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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형수에게 답함 경진년(1940) 答從子炯洙 庚辰 편지를 보고서 네가 의관(衣冠)을 지킬 마음이 있고,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의리를 알고 있으며, 가업을 밑바탕으로 집안의 명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르기를 "마땅히 순수한 본성을 지켜 비루한 무리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난초는 잡초에 섞여 있어도 그 향기를 잃지 않고, 봉황은 같은 조류일지라도 그 깃드는 곳이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현재 마땅히 행할 것을 말하자면 "사방의 원대한 뜻"이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니 자신을 깨끗이 하고 인륜을 바로잡으며 독서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제일(第一)의 의리이다.나는 참으로 네가 말이 없고 단정하여 심지가 요즘 젊은이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로 뜻이 이렇게 견고한 줄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혹시 네 조부 벽봉 선생(碧峰先生)의 영령이 저승에서 네 마음을 이끌어 너로 하여금 선조의 뜻과 일을 계승하게 한 것인가 싶다. 네 편지를 보고 밤새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그런데 여러 번 가난을 상심하는 탄식163)을 일으키곤 하는데 참으로 이러면 안 된다. 나는 재주와 뜻이 없어서 자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보았지만 재물이 없어서 덕에 나아가지 못한 사람은 듣지 못하였다. 이 또한 근심할 것이 못된다. 도리어 이를 바탕으로 덕을 이룬 사람도 있다. "가난하고 곤궁한 처지가 너를 옥으로 만든다.164)"고 말하지 않았더냐. 또 "나에게 부곽전(負郭田) 한 이랑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육국(六國)의 재상 인장을 찰 수 있었겠는가."165)라고 말한 경우도 있다.저것은 비록 부귀로써 말하였지만 그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정을 참게 하는 점은 동일하다. 만약 너로 하여금 따뜻하고 배부르며 편안하고 즐겁게 하였다면 또한 이런 뜻을 가질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가난은 불행이 아니다. 이를 다행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절대로 기력이 꺾이거나 기운을 잃지 말고 더욱 매진하길 바란다. 아! 나는 늙어 이룬 것이 없다만 다만 자식과 조카, 손자 가운데 성취한 이가 몇 사람만 있어도 나는 미련없이 눈을 감고 돌아갈 수 있을 게다. 기쁜 나머지 감회가 생겨 여기까지 썼으니 이 마음을 더욱 헤아릴 수 있을게다. 見書, 知汝有衣冠之心, 識尊攘之義, 欲資箕裘而繼家聲.又謂"當準純粹之性 而不歸汚下之流.", 而曰:"蘭雜於蕪, 而不泯其薰, 鳳雖鳥類, 其棲不同." 言當下當行, 則曰:"四方之志", 今非其時, 潔身正倫, 讀書自靖, 第一義也.吾固知汝沈默端莊, 心知其非同今世年少, 實不料志尙堅固之乃爾也.或者汝祖考碧峰先生之靈, 冥誘其衷, 使之繼述志事歟! 自見汝書, 連夜喜而不寐.至於累興傷哉之歎, 正不當爾也.吾見無才志而未成身者, 未聞無錢財而不進德者也.且也不足以爲病.反資而成德則有之.不曰:"貧賤憂戚, 庸玉汝成乎!".又有言 "使我有負郭田一頃, 豈能佩六國相印"者.彼則雖以富貴言, 其動心忍性則一也.若使汝得煖飽逸樂, 亦安知有此志乎? 然則貧者, 非不幸也.謂之幸也, 亦非過言.切勿沮喪益加勉勵焉.噫, 吾則雖老而無成, 但得子姪孫中, 有成就者幾人, 吾可以浩然瞑目而歸矣.喜餘生感, 書之至此, 此心尤可諒也. 가난을……탄식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일찍이 말하기를 "속상해라 가난함이여, 생전에는 봉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돌아가셔서는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가 없구나.[傷哉, 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也.]"