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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7월 16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十六日 關文 017 군기시(軍器寺)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정포(井浦), 덕포(德浦), 철곶[鐵串] 등의 진보(鎭堡)에 통지하여 어교(魚膠)를 시급히 상납하게 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7월 20일 도착.군기시(軍器寺)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본도(本道)가 올려보낸 어교(魚膠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 7근은 정축년 몫으로 수량대로 받았고, 도내의 화량진(花梁鎭)과 영종포(永宗浦)도 어교를 상납하였다. 이번에 무고(武庫)의 군기(軍器)를 깡그리 써버리고 난 끝에 화살 하나조차 없으므로 현재 각종 군기를 특별히 제조하고 있는데, 부족한 것은 어교이다. 도내의 정포(井浦), 덕포(德浦), 철곶[鐵串] 등의 진보(鎭堡)에 관문이 도착하는 대로 즉시 통지하여 상납하지 않은 어교를 시급히 상납하게 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16일. 丁丑七月二十日到付軍器寺爲相考事."本道上送魚膠柒斤, 以丁丑條, 依數捧上爲在果, 道內花梁鎭、永宗浦魚膠, 亦爲上納爲有如乎. 節武庫蕩失之餘, 無一介箭乙仍于, 時方各樣軍器, 別造爲乎矣, 所乏者, 魚膠是去乙. 道內井浦、德浦、鐵串等鎭良中, 未納魚膠乙, 到關卽時知委, 急急上納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七月十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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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5월 6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五月初六日 關文 057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별파진(別破陣) 고남(高男)의 파견에 대해 군기시(軍器寺)에 공문을 보내도록 재가받음.무인년 5월 14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본도(本道)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110)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별파진(別破陣) 고남(高男)을 군기시(軍器寺)에서 시급히 독촉하여 보내주게 하라고 본시(本寺)에 공문을 보내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5월 3일에 우부승지(右副承旨) 신(臣) 김광황(金光煌)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한 내용대로 잘 살펴서 시행하라."숭덕 3년 5월 6일. 戊寅五月十四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啓下敎本道書狀據曹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別破陣高男, 令軍器寺急急督送事, 移文本寺, 使之施行, 何如?' 崇德三年五月初三日, 右副承旨臣金光煌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貌如, 奉審施行向事."崇德三年五月初六日. '054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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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5월 9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五月初九日 關文 059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김남중(金南重)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충청감사(忠淸監司) 정태화(鄭太和)의 장계(狀啓)에 따라 진관(鎭管)의 중군(中軍) 이하를 등제(等第)하는 일은 수사(水使)가 직접 행할 것.무인년 5월 14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병조의 관문에 이르기를,'이번에 재가하신 충청감사(忠淸監司) 정태화(鄭太和)의 장계(狀啓)에 아뢰기를,「관찰사와 절도사의 직임은 각각 관장하는 일이 있습니다. 근년 이래로는 관찰사에게 순찰사의 호칭을 겸하게 하였기 때문에, 조정의 본래 의도는 도내의 군정(軍政)을 총괄적으로 알고 있다가 비상 사태가 발생한 날에는 통제하게 하려던 의도였지, 원래 사안에 따라서 관직만 구비해두려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113) 만약 관찰사가 체면만 알고 매번 제재할 생각을 하여 예사로운 군무(軍務)조차도 병사(兵使)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지 않는다면, 정무(政務)를 시행할 수 없을 듯합니다.114) 그래서 신이 부임한 이후로는 항상 병사와 수사(水使)에게 신의 이러한 뜻을 알도록 하여 방해되는 사태가 없게 하였습니다.