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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의 《벽봉유고》 첫머리에 전문(傳文) 을 실은 후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遺稿首載傳文後 아아! 돌아가신 아버님 유고의 정본(淨本)을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필사를 마쳤는데 문집의 서문을 부탁할 곳이 없다. 그래서 감히 《논어(論語)》․《맹자(孟子)》두 책이 첫머리에 《사기(史記)》〈세가(世家)〉 편을 실은 사례를 채용하여 간재(艮齋) 선생님이 지은 전(傳)195)을 서문으로 삼으며, 의미 없는 일이 안 되기를 바란다.또 이 유고를 생각해보면 시(詩)가 많아서, 전 속에서도 이미 시를 잘 지었다고 칭찬하셨다. 이제 가령 다른 문장 있는 작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어찌 선생님의 한 말씀보다 더 무겁겠는가? 그러니 이 또한 할 말이 있다 할 것이다. 갑신년(1944) 중하(仲夏)에 불초한 아들 김택술 삼가 쓰다. 嗚呼! 先君遺稿久未成淨本, 今始了手, 則弁文之託無其所矣。 敢用論孟二書首載史記世家之例, 弁以艮翁先生所撰傳文, 庶不爲無謂。 且念是稿也, 詩爲多, 而傳中旣稱善爲詩。 今雖得文作家, 何以加重於先生一言乎? 是亦可以有辭云爾。 甲申仲夏日, 不肖子澤述謹書。 감히……삼으니 《논어》와 《맹자》에는 사마천이 《사기》에 작성한 〈공자세가(孔子世家)〉와 〈맹자세가(孟子世家)〉가 주희의 서설에 앞서 게재되어 있어 서문 역할을 하였던 것을 말하는데, 김택술은 부친 김낙진의 유고에 서문을 대신하여 전우가 쓴 〈김벽봉전(金碧峯傳)〉을 서문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김벽봉전〉은 《간재집(艮齋集)》 전편속권(前篇續卷)의 제6권에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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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 문중에 보냄 무인년(1938) 與粉齋門中 戊寅 제가 듣건대, 우리 종파에서 족보를 만들 뜻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은 때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족보는 일족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짓는 것도 참으로 어렵지만 일족의 역사를 짓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역사의 실책은 사실에 어긋나는 데 있지만, 족보의 실책은 윤리가 어긋나는 것에 관계됩니다. 법도를 어기고 족보를 만들면 족보는 그 족보가 아니고, 그 폐해(弊害)는 역사의 실책보다 심하기 때문입니다.보법(譜法)을 행하기 어려움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지금 같은 인심과 세태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는 어느 시절입니까? 누가 나라의 명(命)을 잡고 있습니까? 어찌하여 괴롭게 시대의 법에 제약을 받아가면서까지 선조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때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백번을 생각해봐도 결국 각각 가승(家乘)을 기록하여 대동보를 만들 만한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또 일의 완급으로 말하더라도 직장공의 배위 숙인 이씨 묘 석상이 매우 열악하여 진찬(進饌)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미안함이 어떻겠습니까. 매죽당공의 묘갈은 외손인 명현 쌍백당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는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것이 유일하니 족히 우리 문파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돌이 부풀고 글자가 마모가 되어 판독이 어려우니 그 안타까움이 또한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마땅히 족보 만들 재물을 가지고 매죽당공의 묘갈을 갖추고 숙인의 묘 석상 비용을 성재(星齋) 종중에 청하는 것이 아마도 현재의 온전한 처사라 생각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竊聞自派中, 有修譜之意.區區之見, 以爲此非其時, 不可爲也.譜者族史也.史之作固難, 而族史之作, 尤爲難.何也? 史之失, 在事實差爽, 譜之失, 乃關於倫理舛錯.失法而譜, 則譜非其譜, 而害有甚於史失故也.譜法之難行, 在平世猶然, 況今日之人心世態乎? 故曰非其時也.且此時何時? 何人執命? 何苦被制時律而爲累先之事乎? 故曰:"非其時也." 百爾思之, 終不如各錄家乘, 以待可爲之時之爲得也.且以事之緩急言之, 直長公配位淑人李氏墓石床甚劣, 難容陳饌.其爲未安何如? 梅竹堂公墓碣, 出於外孫名賢有如雙柏堂之手者, 乃席洞全山之獨有, 足爲吾派之生色.而石肥字泐, 難以辨讀, 其爲可悶又何如也.