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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崔汝重 癸酉 '흑치(黑薙)의 재앙'52)에 보는 것마다 마음을 상하니 말도 차마하지 못하겠습니다. 보내온 편지에서 이른바 "복장을 변하게 하는 것이 장차 제도까지 변하게 하여 오랑캐 세상으로 몰아간다."라고 하신 말씀이 진실로 밝은 견해입니다. 저들이 색깔 옷을 조선의 옛 제도라 하여 권하는 것은 진실로 우리를 거짓으로 유인하는 술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우리나라의 옛 복식이라 하여 따르는 것은 크게 생각이 밝지 못한 것입니다. 무릇 이 백의(白衣)는 고례(古禮)를 고찰해보아도 정색이 아니요, 국전(國典)을 참고해 보아도 숭상할 것이 아니어서 본래 구구하게 이것을 지켜야 할 이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시국이 바뀐 후 저들에게 심복하지 않겠다는 특별한 색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자(箕子)도 백색을 숭상하여 수천 년의 유풍이 되었으니 족히 천하만국에 떳떳함이 되고 훗날 양기를 회복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관계가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편지에서 "구한말의 유족(遺族)이 희미한 잔영으로 남고 오직 백의(白衣) 두 글자가 있는데 저들은 통쾌하게 아울러 말살하려고 한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또한 나의 말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질책할 것이 없고 우리 유자(儒者)된 자들은 죽음이 있을 뿐 어찌 차마 따르겠습니까? 오언절구 시의 비분한 묘사와 굳센 맹서는 세 번 반복하여 읽고 난 후에도 감격이 그치지 않아 나도 모르게 문득 보내온 시운을 따라 나의 뜻을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같은 뜻이기에 시가 이루어져도 다른 언사가 없으니 어찌 꼭 보위(步爲)할 것입니까? 비유컨대 새장에 갇힌 새가 서로 슬프게 호소할 따름이니 도리어 맥없이 웃습니다. 근자에 우리들 중 시에 뛰어난 자는 그대만한 이가 없습니다. 묘사가 정밀하고 결속이 견고하여 환히 빛나고 엄숙하게 울려서, 나는 실로 눈을 부릅뜨고 뒤쫓을 뿐이니 지적해 달라는 부탁은 논할 것이 못됩니다. 다만 시(詩)의 도(道)는 귀결점이 완순자적(婉順自適)에 있습니다. 그대는 현재 시의 용공이 비록 이와 같더라도 구경일착(究竟一着)에 종사하는 것을 생각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각초절(鑱刻峭絶)한 뜻은 넘치고 우유부진(優遊不盡)한 흥취가 적을까 두렵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시는 작은 도(道)이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지 가운데 "처음 뜻을 저버릴까 근심한다."라는 공부초지(恐負初志) 4글자로 이는 사람의 심목(心目)을 깨웁니다. 생각건대 근자의 동지들 중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으로 가히 믿을만한 사람은 희숙(希淑), 자유(子由), 그대, 그리고 여안(汝安)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안은 목숨을 부지하는 데도 힘이 넉넉지 않으니 어느 겨를에 학업을 다스리겠으며, 자유 또한 빈궁하여 진덕수업에 방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오직 희숙과 그대만이 다행히 이런 근심을 면하여 학업에 힘쓸 수 있는데, 희숙은 바야흐로 순풍에 돛단 듯 그 나아감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공부초지(恐負初志) 4글자를 그대에게서 얻어 이 학문이 사망하는 날에 도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욱 견고함을 우러를 수 있으니 어떤 기쁨이 이와 같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뜻을 저버릴까 근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거니와 진실로 저버릴까 근심한다면 처자의 허물이 어찌 그대를 구속시킬 수 있겠습니까? 구속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 덕에 나아가고 뜻을 지키는 터가 될 것입니다. 또한 "몸이 묶여 자주 사우(師友)를 따르지 못한다."라는 것으로 근심으로 삼는다면 옛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힘을 써야지 타인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자주 만나고 덜 만나는 일을 급급해하겠습니까? 대개 공(恐) 한 글자 가운데 무한한 공부가 들어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성인의 우근척려(憂勤惕慮)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공부하는 절차는 그대 또한 마땅히 알고 있을 터이니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마음을 모으고 뜻을 더하는 여하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黑薙之禍, 觸目傷心, 言之不忍.來喩所謂變黑將爲變制, 而驅之於左袵者, 眞明見也.彼以色衣謂朝鮮舊制而勸之者, 固詐誘我人之術也.我人之亦以爲故國服用而從之者, 何見義之不明也.蓋此白衣, 考之古禮而非定色.參之國典而非所尙, 本無區區守此之理.但在今日, 則爲換局後不心服之特色.而亦箕聖尙白, 數千年之遺風, 足以有辭於天下萬國.而爲他日陽復之基.是其關係, 豈不重且大歟? 來喩所謂舊韓遺族, 迷痕殘影, 惟有白衣二字, 而彼快於并滅者, 亦吾言也.餘人可無責, 爲吾儒者, 有死而已, 何忍於從之也? 五絶詩悲憤之寫, 剛毅之誓, 三復以還, 令人感激無已, 不覺輒步來韻以示志.然要之彼此一志, 詩成而無他詞, 亦何須步爲? 誓如籠鳥之相呼以訴悲爾, 還呵還呵, 第近日吾黨中工詩者, 無如賢者, 模寫精切, 結束緊固, 燁然而光, 鏘然而鳴, 吾實瞠乎後矣, 斤正非所論.但詩之道, 歸在婉順自適.今賢者見在用工, 雖不得不如此, 然有事於究竟一着, 不可不念.不爾恐鑱刻峭絶之意勝, 而少優遊不盡之趣耳.雖然, 詩是小道, 亦何足說? 最是書中恐負初志四字, 醒人心目, 念此近同志中.年下余而可恃者, 非希淑子由與賢者及汝安乎? 而安弟救死不贍, 奚暇治業, 由亦貧窮, 恐妨進修.惟希與賢者, 幸免此憂, 可以有爲, 希方順風張帆, 其進難量.而今又得此四字之喩於賢者, 可仰守道之心彌堅於斯文喪亡之日, 何喜如之? 雖然, 吾則以爲如不恐負則己, 苟能恐負, 妻孥之累, 烏得以覊絆之? 不惟不得以覊絆, 正所以爲進德酬志之地也.如以絆身而未得頻從師友爲憂, 則古人又有須用己力難仰他人之語.亦何必切切於頻踈之間也? 蓋恐之一字中, 有無限工夫在.究而論之, 聖人之憂勤惕勵, 亦不過此.其間工程節度, 在賢者亦當爲已見昭陵.玆不縷陳, 惟在會心加意之如何爾. 흑치(黑薙)의 재앙 서양문물이 밀려들어오면서 강압적으로 시행된 단발령과 검은 서양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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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을해년(1935) 與崔汝重 乙亥 무릇 사우(祠宇)는 서원이라 통칭하는데, 서원은 본디 독서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고, 독서는 의리를 강론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서원은 반드시 강학하는 곳이 있고, 그 강의하는 것은 선현의 도(道)입니다. 이제 무함(誣陷)하여 인가를 내고 원고를 고쳐서 선사의 도의(道義)를 말살하려는 족속들과 더불어 사우의 일을 함께 한다면, 서원의 강당에서 독서하고 강의하는 것이 무명무실(無名無實)할 뿐 아니라 도리어 선사(先師) 도의(道義)의 명과 실을 이 서원 강당에서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니, 나는 그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여러 어른들이 저 무리들을 마주하여 선사의 진영이 엄숙하게 굽어보는 아래에서 무함하여 인가한 것과 원고 고친 것을 바로잡고 성토한다면 저들이 스스로 그 죄를 알아서 창을 되돌리고 음성을 배척한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장차 마간지론(馬肝之論)54)에 부쳐서 성리설이나 경전의 뜻을 두루 뭉실하게 논하면서 이것을 독서 강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무위할 것입니다. 나는 또 여러 어른들이 애초에 저들과 변론할 뜻이 없음을 알았고, 도리어 타인들이 무함하여 인가를 내고 원고를 고쳤다는 설을 끄집어내었으니, 화사(華祠)의 여러분들이 사우(祠宇)의 일에 방해를 초래할까 두려워했다고 여깁니다. 그런즉 그들의 마음가짐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夫祠宇通稱書院, 書院本以讀書而得名, 讀書所以講義.故院必有講堂, 所講者乃先賢之道也.今與誣認改稿, 蔑先師道義者之血黨, 與同祠事, 則所謂讀書講義于院于堂者, 非惟無名無實, 反壞了先師道義之名實于院于堂, 吾不知其宅心如何也.今諸丈若對彼輩, 辨誣認討改稿於先師眞像儼臨之下, 彼自知其罪, 而倒戈斥陰則幸矣.如其不然, 則其將以是付之馬肝之論, 與之泛論性理經義而曰, 此是讀書講義, 則已極無謂.吾則以爲又知諸丈之初無意於與彼辯論, 而反恐他人惹出誣改之說, 而華祠僉席致妨祠事也, 然則其所宅心, 不難知也. 마간지론(馬肝之論) 말의 간(肝)은 원래 독이 있어서 먹지 못한다. 고기를 먹을 때에 말의 간을 먹지 않더라도 맛을 모르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이다. 즉 성인이 하는 일은 범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선 제쳐 두고 논하지 않더라도 의리를 모르는 것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晦庵集》 〈卷57 答陳安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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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後滄先生文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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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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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김장복한 에게 올림 경신년(1920) 上志山金丈(福漢) ○庚申 제가 일찍이 들으니, 선비 중에 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의 대부 가운데 현명한 이를 섬긴다1)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현명한 사람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그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이 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고, 현명함에도 분수(分數)가 있으니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부의 신분이면서 현명함이 없는 자라면 참으로 어찌할 수 없거니와, 혹시라도 현명하기는 하지만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지 못한 자가 있다면 마땅히 그 나라에서 섬길만한 사람을 택하여 섬겨야 할 뿐입니다. 만일 현명한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우뚝히 큰 절개를 지니고 학문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그 현명함은 어찌 한 나라에서만 찾기 어려울 뿐이겠습니까? 