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7568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6월 1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六月十一日 啓本 061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제목(題目).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근무 실적을 평가하여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전에 도착한 병조의 관문에 이르기를,'주상으로부터「변장(邊將) 등의 실적을 허위로 평가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하여 보고하면, 잘 근무한 사람은 선전관(宣傳官)이나 부장(部將)에 제수하고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거나 군사와 백성을 침탈한 사람은 군대에서 늙게 하여 권장하거나 징계하는 뜻을 보여주라.」라고 승전(承傳)을 받았다. 해당 변장 등의 실적을 일시에 주상께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도내 변장 등의 실적을 열거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화량진수군첨절제사(花梁鎭水軍僉節制使) 이인노(李仁老) : 정성을 다하여 직무를 보았으며, 재능이 많다.[奉職盡誠多有幹能]덕포진수군첨절제사(德浦鎭水軍僉節制使) 최준천(崔峻天) : 군졸들을 위로하고 보살폈으며, 토착 군병들을 소집하였다.[撫恤軍卒召集土兵]철곶진수군첨절제사[鐵串鎭水軍僉節制使] 박한남(朴翰男) : 새로운 진보를 옮겨 설치하였으며, 직접 공사를 감독하였다.[移設新鎭親自董役]정포수군만호(井浦水軍萬戶) 정연(鄭?) : 전쟁에 임하여 비분강개하였으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다.[臨亂慷慨爲國盡忠]영종포수군만호(永宗浦水軍萬戶) 최형립(崔亨立) : 쇠잔한 진보의 토착 군병들을 위로하고 보살펴서 보존하였다.[殘堡土兵憮恤保存]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1일, 수군절도사 겸 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實跡事."前矣到付兵曹關內, '「邊將等實跡, 不用虛僞, 從實錄啓爲良在等, 善者乙良, 或授宣傳官、部將, 如或計慮不善侵虐軍民者乙良, 老於卒伍以示勸懲爲只爲.」承傳是白有亦. 同實跡, 一時啓聞向事.'關是白乎等用良. 道內邊將等矣實蹟開坐, 謹具啓聞."花梁鎭水軍僉節制使李仁老 : 奉職盡誠, 多有幹能.德浦鎭水軍僉節制使崔峻天 : 撫恤軍卒, 召集土兵.鐵串鎭水軍僉節制使朴翰男 : 移設新鎭, 親自董役.井浦水軍萬戶鄭? : 臨亂慷慨, 爲國盡忠.永宗浦水軍萬戶崔亨立 : 殘堡土兵, 憮恤保存.崇德三年六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統禦使臣羅.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墓祭笏 【❍ 沙溪曰 設位而無主 則先降後參 墓祭亦然 家禮先參後降 未知其意 要設墓祭 先降後參 恐爲得也 便覽 亦在此說 先師云 墓祭 是體魄所在 宜先參 不可以無主後參 當從家禮 恐此似爲正也】獻官【首獻】以下 西上序立【序以行爲主】 再拜參神❍ 行降神禮❍ 首獻 盥手 升詣香案前 跪❍ 執事 各奉香 奉爐❍ 獻官 焚香再拜 少退 立❍ 執事 取【東階卓上】盞盤 立于獻官之左❍ 執事 執酒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跪❍ 執事 奉盞盤 跪進獻官❍ 獻官 受之❍ 執事 執注 跪斟酒于盞❍ 獻官 左手執盤 右手執盏 灌于階下5) 以盞盤 授之執事❍ 俛伏興 再拜 少6)退立❍ 行初獻禮【粟谷曰 初獻 扱匙正筋 按初獻時 三祭于階下 亞終獻 皆亦然】❍ 首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考位前❍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妣位前 俛伏興 少退立【執事 盛肝炙奠于魚肉之閒】❍ 執事 啓飯盖 扱匙正筋【扱匙子飯中正筋于楪上】❍ 獻官以下 皆跪7)❍ 祝 詣獻官之左 東向跪 讀祝❍ 讀祝❍ 畢 皆興❍ 祝 降復位❍ 獻官 再拜❍ 退復位❍ 執事 以他器 撤考妣位盞酒 置盞于故處❍ 行亞獻禮❍ 亞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俛伏興 再拜❍ 退復位【進肉炙】❍ 執事 以他器 撤8)考她位盞酒 置盞子故處❍ 行終獻禮❍ 終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俛伏興再拜❍ 退復位【進魚炙】❍ 獻官以下 俯伏 少許❍ 皆興❍ 執事 撤9)羹進水❍ 少頃❍ 執事 下匙筋 闔飯盖❍ 献官以下 再拜 辭神❍ 祝 焚祝文❍ 執事 監撤10) "三祭"는 단어는 나중에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少"는 단어는 나중에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이 내용은 원래 아래의 "祝 詣獻官之左 東向跪 讀祝" 다음에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누군가 "當書于祝詣上"이라고 써넣은 부분이 있어 이를 따랐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8월 11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八月十一日 關文 081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흑각궁(黑角弓)을 교자궁(交子弓)으로 개조한 것은 청한 대로 회록(會錄)할 것.무인년 8월 18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134)"이번에 도착한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본영(本營)에 비치해둔 군기(軍器) 중 신구(新舊)의 활과 화살은 전쟁을 겪을 때 군병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도로 거두어들인 수량 중에 파손된 것들도 있었으므로 받아들이는 대로 점검해보니, 그중 흑각궁(黑角弓) 10장은 근각(筋角)이 더욱 심하게 부러지고 파손되어 쓸모없는 물품이 될 상황입니다. 