故當以修譜之財, 具梅竹堂公墓碣而因請淑人墓石床費於星齋宗中, 恐爲目下全務, 未知僉座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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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남 김형겸269) 혼서 【병자년(1936)】 四子炯謙昏書 【丙子】 물은 젖은 곳으로 나아가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갑니다. 기질이 서로 맞으면 멀고먼 연나라와 월나라 사람도 뜻을 같이 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얻고, 여자가 집을 가짐은 부모의 바램이라 이웃의 진(秦)나라와 진(晉)나라도 혼인을 맺습니다.이제 전안례(奠鴈禮)의 날을 맞아 공경의 폐백 보내드립니다.생각건대 존하의 둘째 손녀는 대대로 내려온 규중의 의범을 이어받아 평소에 품행이 얌전하고, 타고난 자태에 부인의 덕을 품어 이제 길사(吉士)에 의지할 만하겠습니다.저의 네째 아들 김형겸(金炯謙)은 품격이 고상하지 못하고, 다만 범상한 새[鳳]라 평할 뿐입니다.시(詩)와 예법의 경전 공부에 소홀하였고, 부친의 가정 교육도 원래 못 받았습니다. 그 못 미치는 재주와 품성을 돌아보아, 어찌 금방 좋은 짝을 정할 수 있으리라 하였겠습니까? 외람되이 존하의 가명(嘉命)을 받들게 되었는 바, 이는 또한 크고 길한 하늘의 연분이겠습니다.예법은 고금을 참조하며 선대의 술잔 올리는 의례를 준수하고, 집안 경제의 형편에 맞추어서, 말세의 사치한 풍습을 경계하고자 합니다. 용을 타는 기쁨을 드릴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 부끄러움이 크지만, 사슴 수레로 짝해줄 현명한 덕의 신부를 간절히 바랍니다. 낯 부끄러운 말씀 이렇게 아뢰오니 높으신 눈으로 굽어비춰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水就濕, 火就燥, 聲氣之求雖燕越而同志; 男有室, 女有家, 父母之願遂, 秦晉而結親。 玆値雁朝, 敬將皮幣。 伏惟令第二孫女, 傳閨範於家世, 素有義方, 禀婦德於天姿, 將歸吉士。 澤述之第四子炯謙, 品格庸下, 只合門鳳之題, 詩禮空疎, 元無庭鯉之學, 顧以不侔之才性, 豈圖遽定其配逑? 雖嘉命之猥承, 亦天緣之孔吉。 禮參今古, 遵前輩斟酌之儀, 家稱有無, 戒末俗侈靡之習。 見乘龍之歡喜, 多慙難期, 稱挽鹿之懿賢, 寔切攸望。 腆辭是吿, 尊照伏希。 김형겸 1920년 출생, 자는 극명(克鳴), 호는 근와(勤窩)이다. 부인 진주강씨는 1919년 출생이고, 그 부친은 연은 강채영(蓮隱姜采永)이고, 조부는 강철흠(姜喆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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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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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1914년 이의용(李宜容) 토지소유권 보존증명 신청서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大正三年 七月 卅一日 李宜容 始興郡守 大正三年 七月 卅一日 李宜容 始興郡守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7월에 이의용이 토지소유권 보존에 관한 증명을 시흥군청에 신청한 문서 1914년 7월에 이의용이 토지소유권 보존에 관한 증명을 시흥군청에 신청한 문서이다. 먼저 토지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동산을 표시하였다. 소재지는 모두 4곳인데, 하나는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 담자 697-1의 택지 940평, 부동산가격 60원이다. 둘째는 같은 곳의 담자 697-2의 전지 286평2홉, 부동산가격 10원이며, 셋째는 같은 곳의 담자 698의 전지 118평5홉2석, 부동산가격 6원이다. 넷째는 같은 곳의 인자 64와 641의 답지 1095평1홉3석, 부동산가격 200원이다. 이를 증명할 목적의 소유권보존을 신청한 것인데, 소유자의 주소와 씨명은 부천군 소래면 무지동 3통9호 거주자인 이의용이다. 부동산가격은 총 276원이다. 이 토지는 자기 소유임을 보존 증명하고자 다른 지면에 첨부하여 신청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 신청에 대해 시흥군청의 증명 관리인 시흥군수 윤필영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는 증명서를 발급하였다. 증명 사실을 '증명제(證明濟)'라 하여 신청서의 말미에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신청서에는 첨부문서가 여러 장인데,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평 담자 대지 평면도와 담자 전(田) 평면도, 인자 답 평면도 등이다. 