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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진익(趙鎭翼)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가족의 안부,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함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서글픔이 매우 크던 차에 편지를 받고서 늦봄에 조섭하는 안부가 점차로 회복되셨음을 알았으니 하례 드리는 지극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그런대로 지내니 사사로운 분수에 매우 다행입니다. 서울의 소식은 아직도 적막하여 반드시 헛된 곳으로 돌아가서 한갓 매우 탄식하고 한숨 쉴 뿐입니다. 길일이 닥쳤는데 제반 상황이 궁색한 단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대로 올려 보냈습니다. 나무 상자는 언문 편지 가운데 두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내버려 두었고 훗날을 기다려 대면하였다가 가지고 오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존장의 유삼(油衫) 등의 물건은 바야흐로 존장께서 역병 중에 있으므로 부쳐 올리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한탄스럽습니다. 며느리는 병이 없이 편히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기특하고 다행이나 여름 전에 보내주실 수 없는지요? 윤우에게 관매(官梅) 몇 그루를 부탁했었는데 나에게 보름 사이에 가져올 수 있을는지요? 백지 한 묶음은 비록 편지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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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준회(李浚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10월 19일, 소제 이준회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과 고공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27년 10월 19일, 소제(少弟) 이준회(李浚會)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冊藏)과 공(工)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헤어진 뒤로 병이 심해지고 근심은 더욱 요란해졌다며 상대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지 못하고 다만 친형이 편지 올리고 말로 사례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 상대의 편지를 받으니 미처 전달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불민함을 탓하였다. 최근 상대의 건강이 평안하시는 말에 위로되었다고 하고 막내 동생분의 병환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집안의 많은 문제들로 어지러운 중이라며 상황을 말하고 자신의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청한 후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쓸모없는 재목이 허사로 돌아갔음을 알 것이라고 하고, 책장(冊藏)에 대해서는 황변(黃弁)에게 그 규제(規制)를 상세히 언급해 주었다는 것, 공가(工價)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우선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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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이교인(李敎仁)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전라남도 보성군 圓形朱印: 李敎仁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려고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李敎仁)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기 위해 보낸 통문이다. 이번에 간 신완복(申完福)은 경기 양주군 호원산소(芦原山所)의 산지기인데 그가 우리 가문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를 거행했던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위토가 모래로 덮히게 되면서 매년 거행하던 시사(時祀)를 채근하자 올해는 추위를 무릅쓰고 와서 그 사유를 아뢰기로 이번에는 산의 주인되는 각 집에서 십시일반으로 걷어 거행하려고 한다며 각 집에서 다소간에 후의를 베풀어 앞으로의 일을 보존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수신처는 장동리(長洞里)를 비롯 가천리(可川里), 석동리(席洞里), 신운리(新雲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 등 여섯 동네이다. 