거의 한 시대에 짝할 자가 드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비 가운데 이 나라에 살면서 이와 같은 현명한 이를 모시게 된다면 어찌 하나의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위아래가 전도되고 멸망한 나라2)의 산천의 경관이 달라진 이후로 중화의 문화권에서 태어났어도 오랑캐 행실을 하고, 벼슬을 하면서도 효경(梟獍)3)같이 하는 자는 참으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간혹 고가(故家)의 세족으로 옛 음덕을 누리면서 명망을 지닌 자도 끝이 선한 자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천리에서 불어오면 풀들이 이리저리 쓰러지고, 장강이 백 번 굽이치면 파도는 출렁출렁 뒤로 물러가건만, 오직 문하(門下)께서 나라를 위하는 일념이 단사(丹沙)처럼 찬란하여, 굳은 절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어 백 번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도를 강론하되 머리가 셀수록 더욱 돈독히 하니, 우뚝 유문(儒門)의 영광(靈光)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이른바 절개를 지니고 학문을 갖추고 있어 한 세대의 현자가 되었다고 한 경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라 안의 지식인들이 누군들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동량처럼 믿으면서 현자를 섬기는데 마땅한 분을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심지어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조차도 이에 의지하여 타고난 성품이 민멸(泯滅)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자나 깨나 어르신을 우러러 사모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근심에 얽매이고 압박당하여 멀리 노닐려던 큰 뜻이 사그라들어 거의 다 사라진 채 목을 빼고 서쪽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길게 탄식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일전에 찾아뵙고 통자(通刺)하였으니 참으로 숙원을 이룬 것이고, 넉넉히 포용해주심을 입고 후하게 계발을 받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몹시 감격스러웠습니다. '무실(務實)'4)이란 두 글자를 내려주신 것은 참으로 제 자신의 증상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므로 더욱 가슴에 새기고 싫증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는 삼가 마음속으로 감탄한 바가 있으니, 명분만 좇고 실질을 잊는 것이 선비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이런 현상이 오늘처럼 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심(心)과 성(性)에 대하여 같다고도 하고 다르다고도 하면서 능사(能事)가 이미 끝났다고 말하지만, 존심양성(存心養性)5)에 대해서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으로 쏟아내는 웅변은 황하물이 터진 것과 같고, 붓으로 써내는 씩씩한 글은 찬란하게 문장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평소의 말과 행동6)을 돌아보면 대부분 비난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이윤(伊尹)ㆍ주공(周公)의 사업과 관중(管仲)ㆍ제갈량(諸葛亮)의 정치에 대하여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듯, 땅에 그릴 듯이 훤히 알아 실책이 없는 듯 하지만 작은 일에 대한 조처를 살펴보면 맞는 것이 없습니다. 속수(束脩)7)의 예를 행하고 명첩을 지니며, 스승과 벗을 좇을 때는 예절을 법도에 맞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형제들 사이에 예의를 베풀 때에는 크게 잘못합니다. 이것은 모두 근래 선비들의 폐단에 대한 대략인데 문하께서 깊이 걱정하여 바로잡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스스로 우둔한 저를 돌아볼 때, 세상 유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부족하고, 근심할 바의 폐단은 본래부터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재주는 없고 병폐만 있는 경우이니, 천하의 버릴 물건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또한 어찌 자포자기하고서 현명한 가르침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더욱더 저를 엄격히 가르쳐 마침내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竊嘗聞士之欲爲仁者, 必事是邦大夫之賢者. 夫人固有賢否, 未可必其大夫之有賢, 賢固有分數, 未可必其賢之具備. 使其大夫而無賢者也, 則固無如之何矣, 其或賢而有不具備者, 則只當於是邦中擇其可事者, 事之已矣. 如有賢大夫於此, 卓乎其有大節, 而兼之以學問, 其爲賢也, 豈直一邦而已? 殆一世而寡儔也. 然則士之居是邦而得是賢, 豈非一大幸福也耶?一自冠屨易位, 風泉異觀, 華產而夷行, 冠紳而梟獍者, 固不足道, 間有故家世族食舊而佩望者, 亦且鮮終. 疾風千里, 靡靡草偃; 長江百折, 滔滔波頹, 惟門下爲國一念, 炳然如丹, 一節終始, 九死靡悔, 講道林樊, 皓首彌篤, 巋然作儒門靈光. 向所謂有節有學而爲一代之賢者, 即其人焉. 凡在域中士類, 孰不山仰樑恃, 幸其事賢之得所也?至如澤述之蠢蒙者, 賴有不泯彝性, 是以寤寐景慕, 積有年所. 而貧與憂謀, 纏之壓之, 遠遊壯心, 澌滅殆盡, 引領西望, 時發長喟. 日前獻刺, 寔償夙願. 而優蒙容納, 厚受開發, 思出不圖, 固已感沐. 至若務實二字之贐, 實係此身對證之良劑. 尤當佩服無斁. 因此而竊有所感歎于心者, 蓋徇名而忘實, 士之通患, 而未有若近日之甚也.曰心曰性, 是同是異, 自謂能事已畢. 而以言乎其存養則蔑如也, 口頭雄辯, 沛然河決; 筆下健辭, 爛然成章. 顧其庸言庸行, 則多可訾也. 伊周事業, 管葛政治, 指掌畫地, 若無遺筭, 觀其措諸微事․細務, 則郎當也. 束脩齎刺, 從師追友, 禮序秩然, 歸而施措唱喏塤箎之間則大謬也. 此皆挽近士弊之大畧. 而門下之所深憂而思矯之也.自顧鈍拙, 幷乏世儒之所炫耀者, 其所患之弊則固自在也. 是所謂無是才而有是病, 天下之棄材也. 雖然, 亦安敢自處暴棄而不盡心於明訓? 惟乞益加箝錘, 有以卒成之也. 선비……섬긴다 자공이 인(仁)을 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공인(工人)이 자신의 일을 잘 하려면 반드서 먼저 그 기구(器具)부터 예리하게 수리하니,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大夫) 중에 어진 이를 섬기고 선비 중에 인(仁)한 이를 벗해야 한다〔子貢問為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멸망한 나라 원문의 '風泉'은 《시경(詩經)》의 편명인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지칭하는 것으로, 모두 쇠망하는 나라를 서글퍼하는 감회를 읊은 시이므로 쇠망하는 나라를 걱정하거나 멸망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효경(梟獍) 부모를 잡아먹는 새와 짐승을 말한다. 효(梟)는 흉악한 새로,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잡아먹고, 경(獍)은 흉악한 짐승으로 태어나자마자 아비를 잡아먹는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무실(務實) 실제적인 일에 힘쓴다는 의미이다. 존심양성(存心養性) 맹자가 말하기를 "그 마음을 다 하는 자는 그 성을 알 수 있고,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즉, 인간이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양심(良心)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도덕 본성을 키워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 평소의 말과 행동[庸言庸行] 〈문언전(文言傳)〉에서 "구이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으로 딱 알맞은 자이다. 평상시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상시의 행동을 삼가며, 간사함을 막고 정성을 보존하여 세상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으니, 덕이 넓어서 교화한다. 《주역(周易)》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이는 임금의 덕이다.'〔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용언(庸言)과 용행(庸行)은 평상시의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주역(周易)》 〈건괘·문언전(乾卦·文言傳)〉 속수(束修) 공자가 "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나는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自行束脩之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하였다.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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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김장에게 올림 경신년(1920) 上志山金丈 庚申 저는 호남의 비루한 유생입니다. 한 번 만나주시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도 이미 용문(龍門)에 오른 것처럼 영광스러운데 다시 사랑의 편지까지 내려주셨으니, 이는 상례를 벗어난 특별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부러진 재목이 큰 장인의 먹줄을 따르고 완고한 철이 훌륭한 대장장이의 용광로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저에게는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말거리를 삼는 자들이 저를 지나치게 후하게 대접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문하를 의심하게 하여 누를 끼쳤으니, 저 또한 죄가 있습니다.옛날에 공자와 맹자가 사람을 가르칠 때 무언지교(無言之教)8), 불설지회(不屑之誨)9)와 같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 이외에는 혹시라도 말을 그만두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른바 간곡하게 잘 타이르면서 이끈다는 것과 의문 나는 점을 서로 문답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할 뿐입니다. 삼가 근세에 대인(大人)과 큰 덕을 지닌 사람을 살펴보니, 혹은 엄숙하게 우뚝 서있기도 하고 혹은 깊은 생각으로 묵좌하기도 하니, 방문하여 무엇을 청하려는 자가 머뭇거리며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의문 나는 점이 있어 질문하려는 자가 말을 머뭇거리다가 스스로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평소에 발원(發願)한, 지팡이 짚고 천리길을 나서려던 뜻이 자리 앞에서 잠깐 사이에 시들시들 꺾이기도 하니, 아마도 그들을 진작시키고 고무시키는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문하께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들과 다릅니다. 온화한 말투는 마치 지초와 난초가 향기를 풍기는 것과 같고, 넘치는 화기(和氣)는 순한 막걸리에 취한 듯합니다. 그리고 충성스런 지조와 굳센 절개는 어떻습니까. 서리와 눈 속에서도 꿋꿋한 대나무ㆍ잣나무와 같은 지조를 지닌데다가 또 봄날의 따뜻한 햇볕과 같은 덕으로 보완하셨으니, 두터운 인(仁)과 애(愛)가 이처럼 겸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국내의 선비들이 기꺼이 문하께 달려와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성심으로 복종하는 이유이니, 제가 어리석더라도 역시 인의를 채우게 되어 지난날 인사드리고 물러나왔던 때에 갑자기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움은 참으로 세도(世道)와 관계가 되니 저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보내주신 편지에서 맹자의 큰 공은 성선(性善)에 있고 심선(心善)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스승께 여쭈었을 때 마침 바삐 물러나오느라 끝까지 논의하여 결정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만, 계발을 받고 대략 스승의 뜻을 짐작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먼저 제 뜻을 펴서 아뢰고 가르침을 구합니다.맹자의 큰 공이 성선에 있다고 하신 것은 실로 천고에 이미 정해진 공론이니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성선의 의론이 큰 공인 줄만 알고 심선의 의론 또한 큰 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므로, 마침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합니다. 맹자의 심선 의론이 어찌 〈부세자제다뢰(富歲子弟多賴)〉장에서의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10)는 말에 있을 뿐이겠습니까. 천하 사람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얻어서 리의(理義)를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어찌 사람의 마음이 모두 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왜 심선의 의론에 공이 있다고 말했겠습니까? 