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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에서 감회가 있어서 2수 天台山有懷【二首】 쇠한 나이엔 가는 봄 아까워 정말 괴로운데 衰年正苦惜殘春늘 한스럽네 천시는 사람 기다리지 않는구나 每恨天時不待人가슴 속엔 공연히 만 권의 책을 간직했으니 胸裏徒然藏萬卷술잔 앞에서 원하노니 취해 천 순배 해야지 樽前但願醉千巡척지금성의 손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280) 擲金孫綽今安在산가지 쌓는 마고는 분명 정신이 있는가281) 積筭麻姑定有神어여뻐라 시냇물은 얼마나 맑고 시원한가 憐爾澗流何淸洌한 바가지 마셔보니 내 입술이 상쾌하네 一瓢試酌爽吾唇나의 생애는 오십도 차지 않았는데 我生不滿五旬春회상해보니 까마득해 옛사람 같구나 追想茫茫若古人이곳 저곳 풍파에 오랜 세월 놀라고 南北西風驚百劫아 육아와 양괴282)의 고통에 세 번 곡을 했네 亐莪樑痛哭三巡비방의 발길질 감내해 그래도 뼈대는 남았고 堪來謗踢猶餘骨가난의 마귀 대적하여 아직도 정신은 지켰네 敵去貧魔尙守神어리석은 마음으로 세상 살며 무엇을 했나 度世癡心還爲底신선의 술이나 가지고 내 입에 들이켜야지 思將仙釀入吾唇 衰年正苦惜殘春, 每恨天時不待人.胸裏徒然藏萬卷, 樽前但願醉千巡.擲金孫綽今安在, 積筭麻姑定有神.憐爾澗流何淸洌, 一瓢試酌爽吾唇.我生不滿五旬春, 追想茫茫若古人.南北西風驚百劫, 亐莪樑痛哭三巡.堪來謗踢猶餘骨, 敵去貧魔尙守神.度世癡心還爲底, 思將仙釀入吾唇. 척지금성의……있는가 천대산의 멋진 풍경을 읊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인다. 원문의 '척금(擲金)'은 '척지금성(擲地金聲)'의 줄인 말로 매우 뛰어난 문장을 비유하고, '손작(孫綽)'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진(晉)나라의 문장가이다. 손작이 〈천태산부〉를 지은 뒤에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는 시험 삼아 이 글을 땅에 던져 보게나, 의당 금석 소리가 날 것일세.[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산가지……있는가 천태산은 선녀가 내려올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마고(麻姑)'는 전설 속의 선녀 이름이다. 마고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을 부름을 받고 내려와 "저번에 우리가 만난 이래로 동해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한 것을 이미 보았는데, 저번에 봉래에 가서 보니 물이 또 과거에 보았을 때에 비해서 약 반절로 줄어들었으니, 어쩌면 다시 땅으로 변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接待以來, 已見東海三爲桑田, 向到蓬萊, 水又淺於往昔會時略半也, 豈將復還爲陵陸乎.]"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神仙傳 卷7 麻姑》 육아와 양괴 돌아가신 부모와 스승을 슬퍼한 것이다. 원문의 '육(莪)'은 《시경》 〈육아(蓼莪)〉 시를 가리키는데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전에 잘 봉양하지 못하였음을 슬퍼한 시이다. '양(樑)'은 '산량퇴괴(山梁頹壞)'를 말한 것으로 스승의 죽음을 뜻한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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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정 시에 차운하다 주인은 최원숙 만열이다. 次晩悟亭韻【主人崔元淑滿烈】 만년에 초연히 초가 정자 하나 짓고 晩節超然一草亭달밝은 창가에 깨어 허령269)을 깨닫네 明牕惺惺悟虛靈구름 머문 영주산270)은 선가의 인연 깊고 瀛岑雲宿仙緣重물결 맑은 초강271)은 속된 기운 깨우네 楚澤波淸俗氣醒정말 공교로운 시율은 기로를 흥기시키고272) 詩律眞工夔老興보수 같은 자손들은 사가에 푸르구나273) 兒孫寶樹謝家靑풍진의 땅은 지금 또 삼분 세상274)이니 風塵今亦三分世흑모를 쓴 것이 어찌 관녕275)뿐이리오 白276)帽何曾獨管寧 晩節超然一草亭, 明牕惺惺悟虛靈.瀛岑雲宿仙緣重, 楚澤波淸俗氣醒.詩律眞工夔老興, 兒孫寶樹謝家靑.風塵今亦三分世, 白帽何曾獨管寧. 허령(虛靈) '허령불매(虛靈不昧)'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 명덕장(明德章)의 주에서 "밝은 덕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온갖 이치를 구비하고 만사에 수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영주산 '영잠(瀛岑)'은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영주산(瀛州山)을 가리킨다. 초강 '초택(楚澤)'은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초강(楚江)을 가리킨다. 기로를 흥기시키고 음률에 뛰어나다는 뜻이다. '기로(夔老)'는 '기(夔)'를 가리키는데, 순 임금 때 음악을 관장하는 악정(樂正)을 맡아 오음(五音)ㆍ육률(六律)를 바로잡았다. 