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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리는 《어류》 문목 무오년(1918) 上艮齋先生語類問目 戊午 근래 한가할 때 《주자어류(朱子語類)》한 부만 몰입해 보았습니다. 정당(精當)한 의론과 지극한 교훈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경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당시 선생의 정신(精神)과 풍채(風彩)까지 드러나 있어 자양(紫陽)과 운곡(雲谷)90) 사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방불하여 천 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을 쉽게 감발(感發)시킴은 손수 지으신 《주자전서》에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어류》가 당시의 방언(方言)에서 나온 것이기에 껄끄럽고 난삽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91)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혹 정밀한 의리가 관계되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대의(大意)를 묵회(默會)하면 되거니와, 강론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의리로써 문견이 좁은 이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어찌 감히 의심을 쌓아두고 묻지 않으면서 종신토록 번뇌를 품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의심나는 대로 기록하고서 연속하여 선생님의 비평을 구하고자 하니 노년에 응답하시는 것이 매우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은 《주자어류》에 대해 세인(世人)들이 이른바 마치 자기 말 외우듯 한다는 분이니 그 가운데 어렵고 쉬운 부분들에 대해 필시 오래도록 연구한 바가 있으실 터라 대가(大家)의 정신을 소비하는 데 이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경솔하게 외람되이 편지를 올리오니 비평하신 답장은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보내주시면 됩니다.서자융(徐子融)이 "부자(附子)는 뜨겁고 대황(大黃)은 차가운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입니까?"라고 묻자, 진재경(陳才卿)은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하였다. 선생께서 "자융은 지각(知覺)이 성(性)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기질지성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당본(唐本) 권4의 5판, 〈보광록(輔廣錄)〉】두 약물(부자와 대황)의 차고 뜨거운 성질은 원기(元氣)가 처음 온 데서 비롯된 것이지 미악(美惡)과 편전(偏全)을 구분한 것이 아니니 어찌 성으로 여기지 않는 기질지성[氣質不性之性]92)으로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이것에 대하여 기질지성으로 여기지 않고 본연지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곧장 이를 가지고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一性]인 성93)으로 여긴다면 또 어찌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명확히 분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가운 것은 천지의 본연(本然)의 리이니 성으로 여기지 않는[弗性] 기질지성으로 여겨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약물은 써서 질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니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인(仁)이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義)이다. 그러하니 인의가 어찌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인 성이 아니겠는가?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는 양건(陽健)과 음순(陰順)을 예로 들어보면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그것들은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稟受)한 적이 없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출전은 앞과 같다.】이 단락은 사람과 생물의 성이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다[人物性偏全]고 주장하는 호론(湖論)의 증거가 될 듯합니다. 그러나 아래 문장에서 인용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여씨(呂氏)의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대체로 생물은 오상(五常)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품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고 한 것은 대체로 사람만이 오상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홀로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만약 사람과 생물이 본연지성을 품부할 때의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를 말한다면 치우친 것은 원래부터 치우친 것이고 온전한 것은 원래부터 온전한 것일 테니 어찌 사람에 가깝고 사물에 가까운 뒤섞인 성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는 이 말은 아래 문장에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운용(運用)하는 곳에 나아가 그 온전히 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분명하다. 《통서해(通書解)》에서 '성대로 한다는 것은 성인이 홀로 하늘에서 얻은 것이다[性焉者聖人獨得於天]'94)라고 말하였으니, 중인(衆人)은 일찍이 이 성대로 한다는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보내온 편지는 대체로 옳다."물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고 어떤 생물의 성은 어떠하며 어떤 사물의 성은 뜨겁고 어떤 사물의 성은 차갑다고 늘상 말하는데 이것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4의 20판, 〈심한록(沈僩錄)〉】'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갑다'는 것은 바로 5판 〈보광록(輔廣錄)〉에서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인데 지금 여기서 물성(物性)의 뜨겁고 차가움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간주한 듯하면서도 품수받은 리(理)라고 말한 것은 또 본성(本性)을 이르는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한 경우는 분명히 기질지성이고 함께 대비하여 거론하였으니 기질지성으로 간주하고 본연지성으로 간주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품수받은 리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보광록(輔廣錄)〉과 〈심한록(沈僩錄)〉 둘 가운데 과연 어디를 따라야 합니까? 게다가 의심컨대,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는 말은 완급(緩急), 강유(剛柔), 미악(美惡) 같은 온갖 것들이고 물성이 뜨겁고 차가움은 원래 이러하고 미악(美惡)을 구분하는 데 미치지 않은 것인데 하나의 예로 동일하게 여기니 혹은 적절한 분류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천지가 건순(健順)한 것은 사람의 기질【성(性) 자를 붙여 보아야 한다】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 조목에서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말한 것은 어떤 사람의 성은 효성스럽고 어떤 사람의 성은 충후하다는 것으로, 이는 기질과 품수받은 리를 겸하여 함께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할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리(理)는 심(心) 속에 있는데 심은 리를 가두어 두지 못하고 일에 따라서 발현한다. 흡사 저 상자와 비슷하니 책상자[經函]를 제거하고 안에서 등불을 밝히면[點燈] 사면팔방이 모두 이처럼 광명함이 찬란하다.[光明燦爛]"【권5의 4판, 〈보광록(輔廣錄)〉】무릇 주자의 설 중에 리에 대해 광명(光明)을 말한 곳 가운데 다른 곳들은 모두 말할 만한 점이 있지만 이 단락에서는 경함(經函)으로 심을 비유하고 점등(點燈)으로 리를 비유하여 광명으로 리(理)를 곧장 말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아야 통달하여 막힘이 없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명덕(明德)을 논하여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하여 조금도 밝지 않음이 없다[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고 하셨다.【인용은 여기에서 그침】 도리는 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것이니 어떻게 광명함이 있겠는가? 다만 심의 측면에 나아가 지적하였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단락에서는 먼저 심과 리가 하나임을 말하고 이어서 리가 심 속에 있음을 다시 말하고 광명함이 찬란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으니, 아마 막힘이 없는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수많은 도리가 밝디밝은 것은 성(性)에 속한다."【권5의 13판】성분(性分)에 대해 밝디밝음을 말하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만약 만리(萬理)가 찬란하게 구비되었다는 뜻으로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부분들을 만약 융통성 있게 보지 않으면 밝디밝고 신령스러운 것을 인식해 성(性)과 태극(太極)으로 여기는 이단의 학문으로 쉽게 빠져들까 두렵다. 이 단락의 문장의 의의(意義)는 명료하지 않다."물었다. "명덕(明德)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입니까?" 대답하셨다. "그렇다.[便是]"【권14의 12판, 〈유경중록(游敬仲錄)〉】성이 만약 정말로 명덕 전체(全體)의 본색(本色)이라면 단지 '그렇다[便是]'고만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해야 합니다. 이는 성이 단지 명덕 중에 갖추어져 있는 것일 뿐이고 전체의 본색이 아니기 때문에 곧바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그렇다[便是]'라고만 말한 것입니다. 뒤의 권16의 1판(板) 〈황순록(黃㽦錄)〉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는 것이다[便是天之所命謂性者]' 및 4판 〈양도부록(楊道夫錄)〉에 '명덕이다[便是明德]'라고 한 것이 이 예와 동일하게 보아야 할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보내온 편지의 내용처럼 보아야 할 듯하다.""이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光明)함이 비추어 관통한다"【출전은 앞과 같다.】도리가 심 속에 있기 때문에 심도 아울러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한다'고 말한 것이지, (도리와 심을) 분리하여 단지 도리에서만 광명함을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미 앞에 보인다. 옛날에 약재(約齊 송병화(宋炳華))가 시(詩)를 지어 '심이 광명한 곳에 리가 광명하다.[心光明處理光明]'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말하면 좋다.""광명(光明)한 성은 본래 그대로 있다."【권15의 25판, 〈여대아록(余大雅錄)〉】이 단락의 문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심(心)의 본체(本體)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가지고 설명하고 다시 명덕(明德)이 성(性)이라는 말은 없는데, 이 심의 본체가 바로 명덕입니다. 그렇다면 광명한 성의 '성' 자는 성리(性理)의 성으로 풀이하지 않고 단지 체(體) 자의 뜻으로만 풀이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한 듯하지만 단정지어 말하지는 못하겠다.""이 도리는 광명(光明)하여 어둡지 않다. 이 리는 담연(湛然)하게 맑고 밝다."【권16의 2판, 〈심한록(沈僩錄)〉】광명과 담연은 심에 들어맞는 말인데 지금 이 말들을 가지고 리(理)를 말하면 참으로 의심할 만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의 윗글에 이미 '이 심을 길이 보존한다[長存此心]'는 한 구가 있으니 이 리는 바로 심에 갖추어진 리입니다. 그러므로 광명과 담연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단지 리 하나만 말한다면 응당 이러한 글자들을 써서는 안 됩니다.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위와 같다.""이 물사(物事)95)가 곧 기(氣)이다."【권16의 13판, 〈임기손록(林夔孫錄)〉】선생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여 이 물사(物事)를 혹은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이라고도 하고 혹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라고도 하고 혹은 허령(虛靈)한 심(心)이라고도 하는데 의당 자세하게 궁구하고 따져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삼가 제가 이 단락의 어맥(語脈)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이 물사는 바로 밝은 명령[明命]을 가리키니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은 곧 사람의 밝은 덕[人之明德]이고 하늘이 명령하고 사람이 얻은 것은 바로 허령(虛靈)하고 신명(神明)한 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사가 곧 기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이렇게 본다면 전체 문단의 어맥은 절마다 모두 통하게 됩니다. 만약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으로 본다면 성은 곧 리이니[性卽理] 어찌 다시 허다한 도리를 이 속에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음양오행의 기로 본다면 불가(佛家)가 이해하는 것과 노자(老子)가 파악하는 것은 정말로 모두 자신의 심신에서 찾지 않고 멀리 천지의 음양오행에서 구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이 본다면 절마다 구애되어 아마 끝내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각기 성명을 바룬다[各正性命]'는 구절 이하96)는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어쩌면 성명(性命)은 심(心)이 갖추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섞어서 말해도 서로 구애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서 주장하는 관점이 앞 문단과 달라서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물사를 곧바로 성으로 인식하였다면 불가와 노자가 어찌 일찍이 이렇게까지 볼 수 있었겠는가? 옛날에 영남(嶺南)의 유원중(柳遠重)ㆍ송호곤(宋鎬坤)ㆍ송호완(宋鎬完)ㆍ송재락(宋在洛) 등의 여러 사람이 스스로 이 구절을 잘못 보고 문득 논쟁하면서 서로 헐뜯었는데 나는 기(氣)를 밝히는 학문의 언론(言論)과 기상(氣象)이 서생(書生)과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두려울 만하다. 지금 그대가 보내온 편지가 타당한 듯하지만 이러한 무리들과 맞부딪쳐서 한 바탕 이상한 짓을 당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 대해서는 나 또한 명료하지 않다. 다만 아래 문단의 내용으로 살펴보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니 선생의 뜻은 결코 유씨(柳氏)나 송씨(宋氏) 등 여러 사람의 견해가 아니다.""아는 것이 미진하면 스스로 속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권16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스스로 속이는 것은 반절은 알고 반절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양도부록(楊道夫錄)〉】"스스로 속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아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출전은 앞과 같다, 증조도록〈(曾祖道錄)〉】'스스로 속인다(自欺)'는 말을 《대학장구》를 근거로 해석하면, 이미 안 이후에 실제적인 힘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른바 '속인다'는 것은 '실제적이지 않다'는 뜻으로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령되게도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앎의 과실이 아니고, 의지의 죄이며, 무심(無心)의 과실이 아니라 유심(有心)의 사사로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주자어류》의 문단을 보니, 결국은 앎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이렇게 된다면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격물치지가 정밀하지 않은 것이지 힘을 쓰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구구한 의심을 다할 수 없지만, 이것뿐 만이 아닙니다. 이를 《대학혹문》에 고증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대학장구》에서 '선을 실천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되 마음의 발하는 바가 진실하지 못함이 있다'는 것을 정론으로 삼는다면, 《어류》와 《혹문》의 내용은 억지로 서로 합치하게 하지 않아도 합치하게 됩니다. 장하주(章下註)의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다'고 운운한 데에 이르러서는, 성의(誠意)가 별도의 단독적인 전(傳)로 성립되어(別立單傳) 치지(致知)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 사람들이 위의 장(上章)을 이어서 통괄적으로 고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설(原說)을 미루어나가면, 아는 것이 미진하면 뜻이 성실하지 않게 되어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성(不誠)의 큰 관건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말하면, 아마도 앎이 미진하다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실제적 병통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병통으로 말하면 하문에 이미 밝혔으니, '불근호차(不謹乎此)'97)라는 한 구절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극히 옳고 옳다. 《주자어류》와 《대학혹문》의 설명은 별도로 하나의 의리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단락의 뒷문장은 의리가 있지만 또한 조금 작위적인 말이 있으니 이 구절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논어집주(論語集註)》의 도체(道體)는 무위하다는 말98)과 서로 걸리는 듯하다."물었다.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에서 어디에 속합니까?" 말씀하셨다.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권17의 5판, 〈호영록(胡泳錄)〉】하늘의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사람의 건순오상(健順五常)은 그 이치가 하나입니다. 하늘에 있는 오행(五行) 가운데 목(木)과 화(火)는 양에 속하고 금(金)과 수(水)는 음에 속하니, 오행은 하나의 음양(陰陽)입니다. 이를 가지고 예시하면, 사람에 있는 오상(五常) 가운데 인(仁)과 예(禮)는 건(健)에 속해야 하고 의(義)와 지(智)는 순(順)에 속해야 하니, 오상도 하나의 건순(健順)입니다. 그런데 지금 건순의 사성(四性)에의 분속(分屬)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단지 사성(四性)의 음양(陰陽)에의 분속(分屬)으로만 답하고 건순 2자를 빠뜨린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음양을 말하면 건순은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자세히 논하지 않았을 것이다.""사람과 생물은 모두 건순오상(健順五常)의 성(性)을 품수(稟受)하였다. 그리고 이를테면 개가 사람을 물 수 있는 것은 곧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사람을 물지 않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다. 또 이를테면 초목이 곧고 딱딱한 것은 강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심한록(沈僩錄)〉】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은 바로 본연지성(本然之性)인데 지금 이 개[狗子]와 초목(草木) 두 조목에서 운운한 것은 오히려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합니다. 만약 '인(人)' 자를 가지고 '구자(狗子)'나 '초목(草木)' 자와 바꾸고서, 사람이 강하고 사나워 남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자애롭고 착해서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하고 또 사람이 곧고 딱딱한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본연지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문단은 아마도 기록이 잘못된 듯하다. 또 앞 문장에 양(陽)의 기(氣)와 음(陰)의 기라는 두 '기(氣)' 자는 뒷구의 오행(五行)의 리(理)로 추론해 본다면99) 리(理)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고 천연적으로 본래 존재하는 중(中)은 시중(時中)이다."【권18의 22판, 〈증조도록(曾祖道錄)〉100)】상단(上段)의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천지의 중(中)은 단지 하늘이 내린 것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사람이 받은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101)고 하였지만 이 단락에서는 오히려 "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다."라고 하였으니, 미발의 중이 어찌 사람에게 있는 대본(大本)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상단에서는 하늘이 내린 것과 사람이 받은 것을 가지고 상대하여 들어서 나누어 말하였고 이 단락에서는 미발(未發)의 시중(時中)102)을 가지고 대비하여 들고 나누어 말했으니 주장하는 관점이 이미 다르므로 가르키는 바도 조금 다릅니다. 이와 같이 보면 되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논한 내용이 맞다.""《중용(中庸)》에서는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中庸專言智]"103)【권19의 1판, 〈탕영록(湯泳錄)〉】지(智)․인(仁)․용(勇)은 《중용》의 대지(大旨)인데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도를 밝히는 책이기 때문에 지(智)로 말한 것입니까?물었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인(仁)이 되지 않는데104) 관중에게는 오히려 인(仁)이라 일컬은 것은105) 어떠합니까?" 말씀하셨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독자적으로 한 것이고 관중은 출사하여 필경 인(仁)하다고 할 만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권20의 22판, 〈정남승록(鄭南升錄)〉】공자(孔子)의 본뜻과 주자의 《논어집주》에 근거하면, 자문(子文)이 인하기까지는 않았던 것은 그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관중(管仲)을 인하다고 인정한 것은 그가 천하를 한 번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은 인정해 주고 한 사람의 인은 부정한 것은 그 가리키는 바가 각각 달랐으니 애초에 독자적으로 하여 훌륭한 일을 못했다고 자문(子文)을 폄하한 것이 아니고 출사하여 훌륭한 일을 하였다고 관중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자어류》에서 이와 같이 말했으니 후학들이 만약 이 설을 주장한다면 아마도 자수(自修)를 경시하고 공리(功利)를 중시하는 폐단에 이를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어떤 이가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106) 말씀하셨다. "필경 일찍이 배운 것이겠는가?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이겠는가?" 물었다. "선생께서 이른바 그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힘쓴 것이 지극해서일 것입니다.[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말씀하셨다. "옳게 보았다."【권21 18판, 정남승록(鄭南升錄)】자하(子夏)의 말은 폐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不免有弊]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 만약 그가 학문한 것이 아니고 또 타고난 자질이 높은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19판, 〈임기손록(林夔孫錄)〉】자하의 본래 말은 도리어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는 뜻인데 오재로(吳才老 오역(吳棫))는 그 폐단이 학문을 그만두는 데 이른다[至於廢學]고 하였다.【앞과 같은 판, 〈황간록(黃榦錄)〉】자하의 이런 말은 교왕과직(矯枉過直)한 것이다.107)【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불면유폐(不免有弊)', '지어폐학(至於廢學)', '교왕과직(矯枉過直)' 등의 설에 근거하면,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吾必謂之學]'에서의 '학(學)' 자는 단지 명륜(明倫 인륜을 밝힘)으로만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정말로 아직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 '약불시학문래 안능여차(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 등의 설에 근거하면, 다시 이 '학(學)' 자는 학문(學問)으로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또 곧장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한 구절로 단안(斷案)을 삼은 경우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일찍이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이 《논어집주》의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말을 주장하여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으로 보고서 자하(子夏)의 말이 폐단이 없다고 하여 오씨(吳氏)가 자하의 본뜻을 잘못 이해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는데 이 설은 매우 이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본다면, 자하의 말은 너무 골자가 없어 근본을 중시하고 말단을 억제하는 데 힘이 되기에 부족하니, 이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물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에 대하여 이천(伊川 정이(程頤))은 성(誠)이라고 하였는데 옳습니까?" 말씀하셨다. "성(誠)은 생각에서 나오고 시인(詩人)의 생각은 모두 정성(情性)이다. 정성(情性)은 본래 바름[正]에서 나오니 어찌 거짓으로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은 바로 정성(情性)이고 사특함이 없음은 바름[正]이다. 이로써 본다면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온 것이다."【권23의 12판, 〈황탁록(黄卓錄)〉】《논어집주》와 《주자어류》의 여러 단락에서 모두 '사무사(思無邪)'는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성(情性)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단락에서만 시인의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사무사(思無邪)'를 해당시키고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음녀(淫女)와 탕자(蕩子)의 노래 같은 것이 어찌 거짓으로 한 게 아니고 곧바로 정(情)을 쏟아내었다는 이유로 바름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발한 정(情)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성(誠)이라고 한다면, 이천(伊川)의 본뜻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어야 할 듯합니다."'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는 것은 굳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무릇 사람은 모두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13판, 〈만인걸록(萬人傑錄)〉】이 단락에서는 사람들이 '사무사(思無邪)'를 단지 시를 짓고 시를 읽는 사람의 일로만 보고 뭇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일로 보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므로 이를 말하여 그 폐단을 바로잡았습니다. 만약 '사무사(思無邪)'는 천하 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단지 자기 자신의 정성(情性)에 나아가 그 바름을 찾아 얻어야 할 뿐이지 굳이 부질없이 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여 무익한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물었다. "맑음[淸], 조화로움[和], 자임[任]108) 역시 단지 그릇[器]일 뿐입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한편으로 치우쳐[偏] 성취(成就)한 것이지만 도리어 그릇은 아니다."【권24의 13판, 〈황간록(黃榦錄)〉】이미 '치우쳤다[偏]'고 말하고 다시 '그릇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상판(上板)의 〈주명작록(周明作錄)〉과 하판(下板)의 〈임일지록(林一之錄)〉에 근거하면, 이 단락에서 그릇이 아니라고 운운한 것은 정론(定論)이 아닌 듯합니다.'충신(忠信)이 주(周)이다'109)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이 주(周)인 것은 단지《좌전》의 '두루 자문한다[周爰咨詢]'의 주(周)를 가리켜 충신이라고 한 데110)서 연유했을 뿐이니, 후세 사람들이 마침내 이를 가져다 함부로 풀이하는 것은 가장 이치가 없다."【권24의 17판, 〈임각록(林恪錄)〉】'충신(忠信)이 주(周)이다'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하므로 두루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면전에서나 등뒤에서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앞과 같은 판, 〈임일지록(林一之錄)〉】'공평하게 대하다[周]'와 '편당을 짓다[比]'는 것은 단지 공(公)과 사(私)라는 두 글자로 대비하여 설파한 후에야 딱 들어맞아 바꾸지 못한다. 충신(忠信)은 공(公) 자의 뜻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임각록(林恪錄)〉에서 '이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충신(忠信)하지 않으면 하는 일이 다 실질이 없을 것이니 비록 공평하게 하여 두루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임일지록(林一之錄)〉에서 도리어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두 기록은 같이 놓아도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111) 자는 본래 이미 발한 곳에서 살피기는 합니다만 다시 미발(未發)의 때에 삼가지는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미발의 때에는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 미발의 때에는 요순에서 보통 사람까지 모두 똑같다."【권26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요순(堯舜)의 자연스러운 미발(未發)과 보통 사람의 우연한 미발은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는데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 자 이하의 미발은 위로는 자연스러움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우연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고요할 때 본래 치중(致中)이라는 일단의 공부가 있으니 그런 뒤에 체(體)가 세워지고 용(用)이 행해지게 됩니다. 지금 미발의 때에는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고 뭉뚱그려 말하면 (중이라는) 대본(大本)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학문의 방법이 혹 거의 치우쳐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선생(朱先生)의 가르침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후학(後學)의 망녕된 의심이 그러할 뿐입니다."'