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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처중에게 답함 答梁處中 일전에 왕림하여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병들어 쇠약하여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지팡이를 집고 찾아가서 답례할 예의도 갖추지 못했는데,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서 거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근래에 경학에 힘쓰며 지내시는 생활은 때에 맞추어 평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러러 그리워하는 구구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제대로 힘을 쏟지 못하였고 늙어갈수록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에 이르지 못할까 절박하게 한탄만 할 뿐입니다. 애산(艾山)의 자【尺】와 저울【枰】에 대한 가르침은 전날에 우리 두 사람이 마주하여 펼친 내용들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합일(合一)과 분수(分殊)를 성(性)의 측면에서 보는 것은 합당하나, 거기에 심(心)이라는 한 글자를 더하여 넣어서 합일로 간주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일전에 영남의 선비 한 사람이 호남의 한 곳에 보내온 편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편지에 "치우쳐서 말하면 성(性)이요, 전체적으로 말하면 심(心)이다"라고 하였고, 또 "오성(五性)은 각기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합하는 것이 바로 심(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이 영남의 여러 노숙(老宿)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설과 같다면, 찬연히 분명히 나뉜 것이 성(性)이고 혼연하여 하나로 된 것이 심(心)이며, 소덕(小德)이 성이고 대덕(大德)이 심이며, 체용(體6用)이 서로 다른 성품이고 본말(本末)이 서로 다른 형상이니, 그 뜻이 불가함이 당연합니다. 무릇 심(心)에 대해 극히 정미한 경지에서 말한다면, '심(心)은 태극(太極)과 같다'라 하고, '오직 심(心)만이 상대되는 것이 없다'라고 하며, '몸에서 주재하는 것이 심(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경계에 이르러 말하면, 심(心)이 곧 성(性)이고, 성이 곧 심이니, 어찌 구별하여 말하여 한 개의 성(性)자를 심(心)과 서로 견주어서, 한편으로는 치우침에 속했다가 한편으로는 전체에 소속시키겠습니까. 경함차록(景涵箚錄) 책자에 또한 이 내용이 담겨 있으니, 그와 함께 찬찬히 서로 의논하여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日者枉顧。何等感戢。而病骨殘喘。末由杖。策以擧回謝之儀。而駸駸日月。又爲幾旬朔矣。未審經體動靜。與時安宜。溯仰區區不任。義林少而不力。老益荒廢。日暮道遠。只切難逮之恨而已。艾丈尺枰之喩。前日吾兩人對攄之說盡矣大抵合一分殊當於性上看不當添入一心字以作合一看。日前得嶺儒一人抵湖南一處書。有曰。偏言則性。全言則心。又曰。五性各一其理。而其所以合一者心也。未知此說出於嶺中諸老宿之口耶。若此說。則粲然底是性。渾然底是心。小德也是性。大德也是心。體用異品。本末殊狀。其不可也決矣。夫心極其精而言之。則曰心猶太極也。曰惟心無對。曰主於身爲心。說到此境界。心便是性。性便是心。豈別說出一箇性字與心對頭。使一屬之偏。一屬之全哉。景涵箚錄冊子中。亦有此意。幸與之從容商確。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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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의 〈망운탄〉에 차운하다 次李元浩《望雲嘆》 내가 예전에 〈운한〉132) 시를 읽었으니 我昔讀過雲漢詩동주133)의 세상은 어찌 그리 가물었던가 東周之世一何旱외로운 백성들에게 남은 것이 없었으니 黎民孑孑無餘遺그 때문에 길게 한숨 쉬고 또 짧게 탄식했네 爲之吁長又嘆短어찌 금년의 가뭄을 직접 볼 줄 생각했으랴 豈意親見今年旱너무 심한 것은 예전에만 그런 게 아니었네 太甚不曾古時但사람들이 말하길 비가 내릴지 알고 싶으면 人言欲識雨與否다만 구름 기운이 이어졌다 끊어짐에 있는데 亶在雲氣連復斷뭉게뭉게 구름 일면 사람의 마음 기쁘게 하고 萋萋有渰悅人意유유하여 무심하면 그 게으름을 미워한다네 悠悠無心憎其懶그 말이 맞을까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其然乎哉豈其然들어도 귀가 시원하지 않고 배만 더 고달프네 聞不爽耳腹增憊엄숙하면 제때 비가 내림은 기성의 가르침이니134) 曰肅雨若箕聖訓천고에 명백함은 큰길이 평탄한 것과 같네 千古明如周道坦오늘날의 인간사를 한 번 보게나 試看今日人事際어떻게 하늘을 감동시켜 단비를 빚겠는가 那得感天時雨醞서로 친근하던 윤리는 세상에서 끊어졌고 相親倫理世間絶서로 이익 취하는 풍조가 천하에 가득하네 交征利風天下滿게다가 선비의 풍습엔 사특하고 어긋남 많아 更有士習多邪悖마침내는 우리 무리가 모두 흩어지게 하였네 遂令吾黨盡渙散아, 극도의 혼란함이 결국 이 지경에 이른 건 嗚呼亂極乃至此일찍이 옛 역사책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네 曾所未見古史纂하늘이 크게 노하여 큰 흉년을 내렸으니 上天赫怒降大無오래도록 강산에 뜨거운 햇볕을 덮었네 久將江山覆火傘하늘과 사람이 서로 