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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최기홍(崔基洪) 청취서정정신청서(聽取書訂正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昭和五年四月十五日 崔基洪 昭和五年四月十五日 崔基洪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0년 최기홍이 작성한 청취서정정신청서. 1930년 4월 15일에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옹중리(瓮中里)에 사는 최기홍(崔基洪)이 신청한 청취서정정신청서(聽取書訂正申請書)이다. 철갑대장(鐵匣臺帳)은 조선(朝鮮) 최초에 논밭과 임야를 모두 기재한 대장인데 석동(席洞) 최씨 산의 자번호(字番號)는 성자(聖字), 노비 을지(乙之)가 결복(結卜)하는 것으로 현록(懸錄)되어 있었다. 나중에 조선에서 통행하는 관례법으로 임야에 대한 결복은 삭제된 사실이 전래의 공인이다. 양지아문(量地衙門)이 설치된 뒤에 이 대장은 폐지되었다. 수영(水營)의 양안(量案)에는 임야가 수영의 관할 소속으로 송금(松禁)과 송속(松贖 도벌에 대한 벌과금)을 전부 관리하는데 석동의 최씨 산이 수영의 양안에 노비 을지의 이름으로 기재되었던 사실은 공인된 것이나 지금 양안에 있는지 없는지는 미상(未詳)이라고 하면서 이전 조서(調書) 내용의 정정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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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申書一.申立地ノ表示全羅北道扶安郡扶寧面蓮谷里山參拾五番ノ貳林野五町八反九畝同 所山參拾參番林野壹町四反五畝右土地ニ對シ大正拾參年九月二十六日附ヲ以テ不服申立テタル事實及理由ニ對シ左記ノ通リ及追申候也事實及理由右林野ハ距今四百七十年前ニ不服申立人ノ十四代祖父崔生明ヨリ此ノ所有權ヲ取得シ世世引續繼葬シタル三十一番ノ林野ト參十五番ノ林野ニ同一附屬ノ地域ニシテ不服申立人崔炳郁ノ十代祖母晉州姜氏墳墓ト崔秉甲ノ八代祖父崔宗建及八代祖母晉州柳氏墳墓ト崔基洪ノ八代祖父崔得中墳墓ト崔在洪ノ祖父崔東權及祖母礪山宋氏墳墓ト不服申立人ノ親族崔秉運ノ祖母金氏墳墓ト崔秉豊ノ父崔雲洪墳墓ハ三十五番ノ貳林野ニ在崔碩洪ノ六代祖母礪山宋氏墳墓ハ三十三番林野ニ在リテ山直ヲ定メ守護禁養シ來タルモノニシテ禁養狀況ハ距今數百年前ニ平均樹齡約百餘年松ヲ間伐シテ以テ祭閣ヲ構造シ其後距今十六年前庚戌ニ約五十年松二千株ヲ間伐シ其後距今五年前辛酉ニ約五十年松乃至三十年松五百本ヲ間伐セリ距今六十年前ヨリハ每年松樹三百本ヲ植栽シテ現在其ノ樹齡五十年乃至十年生ガ密立セリ以上ノ如ク不服申立人ノ所有地ニテ禁護シタルニ不拘査定名義人ハ其先祖金少尹ノ失所シタル墳墓ガ右林野附近(卽現今三十四番)ニ在リトテ無証一大阜ヲ指稱シテ之ガ訴訟ヲ基因ヲタルモ終是其墓ノ証據ナキ爲メ敗訴ニ歸ヲタルニ其後距今六十六年前庚申ニ査定名義人ノ先代金弘濟等ガ借葬崔塚ト云?無根ノ說ヲ做出シ完文ヲ誣圖シテ右林野內ニ所在スル不服申立人ノ祖先墳墓ヲ暗夜私掘シ市人ヲ厚賃シ松楸ヲ犯斫シタル故不服申立人ノ先代等ガ國王ニ擊錚鳴寃シテ掘塚罪囚九人ヲ刑配シ犯斫松価二萬五千兩ヲ懲捧シタル後訴訟ヲ妥帖シタル處其後光武二年戊戌ニ至リ査定名義人ガ更ニ訴訟ヲ惹起シタルヲ以テ本道觀察使兼裁判所判事李完用ハ本郡守兪鎭哲ト共ニ山形ヲ親審シタル後訴訟ヲ和解セシメル爲メ兩家文軸ヲ全部燒却シ不服申立人ヲ權喩シテ現今三十二番林野ト三十四番林野(金少尹墓地)ヲ査定名義人ニ讓渡セシメルヲ以テ不服申立人ハ不得已之ヲ承諾シタルモノニシテ冒頭表示林野ハ毫モ査定名義人ニ關係ナキモノナリ右陳述ノ通リ相違無之ハ左記証據書類ニ依リ明瞭ナリ一.添附書類金弘濟(査定名義人先代)納侤音 壹通圖本 壹通以上大正拾四年拾月 日全羅北道扶安郡保安面牛東里不服申立人 崔炳郁 死亡仝道仝郡扶寧面瓮中里不服申立人崔基洪[印][以下26名의 住所와 人名省略]朝鮮總督府林野調査委員會 御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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聽取書訂正申請書鐵匣臺帳은朝鮮最初에田畓과林野을統히記載한臺帳인바席洞崔山이字番號은聖字요奴名은乙之로結卜을懸錄하여ᄂᆞᆫᄃᆡ後來에朝鮮通行의例法으로林野結卜은削除된事實이傳來의公認한바라年前量地衙門設置後에右臺帳이廢止홈水營量案은古來林野가水營의管轄所屬으로松禁과松贖을全部管理한바席洞崔山이右量案에奴名乙之로記載된事實은傳來의公認한바라今量案有無은未詳홈昭和五年四月十五日全北道扶安郡扶寧面瓮中里一九四番地申請人 崔基洪[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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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연곡리 임야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 소유의 연곡리(蓮谷里) 임야(林野)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이다. 