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서실에서 바로 지음 書室卽事 시 짓는 시름 백등산에서 포위된 것 같아76) 詩愁匝似白登圍방황하며 사립문 나가 걸을 겨를도 없구나 不暇彷徨步出扉얇은 종이로 풀칠한 창엔 바람 뚫고 들어와 薄紙糊牕風氣透남은 기름으로 적신 심지에선 등불이 희미하네 殘油沾炷燭花微억지로 좋은 모임 만드니 도리어 일이 많고 强成勝會還多事거듭 벗들을 만류했더니 돌아갈 줄 모르네 更挽親朋故不歸좋은 날엔 술 얻기 어렵다 말하지 마시오 莫道良辰難得酒모름지기 뭇 아름다움 다하는 건 예로부터 드묾을 아니 須知盡美古來稀 詩愁匝似白登圍,不暇彷徨步出扉.薄紙糊牕風氣透,殘油沾炷燭花微.强成勝會還多事,更挽親朋故不歸.莫道良辰難得酒,須知盡美古來稀. 백등산에서……같아 한 고조(漢高祖)가 흉노(匈奴)를 토벌하러 평성(平城)에 갔다가 백등(白登)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는 수모를 겪은 뒤 진평(陳平)의 계책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던 고사가 있다. 《漢書 高帝記》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정에게 화답함 和子貞 오전과 삼강 모두 불에 타 재가 되었으니 五典三綱燼作灰세상에는 눈을 뜨게 해줄 어떤 곳도 없네 世間無處眼堪開만약 미세한 양이 설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如能扶得微陽立허자의 넉넉한 공204)이 땅을 진동하며 오리라 許子豊功揭地來 五典三綱燼作灰,世間無處眼堪開.如能扶得微陽立,許子豊功揭地來. 허자의……공 송(宋)나라 말엽의 학자로 허형(許衡)을 가리킨다. 그는 상소(上疏)하여 "북방의 민족이 중하(中夏)를 차지할 경우엔 반드시 한족(漢族)의 법을 실행해야 국운이 장구할 수 있다." 하여 한족의 문물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정이 찾아왔기에 子貞來訪 나그네 먼 태산성으로부터 왔는데 客行遙自泰山城미투리는 하루 만에 온 듯해 恰是芒鞋一日程정토에 구름 잠기니 해는 저무려 하고 淨土雲沈天欲暮오교에 눈 녹으니 물은 더 불어나네 梧橋雪盡水添生한 달여 동안 서로 떨어져 마음은 괴롭지만 三旬相別心何苦여기에서 다시 만나니 눈이 갑자기 밝아진다 此地重逢眼忽明남쪽 고을 티끌 빛이 암울하다 말하지 마소서 休說南州塵色暗우리 집은 그래도 글 읽는 소리 아직 들리니 吾家猶聽讀書聲 客行遙自泰山城,恰是芒鞋一日程.淨土雲沈天欲暮,梧橋雪盡水添生.三旬相別心何苦?此地重逢眼忽明.休說南州塵色暗,吾家猶聽讀書聲.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격포 格浦 옛 진보에 석양빛 옅어지는데 古鎭夕暉薄서생은 뒤늦게 이곳을 찾네 書生晩此尋땅의 경계 다하니 하늘의 형세 아득하고 境窮天勢逈협곡이 빙 둘렀더니 바다 입구 깊구나 峽轉海門深씩씩하게 싸워 방어하던 땅이요 﨣﨣干城地빽빽하게 우거진 초목 짙은 곳이네 蒼蒼草樹陰흥하고 폐하는 이치란 무상한 법이라 無常興廢理깊이 탄식하며 남몰래 마음 아파하네 三歎暗傷心 古鎭夕暉薄,書生晩此尋.境窮天勢逈,峽轉海門深.﨣﨣干城地,蒼蒼草樹陰.無常興廢理,三歎暗傷心.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유천사124) 남은 터 柳川祠遺趾 영전리의 서쪽 끝 유천의 동쪽에 英田西畔柳川東계곡과 유천사가 몸처럼 보이네 溪谷祠儀一體同잡초 우거진 지 근래 몇 해가 지났나 鞠草邇來經幾歲후손 이곳 들리니 한은 끝이 없다네 後承到此恨無窮 英田西畔柳川東,溪谷祠儀一體同.鞠草邇來經幾歲,後承到此恨無窮. 유천사 전라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에 있었던 서원으로, 1711년(숙종3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허진동(許震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이듬해에 김택삼(金宅三)을 추가 배향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유두일 성묘에 流頭日省楸 한 번 포자산에 봉해져 一封匏子岡우리 부친 이곳에 묻히셨네 吾親此焉藏오동과 대가 가을 잎에 놀라니 梧竹驚秋葉홀연 몇 번이나 서리가 내렸을까 倏忽經幾霜무더위에 와서 통곡하다가 炎天來慟哭한 번은 수박 향도 맡았다네 一瓣西瓜香평생의 끝없는 한스러움은 平生罔極恨망망한 우주처럼 길기만 한데 茫茫宇宙長가장 두려운 건 옳지 않은 곳에 기대는 것 最恐託非地한밤중엔 마음은 절로 미어진다네 中宵心自傷묘자리 새로 씀을 어찌 그만둘 수 있을까 改營豈得已온 산에서 두 다리는 바쁘구나 千山雙脚忙다만 바라는 건 명명한 도움을 주셔서 但願垂冥佑만세토록 좋은 자리 차지하게 해 주소서 萬歲卜允臧 一封匏子岡,吾親此焉藏.梧竹驚秋葉,倏忽經幾霜.炎天來慟哭,一瓣西瓜香.平生罔極恨,茫茫宇宙長.最恐託非地,中宵心自傷.改營豈得已,千山雙脚忙.但願垂冥佑,萬歲卜允臧.