본래 흑각궁의 명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보수하기가 몹시 어려우나, 그렇다고 적지 않은 수량의 회부(會付)한 물품을 버려둘 수도 없었으므로 마지못해 교자궁(交子弓)으로 개조하여 보수하였습니다. 이대로 회록(會錄)하여 시행해주시기 바랍니다.'135)라고 하였다. 보고한 대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8월 11일. 戊寅八月十八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到付牒呈內節該, '本營所上軍器新舊弓箭, 經亂時, 軍兵分給, 還收之數, 不無破落, 隨所捧點檢, 則其中黑角弓十張段, 筋角尤甚折破, 將爲無用之物. 仍其本色修補極難, 不小會付之物, 不可棄置是乎等以, 不得已交子弓以改修補爲有置. 依此會錄施行爲只爲.'牒呈是置有亦. 依所報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三年八月十一日.❶ 相考 : 저본에는 원문이 '到付'로 되어 있으나, 다수의 용례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相考' 2자가 '到付' 2자로 되어 있으나, 다수의 용례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075 나덕헌의 첩정'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8월 13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八月十三日 關文 083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화량첨사(花梁僉使)가 청한 대로 남양(南陽)과 수원(水原)의 군병들이 받아 갔다가 잃어버린 조총(鳥銃), 약환(藥丸), 활과 화살을 회감(會減)할 것.무인년 8월 15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화량첨사(花梁僉使)의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진위(振威)와 양성(陽城)의 활과 화살을 만나서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원문서를 첨부하여 보낸 공문에 의거하여 회감(會減)하라는 병조의 관문을 위에 올렸습니다.143) 남양(南陽)의 조총(鳥銃), 약환(藥丸), 활과 화살을 만나서 주었던 사람들은 사망하거나 사로잡혀가서 징수할 길이 없습니다. 수원(水原)의 조총, 약환, 활과 화살을 만나서 주었던 사람들은「남양부에서 군병을 위로할 때 청(淸)나라의 마병(馬兵)이 뜻하지 않게 들이닥쳤는데, 남양부사(南陽府使)가 살해될 즈음에 사로잡혀갔다가 도망하기도 하고 사로잡혀갔다가 속환(贖還)되기도 하여 모두 잃어버렸으나, 굶주림에 시달린 끝이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다방면으로 발괄[白活]을 바쳤습니다. 진위와 똑같이 시행하되, 독촉하여 징수하는 일은 첨사가 스스로 결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서는 원망만 품을 뿐이고 준비할 생각이 없으니, 주상의 결정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원문서를 첨부하여 보고하였다. 진위의 예에 따라 회감해주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8월 13일.▶ 어휘 해설 ◀❶ 발괄[白活] : 백성이 소송(訴訟), 청원(請願), 진정(陳情) 등의 사안을 관아에 올릴 때 사용하던 문서를 가리키며, 소지(所志)라고도 하였다. 백성이 산송(山訟)과 입후(立後)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관아에 호소할 때 올리던 대표적인 문서였다.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14가지의 소지 양식이 수록되어 있다. 戊寅八月十五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到付花梁僉使呈內節該, '振威、陽城弓箭逢授段, 粘移據會減事兵曹關字, 已爲上使爲有在果. 南陽鳥銃、藥丸、弓箭逢授人段, 物故、被擄, 生徵無路. 水原鳥銃、藥丸、弓箭逢授人, 「南陽府犒軍時, 馬兵不意馳到, 府使被殺之際, 或被擄逃亡, 或被擄贖還, 盡爲閪失, 飢渴之餘, 末由措備.」是如多般白活. 振威一體施行是乎矣, 督捧一事, 僉使自斷是去向入, 徒能寃望, 無意措備定奪.'事粘牒是置有亦. 依振威例減下向事."崇德三年八月十三日. '056 병조의 관문'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2월 22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二月二十二日 關文 108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도사공(都沙工)은 끝까지 추적하여 체포하고 병선(兵船)을 담당한 색리(色吏)는 형장(刑杖)을 치며 심문한 뒤 주상께 보고하라고 경기관찰사에게 통지하도록 재가받음.기묘년(1639, 인조 17) 2월 28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통지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본영(本營)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229)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전선이 불에 탔기 때문에 해당 변장(邊將)을 처벌하는 것은 후일의 폐단이 있을 것 같으므로, 성상의 하교에 따라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은 영문(營門)에서 형장(刑杖)을 치도록 재가받아 공문을 보내 통지하였습니다.230) 도망 중인 도사공(都沙工)은 끝까지 추적하여 체포하되, 남양(南陽)에 구속 중인 병선(兵船)을 담당한 색리(色吏)는 형장을 치며 심문한 뒤 주상께 보고하라고 본도(本道)의 관찰사에게 아울러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21일에 좌부승지(左副承旨) 신(臣) 권도(權濤)가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4년 2월 22일. 