추기에는 선산(先山)의 일이 매우 시급하니 문서가 도착하는 즉시 가천문장(可川門長)에게 이 글과 함께 올려 읽어보게 하고 읽은 후에는 문장댁(門長宅)으로 도로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국한문 혼용체로서 전체 한문이나 '가, 이고, 을, 에, ᄒᆞ야' 등의 토가 한글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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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李百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今月 八日 李百淳 今月 八日 1923 李百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92_001 모년에 이백순이 문중의 위토이전 등의 일에 대해 그간의 진행과정을 가천에 보고한 간찰 모년에 이백순(李百淳)이 위토이전(位土移轉) 건, 형재공(亨齋公) 사판봉안(祀版奉案) 건, 족보간행 등과 관련해서 문중의 종파 사이에 생긴 갈등에 대해서 자신이 상경해서 만나고 처리한 일의 과정을 보성군 가천 집안으로 보고한 간찰이다. 형편을 봐서 안 되면 인장(印章)은 통신하기가 불편하니 날짜에 맞추는 것이 지체된다. 소송하게 되면 인조개각(印造改刻)한다고 광고한 일도 있어서, 즉시 상경해서 하지 않으면 소송할 계획이었다. 마침 신병이 있고, 이교웅(李敎雄)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조사해보았더니 되돌릴 이치가 없어 곡성‧보성 두 문회(門會)를 따를 계획이었다. 하행하여 곡성‧보성 문회를 개축(開祝)하고, 교난(敎欄)‧교재(敎在)가 동석해서 자세히 얘기한 후 그들의 흑백을 문중에서 잘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이 크게 있다. 이 서류 등과 인장을 문중에 함께 가지고 가니, 인장은 각각 분급하시라고 하였다. 또 금년 가운(家運)이 불길하여 생활난이 막심한 중에 문중에서까지 분란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고, 그간 해왔던 일의 소장취소건 등의 서류와 쓰인 경비를 적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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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惠覽 日來侍餘體度泰安 兩堂大小諸節而一安否仰慰慕願聞之耳 然而第位土事는 今春分與貴君同返寶城ᄒᆞ야 其門中一曰文題形便을 볼지라도 結局은 敎雄反對에因하야 訴訟할 作定은 各門中이 다 된 쥴노生覺ᄒᆞ고 又는 錦變氏家의셔 再昨年分訴訟ᄒᆞ야 位土移轉手續ᄒᆞ기로 結議書을 作成ᄒᆞ야 近百餘名承諾 証印도 在於手中ᄒᆞ고 又는敎成兩家의셔 某之中 同座席ᄒᆞ야 敎成出言中一曰, 訴訟得判ᄒᆞ야 位土移轉件 二曰亨齋公祀版奉安件 三曰譜事也云ᄒᆞᆫ 面證도 되고 上京時 우리派는 勿論이온나 各相逢之族마락訴訟結處을 當ᄒᆞ기로 不可不形便보아不如할時외는 印章通信ᄒᆞ기가 不便及日字가遲滯되온니 若擧訟이 될 時는 印造改刻ᄒᆞᆫ다고唐告ᄒᆞᆫ일도 잇기로 卽時上京ᄒᆞ야 不如ᄒᆞ면擧訟爲計언니 맛참 有身病ᄒᆞ고 又는 敎雄處間 비밀히 調査則別返無理故今新後谷■(城)〔寶〕兩門會을 逐於結處爲計矣니 其月分부터 敎雄間行的이 變動되고 譜所往來ᄒᆞ야 處事凡節並前日片紙와 如히 우리 谷寶兩門中은前道의 餘望이 無一片켸된니 憤心히 莫甚ᄒᆞ야 東取西貸ᄒᆞ야 着手後 通知ᄒᆞ야도 無放할쥴로生覺인바 陰凶ᄒᆞᆫ 敎欄等외계 치소을 바든니 利害는 勿論하고 痛憤痛憤이라 ■故로 初也외도 凶凶ᄒᆞᆫ 敎欄도 此有의 名議을 두랴ᄒᆞ얏든니 譜所鍾浹■〔及〕某某中의셔 監하기로 去六七月分 寶城大淳氏와 同上京ᄒᆞ야 大淳氏는 獨歸下行켸ᄒᆞ고 自己는 敎雄處의셔 一日宿泊ᄒᆞ야 大淳氏보텀 一日後下行인니 敎欄은 고만두라고덜 ᄒᆞ기로 爲疑ᄒᆞ야 敎在는 未覺ᄒᆞ고 敎欄만 빼다가 오쥭지산은 內容証明書을 다 바다보오니 可笑可笑耳 然而爲情心生覺ᄒᆞ면 時急時急히下行ᄒᆞ야 谷寶門會을 開祝ᄒᆞ고 敎欄敎在同席의셔 世世面爛後 其等之也을 累白을門中의셔 善懌ᄒᆞ야보고십을 生覺은 有大ᄒᆞ온나 云流行比說의 大小을 勿論ᄒᆞ고 謀事槐原이 速成敝也라ᄒᆞ는 量을 證定ᄒᆞ온니貴君은 極力을다ᄒᆞ야 此書類等印章을門中외 共抱ᄒᆞ고 印章은 各各分給ᄒᆞ올소셔ᄒᆞ얏사온니 그리알고 餘介寶城印章을보ᄂᆡᆯ젹의 此事實이나 書札ᄒᆞ야보내시옵소셔今年家運이 不吉ᄒᆞ야 生活難而莫甚ᄒᆞᆫ中水割의 不足ᄒᆞ야 하지안는 人生으로 고연는門事의 入添되야 生計의 滅亡으로부터 門中ᄭᅡ지 불난을 ᄭᅵ치계 ᄒᆞ온니 萬萬罪悚홈니 不測量이라 鬱鬱ᄒᆞ기로 餘不備ᄒᆞ온니 或而行員이 上京ᄒᆞ시덜라도부ᄃᆡ 敎欄門에셔 上京이며 우리谷城셔는陰凶의ᄲᅡ지고 말덧ᄒᆞ온니 形便沓沓書耳今月 八日 叔人 百淳 拜拜書類는 取消ᄒᆞ야 付送ᄒᆞ는 中 印紙는 或而半額이라도죰건저볼가ᄒᆞ야 辯護士에계주럿쓴나 法院消除印ᄭᅡ지 되야 飛去西陽斷이中上入九斗耳付送書件記一. 訴狀取消件二. 土地台帳謄本 再昨件은 無用紙物되야 此本訴狀의 提出件과 合二件三. 敎花가 ᄒᆞᆫ 內容証書 一件四. 辯護士이 着手金領收証 一件以上此書類는 門中의셔 輪示ᄒᆞ신 後 必히 返送ᄒᆞ시되門中委任狀一通만 ᄒᆞ야 보ᄂᆡ 쥬기을 千萬切仰切仰耳 委任狀은 門中의셔 印章을抵抵히 送ᄒᆞ기 不便ᄒᆞ니 貴族니 善懌ᄒᆞ야僞造私用할라는 委任書의 宗印下捺ᄒᆞᆫ 委任一張만 보ᄂᆡ 쥬시면 敎欄及敎花門외 此本損割倍償ᄭᅡ지 左右間判結코자 ᄒᆞ옴나이다ᄒᆞ고 門中의 말삼ᄒᆞ옵소셔此本損割金은 左와 如홈一. 着手損實金 一百六十圓也二. 三次京城來往旅費 食費 判事交接費 四五十圓의 達ᄒᆞ고三. 土地台帳謄本 往來費 迄十一円二十戔以外雜費 此致ᄒᆞ고 現在損割가以上인니 他債從當가 莫甚이라略此書類가 敎欄家가면 안쥬기가 슈일터닌이 쥬의ᄒᆞ야 보ᄂᆡ 쥬옵소셔片紙도 各派로 다 ᄒᆞ얏ᄂ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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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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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3년 성주이씨 대동보소(大同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癸亥舊二月二十五日 星州李氏大同譜所 李冕容 癸亥舊二月二十五日 星州李氏大同譜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음력 2월 25일에 성주이씨 대동보소(大同譜所)에서 단자 제출 관련으로 이면용(李冕容)에게 보낸 통문(通文) 족보 간행과 관련한 통문이며, 대동보의 간행이 늦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각처에서의 단자 제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래로 단자를 거둔 인원수가 8,403명이다. 