관계된 이치 말하지 말라 莫曰天人相關理아득하고 현묘하고 심원하여 헤아릴 수 없네 渺漠玄遠難可算남녀 백성들은 실로 죄가 없는데 蒼生男女實無辜횡액에 걸려 짝을 잃으니 개탄스럽네 橫罹仳儷慨其歎아득하게 수로와 육로에 매일 가득 차서 逖矣日滿水陸路수없이 엎어지고 넘어지니 어찌 근심을 견디랴 十顚九倒豈勝悹무릇 이 지경이 된 것은 허물이 똑같으니 凡厥致此咎惟均후회가 없지 않으나 아무 소용이 없네 莫無追悔不可趕옥전거사는 참으로 어진 사람이라 玉田居士寔仁者백성들의 걱정을 자신의 일로 여겨 生民之憂非閒管백 리에서 〈망운탄〉을 부쳐왔는데 百里寄來望雲歎용용135)한 장편은 고금에 드문 것이네 舂容鉅篇今古罕정한 제목을 글로만 보지는 말지니 命題莫看以辭已뜻은 근본에 있지 줄기에 있지 않네 意在本根不在稈참으로 구름 빛깔로 기쁨과 탄식을 삼는 건 苟以雲物爲喜歎털과 깃만 알고 태생과 난생엔 어두운 것이네 但知毛羽昧胎卵듣건대 옛날에 군자가 길함을 얻을 때는 聞昔君子得吉也모름지기 흉함을 따라 묘하게 운행한다네 須從其凶妙斡轉마음이 바르고 기운이 순한 공이 지극해지면 心正氣順功旣至천지도 함께 효과가 서로 이어진다네136) 天地亦與效相纘나에게도 허물 있을까 먼저 염려하여 先念吾亦有咎否감히 여관에 있듯 편히 지내지 못했네 不敢安處如在館이어 바라건대 사람이 모두 마음 다스려 繼願人皆治心舍한 간특함도 빈 터에 숨게 하지 않으면 勿令一慝隱町畽하늘이 반드시 보답해 좋은 징조 내려서 天必報答賜休徵만백성이 모두 배부르고 따뜻하게 하리라 俾爾萬姓咸飽煖나는 그대의 시 밖의 말을 한 것이니 我是發君詩外言한 동그라미에 어찌 크고 작은 사발 있으랴 一規豈有大小椀만일 나의 지금 생활을 묻는다면 若問吾人今生活어찌 풍작 흉작으로 걱정 즐거움을 삼겠나 豈以豊歉作戚衎평생에 잊지 않을 것이 어디에 있는가 平生不忘何處在도랑에 뒹구는 송장 빛깔이 검은 것이라 溝中之瘠其色䵟그런 뒤에야 정신이 상쾌하고 즐거우리니 然後精神快樂像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도 한계가 있다네 旱餘甘霈猶有限이것으로 나를 멀리하지 않은 뜻에 사례하니 將此奉謝不遐義바라건대 함께 면려하여 오래도록 짝이 되세 願同勉勵永作伴 我昔讀過《雲漢》詩, 東周之世一何旱?黎民孑孑無餘遺, 爲之吁長又嘆短.豈意親見今年旱? 太甚不曾古時但.人言欲識雨與否, 亶在雲氣連復斷.萋萋有渰悅人意, 悠悠無心憎其懶.其然乎哉豈其然? 聞不爽耳腹增憊.曰肅雨若箕聖訓, 千古明如周道坦.試看今日人事際, 那得感天時雨醞?相親倫理世間絶, 交征利風天下滿.更有士習多邪悖, 遂令吾黨盡渙散.嗚呼亂極乃至此, 曾所未見古史纂.上天赫怒降大無, 久將江山覆火傘.莫曰天人相關理, 渺漠玄遠難可算.蒼生男女實無辜, 橫罹仳儷慨其歎.逖矣日滿水陸路, 十顚九倒豈勝悹?凡厥致此咎惟均, 莫無追悔不可趕.玉田居士寔仁者, 生民之憂非閒管.百里寄來《望雲歎》, 舂容鉅篇今古罕.命題莫看以辭已, 意在本根不在稈.苟以雲物爲喜歎, 但知毛羽昧胎卵.聞昔君子得吉也, 須從其凶妙斡轉.心正氣順功旣至, 天地亦與效相纘.先念吾亦有咎否, 不敢安處如在館.繼願人皆治心舍, 勿令一慝隱町畽.天必報答賜休徵, 俾爾萬姓咸飽煖.我是發君詩外言, 一規豈有大小椀?若問吾人今生活, 豈以豊歉作戚衎?平生不忘何處在, 溝中之瘠其色䵟.然後精神快樂像, 旱餘甘霈猶有限.將此奉謝不遐義, 願同勉勵永作伴. 운한(雲漢)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으로, 가뭄이 계속되는 날씨를 걱정하는 시이다. 폭군인 여왕(厲王)의 뒤를 이은 선왕(宣王)이 심한 가뭄이 들자 자신을 돌아보고 백성들을 위해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읊었다. 동주(東周) 주(周)나라 평왕(平王)부터 난왕(赧王)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는데, 주 평왕(周平王)이 낙양(洛陽)에 도읍하여 동방(東方)에 있었으므로 이렇게 일컫는다. 엄숙하면……가르침이니 《서경》 〈홍범(洪範)〉에 나오는 말로, "아름다운 징조는 엄숙함에 제때에 비가 내리며, 조리가 있음에 제때에 날이 개며, 지혜로움에 제때에 날이 따뜻하며, 헤아림에 제때에 날이 추우며, 성스러움에 제때에 바람이 부는 것이다. 〔曰休徵: 曰肅, 時雨若; 曰乂, 時晹若; 曰哲, 時燠若; 曰謀, 時寒若; 曰聖, 時風若.〕"라고 하였다. '기성(箕聖)'은 은(殷)나라의 성인(聖人)인 기자(箕子)를 말한다. 용용(舂容) 문장에서 한가로운 운치가 우러나고 전아(典雅)한 분위기가 풍기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이어진다네 《중용장구》 제1장 제5절 주희의 주에 "천지와 만물이 본래 나와 일체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나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가 또한 순하다.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음에 이르는 것이다.〔蓋天地萬物, 本吾一體, 吾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矣, 吾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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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근래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끝이 없다. 지난번에 지은 다섯 첩의 약 가운데 어제 두 첩을 복용하였고 오늘 두 첩을 복용하였는데, 다 복용한 뒤에 재탕할 생각이다. 이미 지어서 보내왔기에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에 복용하였지만, 그러나 천하에 어찌 늙음을 물리치고 회춘하는 처방이 있겠느냐. 헛웃음만 나온다. 