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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 與季弟汝安 丁巳 일찍이 《안씨가훈(顔氏家訓)》 한 부를 구입한 것은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에서 나왔을 것이니 심히 훌륭하다. 형복(炯復)이가 가지고 왔기에 전부 열람하였다. 그 말이 모두 몸소 직접 경험한 데서 나와 비유가 상세하고 경책(警策)이 엄절(嚴切)하여 족히 집안을 지키는 귀감이 될 수 있겠더구나. 멋대로 이렇게 구두를 표시하여 보내니 부디 다시 처음부터 한번 이해해 보아라.그러나 이 사람57)은 육조의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사승 관계가 없기에 학문이 순정하지 않다. 그가 자식을 훈계한 것은 좋기는 좋지만 정밀한 의리로써 검토해보면 하자가 숱하게 많이 나온다. 보고 열람할 적에는 마땅히 요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귀심(歸心)〉58) 한 편은 불교를 내전(內典)으로, 유교를 외전(外傳)으로 삼고서 불도(佛道)의 위대함은 요순(堯舜)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가 미칠 바가 아니라고 이른다. 여기에서 이 사람의 식견과 학문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편(篇)들은 다만 빼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초학자는 아는 것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저런 설들에 의해 혼란이 생길까 두렵구나. 曾購《顔氏家訓》一部, 認出飭躬御家之意, 甚善矣.復兒持來, 得以繙閱全部.其言皆從身親經歷中來, 指喩詳盡, 警策嚴切, 足爲保家龜鑑.謾此標定句讀以送, 幸更從頭一番理會也.然此人生於六朝壞亂之世, 無所師承, 學不純正.其所以訓子者, 美則美矣, 律之以精義, 疵纇百出.觀覽之際, 當有斟量者存.若乃《歸心》一篇, 以佛敎爲內典, 儒敎爲外典, 謂佛道之大, 非堯舜、周、孔所及.於是乎, 此人之見識學問, 不足多說也.如此等篇, 只宜闕之勿觀.初學識旣未定, 恐爲彼說所亂也. 이 사람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기의 안지추(顔之推, 531~602)를 말한다. 자는 개(介)이다. 양(梁)에서 산기시랑(散騎侍郞), 제(齊)에서 봉조청(奉朝請)ㆍ중서사인(中書舍人), 주(周)에서 어사상사(御史上史), 수(隋)의 개황(開皇) 중에 학사(學士)를 삼았다. 저서에 문집(文集)과 가훈(家訓)이 전한다. 《北齊書 卷45》 《南史 卷83》 귀심(歸心) 《안씨가훈(顔氏家訓)》 〈귀심(歸心) 제16편〉이다. 590년경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책으로, 동란 속을 살아가던 한 지식인이 자손에게 남긴 인생과 생활의 지침서이다. 책 제목은 '안씨(顔氏) 집안의 가훈(家訓)'이라는 뜻이다. 구성은 〈서(序〉에서 〈유언〉까지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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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季弟汝安 丁卯 눈 쌓인 궁벽한 시골 방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으니 의연히 교량을 끊어버린 스님70) 같구나. 마땅히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네가 그리워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71)로 두루 유랑하니 골육지간이 무엇이란 말이냐?이 엄동설한에 사방 벽만 있는 집에서 한 표주박 물만 마시는72) 신세는 피차일반이니 천륜(天倫)의 지친(至親)이 어찌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옛사람 중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듯이 생각한 이도 있었고, 큰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덮어주기를 원한 이도 있었다. 천하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골육에 있어서는 어떻겠느냐! 우리가 비록 힘은 서로 보탤 수 없지만 늘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옳다. 자신이 살아갈 계책은 오직 자신이 힘을 쓰는 데 달려있으니 절대로 친속(親屬)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참으로 학문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 힘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는 어렵다. 이 또한 지당한 이치이다.살아갈 계책은 다만 논밭에 종사하는 하나의 일에 있을 뿐 그밖에 좋은 방책은 없다. 옛날 방공(龐公)73)은 몸소 쟁기와 보습을 잡고 처자(妻子)는 앞에서 김을 매었다. 이때 천하가 비록 어지러웠으나 한(漢) 나라는 아직 있었다. 선비가 먹을 것을 취하는 데에 다른 길이 없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거늘, 지금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어 인류가 멸절된 때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다만 아득히 큰 이 세상에 밭 갈 땅이 없다면 또한 호연히 지사(志士) 불망(不忘)74)의 자리를 따르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뜻은 기(氣)를 제어하는 장수이고 배움은 업을 보전하는[居業] 집이다. 장수가 아니면 군대는 반드시 무너지고 집이 아니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곤란을 당하였다고 변한다면 어찌 장수가 될 수 있으며, 잠깐이라도 버릴 수 있으면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예부터 누구나 다 죽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75)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곧 금수에 가깝다."76)라는 말을 경계로 삼아라.우리 형제가 태어나 이때를 당하여 궁액(窮厄)이 지극하다만, 신학문을 힘써 배척하고 단발(斷髮)에 죽음을 맹세하신 벽봉(碧峯)77) 선자(先子)께서 남겨주신 몸을 받았고, "저 사람들에 청원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구산(臼山)78) 선사(先師)가 남긴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비록 아홉 번 죽고 열 번 살며, 천 번 맵고 만 번 쓰라려도, 세속을 따르고 더러운 데 부합하여 누린내 나는 고기를 주워 먹으며 구차히 입과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오직 이 한 생각은 피차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족이 떨어져 지낸 지가 4년째다.