사람이 물욕에 이끌려 용렬하고 악한 데로 돌아가려는 까닭은 자신의 심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사람들은 성인 보기를 마치 연못과 하늘의 차이와 같아 스스로 그 경지에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일반사람과 성인은 그 성이 원래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만약 어떤 사람이 '너의 성은 요순처럼 선하다'고 알려준다면 어찌 기뻐 날뛰면서 그 욕심을 다스려 선을 회복하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일반사람들은 성인을 보면, 또 성이 비록 (성인들처럼) 선하다할지라도 성은 능동적으로 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심에 있기 때문에 성인과 보통사람의 마음은 본래부터 같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성인에게 미치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 마음의 선도 성인과 같다'고 알려주면 어찌 크게 기뻐 날뛰면서 더욱 저 악을 다스려 선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일러 맹자의 공이 또한 심선을 논함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비록 그러할지라도 성선과 심선은 둘로 나누어 구별할 할 수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심이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선하게 되는 까닭은 지선한 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이 만약 이 성에 근원하지 않는다면 어디로부터 선을 얻겠습니까? 이것으로써 성선은 심선의 근본이고, 심선은 성선이 증험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선과 심선은 또 나란히 하여 똑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심이 이 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근본은 선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은 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말단의 경우 간혹 악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심이 본래 선하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심이 순선(純善)하다고 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맹자 또한 이미 '리와 의는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으니, 마음이 곧바로 이 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이 말한 '성은 순선하고 마음은 본래 선하다'는 것은 리(理)와 기(氣)의 구분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니, 스승의 본뜻은 삼가 아마 이와 같을 뿐일 것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澤述, 湖南鄙生也. 一被容接, 已榮登龍, 重之以耑垂寵牘, 出於拔例殊愛, 曲材之從大匠繩, 頑鐵之入良冶爐, 固澤述之幸也. 但因此而俾談者疑其有失厚之, 累於門下, 則澤述亦有罪焉.昔孔孟之教人, 自無言之教․不屑之誨, 有爲而發以外, 未嘗見言語之或舍也. 所謂諄諄善誘․難疑答問者是已. 窃觀近世大人長德, 或嚴嚴凝立, 或淵淵黙坐, 進請者趑趄而不敢, 質疑者囁嚅而自止, 使其平生發願千里杖策之志, 薾然沮喪於席間片餉之頃, 恐非所以振起皷舞之道也.至門下之接人則異於是. 藹然之辭若芝蘭之其香, 盎然之和如醇醪之是醉, 何其忠烈勁節? 霜竹雪柏之中, 又濟之以陽春光輝之德, 厚仁愛若是兼且備也. 此所以邦內士類樂趍門墙, 心悅而誠服, 澤述之蒙騃, 亦知飽仁充義, 而不欲遽離於曩日拜退之日也. 其爲感幸, 實關世道, 非直爲己私也.下喻鄒聖大功在於性善而不在於心善. 向稟於師席, 而時值忽忽辭退, 未承究論定案. 但於竅啟, 有所畧揣師意者, 故敢先布白求教.夫孟子大功之在性善, 固千古已定之公言也, 有不待言而知者. 但以人皆徒知性善之論之爲大功 而不知心善之論之亦爲大功. 故正欲表而出之, 使人知之也. 孟子心善之論, 惡乎在〈富歲子弟多賴〉章所謂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者是已? 天下之心, 既得與聖人之心無不同悅理義, 則此豈非人心皆善之謂乎? 胡爲而云, 心善之論有功? 夫人之所以甘徇物欲而歸於庸惡者, 由不知己心性之善故也. 凡人之視聖人, 若淵之於天, 自以爲不可及, 而曰'凡之於聖, 其性固自不同.' 如有告之者曰'爾性之善, 與堯舜同,' 豈不歡欣踊躍, 思欲制其欲, 而復其善乎? 凡之視聖, 又以爲性雖善矣, 性則無爲, 有爲之能, 都在於心, 而聖凡之心, 應自不同, 我何以及聖人乎? 如又有告之者曰'爾心之善, 亦與聖人同,' 豈不大歡欣大踊躍, 尢欲治其惡, 而反其善乎? 夫是之謂孟子之功, 亦在於心善之論也.雖然性善心善, 不可分而二之也, 何也? 心雖曰善, 其所以善者, 爲其具至善之性也. 心若不原於此性, 何自而有善乎? 是知性善也者, 心善之所本也; 心善也者, 性善之所驗也. 性善心善, 又不可比而同之也, 何也? 心具此性也, 故其本則善, 有爲而屬氣也, 故末或有惡. 是故謂心爲本善則可也, 謂心爲純善則大害也. 孟子亦既曰, 理義悅心, 則心之非直是理, 斷可知已. 要之老洲所謂'性純善而心本善', 理與氣之分, 一語約而盡之矣. 師席本意, 窃恐如是而已. 未知尊意以爲如何? 무언지교(無言之教) 공자가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予欲無言〕"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전하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가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는 운행하고 만물은 자라난다.〔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라고 대답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불설지회(不屑之誨) 상대방을 탐탁지 않게 여겨 멀리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경각(警覺)시키는 가르침을 말한다. 맹자(孟子)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방도가 많으니,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가르침도 이 또한 가르침일 뿐이다〔敎亦多術矣, 予不屑之敎誨也者, 是亦敎誨而已矣〕"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 성인은……알았다 맹자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리이고 의이다.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 때문에 리와 의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맛있는 고기 음식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心之所同然者, 何也? 謂理也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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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종형 김만당희현에게 답함 갑신년(1944) 答外從兄金晚棠熺鉉 ○甲申 이전 편지에 답장을 올리지 못한 무례함에 대해서는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더구나 다시 은혜로운 편지를 매우 은근하고 돈독하게 내려주셨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깊이 사랑하시니, 새해의 즐거움 중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생각해보니 본가에는 친종형이 없고 이성(異姓)으로 종형이 몇 명 계시지만, 오로지 형님만이 80세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돈독하게 사랑하심이 더욱 깊으니 늘그막에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제 나이가 회갑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말씀을 듣자 마음이 처량하여 말씀하신 까닭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부친과 조부 이상 4대는 장수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형님께서 아시는 바이고, 5세조는 66세까지 사셨고, 9세조까지는 족보에 생졸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만약 장수하셨다면 이치상 어찌 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10세조는 장수하여 70세까지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에서 회갑을 지낸 사람은 10세조 이후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니, 어찌 애통하고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형님이 저를 축하하는 것이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차라리 말하지 않을지언정 무슨 말로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 보답하겠습니까. 다만 기억하건대 선군께서 임종 시에 저의 손을 잡고 "너의 증조는 32세까지 살았고, 너의 조부는 43세까지 살았으며, 나는 지금 51세이니 이미 차례로 10년씩 더해졌다. 이를 가지고 이후를 추론해본다면 너는 마땅히 60세를 넘길 것이고, 너의 아들은 70세를 넘길 것이며, 너의 손자는 80세를 넘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몹시 비통하여 읊조리고자 해도 차마 읊조릴 수 없고, 들려주려 해도 차마 들려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나이가 이미 증험되었으니 자손들도 역시 장차 차례로 이를 따를 것입니다. 형님께서 외가가 침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 혹시라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생일이 아직 멀었는데 마침 형님의 편지를 받으니 심기가 촉발되어 부모님 봉양을 다하지 못한 아픔을 절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 내일 아침은 선군의 휘신(諱辰)13)입니다. 시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을 돌이켜보니 어떻게 마음을 가눌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묵묵히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前書闕覆, 無禮可誅, 尚矣無誅, 矧復惠教, 殷切周摯甚矣. 兄丈愛我之深也, 新年喜樂, 無過於此. 且念本無親從, 有異姓從若而人, 而惟兄丈親愛, 八耋愈篤, 勝於親從, 暮年慰幸, 亦何加此?至於賤年回甲之云, 聞之戚戚, 莫省所喻. 父祖以上四世無壽, 兄丈所知, 五世祖六十六世, 至九世譜無生卒, 如得其壽, 理豈不錄? 惟十世祖壽至七十, 然則吾家囬甲, 十世後初有, 豈不痛且怪焉? 今兄丈所以祝我者, 無乃反爲病我也耶? 念到于此, 寧欲無言, 將何辭以答見愛也? 但記先君臨終, 執不肖手有言曰 : "汝曾祖壽三十二, 汝祖四十三, 吾今五十一, 既遞加十年矣. 推此以往 汝當逾六十, 汝子逾七十, 汝孫逾八十." 此言絕悲, 誦不忍誦, 聞不忍聞. 然今賤年已見驗, 則子孫亦將次第準此, 而兄丈之希望外家不替者, 其或在斯歟?弧日尚遠, 適奉尊書, 觸發心機, 匪莪之痛, 自不能住. 且明晨即先君諱辰, 感時撫躳, 何以爲心? 茲不覺罄情至此. 伏想有以默會而憐之也. 휘신(諱辰) 기일(忌日)이다. 《능엄경(楞嚴經)》에서 나온 말인데 본래는 재일(齋日)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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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오신윤에게 보냄 신사년(1941) 與姜良五 信倫 ○辛巳 일전에 저는 존형의 동생이 편지로 물은 것에 대하여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금 《유현연원록(儒賢淵源錄)》을 발간했는데, (그곳에) 기재된 존형의 친척 중 모씨는 존형이 은혜를 입은 죽헌공(竹軒公)이라는 것을 저의 아들에게 들어 알았습니다. 좀 더 일찍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는 타당하지 못한 점이 있는 사실을 편지로 보낸 것을 한스러워했습니다. 마음에 매우 미안합니다만,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존형의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존형의 형제가 끝내 도의로 판단하여 별일이 없게 되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우리 고조는 단지 평생토록 집안에서 의를 실천하셨기 때문에 일찍이 같은 시대의 유문(儒門)에게 문인이라 일컬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온 고을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존형의 집안과 왕래한 일은 마땅히 고조가 강씨와 재혼한 뒤라야 합니다. 