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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日同亨魯兄允性兄晉一甫。會金谷精舍。敍懷拈韻。共發一笑。 行年三十七。自顧蕪靈臺。九仞高還遠。半途去復回。別時慘臘柳。到日綻寒梅。此會知難忘。共傳望月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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翊日旣望臨分。結約暮春者往遊芙蓉菴。 春入全多事。勝遊不負心。樽仍酬酌醉。筒遞往來吟。紛綠時難得。老蒼日轉深。蓉山曾有思。休惜踏層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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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日。金陵宋兄過余。竟日遊談。 書菴筵始闢。忽見故人來。舊學終難進。新功却未回。欽天賓致日。出地奮思雷。相到志言處。幽懷得好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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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앉아서 夜坐 살랑살랑 풍창에 주렴엔 달빛이 비치고 灑灑風牕又月簾초연한 거처에는 티끌 한 점 안보이네 超居不見一塵纖이 마음 이리 맑음을 우연히 깨닫나니 此心偶覺澄如許고요 속 말없이 있으니 도의 맛 더하네 靜裏無言道味添 灑灑風牕又月簾, 超居不見一塵纖.此心偶覺澄如許, 靜裏無言道味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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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 望帝峯 망제봉 맑은 달빛이 짧은 주렴 적시는데 望帝晴光滴短簾저녁 무렵 삽상한 기운 살며시 일렁이네 晩來爽氣動纖纖저 무정한 것들이 가장 다정한 벗들이니 無情最是多情友인정과는 더하고 덜함을 비교하지 말라 不向人情較減添 望帝晴光滴短簾, 晩來爽氣動纖纖.無情最是多情友, 不向人情較減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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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주【계반】에게 답함 答魏玖周【啓泮】 생각지도 않았는데 영랑(令郞)이 환하게 문으로 들어오고 아울러 존함(尊緘 상대방의 편지)이 이르러 펼쳐 놓고 여러 차례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구사한 말에 정이 깊고 말씀하신 뜻이 간곡하여 천박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합니다. 지금 존체(尊體)가 평안하고 존종(尊從 상대방의 사촌 형제)인 치검(致儉)은 거상(居喪) 기간이 이미 지났으며 따님을 출가시키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일을 차례대로 치렀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쁘기도 합니다. 영랑(令郞)이 단정하고 점잖으며 언행에 예의가 바르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서신에서 동래(東萊)57) 운운하신 것은 진실로 기질을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 벗께서 바야흐로 여기에 마음을 다하고 계시건만 도리어 몸에 지닌 신방(神方)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십니까. 또한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치료할 방도를 모르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칠 힘이 있겠습니까. 부끄럽고도 감사합니다. 세상 형편은 다시 논할 만한 점이 없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는 것으로 부족하여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부족하여 통곡을 하지만 통곡도 부족하니 어찌하겠습니까. 응당 문을 걸어 닫고 책을 읽어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방책을 생각할 뿐입니다.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자니 그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謂外。令郞憤然入門。兼玖尊緘。披玩三復。其遣辭之繾綣。命意之懇惻。有非淺淺者所可承當。感愧交至。卽惟辰下。尊體衛重。尊從玖儉喪期已過。而嫁。女娶婦次第徑行。聞之一悲一喜。令郞端詳雅飭。欽艶萬萬。示中東業云云。此眞變化氣質第一法。吾友方且從事於此。而乃別。求肘下神方乎人也。方亦困於膏盲。而不知所以爲醫者顧安有及人之力乎。愧愧謝謝。時象更無可論。太息而不足。流涕之。流涕而不足。痛哭之。痛哭不足。奈何奈何。惟宜杜門讀書。以思自靖之策而已。遙遙相望。不任依然。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4 〈답노덕장(答路德章)〉에, "지난번에 여백공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젊었을 적에 성품과 기질이 거칠고 포악해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했는데, 후일에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다만 《논어》 책 하나를 아침저녁으로 익숙히 보았다. 그러다가 홀연 마음이 화평해지는 것을 느껴 마침내 종신토록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向見伯恭, 說少時性氣粗暴, 嫌飮食不如意, 便敢打破家事. 後因久病, 只將一冊論語, 早晩閑看, 忽然覺得意思一時平了 遂終身無暴怒. 此可爲變化氣質之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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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익【영모】에게 답함 答孫子翼【永謨】 연전에 올린 서찰은 역시 때가 매우 늦었습니다. 급히 달려가 조문하려 했으나 도리어 차질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서찰로 대신 위로를 드렸습니다. 