己卯二月二十八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本營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戰船燒火之故, 罪其邊將, 似有後弊, 遵依聖敎, 永宗萬戶崔亨立, 營門決杖事乙, 已爲啓下行會爲白有在果. 在逃都沙工乙良, 窮極跟捕爲白乎矣, 南陽囚禁兵船色吏乙良, 刑推啓聞之意, 本道觀察使處, 幷以行移, 何如?' 崇德四年二月二十一日, 左副承旨臣權濤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二月二十二日. '103 나덕헌의 장계'와 '104 나덕헌의 장계' 참조. '106 비변사의 관문'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3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亥二月卄七日 再從姪 李鐺 李敎燮 氏/李鍾玄 癸亥二月卄七日 李鐺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2월 27일에 이당(李鐺)이 재종조모 상담(祥禫)이 이미 지났는데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내용으로 이언(伊彦) 숙부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재종조모의 상제와 담제가 이미 지났는데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하고 재종조부와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정을 꾸리지 못하여 동쪽으로 서쪽으로 유랑하면서 머물러 살 곳이 없고, 여름에 자식 삼남매가 잠시 사돈집[査家]에 머물다가 벗들이 끌어내어 이곳에 머문 지 한 달 가까이나 되었는데 별도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어제 안재(安齋) 종형이 대략 부친 서찰에는 숙부가 부탁한 것을 작년 이후로 정신이 흩어지고 번요(煩擾)한 처지라 거듭 지어 올리라는 말씀을 어긴 것은 말이 구절을 이루지 못하니 다듬어 가려 쓰시는 것이 어떤지 묻고, 빚을 벗어버리고 생활할 방도가 있으면 곧 내려간다고 하였다. 겉봉투에는 발신인이 인천 부용리(府龍里) 이종현(李鍾玄)이고, 수신인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의 이교섭(李敎燮)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 五月 六日 子 李敎成 李敎燮 庚申 五月 六日 李敎成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5월 6일에 이교성(李敎成)이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簡札) 발신자는 아들 이교성이며 수신자는 부친으로, 체신성(遞信省)에서 발행한 규격 편지지를 사용하였고, 국한문을 혼용하였다. 얼마 전에 올린 편지의 내용에 이어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오후에 비석의 각자(刻字)를 다하고 비석회소로 나왔다고 한 까닭에, 가서 보니, 돌이 비록 작으나 제조하기에는 적중하였다. 글자 모양은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다. 영남의 종중에서는 한 면만 갈아내서 '소생진씨(所生陳氏)'를 고쳐서 새기고, 끄트머리에 새로 쓴 자손을 벗겨내면 약간 깊기는 하지만 정밀하게 갈아내면 크게 거리낄 것은 없으리니 어떻겠느냐고 해서, 다시 돌을 사서 잘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전년에 서울 사는 종중사람이 이 비석을 가지고 협잡한 것은 내놓은 돈을 출금하였으니 다시 못할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이후에 다시 잘 하라고 하였다. 다시 돌을 보고 가격을 물으니 260원이라 하나, 다정하게 말하면 2백 원 남짓 주면 될 것이다. 각자까지 아울러서 4백 원이면 남는 것이 있다. 일을 주관할 사람은 다시 서로 회동하여 좌우간에 빨리 회신해주면 좋겠다. 또 각자에서 자법(字法)에 대해 언급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9월 29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關文 02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철곶[鐵串]의 진보(鎭堡)를 설치할 예정지인 전답의 교환 및 공사의 비용 등을 다방면으로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6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제물(濟物)과 초지(草芝) 두 진포(鎭浦)를 애당초 철거하고 합쳐서 철곶진[鐵串鎭]으로 만들고 칭호를 승격시켰던 일은 그럴만한 취지가 있는 것인데, 시일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진보를 설치할 곳을 여태까지 마무리하지 못하여 첨사가 현재 백성의 집을 빌려서 거처하고 있으니 몹시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묘당(廟堂)에서 신속히 처리하게 해주소서.'64)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철곶은 새로 설치하는 곳이고 진포를 설치할 곳은 개인의 전답이니 이러한 때에 전답의 값을 마련하는 것은 반드시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본영(本營)에서 편리한 대로 바꾸어주도록 하되, 수리하는 공사는 지연시킬 수 없으니 다방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9월 29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홍망(李弘望)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2년 9월 29일. 丁丑十月初六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濟物、草芝兩浦, 當初撤破, 兩鎭合爲鐵串陞號, 其意有在, 而遷延時日, 設鎭處乙, 迄未究竟, 僉使時方借入民家, 事甚未妥當. 令廟堂急速處置.'事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鐵串旣是新設, 設鎭之處, 乃是私田, 此時田地, 其價必慮. 