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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厚齋記愼終追遠民德歸厚誠哉是訓也若單言追遠則愼終在其中矣夫盡誠於祖先廟墓一也然墓(廟)祭止於四代雖祧遷亦有限墓祭則可以下達於百世而不替故近墓之地必有一座明堂(宮)以爲齋宿之所藏器之室奠牲之廳盖不容已之事其重也可謂 於廟矣吾東尙焉其來已久近世德裕之南金猿之北降仙臺下有崔氏莊崔氏立望客山而烟村先生諱德之爲其顯祖烟村羣從兄弟遊國初儒林領袖陽村權文忠公門聞圃牧理學之訣其後有巖溪公連孫與其門孫石溪 命龍俱以文行著世居龍城十世孫得昊得華自天嶺移于此遂爲鄕族崔君光顥季公之曾孫也好學有風裁一見可知爲法拂之士也歲癸巳春與周親議爲入鄕之祖妣其墓下建數楹堅緻明敞而附翼略具介林同人盛熙請余名而記之名之曰歸厚齋諗之曰夫追遠而盡其誠則於人倫厚矣旣盡己之誠則人亦化而盡誠於其先矣如是則風俗漸趨于正矣風俗趨于正則民德安得不歸于厚乎抑又聞之祖述者遠宗其道憲章者近守其法凡爲崔氏子孫者苟能道烟村之道法巖溪之法兢兢奉持而勿失則庶稱膺(可劈)不匿永錫之慶其於齋舍維持不須言矣是又追遠之大者也其尙勉乎哉甲午梅雨節永夏權道溶撰四百二十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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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인렬(崔寅烈) 극경재기(克敬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戊辰正月 日 九代孫寅烈 戊辰正月 日 1928 崔寅烈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8년 정월에 최인렬이 극경재를 중수한 뒤에 작성한 기문. 1928년 정월에 최인렬(崔寅烈)이 극경재(克敬齋)를 중수(重修)한 뒤에 현판을 새로 달면서 작성한 기문이다. 극경재는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두승산과 망제봉 사이에 있는 재실이었다. 특히 이 망제봉은 높이 138.8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읍현감이 부임할 때에는 이 산봉우리에 올라가 서울을 향해 임금에게 배례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재실이 있던 곳은 기문을 지은 최인렬의 9세조 통사랑(通仕郎)공의 선영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재실이 훼손되자 최인렬이 중수의 책임을 맡아 새로 재실을 지었다. 중수를 하면서 동쪽에 한 칸을 더 늘렸고, 고사(庫舍) 네 칸을 별도로 신축하였다. 그리고 처마에 달았던 예전의 현판을 새것으로 바꾸되 이름은 예전 그대로 '극경(克敬)'이라고 써서 달았다. 후손들에게 선조에게 공경하고 동족에게 공경하여 부디 공경함을 잊지 말라고 부탁하는 뜻이 담겨진 것이었다. 그래야 선조가 극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한 뜻이 길이 후손에게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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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崗記世稱海有東三山神仙往往居焉謂其神仙云者壽考康寧能靜致遠{口+粲}霞於閬苑之謂故盤谷李愿歸焉隆中臥龍睡焉此人以歲名平家之綠野輞川之別業是因地以焉地靈與人傑若相有待以闡著者也湖之南有水崗山山不高而秀麗水不湶而淸洌地肥水甘風淳俗孝茂林脩竹擁簇左右嘉禾昇世隱映上下而况南有方丈三千粉代昇含嬌含態多笑於前東有瀛洲羅列兒孫侍立於几席間北有蓬萊磅礡雄嵬貯縕氣勢若將有所發前有涵泓大海晏不揚波上下天光證岩萬頃而風艫以艦往來浮沈舷聲漁歌有時淸亮益助逸與其可謂君子考槃之所賢人翺翔之處也於期山水之央卽龍崗崔公棲息之所里名爲龍崗也公得特秀之姿事父母克盡誠孝甘旨定省少無違誠及其愼終報本一道禮感古之稱孝者亦無過焉至几耋追思號慕無昇担括九十以慕者於斯人見之而紅顔白髮有㥜鶴襒緔絴於林泉杖屨於煙霞超然獨出於物外猗若山水間一仙儔其自號龍崗寔非偶然者夫己巳小春之下浣嘉善大夫禮曹參判春秋館事成均館事慶州金濟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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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村先生家傳詩文錄後叙昔在景泰間我 朝有淳德高節正學之士曰烟村崔先生名德之嘗由禁近出守州府又不樂而退歸靈巖永保村築書樓扁以存養若將終身 顯陵卽位召拜藝文直提學明年冬又告老而歸同朝賢卿名士賦詩贐行以高其事且爲存養樓題識又先生家大人叅議公有壽有後一時多贊頌之作凡玆詩文筆跡崔氏子孫世守之甚謹及丁酉倭亂存養樓燬而簡編隨以散逸今其鄕人旣爲先生立祠祀之先生七代孫前叅奉珽又收拾燼餘詩文尙得九十餘首以圖不朽之傳乃以題跋之辭命植植竊惟先生純實之行著於 聖諭淳德也中歲納履遯跡山海高節也存心養性揭扁自警正學也有一於是尙可師範百世况兼有之乎抑先生之退當景泰二年辛未越四年癸酉七年丙子 國家禍故相繼搢紳多及焉則先生之擧誠若炳幾保身者然以此世尤稱其明智以余攷之 顯陵賓天之促而 魯山遜位之遽此天數也先生雖明智安能推測及此且先生在 