죽헌공이 정조 기미년에 돌아가셨다 들었으니, 재혼한 때는 10여 년 뒤에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고조는 정조 계묘생이니 죽헌공이 죽었을 때는 17세였으므로 그 문하에 출입한 때가 재혼한 후에 시작되지 않고 반드시 일찍 아이 때부터라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따져보면 죽헌공의 문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사실이 아닌데 억지로 문인이라고 명명한다면 거짓을 저지르게 되니, 선조를 예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요즘 허위의 풍조가 성행하여 이를 말하며 통탄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설사 금지시킬 수는 없을망정 차마 그것을 돕겠는가?" 이것은 존형께서, 존형의 동생에게 준 저의 편지를 보고 저의 아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즉시 발췌하여 개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존형이 이미 이와 같은데 동생이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오히려 억지로 핑계꺼리를 만들어 "동생의 병이 회복되길 기다렸다가 발간소로 보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미 책을 만들었다면 편리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사적인 이해와 편리로 인하여 통쾌하게 의를 행하지 못함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늙었습니다. 오직 정대(正大)하게 마음을 세우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행하여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 지하에 계시는 선성(先聖)과 선조(先祖)에게 돌아가 인사드리는 것을 책무로 삼아야 할 뿐이니, 어찌 터럭만큼의 사적인 뜻을 그 사이에 용납하겠습니까? 일이 중대하니 바라건대 반드시 존형이 당일로 늙은 몸을 부축하여 직접 가서 분명히 올바르게 바로잡은 이후에 답장해주셔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손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日前鄙與令弟書中所問. 今刊《儒賢淵源錄》所載貴族中某位, 聞諸家兒, 知其爲尊兄所蒙祖竹軒公, 恨不早知其然, 以致書不妥當. 心甚未安, 猶以事不在他, 而在兄家, 諒兄伯仲終以道義裁定, 而至於無事爲幸也. 盖鄙高祖平生, 只是居家行義, 未嘗稱門人於并世儒門, 既一鄉之所共知. 至與尊門往來, 則宜在再卺姜氏之後. 而聞竹軒公沒在正廟已未, 則再卺之日在十餘年後矣. 且鄙高祖正廟癸卯生, 而竹軒沒時, 爲十七歲, 則難信出入尊門, 不始在卺後, 而必早自成童時矣. 以此以彼, 竹軒門人, 可知非實, 非實而強名之, 則其不涉於虛僞, 而事先不以禮乎. 近日虛僞風盛, 言之痛歎, 吾儕縱不能禁, 忍助之乎? 此尊兄所以見鄙與令弟書, 對家兒言. 然則即爲拔出改正爲可者也. 兄既如此, 弟復何言? 但猶有靳托底意, 曰: "待弟病復常後送刊所." 曰若已結冊, 則難便. 是不免利害便否之私, 而行義之未快也. 吾儕今老矣. 惟以立心正大行事光明, 仰不愧天俯不怍人, 歸拜先聖先祖於地下爲務而已, 豈容一毫私意於其間哉? 事係重大, 望須尊兄即日扶老親往, 明白歸正後, 回示之, 千萬拱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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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 종원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林貞老 鍾元 乙丑 편지를 받고 탁월한 의리와 빛나는 문장으로 나처럼 음성인의 간담을 도끼로 깨트리고자 하는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대의 의리는 이미 우러러보았지만 문장이 이렇게 빛나는 것은 오늘 이후 처음 보았습니다. 예전에 우리 정로(貞老)를 깊이 알지 못했던 일이 부끄럽습니다. 이 의리와 문장을 확충시켜 나간다면 우레처럼 날카롭고 바람처럼 빠르게 앞길로 나아가 산악처럼 우뚝하고 햇살처럼 환한 목표를 향해 사특함을 변별하고 정도(正道)를 지켜서 성인을 이어 태평시대를 열 사람이 바로 그대일세. 그런데도 무엇을 돌아보며 다른 것을 구하시는가? 선사(先師)의 도를 밝히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세우는 것은 나 자신부터 주장하는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을 의지하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은 인품이 낮고 학문이 얕아 족히 경중이 될 수 없음에도 갑자기 사문의 망극한 변을 만나 음기가 홀로 높고 여섯 양기가 막혀있는데, 세상에 확연히 양묵(楊墨)을 물리쳤던 맹자 같은 사람이 없어서, 불초한 내가 나서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여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힘을 다해 분별하여 성토하다가 큰 화를 입게 되었는데 후회는 없습니다. 그대가 편지에서 "의를 밝히고 세상을 선하게 했다."라는 말씀은 어찌 감히 그렇다고 하겠습니까만, 스승을 잊고 적에게 아부했다는 것만큼은 두려워하고 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또 실질 없는 명성과 공(功)이 없는 포상을 장황하게 선양하여 심지어는 "귀의하여 의지하고 우러러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선생님께 아부하는 말이 아닙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아마도 세풍에 구속되지 않아서 끝내 모른 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겠는지요? 아니면 윤리 강상이 끊어지고 무너져서 스승을 무함(誣陷)하고 도적에게 붙은 자들이 도도하게 횡행하는데 여전히 몇 사람이 그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 세도의 다행이요, 뜻을 숭상하는 동지라 여겨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중에 부지불식간에 나에게 경도된 것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그대의 정(情) 또한 슬프다 할 수 있겠습니다. 보낸 편지 가운데 지나치게 칭송하고 지나치게 겸손한 말은 나의 뜻에 마땅치 않습니다. 오직 옛사람에게 스스로 기약할만하지 못하지만 차마 세속의 흐름에 자포자기 못한다는 그 절실함이 실로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뚜렷이 내 귀에 들어와 처연하게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내가 평일에 기대했던 것과 서로 부합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 속(俗)이라는 한 글자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속이 무엇인가요? 무릇 도의(道義)를 헤아리지 않고 시절을 따라 스스로 편한 것이 곧 그것입니다. 오직 스스로 편한 것이 그 소재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들고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도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천만 악과 사특함이 모두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요사이 음성 오진영 일파의 무함(誣陷)질과 패악이 세상의 재앙이 된 것은 결국 스스로 편함을 헤아린 것도 아니면서 크게 제멋대로 한 것이니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진실로 마음으로 세속의 생각을 끊고 몸으로 세속의 습속을 끊는다면 말과 행동이 닦아져 시절에 따르지 않고 옛것을 본받으며, 스스로 편하지 않고 옛것을 쫓아 오로지 도의로 나아갈 수 있으니, 또한 어찌 고인(古人)을 기약할 수 없겠습니까? 이것이 나와 그대가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니 원컨대 서로 힘써서 일생을 마칩시다. 그대가 편지에서 말한 "상화(相火)가 병의 빌미가 되었다."56)라는 것은 아마도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속이 답답해 그렇게 된 듯합니다. 그대처럼 견해가 밝은 사람이 그러한 병이 있을 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저 청년시절에 씩씩하게 도모할 것은 마음껏 유람하고 널리 배우며 천하의 좋은 인물들을 두루 사귀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문을 넓히고 천하의 좋은 산수를 마음껏 보면서 문장을 계발시키는 것이 어찌 지극한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사람 사는 일에는 달고 쓰고 권면하거나 나태한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옛사람이 몸소 농사짓거나 품팔이하면서도 경전을 놓지 않은 자가 있었고,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도 학업을 성취한 자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학동을 가르치는 일은 구속되는 일이긴 하지만 밝은 창 앞에 편안히 앉아 날마다 서책을 가까이하는 일이니, 농사짓고 품팔이하며 여러 해 병을 앓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어찌 여력이 없겠습니까? 비록 자신보다 나은 이는 없다 할지라도 가르치면서 학업의 반은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고뇌하고 마음을 태우면서 상화가 빌미가 되는 데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소강절(邵康節 소옹)선생은 "분수에 편안하면 치욕이 없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께서는 "이치를 따르면 넉넉하다."라고 했는데, 비록 그대는 "학문을 근심함이 절실하고 이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 편안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안분순리(安分順理)" 4글자가 그대의 화를 내리는 좋은 약재라고 말합니다. 의가(醫家)에서 말하는 독서를 금하고 생각을 끊는 것이 그대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유의하십시오. 다시 바라노니 여행이 편안하고 덕이 진보하여 안으로는 마음이 넉넉하고 밖으로는 몸이 건강하여 제 마음의 기도에 부응해 주기를 바랍니다. 辱書, 有以見卓然者義, 燁然者文, 斧破陰膽之同聲.義固已仰, 文之燁然, 今而後始見.愧夫前此猶不深知吾貞老也.充此之義之文而進, 雷厲風迅之前途, 嶽喬日朗之究境, 辨邪衛正繼聖開平, 卽其人焉, 何待乎環顧求覓? 明先師之道, 立春秋之義, 卽自我主之, 何待乎賴人? 至於此漢, 豈足爲有無, 陋劣膚淺, 猝當師門罔極之變, 一陰獨尊, 六陽壹鬱, 世無鄒聖拳踢之廓如也, 則顧此無似, 雖欲不爲能言之徒而得哉? 竊不自量, 竭力辨討, 至被大禍而不悔.明義淑世, 豈敢云然, 忘師附賊, 是懼是免.高明乃以無實之名, 非功之褒, 張皇鋪揚, 至有歸有依仰不阿所好等語, 何哉? 無乃不囿世風, 終難坐在裏許而不之覺耶? 抑以綱絶倫斁, 陷師黨賊, 滔滔皆是, 而尙有幾箇人拔出其流, 爲世道之幸, 志尙之同, 故悲喜交極而不覺傾倒歟? 然則高明之情, 亦可謂戚矣.盖來書中, 若溢美退托之屬, 無有以當鄙意者, 惟雖未能自期於古人, 亦不忍自棄於流俗之言, 爲切實由中, 螢然入耳, 戚然動心.而一與此漢之平日自待者相符, 何其幸歟? 噫! 俗之一字, 爲陷人穽也久矣.俗者何也? 凡不揆道義徇時自便者是己.惟其自便所在, 故易入而難出.不揆諸道, 故千惡萬慝, 皆從此生.至於近日陰震一隊之誣悖禍世, 究亦不揆自便之大肆也, 甚可畏也.苟能心絶俗念, 身絶俗習, 則發言制行, 將見不徇時而傚古, 不自便而從古, 粹然一出於道義, 亦何古人之未能期哉? 此吾與子之所共勉者, 願與交勖而終身焉.喩及相火作祟, 似因訓蒙鬱墊致然.不意吾賢昭明見解之有此也.夫在靑年壯圖, 縱遊博學, 交盡天下好人物.而恢斥聞見, 觀盡天下好山水, 而助發文章, 豈不是至願? 但人事有甘苦勸逸之殊.故古之人, 有躬耕行傭而帶經者, 積年善病而成業者.矧此訓蒙, 雖云絆縶, 安坐明窓, 日親簡編, 其視耕傭積病者, 豈無餘力乎? 雖云勝己則無, 又不有學半之益乎, 又何至於惱惱煎煎相火之作祟乎? 邵子曰安分無辱, 程子曰順理則裕, 雖切於憂學而非關利欲, 其不安且順則均矣.吾故曰安分順理四字, 是降火之良劑.醫家所云禁讀絶思, 非所以治美愼者也? 幸試留意.更祈旅安德進, 內腴外睟, 慰此心禱. 상화(相火)가……되었다. 심(心)은 화(火)에 속하는데, 심은 몸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臟器)이므로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 하고 심화를 군화라고 한다. 상화는 군화와 상대되는 말로, 간(肝), 담(膽), 신(腎), 삼초(三焦)의 화를 통틀어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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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준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蘇 在準 丙寅 나는 졸렬하고 견해가 얕아 백에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어서 본래 남의 본보기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음성의 적들을 주토(誅討)하여 첩첩 깊은 재앙의 그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친척이나 지인들도 두려워서 피하며 감히 가까이하지 않는데, 고명한 그대께서 일찍이 교분이 없었는데도 먼저 편지를 주시니 참으로 정성스러움이 지극합니다. 