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근심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서로 듣지만, 상을 나란히 하고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갑자기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구름을 보는 눈에 어찌 해가 뚫고 비추지 않겠느냐.한 해가 끝나가는 이때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구나. 이 편지를 쓴 이후 큰 요지는 〈소완(小宛)〉 시의 "나는 해로 너는 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되게 함이 없기를."79) 이라는 뜻이다. 마음으로 깨우쳐 주의하길 바란다. 積雪窮巷, 塊坐一室, 依然若斷橋和尙.宜其惺惺寂寂, 不動一念, 而不覺憧憧爾思, 周流蓬山瀛海.骨肉之間, 何也? 當此窮冬祈寒, 四壁一瓢, 彼此一般, 天倫之親, 安得不發一體之念也.古之人, 有思天下有飢者, 若己飢之者, 有願庇天下寒士者.天下猶然, 而況於骨肉乎.吾輩雖力不能相資, 常存此心, 可也.至於自身活計, 只在自身用力, 切勿生依賴親屬之心.正如爲學者之須用其力, 難仰他人.此又至當之理也.活計只有服田一事, 外無良策.昔龐公, 親執耒耟, 妻子耘前.是時天下雖亂, 漢室尙在.士之取食, 不無他道而猶如此, 而在今日國破君亡、人類殄滅之秋乎? 但廣漠大界, 無田可耕, 則又有浩然從志士不忘處一道耳.志是御氣之帥, 學乃居業之宅.非帥, 軍必僨;非宅, 人不活.顚沛而可變, 豈得爲帥;造次而可棄, 非所謂宅.要當以"自古皆有死, 人無信, 不立."、"人不學, 卽近禽獸"爲戒.吾兄弟生丁此辰, 窮厄極矣.然受遺體於力排新學、誓死薙變之碧峯先子, 守遺訓於"請願彼人, 決是自辱."之臼山先師.雖九死十生、千辛萬苦, 其不可隨俗合汚、拾腥吃羶, 以苟充口腹也, 明矣.惟此一念, 彼此無他者.而但一舍分居, 于玆四霜.病健憂樂, 雖旬朔相聞, 聯床共被, 似猝未易遂.看雲之眼, 何日不穿? 當此歲窮, 益切孔懷.聊書此以往, 大要〈小宛〉詩"我日而月, 夙夜無忝."之義也.想會心加意也. 교량을……스님 송시열의 8대손인 송근수(宋根洙)가 지은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권4 〈권지41 서(書)〉의 단교승 주(註)에 "옛날에 어떤 승려가 다리[橋]를 끊고 참선하였기에 단교 화상(和尙)이라 칭하였다.[古有僧斷橋而修禪, 謂之斷橋和尙.]"라고 보인다.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 영해는 동쪽 바다, 봉래산은 동쪽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사는 산으로 삼신산의 하나이다. 대개는 전설상의 공간이며, 간혹 금강산과 동해의 이칭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비유인지 실제인지 분명치 않다. 표주박……마시는 《논어》 〈옹야(雍也)〉에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라고 하였다. 방공(龐公) 후한(後漢) 때의 인물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으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지사(志士) 불망(不忘)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예부터……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양식과 무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답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살더라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論語 顔淵》 사람이……가깝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는 말이 보인다. 벽봉(碧峯) 김택술의 부친 김락진(金洛進, 1859~1909)의 호이다. 구산(臼山) 김택술의 스승 전우(田愚, 1841~1922)의 호 중 하나이다. 소완(小宛)……없기를 《시경》 〈소완(小宛)〉에 "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서 주희는, "저 할미새를 보건대, 날며 지저귀도다. 나는 날마다 나아가고, 너는 달마다 나아가,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며, 부모님을 욕되게 말자."라고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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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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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선계당실기 발문【임신년(1932)】 善繼堂實紀跋 【壬申】 누구의 집에 가 머무는가와 누구를 자기 집에 들이는가를 봄, 이것이 사람 보는 법이다. 남을 주인 삼고 남에게 주인이 되어주는 것이 만약 적절하다면, 일도 이에 따라 곧 현부(賢否)가 판별될 것이다. 만약 같은 조정에 벼슬하던 사람들이 시국의 변고를 만나서 그 진퇴와 등락이 똑같은 결과로 귀착되었다면 그것이 정(正)에 의한 것이었든 사(邪)에 의한 것이었든 한 몸인 사람들이 아닐 수 있겠는가?숙종이 즉위한 초기에 권흉(權凶)들이 집권하였다가, 경신년(1680, 숙종6)에 이르러서 왕께서 교화의 틀을 바꾸셨는데153) 이것은 바로 송우암(宋尤庵) 선생이 일진일퇴를 하던 때였다. 선계당(善繼堂) 김 공 같은 분은 그 때 같이 물러나 배척되다가 다시 같이 등용되어 처음으로 병부낭관(兵部郎官)에 발탁되었다. 사물은 끼리끼리 모이고 무리지어 나눠진다 하였으니 기질과 취향이 통하는 자들끼리는 함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학업의 크고 작음 때문에 한 몸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여기서 공에게 근본을 수립한 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공은 집에서는 효도하고 우애했으며, 조정에 들어서는 충직하였고, 고을을 다스림에는 청백리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문사(文辭)는 한가한 여벌의 일로 여겨서 산실된 끝에 겨우 한두 편이 남아있는데, 그것으로도 그의 전체의 아름다움을 보기에 충분하니 어찌 많기를 바라겠는가.여러 현자들이 지은 행장(行狀), 뇌사(誄辭), 서문(序文), 간독(簡牘) 등의 류를 모으고 연보를 덧붙여 실기(實記) 한 권으로 완성해 내는 것은 후손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무이다. 생각건대 삿되고 바름, 어질고 어리석음은 사람의 중대한 구분점이며, 당시의 우암 같은 큰 군자와 더불어 현달과 퇴출을 함께 한 것은 또한 공의 평생에 크게 빛나는 절조(節操)였다. 이제 김인기(金仁基)와 김동기(金東基) 군이 글을 청하는데, 책 말미의 글에 세밀한 서술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만 공의 큰 부분만 이와 같이 써, 공이 이미 어질고 바른 군자로 인정받았으며, 사람은 그 부류를 미루어 보면 그 내면에 온축(蘊蓄)된 덕행을 알 수 있음을 밝힌다. 