이 평면도는 1913년에 측량자 이우승(李宇承)이 측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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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족형 연술 에게 전날 선생께 올린 시에 차운하여 올림 呈成菴族兄【淵述】用前日上先生韻 주인의 마음은 어찌 그리 온통 맑으신지 主翁氣味一何淸숲속에 초가 짓고 이처럼 생을 보내시네 林下結廬過此生심양의 강가 도연명 은거지 같고12) 潯陽江上陶潛隱동백의 산속 동소남 경작지 같네13) 桐柏山中董子耕강학을 정밀하게 함이 마치 금을 단련하듯 精治講學如金鍊마음을 수양함이 거울을 밝게 하듯 修養心神較鑑明진중하게 이로부터 천년의 규약 맺어 珍重從玆千載約두 집안 화수14)가 모두 명성 이루리라 兩家花樹共成名 主翁氣味一何淸!林下結廬過此生.潯陽江上陶潛隱,桐柏山中董子耕.精治講學如金鍊,修養心神較鑑明.珍重從玆千載約,兩家花樹共成名. 심양의……같고 심양(潯陽)은 중국의 지명이며, 동진(東晉) 시대의 시인 도잠(陶潛)의 고향이다. 동백의……같네 동백(桐柏)은 중국 지명이며, 동자(董子)는 당(唐)나라 덕종 때의 동소남(董召南)의 동생을 말한다. 그가 동백산에 은거하여 의를 행하고 부모를 잘 봉양하니, 한유(韓愈)가 그를 칭송하여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서 밭을 갈고, 밤이면 돌아와서 고인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쉴 새 없이 혹 산에서 나무하고 혹 물에서 고기를 잡도다. 부엌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하지 않고, 처자는 원망하지 않도다."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50》 화수 원문 '화수(花樹)'는 종족을 뜻한다. 당(唐)나라 위씨(韋氏) 집의 일에서 유래하는데 명자(名字)는 알 수 없으나 옛날 위씨의 종회법(宗會法)이 있었고, 시인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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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정 시에 차운함 만재 소공 휘식이 지은 것을 그의 아들 열재 학규가 중건한 것이다. 次明德亭韻【晩齋蘇公輝植所作,其子悅齋學奎重建】 봉악 서쪽에 열 자의 기둥을 세웠으니 鳳岳之西十尺楹당시 만옹께서 완성한 것을 아스라이 떠올리네 緬思當日晩翁成키와 가죽옷125)의 대업을 현자에게 전하고 箕裘世業傳賢子문조의 유풍을 후손들에게 의뢰하도다 文藻遺風仰後生가을 깨끗하니 모난 못에 물결 없이 고요하고 秋淨方塘波正穩구름 사라지니 푸른 하늘에 달 외로이 떠 가네 雲消碧落月孤行이곳에 오른 건 승경을 탐하려는 것이 아니라 登臨不是耽佳景대학의 공부 스스로 밝히는 데126) 힘쓰는 것이라네 大學工夫勖自明 鳳岳之西十尺楹,緬思當日晩翁成.箕裘世業傳賢子,文藻遺風仰後生.秋淨方塘波正穩,雲消碧落月孤行.登臨不是耽佳景,大學工夫勖自明. 키와 가죽옷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가죽옷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고, 활을 잘 만드는 궁장(弓匠)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키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학의……데 《대학》의 3강령 중 하나인 '명명덕(明明德)'에 힘쓴다는 뜻이다. 대학 전 1장에서 경서에서 인용하여 '명명덕(明明德)'을 풀이하고 "皆自明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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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와 내장사 등 여러 명승지를 유람하는 서후태·박진호 군 및 관아를 전송하며 送徐君厚泰、朴郞珍浩及觀兒遊白羊、內藏諸勝 백양사 내장사506) 옛 도량에서 멋진 유람하니 羊藏古道勝遊場시인은 풍류의 정취를 잠시도 잊지 못하리라 騷客風情暫不忘쌍계루507) 우뚝 솟아 흉금은 시원해지겠으나 樓屹雙溪應灑落수많은 단풍나무가 시들어 상할까 걱정이네 楓丹萬樹恐凋傷안개 낀 경치가 심신을 평안케 하기에 좋으니 好將煙景怡神觀어찌 맛난 음식이 위장을 즐겁게 함보다 못하랴 豈下肥甘悅胃腸부끄럽게도 난 젊은이들 걸음을 따르기 어려워 愧我難追年少步진종일 서재에서 홀로 글줄이나 찾고 있었네508) 芸牕盡日獨尋行 羊藏古道勝遊場, 騷客風情暫不忘.樓屹雙溪應灑落, 楓丹萬樹恐凋傷.好將煙景怡神觀, 豈下肥甘悅胃腸?愧我難追年少步, 芸牕盡日獨尋行. 백양사(白羊寺) 내장사(內藏寺) 백양사는 631년(백제 무왕32)에 세워진 사찰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北下面) 약수리(藥水里) 백암산(白巖山)에 있으며, 내장사는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로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內藏山)에 있다. 쌍계루(雙溪樓) 백암산 백양사 입구에 있는 누각이다. 1370년에 무너진 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정도전ㆍ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의하면 이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글줄이나 찾고 있었네 원문의 '심항(尋行)'은 심항수묵(尋行數墨)의 준말로, 글줄을 찾고 글자를 센다는 뜻으로 문자만을 따지고 문자 뒤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전등록(傳燈錄)》에 "불법의 원만 구족함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불경 속의 문자에 매달려 헛수고만 하고 있다.