自本營隨便換給爲白乎矣, 修繕之役, 不可遲延, 多方拮据作急完役之意, 行移, 何如?'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同副承旨臣李弘望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023 나덕헌의 장계'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6월 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六月十一日 啓本 063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본영(本營) 소속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을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중군(中軍)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 : 상(上).수군 파총(水軍把摠) 전 주부(主簿) 노의남(盧義男) : 하(下).우초관(右哨官) 전 권관(權管) 이지남(李枝男) : 상(上).후초관(後哨官) 전 훈련봉사(訓鍊奉事) 최응룡(崔應龍) : 중(中).육군 파총(陸軍把摠) 전 사과(司果) 송인갑(宋仁甲) : 상(上).전초관(前哨官) 전 훈련봉사 한응남(韓應男) : 상(上).좌초관(左哨官) 전 사과 정천유(丁天裕) : 상(上).별국 초관(別局哨官) 전 권관 서유성(徐有成) : 상(上).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일,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本營屬喬桐府水陸軍兵所領中軍、把摠、哨官等今春夏等褒貶等第, 謹具啓聞."中軍前僉正黃後憲 : 上.水軍把摠前主簿盧義男 : 下.右哨官前權管李枝男 : 上.後哨官前訓鍊奉事崔應龍 : 中.陸軍把摠前司果宋仁甲 : 上.前哨官前訓鍊奉事韓應男 : 上.左哨官前司果丁天裕 : 上.別局哨官前權管徐有成 : 上.崇德三年六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高祖考學生府君家狀 公諱崇 字仲敬 瀛州之李 以高麗僉議政丞謚文憲公諱敬祖爲初祖 國朝有諱伯瞻佐我世宗大王 注書翰林副正 出按金海茂珍兩府 以正直被選 入爲司憲府執義司直 諱錫祉郡守 諱長孫進士 諱壹參奉 諱雲齡僉知 諱承宗 是執義後五世 而僉知於公爲五代祖也 高祖諱培 曾祖諱鮮白 俱有隱德 祖諱克守 尤菴宋先生門人 德行學識 爲儒林矜式 考諱長春 娶咸豊李永紀女 擧四男二女 而公其第三也 以肅廟丙申八月二十八日生 自幼有異度 事親敬兄之節 不敎而能 及其就學 一覽輒記 見者歎賞 凡百子集 無不淹貫 最好庸學 字究其訓 句究其旨 取其切要 揭之左右 以爲警省之資 雖細微事 必整頓 雖急遽 無荒忙 言必簡默 行 必詳愼 座無雜賓 庭無閒言 交朋友以信 御宗族以和 亭毒後進 門多知名之士 賑恤貧窮 街滿稱頌之聲 性嗜飮 有風致 每接知舊 必辦酒饌 及其微醺 卽與之唱和 以敍懷 丙子丁母夫人喪 盧墓終制 庚辰丁外艱 三月啜粥 三年啖素 此乃家庭之素行 而公最誠焉 其得於思索之中 出於吟詠之間者 摠若干呇4) 英廟已丑 配扶寧金氏父萬彩文貞公坵後 墓合窆 有一男五女 男諱鎭燁 偉然有長者風 淡然無薄俗態 新平宋光魯 樂安金諭 慶州金巘 陰城朴瀅寬 新平宋盺 壻也 孫諱萬祿有至孝命旌 曾孫東烈 亦以孝聞旌表門閭 東益 東麟 俱有文行名世 以下 不盡錄 鳴呼 公以粹然正全之資 具得純然至善之性 不爲氣禀所蔽 不被物欲所累 内而孝於親 外而敬於長 病衰世之趨榮利 後實行尚廉恥敦倫理 從遊當時賢師 友以學問 思辨爲本 存養省察爲要 酬酢乎問難之際 體認乎應接之間 其嘉言善行 宜乎成口碑 溢箱篋 代久世遠 頗多放失 曷勝歎哉 驥魯 雖不敏 竊恐愈久而尤無傳於後也 據家乘 詢古老 畧書如右 以俟後世之立言君子 정서본에는 이렇게 "摠若干呇"으로 나오는데, 이 "呇"은 잘못 쓴 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秋史尺牘 上石坡書 石坡太院位自號也迹拘形違每有願言況自外氏之如是零謝別有耿耿俯仰今昔益切懸懸不意委存之盛出尋常萬萬執緘悒悒無以自定第謹審 崇體神葆曼相頟頌如潮至芳樹佳緣脩竹淸興風流圓就文字吉羊臨風溸懷尤何等艶嗟而已戚生至今不死省是異事轉轉作一痴頑不靈之物日日耳目所接無非惱亂而已崇貺諸品仰認鄭重之至意非素望所及却之不恭冐領如固有感愧交並眼花添障臂重如山艱此勝毫留不備年後一緘如瞻歲新如逢花開喜可知耳但此頹放蕉萃不足以當崇注山寺一約亦浮生淸緣何以易就且須隨意方便不必自惱自勞也蘭話一(石坡畵蘭甚奇故云)卷妄有題記順且寄呈可蒙領存大抵此事直一小技曲藝其專心下工無异 聖門格致之學所以君子一擧手一擧足無往非道若如是又何論於玩物之戒不如是卽不過僞師魔界至如胸中五千卷腕下金剛皆從此入耳並候崇祉不備非非想中崇椷專星奉齎 恩敎六日乃到先於報感注驚倒不有平日注存於此身者貫激有頂痛癢相涉何以得此不肖無狀之罪戾橫極猶幸禦魑北方自分永劫沈淪萬死無惜千年不寤不自意光天化日照臨於坎窞幽陰中 霈澤旁流喑哂跛躃同聲並奏歡欣蹈舞於堯醲舜郁之昌際盛時見之光天下文明雖生生世世萬糜千粉何以圖報萬一也仍具審露辰 崇體神嘏頂誦頂誦如水無窮戚從飽盡惠飯行將生入玉門亦知奉展光覿有日矣來伻留之數日今始回送敢申若干不備霜稜晶晶納手知寒花時一約轉到此際對境悒悒卽伏承審秋成 崇體葆禧仰慰第公私煩惱不勝耿誦戚生老病益甚衰氣萬無搘拄草木同枵卽分內事耳俯示蘭幅老夫亦歛手鴨水以東無如此作此非面前阿好之一餙辭也昔李長蘅有此法今復見之何其異也閤下亦不自知其出於是是乃合轍之妙耳餘硏寒草草不備朱戶貼鷄金盤簇燕天門開詄蕩蕩新嘏鼎來百吉隨宜卽伏承崇函並貺吉語是推以及人之盛不勝贊誦更伏問近日 軆中葆禧曼壽詹祝膝下韶年兒女靑紅歲味之最如今圓全似無其二尤何等艶羡戚功草木殘年儵爾七十蓼辛茶苦去益支離自顧亦愧人必嘔之耳荷此厚疑陰嵌回暖荒寒寂寞之濱有誰警咳於蓬藜中也隷字佳好當與蘭負雙美屋頭可以貫虹矣不備邇佳崇禧曼吉頃承雲椷幷硏隷菊㡧土銼泥壁覺有虹月之異里魁村傖無不驚吒絶倒孰謂春菊之不能也豪生妙相亦果造化之轉移耶菊法圓熟十分無以加矣更於熟後生一諦深留意焉是禱數日天氣始佳政是寫蘭之候銷得幾筆臨風溯咏不備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3월 15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三月十五日 關文 047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새로 급제(及第)한 사람의 부방(赴防)을 면제하고 수군(水軍)으로 입방(入防)하는 것은 윤허를 받지 못함.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본도(本道)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93)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위 문서에서 거론한 본부에 거주하는 김숙(金淑), 송경갑(宋敬甲), 허전(許銓), 이승남(李承男) 등을 장계에서 청한대로 수군에 전적으로 소속시키고 그대로 나누어 입방(入防)하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할 듯합니다. 