인정과 도리로 보자면 매우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시(哀侍 상중에 있는 상대방)께서 저를 허물하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서찰을 보내셨으니 극도로 정성스럽고 간절하여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부모를 잃은 슬픔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시는지 다시 묻습니다. 멀리서 그리움이 간절하여 견디기 어렵습니다. 의림(義林)은 늙고 병든 몸으로 칩거하느라 만사를 다 제쳐 두었지만, 배움을 놓쳤다는 탄식만은 잠시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매번 아직 남아있는 동료들 가운데 견줄 이가 매우 드문 애시(哀侍)의 문장과 품행을 볼 때마다 늘 경애하는 마음이 들어 가까이하면서 밤낮으로 가르침을 받아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얻고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이 순탄하지 않고 얽매인 몸이 벗어나지 못해 매번 애시의 풍류와 운치를 우러러보면서 그저 그리운 마음만 절실할 뿐이었습니다. 어찌 집사(執事)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고 이렇게 서신으로 왕래하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이처럼 부지런하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만년에 이른 저의 보잘것없는 소원이었으니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힘쓰기를 스스로 도모하지 않겠습니까.문목(問目)의 여러 조항은 모두가 핵심이 되는 말들이니 학문이 정밀하고 심오한 경지에 나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찌 그 사이에서 우열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었는데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불공(不恭)에 가까우니 감히 비루한 견해를 대략 말씀드립니다.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문】 지손(支孫)이 부제(祔祭)62)할 때 간혹 종자(宗子)가 멀리 나가 있다면 종자가 돌아온 뒤로 물리어 행합니까, 지손이 섭주(攝主)가 되어 행합니까? 또 종가(宗家)가 멀리 있으면 지손의 집에서 지방(紙傍)으로 행하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답】 종자가 돌아오는 것을 기간을 정해 기다릴 수 없다면 섭행(攝行 대신 거행함)하는 사유를 고하고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종자가 먼 곳에 산다면 지방(紙榜)으로 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문】 무릇 제사에서 유식(侑食)63)의 절차를 행할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삼년상 동안 제사할 때는 어디에도 없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답】 우제(虞祭)64)를 지낼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에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이를 보충해65) 넣었습니다.【문】 우제와 졸곡(卒哭)66), 대상(大祥)67)과 소상(小祥)68)에 참신(參神)69)의 절차가 없는 것이 삼년상 동안 항상 살아계실 때처럼 궤연을 모시는 상주의 의리 때문이라면 사신(辭神)70)의 절차도 없어야 하건만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답】 상례의 제사에서 참신을 하면서 재배(再拜)를 한다는 규정이 없더라도 또한 곡을 하는 것으로 참신을 대신하는 절차도 없습니다. 사신을 하면서 재배를 하는 것은 끝맺음을 귀하게 여기는 예(禮)의 정신 때문인 듯합니다.【문】 "무릇 제사에서 삼헌(三獻)을 하면서 술로 고수레를 하는 것은 신령을 대신하여 고수레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제(時祭)의 경우는 술을 올린 뒤에 고수레를 하고 우제의 경우는 고수레를 한 뒤에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답】 고수레를 하고 올리는 것은, 이때는 슬픔에 경황이 없는 중이라서 세세한 절문을 다 갖출 수 없어서 생략하는 듯합니다.【문】 '지지능득(知止能得)'71)부터 '물유본말(物有本末)……'72)까지 보건대, 《전(傳)》 4장에서 본말에 대해서만 풀이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장이 삼강령(三綱領)의 뒤 팔조목(八條目)의 앞에 들어가 있는데 또한 둘 곳이 있습니까? 삼강령과 팔조목 사이에 둘 공간이 있느냐는 뜻인 듯합니다.)【답】 '지지(知止)'와 '물유(物有)' 두 구절은 삼강령과 팔조목의 중간에서 맥락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지(知止)는 바로 지지(知至)73)를 말하니 별도의 전문(傳文)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본말(本末)' 2자는 바로 그사이의 요체가 되는 곳이므로 특별히 풀이한 것입니다. 年前一疏。亦已晩矣。期擬匍匐。輒見差池。而爲此不得己替慰之擧。揆以情理。太不稱停。然而哀侍不以爲咎。而辱賜手疏。極其懇惻。不知所以攸答。更問歲次餞迓哀慕孝思。何以支堪。馳溯憧憧。不在情懇。義林衰病跧伏。萬事都休。而惟是失學之歎。耿耿難遣耳。每覵哀侍文學操履。在今儕流。甚罕其比。尋常愛仰。思欲獲近日夕擩染光薰。以爲毗倚扶竪。萬一之計。而命道不媚身繫莫解。每瞻望風韻。只切依然。豈意執事爲之不遐。開此書疏往復之路。若是密勿哉。此誠葉楡區區之願。敢不承膺至意以自圖勉也。問目諸條。無非肯綮語。可見所造之情且深也。以若膚淺。何足以上下其間。然有問無答。近於不恭。敢以鄙見。略綽言之。幸復見敎也。支孫祔祭時。或宗子出遠。則退行於宗子返後耶。以攝主行之耶。此宗家遠。則紙傍行之。未知如何。宗子之還。若不可以日月支待。則告攝行之可也。且宗子遠居。則紙榜行之亦可。凡祭侑食。雖有扱匙正筋之文。而三年內竝無之何虞之無扱匙正筋。殊涉可疑。故備要補入之。虞卒哭大小喪。無參神之節。是三年內孝子常侍之義。則辭神亦當無而獨有之。何耶 喪之祭。雖無參神再拜之文。而亦無以哭代參之節乎。辭神之有再拜。似是禮貴有終之義也。凡祭三獻祭酒。乃代神之祭。而時祭則獻而後祭。虞祭則祭而後獻。何也。祭而後獻。此在哀遽之中。似不得盡其節文之委曲。故略之也。自知止能得至物有本末云云。傳四章特釋本末者。何義。此章八於三綱後八條前。亦有所措歟。知止物有兩節。此是三綱八條中間脈理連續處。然知止卽知至之謂。不必別立傳文。但本末二字。乃其間總要處。故特釋之。 부제(祔祭) 졸곡제(卒哭祭)를 지낸 다음 날 지내는 상제(喪祭)의 명칭이다. 사당(祠堂)에서 부제를 마친 후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神主)는 협제(祫祭)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정침(正寢)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 후 삼년상이 끝나는 일정한 시점에 친진(親盡)한 고조의 신주를 조묘(祧廟)로 옮겨 안치하고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를 사당에 들이는데 이를 천묘(遷廟) 또는 부묘(祔廟)라고 한다. 