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君浦停車 上去時下鄕車入安山自京去亨齋公山所四十里 高陽郡碧蹄面仙遊里出西大門○越舞鶴峙 ○過綠蟠곡ᄋᆞㅣ二 ○過剝石곡ᄋᆞㅣ 過舊擺撥 ○過ᄆᆞㅣ암이곡ᄋᆞㅣ二 ○過산즉극ᄋᆞㅣ 當仙遊里墓直成壽奉家 二五四番地 成壽奉從叔成鍾煥二七四番地 出后從叔汶容氏墓直成乭夢也鶴庵公家世系 應協 子 趾烈 無子 子 顯烈 子 載忠 納伯氏 趾烈 子 箕錫 系子 漢容 生父 箕柱 平壤公派 子 箕欽 系子 汶容 奉事公派惟我 始祖顯于新羅之季 而其下失傳 又八傳而壠西公克開 厥後窃稽陽川許譜 詳載始祖五代下名諱 則自始祖至壠西公 固爲十二代 而壠西公譜序云 新羅宰相某寔公十二代祖 則十二代祖至公 豈非十三代乎 別檢公墓碣云 新羅宰臣某十二代孫 某則此亦十三代之證也 豈爲序爲碣者不究乎 上下十二代之爲祖爲孫 捨已當云 十一代而遽下祖孫字於十二代之下乎 抑爲許譜者 或於十二代祖孫之文 不察夫 兼已當爲十三代而泛稱十二代乎 然則始祖下失傳之爲三代爲四代 未可知也 況舊譜以一十一代祖爲始祖十六代孫 而自始祖至壠西公爲二十代者 於何考也 蓋序碣與許譜相近 而與〈이하 탈락〉楊州蘆原中契墓直朴順成 下契墓直姜元信永平楸洞山所路記〈今爲抱川云云〉當南大門登驛 上元山行全谷車 費一圓五錢 過龍山驛 過西氷庫驛車 過往十里驛車 過淸涼里驛車〈自京若去則出東大門登此車〉 過蒼庫驛車〈卽蒼洞也 楊州蘆原上中下契在前〉 過議政府驛車〈野名議政也〉 過德亭車 過東荳川車 至全谷車〈下〉 問高灘里津〈船價五錢〉 問白蟻津〈船價五錢〉 問바람올酒店前江〈船價五錢〉 問抱川郡去路至小嶝問獜鳳洞 卽楸洞也 新洞名으로 注院里區 獜鳳洞隱庵公八世孫〈黃鍾(字聲汝) 應鍾(字復汝)〉 抱川郡 蒼水面 注院里〈獜鳳洞〉 三五四番地回記自全谷車下蒼洞車 費七十錢也 問蘆原中契〈自蒼洞至中契五里〉抱川郡 蒼水面 注院里 獜鳳洞 三五四番地 李應鍾 仁川 府內里 五十二番地 李敎洪 敎應其伯氏也 京南大門 外吉野町 壹丁目 百十八番地 李敎煥 京城 嘉會洞 百四十三番地 李瓘 號敬庵 水原郡 峯潭面 柳里 李仁淳 字聖巢

상세정보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1924년 이의용(李宜容) 소유권 말소 등기신청서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大正十三年十二月四日 李宜容 京城地方法院 大正十三年十二月四日 李宜容 京城地方法院 경기도 부천시 경성지방법원영등포출장소 직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12월 4일에 이의용(李宜容)이 경성지방법원에 신청한 소유권 말소 등기신청서 1924년 12월 4일에 이의용(李宜容)이 경성지방법원에 신청한 소유권 말소 등기신청서이다. 문서명은 소유권 말소 등기신청이다. 한자와 일본어가 혼용되어 있다. 일정한 문서양식에 관계사항을 기재한 것이다. 각 공란의 주요 항목은 부동산표시, 등기원인 및 그 날짜, 등기목적, 변경사항, 부속서류, 등록세 등이다. 부동산 표시는 별지에 목록을 제시하였는데, 토지조사령에 따른 부동산표시라 하고서 4곳을 표시하고, 기 증명한 부동산 표시로서 역시 4곳을 표시하였다. 소재지는 모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이다. 등기원인과 날짜는 1910년 9월 5일의 토지조사이다. 등기목적은 등기 명의인 표시라는 문구를 지우고 명령에 의한 사정(査定)이라 적었다. 변경사항은 소유권증명 말소이다. 부속서류는 토지대장사본 1통, 토지표시변경증명신청서 1통, 위임장 1통 등이다. 신청인은 이의용이며, 대리인은 이백순이다. 각각 주소지를 적어놓았다. 신청처는 경성지방법원 영등포출장소이다. 등록세는 3원이다. 문서의 말미에는 '등기제(登記濟)'라 하고 그 아래에 경성지방법원영등포출장소 직인을 찍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사순에게 답함 병자년(1936) 答田士順 丙子 선장(先丈)이 살아계실 때, 선사의 연보(年譜)를 초안하여 반절쯤 완성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선인(先人)이 봉루사(鳳樓寺)87)에 거주한 이후는 모쪼록 고명(高明)이 기록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고, 이후 현동(玄洞)에서 초본(草本)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조금 수정을 한 후에 보내줄 테니 이어서 완성하는 책임은 수고를 사양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공경히 대답하기를 "비록 적임자가 아니지만 선사와 관계된 일이니 어찌 감히 수고롭다는 이유로 사양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것은 하늘이라 이 몇 개월 사이에 선장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매 불민하여 이전에 조문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만났는데 저간의 사정을 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선장의 정중한 수필(手筆)이 상자에 있고 간곡하게 부탁한 말이 귀에 생생하니, 이 일의 책임을 끝내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만사를 제치고 일을 시작하여 돌아가신 분의 부탁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속히 연보의 초고를 보내 주어 때를 놓치는 한탄이 없게 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先丈在世日,草成先師年譜至半,貽書澤述曰: "先人住鳳樓寺以後,望須高明記之." 