그러나 새로 급제(及第)한 사람이 부방(赴防)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라 아래에서 멋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 주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3월 12일에 우부승지(右副承旨) 신(臣) 김광황(金光煌)이 담당하여,'「새로 급제한 사람들의 부방하는 의무를 그 사람들만 면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이 한 가지는 시행하지 말라.」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하(判下)하였다.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3월 15일. 兵曹爲相考事."節啓下敎本道書狀據曹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上項本府居金淑、宋敬甲、許銓、李承男等乙, 依狀啓專屬舟師, 仍爲分防, 似爲便益是乎矣. 新恩赴防重事, 自下擅便爲難, 上裁, 何如?' 崇德三年三月十二日, 右副承旨臣金光煌次知, '啓, 「新恩赴防, 似難獨免, 此一款乙良, 勿施.」爲良如敎.'判下敎是置.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三年三月十五日. '046 나덕헌의 장계'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5월 29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五月二十九日 關文 118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선박을 후록(後錄)한 대로 모집해서 차사원(差使員)에게 넘겨줄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1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시급히 돌아와서 정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칙사(勅使)가 6월 1일에 출발한다는 백패(白牌)가 어제 들어왔으니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 일이 대단히 긴급하다. 해당 부교에 필요한 선박을 이전의 등록(謄錄)대로 후록(後錄)하여 열거하였으니, 경이 있는 곳의 실색리(實色吏)가245) 영솔하여 차사원(差使員)인 덕포첨사(德浦僉使)와 정포만호(井浦萬戶)에게 밤낮없이 서둘러서 넘겨주고 도착 확인증을 받아 위에 올리되, 역군(役軍) 등을 분담하여 배정한 숫자가 정리된 책자를 우선 위에 올리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5월 29일.후록 :부교선(浮橋船) 3척.역군(役軍) 100명은 등록대로 분담하여 배정할 것.덕포(德浦) 20명.철곶[鐵串] 28명.화량(花梁) 22명.영종(永宗) 10명.정포(井浦) 20명.▶ 어휘 해설 ◀❶ 백패(白牌) : 중국의 칙사가 출발할 때 우리나라에 미리 보내던 통지문으로, 패문(牌文)이라고도 하였다. 『통문관지(通文館志)』 「사대 하(事大下)」 〈패문(牌文)〉에 의하면, 패문에는 정사(正使)와 부사(副使) 등 칙사로 파견되는 관원의 직명과 성명, 파견 목적, 출발 시기 등을 적고 경유하는 곳마다 잘 호송하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였다. 그리고 후록(後錄)에는 칙사가 가지고 나오는 물품의 목록, 통관(通官)의 성명, 수행 인력의 숫자 등을 열거하였다. 己卯六月初一日到付.兼巡察使爲急急回泊事."勅使六月初一日起馬是如白牌, 昨已入來, 臨津浮橋結造之事, 萬分緊急. 同浮橋船隻, 依前謄錄, 開後錄爲去乎, 卿所實色吏押領, 差使員德浦僉使、井浦萬戶處, 罔晝夜交付, 受到付上使爲乎矣, 役軍等分定數爻成冊, 爲先上使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五月二十九日.後 :浮橋船三隻.役軍一百名, 依謄錄分定.德浦二十名.鐵串二十八名.花梁二十二名.永宗十名.井浦二十名.❶ 卿所實 : 저본에는 원문이 '實卿所'로 되어 있으나, '018 나덕헌의 관문'과 '019 나덕헌의 관문'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卿所實' 3자가 '實卿所' 3자로 되어 있으나, '018 나덕헌의 관문'과 '019 나덕헌의 관문'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6월 3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初三日 關文 122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는 가설하지 말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을 모으고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차사원(差使員)에게 보낼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5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거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본도(本道)의 장계(狀啓)에 아뢰기를,'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가설할지의 여부에 대해 주상의 결정을 받아 지시해주소서.'라고 하였다. 그 장계에 대한 영접도감(迎接都監)의 회계(回啓) 결과를 통지한 관문에 이르기를,'본도감(本都監)이 아뢰기를,「등록(謄錄)을 가져다가 살펴보니 정축년(1637, 인조 15)에 특진관(特進官) 이경증(李景曾)이 아뢴 사안에 대해 비변사가 복계(覆啓)하여 재가받기를,〈칙사(勅使)가 행차하는 길의 부교는 가설하지 말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을 많이 모아 선박을 잘 결합해서 건널 수 있게 하라.〉라고 하였으므로, 3도(道)의 감사(監司)에게 공문을 보내 통지하였습니다.250) 이번에도 이대로 거행하소서.」