자기로써 한다[以己]'와 '자기를 미룬다[推己]'112)는 말의 분변(分辨)"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자기로써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자기를 미룬다'는 것은 꺾어 돌리는 뜻이 있으니 이를테면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과 같다."【권27의 21판, 〈서우록(徐㝢錄)〉】'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울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은 《논어집주》및 아래 〈진순록(陳淳錄)〉과 〈황의강록(黃義剛錄)〉 둘을 가지고 살펴보면 바로 '자기로써 하는[以己]' 일인데 여기서 '자기를 미루는[推己]' 일로 본 것은 아마도 의당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전체(全體)는 아직 인(仁)이 아닐지라도 만일 한 가지 일에서 이치에 맞고 또 사심(私心)이 없을 수 있다면 또한 한 가지 일의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곧 전체(全體)로 말한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일에서 인(仁)을 다할 수 있다면 곧 그의 전체가 인(仁)하게 된다. 만약 전체에 흠결이 있으면 이 한 가지 일에서도 틀림없이 인을 다할 수 없으니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수많은 일을 다 포함하여 모두 다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게 된다."【권28의 10판, 〈심한록(沈僩錄)〉】이미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을 인으로 여긴다면 전체(全體)가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은 본래 전체의 인이거니와 한 가지 일이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도 한 가지 일의 인이 되는 데 문제가 없는데, 선생께서 금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전체를 상정한 이후에 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면, 안자(顔子 안회(顔回))가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은 것도 석 달의 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까? 안자가 진실로 전체에 흠결이 없는 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일에서 반드시 인을 다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3권 19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의 경우에는 "한 가지 일이 인에 있어 순수하므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一事純於仁 可謂之仁]113) 은(殷)나라에 세 인자가 있었는데 이들 역시 그 전체를 보지 못하였고 단지 거취(去就)의 문제에서 천리(天理)에 순수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인정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 말이 의당 바꿀 수 없는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호문정공(胡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설(春秋說)에 '출공(出公) 첩(輒)이 자리에서 떠나 아버지를 따르면 위(衛)나라 신하들은 첩을 도와 아버지 괴외를 막아야 한다.'114)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권34의 27판, 〈여도록(呂燾錄)〉】《주자대전(朱子大全)》 〈범백숭에게 답한 편지(答范伯崇書)〉에서 "첩(輒)이 만약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를 막고서 첩을 도와야 한다."라고 하여 이 조목과 같지 않습니다. 대체로 첩이 진실로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다른 공자(公子)를 세우고서 괴외를 막아야 하니, 바로 첩이 아버지를 따르는 마음과 일에 처하는 의리를 이루어주는 방법이 진실로 이러합니다. 게다가 비록 첩을 도와 그의 아버지 괴외를 막고자 하였더라도 첩이 어찌 자기를 돕고 아버지를 막는 일에 기꺼이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반드시 도망간 뒤에 그만두었을 것이니 이것이 또 사세(事勢)로 보아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의당 《주자어류》의 이 조목을 정론(定論)으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태왕(太王)은 상(商)나라의 정치가 날로 쇠하는 것을 보고 상나라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상나라를 치려는 뜻을 두었으니 또한 지극히 공정한 마음이다."【권35의 3판, 〈이장조록(李壯祖錄)〉】주(紂) 임금이 백성을 학대할 때 그를 치려는 마음을 둔 경우라면 지극히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왕은 이미 주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을 만나지 않았으니 주자가 지극히 공정하다고 말한 것은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나의 재주를 다하니 선생님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不思而得]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고, '비록 (공자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雖欲從之, 末由也已]'는 것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不勉而中]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115)【권36의 21판, 〈황순록(黃㽦錄)〉】'여유소립탁이(如有所立卓爾)'는 본 것이 더욱 친근해진 경지이고 '수욕종지말유야이(雖欲從之末由也已)'는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니,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 경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의당 모두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 있는 것일 듯합니다."자로(子路)와 염구(冉求) 및 공서화(公西華)가 하고자 한 일들은 증점(曾點)이라면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들이다."116)【권40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증점의 소견을 끝까지 미루어 가면, 세 사람(자로, 염구, 공서화)이 말한 일들은 우선 말할 것도 없고 요순(堯舜)의 사업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만 증점의 평소 간이하고 우활한 성품과 방탄(放誕)한 행동으로 어찌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리거나 한 나라의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거나 나라의 큰 예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자도 참으로 "증점으로 하여금 세 사람의 일을 하게 한다면, 꼭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극기복례는 그 틈이 머리카락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사심이 없어야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권41의 1판, 〈양도부록(楊道夫錄)〉】극기하면 예는 스스로 회복되니, 극기 이외에 별도로 복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 이곳에서 정밀하고 세밀한 공부를 착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를 회복해야만 仁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극기가 곧 仁이라고 말하지 않고, 극기복례가 仁이라고 말씀하셨다.【3판, 〈김거위록(金去僞錄)〉】자기를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예에 돌아가고, 그런 연후에 仁을 한다. 만약에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서 한 가지 일도 하는 것이 없다면,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공허함에 떨어진다.【5판, 〈반시거록(潘時擧錄)〉】'극기하면 곧 복례한다'는 것은 극기를 하고서 복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두 개로 끊어진 공부도 아니다.【8판, 〈진식록(陳植錄)〉】주선생(주희)은 한 사람인데, 두 개 설의 다름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어느 설을 따라야 합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에게는 단지 천리와 인욕 두 길만이 있으니, 천리가 아니면 인욕이고, 천리에 속하지 않으면서 또 인욕에 속하지 않은 때는 없습니다. 진실로 자기의 사심을 극복해 가면 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강을 말한 것이고, 자세하게 논하면, 사람은 사욕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지만 이치에 맞게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좌의 방법을 통하여 마음을 밝게 하려고 하지만, 도체의 공심(公心)을 보존하지 못하여 사물에 응대함에 있어 간혹 마땅함을 잃는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하물며 예는 천리의 절문(節文)으로, 절문은 지나침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하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仁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있고, 하루의 잠깐 사이에 천하의 큼을 얻어서 인(仁)에 돌아가는 것으로 말하자면 어찌 한번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곧 절로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논어집주》에서 "사욕을 이기고 禮에 돌아간다"에서 아래 이(而)라는 한 글자를 살펴보면 극기복례에서 공부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공자께서)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周)나라로 만들 것이다.[吾其爲東周乎]'117)라고 하셨는데 만약 성인(聖人 공자)으로 하여금 그 뜻을 행할 수 있게 하면 단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동방에서만 하는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역시 다만 거기에서만 할 수 있다." 다시 물었다.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 말씀하셨다. "이 점은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때에 임하여 일의 형세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응(響應)하여 모이는 곳이 있다면 또한 저절로 성인을 통하지 않을 것이니, 만약 주나라 왕조로 하여금 그 예물(禮物)을 갖추어 (새로 일어나는) 왕가(王家)의 손님이 되게 한다면, 어찌 난왕(赧王)이 주나라의 읍을 스스로 헌납하여 멸망한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권47의 3판, 〈심한록(沈僩錄)〉】'나는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단지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의 도를 동방의 노나라에 행하겠다고 말한 것일 뿐 애초에 천명(天命)을 받아 주나라를 대신하겠다는 뜻은 없는 듯합니다.《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단지 '동방에 주나라의 도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라고만 말했으니 또한 이와 같은 뜻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주자어류》에서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에 '단지 그 일의 형세를 봐야 한다'고 답한 것은 모두 성인(聖人)의 심사(心事)의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말해서는 안 됨을 말한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주자께서 무슨 까닭으로 질문에 따라 대답하면서 난왕의 멸망을 운운하기까지 한 것입니까? 삼가 저는 변변찮은 의심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물었다.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일로, 여기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灑掃應對, 是其然, 必有所以然.]'118)라고 하였는데, 소이연(所以然)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하셨다. "만약 진실한 뜻[誠意]이 없다면 어떻게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겠는가?"【권49의 11판, 〈감절록(甘節錄)〉】성의(誠意)를 소이연으로 삼고 있으니, 만일 기록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주자의 한때의 설입니다."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中節不中節]이 있다. 이를테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이 바로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권53의 9판, 〈진순록(陳淳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고, 사양해야 하는데 사양하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모두 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다."【16판, 〈보광록(輔廣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는 것이 이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라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 또한 본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본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불인(不仁)이고 불의(不義)일 따름입니다. 측은하게 여겨야 해서 측은하게 여길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고, 수오해야 해서 수오할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는 데 이르른 뒤에야 비로소 절도에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제때 제자리에 맞게 발하면서 지나침과 부족함이 있는 측은과 수오는 사단(四端)이 되는 데 문제가 없거니와 제때 제자리에 맞지 않게 발하는 측은과 수오는 아마도 사단으로 논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진순록(陳淳錄)〉에서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의당 정론이 되어야 하거니와 '약불(若不)' 이하 20자는 토론해야 할 점이 있는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신지요?"사단(四端)은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있다. 이를테면 모질고 사납고 어리석고 강퍅함[暴戾愚狠]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고 모호하여 분명하지 않음[含糊不分曉]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불손(不遜)한 행위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한 번 바르고 한번 반(反)하는 것이 언제나 사단의 발함 아닌 것이 없다."【16판, 〈이방자록(李方子錄)〉】폭려(暴戾)와 우한(愚狠), 불손(不遜)과 모호함[含糊]은 바로 불인(不仁), 불의(不義), 무례(無禮), 부지(不智)이니 애초에 사단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사단의 발함이라고 한 것은 측은이 반대로 폭려가 되고 수오가 받대로 우한이 되며 사양이 반대로 불손이 되고 시비가 반대로 모호함이 되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는 바로 이른바 '선은 본래 성이지만 악 역시 성이라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119)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주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대체로 학자들로 하여금 하루 사이에 생각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잘 살펴서 반드시 저 바르지 않은 것을 다스려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사단(四端)은 리(理)의 발함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의 발함이다." 물었다. "보건대 이를테면 기쁨․성냄․사랑함․미워함․바람[喜怒愛惡欲] 같은 것은 도리어 인의에 가까운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참으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20판, 〈보광록(輔廣錄)〉】이미 칠정은 기의 발함이라 하고서 다시 칠정을 인의(仁義)로 여긴다면, 칠정 또한 리의 발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칠정을 리의 발함이라고도 해도 된다면 사단을 일러 기의 발함이라고 하는 것도 의당 가능합니다. 대체로 이는 사단이 선(善)만 있는 쪽이기 때문에 리의 발함에 소속시키고 칠정은 선악(善惡)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기의 발함에 소속시킨 데 불과하지, 사단과 칠정이 리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하는 것이 각자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의 이동(異同)이 비롯되어 나온 곳인데, 모르겠습니다만 정밀하고 자상하신 퇴계(退溪 이황)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두 선생이 이 단락에 대해 일찍이 어떻게 보셨습니까?"자로(子路)는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고, 관중(管仲)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120)" 【권55의 9판, 〈여도록(呂燾錄)〉】공자(孔子)가 이미 자로의 재주가 천승(千乘)의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릴 수 있다고 칭찬하였고121) 자로도 일찍이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大國)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직접 말하였습니다.122) 3년만 다스려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관중이 40년이나 되는 오랫동안 제나라를 도왔던 것처럼 했다면 그 공렬(功烈)이 어찌 관중의 아래였겠습니까? 이 뜻은 김인산(金仁山 김이상(金履祥))이 이미 말하고 우리 선생님이 일찍이 주자가 양씨(楊氏)의 설123)을《맹자집주(孟子集註)》에 기록한 것을 놓고 타당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자어록》을 살펴보건대, 《맹자집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자가 직접 말씀한 것도 이러하니, 양씨의 설이 바로 주자의 말입니다. 더욱 감히 단정지어 말하지 못할 점이 있을 듯합니다."'원칙을 고집하면서 권도가 없는[執中無權]'124) 권(權)은 비교적 가벼운 것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 구원해 주는[嫂溺援之以手]'125) 권은 비교적 중한 것이니 권에도 깊고 얕은 차이가 있다."【권56의 8판, 〈심한록(沈僩錄)〉】일에는 본래 대소(大小)가 있지만 똑같이 권도(權道)를 행하여 중(中)을 얻으니 중이라는 것은 리(理)가 딱 맞는 곳입니다. 큰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고 작은 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는데 딱 맞는 곳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일의 대소를 가지고 권의 경중(輕重)을 나누어서는 안 될 듯한데 주자의 설이 이러하니 의심스럽습니다.물었다. "'동네 이웃에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126) 만약 동네 이웃의 싸움에 친척이나 형제가 그 가운데 있다면 어찌 똑같이 간주하여 말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셨다. "형제가 있다면 참으로 마땅히 말려야 하지만 일은 또한 반드시 대소(大小)를 헤아려야 한다. 만약 단지 작은 일로 치고박는 싸움이면 말리더라도 무방하지만 만약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또한 단지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을 따름이다." 【권57의 17판, 〈심한록(沈僩錄)〉】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 중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맹자(孟子)가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라고 했으니 형제가 어찌 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만, 어찌하여 이런 문답(問答)을 하게 된 것입니까? 게다가 형제가 바야흐로 전쟁과 재난에 빠져있는데 내가 도리어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의리를 크게 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곳들은 아마도 기록을 잘못한 듯합니다.물었다. "요순(堯舜)의 왕위 선양(禪讓)은 비록 성대한 덕이지만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50의 8판, 〈무명록(無名錄)〉】하늘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낳아서 진실로 백성의 임금과 스승을 삼고자 합니다. 고금(古今)에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현자(賢者)에게 전하지 않고 자식에게 전한 것은 하늘의 뜻을 체행(體行)하는 방도가 아닙니다. 요순이 왕위를 선양한 것은 참으로 공공(公共)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하늘이 현자에게 주게 하면 현자에게 주고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준다.[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127)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득이해서'라고 한 것은 그 의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도 주자가 옳게 여겼으니 의심스럽습니다."개와 소 및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은 일찍이 같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오로지 사람만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단지 치우친 한 쪽만을 얻었을 뿐이다. 이제 개와 소에서 仁義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하여도 이른바 '성즉리'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친 한쪽만을 얻었음을 볼 수 있다. 고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것을 성이라고 하였을 뿐 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반면 맹자는 '리로써 사람과 생물의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권59의 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사람이 만물과 다른 까닭은 사람은 정기(正氣)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출 수 있다. 사물의 경우는 기가 혼탁하면 리 또한 혼탁해진다."【앞과 같은 판, 〈여도록(呂燾錄)〉】"사물도 이 성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기의 품수가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이 성도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3판, 〈황의강록(黃義剛錄)〉】'타고난 것을 성이라 한다'는 장은 호론(湖論)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 나온 곳입니다. 《주자어류》의 제반 내용은 그 설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이것으로써 '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삼았습니다. 고자는 사람과 생물의 태어남은 대체로 같다고 생각하여 '성이 동일하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기를 성으로 인식한 것으로, 도를 크게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분별하여 "이른바 성이라고 하는 것은 지각운동하는 기가 아니고, 인의예지의 리입니다. 지각운동의 기는 사람과 생물이 비록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의예지의 리를 어찌 사물이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사람과 생물이 지각운동은 비록 동일하게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바르고(正) 통하며(通) 치우치고(偏) 막힘(塞)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정히 동일한 흰색일지라도 깃털과 눈의 흰색은 경중(輕重)이 이미 차이가 나고, 눈과 옥의 흰색은 허실(虛實)이 또한 다른 것과 같습니다. 치우치고 막혔기 때문에 사물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고, 바르게 통하기 때문에 사람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할 수 있으니, 온전함과 온전하지 않음의 사이에 성이 같지 않음이 판가름 납니다. 사람과 생물은 태어난 이후 기질의 발용처에서 말한 다름이지 사람과 생물이 태어나면서 본성을 품수 받을 때에 이미 다름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고자가 단지 기의 발용이 서로 같지 않음을 보고서 사람과 생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을 하였다면, 맹자는 이것에 대하여 반드시 '성이 같다'는 주장으로써 변론할 것입니다. (맹자는) "기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고, 리에 비록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리의 지선(至善)함은 기에 의하여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본성은 사람과 생물의 한 근원이니 처음부터 기 때문에 다름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섭하손록(葉賀孫錄)〉의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침을 얻었다"는 것과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사물은 이 성(性)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다만 품수 받은 것이 치우쳤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설들은 다만 《맹자집주》의 '인의예지의 본성을 받음이 어찌 동물이 얻어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한 구절을 정론으로 삼고서 융통성 있게 이해한다면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문사(文辭)만을 근거로 삼아 사물은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품수 받은 것도 치우쳤다고 생각한다면, 《맹자집주》에서는 마땅히 "어찌 동물이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해야지, "어찌 동물이 얻어서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은 기의 치우침을 얻었기 때문에 이 성을 발현함에 있어서도 치우침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가 치우쳐 발한 것을 근거로 억지로 이름을 지어서 "사물은 리의 치우침과 성의 치우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율옹(이이)이 말한 "기가 치우치면 리 또한 치우치지만, 치우친 것은 리가 아니고 기이다"라는 이 한마디는 이미 팔자타개(八字打開)한 것입니다. 호론가(湖論家)가 비록 이것을 인용하여 성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게다가 이른바 개와 소에서 인의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고, 기가 혼탁하기 때문에 리 또한 혼탁하다는 것, 이 성은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는 등의 말은 분명 기품의 용처에서 말한 것입니까? 《맹자》의 본문과 《주자어류》의 여러 문단의 뜻을 이렇게 보아도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도록(呂燾錄)〉 중에 사람이 사물과 다른 것은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구(具) 자를 어찌 전(全) 자로 쓰지 않았습니까? 이점은 오히려 의심이 갑니다.○ 개와 소 및 사람의 성은 이미 기(氣)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주자대전》 및 《주자어류》11판의 〈주모록(周謨錄)〉에서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질지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편전지성(偏全之性)과 불성지성(不性之性)이 이것이다. 편전지성은 선(善) 한 쪽을 주로 하여 말한 것이고, 불성지성은 선악(善惡)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기질지성은 아마도 단지 편전지성으로 볼 수는 있어도 불성지성으로 보아서는 안 될 듯하다.○ 이 성의 차이에 대해 맹자는 단지 개와 소 및 사람 세 가지를 들었을 뿐이고 주자는 다시 단지 사람과 생물이라는 두 층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루어 확장하면 사람과 사람, 생물과 생물에 대해 사람마다 생물마다 개체마다 층층마다 모두 똑같이 보아야 한다.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는가?"심(心)과 성(性)은 단지 한가지일 뿐이고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으니 이른바 지(知)는 곧 심이다."128) 물었다. "지(知)는 심의 신명(神明)이니 사단(四端) 중의 이른바 지(智)와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이 지(知) 자가 뜻이 더 크다.[知字義又大] 그러나 공자(孔子)는 인(仁)과 지(智)를 많이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원(元)이 곧 인(仁)이고 정(貞)이 곧 지(智)이다. 사단(四端)에서 인(仁)과 지(智)가 가장 큰데[仁智最大] 정(貞)이 없으면 원(元)은 일어날 곳이 없으니 지(智)가 없으면 어떻게 인(仁)이 될 수 있겠는가? 《주역》에서 '처음과 끝을 크게 밝힌다[大明終始]'129)라고 했는데,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다. 지(智)가 크게 되는 까닭은 지(知)가 있기 때문이다.[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권60의 2판, 〈보광록(輔廣錄)〉】이 단락의 위아래 문장에서 '지(知)' 자와 '대(大)' 자의 차이에 대해 우리 선생님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삼가 제가 생각해 보니, 위의 네 '지(知)' 자는 심(心)의 지각(知覺)의 지(知)이니 기(氣)에 속합니다. 아래의 '유지(有知)'의 지(知)는 성(性)의 분별하는 지(知)이니 리에 속합니다. '지(知) 자가 뜻이 크다[知字義大]'의 대(大)는 뭇 이치를 묘하게 운용하여 만물을 주재하기[妙衆理應萬事] 때문이니 분별하는 지(知)가 단지 성(性)의 일단(一端)이 되는 데 그치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최대(最大)'와 '위대(爲大)'의 두 대(大) 자는 그것이 형(亨)과 리(利)보다 큼을 말합니다. 선생님의 견해에 어긋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다는 말은 아마도 마음을 다해서 힘써 행한다는 것으로, 뒤의 〈섭하손록(葉賀孫錄)〉 이하 여러 기록의 뜻과 같은 듯하다. 그러나 만약 단지 진심(盡心)과 지성(知性) 한 단락만 있을 뿐이라면 의당 이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래 문장에 이미 다시 존심(存心)과 양성(養性) 한 단락이 있으니 지(知) 하나 행(行) 하나를 주재하는 바는 자유자재하다. 이것이 《주자어류》의 '마음을 다하여 힘써 행한다'는 설이 끝내 《맹자집주》에서 버려지게 된 까닭이다.물었다. "'명(命) 아닌 것이 없다[莫非命也]'130)는 이 한 구는 기품(氣稟)의 명(命)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니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謂性]'의 명(命)과 같습니까?" 말씀하셨다. "맹자의 뜻으로는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으니 이 구는 단지 '사람과 생물이 살아감에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하늘이 명한 것임을 말했을 뿐이다."【7판, 〈심한록(沈僩錄)〉】성(性)과 화복(禍福)은 모두 명이니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性)이 사람마다 똑같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리(理)인데 리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화복(禍福)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기수(氣數)인데 기는 만 가지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길흉화복의 명에 대해 (맹자가)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아래 12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는 "의(義)가 아닌 일로 죽은 것은 본래 스스로 취한 것이니 이 또한 미리 정해진 것으로, 대체로 품수한 악기(惡氣)가 이를 초래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기품을 말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이 의당 정론(定論)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기화(氣化)에 연유하여 도(道)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氣化有道之名]'131) 이를테면 하늘의 도, 땅의 도, 사람의 도, 부자지간의 도, 군신간의 도, 성을 따름을 이르는 도[率性之謂道]' 같은 것이 이것이다."