유식(侑食) 제사의 한 절차로, 신에게 식사를 권한다는 뜻이다. 삼헌(三獻)을 마친 뒤 밥에 숟가락을 꽂고서 모든 제관(祭官)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서서 아홉 숟갈을 먹는 시간【九飯之頃】을 기다린다. 우제(虞祭) 매장을 한 뒤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위하여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신분에 따라 9번, 7번, 5번, 3번 지낸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낸다.〔三虞〕"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우(虞)는 상제(喪祭)의 이름이다. 우는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정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효자는 그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세 번 제사를 지내 안정시킨다. 아침에 장례를 치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우제를 지내는 것은 차마 하루라도 혼령이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虞, 喪祭名. 虞, 安也. 骨肉歸於土, 精氣無所不之, 孝子爲其彷徨, 三祭以安之. 朝葬, 日中而虞, 不忍一日離.】"라고 하였다.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보충해 《상례비요(喪禮備要)》 〈우제(虞祭) 유식(侑食)〉의 "집사자가 주전자를 들고 나아가 잔에 첨작을 한다.【執事者執注, 就添盞中酒.】" 구절의 소주(小註)에 "밥에 손잡이를 서쪽으로 향해서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은 바르게 놓는다. ○ 살피건대, 모든 제사에서 유식을 하고 나서는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똑바로 올려놓는다는 문구가 있으나, 《가례》의 우제ㆍ졸곡ㆍ부제ㆍ소상ㆍ대상ㆍ담제에는 다 같이 없고, 《가례의절》에도 없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扱匙飯中 西柄, 正筯. ○ (按) 凡祭侑食, 俱有扱匙正筋之文, 而家禮虞卒哭祔練祥禫祭幷無之, 儀節亦無, 未知何也.】"라고 하였다. 졸곡(卒哭) 우제(虞祭)를 모두 마친 다음 첫 번째 강일(剛日)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슬픔이 줄어들어 이후로는 무시(無時)로 하던 곡을 그치고 조석곡(朝夕哭)만 하므로 졸곡제라고 한다. 졸곡제 이전에는 살아 있는 분을 섬기듯이 하는 예를 계속 적용하지만 졸곡제를 지낸 다음에는 신명(神明)으로 대우하게 되므로 귀신의 이름을 공경하는 뜻에서 사자(死者)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卒哭.〕"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졸곡(卒哭)은 삼우제(三虞祭) 뒤에 지내는 제사 명칭이다. 처음에는 조석곡을 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밀려오면 곡을 하지만, 이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그치고 조석곡만 할 뿐이다.【卒哭, 三虞之後祭名. 始朝夕之閒, 哀至則哭, 至此祭, 止也, 朝夕哭而已.】"라고 하였다. 대상(大祥) 죽은 지 만 2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상(祥)이라고도 한다. 고례(古禮)에 따르면, 삼년상의 경우 만 2년째인 25개월에, 특별히 아버지가 생존 중인 상황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하는 기년상의 경우에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제사로, 상주가 상복(喪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은 채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길(吉)로 나아간 것이 아니므로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하지 않은 호관(縞冠)만은 착용하고, 아침저녁의 정해진 곡을 하지는 않지만 슬픔이 북받칠 때는 곡을 하며, 고기도 먹을 수 있다. 소상(小祥) 돌아가신 지 만 1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1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연(練)이라고도 한다. 연(練)은 누인다, 곧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한다'는 뜻으로, 소상(小祥)에는 누인 대공포(大功布)로 만든 중의(中衣)와 누인 대공포로 만든 관(冠)을 착용하고 상제(喪祭)를 지내므로 소상을 연제(練祭) 또는 연이라고 한다. 연제를 지낸 뒤에야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아버지의 생존 중에 어머니가 사망한 기년상의 경우에는 11개월째에 연제를 지낸다. 참신(參神) 제사 지낼 때 신주(神主)에 절하고 뵙는 것을 이른다. 사신(辭神) 종헌(終獻)한 다음 신주를 들이기 전에 신주에게 절하고 작별하는 의식이다. 지지능득(知止能得) 《대학장구》 경(經) 1장에서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고 하였다. 물유본말(物有本末) 《대학》 경 1장에 "물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고 하였다. 지지(知至) 《대학장구》 경 1장에 "사물이 이른 뒤에 앎이 지극하고【物格而后知至.】"라고 하였는데, 집주에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이 다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吾心之所知, 無不盡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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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좌【양현】에게 답함 答金舜佐【良鉉】 영랑(令郞)이 저를 찾아오고 혜서(惠書)가 함께 이르렀으니 위안되고 감사한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게다가 부모님을 모시는 즐거움이 더욱 경사스럽고 안부가 평안하시다니 더욱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편지에 가득한 자세한 내용과 별지(別紙)의 여러 조목은 모두가 공을 들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내 벗처럼 이러한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의림(義林)은 젊어서 의지가 단단하지 못하였고 늙어서는 더욱 거칠고 피폐하여 이와 같은 벗의 서한을 받고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 흐르는 땀에 옷이 젖었습니다. 