後於玄洞以所草本示之曰: "俟稍加修整後付送矣.續成之任,勿辭其勞也." 澤述敬對曰: "顧雖非其人,事係先師,豈敢以勤勞辭?" 天難諶,斯數月之間,先丈遽沒,夫復何言? 自惟不敏,前於吊哭歸路暫面,不遑告由矣.但念先丈鄭重之手筆在笥,丁寧之言囑在耳,此事之任,終有不可已者.竊欲從今掃萬試役,庶副幽明之託望,須亟以譜草送來,俾無失時之歡.如何如何? 봉루사(鳳樓寺) 봉서사(鳳棲寺)의 오기인 듯하다. 봉서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 사이에 있는 절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견암 김장태희에게 보냄 임오년(1942) 與堅菴金丈泰熙 ○壬午 선사의 원고 중에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179)는 어른의 선조를 위해 지은 것이고 어른의 청에 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박공이 선조 기축년(1589)에 죽고, 김공이 임진왜란을 겪은 것으로 질정해 보면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분명하니 마땅히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렇지만 저 음성의 오진영이 어른께서 스승을 속여 글을 얻었다고 하면서 죄인 취급 하는 것은 그가 험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사의 명철하고 박식함으로도 오히려 미처 살피지 못하시고 지었으니, 어른께서 집안에 전해온 만시(挽詩)를 인하여 글을 청하신 것을 또한 어느 겨를에 논하겠습니까? 어른을 두고 '선사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기필코 말을 한다면 이것은 선사를 두고 '사기를 당한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잔인한 마음으로 스승을 폄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많이 변척할 것도 못 됩니다. 가만히 그 사실과 어긋난 까닭을 생각해보았는데, 근래에 황이재(黃頤齋 황윤석(黃胤錫))의 문집을 보니 박사암과 성명이 같은 자가 있는데, 일찍이 부안현감을 지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재공은 부안 사람이니, 만시를 지은 사람이 부안현감인데 사암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先師稿中, 跋朴思菴挽金止齊詩, 是爲尊先祖作, 而副丈之請者也.然考以朴公卒於宣廟已丑, 金公經壬辰亂者, 而質之, 則爽實明矣, 在所當剛.是則然矣, 而彼陰震之謂丈欺師得文, 而罪之者, 可見其險心擠人.以先師之明博, 尙未及察而作之, 則丈之因家傳挽詩而請文, 又何暇論? 必謂丈爲欺師之詐, 則是謂師爲見欺之暗也.又見其忍心貶師也, 不足多辨.竊思其所以爽實之故, 則近見黃頤齊集, 有與朴思菴, 同姓名者, 嘗宰扶安之語, 止齋公, 是扶安人, 則作挽詩者, 無乃扶宰, 而誤認爲思菴歟?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 《간재집(艮齋集)前篇》 제16권 〈제발(題跋)〉에 실려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사순 일건에게 답함 기축년(1949) 答田士順鎰健 ○乙丑 부친이 양을 훔치지 않았는데 자식 하나가 그것을 증명한다면86) 다른 여러 자식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변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친의 무함을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선사의 무함도 유추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父未嘗攘羊,而有子一人證之,其他諸子可不明辨無是於鄉黨衆中哉? 知親誣之不可不辨,則知師誣之可反隅矣. 부친이……증명한다면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 자식이 증언했다.