《書經 舜典》 보수……푸르구나 훌륭한 자손이 많다는 뜻이다. '사가보수(謝家寶樹)'의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보수(寶樹)'는 옥수(玉樹)와 같은 말로 남의 집 훌륭한 자제를 비유한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섬돌 앞 뜰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자신의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삼분 세상 천하가 위(魏), 촉(蜀), 오(吳)로 나뉘어 다투던 세상으로 난세를 비유한다. 흑모를……뿐이리오 자신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청빈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관녕(管寧)'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이다. 일찍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하여 요동(遼東)으로 건너가서 생도들을 가르치며 40년 가까이 지냈다. 명제(明帝)로부터 태중대부(太中大夫), 광록훈(光祿勳) 등의 제수가 있었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으며, 특히 청빈을 달게 여겨 항상 '검은 모자[皁帽]'만 착용하고 지냈다고 한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白 '皁'자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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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시 2수 卽事【二首】 은거를 배웠으니 산남으로 갈 필요 없어 不須學隱往山南평소 효효함436)에 뜻 두고 옛 삼대437)를 사모했네 素志嘐嘐慕古三밤엔 맑은 물가에 이르러 밝은 달을 보고 夜臨滄水看明月아침엔 높은 산에 올라 푸른 이내를 뜨네 朝陟台岑挹翠嵐두텁고 얇음을 따질 교유가 이미 끊겼으니 已息交遊論厚薄세상맛의 시고 짬을 애써 물을 것도 없네 無勞世味問酸鹹매화 핀 창가에서 때때로 《주역》 읽는데 梅牕時讀乾坤易이 속에 담긴 정밀하고 참됨을 뉘 알았으랴 誰識精眞此裏含슬퍼도 곡하지 않고 기뻐도 노래하지 않으니 悲非至哭喜非歌모두 유유한 생각을 한 번 읊조림에 부치네 總把悠悠付一哦산처럼 사귄 정은 오래도록 싫어하지 않고 山若交情長不厭봄 같은 나의 늙음도 많이 남지 않았네 春如我老亦無多밭 갈며 사슴과 벗하니 맑은 복이 돌아오고 耕田友鹿還淸福도를 지켜 사람에게 전하니 큰 죄를 당하네 守道傳人見大何온갖 일이 마땅하면 절로 안정됨을 알겠으니 萬事端宜知自定오고 가는 뜬구름이 저들과 무슨 상관이랴 浮雲來去豈關他 不須學隱往山南, 素志嘐嘐慕古三.夜臨滄水看明月, 朝陟台岑挹翠嵐.已息交遊論厚薄, 無勞世味問酸鹹.梅牕時讀乾坤易, 誰識精眞此裏含?悲非至哭喜非歌, 總把悠悠付一哦.山若交情長不厭, 春如我老亦無多.耕田友鹿還淸福, 守道傳人見大何.萬事端宜知自定, 浮雲來去豈關他? 효효(嘐嘐)함 이상만 턱없이 높아서 언행일치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만장(萬章)이 금장(琴張)ㆍ증석(曾晳)ㆍ목피(牧皮)와 같은 이들을 어찌하여 광자(狂者)라 하는지에 대해 묻자, 맹자가 "그 뜻이 높고 커서 말하기를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라고 하지만, 평소에 그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덮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이다.〔其志嘐嘐然曰, 古之人古之人!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라고 한 사실이 있다. 《孟子 盡心下》 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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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도모하는 세상 사람들을 한탄하며 歎世人謀食 일이 크든 작든 걱정 근심하는 것은 大焉惙惙小焉愁예나 지금이나 잠시도 그치지 않네 古往今來不暫休모두가 당시의 한 치 살갗을 기르니 總爲當時寸膚養어찌 군자처럼 종신토록 걱정하겠는가432) 豈如君子終身憂집안에 오래 전할 재부는 원래 없는 거고 元無積富傳家久세상에 길이 남길 좋은 명성은 조금 있다네 差可芳名永世留공자433)의 신성한 비결434)을 간파해 보면 看取宣尼神聖訣도와 식을 나누어 도모할 바를 제시했지 分將道食示攸謀 大焉惙惙小焉愁, 古往今來不暫休總爲當時寸膚養, 豈如君子終身憂?元無積富傳家久, 差可芳名永世留.看取宣尼神聖訣, 分將道食示攸謀. 군자처럼 종신토록 걱정하겠는가 《맹자》 〈이루하〉에,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근심하는 것이 있고, 일시적인 걱정은 없다. 종신토록 근심할 것은 있으니, 순 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순 임금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을 면치 못하니, 이것이 곧 근심스러운 것이다. 근심스러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 임금과 같이 할 뿐이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 乃若所憂則有之. 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如舜而已矣.]"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孔子) 원문의 "선니(宣尼)"는 공자의 별칭으로,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원년에 공자를 추시(追諡)하여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이라 하였다. 