〈심지어 각 진관(鎭管)의 중군(中軍) 이하에 대한 포폄(褒貶)을 다른 도에서는 병사가 마련하여 주상께 보고한다.〉라고 하는데, 본도(本道)의 근래 규례는 근무 상태에 대한 진관의 보고에만 근거해서 등제(等第)하여 보고하니, 몹시 불성실한 일입니다. 병영(兵營)에서 주상께 보고하는 것이 참으로 사리에 합당합니다. 이번 6월부터 시작하여 이대로 시행할 것을 병조에서 주상께 아뢰어 결정을 받게 해주소서.」라고 하였다. 그 서장(書狀)에 의거하여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옛날에 관찰사의 호칭만 가지고 있을 때에는 병사와는 상호간에 관문을 사용하였고 수사는 첩정(牒呈)을 사용하였는데, 당시에는 순찰사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가 통제를 받는 일이 없었고115) 모든 군무에 관한 사안은 병사가 전적으로 관장하여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순찰사는 총괄적으로 관리하기만 해야 순찰사라는 체모에 맞는 것인데, 근래에는 순찰사가 체면만 스스로 지키려고 하고 병사에게는 예사로운 군무조차도 스스로 전담할 수 없게 하며, 심한 경우에는 병영에 전해져오던 당연히 사용해야 할 물품마저도 빼앗아 감영(監營)에 소속시키고, 봄과 가을의 시재(試才)를 시행하기 위한 순행도 순찰사의 분부가 아니면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 도(道)가 똑같이 그처럼 방해되는 폐단이 있습니다. 군무가 허술해지는 이유는 모두 참으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충청감사 정태화가 이와 같은 폐단을 깊이 알고서 사유를 갖추어 주상께 급히 보고하였는데, 진관의 중군 이하 근무 상태를 등제하는 일도 장계에서 아뢴 대로 함께 시행하라고 각 도에 아울러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5월 5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최유연(崔有淵)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되, 수사에게도 아울러 통지하여 시행하게 하라.'라고 하였다. 관문 안의 내용을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3년 5월 9일.▶ 어휘 해설 ◀❶ 진관(鎭管) : 진관은 두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전국의 행정 조직인 읍(邑)을 군사 조직인 진(鎭)으로 편성하여 관할하던 체제를 가리킨다. 진관 체제에서는 각 도의 군사 조직을 각각 주진(主鎭), 거진(巨鎭), 제진(諸鎭)으로 나누고, 주진이 거진을 통솔하고 거진이 제진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거진은 각 도의 절도사(節度使)가 있는 군영(軍營)을 가리키고, 거진은 각 도의 고을이나 진포(鎭浦) 중 중심이 되는 몇몇 고을과 진포로 지정된 군영을 가리키며, 제진은 거진에 소속된 고을이나 진포의 군영을 가리킨다. 또 하나는 거진을 가리킨다. 거진으로 지정된 곳은 고을이나 진포의 이름 아래에 '진관' 2자를 붙여 거진임을 나타내었다. 『대전통편(大典通編)』 「병전(兵典)」 〈외관직(外官職)〉에 수록된 경기의 진관을 예로 들면, 광주진관(光州鎭管), 수원진관(水原鎭管), 양주진관(楊州鎭管), 월곶진관[月串鎭管], 덕포진관(德浦鎭管) 등이 있었다. 그중 월곶진관과 덕포진관은 수군(水軍)의 거진이고, 나머지는 육군(陸軍)의 거진이다.❷ 시재(試才) : 지방 특수군의 장교(將校)와 군병(軍兵)을 대상으로 해마다 1, 2차례씩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과시(科試)의 일종이었다. 시재는 시행 지역과 응시 대상에 따라 강화부(江華府)의 장의려시재(壯義旅試才), 개성부(開城府)의 선무군관시재(選武軍官試才), 통제영(統制營)의 장사시재(將士試才), 동래부(東萊府)의 별기위시재(別騎衛試才), 남한산성(南漢山城)의 군관시재(軍官試才), 수원(水原)과 파주(坡州)의 별효기사시재(別驍騎士試才), 제도(諸道)의 마병시재(馬兵試才) 등이 있었다. 戊寅五月十四日到付.兼巡察使爲相考事."節到付兵曹關內, '節啓下敎忠淸監司鄭太和狀啓內, 「觀察、節度之任, 各有所掌. 近年以來, 令觀察使兼巡察使之號, 故朝廷本意, 欲使摠知道內兵政節制有事之日, 元非隨事備官之意. 徒知體面, 每思裁制, 尋常軍務, 亦不專委於兵使, 則恐不能展布政事. 臣到任以後, 常使兵、水使知臣此意, 俾無掣肘之患爲白在果. 〈至於各鎭管中軍以下褒貶乙, 他道, 則兵使磨鍊啓聞.〉是如爲白乎矣, 本道近例, 只憑鎭管勤慢之報, 等第以啓, 殊不着實. 自兵營啓聞, 實合事理. 今六月爲始, 依此施行事乙, 令該曹定奪.」事書狀據曹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在昔觀察使時, 則與兵使通關, 水使牒呈矣, 以無帶巡察使之號, 故兵使無受制之事, 而一應軍務之事, 則使兵使專掌次知. 巡察使只統領而已, 乃巡察之得體, 而近來巡察使, 徒能自存體面, 使兵使, 尋常軍務, 亦不得自專, 至於甚者, 流來兵營應用之物, 亦爲奪屬監營, 春秋試才, 非巡察分付, 則不得任意出巡. 