[其父攘羊, 其子證之]"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族弟希淑 甲戌 그대는 답장에서 조정의 명령으로 철폐한 서원을 신설(新設)하는 것과 복설(復設)하는 것은 모두 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 또한 일찍이 김성구(金聖九)의 설을 옳다고 여겼다. 이제 편지에서 "'옛 서원도 오히려 철폐하는데, 하물며 그 신설을 용납할 것인가'라고 한 것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말을 받아 보니 매우 이치에 합당한 말이라 다시 의심할 것이 없다. 惠覆朝令撤院, 新設復, 俱不可爲.鄙亦曾以金聖九說爲是.今承舊者猶撤, 况容其新, 不待多言之喩, 理到之言, 無復可疑矣.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族弟希淑 甲戌 그대가 보낸 편지에서 《주연집(珠淵集)》의 〈퇴송복원소유교문(退送復院䟽)〉와 〈유교문(儒敎文〉을 근거로 서원의 신설과 복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옳다. 고려시대의 여러 현인들도 본조(本朝)의 포상과 금지를 따라야 한다는 것도 옳다. 대저 원우(院宇)의 설치는 비록 현자를 높이고 강학하는 장소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만일 내외(內外)의 분수를 안다면 다만 그 마음이 없을까를 근심하지 그 장소가 없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어찌 괴롭게도 옥사(屋社)하여 임금이 없는 날에 선제(先帝 고종)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설립한다는 말인가. 요컨대 마땅히 본조가 중흥하는 날에 조정에 요청하여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왕자(王者)가 흥기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우리들은 이 점에 있어서 논의가 결정됐다고 이를만하다. 來書據《珠淵集》退送復院䟽儒敎文, 斷以不容新復設院者是矣.麗朝諸賢, 從本朝褒禁者亦是矣.大抵院宇之設, 雖曰尊賢講學之所, 然苟有知內外之分, 只患無其心, 不患無其所.何苦於屋社無君之日, 違先帝之令而擅設乎? 要之當於本朝中興之日, 請而行之.不然則俟有王者作焉已矣.吾輩於是乎可謂論定也.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간재선생에게 올림 기유년(1909) 上艮齋先生 己酉 저번에 선친(先親)에 관한 글을 써 주시기를 간청하였는데, (선생님께서) 거절하지 않아 주셨으니 감읍(感泣)할 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행장(行狀)의 초본(草本)이 천루(淺陋)한지라 선친의 실덕(實德)을 잘 밝히지 못하였기에 헤아려 선택하실 수 있는 자료가 되지 못하니 이 점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삼가 생각해 보니, 선친께서는 일찍이 빼어난 자질을 타고나서 도(道)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질정(質正)하였을 뿐 과거 공부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선생을 배알하고서 성현(聖賢)의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사고(事故)가 몸을 얽어매어 날마다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곡례(曲禮)의 세세한 절차, 심성(心性)의 담론 등 정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비록 힘을 쏟을 수 없었지만 훌륭한 덕행과 고상한 절조는 족히 퇴폐한 풍속을 바로잡아 후세의 사표가 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큰 것을 들어 말한다면, 성심(誠心)으로 부모를 섬기고, 의로움으로 자식을 가르치며, 옛 성현의 학문을 배울 뿐 오늘날의 신학을 끊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며,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 것 등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옛 사람에 비교해 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듯하다고 삼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식으로서 사적인 감정으로 아부하는 말이 아니니, 신령에게 질정하여도 의혹이 없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선생께서는 이를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다섯 가지를 지을 글의 대지(大旨)로 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묘표(墓表)와 전(傳)이 오래도록 전해지는 것은 동일하지만 단지 문자로만 전해지기보다는 차라리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워 새기는 것이 더욱 낫다고 생각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선생께서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묘표로 써 주신다면 더욱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向懇先人文字, 旣蒙不却, 感泣何言? 