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 가난하고……만든다 송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곤궁한 상황의 근심은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했다. 《張子全書 卷1》 부곽전(負郭田)……있었겠는가 성곽 부근의 비옥한 토지를 부곽전이라고 하는데,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가령 나에게 낙양(洛陽)의 부곽전이 2경(頃) 쯤만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육국(六國) 정승의 인(印)을 찰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1경(頃)은 2경(頃)의 오류이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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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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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명 【최갑렬을 위해 지음】 蓬石銘 【爲崔甲烈作】 최원경(崔元敬) 군은 봉산(蓬山)220) 아래의 석교리(石橋里)에 사는 까닭에 자호를 봉석(蓬石)이라 하였다. 이는 대개 일삼을 바가 없는 길을 감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그가 그런 뜻을 가졌다면 곧 크게 일삼을 바가 있게 되니, 이 또한 이른바 반드시 일삼으며 마음에 잊지 말아야할 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후창 김종현(後滄金鍾賢)은 명을 지어 그의 뜻을 대신 서술한다.저 쑥대와 돌은 維蓬與石,원래 귀한 물건이 아니고, 元非物貴,꼬불꼬불 거칠고 단단하여 屈曲麤頑,때로는 버려지기도 하는데, 乃或見棄,그것을 이름으로 갖다 쓰니 取以自命,그대는 그게 무슨 뜻인가? 子其何意?쑥대가 삼밭에서는 蓬在麻中,곧게 뻗어나고 可以直遂,돌이 장인을 만나면 石遇良匠,기물이 되네. 可以成器.내가 호를 쑥대돌이라 함은 我實蓬石,실로 그 속에 살아서가 아니니, 匪以居地.만약 그 바라는 바를 얻으면 如得其願,이들 또한 귀하게 보게 되리. 亦可貴視.스승과 학우의 가르침과 도움 師友輔敎,경과 전의 도의와 이치 經傳理義,모두가 장인이고 삼인데 是匠是麻,어찌 감히 어기겠는가? 曷敢有貳?자질의 변화를 이루어냄이 變其化質,구구하고 간절한 나의 뜻이네. 區區吾志.말하노니, 착하구나 좋구나! 余曰善哉,명문 지어 이 뜻 보이며, 是宜銘示,난초와 옥을 피우고 이룰 爲蘭爲玉,장래의 그 날 기다리네. 他日可致. 崔君元敬以居蓬山之下石橋之里, 故自號蓬石, 蓋亦所謂行其所無事也。 然乃若其意, 則大有事在, 此又所謂必有事焉, 而心勿忘也。 後滄金鍾賢爲之銘, 替述其意云爾。 維蓬與石, 元非物貴, 屈曲麤頑, 乃或見棄, 取以自命, 子其何意? 蓬在麻中可以直遂, 石遇良匠可以成器。 我實蓬石, 匪以居地。 如得其願, 亦可貴視。 師友輔敎, 經傳理義, 是匠是麻, 曷敢有貳? 變其化質, 區區吾志。 余曰善哉, 是宜銘示, 爲蘭爲玉, 他日可致。 봉산(蓬山)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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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서명 【갑신년(1944)】 十書銘 【甲申】 《소학(小學)》하상주 삼대의 법, 三代法,자양(紫陽)의 주자께서 모으셨네. 紫陽輯,이 책이 아니었으면 匪此兮,공부에 사다리가 없었으리. 學無梯.부모님처럼 공경하고 敬如親,신명인듯 믿으리니, 信如神,옛 사람의 말씀 古人言,어찌 아니 준수하랴! 我盍遵.《대학(大學)》공씨가 남긴 책,212) 孔氏遺,증자가 서술했네. 曾述之,대씨(戴氏)의 《예기(禮記)》를 적고, 記戴氏,정자(程子)가 장(章)을 표시했네. 表程子.세 강령을 드리우고 綱三垂,여덟 조목을 펼쳤으니, 目八施,사람들 만대 토록 배워도 萬世學,길은 어긋나지 않으리. 路不錯.《중용(中庸)》정도에 적중하고 中正道,이치에 딱 맞음이니, 理恰好,능히 이를 해내려면 如可能,관건은 성(誠)에 있네. 樞在誠.글이 잠기고 드러난 바는 書潛見,증자의 《대학》과 같으니, 同曾傳,잘 읽고 읊조리며 善讀誦,종신토록 쓰리라. 終身用.《논어(論語)》간결한 말에 담긴 뜻 깊고, 簡而蘊,가까운데서 먼데로 이어지니, 近而遠,여러 많은 경전 중에 經傳列,가장 정심하고 절실하네. 最精切.공자의 크고 성스러움 孔大聖,인(仁)의 온전한 성품, 仁全性,이 책을 놓아 두고 舍此篇,어디에다 몸을 두리! 安置身.