백중숙계(伯仲叔季)를 가지고 논하자면, 숙계파로 단자를 들여도 백중이 아니면 서차(序次)할 수 없고 백중도 숙계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또 비용이 많이 들어 세월을 마냥 천연할 수 없으니, 먼저 세덕편은 먼저 인출 중이나, 정단(正單)의 정지는 기다릴 것이니, 각파에서는 단자를 합쳐서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좌기(左記)라고 하여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단자 제출 마감일과 세덕편의 진행상황을 제시하였고, 보청(譜廳)을 빙자해서 돈을 거두는 자에게 주지 말 것 등의 사항을 주지시키고 있다. 끝에는 보청의 도청(都廳) 이하 각 직임자의 명단이 열거되었으며, 수신자의 이름이 있다. 문서의 중앙 가까이에는 성주이씨 보소의 직인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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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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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5년 손종각(孫宗珏)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元年 乙亥 十二月十四日 畓主 自筆 幼學 孫宗珏 前明文 光緖元年 乙亥 十二月十四日 孫宗珏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5년 12월 14일에 손종각(孫宗珏)이 아무개에게 논 5두락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75년 12월 14일에 손종각(孫宗珏)이 아무개에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5두락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답주, 증인의 착명(着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緖) 원년 을해 12월 14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논을 간직하고 있다가 요긴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봉덕면(鳳德面) 내 판교(板橋) 초장동(草長洞) 장(帳) 자(字) 논 5두락 3배미(25부)를 21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구문기(舊文記)는 도문기(都文記, 상속문서 같은 원문서)에 실려 있어서 내줄 수 없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자필(自筆) 유학 손종각(孫宗珏). 증인 유학 이봉호(李鵬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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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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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7년 이중이(李仲伊)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二年 丁巳 二月二十八日 畓主 喪人 李仲伊 着署 幼學 黃一淸 前明文 嘉慶二年 丁巳 二月二十八日 李仲伊 黃一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7년 2월 28일에 이중이(李仲伊)가 황일청(黃一淸)에게 논 2두락을 36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797년 2월 28일에 이중이(李仲伊)가 황일청(黃一淸)에게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논 2두락을 36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매도자는 상중이어서 정식으로 서명을 하지 않고 대신 이름 뒤에 '착명(着名)'이란 글자를 써 두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2년 정사 2월 28일 유학 황일청 앞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 이름으로 스스로 매득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부득이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마산등원(馬山等員)에 있는 부(夫) 자(字) 4작(作) 논 2두락(10부 5속)을 36냥으로 교환하여 가격을 작정하여 일정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간에 만약 잡담을 도모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증빙할 것이라. 답주(畓主) 상인(喪人) 이중이(李仲伊). 