신고 이유는 물론 소유 관계 때문이다. 수정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으로 보인다. 신고 시점은 명시되어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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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최장홍(崔章洪) 등 토지신고오류정정신고서(土地申告誤謬訂正申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大正五年 大正五年 崔章洪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6년 최장홍 등의 토지신고오류정정신고서 1916년에 부안군(扶安郡) 상서면(上西面) 풍랑동(豊琅洞)에 사는 최장홍(崔章洪)과 부령면 옹월리(瓮月里)에 사는 최기홍(崔基洪)이 임시토지조사국장(臨時土地調査局長)에게 올린 토지신고오류정정(土地申告誤謬訂正) 신고서(申告書)이다. 부안군(扶安郡) 행안면(幸安面) 신기리(新基里)에 소재한 당자(棠字) 논과 의자(宜字) 논의 소유주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정정을 요청하였다. 전에는 최장홍으로 되어 있었으나 최기홍으로 정정을 요청하였고 행안면장(幸安面長) 신종순(辛鍾純)과 신기리(新基里) 이장 허동욱(許東旭), 동지주총대(同地主總代) 허필원(許弼源) 등이 이를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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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大正) 연간 최병욱(崔炳郁) 소유임야(所有林野) 신고서(申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전라북도 부안군 원형 적색4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대정 연간에 최병욱이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 대정(大正) 연간에 최병욱(崔炳郁)이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全羅北道)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이다. 최병욱은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면서 그의 14대조(代祖) 최생명(崔生明) 이하 종중재산인 부령면 연곡리의 임야 12정(町) 가운데 6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하였다. 신고한 토지의 면적은 동쪽 김광언(金光彦)의 임야 표지부터 남서의 길을 따라 북쪽 최병욱 임야(林野)까지이다.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지로 강점한 전후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대하여 대규모의 조사사업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임야수탈 정책상 일반토지와 마찬가지로 임야도 자본투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확립과 그 이전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임야 소유관계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일제는 종래 한국의 토지·임야 소유제를 반(半)봉건적 소유제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사적 소유제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식민지 수탈의 양대 기초로 삼았다. 일제당국은 이 사업의 목적이 토지조사에서 제외된 임야와 임야 내 개재지(介在地)의 소유권, 경계를 법적으로 확립함으로써 종래 분쟁의 화근이었던 혼란스런 권리관계를 명백히하여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바지하면서 한국 임정의 정비에 자료를 제공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적은 한국 임야에 근대적인 등기제도를 도입해 지번제(地番制)를 창설함으로써 삼림수탈의 주대상이던 국유임야를 최종적으로 사유임야의 소유관계로 재편하여 확고부동한 소유권만을 재공인함으로써 임야에 대한 권리확보 및 이용을 편리하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 하에서 일본인 임업자본가를 보호 및 육성하고 일본인 이민들에게 창출된 국유임야를 