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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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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84년 이명우(李明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申 九月 旬六日 生 李明雨 甲申 九月 旬六日 李明雨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4년 9월 16일에 이명우(李明雨)가 며느리의 우귀(于歸) 날짜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簡札) 1884년 9월 16일에 이명우(李明雨)가 며느리의 우귀(于歸) 날짜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이며, 안부를 묻고서 용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며느리의 우귀 날짜를 택해 정하는 것이 애로가 없느냐고 묻고, 이를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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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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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嘉慶拾三年 戊辰 十月晦日 甥侄 幼學 表匡鎭 衿得許給 明文右明文許給事段 自己買得畓 妹夫生時許給而未爲成文矣 今者甥侄 移去移買故 文田面可川村前乭弥坪 受字畓內外變六斗落只十九卜四束庫乙本文記幷以 永永許給爲去乎 日後子孫族屬中 如有雜談 則以此憑考事畓主 自筆 張智良 [着名]證人 南莫東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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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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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9년 김봉식(金鳳植) 노비(奴婢)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己亥 八月十七日 標主 木同 金鳳植 己亥 八月十七日 金鳳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60_001 1899년(기해) 8월 17일에 김봉식(金鳳植)이 아무개에게 여자 종을 매입할 때 작성해 준 약속 증서 문서에는 '기해(己亥)'라고 되어 있는데 '1899년 8월 22일 김인동(金仁同)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이다. 이 수표를 토대로 작성된 문서이므로 이 시기의 문서임을 알 수 있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종 점순(占順)의 여식인 복율(卜栗)을 매매할 때의 가격으로 문서 중에 있는 250냥 내에서 100냥은 먼저 내주고 나머지 150냥은 이번 달 22일에 전라도 감영(監營)으로부터 입안을 받고 갖추어 줄 것이며, 만약 기한이 지나게 되면 관청으로 오고 가는데 드는 부비(浮費)는 내가 감당할 것이라. 신·구문기(新·舊文記)는 이미 받았다. 기해년 8월 17일 표주(標主) 목동(木洞) 김봉식(金鳳植)[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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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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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5년 하해철(河海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年 乙亥 二月十一日 畓主 幼學 河海喆 陟逸 處明文 嘉慶二十年 乙亥 二月十一日 河海喆 陟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15년 2월 11일에 하해철(河海喆)이 척일(陟逸)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가경 20년에 논주인인 유학 하해철이 논을 척일에게 매매할 때 발급한 일종의 계약서이다. 스스로 매득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큰 흉년이 든 해에 살아나갈 수가 없어 팔게 되었다. 토지는 보성 문전면 자치촌 전평(前坪) 소재의 사자답(仕字畓) 1두5승락지, 부수 5복(卜)3속(束)을 전문 6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유학 하해철이며, 증인과 필집의 이름과 수결이 있다. 증인과 필집은 모두 산인(山人)이다. 매득자는 척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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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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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嘉慶二十年 乙亥 二月十一日 陟逸 處明文右成文事段 矣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當此大荒之歲 生道無路故 寶城文田面尺峙村前坪伏在 仕字畓一斗五升落只負數五卜三束庫乙 價折錢文六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幷以 右人前 永永放買〖賣〗文書爲去乎 日後處地中 如有雜談者 以此文告官卞正事畓主 幼學 河海喆 [着名]證人 山人 允煥筆執 山人 鐫玄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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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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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0년 이순구(李舜九)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之 二月 卄七日 李舜九 芝谷 侍棣座 庚之 二月 卄七日 1930 李舜九 芝谷 侍棣座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2월 27일 이순구가 지곡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형제들에게 문안 겸 초대하는 간찰 1930년 2월 27일 이순구(李舜九)가 지곡(芝谷)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형제들에게 올린 문안 간찰이다. 중춘(仲春)에 상대방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노친(老親)을 모시고 근근이 지내지만 우환이 끊이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다. 다시 맞이하는 것은 너무 늦었지만, 비록 손자라도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모름지기 허물하지 말라고 하고, 형제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찾아주심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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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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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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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七年 戊辰 十月卄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由來畓 累年捧禾是如可 喪債與舍第報債次 本郡文田面德峰村前坪登優兩字四斗落只負數十負四束庫乙 價折錢文壹百陸拾兩右人前 限三年內還退次 放賣是乎乃若過此限 則永永許給之意 幷新舊文記 玆以成文爲去乎 日後若有相佐之端 則以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安謙洙 喪不着證筆 朴漢杓 [着名]證人 李君瑞 [着名]金處用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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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김순(金順) 대리인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乙未 四月初十四日 金順處 順代 手記 乙未 四月初十四日 金順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5년 4월 14일에 김순(金順) 대리인이 작성한 수기(手記) 이미 산 땅을 환퇴하고자 한 사실을 적기하고 추후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작성해 놓은 문기이다. 