《맹자(孟子)》이욕(利欲)을 멈추고 遏其利,의리를 보존하니, 存其義,일곱 편의 취지는 七篇旨,이것이 다이네. 是已矣.성(性)의 공능 논하며 論性功,홍수 막은 공로213)에 견주니, 比抑洪,문장이 웅대하고 文亦雄,의미가 정통하네. 宜精通.《시경(詩經)》사람의 성정(性情)이 뿌리이고 本性情,권선과 징악이 주된 기둥이네. 主勸懲.요점은 어디 있나 要在何,생각에 비뚤어짐 없음이네. 思無邪.내용은 셋으로 나누고 三體分,형식은 여섯으로 말하네.214) 六義陳.시에 통하지 못하면 如不通,마주선 담벼락 같아지네. 面墻同.《서경(書經)》글은 네 시대215)를 썼는데 文四代,핵심은 하나이네. 心一切.전례 훈계 명령 典訓命,인(仁) 성(誠) 경(敬) 仁誠敬.정치를 하려거든 欲從政,이것이 힘 부릴 자루이네. 是欛柄.누가 힘써 공부했나 誰用功,구봉 채침216)이 있었네. 有九峯.《주역(周易)》네 성인이 짓고 四聖作,두 현자가 주석하였네.217) 二賢註.때를 따라 바꾸며 隨時易,도(道)와 덕(德)을 따르네. 從道德.줄고 늘어남을 미루어 消長推,존속과 쇠망을 알아보네. 存亡知,재질이 비루하면 才如陋,다 알기 쉽지 않네. 未易究.《춘추(春秋)》칭찬과 폄하가 분명하여 袞銊明,도적의 마음 두렵게 하네. 懼賊情.공자 높은 지위 없었지만 孔無位,천하의 대의를 여기 실었네. 寓大義.맹자와 주자가 이어받아218) 傳鄒晦,이로써 이단을 물리쳤네. 用闢異.아아, 오늘은 이제 嗟今日,누가 있어 붓을 떨칠까. 孰奮筆.《예기(禮記)》예법의 대략과 자세한 내용 經曲禮,강령과 세목으로 실었네. 鉅細載.한(漢)나라 때 이루어져219) 成漢時,선왕의 규례를 모았네. 先王規.공경치 않음 없게 함이 毋不敬,구경의 뜻이로다. 爲究竟.모름지기 급하고 간절하게 須汲汲,설 자리를 생각하라. 思所立.《총론》이 경전과 전적들 惟經籍,이가 바로 생명이고 기맥이니 是命脈.이로써 의복과 음식을 보고 視衣食,터잡고 집을 지으며 作廬宅.평생을 두고 읽고 讀終身,아들 손자에게 물려주어 傳子孫.그 심요를 체득하고 體此心,길이 이어가리라. 永無斬. 三代法, 紫陽輯, 匪此兮, 學無梯。 敬如親, 信如神, 古人言, 我盍遵。 【小學】孔氏遺, 曾述之, 記戴氏, 表程子。 綱三垂, 目八施, 萬世學, 路不錯。 【大學】中正道, 理恰好, 如可能, 樞在誠。 書潛見, 同曾傳, 善讀誦, 終身用。 【中庸】簡而蘊, 近而遠, 經傳列, 最精切。 孔大聖, 仁全性, 舍此篇, 安置身。 【論語】遏其利, 存其義, 七篇旨, 是已矣。 論性功, 比抑洪, 文亦雄, 宜精通。 【孟子】本性情, 主勸懲, 要在何, 思無邪。 三體分, 六義陳, 如不通, 面墻同。 【詩】文四代, 心一切, 典訓命, 仁誠敬。 欲從政, 是欛柄, 誰用功, 有九峯。 【書】四聖作, 二賢註, 隨時易, 從道德。 消長推, 存亡知, 才如陋, 未易究。 【易】袞銊明, 懼賊情, 孔無位, 寓大義。 傳鄒晦, 用闢異, 嗟今日, 孰奮筆。 【春秋】經曲禮, 鉅細載, 成漢時, 先王規。 母不敬, 爲究竟, 須汲汲, 思所立。 【禮記】惟經籍, 是命脈, 視衣食, 作廬宅。 讀終身, 傳子孫, 體此心, 永無斬。 【總論】 공자……가르침 《대학》의 저자에 관한 청대 고증학(考證學) 이전의 설명은 대체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고 증자(曾子)의 사상을 기술한 것이라고 보는데, 북송의 정자(程子)는 《대학》을 '공씨가 남긴 책[孔氏之遺書]'라고 하였다. 홍수 막은 공로 《맹자》〈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옛날에 우왕이 홍수를 막자 천하가 태평해졌다.[昔者禹抑洪水, 而天下平。]"을 인용한 것인데, 맹자가 양주(楊朱)ㆍ묵적(墨翟) 등의 학설을 배격하는 자신의 성선설(性善說) 등을 우왕의 치수(治水) 사업에 견주었음을 말한 것이다. 내용은……말하네 시경의 삼체(三體)는 풍아송(風雅頌)인데 풍은 천하 각 지역의 민가이고, 아는 궁정의 연회 가악(歌樂)이며, 송은 종묘의 제사 가악이다. 육의(六義)는 풍아송 삼체에 부비흥(賦比興)의 세 수사형식을 합해 말하는데, 부는 직접적 진술이고, 비는 비유 표현이며, 흥은 일종의 감흥의 비약적 연상을 말한다. 네 시대 요순(堯舜)과 하상주(夏商周) 삼대를 말한다.《서경》은 요순(堯舜) 시대의 우서(虞書), 우왕(禹王) 이하의 하서(夏書), 탕왕(湯王) 이하의 상서(商書)와 문무주공(文武周公) 이하의 주서(周書)로 구성되었다. 구봉 채침(九峯蔡沈) 채침(蔡沈, 1167~1230)은 구봉선생(九峯先生)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스승인 주희의 부탁을 받고 침잠한 지 10여 년 만에 《서경집전(書經集傳)》을 완성하였다. 네 성인……주석하였네 《주역》의 저술과 주석에 관해서는, 복희(伏羲)가 팔괘(八卦)를, 문왕(文王)이 괘사(卦辭)를,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공자가 십익(十翼)을 짓고, 북송의 정이(程頤, 1033~1107)가 〈전(傳)〉으로,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가 〈본의(本義)〉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맹자……이어받아 장횡거(張橫渠)는 "맹자는 《춘추》의 강령(綱領)을 제시하고 공자가 그것을 편찬한 취지를 밝혔다."