분급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국유임야 창출의 극대화 및 법인과 사유임야 소유권의 재법인을 통해 한국인의 소유권과 사유림을 약탈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1916년 시험적 준비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9년간 1차 사정사무(査定事務)가 완료되었고, 이에 부수하는 2차 재결사무(裁決事務)는 조선총독부임야조사위원회의 주관으로 1919년 개시되어 1935년 비로소 완결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이래 임야사점(林野私占)이 확대되어 소유자나 다름없는 지위를 점유해 특수한 연고관계를 가진 상당수의 임야를 연고권만을 법인한 국유림으로 귀속시켰다. 한국의 주체적 임야조사였다면 당연히 민유로 사정되어야 할 한국민의 임야를 연고림이라는 명목으로 국유화한 면적만도 무려 337만 5000정보에 달한다. 한편, 임야조사사업으로 일본인의 기존 임야점유가 합법화됨은 물론, 강제로 편입된 국유임야가 최종적으로 법인됨에 따라, 일제와 결탁한 일부 한국인들이 임야를 대부 또는 불하받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임야조사사업 항목 참고.) 한편, 최병욱 명의(名義)의 토지에 대한 신고서의 모든 사항을 기록한 해는 융희 4년(즉,1910년)인데 토지신고일은 대정(大正)으로만 기재되어 있어 정확한 신고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로 1정(町)은 3000평(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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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申告誤謬訂正申告書土地所在 扶安郡幸安面新基里地目[畓] 字番號[棠字七四四] 及四標[東姜夏壎畓西辛亨錫畓南路北辛亨錫畓] 斗落數[六斗落] 結數[十五負七束]地目[畓] 字番號[宜字五五三] 及四標[東李泰玉畓西金元道畓南李泰玉畓北宋炳浩畓] 斗落數[六斗落] 結數[十八負五束] 事故[前申告ノ際地主名崔章洪ト申告レタルリ誤謬ニ付地主名崔基洪ト訂正相成ㇱ]右地主名誤謬發見候ニ付御訂正相成度玆ニ連署申告ス大正五年 月 日全北扶安郡上西面豊琅洞一統二戶前申告者 崔章洪[印]全北扶安郡扶寧面甕月里二統五戶地主崔基洪[印]臨時土地調査局長 殿右ノ通相違セルベシ證ス大正五年 月 日幸安面長 辛鍾純幸安面新基里長 許東旭[印]仝地主總代 許弼源[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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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大正) 연간 최병욱(崔炳郁) 소유임야(所有林野) 신고서(申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전라북도 부안군 원형 적색4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대정 연간에 최병욱이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 대정(大正) 연간에 최병욱(崔炳郁)이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全羅北道)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이다. 최병욱은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면서 그의 14대조(代祖) 최생명(崔生明) 이하 종중재산인 부령면 연곡리의 임야 12정(町) 가운데 1반(反)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하였다. 신고한 토지의 면적은 동쪽 길 표지에서 남북 길을 따라 서쪽 김계상(金桂相)의 임야 표지까지이다.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지로 강점한 전후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대하여 대규모의 조사사업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임야수탈 정책상 일반토지와 마찬가지로 임야도 자본투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확립과 그 이전(移轉)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임야 소유관계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일제는 종래 한국의 토지·임야 소유제를 반(半)봉건적 소유제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사적 소유제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식민지 수탈의 양대 기초로 삼았다. 