但狀草淺陋, 不能發實德而爲裁擇之資, 是爲可愧. 竊伏念先人夙負卓姿而就正, 無所費心於功令之業. 晚拜先生, 立志於聖賢之學, 而事故纒身, 日不暇給, 於曲禮細節談性說心精細去處, 雖不能致力, 然其懿德高節, 有足以厲頹俗而師來世者. 若擧其大者而言之, 則事親以誠, 敎子以義, 學古絶今, 好善惡惡, 尊華攘夷是也. 此五者, 竊以爲擬諸古人, 似無愧也. 此非人子阿私之言, 可質神明而不惑也. 未知先生以爲然乎? 如以爲然, 則以此五者, 爲下筆之大旨, 如何? 表與傳, 傳久則一也, 與其只傳諸文字, 孰若顯刻墓道之爲尤著也? 伏乞先生再思以墓表下筆, 則尤爲千萬幸甚.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김성구에게 보냄 신사년(1941) 與金聖九 辛巳 어느 가을인가 찾아뵙고 문안드린 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일 때문에 문으로 들어갔더니, 작은 집은 쓸쓸하여 청풍만 집에 가득하고 옛날에 대그릇에 밥을 받아먹었던 사람이 지금은 표주박의 물만 받아 마실 뿐이었으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찍이 최현위(崔玄暐)의 어머니 노씨(盧氏)가 신현어(辛玄馭)의 말을 인용하여 자식을 경계한 내용을 읽고 감개한 바가 있었습니다. 노씨가 "자식이 벼슬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면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만약 재화가 풍족하다면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77)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은 어떤 때가 되었으며, 선비는 또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날에 선비를 살펴보면, 좋은 소식을 만들려는 자가 또한 어찌 유독 이것으로 표준을 삼지 않겠습니까. 아, 그대는 지산옹(志山翁)의 뜻과 사업을 계승한 훌륭한 아들로서 어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않다면 또한 어찌 세상에서 김노동(金魯東)이라 일컫겠습니까. 나는 그러므로 축하드릴지언정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여기십니까? 秋間造拜, 十七年後, 初事入門, 則環堵蕭然, 清風滿室, 昔之供簞食者, 今焉瓢飲而已, 則宜若使觀者可悶.然鄙嘗讀崔玄暐母舉辛玄馭語以戒子者, 而有所感槩矣.不曰"兒子從宦者, 有人來云'貧乏不能存', 此好消息.若財貨充足, 此惡消息"乎? 今日何日? 士子又何人也? 觀士於今日, 而爲好消息者, 亦何獨不以此作準乎? 噫, 賢座以志山翁繼述之肖子, 安得不然? 不然, 亦何所稱金魯東於世間哉? 吾故曰可賀, 而不可吊也.未知識者以爲如何? 자식이……소식이다 《구당서(舊唐書)》 권91 〈최현위열전(崔玄暐列傳)〉에 보인다. 최현위(崔玄暐)의 이름은 엽(曄)이고, 박릉(博陵) 사람으로 나중에 벼슬이 재상에까지 이르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정재 전장에게 보냄 갑자년(1924) 11월 與靜齋田丈 甲子十一月 생각해보면,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서와 문생이 스승에 대해서 모두 목숨을 바칠 의리가 있습니다.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부친을 존경하는 지극한 정성은 천륜에서 나왔으니 어찌 쇄소응대(灑掃應對)183)하는 제자들과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늙는 것은 사람이고, 머무르게 할 수 없는 것은 시간입니다. 우리 어른의 나이가 거의 60에 가까우니, 선조와 선사를 높이는 중대한 일에 대해 미진한 것을 병들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물러나 천고의 한을 초래하지 않을 것을 여겨집니다.하물며 지금 오진영이 더욱더 방자하게 흉악한 독기를 부려 이쪽 사람들을 배일당(排日黨)이라는 죄목으로 얽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황이 현재 목전에 있습니다. 