[不解佛法圓通, 徒勞尋行數墨.]"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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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족숙이 찾아와 2수 松坡族叔來訪【二首】 궁벽한 집에 칩거하며 홀로 경서를 껴안고 跧伏窮廬獨抱經세상 물정도 모두 몸뚱이와 함께 잊었네 世情幷與忘身形오늘 아침에 친족500)을 만나 정말 기뻤는데 今朝正喜逢花樹오랜 이별에 사물과 별 바뀌어501) 깜짝 놀랐네 久別飜驚換物星국화 늦게 피어도 적막함 부끄러운 적 없는데 菊晩不曾羞寂寞기러기 높이 날며 강녕함을 뽐내는 듯하구나 鴈高有若詑康寧한마음으로 도리어 삼려502)의 소원을 품었으니 一心還有三閭願봉래산 신선을 찾아가려면 만년이 지나야 하리 欲訪蓬仙度萬齡고상한 길손이 찾아와 삭거503)를 깨뜨리니 高客臨門破索居요사이 유쾌한 일 중에 이만한 게 없었다네 邇來快事此無如가을철이 다 가는데 서리는 어찌 그리 늦는가 九秋將盡霜何晩쉰 살이 닥쳐와도 학문은 오히려 처음과 같네 半百當頭學尙初멍청한 계산으로 선조의 가업 이미 포기했으나 迂算已抛先祖業어리석은 맘에도 옛사람의 글만은 소중히 여겼네 癡心但寶古人書실정에 지나친 칭송은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니나 過情推獎非深愛오랜 친척의 정분 또한 털어놓을 만하구나 百世親情也可攄 跧伏窮廬獨抱經, 世情幷與忘身形.今朝正喜逢花樹, 久別飜驚換物星.菊晩不曾羞寂寞, 鴈高有若詑康寧.一心還有三閭願, 欲訪蓬仙度萬齡.高客臨門破索居, 邇來快事此無如.九秋將盡霜何晩? 半百當頭學尙初.迂筭已抛先祖業, 癡心但寶古人書.過情推獎非深愛, 百世親情也可攄. 친족 원문의 '화수(花樹)'는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한 자리에 모여서 골육의 정을 도탑게 하는 일을 말한다. 잠삼(岑參)의 시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에서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려.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나니,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로워라.〔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물과 별 바뀌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뜻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시(滕王閣詩)에 "한가론 구름과 못 그림자만 날로 아득하여라, 사물 바뀌고 별자리 옮겨 몇 해나 지났는고.〔閑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하였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을 말한다. 일찍이 회왕(懷王)을 보좌하여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냈으나 참소를 받아 관직을 떠났으며, 양왕(襄王) 때 다시 참소를 당하여 강남(江南)으로 추방되자 〈어부사(漁父辭)〉 등을 지어 자신의 뜻을 밝히고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저서에 우국충정을 서술한 《이소(離騷)》ㆍ《구가(九歌)》ㆍ《구장(九章)》 등이 있다. 삭거(索居) 이군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다는 뜻이다.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나는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 또한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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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경술년(1910) 上艮齋先生 庚戌 조국이 망했으니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건대, 옛날 단발령(斷髮令)의 재앙이 있었을 때 선친이 선생께 편지를 보내 죽음으로 맹세하고서 태도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선친이 오늘날 살아계신다면 무슨 마음을 지니실까 더욱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풍수지탄(風樹之歎)27)의 고통과 〈하천(下泉)〉28)의 생각이 마음속에 절절히 교차하여 저도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찾아뵐 기약은 아득하여 정해진 것이 없으니 편지를 마주함에 매우 슬픕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조국은 이미 기울어졌고, 그대 선친은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울지 마시게. 