故其掣肘之弊, 各道同然. 兵務虛疎, 無非實由於此是白如乎. 忠淸監司鄭太和深知如許之弊, 具由馳啓爲白有昆, 鎭管勤慢等第之事乙良置, 依狀啓一體施行之意, 各道幷以行移, 何如?」 崇德三年五月初五日, 同副承旨臣崔有淵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爲乎矣, 水使處, 幷以知委施行向事.'關是置有亦. 關內辭緣, 相考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三年五月初九日.❶ 政 : 저본에는 원문이 '停'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❷ 無 : 저본에는 원문이 '有'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각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순찰사(巡察使)를 겸하게 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선조 25년(1592) 5월 6일(을축)에 황해감사(黃海監司) 조인득(趙仁得)에게 순찰사를 겸하게 하였고, 이후로 필요한 도에는 관찰사가 순찰사를 겸하게 하였다. 『선조실록』 25년 5월 6일(을축), 7월 12일(기사)·17일(갑술), 10월 29일(을묘); 『광해군일기』 1년 3월 10일(신묘). 저본에는 원문 '政' 1자가 '停'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無' 1자가 '有'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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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5월 4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五月初四日 關文 060 호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화량첨사(花梁僉使)가 사용한 군량(軍糧)도 회감(會減)할 것.호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화량첨사(花梁僉使)의 첩정(牒呈)을 첨부한 경기수사(京畿水使)의 관문 내용을 요약하면,'덕포첨사(德浦僉使)와 정포만호(井浦萬戶) 등은 사용한 군량(軍糧)을 회감(會減)하였으나 화량(花梁)만 회감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연유를 다시 첩정을 첨부하여 관문을 보냅니다.'라고 하였다. 보고한 대로 시행하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5월 4일. 같은 달 21일에 도착함. 戶曹爲相考事."節到付使關粘連花梁僉使牒呈內節該, '德浦僉使、井浦萬戶等段, 用下軍糧, 已爲會減, 花梁耳亦, 不爲會減乙仍于, 以此緣由, 更良粘移.'事粘關是置有亦. 依所報施行向事."崇德三年五月初四日. 同月二十一日到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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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6월 19일 장계(狀啓) 崇德三年六月十九日 狀啓 064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전선(戰船)과 병선(兵船) 4척은 공사를 완료하였고, 군량미(軍糧米) 400섬 등을 별도로 갖추어 대변고(待變庫)에 들여놓았으므로 호조에서 회록(會錄)하게 해줄 것.〈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신이 작년 6월에 부임하여 본영(本營)의 전선(戰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 등을 하나하나 점검해보니, 제작한 지가 오래되어 썩은 것이 있었으므로 전선 2척, 병선, 사후선은 즉시 썩은 부분을 철거하여 차례대로 개조하고 그러한 연유를 주상께 급히 보고하였습니다.116) 그리고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결과를 통지한 공문에 따라 모두 양남(兩南)에서 선박을 제작하는 제도에 따라 전선을 새로 제작해서 경기의 전선을 제작하는 표준으로 삼으려고 계획하였습니다.117) 그런데 작년 가을과 겨울에 칙사(勅使)를 접대하는 일 때문에 선박을 제작할 여력이 없다가, 얼음이 녹자마자 바로 올해 1월 20일에 요포(料布)를 모으고 군관(軍官)을 별도로 정해 안면곶[安眠串]으로 내려보내면서'솜씨 좋은 선박의 장인(匠人)과 이장(耳匠)을 모으고 선박 목재를 산에서 끌어내릴 군인 등을 고용하여 기한을 정해놓고서 공사를 독촉하고, 제작을 마치면 돌아와서 정박시키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안면곶에 사는 백성이 전에는 선박을 제작하는 일에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올봄부터는 안면곶 안에 염장(鹽場)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모두 소금 굽는 일에 의탁하여 소속되었으므로 모집할 군인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먼 지역의 공사를 신이 직접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서 제때에 제작하지 못하고, 3개월째가 되어서야 겨우 제작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박시켰습니다. 