증인 남봉채(南鳳采)[착명]. 작성자 한량 김세표(金世杓)[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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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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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주자(朱子)의 〈가정(家政)〉 필사본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주자(朱子)가 지은 것으로 치가‧수신‧처세에 대한 지침서인 〈가정(家政)〉의 내용을 필사한 글 주자(朱子)가 지은 것으로 치가‧수신‧처세에 대한 지침서인 〈가정(家政)〉의 내용을 필사한 글로 작성자와 작성일자는 알 수 없다. "공가(公家)의 정치가 있고, 사가(私家)의 정치가 있다. 선비와 군자가 한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부(富)나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덕을 키울 뿐이며, 선(善)을 쌓을 뿐이다."로 처음을 시작하여, 부자(父子)간에는 자효(慈孝)하고자 하고, 형제간에는 우애와 공손하고자 하고, 부부는 공경하고 따르고자 한다 등 관계에 대한 것에서부터, 쓰임(用度)은 검소하고자 하며, 부세(賦稅)는 기일에 맞추어내고자 하며, 길흉에는 그 변화를 알고자 하고, 분한 일은 참고자 하고, 출납은 명백하고자 하고, 마시고 먹는 것은 난잡하지 않고자 하며, 복식은 사치하지 않고자 하고, 문적은 훼손하지 않고자 하며, 상벌은 마땅 하고자 한다 등 60여 가지의 일상의 행동에서 하고자(欲) 할 것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면, 가정이 밝게 다스려져, 안팎으로 원망이 없고, 상하(上下)가 상서로우며, 자손들이 길하고 번창한다. 이것으로 관(官)에서 이행하면 온 관의 정사가 다스려지고, 이것을 나라와 천하에 이행하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의 끝에는 "주부자가정(朱夫子家政)"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글은 《주자대전(朱子大全)》 유집(遺集)에 들어있는 문(文)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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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卯 四月 十七 査生 尹琪燮 拜手 癸卯 四月 十七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4년 8월 4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를 전하며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4년 4월 17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내려주신 답장 편지를 받은 지 날이 오래되었는데, 다시 삼가 묻건대 보리 추위에 정양하시는 체후는 만왕하시고 사위도 책을 읽고 평안하며 가족들 모두 크게 평안하신지요? 그립고 송축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저의 어버이는 그런대로 평안하시나 사소한 집안의 연고로 오래도록 편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딸아이의 행차에 애초에 몸소 데리고 떠나려 했는데 마침 장애가 있어 집안 조카를 대신하여 보냅니다. 오늘은 비가 오려고 하는데 길이 90리나 되어 염려가 적지 않습니다. 대서(大暑) 전에 사위에게 명하여 한번 본가에 오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듣건대 호곡(好谷)의 행차는 멀지 않은 때에 있을 것 같은데, 만일 요객(繞客)의 행차가 있다면 마땅히 영광스럽게 왕림할 것이니 미리 책상을 쓸고 기다리겠습니다. 교자가 이미 존형의 편에 있으므로 먼 길을 오갈 때 굳이 짐을 더하지 않을 것인데, 이렇게 빈손으로 종을 보내게 되었으니 삼가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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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기두(李箕斗)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사돈에게 장마철의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마가 다하여 가을이 맑으니 그리운 마음이 날로 간절합니다. 편지를 받고서 삼가 요즈음에 존장의 체후가 매우 좋으시고 가족들도 고르게 평안하며 며느리도 탈 없이 정길(貞吉) 함을 알았으니 위안되어 실로 멀리 있는 제 마음에 흡족합니다. 