【10판, 〈임기손록(林夔孫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고 하였는데 성(性)은 단지 리(理)일 뿐으로, 성을 따라야만 이 도를 볼 수 있으니 이는 사물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군신과 부자의 도 같은 경우는 군신과 부자가 있어야만 이 도리를 볼 수 있다."【앞과 같은 판, 〈반식록(潘植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는 말이 이 한 구와 관계된다."【앞과 같은 판, 〈임사록(林賜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천도(天道)의 유행(流行)을 말하는 듯합니다. 바로 《주역》에서 이른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한다'132)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를 잇는 선[繼善]'의 일을 말하고 '도를 이루는 성[成性]'의 일은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도를 이루는 성조차 언급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말하면 혹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심(心)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全體)이고, 성(性)은 천리의 전체이다."【12판, 〈진순록(陳淳錄)〉】삼가 제가 생각하기에, 성은 천리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이고 심은 일신(一身)을 주재하면서 천리를 갖추고 있는 전체라고 하면 더욱 온당하고 주밀할 듯한데 어떠하십니까?"하늘의 측면에서 말하면 모두 바른 명[皆是正命]이다."【앞과 같은 판, 〈임각록(林恪錄)〉】아래 문장의 '하늘에 있는 명이 도리어 저절로 어긋남이 있다' 및 하판(下板)의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하늘이 스스로 그 바른 명[正命]을 잃었다'는 말에 근거하면, '모두 바른 명이다[皆是正命]'라는 주장은 아마도 정설(定說)이 되지 못할 듯합니다."'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133)에서 '성(性)' 자는 기품(氣稟)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권61의 4판, 〈동백우록(童伯羽錄)〉】"이 '성(性)' 자는 물욕(物欲)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5판, 〈여도록(呂燾錄)〉】이 '성(性)' 자는 바로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을 주가 되는 것이니 마땅히 "바로 기욕(氣欲)을 가리켜서 말하였다."라고 해야 하는데 반드시 아래에 '겸(兼)' 자를 쓴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대체로 이 성이 비록 기욕(氣欲)이 주가 될지라도 이미 성이라고 했다면 성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그것이 리(理)가 되기 때문이므로 자연의 리가 이와 같이 기에 붙은 것을 가리켜 그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그 기욕(氣欲)의 활동을 가리켜 '겸한다'고 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리(理)가 성(性)이 되는 명칭은 바꿀 수 없음을 가리킨 것이니 바로 이를테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비록 도의(道義)가 주가 되지만 기(氣)라는 명목은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주가 되는 도의를 취하여 명명하지 않고 반드시 짝하고 있는 기를 가리켜서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논어집주》의 "여기에서 말한 성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134)라고 한 것도 이 예와 같은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십니까?"'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에서 이 '명(命)' 자는 도리어 리(理)와 기(氣)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6판, 〈동수록(董銖錄)〉】빈천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기수(氣數)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이고 부귀한 사람도 제한이 있는 것은 의리(義理)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입니다. 이 '명(命)' 자를 리(理)와 기(氣)를 합한 것으로 보는 것은 완비(完備)된 주장입니다. 앞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리의 측면에서 말하고 뒤의 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리를 가리켜 말한 것은 아마도 모두 미비함이 있는 듯합니다."'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操則存舍則亡]'135)라고 하는데 마음이 어찌 보존과 잃음이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경계짓는 구별이다. 인심은 이 몸에 지각(知覺)이 있고 기욕(嗜慾)이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른바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한다[我欲仁]'136),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른다[從心所欲]'137),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은) 성의 욕구[性之欲也]'138)라는 말 같은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한결같이 그 아들을 모질게 대하면 자식도 반드시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게 되니 이것이 인심이 위태로운 까닭이다."【권62의 9~10판, 〈여대아록(余大雅錄)〉】천하에는 인심(人心)이 없는 상지(上知)가 없고 또 그 마음을 잃어버린 성인(聖人)도 없으니 잡고 놓으며 보존하고 잃는다[操舍存亡]는 말로 인심과 도심을 말한 것은 분명히 아직 확정하지 않은 설입니다.○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명(性命)에 근원하는 것이니 원래 인심이 아니거니와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것 또한 어찌 인심의 위태로움에 그치겠는가? 아마도 모두 잘못된 기록인 듯하다."지(知)․인(仁)․용(勇)처럼139) 허다한 학문하는 도리(道理)이다."【11판, 〈심한록(沈僩錄)〉】여기서 도리(道理)는 아마도 방법이라는 뜻으로, '대학지도(大學之道)'의 '도(道)' 자와 같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 자와 같지 않을 듯합니다."소의 성질은 순하고 말의 성질은 굳세니 바로 굳세고 순한[健順]의 성(性)이고, 범과 이리의 인(仁)과 개미의 의(義)는 바로 오상(五常)의 성이다. 하지만 단지 품수한 것이 적어서 사람이 온전하게 품수한 것과 같지 않을 뿐이다."【12판, 〈증조도록(曾祖道錄)〉】이 단락은 생물이 온전하게 오상(五常)을 품수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주자(朱子)가 평소 말한 사람과 생물의 성(性)이 같다는 주장과 같지 않은 듯한데 어째서입니까?물었다. "목(木)의 신(神)은 인(仁)이 되고 화(火)의 신은 예(禮)가 됩니다." 말씀하셨다. "'신(神)' 자는 '의사(意思)'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과 같은 판, 〈심한록(沈僩錄)〉】인의예지(仁義禮智)는 리(理)이니 목(木)의 리는 인(仁)이고, 화(火)의 리는 예(禮)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신(神)을 인(仁)과 예(禮)로 여긴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의사(意思)'라고 말한 것도 정의(情意)가 없는 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뜻에 근거하면, 사람과 생물의 본성(本性)은 같지만 (성을) 품부함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대체로 본성은 리(理)이지만 본래 품부받은 성(性)은 기(氣)이다. 성(性)은 본래 자연한 것인데 태어날 때 품부받음에 이르러 기가 없으면 타고 갈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 성을 기 위에 둔 뒤에 태어날 수 있다. 이미 태어남에 이르러서는 생물은 저대로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저대로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14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이 단락에서 논한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하지만 이천은 이미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가지고 사람과 생물을 통괄하여 말했으니 어찌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따를 만한 것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본다면 '사람과 생물의 성은 같지만 (성을) 품수함이 다르다'와 '생물은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는 등의 설이 또 통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은 사람이 온전하게 받고 생물이 치우치게 받는다."【15판, 〈양지록(楊至錄)〉】이것은 또한 아마도 앞의 12판 〈여도록(呂燾錄)〉의 뜻과 같은 듯합니다."보지 않고 듣지 않는[不睹不聞]140) 때에는 본래 마음을 잡아 지켜야[持守] 하지만 살피지 않아서도 안 되고,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할[謹獨]141) 때에는 본래 잘 살펴야[致察] 하지만 마음을 잡아 지키지 않아서도 안 된다."【23판, 〈보광록(輔廣錄)〉】보지 않고 듣지 않는 때에는 형체도 조짐도 없으니 무슨 일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기록이 아니라면 이는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입니다."이천(伊川)이 '(미발(未發)의) 중(中)일 때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눈으로 보는 것이 없지만 듣고 보는 리(理)가 있어야 비로소 된다.'142)라고 하셨다."【32판, 〈진순록(陳淳錄)〉】여기서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둔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앞 29판의 〈진순록(陳淳錄)〉143)에서 주자(朱子)가 본래 "고요할 때 귀와 눈도 반드시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있다."라고 하셨고 《중용혹문(中庸或問)》에서도 "미발(未發)의 때 귀와 눈은 의당 또한 정명(精明)하여 어지럽힐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이발(已發)과 미발(未發)은 굳이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미 함양(涵養)하고 또 성찰(省察)하여 언제나 함양하고 성찰할 뿐이다."【34판 〈황순록(黃㽦錄)〉. 뒤에 같은 제자의 기록에도 이 설이 있다.】"미발 때에는 본래 존양(存養)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존양해야 한다. 미발 때에는 본래 성찰(省察)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성찰해야 한다."【35판, 〈오필대록(吳必大錄)〉】함양과 존양은 본래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할 수 있지만 성찰은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아마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의론인 듯합니다."존양(存養)은 고요할 때의 공부이다. 고요할 때는 중(中)이니 지나침이나 모자람[過不及]이 없고,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것도 없어서이다."【38판, 〈증조도록(曾祖道錄)〉】지나침이나 모자람은 움직일 때[動時]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요할 때[靜時]도 말해야 하니 주자가 이 단락에서 이미 분명하게 게시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중용기의(中庸記疑)〉144)에서 이른바 "보통 사람의 고요함은 모자람[不及]이고 선사(禪師) 허발(許渤)의 고요함은 지나침[過]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실제의 명확한 의론인데 만약 이 단락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는다면 더욱 완비될 것입니다.물었다. "귀신(鬼神)의 덕(德)145)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理)를 말한 것이다."【권63의 22판, 〈왕역행록(王力行錄)〉】삼가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곧바로 리(理)를 가지고 덕(德)을 풀이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말하여 귀신의 덕을 논한 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떻겠습니까?"'체물(體物)'은 물(物)로 체(體)를 삼음을 말한다. 이 물이 있으면, 이 성(誠)이 있다."【앞과 같은 판, 〈정단몽록(程端蒙錄)〉】'물(物)로 체(體)를 삼는다'는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의 '물의 체가 된다'는 말과 어세(語勢)가 주객(主客)이 딱 상반됩니다. 《중용장구》에서 말한 '물의 체가 된다'는 것은 음양(陰陽)의 두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지 실리(實理)를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천하의 대본(大本)을 세운다'는 것은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中道)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화육(化育)을 안다면 천리(天理)의 유행을 안다."【권64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중용장구》 32장의 대본(大本)은 성(性)의 전체(全體)를 말한 것이니 1장의 고요함의 측면에서만 말한 대본(大本)과 같지 않기에 여기에서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합니다.곡(曲)은 기품(氣稟)의 치우침[偏]이다.【앞과 같은 판, 〈황승경록(黃升卿錄)〉】《중용장구》에서는 곡(曲)을 선(善)한 단서의 발현의 치우침[偏]이라고 풀이하였으니 발현의 치우침은 발현의 한 단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병폐를 띠고 있다는 뜻이 아니니 곡(曲)을 기품(氣稟)으로 여긴 것은 논의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대체로 치우침[偏]이라는 것은 온전함[全]의 반대이니 체(體)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성(至誠)이고 그 다음은 치우친 것을 지극히 하여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뒤의 13판 〈요겸록(廖謙錄)〉에서 '곡(曲)은 일을 따라 힘을 쓰는 것으로 일마다 그 극치까지 미루어 다한다[曲是逐事上著力 事事上推致其極]'고 한 풀이가 이미 매우 명백합니다. 그리고 14판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주자가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품수한 후박(厚薄)으로 곡(曲)을 풀이했던 것을 놓고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말했던가'라고 하셨고 15판 〈정가학록(鄭可學錄)〉에서는 정자(程子)의 '치우침이 넘치는 곳에서 발현한다[偏勝處發]'는 설을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으니, 여기에서 더욱 알 수 있습니다.'명(明)과 동(動)'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한갓 밝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밝음이 쓸 데가 없고 한갓 행하기만 하고 밝지 않다면 행함이 지향하는 바가 없게 된다."【16판, 〈동백우록(童伯羽錄)〉】동(動)을 행(行)으로 보는 것 또한 《중용장구》의 본뜻이 아닙니다."성(誠)은 자연스럽게 이루는 도리이다." 또 말씀하셨다.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것은 이를테면 저 초목(草木)이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는 까닭은 곧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당신에게 본래부터 실제로 있는 것이다."【16판, 〈심한록(沈僩錄)〉】"대체로 이 실리(實理)가 있으니 이 하늘이 있고 이 실리가 있으니 이 땅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실리가 없다면 곧 이 하늘이 없고 이 땅도 없다. 만물이 모두 이와 같으므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고 하였으니 이는 본래 스스로 이 사물을 이룬다는 것이다."【17판, 〈섭하손록(葉賀孫錄)〉】"'성(誠)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다[誠者物之終始]'라는 말은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한 구를 해석한 것이다."【앞과 같음】《주자어류》의 여러 기록에는 모두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말을 리(理)를 주로 한 말로 여겼으니, 심(心)으로 말한 《중용장구》와는 같지 않다."내가 예전에 성(誠)을 말한 것은 병폐가 있다. 대체로 성(誠)과 도(道)는 모두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문다.146) 만약 구설(舊說)대로라면 성과 도는 두 물(物)이 된다."【1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성(誠)과 도(道)가 두 물(物)이라는 구설(舊說)은 심(心)으로 성(誠)을 말하고 리(理)로 도(道)를 말한 《중용장구》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대개 성과 도가 비록 심과 리의 구분이 있지만 실심(實心)은 도를 행하는 근본이 되고, 도리는 반드시 실심을 기다린 뒤에 행해집니다. 그래서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과 도가 어찌 일찍이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물지 않은 적이 있어 기어코 병폐로 보고자 하겠습니까?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는 매양 이 문단에 근거하여 정론(定論)을 삼고서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주자가 구설에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지만 끝까지 《중용장구》를 고치지 않으셨으니 주자가 도로 구설을 주장했음을 또한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뜻은 우리 선생님의 〈중용기의(中庸記疑)〉에서 이미 자세히 변론하였는데, 아마도 정확한 의론인 듯합니다."'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也]' 뒷문장에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는 이 두 구는 앞의 한 구를 풀이하였다. 실제로 이 리(理)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있고 실제로 이 리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다."【앞과 같은 판, 〈임기손록(林夔孫錄)〉】이 역시 리(理)를 주로 하여 말하였으니 앞의 〈심한록(沈僩錄)〉, 〈섭하손록(葉賀孫錄)〉과 같습니다.물었다.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不誠無物]'는 것은 아마도 인심(人心)이 이 리(理)를 실(實)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말한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아니다. 뒷문장에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君子誠之爲貴]'고 말한 것은 사람이 마땅히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함을 바야흐로 말한 것이다. 만약 '실리(實理)가 사물의 끝과 시작이 된다고 한다면, 이 리가 없으면 이 사물도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한다."【20판, 〈동수록(董銖錄)〉】'성하지 않음[不誠]'을 이 리(理)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중용장구》와 다릅니다. 대개 '무(無)' 자와 '불(不)' 자는 자연스러움과 작위(作爲)의 구분이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앞 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 "'불(不)' 자는 누가 그것을 못한다는 말인가? 반드시 어떤 사람이 있어 그것을 못해야 비로소 된다."147)라고 하신 데에 이미 매우 분명합니다."근본은 예의(禮儀) 삼백(三百)이고, 말단은 위의(威儀) 삼천(三千)이니, 삼백은 대덕돈화(大德敦化)이고 삼천은 즉 소덕천류(小德川流)이다."148)【28판, 〈오수창록(吳壽昌錄)〉】《주자어류》 앞뒤의 여러 기록 및 《중용장구》에 근거하면 삼백(三百)과 삼천(三千)은 마땅히 말단이 되고 소덕이 되어야 하니 이는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물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지(智)와 총명예지(聰明睿知)는 두 종류라고 생각됩니다. 예지(禮智)는 자연스러운 성으로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고 예지(叡智)는 성인의 총명한 덕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말씀하셨다. "단지 이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34판, 〈황의강록(黃義剛錄)〉】예지(禮智)의 지(智)는 사람마다 똑같이 품수한 것이고 예지(睿知)의 지(知)는 성인이 홀로 타고난 것이니 어찌 하나의 사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였으므로 그 심(心)과 리(理)가 혼연히 일치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의 사물이라고 말한 것일 뿐인 듯합니다. 近日閒中, 專看《語類》一部, 非惟格論至訓, 警人心目, 幷與當日先生之精神風彩而呈露, 宛若親承謦欬於紫陽․雲谷之閒, 而不知千載之爲遠, 其感發易入, 殆不遜《全書》之出於手筆者也. 顧其出於當時之方言者, 詰屈䵝澀, 有難曉通. 然此則容有非精義攸繫, 庶可默會大意, 至若肯綮之不容不講, 而未逹於窽啓者, 安敢蓄疑不問, 抱終身之氷炭哉? 茲欲隨疑隨錄, 連續求批, 固知耄年酬答, 極涉難安. 但先生之於《語類》, 世所稱如誦己言者, 就中若難若易, 必有所宿究, 而不至大家費神者. 故敢率爾冒進, 至於批送之早晚, 非所拘也.徐子融問: "附子熱, 大黃寒, 是氣質之性." 陳才卿謂 : "本然之性." 先生曰: "子融認知覺爲性故, 以此, 爲氣質之性.【唐本 四之五板. 廣錄】二物寒熱之性, 是元氣初來地底, 不是區分美惡偏全, 則烏可貶作氣質不性之性? 故朱子, 於此不以爲氣質性, 而做本然性. 然若直以爲通天下一性之性, 則又安得有寒熱之相殊也? 願賜明剖○ 先生答書曰: "附子熱, 大黃寒, 是天地本然之理, 非可以弗性而反之者也. 二物用以療疾, 而利人, 利人仁也, 療疾義也, 仁義豈非通天下一性之性乎? 其寒熱之相殊, 以陽健陰順例之, 無可疑矣."他元不曾稟得此道理, 惟人則得其全 上同此段似爲湖邊人物性偏全之證. 然以下文引呂氏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之語觀之, 不曾禀得此道理, 蓋謂物未禀能全五常之理, 惟人得其全, 蓋謂人獨得能全五常之理也. 此若謂人物本然性禀賦偏全之異, 則偏者元自是偏, 全者元自是全, 何得有近人近物之駁雜哉?○ 先生答書曰: "元不曾禀得此道理, 此以下文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觀之, 分明是就發用處, 指其不能全者言.《通書解》言性焉者聖人獨得於天, 則衆人不曾稟得此性焉之道理, 可推而知也. 來示槩得之."問: "人有常言, 某人性如何, 某物性如何, 某物性熱, 某物性冷,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否?" 曰: "然."【四之二十板僩錄】附子熟, 大黃寒, 卽五板廣錄, 所謂本然性者, 而今謂物性熱冷, 兼氣質與所禀之理而言, 則又似看做氣質性, 而其云所禀之理者, 又若本性之謂. 然至於某人性如何, 明是氣質性, 而幷擧對言, 則其看做氣質性, 而不做本然性也, 明矣. 然則所禀之理, 果何所指也? 廣僩二錄, 果何所適從? 且疑人性如何, 是緩急剛柔美惡萬般者也, 物性熱冷, 是元來如此, 不及區分美惡者也, 一例比同, 或非其類.○ 先生答書曰: "先生嘗云'天地健順, 如人氣質【帶著性字看】', 此條之言某人性如何者, 以某人性孝, 某人性忠厚,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 如此看, 則似可通, 未知如何."理在心中, 心包蓄不住, 隨事而發. 恰似那藏相似, 除了經函, 裹靣點燈, 四方八面皆如此光明燦爛.【五之四板廣錄】凡朱子說中, 言光明於理處, 他皆有可說者, 此段則以經函喩心, 點燈喩理, 似直以光明言理者. 然不審如何看, 可以活絡無礙耶?○ 先生答書曰: "先生嘗論明德云 '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此止】.' 道理是沖漠無眹底, 如何有光明? 但就心上指點, 故亦可爲此說. 今此段首言心與理一, 繼而又言理在心中, 終之以光明燦爛, 恐無礙, 如何?"許多道理, 昭昭然者屬性【五之十三板】言昭昭於性分, 可疑. 然若以萬理燦然備具之意看, 則無害否?○ 先生答書曰: "此等若不活化看, 恐易流於異學之認昭昭靈底, 以爲性與太極矣. 此段文意義未瑩."問: "明德便是仁義禮智之性否?" 曰: "便是"【十四之十二板敬仲錄】性若果是明德之全體本色, 則不但曰便是, 而必當曰卽是. 蓋以性只是明德中所具者, 而非全體本色, 故不直曰卽是, 而但曰便是. 下十六之一板㽦錄便是天之所命謂性者, 及四板道夫錄性便是明德, 似當同此例看.○ 先生答書曰: "恐當如來示."這个道理, 在心裏光明照徹【同上】以其道理之在心裏也, 故和心而曰光明照徹, 恐非單言光照於道理也.○ 先生答書曰: "已見上. 昔年約齊有詩云'心光明處理光明', 說如是則善矣."光明之性 依舊自在【十五之二十五板大雅錄】詳此段問答, 以此心之體不可不明說下來, 更無明德是性之語, 此心之體, 卽明德也. 然則光明之性性字, 不作性理之性, 而只作體字義看, 如何?○ 先生答書曰: "似然, 而不能質言."這道理光明不昧, 此理湛然淸明【十六之二板僩錄】光明湛然, 心上著題語, 今以之語理, 誠若可疑. 然此兩句上文, 旣有長存此心一句, 則此理乃具於心之理也, 故可以言光明湛然. 若單言理, 則應不下此等字矣. 未知如何.○ 先生答書曰: "同上."這箇物事, 卽是氣【十六之十三板夔孫錄】先生曾有設問這个物事, 或云天命之性, 或云二五之氣, 或云虛靈之心, 宜子細究核. 竊詳此段語脈, 這个物事, 正指明命也, 天之明命, 卽人之明德也, 天之所命, 人之所得者, 乃虛靈神明之心也. 故曰'這个物事卽是氣.' 如此看, 則全段語脈, 節節皆通. 如作天命之性, 則性卽理也, 安容復有許多道理, 藏在這裏? 如作二五之氣, 則佛氏之所理會, 老子之所把住, 果皆不就自身上討得 而遠求諸天地之陰陽五行耶? 如此看, 則節節見礙, 恐終不通. 但各正性命以下, 有難渙釋者, 豈以性命心之所具者故混淪說去, 不相礙乎? 抑又曰以下立言地頭, 稍與上段異否?○ 先生答書曰: "這箇物事, 直認做性, 則佛老何曾見得到此? 昔年嶺南柳遠重ㆍ宋鎬坤ㆍ宋鎬完ㆍ宋在洛諸人, 自錯看了此句, 便爭相詬, 余爲明氣之學, 言論氣象, 絶不類書生, 甚可怕也. 今來示似得之, 但恐撞著此輩人, 喫得一場怪擧也. 又曰以下, 愚亦未瑩. 但以下段觀之, 會說話行動人心道心皆是天之明命, 則先生之意, 決非如柳宋諸人之見也."知之有未盡, 必至於自欺.【十六之十二板賀孫錄】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上同道夫錄】所以不自欺, 須是見得分曉.【上同祖道錄】自欺, 據《大學章句》, 是旣知之後, 不實用其力者. 所謂欺者, 不實之意, 欺已明之知也. 故妄竊以爲自欺者非知之過, 乃意之罪, 非無心之失, 乃有心之私矣. 今觀《語類》諸段, 終是重知一邊, 如此, 則自欺云者, 乃格致未精, 非用力不實也. 不勝區區之疑, 非惟此也. 考之或問, 亦然. 然若以章句知爲善而去惡, 而心之所發有未實, 爲定論, 則《語類》ㆍ《或問》, 不相强合也. 至於章下註心體之明, 有所未盡云云, 正以誠意之別立單傳, 而不連致知. 恐人不承上章而通考之. 故推原說, 知有未盡, 則意不可得以誠而自欺, 乃不誠之大關. 故自然連帶說去, 恐非以知未盡說自欺之實病也. 若其實病, 則下文已明. 而不謹乎此一句, 可以當之矣, 如此看如何?○ 先生答書曰: "極是極是.《語類》《或問》別作一義看如何? 此段下文有義, 亦略有作爲語, 此句當如何看? 與《論語註》'道體無爲'之云, 似相礙.問: "健順在四端何屬,"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十七之五板胡泳錄】天之陰陽五行, 人之健順五常, 其理一也. 在天之五行, 木火屬陽, 金水屬陰, 五行一陰陽也. 以此例之, 在人之五常, 仁禮當屬健, 義智當屬順, 而五常一健順也. 今於健順四性分屬之問, 只以四性陰陽之分屬答之, 而遺却健順二字何義?○ 先生答書曰: "說陰陽, 則健順在其中. 故不復細論歟."人物皆禀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禀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禀得那順底性. 又如草木直底硬底是禀得剛底, 軟底弱底是禀得那順底.【上同僩錄】健順五常定是本然, 今此狗子草木1)二欵云云, 却似說氣質性. 如以人字換却狗子草木字, 而曰人之剛悍會害人底是禀得那健底性, 慈善不會害人底是禀得那順底性, 又曰人之直硬底是禀得那健底, 軟弱底是禀得那順底, 果可以本然性看否?○ 先生答書曰: "此段恐記錄失眞. 又上文陽之氣陰之氣二氣字, 以下句五行之理推之, 無乃當作理歟."天地之中是未發之中, 天然自有之中是時中.【十八之二十二板祖道錄】上段僩錄言"天地之中, 只可以天所降言, 不可以人所受言." 此段却言"天地之中是未發之中." 未發之中, 豈非在人之大本乎? 然上段以天人之所降所受對擧而分言, 此段以未發之時中對擧而分言, 立言地頭旣異, 故所指亦差殊. 如此看, 可乎?○ 先生答書曰: "所論是."《中庸》專言智.【十九之一板泳錄】知仁勇,《中庸》之大旨而其曰專言智者, 何也? 以明道之書故, 以智言歟?問: "三仕三已不爲仁, 管仲又却稱仁是如何," 曰: "三仕三已是獨自底, 管仲出來, 畢竟是做得仁之功."【二十之二十二板南升錄】據孔子本意․朱子《集註》, 子文之未仁, 以其不能當理無私也, 管仲之許仁, 以其能一匡天下也. 一許一否所指各異, 初非以獨自無爲貶子文, 出做有爲褒管仲也, 而《語類》之云如此, 後學若主此說, 則恐至於輕自修重事功之弊也.問: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 曰: "畢竟是曾學未學?" 曰: "先生所謂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曰: "看得是."【二十一之十八板南升錄】子夏之言, 不免有弊. 然今有這樣人, 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十九板夔孫錄】子夏本言, 却作不須學底意思, 吳才老謂其弊至於廢學.【同板榦錄】子夏此說話得矯枉過直.【同板賀孫錄】據不免有弊, 至於廢學, 矯枉過直等說, 其以吾必謂之學學字, 只作明倫看, 而斯人也, 果是未曾學問之人也. 但據必其務學之至, 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等說, 則又以此學字作學問看, 而斯人也, 已曾學問者也. 至於《論語集註》, 又直以必其務學之至之一句爲斷案, 則尤較然矣. 曾見炳菴主集註必其務學之至語, 作已曾學問人看, 而以子夏之言爲無弊, 至謂吳氏錯認子夏本意, 此說甚有理. 但如此, 則子夏之言太無骨子, 不足爲力於重本抑末之地. 是又如何?問: "思無邪, 伊川說作誠是否?" 曰: "誠是在思上發出, 詩人之思, 皆情性也. 情性本出於正, 豈有假僞得來底? 思便是情性, 無邪便是正. 以此觀之, 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二十三之十二板卓錄】《論語集註》《語類》諸段, 皆謂'思無邪'是使讀詩者得其情性之正. 惟此段, 獨以詩人之情不假僞者當之, 而謂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 如淫女蕩子之詩, 安得以其不假僞而直寫情, 謂之出於正耶? 且不問所發之正與不正, 但以其情不假僞, 謂之誠, 非伊川本意. 此段恐當爲未定論.思無邪, 不必說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大凡人皆當思無邪.【十三板傑錄】此段, 恐人以思無邪, 但作作詩讀詩者事, 而不作衆人所共由之事, 故言此以救其弊. 如曰思無邪是天下萬人所當做底事, 只要就自己情性上, 求得其正, 不必徒說是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以爭無益之辨也.問: "淸和任, 也只是器否?" 曰: "這是成就得偏, 却不是器."【二十四之十三板榦錄】旣曰偏而又云不是器者, 可疑. 然據上板明作錄下板一之錄, 則此段不是器云云 似非定論.問: "忠信爲周." 曰: "忠信爲周, 只縁《左傳》周爰咨詢, 指作忠信, 後人遂將來妄解, 最無道理."【二十四之十七板恪錄】問: "忠信2)爲周." 曰: "忠信所以周也. 若面前背後, 不誠實, 則不周矣."【同板一之錄】'周比', 只以公私二字, 兩下說破然後, 恰恰襯點, 移易不得. 忠信覺不合公字之義, 故恪錄云: "無道理." 然人不忠信, 則事皆無實, 雖欲公而爲周, 得乎? 故一之錄, 却云"不誠實則不周." 如此看, 則二錄可幷行而不相悖歟.問: "利仁固是審於旣發, 莫更著謹於未發否?" 曰: "若未發時自著不得工夫, 未發之時, 自堯舜至於塗人, 一也."【二十六之四板賀孫錄】堯舜之自然未發, 塗人之偶然未發, 固自著不得工夫, 自利仁以下之未發, 上之不及自然, 下之不可謂偶然. 必其靜時, 自有致中一段工夫, 然後有以體立而用行. 今槩曰未發時著不得工夫, 則大本無由得立, 而學問之道, 或幾乎偏而不全. 然朱先生之訓, 而豈有是耶? 後學妄疑則然爾.問: "以己推己之辨." 曰: "以己是自然流出. 推己便有折轉意, 如己欲立而立人, 己欲逹而逹人."【二十七之二十一板㝢錄】己立立人, 己逹逹人, 以《論語集註》及下淳義剛二錄觀之, 定是以己之事, 而此作推己事者, 恐當爲未定論.問: "雖全體未是仁, 苟於一事上, 能當理而無私心, 亦可謂一事之仁否?" 曰: "不然. 纔說箇仁字, 便以全體言. 若一事上能盡仁, 便是他全體是仁了. 若全體有虧, 這一事上, 必不能盡仁, 纔說箇仁字, 便包盡許多事, 無不當理無私了.【二十八之十板僩錄】旣以當理無私爲仁, 則全體之當理無私, 固是全體之仁, 一事之當理無私, 亦不害爲一事之仁, 先生之禁之, 何也? 必待全體而後, 得仁之名, 則顏子之三月不違仁, 亦不可謂三月之仁歟? 顏子固非全體無虧者, 謂之一事上, 必不能盡仁, 則恐不然, 未知若何? 至於卅三卷十九板可學錄, 則曰"一事純於仁, 可謂之仁. 殷有三仁, 亦未見其全體, 只是於去就之際, 純乎天理. 故夫子許之." 恐此當爲不易之論.胡文定春秋說云: "輒去而從父, 則衛之臣子輔輒以拒蒯聵.", 是錯了.【卅四之卄七板燾錄】《大全》〈答范伯崇書〉, 曰: "輒若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拒蒯聵而輔輒, 與此條不同. 蓋輒誠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立他公子, 而拒蒯聵, 乃所以遂輒順父之心, 處事之義, 固如是矣. 且雖欲輔輒而拒蒯聵, 輒豈肯安於輔己而拒父乎? 必將逃去而後已, 此又勢之所不行也. 然則恐當以《語類》此條爲定論.太王見商政日衰, 知其不久. 是以有剪商之意, 亦至公之心也.【卅五之三板壯祖錄】至如紂之虐民而有剪之之心, 則可謂至公. 太王旣不當紂之時, 則其謂至公者, 不無疑.'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便是未到不思而得處, '雖欲從之, 末由也已', 便是未到不勉而中處.【卅六之卄一板㽦錄】'如有所立卓爾', 是所見益親處, '雖欲從之末由也已', 是未逹一間處, 未能不思而得, 不勉而中, 恐當俱在未逹一間中.