게다가 "의를 높여서 굽히지 않고 바른 깃발을 높이 세우셨다."라고 찬탄하시고 "성인 공자께서도 광(匡)땅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두시고 진(陳)땅에서 곤액을 당하셨다."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돌아보건대 비록 이를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그대의 높은 풍모는 실로 오늘날 처음 보는 바입니다. 또 오진영의 죄를 논하면서 "도깨비 같은 놈이 스승을 무함(誣陷)하고 도리어 주인을 물어서 양기를 사라지게 했다."라고 판단하시고, 저에게는 "형벌을 받더라도 웃음을 머금고 만년의 절개를 성취하기 바란다."라고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옛날에 이른바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미워하고, 군자(君子)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러러 공경하고 굽어서 사례하는 것이 단지 높은 풍모가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대는 나이가 아직 젊은데도 견해와 덕이 이와 같으니, 훗날 마침내 선사의 도를 전하고 7일의 우레 소리를 울릴 자가 두류산(頭流山) 아래 용성군(龍城君) 보절방(寶節坊)57)의 소재준(蘇在準)이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편지 가운데 "기질을 바로잡기 어려워 사욕이 틈을 타고 일어나며, 깊은 분노가 절로 가득차서 전전긍긍하며 편치 못합니다." 등의 말이 있습니다. 이는 편지가 왕래하는 가운데 저절로 나오는 의례적인 말이 아니고, 실제 애써 공부하고 맹렬히 성찰한 깊은 체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과 능력으로도 먼저 어렵게 여기는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대의 견해와 덕이 그처럼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확충해보면 전면의 성취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내가 "끝내 선사의 도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대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 세간의 영재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풍조를 초탈하여 이 도에 뜻을 둔 자는 드뭅니다. 도에 뜻을 둔 자는 있지만 탁연히 독립하여 시종일관 절개를 지킨 자는 더욱 드뭅니다.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똑같은 길로 도도히 흘러서 그 파란을 돌이키고 그 역류하는 물길을 막는 이가 없습니다. 그대는 재주와 뜻이 모두 우뚝하여 이러한 사실을 개탄한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타락한 풍속을 일으키고 도탄에 빠진 천하를 구제하고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장차 우뚝 솟은 두류산의 빼어난 경치를 그대의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는 덕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직 그대는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편지에서 이르길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내 얼굴을 한 번 보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대의 눈길에 화답조차 못했습니다. 또한 서로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서로 강학하는 것도 기약할 수 없으니 어찌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글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는 마음의 획이며, 마음은 내면이고 얼굴은 외면입니다. 이미 그 마음을 얻었으니 얼굴을 못 본들 무엇이 슬프겠습니까? 하물며 그 마음의 소리와 마음의 획으로 구해본다면 그대의 모습과 풍채를 오히려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할 따름입니다. 走陋拙踈淺, 百無一能, 本不足爲人取.竊不自量, 誅討陰賊, 深入重重禍網.人之親知, 亦且畏避不敢近, 乃高明先施於未曾通款之地, 極其殷摯.至以抗義不屈赤幟一竪贊之, 孔聖之畏匡困陳慰之.顧雖不敢當, 高明之高風, 實今之初睹也.且其所論震罪者, 直以鬼魊誣師反噬滅陽斷之, 所勗賤子者, 終以含笑斧鑊成就晩節望焉.是則古所謂仁者之惡人君子之愛人非耶? 仰欽俯謝, 又非但以高風之動人也.高明年尙少, 而之見之德也, 已如此, 他日卒傳先師之道, 轟雷聲於七日者, 非頭流山下龍城郡寶節坊蘇在準乎? 乃知書中氣質難矯, 私欲闖發, 深自憤懣, 兢惕不寧等語.非往復間自道例談, 實出眞地苦工猛省深體之餘.惟其之心之力, 先難之若是也, 故有之見之德之斯大也.充此而進, 前頭所就, 其可量乎.吾故曰卒傳先師之道者, 乃高明也.噫! 世間英才, 不爲少矣.能超脫時風, 而志乎斯道者鮮矣, 志乎道者有矣.能卓然獨立終始一節者, 尤鮮矣.此所以滔滔一轍, 回瀾障川之無其人也.高明才志俱卓, 慨歎乎此者蓋久.而思欲以起末俗之衰, 濟天下之溺也.吾將以屹屹頭流之秀色, 較看於高明撓不動摧不折之德也.惟高明加勉焉.來書謂一面陋顔於衆中, 而鄙於英眄, 和此亦無.遠地盍簪, 未易前期, 曷勝於邑? 然文心聲也, 筆心畫也, 心內也面外也.旣得其心, 未面何傷? 况持此心聲心畵而求之, 其風儀顔采, 猶有可想者乎.用是自慰而已. 용성군(龍城君) 보절방(寶節坊) 일제 강점기 때의 행정구역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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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 진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房玉範珍 丙寅 대상(大喪)58)의 졸곡(卒哭)은 7개월 뒤에 지내야 하니59) 지금 법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 지극히 옳고 지극히 옳습니다. 그러나 졸곡은 공적인 상(喪)이나 사적인 상을 막론하고 애통한 마음을 줄이는 일입니다. 더구나 예월(禮月)에 날을 점쳐서 따로 기일을 안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는 곧 부장(報葬)하면서 졸곡의 기일을 기다리는 것이니 상순(上旬)이나 중순(中旬)을 써서 길일을 급하게 잡는다는 혐의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하순(下旬)을 써야 아마도 인정과 예의를 다할 듯합니다.선사께서는 무오년(1919년, 고종의 승하) 대상에 다음해 6월 18일을 졸곡의 기일로 삼으셨는데, 이는 월초부터 9번 우제(虞祭)60)를 지내는 달을 계산하여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제넘은 소견에는 "부장한 경우 서둘러 우제를 지내고, 졸곡제는 예월을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61)"라고 예경(禮經)에 드러난 이상, 졸곡을 지낼 달에서 우제를 지낼 날짜를 뒤미처 계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감히 이번 9월 하순 중 강일(剛日)을 골라 모여서 망곡례(望哭禮)를 지내겠습니다. 평소 선사께 미처 여쭈어 질정하지 못한 것이 절로 안타깝습니다. 大喪卒哭之宜用七月, 而不從今式, 極是極是. 而卒哭, 無論公私喪, 是奪情之事. 況非禮月筮日之自有排期者, 乃是報葬而俟期者, 則不宜用上旬中旬以近渴吉之嫌, 當用下旬, 恐盡於人情禮意. 先師於戊午大喪, 以翼年六月十八日爲卒哭之期, 此則自月初計九虞月子而然. 然區區妄見以爲: "'報葬、報虞, 卒哭必俟禮月.' 旣著禮經, 則不必追計虞祭日子於卒哭之月也." 故敢於今番擇九月下旬中剛日, 相聚望哭. 自恨未及稟質於先師平日也. 대상 이해 4월 26일 순종 황제가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다. 임금의……하니 사(士)는 3개월에 장례하고 그 달에 졸곡제를 지내며, 대부(大夫)는 3개월에 장례를 하고 5개월에 졸곡제를 지내며, 제후(諸侯)는 5개월에 장례를 지내고 7개월에 졸곡제를 지낸다. 《禮記 雜記下》 김택술은 조선을 여전히 중국의 제후국으로 여긴 것이다. 9번 우제 이는 황제가 지내는 우제(虞祭)의 횟수를 가리킨다. 서둘러……한다 서둘러 장사 지낸 경우[報葬]에는 서둘러 우제를 지내고[報虞], 석 달이 지난 뒤에 졸곡제를 지낸다. 《禮記 喪服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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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房玉範 丙寅 강론에 동참할 수 없다는 말씀은 비록 안타깝지만 그곳이나 이곳이나 모두 성현의 책이 있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천성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밝은 본심에 돌이켜 구하고 이치가 지극한 가르침에 질정한다면, 사람의 마음은 똑같이 옳다고 여기고,62) 선철(先哲)의 말씀은 나를 속이지 않아63) 가는 곳마다 환히 아는 것64)이 곧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믿을만 하니 멀리서 권면할 따름입니다.저더러 간옹[艮翁,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진짜 제자라는 말씀은, 아, 이 무슨 말입니까. 선사께서 헤아릴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을 눈으로 보고도 분변(分辨)하고 토죄(討罪)하여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함정에 빠트린 자만 패악한 제자일 뿐만 아니라 구제하지 않은 자도 패악한 제자임을 면치 못합니다. 제가 무함(誣陷)을 토죄한 것은 화를 당하여도 후회가 없으니, 패악한 제자임을 면하기만 해도 다행일 것입니다. 어찌 진짜 제자임을 감히 바라겠습니까. 未由同榻講貫之喩, 雖則可恨, 彼此皆有聖賢之書, 亦同具是非之性, 苟能反求本心之明, 質之理到之訓, 則人心之所同然, 先哲之不我欺, 觸處洞然, 卽此而在矣. 此可以相恃而遙勉爾. 艮翁眞弟之云, 烏是何言? 目見先師之陷於不測, 而不辨討而救之, 不惟陷之者之爲悖弟, 亦不救者之不免爲悖弟. 吾之討誣, 遭禍而無悔, 僅免爲悖弟卽幸矣. 安敢望眞弟也? 사람의……여기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즉 의리이다.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 따라서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孟子 告子上》 선철의……않아 맹자가 "공명의는 '주공이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고 했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오.'라고 하였다."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가는……것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공자께서 "내가 안회(顔回)와 종일토록 이야기해 보니,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았다.그러나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내가 말한 바의 이치를 충분히 드러내 밝히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라고 하신 경문(經文)에 "안자(顔子)는 자품이 침착하고 순수하여, 성인에 대해서 체단(體段)을 이미 갖추었다. 공자의 말씀을 들으면 묵묵히 이해되고 마음으로 깨달아 닿는 곳마다 환하여, 스스로 조리가 있었다."라고 주자가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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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정 임장상학에게 보냄 갑자년(1924) 與碧亭林丈相鶴 ○甲子 근세에 상례의 강기[喪紀]가 다 파괴된 것은 단지 고려말엽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애장(哀丈)11)께서는 하얗게 백발이 된 연세에 수척하게 산에서 여막을 지키면서, 3년 동안 채소와 고기를 끊고 백년간의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여 오랑캐의 풍속으로 물든 세상에서 멀리 포은선생의 고행(高行)을 좇으니 보고 듣는 자들이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생각건대 훗날 예교를 주창하고 밝힘에 있어 시초가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애장께서는 얼마나 다행이십니까?