라고 하여 재가를 받기 위해 들여보내니,「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부교를 가설할 선박은 징발하지 말고 강을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을 고르고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차사원(差使員)에게 밤낮없이251) 서둘러 돌아와서 정박시키고 신속히 도착 확인증을 받아 위에 올려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252)"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3일. 己卯六月初五日到付.兼巡察使爲擧行事."'臨津浮橋搭造與否, 定奪指揮.'事狀啓爲有如乎, 都監回啓內, '「取考謄錄, 則丁丑年, 以特進官李景曾所啓, 備局覆啓, 〈一路浮橋, 勿爲搭造, 多聚渡涉船, 善爲結船, 以爲渡涉.〉事, 三道監司處行會矣. 今亦依此爲之.」事, 入啓, 「依允.」'事關是置有亦. 浮橋船除良, 過涉可合船以, 具格軍、什物, 差使員處罔晝夜回泊, 急速受到付上使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六月初三日.❶ 使員處罔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行云云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인조 15년(1637) 9월 24일 주강(晝講)에 입시한 특진관(特進官) 이경증(李景曾)이 비변사의 계사(啓辭)에 따라 부교(浮橋)를 설치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그에 앞서 비변사의 계사에서는 칙사가 나올 때 평안도 3곳의 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것은 평안감사가 상황을 참작해서 거행할 것을 청하여 인조의 허락을 받아 통지하였다. 영접도감(迎接都監)에서는 이경증이 청한 내용을 인용하고 평안도뿐만 아니라 황해도와 경기도를 포함한 3도에 모두 부교를 설치하지 말라고 통지할 것을 청하여 인조의 허락을 받았다. 『승정원일기』 인조 15년 9월 24·25일. 저본에는 원문 '使員處罔'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行云云' 3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10월 22일 첩정(牒呈) 丁丑十月二十二日 牒呈 029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비변사에 보낸 첩정(牒呈): 비변사가 분부한 대로 백등매석(白登每席) 등의 물품을 마련하여 올려보냄.상납하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이번에 도착한 본사(本司)의 관문에 이르기를,'본사의 포진(鋪陳)을 전쟁 기간에 모두 잃어버렸는데 달리 준비할 길이 없으므로 마지못해 공문을 보내니, 인석(茵席), 등매(登每), 지의(地衣)에 사용할 백문석(白紋席)을 힘 닿는대로 올려보내라.'라고 하였습니다. 상사(上司)의 분부는 시기를 정해놓고서 시행해야 할 일이나, 광주(廣州) 대신 본부(本府)에게 부칙사(副勅使)의 접대를 담당하도록 분담시켰으므로 고을은 가난하고 백성은 지친 상태에서 다방면으로 애써 마련하여 가지가지 필요한 물품을 밤낮없이 준비하느라 허둥지둥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등매석(白登每席) 10닢(立), 백석(白席) 15닢, 인석 10닢 등을 상납합니다."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22일. 비변사에 보고함.▶ 어휘 해설 ◀❶ 포진(鋪陳) : 바닥에 까는 방석, 요, 돗자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❷ 인석(茵席) :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가리킨다.❸ 등매(登每) : 위에는 수를 놓은 돗자리를 놓고 아래에는 부들 등으로 만든 돗자리를 놓아 이중으로 만든 돗자리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봉공육조(奉公六條)」 〈수법(守法)〉에 의하면, 수석(繡席)과 초석(草席)을 합쳐서 만들며 겹석(袷席)이라고도 하였다.❹ 지의(地衣) : 돗자리 여러 개를 마주 이어서 크게 만든 돗자리로, 가장자리를 헝겊으로 꾸몄다.❺ 백문석(白紋席) : 아무 무늬나 꾸밈새 없이 짠 돗자리로, 민돗자리라고도 하였다. 爲上納事."節到付司關內, '本司鋪陳, 盡失於兵亂, 他無措備之路, 不得已移文爲去乎, 茵席、登每、地衣所用白紋席, 隨力上送.'事關是乎等用良. 上司分付乙, 所當刻期奉行事是乎矣, 本府乙, 廣州代副天使支待分定乙仍于, 邑殘民疲, 多般拮据, 種種所需, 罔夜措備, 遑遑無暇, 僅措白登每席十立、白席十五立、茵席十立等乙, 上納爲臥乎事是良厼."丁丑十月二十二日, 報備局.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6월 21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關文 065 훈련도감(訓鍊都監)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제물진(濟物鎭) 소속의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를 잡아와서 도망한 죄를 다스릴 것.무인년 6월 25일 도착.훈련도감(訓鍊都監)이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철곶첨사[鐵串僉使]가 원문서를 첨부하여 보내온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훈련도감의 관문에 이르기를,「제물진(濟物鎭) 소속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가 여주(驪州)의 군안(軍案)에 등록되어 입번(立番)하는지의 여부를 첩정으로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관문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해당 박끝내가 여주의 군안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고 제물진에 소속된 양근(楊根)의 군안에 등록되어 있으며 3번(番) 수군으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을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에는 