若子路ㆍ冉求ㆍ公西華之所爲, 曾點爲之有餘.【四十之四板賀孫錄】充曾點之所見, 三子且休說, 堯舜事業亦可爲之. 但以其平日簡迂之性, 放誕之行, 安能治千乘之賦, 足一邦國之民, 贊邦國大禮乎? 朱子固亦曰: "使曾點做三子事, 未必做得."克己復禮, 閒不容髪無私便是仁.【四十一之一板道夫錄】克己則禮自復, 非克己之外 別有夫禮.【同板賀孫錄】克去己私了, 致這裏恰好著精細底工夫. 故必又復禮方是仁. 聖人却不只說克己爲仁, 須說克己復禮爲仁.【三板去僞錄】克去己後必復於禮, 然後爲仁. 若克去己私, 便無一事, 則克之後須落空去了.【五板時擧錄】克己便是復禮, 不是克己了方待復禮, 不是做兩截工夫.【八板植錄】朱先生一人, 而二說之不同若是, 學者何所適從? 竊以爲人只有天理人欲兩途, 不是天理便是人欲, 無不屬天理, 又不屬人欲底時節. 固可曰'克去己私, 便是復禮.' 然此是大綱說也, 若細論之, 則人自有除私欲, 而不能當理底時節. 如明心靜坐, 而不能保守道體公心, 應事而或失其宜者是也. 況禮者, 天理之節文, 節文者, 無過不及, 而十分恰當者也. 惟其合於十分恰當也, 故可以當至難之仁名, 至於以一日之暫, 而得天下之大, 而歸仁焉. 豈容一克己而便自合十分恰當乎? 故《集註》曰: "勝私欲而復於禮," 觀於下一而字, 可以知用工於克復之閒矣.問: "'吾其爲東周乎!', 使聖人得行其志, 只是就齊魯東方做起否?" 曰: "也只得就這裏做." 又問: "其如周何?" 曰: "這般處難說, 只看挨到臨時事勢如何. 若使天命人心有箇響合處, 也自不由聖人了, 使周家修其禮物, 作賓于王家, 豈不賢於赧王之自獻其邑, 以滅亡乎?"【四十七之三板僩錄】'吾其爲東周', 恐但謂行文武周公之道於東魯. 初未有受命代周之意也.《集註》只言'興周道於東方', 意亦如此. 如此看而止, 則都無事矣.《語類》'其如周何'之問, '只看事勢'之答, 似皆不當豫言於聖人心事之外者, 未知朱子何故隨問隨答, 至於赧王滅亡云云乎? 竊不勝區區之疑.問: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所以然者, 是如何?" 曰: "若無誠意, 如何灑掃應對?"【四十九之十一板節錄】以誠意爲所以然, 如非記誤, 則是一時說.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 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五十三之九板淳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 當辭遜而不辭遜, 是其所非, 非其所是者, 是皆失其本心.【十六板廣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者, 旣是失其本心, 則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者, 亦是失其本心. 失其本心者, 直是不仁不義已矣. 至於當惻隱而惻隱之時, 有過與不及, 當羞惡而羞惡之時, 有過與不及者, 然後乃可謂之不中節也. 由此言之, 發當其地而有過不及之惻隱羞惡, 不害爲四端也, 發非其地之惻隱羞惡, 恐不當以四端論也. 然則淳錄所謂'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者, 固當爲定論, 其若不以下二十字, 恐有合商量者, 未知如何?四端有正不正, 如暴戾愚狠, 便是發錯了惻隱羞惡之心, 含糊不分曉, 便是發錯了是非之心. 如一種不遜, 便是發錯了辭遜之心. 日間一正一反, 無往而非四端之發.【十六板方子錄】暴戾愚狠, 不遜含糊, 正是不仁不義無禮不智者, 初非可以四端之正不正論者, 而猶謂之四端之發者, 以其惻隱之反爲暴戾, 羞惡之反爲愚狠, 辭讓之反爲不遜, 是非之反爲含糊故耳. 正如所謂'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 朱子之爲此言也, 蓋欲使學者, 審察於日間念慮之正與不正, 必治其不正者, 而反之正焉爾. 如此看, 無害否?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 問: "看得來, 如喜怒愛惡欲, 却似近仁義." 曰: "固有相似處."【二十板廣錄】旣云七情是氣之發, 又以七情爲仁義, 則七情亦可曰理之發. 謂七情理發而可, 則謂四端而曰氣發 宜亦可也. 蓋此不過以四端善一邊, 故屬於理之發, 七情兼善惡, 故屬於氣之發, 非謂四端七情之發於理發於氣, 各自不同也. 此乃我東四七說異同之所自出處, 未知以退農二先生之精詳, 於此段, 曾如何看會也?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五十五之九板燾錄】孔子旣稱子路之才, 可治千乘之賦, 子路又嘗自言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閒,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3), 且知方也. 三年爲之, 猶且如此, 況四十年之久, 如管仲之於齊國, 則其功烈, 豈下於管仲哉? 斯義也, 金仁山已言之, 而我先生嘗以朱子之載楊氏說於《孟子集註》, 爲未安者也. 今考《語類》, 非惟孟註爲然, 朱子之所自言者, 亦如是, 則楊氏之說, 卽朱子之言也, 恐又有不敢質言者.執中無權之權稍輕, 嫂溺援之以手之權較重, 亦有淺深也.【五十六之八板僩錄】事固有大小, 均之爲權而得中也, 中者, 理之恰好處. 大事也有恰好處, 小事也有恰好處, 其恰好處則一也, 似不可以事之大小, 分權之輕重, 而朱子說如此, 可疑.問: "'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 若鄕隣之鬪, 有親戚兄弟在其中, 豈可一例不救?" 曰: "有兄弟固當救, 然事也須量大小. 若只是小小敺鬪, 救之亦無妨, 若是有兵戈殺人之事, 也只得閉戶不管而已."【五十七之十七板僩錄】同室有鬪, 孟子固曰"被髮纓冠而救之." 兄弟豈非同室之人乎? 胡爲而有此問答也? 且兄弟方在兵戈禍難之中, 而我乃閉戶不管, 豈不大害義理? 此等處恐是記錄之誤.問: "堯舜揖遜, 雖是盛德, 亦不得已否?" 曰: "然."【五十之八板無名錄】天生聰明睿知, 固欲以作民君師也. 古今有天下者, 不傳賢而傳子, 非所以體天意. 堯舜之揖遜, 實公共當然之事. 故孟子曰"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 此謂之不得已者, 未知其義何居, 而朱子然之, 可疑.犬牛人得於天者, 未嘗不同, 惟人得是理之全, 至於物, 止得其偏. 今欲去犬牛身上, 全討仁義, 便不得所以謂性卽理. 便見得惟人, 得是理之全, 物得是理之偏. 告子止把生爲性, 更不說及理. 孟子却以理言所以見人物之辨. 【五十九之二板賀孫錄】人之所以異於物者, 以其得正氣. 故具得許多道理, 如物則氣昏而理亦昏了.【同板燾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這性便也隨氣轉了.【三板 義剛錄】生之謂性一章, 是湖論人物性異之所自出處. 凡此《語類》諸段, 若可謂其說之證左者. 然孟子之爲此性異之論也, 蓋以告子以人物之生槩同者, 遂謂之同一性也, 則是認氣爲性, 而害道大矣. 故辨之曰"所謂性者, 非知覺運動之氣也, 乃仁義禮智之理也. 知覺運動之氣, 人與物雖若不異也, 仁義禮智之理, 豈物之所能全哉?" 其意蓋曰'人物之知覺運動, 雖同一生也, 而其正通偏塞之不同, 正如同一白也, 而羽雪之白, 輕重旣差, 雪玉之白, 虛實亦殊, 偏且塞也.' 故物不能全, 仁義禮智之理. 正且通也, 故人則全仁義禮智之理. 全與不全之閒, 性之不同判焉. 此就人物有生之後, 氣質發用處而謂之異也, 非謂人物有生之初, 本性稟受時, 已自不同也. 如使告子, 只見氣之發用不同, 而爲人物性異之說, 則孟子又必立性同之論而辨之. 曰: "氣之有通塞, 理雖有偏全, 理之至善, 非氣之所囿." 天命之性, 人物一源, 初未嘗因氣而有異矣. 然則賀孫錄物得是理之偏, 義剛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諸說只以《集註》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一句, 看定而活絡之, 則無礙矣. 苟以辭而已, 而眞以爲物得其偏, 禀得來偏, 則《集註》當曰"豈物之所全得", 而不當曰"豈物之所得而全矣." 正以物得氣之偏者, 而其發得此性者亦偏. 故現據理之偏發者, 強名之曰: "物得理偏性偏也." 栗翁所謂氣之偏, 則理亦偏, 所偏非理也, 氣也一語, 已是八字打開. 湖家雖欲引以爲性異之證, 得乎? 況其所謂犬牛身上, 全討仁義不得, 及氣昏而理亦昏, 這性隨氣轉了等語, 分明就氣稟用處言者乎? 未知《孟子》本文《語類》諸段之義, 如此看, 則無害耶? 但燾錄中人之異於物者, 具得許多道理, 具字胡不作全字? 此却可疑.○ 犬牛人性, 旣是因氣而異者, 故《大全》及十一板謨錄, 又以爲氣質性. 然氣質性有兩股, 偏全之性, 不性之性是已. 偏全之性, 主善一邊而言, 不性之性, 兼善惡而言. 此所謂氣質性, 恐只可作偏全之性, 不可作不性之性也.○ 此性之異, 孟子只擧犬牛人三箇, 朱子又只分人物二層. 然推而廣之, 則人之與人, 物之與物, 人人物物箇箇層層, 皆當一樣看, 未知如何?心與性, 只一般, 知與盡不同. 所謂知便是心了. 問: "知是心之神明, 似與四端所謂智不同." 曰: "此知字義又大. 然孔子多說仁智, 如元亨利貞, 元便是仁, 貞便是智. 四端仁智最大, 無貞則元無起處. 無智則如何是仁?《易》曰: '大明終始', 有終便有始. 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六十之二板廣錄】此段上下文知字與大字, 同不同, 我先生曾有設問. 竊意上四知字, 心之知覺之知, 屬乎氣也. 下'有知'之知, 性之分別之知, 屬乎理也. '知字義大'之大, 以其妙衆理應萬事, 非但如分別之知之止爲性之一端也. '最大''爲大'二大字, 謂其大於亨利也, 未知不戾於尊見否.○ 知與盡不同之云, 恐是以盡心做力行, 如下賀孫以下諸錄之意. 然若使只有盡心知性一段而已, 則宜可如此說, 下文旣復有存心養性一段, 則一知一行之所主自在. 此所以《語類》盡心力行之說, 終爲集註之所棄也.問: "'莫非命也'此一句是總說氣稟之命, 與'天命謂性'之命同否?" 曰: "以孟子之意, 未說到氣稟, 此句只是說人物之生, 吉凶禍福, 皆天所命." 【七板僩錄】性與禍福均是命, 自天而禀於人. 然性者, 人人之所同,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理也, 理則一本故也. 禍福者, 人人之所異,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氣數也, 氣則萬殊故也. 今以吉凶禍福之命, 未說到氣稟者, 可疑. 下十二板人傑錄曰: "以非義而死者, 固所自取, 是亦前定, 蓋其所稟之惡氣, 有以致之也." 此則又是說氣禀, 恐此當爲定論.'由氣化有道之名'. 如天道․地道․人道․父子之道․君臣之道․率性之謂道, 是也.【十板夔孫錄】'由氣化有道之名'. 如率性之謂道, 性只是理, 率性方見得是道, 這說著事物上. 且如君臣父子之道, 有君臣父子方見得這箇道理.【同板植錄】'由氣化有道之名', 率性之謂道, 管此一句.【同板賜錄】'由氣化有道之名', 恐是言天道之流行. 正《易》所謂'一陰一陽之謂道'也. 此是說繼善之事, 不及說成性之事. 成性且不及說, 況說率性之道, 無或太早乎?心者天理在人之全體, 性者天理之全體.【十二板淳錄】竊以爲性者天理在人之全體, 心者主人身而具天理之全體, 則似益穩備如何?在天言之, 皆是正命.【同板恪錄】據下文在天之命却自有差, 及下板賀孫錄天自失其正命之語, 皆是正命之論, 恐未爲定說.'性也有命焉', 性字兼氣稟而言.【六十一之四板伯羽錄】此性字, 兼物欲而言.【五板燾錄】此性字, 正是氣稟物欲爲主者, 當曰"卽指氣欲而言", 而必下兼字, 何也? 蓋此性雖是氣欲爲主, 而旣謂之性, 則性之得名, 以其爲理也, 故指其自然之理附氣如此者, 而定其名. 指其氣欲之用事者, 而謂之兼, 何也? 指理爲性之名, 不可易也, 正如浩然之氣, 雖是道義爲主, 而氣之名目不可易也, 故不直取爲主之道義而名之, 必指其爲配之氣, 而定其名也.《論語集註》"此所謂性, 兼氣質而言", 亦當同此例看, 未知如何?'性也有命焉', 此命字却合理與氣而言.【六板銖錄】貧賤者之不能如願, 安於氣數之命, 富貴者之亦有限制, 安於理義之命. 此命字之合理氣看, 說得完備. 上四板賀孫錄之就理上說, 下七板義剛錄之指理而言者, 恐皆有未備.'操則存舍則亡', 心安有存亡? 此正人心道心交界之辨. 人心是此身有知覺有嗜欲者, 如所謂'我欲仁''從心所欲''性之欲也'. 苟父一虐其子, 則子必狠然以悖其父, 此人心4)之所以危也.【六十二之九板十板大雅錄】天下無無人心之上知, 又無亡其心之聖人, 則以操舍存亡, 語人道心, 明是未定說.○ 我欲仁之心, 是原於性命者, 則元非人心, 狠然以悖其父, 亦豈止於人心之危? 恐俱屬記誤.知仁勇, 許多爲學底道理.【十一板僩錄】此道理, 恐是方法之意, 與大學之道之道字同, 與率性之謂道之道字不同.牛之性順, 馬之性健, 卽健順之性, 虎狼之仁, 螻蟻之義, 卽五常之性. 但只稟得來少, 不似人稟得來全.【十二板燾錄】此段似是說物不得全稟五常, 與朱子平日人物性同之論不同, 何也?問: "木之神爲仁, 火之神爲禮." 曰: "神字猶云意思也." 【同板僩錄】仁義禮智理也, 當曰木之理仁, 火之理禮, 而今以神爲仁禮者, 可疑. 且其云意思者, 亦恐非可言於理之無情意者.據伊川之意, 人與物之本性同, 及至稟賦異. 蓋本性理也, 而本賦之性, 則氣也. 性本自然, 及至生賦, 無氣則乘載不去, 故必頓此性於氣上, 而後可以生. 及至已生, 則物自稟物之性, 人自稟人之氣. 【十四板可學錄】此段所論, 似是說氣質之性, 然伊川旣以率性之道, 通人物而言, 則安得以氣質性爲可率者耶? 若做本然性看, 則'人與物之性同禀異', 及'物禀物性人禀人氣'等說, 又不通. 未知當如何看?天命之性, 人受其全, 物受其偏. 【十五板至錄】此亦恐與上十二板燾錄之意同.不睹不聞時, 固當持守, 然不可不察, 謹獨時, 固當致察, 然不可不持守.【二十三板廣錄】不睹不聞之時, 無形無眹, 何事可察? 若非記誤, 是未定之論.伊川謂當中時, 耳無聞目無見, 然聞見之理在始得.【三十二板淳錄】此無聞無見, 謂無有心之聞見, 非謂無自然之聞見也. 上二十九板淳錄, 朱子固曰"靜時, 耳目亦必有自然之聞見," 中庸或問又曰"未發時. 耳目當亦精明而不可亂."已發未發, 不必太泥. 只是旣涵養, 又省察, 無時不涵養省察. 【卅四板○營錄. 下同人錄亦有此說】未發時, 固要存養, 已發時, 亦要存養. 未發時, 固要省察, 已發時, 亦要省察.【卅五板必大錄】涵養存養, 固可通言於未發已發, 省察則不可通言於已發未發. 此恐亦爲未定論.存養是靜工夫. 靜時是中, 以其無過不及, 無所偏倚也. 【卅八板祖道錄】過不及, 不但言於動時, 亦當言於靜時, 朱子於此段, 已明揭矣. 我先生〈中庸記疑〉所謂衆人之靜是不及, 禪子許渤之靜是過者, 誠實際篤論, 若引此段爲正據, 則尤爲完備.問: "鬼神之德, 如何?" 曰: "此言鬼神實然之理."【六十三之卄二板力行錄】竊詳此非直以理訓德也. 但言此, 論鬼神之德者, 所以著鬼神實然之理也. 如此看如何?'體物', 言以物爲體. 有是物, 有是誠.【同板端蒙錄】'以物爲體'與《中庸章句》'爲物之體', 語勢賓主正相反.《章句》所謂'爲物之體'者, 指二氣而言, 亦非指實理也. 此段恐誤錄.立天下之大本, 是靜而無一息之不中. 知化育則知天理之流行. 【六十四之十二板賀孫錄】三十二章大本, 是所性之全體, 則與首章靜一邊之大本不同, 而此云靜而無一息之不中, 亦當爲未定說.曲是氣稟之偏【同板升卿錄】《中庸章句》, 訓曲以善端發見之偏, 發見之偏, 猶云發見之一端也. 是非帶病之意, 則以曲爲氣稟者, 恐有商量. 蓋偏者全之對也, 能全體者, 其至誠也, 其次則致其偏而就其全也. 下十三板謙5)錄, 曲是逐事上著力事事上推致其極之訓, 旣甚明白. 且十四板僩錄, 以或問所稟厚薄之訓, 爲何故如此說? 十五板可學錄, 以程子偏勝處發之說, 爲未安, 則尤可見矣.問: '明動' 曰: "徒明不行, 則明無所用, 徒行不明, 則行無所向."【十六板伯羽錄】以動做行, 亦非章句本旨.誠者, 是箇自然成就底道理. 又曰: "'誠者自成', 如這箇草樹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者, 便是他實有. 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 這箇便是自成, 是你自實有底."【十六板僩錄】蓋有是實理, 則有是天, 有是實理, 則有是地. 如無是實理, 則便沒這天, 也沒這地, 凡物都是如此. 故云'誠者自成', 蓋本來自成此物.【十七板賀孫錄】'誠者物之終始', 是解'誠者自成'一句.【上同】諸錄皆以'誠者自成', 爲主理言, 與章句以心言者, 不同.某舊說誠有病. 蓋誠與道皆泊在'誠之爲貴'上. 若如舊說, 則誠與道成兩物也.【十七板義剛錄】誠道兩物之舊說, 似指以心言誠, 以理言道之章句也. 蓋誠與道, 雖有心理之分, 然實心爲行道之本, 而道理必待實心而後行. 故曰'誠之爲貴.' 如是看則誠與道, 亦何嘗不泊在誠之爲貴, 而必欲做病看也? 三山齋每據此段爲定論, 而不從章句, 蓋以其云舊說有病也. 雖云有病, 而終不改定章句, 則其還主舊說, 亦可知已. 斯義也, 我先生〈中庸記疑〉已詳辨, 恐爲確論.'誠者自成也'下文云: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此二句便解上一6)句. 實有是理, 故有是人, 實有是理, 故有是事.'【同板虁遜錄】此亦主理言, 與上僩賀孫二錄同問: "不誠無物, 恐是就人心之實此理而言." 曰: "非也. 下文言'君子誠之爲貴', 方說人當實乎此理. 若曰: '實理爲物之始終, 無是理, 則無是物, 故君子必當實乎此理也.'"【二十板銖錄】不誠作無是理看, 與《章句》不同. 蓋無字與不字, 有自然有爲之分, 不可一槩論. 上板人傑錄: "不字, 是誰不他? 須是有箇人不他方得." 已大煞分明.本所謂禮儀三百, 末所謂威儀三千, 三百旣大德敦化, 三千卽小德川流.【卄八板壽昌錄】據上下諸錄及《中庸章句》, 三百三千當爲末爲小德, 此恐記誤.問: "仁義禮智之智與聰明睿知, 想是兩樣, 禮智是自然之性, 所以辨是非者, 睿智是說聖人聰明之德, 無所不能者." 曰: "便只是這一箇物事."【卅四板義剛錄】禮智之智, 人人所同禀者, 睿知之知, 聖人所獨得者, 烏得爲一箇物事? 此恐在聖人分上言, 故指其心理渾然一致處, 而謂之一箇物事耳. 자양(紫陽)과 운곡(雲谷) 모두 주자가 서원을 세우고 한가로이 지내며 강학하던 곳이다. 다만……있습니다 고문(古文)을 읽었던 당대 사람들에게 어류체의 문장이 더 어렵게 느껴졌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성으로……기질지성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가 있게 된 뒤에 기질지성이 있으니, 이를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2 〈위학(爲學)〉 하나밖에……성 주자가 〈답서자융[答徐子融]〉에서 "또 말라죽은 사물에는 기질지성만 있고 본연지성은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은 더욱 웃음을 자아냅니다. 만약 과연 이 말대로라면 사물에는 단지 하나의 성만 있고 사람에게는 도리어 두 개의 성이 있다는 것이니 이 말은 너무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기질지성은 단지 이 성이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질에 따라서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되는데 바로 주자(周子)가 이른바 '각각 그 하나의 성을 가진다'고 한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래 본연지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 기질지성이 또 어디에서 왔겠습니까?〔又謂枯槁之物只有氣質之性而無本然之性, 此語尤可笑. 若果如此, 則是物只有一性, 而人却有兩性矣, 此語非常醜差. 蓋由不知氣質之性只是此性墮在氣質之中, 故隨氣質而自爲一性, 正周子所謂各一其性者. 向使元無本然之性, 則此氣質之性又從何處得來耶?〕"라고 한 일성(一性)을 가리킨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8 〈답서자융(答徐子融)〉 성대로……것이다 《통서해(通書解)》에는 주돈이(周敦頤)가 '性焉安焉之謂聖'이라고 한 데 대해 주자(朱子)의 해(解)에 '性者獨得於天'이라고 되어 있다. 물사(物事)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각기……이하 뒤의 '또 말씀하셨다 이하[又曰]'와 같은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에 대해 설명한 단락이 끝나고 주자가 다시 말하는 내용인바, "각기 성명을 바루어 대화를 보합한다는 말은 성인이 건괘에서 이 두 구를 말씀하셨으니 가장 좋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과 사물이 사물이 되는 까닭은 모두 그 성명을 바루어서이고 보합은 그 화기를 얻어서이다. 성명은 곧 당초에 즉시 분부받은 것이고 보합은 곧 그 가죽으로 꾸려 싼 것이 안에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칼로 그 배를 가르면 이 사물이 곧 흩어져 바로 죽게 된다.〔各正性命, 保合太和, 聖人於乾卦發此兩句, 最好. 人之所以爲人, 物之所以爲物, 都是正箇性命. 保合得箇和氣 性命便是當初合下分付底. 保合便是有箇皮殼包裹在裏. 如人以刀破其腹, 此箇物事便散, 卻便死〕"라고 한 부분과 바로 이어지는 제14조에서 "지금 사람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다'라는 것도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而今人會說話行動, 凡百皆是天之明命. 人心惟危, 道心惟微, 也是天之明命〕"라고 한 것이다. 불근호차(不謹乎此) 《대학집주(大學集注)》 〈성의장(誠意章)〉에 나오는 구절로,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으면 그 발(發)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는 것이다. '此'는 발하는 바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논어집주의……말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28장에서 "공자는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라 했고, 이 문장에 대한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사람 밖에 도가 없고, 도 밖에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지각이 있고 도체는 행위함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도를 크게 할 수 있고, 도는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人外無道, 道外無人. 然人心有覺, 而道體無爲, 故人能大其道, 道不能大其人也〕"라 했다. 앞 문장에……본다면 주자가 바로 앞에서 "건은 양의 기를 품수한 것이고 순은 음의 기를 품수한 것이며 오상은 오행의 리를 품수한 것이다.[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증조도록(曾祖道錄) 이 부분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6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이굉조록(李閎祖錄)으로 되어 있다. 천지의……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2조에 "이를테면 강충(降衷)의 충(衷)이 똑같이 이 리(理)이다. 그렇지만 이 자는 단지 하늘이 내린 것에 적용하여 말할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받은 것에 적용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如降衷之衷同是此理. 然此字但可施於天之所降而言, 不可施於人之所受而言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미발(未發)의 시중(時中) 문맥으로 볼 때 '미발(未發)의 중과 시중(時中)'이 되어야 할 듯하다. 중용에서는……말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9 제5조에는 "《논어(論語)》에서는 단지 인(仁)만 말하고, 《중용(中庸)》에서는 단지 지(智)만 말하였다.〔論語只說仁, 中庸只說智〕"라고 하였다. 세……않는데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자장이 물었다. '영윤인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그만두면서도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으면서 옛날에 자기가 하던 영윤의 정사를 새로 부임한 영윤에게 잘 알려주었는데,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진실하다.' 말하였다. '仁이 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잘 모르겠지만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관중에게는……것은 《논어(論語)》 〈헌문(憲問)〉, "자로가 말하였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규를) 따라서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환공은 아홉 차례나 제후를 규합하였는데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관중의 힘이니 仁이라고 할 수 있다. 仁이라고 할 수 있다.'〔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비록……것입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5조에 "'현현역색(賢賢易色)'장. 학문하는 방법은 인륜상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 지금 이미 이와 같이 한다면 어떤 이가 비록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賢賢易色章. 爲學之道, 只要就人倫上做得是當. 今旣能如此,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자하의……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9조에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 자하의 이 말은 과격하니, 교왕과직한 것이다.〔吾必謂之學矣, 子夏此話說得激, 有矯枉過直意思〕"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은 구부러진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하는 것으로서 곧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어 오히려 나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맑음……자임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고, 이윤은 성인 가운데 도를 자임한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 가운데 조화로운 분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때에 맞게 하신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伊尹聖之任者也, 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백이, 유하혜, 이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충(忠)과……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의 '주이불비(周而不比)'장의 해석에 대한 문답이다. 좌전의……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4년조에서는 "군주께서 사신인 나에게 반드시 두루 자문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君敎使臣, 曰, 必諮於周〕"라 했고, 이에 대한 두예의 주에서는 "충신(忠信)한 사람에게 자문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충신(忠信)이 주(周)이다.〔當諮于忠信, 以補己不及, 忠信爲周〕"라 했다. 인을……것 《논어(論語)》 〈이인(里仁)〉의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자기로써……미룬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이인(里仁)〉 15장의 주석에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자기로써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인이고,〔以己及物仁也〕자기를 미루어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서이다.〔推己及物恕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한……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33에는 '此一事純於仁, 故可謂之仁.'로 되어 있다. 출공(出公)……한다 당시에 위(衛) 나라 임금은 출공(出公) 첩(輒)인데, 그보다 먼저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가 태자 때에 그의 아버지 영공(靈公)에게 죄를 얻어 망명하고, 영공이 죽은 뒤에 출공이 유명(遺命)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괴외가 국내로 들어오므로 출공이 이를 막았다. 나의……것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서 안자(顔子)가 공자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한 장을 논한 것이다. 참고로 '불사이득(不思而得)', '불면이중(不勉而中)'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나오는 말이다. 자로(子路)와……일들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네 사람이 공자 앞에서 각자의 포부를 말하는 대목에 대해 논한 것이다. 나는……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의 "나를 제대로 써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물……것이다 정이(程頤)가 한 말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 〈입관어록(入關語錄)〉에 보인다. 선은……된다 정호(程顥)가 한 말로,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자로는……뿐이다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그대와 자로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자로는 우리 선자인 증자도 두려워한 분이라고 추존하였고, 관중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패도를 행한 관중을 자신과 비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에 양씨(楊氏)가 자로와 관중을 말 모는 사람에 비교하자 "자로는 자신이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요, 관중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칭찬하였고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는 유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 있거니와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다〔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에서 나온 말이다. 자로(子路)도……말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자로가 경솔히 대답하며,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의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전란이 가해지고 따라서 기근이 들어도 제가 다스릴 경우,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에서 나온 말이다. 양씨(楊氏)의 설 《맹자집주(孟子集註)》 〈공손추 상(公孫丑上)〉 9장에 주자가 양씨의 설을 수록하였는바, 양씨는 자로가 관중이 천하를 한 번 규합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이 조목을 말하였다. 따라서 이 조목의 주자 말씀은 양씨의 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원칙을……없는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자막(子莫)은 이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는 것이 도에 가까우나 중간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는 것과 같다.〔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에서 나온 말이다. 형수가……주는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서 "순우곤이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예이다.'라 대답하였다. '형수가 우물에 빠지면 손으로써 구원하여야 합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길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이니,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음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써 구원함은 권도(權道)이다.'라 했다.〔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 孟子曰, '禮也.' 曰, '嫂溺, 則援之以手乎?' 曰, '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 援之以手者, 權也.'〕"에서 나온 말이다. 동네……된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서 "향리(鄕里)와 이웃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면 혹(惑)한 것이니, 비록 문을 닫더라도 가한 것이다.〔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에서 나온 말이다. 맹자가……준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만장(萬章)이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되 우왕(禹王)에 이르러 덕이 쇠하여, 현자(賢者)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길,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늘이 현자(賢者)에게 주게 하면 현자(賢者)에게 주고, 하늘이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옛적에 순(舜)이 우(禹)를 하늘에 천거한 지 17년만에 순(舜)이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우(禹)가 순(舜)의 아들을 피하여 양성(陽城)으로 가 계셨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따라오기를 요(堯)가 붕어한 뒤에 요(堯)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舜)을 따르듯이 하였다. 우(禹)가 익(益)을 하늘에 천거한 지 7년만에 우(禹)가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익(益)이 우(禹)의 아들을 피하여 기산(箕山)의 북쪽으로 가 있었는데, 조회하고 옥사를 송사 하는 자들이 익(益)에게 가지 않고, 계(啓)에게 가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며, 덕(德)을 구가(謳歌)하는 자들이 익(益)을 구가(謳歌)하지 않고, 계(啓)를 구가(謳歌)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다.'〔萬章問曰, '人有言, 至於禹而德衰, 不傳於賢, 而傳於子. 有諸?' 孟子曰, '否, 不然也, 天與賢, 則與賢, 天與子, 則與子. 昔者, 舜薦禹於天, 十有七年, 舜崩, 三年之喪畢, 禹避舜之子於陽城, 天下之民從之, 若堯崩之後不從堯之子而從舜也. 禹薦益於天, 七年, 禹崩, 三年之喪畢, 益避禹之子於箕山之陰. 朝覲訟獄者不之益而之啓, 曰, 吾君之子也. 謳歌者不謳歌益而謳歌啓, 曰, 吾君之子也.'〕"에서 나온 말이다. 심(心)과……심이다 이 조목은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알아서이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처음과……밝힌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면 육위가 때로 이루어지나니, 때로 여섯 용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는 "시작은 곧 원이요 끝은 정을 말한 것이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정하지 않으면 원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이 건도의 끝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육위가 각기 때에 맞게 이루어져서 여섯 양을 타고 천도를 행함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곧 성인의 원, 형이다.〔始卽元也, 終謂貞也. 不終則无始, 不貞則无以爲元也. 此言聖人 大明乾道之終始, 則見卦之六位, 各以時成, 而乘此六陽, 以行天道, 是乃聖人之元亨也〕"라고 하였다. 명(命)……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는 '명(命) 아님이 없으나 그 정명(正命)을 순히 받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정명(正命)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그 도(道)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요, 질곡(桎梏)으로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 아니다.〔孟子曰,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에서 나온 말이다. 기화(氣化)에……되었다 이 조목은 장재(張載)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태허에 연유하여 천이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고 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라는 말을 논한 것이다. 주역에서……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하니, 도를 잇는 것은 선이고 도를 이루는 것은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다.