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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부사(府便) 최명손(崔命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己丑至月 族後孫崔秉心撰 己丑至月 崔秉心 崔命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9년 11월에 최병심이 작성한 부사공 최명손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949년 11월에 후손 최병심(崔秉心)이 부사공 최명손(崔命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최명손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집현전 직제학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현손이다. 증조는 한성소윤을 지낸 율헌(栗軒) 최득지(崔得之)이며, 조는 현감 최자목(崔自睦), 부는 증상장군(贈上將軍) 최분(崔汾),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창령성씨(昌寜成氏)이다. 공은 선천부사도총관경력(宣川府使都摠管經歷)을 지냈고 부인은 숙부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묘는 분토동(粉土洞) 현감공 묘 아래 서쪽을 향하여 쌍분으로 있는데 어언 400여 년이 흘렀다. 가첩(家牒)에 기록되는 것이 이와 같이 적지 않은데도 자, 호, 생졸년, 또한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가정이나 고을을 다스린 일에 대해서는 전하는 것이 없다. 옛날 공자 때에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예를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에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선대의 비를 세우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근거 없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공의 둘째 아들 희정의 ?덕촌집(德村集)?을 보면. 공이 추천을 받아 북으로 가면서, 둘째에게 효도로서 그의 장형을 섬길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공이 공적을 세우고 조정에 돌아오자 조정에서 이를 가상히 여겨 관직을 하사하였는데, 공은 신하로서 적을 멸하였을 뿐인데 어찌 감히 상을 받을 수 있냐고 하며 굳게 사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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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后三庚辰 中學敎授南綺老撰 崇禎紀元后三庚辰 南綺老 崔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가 작성한 처암선생 최계성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南綺老)가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이며, 처암은 그의 호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의 넷째 아들이다. 조는 최생명(崔生明), 증조는 최광지(崔匡之)이며, 고려시중 문성공 최아(崔阿)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최씨(崔氏)로 사정(司正) 최효로(崔孝老)의 딸이다. 처암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보다 제법 뛰어나 고궁당이 일찍이 아이를 안고 정원을 거닐다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누가 네 구석에 어떤 기둥을 두었길래 하늘이 이처럼 광활한가.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하늘이 땅을 덮고 땅이 하늘을 실었으니 그 가운데가 자연히 광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궁당은 아들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는 장성하여 부모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부모의 질병은 하늘이 가져가라고 빌기도 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치뤘으며, 형과 누이를 어버이 섬기듯 똑같이 섬겼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 명종(明宗) 때 정려(旌閭)를 받았는데 그 사실이 삼강록(三綱錄)에 실려있다. 