신성한 비결(祕訣)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도를 행하려고 꾀할 뿐 먹을 것을 꾀하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속에 있고, 학문을 해도 녹이 그 속에 있는 법이다. 그래서 군자는 도가 행해지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요, 가난할까 걱정하지는 않는 것이다.[君子謀道不謀食, 耕也餒在其中矣, 學也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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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에 내린 산 비 2수 仲秋 山雨【二首】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많지는 않으니 颯颯蕭蕭下不多주렴 사이로 우뚝한 푸른 산이 보이네 簾間猶見碧山峨게 잡는 계곡 늙은이는 망을 더디 걷고 捉螯溪老遲收網참새 쫓는 밭 아이는 도롱이도 아니 썼네 驅雀田童不用蓑콩 열매는 장차 돌처럼 단단해지고 豆實將成堅似石무 줄기는 곧 창처럼 억세진 않겠네 葑莖乍免勁如戈숲 창가엔 가을 슬퍼하는 객이 있어 林牕猶有悲秋客저물녘에 들으니 마음이 어떠하겠나 入暮聽來意若何가랑비 내려 가을색 더 짙어지는데 秋色還因小雨多강남의 만목들은 높은 산에 푸르네 江南萬木碧嵯峨성긴 빗소리가 높이 읊는 책상에 들리고 疏聲乍動高吟榻가는 빗발이 홀로 낚시하는 도롱이 적시네 細脚輕沾獨釣蓑늙은 제비의 마음193)은 나그네와 같고 老鷰情懷同寄旅쇠잔한 매미 신세는 전란에 병이 든 듯 殘蟬身勢病干戈저물녘 창 밖에는 밝은 석양이 비치니 晩來牕外明夕照서산의 삽상한 기운이 다시 어떠한가194) 爽氣西山復若何 颯颯蕭蕭下不多, 簾間猶見碧山峨.捉螯溪老遲收網, 驅雀田童不用蓑.豆實將成堅似石, 葑莖乍免勁如戈.林牕猶有悲秋客, 入暮聽來意若何.秋色還因小雨多, 江南萬木碧嵯峨.疏聲乍動高吟榻, 細脚輕沾獨釣蓑.老鷰情懷同寄旅, 殘蟬身勢病干戈.晩來牕外明夕照, 爽氣西山復若何. 늙은 제비의 마음 가을이 되어 제비가 남쪽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말한다. 서산의……어떠한가 한가한 흥취가 참으로 좋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왕자유(王子猷)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환온이 "경은 부(府)에 오래도록 있었으니 일을 잘 처리할 줄로 믿는다."고 하니, 자유가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홀(笏)을 턱에 괴고는 "서산이 아침이 되면 상쾌한 기운을 보낸다.[西山朝來, 致有爽氣.]"라고 응대한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簡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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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정사184) 광산 김씨 묘재 의 시에 차운하다 次玉山精舍【光山金氏墓齋】韻 새 건물을 거듭 옛 터를 따라 완성했으니 新築重因舊址成당일에 높은 이름 의촌185)을 생각하네 義村當日憶高名헌루는 지상에 솟아 보는 눈을 놀래키고 軒樓聳地驚瞻視호악은 광채를 더해 뜻과 정을 보내오네 湖岳增光送意情효자의 정려문엔 삼강의 행실이 높고186) 風樹烏頭三行卓묘소187)에 진설한 오제188)의 술이 맑구나 酒陳馬鬣五齊淸옥산189)이란 훌륭한 액호에 감흥 많아지니 玉山嘉號多興感유문에 강송하는 소리가 응당 이어지리라 應繼儒門講誦聲 新築重因舊址成, 義村當日憶高名.軒樓聳地驚聸視, 湖岳增光送意情.風樹烏頭三行卓, 酒陳馬鬣五齊淸.玉山嘉號多興感, 應繼儒門講誦聲. 옥산정사 1661년(현종2)에 의촌(義村) 김남식(金南式)이 짓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모촌에 있다. 의촌(義村) 김남식(金南式, 1617~1681)의 호이다. 자는 군언(君彦),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에서 적병을 격파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려다,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고부 계령산 아래 집을 짓고 옥산정사라 편액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증직되고 충신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효자의……높고 효성으로 정려가 세워진 것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풍수(風樹)'는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봉양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한다. 여기서는 효성을 뜻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오두(烏頭)'는 흔히 오두적각(烏頭赤脚)으로 쓰이는데, 윗부분은 검고 기둥은 붉은색으로 된 정려문을 말한다. '삼행(三行)'은 삼강의 행실을 가리키는 듯한데, 옥산정사에는 1828년에 나라에서 내린 삼강문(三綱門)이 있다. 묘소 원문의 '마렵(馬鬣)'은 본래 말갈기 모양으로 만든 봉분(封墳)의 모양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무덤을 지칭한다. 