주자가 일찍이 '조심함[謹]'과 '부지런함[勤]' 두 글자를 아들에게 주면서 경계하기를 "다만 이 두 글자를 따라서 올라가면 무한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며, 등지고 내려가면 무한한 나쁜 일이 있을 것이다."197)라 하였는데, 너 또한 이 두 글자를 평생의 가계(家計)로 삼아라. 노쇠하고 병든 몸은 죽음이 드리웠는데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기다리랴. 다만 너희 형제들이 본분에 입각하여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질문 : 사상채가 말하기를 "다만 한 개 '오만함[矜]'자를 제거하라."198)고 하였는데, 대개 먼저 경(敬)을 위주로 하여 마음에 아주 조금도 사사로운 뜻이 없으면 긍(矜)자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잘 모르겠는데 긍(矜)은 본래 무엇에서 기인하여 발하는 것입니까.답변 : 본래 마음이 협소함에서 발하는 것이다. 내가 한 바가 남보다 백 배나 훌륭해야 함이 자신이 응당 해야 할 일인 것을 안다면 오만함[矜]이 어떻게 발하겠는가.질문 : 명덕(明德)과 지선(至善)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답변 : 명덕은 마음 위에서 말한 것이고, 지선은 일 위에서 말한 것이다. 명덕은 체(體)를 통합하여 말한 것이고, 지선은 사리의 극처이다. 명덕은 천명이 자신에게 얻어진 것이며, 지선은 천명이 만물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日間爲況何如。馳念無已。向日所制五帖藥。昨日服二帖。今日服二帖服了後又爲再湯計耳旣已制來不可退却故服之。然天下安有回春却老方也。可笑。朱夫子嘗以謐勤二字。授其子而戒之曰。只此二字。循之以上。有無限好事。背之以下。有無限不好事。汝亦以此二字。視作生平家計也。衰病垂死。何求何待。只望汝兄弟依本分做好人也。謝上蔡曰。只去得箇矜字。盖先主於敬心。無纖毫私意。可得去矜字。而但未知矜本何由而發。本自其內俠小而發。我之所爲。百勝於人。惟知自家合做底事而已。則矜何以發出。明德與至善。果是甚底。明德心上說。至善事上說。明德統體說。至善事理之極處。明德天命之得於已者。至善天命之散在萬物者。 다만……있을 것이다 〈주선생계자서(朱先生戒子書)〉에 보인다. 사상채가……제거하라 상채는 사양좌(謝良佐)를 말하고, 긍 자는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헤어진 지 1년 만에 스승인 정이(程頤)를 찾아가자, 정이가 그동안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가 "다만 긍 자를 없애려고 했다.[只去得箇矜字]"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병통이 모두 이 속에 들어 있는 만큼, 이 죄과를 굴복시키면 바야흐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病痛盡在這裏 若按伏得這箇罪過 方有向進處]"라고 하였다. 《심경부주》 권1 〈천선개과장(遷善改過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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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여91)【준각】에게 답함 答朴仁汝【準珏】 흰머리 늙은이로 쓸쓸하게 지내자니 매양 심 은후(沈隱候)의 '그대와 함께 늙어간다는'92) 탄식이 절실합니다. 하물며 이렇게 세서(歲序)가 바뀌는 때 그리운 마음이 더욱 어떠하겠습니까. 형의 서신은 나의 마음을 먼저 이해했다고 이를 만하며 또한 지금껏 먼저 새해 안부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노경(老境)의 보양(保養)과 모든 건강이 새해와 더불어 더욱 새로우신지 모르겠습니다. 형을 향한 그리움이 끊이지 않아 실로 내 마음은 애가 탑니다. 아우는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병약한 육신으로 풍상에 시달리면서 유유히 지나온 것이 이제 벌써 60년입니다. 죽을 날이 문득 임박하려 하건만 평생에 걸친 지업(志業)은 이룬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장성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는 새벽이 거듭되기 어렵다."93)라는 구절을 읊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되뇌면서 탄식을 합니다. 다만 손자를 가르치는 것이 만년에 심사를 기탁하는 일이지만 이것 역시 지금껏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영포(令抱 상대방의 손자)는 근래 학업의 성취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뛰어난 경지로 나아가 내옹(乃翁 그의 아버지)이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에 위안을 주리라고 생각됩니다. 대체로 학문을 좋아하는 인가(人家)의 어린아이가 매우 드문 것은 왕왕 모두 온갖 세상 경험에 이끌리기 때문이니 애석합니다. 白首落落。每切沈隱候同衰之歎。而況此歲序改易之際。其爲懷想。尤爲何如哉。兄書可謂先獲我心。而亦未嘗不以未能先修歲問之禮爲愧愧也未審老境頤養百度節宣。與歲益新。憧憧懸往。實勞我心。弟殘喘病骨。悠悠捱過於風霜侵凌之餘者。今已六十光陰矣。桑楡之日。奄奄將迫。而平生志業。所就者何事。每誦盛年不重來。一日難再晨之句。不覺三復慨然。只有敎誨兒孫。是爲晩年寓懷之一事。而亦未見其有可意處。未知令抱近來造業果何如。想日趨佳境。而有以慰乃翁期望之意者矣。大抵人家少年有嗜學之意者。甚鮮。往往皆爲世味所引將去。可惜。 박인여(朴仁汝) 인여는 박준각(朴準珏, 1846∼1908)의 자이다. 본관은 밀양, 호는 정재(靜齋)이다. 심 은후(沈隱侯) 은후는 남조(南朝)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시호이다. 