배 위에 판옥(板屋)을 장치하는 일은 신이 직접 감독하여 별도로 제작하였는데, 공장(工匠)과 역군(役軍) 등의 요포로 쌀 57섬과 무명 10동(同) 반을 들여 겨우 완료하였습니다. 대체로 본영의 전선은 평상시에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에 정박해있는데, 물이 빠질 때면 선체가 큰 전선을 강가에 매어두고 있으며 전선을 숨겨둘 장소가 별달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봄과 가을에 수영(水營) 소재지에 사는 약간의 군병과 백성으로 으레 포구를 파내게 하였는데, 한 달 안에 전선이 물에 떠 있는 시기는 적고 매어 두는 시기가 많습니다. 선박 위에 설치할 방패(防牌)와 각종 기구들을 모두 옛 선박의 제도에 따라 제작하면 체제가 무겁고 크므로, 잘못되어 바람에 요동칠 경우에는 반드시 손상되어 파괴될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두께를 참작하여, 선박 위에 설치할 방패는 걸어둘 수도 있고 뉘여 놓을 수도 있게 별도로 제작해서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타 회부(會付)한 병선들도 신이 개삭(改槊)하였을지라도 삼판(杉板)이 견고하지 못하였으므로, 해당 병선 3척을 모두 전선과 함께 일시에 삼판을 개조하여 4척의 선박은 공장들이 이미 완성하였습니다. 본영의 회부한 전선과 병선 등 각종 선박 15척 안에서 2척은 전(前) 경기수사 신경진(申景珍)이 새로 제작하였고, 그 나머지 13척은 개삭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신이 부임한 뒤에 새로 제작하기도 하고 나무를 덧대 개삭하기도 하여 모두 공사를 마쳤습니다. 본영의 회부한 군량미(軍糧米)는 원래 수량 900섬 안에서 연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413섬은 군병 등에게 급료로 지급하고 회감(會減)하였고, 현재 남아있는 군량미는 526섬뿐이어서, 잘못되어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군병에게 급료를 지급할 때 부족할 우려가 있을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부임한 초기부터 오늘까지 쌀과 베, 소금과 장(醬) 등의 물품을 애써 마련하여 모으고 군량미 400섬을 별도로 갖추어 대변고(待變庫)에 들여놓았으니, 호조에서 회록(會錄)하여 시행할 것을 아울러 급히 보고합니다.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9일에 봉해서 올림.▶ 어휘 해설 ◀❶ 염장(鹽場) :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바닷물을 끌어들여 논처럼 만든 곳으로, 염전(鹽田)이라고도 하였다. 바닷물을 여기에 모아서 막아 놓고, 햇볕에 수분을 증발시켜서 소금을 얻었다.❷ 판옥(板屋) : 전선의 지붕을 널빤지로 덮은 것을 가리킨다.❸ 삼판(杉板) : 선박의 좌우 뱃전에 붙이는 널빤지를 가리킨다. 承政院開拆."臣上年六月到任, 本營戰·兵船、伺候船等乙, 一一點檢, 則年久腐朽者有之, 故戰船二隻、兵船、伺候船段, 卽爲撤罷鱗次改造, 緣由已爲馳啓爲白有在果. 因備邊司覆啓行移, 一依兩南船制, 新造戰船, 以爲畿輔戰船之標的事是白乎矣. 上年秋冬, 以勅使支待, 力未遑於造船, 解氷卽時, 今正月二十日, 鳩聚料布, 別定軍官, 安眠串下送, '募得善手船匠、耳匠及雇立船材曳下軍人等, 使之刻期督役, 畢造回泊.'亦分付爲白有如乎. 安眠串居民, 在前段, 造船傭役資生爲白如可, 今春始叱, 串內設鹽場乙仍于, 盡爲投屬鹽役是白乎等以, 募軍難得. 遠地之役, 非臣親自監督, 未能及時造作, 第三朔, 僅以畢造回泊爲白有去乙. 船上板屋粧修事段, 臣親自監董, 別樣制作, 而工匠、役軍等料布段, 米五十七石、木十同半以, 僅僅完了爲白有齊. 大槪本營戰船, 常時留泊於潮汐出入之處, 水落之時, 則體大戰船, 掛置江邊, 而他無藏船之所. 不得已春秋若干營下軍民, 例爲堀浦爲白乎矣, 一朔之內, 浮水之時少, 掛置之日多. 船上防牌、各樣諸具乙, 一依古船制造作, 則體制重大, 脫有風擺, 必致傷破落是白乎去. 其間參酌厚薄, 船上防牌乙, 或掛或臥, 以爲別制避風之地爲白有齊. 其他會付兵船等段置, 臣已爲改槊爲白乎喩良置, 杉板不爲牢固是白乎等以, 同兵船三隻乙, 竝只戰船一時改造杉板, 四隻之船, 工已斷手爲白有在果. 本營會付戰兵各樣船十五隻內二隻, 前水使申景珍新造, 其餘十三隻段, 改槊當次乙仍于, 臣到任之後, 或新造, 或添木改槊, 竝爲畢役爲白有齊. 本營會付軍糧米, 元數九百石內, 年前兵亂時, 四百十三石段, 軍兵等放料, 已爲會減爲白有遣, 時留在軍糧, 只五百二十六石是白去等, 脫有緩急, 軍兵放料之際, 恐有缺乏之患. 臣自到任之初至于今日, 斗米、尺布、鹽醢等物乙, 拮据收合, 別備軍糧米四百石, 入置待變庫爲白有置, 令該曹會錄施行事, 幷以馳啓爲白臥乎事是良厼. 詮次善啓云云." 崇德三年六月十九日封.