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頃者 下覆承候日富 更伏詢麥凉靜體候万旺 胤郞看讀俱安 閤儀勻泰 伏溯且頌 不任區區 査生親候堇安 而些少家故 長時不霽 悶憐奈何奈何 女兒治行 而初欲躬率以去 適有緊碍 家姪替送 而今天欲雨路層三舍 關慮不淺矣 大暑前 胤郞或可一者命顧耶 深企深企 伏聞好谷轎行 似在不遠何時若繞行 則爲當枉光矣 預切掃榻以俟矣餘擾擾 不備上候癸卯 四月 十七 査生尹琪燮 拜手皮封謹拜上候轎子旣有貴件故 遠路來往 不必添駄 玆空隷以送 謹下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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潦盡秋淸 詹誦日切 卽拜下書 伏審玆者軆候神護萬安 泰節勻宜 子婦無恙貞吉 伏慰區區實愜遠忱 査下生 一苦海樣惟子大少節之無它擾也 僕欲一晋承誨 且看新人淑儀而潦暑支離 有意莫遂 似是情外 只誦不敏 新禮 將以來月內過行爲計 吉日 兒豚 從近當袖去 以此下諒如何 餘在續便 姑留不備 伏惟下照 上謝書乙丑 七月 十九日 査下生 李箕斗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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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오희대(吳熙大)의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戊辰十二月十六日 吳熙大 李敎誠 戊辰十二月十六日 吳熙大 李敎誠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8년 12월 16일에 오희대(吳熙大)가 석사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위장(慰狀) 1928년 12월 16일에 오희대(吳熙大)가 이교성(李敎成)의 부친의 부고를 받고 애도하는 글을 보낸 위장이다. 돌아가신지 벌써 양봉(襄奉)이 지났다고 하면서 위문하고 애감(哀感)이 지극하다고 하였다. 양봉은 장사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희대 자신은 거리가 조금 멀어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고 위장을 올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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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문전(門錢) 용하기(用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庚子正月 庚子正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0년과 이듬해 문전(門錢)을 분배하고 지출한 내역을 적은 용하기(用下記) 1900년과 이듬해 문전(門錢)을 분배하고 지출한 내역을 적은 용하기(用下記)이다. 종중의 금전을 대여하고 지출한 현황을 적어놓은 회계장부이다. 택호(宅號)를 적고 그 아래에 금액을 기재했다. 가호는 모두 24곳이다. 분배 금액은 20냥부터 10냥까지이며, 합계는 310냥이었다. 여기에 추가되고 유치한 금액을 또 적었다. 그 뒤에는 지출내역을 적었다. 별도로 경부(京府)와 광부(光府)에서 8월부터 사용한 각항의 부비(浮費)를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 뒤에는 이듬해 정월 17일에 작성한 지출내역이 있고, 10월 16일 문중의 금전을 배분한 내역이 수록되었다. 출채나용기(出債拿用記)가 있는데, 빚을 내어 잡아 쓴 것에 대한 기록이다. 정월 17일의 배전(排錢) 기록과 광부의 부비 기록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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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季父主前 上白是 初四日 謹封伏未審霜令峭寒氣體候 以時萬安 諸從弟 俱得無頉 伏慕區區 不任下誠之至 從姪當此擾亂之時不得已出寓楊州西山墓下禮 爲之漂泊何可伏達 最所緊急者 乏食賊害 前似難堪 生而擬欲下去 則路費不下百餘金 且赤手不能進退矣 雖欲深入近畿峽村 而此亦有錢後 可以經營爲之奈何且伏切心寒臆塞而已 洋航則自江華破城後 渠自爲賊窟 少無動靜 而我國兵則近萬名 留陳於浦邊耳 伏願明天 消滅洋夷 安靜國家耳 餘萬不備只伏祝氣體候 循序康旺問安上白是丙寅 十月 初四日 侄 汶容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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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조종욱(趙鍾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七月 十七日 趙鍾昱 乙丑 七月 十七日 趙鍾昱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7월 17일에 조종욱(趙鍾昱)이 왕림을 청하고자 보낸 간찰(簡札) 1925년 7월 17일에 조종욱(趙鍾昱)이 왕림을 청하고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부모의 건강이 예전과 같고 조카 남매와 식구들은 별탈이 없다. 날씨가 점차 서늘해지는데 한 번 왕림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그 사이에 아들에게 명하여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피봉이 있으나, 수신인이나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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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滿旱潦 仍屬秋淸三朔貽阻 尤庸悵仰伏審亢炎棣體候連護万重 子舍諸節均休 仰溯區區華翰鄙私 査下省候印昔 姪兒男妹與閤眷 亦無見頉 分幸分幸何達也新凉漸次 一番惠枉搗下蘊積胸芥 仰企仰企耳 那間胤郞命送如何餘不備 伏惟尊照 上候狀乙丑 七月 十七日 査下 趙鍾昱 再拜謹拜狀上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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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사문계(私門稧) 도조(賭租) 장부(帳簿)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乙酉十月日 乙酉十月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5년 10월 사문계에서 가을 추수 때 거둔 도조 장부 문서 원제목은 "1885년 10월 사문계 추봉기(乙酉十月日 私門稧 秋捧記)"이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여 받은 소작료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하는 양식은 "낙안 두지동(樂安斗之洞), 이노(李奴), 네 두락(斗落), 공(貢) 한 섬 열일곱 말 두 되(一石十七斗二升)"와 같이 땅이 있는 들의 명칭, 소작인, 도조(賭租)의 양 등의 순이다. 소작인은 윤노(尹奴)‧조노(曺奴)‧이노 등이거나 춘대(春大)‧주영(周永) 등과 같이 이름만 기재되어 있어, 집안의 외거노비 또는 일반 소작인으로 보인다. 