以其所主與所爲主, 觀人法也。 主人、主於人若可謂適然, 事猶卽此而賢否是判。 若乃仕同朝, 而値時局之變, 進退顯晦一致而同歸, 則以正以邪, 庸詎非一體人歟? 我○肅廟初服之權凶當路, 及夫庚申之○聖化更張, 此實尤菴宋先生一進一退之時也。 時則有呵, 若善繼堂金公同其退而擯不見用, 同其進而首擢兵部郞。 方以類聚、物以群分, 聲氣之應、燥濕之就, 自有不得而不同者, 不可以名位有高下, 學業有大小, 謂之不一體也, 明矣。 于以見公所立之有本也。 宜其居家孝悌, 立朝忠直, 治縣淸白之藉藉稱述也。 至於文辭, 屬公餘事, 存一二於散亡之餘者, 猶足以知全體之美, 亦何待乎多哉! 惟其裒稡諸賢所述狀誄序牘之類, 附以年譜, 而合成實紀一卷, 則後孫不容已之責也。 竊惟邪正賢否, 人之大分, 與當時大君子同其顯晦, 又其生平大節也。 今於仁基、東基君之請文也, 難以細述於卷尾之題, 但書公之大者如此, 以明公旣得爲賢正君子, 人則可推類而識其德行之蘊云爾。 숙종이……바꾸셨는데 1674년(현종15) 갑인예송(甲寅禮訟)에서 1680년(숙종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庚申換局)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갑인예송에서는 인선왕후(현종 모친)의 복제 쟁론에 의해 남인 허적 등이 정권을 잡고 서인 김수흥(金壽興) 등이 축출되었다. 경신대출척에서는 역모 고변에 의해 송시열 등의 서인이 정권을 회복하고 남인 허적(許積)ㆍ윤휴(尹鑴) 등이 축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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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9년 유학 이기두(李箕斗) 준호구(準戶口)(72세) 고문서-증빙류-호적 己卯 李箕斗 己卯 李箕斗 전라남도 보성군 周挾改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04_001 1879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79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이다. 내용은 호주와 그의 처의 가족구성 그리고 천구질(노비 명단)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와 그의 처의 사조(四祖)는 동거 가족이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에 따라 기재한 것이다. 문전면은 보성군에 속한 면이다. 리명과 통호수의 기재는 생략하였다. 호주는 이기두인데, 직역이 유학(幼學)이며, 나이가 72세(무진생)이고 본관이 성주이다. 그의 사조는 부(父)가 유원, 조가 국진, 증조가 규명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나상좌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호주의 처는 이씨인데, 나이가 68세(임신생)이며 본관이 전의이다. 그의 사조는 부가 승식, 조가 의현, 증조가 지찬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윤범은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함안이다. 호주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규용이다. 직역이 유학이고 나이가 31세(기유생)이다. 며느리는 조씨인데, 나이가 36세(갑진생)이며 본관이 한양이다. 천구질에는 비 1명만이 기재되어 있는데, 곧 둑덕(32세)이다. 왼쪽 끝에는 보성군수의 서압(署押)이 있으며, 하단에는 장방형의 '주협개인(周挾改印)'의 묵인(墨印)을 뉘어서 찍었다. 주협개인은 주협과 개인 사이에 '자(字)' 혹은 무(無)'자를 써넣어 호주가 제출한 단자에 수정이 가해졌는지의 여부를 증명해주어야 하나 이를 생략했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아래에는 큰 글씨로 붉은색의 '준(準)'자를 썼으며 그 위에 관인을 찍었다. 끝의 기묘식(己卯式)은 기묘식년의 호적대장을 가리키며, 이를 근거로 호구단자의 사실 여부를 증명하였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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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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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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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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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집안의 나씨 부인 관련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抄記)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집안에 전해지는 나씨 부인 관련 사실을 기록한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抄記) 집안에 전해지는 나씨 부인 관련 사실을 기록한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記)이다. 자신을 낳아준 돌아가신 모친에 대해 집안에 전해지는 사실을 기록한 기문이다. 선부인은 성이 나씨(羅氏)이며 금성부(錦城府) 사람이다. 그 이하의 기록은 시조부터 부모까지의 가계이다. 부친은 종찬(鍾燦)이며, 후처인 강씨가 선부인을 낳았고 그는 아들과 딸 8명 중에 막내였다. 그러나 선부인의 전승 기록은 관련 내용의 누락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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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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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퇴계의 천상재기(川上齋記)와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사본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퇴계의 간찰 1편과 천상재기(川上齋記),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일부를 베껴놓은 사본 퇴계의 간찰 1편과 천상재기(川上齋記),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일부를 베껴놓은 글이다. 퇴계언행록초(退溪言行錄抄)는 이덕홍(李德弘)의 편지에 대한 답장글이다. 천상재기(川上齋記)는 이지용(李志容)의 문집인 『小松遺稿』 권7, 기(記)에 수록되어 있는데, 부친이 가천현(可川縣) 주거지에 지은 서재에 대한 기문이다. 