그의 〈별범안성(別范安成)〉 시는 "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 하기 쉽더니. 그대와 함께 늙은 지금 이 시절, 더 이상 헤어질 때가 아니라네. 한 잔 술이 별거냐고 말하지 마시오, 내일 다시 이 술잔 잡기 어렵다오. 꿈속에 찾아갈 길 알지 못하니, 무슨 수로 그리움을 달래리오.【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尊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이다. 《古今詩刪 卷9 梁詩》 장성한……어렵다 도잠(陶潛)이 지은 〈잡시(雜詩)〉 12수(首) 가운데 첫 번째 시 말구(末句)의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있기는 어려워라. 제 때에 미쳐 마땅히 힘써야 하나니, 세월은 사람 기다려 주지 않는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古文眞寶前集 卷2》 이 〈잡시〉 12수는 도잠이 50세 때 지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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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여에게 답함 答朴仁汝 고인은 함께 노쇠해가는 나이94)를 이별할 때가 아니라고 했건만, 우리 두 사람의 쓸쓸함은 어찌하여 이리도 심하단 말입니까. 서쪽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자면 매번 서운함이 절실하였는데, 한 통의 서신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봉투를 열고 여러 번 읽었더니 자리를 함께하여 정담을 나누는 것을 대신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어떠한 위안이 이와 같겠습니까. 인하여 정양(靜養)하는 형의 체후는 시절에 맞게 원기가 왕성하심을 알았으니 더욱 제가 듣기를 바라던 바에 부합하였습니다. 다만 슬하(膝下)가 요절했다니 듣고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으니 마음을 너그럽게 갖기만 바랍니다. 영포(令抱)는 어린 나이에 학문을 하니 크게 발전하여 만년의 애틋한 정과 회포를 기탁하기에 충분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아우는 정력이 쇠약해지고 먹는 것도 줄었으며 일상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종종 견딜 수 없어 그저 스스로 딱하고 가엽게 여길 따름입니다. 사람이 벗들의 도움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젊었던 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육신이 쇠약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 시절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댁의 족숙(族叔)인 우인옹(愚忍翁)95)께서 세상을 떠난 뒤로는 외롭고 쓸쓸한 처지가 되어 의지할 상대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늙어서 이루는 학문의 공과 뒤늦게라도 수습하는 효과를 1만 분의 1이나마 기대했던 것도 모두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인옹(忍翁)의 가문에 또 우리 노형 같은 현자(賢者)가 있어서 저를 버리지도 않고 비루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특별히 아껴주고 가엽게 여기면서 이처럼 지극하게 여러 가지로 일깨워 주리라고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늘의 뜻이 과연 저에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끝까지 두터운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古人以同衰之年。謂非別離時。而吾兩人落落。何若是其甚耶。瞻望西雲。每切悵然。一書眞望外也。披玩三復。足以代一席之款洽。何慰如之。因審兄靜養體節對時衛重尤協願聞但膝下夭戚聞之驚愕。然已屬過境。幸爲之寬心也。令抱少年爲學。想長進。而足以寄晩年情懷否。弟精力衰脫。飮啖減損。日用撞着。往往有不能堪耐處。只自悶憐而已。人不可無朋友之助。在少時猶然。況衰頹昏忘之日乎。自尊族叔愚忍翁逝去後。踽踽凉凉。無所聊賴久矣。昞燭之功。收桑之效。所以期希於萬分之一者。亦不免都歸於先天。誰知忍翁一門之內。又有賢如我老兄者。不棄不鄙。而特加愛矜。種種提警之若是其至乎。未知天意果爲之假我數年。以能終受厚惠否也。感感罔喩。 함께 노쇠해가는 나이 주 65) 참조. 우인옹(愚忍翁) 우인은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의 호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학중(學中)이다. 문집으로 ≪우인당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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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의 노래. 극재 강우 호영 에게 주다 啞而聾歌.