《예기》 〈단궁(檀弓)〉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예전에 공자께서 '내가 보건대, 봉분을 당처럼 쌓은 것이 있고, 제방처럼 쌓은 것이 있으며, 하나라 때의 가옥처럼 쌓은 것이 있고, 도끼처럼 쌓은 것이 있다. 나는 도끼처럼 쌓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세속에서 이른바 말갈기 봉분이라고 하는 것이다.[昔者, 夫子言之曰, 吾見封之若堂者矣, 見若坊者矣, 見若覆夏屋者矣, 見若斧者矣, 從若斧者焉, 馬鬣封之謂也.]"라고 하였다. 오제(五齊) 술을 말한다. 본래 고대에 술의 맑은 정도에 따라서 구분한 다섯 등급으로, 종묘(宗廟) 등의 대제(大祭)에 사용하였다. 옥산(玉山) 중국 강서성(江西省) 신주(信州)에 있는 산 이름인데, 주희(朱熹)가 옥산(玉山)에 머물 때 이곳의 승사(僧舍)에서 주자가 제자들과 강론한 적이 있었다. 《朱熹集 卷74 玉山講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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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족제 병재 와 벗 전현광 일중 과 함께 벗 손당촌 두선 의 별장을 방문하고 4수 同藕堂族弟【柄梓】玄狂田友【鎰中】 訪堂村孫友【斗宣】庄【四首】 가을날 여관에서 온갖 감회가 생겨서 秋天逆旅百懷生새 시에 흩어 넣으니 초성172)이 되네 散入新詩作楚聲언뜻 이는 바람에 마른 연꽃 붉게 시들고 紅謝敗蓮風乍動막 개인 비에 이른 벼는 노랗게 익었네 黃登早稻雨初晴돌아서 찾은 반곡엔 샘이 여전히 맑고 轉尋盤谷泉猶洌멀리 바라본 화산엔 달이 유독 밝구나 遙望華山月獨明초라한 신과 두건을 그대는 비웃지 마소 草草舃巾君莫笑세속을 벗어나 다시 자유롭게 다닌다오 脫塵還是自由行십순을 더위에 시달려 창계에 누웠는데 十旬病暑臥滄溪청풍이 홀연 서쪽에서 불어 나를 일으키네 起我淸風忽自西매미 울음소리 들리는데 구름 산이 높고 蟬一聲邊雲嶂屹갈매기 높이 오르니 바다 하늘이 낮구나 ?千翔外海天低시재는 꾸민 치랍173)이라 끝내 부끄러운데 詩才終愧粧梔蠟예를 어찌 더 높여서 서계를 대접하는가174) 禮數何增供黍鷄느지막에 돌아가려 했으나 가지 못하고 向晩欲歸還未得이미 풀 길을 보니 이슬이 촉촉하구나 已看草路露凄凄큰 돼지의 탐욕이 산골짜기 같으니175) 封豕貪婪似壑溪맑기를 기다리기 적합한 곳176)은 서쪽 바다네 待淸合處海之西크게 펴는 것은 굽힌 데서 비롯됨을 알지니 大伸須識曾由屈높은 솜씨는 되레 낮은 듯함을 누가 알리오 高手誰知反若低낙심하여 흰 머리 재촉하지 말지니 莫遣灰心催雪鬢또 술잔177) 기울이고 누런 닭을 잡으리라 且傾綠蟻剝黃鷄긴 세월 세상을 사는 게 삼려178)의 원이니 長年度世三閭願가을 바람에 칡베옷 썰렁해도 상관 없다네 不妨秋風綌袖凄만곡179)을 담은 인호는 물이 쌓여 흐르지 않는데 萬斛仁湖積不流주인이 집을 지어 맑고 그윽함 독차지했네 主人卜築擅淸幽해가 지는 풀 언덕에 누런 송아지 돌아가고 日斜草岸歸黃犢비가 그친 이끼 바위에 흰 물새 내려 앉네 雨歇苔機180)下白鷗땅이 외져 문고리를 두드리는 객이 드물고 地僻客稀敲戶鑰산이 낮아 달이 주렴고리에 쉽게 떠오르네 山低月易上簾鉤만년에 도리어 다시 시율이 공교로워지니 暮年轉復工詩律스스로 즐기고 이 밖엔 구하는 게 없구나 自樂應無此外求 秋天逆旅百懷生, 散入新詩作楚聲.紅謝敗蓮風乍動, 黃登早稻雨初晴.轉尋盤谷泉猶洌, 遙望華山月獨明.草草舃巾君莫笑, 脫塵還是自由行.十旬病暑臥滄溪, 起我淸風忽自西.蟬一聲邊雲嶂屹, 鷗千翔外海天低.詩才終愧粧梔蠟, 禮數何增供黍鷄.向晩欲歸還未得, 已看草路露凄凄.封豕貪婪似壑溪, 待淸合處海之西.大伸須識曾由屈, 高手誰知反若低.莫遣灰心催雪鬢, 且傾綠蟻剝黃鷄.長年度世三閭願, 不妨秋風綌袖凄.萬斛仁湖積不流, 主人卜築擅淸幽.日斜草岸歸黃犢, 雨歇苔機1)下白鷗.地僻客稀敲戶鑰, 山低月易上簾鉤.暮年轉復工詩律, 自樂應無此外求. 초성(楚聲) 초사(楚辭)와 같은 말인데, 전국 시대 말년에 초(楚) 나라 지방에서 일어난 문학은 비애(悲哀)와 청신(淸新)한 것을 주로 하였다. 치랍(梔蠟) '치모랍언(梔貌蠟言)'의 줄임말로, 실상은 없이 겉만 꾸민 것을 말한다. 유종원(柳宗元)의 〈편고(鞭賈)〉에 "옛날 어떤 부자가 노랗고 윤이 나는 채찍을 좋아하여 많은 돈을 주고 샀는데, 뒤에 끓는 물에 닿게 되자 형편없는 본색이 드러났다. 그제야 가짜임을 알았는데 노란 것은 치자(梔子) 물을 들인 것이고, 윤이 난 것은 밀납을 칠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서계를 대접하는가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서계(黍鷄)'는 기장밥과 닭고기로, 《논어》 〈미자(微子)〉에 "삼태기를 멘 장인(丈人)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라고 하였다. 큰……같으니 일제의 탐욕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원문의 '봉시(封豕)'는 식욕(食慾)이 왕성한 큰 돼지로 탐욕스러운 일본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년조에 "오(吳)나라가 큰 돼지와 긴 뱀처럼 상국을 잠식해 가는데, 그 잔인함이 초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 虐始於楚.]"라고 하였다. '학계(壑溪)'는 산속의 골짜기인데,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탐욕을 비유한다. 《남제서(南齊書)》 권25 〈원숭조열전(垣崇祖列傳)〉에 "빈번히 발탁되어 올라가면서도, 계학처럼 만족할 줄 몰랐다.[頻煩升擢, 谿壑靡厭.]"라는 말이 나온다. 