정묘년에 사마시(司馬試)에 다시 응시하지 않고 부령(扶寧)의 옹정(甕井)에 거처를 마련하여 처암(處菴)이라고 부르며 당대의 유명한 유림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부인은 김씨(金氏)인데 소생이 없고 후처 최씨(崔氏)에게서 하(河), 온(溫), 활(活), 말(沫)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들 중 하와 온은 요절하여 자식이 없다. 활은 부령김씨(扶寧金氏)를 취하여 아들 시립(時立), 산립(山立), 선립(善立) 등 3명을 두었고, 말은 여산송씨(礪山宋氏)를 취하여 딸 1명을 두었다. 공의 묘는 석동(席洞)의 선영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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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菴先生諱繼成墓碣銘幷序崔公繼成字紹先全州人固竆堂秀孫第四子也祖諱生明生員殿直曾祖諱匡之集殿提學高麗侍中文成公阿於公爲鼻祖妣宜人崔氏司正孝老女也公幼而秀穎固竆公嘗抱行中庭指天問曰誰柱四隅而如是廣闊曰天覆地地載天中自廣闊固竆公奇之旣長克孝父母疾祈天獲冥隲居喪以禮以所事移兄姊事聞于朝 明廟嘉之旌其閭事在三綱錄中丁卯司馬不復應擧卜居于扶風之甕井號處菴息營屛囂潛心講究所與遊皆一時名儒也配金氏後配崔氏生四男長河次溫次活奉事次沫正郎河溫早殀無子活娶扶寜金氏通政義貞女生三男長時立奉事次山立次善立奉事沫娶礪山宋氏縣監期忠女生一女適判書權悏後孫蘩衍克紹家聲式公種德貽穀之驗也墓左席洞先塋下公七世孫道彬屬余以銘銘曰孝以傳家趾美乃先胡式其閭維黔與連刻文玆石永圖厥傳崇禎紀元后三庚辰通訓大夫弘文館副修撰知制 敎兼經筵檢討官春秋記事官中學敎授南綺老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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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동(金魯東) 석천(石泉) 최응렬(崔膺烈)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金魯東 金魯東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김노동이 지은 최웅렬의 묘갈명 안동김씨(安東金氏)인 김노동(金魯東)이 지은 최응렬(崔膺烈)의 묘갈명이다. 석천(石泉)은 최응렬의 호이다. 최응렬은 학문이 매우 뛰어났던 분이다. 그의 학문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으로부터도 인정 받을 정도였다. 본 묘갈명은, 수정 흔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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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임필희(林苾熙) 이우당기(二友堂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蜡月 日 林苾熙 己卯蜡月 日 1939 林苾熙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12월에 임필희가 작성한 이우당의 기문. 1939년 12월에 임필희(林苾熙)가 작성한 이우당(二友堂)의 기문(記文)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 최득호(崔得昊)와 최득화(崔得華)의 효우(孝友)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지은 정자에 임필희가 이우당이라는 당호(堂號)를 지어주면서 작성한 기문이다. 최씨 형제는 연촌(烟村)과 암계(巖溪)의 후손으로 강선(降仙)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강선은 유절재 소장 문서 가운데 하나인 '1954년 권도용(權道溶) 귀후재기(歸厚齋記)'에 따르면, 전주최씨 중에서 두 형제가 천령(天嶺)에서 이곳 강선대(降仙臺) 아래 최씨가의 별장[崔氏莊]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살면서 향족(鄕族)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선대의 위치를 말하면서, 덕유산(德裕山)의 남쪽이자 금원산(金猿山)의 북쪽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일대로 추정된다. 이들 최득호 형제의 후손 최광호(崔光顥)가 임필희를 찾아와 새로 지은 정자의 당명을 부탁하자 두 형제의 우애가 돈독하였다는 뜻으로 이같은 당호를 지어준 것이다. 기문의 작성자 임필희는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임유동(林有棟, 1900~1950)의 부친이다. 