贈克齋姜友【浩永】 그대는 귀머거리가 되고 난 벙어리가 되니 君爲聾兮我爲啞두 사람이 합쳐 농아가 된다네 兩人合作啞而聾사람들이 말하기를 농아가 될 수 있다면 人言成得啞聾時보신함이 못에 숨은 용처럼 좋다고 하네 保身正好蟄淵龍내 생각건대 이 말은 결코 그렇지 않으니 我謂此言絶不然병든 몸이 어찌 편안하고 길하게 되리오 病軀安有康吉逢어찌 국사인 예양이 진짜 벙어리였겠는가509) 全啞何曾豫國士어찌 당나라 대종이 참으로 귀머거리였으랴510) 眞聾豈是唐代宗침묵 지켜 말 없음은 뜻이 어찌 그리 깊은가 含黙無言意何深들어도 못 들은 척함은 내면이 실로 총명해서라오 聽若不聞內實聰이 재상은 무구포란 좋은 이름이 있었거니와511) 李相美號無口匏허승은 귀가 어두운 게 무슨 문제가 되었던가512) 許丞何傷聽或重마땅히 일상에서 응대하는 사이에서 應於日用應接間본디 묘술을 가지고 조용히 처해야 한다네 自有妙術處從容어찌 참으로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어 豈云眞成啞與聾난세 속에 아무 근심 없다고 자랑하리오 詑道無虞亂世中아아 우리들은 모두 노년이 되어 嗟哉吾儕俱晩暮하나는 기가 막히고 하나는 풍이 들었네 一爲氣閉一中風그대는 육순으로 장수할 조짐이 있으니 君猶六旬爲壽徵온갖 병에 걸려도 나보다 길게 살리라 嬰百病長我耋從질병이 오는 건 성인도 면치 못하니 疾病之來聖不免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할 필요 없다오 不須悲歎仰蒼空다만 남은 생애에 마음을 어둡게 하지 말지니 但要餘日心莫昏이와 같다면 농아가 다시 늙은 용종513)이 되리라 啞聾還他老龍鍾 君爲聾兮我爲啞, 兩人合作啞而聾.人言成得啞聾時, 保身正好蟄淵龍.我謂此言絶不然, 病軀安有康吉逢?全啞何曾豫國士? 眞聾豈是唐代宗?含黙無言意何深? 聽若不聞內實聰.李相美號無口匏, 許丞何傷聽或重?應於日用應接間, 自有妙術處從容.豈云眞成啞與聾.詑道無虞亂世中?嗟哉吾儕俱晩暮, 一爲氣閉一中風.君猶六旬爲壽徵, 嬰百病長我耋從.疾病之來聖不免, 不須悲歎仰蒼空.但要餘日心莫昏, 啞聾還他老龍鍾. 어찌……벙어리였겠는가 전국 시대 진(晉)나라의 예양(豫讓)은 지백(智伯)에게 국사(國士)의 대접을 받았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죽이자,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처럼 변신하고, 숯을 삼켜 벙어리 행세를 하여 조양자를 죽이고자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어찌……귀머거리였으랴 당나라 대종(代宗)이 일찍이 곽자의(郭子儀)에게 "어리석지 않고 귀먹지 않으면 가장 노릇을 하기 어렵다.[不痴不聾, 不作家翁.]"라고 말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資治通鑒 卷224 唐代宗 大歷2年》 이(李) 재상은……있었거니와 무구포(無口匏)는 아귀가 없는 조롱박이라는 뜻으로,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의 명재상인 이항(李沆)이 매우 과묵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무구포'라 불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허승(許丞)은……있었거니와 허승은 허씨(許氏) 성을 가진 현승(縣丞)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순리(循吏)인 황패(黃霸)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을 때, 독우(督郵)가 허승이 늙고 병들어 귀가 어둡다는 이유로 쫓아내려 하자, 황패가 "허승은 청렴한 관리이다. 비록 늙었지만 아직도 절하고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으니, 귀가 어두운 게 무슨 문제가 되었는가.[許丞廉吏, 雖老尙能拜起送迎, 正頗重聽何傷?]"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용종(龍鍾) 원래 사람이 늙어서 대나무 가지와 잎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형용한 말로, 대나무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공죽장부(邛竹杖賦)〉에 "풍상을 겪어 고색을 띠고 이슬에 젖어 얼룩무늬가 깊으니, 매양 용종의 족속과 더불어 자취를 감춘다.[霜風色古, 露染斑深, 每與龍鍾之族, 幽翳沈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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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련의 〈자극궁〉522) 시에 차운하여 족손 성철에게 주다 次李靑蓮紫極宮詩, 贈族孫炅喆 청련(靑蓮)의 〈자극궁(紫極宮)〉 시는 49세에 지어졌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도 모두 49세에 차운시(次韻詩)를 지었다. 이것은 전인(前人)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지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우암(尤菴) 송 선생(宋先生 송시열(宋時烈))과 선사(先師) 간옹(艮翁 전우(田愚))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이 시를 차운한 때가 우옹(尤翁)은 69세에 있었고, 간옹은 39세에 있었다. 비록 전인을 모방하지는 않았지만 9세에 차운한 것은 어째서인가? 나는 56세에 이미 이 시를 차운하고 스스로 진의(眞意)가 초연(超然)하다고 자랑했었다. 지금 족손 성철(炅喆)이 나에게 글을 지어주기를 요청하였는데, 우연히 이 시가 생각나 여덟 운자(韻字)를 따라 지어 주고, 또 한 편을 차운하여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때 마침 내 나이는 69세이고, 성철의 나이는 39세였다.