저는 한결같이 괴로운 모습이나 오직 자식의 크고 작은 일 외에는 다른 근심이 없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 또 새 사람의 정숙한 모습도 보고 싶으나 장마의 더위가 계속되어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인정 밖의 일과 같으니 단지 그리워만 하고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례(新禮)는 장차 내달 안에 치를 계획인데 길일은 집 아이가 가까운 때에 응당 소매에 넣어 갈 것이니 이것으로 헤아려 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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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성주이씨 이종일(李鍾一)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 이태순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 종족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李鍾一), 이태순(李台淳)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畿湖) 종족(宗族)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내용은 지역이 떨어져 서로 만나기 어려운 종족간의 아쉬움과 추운 겨울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상대에게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대시급한 선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보성 등 각 문중에서 완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나머지 상세한 전말은 족대부(族大父) 이교인(李敎仁) 씨에게서 들을 수 있다고 적었다. 편지 글과 같은 통문의 내용 뒤에는 '대시급에 관한 건'이라고 하여 시급하게 처한 문제점을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문경공 묘소의 단독소유증명을 몇 명의 명의로 공동소유권을 만들기 위한 토지구입과 인지수수료가 매우 많기에 현재 회의 중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판윤공 묘소 근처 백사(白沙)가 된 곳을 사초(莎草)하기 위한 문제가 시급하니 총독부에서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먼저 식목(植木) 하여 소유권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도정공 대사헌공 부자(父子)의 산소에 사초가 퇴락한 문제를 짚으며 이러한 세 가지 문제가 시급하지만 서울에 사는 자손 몇 명으로는 가난하여 금액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기호(畿湖)의 종족 집에 통지하여 내년 음력 정월 말일까지 금액을 모두 수합하여 총독부가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묘소를 단장하자고 했다. 내년 음력 1월 10일 내로 보성 각 문중에 한 사람을 보탤 테니 이 사람에게 수납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 문제는 곡성문중에도 통고하였다고 적었다. 통문은 경성에 살고 있는 이종일, 이태순 두 사람의 명의로 발신되어 가천리(可川里), 운곡리(雲谷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에 회통(回通)하도록 하였다. 피봉에 적힌 발신자는 경성 익선동 125번에 살고 있는 이종일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이면용(李冕容)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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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地隔千里 奉接無路 景仰古風 徒勞夢想 幸値 榮旆入闉之會亦未得奉拜 其或天嫌吾人花樹之誼而然歟 伏悵之懷 愈倍前日也 而況此衰境冷候不憚途遠餘 其許多年少親枉董役 以完 先塋 其追遠孝思之誠 令人健羨 致賀不已 仍伏詢至沍榮旆還次 利稅勞攘餘氣體候無至損節 門內諸節均休幷伏溸區區不任下忱 族孫等 僅保度(2)日 公飽歲債 調度益貧 行無餘力之可及於禮儀等節 而現有大時急底先事者非止再 無一可擧實□爲孑孫之道 然居在 墓近明知有事於先塋 而坐歎自力之無可奈何 又不告於遠地族親 則亦失於敦親之道 故敢將其槩尾附仰瀆於尊體事 伏望將此 諭及寶城各門中俾完在迫之 先事 若何若何 多少詳悉於族大夫敎仁氏 故萬閣 續后 不備上(3)候禮 京城 益善洞 一百二十五番地丙辰十一月二十六日族孫等 鍾一[李鍾一]京城仁寺洞五十九番地 台淳[李泰淳信]再拜大時急에 關ᄒᆞᆫ 件一 文景公墓所(今高陽郡碧蹄面仙遊洞) 自來高陽郡參判鍾律氏之主管 而曾未暇於後慮ᄒᆞ고 該位土 自己單獨所有証明 到今形便을 觀之즉 土地所有가 無關於文簿有無요 臺帳에 所載人爲主而其家力(4)去益零替 勢將幾箇人名義共同所有記濟然後라야 可免 先塋絶火之慮 故在京諸族이 相呌憂歎 然其土地價格이 至於千餘円 則登記印紙與手料가 亦甚夥然 以是로 方會議中이요一 判尹公墓所(楊州芦海面無愁洞佛堂谷)位土則 雖已歸定이나 然이나 山所與山形이近爲白沙之地也 非徒莎草頹落之急이라 自明春으로 總督府의셔 行沙防工事於不咸山內外面植付苗木할 旨로 揭令(5)ᄒᆞ여시니 若然즉 山所近形便이 頹敗白沙요 且閥外幾嶝도 皆是白沙라 行沙防工事에 免할 權利가 無ᄒᆞ니 此將何爲오 是以로 時急業議ᄒᆞ야 莎草도 完築케ᄒᆞ고 先山嶝을一新植木치 못ᄒᆞᆯ지면 山所近處幾百步之地라도 植木ᄒᆞ여사 可免脹目失墓之勢라 萬若總督府로 植木ᄒᆞᆫ後ᄂᆞᆫ 雖諸子孫이 一齊會合ᄒᆞ야 呼天呼寃이라도 奚可奈何이니 爲其子孫者 知而不爲면 卽■近禽獸라 族孫等이 居在京中에 此令辭을(6)知之故로 幾箇子孫會合ᄒᆞ야 方收議ᄒᆞᆫ 中이온ᄃᆡ 玆敬通告ᄒᆞᆷ一 都正公大司憲公父子分山所(楊州芦海面廣石里)莎草崩頹不是라 墳上折半崩頹ᄒᆞ고 外堦가 崩落에 可爲露棺之境이니 子孫者 參當目見不可以口舌로 急이라고 告할事 先爲罪悚ᄒᆞ야 方收議莎草完築을爲計ᄒᆞᆷ右三件事가 目下大時急 故京居子孫幾箇人이 會合收議 則擧皆貧寒中夥多(7)ᄒᆞᆫ 金額을 不可勝當ᄒᆞ야 畿湖間宗族家로 通告ᄒᆞ야 明年陰正月晦間에ᄂᆞᆫ 金額을 收合ᄒᆞ여사 總督府行亦前에 植木이 爲第一이오니大父主覽此時急所告ᄒᆞ시고 寶城各門中으로 收議ᄒᆞ시면 明年陰正月旬內로 行員一人을 下送ᄒᆞ올지니大諒ᄒᆞ시와 以完先事 伏祝明年陰正月二十九日이馬韓國夫人忌祀라 其時에 寶城門中의셔도(8)行員一人을 定ᄒᆞ야 自京下去行員으로 偕爲上來ᄒᆞ시와 告事規定도 ᄒᆞ시고 莎草等事도 