지주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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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別歸駕候 已爲輕擧 音耗固勢使 而其後涉月之餘 轉聞有欠候損節云云今得完次耶 謹伏不審春和向殷氣軆候更一護萬安 諸節如得穩休 伏慰溯區區 不任之至 査下生重堂省候姑依 伏幸萬萬 就措專伻探候 雖還過境 少以有所碍事 事故玆今空奚 儅或下諒否 令允從私命 從以申蘊懷伏望耳 餘萬不備 伏惟癸酉 三月 十七日 査下生羅星栢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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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성신(聖臣)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人日 妻祖 聖臣 欠 乙丑 人日 聖臣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5년 정월 7일에 처의 조부 성신(聖臣)이 수복(壽福)의 장원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65년 정월 7일에 처의 조부 성신(聖臣)이 수복(壽福)의 장원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수복(壽福)이 장원하여 소업(所業)이 더욱 밝게 빛나고 만 가지로 이름이 드러났으니 어찌 새봄에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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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新懸戀 卽玆辰下侍餘棣況 壽{示+卜}壯元 所業今益 緝熙萬團擅名 豈非新春喜消息耶以是顒擬耳顧此衰狀 無足奉提 餘不具乙丑 人日 妻祖 聖臣 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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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김재식(金宰植)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酉 三月 念八日 金宰植 乙酉 三月 念八日 金宰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3월 28일에 김재식(金宰植)이 혼삿길의 날짜를 전하고자 보낸 간찰(簡札) 1925년 3월 28일에 김재식(金宰植)이 혼삿길의 날짜를 전하고자 보낸 간찰(簡札)이다. 조부모님의 근황을 전하고서 용건을 언급하고 있다. 부지런한 가르침을 어기기 어려우나 헤아려보고 재량하여 편지를 올렸지만, 혼삿길을 당일로 마련한 것은 이미 노친과 어린 자식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득이 기일 전에 발행할 생각이라면 5일 오후에 석교(石橋)에 도착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뜻으로 헤아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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料表下函 來自火山 其爲傾感 豈比平品 伏審旅後 以勞攘致損 不勝仰慮 而所恃者 不爲斯洗耳 侍生重省 姑依不幸已 就敎意仰悉 切勿遽中 無怪有此 何到行過如此耶 重違勤敎 尺度裁呈 而但昏行 當日了辦 旣非老親與穉子 所可堪當 不得已前期 發行爲計 則五日午後 當抵石橋矣 此意下諒如何 餘爲此不備 謹謝上乙酉 三月 念八日 侍生 金宰植 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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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척경(玉尺經)?과 옥룡자의 풍수설 고문서-시문류-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옥척경(玉尺經)?의 한 구절과 옥룡자의 풍수설을 베껴놓은 글 ?옥척경(玉尺經)?의 한 구절과 옥룡자의 풍수설을 베껴놓은 글이다. 처음 글은 ?옥척경(玉尺經)?의 한 편인 축길부(逐吉賦)에서 뽑은 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 대해 해설을 달아놓았다. ?옥척경?은 유병충(劉秉忠)이 지었다고 하는 위서(僞書)로, 모두 9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풍수지리학서의 하나이다. 유병충(1216~1274)은 원나라의 정치가이며 유학자이고, 원(元)이라는 국호를 입안한 왕조의 설계자였다. 옥룡자(玉龍子)의 풍수설로서 「득어산령결(得於山靈訣)」과 「논좌향생기복덕법(論坐向生氣福德法)」을 수록하고, 그 뒤에 「이십사산론(二十四山論)」을 실었다. 옥룡자는 도선(道詵, 827~898)의 별호이거나 도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풍수지리학서이다. 도선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로, 호는 연기(烟起), 자는 옥룡(玉龍), 성은 김씨(金氏)이다. 그 외에 간택(艮宅)과 양택방철(陽宅放鐵)에 관한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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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息 雖曰種種 懷想自然憧憧 謹詢比內靖體度萬重 一洞諸節均迪否 并切溸祝 族從一依宿樣已耳 京派與各處 修單畢至 而貴派則尙無皀白 甚爲紆鬱 玆更書煩 左右間 卽爲回示無至譜事之迁延如何餘在此從口悉 不備禮乙卯 四月 五日 族從大容 拜拜可川 南原宅 入納莘田譜所 留謹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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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生員 南原宅 侍史開坼往年壬戌夏 族孫鍾祥 敢在嶺下 大同譜奉硯之末務 以湖上南北道 循宗之任 次第歷訪之暇 始得拒衣於族大父屛几之下 厥後有年 曾未一修書上問 悚悶不可言 惟以大父之保族恩義 雖享隆耋 不鄙孤陋之族 倘下記憶 幸納上達乎 伏爲恐惶而已 伏未審小春之令壽道震艮 氣力順序健康 眷下均榮 伏溯不任區區 遠忱之至 族孫現住京庄 旅況辛酸 伏不煩達 惟我文景公派譜事 初與大同之役 並有言說 大同已成 所不均者 惟吾本派也 本派之內 不無新舊譜乘 然挽近以來 各譜其派 疎漏太甚 詳略不同 又多繼絶 續後之參差 且百譜大同 其不明之蹟 未合之族不得一體一也 靡常不一尊團合 以致本派大同之例者也 族孫自四三年來 從事於嶺譜之暇 亦有趨奉之意 留京半年循之書之意謂就緖不難 而得其人有其財 則漁人之功 政在此也 倘加洞察乎哉 伏悚伏悚 只爲旅屑 不能枚達略此 不備 謹再拜上甲子 陰十月 二十六日 族孫 鍾祥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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