도량은 바다와 강처럼 드넓고 胸量如海河지조는 소나무와 대나무와 같구나 志節同松竹도는 커서 천지 사방에 가득 차는데 道大彌六合거두어들이면 한 줌도 되지 않는다오 卷之不盈掬이렇게 좋은 지조와 도량을 가지고 將此好志量도에 의지하여 홀로 우뚝 서고 依道卓立獨의리로 바른 길을 삼으며 義以作正路인으로 귀착지를 삼아야 한다네 仁以爲歸宿군의 나이는 강사523)에 가까우니 君年近强仕실학에 힘씀을 짐작할 수 있다오 實學從可卜우선은 궁리를 다하는 데 힘쓰고 先務致窮理종국에는 극기복례에 달려 있다네 究竟在克復남은 인생이 저물어 감을 근심하지 말고 莫憂餘日晩한 삼태기 흙으로 공을 무너뜨리지 말라524) 毋虧一簣覆-한 구가 빠졌다.-군을 위해 깊이깊이 생각했다오 爲君思之熟-성철에게 준 시이다.-쇠약함은 가을 뒤의 파리와 비슷하고 弱似秋後蠅올곧음은 눈 속의 대나무와 같다오 貞同雪中竹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늙은이는 不生不滅翁근심이 쌓여 한 움큼의 눈물을 이루는구나 憂集成一掬학문은 남들에게 선을 미치지 못하고 學不善及衆도는 독선(獨善)에 나아감을 깨닫지 못하였네 道未覺進獨나이가 육십 세가 넘었지만 行年餘六十아직도 귀착지를 정하지 못했다오 尙遲定歸宿곧은 도를 행해야 할 뿐이니 但要直道行길흉을 함부로 점치지 말라 吉凶莫謾卜일찍이 옛 도를 홀로 행한다는 말525)을 들었고 曾聞獨行舊또한 음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옴526)을 사모했다오 亦慕中行復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으니 前頭無幾日한 번 나아가면 번복하지 말지어다 一進無反覆인을 행함이 익숙하지 못하면 爲仁如未熟익은 피만도 못한 꼴이 되리라527) 不若稊稗熟-스스로를 경계한 시이다.- 靑蓮《紫極宮》詩, 作於四十九歲, 故後人亦皆作於四十九歲.此不過效嚬前人, 非有義意也.惟尤菴宋先生、先師艮翁則不然, 其次此詩, 尤翁在六十九, 艮翁在三十九.雖不效嚬, 猶於九歲何也? 余於五十六歲, 已次此詩, 自詑眞意超然矣.今於族孫炅喆之求言也, 偶念此詩, 步其八韻而贈之, 又次一篇以自警.時適余年六十九, 炅喆三十九.胸量如海河, 志節同松竹.道大彌六合, 卷之不盈掬.將此好志量, 依道卓立獨.義以作正路, 仁以爲歸宿.君年近强仕, 實學從可卜.先務致窮理, 究竟在克復.莫憂餘日晩, 毋虧一簣覆.【一句缺】 爲君思之熟.【贈炅喆】弱似秋後蠅, 貞同雪中竹.不生不滅翁, 憂集成一掬.學不善及衆, 道未覺進獨.行年餘六十, 尙遲定歸宿.但要直道行, 吉凶莫謾卜.曾聞獨行舊, 亦慕中行復.前頭無幾日, 一進無反覆.爲仁如未熟, 不若稊稗熟.【自警】 이청련(李靑蓮)의 자극궁(紫極宮) 이청련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으로, 청련은 그의 호이다. 〈자극궁〉은 이백의 〈심양자극궁감추작(尋陽紫極宮感秋作)〉 시를 가리킨다. 《李太白集 卷23》 강사(強仕) 나이 40세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말라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뜻으로, 《서경》 〈여오(旅獒)〉에 "아홉 길 높이의 산을 만들 적에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공이 무너진다.[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옛……말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음(陰)……돌아옴 《주역》 〈복괘 육사(六四)〉에 "음(陰)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오도다.[中行. 獨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소인들이 득세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외롭게 분투하며 바른길을 따르는 것을 뜻한다. 인(仁)을……되리라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오곡은 종자의 아름다운 것이지만 익지 않으면 피만도 못하니, 인 또한 그것을 익숙히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五穀者種之美者也, 苟爲不熟, 不如荑稗, 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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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5년(헌종 11)에 왕이 김응상을 절충장군 행용호위부호군으로 임명하며 내려 준 교지 1845년(헌종 11) 1월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호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절충장군은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무신 정3품 상계(上階)이다. 용호위부호군은 종4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자(行字)를 적었다. 행수법에 따르면, 품계가 높고 관직(官職)이 낮으면 관직명 앞에 행을 썼고 그 반대로 품계가 낮고 관직이 높으면 관직 앞에 수(守)를 썼다. 이를 각각 계고직비(階高職卑)와 계비직고(階卑職高)라고 하였다. 김응상의 부호군(副護軍) 임명 사실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45년(헌종 11) 1월 11일조에 "兵批 判書趙冀永病 參判李同淳病 參議金{金+弼}直進 參知李時愚病 同副承旨鄭基世進 護軍閔致成 副護軍金膺相 副司直鄭鎏朴文? 副司果沈熙淳尹行謨金羲裕鄭漢然 副司正尹喜臣 以上竝單付"라고 실려 있는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김응상은 위 부호군에 임명되고 같은 달, 즉 1845년 1월에 다시 고신을 받게 된다. 