임필희는 또 1957년에 경남 함양의 종담서당(鐘潭書堂)에서 석채례(釋菜禮)를 지낼 때 자이당(自怡堂) 유사(有司)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보낸 제수단자가 전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우당 기문의 작성연대로 기록한 기묘년은 1939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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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최병수(崔秉銖)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四月上澣 秉銖 己卯四月上澣 崔秉銖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최병수가 지은 전주최씨종대 중건기의 전사본 1939년 최병수(崔秉銖)가 지은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를 누군가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끝에 최기홍서(崔基洪書)로 되어 있인데, 그것은 본 기문을 현판에 새길 때의 글씨를 최기홍이 썼다는 의미이다. 본 중건기에는 전주(全州)에 있는 전주최씨 종대의 역사와 중건하게 된 과정 등을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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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使公諱命孫墓碣銘幷序公諱命孫全州■〔人〕高麗門下侍中諡文成阿爲上祖我 朝集賢殿■(直)提學諱霮號月塘之玄孫也曾祖諱得之號栗軒官漢城少尹祖諱自睦官縣監考諱汾 贈上將軍妣淑夫人昌寜成氏公宣川府使都摠經歷配淑夫人延安李氏郡守登全女墓粉土洞縣監公墓下西向雙兆今距公之世已四百有餘年矣家牒所錄不過如此雖字號生卒年亦皆不傳况乎家政郡治之懿乎夫杞宋王之〔者〕之後■〔以〕其文獻不足徵故聖人不言夏商之禮顧此碑役何敢爲一毫無據之言乎但嘗見公之次允希汀德村集有德村被薦入北之日■〔以〕孝養事囑其伯兄進士及功成還朝之日 中廟嘉之歎賞以官公固謝曰滅狄臣職何賞之有且言歸養云云 上特賜東岦山一區今遠孫追先孝以營墓碑此可銘也且公繼祖塘栗之烈垂後德慕順農之裕俱以忠孝師傅著■今古亦可書也男長希潤成均進士次希汀 贈兵曹參判享書山院進士生鎭河工曹參議兵參生鎭洪禦侮副司果鎭河生汝浩參奉主簿司果生英佑司僕寺副正英俊禮賓寺正參奉生安慕■〔菴〕直長與子二順堂壬辰倡義募軍納米享道溪院當〔富〕通德郞寅工曹佐郞容副正生寬■〔僉〕樞寔中樞府事宏主簿寺正生宣奉事密奉事守主簿寧主簿銘曰 上承祖作下啓子述公之無憂周辟彷肆大小事殊隱顯理■〔達〕遠孫追孝盡誠治碣欝欝粉崗五尺有屹配德同原千秋芬苾 己丑至月上澣族後孫■〔崔〕秉心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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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山) 최지열(崔智烈)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崔智烈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양문규가 작성한 영산공 최지열의 묘갈명의 초안○ 내용 모년에 양문규(楊文圭)가 영산공 최지열(崔智烈)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의 초안(草案)이다. 모년에 영산공 최지열(崔智烈)의 묘비에 사적(事蹟)이나 덕행(德行)을 후세에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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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최병학(崔秉學) 십이대조고조비축죽문(十二代祖考祖妣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秉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崔秉學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병학이 경술년에 지은 조고와 조비의 제문 경술년(庚戌年)인 1970년에 최병영(崔秉永)이 지은 본인의 조고(祖考)와 조비(祖妣) 제문(祭文)이다. 제삿날인 계축년 9월 15일에 본 축문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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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윤영구(尹寗求) 한벽당기(寒碧堂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丑三月上澣 尹寗求 丁丑三月上澣 尹寗求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7년 윤영구가 지은 한벽당기의 전사본 1937년 윤영구(尹寗求)가 지은 전주 한벽당기(寒碧堂記)를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한벽당의 역사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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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育亭 完州郡草浦面美山里壹七貳番地樂育亭記完山龍興之地也故稱豐沛之邑而山川之壯麗人物之隆盛他州之所莫及矣自古名流輩出英才群聚涵泳於 