도망하여 탈이 생겼다고 적혀 있으므로 입번시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서를 첨부한 그 첩정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박끝내가 양근과 여주 사이에서 횡행하고 게다가 함부로 마구 폐단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으므로 본진(本鎭)에서 군역(軍役)에 복무하는지의 여부를 관문을 보내 물어보았던 것인데, 이번에 회답하기를,'철곶의 수군은 확실하나 도망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의 소행이 더욱 괘씸하니 본영(本營)에서 각별히 착실하게 잡아와서 여러 해 동안 도망한 죄를 통렬히 다스리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21일. 戊寅六月二十五日到付.訓鍊都監爲相考事."節到付鐵串僉使粘移內節該, '都監關內, 「濟物屬水軍朴唜乃亦, 驪州案付立番與否, 牒報.」亦關據相考爲乎矣, 同朴唜乃亦, 驪州案付不喩, 濟物屬楊根案付, 三番水軍以名懸爲有乎矣. 其官存沒成冊良中, 逃亡稱頉, 立番不得.'事粘移據相考爲乎矣, 朴唜乃橫行於楊根、驪州之間, 且有泛濫作弊之事乙仍于, 本鎭服役與否, 移問爲有如乎, 節回答內, '鐵串水軍的實, 而逃亡.'是如爲有臥乎所. 此人所爲, 加于過甚, 自本營各別着實捉來, 痛治積年逃亡之罪向事."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2월 13일 장계(狀啓) 초본 崇德四年二月十三日 狀草 103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초본: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으로부터 본포(本浦)의 전선(戰船)이 불에 탔다는 보고를 받았으므로 그의 죄상을 묘당(廟堂)에서 처리하게 해줄 것.장계의 초본."신이 이달 12일에 각 진포(鎭浦)를 순행하며 점검하는 일로 선박을 타고 출발한 연유에 대해서는 예전에 급히 보고하였습니다.220) 같은 날 신시(申時) 쯤에 순찰하다가 정포보(井浦堡)에 도착하였는데, 같은 시각에 도착한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이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한 내용을 요약하면,'이달 10일 자시(子時) 쯤에 본포(本浦)의 전선(戰船)이 뜻하지 않게 불에 타버렸으므로, 망극하여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현재 나와서 순찰하는 중이므로, 본포에 도착하여 도사공(都沙工), 선지기[船直], 병선(兵船)을 담당한 색리(色吏)를 심문한 뒤에 화재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추후에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따뜻하여 변란에 대비하고 있는 이러한 때에 쇠잔한 진포의 전선을 갑자기 불에 태워버려서 결코 서둘러 새로 제작하거나 개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참으로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영종만호의 죄상을 묘당(廟堂)에서 속히 처리하게 해주소서.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13일. 啓草."臣本月十二日, 各浦巡檢事發船緣由段, 曾已馳啓爲白有在果. 同日申時量, 巡到井浦堡爲白有如乎, 卽刻到付永宗萬戶崔亨立牒報內節該, '本月初十日子時量, 本浦戰船, 不意付火, 罔極坐而待死.'是如爲白有臥乎所. 臣方爲出巡, 到本浦, 都沙工、船直、次知兵船色吏推問後, 根因段, 追乎馳啓事是白在果. 當此風和待變之時, 殘浦戰船乙, 卒然付火, 萬無急時新造改立之勢, 誠爲竭悶爲白在果. 萬戶罪狀乙良, 令廟堂從速處置爲只爲. 詮次善啓向敎是事."崇德四年二月十三日. '102 나덕헌의 장계'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2월 20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二月二十日 關文 10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최형립(崔亨立)은 영문(營門)에서 형장(刑杖)을 치고 색리(色吏)와 선지기[船直] 등은 조사가 끝나거든 주상께 보고한 뒤에 처리하도록 재가받음.장계에 대해 회계(回啓)한 결과를 통지하는 관문.비변사(備邊司)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장계에 의거하여227)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이처럼 봄철의 물이 불어난 때에 전선을 불태웠으니 최형립(崔亨立)의 죄상은 너무나 통분하고 놀랍습니다. 의금부로 잡아다가 심문하여 엄중히 죄를 다스려야 할 일이지만, 예전에 방답진(防踏鎭)의 전선에 불을 낸 일로 인하여 「안경(安鏡)을 의금부로 잡아다가 조사하는 것은 후일의 폐단이 있을 것 같다.」라고 하교하였으므로 우선 영문(營門)에서 형장(刑杖)을 치게 하였습니다.228) 위의 최형립도 본도(本道)의 감사(監司)를 시켜 영문에서 형장을 치게 한 뒤 불에 탄 선박은 마음을 다해 마련하도록 하며, 색리(色吏)와 선지기[船直] 등은 조사가 끝나거든 주상께 보고한 뒤에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본도의 관찰사에게 아울러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18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후원(李厚源)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4년 2월 20일.▶ 어휘 해설 ◀❶ 형장(刑杖) : 죄인을 심문할 때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을 경우에 사용하던 형구(刑具)로, 신장(訊杖)이라고도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고신(拷訊)〉에는 죄인을 고문하면서 조사할 때의 규정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죄인을 형문(刑問)할 때에는 신장을 사용하였다. 