영랑은 지금 《중용(中庸)》을 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략 뜻을 물었더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비상합니다. 이렇게 나아간다면 이른바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74)라는 말이 이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기의변(記疑辨)》75)은 다른 사람이 빌려 가서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훗날의 계획으로 남겨 놓겠습니다. 자사(子思)의 말은 근원에서 지류를 가리켜 한 말이고 주자(朱子)의 말은 지류에서 근원을 가리켜 한 말이니 간략하고 심오함과 상세하고 정밀함으로 나누어 보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또한 "성(性)이 곧 이(理)이다."라고 한다면 옳지만, "이가 곧 성이다."라고 한다면 온당치 못할 듯합니다. 이미 "만물을 화생(化生)한다."76)라고 하였다면 어찌 인(人)과 물(物)의 구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만약 인과 물의 구분에 뜻이 없었다면 인과 물이 어디에서 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최근에 기(氣)를 위주로 삼는 주장이니 나의 벗께서는 혼동하지 말기 바랍니다. "기로 형체를 이룬다."라고 할 때의 '기'는 모두가 음양과 오행이 흩어져 나뉜 기이지만, 이(理)가 갖추어져 있는 것은 과연 그릇에 물이 담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초목은 거꾸로 자라고 금수는 옆으로 자라지만, 사람은 머리가 위에 있고 발이 아래에 있으며 모나고 둥글고 평평하고 곧은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이 통하거나 막힌 형체의 구분이 아니겠습니까. 건순오상(健順五常)77)은 인(人)과 물(物)을 아울러 말한 것이니 이것은 이일(理一 이는 동일하다는 의미)에 해당하며, 이는 동일하지만 현상은 다르다는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만약 물(物)이 하늘이 명한 성(性)을 따랐다면 말은 발로 차지 않고 소는 뿔로 받지 않을 것이니, 어찌 사람의 오상(五常)을 저 물(物)에게 요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시 자세히 살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令郞垂訪。惠幅伴至。慰感曷量。矧審省歎增慶。體事晏重。尤叶願聞。滿幅覼縷及別紙諸條。無非自用功體驗中出來。在今日而實心於此事如吾友者。有幾人哉。義林少不厲志。老益荒廢。得朋友書如此處。不覺愧汗沾衣也。令郞今讀中庸云。故略問其義。無不曉解。奇事奇事。率是以往。所謂後生可畏者。安知不在於此也。記疑辨爲人借去。未得付呈。留俟後日計耳。子思之言目源指流之言。朱子之言。自流指源之言。恐不可以簡奧詳密分以觀之。且性卽理也云則可。理則性也云則恐未穩。旣曰化生萬物。則烏可謂無人物之分耶。天若無意於人物之分。則人物何處得來。此是近世主氣之說。願吾友物似之也。氣以成形之氣。莫非陰陽五行散殊之氣。而理無不具。果如器之貯水也。草木倒生。禽獸橫生。而人則頭上足下。方圓平直。此非通塞之形耶。健順五常。兼人物言之。此是理一處。理一而分殊在其中矣。使物而循天命之性。則馬不踶牛不觸。何嘗以人之五常去責那物耶。更詳之如何。 후생을……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니, 앞으로 후생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짐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기의변(記疑辨)》 정재규의 《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을 가리킨다. 《납량사의》는 노사 기정진(奇正鎭)이 1843년에 작성한 성리학 저술이다. 우주의 구성에서부터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명, 사단칠정과 인심도심(人心道心) 등 심성의 문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의 문제, 선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이체이용(理體理用)의 논리로 설명하였다. 만물을 화생(化生)한다 《중용장구》 제1장에서 주희가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경문을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하매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를 또한 부여한다.【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 理亦賦焉.】"라고 해설한 것을 이른다. 건순오상(健順五常) 《중용장구》 제1장의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 "인과 물이 세상에 나올 적에 각기 부여받은 바의 이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ㆍ오상의 덕을 삼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성이라는 것이다.【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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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행【의형】에게 보냄 與姜正行【義馨】 상중에는 담제(禫祭)를 지내지 않는 것은 본래 관련된 글이 있지만, 자식의 상사(喪事)에 장례를 치른 뒤라면 담제를 지내지 않을 리가 없을 듯합니다. 