제망실임씨문절록은 사망한 부인 임씨의 절개 중에서 두 사례를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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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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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묘에 고하는 글 告先妣墓文 유세차 병인년(1926) 11월 무진삭(戊辰朔) 18일 을유일(乙酉日) 남지(南至 동지(冬至))에 효자 택술은 삼가 과일을 갖추어 놓고 현비 유인 최씨의 권조(權厝)200)한 묘소에 다음과 같이 곡하며 고합니다.오호라! 효경(孝敬)과 덕선(德善)을 지닌 우리 선비에 대해 하늘은 반드시 살펴보았을 것이고, 신께서는 응당 들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생전에 한 평생 동안 마음에 괴롭고 생각에 걸리며201) 부지런히 애쓰도록 하였으니, 죽어서는 만세토록 유택(幽宅)에서 편안히 자리 잡고 계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침내 임시로 합부(合祔)하여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허둥지둥하다가 자리를 잘못 잡아 이미 매장한 것을 곧바로 옮기도록 하는 것입니까. 하늘은 기필할 수 없고 신도 믿기 어려운 것, 이것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입니까. 오호라! 애통합니다. 하늘은 기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신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초하고 효성스럽지 못한 제가 쌓은 악행이 위로 포개져 도달한 결과일 것입니다. 일이 예측하지 못한 데에서 나와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지라,202) 자갈에 뒤덮이고 풍우도 가리지 못한 채로 둔 지가 이제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부터 거처하고 왕래하며 관례와 혼례를 행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사(人事)를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행세하고 있으니, 이다지도 불초한 저는 미련하고 모집니다. 다만 아주 조금의 아직 사라지지 않은 떳떳한 본성이 있어 오장(五臟)203)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타들어가고 두 다리는 묫자리를 찾느라 온 산을 미친 듯이 내달립니다. 그러나 완전히 미련하고 모진 사람이 약간의 양심(良心)이 있다한들 어찌 이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하늘이 살펴보고 신이 들어주는 것은 그러할 이치가 없다면야 그만이지만, 만일 있다면 효경(孝敬)한 선비(先妣)를 살피지 않고 누구를 살피겠으며, 덕선(德善)한 선비에 대해 듣지 않고 누구에 대해 듣겠습니까. 그 정천(定天)과 정신(正神)이 저의 불초함과 불효함 때문에 끝내 선비를 돕지 않지는 않을 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다만 아직 일을 이루기 전이기에 이 마음이 애타고 근심스러워 하루가 삼추(三秋)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처럼 천시(天時)가 바뀌고 일양(一陽)이 벌써 생겨나는 때가 되었는지라204)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205) 애통하고 사모함이 더욱 새로워 마음을 스스로 가눌 수가 없기에 삼가 저의 심정을 쏟아냅니다. 삼가 존령께서는 살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維歲次丙寅十一月戊辰朔十八日乙酉日南至, 孝子澤述, 謹具果物, 哭告于顯妣孺人崔氏權厝之墓.嗚呼! 我先妣之孝敬德善, 天必鑑, 只神應聽之.生而使之困衡勤苦於一世, 沒可使之安定幽宅於萬齡, 胡乃權祔未得安寧, 倉卒錯占, 旣厝旋移.天不可必, 神難諶斯者, 乃至於此乎.嗚呼痛哉.非天之不可必, 非神之不可諶, 乃不肖不孝之積惡, 上累而到之也.事出不意, 進退維谷.薄掩乎石田風市之中者, 于玆八朔.猶且飢打食困打眠, 以至居處往還, 冠昏祭祀, 凡干人事, 無不自同平人, 若是乎不肖之頑忍也.但其一點秉彛之未泯, 五內幾焚於一日, 雙脚亂走乎萬山.然十分頑忍, 一分良心, 奚足以有成.雖然天鑑神聽, 無其理則己 ; 苟有之, 不於先妣之孝敬而何鑑, 不於先妣之德善而何聽.吾知其定天正神, 不因不肖不孝而終不佑於先妣也.惟是未遂之前, 此心焦悶, 一日三秋.遽玆天時改移, 一陽已生, 歲不我與.痛慕益新, 情不自已, 謹寫厥衷.伏惟尊靈, 庶垂鑑諒. 권조(權厝) 좋은 묏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매장하는 것이다. 권폄(權窆), 또는 중폄(中窆)이라고도 한다. 마음에……걸리며 원문의 '곤횡(困衡)'은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마음에 괴롭고 생각에 걸린 뒤에 분발하며, 얼굴빛에 징험되고 음성에 나타난 뒤에 깨닫는다.[困於心, 衡於慮而後作, 徵於色, 發於聲而後喩.]"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나아갈……없는지라 《시경(詩經)》 〈상유(桑柔)〉에 "붕우들이 이미 참소하여 서로 선하게 하지 않도다. 사람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고 하는구나.[朋友已譖, 不胥以穀, 人亦有言, 進退維谷.]"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오장(五臟) 원문의 '오내(五內)'는 우리 몸의 다섯 가지 장기(臟器)인 오장을 이른다. 일양(一陽)이……되었는지라 동지(冬至)에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발동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그러므로 동지를 일양이라고도 한다. 《주역(周易)》 〈복괘(復卦)〉에 11월은 복괘(復卦)에 해당되어 일양이 맨 밑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참고로, 그 소(疏)에 "동지에 일양이 생긴다.[冬至一陽生.]"라고 하였다. 세월이……않으니 《논어》 〈양화(陽貨)〉에 "해와 달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지라.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日月逝矣, 歲不我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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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先考)와 선비(先妣)의 묘에 고하는 글 告先考先妣墓文 유세차(維歲次) 정사년(1917) 7월 임진삭(壬辰朔) 26일 정사일(丁巳日)에 효자 택술(澤述)은 감히 현고(顯考) 학생부군(學生府君)과 현비(顯妣) 유인(孺人) 최씨(崔氏)의 묘소에 다음과 같이 밝게 고합니다.삼가 생각하건대 선군(先君)께서 평소 저를 돈독히 가르쳐 주신 덕에197) 불초한 제가 그지없는 은혜를 받아 다행히 사람 옷을 입은 소나 말의 꼴198)은 면하였습니다. 