작성자는 김순 처에서 김순을 대신한 사람이다. 상전댁이 종가로서 유래해온 답 석동평에 있는 5두락지를 지난 정축년(1877)에 50냥을 받고 영영 방매하였다. 후에 환퇴(還退)할 뜻으로 관청의 결송(決訟)을 물었고 또 환퇴하고자 하였다. 피차가 좋은 뜻으로 다시 가격을 40냥을 받기로 했기 때문에, 끝내 환퇴하지 못했다. 이후에 제족 중 환퇴한다는 말이 있을 것 같으면 이 수기로 관에 고할 일이라 하였다. 날짜 아래에는 수결한 종이쪽지를 붙였다. 환퇴는 한 번 샀던 땅이나 집 따위를 도로 물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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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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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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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년(甲年) 이의현(李懿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之流月 念二 査弟 李懿鉉 拜 査兄 拜上 甲之流月 念二 李懿鉉 査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갑년(甲年) 6월 22일에 이의현(李懿鉉)이 사돈에게 한 번 방문해주기를 요청하는 간찰(簡札) 갑년(甲年) 6월 22일에 이의현(李懿鉉)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시를 어긋난 장마 더위가 앞뒤로 종횡을 부리니 쇠약한 늙은이가 더욱 쇠약해져 이러한 고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양하는 안부가 이즈음에 보잘것없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잘 있다고 하니 멀리서 위안되고 그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저는 여름 석 달 이래로 온갖 병들이 침범해서 오랫동안 건강치 못하여 조물주에게 부림을 당하였으니 그 탄식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위는 부모 모시고 공부 잘하고 있습니까? 한번 찾아오는 것을 지체하고 있으니 항상 매우 답답합니다. 지금 인편에 명하여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금년 농사의 형편은 모두 바뀌어서 앞으로 풍년이 들 가망이 있는데, 사돈댁 쪽도 그러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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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乖常潦炎 前後縱橫 衰老之益衰 可想一般諸苦也 伏惟靜候動止 際玆彔彔而已 閤儀都美 遠慰溸不任區區 査弟三夏以來 百症交侵 長事不健造物所使 其歎奈何 允郞安侍善業耶 一顧尙稽 恒切㭗然 今便命送 切仰切仰 今年農形 到底均移 前頭有望 貴邊似然矣 餘不宣 伏惟兄照甲之流月 念二 査弟 李懿鉉 拜皮封李生員 執事 [着名] 謹封査兄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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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卯 四月 九日 癸卯 四月 九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3년 4월 9일에 유무중(兪武中)에게 명문(銘文)을 짓는 일에 관해 답하는 간찰(簡札) 명문(銘文)을 짓는 일에 관한 답장이다. 우산(牛山) 어른의 명문을 외람되게 부탁받았는데 정의상 사양하지 못하겠으나 스스로 헤아려보아도 난감하다. 그러나 행장(行狀)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의논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유무중은 유계(俞棨, 1607~1664)를 가리키며 무중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시남(市南)이다. 1663년(현종4)에 이조참판에 올랐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그는 이이(李珥)와 김장생(金長生)의 학통을 잇고, 예론의 입장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의 전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저서로는 ?시남집(市南集)?, ?가례원류(家禮源流)?, ?여사제강(麗史提綱)?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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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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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성주이씨 문중 사문계(私門稧)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성주이씨 문중 사문계(私門稧) 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이다. 계의 종류는 매우 많은데, 이 계는 구체적으로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 문서에는 석성댁(石城宅), 진사댁(進士宅), 광주댁(光州宅) 등 많은 택호가 열거되고 그 아래에 2원30전, 1원60전, 80전 등 다양한 액수의 금액이 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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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仰聲華 恒切詹悵頃者 舍弟伏拜淸儀迨今爲慰 伏詢玆辰尊體百福 仰溸區區者至第親事旣蒙盛諾自顧微分 盛荷良深庚帖書示若何 餘不備 伏惟尊照 謹拜上狀乙未 十二月 二十六日李冕用 二拜皮封敬 謹拜上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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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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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謹拜上謝狀秋來仰慕益切 卽於胤郞之顧 重辱下狀 如控尺璧 感荷交深 伏審靜棣體候 以時萬寧覃度勻慶 伏慰區區 不任者忱 査生親候 幸無損節 是爲分喜 嬌阿亦無恙 此一奇幸也 就于日 旣承差轂 雖有些碍 豈可以閑忙進退也 當以其日奉行計下諒若何 胤郞留纔二箇日 忽然告去 悵缺殊深 而亦不能挽者與當咸兄 同鞭故也遠路之憂則小弛耳 餘萬適擾不備 上謝狀禮辛丑 八月 四日 査生尹琪燮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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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氣正高 仰慕益深伏惟菊令靜棣體候 頤養万重胤郞省讀俱安 覃度勻慶 伏溯且頌 不任遠忱 査生親候粗寜 眷集無警 是爲分幸 餘何長達嬌阿年幼質朴 兼沒敎訓安能無爲父之愧也幸蒙眷愛之澤 撫訓其方以成其材 則當何德以報之 老親筋力 非此等何役時 而仙庄一造旣是十數載 未就之餘故令玆兼進 而亦切伏悶耳 胤郞寒令前一者命期若何 餘不備 伏惟辛 九月 八日査生 尹琪燮 拜手皮封謹拜候書頃於荊玉兄許俯請山苧 玆貿呈 品可似用 笠子無愜樣 故未副可歎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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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윤상은(尹相殷)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申 正月 初七日 尹相殷 丙申 正月 初七日 尹相殷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6년 1월 7일에 윤상은(尹相殷)이 사돈에게 가족 안부와 연길 및 의복 등의 소식을 전하는 (簡札) 1896년 1월 7일에 윤상은(尹相殷)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서로의 가족 안부와 함께 연길과 의복 등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듭 존형의 편지를 받고서 감사하고, 하례 드리는 마음 참으로 큽니다. 삼가 존형의 체후는 더욱 보호되고 만중하신지요? 우러러 위안되고 그리운 마음 풀어지지 않습니다. 아뢸 말씀은 길일은 바라던 바에 지극히 흡족하니 마침내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옷의 치수는 말씀하신 대로 써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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