맑기를……곳 태평시대가 되기를 기다리기에 합당한 곳은 일제를 피해 있기 좋은 곳을 말한다. 술잔 원문의 '녹의(綠蟻)'는 술 표면에 떠오른 개미 형상의 녹색의 거품으로, 술을 비유한 것이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말한다. 조정에서 삼려대부(三閭大夫)로 있다가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만곡(萬斛) '곡(斛)'은 용량의 단위로, 만곡은 많은 물을 가리킨 것이다. 機 磯의 잘못인 듯하다. 機 磯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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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 익유에게 보냄 무인년(1938) 與洪韋軒翼裕 ○戊寅 옛날 을묘년(1915) 겨울 계화도(繼華島)에 있던 날에 존안(尊顔)을 뵈어 세상의 의리를 강론하고 이별하며 글을 지어 주신 일이 어제 일처럼 뚜렷한데,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니 세월이 벌써 24년이 되었습니다. 존자의 선친 겸와옹(謙窩翁) 어른이 임인년(1902)에 교남(嶠南 영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선친 벽봉공(碧峰公)을 방문하여 한 번 만남에 오랜 친구 같아서 선장(先丈)과 선친이 대화 중에 교분을 맺는 맹세가 있었습니다. 선친이 선장에게 준 시(詩)에 '지기(知己)'라는 글귀가 있었으니, 이를 보면 두 분이 흉금으로 기약한 감개가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계화도에 있었을 때에 이미 집사와 나눈 말인데 집사께서 지금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벗들과 함께 지내는 날부터 평소에 한 생각이 일찍이 집사에게 있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집사는 겸옹의 아들이고 겸옹은 선친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크게 변한 끝에 도로가 많이 막히고 스승이 돌아가신 뒤로4)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형세라 어찌할 수 없으나 아울러 편지마저도 통하지 못하여 아프다고 하더라도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실로 저의 허물입니다. 근래에 사문 천하운(千河運)이 방문하여 집사께서 지난 몇 해 모든 것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으로 위로되는 마음 이길 수 없었습니다. 또 경소(敬所 임경소(林敬所))의 문집을 간행하여 길이 전해지도록 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의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욱 우러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소의 문집을 나누어 배송하여 온 나라에 두루 했는데 유독 저만 빠졌으니, 전날 강론했던 우의는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시는가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이 요즘 사문의 일로 음성 오진영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 "반드시 살펴야 한다." 하신 교훈5)을 소홀히 하셔서 갑자기 절교 당함을 면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부끄러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우러러 여쭐 것은 오직 겸와옹과 벽봉공 두 분의 당시의 친분을 생각하시는가 일 뿐입니다. 만일 끝까지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부디 답장을 해 주시겠는지요? 昔在乙卯冬, 華島之日, 得拜尊顏, 講世誼, 贈別章, 歷歷如昨日事, 而屈指星霜, 忽忽爲二十四周.尊先丈謙窩翁, 壬寅歲, 嶠南歸路, 訪鄙先人碧峰公, 一靣如舊, 先丈與先人語有定交之誓.先人贈先丈詩, 有知己之句, 觀此, 可以知兩翁襟期之所感者深矣.此在華島日, 已說與執事者, 而未知執事今能記存否.鄙生則自盍簪以後, 居常一念, 未嘗不在於執事者, 以執事之爲謙翁子, 而謙翁之爲先人友故也.然滄桑之餘, 道路多梗, 山頹之後, 會合無梯, 勢也無柰.而并與魚鴈而不通, 痛痒而無關者, 實澤述之咎也.近得千斯文河運委訪, 以知執事年來諸節之安, 則固已慰不自勝.又聞印敬所稿而壽傳, 則好義之心, 尤可仰也.但敬稿分送, 殆遍國中, 而獨漏鄙生, 則前日所講之誼, 意其不能記存矣.不然, 此漢方以師門事, 爲陰衆所惡, 故不免忽於聖人必察之訓, 而遽爾絶之耶? 以此以彼, 慙無以爲言, 猶一仰問者, 亦惟以謙碧兩翁當日之故爾, 如終不棄, 幸賜巍覆否? 스승이 돌아가신 뒤로 원문의 '산퇴(山頹)'는 태산(泰山)이 무너졌다는 뜻으로 스승이나 철인의 죽음을 이른다. 공자가 자신이 별세할 꿈을 꾸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짚은 채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쓰러지니 철인도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는데, 그 후 7일 동안 병들어 누웠다가 돌아가신 데서 유래하였다. 성인이……교훈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뭇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뭇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라.