다만 셋째와 넷째 두 아우는 가장 늦게 태어난 탓에 잘 인도해 주시는 가르침199)을 끝마치지 못하였으니, 이는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한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계제(季弟) 억술(億述)이 근래에 절실히 학문에 뜻을 두어 이미 간재(艮齋) 전선생(田先生 전우(田愚))의 문하를 귀의처로 정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 밝으신 존령께서는 지성(志誠)이 얼마나 진실한 지를 살피셨을 것입니다. 불초한 저는 맹세컨대 서로 권면하여 집안의 명성을 잇도록 하겠습니다. 바라건대 가만히 도와주시고 묵묵히 인도해 주시어 그 몸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소서. 스승과 제자의 분수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지라, 삼가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서 공경히 그 사유(事由)를 고합니다. 維歲次丁巳七月壬辰朔二十六日丁巳, 孝子澤述, 敢昭告于顯考學生府君顯妣孺人崔氏之墓.竊惟先君平日, 篤於義方, 不肖受恩罔極, 幸免馬牛之裾.但叔季二弟, 其生最後, 未卒式穀之誨, 是爲幽明之恨.何幸季弟億述, 近切志學, 已定依歸於艮齋田先生之門.尊靈於昭, 應鑑志誠之虛實.不肖誓與交勖, 用繼家聲.尙冀冥佑默導, 俾成厥身.師生定分, 其事至重.謹以酒果, 祗告厥由. 저를……주신 덕에 원문은 '篤於義方'이다. '의방(義方)'은 올바른 도리로 자식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 방자하게 굴자,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충간(忠諫)한 말 가운데 "아들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올바른 도리로 가도록 가르쳐서 잘못된 곳으로 빠져 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3年》 사람……꼴 마우금거(馬牛襟裾)와 같은 말이다. 이는 말이나 소에 의복을 입힌다는 뜻으로, 주로 학식이 없거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사람이 고금의 일에 통하지 못하면, 말과 소에 옷 입혀 놓은 꼴이라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6》 잘……가르침 원문의 '식곡(式穀)'은 자식을 잘 인도하여 훌륭히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뽕나무 벌레 새끼를 나나니벌이 업고 가도다. 네 자식을 잘 가르쳐서, 착한 것을 닮게 하라.[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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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와 5대 조고비의 묘에 고하는 축문【정묘년(1927)】 告六世五世祖考妣墓祝文【丁卯】 삼가 아룁니다. 伏以선사를 체천195)하는 것은 先祀遞遷집안의 체통을 드러낸 것으로, 著之家體풍속에 따라 제도를 이루어서 因俗成制후대 사람들이 따른 것입니다. 後世式遵《송자대전》을 상고해보니 爰攷大全사손의 대까지 한정하는데 限嗣孫代진실로 정론인 것이요, 寔爲論定옛 경전에 근거한 것입니다. 據之古經체천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 것인데 遷出乎情옛 제도를 헤아려 보면 중요한 일로, 稽古體重그 극치를 궁구해 보니 究厥極致유래가 있음을 압니다. 知在攸從또한 후대의 어진 이들이 亦越後賢이미 취사함이 있습니다. 已有取舍생각하건대 조고비는 念祖考妣자손들이 번성하여196) 孫麗有綿제방에 천사한 경우가 遷祀諸房수십 년인지라, 于數十祀이에 모두 구차하게 되어 迨玆幷窶예를 행하기가 진실로 어렵습니다. 爲禮實難삼가 옮겨 장사 지낸 뒤에 謹移喪餘해마다 한 번씩 묘소에 제사를 받드니, 歲一薦墓마음은 비록 억제하지만 情雖有抑예를 따져보면 마땅한 일입니다. 禮則是宜형세상의 이유로 생긴 일이지만 事出勢緣도리어 귀결은 올바름을 얻었으니, 反歸得正일에 나아가는 처음에 卽事之始감히 그 사유를 아룁니다. 敢告厥由존령께서는 굽어 살피시어 尊靈鑑臨부디 재앙을 내리지 마소서. 庶不降戾부디 흠향하소서. 尙饗 伏以先祀遞遷, 著之家體, 因俗成制, 後世式遵.爰攷《大全》, 限嗣孫代, 寔爲論定, 據之古經.遷出乎情, 稽古體重, 究厥極致, 知在攸從, 亦越後賢, 已有取舍.念祖考妣, 孫麗有綿, 遷祀諸房, 于數十祀.迨玆幷窶, 爲禮實難.謹移喪餘, 歲一薦墓, 情雖有抑, 禮則是宜.事出勢緣, 反歸得正, 卽事之始, 敢告厥由.尊靈鑑臨, 庶不降戾.尙饗. 체천(遞遷) 종손(宗孫) 집 사당에서 봉사(奉祀)하는 대수(代數)가 다한 선조의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보통 최장방(最長房)의 집으로 옮기는데, 최장방은 4대 이내의 자손 가운데 항렬이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한다. 번성하여 원문은 '유면(有綿)'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면(緜)〉에 "번성한 큰 오이와 작은 오이여.[緜緜瓜瓞]"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오이 덩굴이 끝없이 뻗어나가 오이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처럼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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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강계일에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 신미년(1931). 아래도 같다. 瀛洲講契日 同諸益吟【辛未下同】 추억하니 계를 만든 것이 선천의 일 같아 憶曾設契似先天강신264)을 해 온 지 삼십 년이 되었구나 講信由來三十年고국 서리265)를 얼마나 노래했던가 故國黍離歌幾疊중도에 대들보 꺾여266) 끝없이 한스럽구나 中途樑折恨無邊길이 멀다고 천근의 짐을 어찌 포기하리오 道賖寧棄千斤擔새벽 오면 응당 잠자는 만백성 깨워야하리 晨曙應醒萬衆眠난초와 국화 기약함은 승사를 이루려함이 아니요267) 蘭菊爲期非濟勝한 마음으로 단지 월과 연이 함께 하길 바라서네268) 一心只欲越同燕 憶曾設契似先天, 講信由來三十年.故國黍離歌幾疊, 中途樑折恨無邊.道賖寧棄千斤擔, 晨曙應醒萬衆眠.蘭菊爲期非濟勝, 一心只欲越同燕. 강신(講信) 조직체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의와 신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일을 말한다. 서리 '서리(黍離)'는 《시경》 왕풍(王風)의 편명인데, 망한 나라를 슬퍼하는 내용이다. 동주(東周)의 대부가 행역(行役)을 나가는 길에 이미 멸망한 서주(西周)의 구도(舊都)인 호경(鎬京)을 지나가다가, 옛 궁실과 종묘가 폐허로 변한 채 메기장과 잡초만이 우거진 것을 보고 비감에 젖어 탄식하며 부른 노래이다. 대들보 꺾여 원문의 '양절(樑折)'은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孔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哲人)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난초와……아니요 난초 피는 봄과 국화 피는 가을에 만나는 것은 멋진 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월과……바라서네 난초가 피고 국화가 필 때 강계(講契)를 여는 것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모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월(越)'과 '연(燕)' 모두 춘추 시대의 나라 이름이다. 