라고 말하였다.(《近思錄集解》) 그리고 송문흠(宋文欽)은 〈춘추론(春秋論)〉에서 "맹자는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라고 하였는데, 맹자 이후로 공자를 아는 자로는 주자만한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孟子.滕文公下〉, 《閒靜堂集.春秋論》) 한(漢)나라 때 이루어져 《예기》는 전한(前漢)의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공자 이후로 전해온 예법의 내용과 이론을 정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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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명 【양극명(楊克明)200)을 위해 지음. 기사년(1939)】 魯菴銘 【爲楊克明作 己巳】 성인 문하의 노둔한 제자 魯在聖門,증삼(曾參)은 네 가지 병 말하고 參爲四病,끝내 노둔함으로 도 얻었으니 竟以魯得,정자(程子)가 논증하였네.201) 程論有證,처음에 병 앓다 끝내는 나아 病初得終,그 이치의 응험이 미묘하니, 厥理妙應.나의 벗 양극명 군은 吾友楊君,성(誠)과 독(篤)을 주로 하네.202) 誠篤是主,그의 자질 매우 수승하니 惟其質勝,그 노둔할 것을 의심하며 我疑其魯,청을 사양 않고 받아들여 受之不辭,방의 편액을 지었네. 乃作室扁.전에 송우암 선생도 在昔尤老,이 법문을 쓰셨으니 用此法門,고금에 같은 한 규범의 今古一規,귀기울여 들을 만한 말이네. 言足聽聞.무엇이 노둔의 가르침일까 孰爲魯訓,어리숙하고 무딤인데 曰愚與鈍,어둠에 뒤섞임은 아니라네 然非昏駁,밝고 영민하되 겸양함이네 謂遜明敏.도리어 무디고 더듬더듬 하니 反似木訥,인(仁)이라 한다면 비슷하겠네. 爲仁乃近.어찌 약삭빠른 사람들처럼 豈如便儇,법도를 실로 멀리 어겼으랴, 去道實遠,제 노둔함과 질박함을 지키며 持其魯質,제 민첩함과 부지런함에 힘써 用厥敏功,성현 증자는 이것으로 曾聖以此,도학의 종지 얻었다네. 得道之宗.그런데 노암을 증자에 견주면 而魯於曾,자품이 비록 같지 않지만 品雖不一,재질을 헤아리고 공력을 들여 度材用力,선철의 발자국 따름이 의당하네. 宜遵前轍.성품 착함과 마음 영묘함에는 性善心靈,하물며 높낮은 차이가 없네. 矧無軒輊,충과 신을 받아 배우고 忠信傳習,세 가지 반성203)을 차례로 하라. 三省是列,얼굴 모습과 언사의 기색 顔貌辭氣,거동의 태 또한 귀중하네.204) 三貴亦切,이것이 증자의 공부이니 是爲曾學,장차 이를 따라 배우되 而其從斯,높이 쌓으며 게으르지 않고 積久靡懈,하나로 일관하며 세월 쌓으면 一貫有時,노둔함과 영민함이 惟魯與敏,한 데 녹아 흔적이 없으리니 融化無痕,증자는 누구고 나는 누군가 曾何余何,똑 같은 몸이 때만 다른 것이네. 一體後先,힘쓰시라, 노둔한 노암이여! 勖哉魯菴,바라건대 나의 이 말 기억하소. 尙記玆言. 魯在聖門參爲四病竟以魯得程論有證病初得終厥理妙應。 吾友楊君誠篤是主, 惟其質勝, 我疑其魯, 受之不辭, 乃作室扁。 在昔尤老用此法門, 今古一規言足聽聞。 孰爲魯訓, 曰愚與鈍, 然非昏駁, 謂遜明敏, 反似木訥, 爲仁乃近, 豈如便儇, 去道實遠, 持其魯質, 用厥敏功, 曾聖以此得道之宗, 而魯於曾品雖不一度材用力宜遵前轍, 性善心靈矧無軒輊忠信傳習三省是列顔貌辭氣三貴亦切是爲曾學而其從斯積久靡懈一貫有時, 惟魯與敏, 融化無痕, 曾何余何, 一體後先, 勖哉魯菴, 尙記玆言。 양극명(楊克明) 극명(克明)은 양병회(楊秉晦)의 자로, 호는 노암(魯菴)이다. 김택술의 후배로 보인다. 성인 문하……논증하였네 《논어》 〈선진(先進)〉편에서 공자는 "증삼(曾參)은 노둔하다[參也魯]"라고 평하였고, 정자(程子)는 "증삼은 노둔함으로 도를 얻었다[參也, 竟以魯得之。]"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리고 증삼은 《대학장구(大學章句)》〈정심장(正心章)〉에서 마음을 잘못되게 하는 네 가지 병통으로 분치(忿懥)ㆍ공구(恐懼)ㆍ호락(好樂)ㆍ우환(憂患)를 들었다. 성(誠)과……하네 앞의 "증삼은 노둔하다"에 대하여 정자는 또 "증삼의 학문은 성실함과 독실함뿐이다.[曾子之學, 誠篤而已。]"라고 하였다. 세 가지 반성[三省] 증자(曾子)가 말한 "나는 매일 자신의 세 가지를 살핀다. 남을 위해 도모하며 충성스럽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믿음이 없었는가, 스승께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의 세 가지를 말한다.