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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선영의 자사 【갑인년(1914)】 李舜敬【璿榮】字辭 【甲寅】 하늘에 일곱 다스리는 별 있으니 天有七政,해와 달 그리고 오성이네 日月五星,우(虞)나라 순(舜)임금이 維虞舜氏,선기옥형으로 운행을 관측했네. 乃察璣衡.사시와 해를 셈하고 정하여 授時成歲,많고 큰 일들 다 빛나게 이루는 庶績咸熙,그 일을 다 맡아 해낸 것이 其在乎人,그 사람 한 몸이었다 하네. 一身云爲.성실히 삼가고 밝게 살피며 克謹克審,각지고 둥근 규범 잘 지키고, 循厥矩規,사물을 응대하고 처리함에 酬事應物,백 가지가 다 곧고 참되었다네. 百度皆貞.이씨 댁의 빼어난 수재 李氏之秀,여기 이선영 있으니 爰有璿榮,순경(舜敬)이라 자를 보태 曰舜敬甫,그 덕을 표현하네. 是其表德.순임금 큰 지혜는 본디의 것이고 舜固大知,경(敬)은 배운 규범이었네. 敬乃學則,동정과 표리를 가림 없이 動靜表裡,오직 이 경(敬)을 의지하소. 惟敬是依.몸이 규범에 합치하기가 身之合矩,마치 하늘의 별자리 같아 如天于璣,문채롭고 밝으며 깊고 현철하니 文明濬哲,순(舜)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舜何予何.이로써 자의 뜻을 글로 지으니 我用作辭,다팔머리의 이 가상한 선비여 髦士孔嘉,애써 노력할지니 勉哉强哉,이 하나 밖에 다른 것 없네. 一此靡他. 天有七政, 日月五星, 維虞舜氏, 乃察璣衡。 授時成歲, 庶績咸熙, 其在乎人, 一身云爲。 克謹克審, 循厥矩規, 酬事應物, 百度皆貞。 李氏之秀, 爰有璿榮, 曰舜敬甫, 是其表德。 舜固大知, 敬乃學則, 動靜表裡, 惟敬是依。 身之合矩, 如天于璣, 文明濬哲, 舜何予何。 我用作辭, 髦士孔嘉, 勉哉强哉, 一此靡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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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록 후 소지 信從錄後小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논란하여 말하기를 "일신재(日新齋) 정 선생(鄭先生)이 세상을 떠난 뒤에 친필의 원집(原集)을 바로 간행하였는데, 위로 종유(從遊)한 큰 덕망을 지닌 분으로부터 아래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생도에 이르기까지 성씨와 이름, 지극한 말과 요체가 되는 가르침이 책 속에 환하게 드러나 있어 당대에 두루 유행하고 아래로 먼 후세에까지 전해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직 마땅히 원집을 돈독히 믿어 선생의 학문을 배우고 선생의 마음을 느끼는 자는 이른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지극함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도리어 이 일을 거듭 설행한다면 아름다운 명예를 구한다는 폐단이 있다고 하면서 후세에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말하기를 "아, 태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으니3) 상을 치른 뒤에 짐을 챙겨 각자 돌아갔다. 처음에 다시 돌아와서 집을 짓고 홀로 더 거처한 자공(子貢)처럼4) 하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자하(子夏)처럼5)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인의 의론도 70명 제자의 반열에서 금방 괴리되었는데, 더구나 성인이 떠나고 말씀은 사라져 극도로 괴란(壞亂)된 때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 동문의 벗 박준기(朴準基) 씨가 이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동문들과 함께 해진 문권을 수집하여 행장(行狀) 및 언행(言行) 약간 편을 실어서 서권을 만들어 선사(先師)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의탁하였다. 또 후세에 우리 선사의 도덕과 광휘가 온축됨과 제자가 복종하고 믿고 따른 성대함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논란하던 자가 잘 알았다고 하고는 물러났다. 이에 글을 쓴다.정묘년(1927) 동짓날에 문인 풍산(豐山) 홍승환(洪承渙)이 삼가 기록한다. 有人難於余曰。日新齋鄭先生奠楹後。手墨原集在卽剞劂。上自從遊長德。下及親灸生徒。姓氏名啣與至言要訓。昭烈卷中。可以旁行於一時。下達於千世。則惟宜篤信原集。學先生之學。心先生之心者。可曰報答佛恩之至。而乃者疊設斯役。有不以好名要美之弊。議之於後歟。余曰。嗚呼。山樑旣頹。治任各歸。初不得子貢之反築。後未免子夏之離索。聖人議論。將乖于七十子之列。況聖遠言湮。壞亂極矣之日耶。此同門友朴準基氏。爲是之懼。乃與同門諸雅。裒粹摩擦。弁載行狀及言行略干。成編縹緗。以寓江漢無窮之思。且使來世有以知我先師道德光輝之蘊。與夫諸弟子思服信從之盛云爾。難者唯唯而退。於是乎書。丁卯陽復。門人豐山洪承渙謹識。 태산이……꺾였으니 훌륭한 스승의 죽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일신재 정의림이 세상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다시……자공(子貢)처럼 공자가 별세했을 때 모든 문인(門人)들이 심상 삼년(心喪三年)을 치른 다음 모두 짐을 챙겨 떠났으나, 자공(子貢)만은 다시 돌아와서 공자의 묘의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더 거처하여 6년을 지낸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자하(子夏)처럼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 또한 이미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하였다.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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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간재 선생께서 오상에 대해 읊은 시에 차운함 2수 ○임인년(1902) 謹次艮齋先生五常詠 【二○壬寅】 의인과 중정은 하늘로부터 내린 것 義仁中正降從天모두 만 가지 형상이나 본래 같다네 一切萬形同本然음양과 오행을 모두 갖고 있으니 載在兩儀兼五氣흠결과 남음 거칠고 현묘한 것도 없네 體無欠剩與粗玄인간은 어찌 태어난 이후 모두 마음대로 하여 人豈生來都擅得사물 쓰인 곳에 온전히 통하지 않게 했나 物於用處未通全다만 전해진 학설만 생각하다 잘못 본다면 只被錯看思傳註괴로이 글과 말로써 연구를 낭비한다네 苦將辭說費窮硏형체를 만들고 성을 부여한 것은 하늘이니 成形賦性是爲天만상도 이 본연의 성은 모두 같다네 萬象均同此本然성인과 범인도 모두 본바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聖凡不外皆由質날짐승 길짐승이 어찌 다시 현묘함이 있었던가 翔走何曾更有玄이(理) 안에 분수와 한계 정해져 있다 말하지 마라 休道理中定分限기(氣)에 따라 치우침과 온전함을 볼 뿐이니 直從氣上見偏全어찌 한 본체에서 달리 쓰이는 곳 있지 않으랴 盍於體一用殊處맹렬히 힘쓰고 정밀하게 밝히며 궁구하고 닦아야 하리 猛著精明究且硏 義仁中正降從天,一切萬形同本然.