연나라는 북쪽, 월나라는 남쪽에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간에 거리가 아주 먼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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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제 여호185)에게 올리는 제문 祭仲弟汝昊文 유세차 병술년(1946) 6월 6일 신사날, 나의 둘째 아우가 세상을 떠난지 38일이 되었으니, 오늘이 바로 그가 태어난 날이다. 늙은 이 형 후창(後滄)은 아우보다 3년 일찍 태어났는데 달과 날이 같아서 이날 이면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었다. 이제 그 술 한 잔을 영연(靈筵) 앞에 붓고 곡하며 말한다.오호! 사람의 형제로서 우리 둘 같은 기이한 인연은 보기 어렵고, 형제간의 아픔 중에 아우가 거꾸로 먼저 죽으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법인데, 나는 얻기 어려운 인연에서 견디기 어려운 아픔까지 당하였으니, 이 때문에 너무나도 애통하여 죽고만 싶다. 아, 우리 형제는 비록 오래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지만, 형제 자매 여섯 명이 이미 노인이 되었고, 모두가 해로하며 자손을 두었다. 이 또한 드물게 있는 복이라, 늘 이것을 두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올봄에 셋째 아우 여직(汝直)이 먼저 세상을 뜨고, 군(君)의 부부가 뒤를 이어 떠났다. 접때는 드문 복을 자랑하는 몸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급한 화를 당한 집안이라 하니, 사람이 일이란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군은 골격이 튼튼하고 실하며, 심성이 순박하고 곧아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장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겨우 육십 세에 이르러 나 같은 허약한 사람보다 먼저 떠나 가며, 도리어 끝없는 슬픔과 함께 죽은 뒤의 일을 남겨놓고 떠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으랴? 이것 또한 더더욱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비록 그렇지만, 사람이 이미 나이 예순에 이르렀으니, 칠팔십 세의 장수 누리는 것을 어찌 꼭 기약하겠는가? 다만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우리 집안이 아버님 벽봉(碧峰)께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를 세우신 이래로 일본을 배척한다는 지목을 받아 온 가족의 생계가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이 이제 40년이 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큰 원수가 이미 물러가고 나라를 다시 세워 해마다 풍요롭고, 태평한 시기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하여 죽지 말고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늘그막에 소강(小康)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고,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간단 말이냐? 아아! 이 일은 이미 어쩔 수 없다면, 다 누리지 못한 복이 자손에게라도 남아야 마땅한데, 군의 아들 하나, 손자 하나는 그야말로 돌봐주는 사람 없이 외롭고 약하구나. 옛적에 한 문공(韓文公)은 요절한 조카를 위해 제문(祭文)을 쓰면서 후사(後嗣)의 성립을 근심하고 연연해 돌아보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내 마음이 어찌 그와 다르겠는가?186) 만약 어둡지 않은 영령이 저승에서 암암리에 도우며 지키고 보전해준다면, 이제 점차 번창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군이 남긴 음덕의 보답이 여기에 있게 된다면, 그 어찌 이승과 저승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 흠향하소서! 維歲次丙戌之六月六日辛巳, 我仲弟觀化之第三十有八日, 卽其懸弧之辰也。 伯兄後滄老夫生先三歲, 月日則同, 乃以平昔此日迭相分飮之酒, 酹一酌于靈筵而哭告, 曰: 嗚呼! 人家兄弟難得吾兩人之奇綠, 同氣之痛尤難堪於倒喪逆慘, 以難得之緣遭難堪之痛, 此余絶慟而欲死也。 嗟吾兄弟, 雖不久侍父母, 兄弟姊妹六人年已耆艾, 皆偕老有子孫, 亦是稀有之福, 常以此自多矣。 忽於今春叔弟汝直先逝, 君之夫妻繼之。 向也自多稀福之身, 今焉人謂暴禍之家, 人事之不測乃如是乎! 君之骨相完實, 心性淳直, 人皆謂當得上壽, 孰料其僅至六旬, 先我虛弱者而去, 反貽以無涯之慟, 後事之勞乎? 此又不測之尤者也。 雖然, 人旣得耆年, 則耄耋遐齡亦豈可必? 但所痛恨者, 吾家自碧峰先子尊攘義立以來, 受排日之目, 全家計活指溝壑爲歸者, 四十年于玆矣。 今幸巨讐旣去, 國家復立, 連歲登豐, 昇平在前, 胡不少須臾無死, 與我享暮年小康之樂, 而遽歸乎? 嗚呼! 此旣不得, 則惟當留不盡之福, 以遺子孫, 而君之一子一孫可謂孤弱矣。 昔韓文公祭從子文, 慮後嗣之成立, 而眷眷不已。 今之余懷亦豈有他? 惟不昧之靈冥佑陰騭, 俾得保持, 漸至熾昌。 談者稱君不食之報, 其在於斯, 則豈非幽明之幸歟? 嗚呼哀哉! 尙饗! 여호 둘째아우 김봉술(金鳳述, 1887~1946)의 자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부인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생몰년은 1885~1945이며, 그 부친은 임긍호(林兢鎬), 조부는 임응순(林應淳)이다. 한문공은……다르겠는가 한 문공은 중국 당나라 때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를 말하는데, 그 큰형님의 아들인 한노성(韓老成)이 죽자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지어 조카에 대한 애절한 정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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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누님183)께 올리는 제문 祭次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2월 28일, 작은 누이가 전주부(全州府) 검암리(儉巖里)의 살던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우 김택술(金澤述)은 4월 2일 부고를 듣고 나흘 뒤에 상복을 갖춰 입었으나 중풍이 들어 곡하러 달려가지 못하였습니다. 