世廟朝已解帶方之印彼時又何難之可違耶易曰天道虧盈而益謙詩曰愷悌君子神所勞矣先生急流勇退道與神謀自不蹈於大難豈規規焉審機逃禍者之足擬也今就是卷閱其人物則安平節齋之事不可言也若河東高靈泛翁四佳諸公勳名雖盛而靖節或歉成謹甫諸人自靖則有之而葵足莫衛其視先生淸福完名當何如也噫觀斯集者不但据其詩文知先生之所存論其世尙其人亦可以見先生之不可及矣崇禎丙子七月之望德水後學 李植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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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송시열(宋時烈) 연촌선생유사발(烟村先生遺事跋) 고문서-시문류-발 교육/문화-문학/저술-발 崇禎紀元之著雍敦牂暮春之初 宋時烈 崇禎紀元之著雍敦牂暮春之初 宋時烈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678년에 송시열이 지은 연촌선생유사 발문의 전사본 1678년(숙종 4)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연촌선생유사발(烟村先生遺事)의 발문이다. 물론 전사본(轉寫本)이다. 연촌은 최덕지(崔德之)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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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최민렬(崔敏烈) 한벽당중수기(寒碧堂重修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壬申二月 日 十八代孫敏烈 壬申二月 日 1932 崔敏烈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2년 2월에 최민렬이 작성한 한벽당중수기. 1932년 2월에 최민렬(崔敏烈)이 작성한 한벽당중수기(寒碧堂重修記)이다. 한벽당(寒碧堂)은 태종 4년(1404)에 월당(月塘) 최담(崔霮, 1346~1434)이 지은 건물로,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으며, 전주팔경의 하나이다. 최담은 고려말 우왕 때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여 관로에 들어가 집현전 제학을 지냈다. 1398년 중훈대부 진수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00년에 낙향하여 전주에 한벽당을 짓고 이곳에서 시와 글을 지으며 말년을 보냈다. 정자의 이름은 처음에는 월당루(月塘樓)라고 한다. 그 뒤 깎아 세운 듯한 암벽과 누정 밑을 흐르는 물을 묘사한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글귀에서 한벽당이라 이름이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곳 한벽당에는 시인과 묵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건물은 1683년(숙종 9)과 1733년(영조 9), 1828년(순조 28), 1897년 등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이 중수기를 보면, 신미년, 즉 기문을 쓰기 한 해 전인 1931년 가을에 전주최씨가의 후손들이 힘을 모아 중수를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듬해 공사가 완성되자 최민렬이 이 기문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기문의 맨 끝에는 윤월구(尹月求)가 1933년에 글씨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한벽당 중수기에는 이 기문 외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1897년에 지은 글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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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碧堂重修記堂是寒潭上碧山隅之一小構而州三百年半千而名彌彰此曷故焉昔吾先祖月塘公之作是堂也解組歸來藏修於玉流講舍暇日逍遙管占煙霞玩心物理今觀其岩刻邀月臺尋梅逕百華潭光風霽月鳶飛魚躍等字可知已矣公之仕也旣爲賢相所知四子亦躋淸班前頭顯達盖未艾也乃中身勇退所樂者物外淸賞所交者一時名賢宜乎德孚當世福流後昆至于今輿誦是堂藉藉若前日事也堂是(之)重修歷世累度而屬玆世變不測尤當致意乃於辛未秋諸孫同議齊力因旧制而新其修益完而美矣窃嘗惟人之自修與奉先要知內外名實之分是堂之於公外也名也猶恐其墜失之若是矧乎將母誠孝接人謙恭公之生平大致爲內與實者豈敢不一心奉持寶爲世傳哉孝爲百行之源謙爲萬善之本惟孝與謙是究是圖在身身修在人人化九族雍睦子姓昌大亶其然乎願與僉宗進而念修乎公之實德永言配命自求多福祖烈孫業相得益章則是堂也安知不遍六洲久萬世而其名也因謹記而諗之云爾 壬申二月 