내 몸은 노환이 날로 더 심해져서 곧 죽을 것 같네. 아마도 다시는 우리 종현(鐘賢 김택술(金澤述))을 보지 못하고 죽을 듯하네. 죽기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서로 마주할 수가 없으니 몹시 슬프고 한스럽네." 宗國旣亡, 不忍言不忍言. 憶昔薙髪之禍, 先人致書先生以死自誓而不變. 若使先人今日而在者, 又未知見作何懷也? 言念及此, 風樹之痛, 下泉之思, 交切于中, 不覺哽塞而淚迸也. 進謁之期茫無所定, 臨紙悵菀.○ 先生答書曰: "宗國已傾, 先丈又不可見, 如之何? 勿泣. 賤身癃疾, 日以盆深, 行將逝矣. 恐不復見吾鐘賢而死. 死前所欲奉託者在, 而莫可相對, 殊庸悵恨." 풍수지탄(風樹之嘆) 부모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의미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夫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천(下泉)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이다. 내용은 현인이 국가의 쇠망을 걱정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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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답함 정해년(1947) 答金聖九 丁亥 지난 그믐에 전보를 받으니 셋째 아들 형관을 초청하셨는데, 형관은 마침 수종다리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전보로 답장을 드릴 즈음에 이달 초하루에 보내신 편지를 받아 읽고서 9월 22일 모임에 당신의 뜻으로 제 이름을 윤시문(輪示文)에 썼다는 것을 알았는데, 뜻밖의 일이라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에 만났을 때 그대와 나는 모두 단지 제 아들 형관만 말하고 늙은 사람은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 갑자기 제 이름을 드러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물며 큰 병을 앓은 이후로 정신이 희미하고 멍하여 인형처럼 말이 어눌하다가 마침내 반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추한 모습으로 창발하는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받기에 족합니다. 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 일은 진실로 삼강오륜을 부지(扶持)하고 성현을 존중하여 경전을 강론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실효를 거둔다면 국가와 천하의 많은 일들은 모두 그 속에 포함되게 됩니다. 다만 이런 뜻으로 입장문을 작성하고, 몇 해 전에 이른바 유교부식회처럼 '유교(儒敎)'·'유회(儒會)'라 이름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찌 굳이 좌우를 망라하여 '대동(大同)'이라 이름 짓고 먼저 자주독립의 기초라 큰소리를 치며 뚜렷하게 정당으로 자처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아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제 견해는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으나, 고견은 어떻습니까? 去晦承電報, 請觀兒, 觀適以瘇毒見苦.方以此電答之際, 拜讀今初一書, 知有九月卄二之會, 以尊意書賤名於輪示文, 事出料外, 莫省所喩.夏間之晤, 尊與我皆只以觀兒言, 老者無與, 而今忽露賤名, 何也? 矧自大病以後, 精遁而呆, 若偶人語鈍, 而遂成半啞.以此醜狀, 書名倡發之首, 非所以藉重於人, 適足以受侮於人也.抑有所仰告者, 今此之舉, 亶在於扶綱常․尊聖賢․講經傳, 於此三者從事者衆, 而實效之得, 則家國天下許多事業皆在其中.只以此意立文, 名之以儒敎儒會, 若年前所謂扶植會之類, 可也, 何必欲網羅左右, 名以大同, 先自大言自主獨立之基, 而顯然以政黨自居, 受人注目, 而或至取敗乎? 陋見如此, 未知高見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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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崔以求 己卯 그대는 지난날 태용(泰庸) 신경재(申敬齊)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지요? 그때 구암집(苟庵集)11)을 간행하지 않고 깊이 소장한 것은 완순(完順)군이 저들(총독부)의 인가를 요청하여 구옹(苟翁)께 누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완순군은 도를 배운 군자가 아닌데도 오히려 이 의리를 압니다. 하물며 우리 간옹선사는 일생 도를 배워 당대 유학의 종장이었는데, 저들의 인가를 내서 원고를 간행하라는 교시가 있었단 말입니까? 오진영이 인가(認可) 내는 일로 누를 끼치는 것으로도 부족해 또 이러한 설로 무함(誣陷)하니, 오호라! 