, 蕪辭菲奠, 始展一哭, 聲徹九原, 淚盈雙掬。 嗚呼尊靈, 尙垂昭格! 김준영(金駿榮) 1842~1907,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경(德卿), 호는 병암(炳菴)이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이항로 등의 주리설(主理說)과 한원진(韓元震) 등의 인물성이설(人物性異說)을 비판하고 스승 전우(田愚)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전경구(田敬九) 1872~1917, 자는 계문(季文)이며, 전우(田愚)의 네째 아들이다. 먼저……말하였으니 이윤(伊尹)이 탕(湯)의 부름을 받고 나아갈 때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낼 적에 먼저 안 사람이 늦게 아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먼저 깨달은 자가 늦게 깨닫는 자를 깨우치게끔 하였다.[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上》 시내의 서쪽 김준영이 살았던 충남 연기군 전의면의 천서(川西) 마을을 말한다. 1900년에는 천서정사에서 간재 전우가 강회를 열었다. 유신국(有莘國)……그 뜻 유신국의 옛 사람은 이윤(伊尹)을 말하는데, 탕왕의 상왕조 수립에 큰 공훈을 세운 정치가로 유명하다. 초년에는 초야에서 농사지으며 요순(堯舜)의 도를 즐기다가, 탕왕에게 세 차례의 초빙을 받고 나아가 도우며 요리법으로 정치를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자(顔子)는……말하였으니 안자가 공자에게 인(仁)을 물은 다음 실천할 조목을 다시 물었는데,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다. 사물(四勿)은 바로 이 네 가지를 가리킨다. 《論語 顔淵》증자(曾子)가 "군자가 도에 귀한 것 세 가지가 있으니, 용모를 움직임에 포만함을 멀리하며 안색을 바르게 함에 믿음에 가깝게 하며 말을 냄에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남을 멀리하라.[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라고 하였는데, 삼귀(三貴)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論語.泰伯》 낙요재(樂要齋) 김낙진(金洛進, 1859~1909. 김택술의 부친)의 재실로서, 김준영이 그 기문을 지었다. 전몽(旃蒙)의 해 전몽은 고갑자(古甲子)로 을(乙)에 해당하는데, 선생 작고 2년 전인 을사년(1905)을 말하는 듯하다. 고황(膏肓)의 질병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두 꼬마 아이[二竪]의 모습을 한 병마(病魔)가 고황(膏肓) 사이에 숨어들어 끝내 고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春秋左傳.成公10年》 돌아가실 줄을 망오(妄五)는 무망괘의 구오(九五)를 가리킨다. 《주역》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에 "구오는 잘못이 없는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나을 것이다.[九五, 无妄之疾, 勿藥有喜。]"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구오의 점괘와 어긋났다[違妄五]고 표현했으므로 쾌차하지 못하고 운명한 것을 의미한다. 애통해하는 간옹의 슬픔은 안자가 죽었을 때 공자가 슬피 곡하자 종자(從者)가 "선생님께서 너무 애통해하십니다.[子慟矣]"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내가 너무 애통해하느냐?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고서 누구를 위해 애통해하겠느냐?[有慟乎? 非夫人之爲慟, 而誰爲。]"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용과 돼지처럼 달랐으니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서른 살에는 골격 이루어져, 마침내 한 사람은 용 한 사람은 돼지 된다네.[三十骨格成, 乃一龍一猪。]"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배운 사람은 신룡(神龍)이 변화함이 있는 듯하고 배우지 않은 사람은 돼지가 변화함이 없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怛(달) 저본의 '怚(저)'를 오자로 보아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