載在兩儀兼五氣,體無欠剩與粗玄.人豈生來都擅得,物於用處未通全.只被錯看思傳註,苦將辭說費窮硏.成形賦性是爲天,萬象均同此本然.聖凡不外皆由質,翔走何曾更有玄?休道理中定分限,直從氣上見偏全.盍於體一用殊處,猛著精明究且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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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107)에 대한 제문 祭鄭致弘文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그 줄이 끊어지고108) 영근(郢斤)에 그 바탕[質]이 없으니,109) 이것은 사물의 이치와 사람의 정이 고르게 하기 어려운 곳이라, 천년동안 흘러 전해져도 오히려 느껴 아파하며 다하지 않는 뜻이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오늘날에 내 몸에서 직접 보았으니 어떠하겠는가.오호라! 나는 형에게 50년의 오랜 친구가 되네. 시절이 춥거나 따뜻할 때, 길흉사에 왕래할 때, 글 짓고 술 마시며 마음대로 놀 때, 상란(喪亂)에 달려가고 숨을 때에 더불어 서로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마치 보거(輔車)110)가 의지하는 것 같고 봉마(蓬麻)111)가 도와주는 것 같았는데, 더구나 지금 노쇠한 나이에 평소의 친구들을 봄에, 열에 여덟아홉이 죽었으니, 외롭게 서로 향하여 마주할 사람이 또 몇 이나 되겠는가. 형은 어찌하여 조금 더 살지 않고 나를 버리고 잊음이 이와 같이 갑작스러운가? 형은 1월 18일의 편지에서 이 달 안에 한 번 방문하겠다는 말이 있었고, 아우는 2월 7일 편지에서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만날 기약을 하였는데, 이 달 안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봄이 다 가기 전이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작별할 때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병들었을 때 부축해 주지 못하였고, 죽었을 때 반함(飯含)112)도 못하였는데, 모습은 이미 감추어 유명 간에 영원히 막혔네. 제문을 지어 슬픔을 드러냄에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니, 영령은 아시는지요? 牙琴之絶其絃。郢斤之無其質。此是物理人情之所難平處。而流傳千載。尙不無感傷不盡之意。況在今日而於吾身親見之乎。嗚呼。吾於兄爲五十年舊要也。時節寒暄。吉凶往來。文酒遊衍。喪亂奔竄。無不與之相須。如輔車之依。如蓬麻之助。況今衰暮之年。見平昔知舊。十亡八九。而煢煢相向。又其幾人乎哉。兄何爲不之少延。而棄我亡我。若是其遽耶。兄元月十八日書。有月內一枉之語。弟二月初七日書。有春暮前一穩之期。誰知月內之約。竟未見就。而春暮之前。爲吾兩人永別之辰耶。病未擧扶。歿未飯含。儀形已閟。幽明永隔。操文泄哀。淸血如注。靈其知否。 정치홍(鄭致弘) 정기현(鄭琦鉉, 1844∼?)을 말한다. 자는 치홍,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백아(伯牙)의……끊어지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영근(郢斤)에……없으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봉마(蓬麻) 봉생마중(蓬生麻中)의 준말로, 좋은 사람과 사귀면 절로 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진흙과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반함(飯含) 죽은 사람을 염습할 때에 입에다 구슬과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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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菊 진나라 선비는 아침 이슬 베끼고43) 晉士寫朝露초나라 신하는 저녁 꽃을 먹었네44) 楚臣餐夕英고고한 두 분의 절개는 高高二公節천 년이 지나도록 향기로운 이름 남겼네 千載留香名지위와 덕은 자신의 것이 아니면 位德非其人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 自作蚩蚩氓강직한 천성 이 국화 사랑하니 索性愛此物어찌 옛사람의 마음에 견주리오 豈擬古人情맑고 굳은 자태를 사랑하니 只憐淸勁姿유속과 더불어 다투지 않아서라네 不與流俗爭봄날 성에 온갖 꽃 만발해도 春城百花發초연히 홀로 영화로움 감추네 超然獨藏榮서리와 바람 저녁 내내 불어도 霜風一夕吹가지가지 금주머니 가득하다 枝枝金朶盈고개 돌려 먼저 마른 놈을 보니 回看先萎者품격은 말이 없어도 밝구나 品格不言明네가 비록 정이 없는 사물이나 爾雖無情物청컨대 교류하며 동맹을 맺자구나 託交堪同盟 晉士寫朝露,楚臣餐夕英.高高二公節,千載留香名.位德非其人,自作蚩蚩氓.索性愛此物,豈擬古人情.只憐淸勁姿,不與流俗爭.春城百花發,超然獨藏榮.霜風一夕吹,枝枝金朶盈.回看先萎者,品格不言明.爾雖無情物,託交堪同盟. 진나라……베끼고 진나라 선비란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키며, 그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국화를 노래했음을 가리킨다. 초나라……먹었네 초나라 신하는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진 가을 국화꽃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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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중에 대한 제문 祭文集仲文 오호라! 헤어지고 합함은 서로 의지하고 모이고 흩어짐은 서로 교대하네. 그러나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기니, 이 속진의 좋지 못한 기능과 덧없는 인생의 빚진 업보가 본래 이와 같은 것인가?지난 병술년(1886, 고종23)에 내가 그대 백씨(伯氏)와 무등산[瑞石山]에서 바람 쐬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와 강론할 집을 마련하여 끊임없이 왕래할 계획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가 나를 버리고 돌아가시어 그 전형이 아우들에게 남아 있었던 것은 오히려 붕우의 바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었네. 