원컨대 우리 어른께서 우뚝 확고하게 스스로 담당하여 이해와 화복의 밖에 몸을 두고 광명정대한 위로 선친을 높여서 세도가 이에 힘입게 하고 사문이 다행스럽게 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竊念子之於父, 生之於師, 俱有致死之義.而在吾丈, 尊親之至誠, 出於天倫, 豈備列灑掃者比哉? 易老者人, 莫畱者辰.吾丈春秋, 恰滿六旬, 凡關尊先先師大事未盡者, 想不以病健, 有所進退, 以致千古之恨.况今震也, 益肆凶毒, 構此邊人以排日黨, 致死之地, 現在目前.願吾丈挺然自擔, 置身於利害禍福之外, 尊親於光明正大之上, 使世道賴, 而斯文幸焉. 쇄소응대(灑掃應對) 땅바닥에 물을 뿌려 쓸고서 응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유학에서 교육하고 학습하는 기본 내용 중의 하나이다. 송(宋)나라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王公) 이하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들어가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의 절차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글을 배웠다."라고 하였으며, 〈소학제사〉에 "소학의 교육 방법은,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행동이 혹시라도 여기에서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시경을 외고 서경을 읽으며 읊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어서 생각이 혹시라도 여기에서 넘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라는 내용이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황치실 신연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黃致實 信淵 ㅇ己卯 상천이 진노하여 이러한 큰 흉년을 내리니 슬프다 우리 어려운 백성들은 어찌 살아갈까. 오호라 하늘이 순수한 성품과 영명(靈明)한 마음을 중생에게 부여했거늘, 지금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어둡게 하고 그 성품을 해쳐서 의리를 없애버리고 윤리강상을 무너뜨리고 끊어버려 온 세상이 도도(滔滔)하게 함닉(陷溺)하게 되었다. 유자의 복장과 의관을 하고 성현의 글을 읽는 자들 또한 혹여 더욱 심하기도 하니 어찌 하늘의 진노를 범하지 않겠으며, 다 그렇지는 않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또한 모두 연좌의 죄과(罪科)에 들지 않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진노를 공경하여 감히 유희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유희도 감히 못하거늘 하물며 의를 멸하고 윤리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자신(自新)할 바를 생각하지 않으랴. 그러나 세속의 인사는 본디 주관할 수 없으니, 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마땅히 급히 돌이켜 구하여 안으로 반성하여 이르기를 "혹여 한 생각 한 가지 일이라도 마음을 어둡게 하고 성품을 해쳐 의를 멸하고 윤리를 무너뜨리는 종자가 되어, 끝내는 유속(流俗)과 분별이 없이 도리어 유자(儒者)이면서 더욱 심한 자로 귀결되지 않는가."해야 한다. 다 그렇지는 않는다는 자들의 반열에 있는 것을 스스로 의시하여 편안하게 무사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현재 두려워하고 반성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진노를 푸는 방도이다. 비록 몇 사람이 조석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바는 아니나, 또한 필부도 천하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고명한 그대는 어떻게 여기는가. 上天載怒, 降此大無, 哀我㷀獨, 何以聊生.嗚呼! 以純粹之性, 靈明之心, 賦與衆生, 乃今之人, 自昧其心, 自害其性, 以至滅棄義理, 斁絶倫常, 擧世滔滔, 載胥及溺.而儒冠服而誦聖賢者, 亦或甚焉, 如何不干犯天怒, 而其不盡然者, 亦皆入於連坐之科乎.詩云敬天之怒, 毋敢戱豫, 戱豫且不敢, 况於滅義斁倫之事, 而不思所以悔罪自新乎, 然而世俗人事固管他不得, 但在吾輩, 亟宜反求內省曰: 或有一念一事, 昧心害性, 爲滅義斁倫種子, 而終無別於流俗, 却同歸於一種儒而甚焉者否.不容自恃參在不盡然之列, 而恬然無事.此爲目下恐懼修省敬天解怒之方也.