[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라고 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인용하여 상대가 혹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말만 듣고 절교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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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이규명(李奎明) 통훈대부사복시정(通訓大夫司僕寺正)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奎明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奎明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학생 이규명을 통훈대부사복시정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학생 이규명을 통훈대부사복시정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규명은 이기두의 증조부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때 증조부의 직역은 학생이었다가 통훈대부사복시정에 증직되었다. 학생은 유학(幼學)이 죽어서 사용하는 호칭이다. 통훈대부는 문신의 품계로서 정3품의 하계(下階)이며, 사복시정은 사복시에 속한 정3품의 벼슬이다. 통훈대부 앞의 증(贈) 자는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내릴 때 붙이는 글자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증직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증손자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증조고(曾祖考)는 법전에 의거하여 추증한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추증조에서 '종친 및 문무관으로 실직 2품 이상은 3대를 추증한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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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0년 이교선(李敎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辰 陰十二月 念一日 敎先 庚辰 陰十二月 念一日 李敎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0년 음력 12월 21일에 이교선이 문중의 종인에게 종회에서 결정한 배정 금액을 보내주길 청하는 간찰(簡札) 1940년 음력 12월 21일에 이교선이 문중의 종인에게 종회에서 결정한 배정 금액을 보내주길 청하는 간찰(簡札)이다. 한 해가 저물도록 격절했으나 얼마 전 종회가 열렸다. 나무에 꽃피고 봄바람 불 듯 모든 사람들의 의논이 일치하여 무사하게 치러졌다. 이로 인해 거의 끊어진 가문의 운수가 다시 진취할 수 있는 기회를 바라보게 된 것 같아 막대한 행운이다. 이에 회의록을 송부한다. 배정한 금액은 기한을 어기지 말고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옛 장동) 종환씨 댁으로 부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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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월 答靜齋田丈 乙丑元月 옛날에 주자는 적과 강화하는 것은 나라를 그르친다고 여겨 극언하며 매우 한탄했습니다. 나라와 유문(儒門)의 일에 토벌하여 회복하고 변론하여 성토하는 의리가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우리 어른께서 평소에 음성 오진영이 부친을 무함한 것을 엄하게 배척하신 것이 돌아보건대 어떠했습니까? 이 화합하자는 말이 갑자기 우리 어른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과연 위로 선사의 묘184)에 고하고 아래로 사우(士友)에게 사죄하여 흔쾌히 스승을 무함한 죄를 자복한다면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이제 그가 자복하여 사죄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화해하여 만난다는 말이 있게 되면 이전에 선친을 위하여 무함을 변척한 의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듣건대 우리 어른께서 공론을 묻지 않고 먼저 배편으로 편지를 보내 저들과 만나는 것을 서두르셨다고 하니, 우리 어른의 마음이 이미 처음 먹은 마음을 바꾸면 인가를 지시하셨다는 무함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옛 덕을 간직하여 견고하게 지키면 길하다."185) 하였습니다. 원컨대 우리 어른께서 한가로운 생각을 버리고 옛 의리를 확고하게 지켜서 선친의 도의를 천추에 영원히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昔朱夫子以講和誤國, 蓋嘗極言而深歎.