이로 인하여 생각해보건대, 부모를 예로써 섬기는 것은 한 가지 일의 효도이고, 도를 밝히고 덕을 이루는 것은 전체의 효도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예서(禮書)를 읽는 여가에 성현의 심법에 관한 글을 궁구하여 이른바 원대한 것을 구하여 몸으로써 그것을 체득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전수하며, 글로 써서 후배들을 깨우치시면 아득하고 은미한 실마리를 실추시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애장의 행실과 문망(文望)은 일찍이 흠모하며 우러러보던 바이고, '추운 겨울날의 송백[寒松]'과 '거센 물결 가운데의 지주(砥柱)' 같다 한 것은 또한 지난날 애장께서 평소 품으신 뜻을 우러러 헤아린 점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애장께서 한 가지 일의 효도가 이미 훌륭하다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감히 '전체의 효'를 제시하여 애장께서 더욱더 힘쓸 수 있는 바탕으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구구하게 스스로 선친과의 교분에 의지했으니, 살펴주시고 꾸짖지 마시길 바랍니다. 近世喪紀之壞盡, 不啻若麗氏之末葉也. 獨哀丈以皓然白首, 欒欒然守山廬, 絕菜肉於三霜, 報草心於百年, 遠追圃老高行於腥羶世界, 瞻聆攸暨, 孰不感歎? 意者異日禮教倡明, 未始不權輿乎, 哀丈也, 何其幸歟?因念事親以禮, 一事之孝也; 明道成德, 全體之孝也. 惟願讀禮之暇, 究觀聖賢心法之書, 以求所謂遠者大者, 體之身而推諸人, 著之書而牖諸後, 俾茫茫微緒, 得有以不墜, 如何? 哀丈之行治文望, 曾所欽仰, 寒松砥柱, 向又有仰揣雅志者. 故不欲以一事之孝已能者, 爲哀丈足, 敢以全體之孝, 贊哀丈加勉之資. 區區自附於先交之誼, 幸蒙鑑不讁. 애장(哀丈) 상중(喪中)에 있는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哀)'는 상을 치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장(丈)'은 어른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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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명혁기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魏致明赫基 ○癸酉 춘추시대는 고대 성인의 시대와 멀지 않아서 성인의 은택이 아직 다 민멸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자께서는 "뜻있는 선비는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게 될 것을 항상 잊지 않는다."16)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오늘날이 어떤 시대인데 선비들이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선비가 오늘날에 살면서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 것을 근심하지 않는 자는 참된 선비가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아! 우리들은 이미 나라가 없으니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또한 지위와 재주가 없으니 천하를 깨끗이 청소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재력과 힘이 없으니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모두 하늘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으로부터 좋은 칭송을 구하려고 한다면 어느 것에서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도를 실현할 뜻을 지니고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며 죽어서 구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편안히 여기면서 의롭지 않은 것이 털끝만큼이라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저 상제가 부여해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성(性), 신령스럽고 밝은 심(心)17), 바르고 빼어난 형체를 완벽하고 깨끗하게18) 받들어 돌려줄 것을 기약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평생의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春秋之時, 去古未遠, 聖澤不泯, 孔子尚云: "志士不忘在溝壑." 而况今日何日, 而士子可無溝壑憂乎? 吾故曰: "士居今日, 而無憂乎溝壑者, 非真士也."噫! 吾輩既無國家, 可以致君澤民? 又無位才, 可以掃清天下? 并無財力, 可以惠人利物? 此皆不得於天者. 故求善狀於此類, 則其道無由. 惟有求志食力, 安歸溝壑, 不以一毫非義汙身, 期以完完潔潔奉還他上帝所賦純粹之性․靈明之心․正秀之形, 是爲生平之無上善狀. 如何如何? 뜻있는……않는다 맹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사냥할 적에 대부(大夫)를 부를 때 쓰는 정(旌)이라는 깃발로 사냥터를 관리하는 우인(虞人)을 불렀으나 오지 않자, 그를 죽이려고 한 일이 있었다. 공자께서 우인을 칭찬하시기를 '지사(志士)는 자신의 시신(屍身)이 도랑에 버려지더라도 한하지 않을 것을 항상 생각하고, 용사(勇士)는 전투를 하다가 자기 머리를 돌아보이 않을 항상 생각한다' 하셨으니 공자께서는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사신 것인가? 자기 신분에 맞는 부름이 아니면 불러도 가지 않은 점을 높이 사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올바름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겠는가?〔孟子曰, 昔齊景公, 招虞人以旌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 티없이……심(心) 전우는 "대개 리는 것은 순수한 성이기 때문에 태극은 상대가 없는 진재(眞宰)가 되고, 심은 정영한 기이기 때문에 리와 더불어 간격이 없는 묘용(妙用)이 된다.〔蓋理者純粹之性, 所以爲太極無對之眞宰也, 心者, 精英之氣, 所以爲與理無閒之妙用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10 〈답양기소(答梁基韶)〉 바르고 빼어난 형체를 완벽하고 깨끗하게 전우는 "천지는 이미 나에게 굳세고 바른 형기를 부여하였다〔天地旣賦我以強壯正秀之形氣〕"라고 말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15 〈성산서사시제군(惺山書社示諸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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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국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安昌國 ○丁卯 얼굴도 뵙지 못했는데 먼저 안경을 보내주시니 마음으로 사귀는 지극한 뜻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에 미쳤겠습니까? 한번 착용함에 두 눈에 엷은 안개가 다 사라지고 새로운 달은 빛을 더하니 어떤 즐거움이 이와 같으며, 어떤 감격이 이와 같겠습니까? 생각해보건대, 저의 마음은 먼지에 뒤덮여 있으니 눈이 어두운 고통뿐만이 아닙니다. 누가 저를 위해서 탕 임금의 소반의 물95)로 씻어주고 안자의 화로의 눈96)처럼 녹게 하여 다시 타고난 면목을 회복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의 표면의 병을 구해주었으니 어찌 더 나아가 내면의 병을 치료해주지 않겠습니까? 아! 세상 사람들은 한갓 옥석으로 안경을 만들 줄은 알아도 의리로 마음을 다스릴 줄 생각하지 못하니, 무엇 때문입니까? 댁의 아들은 젊은 나이에 재주가 뛰어납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자식의 노력은 도로써 하고 문장으로 하지 않으며 말단을 버리고 근본을 취했으니, 역시 세상 사람들이 경중을 잃어버린 경우와는 다릅니다. 복숭아를 던져 줌에 구슬로 보답한다97)는 것은 옛사람의 일이거늘, 하물며 던져준 것이 복숭아가 아니라 구슬이라면 말해 뭐하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아들에 대해 마음 다스리는 것으로 힘쓰기를 바라니, 그렇게 하면 거의 보감(寶鑑, 거울, 안경)의 본색을 보존하여 보답할 줄 아는 의리를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석양에 접어드는 해와 같은 나이이니 어찌 다시 떠오를 수 있겠습니까? 장차 시름시름 하다가 그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바야흐로 떠오르는 해와 같으니 이를 채워 나아가면 도리를 명확하게 보고 의리를 정밀하게 다스릴 것이니 어찌 다만 안개를 없애고 달빛을 빛나게 하는 하나의 안경에 비유할 따름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당신이 은혜로 베풀어준 하나의 물건을 가지고 천년을 기약할 수 있는 증거물로 삼아 남겨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未通顏範, 先惠眼鏡, 非心交至意, 烏能及此? 一著雙眸薄霧掃盡, 新月增輝, 何快如之, 何感如之? 念僕心鏡之埋麈, 非但眼昏之苦, 疇能爲我濯之以湯盤之水, 銷之若顏爐之雪, 使復天來面目乎? 執事既救我表病矣, 豈不進而治內疚乎? 噫! 世之人徒知用玉石爲眼鏡, 而不思將義理治心鏡者, 何哉? 賢胤妙齡茂才, 翁之所詔子之所勉, 以道而不以文, 舍末而取其本, 則其亦異乎世之失輕重者矣. 投桃報瓊, 古人事也, 况所投者非桃而瓊乎? 僕於賢胤, 竊欲以治心相勖, 庶得保寶鑑本色, 自附知報之義. 然僕向夕之日, 豈可再上? 將見窣窣而止也. 賢胤方升旭日, 充此而進, 其見理明快, 制義潔精, 豈但一對鏡子掃霧輝月之比而已哉? 然則雖把尊惠一箇物, 畱作千載相期之證品, 未爲不可, 如何如何? 탕……물 탕왕(湯王)의 반명(盤銘)에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했다.〔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대학(大學)》 전(傳) 2장 안자의……눈 주자가 만년에 안연의 극기복례의 공부를 두고, "안자의 극기는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과 같다.〔顔子克己, 如紅爐上一點雪〕" 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41 〈논어·안연(論語․顔淵)〉 복숭아를……보답한다 《시경(詩經)》 〈목과(木瓜)〉에 "나에게 목도(木桃)를 보내 주었는데 내가 경요(瓊瑤)로 보답하고도 보답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길이 우호하고자 해서이다.〔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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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승 서문 【임신년(1932)】 家乘序 【壬申】 부령(扶寧) 김씨(金氏)는 만력(萬曆) 갑신년(1584)에 처음으로 대보(大譜)를 만들었고, 그 뒤로 각 파에서 여러 차례 족보를 만들었는데, 우리 직장공파(直長公派)는 인릉(仁陵) 계사년(1833)과 홍릉(洪陵) 임오년(1882)ㆍ정미년(1907)에 세 차례 족보를 만들었다. 갑신년 족보는 너무 소략하였지만 법이 매우 엄격하였으니, 시대가 고대여서 질박하였다. 계사년 족보는 비록 상세하였지만 이미 법이 문란해짐을 면치 못하였고, 임오년 족보는 법의 문란함이 더욱 심하였으니, 세대가 내려오면서 변천된 때문이다. 정미년 족보를 만들 때에는 내가 정서(正書)의 일을 하여 임오년 족보의 잘못을 많이 바로잡았으나,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다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각 파의 족보가 거의 대부분 이와 같았으니, 모두 세상의 풍속에 얽매였기 때문이다삼가 일찍이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한번 족보의 법을 정하고 대동보(大同譜)를 만들어서 인륜으로 하여금 제 자리를 잡게 하고자 하였지만, 오늘날의 세도와 인심을 헤아려 볼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으니, 종중(宗中)에서 대동보를 만들자는 의론이 있다고 한다. 명분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법이 반드시 문란할 것이다. 족보가 족보답지 않기에 참여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인데, 더욱이 또 시대의 의리에 편안하지 못한 점이 있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만약 정미년 파보(派譜)를 기준으로 하여 대대로 쌓아 내려온 미덕은 쓰지 말고 왕세계(王世系)와 방계(旁系) 8대를 엮되 다만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정밀하면서도 간략하게 교정하고 아울러 예전에 미진했던 점을 바로잡아 가로로 8층을 만들고 글자의 모양을 작게 하여 100여 판(板)을 넘지 않도록 한 다음에 바다를 건너 벽지 같은 곳에서 수십 질(帙)을 인쇄하여 펴낸다면 법과 의리, 일 세 가지가 모두 마땅함을 얻겠지만 또한 기필할 수 없었다.그래서 우리 한 집안의 가승(家乘)을 만들었다. 위로는 단지 우리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적고, 아래로는 우리 손자의 항렬에 이르러 그쳤다. 선조의 행적이 미비한 것과 예전의 족보에 잘못된 것들은 기록하여 고증하고 안설(按說)84)을 붙였다. 이것을 몇 본(本) 베껴 자손들이 각기 소장하였다가 천기가 돌아오고 산천이 맑아져서 법이 정해지고 의리가 편안한 날에 이 본에 의거하여 파보(派譜)나 대보(大譜)에 족보를 함께 하도록 했다. 