이번 을미년(1895, 고종32) 봄에 내가 성동(星洞)에서 가천(佳川)으로 공을 따라 가 이웃을 맺어 노년을 보내며 갚지 못한 오랜 빚을 보상하려 하였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는데 인하여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네.오호라! 서로 알았던 날을 손꼽아보니 지금 30여 년이 아니던가? 1년에 한 번 보거나 혹 두 번 보았고, 서로 보았던 시간 또한 하루 이틀에 불과 하였네. 이것으로 계산해 보면 이른바 30년이라는 것은 그 실상은 단지 2, 3개월에 불과할 따름이네. 세상에 살아 있을 대에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더구나 각자 저승과 이승으로 영원히 작별하게 되었으니 어떠하겠는가. 어찌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긴 것인가?백수의 노쇠한 나이에 벗들은 신성(晨星)152)이 되어, 들어가서는 지낼 곳이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한 처지 이 무슨 신세인가? 근래 보건대 영정(詠亭)153)에서 종유하던 이가 죽은 사람이 20여 명인데 모두 내보다 나이가 적으니, 나는 유독 어떤 사람이기에 오래도록 죽지 않고 있는가? 생각건대 반드시 오래지않아 공의 백씨 중씨와 함께 저승에서 만나 기쁘게 교유하면서 다시는 이별하는 한이 없을 것이니, 누가 저승 또한 인간세상과 같다고 말하는가? 嗚呼離合相倚。聚散相襌。然合之難而離之易。聚者短而散者長。此塵海伎倆。浮生債業。本自如是耶。曩在丙戊。余與尊伯氏。風詠瑞石。歸開講社。爲源源之規。居無幾何。伯氏棄我而逝。其典刑之存於季難者。猶有可以慰朋友之望。是於乙未春。余自星洞從公于佳川。爲結隣終老。以償宿債之未了者矣。未幾公搬移他所。因爲二竪所苦。而竟至不起。嗚呼。屈指相知。今非三十餘年耶。一年而一。或再相見。其相見之頃。亦不過一兩日。以此計之。所謂三十年者。其實只是兩三月而已。生在世間。猶尙如此。況一幽一明而終天爲別乎。何合之難而離之易。聚之短而散之長耶。白首頹齡。知舊晨星。入無所寓。出無所適。踽踽凉凉。此何景色。近見詠亭從遊爲鬼者。二十餘人。而皆吾年下。則我獨何人。久無此行耶。想必非久。而與公伯仲。相遇於泉臺。驩然交遊。無復分離之恨。誰謂泉臺亦如人間世耶。 신성(晨星) 새벽별이라는 뜻인데, 벗들이 잇달아 죽어 마치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송장관부거병인(送張盥赴擧幷引)〉에 "옛날에 함께 급제했던 벗들과 어울려 노닐 적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마치 병풍처럼 대로를 휩쓸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와서는 마냥 쓸쓸하기가 새벽 별빛이 서로들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기만 하다.[嚮所謂同年友, 當其盛時, 聯袂齊鑣, 亘絶九衢, 若屏風然, 今來落落, 如晨星之相望.]"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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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病中 좁은 도랑 건너는 게 마치 큰 바다와 같고 尺渠涉若大洋洲평지의 위태로움이 흡사 백척 누대와 같구나 平地危如百尺樓육신은 괴로운 매화처럼 되니 온몸이 수척하거니와 身作苦梅全體瘦정신은 짙은 안개에 빠진 듯하니 언제나 수습할꼬 神沈大霧幾時收어찌 생각했으랴 세월 따라 고황261)이 깊어질 줄을 豈料膏肓深歲月모두가 허물과 악행을 산처럼 쌓았기 때문이라네 總緣咎惡積山丘편한 마음으로 저승사자 오기를 기다릴 뿐이니 安心只待符到已서글픈 뜻이 어찌 한 점이라도 일어난 적이 있으랴 怛意何曾一點浮수는 육십육 세에 이르렀는데 壽到六十六병은 사백 네 가지262)를 겸하였다오 病兼四百四세속의 정은 노년인 줄만 알고 世情知老年저잣거리의 도263)는 처자식만 중시한다네 市道見妻子적막한 대문 앞엔 그물이 드리워지고264) 寂寂門羅垂깊고 깊은 정원엔 풀이 푸른빛을 띠네265) 深深庭草翠책 속에 좋은 스승과 벗이 있으니 卷中師友存이내 그리움을 달래줄 만하다오 卽可慰吾思쇠병함은 노인의 상사라고 누가 말했던가 誰云衰病老人常칠순에도 못 이르러 갑자기 이렇게 되었구나 未到稀齡遽此當오래 앓은 중풍으로 반벙어리가 되었고 積歲中風成半啞두 눈의 흐릿함으로 온전한 모습을 못 본다오 雙眸翳霧昧全光삼복 무더위에도 이불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褥衾不離三庚節적은 곡식으로도 수일의 양식을 댈 수 있다네 升合能支數日粮괴이해라 아침 이슬 마르듯이 죽는 게 더디니 怪底猶遲朝露溘정신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노라 神精倘有一毫芒 尺渠涉若大洋洲, 平地危如百尺樓.身作苦梅全體瘦, 神沈大霧幾時收?豈料膏肓深歲月? 總緣咎惡積山丘.安心只待符到已, 怛意何曾一點浮?壽到六十六, 病兼四百四.世情知老年, 市道見妻子.寂寂門羅垂, 深深庭草翠.卷中師友存, 卽可慰吾思.誰云衰病老人常? 未到稀齡遽此當.積歲中風成半啞, 雙眸翳霧昧全光.褥衾不離三庚節, 升合能支數日粮.怪底猶遲朝露溘, 神精倘有一毫芒. 고황(膏肓) 심장과 횡격막(橫膈膜) 사이가 고(膏)와 황(肓)으로 여기에 병이 나면 치료가 어렵다 하여 불치병 또는 고질병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병마(病魔)가 두 아이[二豎]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황 사이에 숨는 바람에 끝내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사백 네 가지 사람은 오장(五臟)에 각각 81종의 병이 있어 그 총수가 405종의 병이 되는데, 여기에서 죽음[死]을 하나 빼면 404종의 병이 된다는 불가어(佛家語)에서 온 말이다. 저잣거리의 도(道) 원문의 시도(市道)는 시정(市井) 상인들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도를 이른다. 적막한……드리워지고 그물은 참새 잡는 그물로,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어 참새 잡는 그물을 펼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문정(門庭)이 적막하다는 뜻이다. 