애통합니다. 君不記向日申敬齋泰庸之言乎? 其不曰苟庵集之不刊行而深藏, 以完順君之不欲請彼認而累苟翁乎? 完順非學道君子, 猶知此義.矧乎吾艮翁先師一生學道, 爲當世儒宗, 而有出認刊稿之敎乎? 吳也認累之不足, 而又以此說誣之, 鳴乎! 痛矣. 구암집(苟庵集) 구암은 신응조(申應朝, 1804~1899)의 호이다. 1852년(철종3)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이조, 예조 판서를 지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재집권하게 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저서로 《구암집(苟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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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유에게 보냄 임오년(1942) 與李士裕 壬午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이문회우(以文會友)하고 이우보인(以友輔仁)18)한다"고 했습니다. 금일의 선비들은 애초에 문(文)으로 모임이 없으니 어찌 보인(輔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끝내 벗과 모이지 못하고 인(仁)을 보충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책 가운데 현인이 있으니 서로 만날 수 있고, 지난 행실에 인이 있으니 도울 수 있으며, 또 나아가 마음과 이치로 만난다면 그 인(仁)이 나의 인(仁)이 될 것이니 보인(輔仁)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와 내가 힘이 들고 길이 막혀서 서로 만날 길이 없지만, 그러나 모두 시서가 갖추어져 있고 서책 가운데 현철(賢哲)이 들어 있으니 이와 같은 만남 없는 만남이 될 것인즉, 누가 금하여 행(行 독서)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우리들은 각각 그 몸을 공경히 하고 힘쓸 따름입니다. 曾子曰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今日士子, 初無文會, 安有輔仁? 然則竟無可會之友可輔之仁乎? 曰否不然.卷中有人, 可以相會, 往行有仁, 可以爲輔, 又進乎此而心與理會, 則仁卽吾仁而無待乎輔矣.貴與我力艱道梗, 無由相會, 然彼此俱有詩書, 書中俱有賢哲, 若此無會之會, 則爲誰之禁而不爲也? 只此吾輩各敬其身而勉之而已.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 《논어》 〈안연(顔淵)〉에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 인을 돕는다.'[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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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 사일 형술에게 보냄 계미년(1943) 與族兄士一 坰述 癸未 어제 환철(煥喆)이 광주 윤씨와 함께 와서 윤씨 부친의 행장을 의뢰하였습니다. 이 행장이란 게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같아 한 터럭이라도 유사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이 됩니다. 초상을 그리기도 어려운 일이라 비록 여러 날 직접 대면해도 오히려 닮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처음부터 얼굴도 모르니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일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마다하니, 윤씨가 말하길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하였습니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 일은 스스로 정해진 분수가 있어서 권세가나 부자가 은혜를 베풀어서 행하는 것과, 의사나 지관(地官)이 성의를 보고 행해주는 것과도 다릅니다. 다시 와서 요구해봤자 끝내 무익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환철이를 불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못 오게 일러, 피차 번거롭고 성가신 처지가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나를 매우 아껴주는 것입니다. 깊이 믿고 믿겠습니다. 昨日煥喆同光州尹氏來, 介尹父狀文.此文若寫眞, 然一髮不似, 便是別人.寫眞之難, 雖累日親臨, 猶恐不肖, 況初不識面乎! 今日之事, 何以異此.以此說與而辭之, 則尹謂"他日再來." 吾又爲言"此事自有定分, 非如權家富人之施恩而爲之, 醫生地師之觀誠而爲之.雖再來究, 無益."云矣.幸招煥喆, 喩以俾其人勿再來, 無至彼此煩擾之地.是爲愛我之深.