完築ᄒᆞ시믈 伏望再此由을 京近郡宗族間이며 谷城門中의도 通告ᄒᆞ여시니諒燭ᄒᆞ시옵可川里雲谷里詩川里斗瑟里 僉前(皮封_前面)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冕容氏 閣下(皮封_背面)京城 益善洞 一二五番李鍾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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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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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신전종중(薪田宗中) 이인순(李寅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67_001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의 이인순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간찰(簡札)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薪田宗中)의 이인순(李寅淳)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경고문(敬告文)이다. 자신들이 경족(京族)이 고변(告變)한 편지와 장로(長老)의 명에 따라 돈을 마련하고자 관련하여 일할 사람을 정하여 보냈는데, 후에 받은 편지에서 오히려 놀라운 취급을 당했다며 전후로 받았던 편지를 살펴보니 모두 장로(長老)의 이름은 있지만 뒤에 받은 편지는 장로(長老)의 본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호가호위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전을 중히 여기어 돈을 받을 줄만 알지 선조를 받드는 도리가 부족해 보이는 이 편지의 뜻과, 돈을 준다고 했다가 돈을 주지 않는다는 등의 중언부언하는 말 등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들은 공의를 따르겠지만 잘 배분하여 채무상의 비용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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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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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김택경(金澤卿)이 『화동사(華東史)』 등 책과 삼씨(麻種), 양철(洋鐵) 구입 등을 의논하는 간찰(簡札) 1936년 8월 22일 김택경(金澤卿)이 상대방이 보낸 답장을 받고 다시 보낸 간찰이다. 『화동사(華東史)』는 이러이러하니 의심하지 말고 매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고, 『소의편(昭義編)』은 지난번에 1질(一沓) 매입을 허락하였으나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하였으며, 『현가궤범(絃歌軌範)』에 대한 의견도 쓰고 있다. 삼씨는 이번 달 보름에 선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시기를 놓쳤으나, 힘이 닿는 대로 하되 내달 상순은 어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삼씨의 타적(打積)은 타곡(打穀)한 뒤에 해야 되니 9월 그믐 ~ 10월 초 정도에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 여기서의 말(斗)은 작은 말(小斗)로 1표(表)는 80말이라는 설명과 이후의 일정 등이 있다. 신문 속보를 보니 당신이 사는 지역이 가뭄이 특히 심하다고 하는데 별 손해가 없는지 등도 묻고, 양철(洋鐵)의 매입 가능한 가격과 양을 제시하는 내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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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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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4년 매국정(梅菊亭) 석역소(石役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昭和)9, 戊八念 梅菊亭 石役所 李龍淳 (昭和)9, 戊八念 梅菊亭 石役所 李龍淳 경상북도 고령군 郵便日附印 :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8월 20일에 고령군 매국정 석역소에서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성주이씨 문중 이용순씨에게 보낸 우편엽서 통문(通文) 1934년 8월 20일에 고령군(高靈郡) 매국정(梅菊亭) 석역소(石役所)에서 이종렬 등 5인이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성주이씨 문중 이용순(李龍淳)씨에게 보낸 우편엽서 통문이다. 선조(先祖) 매운당(梅雲堂) 선생의 신도비 건설 사업이 6개월째 진행 중이라며 비용과 채무금이 산과 같이 쌓였음을 전하고 귀 파(派)에 배당한 금액을 보내주기를 요청한 내용이다. 비석을 새기는 일은 마쳤지만 돈이 없어 입석(立石)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10월 12일 묘사(墓祀) 일까지 우편으로 배당금을 부쳐 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발신자 5인은 이종렬(李宗烈), 이영순(李永淳), 이봉기(李鳳基), 이진화(李鎭華), 이진환(李進煥) 이다. 