임진년(1952) 2월 대상(大祥) 하루 전날, 멀리서 무덤을 바라보며 제문을 올립니다.아아, 우리 둘째 누님 嗚呼姊氏,어려서 집에 살 때에 幼而在家,추위와 굶주림 안 보았고, 不見寒飢,자라서 시집가서도 長而適人,먹고 살기 풍족했으며, 亦饒生資,자녀들 잘 자라나 子女善茁,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지요. 人皆羡之.어쩌다가 중년의 나이에 夫何中身,가업이 쇠미해져 家業衰微,고향 초산(楚山)184)에서 楚山故土,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고 受人侮欺,완산(完山)에 흘러 와서 完山流寓,다시 또 처량해지셨습니다. 亦云凄其.나 또한 맨몸인지라 余亦赤立,곡식 한 톨도 돕지 못했고, 莫助絲糜,틈나면 자주 안부 물으며 間多探侯,그저 한숨 쉬고 탄식했지만, 徒爾歔欷,누님은 슬퍼하지 않고 姊不戚戚,너그러이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니, 以寬自怡,이런 큰 폭의 아량은 一副雅量,남자들도 드문 것이었습니다. 罕見巾帔.신사년(1941)에 이르러 于歲之辛,만주로 이주하시니 于滿之移,한 배에서 난 칠순의 혈육 七耋同胞,만리 먼 곳에 이별하며 萬里遠離,칼로 베인 듯 아파서 有傷若割,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有淚如絲.서신 전하고 돈 보내어 致書投金,제수 준비 보태시고 俾助祭犧,길 끊어진 먼 이역에서도 窮途絶域,오직 효성을 생각하셨지요. 維孝之思.하늘이 효심을 도와준 듯 天佑孝思,얼마 안 지나 무사히 돌아와서 生還不遲,곧장 우리 집에 달려오시어 亟來我宅,누님과 남동생이 대화 나누는데 姊弟接辭,끝없이 이어지고 흐르는 이야기들 瀜瀜洩洩,너무나 화락하고 즐거웠습니다. 其樂可知.천운은 순환하고 天運循還,이치는 진실한 것이라 理固諶斯,옛 가업을 새로 일으키자 舊業重新,크게 일어나 번창하여 熾而昌而,잘 갖춘 아름다운 집과 방을 宅室完美,검암리(儉巖里)에 마련하시니 于儉之里,나란히 머리 흰 부부가 白首偕老,뜰에는 후손들이 가득하였고, 滿庭孫枝,늘그막에 누리는 복 너무 아름다워 晩福孔嘉,전날의 풍진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前塵烟飛.그런데 내가 길이 막혀 余因路梗,안부를 길게 빠뜨리고 있었는데 闕侯多時,누가 알았으랴 하루 저녁에 誰知一夕,갑자기 떠나가실 줄을. 遽爾騎箕.평생토록 병이 많았지만 平生多病,오래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遐壽以歸,덕과 선을 행한 보답이 있어 德善之報,끝내 이치에는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理竟無差,죽은 사람에게 한 없으니 死者無憾,산 사람이 무엇을 슬퍼하리까. 生者何悲,내가 몇 해 전부터 余自往年,사지에 병이 감겨있습니다. 病纏四支,높으신 영령께서 들어 아신다면 尊靈有知,나의 이런 근심을 가엾이 여겨 憫我若玆,황천(皇天) 염라대왕께 말씀 올려 訴皇請閻,저승사자 명부(命符) 빨리 보내서 符令遄施,오래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無久苦楚.나에게 그 은혜가 내리거든 我惠旣垂,얼른 일찍 황천에 들어가 早入泉坮,높으신 영령을 따르겠습니다. 尊靈相隨.아아, 누님이시여, 嗚呼姊氏,흠향하소서. 尙饗! 維辛卯二月二十八日, 我次姊氏卒于全州府之儉巖里寓舍。 弟澤述以四月二日聞訃, 越四日成服, 中風病重, 未由奔哭, 以壬辰二月大祥前一日, 文以望祭, 曰: 嗚呼姊氏, 幼而在家, 不見寒飢, 長而適人, 亦饒生資, 子女善茁, 人皆羡之, 夫何中身, 家業衰微, 楚山故土, 受人侮欺, 完山流寓, 亦云凄其, 余亦赤立, 莫助絲糜, 間多探侯, 徒爾歔欷, 姊不戚戚, 以寬自怡, 一副雅量, 罕見巾帔, 于歲之辛, 于滿之移, 七耋同胞, 萬里遠離, 有傷若割, 有淚如絲, 致書投金, 俾助祭犧, 窮途絶域, 維孝之思, 天佑孝思, 生還不遲, 亟來我宅, 姊弟接辭, 瀜瀜洩洩, 其樂可知, 天運循還, 理固諶斯, 舊業重新, 熾而昌而, 宅室完美, 于儉之里, 白首偕老, 滿庭孫枝, 晩福孔嘉, 前塵烟飛, 余因路梗, 闕侯多時, 誰知一夕, 遽爾騎箕, 平生多病, 遐壽以歸, 德善之報, 理竟無差, 死者無憾, 生者何悲, 余自往年, 病纏四支, 尊靈有知, 憫我若玆, 訴皇請閻, 符令遄施, 無久苦楚, 我惠旣垂, 早入泉坮, 尊靈相隨。 嗚呼姊氏, 尙饗! 둘째누님 둘째누님의 남편은 고흥류씨 류동기(柳東起)이고 시아버지는 류연호(柳然灝)이다. 초산(楚山)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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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큰누님182)께 올리는 제문 祭長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11월 계유삭(癸酉朔) 2일 갑술날, 아우 김택술은 삼가 술과 과일로 제사 지내며 큰누님의 영령께 글을 지어 곡하며 아룁니다.아아, 우리 큰 누님 嗚呼我姊,타고난 성품 선하고 어질었으며 天質善仁.집에서 크면서 효성스러웠고 在家而孝,시집가서 화목한 가정 이루었지. 歸宜其人.평소에 말수 적고 平生寡言,사람 대함이 진실하였네. 待人以眞.비록 나를 극진히 아꼈으나, 愛我雖切,일찍이 사사로운 말 없었지. 曾無私言.그 부인의 덕과 규방 법도는 婦德閫範,세상에 드문 것이었네. 世界罕焉.어찌하여 아들 단 하나 두었고, 一子胡單,두 딸은 오래 살지 못하였으니, 二女無年,이것만을 아쉬워 하였고, 用是爲欠,곁에서 보면서도 그러했네. 傍觀亦然.늘그막에 이르러서 逮乎晩境,손자 증손 가득하였지. 孫曾滿前,칠순 해로하며 七旬偕老,인간의 책임 다하였으니, 了債人間,세속에 말하는 번영과 쇠망은 俗說榮喪,지나간 다른 날의 말들일 뿐이네. 他日輿論.그 어찌된 큰 난리에 夫何大亂,동쪽 서쪽으로 숨고 달려갔다가 東竄西奔,객지 인척 집에서 병이 나더니 旅病姻家,혼령이 되어 돌아왔네. 因復其魂,창황함에 힘없는 고아가 倉皇孤弱,초라하게 염하여 묻으니, 草草殮窀,끝없이 아득한 이 한스러움 此恨茫茫,어디쯤에서 다할 수 있을까. 曷有涯津.작년 시월 이래로 自昨十月,몸이 병에 휘감겼는데 病纏于身,정월 길일 아침에 正吉之朝,흉한 소식 처음 들었지. 凶報始聞,상복은 이미 지었지만 服雖已成,곡하러 가기 실로 어렵네. 奔哭實難.일년 내내 마음 먹다가 終歲經營,이제 소상날이 되었구나 始達練辰,울어도 소리 안 나오고, 哭不成聲,눈물만 샘처럼 솟는구나. 有淚湧泉.높으신 영령이 앎이 있다면, 尊靈有知,아우 얼굴 알아보시려나. 倘記弟顔.아아. 슬프도다! 嗚呼哀哉!흠향하소서! 尙饗! 維歲次辛卯十一月癸酉朔二日甲戌, 弟澤述謹以酒果之奠, 爲文哭告于長姊氏之靈, 曰: 嗚呼我姊, 天質善仁, 在家而孝, 歸宜其人, 平生寡言, 待人以眞, 愛我雖切, 曾無私言, 婦德閫範, 世界罕焉, 一子胡單, 二女無年, 用是爲欠, 傍觀亦然, 逮乎晩境, 孫曾滿前, 七旬偕老, 了債人間, 俗說榮喪, 他日輿論, 夫何大亂, 東竄西奔, 旅病姻家, 因復其魂, 倉皇孤弱, 草草殮窀, 此恨茫茫, 曷有涯津, 自昨十月, 病纏于身, 正吉之朝, 凶報始聞, 服雖已成, 奔哭實難, 終歲經營, 始達練辰, 哭不成聲, 有淚湧泉, 尊靈有知, 倘記弟顔。 嗚呼哀哉! 尙饗! 큰누님 큰 누님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봉(金在鳳)이며, 시아버지는 김기열(金箕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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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큰고모179)께 올리는 제문 祭伯姑文 유세차 을축년(1925) 4월 정축삭(丁丑朔) 23일 기해날, 유인 김씨의 영연(靈筵)을 철거하는 날입니다. 