일제당국은 이 사업의 목적이 토지조사에서 제외된 임야와 임야 내 개재지(介在地)의 소유권, 경계를 법적으로 확립함으로써 종래 분쟁의 화근이었던 혼란스런 권리관계를 명백히하여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한국임정의 정비에 자료를 제공함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적은 한국 임야에 근대적인 등기제도를 도입해 지번제(地番制)를 창설함으로써 삼림수탈의 주대상이던 국유임야를 최종적으로 사유임야의 소유관계를 재편해 확고부동한 소유권만을 재공인함으로써 임야에 대한 권리확보 및 이용을 편리하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 하에서 일본인 임업자본가를 보호 육성하고 일본인 이민들에게 창출된 국유임야를 분급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국유임야 창출의 극대화 및 법인과 사유임야 소유권의 재법인을 통해 한국인의 소유권과 사유림을 약탈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1916년 시험적 준비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9년간 1차 사정사무(査定事務)가 완료되었고, 이에 부수하는 2차 재결사무(裁決事務)는 조선총독부임야조사위원회의 주관으로 1919년 개시되어 1935년 비로소 완결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이래 임야사점(林野私占)이 확대되어 소유자나 다름없는 지위를 점유해 특수한 연고관계를 가진 상당수의 임야를 연고권만을 법인한 국유림으로 귀속시켰다. 한국의 주체적 임야조사였다면 당연히 민유로 사정되어야 할 한국민의 임야를 연고림이라는 명목으로 국유화한 면적만도 무려 337만 5000정보에 달한다. 한편, 임야조사사업으로 일본인의 기존 임야점유가 합법화됨은 물론, 강제로 편입된 국유임야가 최종적으로 법인됨에 따라, 일제와 결탁한 일부 한국인들이 임야를 대부 또는 불하받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임야조사사업 항목 참고.) 한편, 최병욱 명의(名義)의 토지에 대한 신고서의 모든 사항을 기록한 해는 융희 4년(즉,1910년)인데 토지신고일은 대정(大正)으로만 기재되어 있어 정확한 신고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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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3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연곡리 임야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 소유의 연곡리(蓮谷里) 임야(林野)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이다. 신고 이유는 물론 소유 관계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1’의 수정본이며,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2’의 복사본으로 보인다. 신고 시점는 명시되어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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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사실급이유(事實及理由)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 최씨 문중에서 작성한 최생명 선산 소유 사실 설명서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원이 작성한 자료이다. 부안군에 있는 최생명(崔生明) 선산(先山)의 소유 및 소유 이후의 과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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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 김규상(金珪相) 가처분결정서(假處分決定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大正十年十一月三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大正十年十一月三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의 가처분결정서 1921년 11월 3일에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이 김규상((金珪相) 등의 가처분신청(假處分申請)에 대해 내린 가처분결정서이다.