《論語 學而》 얼굴 모습……귀중하네 증자(曾子)의 말 "군자의 법도에 귀한 것이 세 가지니, 거동에 거칠고 오만한 태를 멀리하고, 안색을 바르게 하여 믿음에 가깝게 하고, 언사와 말투에 비루하고 어긋남을 멀리하라.[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을 인용한 것이다.《論語.泰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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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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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 벽련암23)에서 삼가 선조 죽계부군24)의 시에 차운하여 서문을 같이 씀 內藏寺碧蓮菴 謹次先祖竹溪府君詩【幷序】 "저녁 무렵 선애 입구에 들어섰더니, 돌아가는 구름은 저녁 빛에 잠기네. 종소리 미세하니 절이 멀리 있음을 알겠고, 산이 물들었으니 가을 깊음을 알겠네. 술친구 서로 와서 맞이하고, 시친구 서로 찾으니 좋구나. 기쁜 마음으로 웃음꽃 피웠더니, 티끌 가득한 마음 말끔히 씻기는구나." 이 시는 우리 11세조 죽계부군께서 내장사에 유람하셨을 때 매월당(김시습)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부군께서는 성리학을 깊게 공부하셨는데, 모당(홍이상), 월사(이정귀) 등 제현들과는 막역한 교분을 맺었고, 벼슬에 나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으며, 늙도록 초야에 묻혀 지내셨으니, 후세 사람들에게 오히려 300년 후에도 우러러 사모하게 하였는데 하물며 후손에게 있어서랴. 해는 병오년(1906) 여름, 간재 선생을 모시고 벽련암에서 독서하고 있었다. 승사에는 이 산의 한 줄기 물과 한 개의 바위가 보이는데, 일찍이 부군의 발자취가 지나치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 눈에 그것들이 들어와 옛날을 추억하고 지금을 생각하니 일찍이 세 번 더욱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삼가 그 시를 차운하여 벽에 걸어 사모하는 정성을 부친다.이곳에 도착하여 선조의 발자취 밟으며 到此訪先蹟왔다갔다 하다보니 서쪽 해 잠기는구나 彷徨西日沈천년 넘은 스산한 옛절에 千年蕭寺古온 계곡 흰 구름 깊구나 萬壑白雲深좌선하니 속세의 티끌 멀어지고 入靜俗塵遠글을 읽으니 참된 정취 찾게 되네 讀書眞趣尋재삼 탄식한 소쇄한 구절이 三嘆瀟灑句나의 슬픈 마음 일으킨다 起我悵然心 晩入仙崖口,雲歸暮色沈,鍾微知寺遠,山染覺秋深,酒伴來相迓,詩朋好更尋,欣然成一笑,瀟灑滌塵心.右詩,我十一世祖竹溪府君遊內藏時,所次梅月堂韻也.府君潛心性理之學,與慕堂月沙諸賢,爲莫逆交,不屑仕進,終老邱園,使後之人,尙能仰慕於三百載之下,况在於後昆乎.歲丙午夏,陪艮翁讀書于碧蓮.僧寺見玆山之一水一石,無非曾經府君之足跡者,而復入於吾眼中,追古思今,未嘗不三復而增歎也.玆庸謹次其韻而揭之壁,以寓感慕之誠云爾.到此訪先蹟,彷徨西日沈.千年蕭寺古,萬壑白雲深.入靜俗塵遠,讀書眞趣尋.三嘆瀟灑句,起我悵然心. 벽련암 전라북도 정읍에 위치한 내장산 서래봉 중턱에 있다. 한동안 내장사라 불리기도 하다가 근세에 와서 영은암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곳은 다시 벽련암이라고 하였다. 죽계부군 김횡(金鋐)을 말한다. 부령(富寧) 사람으로 부안(扶安)을 거주지로 삼았다. 1573년 식년시에 1등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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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봉서사8)에서 동짓날에 삼가 간재 선생의 시에 차운함 鳳棲寺南至日謹次艮齋先生韻 원래부터 선과 악은 原來善與惡훈과 유9)처럼 상반된 것 相反若薰蕕정밀하게 살피면 절로 어둡지 않고 精察不自昧마음이 넓어지고 살찌면10) 조금도 어긋남 없지 廣胖無所羞어찌 혼미한 곳을 향하고 如何迷趨向더듬으면서11) 다시 걱정하지 않는가 擿埴還不憂오늘 아침 일양의 기운이 今朝一陽氣비로소 땅속 어둠에서 깨어나니 始復地中幽모든 음이 또한 매우 커도 羣陰亦孔將이로부터 응당 머물기 어려워라 從玆應難留오직 그대는 하늘의 때를 따라 惟爾體天時길을 돌려 작은 수레로 나아가라 回途進行輈 原來善與惡,相反若薰蕕.精察不自昧,廣胖無所羞.如何迷趨向?擿埴還不憂.今朝一陽氣,始復地中幽.羣陰亦孔將,從玆應難留.惟爾體天時,回途進行輈. 