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입이 맛에 있어서, 눈이 색깔에 있어서, 귀가 음악에 있어서, 코가 냄새에 있어서, 사지가 안일에 있어서는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는지라 군자는 이것을 성이라 이르지 않는다.〔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之於安佚也 性也 有命焉 君子不謂性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공자(孔子)가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習慣)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한 데 대한 주자의 주석이다. 잡으면……잃는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공자가 말하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다' 하였다.〔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내가……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인이 당장 이른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마음이……따른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사물에……욕구 《예기(禮記)》 〈악기(樂記)〉,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고,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이 본성의 욕구이다〔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지(智)․인(仁)․용(勇)처럼 《주자어류(朱子語類)》에는 '知仁勇' 앞에 '如'자가 있다. 보지……않는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에 "군자는 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며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는데, 눈으로 아직 사물을 보지 않고 귀로 아직 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미발(未發)한 상태이다. 홀로……조심할 앞의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의 '부도불문(不睹不聞)' 바로 뒤에 "은미한 것보다 더 확연히 드러날 수가 없는지라,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이천(伊川)이……된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에 보인다. 29판의 〈진순록(陳淳錄)〉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의 제116조목을 가리킨다. 〈중용기의(中庸記疑)〉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귀신(鬼神)의 덕(德)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6장에 "귀신의 덕이 성대하도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물의 체를 이루어 결코 빠뜨릴 수 없다.〔鬼神之爲德, 其盛矣. 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體物而不可遺〕"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성(誠)과……머문다 이 부분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된다 바로 앞 조목인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4 제96조목에 나오는 주자의 말이다. 근본은……이다 《중용(中庸)》 30장에 "공자는 멀리 요순의 도리를 받들어 전술하고, 가깝게는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받들어 지킨다. 위로는 천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운행하고, 아래로는 물과 땅의 생성 원리에 합치한다. 이는 마치 천지가 실어 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마치 사계절이 서로 바뀌어 운행하고 해와 달이 서로 빛을 교체하여 밝히는 것과 같다. 만물은 함께 생육하지만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으며, 도리는 병행하지만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작은 덕성은 끊임없이 흐르는 냇물과 같고, 큰 덕성은 화육을 돈후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도리가 위대한 근본 원인이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辟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幬. 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萬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木 원문은 '本'인데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忠信 원문은 '忠'인데《주자어류》권24를 참고하여 보충하였다. 勇 원문은 '用'인데《논어집주》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人心 원문은 '人'인데,《주자어류》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謙 원문은 '兼信'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一 원문은 '二'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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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後滄先生文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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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庚申 경신년(1920)추성(鄒聖, 맹자)의 큰 공을 기록한 한 편3)의 선생의 작품이 지령(知令)에게 의혹을 받았기에 일전에 질문을 드렸는데 그만 다급히 서두르다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돌아와 보니 마침 지령에게서 편지가 왔기에 그에 대해 답장을 하면서 저의 좁은 소견으로 헤아려 본 것을 대략 기술하여 보냈습니다. 다만 선생의 이 작품을 지난해에 한번 훑어보았기 때문에 까마득하여 문맥을 기억하지 못하니 어쩌면 좋겠습니까.다만 《맹자》의 '풍년 든 해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게으르다.[富歲子弟多賴]'는 장(章)4)의 '성인은 먼저 우리 마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깨쳤다.'는 한 구절을 들어 마음이 착하다[心善]는 제목을 달아서 맹자의 공이 다만 성이 선하다는 가르침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이 착하다고 논한 것에도 있다는 선생의 의도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거칠고 소략하여 맹자의 본지와 선생의 의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마 지나 우연히 《맹자》의 그 장5)을 꺼내어 반복해서 읽어보니, 다섯 번째 절(節) 대문의 "그 본성이 사람과 다르다."는 구와 세 번 째 절(節)의 《집주》에 "그 본성이 선한 것은 같지 않음이 없다."6)는 말 등은 분명 성이 선한 것을 주로 말하였으니, 지령(知令)이 심선(心善)이라 한 선생의 의도를 의심할 만합니다.다만 사람마다 입은 좋아하는 바가 똑같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는 바가 똑같으며 눈은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는 바가 똑같고 마음도 똑같다는 것을 열거한 뒤에 이어서 또 "성인은 먼저 우리 마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깨쳤다."라 하였으니, 어찌 내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음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이미 성인과 같다면 어찌 심선(心善)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대문과 《집주》에 심선(心善)이라는 두 글자가 없다는 이유로 다만 성선(性善)은 말할 수 있고 심선(心善)은 금하여 말할 수 없단 말입니까.제가 이 장의 본지(本旨)를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마음이 의리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인성이 모두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이는 마치 사단(四端)을 보고서 사성(四性)이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성이 선한 것은 체(體)가 되어 마음에 갖춰져 있고, 마음이 선한 것은 용(用)이 되어서 성을 발현하니, 하나는 체가 되고 하나는 용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선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성은 형상도 없고 작위도 없기[無形無爲] 때문에 사람이 만사(萬事)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모두 마음[心]에 달려 있습니다. 학자가 만약 성이 선할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선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을 중하게 여겨서 물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이 때문에 심선(心善)의 학설이 후대에 큰 공이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대개 맹자가 성선을 논한 것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같아서 그 큰 공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이 장에 이르러 심선(心善)이라 말한 것도 또한 큰 공이 되는데, 이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기에 이처럼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것을 드러내어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의도가 어찌 이에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가 지산(志山)에게 준 편지에서 맹자의 본지를 살피지 못하고 성선과 심선이란 두 가지로 개괄하여 설명하였으니, 자못 빈주(賓主)의 구분을 잃었습니다. 언설의 거칠고 소략함이 참으로 이전에 염려했던 것과 같게 되었으니, 이것이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맹자가 심선(心善)을 말한 큰 공을 지령(志令)이 의심하였는데, 다만 얕은 나의 견해에 근거하여 말을 한다면 의리는 진실로 리로서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은 리가 아니다. 리는 선한 것인데 심 또한 그렇다면, 어찌 선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 심은 물욕에 한 번 빠지면 때때로 리를 가리켜 불선하다고 생각하고, 리가 아닌 것을 선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리는 '순선(純善)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심은 다만 '본래 선하다.[本善]'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순(純)과 본(本)의 차이에 따라 리와 기를 분별한다. 성과 심을 합하여 말할 때는 성선(性善)이 주인이 되고, 심선(心善)은 손님이 된다. 만약 각각 따로 나누어 두 개의 선함을 논한다면, 빈주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정자(程子)의 편지에서 심선을 말했고, 《대학》 전7장7)과《대학혹문》,8) 《주자대전》 〈답정정사서(答程正思書)〉9)에서 모두 심의 바름[正]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불가에서는 심선을 말하면서 본말을 구분하지 않고 이를 뭉뚱그려 지선(至善)이라고 말하니 다만 이는 성은 제쳐두고 마음만을 믿는 것이다. 육씨(육구연)가 양경중(楊敬仲)을 대했을 때 '나는 단지 이 마음을 믿는다.'라 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잘못이다." 尊稿記鄒聖大功一篇, 爲志令所疑, 向既提稟而卒卒未及承誨而歸.歸則適自志令有書, 因其修謝, 畧寫揣測于管見者送去.但尊稿此記, 年前一覽, 而茫不記語脈, 如何? 只據孟子富歲子弟多賴章'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一段, 爲心善之題目, 以明孟子之功, 不但在性善之訓, 而亦在心善之論之意.然恐其鹵莽踈綻, 有失孟子之旨先生之意.俄者, 偶出孟子本章, 反覆之, 則第五節大文, "其性與人殊"之句, 第三節《集註》"其性之善無不同也"之語, 果皆主性善說, 而有如志令之所疑者.但其歴舉口之同嗜, 耳之同聽, 目之同美, 心之同然, 而繼之又曰, "聖人先得我心之所同", 則豈非我心同於聖人心之謂乎? 心即與聖人同, 則豈非心善之謂乎? 烏可以大文與《集註》無心善二字, 只得言性善而禁不言心善乎? 竊詳此章本旨, 蓋以人心之無不悅理義, 以證人性之皆善, 如見四端而知有其四性也.性之善爲體而具乎心, 心之善爲用而發乎性, 一體一用, 究非二善也? 蓋性者無形無爲, 人之酬酢萬變, 皆在於心.學者若知不但性之爲善而心之亦善, 則豈敢不自重其心, 而不欲陷溺於物欲乎? 此之謂心善之說大有功於後世也.夫孟子之論性善, 如日中天, 其爲大功, 固不須言.至於此章, 心善說之, 亦爲大功, 無有道之者.故此記云云, 正欲表而出之也.先生之意, 豈不在此乎? 但小子與志山書, 有不察於孟子本旨, 槩以性善心善兩下說去, 殊失賓主之分.其爲鹵疎, 果有如向之所虞者, 是可悔也.○ 先生答書曰 : "孟子言心善大功, 志令疑之, 但據淺見言之, 理義固是理也, 其人人之同以爲然者.却是心, 不是理也.夫理是善底, 而心以爲然, 亦豈非善底? 但此心一經陷溺之後, 又往往指理爲不善, 非理爲善, 故理可曰'純善', 心但可曰'本善'.只純與本之間, 理與氣之分也.性心之合言時, 性之善固爲主, 心之善固爲賓.若各論二者之善, 又不須分賓主.程書言心善,《大學》傳七章,《或問》《大全》〈答程正思書〉, 皆明言心之正.若乃釋氏之言心善, 不分本末, 槩謂之至善, 惟此心之是信.陸氏之對楊敬仲言, '某只是信箇心,' 此却大誤也. 추성의……한 편 《간재집(艮齋集)전편》 권15 잡저의 〈기추성대공(記鄒聖大功)〉을 가리킨다. 풍년……장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7장을 말한다. 맹자는 "풍년에는 자제들이 의뢰함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함이 많으니, 하늘이 재주를 내림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모맥을 파종하고 씨앗을 덮되 그 땅이 똑같으며 심는 시기가 똑같으면, 발연히 싹이 나와서 일지의 때에 이르러 모두 익으니, 비록 똑같이 않음이 있지만 이것은 땅에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가 있으며, 우로의 배양과 사람이 경작하는 일에 똑같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류인 것은 대부분 서로 같으니, 어찌 홀로 사람에 이르러서만 의심하겠는가?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 그러므로 용자는 발을 알지 못하고 신을 만들더라도 내가 그 삼태기를 만들지 않을 줄은 안다고 하였으니, 신이 서로 비슷함은 천하의 발이 같기 때문이다. 입이 맛에 있어서 즐김을 똑같이 함이 있으니, 역아는 먼저 우리 입이 즐기는 것을 안 자이다. 가령 입이 맛에 있어서 그 성이 남과 다름이 마치 개와 말이 우리와 동류가 아닌 것처럼 다르다면, 천하가 어찌 맛을 즐기기를 모두 역아가 조리한 맛을 따르듯이 하겠는가? 맛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역아가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입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귀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소리에 있어서는 천하가 사광이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귀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눈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자도에 있어서 천하가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자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눈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입이 맛에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고, 귀가 소리에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색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음에 이르러서만 홀로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이 없겠는가? 마음에 똑같이 옮게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인가? 리이며 의이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을 먼저 아셨다. 그러므로 리와 의가 우리 마음에 기쁨은 추환이 우리 입에 좋은 것과 같다.〔孟子曰, "富歲, 子弟多賴, 凶歲, 子弟多暴, 非天之降才爾殊也, 其所以陷溺其心者然也. 今夫麰麥, 播種而耰之, 其地同, 樹之時又同, 浡然而生, 至於日至之時, 皆熟矣. 雖有不同, 則地有肥磽, 雨露之養·人事之不齊也. 故凡同類者, 擧相似也, 何獨至於人而疑之? 聖人, 與我同類者. 故龍子曰, '不知足而爲屨, 我知其不爲簣也.' 屨之相似, 天下之足同也. 口之於味, 有同耆也, 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 如使口之於味也, 其性與人殊, 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 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惟耳亦然. 至於聲, 天下期於師曠, 是天下之耳相似也. 惟目亦然. 至於子都, 天下莫不知其姣也. 不知子都之姣者, 無目者也. 故曰, 口之於味也, 有同耆焉, 耳之於聲也, 有同聽焉, 目之於色也, 有同美焉. 至於心, 獨無所同然乎? 心之所同然者何也? 謂理也, 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 했다. 《맹자(孟子)》의 그 장 앞에 거론한 장을 뜻한다. 그……없다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의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聖人, 與我同類者.〕"에 대해 《집주》에서는 "성인 또한 사람이니, 그 성의 선함이 같지 않음이 없다.〔聖人亦人耳, 其性之善, 無不同也.〕"를 가리킨다. 《대학(大學)》 전7장 《대학(大學)》 전7장에서는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치(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공구(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우환(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라 했다. 《대학혹문(大學或問)》 혹자가 "사람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본래 이로써 사물에 응하는 것인데, 이 장의 전문에서는 기쁨·성냄·근심·두려운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 고목처럼 다시 살아날 수 없고 꺼진 재처럼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된 뒤에야 그 바름을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까?〔或問: "人之有心, 本以應物, 而此章之傳以爲有所喜怒憂懼, 便爲不得其正, 然則其爲心也. 必如槁木之不復生, 死灰之不復然, 乃爲得其正耶?〕"라 하자 주자는 "사람의 마음이 거울이 비어 있는 것과 같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과 같이 맑고 허명(虛明)하여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진체(眞體)의 본연이지만, 희로우구(喜怒憂懼)가 감촉에 따라 응하고 미추(美醜)와 부앙(俯仰)이 사물에 따라 형체를 부여받는 것은 또한 그 작용에 있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본체가 거울이 비어 있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처럼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정(靜)한 상태이기에 비록 귀신이라도 그때를 엿보지 못함이 있다. 그리고 사물에 감응할 때에 감응하는 것이 또 모두 절도에 맞으면 거울이 비어 있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과 같은 작용이 막힘없이 유행하여 광명정대(光明正大)하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공통된 도가 된 이유이니 또한 어찌 바름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다만 사물이 왔을 때에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있으면 응함에 있어 혹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또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다면 희로우구가 반드시 마음속에서 동하게 되어, 이 마음의 작용이 비로소 바름을 얻지 못함이 있게 된다.〔人之一心, 湛然虛明, 如鑑之空, 如衡之平, 以爲一身之主者, 固其眞體之本然, 而喜怒憂懼, 隨感而應, 姸蚩俯仰, 因物賦形者, 亦其用之所不能無者也. 故其未感之時, 至虛至靜, 所謂鑑空衡平之體, 雖鬼神有不得窺其際者, 固無得失之可議; 及其感物之際, 而所應者, 又皆中節, 則其鑑空衡平之用, 流行不滯, 正大光明, 是乃所以爲天下之達道, 亦何不得其正之法哉? 唯其事物之來, 有所不察, 應之旣或不能無失, 且又不能不與俱往, 則其喜怒憂懼, 必有動乎中者, 而此心之用, 始有不得其正者耳.〕"라 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답정정사서(答程正思書)〉 정사가가 "마음에 대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때가 없고 그 향하는 바를 알 수 없다(出入無時, 莫知其鄕處.)"라 하자 주자는 "마음을 논한 것은 이것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진실로 이와 같다면 이 본체 외에 별도로 하나의 부차적으로 일을 하는 정해지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공자와 맹자가 사람들에게 그 본체를 버리고 이것이 지시하는 것에 나아가 공부를 하도록 한 것이 되는데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이것은 해석의 잘못이 아니라 본원처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함영·존양의 바탕이 없으므로 이와 같게 되 것이니,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但論心處以爲此非心之本體, 若果如此, 則是本體之外別有一副走作不定之心, 而孔孟敎人却舍其本體而就此指示, 令做工夫, 何耶? 此等處非解釋之誤, 乃是本原處見得未明, 無箇涵泳存養田地, 所以如此, 更願察之也.〕"라 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답정정사(答程正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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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답함 신사년 (1941) 答吳士益 辛巳 신도비에 대한 의론에 있어 아의(雅意)을 삼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우리나라와 다른 듯하다."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국법에 비에 대한 규식이 있어야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규식을 보지 못했다면 송나라 주자를 따르는 것에 무슨 불가한 점이 있겠습니까? 또 우리나라에는 3품에 대해서도 신도비를 세운 경우가 있음은 형도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의 고집에 구애되어 다시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여 의심하면서 확정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책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국법을 말해보면, 태조 때에는 《원전(元典)》과 《속전(續典)》이 있고, 세종 때에는 《경제육전經濟六典》이 있으며, 세조 때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있고, 성종 때에는 《속록(續錄)》이 있고, 중종 때에는 《후속록(後續錄)》에 있고, 숙종 때에는 《집록통고(集錄通考)》가 있고, 영조 때에는 《속대전(續大典)》이 있었으며, 정조 때에는 이를 합하여 《대전통편(大典通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전통편》을 살펴보아도 비(碑)와 갈(碣)에 대한 규식이 없기 때문에. 그도 또한 2품 이상만 신도비를 허락한다는 문장이 열성(列聖)의 어느 조종에서 정한 법전에 있다는 것으로 이전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저 내가 통탄하는 것은 진실로 그가 국법을 보지 않고 감히 선사의 원고를 고쳤다는 것에 있으며, 형이 우려하는 것은 사체가 중대한 신도비에 관직의 품계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저의 소견은, 뜻과 이치로 강구하여 논해보면 그 덕행과 사업에 기록할 만한 것이 많은 자만이 신도비를 세울 수 있고 관직 품계의 고하는 관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체의 중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저기에 있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인작(人爵)을 영예롭게 여기면서도 천작(天爵)이 존귀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를 들어 안자(顔子)나 증자(曾子)의 묘소에 그들이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겠습니까? 옛날 일을 놔두고 지금의 일을 논해보면, 우리 선사의 덕행과 사업으로 2품이 아니기 때문에 신도비를 세울 수 없겠습니까? 비록 그렇더라도 국법에 정해진 규식이 있다면 시왕(時王)의 제도를 따라야 하겠지만, 만약 없다면 또한 무슨 구애될 것이 있겠습니까? 碑論謹悉雅意,然宋朝與我朝似異之云,有我朝國典碑式然後可言耳.旣不見定典,則從宋朝之朱子,有何不可乎? 且我朝之有三品大碑,兄亦云然,而拘於彼之固執,意其更有明據,而訝惑不定者,何也? 蓋我朝國典成書,太祖時有《元》、《續》二典,世宗時有《經濟六典》,世祖時有《經國大典》,成宗時有《續錄》,中宗時有《後續錄》,肅宗時有《集錄通考》,英宗時有《續大典》,正宗時合而爲《大典通編》.考之《通編》而無碑碣表式,故彼亦不能以二品以上乃許大碑之文在於列聖何朝所定之典對告於前日者,此也.大抵吾之所痛,亶在於彼之不見國典而敢改師稿; 兄之所憂,乃在於體重大碑之不限官品,所謂人心不同者固如是乎? 淺見以爲以意理究論之,有德行事業多可紀者,乃得爲大碑,官品高下不當與焉.其體重在此不在彼,何以故人爵之榮,不知天爵之尊也?如顔、曾之墓,以其不仕,不立大碑可乎? 舍古論今,則如吾先師之德業,以非其二品而不得大碑可乎? 雖然有國典定式,則從時王之制可矣; 而若無有焉,則又何所拘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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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신사년(1941) 與吳士益 辛巳 형은 혹 근래에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의 신도비(神道碑) 비문을 지었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유숙(柳塾)의 객이었던 자가 그 글을 보고서 제가 알고 있던 사람에게 말하기를, "글 가운데 가평(嘉平)의 김평묵(金平黙)을 배척하고 선사(先師 임헌회)의 무함을 변론한 것으로 간옹(艮翁)의 대사(大事)로 삼았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습니까? 그러나 선사의 비문을 지으면서 스승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으로 대사를 삼지 않는다면 이는 대우(大禹)의 비문을 지으면서 치수(治水)를 대사로 삼지 않는 것과 같고, 또 맹자의 비문을 지으면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친 것을 대사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니, 옳겠습니까? 오진영의 글에서 서술한 내용은 또한 그 자체로 맞는 말입니다. 【연전에 제가 형에게 보낸 편지에 "선사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한 것은 평생의 대사였다."고 하였는데, 형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진영의 글로 살펴보면 또한 형이 생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선사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한 것이 대사임을 알았으면서 마침내 스스로 자기의 선사를 무함하여 인가를 내어 원고를 출간하는 것과 관련하여 심지어 "인가를 금한 유서(遺書)는 위조이다."라고 하기까지 하여 대죄(大罪)에 빠진 것은 깨닫지 못하였고, 다시 [완산 검찰]에 고소하는 재앙을 일으켜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을 대사로 여기는 동문을 일망타진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마음이고 무슨 견해란 말입니까. 너무도 괴이한 일입니다. 주자는 왕안석(王安石)의 일을 논하여 말하기를 "세상에는 자연히 바꾸지 못할 공론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86) 전재(全齋 임헌회)와 구산(臼山 전우)은 똑같은 현인이고, 가평의 제문과 음성의 편지는 똑같은 무함이고, 벗을 해치고 선사를 무함한 것은 동일한 죄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하늘이 그의 붓으로 그의 무함한 죄를 밝혀서 그로 하여금 스스로 공론을 만들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지금은 우선 그 글에 나아가 말할 따름입니다. 옛날 임동만(任動萬 임진재任震宰))이 신모(申某)의 행장(行狀)을 이용해서 전옹(全翁 임헌회)의 시호(諡號)를 얻고자 도모하였는데, 선사가 그것을 금하고 말하기를 "차라리 시호가 없는 것이 나으니, 신모의 행장은 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87) 나는 오늘날의 일에 대해 또한 감히 말하기를 "차라리 신도비가 없는 것이 나으니, 오진영의 글은 쓸 수가 없다."라고 하겠습니다. 아, 사인(士仁)의 의리에 대한 몽매함은 동만(動萬)보다 지나치고, 나의 사람됨 또한 선사가 아니니, 금하고자 해도 그 방도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兄或近聞陰震之撰先師神道碑乎? 有客於柳塾者見其文,而言於弟之所知曰"篇中以斥嘉金而辨師誣,爲艮翁大事"云,未知信然? 然作先師碑而不以辨師誣爲大事,則是猶作大禹碑而不以治水爲大事,作孟子碑而不以闢楊墨爲大事,其可乎? 震文所叙,亦自得之.【年前弟與兄書,謂"先師辨誣爲平生大事",則兄不以爲然.今以震文觀之,亦可見兄之不思也.】但旣知先師辨師誣之爲大事,而乃自誣己師,以出認刊稿,至謂"禁認遺書爲僞造",而不覺陷於大罪,更起訴禍,網打辨師誣爲大事之同門人者.此何心何見? 絶可怪也.朱子論王安石事,而曰: "天下有自然不易之公論." 蓋全齋、臼山同一賢也,嘉誄、陰書同一誣也,害友、陷師同一罪也,則無乃天以渠筆明渠誣罪,使之自作公論也歟? 雖然今且就其文言之爾.昔任動萬之欲用申某狀而圖得全翁謚也.先師禁之曰: "寧可無謚號,申狀不可用." 弟於今日事,亦敢曰: "寧可無神碑,震文不可用." 噫! 士仁之昧義過於動萬,弟之爲人又非先師,則禁之而無其道,奈何? 주자는……하였습니다 주자가 1199년 8월 하순에 진사석(陳師錫)이 남긴 서첩과 진관(陳瓘)이 올린 표문을 소재로 삼아 왕안석의 학술 경향을 비판한 것인데,《주자대전(朱子大全)》권70〈독양진변의유묵(讀兩陳諫議遺墨)〉에 보인다. 이것과 관련한 김택술의 의론은 《후창집(後滄集)》 권7 〈여조자정(與趙子貞) 병자(丙子)〉에 보인다. 옛날……하였습니다 《간재집(艮齋集)前編)》 권2 〈여임경유(與任景孺)〉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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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신사년 (1941) 與吳士益 辛巳 일전에 석리(石里)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동(安東) 김승규(金昇圭)가 짓고 해평(海平) 윤용구(尹用求)가 글씨를 쓰고 은진(恩津) 송규헌(宋奎憲)이 전(篆)을 한 봉열 대부(奉列大夫) 왕자사부(王子師傅) 유공(柳公) 신도비(神道碑)를 보았는데, 돌아와서 국법(國法)의 관계(官階)를 살펴보았더니, 봉렬 대부는 4품이었습니다. 나는 일찍이 한쪽의 사람들이 선사가 지은 소윤(少尹) 최공(崔公)의 신도비에 대해 "국전에 합치되지 않는다. 2품 이상이라야 신도비의 격식에 맞으니 갈(碣)로 고쳐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주자대전》 〈위재행장(韋齋行狀)〉에 "공은 통의대부(通議大夫) 정(正) 제 4품의 관직이 추증되었으니 격식에 맞춰 신도비를 세워야 한다."는 글과 장남헌(張南軒)을 위해 신도비문을 지은 일을 들어 【위재의 통의대부는 그래도 4품이 되었지만, 남헌은 낭서(郎署)에 불과하니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증거로 삼아 말하기를 "선사는 주자를 사법으로 삼은 것인데 무슨 불가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에 말하기를 "이것은 송나라 조정의 일이고 우리 조정의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율곡 선생이 지은 저의 선조 승지공(承旨公)의 신도비 및 상국(相國) 민기(閔箕)가 지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신공(申公)의 신도비를 들어 증거로 삼아 말하기를, "선서는 율옹을 사법으로 삼은 것인데 무슨 불가함이 있겠는가? 그리고 민공은 한 나라의 총재(冢宰)로서 어찌 국법을 몰랐겠는가? 우리 조정의 일이 아니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또 피차가 국전 등의 여러 글들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끝내 비와 갈에 대한 법식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또 "어떤 무엄한 자가 국전의 분명한 글을 보지 않고 감히 우리 선사가 손수 정한 본문을 고치는가?"라고 말하고는 내버려 두고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말하기를 "2품이 되어야만 비로소 대비(大碑)를 세울 수 있다. 수백 년 이래 우리나라의 사대부 집안이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었다. 어찌 선사만 유독 최씨 일을 위하여 위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김씨, 윤씨, 송씨 세 집안의 혹은 부친이 대제학이 되고 자신이 판서나 직각이 된 자는 유독 우리나라의 사대부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들이 오히려 국법이 있는 줄 모르고 유씨의 집을 위해 글을 짓고 글씨를 썼겠습니까?