자식【맏아들】을 위해 참최복을 하더라도 해관(解官 상기(喪期) 동안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하지 않으니78) 이것이 방증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로 삼아 행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마음이 편치 않다면 상이 있어 참여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글을 지어 고유(告由)하고 가벼운 복을 입는 이에게 담제를 섭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근거가 없는 억설(臆說)이니 다시 예를 아는 사람에게 질정하여 행해야 합니다. 서모(庶母)에 대해 이미 동찬(同爨 한솥밥을 먹는 것)을 근거로 시마복(緦麻服)을 하니 정성을 다해 부모를 봉양하고 정성을 다해 상을 치르는 것이 어찌 동찬의 의리보다 못하겠습니까. 예는 인정에 근본하고 후하게 하는 쪽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 이 경우를 이릅니다.【문】 제사를 지낼 즈음 집안에 비복(婢僕)의 상이 있거나 산부(産婦)가 있다면 제사를 그만둬야 합니까?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이 "예(禮)에 따르면 같은 집에 살면 신첩(臣妾)이라도 매장을 한 뒤 제사를 지낸다."79)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제사를 그만두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답】 산부가 있다면 불결하므로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구천(龜川)80)은 "비복의 상에는 매장을 한 뒤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습니다.【문】 산부가 있는 경우로 보자면, "처는 자식을 낳는 달이 되면 측실(側室)에 거처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은 사람을 시켜 날마다 두 번씩 묻게 한다. 남편이 재계(齋戒)하면 측실의 문에 들어가지 않는다."81)라고 하였으니, 산부가 있더라도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매장을 한 뒤에 제사를 지낸다면 월수를 계산하지 않고 정일(丁日)을 택해 제사를 지냅니까? 산부가 있더라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측실이 없는 경우에는 할 수 없을 듯합니다.【답】 매장을 한 뒤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연제(練祭 소상제)와 상제(祥祭 대상제)를 가리킵니다. 기제(忌祭), 시제(時祭), 담제 등은 시기가 지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喪中無禫。固有其文。而子喪葬。後似無不禫之理。雖爲子復斬。而不解官。則此可爲旁照之一證。然旣無的證可據而行之。於心若末安。則以有喪不參之意。措辭告由。而使服輕者。攝而行禫如何。此是無據之臆說也。更質於識禮處而行之也。庶母旣以同爨而緦。則其殫誠養親。執喪玖誠。豈下於同爨之義乎。禮本人情。從厚爲得者。此之謂也。將祭而家內有婢僕之喪或産婦。則當廢祭乎。愚伏曰。禮同宮則雖臣妾。葬而後祭。以此觀之。廢之似當。有産婦則不潔。不可祭也。龜川曰。婢僕之喪。葬後而祭。至産婦。則妻將生子之月。居側室。子生。夫使人日再問之。夫若齊。則不入側室之門。雖有産婦。當祭之可也云。若葬後而祭。則不計其月。擇丁日而祭乎。雖有産婦。當祭之。則無側室者。似不可。葬而祭。練祥之謂。若忌祭時祭禫祭之類。過時則不祭。 자식【맏아들】을……않으니 《주자대전》 권62 〈답이회숙 5〉에서 이휘(李煇)가 묻기를 "장자를 위해서는 삼년복을 입고, 백부ㆍ숙부ㆍ형제를 위해서는 모두 기년복을 입는데 관직에 있는 자는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고, 선비는 과거 응시를 허락하니, 공무(公務)를 볼 때와 과거에 응시할 때 길복을 입어야 하는지 최복을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길복을 입어야 한다면 오복조(五服條)에 실려 있는 시기와 서로 어긋납니다.【爲長子三年及爲伯叔兄弟皆期服而不解官, 爲士者許赴擧, 不知當官與赴擧時, 還吉服耶? 衰服耶? 若須吉服, 則又與五服所載年月相戾矣.】"라고 하였다. 같은……지낸다 《예기》 〈잡기(雜記)〉에 보이며 원문은 다음과 같다. "부모의 상에 소상(小祥), 또는 대상(大祥)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떨어져 사는) 형제가 사망하면 빈(殯)이 끝나기를 기다린 뒤에 제사를 지낸다. 만일 같은 집에 사는 이가 사망하면 비록 사망한 이가 신첩(臣妾)과 같은 천한 신분이라고 해도 장례(葬禮)를 마친 뒤에 제사를 드린다.【父母之喪, 將祭, 而昆弟死, 旣殯而祭. 如同宮, 則雖臣妾, 葬而后祭.】" 구천(龜川) 이세필(李世弼, 1642∼1718)의 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으로 송시열, 박세채의 문인이다. 해당 내용은 《구천선생유고(龜川先生遺稿)》 권32, 〈답권여유(答權汝柔)〉에 보인다. 처는……않는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내오는 말이다. "처는 자식을 낳으려고 할 때 해산달의 초하루가 되면 측실에 거처한다. 남편은 사람을 시켜서 매일 두 번씩 묻게 한다.……남편은 재계할 때라면 측실의 문을 들어가지 않는다.【妻將生子, 及月辰, 居側室, 夫使人日再問之.……夫齊則不入側室之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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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辛巳 辛巳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무오년생으로, 상주는 기묘생과 신사생의 두 아들이었다. 안장일은 신사년 11월 초7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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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4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무신생이었다. 안장일은 9월 초7일로 되어 있다. 보통의 장례택일지와는 달리 안장(安葬)과 하관(下棺) 일시만 간략히 적혀 있고 상주도 적혀 있지 않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어린 사내 아이의 장사택일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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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방문하다 訪子由 내가 옛날 몇 년이나 남산에 있었던가 我在南山昔幾秋빛나는 물결은 탈 없이 동으로 흐르네 映波無恙向東流옛 친구를 만나니 모두 청안234)인데 舊交邂逅皆靑眼반평생 부침하며 쉬이 백발 되었구나 半世浮沈易白頭풍진 세상에 초탈한 선비 얻기 어려워 難得風塵超出士봉필235)이 고루보다 나음을 뉘 알리오 誰知蓬蓽勝高樓집을 떠난 지 오래라 몹시 무료했는데 離家多日苦無賴여기 와서 비로소 진솔한 유람 한다네 到此始成眞率遊 我在南山昔幾秋, 映波無恙向東流.