봉서사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에 있는 절이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기에는 진묵(震黙) 일옥(一玉)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절을 중창하였다. 훈과 유 '훈(薰)'은 향내 나는 풀을 말하고, '유(蕕)'는 악취 나는 풀이다. 대개 선인과 악인 또는 군자와 소인을 비유한다. 마음이……살찌면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말이다. 증자(曾子)가 "부는 집안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살찐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뜻을 반드시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 必誠其意〕" 하였다. 《大學章句 傳6章》 더듬으면서 원문 '적식(擿埴)'은 맹인(盲人)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면서 어렵게 길을 찾는 것을 말한다. 양웅의 《법언(法言)》 수신편(修身篇)에 "맹인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면서 길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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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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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6년 이상범(李尙範)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大淸光緖十二年丙戌十二月三十日 李尙範 大淸光緖十二年丙戌十二月三十日 李尙範 전라남도 보성군 李尙範 외 1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6년 12월 30일에 이상범(李尙範)이 전답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6년 12월 30일에 이상범(李尙範)이 전답을 매도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교지(敎旨)의 일로 부득이하게 본군 문전면 장동촌 전평(前坪)의 화자(和字) 1두3승락지 부수(負數) 5복(卜)9속(束)을 전문(錢文) 70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답주와 증필(證筆)이 기재되어 있는데, 답주는 오위장 이상범이며, 증필은 유학 박장혁이다.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다. 매득자의 직역과 성명이 누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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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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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윤재준(尹在準)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六月念三日 尹在準 李生員宅 丁卯六月念三日 尹在準 李生員宅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3_001 1927년 6월 23일에 윤재준이 금물(金物) 수령, 세면기 등의 구매, 《주자대전》 대금 등의 내용으로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 1927년 6월 23일에 남원군(南原郡) 시장정(市場町) 공신상회(共信商會)의 윤재준(尹在準)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갑자기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초여름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체후가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로가 된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며 손상 없이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보내주신 