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만드는 일입니다. 앞서 열거했던 사례들로 살펴보면, 애당초 최공의 비문에 대해 의론해서 안 됨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감히 선사가 늙어서 살피지 못하고 두루 식견이 없어서 국법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꾸짖음을 범하였다고 하면서 선사가 손수 정한 본문을 멋대로 고쳤으니, 마음속에 선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마음은 더욱 어그러지고 손은 갈수록 교활해져 마침내 진주본(晉州本)에는 못하는 짓이 없었으니,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통분하게 하였습니다. 우연히 유공의 신도비를 보고 이런 생각이 난지라 애오라지 받들어 묻습니다. 日前石里歸路,見安東金昇圭撰海平尹用求書恩津宋奎憲篆奉列大夫王子師傅柳公神道碑,而歸考國典官階,則奉列爲四品矣.弟曾於一邊人之以先師所作少尹崔公神道碑,謂"不合國典,二品以上乃得爲神道碑之式,而改之爲碣也",據《朱子大全‧韋齋行狀》"公贈官通議大夫正第四品,準格當立碑神道"之文及爲張南軒作神道碑事【韋齋之通議,猶得爲四品,南軒之不過郞署者,尢不須言.】 以證之曰: "先師之師法朱子,有何不可乎?" 彼乃曰: "此宋朝事,非我朝事." 則吾又引栗谷先生所撰鄙先祖承旨公神道碑及閔相國箕所撰通政申公神道碑以證之曰: "先師之師法栗翁,有何不可? 閔公之爲一國冡宰,而豈不知國典乎? 而不是我朝事乎?" 旣又彼此徧考國典諸書,而終不得見碑碣令式,則吾又曰"何許無嚴者不見國典明文,敢改先師手定本文乎?" 而置不復道矣.彼猶曰: "二品始得爲大碑,數百年來國朝士大夫家無不皆然,何得先師獨爲崔氏事而違之乎?" 然則今之金、尹、宋三家,或父爲大提學,身爲判書、直閣者,獨非國朝士大夫乎? 而尙不知有國典而爲柳氏家作之書之乎? 眞令人可笑.蓋以以上所列觀之,初不當以崔公碑事設論也,章章明矣.彼乃敢謂先師老不省博無識,破國典犯人罵,而任改手本,是可謂心中有師乎? 於是乎心愈悖而手轉滑,終至無所不至於晉州本,眞令人可痛.偶見柳碑,念到于此,聊以奉質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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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무자년 (1948) 與吳士益 戊子 듣자하니 서원을 건립하자는 통문이 귀측에도 도달한 것으로 아는데, 그들과 일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조정의 신하를 관찰할 때에는 그 집에 누가 머무는지를 보고, 외지에서 와서 벼슬하는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누구의 집에 머무는지를 보라."88)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사군자가 출사(出仕)할 때에는 먼저 추천해준 사람을 살펴야 하고, 남과 함께 일을 할 때에는 먼저 일을 주관하는 자를 살펴야 합니다. 지금 서원의 일을 주관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람들이 선사를 무함하고 원고를 고치는 자와 혈당을 맺는 것도 부족하여, 또 천고의 흉악한 역적 완용(完用)의 적퇴비(賊退碑)를 사들여 선사의 묘갈로 만들었으니, 이 짓을 차마 한다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온 세상의 공론 때문에 감히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가 간행한 〈연보〉 중 '묘갈명성(墓碣銘成)'의 '갈' 자는 바로 이 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니, 예전 그대로 일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또 저쪽이 증거로 내세운 이등박문(伊藤博文)의 동상을 때려 부수어 안의사(安義士)의 동상을 주조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당연한 의리가 되니, 그만두었던 것은 심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은 매번 이 일이 전적으로 전(田)에게 달린 것이지 유(柳)가 아는 바가 아니라고 하는데, 어찌 유에게는 그렇게 후하게 대하면서 전에게는 이처럼 박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천석 집안에서 조상의 가업을 지키며 완성하는 자는 명철한 결단이 아니고서는 또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친과 조부를 이어서 지키고 이루었던 것이 과연 어떠하였습니까? 그의 자세히 살피는 성격으로 볼 때에 비록 예사로 매매하는 것도 반드시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물며 지금 이것은 사안으로 따지자면 중대사이고 재물로 따지자면 거액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무슨 돌인지 살펴보지도 않고 사들였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춘추》에서는 행위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쁜 의도가 있으면 벌하였는데, 하물며 그 자취가 이미 드러난 것이야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으로 그와 가까운 인사들은 비록 그를 매우 아끼고 공경하지만, 또한 이 일을 두고서는 큰 실수를 면치 못한다고 하였는데, 형만 유독 이처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악을 감추어주는 것[隱惡]'은 비록 매우 좋은 제목이지만, 의식적으로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심술에서는 크게 경계하는 것인데 다시 일이 대의(大義)에 관계된 것이겠습니까? 오직 그대가 깊이 헤아려 주길 바랍니다.【완용의 적퇴비는 왜가 망한 이후 그의 묘 앞에서 뽑아간 것이다.】 似聞建院通文來到貴邊,未知欲與之同事否? 孟子曰: "觀近臣,以其所爲主; 觀遠臣,以其所主." 是故士君子出仕,先觀薦主; 與人同事,先觀主事者.今之主院事者誰? 人人也血黨於誣師改稿而不足,又買取千古兇逆完用賊退碑,用作先師之墓碣,是可忍也,孰不可忍也? 今雖以擧世公論,而不敢不罷,然彼刊年譜中"墓碣銘成"之"碣"字,正指是石而言,則依舊是成事.且彼邊所證打破伊藤博文銅像鑄成安義士像者,自成一副當義理,則其罷之者非心服也.兄每謂此事專在於田,非柳所知,何厚於柳而薄於田也? 世之千石之家守成祖業者,非明斷亦不能爾.彼之繼父祖能守成,顧何如也? 以其詳審之性,雖尋常買賣,必不疎忽.况今於此事則重大,財則巨額也,豈有不探知何石而買之之理乎? ?春秋?誅心,况跡已著乎? 是以彼近人士,雖甚愛敬彼者,亦云此事則不免大失手,兄獨如此何也? 隱惡雖甚好題目,然有意爲公,亦心術上大戒,而復事係大義者乎? 惟兄深諒之.【完用退碑,倭亡後援去於其墓前者.】 조정의……보라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 "내가 들으니, '조정의 신하를 관찰할 때에는 그 집에 누가 머무는지를 보고, 외지에서 와서 벼슬하는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누구의 집에 머무는지를 보라.' 하였다. 만약 공자가 옹저와 시인 척환을 주인으로 삼았다면 어떻게 공자라 할 수 있겠는가?[吾聞觀近臣, 以其所爲主, 觀遠臣, 以其所主. 若孔子主癰疽與侍人瘠環, 何以爲孔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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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경인년 (1950) 與吳士益 庚寅 일전의 편지에 박진호(朴震鎬)가 선사가 그의 조부 창암(蒼岩)에게 보낸 편지를 인쇄 배포하여 김용승(金容承)이 찬한 창암의 행장 중 "간옹에게 손색이 있다."는 말을 실증했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 너무도 통탄스러웠습니다. 대개 선사가 섬으로 들어간 것은 세상의 변란을 보기 싫어했기 때문이니, 이는 "태사(太師)는 제(齊)나라로 갔다."는 이하의 여러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은둔했던 것89)과 같으며, 이것으로써 스스로 큰 법도를 세우기를 마치 범찬(范粲)의 수레90)나 문산(文山)91)의 다락처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이 편지는 아마도 섬을 나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 의론의 가부를 물어서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어서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92)라는 극치를 구하고자 한 것이지, 반드시 섬을 나가고자 해서 물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사의 문인이 된 자들은 다만 굳건하게 의론을 세워서 현자를 모욕하고 선사를 범하는 마음을 주벌해야 할 따름인데, 어찌 그 문으로 달려가 말을 좋게 꾸며서 마치 실제로 섬을 나가려는 마음이 있고 실제로 대덕의 법도를 넘는 일이 있는 것처럼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박군의 조부가 선사를 존모했던 입장에 있었으니 어찌 감히 이와 같이 말했겠습니까? 권순명(權純命)과 유숙(柳塾)이 한 짓은 "우리 조부가 간옹(艮翁)을 존모했는지 여부는 우리 조부에게 물어본 뒤에 알 수 있다."고 박진호에게 비판을 받은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선사에게 누를 끼친 것으로는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습니까. 저쪽이 하는 것은 매번 대부분 이와 같으니, 또한 매우 통탄할 뿐입니다. 형은 이미 금지하지도 못하고 또 그들과 함께 하니, 이는 매우 잘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日前見喩,朴震鎬之印布先師與渠祖蒼岩書以實金容承所撰蒼岩行狀中"艮翁有遜色"之語,聞極可痛.蓋先師之入島,惡見時變,若太師適齊以下諸人之避地,非以此自立大閑若范粲之車、文山之樓也.且是書也,想是詢及出島諸議之可否,以求"無適莫惟義比"之極致,非必欲其出島而問之也.爲先師門人者,只當毅然立論,誅其侮賢犯師之心而已,豈可趨門善辭,有若實有出島之心,實踰大德之閑? 而但在君祖尊慕之地,豈敢如此之云? 若權、柳之爲也,宜其得吾祖之尊慕艮翁與否問於吾祖然後可知之譏於震鎬也.其貽累先師,孰甚於此? 彼之所爲,每多如此,亦甚痛歎.兄旣不能禁止,又與之同伴,此不思之甚也. 태사(太師)는……것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태사 지는 제나라로 가고, 아반 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 요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 결은 진나라로 가고, 북을 치던 방숙은 하내로 들어가고, 도고를 흔들던 무는 한중으로 들어가고, 소사 양과 경쇠를 치던 양은 해도로 들어갔다.[太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小師陽擊磬襄入於海]"라고 하였다. 범찬(范粲) 삼국 시대 위(魏)나라 충신으로 자는 승명(承明)이다. 태재중랑(太宰中郞)이 되었을 때 사마사(司馬師)가 국정을 잡고 위 제왕(魏齊王) 조방(曹芳)을 폐하여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기자, 병을 핑계하고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조정의 부름이 이어지자 미친 체하여 36년간 말하지 않고 수레 위에서 자며 땅을 밟지 않다가 생을 마쳤다. 《진서(晉書)》 권94 〈범찬열전范粲列傳)〉 문산(文山)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을 가리키며 문산(文山)은 그의 호이다. 남송(南宋) 말기에 원병(元兵)과 싸우다 잡혀가 3년 동안 연경에 잡혀 있을 때 절의를 지켜 다락에서 내려가지 않고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결국 피살되었다. 《송사(宋史)》 권418 문천상열전(文天祥列傳)〉 가함도……뿐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공자(孔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있어서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어서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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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인 평오준철에게 답함 을해년 (1935) 答族人平吾準喆 乙亥 보내온 편지를 받들어 읽고 그 시종을 살펴보았더니, "선사에게 인의(認意)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변론을 하지 않더라도 무함한 것임이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성토하는 글을 나오기 전에 이미 먼저 마땅히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다만 공정한 마음으로 공론을 지키며 치우치지 않은 자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히 경솔하게 동조하지 못하고 자중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명(高明)이 의리에 입각하여 판단한 것은 훌륭하였습니다. 《좌전》에 이르기를 "군주와 부모에게 무례를 범한 자를 보게 되면 마치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처럼 한다."93)고 하였습니다. 대저 스승과 군주와 부모는 하나입니다. 원수에게 인가받으려는 뜻이 있었다고 선사를 무함한 것은 무례한 것에 비할 뿐만이 아닙니다. 고명은 일찌감치 마땅히 배척해야 함을 알고 있으면서 먼저 곧바로 성토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과 같은 뜻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남이 성토하는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 마음이 공정하지 않고 의론에 치우친 점이 있다고 의심하여 그들과 일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관중(管仲)이 제(齊)나라 군주를 도와 초(楚)나라를 정벌해서 주(周)나라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공을 세웠는데, 공자는 그가 인의(仁義)를 빌려서 공을 이룬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지만 "누가 그의 인만 하겠으며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백성들이 지금까지도 그 은혜를 힘입고 있다."94)는 찬사가 있었습니다. 만약 공자가 당시 열국의 군주가 되었다면 어찌 제나라의 군주와 재상이 공정한 마음이 아니었다고 해서 소릉(召陵)에서 주나라를 높이는 동맹95)에 참여하지 않았을 수 있었겠습니까? 천리와 인욕은 행위는 같으나 실정이 다릅니다. 비록 함께 일을 하더라도 그는 본디 사적인 것을 위하고 나는 본디 공적인 것을 위하니 두 가지가 서로 방해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주나라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은 대의(大義)이고, 선사를 위해 무함을 변론하는 것도 대의입니다. 진실로 대의와 관계되고 똑같이 왕의 신하이고, 똑같이 문하의 제자라고 한다면 너는 사적이고 나는 공적임을 따지고 비교하여 차이를 두고서 "나는 자중하여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 됨이 분명합니다. 제나라 군주가 시해를 당하고 삼환(三桓)이 참람하게 권력을 훔친 것에 대해 만약 진항(陳恒)을 토벌하고96) 삼도(三都)를 허물려는97) 청이 먼저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목적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공자는 이러한 이유로 자중하지 못해 자신을 속이게 될까 염려하여 토벌하고 무너뜨리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오히려 방증하고 차용한 것입니다. 맹자가 사설(師說)을 물리친 것과 같은 경우는 심지어 사람들이 모두 [양주와 묵적의 설을]막아야 된다고 말할 것98)을 바라기까지 하였지만, 어찌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마음과 치우치지 않은 의론을 갖추겠으며, 또한 어찌 자중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아서 더불어 일을 함께 하기를 바란 것이겠습니까? 우옹(尤翁 송시열)이 박화숙(朴和叔 박순(朴淳))을 꾸짖어 말하기를 "만약 반드시 지언(知言)과 양기(養氣)가 맹자의 경지와 같아진 뒤에야 이단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사사(士師)가 된 뒤에야 군주를 시해한 역적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인류가 어찌 모두 이단이 되는데 이르지 않겠는가."99)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이미 지언과 양기를 할 수 없다면 용심(用心)과 지론(持論)이 어찌 모두 공정하고 치우치지 않는 곳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옹은 더불어 일을 함께 하기를 청하였으니, 어찌 자중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택당(澤堂) 이문정공(李文靖公 이식(李植))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일을 논하여 말하기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만이 학문을 이어 받았고, 그 나머지는 당파에 휩쓸렸다."100)고 하였습니다. 지나치게 생각하여 도모하지 못함이 애석합니다. 아, 지난날의 일에 죽을힘을 내서 심력을 완전히 소진하고 큰 재앙을 만나 거의 죽을 뻔한 자로는 그 누가 나와 같은 자가 있었습니까? 내가 공적이었느냐 사적이었느냐, 치우쳤는냐, 공정했느냐는 지금과 후대의 평가를 공손히 기다려야 하고 저가 스스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고명이 의론한 바로 헤아려 보면, 마음이 공정하지 않고 지론이 치우친 것은 또한 저만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명은 옛 사람처럼 함께 동거했던 친족이면서 벗으로서 함께 모여서 학문을 강습한 우의가 성기지 않았는데, 10여 년 동안 한 마디도 경계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건대 저의 자만하는 소리와 성낸 낯빛이 사람들이 다가설 수 없게 하였음에도 미혹되어 스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이것은 바로 스스로 반성하고 돌이켜 구해야 할 점입니다. 저는 이미 은혜로운 경계의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아울러 성대한 이러한 문자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피차간에 견해가 똑같은 줄로만 믿고서 일찍이 헤아리고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지난번 솔직한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 살펴보건대, 이는 어찌 안색을 보지 않고 말한 장님[瞽]101)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이미 말을 꺼냈으니, 청컨대 고설(瞽說)을 다하여 솔직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진영이 선사를 무함한 것에 대해 그대는 이미 마땅히 배척해야 할 죄라고 말했으니 굳이 다시 제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호남과 영남에서 서로 간행을 한 것은 함께 목욕을 하면서 상대가 벌거벗은 것을 비웃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대저 문고(文稿)를 인쇄하여 간행하는 것을 그가 알고서 금하지 않았으니, 그의 입장에서 말하면 비록 묵허(黙許)했다고 하겠지만 나의 입장에서 말하면 마땅히 내가 내 일을 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옳다 하여 이기기를 구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하다가 성격으로 굳어진 오진영도 오히려 "천하에 어찌 침묵을 기뻐하지 않으면서 인허를 기뻐하는 것처럼 인지상정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겠는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침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견주어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대의 인정에 또한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선사의 "[청원하여 간행 반포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작은 차마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고, 간행하지 않고 보관해두는 것을 크게 차마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이미 천리와 인심에 편안한 바가 아닙니다. 또 간행하는 것만 전해지고 보관해둔 것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고문상서(古文尙書)》 이하는 모두 오늘날에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피차간에 상호 공과 죄가 있어서 서로 가릴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감히 묻건대 오진영에게 어떤 공이 있고 호남에 어떤 죄가 있습니까? 원고를 간행한 것이 오진영의 공이라고 말한다면 그가 선사의 글을 고쳐 어지럽힌 것은 그대도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현동(玄洞)에서 간행한 것을 호남의 죄라고 말한다면 침묵을 기뻐하고 인허를 기뻐하지 않은 것은 오진영도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공과 그 죄가 서로 가릴 수 없는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 무함을 변론하면서 선사의 누가 됨을 생각지 않고 이기는 것만 힘쓴다면, 거짓을 일러 바르다고 하는 것이 마치 위에서 논한 마음이 공정하지 않은 경우와 같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사람이 또한 능히 무함을 변론할 수 있으면 무함을 변론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심술이 은미하여 진실로 타인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기는데 힘쓰는 사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시비(是非)를 결정하고 사정(邪正)을 정하는 날에 다만 마땅히 공자가 "그 행하는 바를 살핀다."고 하고 주자가 "선을 행한 자는 군자가 되고 악을 행한 자는 소인이 된다."라고 한 가르침102)에 의거하여 따르거나 따르지 않음을 결정해야 할 뿐입니다. 연유한 바를 관찰하고 편안히 여기는 것을 살펴서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그 실정을 숨길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절로 다른 날에 별도로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대저 고명은 선사를 무함한 것에 대해 그다지 통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견해가 이와 같은 것이니, 스승의 원통함을 지어낸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변론한 것이 선사의 누가 됨을 두려워한 것에서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양주와 묵적이 주장한 위아(爲我)와 겸애(兼愛)도 오히려 그 폐단이 임금과 부모의 존재를 무시하는 데로 흘러갔습니다. 오진영이 인가와 관련하여 선사를 무함하고 선사의 원고를 고친 것은 바로 당일에 선사를 무시했던 것이 되니, 그 경중이 또한 서로 현격할 뿐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고명은 이내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고 의심하니,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묻건대, 저 무리의 이른바 정재(靜齋)의 유서(遺書)라는 것에 대해 감히 가리켜서 석농(石農)에게 선사가 홀로 명한 것이 있었다고 하지도 못하고, 감히 가리켜서 유서가 없다고 하지도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난 것입니까? 이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여자 종이 석개(石介)의 글씨를 몰래 익힌 것이다.'103)라는 등의 설을 꺼리고 실로 유서를 독실하게 믿으면서 '잘 헤아려서 하라.'고 하거나 '불언지교(不言之敎)'라고 한 등의 설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오진영의 이른바 "말은 구별이 부족하고 문장은 표현이 허술하였다.[語欠區別, 命辭疎忽]"라고 한 것은 과연 자신을 숨기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계책이 아니고 명백하게 무함을 자복하는 설이 되겠습니까? 그 무리가 무함을 믿고 그 수괴가 불복함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고명은 마침내 "양주와 묵적처럼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았고, 양주와 묵적처럼 많은 사람을 미혹함이 없었다."라고 하고, 결론을 맺기를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 누가 감히 다른 날에 불 꺼진 재에 입김을 불어서 불을 일으키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날은 논할 것이 없고 본디 많은 사람을 현혹시켰으니 활활 들판을 태우는 것처럼 그 기세가 두려워할 만한 것이 바로 오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신헌(愼軒)의 편지에 "영남의 당은 수백 인이고 호남의 당은 수십 인이다. 설령 호남이 많고 영남이 적더라도 건장한 오룡(五龍)이 날뛰는 한 마리 파리한 돼지를 이길 수 없는데104), 하물며 영남이 호남보다 열배는 많으니 더욱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명은 오히려 "맹자가 양주와 묵적에 대해 변론한 것처럼 반드시 힘써 변론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또 "이미 들어가 초제(招提)를 따랐다."105)는 기롱을 하였습니다. 감히 묻건대 "오진영과 그 당이 이미 우리에 들어갔다."고 한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만약 자복한 문자가 있다면 어찌 적어서 보여주지 않습니까? "말은 구별이 부족하고 문장은 표현이 허술하였다.[語欠區別, 命辭疎忽]"는 여덟 글자를 가리켜 우리로 들어온 증거로 삼는다면 이것은 자신을 숨긴 계책을 다스린 것이지 자복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의 말만 그러할 뿐이 아닙니다. 당초에 고명은 마땅히 배척해야 한다고 말하였고 성토하여 배척한 자가 공이 있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모두 매우 의심스러운 말입니다.제가 듣기로, 고명의 이 편지는 나재장(懶齋丈)이 헤아려 수정하고 윤색하였으며, 연심장(鍊心丈)이 그 아들에게 "평오(平吾)의 편지는 말이 공평하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용심(用心)이 공평한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며 지론(持論)이 치우치지 않은 것도 다른 편지가 아님을 알겠습니다. 부북(扶北 부안)의 여러분이 많은 부정한 무리와 뒤섞여 있는 이런 시기에 이것으로써 한 지역의 정론(定論)을 삼았기 때문에 이런 마음 가득한 많은 의심을 낱낱이 들어 우러러 질문하여 공정한 의론을 더욱 들었으면 합니다. 바라건대 여러분들과 함께 살피고 같이 의론하여 일일이 밝게 가르쳐 주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사로운 견해라고 단정하여 물리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편지의 말미에 "오랑캐의 재앙이 아침저녁 사이에 임박하여 있으니 동실(同室) 내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양주와 묵적도 똑같이 요순(堯舜)을 옳게 여겼고, 흑수(黑水)106)도 똑같이 공맹(孔孟)을 존숭하였으니, 애당초 동실이 아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맹자와 우암이 전국시대의 환란으로 죽은 시체가 들판에 넘쳐나며 청나라 오랑캐가 위협하여 상하가 위태롭게 떨던 때에 급급하게 변론하여 배척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로 외부의 재앙을 근절하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내부를 깨끗하게 만들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오랑캐의 재앙은 화를 당하는 것이 신명(身命)이고, 내부의 사문(斯文)의 재앙은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은 심술(心術)입니다. 마음과 몸은 이미 내외의 구분이 있으니, 마땅히 우려해야 하는 것에 어찌 완급의 차이가 없겠습니까? 고명은 또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奉讀來敎,察其始終,則以爲"謂師有認意,不待辨而誣已明,故討章未出之前,已先言其當斥也.但以不知以公正之心持論不偏者爲誰,故不敢輕易左袒,而欲自重而不自欺也".異哉, 高明之裁義也! 《傳》曰: "見無禮於君親者,若鷹鸇之逐鳥雀." 夫師與君親一也.誣師以有意讐認,非無禮之比而已.高明早已知其當斥,而不先卽討斥,旣少鷹鸇之志矣.至於人之討之也,猶疑其心不公論有偏而不與之同事.試思之.管仲相齊君伐椘國,立尊周攘夷之功,孔子非不知其假借仁義而有"如其仁,如其仁,民到于今賴之"之贊.如使孔子爲當時列國之君,則豈可以齊之君相非公心之故不參於召陵尊周之同盟哉? 天理人欲,同行異情.雖與之同事,彼自爲私,我自爲公,兩不相妨.蓋尊周攘夷,大義也; 爲師辨誣,亦大義也.苟係大義,同爲王臣,同爲門弟之地,其不可計較於爾私我公之間而異之曰"我欲自重而不自欺也",明矣.齊君見弑,三桓僭竊,若使討陳恒、墮三都之請,先出於他人有爲之私,則孔子以此而恐其不自重而自欺也,不與於討墮之役歟? 然此猶是旁證借據.若乃孟子之闢邪說也,則至有望於人人之言距,豈以人人者皆有公正之心、不偏之論,亦豈不欲自重而不自欺也而望與之同事哉? 尢翁之責朴和叔曰: "若必知言養氣如孟子而後,乃能攘斥異端,則是必士師然後乃治弑君之賊,人類幾何其不盡哉?" 夫旣不能知言養氣,則用心持論,安得盡出於公正不偏? 然而尢翁請與之同事,豈不欲自重而不自欺也而然哉? 澤堂李文靖公論東西人事,而曰: "沙溪學也,其餘黨也." 惜乎其過慮而不之圖也.噫! 向者之役,出死力而竭盡心膂,遭大禍而幾殞性命者,孰有如鄙人? 吾之是公是私是偏是正,恭俟今與後評定,而非吾之所可自明者.但以高明所論者律之,心不公正,持論偏仄,宜亦莫如鄙人.而以高明僅過古人同居之親,加以麗澤之有誼,盍簪之不疎,十餘年間,曾不聞一言之箴規.意者鄙人訑訑之聲,悻悻之面,有足以拒人者,而迷不自覺歟? 此正內訟反求處也.鄙人則旣未聞惠箴之及,并不見盛作此等文字,故只信彼此之同見,不曾揣度疑難,而向呈率直一書矣.以今觀之,其何免未見顔色之瞽者也? 雖然,旣發端矣,請得以罄盡瞽說而質之.震之誣師,賢雖不討,旣謂當斥之罪,則不須更提.至於所謂"湖嶺互刊,同浴而譏裸"者,何也? 夫印行文稿,而彼知而不禁,則自彼言之,雖曰默許,自我言之,當曰吾爲吾事.故雖以震之自是求勝習與成性者,猶謂天下安有不快默而快認許之乖常人情哉? 今乃將此二者,比而同之,賢之人情,不亦乖乎? 以先師之"決是自辱"爲小不忍,以不刊而藏之爲大不忍,則旣非天理人心之所安.且刊行者獨傳,而藏之者不傳,則自?古文尙書?以下,皆不得傳至于今,豈有是理? 又謂之"彼此互有功罪而不相掩",則敢問震有何功,而湖有何罪也? 謂刊稿爲震功,則改幻師文,賢亦云然; 謂玄刊爲湖罪,則快默而不快認,震亦云然.其功其罪,安有不相掩者乎? 辨誣而不以師累爲念,而涉於務勝,則僞也之喩正,如右所論心不公正者.雖然,人也能辨誣,則辨誣已矣.其心術隱微,固非他人之所易知.果使出於務勝之私,當決是非定邪正之日,只當據孔子"視其所以"、朱子"爲善者爲君子,爲惡者爲小人"之訓,以從違之矣.觀所由,察所安,而使人不敢廋其情,自當別論於他日者也.大抵高明不甚痛迫於師誣,故持見如此,觀於不認做師寃而反恐辨之者爲師累,可見矣.楊墨之爲我兼愛,猶爲流獘之無君父; 震泳之誣認改稿,卽爲無師於當日,其輕重又不啻相萬也.高明乃以擬比不類疑之,吾不知其何說也.敢問其徒所謂靜齋遺書,不敢指以爲有石農獨命,不敢指以爲無遺書,從天降從地出? 可疑之大者.何憚爲女奴石書習等說,果是篤信遺書,而不以"料量爲之"、"不言之敎"之云爲是者乎?當人所謂"語欠區別,命辭疎忽",果是非逃遁眩人之計而爲明白服誣之說乎? 其徒之信誣,其魁之不服,固若是也.高明乃以爲"不自爲是如楊墨,無迷惑者衆如楊墨", 終之謂"不足取信,孰敢吹燼起火於他日乎?" 吾則以爲未論他日,自是惑衆,燄燄燎原,其勢之可畏者,正在今日.日前愼軒書有云: "領黨數百人,湖黨數十人.正使湖多而領少,五龍矯矯不能勝一羸豕之蹢躅,而况領多於湖十倍者乎?" 而高明猶有"不必力辨如孟子之於楊墨"之說焉,又加以"旣入從招"之譏焉.敢問"震及其黨旣入其苙"者,指何而言? 若有自服文字,何不錄而示之? 如指"語欠區別, 命辭疎忽"八字,爲入苙之證,則此治逃遁之計而非自服之說.不惟如吾言.當初高明之言其當斥, 而謂討斥者有功,何也? 此皆甚可疑也.竊聞高明此書,懶齋丈商訂修潤之,鍊心丈對家兒言平吾之書說得公平.然則吾知其用心公平者果非他人,持論不偏者亦非他書.而當此扶北僉座混同衆陰之秋,以此爲一方之定論,故凡此滿腹羣疑,枚擧仰質,欲以益聞公正之論.願與僉座同看共議,一一明敎之,不宜槩以偏私之見而揮之也.書末喩以"夷狄之禍,迫在朝暮,不可爲同室之鬪".然楊墨同是堯舜,黑水同尊孔孟,未始非同室也,而孟子、尢庵汲汲辨斥於戰國禍亂殺人盈野,淸虜威嚇上下懍懍之日者,何也? 正以欲絶外禍,宜先淸內故也.外而夷狄之禍,所禍者身命也; 內而斯文之禍,所禍者心術也.心身旣有內外,則所當憂者,豈不有緩急乎? 未知高明又以爲如何. 군주와……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기사에 "군주에게 예가 없는 자는 주살하되 매가 새를 뒤쫓아 낚아채듯이 하라[無禮於其君者, 誅之, 如鷹鸇之逐鳥雀也]"라고 하였다. 누가……있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보인다. 공자는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만큼 어질겠는가. 누가 그만큼 어질겠는가.[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라고 하였고, 또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라고 하였다. 소릉(召陵)에서……동맹 소릉의 맹약은, 제 환공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의 사자 굴완(屈完)과 소릉에서 맹약을 매었는데, 이때 환공은 초나라가 주나라 왕실에 공물(貢物)을 바치지 않고 남쪽으로 정벌을 계속하는 죄를 물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4년 진항(陳恒)을 토벌하고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진성자(陳成子)가 자신의 임금인 간공(簡公)을 시해하자,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공(哀公)에게 고하기를 "진항이 자기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토벌하소서."라고 하였다. 삼도(三都)를 허물려는 노나라 삼가(三家 계손씨(季孫氏), 맹손씨(孟孫氏),숙손씨(叔孫氏))의 읍(邑)을 강등시킨 일을 말한다. 노 정공(魯定公) 13년에 공자가 삼가(三家)가 너무 참람하다 하여 숙손씨의 후읍(郈邑)과 계손씨의 비읍(費邑)과 맹손씨의 성읍(城邑)을 허물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기(史記)》 卷47 〈공자세가孔子世家〉 맹자가……것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는 "능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문도이다.[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也]"라고 하였는데, 주자의 주(註)에 "《춘추》의 법도에 따른다면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다 토벌할 수 있으니, 꼭 사사(士師)여야 할 필요는 없다.[如春秋之法 亂臣賊子 人人得而討之 不必士師也]"라고 하였다. 만약……않겠는가 《송자대전(宋子大全)》 권67 〈답박화숙(答朴和叔)〉에 보인다. 사계(沙溪)만이……휩쓸렸다 《송자대전(宋子大全)》 권203 〈택장이공시장(澤堂李公諡狀)〉에 "오늘날 율곡을 높이는 사람은 사계만이 그 학문을 이어받았고, 그 나머지는 당파에 휩쓸렸다.