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김규상・김석술(金錫述)과 보안면(保安面)에 사는 최병욱(崔炳郁) 등이 신청한 가처분신청(假處分申請)에 대해 재판소는 채권자(債權者)의 신청을 상당하다고 인정하여 보증금 20원을 공탁하도록 하고, 피신청인은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에 쌓아둔 솔가지 1,000속을 매매, 양도, 전당 등 일체 처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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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籍簿照合濟[印]申告書申告年月日 : 大正 年 月 日總代認印 : [印][印]所有者綠故者住所氏名印 : 全羅北道扶安郡保安面牛東里五百八十九番 崔炳郁[印]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及住所氏名印 : (資格) 道 郡 面 里 番土地所在 : 扶安郡扶寧面蓮谷里(席洞山西麓)地目 : 林野四標 : 東 金光彦林 南 路西 路 北 本人林面積 : 六町0000地籍届 : 隆熙四年六月九日 名義人 : 崔炳郁證明又登記種類番號年月日舊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新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貸付年月日及指令番號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事由其他參考事項 : 十四代祖崔生明以下宗中財産證據書類一通地籍届面積十二町六反二畝十五步內綠故林野所有權査定願表記申告書記載의綠故林野을綠故者 의所有에御査定하기로別紙證據書類寫相添林野調査令施行規則第九條에依야出願홈大正 年 月 日 右全羅北道知事 殿一, 申告書은一里洞마다調製야他의里洞의分을混入치말事二, 住所氏名은本籍地居住者에在야民籍簿又은戶籍簿와一致케고寄留者에在야寄留者의登錄簿又은寄留簿와一致케야此와同一의文字를用야明瞭히記載이可홈但申告者가林野所在面外에居住境過에前記書類의抄本을添付홈이可홈三, 林野內에介在土地는地籍圖에登錄치아니것슨林野가아니라도總히申告이可홈 地籍圖에登記林野는申告치아니홈四, 地目은土地調査令第二條의規定에依할事五, 利害關係人으로부터申告할경우에는其住所▣▣▣▣▣▣(利害關係人될)事及氏名을(▣(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欄에記入▣()이可홈六, 共有地의申告書에는代表者의住所氏名을記入▣()고別히各自의住所氏名을記載連名書을添付이可홈七, 表中(證明)은土地에關舊證明規則及不動産証明令에依證明(登記)은不動産登記令에依야登記(地籍届)는舊森林法第十九條의地籍届(貸付)는國有地貸付에係할者로홈前記의關係가有土地는此를別筆로셔申告이可홈八, 官廳에셔通知書는(申告書)을(通知書)로이可홈九, 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立旨,立案,完文又는賜牌等을有것슨其寫를添付이可홈十, 所有者又는綠故者住所氏名欄은所有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綠故者)의三字을抹消고綠故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所有者)의三字을抹消이可홈十一, 登記又證明의種類年月日番號欄의內明治四十五年▣(三)月三十一日以前에受것은舊欄에記入이可홈十二, 貸付年月日及指令欄에는國有地의▣▣(貸付)에限야記載할것스로셔種類의下에有料無料의別을記入이可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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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삼림약도착오신입사실(森林略圖錯誤申込事實) 신청서(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昭和拾年壹月參拾日 扶安郡守 昭和拾年壹月參拾日 扶安郡守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5년 최기홍이 작성한 삼림약도착오신고사실 신청서 1935년 1월 30일에 부안군 부령면 옹중리에 시는 최기홍(崔基洪)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임야조사위원회(林野調査委員會)에 제출한 산림약도의 착오를 신고하는 신청서이다.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와 봉덕리의 산에 대해 1909년(순종 3) 농상공부(農商工部) 지적(地籍)에 있는 삼림약도를 도(道)에서 조사할 때 신고했는데, 본부(本府)에서 조사할 때에 잘못 기록된 삼림약도를 신고하였다. 