日十八代孫敏烈謹記五百禩世守祖業而不失舊物者非賢不能耳今者崔斯文敏烈修此堂而記此文要以拙書藏之爲傳久之計懇求至三四予嘉其誠而副之癸酉八月下旬石邨癃廢人尹月求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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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敬齋記斗升之東望帝之下楚川之上卽我九世祖通仕郎公衣履所藏之地而因爲世藏之阡蜈蚣之洞舊有守齋建卽久不免有風之磨雨之洗棟搖而榱損者乃於某年月日宗議齊發俾余監重修之役役始於某年月日畢於某年月日向之搖者損者卽皆理整而又增一間房於東偏別築庫舍四間視旧益備揭扁於楣曰克敬名仍而板易盖累經重修而又修焉卽成長少以次在座乃諗于衆曰世之有此者亦多矣及其數世者盖寡及其十世則又纔難見及其百世則未之前聞豈皆其子孫之不肖而然哉秪爲一人營私百人解體一日懈怠終歲莫擧甚者尤而効轉轉至於爾我相推不復相問如有問之者不以爲痴則爲狂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請相告戒不至於此爲可也衆咸願以是言記之永垂于後余指楣揭克敬二字而曰克敬則將無不敬矣敬祖敬族尙矣至於執事而亦敬夫安有余所穪說之弊也前人名齋遺後之意備矣又何必贅爲咸曰凡人之情篤近而忽遠疑聞而信見且善言雖多而不厭亦不爲無助也於是遂撰次其言如右 戊辰正月 日九代孫寅烈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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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최규희(崔圭禧) 저존재중건기(著存齋重建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酉三月 日 十一代孫圭禧 丁酉三月 日 1957 崔圭禧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7년 3월에 최규희가 작성한 저존재중건기. 1957년 3월에 최규희(崔圭禧)가 작성한 저존재중건기(著存齋重建記)이다. 태인(泰仁) 관아의 남쪽 도동리(島洞里)에 날 듯이 높은 모양에 저존재(著存齋)라는 편액을 달아놓은 재실이 있는데, 바로 기문의 저자인 최규희의 11대조 주부(主簿) 최녕(崔寧)의 배우자 의인(宜人) 송씨(宋氏)의 묘재(墓齋)이다. 지난 1888년 봄에 실화(失火)로 재실이 소실되었는데, 1946년 가을에 문중의 장로가 유사(有司) 경렬(璟烈), 정렬(錠烈), 민렬(敏烈) 등에 명을 내려 중건을 논의하였다. 문중에서는 옛 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짓기로 흔쾌히 결정을 하였고, 문중원들이 각자 출연하여 이듬해 봄에 토목공사를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여만에 완공하였다. 편액에 쓴 '著存'이라는 말은, 귀신이 드러나고 존재하는 것이 마음에 잊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제의(祭義)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이 뜻하는 의미를 이 책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삿날에 방에 들어가면 애연히 자리에 모습이 보이는 것이 반드시 있고, 주선하며 문을 나가면 숙연히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반드시 있고, 문을 나가 들으면 개연히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왕(先王)의 효심으로 말하면, 눈에서 부모의 모습이 떠나지 않고, 귀에서 부모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마음에서 부모의 심지(心志)와 기욕(嗜欲)이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애모(愛慕)함이 극에 이르면 엄연히 존재하는 듯하고, 성각(誠慤)함이 극에 이르면 눈앞에 드러나서, 드러나고 존재하는 것이 마음에 잊히지 않는 법이니,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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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병운(李秉運)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待中) 문성최공아지제단(文成崔公阿之祭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後四庚辰三月二日 李秉運 崇禎後四庚辰三月二日 李秉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이병운이 지은 고려문하시중문성공 최아의 비문 1820년(순조 20) 3월 2일 통훈대부행경기전령(通訓大夫行慶基殿令)을 지낸 이병운(李秉運)이 지은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待中) 문성최공아(文成崔公阿)의 옛날 비기(碑記)를 옮겨 적은 것이다. 옮겨 적은 시기는 알 수 없다. 