[今之尊栗谷者.沙溪學也, 其餘黨也]"라는 택당의 말을 원용하고 있다. 안색을……장님 《논어(論語)》 〈계씨(季氏)〉 에, 공자는 "군자를 모실 때 세 가지 허물이 있다. 말을 해서는 안 될 때 하면 조급함이고, 말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으면 숨기는 것이고, 안색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을 장님이라 한다.[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 謂之躁, 言及之而不言, 謂之隐, 未見顔色而言 謂之瞽]"라고 하였다. 공자가……가르침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공자가 말하기를 "그 행하는 바를 보며 그 연유하는 바를 관찰하며 그 편안히 여기는 바를 살피면 사람이 어찌 숨기겠으며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라고 하였다. 주자는 "그 행하는 바를 본다.[視其所以]"는 구에 대해 주(註)하기를 "선을 행하는 자는 군자가 되고 악을 행하는 자는 소인이 된다.[爲善者爲君子, 爲惡者爲小人]"라고 하였다. 여자 종이……것이다 송(宋)나라의 간신 하송(夏竦)이 여자 종으로 하여금 습자(習字)를 하도록 하여 석개(石介)를 무함하게 한 일을 가리킨다. 《송사(宋史)》 권432 〈석개열전(石介列傳)〉 건장한……없는데 《주역(周易)》 구괘(姤卦) 초육(初六)에 "아무리 파리한 돼지라도 언제든 날뛰려는 심보를 갖고 있다.[羸豕孚蹢躅]"라는 말이 나온다. 오룡(五龍)은 다섯 용이라는 말인데, 이 괘가 초효(初爻) 외에는 다섯 개의 효가 모두 양(陽)이기 때문에 다섯 군자라는 뜻으로 오룡이라고 한 것이다. 이미……따랐다 초제(招提)는 절 또는 승려의 이칭이다. 두보의 유용문봉선사(遊龍門奉先寺)에 "이미 초제를 따라 노닐었고 다시 초제의 경내에 유숙한다.[已從招提遊 更宿招提境]"라고 하였다. 흑수(黑水) 윤휴(尹鑴)가 여주(驪州) 여강(驪江)에서 살았으므로 그를 배척해서 일컫는 말이다. 즉, 여(驪)는 검다[黑]는 뜻이 있으므로 흑(黑)으로 바꾸어 소인(小人)임을 암시한 것이고 강(江)은 물[水]이므로 이를 합하여 흑수라 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권 아무개에게 답함 갑자년 (1924) 答權某 甲子 보내온 편지에 음양모순(陰陽矛盾)과 조변석개(朝變夕改)의 소인으로 나를 지목한 것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고서 또 환란을 초래한 도적으로 나를 비기었습니다. 대저 생민이 있은 이래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선이나 악으로 이름하지 못하고 죽은 자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소인이나 도적의 이름을 얻는 것도 본디 쉽지 않으니, 우리 형의 은혜는 어찌 이리도 두터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이름이란 것은 실질의 손님입니다.107) 만약 단지 그 이름만 누리고 그 실질을 규명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음식을 먹고도 그 맛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감히 질문하여 소인이 된 실질을 알고자 하니, 끝까지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대저 내가 김용승(金容承)과 절교한 것은 내가 나의 일을 한 것인데 무슨 일을 입증한단 말입니까? 남이 김용승과 절교하지 않은 것은 그가 스스로 잘못한 것인데, 내가 어찌 그를 참견하겠습니까? 다만 음성의 오진영이 나에게 김용승을 당인으로 삼은 죄목을 뒤집어씌우고, 심지어 '영좌(靈座)에 들이지 말라.'는 설을 가지고 무함을 성토하고 제사에서 내친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선사를 잊고 김용승을 당으로 삼은 실질적 죄상은 생각지도 않았으니, 이미 말할 가치도 없었습니다. 형은 음성에 대해 복심으로 충직하게 믿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형의 편지에 "기쁘고 시원하게 씻어내었다."고 한 것과 음성의 편지에 "종현(鍾賢)의 처사가 옳다."고 한 말을 인용하여 내가 김용승과 절교함에 그 기록이 있음을 증명하였고, 또 김용승이 연전에 한농노(漢農老)라고 부른 것과 마음속에 선사를 무시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김용승을 허용하여 다시 성토하지 않고 김용승에게 조용하게 잘못을 고칠 것을 권면한 것을 가지고 음성이 전후로 김용승을 당으로 삼은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양측이 계속 대변(對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곧 "한 구의 몇 마디 말로 형을 팔고 참작해서 말을 한 뜻을 살피지 않았다."라고 하고, 곧장 들어가는 것을 밀치고 막은 일, 동문으로 받든 일, 제문을 성토한 것 등으로 음양모순과 조변석개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진영의 글에 "만약 이후에 선사를 범한다면 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토죄하겠다."고 한 말을 살피지 않고, 감히 김용승과 절교하지 않은 것을 심술의 병통과 환란을 초래한 것으로 얽어맸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생각해보고 여러 가지를 참고하여 구해보아도 매우 괴이합니다. 대저 형이 죄를 판결한 것도 그 자체로 얼마간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구의 몇 마디 말이 죄가 된다면 전편의 마음을 통틀어 거론하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형의 이 편지 전편을 모두 읽어보니, "기쁘고 시원하게 씻어내었다."는 등의 말에 참작한 뜻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죄를 낱낱이 따져본다." 등의 말에도 저의 뜻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형을 판 것으로 김용승과 절교한 증거로 삼아 죄를 주었으니, 마음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또 곧바로 들어간 것은 그러하지만, 밀치고 막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108)고 했습니다. 어찌 물러나 기다리며 스스로 기가 꺾이는 일을 하였겠습니까? 애당초 막았던 것이 없었으니, 또한 어찌 밀치고 막은 이치가 있겠습니까? 제가 실제로 죄가 있다면 음성 쪽의 여러 사람이 등 뒤에서 걷어차며 내쫓기를 형이 김용승에게 했던 것처럼 하는 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인데, 마침내 내가 변론을 한 번 하자 입을 다물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저는 이미 김용승과 절교를 했고, 김용승을 만나서 제문을 본 것은 곧 당일 풍파가 있은 뒤에 있었습니다. 형은 어떻게 김용승을 만나 제문을 본 죄를 미리 알아서 음성 쪽 사람들과 마땅히 영좌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벌을 정했단 말입니까? 그것도 또한 이른바 "지극히 성실하면 미리 알 수 있다."109)는 도인 것입니까? 또 그가 천리 멀리서 상제(祥祭)에 달려와 제문을 가지고 사죄를 하였으니, 단지 그가 멋대로 들어온 것을 추궁만 하고, 다시 그 글을 살펴서 진퇴를 결정해도 늦지 않았는데, 형의 무리들이 영전에서 먼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찬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형은 이전 편지에 "김상(金庠 김용승)이 강리(講里)에 사죄하는 것을 뜻밖에도 기쁘게 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리에 사죄를 한 것은 기쁘게 들었는데, 선사에게 사죄를 한 것에 대해서는 기쁘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먼저 단지 곧장 발로 찼으니, 참으로 음성을 중시하고 선사를 경시한 것입니다. 저는 당일의 일을 늦게 비로소 와서 보았지만 이 의리에 대해서는 소견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미 김용승에게 경솔하게 곧장 들어간 것은 먼저 그 도리를 잃은 것이라고 질책하였고, 또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스스로 큰 죄에 빠졌다고 질책한 뒤에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제문을 읽게 하였습니다. 송춘계장(宋春溪丈)은 "글에서 노주(老洲)를 배척하고 자복하지 않는 것은 흠이 되는 일이다."라고 했는데, 저도 자세히 살펴보니 춘계장의 말이 진실로 옳았습니다. 다음날 또 그가 끝까지 "사우간(師友間)으로 선사를 대하였다,"는 설을 고치지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찌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죄를 준다면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말을 나눈 것은 있었지만 동문으로 대한 것은 없었으며, 제문을 본 것은 옳았지만 제문을 성토한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형이 마침내 대략 서너 글자를 가지고 본래 면목을 바꾸었는데 마음을 먹고 한 것입니까? 이것은 형이 사람을 죄에 빠뜨린 것입니다. 또 호중(湖中)에 있었을 때에는 "성선(性善)【김용승의 옛날 자(字)라고 하는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김용승의 옛날 자인지도 모릅니다.】이 내방하였으니 나에게 술이 있다면 마셔야 하고 밥이 있으면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고 【정돈영(鄭敦永)이 신헌(愼軒)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선이 지난번 강리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서 보았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으며,【박창현(朴昌鉉)이 저에게 대답한 말인데, 이 때 정돈영(鄭敦永)과 오해겸(吳海謙)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김용승과 작별할 때에 간곡하게 나에게 방문을 부탁했다."고 한 자도 있었는데, 【이광규(李光珪)가 화도(華島)의 강변에서 김용승과 작별할 때 이 말이 있었는데, 김(金)은 "김용승과 당이 되는 것인데 어찌 하겠는가."라고 하였고, 이(李)는 "군은 다른 말을 꺼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저와 수십 명이 함께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그 죄를 묻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친근하게 서로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호남(湖南)에 있을 때에는 김용승이 잠깐 지나는 길이었는데 중벌이 갑자기 가해지고 엄한 성토가 뒤따랐으니, 또한 하나의 괴이한 일이었습니다. 아, 저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김용승이 애초에 오진영에게 보낸 선사를 무함하는 글을 꺼내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가 선사를 배반한 죄를 성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제(祥祭)에 달려간 처음에 음성을 성토한 말을 재차 꺼내지 않았다면 분명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호남인이 애당초 인의(認意)와 인교(認敎)로 음성을 꾸짖지 않았다면 김용성을 당으로 삼았다는 앙갚음이 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제를 치르는 날 재차 음성을 내치는 일이 없었다면 김용승을 당으로 삼은 벌이 반드시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상천하에 오직 일음(一陰 오진영)만이 홀로 존귀하고 세상에 다시 우리 육양선생(六陽先生 간재)이 있음을 알지 못하니, 아! 통탄스럽습니다. '음양모순과 조변석개, 심술의 병통과 환란의 초래[陰陽變改心病亂招]'는 형이 나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비록 사라지지 않을 대필(大筆)의 은혜를 지극히 감사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옹졸하고 융통성이 없는 저가 마침내 그 이유도 모르고서 염치없이 받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아니고, 또 저가 위에서 진술한 바가 어떠합니까? 괴이할 뿐입니다. 여러 의심을 이미 해소할 수 없다면 여덟 글자의 미명(美名)은 형과 음성 오진영에게 바치고 싶지만, 이미 주었는데 다시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천하에는 끝내 정명(定名)이 없겠습니까? 각각 스스로 자신의 심술과 언행 사이에서 돌이켜 구한다면 이 이름이 합당한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불처럼 뜨겁다가 얼음처럼 차갑기가 날로 심해집니다. 어느 날 강물이 줄어들어 돌이 드러나는 것처럼 진상이 밝혀지는 일은 아득히 정해진 기일이 없으니, 또한 어찌 쉽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다만 피차 죽고 나서 백 세대가 흘러 의론이 정해질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영남에서 문집을 간행하지 못하게 된 것은 뇌물과 관련한 분노와 비문과 관련한 유감 때문입니까? 호남이 인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뇌물과 관련한 분노와 비문과 관련한 유감이 만약 없었다면 비록 인가하지 않는 곳이 있더라도 장차 듣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오직 인가를 조심한 곳은 반드시 영남입니다. 영남의 의리라는 것은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내가 비록 한심하지만 인가하지 않은 호남을 버리고 영남에서 일을 함께 한다면 하늘이 분명 싫어할 것입니다.위로 선사를 범했다니 이 무슨 말씀입니까? 저의 편지에 "선사가 이를 조금도 생각지 않았는데 조만간 하라고 명했다는 것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라고 했던 것은 선사께서 분명 이러한 일이 없었음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천하는 문자가 똑같은데, 이를 두고 윗사람을 범한 말이라 한다면, 사람들 중 그 누가 이를 믿겠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來書以陰陽矛盾朝變夕改之小人目我,猶以爲未足也,又以亂招之盜賊律我.蓋自生民以來,林林蔥蔥,無善惡可名而沒者何限? 得小人盜賊之名,亦自不易,吾兄之賜一何厚也? 雖然,名者,實之賓也.若徒享其名,而不究其實,是猶食之而不知其味也.玆敢質之,欲知所以爲小人之實,幸有以卒敎之也.夫我之絶金,吾爲吾事,何事立證? 人不絶金,彼自失之,我何管他? 但陰吳之勒我以黨金之罪,至以几筵勿入之說,加之作討誣黜祀之報,而不念自家前後忘師黨金之實罪,已甚無謂.而兄之於陰,是腹心忠諒者.故引兄書"喜豁洒然"、陰書"鍾賢得之"之語,證吾絶金之有書; 又擧知其年前呼漢農老心中久無先師,而許金不復討,勉金安靜改過,證陰前後之黨金.此兩造對辨之不得已者,乃承以孤行單辭賣兄而不察遺辭斟酌之意,及排閑直入、逢承盍簪、討祭文爲陰陽變改.又以不察陰書"若後侵師, 吾并以千人討之"之語,而敢構以不絶金爲心病亂招.反覆思之,參互求之,深怪.夫兄之折獄奏當,亦自一般差異也.夫孤行單辭之爲罪,則通擧全篇之心不爲罪.兄之此書,通讀全篇,不惟"喜豁灑然"等語之不見有斟酌意,至於"歷數其罪"等語,有非盡鄙意者.今反以賣兄爲絶金之證見罪,反顧于中,能無愧負乎? 且直入則是然,而排閑則非其實也."自反而縮,雖千萬人吾往矣." 有何退待自沮之爲乎? 初無有拒閑者,則又何有排閑之理乎? 使此漢而有實罪也,則陰邊諸人踢蹴背後而逐之,如兄之於容承者,必有其人,乃被鄙辨一破而噤不得措一辭者,何也? 且弟旣已絶金矣,逢金而見祭文,乃在當日風波之後,兄何以預知逢金見文之罪,與陰邊人定不當入靈之罰也? 其亦所謂至誠前知之道歟? 且彼千里赴祥操文謝罪者,只當責其擅入,更爲之觀其文而進退之,未晩也.兄輩之拳踢,先動於靈前者,何也? 兄之前書,不曰金庠之謝罪講里儻喜聞乎? 謝罪乎講里則喜聞之,謝罪乎先師,則不惟不喜聞,乃先直踢之,其眞重陰而輕師也.弟於當日之事,晩始來見,然有見於此義也,故旣責金以率爾直入先失其道,又責以不聽吾言,自䧟大罪,乃令閱其文于衆中.宋春溪丈曰:"文中斥老洲不服,是爲欠事." 弟亦審視,春言良是.翌日,又聞其終不改師友之說,故知其末如之何,而斷置之矣.以此而見罪,則不敢辭矣.然通語則有矣,盍簪則未也,見祭文則是矣,討祭文則非也.兄乃略將數三字頓換本面目,有心哉? 兄之䧟人也.且在湖中,則有言性善【容承舊字云.此中人并與容承舊字而不知.】來訪,吾有酒則當飮之,有飯則當食之者【鄭敦永對愼軒云然.】; 有言性善之向到講里,吾往見之者【朴昌鉉對弟言,如此時鄭敦永、吳海謙在座.】; 有作別容承丁寧託以訪我者,【李光珪於華島江邊別容承有此言,金言其於黨金何, 李言君勿出別言.弟及數十人所共見聞者.】 非惟不問其罪,反與之爾我相眷戀.在湖南,則容承之風影乍過,重罰輒加,嚴討并隨,亦一可異也.噫,吾其知之矣.使金初不發封陰誣師之章,必不聲其倍師罪矣.再不發討陰言於赴祥之初,必不遭拳踢之加矣.使湖南人初無認意敎之責陰,黨金之報非所及也.再無黜陰於祥祀之日,黨金之罰必不到也.天上天下,惟一陰獨尊,不知世間復有我六陽先生,鳴呼痛哉! 蓋陰陽變改,心病亂招,兄之所以名我者,雖極感大筆不朽之惠,自念拙拙硜硜,竟不識所以然而冒受之,有非實心,且弟之右陳何也? 可異之.羣疑旣不可觧,則八字美名欲奉納於兄與陰吳,然想不欲旣與而還取.然則天下終無定名乎? 各自反求於心術言行之間,則可知斯名之當否矣.火熱氷寒日甚,一日水落石出,漠無定期,亦何可易也? 只當俟彼此蓋棺之日、百世論定之時而已.嶺刊之敗,爲賂怒碑憾耶? 爲湖之有不認耶? 賂怒碑憾之若無乎,雖有不認地,將如不聞也者,而惟認是謹者必嶺也.嶺之義理,固如是矣.吾雖無似,舍湖不認而同事於嶺,天必厭之.上犯先師,此何謂也? 鄙書所謂"曾謂先師少不念此而命遲速間爲之乎"者,明先師之必無是事也.天下之文同也,以此爲犯上語,則人誰信諸? 令人失笑. 이름이란……손님입니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이름이란 실질의 손님인데, 나보고 장차 손님이 되라고 하는 말인가.[名者, 實之賓也, 吾將爲賓乎]"라는 말이 나온다. 스스로……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의 방법으로 용기에 관해 논하기를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하였다. 즉 자신이 떳떳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도 두렵지 않다는 기상이다. 지극히……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4장에 "지극히 성실한 도(道)는 미리 알 수 있다. 국가가 흥성하려면 반드시 복된 조짐이 생기고, 국가가 멸망하려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징조가 생긴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孽]"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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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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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오 아무개에게 보냄 갑자년(1924) 6월 與吳某 甲子六月 저는 귀측에서 호당(湖黨)으로 지목한 자이니 진실로 오래 전에 집사에게 배척을 당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구한 마음에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기에 감히 이렇게 무릅쓰고 말씀드리니, 살펴주기 바랍니다. 대저 인의(認意)와 인교(認敎)의 설에 대해서는 작년 가을 이래로 여러 장로들이 지극히 간절하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으니, 집사의 명철함으로 장차 오래지 않아 뉘우치고 고칠 것이고 젊은 제가 경솔하게 간여하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토해야 하고 절교해야 한다는 의론이 일어났을 때에도 또한 "우선 그치고 우선 기다려서 뉘우치고 고칠 날을 기다려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구회(九晦) 김용승(金容承)이 통문을 지어 서울로 들어갈 때에도 방문하여 간곡하게 고하고 고치지 않은 뒤에 돌리라고 권하였고, 동짓달 김지산(金志山) 부자의 편지에 절교하기를 권했으나 천천히 기다리며 답을 하지 않다가 유명(幽明)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거의 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도록 집사가 자복했다는 소식은 깜깜히 들림이 없고, 선사를 의심하고 비방하는 소리는 천지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충심을 바치는데 빨리 하지 않는 것이 정성을 잃은 것이고 선사를 높이는데 느슨한 것이 죄가 크다는 것을 절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성토하는 의론이 격렬하게 일어남에 집사가 편지을 통해 뜻을 보인 것은 "말에 구별이 부족하였다."라고 하고, "명철한 지혜와 깊은 생각이 없었다."라고 한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이것이 의심과 비방을 분명하게 씻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이것이 통렬하게 스스로 사죄하고 자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비록 저와 같은 몽매한 자도 중론의 대열에 달려가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감히 하지 않았던 것은 대상(大祥)의 제사가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한 번 대면하여 물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다만 일이 있어 서로 어긋나고 분분하고 바빠서 평온하지 못해 만남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감히 편지로 집사에게 먼저 전합니다. 澤述乃貴邊所目湖黨者,固知爲執事之斥絶久矣.區區之衷,有不能自已者,敢此冒達,幸裁鑑焉.夫認意、認敎之說,昨秋以來,諸長老之累書連牘,旣已恳至,以執事之明,將見非久之悔改而無待乎少者之儳言.至於當討當絶之議起也,則又曰 且止且待,以到悔改之日可也.故九晦金容承之製通入京也,勸之以委訪恳告,不悛而後發,至月金志山父子之書勸告絶也,遲俟不答,以致幽明之缺,觀此庶可諒此心矣.然迨將歲周,執事自服之報,寂然無聞,先師之疑謗,騰天而溢地,自覺效忠不早之爲失誠,緩於尊師之爲罪大也.今玆討議之峻發也,執事之以書見意者,不過曰"語欠區別", 曰"無明智遠慮",是可謂昭洗疑謗乎? 是可謂痛自謝服乎? 於是乎雖如澤述之蒙騃者,不得不趨與衆議之列,而猶不敢者,以祥會在近,尙可一面質也.但有故相違,紛悤未穩,有不可知,故敢以書先之于執事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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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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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무개에게 답함 갑자년(1924) 7월 〇성토 전 答吳某 甲子七月○聲討前 답장을 받아보니, 곡절이 비록 많지만 그 큰 것을 총괄해보면, 정재(靜齋)의 스스로 인간(認刊)을 담당했다는 것과 옹서(甕書)의 법도를 벗어나 화(禍)를 전가했다는 것과 상빈(傷貧)‧뇌비(賂碑)‧경쟁(競爭)에서 변론과 성토가 나왔다는 것을 말한 것에 불과했고, 마지막에는 변괴(變怪)의 일과 무문(舞文)의 농간을 저희에게 돌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찌 그렇겠습니까? 청컨대 대략 질정해 보겠습니다. 일찍이 집사가 계해년(1923) 8월에 정재에게 답한 편지를 본 적이 있었는데, "대신 인가를 받는 것에 대해 작년 가을에 의견을 수합할 때에 형도 사람들을 따라 허락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허락한 것이 스스로 담당한 것과 선창하여 따른 것과 결단하여 힘쓴 것과는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는 만큼 동일시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계해년 8월에 따라 허락한 것을 갑자기 갑자년 6월에 스스로 담당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정재가 인간을 담당하여 반대자를 막았다는 설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집사는 정재에게 대답하기를 "선사가 일찍이 인의(認意)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자승(子乘)에게 답하기를 "선사가 반드시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미 어디에서나 선사를 무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행하설(杏下說)110)로 논해 보면, 바야흐로 함재장(涵齋丈)이 인간(認刊)을 성토할 때에 집사는 "세상의 앞날은 알 수가 없으니 스스로 헤아려서 하라."는 명을 홀로 받들었다는 말을 지어내서 선사의 인교(認敎)를 입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 말을 동문 가운데 어떤 누가 지어냈던 모두 죄줄 수가 있으니, 대초(代草)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집사는 고제(高弟)이고, 일을 주관했고, 또 대초를 하였으며, 또 홀로 들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누구와 죄를 분담하여 결사적으로 버티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법도를 벗어나 전가하고자 해도 해당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정재가 백이(伯夷)이던 도척(盜跖)이던 본디 하늘이 정해준 신분이 있는 것이니, 저나 집사가 억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난한 선비에게 책을 간행하는 곳이 돈이 생겨나는 숲이 아닌 것은 손금을 보는 것처럼 명백합니다. 정재가 비록 가난하다고 해도 또한 천치가 아닌데, 어찌 이를 몰라서 간행 장소를 옮겨서 가난을 벗어나려고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상빈(傷貧)의 마음이 하나이다.'라는 해명은 남을 모함하는 글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경존(敬存)이 뇌물을 주어 비문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뇌물을 받고서 비문을 지은 자는 누구입니까?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비(碑)를 강등하여 갈(碣)로 만들어 선사께 천고의 누를 끼쳤으니, 이것을 감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집사가 비를 갈로 강등한 것은 비록 국법을 따른 것이지 뇌물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뇌물로 인해 강등했다는 설이 이미 나왔습니다. 비록 실제로 국법을 어겼다고 해도 살피지 못한 잘못은 작고 뇌물로 누를 끼친 것은 크니, 마땅히 처리를 합당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국법을 보지 않고 멋대로 선사의 글을 고친 것은 또한 감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뇌비(賂碑)와 관련한 유감은 경존 뿐만 아니라 동문이 똑같이 여긴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이 선사에게 누를 끼치고 선사를 경시한 것을 유감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경쟁에는 두 가지고 있는데, 혈기의 경쟁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의리의 경쟁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이 의리가 아니고 집사의 무함이 진실이 아니라면 이미 끝내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師道)가 보존된 바로서 스승은 군부(君父)와 일체가 되고 하늘이 보는 것이 매우 밝아서 죄를 지은 자가 도망칠 수 없고 보면, 저희의 경쟁을 어찌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경쟁하는 바는 바로 의리인데, 집사는 곧 그것을 습속이라 하니, 어찌 그리 어긋난단 말입니까? 아, 선사를 무함한 것이 변괴(變怪)가 아니고 무함을 변론한 것이 변괴입니까? 말을 교묘히 하고 잘못을 꾸미는 것이 무문(舞文)이 아니고, 말을 바르게 하고 죄를 성토하는 것이 무문입니까? 천 세대가 지난 이후에 반드시 이를 변론할 자가 있을 것입니다. 아, 정직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말하다보니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만약 집사가 선뜻 뉘우치고 자복한다면 곧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대상(大祥)의 제사가 조금 지나서 비록 늦었다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뒤미쳐 고친다면 선을 행함에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뒤늦게나마 이 마음을 헤아려 알아주길 바랍니다.김용승(金容承)은 집사의 옛 벗이 아닙니까? 집사는 어떻게 그가 한농노(漢農老)라고 부른 것과 마음속에 선사를 무시한 죄를 알면서도 【집사가 송영숙(宋瑩叔)에게 답한 편지에 "이 사람이 연전에 한농노(漢農老)라고 불렀다."라고 하였습니다. 권고경(權顧卿)이 저에게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마음속에 선사를 무시한 것이 오래되었다."라고 하자,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하는가?"라고 하니, 권고경이 "석농(石農)에게 듣고서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다년간 그를 엄호하며 공경하고 믿었으며 심지어 그를 초빙하여 선사의 원고를 교정하게 하였다가【집사가 김용승에게 답한 편지에 "편지를 보내 원고의 교정을 청하였고, 또 유사첩(有司帖)을 보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집사를 성토한 뒤에야 드러낸단 말입니까? 김용승이 무함을 성토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근래에 선사를 배반한 것과 함께 묻지 않기를 전날에 한농노라고 부르고 마음에 선사를 무시했던 때처럼 대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집사가 김용승을 성토하는 것은 진정으로 선사를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이전에는 김용승을 당으로 삼고 선사를 망각했다가, 지금에는 선사에 의탁해서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니,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김용승과 새로이 교유를 한 사이여서 이전에 한농노라고 부르고 선사를 무시했던 일에 대해서는 진실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오늘 제사에서 물리치고 무함을 변론한 도의가 공경할 만한 것을 보고서 그와 교유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홀연 선사를 핍박한 그의 말을 보게 되었고 타일러 고치게 했으나 5일이 지나도 따르지 않으므로 마침내 편지를 보내 고치지 않으면 결단코 절교를 하겠다는 뜻을 보이고서 서로 갈라섰습니다. 비록 집사가 저를 증오하는 태도로도 또한 "종현(鍾賢)의 처사가 옳다."【집사가 권고경에게 답한 편지에 나오는 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상(大祥)을 지내던 날에 저를 끌어다가 김용승을 당으로 삼은 자로 삼고 영좌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여 제사에서 내쳐진 집사의 대거리로 삼았단 말입니까? 깨우쳐주는 한 말씀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承來覆,曲折雖多,總其大者,不過曰靜齋之自擔認刊,甕書之越法嫁禍,辨討之出於傷貧、賂碑、競爭,終而歸鄙等於變怪之擧、舞文之奸.鳴呼其然? 豈其然乎? 請得以略質之.嘗見執事癸亥八月答靜齋書矣,不曰代認昨秋收議時,兄亦不隨衆許之乎? 隨許之於自擔、倡從、決勉之相懸,不可同年,尺童亦知.今焉癸八之隨許,忽爲甲六之自擔,此靜齋擔防之說,使人見信難矣.執事對靜齋而言"先師曾有認意",答子乘而曰: "先師敎不必深拘." 旣無適而非誣師矣.若以杏下之說論之,方涵丈討認之日,執事倡造獨承"世不可知,自量爲之"之命,立先師認敎之證者.卽此是罪,此語同門誰某倡造,皆可罪之,不必待代草也.况執事是高足矣,主事矣,且代草矣,亦自言獨聞矣,欲誰與分罪而抵死支撑乎? 此越法嫁禍之無所當也.靜齋之是夷是蹠,自有天定身分,非吾與執事之所得以强名也.但措大刊所非生金之藪,則若掌紋視者,靜齋雖貧,亦非天癡,豈不知此而欲移刊脫貧乎? 然則"傷貧一也"之解,難免爲䧟人之筆也.謂敬存納賂而得文,則其受賂而作文者誰也? 乃以此降碑爲碣,以成先師千古之累,是其敢爲者乎? 執事之降碣,雖云在典不在賂,賂降之說旣發,雖實違典,失勘小賂累大,宜其有所處之得當.未見國典而擅改先師之文,亦其敢爲者乎? 然則賂碑之憾,非獨敬存,同門之所同也,何也? 憾其累師輕師也.且競爭有兩般: 血氣競爭不可有,義理競爭不可無.謂辨師誣之非義也,執事之誣非眞也,則已終無柰.師道所存,君父一軆,天鑑孔昭,有罪莫逃,則鄙等之競爭,安可已也? 然則其所爭者乃義也,執事乃謂之習,何其乖也? 噫! 誣師者非變怪,而辨誣者變怪歟? 矯辭飾非者非舞文,而正言討罪者爲舞文歟? 千世在後,必有能辨之者.鳴呼! 不直則不見,故盡言至此.然若得執事幡然悔服,則便沒事.差過祥會,雖云晩矣,卽今追改,不害爲善.後諒此心告而見裁焉.金容承非執事舊要乎? 胡爲乎知其呼漢農老、心無先師之罪,【執事答宋瑩叔書曰: "此人年前呼漢農老." 權顧卿對澤述言曰: "此人心中無先師久矣." 吾曰: "何以知之?" 權曰: "聞諸石農而知之."】 而多年掩護敬信,至於聘校師稿,【執事答金容承書曰: "書請校稿,又致有司帖."】 及討執事之誣師後發之乎? 使金而不討誣,必與近日倍師而不問,如前日之掩漢農老、無先師也.然則今日執事之討金,是眞正爲師歟? 抑爲己歟? 在前則黨金而忘師,在今則憑師而爲己者,不其然乎? 澤述之於容承,則新交也,其前日漢農老、無先師,固有不可得而知者.但見今日却祭辨誣之義之可敬,而與之遊從,忽見其語逼先師,喩之使改,五日而不從,然後書示以不改必絶而相分矣.雖以執事之憎此漢,亦曰鍾賢之事得之,【執事答權顧卿書中語】 胡爲乎大祥之日,援此漢爲黨金而謂不當入靈,作黜祀執事之對擧乎? 請下一轉語. 행하설(杏下說) 간재집의 간행과 관련하여, 간재가 은행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있을 때에 오진영에게 "힘을 헤아려 하라."고 명하였다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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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무개에게 답함【부안 여러 어른을 대신하여 지음】 갑자년(1924) 答吳某 代扶安諸丈作○甲子 이른바 인의(認意)는 제공들은 내가 입으로 한 말을 직접 듣지 않았고, 내가 손으로 쓴 글을 직접 보지 않았다.좌하(座下)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선사가 홀로 앉아있을 때에 오진영에게 스스로 헤아려서 하라고 명하였다."라고 한 것과 "선사가 일찍이 소자에게 반드시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라고 손으로 쓴 글을 이미 직접 보았는데, 이것은 "선사가 일찍이 인교(認敎)가 있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까? "선사가 일찍이 인교가 있었다."라고 한 손으로 쓴 글이 있기 때문에 좌하가 정재(靜齋)에게 대답한 말에 실제로 "선사가 일찍이 인의가 있었다."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직접 들은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나라 사람들이 나를 벌하는 것은 진실로 제공의 공이다. 그런데 나라 사람들이 선사를 의심하는 것은 제공의 죄가 아닌가? 이것은 제공이 선사를 무함한 것이지 내가 선사를 무함한 것이 아니다.