그러므로 지적계의 삼림약도 원본을 모사하여 본군에 증명원을 제출하여 증명을 받았으니 증명한 약도를 인정해 달라고 하였다. 뒷장에는 최기홍이 부안군수에게 올린 증명원이 있는데, 부안군(扶安郡) 하동면(下東面) 석동산(席洞山)에 대해 소유자가 입하면(立下面) 우반리(愚磻里)에 사는 최병욱(崔炳郁)임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부안군수는 위의 사실과 다름없음을 증명한다고 하였다. 석동산의 소유자가 최병욱임을 표시한 민유산림약도(民有森林略圖)가 부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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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林略圖錯誤申告事實扶安郡扶寧面蓮谷里山三五-一林野三五-二林野三一林野三三林野奉德里山三五林野全部面積이十五町三反三畝二十八步인바隆熙三年農商工部地籍屆한森林略圖은道調査時에申告ᄒᆞ고本府調査時에誤錄된森林略圖을不知中에申告한事實이的確함으로今般地籍屆한森林略圖原本을模寫ᄒᆞ야本郡証明을提出申告ᄒᆞ오니右証明한略圖로認定ᄒᆞ심을敬要昭和拾年壹月參拾日扶安郡扶寧面瓮中里右申告人崔基洪朝鮮總督府林野調査委員會啣中--証明願全羅北道扶安郡下東面席洞山面積拾五町參反參畝貳拾八步ニ對レ所有者扶安郡立下面愚磻里崔炳郁ガ森林法第拾九條ニ依イ地籍屆テレタ/ト/啣証明相成度此段及奉願候也昭和拾年壹月參拾日扶安郡扶寧面瓮中里右願人崔基洪[印]扶安郡守 殿右之通相違無キコトヲ證明ス昭和拾年壹月三十日扶安郡守[印]--民有森林略圖全羅北道扶安郡下東面席洞山面積十五町三反三畝二十八步所有者全羅北道扶安郡立下面愚磻里崔炳郁略圖[그림]--扶安郡扶寧面奉德里山三五番林野右林野一町三反四畝ᄂᆞᆫ蓮谷里三五-一林野와三五-二林野와三一林野와三三林野와同一한地籍届圖本에包含인바自來紛爭地로事實이一致홈右申請人 崔基洪--扶安郡扶寧面蓮谷里席洞山全州崔氏墳墓錄三五-一番林野 有碑墳墓十七基無碑墳墓三十八基計五十五基也三五-二番林野 無碑墳墓九基計九基也三一番林野 有碑墳墓二十一基無碑墳墓三十七基計五十八基也三三番林野 無碑墳墓一基計一基在總計墳墓一百二十三基也申請人崔基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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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최동한(崔東漢) 사유임야보호규칙(私有林野保護規則)에 의한 시업신청서(施業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崔東漢 崔東漢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5년 최동한이 작성하여 부안군수에게 제출한 사유임야보호규칙에 의한 시업신청서. 1935년 최동한(崔東漢)이 작성하여 부안군수에게 제출한 사유임야보호규칙(私有林野保護規則)에 의한 시업신청서(施業申請書)이다.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사는 최동한은 최병욱(崔炳郁)의 상속인으로서 부안 부령면 연곡리 산 31번지를 사유임야보호규칙(私有林野保護規則) 제3조에 의해 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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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김규상(金珪相) 등 소멸증명서(消滅証明書) 하부신청(下付申請) 1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大正拾壹年 大正拾壹年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2년에 김규상 등이 제출한 소멸증명서 하부신청 1922년에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김규상(金珪相)과 김석술(金錫述)이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던 최병욱(崔炳郁)을 상대로 낸 소멸증명서 하부신청이다. 최병욱의 사망으로 피신청인은 큰아들 최동한(崔東漢)에게 상속되었는데 최씨측에서 동산 가처분을 신청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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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滅証明書下付申請大正拾壹年民申第貳八号借諸?因保扶安郡保安面牛東里申請人崔炳郁右死亡ニ付家督相續人崔東漢仝郡東津面鳳凰里被申請人金珪相仝郡仝面內基里被申請人金錫述右申請人ハ右被申請人等ヨリ申請人ニ對スル當廳大正十年申第一一ニ六号動産假處分事件ニ對スル右仝廳大正十一年民申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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