國家儒門之事, 討復辨討之義, 何嘗有異? 吾丈平日斥陰誣親之嚴, 顧何如也? 不圖此言忽出於吾丈之口也.彼果上告斧堂, 下謝士友, 快服誣罪, 則容而受之可也.今不待彼之服謝, 而先有和會之說, 則前日爲親辨誣之義, 安在哉? 聞吾丈不詢公議, 先從船便, 急於會彼, 則吾丈之心, 已變初服, 而認誣之益深也.念到于此惘然若失.易曰: "食舊德, 貞吉", 願吾丈除却閒想, 確守舊義, 永光先人道義於千秋也. 선사의 묘 원문의 '부당(斧堂)'은 봉분(封墳)을 이르는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봉분이 당같은 것도 보았고……도끼같은 것도 보았다.〔見封之若堂者矣……見若斧者矣〕"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옛 덕을……길하다 《주역(周易》 〈송괘(訟卦)〉 육삼효의 효사이다. '옛 덕을 간직한다〔食舊德〕'는 것은 전(傳)에 "자신의 본래 분수에 처함을 말한다.〔謂處其素分〕" 하였고, '정(貞)은 "견고하게 스스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謂堅固自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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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화구에게 보냄 갑자년(1924) 5월 與靜齋田丈華九 ○甲子五月 김용승의 일은 매우 불행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하나는 선사가 일찍이 인의(認意)를 두었다고 말한 것이고 다음은 선사가 일찍이 인교(認敎)를 두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스로 후사를 담당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홀로 앉았을 때 남들과 다르게 들었다'고 한다면, 동문 수천 명이라도 감히 잘못됨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오래도록 친자(親炙)180)를 받은 자들이 도리어 떼거리로 일어나 이 말을 옳다 여기고, 한두 사람 힘이 약한 졸필이 애써 분별하여 알리려고 해도 길이 없습니다. 김 씨처럼 직접 수학하길 오래도록 하지 않은 자가 어찌 오히려 선사의 심사에 의혹을 낳지 않겠습니까? 기개와 절개에 격분하여 나도 모르게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가슴이 아프고 아플 뿐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김 씨의 처신을 논해 본다면, 명분과 관련이 있으니 다만 망령되고 그릇되다 말할 수만은 없을 따름입니다. 선사가 절해(絶海)에서 스스로 바르게 한 절개와 호적에 올리지도 말고 죽거든 시신을 바다에 던지라던 의리181)는 진실로 천지신이 살펴본 것이고 부녀자와 아이들도 아는 것입니다. 비록 김 씨라 하더라도 또한 어찌 이를 모르겠습니까? 만약 선사의 절의와 바른 말에 확실히 근거하여 통렬하게 변론함이 가면 갈수록 더욱 힘 있어진다면, 선사와 함께하기를 자처함에 어찌 두 사람 모두 유감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한 사람의 속이는 말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다 해서 명분에 죄를 짓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애석하고 애석합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선사가 인의(認意)를 두었다는 설이 나라 안에 가득하여 곳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의론과 공언에 이르기를, "인의를 둔 것은 모 어른이고, 인의에 대해들은 것은 모공이라고 합니다. 고제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선생이 반드시 일찍이 인의를 두었을 것이니, 이른바 후사를 의탁한다는 것은 일을 의탁한다"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고, 어리석게 앉아 있다가 서서 배척을 당하니 고가진신(故家搢紳)의 외롭고 맑은 충절과 유문(儒門) 장보(章甫)182)의 높은 행실과 탁월한 식견이 또한 마땅히 수시로 기록하고 논척(論斥)해야 하는데, 수천 명이 말하면 공론이 되고, 오래 전해지면 사실이 되니, 진실로 두렵고 염려스럽습니다. 이 속임수를 분변하지 못하면 선사께서 평생토록 지킨 절의가 없던 일이 될 것이니, 어찌 지하에서 원통하고 치욕스럽지 않겠습니까? 자손과 문인이 무슨 얼굴로 세상에 서겠습니까? 하물며 근래에 김 씨 일이 있은 후에 한층 더욱더 심해져서, 깨끗이 씻어 아무런 죄가 없게 되는 것은 거의 황하를 끌어당기고 태산을 흔드는 것과 같으니, 만약 죽을힘을 다하여 도모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건대 자손 중에는 오직 애장(哀丈)과 두 형 뿐이고, 문하에는 2,3명에 불과하니, 매우 외롭고 나약합니다. 장차 어찌해야 선사의 마음을 청천(靑天)의 밝은 해처럼 밝혀서 현혹된 전 국민을 크게 깨우치겠습니까. 흥분해서 말을 하다가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한심할 뿐입니다.