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010 비변사의 관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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贊 渾然天資 精毅簡讜 漉落器宇 允矣 風光月霽之精神 明徹胸襟 依然海闊 天高之氣像 窮尋遺經 實踐力行 施諸事業 盡夫蠶絲牛毛之義 發爲文章 燦然84)布帛菽粟之精 淵源眞的上泝朱栗 造詣極致 下啓後學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二年辛未 濟州高東是 謹書 "宛成"을 이렇게 고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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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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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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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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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1년 김재식(金宰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未六月念三日 弟 金宰植 辛未六月念三日 金宰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1년 6월 23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소식이 끊긴 것에 대한 안타까움, 숭질의 기력과 여러 식구들의 안부, 아드님 치료에 대한 자신의 생각, 며느리의 출산 날이 가까워 염려된다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지난 가을 이후 소식이 끊겨 만나지 못한 것이 정이 미치지 못하거나 마음에 믿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간을 열어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드님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지 묻고, 듣기에 병이 더하기만 하고 낫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물론 조호(調護)하는 도가 엄중하지 않음이 없겠지만, 의원을 자주 바꾸지 말고 치료하는 방법을 바꿔서 천천히 치료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말해주고, 자신은 며느리가 출산할 날이 점점 가까워져 염려되지만 순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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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민진후(閔鎭厚)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七月三日 閔鎭厚 甲午七月三日 閔鎭厚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14년(숙종40) 7월 3일에 민진후(閔鎭厚)가 자신은 노쇠한 나이에 병까지 깊어져서 억지로 채찍질하여 분주히 일하고, 보내주신 한 개의 빗은 잘 받았다고 감사를 전하는 간찰(簡札) 1714년(숙종40) 7월 3일에 민진후(閔鎭厚)가 뜻밖에 편지를 받고 체리(體履)가 편안하고 복되시다는 것을 알고 위로되었으며, 자신은 노쇠한 나이에 병까지 깊어져서 억지로 채찍질하여 분주히 일하고, 보내주신 한 개의 빗은 잘 받았다는 내용이다. 성상(聖上)의 환후가 회복된 경삿날은 전고에 드문 것인데, 뜻밖에 주신 편지를 받고 순리대로 양생하는 체리(體履)가 편안하고 복되시다는 것을 알고 매우 위로되었다. 소식이 막혀 그리워하던 마음이었고, 노쇠한 나이에 병까지 깊어져서 억지로 채찍질하며 분주히 일하고 있으나 말할 수 없다. 보내주신 한 개의 빗은 잘 받았으며, 참먹 1홀(笏)을 약소하나마 드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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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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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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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당(李鐺)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壬戌 正月 初三日 再從姪 鐺 伊彦叔主 至孝 苫前 壬戌 正月 初三日 李鐺 伊彦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정월 3일에 재종질 이당(李鐺)이 재종숙모의 상에 숙부에게 보낸 위장(慰狀) 재종질 당이 재종조모의 부고를 받고 재종조부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위장으로, 재종조부는 할아버지의 사촌 형제를 가리키며 촌수로는 6촌 관계이다. 