만약 그런 때가 없다면 단지 이 본을 지켜서 그 아래에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길이 우리 집안의 가법(家法)으로 삼게 할 따름이다. 扶寧之金, 始有萬曆甲申大譜, 厥後各派累譜, 而吾直長公派, 則有仁陵癸巳、洪陵壬午ㆍ丁未三譜. 甲譜雖太畧, 而法甚嚴, 時古而質也. 癸譜雖詳, 已不免法亂, 壬譜則法亂尤甚, 世降而變也. 丁譜日, 余爲正書之任, 多正任譜之失, 以位卑莫克盡焉. 各派之譜, 率多若是, 總爲世風囿也. 竊嘗欲與同志者一定譜法, 以修大同之編, 使人倫各得其所, 計今世道人心, 其道無由. 近聞宗中有大譜議, 名則美矣, 其實則法必亂, 譜不譜而有難與焉者, 而況復有時義之未安乎? 若得就丁未派譜, 勿書世德, 編王世系旁八世, 但續以子孫錄, 校得精簡, 幷正前日未盡者, 橫作八層, 細其字樣, 使不過百餘板, 越海若僻地, 印出數十帙, 則法義與事三得其當, 而亦不可必矣. 故乃作吾一家之乘, 上則只錄吾之所自出, 下則至吾孫行而止, 其有先蹟未備及誤於前譜者, 錄之攷證, 附以按說. 鈔得幾本, 子孫各藏, 使於天返河淸, 法定義安日, 依此本同譜於派若大焉. 如無其時, 但得守此本, 續錄子孫於其下, 永爲吾家家法云爾. 안설(按說) 소주(小註) 안에서 '상고하건대[按]'로 시작되는 주설(註說)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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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명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魏致明 癸酉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거병서(去病書)〉19)를 먼 곳까지 부쳐주셨는데 마디마디가 적절하고 타당하며 하나하나가 약석(藥石)같은 말입니다. 그 문장에서 말한 '병을 제거하는 방법'은 가장 잘 형용하였으니, 손을 씻고 경건하게 읽자니 반성하고 깨우친 점이 많습니다.사람들은 "이 늙은이(위백규를 가리킴)가 추수(推數)를 전공하여 참위설(讖緯說)을 지어 전하기까지 했다"고 말하면서 일찍이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선생 문하에 출입한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연원이 단정한데 어찌 한쪽으로 치우쳐 나아감을 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어 보니, 평상시의 언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의 평정하고 적실(的實)함에는 참으로 이와 같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대 선친20)을 위해 〈다암처사묘갈(茶嵒處士墓碣)〉을 쓰는 것은 얼마나 큰일입니까? 그런데도 저에게 그 일을 부탁한 것은 사람들의 이른바 '택술에게 시키면 약간의 문사(文辭)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경박하며 존귀하지 않고 미덥지 않습니다. 게다가 문사마저도 없으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저를 깊이 아꼈기 때문에 생각이 한번 잘못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만두십시오. 그만두십시오. 存齋〈去病書〉, 荷此遠寄, 而言言切當, 箇箇藥石. 其云"去病", 最善名狀, 盥讀, 反省警發多矣.人言"斯翁專於推數, 至作讖緯而傳之", 嘗疑其出自渼門. 淵源端正, 豈至於不免偏就乃爾? 人言有不可信. 今讀此書, 乃知其平正的實, 不出乎日用言行之間, 果有如此者也.尊先公〈茶嵒處士墓碣〉, 何等大事? 而託之於澤述者, 不省所謂使澤述而稍有文辭, 人微言輕, 不尊不信. 而况并與文辭而無有乎? 此殆相愛之深, 而不覺一念之誤也. 已之已之. 거병서(去病書) '거병'은 이경(李㯳)의 어렸을 때의 자(字)로, 문언능(文彦能)에게 출가한,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큰누이의 외손자이다. 이 글은 위백규가 63세였던 1789년(정조13) 가을에 지은 것인데, 몸의 질병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옛 경전을 인용하여 훈계하였다. 이경은 생후 몇 달 만에 어미를 잃어 위백규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위백규가 거병이라고 부른 것은 오래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존재집(存齋集)》 권24 〈연보(年譜)〉 선친 위영복(魏榮馥, 1832~1884)을 말한다. 자는 방서(芳瑞)이고 호는 다암(茶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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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선두선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孫明先 斗宣○ 丁卯 인택(仁澤)의 언덕에서 저 연꽃봉오리를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무성했습니까? 제가 보지 못한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멀리 생각해볼 때 망가진 잎과 부러진 연뿌리가 낭자하게 눈밭에 널려 있어 쓸쓸히 사람의 정취를 감쇄시킬 것입니다. 아! 식물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너[연꽃봉우리]를 생각하는 것은 이 식물과 관련된 일이 친구를 위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똑같이 친구인데 유독 간절히 생각하여 식물에까지 미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조석으로 함께 인택가에서 읊조리고, 시물(時物)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 진실로 내 동생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멀리 그리워하는 이러한 한 생각이 반곡(盤谷)과 계유(繼裕)의 사이를 날마다 왕래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홀연히 외람되게도 편지를 보내주시니, 혼정신성(昏定晨省)98)하시는 가운데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정황을 아는 것 이외에 40세에 내부로 수습하여 정돈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진보한다는 등의 말을 보았습니다. 그 위로와 기쁨 은 속인에게 말해주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한때의 안부를 묻는 편지가 될 뿐만이 아닙니다. 옛말에 "노인의 학문은 촛불을 켠 것과 같다."99)고 말하였고, 또 "늙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더욱 사랑스럽다"고 말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40세가 비록 늦었다 하더라도 위나라 무공이 95세에 〈억(抑)〉이라는 시를 지어 경계한100) 일로 보건대, 사실은 늙지 않고 젊으니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의 재주와 뜻이 어떠한가에만 달려 있습니다. 힘쓰기를 바랍니다.김씨의 일은 자세하게 듣지 못했는데 정말로 형의 말씀과 같다면 역시 하나의 유문(儒門)의 변란입니다. 김씨가 억지로 자기 선조를 높이려고 망령스럽게 이 일을 거행한 것은 정말로 경악할 만합니다. 본가(本家)에서 조상에게 허물이 미칠 것을 생각하지 않고 허락한 것도 역시 부당한 것입니다. 이치에 의거하여 깨우쳐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따르지 않더라도 문인들이 공적으로 함께 성토하는 데에 이르면 아마도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사에게 누가 된다면 곧 누가 되는 것이지만,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께서 인가해줬다고 무함하여 원고를 고치고 의절을 깨뜨리며 뜻을 미혹시킨 것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무함하고 고쳤는데도 성토하지 않는다면 선사의 마음은 천고토록 밝혀지지 않을 것이니 그만둘 수 없습니다. 제향을 함께 하는 일은 그대가 거행한 것이 아니고 이를 허락한 자의 과실이니, 실제로 선사의 덕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는 그만두어도 될 것입니다. 仁澤之陂, 瞻彼菡萏, 何其穠矣? 自我不見, 日月幾何? 遙想敗葉折藕, 狼藉雪裡, 索然落人意況矣. 噫! 植物何與, 而乃爾之思, 非管是物者爲故人故歟? 均是故人, 而其獨思之切而及乎物者 何也? 非朝夕與之吟澤畔, 感時物者, 實吾舍弟故歟? 盖此憧憬一念, 無日不往來於盤谷繼裕之間, 忽辱惠翰, 仰審省定百福之外, 見有四十收飭警發進步等語. 其爲慰喜, 盖有難與俗人道者, 非但爲一時之安報也. 古語曰"老人之學, 如炳燭", 又曰"老而好學, 尢可愛"者, 兄即其人歟. 盖四十雖云晚矣, 以衛武公九十五而作抑戒觀之, 其實非老伊少, 亦無待炳燭也. 只在當人才志如何爾. 幸惟勉.金事姑未聞其詳, 果如盛喻, 則亦一儒門之變也. 金之強尊其祖, 而妄舉此事, 固可駭. 本家之不念累及於祖而許之, 亦無謂也. 據理喻之而罷之, 則善矣. 雖其不從, 至於門人之公共聲討, 恐不必然. 此於先師累則累矣, 有非陰震誣認改稿破節幻旨之比. 誣改而不討, 則先師之心, 千古莫白, 不得已也. 若同享之, 非賢舉之, 許之者之過, 實無損於先師之德, 此不可以已乎? 혼정신성(昏定晨省) 부모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 안부를 여쭙는 일이다. 곧 어버이를 정성껏 봉양함을 뜻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는 말이 나온다. 노인의……같다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묻기를, "내 나이 칠십이라 배우고자 해도 이미 늦은 듯하다."라고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어찌 촛불을 밝히지 않습니까?……신은 들으니,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돋아 오를 때의 햇빛과 같고, 장성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촛불을 밝혀 밝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촛불을 밝혀 밝게하는 것이 어둠 속에 길을 가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何不炳燭乎……臣聞之少而好學, 如日出之陽; 長而好學, 如日中之光; 老而好學, 如炳燭之明. 炳燭之明, 孰與昧行乎?〕" 하였다. 《설원(說苑)》 〈건본(建本)〉 위나라……경계한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나이 95세가 되었는데도 자신을 경계하는 〈억(抑)〉을 지어 사람을 시켜 날마다 곁에서 외게 하여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시경(詩經)》 〈억(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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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환병형에게 답함 을묘년(1915) 答尹德煥炳馨 ○乙卯 제가 처음에 족하를 만났을 때 앙연한 표정과 따뜻한 용모를 보고 사랑과 존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심중에 대해 여쭤보니 깊은 지식과 표연한 사상은 시류배에 비할바 아님을 알았습니다. 옥류동과 계화도 사이에 주선하면서 흡연한 정과 유연한 즐거움은 일찍이 오랜 친구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정이 바뀌어 영남의 구름과 호남의 달이 가고 머무름이 무상하니, 암연한 혼백과 유연한 감회는 또한 인정이 진실로 그러한 것인데, 고의(高義)와 중도(中道)를 삼가 낮추고서 편지를 홀연히 보내주시어 협연한 은혜와 충실한 감정을 마음끼리 서로 비춰주니, 이별하여 헤어진 고통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이별한지 한 달이 지났으니 우러러 생각할 때 신의 도움으로 객수의 오랜 고달픔은 물에 씻은 듯하고, 대인의 여유로움을 살펴보건대 구도의 간절함은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가 세상에 오랜 시간 동안 길이 보존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터득하는 것이 매우 드무니 무엇 때문입니까? 옛날부터 지금까지 뜻이 있는 사람은 적고 뜻이 없는 사람은 많아서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 됨으로서 함께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진실로 말할 꺼리도 안 됩니다. 저 간혹 그 뜻이 없지는 않은데 기질이 아름답지 못하여 변화의 효과를 보지 못한 자도 있고, 혹은 뜻도 있고 재주도 있는데 질병이 점점 깊어져서 연찬(硏鑽)의 공을 들일 겨를이 없는 자도 있으며, 이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하고 있는데 가난하고 궁핍하여 홀로 떨어져 살아 고루하다는 한탄을 면하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 몇 가지와 연좌된 자는 고금인물에 모두 존재하였지만 초목과 함께 썩어버렸으니 진실로 한탄할 만합니다. 이제 족하는 약관의 나이에 발원하여 천리의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방문을 했으니 그 뜻은 돈독하지 않다 말할 수 없습니다. 