발급일자 기록이 '무팔념(戊八念)'으로 되어 있으나 우편엽서의 일부인(日附印)에 소화9가 새겨져 있어 1934년(갑술)으로 보았다.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1343)은 고려후기 장령,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관리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 · 백화헌(百花軒),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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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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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04년 남순명(南舜命)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九年 甲子 二月二十六日 畓主 筆 漢〖閑〗良 南舜命 金哲命 處明文 嘉慶九年 甲子 二月二十六日 南舜命 金哲命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4년 2월 26일에 남순명(南舜命)이 김철명(金哲命)에게 논 2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04년 2월 26일에 남순명(南舜命)이 김철명(金哲命)에게 여러 해 경작하던 논 2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표기법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오자도 많이 발견된다. 답주(畓主)가 한량(閑良)을 스스로 한량(漢良)으로 잘못 쓸 정도로 한문 지식이 일천하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9년 갑자 2월 26일 김철명(金哲命)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는 것이니. 스스로 매득한 논을 여러 해 갈마 먹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상복동(上福洞) 맹(盟) 자(字) 논 2두락(7부)을 35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본문기(本文記) 3장을 갖추어 위 사람 앞으로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자손 중에서 잡담이 있거든 장차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 및 작성자 한량 남순명(南舜命)[착명]. 증인 황일청(黃日淸)[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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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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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01년 주지승(住持僧) 민승(敏性)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一〖六〗年 辛酉 十一月二十日 畓主 住持僧 敏性 李生員宅奴 太三 嘉慶一〖六〗年 辛酉 十一月二十日 住持僧 敏性 太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1년 11월 20일에 모 사찰 주지승 민승(敏性)이 이생원(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논 2두락을 1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01년 11월 20일에 모 사찰 주지승 민승(敏性)이 사찰의 형편이 어려워 이생원댁(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논 2두락을 1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사찰에서 매도하는 문서로 주지승이 주도하고 도감승(都監僧)과 전 주지가 참여했다. 문서에는 가경(嘉慶) 1년(一年)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가경 6년(六年)의 오기이다. 고문서에서 중국 연호를 표기할 때에 간혹 1년 정도의 차이로 오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5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6년 신유 11월 20일 이생원(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放賣)하는 것이라. 민고전(民庫錢)을 납부할 자금이 어렵기 때문에 형세가 부득이하여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후동(後洞) 들판에 있는 논 창(昌) 자(字) 3작(作) 2두락(12부 2속)을 17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영영 방매(放賣)하되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서 내줄 수가 없으며 이후로 사찰에 있는 승려 중에 혹 잡담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주지승 민승(敏性)[착명]. 도감승(都監僧) 문신(文信)[착명]. 