한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에는 빈객이 서로 찾아오는 바람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가, 파직된 뒤에는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아 대문 앞에 참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門外可設雀羅]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깊은……띠네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에 주돈이(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기리기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끝없이 펼쳐지고, 뜰 가운데의 풀은 무성히 푸르렀네.[風月無邊, 庭草交翠.]"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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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경에게 지어 주어 권면하다 贈勉權在炅 내 권재경을 사랑하노니 我愛權在炅명민하여 함께 학문할 만하네 聰敏可與學십리 길을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니 十里來朝夕기특하여라 성의가 지극하도다 奇哉誠亦卓살림이 어찌 이리도 어려운가 調度一何艱긴 낮 오후까지 배를 주리누나 永晝午枵腹부친이 늘 밭을 갈고 있으니 大人常耕田자식을 서숙에 다니게 하고 縱子遊書塾다시 연로한 조부가 있으니 更有重堂老때때로 와서 손자가 송독한 걸 본다오 時來觀誦讀집안에 어진 부친과 조부가 있는 것을 家有賢父祖옛날에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바라 하였네268) 古云人所樂도심은 기한에서 발현되고 道心發飢寒문장은 부옥269)에서 나오는 법 文章出蔀屋이 말 역시 이치가 있으니 斯言亦有理참으로 날마다 반복해 외울 만하네 正可日三復장차 보건대 영가의 집안270)에서 行看永嘉門유속에서 우뚝한 고사가 배출되리라 高士挺流俗이에 한 편의 시를 지어서 爲作一篇詩네가 종신토록 힘쓰도록 격려하노라 助汝終身勖 我愛權在炅, 聰敏可與學.十里來朝夕, 奇哉誠亦卓.調度一何艱? 永晝午枵腹.大人常耕田, 縱子遊書塾.更有重堂老, 時來觀誦讀.家有賢父祖, 古云人所樂.道心發飢寒, 文章出蔀屋.斯言亦有理, 正可日三復.行看永嘉門, 高士挺流俗.爲作一篇詩, 助汝終身勖. 옛날에는……하였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도(道)에 맞는 자가 도에 맞지 않는 자를 길러주며,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진 부형이 있음을 즐거워하는 것이다.[中也養不中, 才也養不才, 故人樂有賢父兄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부옥(蔀屋) 풀로 지붕을 이은 오막살이집으로, 곤궁한 민가 또한 백성을 비유한다. 영가(永嘉)의 집안 영가는 안동(安東)의 고호(古號)로, 권재경이 안동 권씨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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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질 상덕에게 답함 答從姪尙德 떨어져 지낸 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문득 편지를 받게 되니 매우 고맙고 위안이 된다. 근래 부모를 모시면서 어떻게 지내느냐? 걱정이 놓이질 않는다. 편지에서 지난번에 강회에 참여하였는데 그 전부터 집안의 재력이 부족하였다고 탄식하였는데, 강회에 참여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니 이는 우리 집안의 한 줄기 남은 희망이 아니더냐. 근래 네가 종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잡스럽지 않아 항상 어질고 맑은 사람을 가까이 하려 하고 집에 거처하면서 응대할 때 말과 낯빛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니, 이는 사람답게 만드는 본령이다. 내 마음에 어찌 고맙고 다행스러움이 없겠느냐. 다만 이전처럼 한가롭게 지내 문자와 더욱 멀어진다면 이는 작은 병이 아니니, 빨리 마땅히 돌이켜야 한다. 한결같이 촌음을 아끼려고 마음을 먹고서 협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에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만일 의심나거나 잘 모르는 곳이 나오면 부친에게 여쭤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계인과 날마다 서로 어울리면 충분히 너의 의심과 모르는 곳을 풀어줄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넉넉하지 않는 재력(財力)으로 식량을 싸서 과객이 된 이후에 비로소 책을 읽으려 하느냐. 이것은 모두 핑계를 대는 말이요, 성심(誠心)으로 독서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인은 꼴 베는 이에게도 물었고, 189)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190) 비록 나이가 나보다 적거나 지위가 나보다 아래더라도 그 덕업이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면 참으로 나의 스승이 되기에 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계인은 이웃 마을에 살면서 나이가 너보다 많고 공부도 너보다 나으며 그 가문의 명성과 재주의 뛰어남은 일찍이 우리 고을의 명사이니, 너는 모름지기 경외함으로 대하면서 질문하여야 한다. 우리 집안의 후생으로 훗날 가문의 책임을 부탁할 자가 누구이더냐。너는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깊이 체득하여 더욱 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離阻有日。忽見手滋。感慰多矣。日來侍省若何。溯念無已。書中有言。向參講會。有從前不力之歎。喜事喜事。此是吾家一線餘望耶。觀汝近來從遊不雜。每欲親近賢淑。居家應對。辭色和順。此是作人本領也。於我心豈無感幸。但因循優遊。與文字益疏。不是小病也。亟宜反之。一以惜分陰爲心。淨掃夾室。孜孜矻矻。如有疑晦處。則稟問于家庭可也。又與季仁逐日相從。又足以解汝之疑晦。何必以不贍之力。欲裹糧爲客而後。乃始讀書耶。此皆推托之言。非出於誠心讀書之意也。聖人問于芻蕘。三人行必有我師。雖年下於我。地下於我。而其德業勝於我。則固不害爲吾之師。況季仁居在比隣。年上於汝。功夫上於汝。其門望才華。未嘗不是吾鄕名士。汝須敬畏而待以資問也。吾家後生可付後日家戶之望者誰耶。汝宜深體此意。更加惕念也。 성인은……물었고 《시경》 〈판(板)〉의 "옛날 성현 말씀에 나무꾼의 말이라도 들어 보라 하셨다네.