금물(金物)은 숫자대로 받았으며, 전에 세면기(洗面器)를 구하는 것은 마침 쓰려는 곳이 있었는데 현재 연고가 없어 얻지 못하였고 소변기(小便器)는 이곳의 아이가 곧 나아가 드릴 것을 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대금은 아직 구하지 못하여 이 또한 뒷날에 구하여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끝부분에는 계산서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고 금물의 대금은 계산하여 뒤에 알려달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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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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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二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丙子二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84_001 1936년 2월 4일에 외종질 나수열이 낙상하여 다친 왼손이 낫지 않고 있으며 조카와 함께 인사하러 갈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2월 4일에 전남 장성군 삼계면(森溪面) 수옥리(水玉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공을 배사(拜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하고 조섭하는 체도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외종질 자신은 집에 도착하였으며 지난해 말에 낙상하여 다친 왼손이 지금까지 낫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조카가 설을 지낸 뒤에 인사도 하고 문병(問病)도 할 겸해서 이달 열흘 내로 필시 나를 보러 올 것인데, 권유하여 열흘 내에 함께 나아갈 것이니 이렇게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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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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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箕斗爲通政大夫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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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李箕斗爲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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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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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李箕斗爲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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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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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4년 이교섭(李敎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7.25 李敎燮 李敎成 (昭和)9.7.25 李敎燮 李敎成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6월 10일에 이교섭이 석품(石品)의 광폭과 후박, 대금, 비용처리, 전보식(電報式)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4년 6월 10일에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이 경성 남대문 밖 길야정(吉野町) 1정목(丁目) 118번지에 사는 이교환(李敎煥) 방의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썼으며 날짜는 미상이다. 