신장은 길이가 3자 3치이고 너비가 8푼이며 두께가 2푼이다. 둘째, 신장은 1차례 칠 때마다 30대를 넘길 수 없었고, 3일 안에는 재차 형문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규정은 죄인을 가혹하게 고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 형문은 국왕의 허락을 받은 뒤에 시행하였다. 그러나 서인(庶人)과 절도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국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의하면, 형장 또는 신장은 일반 범죄를 조사할 때 사용하는 것 중 얇은 것은 법장(法杖), 두꺼운 것은 반주장(半朱杖), 강상죄(綱常罪)를 저지른 죄인을 삼성추국(三省推鞫)할 때 사용하는 성장(省杖), 역모죄(逆謀罪)를 저지를 죄인을 국문(鞫問)할 때 사용하는 국장(鞫杖)으로 분류하였다. 狀啓回啓.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水使狀啓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當此春汛之時, 戰船見燒爲白臥乎, 崔亨立罪狀, 極爲痛駭. 所當拿問重究, 而曾因防踏戰船失火, 「安鏡拿推, 似有後弊.」事, 下敎乙仍于, 姑令營門決杖爲白有昆. 上項崔亨立亦, 令本道監司營門決杖後, 所燒船隻, 使之盡心措備爲白乎旀, 色吏、船直等, 待推閱啓聞後, 處置宜當. 此意, 本道觀察使處, 幷以行移, 何如?' 崇德四年二月十八日, 同副承旨臣李厚源次知, '啓, 「依允.」'敎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二月二十日. '103 나덕헌의 장계'와 '104 나덕헌의 장계' 참조. 안경(安鏡)이 방답첨사(防踏僉使)에 제수된 시기는 인조 15년(1637) 8월 8일이나,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 등의 관찬사료에는 방답진의 전선(戰船)에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인조 15년 8월 8·12일.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6월 3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初三日 關文 123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후록(後錄)한 생어물(生魚物) 등을 기일에 앞서 납부할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7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분담하여 배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개성부(開城府)의 관문에 이르기를,'칙사(勅使) -원문 결락- 연향(宴享) 및 별주(別廚)에 사용할 생어물(生魚物) 등을 전례대로 시급히 통지하여 독촉해서 보내주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등록(謄錄)의 숫자에 의거하여 후록(後錄)하니 기일에 앞서 실어다가 납부한 뒤에 도착 확인증을 받아 확인할 수 있게 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3일.후록 :수영(水營)은 생합(生蛤) 2말.생선(生鮮) 30미(尾)와 낙지[落蹄] 10타래[月乃] 등은 각 진포(鎭浦)에 분담하여 배정함.본영(本營)은 생합 2말과 생선 10미.덕포(德浦)는 생선 4미와 낙지 1타래.화량(花梁)은 생선 5미와 낙지 3타래.철곶[鐵串]은 생선 4미와 낙지 3타래.정포(井浦)는 생선 4미와 낙지 2타래.영종(永宗)은 생선 3미와 낙지 1타래.▶ 어휘 해설 ◀❶ 별주(別廚) : 원래의 주방(廚房) 이외에 별도로 설치한 주방을 가리킨다. 己卯六月初七日到付.兼巡察使爲分定事."節到付開城府移文內, '勅使時▣後宴享及別廚所用生魚物等, 依前例急急知會督送.'事關是乎等以. 依謄錄數後錄爲去乎, 前期輸納後, 受到付考準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六月初三日.後 :水營, 生蛤二斗.生鮮三十尾、落蹄十月乃等, 各浦分定.本營, 生蛤二斗、生鮮十尾.德浦, 生鮮四尾、落蹄一月乃.花梁, 生鮮五尾、落蹄三月乃.鐵串, 生鮮四尾、落蹄三月乃.井浦, 生鮮四尾、落蹄二月乃.永宗, 生鮮三尾、落蹄一月乃.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1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九月旬二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九月旬二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0월 12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조금의 자본(資本)이 있으면 곧바로 떨치고 날아갈텐데 객지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두루 힘써달라는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7일에 보낸 서찰을 잘 받아 보았으리라 생각하며, 재종조부의 건강과 맏종형제와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식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가슴이 막혀 견디기 어려우며, 송종(宋從)은 돈을 장만할 수 없어 온갖 일이 낭패라고 하였다. 다만 조금의 자본(資本)이 있으면 곧바로 떨치고 날아갈텐데 객지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고,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시세(時勢)가 얻기 어려운 기회이니 두루 힘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세상이 변하는 일이 전에 있었으니 이렇든 저렇든간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빚이 쌓인 나머지 좌우로 얽매어 용이하지 않고 며칠 사이에 여부를 알지 못하면 기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