〔先民有言 詢于芻蕘〕"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세 사람이……있으니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내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본받으면서 따를 것이요, 불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경계하여 고칠 것이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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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靜齋田丈 丁卯 일전에 왕림하신 것은 진실로 후고(後稿)를 찾으러 온 것인데 받들어 부응하지 못하여 마음이 심히 송구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어른도 크게 마음이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해보지 않으십니까? 오진영이 이미 스승을 무함하고 진주에서 인가를 받아 간행하였으니, 사람들이 진실로 선사께서 진짜 '문집 간행을 요량해서 하라'는 말씀과 말로 하지 않은 인가에 대한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합니다. 어른께서 친아들로써 또 용동에서 간행하기 위하여 인가를 받는 데에 참여해 유서를 무시하신다면 사람들이 장차 유서가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무함을 변론하고 유훈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또 원고를 꺼내어 어른에게 주어 그 일이 성사되도록 돕는다면 이것은 선사 문하의 온전한 하나의 의리가 다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침이 없게 되어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해명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선사는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어른께서 진실로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하여 자못 마음속에 불편함을 없애고 제가 가르침을 어긴 것을 죄주지 마십시오. 日前枉臨, 亶出索去後稿, 而未能奉副, 心甚悚息.想丈亦大不平于中也.然何不試一思之? 震旣誣師而認印于晉, 人固疑先師眞有料量不言之認敎.丈以親子, 又參龍刊之認, 而不有遺書, 人將又疑遺書之非其眞.于斯時也, 澤述以主辨誣守訓之人, 又出稿與丈, 助成其事, 則是先師門下, 一副義理, 無復影響, 而世人之疑, 無路可鮮.到此地頭, 先師爲何如人? 丈誠能試一思之, 自無不平于中, 而不罪澤述之違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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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鄭國振 乙亥 보내주신 편지를 받들어 읽고서 보존하고 있는 것의 독실함이 과연 들은 바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또 부쳐주신 시(詩)를 읽고서 중화를 지키는 의연한 절개와 무함을 분별하는 절연한 의리를 더욱 잘 알게 되었는데, 언어와 편지로 능히 다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지난번에 전사견(田士狷)의 말로 인하여 제가 편지를 보내고 저의 편지로 인하여 성대한 좋은 시를 얻지 못했다면, 거의 노형을 잘 알지 못한 채 문득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다행입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시세(時勢)는 비록 변할지라도 나는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형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능히 말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칠 수 있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122)라고 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도를 밝히는 책을 저술하기를 맹자의 7편과 정자의 《역전(易傳)》처럼 하여 백세가 넘어서도 앙모하는 것이 이미 수립된 것을 능가할 뿐만 아니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저는 크게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奉拜惠覆,有以見所存篤實,果如所聞.又讀所寄諸詩,益悉守華毅然之節、辨誣截然之義,有非言語書翰之所能悉者.如非向因狷友之言而致惡札,因惡札而獲盛詩,則幾乎淺知老兄而奄過幾年也,何幸何幸! 程子有言曰: "時勢雖變,某安敢變?" 兄實有焉.孟子有言曰: "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 兄即其人.願益加博約之工,著成明道之書,如孟子之七篇、程子之《易傳》,俾百世之景仰,不徒樹立之已然者.區區不勝其厚望焉. 능히……무리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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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병진년(1916) 與季弟汝安 丙辰 오늘이 섣달그믐이구나.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이냐. 우리들이 어버이께 갚을 수 있는 만의 하나는 오직 집상(執喪) 하나에 있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 일 년이 되가는구나. 생활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응대하는 것까지 만약 열심히 노력하여 상을 잘 마치지 않고 슬픔을 잊고 예의를 범하는 데 이르면, 참으로 사람종자가 아니고 신명에게 죄를 얻는 것이다. 네가 어린 나이에 상례를 치르며 진실로 항심(恒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은 비록 이를 아끼지만, 그러나 시간이 오래될수록 쉽게 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나아감이 급하면 물러남이 빠르다.49)"는 옛 성현이 경계한 말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를 편지에 언급하여 서로 면려하는 바탕으로 삼으니 마땅히 헤아려 알기 바란다.집안 부녀자의 분분한 말은 듣는 사람도 참으로 믿어서는 안 되고 당하는 사람도 또한 분변할 필요가 없다. 만약 분변하여 밝히려고 하면 저 또한 단서를 야기하여 더욱 난리를 칠 것이다. 특히 장부의 도량이 아니면 바로 가문의 누가 될 것이다. 