견해는 민첩하고 총명하니 곤란에 빠진 뒤에 분발할 필요도 없고, 움직일 때마다 승척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니, 재주는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강장한 몸은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선대가 물려준 귀중한 유업은 유학을 도울 수 있으니, 가난과 질병에 대한 근심은 고려한 가치도 없습니다. 족하는 무량한 상복(上福)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사다리를 얻고도 오히려 용맹하게 나아가 극치에 이르러 이른바 도라는 것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상천(上天)이 베푼 지극한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족하는 두려워하며 생각하기 바랍니다. 제가 들었는데 군자가 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취향이 올바른 것이라 하니, 취향이 바르면 언행과 사업은 하나도 바름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끝내는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취향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잘 꾸며서 말마다 이치에 가깝고 미봉하여 일마다 사람을 기쁘게 할지라도 끝내는 도학의 진체와는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표(嶺表)는 추노(鄒魯)의 고향이라 예부터 일컬었는데101), 근래에 와서 현인의 은택과 점점 멀어지고 도술이 점점 어두워져서 '심이 곧 리이다'는 설에 한 번 오염되자 전성(全省)에 두루 퍼졌습니다. 리라는 것은 지존지수하고 순선하여 악이 없는 것이고, 심이라는 것은 신령스럽고 지각이 있어서 공적인 것도 할 수 있고 사적인 것도 할 수 있습니다.102) 만약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심을 잡고서 순선하여 악이 없는 리라 부른다면, 심을 스승삼아 멋대로 쓰고 미친 듯이 멋대로 하는 것에 이르지 않는 자는 거의 드뭅니다.103) 족하의 현명함으로는 응당 취향(趣向)의 사정(邪正)에 대하여 훤히 알 것이니 제 말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어떻게 취사할 것을 알 것입니다. 풍기(風氣)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웠습니다. 저 하늘에 넘칠 듯한 풍조가 70개 주에 흘러넘치고 있으니, 노를 젓는 사공이 비록 잘 건너갈 수 있다 하더라도 언덕 위에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족하는 또한 성존덕성(聖尊德性)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오늘날의 급선무로 삼는다면 훗날에 맹자처럼 말을 잘 하여 이적을 물리친 공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두터이 돌봐주심에 감격하여 속마음을 쏟아내어 이에 이르렀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게 되었으니 간곡히 이해해주시고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僕之始遇足下也, 見其昂然之表溫然之容, 令人愛敬. 已而, 叩其中, 則淵然之識飄然之思, 知其非流輩比也. 得與周旋乎玉流繼華之閒, 而浹然之情逌然之樂, 曾不遜於舊要矣. 及其時移事嬗, 嶺雲湖月, 去留無常, 則黯然之魂悠然之懷, 亦人情之固然, 而枉屈高義中道, 赫蹏颺風來墜, 浹然之惠充然之感, 心心相照, 殊不覺分張之苦也. 啟旆踰月, 仰想神佑, 利稅宿憊如洗, 觀感大人之餘, 求道之切, 亦應大異前日也. 夫道之於世, 亘古長存, 而人之得之者, 甚鮮何也? 從前以來, 有志者少, 無志者多, 所以爲天下之通患, 而不可與共學者也. 如此者, 固無足道矣. 厥或有不無其志而氣質不美, 未見變化之效者, 厥或有志且才矣, 而疾病侵尋, 不暇研鑽之功者, 厥或有三者俱得, 而貧竆索居, 不免固陋之歎者. 坐此數者, 汨盡古今人物 而同腐草木, 良可歡也. 今足下發願於弱冠之餘, 訪道於千里之遠, 志不可謂不篤矣. 見解敏妙, 不待困衡趍步, 不茍動依繩尺, 才不可謂不美矣. 強壯之身足以勝重任, 青氊之業足以資遊學, 則貪病之憂, 又不足恤也. 足下所遇, 可謂無量上福, 得如此之梯, 而猶不勇進造極, 以得所謂一箇道者, 則真是靠負上天鐘愛之至恩也. 惟足下惕念焉. 竊聞君子所貴乎道者, 趍向是已, 趍向既正, 則言行事業, 無一不出於正, 而終可入聖賢之域. 趍向不正, 則雖粧撰, 得言言近理, 彌缝得事事悅人, 竟與道學真諦相去遠矣. 嶺之表, 古稱鄒魯之鄉, 而挽近以來, 賢澤漸遠, 道術浸晦, 心理一派, 殆遍全省. 盖理者至尊至粹純善而無惡者也, 心者能靈能覺, 可爲公可爲私者也. 若把或公或私之心, 呌做純善無惡之理, 則其不至於師心自用猖狂自恣者, 幾希矣. 以足下之明, 應已瞭然於趍向之邪正, 不待僕言而知所取舍矣. 不囿風氣, 從古爲難. 彼滔天風潮 震盪於七十之州, 副手梢工, 雖能利涉, 自岸上人觀之, 豈不爲慮? 請足下且將思聖尊德性之訓, 爲今日之急務, 則異時立孟氏能言距之功, 正自不難也. 感於厚眷, 傾蘊至此, 不覺觸人眼目, 幸曲諒而密秘也. 영표(嶺表)……일컫었는데 영남을 가리킨다. 영남은 원래 중국의 남쪽 지방인 대유령(大庾嶺) 등 오령(五嶺)의 남쪽에 있어서 붙인 명칭인데, 우리나라도 경상도가 조령(鳥嶺)ㆍ죽령(竹嶺)ㆍ추풍령(秋風嶺)ㆍ육십령(六十嶺) 등의 밖에 있다 하여 영남이라 칭한 것이다. 심이라는……있습니다 전우는 "심은 영각지물(靈覺之物)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믿어 大本으로 삼을 수는 없고, 반드시 성명에 근원하여 도심이 되어야 비로소 한 몸의 주재가 될 수 있다.〔心者, 不過是靈覺之物, 不可信之爲大本, 故必以原於性命者, 爲道心而始得爲一身之主矣〕"고 말하였다.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 〈답최자경(答崔佐卿)〉. 심을……드뭅니다 전우는 "'심'이 저절로 '리'됨을 알고 임의대로 행하면, 이것이 실제의 행동으로 '기'를 주재하고 거짓으로 '주리의 학'을 이름붙인 것이다〔心自認爲理, 而任意行之, 此爲實行主氣, 而假名主理之學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3 〈답전상무(答田相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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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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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나재문제창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羅在文濟昌 ○丙寅 상주가 선조고의 장례식 때 신주를 세울 수 없었던 것은 본래 저들이 압력을 가하여 서둘러 하관을 하느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니, 혹시라도 오늘날 세상에 예가 폐지되어 초래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 나중에 신주를 만들 것을 계획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만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의 의미를 따져보면,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 혼기가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고 혼을 부르고, 속백(束帛)104)으로 죽은 사람을 받들어 그 형체를 돌이켜 광중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신혼(神魂)이 더욱 표탕하여 일정함이 없으면 속백은 오래 보존하여 길이 의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무로 만든 신주를 세워 대신하고, 우제를 지냄으로써 안정시킵니다. 만약 장례 지낼 때 나무 신주를 세우지 않은 채 혼백(魂帛)을 받든다면 삼년 동안 혼백을 묻은 뒤에는 신이 어디에 의지하겠습니까?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서 구름처럼 떠돌고 바람처럼 떠다닐 것입니다. 자손들이 이점까지 생각한다면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가(禮家)들은 장사를 지낼 때에 나무로 만든 신주를 받들지 않는다면 장례를 마치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장례에 나무로 만든 신주를 세우지 않았으면 아뢰는 글도 또한 감히 짓지 않았으니, 신과 인간 사이의 정과 예의와 관련된 중요성이 도대체 어떠합니까.일단 갑오동란 때에 집집마다 신주를 묻은 뒤로부터는 이미 신주를 다시 받들 수 없고, 또 새로 만들 생각도 하지 못하여 하관하는 날에 이르러 새로 신주를 세운 사람은 천 명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약 한두 명이라도 예를 중시하고 풍속을 불쌍히 여기는 선비가 큰 절차를 빠뜨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듣고서 마치 나무를 엮고105) 끈을 묶는106) 일처럼 케케묵은 설을 늘어놓으니, 단지 채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진부하고 우활하다 이릅니다. 이것이 수십 년 동안 짐승 같은 무리가 가득하고 예의가 사라져서 온갖 죄악이 하늘에 가득한 풍조 때문이니 갈대 하나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 번도 이런 것을 가지고 강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한갓 비웃음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취향이 이쪽으로 가까이 오는 친구에 대해서만 더불어 말하여 간혹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주인 당신이 바야흐로 성현의 실학으로 자식들을 힘쓰게 하고 학교를 세우고 경적(經籍)을 쌓아 장차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두운 시절의 한 점 빛과 같으니, 어찌 다만 이쪽을 향할 따름이겠습니까? 이것이 즐거이 그 일에 대해 고하여 그 아름다움을 빨리 이루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아마 역시 헤아려주시고, 기꺼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哀侍之不能立主於先祖考襄禮者, 固緣彼壓渴窆之未遑, 而或無爲今世禮廢之致也歟. 竊聞以追造爲料, 而尚未之及者, 何也? 盖原禮意, 人之始死, 魂氣離散, 故復之以衣, 奉之以束帛, 反其形歸窀穸, 神魂尢飄蕩無定, 而束帛不足以久存永依. 故立主生而代之, 行虞以安之. 若葬不立主, 而仍奉魂帛, 則三年埋帛之後, 神何所憑依? 上天下地, 其將雲遊風颺矣, 爲人子孫念到于此, 豈不痛傷? 故禮家以葬而不奉主者, 爲不成葬. 葬不立主, 告辭又不敢剏製, 其爲神人情禮之關重, 顧何如哉? 一自甲午東亂, 人家埋主之後, 既不能還奉, 又不思改造, 至於窀穸日, 新立者又千無一焉. 如有一二重禮悶俗之士, 爲言大節之不可闕, 則聽之爲蒼古之說, 有若構木結繩之事, 不惟不見採, 反謂之腐迂. 此盖數十年來, 蹄跡充斥, 禮義淪喪, 滔天之風潮, 非一葦之可抗也. 故弟則未嘗以此強喻, 夫夫徒取其譏. 惟於朋知, 趣味近向此邊者, 說與而或見從矣. 哀侍方勉子以聖賢實學, 齋黌之峙, 經籍之積, 將聳觀聽也, 則此黑窣地一点光, 豈但此邊之向而已哉? 此所以樂爲之告, 而亟成其美者也. 想亦見諒而樂聞也. 속백(束帛) 묶어서 한 묶음으로 만든 5필(匹)의 비단을 이른다. 옛날에 빙문(聘問)이나 궤증(饋贈)에 사용한 예물(禮物)이다.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소사(少師), 소부(少傅), 소보(少保)는 피백(皮帛)을 손에 든다."라고 하였는데, 한(漢)나라 정현(鄭玄)의 주에 "피백(皮帛)란 것은 비단을 묶은 다음에 가죽으로 싼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공언(賈公彦)의 소(疏)에 "속(束)이라는 것은 10단(端)이다. 매단(每端)의 길이가 1장(丈) 8척(尺)인데, 모두 두 끝을 합하여 말면 총 5필(匹)이 되기 때문에 속백(束帛)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나무를 엮고 나무를 엮어 새집을 만들어 산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상고 시대에는 사람들이 적고 금수는 많아서, 사람들이 금수와 충사의 피해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에 성인이 나와 나무를 엮어 둥지를 만들어서 피해를 면하게 하니, 사람들이 기뻐하며 그를 천하에 왕이 되게 하고는 유소씨라고 불렀다.〔上古之世, 人民少而禽獸衆, 人民不勝禽獸蟲蛇. 有聖人作, 構木爲巢, 以避群害, 而民悅之, 使王天下, 號曰有巢氏〕"라는 말이 나온다. 끈을 묶는 문자가 없던 태고 시대에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 부호를 삼아서 행했던 소박한 정치 형태를 말한다. 신농씨(神農氏)가 이 결승의 정사를 행하다가, 복희씨(伏羲氏) 때에 이르러 팔괘를 긋고 나무에 새긴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서 서계(書契)의 정사를 행했다는 기록이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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