이때 그가 받은 관직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이었다.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 김양묵(金養黙)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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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二月 日 哲宗 金膺相 咸豐五年二月 日 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 1855년(철종 6) 2월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동지중추부사는 중추부(中樞府)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官職)이며, 오위장(五衛將)은 오위(五衛)의 군사를 거느리던 정3품의 무관직(武官職)이다. 김응상의 임명 사실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55년(철종 6) 2월 28일조의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한편, 김응상이 가선대부로 임명될 때, 그의 선대 어른들에게는 추증(追贈)교지가 주어졌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증조부(曾祖父) 김덕렴(金德濂)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사정(司僕寺正)으로 추증되었고, 조부(祖父) 김도명(金道明)은 통훈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으로, 아버지 김명하(金命河)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으로 추증되었다. 또한 김응상의 증조모(曾祖母) 유인(孺人) 정씨(鄭氏)는 숙인(淑人)으로, 조모(祖母) 유인 김씨(金氏)와 유인 이씨(李氏)는 숙부인(淑夫人)으로, 어머니 유인 박씨(朴氏)와 유인 유씨(柳氏)는 정부인(貞夫人)으로 각각 추증되었다. 그리고 김응상의 처(妻) 숙부인 양씨(梁氏)와 임씨(林氏)도 모두 정부인으로 봉작(封爵)되었다.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 김양묵(金養黙)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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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그믐날 六月晦日 한 기운이 무궁하여 사방381)으로 퍼지고 一氣無窮遍四遊저 물처럼 흘러가는 것382)을 탄식하네 却歎逝者若斯流일년도 절반이 되어 세 달 여름 지났고 半分周歲經三夏내일 아침이 되면 또 초가을이로구나 纔到明朝又早秋일천 나뭇잎들 우수수 시들어 지고 颯颯凋來千樹葉몇 사람의 머리가 성성한 백발될까 星星白盡幾人頭봄이 가면 상심 많다고 누가 말했나 誰云春去多怊悵부질없이 이제야 배나 슬피 깨닫네 懸覺如今一倍悲 一氣無窮遍四遊, 却歎逝者若斯流.半分周歲經三夏, 纔到明朝又早秋.颯颯凋來千樹葉, 星星白盡幾人頭.誰云春去多怊悵, 懸覺如今一倍悲. 사방 원문의 '사유(四游)'로 사방의 끝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대지와 별이 사계절에 따라 동서남북 4극(極)으로 옮겨 다닌다고 믿었다. 《禮記 月令 注》 저 …… 것을 공자가 물가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도체(道體)의 유행(流行)이 흐르는 물처럼 다함이 없는 것을 느껴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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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훈대부 한성부 판관 김공 묘지명 通訓大夫漢城府判官金公墓誌銘 공의 휘는 성준(成俊), 자는 시응(時應), 호는 금계(錦溪)이다. 김씨(金氏)의 본관은 광산(光山)인데, 신라(新羅) 왕자 휘 흥광(興光)이 지파(支派)의 시조가 된다. 이로부터 12대에 이르기까지 고려에서 모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휘 류(流)에 이르러 감찰 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덕룡(德龍)은 대사헌을 지냈으며 휘 신좌(信佐)는 공조 판서를 지냈고, 효충(孝忠)은 관직이 홍문관 응교를 지냈는데, 모두 본조에 들어온 이후의 현조(顯祖)이다. 고조는 휘 치섬(致銛)인데, 진사이고, 증조는 휘 철(轍)인데, 생원이다. 조부는 휘 정언(廷彦)인데, 생원이고, 부친은 휘 홍(洪)인데, 첨중추부사이다. 모친은 완산 이씨(完山李氏)로, 생원 이학(李鶴)의 따님이다. 명종 임자년(1552, 명종7)에 나주(羅州) 장원도(壯元洞) 옛집에서 공을 낳았다.공은 성격이 조용하고 풍도가 고결하여 많은 사람 속에서 운학(雲鶴)처럼 무리와 견주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어려서 아이들과 물건 파는 놀이를 하였는데, 어른이 꾸짖어 말하기를, "옛날 맹자(孟子)가 이 놀이를 할 적에 학궁(學宮)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아마 장돌뱅이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어찌 맹자가 되었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이 듣고 개연히 물리치고 더이상 장난하지 않고 마침내 책을 가지고 서당에 나아가 날마다 수업을 받았다. 