그 하루 앞에 조카 김택술(金澤述)이 삼가 과일과 포를 갖추고 글을 지어 고모님을 곡하며 말합니다.아아, 우리 고모님의 단정한 행실, 정결한 용모, 깨끗한 지조로써 검소하게 가난을 견디며 예순 해를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타고난 성정은 그리도 넉넉하였건만, 받은 복록은 어찌 그리 인색하였단 말입니까?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근심걱정 않는 것은 관 쓴 남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자이겠습니까? 공경과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봉양하여 비록 나물국의 일상 식사 때도 반드시 따로 차려서 올리셨습니다. 이따금 손님은 구름처럼 찾아오고 곳간은 텅 비어 있었는데, 그래도 온갖 방법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시아버지의 뜻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늘 친정어머니를 뵈러 오며 계절의 안부를 여쭈었고, 반드시 음식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선친의 제삿날이면 미리 보관해 둔 밤과 감을 보내셨는데, 정해진 임무로 여기셨습니다. 모든 이런 일은 몹시 가난한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인의 도리와 자식의 직분 두 가지를 다 해냈습니다. 옛일에 견주자면 참으로 여사(女士)의 유풍(流風)입니다.아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늘 형제가 드문 것을 한스러워하시며 나의 고모님을 큰형님처럼 섬기셨고, 고모님도 또한 나의 아버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니, 아마도 남의 오누이 사이와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족한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몸받아 나의 고모님을 큰아버지처럼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살림 형편이 매우 나빠져서, 탈 없으신 날에 한번도 정성스런 음식을 올려드리지 못하였고, 멀리 나가 객지 생활을 한 까닭에 장례를 치를 적에도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아아! 콩죽과 지게미를 먹으며, 고모님은 평생을 고생만 실컷 하셨습니다. 아, 그런데도 저 망극한 궁귀(窮鬼)는 무슨 심보로 길이 떠나신 고모님의 처량한 영위를 백리 타향에 있게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답이 어찌하여 이렇게 너무도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이제 다만 아들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워 손자와 증손까지 이제 번성하여, 줄지 않는 보응(報應)180)이 장차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維歲次乙丑四月丁丑朔二十三日己亥, 孺人金氏撤靈之期也。 前一日, 姪澤述謹具果脯操文而哭之, 曰: 嗚呼! 我姑以端一之行、潔靜之容、廉介之操, 食貧處約六十年所而沒。 稟之性者何豊, 而賦之祿者何嗇? 安其分而不戚戚, 冠珮者之猶難, 而况於巾幗中乎? 奉尊章以誠敬, 雖菜醬常饌, 必別設而進之。 有時賓客如雲, 室若懸磬, 而百方供具以悅舅志。 每歸寧于母, 及時節侯問, 必以食物隨之。 値先忌, 豫儲柿栗而送之, 課以爲常。 此又皆貧窶之所難能, 而婦道子職之兩盡也。 求之於古, 信其爲女士之流也。 嗚呼! 先君常以終鮮爲恨, 事我姑如伯兄, 我姑之於先君, 亦愛重之至, 蓋有異乎人之姊弟矣。 不肖亦體先君之心, 視我姑有若世父之尊, 而自失怙以來, 調度殘敗, 未嘗進一味之誠於無恙之日, 旅食遠方, 又未奔趨於斂葬之時, 安在其所謂體先君者哉! 自分咎罪, 措躬無地。 嗚呼! 啜菽厭糠, 我姑之飽喫困艱於生平者, 而噫彼窮鬼, 猶甘心於永逝之後, 百里他鄕靈幃凄凉, 天之報施何如是之舛也! 惟是胤子賢孝, 孫曾且蕃, 不食之報, 其將在斯也歟! 嗚呼, 哀哉! 尙饗! 큰고모 족보에 의하면 큰고모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호(金在浩)이며, 시아버지는 김기태(金箕台)이다. 줄지 않는 보응(報應)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대대로 다 잘 되며 대를 거듭해도 줄지 않는 보응(報應)을 말하는데, 원문은 '불식지보(不食之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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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단비가 내리다 2수 翌日喜雨【二首】 어제 가뭄 걱정한 시 지었더니 하늘이 알아주어 昨題憫旱獲天知한바탕 비가 쏟아져 나를 위해주는 듯하네 一雨還如爲我爲양맥426)은 소동파의 기문427)에 오른 것 기뻐하고 兩麥喜登蘇子記삼농428)은 한퇴지의 시에 들어간 것 위로하네 三農慰入韓公詩운수가 장차 길하게 될지 알기 어렵지만 運將回吉雖難識백성들 부디 굶주림 없길 또한 기대하네 民庶無飢亦可期내일 아침 꽃구경 늦어진다 한탄하지 말게 莫歎明朝花事晩우리네 인생 다시 멋진 유람할 때가 아니니 吾生非復勝遊時비 올 줄 아침에도 감히 알지 못했으니 雨勢朝來未敢知홀연히 신묘하게 조물주가 만들었으리라 忽然神妙化工爲먼 길손은 돌아갈 길 더디다 근심하지 않고 不愁遠客遲歸路무슨 일인지 은자도 기쁘게 시를 짓누나 底事幽人喜賦詩다시 봄보리를 적셔주니 좋은 징조 많아 更沾春麥多休兆가을밭에 풍년이 미리 기대되는 듯하네 豐在秋田似豫期솥 안의 물고기429) 살린 것 뜻한 바 있으니 活此釜魚應有意그대도 이제는 천시를 알 수 있으리라 請君迄可識天時 昨題憫旱獲天知, 一雨還如爲我爲.兩麥喜登蘇子記, 三農慰入韓公詩.運將回吉雖難識, 民庶無飢亦可期.莫歎明朝花事晩, 吾生非復勝遊時.雨勢朝來未敢知, 忽然神妙化工爲.不愁遠客遲歸路, 底事幽人喜賦詩?更沾春麥多休兆, 豐在秋田似豫期.活此釜魚應有意, 請君迄可識天時. 양맥(兩麥) 보리와 밀을 말한다. 소동파(蘇東坡)의 기문(記文) 소식(蘇軾)이 부풍(扶風)에 부임한 이듬해 관아에 정자를 만들었는데, 이해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될 무렵 정자가 완성되자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으로 짓고,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이다.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坡全集 卷35 喜雨亭記》 삼농(三農) 평지농(平地農)ㆍ산농(山農)ㆍ택농(澤農)을 일컫기도 하고, 춘경(春耕)ㆍ하운(夏耘)ㆍ추수(秋收)를 일컫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농사를 범칭한다.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말하는데, 생명에 위험이 닥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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