한편 이병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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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주암종대 실기(舟岩宗垈實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檀君紀元四千二百八十年丁亥春澣 崔正謹 檀君紀元四千二百八十年丁亥春澣 崔正謹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7년 최정근이 작성한 주암종대실기 1947년 최정근(崔正謹)이 작성한 주암종대실기(舟岩宗垈實記)이다. 남원(南原) 북면(北面) 주암촌(舟庵村)은 연촌(烟村 崔德之 1384~1455) 선생이 일찍이 남원 부사(南原府使)로 있을 때 상택(相宅)하여 나무를 심고, 터를 닦고 집을 지어 자자손손 살던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암촌을 최씨주암동(崔氏舟岩洞)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1808년(순조 8)에 친족 중에 간악한 자가 종기(宗基)를 방매(放賣)하여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수년 뒤에 이 터를 매입한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되자 비로소 족종들이 방매(放賣) 사실을 알고 영읍(營邑)에 정소하였으나 돌려받지 못하였다. 그 뒤 100여 년 동안 서너 차례에 걸쳐 소송하였고 1934년에 최백규(崔白圭)의 주선으로 127년 만에 되찾게 되었다. 한편 1870년(고종 7) 주암사(舟巖祠)가 철거되면서 연촌(煙村)의 영정(影幀)을 봉안할 곳이 없었는데 종대에 1935년 새로운 각을 지어 봉안하였고 강당(講堂) 등을 일체 보수하여 모습을 새롭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주암촌은 남원도호부 지사방 이었으나 현재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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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岩宗垈實記實記南原之北面舟庵村則文廟朝名賢先祖烟村先生嘗爲南原府使時愛其山水相宅遺后之所也而種樹成林營局養山修基作舍鑿地爲井子子孫孫繼繼承承以簪纓之族淸白傳家而世居此洞者年將至四百世已遠十三是以南原北面舟岩村惟以崔氏舟岩洞稱之有口者皆言有耳者皆聞古今帳籍昭昭載之門運不幸去戊辰年分族中有爲奸娟煽惑者以還退之意放賣宗基爲他人所有諸族漠然不知耶數年後買者突然入宅故宗族始知其放賣一齊聚會而還退之意詰之則暗買之人不肯還給故呈于營邑則題敎無非嚴截然渠自恃富行賂作奸終不還推自此以後路上行人猶有指點過墟之歎況此以崔爲姓者雖三尺童子知其人事者則無不含寃洒淚矣其後百餘年又爲訴訟數三次而未得解寃矣至誠所到金石可透理之當然也故去甲戌年族弟圭東誠力周旋者不啻數年之間而快爲復舊自戊辰至甲戌將爲百二十七年也三四世積寃之事一旦解之老少男女勿論遠近諸族咏之歌之舞之蹈之欣動天地抃躍之情豈盡形喩乎舊有烟村先祖影幀兼奉於舟岩祠而祠掇於 高宗庚午之邦禁乃別建影堂與士林俎豆者數十年矣今於宗垈之復舊也乃爲新建一閣而乙亥春告成成安影幀耳復舊之內外講堂及庫舍門廊一切修補面目一新噫玆豈非我祖先之靈黙佑於冥冥中所致乎凡我后承勿醉歡喜痛念前戒且思垂後以爲永世鞏固之計焉檀君紀元四千二百八十年丁亥春澣 后孫崔正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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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중랑장(中郞將) 최공용봉지제단(崔公龍鳳之祭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後四乙亥三月二日 顯宇 崇禎紀元後四乙亥三月二日 崔顯宇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최용봉의 제단 비문 고려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최용봉(崔龍鳳) 제단의 비문이다. 비문은 1815년(순조 15) 최현우(崔顯宇)가 지었다. 글씨는 1955년 송기면(宋基冕)이 지었다. 제단을 다시 세우면서 글씨를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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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存齋重建記泰仁治南島洞里有翼然高而顔以著存者我十一代祖主簿公諱寧之配宜人宋氏墓齋也 高宗去戊子春不幸失火廢墟每指點咨嗟矣去丙戌秋門長老命有司璟烈錠烈敏烈氏謀所以重建稍移旧墟(址)一門欣然莫不同聲遂聯名立案各自盡心出義錠烈氏爲多越明年丁亥春興土木使遠近諸族裹飯出役晨往暮歸不遑息肩纔逾月告功若是亟成初不預算而有若神助也苟非諸宗殫誠竭力烏能致此可知以此誠力何欲不遂而竊有所告焉夫齋宿於是齋者必先知著存二字何等鄭重而顧名義其於霜露感慕極其思誠敬視聽於無形聲僾然乎如在如見然後方可謂人與齋稱也不然外飭何益哉願我諸宗須熟思實踐胥勖相勵使名不爽義則其於保守斯齋也何有焉丁酉三月 