나라 사람들이 좌하를 벌하는 것과 선사를 의심하는 것은 이미 둘로 대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좌하를 벌하는 자는 반드시 선사를 의심하지 않는 자이고, 선사를 의심하는 자는 반드시 좌하를 무함한 자로 여기지 않을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좌하와 선사의 관계는 그 형세가 양립할 수 없음이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선사가 결단코 의리를 망각하고 절개를 무너트리는 인의나 인교가 없었음은 실로 하늘이 알고 신명이 확신하는 것입니다. 좌하가 비록 선사를 무함한 죄를 면하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근래에 또 선사의 신해년(1911) 유서(遺書)를 읽어보았는데, "만약 왜에게 청원하여 간행 반(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조심하여 애써 따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 말과 뜻의 엄정함이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감히 다시 "헤아려서 하라", "구애될 필요가 없다"는 등의 설과 경신년(1920) 유서의 " 반드시 이 일을 말한 것임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언급한 것은 선사를 무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태양이 있으니, 두렵고 두렵습니다.우김(牛金 김용승)이 노주(老洲)를 배척하였는데 ……머리를 숙이고 공손히 들었다.김용승의 일은 실로 좌하가 시킨 것입니다. 좌하가 분명하게 선사가 일찍이 인의와 인교가 있었다고 말하여 그것을 성토하였는데도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김용승은 선사를 따른 것이 오래지 않은 자로서 도리어 의혹이 생겨서 그 마음에 필시 "저 오 아무개는 직접 배운 것이 수십 년이었고 심지어 훗날의 일을 스스로 담당했던 자인데도 감히 이처럼 했다면 선사에게 실로 이 인의와 인교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용승이 선사를 배반한 것은 좌하가 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근래에 벗들이 서신을 보내 김용승과 절교하고 말을 꺼내 김용승을 성토하게 된 이유인데, 김용승은 사죄를 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바람난 말과 소의 암수가 서로 찾아도 만날 수 없다."111)는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김용승으로 하여금 선사를 배반하게 한 죄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공손하게 들었다."는 말을 억지로 씌웠으니, 결단코 인지상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더구나 지금 우김을 성토한 뒤따라 또 대거리하여 보복하였으니, 이는 곧장 우김을 당으로 여긴 것이지 참으로 선사를 변론한 것이 아니었다.작년 가을에 김낙두(金洛斗) 등이 연명으로 편지를 했고 이기환(李起煥)이 단독으로 편지를 했으며, 올해 봄에는 이기환이 재차 편지를 하여, 좌하의 죄를 변론하고 성토했는데, 이것이 또한 모두 김용승을 성토한 뒤에 있었던 것입니까? 좌하는 나이가 아직 육순도 되지 않았는데 세월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심하게 혼매해졌습니까? 그러나 보내온 편지 가운데 "해를 넘기며 번갈아 일어나 감죄에 감죄를 더하였다."고 한 말로 살펴보면 이것은 혼매한 것이 아니라 음험한 것이었습니다. "감죄를 더하였다."고 했으니 이는 이미 성토했다는 것이고, "해를 넘기었다."고 했으니 이는 이미 예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김용승을 성토하기 전에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남을 얽어매는 것에 급급해서 앞뒤가 모순되고 속마음이 드러난 것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귀착을 요약하면 또한 혼매한 것일 뿐입니다. "이 사람이 연전에 한농노(漢農老)라고 불렀다."고 한 것과 "이 사람의 마음속에 선사를 무시한 지가 오래되었다."라고 한 것은 좌하가 김용승의 죄를 들추어낸 것이 아니었습니까? 과연 그렇다면 김용승이 현자를 배척하고 선사를 배신한 죄인이 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은밀히 비호하고 공경히 믿으며 다년간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더없이 중대한 선사의 원고를 교정하는 일에 그를 유사(有司)의 후보로 뽑아서 초빙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 김용승이 좌하가 선사를 무함한 죄를 성토한 뒤에야 하루아침에 그의 죄를 드러냈으니, 만약 그가 좌하를 성토하지 않았다면 장차 종신토록 잘 지냈을 것이다(것입니다.) 이에 오늘날 좌하가 김용승을 성토한 것이 선사를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는 자기를 배신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일을 따르면 김용승을 당으로 삼고 선사를 망강한 죄가 되고, 지금의 일을 따르면 자기를 중시하고 선사를 경시한 죄가 됩니다. 또 좌하가 기록한 것을 보면, "김용승이 내방하여 "그대가 비록 나를 절교하더라도 나는 그대와 절교하지 않겠다." 하였다."라고 했으니, 그가 좌하에게 사과한 것은 지극하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김용승이 끝내 "사우간(師友間)으로 간옹(艮翁)를 대하였다,"라고 했으니, 그가 선사를 배신한 것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좌하가 이미 그가 다시 성토하지 않음을 허여하고 또 그를 권면하며 "미치광이처럼 경향을 쏘다니지 말고 조용하게 잘못을 고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김용승은 하나의 죄도 없는 것이고 단지 미치광이처럼 쏘다닌 잘못한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에게 사죄한 것을 기뻐하여 허여하고 그가 선사를 배반했던 죄를 용서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자기에게 사죄하지 않았다면 또한 장차 그가 선사를 배반했던 것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또한 어찌 자신을 중시하고 선사를 경시하며, 김용승을 당으로 삼고 선사를 망각한 죄가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김용승을 당으로 삼은 것은 좌하에게 있었는데 도리어 저희들에게 돌린 것은 또한 인지상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오현수언(五賢粹言)》과 관련한 설에 대해, 제공들은 "불인하고 불의하고 표준을 뒤집고 만물을 해친다."라고 인식하여 성토했는데, 이는 내가 분수를 모르고 한결같이 선사의 설을 독실히 믿었던 죄이다.이미 "인은 혼자만 인하지 않고 의는 혼자만 의롭지 않다. 천지는 만물을 낳고 성인은 표준을 세웠다."라고 하였고, 또 "불인하고 불의하여 표준을 뒤집고 만물을 해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좌하가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화답한 것으로 거리낌 없이 선사를 업신여기고 농락하는 도구로 삼은 것이니 이것이 그 죄입니다. 우리들은 단지 "《오현수언》에 관한 설은 일찍이 문자로 된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근거하여 선사로 훈계로 삼을 수가 없다. 또 옛 책이고 옛날 간행된 《오현수언》은 오늘날 책이고 새로 간행되는 문고(文稿)와는 의례(義禮)가 같지 않으니 증거로 삼을 수가 없다."고 말할 따름입니다.'헤아려서 하라.' 등의 말은 내가 무함한 것이던 무함하지 않았던 것이든 막론하고 글은 최성(崔成)의 글인데, 마침내 최성과 당이 되어 나를 죄를 준다면 과연 옥사를 처리하는 정당한 법이겠는가.이른바 '선사가 홀로 앉아있을 때에 명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좌하가 독자적으로 지어낸 말이고 최성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선사를 무함한 죄가 됩니다."누구 집에나 해와 달이 비추고 있으니 왜의 달력을 비웃지 말라."고 운운한 것은 그 자체로 지금이나 이후의 처벌이 있을 것이니 논할 필요도 없습니다. 所謂認意,諸公不親聞吾口語,不親見吾手筆.旣親見座下答人書"先師獨命震泳自量爲之"及"先師嘗敎小子不必深拘"之手筆,此非先師曾有認敎之謂乎? 以有"先師曾有認敎"之手筆也,故知座下對靜齋實有"先師曾有認意"之口語,而與親聞同也.國人之罪吾者,諸公固功也.國人之疑先師者,諸公非罪耶? 是則諸公之誣師,非吾之誣師.國人之罪座下者疑先師者,旣是兩對,則是知罪座下者必其不疑先師者也; 疑先師者必其不以座下爲誣者也.座下之與先師,其勢不兩立,則已較然矣.先師之決無忘義壞節之意與敎,實天鑑而神質,座下雖欲免誣師之罪,得乎? 近又奉讀先師辛亥遺書曰: "若請願於彼,爲刊布之計者,決是自辱,愼勿勉從." 其辭義嚴正也如此,尙敢復謂"料量"、"不拘"等說及庚申遺書"未知其必謂此事"者,非誣師乎? 天日在上,可畏可畏.牛金之斥老洲【止】俯首恭聽.金容承事,實座下使之也.座下分明言先師曾有認意、認敎,而討之而不見服,則彼以從師未久者,反生疑惑,其心必曰: "彼吳某親炙數十年,至以後事自擔者,乃敢如此,則無乃先師實有此意此敎歟?" 是則金之倍師,非座下使之而何? 此近諸友有書以絶金者,有言以討金者,至於金不謝罪,自退歸家,正所謂風馬牛不相及也.乃不念使金倍師之罪,而勒人以"俯首恭聽"者,絶非常情所出也.况今致討牛金之後,從又對擧而報復之,是直黨牛金,非眞辨先師也.昨秋金洛斗諸人聯書,李起煥單書,今春起煥再書,以辨討座下之罪者,亦皆在討金之後耶? 座下年未六旬,昏耄不記歲月之此甚耶? 然以來書中"經歲迭起,勘上加勘"之語觀之,非昏也乃險也.曰"加勘",則是旣討之矣; 曰"經歲",則是旣在昔矣.此非在討金前之明證耶? 急於構人,而不覺上下之矛盾,肝肺之綻露,要其歸則亦昏而已也."此人年前呼漢農老"、"此人心中無先師久矣"者,非座下數金罪語乎? 果爾,則金之爲斥賢倍師之罪人也久矣,乃隱護敬信多年無替,以至莫重師稿之校役也,望定有司而聘之,至於金討座下誣師之罪,然後一朝而發之,使其不討座下,將終其身好之矣.乃知今日座下之討金者,非爲倍師也,實爲倍己也.由前則爲黨金忘師之罪,由今則爲重己輕師之罪也.且見座下所錄云"金來訪而曰'君雖絶我,我不絶君'",其謝過於座下,則可謂至矣.然終是"以師友間處艮翁"云,則其倍師之罪依舊在也.座下旣許其不復討,又勉其"勿狂走京鄕, 安靜改過".然則金無一罪,而但有狂走之過也.此喜其謝己而與之而容其倍師之罪也.使其不謝己,又將不容其倍師矣.又豈非重己輕師、黨金忘師之罪乎?黨金之實在座下,而反歸之鄙等,又非常情所出也.《五粹》說,諸公認爲"不仁不義,倒極害物"而討之,是吾不識分數一例篤信師說之罪.旣曰: "仁不獨仁,義不獨義,天地生物,聖人立極." 又曰: "不仁不義,倒極害物." 此皆座下自唱自和,不憚以先師侮弄籠絡之具,此其罪也.鄙等但曰"五粹說,曾不見文字者,則不可據以爲訓.且五粹之古書昔刊,與文稿之今書新刊,義例不同,不可爲證也."料量等語,勿問吾誣不誣,書則崔書也,乃黨崔而罪吾,果得斷獄正法耶?所謂獨坐時承命云者,是座下之獨自撰造,而崔成不與焉,故獨爲誣師之罪也."誰家日月照臨,勿罵倭朔"云云,自有今與後之銊誅,不須論. 바람난……없다 서로 현격한 차이가 남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4년 기사에 "군주께서는 북해에 처하시고 과인은 남해에 처해 있으니, 이것이 마치 바람난 마소의 암수가 서로 찾아도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君處北海, 寡人處南海, 唯是風馬牛不相及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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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무개에게 보냄【승지공파(承旨公派) 여러 족인들을 대신하여 씀】 갑자년 (1924) 與吳某 代承旨公派諸族人作○甲子 좌하가 진사 김용승에게 답한 편지를 보니, "《율곡집》에는 증(贈) 승지(承旨) 김공(金公) 묘갈(墓碣)이 있는데, 《전서》에는 어찌하여 대비(大碑 신도비)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본손(本孫)이 근세에 갈을 고쳐 비를 세우고 다시 선사께 갈문을 청하였다. 그러자 선사는 그 비가 온당치 않다고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유영선(柳永善)이 곁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그 일을 자세히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도승지 김공은 곧 저희의 선조입니다. 좌하와 김 진사는 모두 저희 집의 선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를 언급했는지 그 이유를 비록 알 수 없지만, 좌하가 비를 못마땅해 한 글이 팔도에 퍼져서 누구나 보고 듣게 되었으니, 어찌 후손으로서 개탄하는 한 마디 질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좌하는 잘 살펴주기를 바랍니다. '이에 신도비를 세운다.[爰樹神道碑]'라는 한 구문은 이미 저희 선조의 비 원문(原文)에 있는 것입니다. 원문이란 것은 지은 자의 수필(手筆)에서 나온 것으로, 제목(題目)의 경우 혹 후인들이 고치기도 하는 것과는 비교될 것이 아닙니다. 《율곡전서》에 수록된 우리 선조의 신도비는 곧 율곡 선생이 손으로 정한 철안입니다. 좌하가 근거한 《율곡집》은 어느 본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암전서(陶庵全書)》112) 범례에는 이미 "우암(尤庵)은 전집과 후집을 모두 병통으로 여겨 이를 정리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서》를 고쳐서 바로잡는데 있어 어찌 율옹(栗翁)의 수필을 버리고 우옹(尤翁)이 병통으로 여긴 것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본손 또한 어찌 율곡의 수필(手筆)과 우암의 유의(遺意)와 도암의 수정(手正)를 어길 수 있겠습니까? 존선사(尊先師)가 신도비가 온당치 않다고 하여 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대의 말이 더욱 근거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저희 집안의 장로가 거듭 묘표(墓表)를 청했을 때, 존선사는 일찍이 조금이라도 신도비를 온당치 않게 여긴 뜻이 없었으며, 심지어 최연촌(崔烟村) 형제의 비문도 전후로 의심치 않고 지었다고 합니다. 만약 저희 집안에는 국법을 지키고, 최씨 집안에는 국법을 파괴하며, 본손에게는 은밀히 숨기고 문인에게는 사사로이 말했다면 군자의 언행일치(言行一致)하고 표리교정(表裏交正)하는 학문이 결단코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지난번 편지로 유우(柳友)에게 물었더니, 과연 "온당치 못하여 허락하지 않았다.[未安不許]" 네 글자는 이제야 처음으로 듣는다."고 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좌하가 자신의 견해를 스스로 세우는데 급급하여 자신도 모르게 말을 지어내어 선사를 무함한 것입니다. 저희는 일찍이 좌하가 인의(認意)와 인교(認敎)로 존선사를 무함하여 공의(公議)에 대단히 용납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아무개도 사람인데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겠는가. 이는 분명히 가혹한 책망이다."라고 생각하였는데, 비로소 그것이 믿을 만한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곡이 직접 쓴 신도비에 대해서 좌하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았고, 우암이 병통으로 여긴 것에 대해서 좌하는 본집은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도암이 정리해서 바로잡은 것에 대해서 좌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좌하는 단지 존선사를 무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로 율곡, 우암, 도암 세 선생까지 무함한 것입니다. 저희는 선조의 일과 관련된 까닭에 촉범(觸犯)을 피하지 않고 모두 진술하다 보니 이에 이르렀습니다. 명백히 회신하여 가르쳐주기를 바랍니다. 竊見座下答金進士容承書,有曰: "《栗谷集》有贈承旨金公墓碣,《全書》 不知何爲大碑,而本孫近世改碣竪碑,復以請碣於先師.先師謂其碑未安而不許之.柳永善侍側,詳知其事云云." 都承旨金公,卽鄙等之先祖也.座下與金庠,俱無關於鄙家祖先,其往復源委之何以及此,雖未可知,座下彈碑之文,飛滿八域,聞見所及,豈非後昆之慨痛一言之質出於不得已者? 幸座下察焉.夫"爰樹神道碑"一句,旣著於鄙先碑原文,原文者出於撰人之手筆,而非題目之容有後人翻改者比也.懸知?栗谷全書?所載鄙先神道碑,乃栗谷先生之手定鉄案也.座下所據?栗谷集?,未知指何本.然?陶庵全書?凡例,旣曰"尢庵俱病於前後集,以不能釐正爲恨"云,則其於?全書?之改正也,安得舍栗翁手筆而取尢翁之所病也? 本孫亦安得以違栗谷手筆、尢庵遺意、陶庵手正也耶? 尊先師之以神碑未安而不許碣者,座下之言尢屬無據.鄙門長老之再三請墓表也,尊先師未嘗有一毫未安神碑之意,至於崔烟村兄弟之碑,又前後不疑而作之云.若謂守典於鄙家而破典於崔門,隱諱於本孫而私語於門人,決知君子言行一致、表裏交正之學不如此.故向以書問于柳友,則果以"未安不許四字,今始創聞"見答.此座下急於自立己見,而不覺造言而誣師也.鄙等曾聞座下以誣尊先師以認意、認敎,大不容於公議.然私竊以爲"某也亦人,豈至於是? 是必苛責也",而今以後始知其信然矣.蓋栗谷之親書神道碑也,而座下則視之如無; 尢庵之所病也,而座下則曰本集可據; 陶庵之所釐正也,而座下則曰不知何爲.鄙等以爲座下非但誣尊先師,上而誣栗、尢、陶三先生也.鄙等以有關先事,不避觸犯,畢陳至此,幸明白回示也. 《도암전서(陶庵全書)》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이이(李珥)의 〈율곡집(栗谷集)〉을 〈율곡전서(栗谷全書〉로 증보, 편찬한 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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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9 卷之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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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사문록 雜著·思問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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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집전 을사년(1905) 書集傳【乙巳】 〈무성(武成)〉의 "도가 있는 사람의 증손"이라는 구절은 무왕(武王)이 자신을 일컬은 말인데, 주자(朱子)는 《시전(詩傳)》〈보전(甫田)〉장에서 "증손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말하였다. 종묘에서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곡례(曲禮)〉 '외사(外事)'에서도 "증손 아무개 후(侯) 아무개"라고 했으니, 이것에 근거해보면 이 단락의 증손은 선조의 증손을 말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채씨(蔡氏 채침(蔡沈))는 곧 "도가 있는 사람은 부조(父祖)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증손을 선조의 증손으로 여긴 것이다. 대체로 무왕이 스스로 도가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알고, 스스로 도가 있다고 말한 것이 공자가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다."1)고 한 말과 동일한 의미임을 모른 것이다.〈금등(金縢)〉의 "비자(丕子 원자(元子))의 책임이 하늘에 있다."라는 구절은 채침(蔡沈)의 《집전(集傳)》에서 논한 바가 매우 명확하다. 다만 하늘이 무왕을 데려간다는 뜻으로 보더라도 윗 장에서 이미 "태왕(太王)ㆍ왕계(王季)ㆍ문왕(文王)에게 고유하였다."라고 했으니, 원래 세 왕에게 명을 청하였을 뿐이다. 세 왕에게 새로 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하늘에서 새로 명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하늘이 무왕을 데려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삼은 것은 효력이 없는 듯하다.〈주고(酒誥)〉의 "네가 이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밝게 연향을 베풀어주겠다."는 구절은 강숙(康叔)2)을 말한 듯하다. 나의 가르치는 말을 잊지 않으면 나는 마땅히 밝게 연향을 베풀어줄 것이라고 가르치는 말은 곧 위의 전편(全篇)에서 타일러 가르친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전편에서 말한 것을 총괄해 고함으로써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채침(蔡沈)의 《집전》에서 "은(殷)나라의 여러 신하와 백관들이 가르친 말을 잊지 않았다."고 했는데, 은나라의 여러 신하와 백관들을 가르친 말이 분명히 무슨 말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종(高宗)이 곧 양암(亮陰)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3)는 구절에 대해, 여씨(呂氏)가 "3년 동안 말하지 않는 것을 성스럽고 어진 임금이 반드시 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혹(乃或)'이라고 했으니 이것도 혹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였으나, 내 소견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자장(子張)이 "고종이 양암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하필 고종뿐이겠는가. 옛 사람이 다 그러하였다."4)라고 답하였으니, 이른바 '성스럽고 어진 임금이 반드시 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는 것은 믿고 따를 수가 없다. 또 3년 동안 말하지 않는 것은 임금의 거상(居喪)하는 떳떳한 도리이니 '이것도 혹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건대 "말하면 화락하였다.〔言乃雍〕"는 것은 고종의 덕을 칭송하는 한 가지 일인데, 고종이 일찍이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아래에서 '말하면 화락하였다.'는 말을 하려고 먼저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대개 '혹(或)'자와 '언내옹(言乃雍)'의 '내(乃)'자가 위아래로 대안(對眼)이 된 것이다.'그 혹시 고하기를〔厥或告之〕'이라는 장(章)은 단지 삼종(三宗)과 문왕(文王)의 덕을 칭송한 것이니 채침(蔡沈)의 《집전》이 매우 분명한데 언해(諺解)에서는 성왕(成王)을 경계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감히 노여움을 감추지 않을 뿐만이 아닐 것이다."라는 구절을 소인(小人)이 감히 노여움을 감추지 않았다고 말하여 착오를 면치 못했으니 마땅히 정정해야 한다.〈다방(多方)〉의 "하늘이 걸왕에게 순수한 덕을 주지 않았다."에서 '순(純)'자는 마땅히 〈군석(君奭)〉의 "하늘이 도와 명하심이 순수하였다."는 '순(純)'과 똑같이 보아 위 구절에 붙였으니 섭씨(葉氏)의 설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도, 채침의 《집전》에서는 '크다〔大〕'는 글자로 풀이하여 아래 구절에 붙였으니 자세히 살피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언해는 채침의 《집전》에 의거해 풀이하면서도 위 구절에 붙였으니 또 채침의 뜻을 잃었다.〈입정(立政)〉의 끝 장은 주공(周公)이 태사(太史)에게 고하는 말이니, "알맞은 형벌을 쓸 것이다.〔用中罰〕"의 구결(口訣)을 임금에게 고하는 말로 만들어서는 안 될듯하다.5) 만약 진씨(陳氏)의 설을 따라 임금에게 고하는 말로 만든다면 '약왈태사(若曰太史)'의 구결은 마땅히 '에'가 되어야 한다.〈여형(呂刑)〉의 '옥사(獄事)를 맡은 자는 위엄을 부리는 권력가에게만 법을 다할 것이 아니라'는 장(章)은 윗 장과 한 뜻으로 이어져야 할 듯하며, 우정(虞廷 순(舜)임금의 조정))의 형관(刑官)이 법을 철저히 집행할 것을 말하였을 뿐, 정사를 맡고 옥사를 맡은 자를 권면하는 말이 아니다. 아래 장의 '왕왈차(王曰嗟)' 이하가 바로 권면하는 말이다. 채침의 《집전》에 이른바 '당시에 옥사를 맡은 자'는 순임금 조정의 신하를 가리킨 것인데, 언해에서는 권면하는 말로 만들었으니 그 본래의 뜻을 잃은 것이다. 《武成》"有道曾孫", 是武王自稱之辭, 朱子於《詩․甫田》章傳曰: "曾孫主祭者之稱." 非獨宗廟爲然, 《曲禮․外事》曰"曾孫某侯某", 據此則此段曾孫, 非謂先祖之曾孫明矣. 蔡氏乃謂有道指父祖而言, 此則以曾孫爲先祖之曾孫也.蓋徒知武王之不應自謂有道, 而不知自謂有道, 與孔子天生德於予, 同一意思也.《金縢》"丕子之責于天", 蔡《傳》所論, 甚明白.但雖以天責取武王之意看, 上章旣曰"吿太王、王季、文王", 則元只是請命於三王也.其以言新命于三王不言新命于天爲非天責取武王之證者, 恐無力.《酒誥》"有斯, 明享", 似是謂康叔.不忘我敎辭, 則我當明享之敎辭, 卽已上全篇所誥敎之辭也.篇將終, 而總括全篇所言以告之, 以示勸懲之意也.蔡《傳》謂"殷諸臣百工, 不忘敎辭", 未知所敎殷諸臣百工之辭, 的指何言而言也."高宗乃或亮陰三年不言", 呂氏謂"三年不言, 聖賢之君未必盡然, 故謂之乃或, 是或一道也", 淺見恐不然.子張問"高宗亮陰三年不言, 何謂也?", 孔子曰"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則所謂聖賢之君未必盡然者, 未可信從.且"三年不言", 人君居喪之常道, 則不可謂之"是或一道"也.竊以爲"言乃雍", 是稱高宗之德之一事, 而高宗嘗"三年不言"者, 故下將言"言乃雍", 而先言"三年不言." 蓋"或"字與"言乃雍"之"乃"字爲上下對眼也."厥或告之"一章, 只是稱三宗、文王之德, 蔡《傳》甚明, 而諺解作戒成王之辭.故"不啻不敢含怒", 做小人不敢含怒說, 未免錯誤, 當改正.《多方》"惟天, 不畀1)純", "純"字, 當與《君奭》"天惟純佑命"之"純"同看而屬於上句, 葉氏說十分無疑, 蔡《傳》訓以"大"字而屬於下句, 恐未及細察也.然諺解是依蔡《傳》釋之者, 而乃屬上句, 又失蔡意.《立政》末章, 是周公吿太史之言, 則用中罰口訣, 恐不當作吿王之辭.如從陳氏說, 而作告王之辭, 則若曰太史口訣, 當作에.《呂刑》"典獄, 非訖于威"一章, 恐連上章一意, 只是說虞廷刑官之盡法, 非勸勉司政典獄之語也.下章"王曰嗟"以下, 乃勸勉之語也.蔡《傳》所謂當時典獄之官, 指虞廷之臣2)也, 諺解作勸勉之語, 失其本意. 하늘이……주셨다 《논어》 〈술이(述而)〉에, 송(宋)나라의 사마환퇴(司馬桓魋)가 일찍이 공자를 해치려고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하늘이 덕을 나에게 주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는가.〔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하였다. 강숙(康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아우이다. 이름은 봉(封)으로 위후(衛侯)에 봉해졌고, 《서경》 〈강고(康誥)〉의 주인공이다. 고종(高宗)이……않았다 《서경》 〈주서(周書) 무일(無逸)〉에 나온다. 여기에서 양암(亮陰)은 임금이 거상(居喪)하는 곳인데, 양암(梁闇)ㆍ양암(諒陰)ㆍ양암(諒闇)이라고도 한다. 《서경》 〈열명(說命)〉에, "왕이 택우(宅憂)하여 3년을 양암했다.〔王宅憂亮陰祀〕" 하였고, 왕필(王弼)의 주석에, "양은 신(信)의 뜻이요, 암은 묵(默)의 뜻이다." 하였다. 자장(子張)이……그러하였다 《논어》 〈헌문(憲問)〉에 나온다. 임금에게……될듯하다 언해처럼 구결을 '하리이다'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畀 底本에는 "卑". 《書經》에 근거하여 수정. 臣 底本에는 "巨". 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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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승의 〈백천재기언〉248)을 보다 【1935】 觀金容承百千齋記言 【乙亥】 이 글은 "도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선생을 바꿀 수 있다."라고 시작하여 "자네249) 할아버지가 우암(尤菴)이 되고 난 뒤에야 내가 이윤(尼尹)250)이 될 것이네."라고 끝을 맺었다. 그 스승을 배반한 것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 너무나 놀랍고 애통하였지만, 이때는 유서가 나오기 전이라 의안(疑案 의심나는 안건)을 변파(辨破)하지 못하여 감정이 격해져 나도 모르게 여기에 이르렀다. 외부 사람으로서 보면 그래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은 유서가 이미 나와 대의가 밝게 드러나고, 선생도 이미 우암이 되셨다. 그런데도 묘소에 고하는 글에 여전히 '선사'라고 부르지 않고, '문인 소자(門人小子)'라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학술과 본원마저 극렬하게 배척하였다. 비록 이윤에 귀결되지 않으려 해도 그게 되겠는가? 비록 외부 사람이라도 마땅히 죄를 다스리고 공공연히 배척해야 하거늘, 명색이 간옹(艮翁)의 문인 된 자가 그를 위해 법을 지킨다며 '스승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이르는 자가 있으니 나는 그것이 무슨 의리인지 모르겠다."책을 잡고 세 번 뵈었으며 상복(喪服)을 입고 한 번 곡하였다. 정(情)을 말하면 세월이 얼마 안 되고, 이치를 말하면 의혹을 풀지 못하였다. 예컨대 '칠십 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심복한 것은 마음을 속인 것이다.'라는 말은 오직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의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에게 있어서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이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에게 있어 서로 비유할 수 있다."251)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사우간으로 처우하는 말이다. 선사께서 생전에 듣지 못하였는데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꺼낸 말이다.정자가 이르기를 "안자(顔子)와 증자(曾子)는 공자에게 비록 참최(斬衰) 3년을 해도 괜찮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신을 이루어준 스승의 은혜는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김용승이 평소 선사에게 올린 편지에 "소자가 문하에서 망극한 은혜를 입었습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낳아주고 이루어준 은혜 마음 깊은 곳에 깊이 새겼으나 갚을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선사의 은혜가 부모와 같음을 이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위 '안자와 증자가 참최를 입은 것'과 어찌 일찍이 다른 점이 있는가? 그런데 지금 갑자기 "칠십 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심복한 것은 마음을 속인 것이다."라고 하는가. 그는 이것에 대해 장차 무슨 말로 해명하겠는가."문인록에 이름을 넣은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말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모든 군자는 겸양하는 자리에 있거늘 어찌 생전에 문인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는 자기 자신이 일찍이 문인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선사의 문인록을 아울러 비방한 것이다. 애통하도다! 선사께서 평소 배우는 자를 가르칠 때 동일한 정성을 보이셨고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과 문인의 본분은 대륜(大倫)에 관계되어있다. 그러므로 이미 본분이 정해진 자는 《관선록(觀善錄)》에 이름을 적었다. '문인'이라고 하지 않고 '관선'이라고 한 것이 이미 겸양의 의미니 이것이 어찌 의리(義理)에 해가 되겠는가? 그는 이미 부친의 명(命)을 받들어 집지(執贄)하고 《관선록》에 이름을 올린 지 십 년의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이 명백한데도, 도리어 감히 그런 이이 있었냐고 하며 애초부터 문인록이 있는 줄 몰랐던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흑수(黑水 윤휴(尹鑴))가 주자가 영종(寧宗)252)을 섬긴 것을 빤히 알면서도 도리어 감히 말하기를 "주자가 어찌 영종을 섬겼을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한 것과 똑같은 어법이고 똑같은 심리이다.아! 김용승은 간옹(艮翁)의 문인이 된 데는 더욱 남다른 점이 있다. 그의 부친 대감(台監) 확재(確齋) 김학수(金鶴洙) 공이 글을 써서 부탁하며 말하기를 "제 자식이 보고 느껴 오랑캐와 금수로 귀결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하늘의 신령함에 힘입어 '난적(亂賊)'이라는 이름을 면할 수 있으면 부자(父子)가 받은 은혜가 크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얼마나 정중한 말인가. 근래 김용승과 친한 이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예(禮)에 있어 붕우간에도 집지(執贄)의 예를 하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반드시 전해 받은 바와 가리키는 바가 있는 것이니, 더욱 애통하다. 그러므로 나는 "김용승이 스승을 배반한 것은 자기도 모르게 부친의 명을 거역한 것이니, 더욱 애석하다"라고 말한다. 此文始之以"道義不存, 先生可易. ", 終之以"君祖爲尤翁, 然後吾爲尼尹. " 其爲倍師也, 蔑以加矣. 已極駭痛, 然此時遺書未出, 疑案未破, 氣節所激, 不覺至此. 自外人觀之, 猶有可斟量. 今則遺書已出, 大義昭然, 先生已得爲尤翁矣. 然而告阡之文, 猶不稱"先師", 不稱"門人小子", 甚而至於排斥學術本原而極焉. 雖欲不歸於尼尹, 安可得乎? 雖外人, 猶當執罪公斥, 名爲艮翁門人者, 有爲之護法而謂不倍師者, 吾不知其何義也."執書三見, 加麻一哭. 語情日淺, 語理未解. 若曰'七十子之服孔子'是欺心 惟鼓山之於剛齋、梅山之於性潭, 可相喩. " 此正師友間處之之說. 而先師生前所未聞, 而始發於百世後者也. 程子有曰: "顔、曾之於孔子, 雖斬衰三年, 可也. " 此言成身之恩, 與生身同也. 金於平日, 上師門書, 有曰: "小子於門下, 受罔極之恩. ", 又曰: "生成之恩, 刻肺銘肝, 罔知攸報. " 此非謂先師之恩, 同於其父乎? 然則, 與所謂顔、曾斬衰者, 何曾有異? 今忽言"若七十子之服孔子是欺心"? 渠於此, 將何說而解之?答"託名門人錄者, 誰也"之語, 曰: "有諸君子謙讓之地, 安有生前門人錄乎? " 是則非但言自家不曾爲門人, 幷與先師門人錄, 而譏破之. 痛哉! 先師平日, 敎授學者, 一視其誠, 而無厚薄. 然師生之分, 有關大倫. 故其已定分者, 書名于《觀善錄》. 不云門人, 而云觀善者, 已是謙讓之意, 此何害於義理乎? 渠旣明明奉親命, 執贄入錄, 爲十年之久, 而乃敢曰"有諸? ", 初若不知有門人錄者. 然是猶黑水之明知朱子事寧宗, 而乃敢曰"朱子豈有事寧宗之理"者, 同一語法, 同一心理也.噫! 金之爲艮翁門人, 尤有異於人者. 其先台監確齋公書以託之曰: "此子能觀感, 而不爲夷獸之歸, 則幸矣. " 又曰: "賴天之靈, 得免亂賊之名, 父子受恩, 顧不大歟? " 此爲何等鄭重語! 近有金所親者, 語人曰: "在禮, 朋友間亦執贄. " 此言必有所受所指, 尤可痛也. 吾故曰: "金之倍師, 不覺至於倍親命, 又可惜也. " 백천재기언(百千齋記言) 이 글은 간재의 손자 전일건(田鎰健)이 간재의 죽상(竹床)에 대해 김용승에게 따지러 갔다가 벌어진 언쟁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글이다. 자네 간재의 손자 전일건(田鎰健)을 말한다. 이윤(尼尹) 윤증(尹拯)을 말한다. 윤증은 아버지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을 생전 친구였던 송시열에게 부탁하였다. 생전의 윤휴를 두둔한 일로 앙금을 갖고 있던 송시열은 병자호란 때 자결한 처를 두고 도망쳐 나온 일을 조문에 적었다. 윤증이 송시열에게 삭제를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윤증은 송시열을 비판하고 사제관계가 끊어졌다. 1669년에 있었던 회니논쟁을 말한다. 책을 …… 있다 이 말은 김용승이 〈백천재기언(百千齋記言)〉에서 한 말이다. 영종(寧宗) 중국 남송(南宋)의 제4대 황제(1168∼1224)로, 이름은 조확(趙擴)이다. 그의 치세 동안 황후 한(韓)씨의 인척인 한탁주(韓侂胄)가 권력을 잡았고, 금(金)나라에 대한 대규모 북벌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재위 기간은 1194∼12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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