舊交邂逅皆靑眼, 半世浮沈易白頭.難得風塵超出士, 誰知蓬蓽勝高樓.離家多日苦無賴, 到此始成眞率遊. 청안(靑眼) 매우 반가워하는 눈길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완적(阮籍)은 세속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속사(俗士)를 만나면 흰자위[白眼]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여 주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푸른 눈[靑眼]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봉필(蓬蓽) '봉문필호(蓬門蓽戶)'의 줄인 말로 쑥대나 싸리로 만든 문이라는 뜻인데, 누추한 집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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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운을 거듭 써서 김수성 군에게 주다 疊前韻 贈金君秀聲 원래 노소나 동서도 없으니 元無老少復西東다만 친밀한 정이 있는지 없는지만 묻는다네 但問親情實與空깨끗한 마음은 맑은 밤의 달과 같아야 하고 心淨要同晴夜月화평한 기운은 늦봄의 바람처럼 불어야지 氣和應動晚春風방자한 논의로 어찌 견백582)을 다투려 하나 肆論豈欲爭堅白글 짓는 것은 녹색과 홍색을 품평하는 것과 상관 없네 題句非關品綠紅돌을 상으로 삼고 구름을 선물함은 모두 별난 취미인데 榻石贐雲皆別趣예로부터 고사는 산 가운데 있다네 從來故事在山中 元無老少復西東, 但問親情實與空.心淨要同晴夜月, 氣和應動晚春風.肆論豈欲爭堅白, 題句非關品綠紅.榻石贐雲皆別趣, 從來故事在山中. 견백(堅白) 괴변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논변가 공손룡이 '견백동이(堅白同異)'라는 궤변을 하였다. 단단하고 흰 돌이 있을 경우, 단단함[堅]과 흰색[白]과 돌[石]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공손룡이 그것은 불가능하고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눈으로 보면 색이 '흰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결국 단단한 돌과 흰 돌은 서로 다른 것이요 절대로 같은 것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실상 같은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만드는 괴상한 논리를 말한다. 《公孫龍子 堅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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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어른이 보내온 시에 화답하다 和鍊心丈見贈 예로부터 화복에는 득실83)이 있는 법 從來禍福有乘除새옹지마의 기담84)을 옛책에서 보았지 塞馬奇談見古書감미는 신산의 고생 뒤에 있음을 알겠고 甘味方知辛苦後위기는 혹 쾌적한 안락 끝에 있다네 危機或在快安餘봉산의 눈 달은 속세 벗어난 곳에 맑고 蓬山雪月淸超俗영해의 바람 안개는 터 잡은 집에 엷네 瀛海風煙淡卜居옥성85)을 권면하며 위로하고 도왔으니 爲勉玉成相慰藉생애의 계책 모두 엉성하다 웃지 마소 生涯莫笑計全疏 從來禍福有乘除, 塞馬奇談見古書.甘味方知辛苦後, 危機或在快安餘.蓬山雪月淸超俗, 瀛海風煙淡卜居.爲勉玉成相慰藉, 生涯莫笑計全疏. 득실 원문의 '승제(乘除)'인데, 승은 곱셈이고 제는 나눗셈으로 득실과 성쇠를 비유한다. 새옹지마의 기담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를 말한 것이다. 세상사가 변화무쌍하여 득실을 헤아릴 수 없으니, 이에 연연할 필요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옥성(玉成) 사람을 옥처럼 훌륭히 완성시켜 준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가난하고 천함과 근심 걱정은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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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규가 친영할 때의 초사 孫兒憲圭親迎時醮辭 "가서 너를 도울 부인을 맞이하여 우리 종묘의 일을 잇고, 힘써 공경으로 이끌어라. 그렇게 하면 떳떳함이 있을 것이다."56)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옛사람이 초자(醮子)57) 때에 하는 말이고, "힘써서 공경으로 이끌어라."라는 네 글자에 무한한 의리가 담겨있으니, 너는 알고 있느냐?공경은 일신의 바탕이며, 만 가지 선의 근본이니,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일상생활의 온갖 말과 행동이 이것을 말미암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자가 없는데, 하물며 천륜의 큰 벼리가 되는 부부(夫婦)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부부는 군자의 도가 시작되는 단서이고, 친영(親迎)은 부부의 도가 시작되는 단서인데, 전자에 태만하고 후자에 공경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행하기 어렵고, 시작이 없이 끝이 있는 것은 이치상 있을 수 없으니, 네가 몸을 닦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 앞으로 과정의 잘잘못이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주역ㆍ가인(家人)》의 〈단전(彖傳)〉에서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의 바름이 천지의 대의(大義)이다."라고 하였고, 그 〈상구(上九)〉에서 이르기를, "믿음과 위엄이 있으니, 끝내 길하다."라고 하였으며, 〈상전(象傳)〉에서 이르기를, "위엄이 있으면 길하다는 것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위엄이라는 것은 가혹하고 각박하며 분노하고 사나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세우고 자신을 단속하여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고 행동을 망령되이 하지 않으며, 화순(和順)하고 경외(敬畏)하는 뜻을 보존하고, 태만하고 업신여기는 습관을 경계하여 평소의 행위에 한 터럭만큼도 남에게 비난을 받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른바 힘써 공경으로 이끈다는 것도 이러한 뜻이 아니겠는가. 