영특한 자질로 더욱 독실하게 노력하고 계속하여 매진하니 문장이 넉넉하고 시원하여 훌륭하다는 명망이 당대에 자자하였다.병자년(1576, 선조9)에 문과에 급제하고 갑술년(1574, 선조7)에 주서(主書)에 제수되었다.32) 정축년(1577, 선조10)에 외직으로 나가 강화부 경력(江華府經歷)이 되었고, 임오년(1582, 선조15)에 내직으로 들어와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이 되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모두 청렴하고 신중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공의 중씨(仲氏) 좌랑공(佐郞公)이 일찍이 연이어 당화(黨禍)를 입어 제명에 죽지 못하였기에 공이 늘 통한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때에 이르러 당론이 성행하여 조정이 안정되지 않으니, 공이 스스로 과거의 일을 깊이 교훈으로 삼고는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채 날마다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았다. 일찍이 시를 짓기를,등나무 덩굴 비추던 달빛 사랑스러우니 愛藤蘿月아름다운 자태 옛 모습 드러내네. 娟舊面開남은 생 얼마나 될까 生能幾許시절의 경물 재촉하지 말라. 時物莫相崔하였으니, 여기에서 그의 뜻을 알 수 있다.어버이를 섬기는 효성에 있어서는 간병(看病)할 적에 지극히 근심 하여 밤에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슬픔이 절도를 넘었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출사하여 군주를 섬길 적에는 한결같이 정성스럽고 미덥게 하여 주저하거나 구차한 마음이 있지 않았다. 기미를 보고 용기있게 결단하여 바닷가 산골 마을 고요한 곳으로 멀리 떠나 성내지 않고 근심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지내면서 한평생을 마쳤다. 일관된 의리와 출처의 절도는 먼 후대에서도 늠름하게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심을 갖게 할 것이다.경신년(1620, 광해군12) 10월 13일에 졸하였다. 나주의 세동(細洞) 왼쪽 산기슭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하동 정씨(河東鄭氏)로, 정수(鄭琇)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극윤(克潤)으로 훈련원 주부이고, 차남은 방윤(邦潤)으로 통정대부이다. 딸은 원윤(裵元胤)에게 출가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위(煒), 차자의 아들은 오규(五圭), 중규(重圭),신규(信圭), 환규(桓圭), 참의(參議)에 추증된 만규(萬圭)이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10세손 영하(永夏)가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다음과같이 명을 짓는다.은미함도 알고 드러남도 아는 것 知微知彰고인도 어렵게 여겼네. 古人所難벼슬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投緩還山가난한 생활을 즐거워하였네. 樂我瓢簞등나무 덩굴 비추던 달빛 藤蘿之月호해의 기개가 있는 벗일세. 湖海之友시와 술로 날을 보냈으니 文酒日夕그 풍류와 운치 상상할 수 있네. 風韻可想 公諱成俊。字時應。號錦溪。金氏本光山人。新羅王子諱興光爲分系之祖。自此至十二世。在麗朝。皆官平章事。至諱流。官監察御史。諱德龍。官大司憲。諱信佐。官工曹判書。諱孝忠。官弘文應敎。皆入我朝以後顯祖也。高祖諱致銛進士。曾祖諱轍生員。祖諱廷彦生員。考諱洪僉中樞。妣完山李氏生員鶴女。明宗任子生公于羅州之壯元洞舊第。性氣恬靜。風儀高潔在稠人中。如雲鶴之在難群。幼而與群兒戱爲沽衒。長老責之曰。昔孟子作此戱。若非學宮之敎。幾不免爲市賈之人。何以爲孟子乎。公聞之慨然。絶不復戱。遂挾冊就塾。日受其業。以穎悟之資。加篤實之力。接續征邁。贍富宏暢。令聞令望。藉藉一時。丙子擢文科。甲戌除注書。丁丑出爲江華府經歷。壬午入爲漢城府判官。所至皆以淸謹見稱。公仲氏佐郞公。嘗連累於黨禍。未得考終。公常痛恨之。至是黨論盛行。朝家不靖。公深自懲毖。遂棄官歸鄕。杜門斂迹。日以文酒自娛。嘗有詩曰。可愛薦蘿月。娟娟舊面開。餘生能幾許。時物莫相催。此可以見其志矣。事親至孝。侍疾致憂。夜不解帶。執喪哀戚過節。見者釀涕。出身事君。一於誠信。未嘗有依違苟且之意。及其見幾勇決。而遐擧遠引於海山閒寂之濱。不慍不悶。聊以卒歲。其終始之義。出處之節。百世之下。凜凜然令人起敬。庚申十月十三日卒。葬羅之細洞左麓子坐原。配河東鄭氏琇女。生二男一女。男長克潤。訓鍊主簿。次邦潤。連政。女適裵元胤。長房孫煒。二房孫五圭重圭信圭桓圭萬圭。贈參議。曾玄以下不錄。十世孫永夏抱家狀來。謁誌墓之文。銘曰。知微知彰。古人所難。投緩還山。樂我瓢簞。藤蘿之月。湖海之友。文酒日夕。風韻可想。 병자년에……제수되었다 원문에는 '丙子擢文科甲戌除主書'로 되어 있다. 문맥에 근거할 때 병자와 갑술의 간지가 바뀐 듯하다. 갑술년에 급제하고, 병자년에 주서가 된 듯하나, 일단 원문대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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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秋旅【金大源】 秋旅今何去。超然謝俗群。論經多入室。弄筆足張軍。棄似功名屣。看同富貴雲。生前無限癖。地下倘修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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