雖非幾箇人之所能朝夕秦效者, 亦豈不聞匹夫與有天下責之語乎? 高明以爲如何?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정국진 기성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鄭國振基聲 ○乙亥 때때로 친구 전사견(田士狷)을 만나 좌하(座下)의 소식을 들었는데, 법도에 지킴이 있고 절조가 더욱 굳세어 맹세코 치흑(薙黑)119)의 욕됨을 받지 않으며 더욱더 위벽(衛闢)120)의 책임을 다하여 우뚝하게 퇴파(頹波)121)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사견은 눈이 높고 입이 곧아서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칭찬할 사람이 아니니, 나는 이 말을 통해서 좌하가 진실로 이런 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사의 영혼이 어찌 "그 바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정씨의 아들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흠모하여 우러를 뿐만 아니라 우리 당(黨)에 믿을 분이 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좌하가 수립한 것이 이미 이와 같으니, 학문(學問)과 사변(思辨)을 통해 정미(精微)의 것까지 철저히 연구하는 공부에 매진하여 말을 세우고 책을 써서 오묘함을 발휘하여 선사가 전한 도를 광대하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그리하실 수 있는지요? 時逢田友士狷,聞座下繩尺有守,節操彌厲,誓不受薙黑之辱,益盡分衛闢之責,卓然爲頹波之柱.狷友眼高口直,非茍譽人者,吾以是知座下之實有是德也.先師之靈,豈不曰"不失其正者鄭氏子"乎? 欽仰之餘,充然喜吾黨之有所恃也.座下樹立旣如此,更願益加意於學問思辨窮研精微之功,立言著書,發揮奧妙,使先師所傳之道,有以弘大之,如何? 치흑(薙黑) 머리 깎고 얼굴에 먹칠하는 것을 말한다. 위벽(衛闢) 정도(正道)를 보호하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 여기서는 사문(斯文)을 호위하고, 이단을 물리치겠다는 것을 말한다. 퇴파(頹波) 퇴파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황하의 중류에 거센 물결을 막고 있는 지주(砥柱)라는 바위산이 있는데, 이 지주와 함께 '퇴파지주(頹波砥柱)'라고 쓰이기도 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사애 민 참판에 대한 제문 祭沙厓閔參判文 하늘이 현철(賢哲)을 내는 것은 장차 이 세상에 쓰이고 이 사람을 진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순박한 시대 이후로 양(陽)의 덕이 점점 박해져 비록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있어도 능히 이룰 수 있는 지위가 없습니다.오호라! 선생은 채와(菜窩)45)의 조카이고 매문(梅門)46)의 고제로 이른 나이에 뜻을 세워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니, 문로가 바르고 확실하며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습니다. 이윽고 석갈(釋褐)47)하고 조정에 올라서는 명량(明良)48)이 서로 만났고, 만년에 높이 발탁되어 아경(亞卿)49)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도를 행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또한 천년에 한 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배회하며 오래지 않아 인년(引年)50)하였으니, 오호라!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없으면 그만이지만,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있는데 또한 당시에 행해짐이 있지 않았으니, 모르겠으나 하늘이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한번 다스려지는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까?돌아와 전원에 누워 문을 닫고 스스로 함양하며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과 왕복하며 강마하면서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몰랐습니다. 오호라! 