너는 힘써야 할 것이다. 往迎爾相。承我宗事。勉率以敬。若則有常。此古人醮子之辭也。而勉率以敬四字。有無限義理。汝知之乎。敬者一身之基。萬善之本。人生日用凡百云爲。未有不由此而能行之者。況夫婦之爲天倫大綱乎。夫婦者君子之道所以造端也。親迎者。夫婦之道所以造端也。慢於前而敬於後。勢必難行。無其始而有其終。理所未有。汝之修身宜家。前程得失。權輿於此。易家人之彖曰。男女正。天地之大義也。其上九曰。有孚威如。終吉。象曰。威如之吉。反身之謂也。所謂威如。非苛刻忿厲之謂也。只是立心飭躬。言不忘發。行不忘作。存和順恭畏之意。戒惰慢褻狎之習。使平日所爲。無一毫見非於人是也。所謂勉率以敬。亦非此意也耶。汝其勉之。 가서……것이다 《가례》 〈혼례(昏禮)〉에 나오는 말이다. 초자(醮子) 관례(冠禮)나 혼례(婚禮)에서 부모나 어른이 당사자인 아들에게 술을 따라 주는 의식인 초자례(醮子禮)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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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심【승원】에게 답함 答洪允深【承源】 학문은 치지(致知)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치지(致知)는 독서(讀書)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성현(聖賢)의 마음 씀과 행한 일과 선악(善惡)의 본받고 경계할 만한 것이 모두 책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篇)에서는 한 편(篇)의 뜻을 구하고, 한 장(章)에서는 한 장(章)의 뜻을 구하고, 한 구(句)에서는 한 구(句)의 뜻을 구합니다. 만약 《소학(小學)》을 읽는다면 마땅히 물뿌리고 비질하며 청소하는 것과 손님을 응대하는 일을【灑掃應對】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버이를 친애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愛親敬長】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大學)》을 읽는다면 마땅히 명덕(明德)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신민(新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또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째서 이겠습니까? 아무런 의심이 없이 마음에 보존시키고 몸에 체득하고서 하는 일에 베푼다면 이것이 궁리(窮理)가 귀한 것이고 학문(學問)에서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장구(章句)의 말단에 뜻이 막히고 음독(音讀)의 사이에 마음이 빠져버려서 천착(穿鑿)하고 부회(傅會)하면 그 아는 바가 옛 글을 외우기만 하는 천박한 학문에 불과하게 될 뿐이니, 이러한데도 어찌 실제로 활용하는 데 도움이 있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보내주신 별지(別紙)는 모두 간절히 묻고 가까운 데서 생각하여【切問近思】 의논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전혀 그러한 병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혹 오랫동안 사색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입으로 말하는 병폐가 있다면 이 뜻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답(問答)에 대해 따로 말씀드린 내용은 급하게 붓을 휘둘렀기에 아마도 잘못된 것이 많은 듯합니다. 그 중에서 답해드렸던 자최(齊衰)65)에 대한 한 조목은 더욱 이치에 어긋나기에 생각하면 황송합니다. 부자(夫子)께서 특별히 자최(齊衰)를 거론한 것은 가벼운 것을 들어서 무거운 것을 보인 뜻입니다. 보내드렸던 답지(答紙)는 즉시 지워 없애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사덕설(四德說)」은 안배하고 보충한 것이 많은데 글자를 배치하는 것에 대한 병통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대요(大要)는 혹 기(氣)를 리(理)로 인식하고 혹 정(情)을 성(性)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대략 점평(點評)을 가하며 살펴주셔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이 또한 잘못된 것이 없을 줄을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거듭 살펴주시기 바랍니다.사단칠정(四端七情)66)은 모두 생각할 겨를 없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다만 선(善)만 있는지, 선악(善惡)을 겸하는지의 다름이 있을 뿐이니, 혹 그 병통으로 인하여 공격을 하고 그 밝음으로 인하여 계도하는 것입니다.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67)라고 한 것과 '재물을 좋아하고 색(色)을 좋아한다.【好貨好色】'68)는 것과 같은 말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學莫先於致知。致知以讀書爲先。以聖賢用心行事。及善惡之可效可戒者皆。在於書故也。一篇求一篇之義。一章求一章之義。一句求一句之義。如讀小學。則當思灑掃應對當如何。愛親敬長當如何。讀大學則當思明德當如何。新民當如何。又思所以當如此者。是何故。使之了了無疑。存之於心。體之於身。施之於事。此窮理之爲貴。而爲學問之先者也。若或滯意於章句之末。溺情於音讀之間。穿鑿傳會。則其所知者。不過爲記聞口耳之學而已。尙何望其有助於實用哉。所示別紙。皆切問近思合商量處。然其間不可謂全無此病。又或有不能耐久思索。而徑遽出口之獘。此意不可不知也。如何。問答別告。悤卒信筆。想多謬妄。其中答齊衰一條。尤爲悖理。追念惶悚。夫子之特擧齊衰者。是擧輕見重之意也。所去答紙。卽爲抹去如何。四德說多安排牽補。其下字之病。不可枚擧。大要或認氣爲理。或認情爲性。以鄙意略加點評。覽可知矣。然安知鄙意亦無差謬也。更詳之也。四端七情。皆是不暇思慮而發。但有善與兼善惡之不同。或因其病而攻之。或因其明而納之。如何必曰利及好貨好色之語。可見。 자최(齊衰) 오복(五服)의 하나이다. 조금 굵은 생 베로 만드는데 아래 가를 좁게 접어서 꿰맨 상복이다. 부모상에는 삼 년, 조부모 상에는 일 년, 증조부모 상에는 다섯 달, 고조부모 상에는 석 달을 입고, 처상(妻喪)에는 일 년을 입는다. 사단칠정(四端七情) 사단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칠정은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인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을 가리킨다.