단지 나의 말을 신실하게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저가 믿음을 보고 감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今日歲除也.何居諸之迅也.吾輩報親之萬一, 惟在於執喪一節, 而轉眄之間, 歲將一周.自起居飮食, 以至一應應接, 若不加勉而克終, 以致忘哀犯禮, 則眞非人類, 而獲誅神明矣.汝之弱齡執制, 固非無恒者.吾心雖愛之, 然日遠易忘, 人之常情;"進銳退速", 往聖攸戒.故聊此書及, 爲胥勖之資, 想宜諒會也.家間婦女之紛言, 聽之者固不可信, 而遭之者, 亦不須辨.苟欲辨而明之, 彼又惹出端緖, 益致紛騰.殊非丈夫之量, 適爲門戶之累也.只要我之發言也信, 行己也正, 俟彼見孚而感化, 可也. 나아감이……빠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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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의 《벽봉유고》 뒤에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遺稿後 돌아가신 아버님 유고의 정서가 끝나 이제 읽을 만하게 되었다. 아버님께서는 뜻이 독실하고 배움을 좋아하셔서 스스로 얻은 바로써 나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실행하기를 힘쓰지 않아서 늙도록 성취한 바가 없으니 큰 불효이다. 그래서 삶을 마쳐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받아 쓴 바를 더럽히지 않고 앞서 지은 죄를 대속하기를 기대하면서, 후손을 넉넉하게 해 줄 자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유고이다. 마땅히 곧장 인쇄해서 길이 보전할 것을 꾀해야 하지만, 지금은 시절 형편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지난날을 생각건대 아버님께서는 시대의 정의에 대단히 엄격하시어 기유역서(己酉曆書)196)가 새로운 예규를 채용한 것을 보고나서는 절대 다시 그것을 펴보지 않으셨다. 지금 이처럼 마음과 정신을 담은 일을 시류(時流)에 구걸하여 진행한다면, 그것은 선사 간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의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히 할 마음이 안 나고, 또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만 몇 권을 베껴 두어, 자손들 더러 각자가 보관하며 하늘에 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하려한다. 몰래 혼자 생각하기를 "그러면 뜻을 기르는 도리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리라" 한다.갑신년(1944) 6월 6일 불초한 아들 김택술의 환갑 아침에 삼가 쓰다. 先君遺稿旣淨書, 可以讀矣。 先君篤志好學, 以得乎己者敎不肖, 而行之不力, 到老無成, 不孝大矣。 然及今畢生受用, 期無忝而贖前罪, 因以作裕後之資者, 惟是稿在耳。 宜卽就印, 用圖壽傳, 第今時律有不得自由者。 念昔先君於時義甚嚴, 見己酉曆書之用新例者, 絶不復觀。 今以心神所寓乞諸時而爲之, 豈非自辱, 如先師艮翁所云乎? 是所不敢, 亦不忍爲, 只欲鈔得數本, 子孫各藏, 以俟天返之日, 竊自謂養志之道, 無間存沒云爾。 甲申六月六日不肖子, 澤述周甲生朝謹書。 기유역서(己酉曆書) 1909년 반포한 《대한융희삼년력》을 말한다. 조선 병탄과 통치 기틀을 마련한 일제 내각이 제정한 것으로 예전의 역법과 크게 달랐는데, 양력 위주로 배치하고 조선 왕조의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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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여직275)의 자사 【신해년(1911)】 舍弟汝直字辭 【辛亥】 하늘이 낳은 뭇 인민에는 天生烝民,선한 이도 악한 이도 있으니 有善有惡,어떻게 구분되나 其分維何,곡(曲)과 직(直)에서 갈린다네. 曰直與曲.공자님 가르치셨네 仲尼有訓,사람이 사는 길은 곧음이라고 人生也直,이로써 후대의 모든 학도들 凡厥後學,바른 표준 삼을 바를 알았네. 知所準的.나의 아우 이름 만술(萬述)은 家弟萬述,돌아가신 아버님이 주시었고, 先君肇錫,이제 너에게 관을 씌워주며 今加爾冠,삼가 여직(汝直)을 자로 준다. 欽以汝直.성인이 일을 대응하는 법은 聖人應事,하나가 아니고 만 가지인데 有萬不一,그 궁극의 귀결을 보면 究厥歸宿,다만 곧음에 있네. 只在乎直.이것은 주자의 요결로서 是爲朱訣,천년을 변치 않으니 千古不易,만 가지 중에 직(直)을 취하라. 於萬取直,이제 그 하려는 말은 玆其可說,너 여직은 '직에로 나아가라'이니 曰汝汝直,어찌 감히 애쓰지 않으랴! 曷敢不勉! 天生烝民, 有善有惡, 其分維何, 曰直與曲。 仲尼有訓, 人生也直, 凡厥後學, 知所準的。 家弟萬述, 先君肇錫, 今加爾冠, 欽以汝直。 聖人應事, 有萬不一, 究厥歸宿, 只在乎直。 是爲朱訣, 千古不易, 於萬取直, 玆其可說。 曰汝汝直, 曷敢不勉! 여직 김택술(金澤述)의 셋째 아우 김만술(金萬述, 1895~1946)의 자이며, 호는 영은(瀛隱)이다. 부친은 김낙진(金洛進, 1859~1909), 조부는 김경순(金景淳, 1825~1867)이다. 부인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생몰년은 1897~1954이며, 그 부친은 김유술(金有述), 조부는 김영근(金永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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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사에 제함 題鳳棲寺 세속 전하는 말에, "봉곡 김공과 진묵15)은 선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루는 진묵의 넋이 서역에 들어갔는데, 봉곡이 그것을 알고 그의 몸을 불사르고 왔다. 진묵의 돌아오는 넋이 봉곡에 대한 원망을 드러낼 바가 없어 계곡을 끊어 마을 앞 시냇물이 땅속으로 흘러들게 했다. 그래서 봉서산은 서쪽으로 겨우 흘러나올 뿐 봉서사 밖은 한줄기 물도 없었다고 하니, 이 말을 믿는다. 봉곡은 학문을 한 군자이나, 이에 다른 사람을 몰래 해를 끼치는 데 이르렀으니 진실로 매우 어그러지고 오만하여 족히 믿을 수 없다. 진묵의 명철함으로도 이미 그의 몸을 보존할 수 없었고 또 육진에 얽매임에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원수를 갚는 데에만 구구했으니, 어찌 능히 그를 이른바 대선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유가는 예로부터 인과 사랑에 힘을 쓰고 儒門自是務仁愛석가는 원래 육신에 중점을 두지 않았네 釋敎元非重肉身만약 봉공이 진묵의 육신을 정말 태웠다면 若使鳳公焚震默사람 죽였을 뿐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라 不徒害物亦愚人세상에선 진묵이 천지와 통한다 전하지만 世傳震默通天地어떻게 칠 척의 몸 하나 간수하지 못했던가 何不能防七尺身시냇물 땅속으로 흐른 것을 다시 논하지 마시오 溪水伏流休更說헛되이 잘못된 사실로 사람들을 의혹하게만 하니 謾將謬訛惑人人 俗傳,鳳谷金公與震默不善.