작성자 전 주지 광현(廣玄)[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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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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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三月 卄一日 罪從侄 敎文 拜手 南省叔主前 丁亥 三月 卄一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58_001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보러 오는 행차 편에 편지를 받고 부모님 모시는 체후가 좋으시고 가족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삼가 위안이 됩니다. 죄인 조카는 석 달을 여행의 괴로움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교지에서 빠진 것들은 모두 불민함으로 인함이고 전후의 동성이 글로 써서 준 것이 하나의 사례로 보인 것입니다. 다시 긴요한 뜻으로 부탁하신 것은 이렇게 모두 안보하기가 쉽지 않으니 조금 늦은 것과 같으나 필경 찾을 것입니다. 사서 보낸 물건은 모두 주인집 밖에서 사온 물건입니다. 객지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빚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갑자기 판출하기 어렵습니다. 마포 두 필은 보내신 대로 도착하였고 이처럼 짧은 것은 29척입니다. 이것은 주인이 청한 바이니 내 뜻과 같지 않습니다. 포의 값이 지극히 헐하여 본가가 십일 냥인데, 응당 5전 이십 냥에 해당되어 이렇게 집행을 하니 이것으로 다시 헤아려 주시고 다시 장척 이필을 뒤의 인편에 다시 부쳐 주기를 매우 바랍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 8장은 먼저 찾아 보내주기를 바람. 하인배가 죽을 각오로 내려가고자 하니 이렇게 긴히 당겨서 일을 주관하니 안에 쌓아두는 뇌문석 하나와 상석 하나와 방석 몇 개를 사서 보내기 바랍니다. 만재(晩齋) 숙부와 남종(南從)이 모두 눈으로 듣고 본 것이니 반드시 상세히 들었을 것입니다.천 냥의 돈은 반드시 집행할 것이니 미리 헤아려 전후의 비용으로 합니다. 또한, 나의 뜻에 적지 않을 것이니 엽전 일백 냥을 먼저 읍에 머무는 경주인 김화녀(金和汝)에게 지급하여 주고, 받은 서표를 올려보내고 이것을 미루어 사용하면 매우 좋겠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쓴다면 매 백냥 당 엽전이 더 해져서 그 아래로는 60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니 자읍(自邑)에 먼저 주고 삼사십 냥을 풀어 준다고 하니 대략 처리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봉안(鳳眼)을 만들어서 다시 보낸 것은 돈 십사 냥이고 탕건 한 건은 90냥입니다. 찬물로 손을 씻으면 평소와 같으니 바구니에 넣어서 보내주십시오. 갑사(甲絲)는 모두 갖추기 어려우니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달에 들어올 것입니다. 황지(黃紙) 한 장은 구전이고 토호지(士好紙) 한 장은 팔 전이니 다시 교지를 내기 위해 사서 지급하는 것입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는 추가로 구입한 것인데, 이십 냥에 구입한 것입니다. 분황제(焚黃祭)는 천천히 베풀어서 행할 것이고 탕폐(宕幣)는 먼저 거행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서울에서는 모두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김화녀(金和汝)는 바꾸는 것이 뜻과 같지 않으니 돈으로 사서 보내기를 오로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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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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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二月 十七日 罪從侄 敎文 拜疏上 南省終叔前 丁亥 二月 十七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58_001 1887년 2월 17일 이교문(李敎文)이 이종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숙부에게 보내는 물품에 대한 구매와 비용 등의 내용을 전하는 답장 편지이다. 먼저 3대의 은덕으로 교지를 받게 된 일에 감사를 전하였으며, 검서(檢書)는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하였고 교지 30장을 봉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분황 교지는 다음번에 보내고 봉안(鳳眼)을 하는 비용은 대략 20냥이 될 것이라 하였다. 추신에 사립(絲笠)은 백여 금이 들 것이고 통영에서 온 것이 좋으며 탕건(宕巾)은 검서의 머리 모양을 보지 못해 사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인들의 노자와 식사 비용으로 521냥을 출금했다 하였으며, 도홍대(桃紅帶) 1건은 12냥이고, 금관자(金貫子) 1건은 5냥 5전이고, 은합자(銀合子) 1건은 3냥 2전인데 우선 빚을 내어 쓸 것이라 하였으며, 마포(麻布)는 중품 장척(尺長)으로 구할 것이니 합 20냥 7전과 마포 3필의 값을 보내 달라는 등의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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