재종조모가 병환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뜻하지 않은 흉변에 재종조부의 슬픔을 위로하고, 당 자신은 시복(緦服)을 입는 항렬로서 객지에 의탁해 살아 형세가 거리껴서 가지 못하고 비통한 심정을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피봉의 이언숙주(伊彦叔主)에서 이언은 경북 칠곡군의 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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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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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9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二月七日 己卯二月七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2월 7일 조문하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과 진학 시험 비용 등의 내용을 전하는 간찰(簡札) 1939년 2월 7일 성명 미상의 사람이 상중의 수취인에게 직접 조문하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과 어린 아들이 중등학교 진학 시험을 보기 위해 비용이 필요한 처지 등의 내용을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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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정순혁(鄭淳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菊月念四日 弟 鄭淳赫 李敎成 宅 己卯菊月念四日 鄭淳赫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9월 24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상중에 약간의 부의금을 전한다는 내용의 간찰(簡札) 1939년 9월 24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상중의 안부를 묻고 흉년의 생활고와 일신의 건강과 사업으로 여가를 내기 어려워 약간의 부의금을 전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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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정유택(鄭逌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午七日望日 朞服人 鄭逌澤 庚午七日望日 鄭逌澤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7월 15일 기복인 정유택(鄭逌澤)이 자신의 다섯째 서숙이 요절하여 몹시 가슴이 아프고 보내주신 반찬은 매우 고맙다는 간찰(簡札) 1930년 7월 15일 기복인(朞服人) 가천(可川)에 사는 정유택(鄭逌澤)이 지곡(芝谷)에 계신 분께 편지를 받고 안부를 알게 되었고, 자신의 다섯째 서숙이 요절하여 몹시 가슴이 아프고 보내주신 반찬은 매우 고맙다는 내용이다. 심부름꾼 편에 보내주신 서찰로 이즈음의 식구들의 안부를 알게 되었고, 자신은 가문이 불행하여 이제 겨우 40세인 다섯째 서숙(庶叔)이 6월 그믐께 요절(夭折)하셔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과 쓰라림을 참을 수 없다. 장마 때문에 심부름꾼을 보내지 못하고 우편으로 부고를 하여 부침(浮沈)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서 죄송하고 부끄럽다. 보내주신 반찬이 텅 빈 부엌을 풍부하게 채워주셨지만 만의 하나도 갚지 못해서 매우 얼굴이 붉어졌고, 동생이 날이 서늘해지면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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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백순(李百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十月 七日 族兄 李百淳 甲子 陰十月 七日 李百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음력 10월 17일에 이백순(李百淳)이 족제에게 향사례를 소식을 묻고 노원의 위토 이전에 관한 위임서 날인을 요청하는 간찰(簡札) 1924년 음력 10월 17일에 이백순(李百淳)이 성명 미상의 족제에게 향사례를 지낸 소식을 묻고 노원의 위토 이전에 관한 위임서는 날인하여 자기 집으로 반송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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