一日,震默魂入西域,鳳谷知之,來燒其身.震默歸魂,無所著怨鳳谷,斷谷,村前溪水,使之伏流.故鳳棲山以西纔出,寺外無一派水云,信斯言也.鳳谷以學問君子,乃至陰害人物,固已悖慢不足信.震默之明,旣不能保其身,又不免六塵之累,而區區於報怨,安得爲渠家,所謂大禪師乎.儒門自是務仁愛,釋敎元非重肉身.若使鳳公焚震默,不徒害物亦愚人.世傳震默通天地,何不能防七尺身?溪水伏流休更說,謾將謬訛惑人人. 봉곡……진묵 봉곡 김공은 전주 유학자 김동준(金東準, 1573~1661)을 말하며, 진묵은 속명 일옥(一玉, 1562~1633)으로 여러 기행과 이적이 있는 인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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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원로 신조공 형기 의 장례에 스승을 위한 상복이 여전히 몸에 있어 만사를 짓지 못했는데 지금 비로소 뒤늦게나마 올림 갑자년(1924) 겨울 ○이하 동일하다. 族老信潮公【炯基】之葬也 師服在身 未致挽詞 今始追呈 【甲子冬○下同】 의를 행함은 동중서와 부합되고207) 行義稱董子효성과 근심은 석씨라 불렸네208) 孝謹聞石君온화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진중하여 溫溫席上珍몇 번이나 연사께서 탄식하게 했나 幾發淵師歎어찌해서 짐승에게 짓밟힌 때 如何蹄跡日법도를 많이도 잃어버리나 法器多喪淪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덕을 입었고 從少久飽德게다가 다시 같은 파의 친척임에서랴 矧復同派親다만 한스러운 건 삼십 년 동안 只恨三十載한 글자도 서로 이르지 못한 것 一字不相及곡이 끝나고 사람들 보이지 않는데 哭罷人不見봉래산에 구름 만겹이구나 蓬山雲萬疊 行義稱董子,孝謹聞石君.溫溫席上珍,幾發淵師歎.如何蹄跡日?法器多喪淪.從少久飽德,矧復同派親.只恨三十載,一字不相及.哭罷人不見,蓬山雲萬疊. 의를……부합되고 한나라 동중서(董仲舒)는 "어진 사람은 의리를 바르게 행하고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도를 밝히고 공을 따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의를 행한 인물이다. 효성과……불렸네 석씨 집안은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하는데, 석분은 여러모로 살펴 두루 깊이 삼갔고, 그 네 아들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도 효도하며 조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석경은 태복(太僕)으로 있을 때 한 무제(漢武帝)가 수레 끄는 말이 몇 필이냐고 묻자 채찍으로 세어 보고 난 다음 여섯 필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니, 근신한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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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辛酉 신유년(1921)제가 삼가 들으니 계화재(繼華齋)에 책 읽는 소리가 갑자기 줄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작은 근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풍조가 크게 변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의 자제도 때때로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머리를 깎고 신학에 들어가는 것을 즐비하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들 수 있으니, 어찌 우리 집 아이들이 이처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일체(一體)라는 관점에서 보면, 남의 집 자제도 곧 나의 자제이니 다른 집 자제가 모두 이런 지경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하였다면, 어찌 우리의 자제가 다행히도 면한 것을 기뻐만 할 수 있겠습니까?대개 오늘날의 청년은 훗날 세도(世道)를 책임질 사람들인데 모두가 짐승 같은 상황에 빠져버리고 몇 명 살아있는 옛 학자마저 늙어서 사라진다면 윤리의 학문은 세상에 영원히 끊어지고 부자의 사당도 풀이 한길이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찌 시운에다만 맡기고서 끝내 만회할 방법을 조금이나마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걱정스럽고 또한 개탄스럽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생께서 세상을 근심하는 간절함은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르니 이런 일들을 듣는다면 애달프게 한숨만 쉴 것입니다. 竊聞繼華齋中, 書聲頓減, 此非細憂.目今風潮一變, 守舊家子弟, 往往有不告父兄剃髮入新學者, 見聞所及, 比比焉, 安知吾家子弟之亦不如此也? 且以一體視之, 人之子弟, 即吾之子弟, 人家子弟舉不免入此, 則安可以吾之子弟幸免爲喜也哉? 蓋今日青年, 即後日任世道者, 而皆淪於翔走, 幾箇舊學人老而沒, 則倫理之學, 永絕於世, 而夫子廟庭草深一丈矣.柰之何! 奈之何! 豈可任之時運, 而終無少試挽回之道耶? 可憫亦可慨也.伏想先生憂世之切, 有異餘人, 聞此爲之惻然一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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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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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6년 물왕리 소재 전답 증명서 고문서-증빙류-증명서 大正五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冕容 和容 大正五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冕容 李和容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이다.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이다. 