이와 같은 희조(熙朝)51)의 명경(名卿)과 유문(儒門)의 장덕(長德)으로 유연히 남쪽 먼 곳 산곡(山曲)의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으나 인심을 감복시키고 세도를 진정시킨 것은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현철이 세상에 쓰이고 사람을 진작시키는 것은 비록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그 이로움과 은택이 미치는 것은 실로 차이가 없습니다.오호라!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이 세상의 무궁한 근심을 어찌하며, 후학들의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어찌하겠습니까! 天生賢哲。將爲需斯世而作斯人也。淳古以降。陽德浸薄。雖有可致之質。而無有能致之位。嗚呼。先生以菜窩從子。梅門高弟。早年立志。出入薰染。門路端的。造詣精深。旣而釋褐登朝。明良相遇。晩際升擢。至於亞卿。此不可謂非行道之任。而亦不可謂非千載之一會也。然逡巡徘徊。非久引年。嗚呼。有其德而無其位則己。有其德有其位。而亦未有見行於時。未知天下使民將復見一治之美耶。歸卧田廬。杜門自養。與蘆沙奇先生往復講磿。不知年數之不足。嗚乎。以若熙朝各卿。儒門長德。悠然歛跡於南荒山曲之間。而所以感服人心鎭定世道者。爲何如哉。然則賢哲之於需世作人。雖不在位。而其利澤之及。固無間也。嗚呼。今焉己矣。奈斯世無窮之憂。奈後學不盡之悲。 채와(菜窩) 민백우(閔百佑, 1779~1851)를 말한다. 호는 교채와(咬菜窩),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저서로는 《교채와유고》가 있다. 매문(梅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하를 말한다. 석갈(釋褐) 천한 자가 입는 모포(毛布)인 갈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함을 이른다. 명량(明良)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으로, 《서경》 〈우서(虞書) 익직(益稷)〉에서 고요(皐陶)가 제순(帝舜)에게 간언하기를 "원수가 현명하면 고굉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수(元首)'는 임금을, '고굉(股肱)'은 신하를 비유한다. 아경(亞卿) 조선 시대 정경(正卿)인 판서(判書)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육조(六曹)의 참판(參判)과 그 동급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인년(引年) 늙어서 관직을 물러나는 치사(致仕)를 뜻한다. 희조(熙朝) 잘 다스려진 왕조를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송인석의 독본 《천자문》 뒤에 쓰다 【병인년(1926)】 題宋仁錫讀本千字文後 【丙寅】 성인(聖人)이 글자를 만드실 적에는 육서(六書)197)의 법에 각각 그 의리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조자법(造字法)의 의리에 어두워 점점 그 근본을 잃고 멀어졌고, 그리하여 사물의 이름을 잘못 붙이고 이치가 뒤얽히게 되었다. 천하의 폐단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랴! 나는 다시 왕이 나타나 문자를 고찰하지 않으면 이 폐해를 구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왔다.그런데 이제 글 가르치는 사람이 어린 아이가 공부를 시작할 때에 글자 공부를 착실히 해두어 나이 든 뒤의 큰 착오를 면하게 한다면,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운다면, 아마도 폐단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내 붓 솜씨가 졸렬하지만 여덟 살 아이 송인석(宋仁錫)을 위해서 《규장전운(奎章全韻)》에 의거하여 내 손으로 천자문을 써서 주는데, 나의 깊은 뜻을 담은 것이다. 인석이는 비록 어리지만 오히려 나의 이런 뜻을 몸받고[體化] 장차 뒷날에 유추확대하여 온 세상이 다시 옛 성인의 조자(造字)의 본의(本義)를 회복하는 데 이르기를 바란다. 聖人造字, 六書之法各有其義。 後世昧於法義, 轉相失本, 以致名物註誤, 經理倒錯, 天下之弊孰大於是! 余謂非復有王者考文, 莫能救此。 然敎人者且自小兒入學時, 俾謹字學, 免夫老大誤錯, 是敎是學, 庶可革弊也。 故顧雖筆拙, 爲八歲童宋仁錫, 依奎章全韻而親書千字文授之, 蓋有深意也。 仁錫雖幼, 尙其體余意, 將異日推類, 而盡以及天下復聖人造字本義哉。 육서(六書) 한자의 글자 만드는 법 즉 조자법(造字法)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항목, 즉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말하는데, 앞의 넷은 한자의 구조를, 뒤의 둘은 한자의 융통활용 방법이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