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상에 나오는 구절로, 사람이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일을 행하면 얻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따르게 마련이며, 오직 인의(仁義)에 입각해서 일을 하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재물을 좋아하고 색(色)을 좋아한다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하에 나오는 구절로, 맹자가 제선왕에게 재물과 색을 좋아하는 마음을 백성들과 함께 누릴 것을 제안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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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오【재희】에게 답함 答文敬五【載熙】 서신을 받은 후에 며칠이 지났는데 한가로이 거처하는 체후가 계속해서 몹시 좋고 하부(下部)의 뜻밖에 생긴 질병도 속히 절로 낫기를 거듭 바랍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편지에서 '분을 내어 뛰어오르고, 떨쳐서 빨리 일어난다.【發憤勇躍, 奮迅興起】'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학문(學問)의 본령(本領)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릇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기름에 그림을 그리고 얼음을 새기는 것처럼 될 것이니 어찌 근거하여 지킬 만 한 바가 있겠습니까? 또 '위태위태하면79) 나아가 편안할 수가 없고, 무미건조하고 껄끄러우면 즐길만한 맛이 없다.【危殆捏扤, 無可卽之安, 枯燥生澁, 無可嗜之味】'라고 하셨는데 이는 함양(涵養)이 미숙(未熟)하여 밝지 않음을 끝까지 구하면서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무릇 독서(讀書)는 진실로 궁리(窮理)의 일단입니다. 그러나 종일토록 고달프게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지면 또한 도움이 안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문장의 단과 마디를 따라서 끝까지 궁구해 파헤쳐보면 십분 분명해질 것입니다. 거듭 남은 힘이 있으면 단정하고 고요하게 앉아서 정신(精神)을 모으고 뜻을 오로지하면 이것이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주자(朱子)께서, '반나절은 독서하고 반나절은 정좌한다.【半日讀書, 半日靜坐】'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또한 날마다 생활하는 모든 사항에 의리(義理)를 다할 수 있도록 힘쓰고 조금도 구차하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폐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쌓여서 이어지고 그치지 않는다면 선한 힘이 점점 확장되고 악한 힘은 점점 줄어들어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이른바,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구분【內外賓主之分】'80)이니 대처할 방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이 일에 대하여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한나라의 힘은 본래 초나라를 상대하기에 부족하였지만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평정함으로써 먼저 근본을 보존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계책을 썼습니다. 또한 모신(謀臣)과 맹장(猛將)으로 하여 위(魏) 나라를 치고 조(趙) 나라를 공격하여 그 손과 발을 잘라버렸더니 항우(項羽)는 스스로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고조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서 갑작스럽게 항우를 공격하였다면, 항우를 반드시 이길 보장은 없고 단지 자신의 멸망만 자초하였을 것입니다. 무릇 오직 은미한 마음과 충분하지 못한 힘으로 그 습관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오래된 폐단과 단단하게 굳은 삿된 것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와 뻣뻣하여【倔强】 복종하지 않게 되리니 마치 살아 생동하는 용과 호랑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자 문하의 여러 자제들은 오직 안자(顔子)의 학문이 건도(乾道)에 속하며 염자(冉子) 이하로는 모두 경서(敬恕)를 지양(持養)하는 사이를 종사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서로 깊이 그리워하고 있기에, 어리석은 견해를 망령되이 보내드립니다. 書後有日。更請齋居候節。連護茂謐。下部無妄。趁早勿藥。懸溯無任。所云發憤勇躍。奮迅興起云者。此是爲學問本領。不然凡所云爲。無非脂畵氷鏤。何足有所據守哉。又云危殆捏扤。無可卽之安。枯燥生澁。無可嗜之味。此是涵養未熟窮索未明之致也。夫讀書固是窮理之一端。然終日矻矻。疲獘精神。亦無益也。須逐段逐節。窮覈到底。截斷得十分分明。而更於餘力。端莊靜坐。使精神注泊。志慮精專。此是端本淸源太上法。朱子所謂半日讀書。半日靜坐者。正此意也。且於日用凡百。務盡義理。不要有一毫苟且自欺之獘。積以歲月。接續不綴。則善力漸長。惡力漸縮。而張子所謂內外賓主之分者。可以知所處矣。愚嘗謂此事如漢楚之交爭。漢之力。本不足以敵楚。而高祖定關中。先爲存本固根之計。又使謀臣猛將。擊魏攻趙。剪除其手足。而羽已自獘矣。若使高祖不量其力。而徑欲攻羽。則羽未必勝。而適以自速滅亡也。夫以惟微之心。未充之力。而欲祛其習。則久放蔽累膠固之私。滲漏四出。倔强不服。如生龍活虎也。是以孔門諸子惟顔子之學。爲屬乾道。而自冉子以下。皆不免從事於敬恕持養之間。此蓋可見也。相向之深。妄輸愚見。 위태위태하면 원문은 '올날(扤捏)'이다. 《서경》 〈주서(周書) 진서(秦誓)〉의 끝에 진나라 목공(穆公)이 건숙(蹇叔)의 말을 따르지 않고 다른 신하의 말을 듣고서 정(鄭)나라를 쳤다가 패배하고 난 뒤 뉘우치면서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구분 이 말은 《논어집주》 〈옹야〉 5장 장하주에서 장재(張載)가, "학문을 시작하는 요점은 '삼월불위(三月不違)'와 '일월지언(日月至焉)' 중에서 무엇이 안이고 밖인지와 무엇이 손님이고 주인인지의 차이를 알아야하는 것이다.【始學之要, 當知三月不違, 與日月至焉, 內外賓主之辨.】"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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