형재공은 이직(李稷)이다. 증명의 대상지는 4곳인데,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전평 담자 697-2의 전지 286평2홉, 같은 곳의 담자 698의 전지 118평5홉5석, 담자 택지 697-1의 940평, 같은 곳의 인자 641과 64의 답지 1095평1홉3석 등이다. 이것을 합친 것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에 사는 족제 의용이 증명을 제출한 바, 이 선산은 형재공(亨齋公)의 제전답(祭田畓)인 까닭에 이 전답을 종중의 명의로 증명을 제출하는 것이 옳다는 것으로 문중의 의논이 일치하였다. 이에 이 뜻을 이의용에게 설명하니 사체가 당연하다고 하고 즉시 이 전답의 증명건을 가져와 이 증서를 작성한다고 하였다. 이 증서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거주하는 문장(門長) 이면용이 작성하여 족제인 화용과 선용, 복용에게 보내는 것이다. 입회인은 문덕면 장동리에 거주하는 이교인과 이교섭이다. 증명 사실은 '이 전답은 6세조와 5세조 3위의 전답이다.'라는 것이다. 증명비 7원은 족제 이의용이 먼저 썼기 때문에 계산해 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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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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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7년 김관두(金寬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12.□.11 金寬斗 李大淳 (昭和)12.□.11 金寬斗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7년 5월 12일에 김관두가 수신자에게 고발 사건은 공을 먼저 생각하니 신문을 받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하는 간찰 1937년 5월 12일에 김관두(金寬斗)가 수신자에게 고발(告發) 사건은 공(公)을 먼저 생각하니 신문(訊問)을 받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하는 편지이다. 고발사건에 대하여 미안하지만 하필 이교성(李敎聲)에게 마음이 있고 당신에게 무정(無情)하여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공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마음에 두지 말고 이교성씨를 방출(放黜)하면 만사가 편안하여 송사(訟事)가 없을 것이니, 서로 화호(和好)하는 도리가 이것이다. 자신의 본마음은 수신자가 의심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나 추후에 수신자의 생각에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니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좋겠다. 어제 경서(警署)에서 신문을 받았으니 말경(末境)에 가서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피봉이 있는데, 발신자는 곡성군(谷城郡) 곡성면(谷城面) 읍내리(邑內里) 조수환(曺壽煥)이고, 수신자는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의 이대순(李大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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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정재 전장에게 답함 答靜齋田丈 甲戌 갑술년(1934)옛날에 한 위공(韓魏公 한기(韓琦))의 아들이 수도 낙양에 정자와 동산을 만들어, 한 위공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곳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위공이 말하기를 "지금 내 나이가 이미 70으로 형해(形骸)조차 도외시하는데, 어찌 정원을 가지겠는가?"라 하고 드디어 그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원은 심대하게 해로운 것은 없는데도 오히려 형해조차 도외시한다는 것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어른의 나이도 70이니 어찌 다시 연연해하는 것이 있어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할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혹 자손 때문에 구애가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자손이 내 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여 남겨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을 남겨주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지금 해야 할 도리는 오직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 확실하게 행동하여 훗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 있을 할 뿐입니다. 오진영의 무리가 올리는 제기를 어찌 차마 선친의 영정 앞에 진설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이 당일에 한 말이 엄하지 못한 것은 이미 흠결의 일이나 오늘에 이르러서 오히려 나재(懶齋)와 신헌(愼軒)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받지 말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진영을 끊는다는 명백한 문장일 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昔韓魏公之子, 欲治亭園於京洛, 以爲魏公逸老地.魏公曰: "吾今年已七十, 則形骸可外, 何有亭園?" 遂禁其事.竊以爲亭園, 無甚大害者, 猶然以形骸可外禁之.今吾丈之年, 亦已七十矣, 豈可復有所顧戀, 而不能行其所當行者哉? 若或以子孫爲拘云, 則子孫於我何加焉? 况以所當行者行而遺之, 遺爲莫大者乎? 在吾丈今日之道, 惟有斬釘截鐵, 可無他日之悔耳.震黨所進祭器, 安忍陳列於先人影幀之前也? 吾丈當日言之不嚴, 已是欠事, 及今猶可致書於懶齋愼軒, 使之勿受, 可也.此正爲絶震之明文耳.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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