聖朝鳶魚之化菁莪之育則州內簪纓之家名祖賢儒鍾出於山川淸淑之氣薰陶乎師友淵源之間可知其英才之育得也人品如古地靈不衰則人之英才何必古有而今無耶今或有之而吾未之見耶就見而吾未之知耶知之而吾未得而育之耶乾山一脉西落爲薇山數十里屈曲千百變斷續彩雲宿霞朝捲而夕張奇花瑤草春榮而秋實山斷水出大野間圻卽吾野隱之幽居也一間廢廬足以庇風雨矣採於山美可茹漁於水鮮可食春耕秋穫夏葛冬裘此吾分內之榮而無所形役於外物矣然而有一儲恨于中而晝宵不弛者卽欲一門英才之育得也噫余以圭竇寒門世居玆土僅保箕裘之舊業永存苗裔之滋長源深而支繁者莫非我先世遺蔭種德之積慶也以若不肖慨然有承先裕後之志于玆有年矣越若來丁巳春三起亭于村之南錫名曰樂育盖取諸鄒夫子所謂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者也三樂之中一樂者在天二樂者在我三樂者在人在天在人者吾末如之何已矣在我者吾當自盡而已嗟汝來許若能涵養於學問薰陶其德性心無自欺則浩然無愧可以贊位育之功至大人之域矣苟能盡在我則在人之英才必將聞風而來矣夫子曰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以此言之所謂三樂者雖在乎人而亦在乎我矣從事於斯無所間斷則英才之育豈但止於村秀才鄕學究而已哉其將羽翼斯文扶植世道有補於風化而吾門之幸孰若玆樂育之義乎嗟汝後蒙其顧名而勉乎哉吾以名吾亭焉丁巳春三月下澣 崔學善序夫人生於天地育物之中樂其自然之理則各得其(性)分之固有而樂其志也亦因氣質之所禀而育其材也故木在山而匠氏得以撲斵然後可以就棟樑之材矣珎在璞而玉人取之然後足以成圭瓚之器則人才之成就亦何異於此乎十室之邑必有忠信則何代無賢三代之風漸至渝薄則久矣無敎今玆薇山一脉發源於麒麟之峯而中祖於乾址之山則數十里屈伏千百變恠奇則山盡水會大野廣開隱然有淸淑之氣而豁然具仁智之樂矣斯間豈無賢人之居乎卽吾友野隱翁之幽居也天性好學地步超俗平生之志在於敎養子弟而及乎成就人才則此所謂幼吾幼而及乎人之幼矣搆堂於村之南而廣求一鄕之善士以爲螟誨之所旁招隣里之學徒俾授鳥習之地而名其亭曰樂育則鄒夫子所謂三樂中一樂也樂有萬殊而莫大於得英也育亦萬類而莫顯乎就才則野隱翁之樂其志(志育)才豈不超然遠慮哉余於斯有感而爲之記己未復月上澣全州后人春溪柳相龍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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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옹암최선생유허비각(甕菴崔先生遺墟碑閣) 상량문(上樑文) 고문서-시문류-상량문 경제-토목/건축-상량문 檀紀四千三百十三年庚申六月 日 檀紀四千三百十三年庚申六月 日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80년 6월에 지은 옹암최선생 유허비각의 상량문 1980년 6월에 지은 옹암최선생(甕菴崔先生) 유허비각(遺墟碑閣) 상량문(上樑文)이다. 정서본으로 보인다. 옹암은 최생명(崔生明)의 호이다. 그의 유허비각 상량문을 지을 때 본 글을 쓴 것인데,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최생명은 부안의 옹정서원(甕井書院)애서 위패를 모시고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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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환(鄭錫煥) 봉사재상량문(奉思齋上樑文) 고문서-시문류-상량문 경제-토목/건축-상량문 鄭錫煥 鄭錫煥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석환이 지은 전주 봉사재 상량문 전주시 진북동(鎭北洞)에 새롭게 건축하는 봉사재(奉思齋)의 상량문이다. 정석환(鄭錫煥)이 지었다. 하지만 언제 지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사(奉思)는 조상을 받들고 사모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인 상량문과는 현태가 다른 점이 눈의 띈다. 봉사재는 전주최씨의 재실(齋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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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 묘갈문(墓碣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後三戊子 大提學徐命膺謹撰 崇禎紀元後三戊子 徐命膺 崔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28년(순조 28)에 서명응이 작성한 처암선생 최계성의 묘갈문 병서의 초안 1828년(순조 28)에 서명응(徐命膺)이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문(墓碣文)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이며, 처암은 그의 호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중종 초의 조정에서는 앞에서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도학을 창도하고, 뒤에서는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가 도를 실천해나가면서 많은 뛰어난 선비들이 영남과 호남에서 출현하였다. 