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선사 발밑의 일원으로 한 푼의 은혜를 받았으니 두텁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사의 무고함이 저를 통해 조금이라도 변론이 된다면 비록 수만 번 죽어 사라지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보잘 것 없고 말이 가벼우며 문식이 천박하고 짧아서, 비록 이 일에 종사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할 길이 없으니, 스스로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입니다.군자가 논의를 세움은 공적이고 바르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또한 변척하는 도는 핵심을 요약하고 확실한 증거를 잡아내야 하며, 절대로 노여운 상태에서 기세를 부려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과중하게 가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변척이 성사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불복할 것이니, 바라건대 상중에 계신 어른께서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를 계기로 생각건대, 어른의 정신과 심력, 견식과 의리로 가학을 잇는 것을 큰 책임으로 삼지 않는다면 다시 누구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어른의 창안백발은 다시 옛날 같지 않은데 구구하게 살 계획을 또한 어찌 구할 것이 있겠으며, 구하더라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경전과 문헌을 연구하여 관통함으로써 존양(存養)의 바탕으로 삼고, 후진을 수습하여 세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것이 지하에 계신 선사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이 선사께서 부탁하신 뒷일을 감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金容承事, 不幸甚矣.然此人此事, 是誰之使? 一則曰先師曾有認意, 再則曰先師曾有認敎.出自自擔後事人之口, 而謂'是獨坐異聞', 則擧同門千數, 莫敢矯其非.所謂親炙日久者, 乃反朋興而是其言, 一二人孱力單筆, 戞戞乎欲爲之辨白而無其路.若金之親炙未久者, 豈不反生疑惑於先師心事哉? 氣節所激, 自不覺至此, 蓋此人此事, 是誰之使? 痛矣痛矣.雖然若論金之所處, 則有關名分, 不可但道妄錯而已.先師絶海自靖之節, 不譜沈尸之義, 實神祗之所鑑, 婦孺之所知.雖金亦豈不知此? 使其確據先師之節義正言, 痛辨愈往愈力, 則爲師與自處, 豈非兩無憾爲者乎? 奈之何, 只緣一人誣言之難辨, 而行此得罪名分之事? 惜哉惜哉.此則旣然矣, 最所痛恨者, 先師有認意之說, 充滿國中, 在在群議, 處處公言 曰: "有是哉, 某丈也, 彼哉, 某公也.高足人而曰有矣, 則先生必曾有矣, 所謂託後者, 託是事也." 大驚小怪, 坐嗤立排, 故家搢紳之孤忠淸節, 儒門章甫之高行卓識, 亦應劄記之論斥之, 千口成公, 久傳成實, 誠可畏可慮也.此誣不辨, 則先師平生獻靖, 歸於烏有, 豈不寃鬱憤, 恥於泉下乎? 子孫門人, 何顏立於人世乎? 而况近日金事之後, 一節深一節, 一層重一層, 淸洗白脫, 殆若挽河而撼山, 如不盡死力圖之, 決乎難矣.而念在子孫, 惟哀丈與二哥, 在門下, 不過二三人, 孤弱甚矣.將何以明先師之心, 如青天白日, 大破全國人眩惑? 興言至此, 心爲之寒.如侍生之無似者, 亦先師脚下, 一分子受恩, 不可謂不厚矣.使先師之誣, 由侍生而得粗辨, 雖滅死萬萬無恨.但人微言輕, 文識淺短, 雖欲從之, 末由也已, 只自痛恨.君子立論, 務要公正審愼.辨之之道, 又要要約精核捉得眞贜.切戒乘怒動氣, 加人以些子過重, 如此則辨未及成, 而人先不服, 願哀丈之毋忽也.因念以哀丈之精魄心力, 見識義理, 不以紹家學, 爲一大任, 而更待何人? 而况哀丈之蒼顏白髪, 非復昔日, 區區計活, 亦何足求, 求亦難得.只有究貫經籍, 用資存養, 收拾後進, 少補世程, 是爲慰泉下之靈, 是爲擔後事之託也.未審哀丈以爲如何. 친자(親炙) 스승이나 존경하는 분의 가까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백세 위에서 떨쳐 일어남에 백세 아래에서 이를 듣고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만들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직접 배운 제자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라는 말이 나온다. 선사가……절해 간재는 평생을 반일(反日)로 살았고 왜놈들이 싫어서 일본식 호적을 거부하고, 묻힐 곳이 없으면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라(不籍之事, 沈尸之誓)고 하였다. 장보(章甫)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일찍이 공자를 뫼시고 앉았을 때, 공자가 이르기를 "평소에 너희들이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혹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라고 하자, 맨 처음 자로가 대답하기를 "천승의 나라가 대국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라고 하였고, 염유가 대답하기를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은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예악에 대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라고 하였고, 공서화가 대답하기를 "제가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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