深恃深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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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의 발문 【무인년(1938)】 門案跋 【戊寅】 삼가 종중에 보관하고 있는 선대의 세보(世譜)와 문안(門案 문중계원 명부)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각 파를 구분하고 성명을 적어 놓았을 뿐 아무개의 아들 ․ 아무개의 손자 ․ 아무개 공의 후예를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부터 왔는지의 유래를 알 수 없으니, 이는 너무 소략한 것이다. 우리 직장공(直長公)파의 문안을 지금 수정하게 되었는데, 여러 어른들이 교정하는 일을 나에게 맡기셔서 이윽고 큰 파 속의 작은 파를 다시 나누고 성명 아래 주석을 달기를 "《정미보(丁未譜)》몇 권 몇 판을 보라" 하였다.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의 손자 아무개 공의 파라는 것이 이미 《정미보》에 써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이 그 내력을 환히 알도록 하는 데는 이 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래서 이 문안에 족보 작성법을 사용하여, 후대 자손으로 하여금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竊觀宗中所藏先世累度門案, 區分各派, 只書姓名, 而不云某之子、某之孫、某公之後, 則無由知其所自來, 是爲太略。 今於吾直長公派門案之修正也, 諸長老任余以校正之役, 乃復分派中之派, 而姓名之下懸注, 以見丁未譜幾卷幾板。 則某子某孫某公派旣在於譜, 而使人昭然知其來歷, 莫尙於此。 亦所以寓譜法於此案, 而俾後有考焉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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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우신재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간독 뒤에 삼가 쓰다 敬題祖考又新齋府君手鈔簡牘後 위 간독 한 책은 할아버지 우신재(又新齋) 부군께서 베끼신 것이다. 붓놀림이 조심스럽고 글씨가 정밀한 것이 마치 할아버지의 평소의 마음 씀 및 일 처리와 똑 같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189)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의 친구인 이동욱(李東旭) 공이 "네 할아버지는 작고 가는 글씨를 아주 잘 쓰셔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었고, 평소에 많은 책자들을 베껴 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집의 장서를 살펴보면 보존된 것이 별로 없고, 오직 이 책만은 할아버지께서 손수 베끼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삼가 이렇게 표지를 붙여 뒷날 자손들이 보배롭게 여기며 규범으로 삼도록 한다. 경진년(1940) 유두일(流頭日, 음력 6월 15일)에 손자 김택술 삼가 쓰다. 右簡牘一冊, 我王考又新齋府君所鈔也。 運筆謹愼, 作字精密, 正如府君平日用心行事。 古人云: 心正則筆正, 其此之謂乎! 嘗聞諸府君親友李公東旭氏云: 汝先王考善細書, 儕流莫及, 平日多手鈔冊子。 然而今考家中書藏, 別無見存, 惟此冊明知出自府君手。 故謹玆標識之, 俾後子孫寶重而柯則焉。 歲在庚辰流頭日, 孫澤述謹書。 마음이……바르다 당나라 서예가 유공권(柳公權)이 "붓 놀림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릅니다.[用筆在心, 心正則筆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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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잠 【을유년(1945)】 財箴 【乙酉】 돈 전(錢)자에는 창 과(戈)자가 둘이니 錢帶雙戈,사람 죽이는 기물이고, 殺人之器,이익의 리(利)자는 칼 도(刀)자 곁세웠으니 利傍立刀,이 역시 같은 종류이네. 亦一同類.재산의 재(財)자는 재앙 재(災)와 음이 같고 財音同災,물품의 화(貨)자는 재앙 화(禍)와 소리 같으며, 貨則禍聲,알곡 곡(穀)자는 사람 먹여 살리지만 穀雖活人,몽둥이 수(殳)자가 형부(形符)로 붙었네. 待殳成形.삼가고 경계하기 잠깐만 놓쳐도 少不謹愼,당장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마네. 立喪其生.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胡世之人,이렇게도 탐심을 낼까! 惟是之貪!불쌍하다 북망산의 분묘들 哀哉北邙,원한 맺힌 귀신들 빽빽한 숲이구나. 寃鬼如林. 錢帶雙戈, 殺人之器, 利傍立刀, 亦一同類。 財音同災, 貨則禍聲, 穀雖活人, 待殳成形。 少不謹愼, 立喪其生, 胡世之人, 惟是之貪! 