석품(石品)의 광폭(廣幅)과 후박(厚薄)이 매우 졸렬하지 않으니 모양이라도 다시 갈고 새기는 것을 기약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고, 영남의 종중이 비를 세운 것에 관해 언급하고서 양문(兩門)에서 600원에 한하여 분배하여 수금하기로 하였고 석품대(石品代)는 200원으로 한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의사를 묻고 있다. 비석에 들어간 돈에 대해서는 결과가 선하고 선하지 않고를 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다시 갈고 새기는 일에 전면의 글자는 그대로 두고 후면 및 좌우의 글만 갈 것이며, 여러 종인과 함께 일할 때에 우리 문중의 배당금을 기약한대로 낼 것이라 하였다. 전의 비용을 들이고 다시 새기는 비용은 여러 방도로 종중에서 출역하여 큰일을 마치되 제종(諸宗)이 분담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 집안이 홀로 감당하더라도 그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서찰의 끝부분에는 '후면은 다시 새긴다.[更刻後面]'는 것과 '다시 새로 작성한다.[更新作成]'는 전보식(電報式)이 적혀 있으며, 한자 옆에 한글로 음을 적었다. 만약 형편이 괜찮으면 전보를 특별히 배달로 부치라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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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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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이교환(李敎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敎煥 李敎成 李敎煥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이교환(李敎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문경공(文景公) 묘답(墓畓) 사건 등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 모년 이교환(李敎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문경공(文景公) 묘답(墓畓) 사건 등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이다. 국한문혼용체이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종형제간이다. 문경공 묘답 사건에 대해 서신으로 통지한 후 회답이 없어 개탄스럽다. 뜻밖에 용동 형님이 상경하여 자세히 얘기를 듣고 종제의 서찰을 받아보았다. 전황(錢荒) 때의 5원과 고추분(苦萩粉, 고춧가루), 버선을 준비해 올려보냈으나, 숙부와 숙모께 효를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할 말도 없고 면목도 없다. 문경공 묘답은 종중의 일에 관계되니 주선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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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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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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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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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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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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