日 十一世(代)孫圭禧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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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정기(鄭琦) 사포재기(沙浦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歲庚辰蜡月下休 鄭琦 歲庚辰蜡月下休 1940 鄭琦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0년 12월에 정기가 사포재의 재건과 관련하여 작성한 기문. 1940년 12월에 정기(鄭琦)가 사포재(沙浦齋)의 재건(再建)에 즈음하여 전주최씨(全州崔氏) 후손들로부터 부탁을 받고 작성한 기문이다. 사포재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사포(沙浦) 최봉하(崔鳳河)와 부인 연안차씨(延安車氏)의 합장묘가 있는 승주(昇州) 관아 동쪽 앵무산 아래 월산 언덕에 있다. 이곳에는 사포의 현손 남산(藍山) 최진홍(崔振弘)도 묻혀 있다. 일찍이 남원(南原) 주암(舟巖)에 있던 선조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고가(古家)에 살던 사포는 인조(仁祖) 때 불운하여 더 이상 출사(出仕)의 길이 열리지 않자 이곳 앵무산 아래 쪽으로 낙향하여 사포정(沙浦亭)을 짓고 시문과 경사 공부에 전념하였다. 정기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포의 후손들이 그 선조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인품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후손들이 열심히 정진하여 뒷날 사포가 내게도 후손이 있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사포 최봉하의 자(字)는 인서(麟瑞)로, 전주최씨 중에서는 남원(南原) 방계(芳磎)에서 승주(昇州)로 내려온 첫 인물이었다. 이곳 승주에 사는 전주최씨의 시천조(始遷祖)인 셈이다. 한편, 이 기문의 맨 앞에는 율계집(栗溪集)에는 사포재가 월산재(月山齋)로 실려 있다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율계집은 정기의 문집이다. 정기(1879~1950)는 경남 합천과 전남 구례를 중심으로 강학과 수양에 힘썼던 유학자였다. 그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로 이어지는 노사학맥을 계승한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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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浦齋記 栗溪集中載以月山齋故沙浦處士全州崔公之墓在昇州治東鸚鵡山下月山之坡夫人延安車氏合祔玄孫藍山諱振弘祔于下裔仍環山而居香火省掃歲久愈虔今年春建齋五楹於外麓之稍平處於公沙浦亭舊址數帿也於斯可齊明餟食於斯可寓慕羹墻顔其楣曰沙浦齋仍亭號也旣落後裔春鎬璟鎬晳鎬洛永洛仁諸氏使門秀學林君叩方丈之峽徵記于不佞曰吾先祖以龍城古家遭 長陵盛際而落拓不遇遂絶意當世嘯傲山水間撰勝玆土築亭其中蒔花栽樹庤經儲史寤寐古人窮勝事樂性靈視儻來如浮雲之無有而其趾先裕後之謨足令後世繼今我闔宗食息皆府君漑根之報也至今篁林澗岸薖軸之芬尙彷彿於朝暮而况於軆魄之妥寄精靈之陟降豈無秋霜春雨之感乎此齋之所由起也願吾子之發揮其事以諗于來永也余三辭不獲乃言曰公之所以爲公沙浦亭一律其盡之矣其曰沙浦茅齋靜琴書坐夜分牕含龜島月簷宿馬峰雲味其言蕭㪚而淸婉淵永而傲兀世間榮悴得喪可喜可驚無一攖于中而悠然有亭亭物表皎皎霞外之想矣是豈操觚能言之倫之所可與議哉發於外如此存諸中可知孟子曰誦其詩讀其書不知其人可乎在他人猶然矧矣祖先矣乎今夫過遺墟而雲月白升丘壟而霜露凄其有不思者乎登堂而肅然如聞謦欬臨祭而僾然如見著存其有不敬者乎然是皆外耳惟祖先心是心不化於時不愉於俗早夜商講使當時之流風剩馥永有輝於來世則沙浦公其不曰予有後乎竊願崔氏諸公無以齋成謂足無憾而益勉其進於是者則幸遂書此爲記歲庚辰蜡月下休瑞州鄭琦謹記 龍城古家指烟村先生所居南原舟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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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최광환(崔光煥) 승유재기(承裕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檀紀四千二百八十四年五月日 崔光煥 檀紀四千二百八十四年五月日 崔光煥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1년 최광환이 지은 승유재기의 전사본 1951년 최광환(崔光煥)이 지은 승유재기(承裕齋記)를 누군가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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