전주최씨 문중에서도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호조참의(戶曹參議)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을 지낸 월당(月塘) 담(霮)은 아들 광지(匡之)를 낳았다. 집현전제학을 지낸 광지의 아들은 생명(生明)으로, 관직은 경시전직(京市殿直)을 지냈다. 그의 호는 옹암(甕菴)이다. 도덕이 심원하여 부안(扶安) 옹정사(甕井祠)에 배향되었다고 ?여지승람(輿地勝覺)?에 실려 있다. 생명은 수손(秀孫)을 낳았는데 진사(進士)에 들었으나 관직에는 오르지 않았고 호를 고궁당(固窮堂)이라고 하였다. 그는 학행으로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고궁당의 전배(前配)는 사직(司直) 오백형(吳伯亨)의 딸 의인(宜人) 오씨(吳氏)이고, 후배(後配)는 사정(司正) 최효로(崔孝老)의 딸 의인 최씨(崔氏)이다. 고궁당은 후배(後配)와의 사이에서 아들 6명을 낳았다. 첫째는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사성을 지낸 순성(順成)이며, 둘째는 성균진사 처헌(處軒) 필성(弼成)이고, 셋째는 문과자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사 극성(克成)이고, 넷째가 바로 처암이다, 그 다음이 생원 참봉 경성(竟成)이고, 다음으로 요절한 만성(晩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둘째 처헌과 넷째 처암은 우애가 매우 깊어서 중종과 명종대에 정려가 내려져 그 이름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실려있다. 처암은 홍치(弘治) 무신년(1488) 정월에 태어나 가정(嘉靖) 병진년(1556)에 향년 69세로 사망하여 부안 석동산(席洞山)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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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菴先生諱繼成墓碣銘〔文〕幷序處菴先生諱繼成字紹先全州人國家當 中廟初載金慕齋安國倡學于前趙靜菴光祖行道於後故士多作興敦實行黜虛騖而嶺湖尤彬彬若其一門之內父子兄弟步武牽聯則全州崔氏是已崔氏高麗侍中文成公阿之後至霮始仕我 朝戶曺叅議集賢殿提學號月塘霮生匡之集賢殿提學匡之生生明京市殿直號甕菴以道德深源享于扶安甕井祠載輿地勝覽生明生秀孫擧進士不仕號固竆堂又以學行配享于文貞公金坵廟配冝人吳氏司直伯亨之女後配冝人崔氏司正孝老之女也生六男長順成文科官成均司成次弼成進士號處軒配道東祠次克成文科官藝文館檢閱兼春秋館事次卽先生次竟成生員蔭叅奉次晩成早夭先生與處軒公又以孝友卓異 中廟 明廟旌其閭載名三綱行實錄人比之大連小連二人者之才與行同矣而趙靜菴薦弼成曰奉親至孝才兼文武於先生則不及者先生時尙少矣未幾己卯禍作先生幼有異質家庭之間旣得師友又以戊午賢良成重淹爲表從兄相追逐講劘而雖負經濟之志時丁不幸屢徵不就甘晦跡終老一擧生員不復仕所居甕井扁其室曰處菴以見志探討經籍尤長於易遠方士有欲求學者亦不拒也由是戶屨常滿莫不虛往實歸充然若程門飮河一以孝悌爲本敎子有八訓其尤著稱塗人耳目者慈患乳腫醫言蝮蛇爪可已也時方隆冬求而得之一試輒效世云氷鯉雪筍先生以弘治戊申正月十四日生享年六十九嘉靖丙辰十一月二十一日終葬扶安席洞山配冝人金氏後配冝人崔氏生四男曰河曰溫曰活奉事配于甕井祠曰沫正郎出后中兄檢閱公河與溫嘗同會行過恩津沙橋溫墜水河救之不得遂幷溺水中初思菴朴淳出入門下相友善至是爲觧衣歛二人屍哭之以詩曰昔聞父子淵今見弟兄川孝友元無異芳名萬古傳先生所著述経亂無徵獨其遺風餘韻尙留在一鄊遠近章甫相議腏享于淸溪祠後移配于甕井祠先是弼成已配享固竆公廟君子曰大夫而動國人易匹夫而動鄊人難何則大夫有位以表望之有業以宣昭之動固其勢也匹夫則不然人相忘於其鄊如魚之相忘於江湖非有實德實行弸于中彪于外則夫孰有樂趨而仰之哉當時之人樂趍而仰之且難矣况能於数百年之後咨嗟嚮慕而尸祝之哉珠璧沉海漁人不能知而百世之下得其光輝如在几案之上處菴之謂也僅錄其聞見之大畧如是以俟秉筆之君子崇禎紀元後三戊子仲春嘉善大夫行禮曹叅判兼同知經筵春秋館成均館藝文館大提學徐命膺謹撰公與仲兄處軒公受學于靜菴趙先生門爲高弟且與慕齋金先生日事講論爲道義之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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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參奉) 최빈(崔濱) 묘갈(墓碣)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重光大淵獻中秋旬三 德殷宋秉珣撰 重光大淵獻中秋旬三 辛亥 宋秉珣 崔濱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해년 음력 8월에 송병순이 작성한 참봉 최빈의 묘갈의 초안○ 내용 신해년 음력 8월에 송병순(/宋秉珣)이 참봉 최빈(崔濱)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墓碣)의 초안(草案)이다. 신해년에 송병순(宋秉珣)이 참봉 최빈(崔濱)의 묘비에 사적(事蹟)이나 덕행(德行)을 후세에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묘갈(墓碣)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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