哀哉北邙, 寃鬼如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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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喜雨 남풍에 홀연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南風吹雨忽霏霏산창에서 멀리 바라보니 기쁜 마음 날아갈 듯 推看山牕喜欲飛황금빛 새 보리는 응당 이미 익었겠고 金色新牟應已熟뾰족한 모습의 어린 벼도 어느덧 통통해졌겠지 針形穉稻忽添肥시골 늙은이 지팡이 짚고 왔다갔다 물소리 들으며 村翁扶杖頻聽水마을 사내는 호미 잡고서 다투어 사립문 나가네 巷豎持鋤競出扉단지 바라건대 이 백성 길이 배부르고 즐겁게 지내며 但願斯民長飽樂큰 거리 안개 낀 달39) 온전히 기심을 잊기를 康衢烟月渾忘機 南風吹雨忽霏霏,推看山牕喜欲飛.金色新牟應已熟,針形穉稻忽添肥.村翁扶杖頻聽水,巷豎持鋤競出扉.但願斯民長飽樂,康衢烟月渾忘機. 큰……달 원문 '강구연월(康衢煙月)'은 태평성대를 말한다. 태평성대를 칭송하는 노래로 〈강구연월가(康衢煙月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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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田夫 좋은 경작지 얻어 밭을 갈아 위아래 고르게 하니 耕得良田上下坪일반 들판의 흥취에 더욱 푸름을 느끼네 一般野興覺彌淸앞 모임에선 푹 익은 술로 좋은 시절 수청하고 酒濃前社酬佳節서쪽 밭두둑에 비가 넉넉하니 태평 성세 즐겁다 雨足西疇樂太平종을 불러 묘를 심게 했더니 힘듦 즐거움 같아지고 呼僕治苗均苦樂소를 풀어 풀 먹였더니 종횡으로 임하네 放牛齕草任縱橫지금처럼 나루터 묻는 나그네 만나지 못했으니 如今未遇問津客천년 전 장저와 걸닉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40) 千載誰知沮溺情 耕得良田上下坪,一般野興覺彌淸.酒濃前社酬佳節,雨足西疇樂太平.呼僕治苗均苦樂,放牛齕草任縱橫.如今未遇問津客,千載誰知沮溺情. 지금처럼……알겠는가 《논어》 〈미자(微子)〉에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을 때 공자(孔子)가 그들 곁을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로 하여금 그들에게 나루터를 물어보게 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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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와 홍주후244) 공을 위한 찬 【기묘년(1939)】 謙窩洪公【疇厚】贊 【己卯】 맑고 강직한 그 성품 淸剛其性,자애롭고 은혜로운 그 자질 慈諒其質,선(善)을 좋아 찾기 목마른 듯하고 好善如渴,악(惡)을 싫어 피하기 전갈 본 듯하네. 惡惡如蠍.죄를 지면서도 노친께 순종하며 負罪順親,굳은 효심으로 정성을 다하였네 孝固盡誠,노년까지 스승께 제축을 올렸으니 減年祝師,충심의 진정 어찌 짐짓 꾸며질까 忠豈矯情.이 모두 진심이 하늘에 닿아서고 是皆眞心之格天,실다운 학문이 뭇사람을 초월해서네. 實學之超倫,나는 그 개략을 서술할 뿐 我述其槩,나머지는 논할 겨를이 없네. 餘不暇論.아아! 嗚呼!하늘의 이치가 깜깜해져 天理之晦,스승과 어버이 존숭 않고, 師親不尊,사람들 마음 비뚤어져 人心之邪,현인과 우맹(愚氓)에 구별이 없네. 賢否莫分.오늘의 학계를 돌아보건대 睠今日之學界,어떡하면 구천에서 공을 모셔올까. 安得起公九原. 淸剛其性, 慈諒其質, 好善如渴, 惡惡如蠍。 負罪順親, 孝固盡誠, 減年祝師, 忠豈矯情。 是皆眞心之格天, 實學之超倫, 我述其槩, 餘不暇論。 嗚呼! 天理之晦, 師親不尊; 人心之邪, 賢否莫分。 睠今日之學界, 安得起公九原。 홍주후 위헌 홍익유(韋軒洪翼裕)의 아버지이다. 김택술이 홍익유(洪翼裕)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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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운을 다시 사용하여 이재언, 김종현에게 답함 이군의 천성은 매우 순수하고, 김군 또한 청명하여 구하여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再疊前韻答李在彦金鍾賢 【李君姿性甚醇, 金君又淸明難得.】 두 사람 자질이 모두 순수하고 청명하니 二君賦質儘醇淸내 늙고 더딤에 그대들 두렵구나6) 而我衰遲畏後生마땅히 장년을 좇아 책을 읽어야 하고 黃卷宜從壯年讀모름지기 늙은 농부와 함께 단전7)을 갈아야 하네 丹田須與老農耕온 세상 누가 동포의 즐거움에 힘을 쓸까 九州誰辦同胞樂만고의 사람들 한 횃불의 밝음을 바라보니 萬古人看一炬明의와 인을 버려두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舍却義仁何所事실정이 없으면 명예도 이룰 수 없음을 알겠으니 可知無實不成名 二君賦質儘醇淸,而我衰遲畏後生.黃卷宜從壯年讀,丹田須與老農耕.九州誰辦同胞樂,萬古人看一炬明.舍却義仁何所事?可知無實不成名. 그대들 두렵구나 원문 '외후생(畏後生)'은 《논어》 자한편(子罕篇)의 "후생(後生)이 두려우니, 후생의 장래가 어찌 지금의 나보다 꼭 못하겠는가? 하지만 40세, 50세가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를 원용한 표현이다. 단전 배꼽에서 한 치쯤 아랫부분을 말한다. 《황정경(黃庭經)》에, "단전 가운데는 정기(精氣)가 아주 미약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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