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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김명식(金明植)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巳三月 金明植 城主 癸巳三月 金明植 全州府 전라북도 전주시 [着押] 1개 1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2_01_A00006_001 계사년 3월 김명식(金明植)이 전주부사(全州府使)에게 올린 소지로 권문숙(權文叔)이 서울의 재상가를 가탁한 죄를 묻고 그가 치표한 곳을 훼파해달라는 내용. 계사년 3월에 북일면 항가산리(北一面 恒佳山里)에 사는 화민 김명식(金明植)이 전주부사(全州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명식은 자신의 5대조 선산이 남일면 고치(南一面 高峙)에 있어서 백여 년 동안 금양수호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본면(本面)에 사는 상인(喪人) 권문숙(權文叔)이 서울 회동(會洞)에 사는 박참판댁 치표처라고 가탁하여 밤을 틈타 몰래 매표하였고, 이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에서 엄한 판결을 내려 권문숙을 잡아들이고, 권문식이 서울의 재상가를 가탁한 죄를 다스리는 한편, 그가 치표한 곳을 속히 훼파해달라고 청하였다. 전주부사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권문숙을 잡아오도록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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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一面恒佳山化民金明植右謹言至寃情由民之五世祖山在於南一面高峙禁養守護者百餘年矣不意去十一月良本面永登里居權喪人文叔乘夜埋標於連山官洞金進士置標已掘之處而假托於京會洞朴參判故民月前泣訴則題敎內果是京宰家置標則有難遽掘詳探向事故民其間廣探博問則渠有入葬之意先埋渠標而假托於朴參判者一面所共知也若使朴參判置標于此則必有 官飭白日埋標可也何可乘夜暗標乎且以事理言之雖京宰家置標旣有已掘之處則掘去可也又況假托於京宰者乎言念文塾之罪惡甚於山賊也玆敢粘連前掘文券冒悚泣籲於 孝理明決之下伏乞細細洞燭敎是後特下 嚴題同文叔發差捉致先爲毁其所謂置標而嚴治其假托京宰之罪使此殘民得保數百年守護之先壠千萬泣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巳三月 日(題辭)査實掘標次權文叔捉待事初五日狀官 [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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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儒生李煥晶等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伏以人之爲人大綱有三是綱也建諸天地而不悖彌亘億萬世而長在鍾於人而爲忠孝烈是皆倫理之常經人道之盡處而至於烈則三者之中㝡所尤難者也是以往古來今罕有其人雖或有之必在於城崩蒼黃之際或出於危急存亡之時輒少以禮從容之道故雖其節行之可尙猶失於禮經之訓旨而迺若叔季今日以卑微家婦▣…且妙淺而處於變而能盡禮經之旨殉於義而不失從容之道卓卓烈烈之行求諸往古無與爲儔則其出天秉彝之性不可以愚婦而奪之也況今聖上御極如日中天無幽不燭無冤不闡褒賞之典荐降於比年而扶植秉彝之化遠及於鄕曲之愚婦而然也歟本府故同知張文澤妻具氏本以寒微家人于歸張門能執▣婦之道奉祀以禮事夫以敬閨門之內懿範夙著至於兄弟宗族皆以誠信應對自在敦睦中和氣而每爲里閈之所稱許不幸去正月奄遭夫君之喪一聲號哭輒絶而僅甦反若居常似無罔極慟殞之狀送終凡具躬自爲之無有遺感殯斂之後至于襄日不梳不洗{髟/火}蓬而面墨自晝至宵頭經而身麻晨昏哭朝夕上食一遵古制儼然若知禮家婦人及其襄奉之後家事巨細曲盡措處至於奴僕恩以撫之善以處之無一寃欝乃決日矢死而其死則已自初終時刻意也初以五月十五日定自處之期故宗族善辭而觧之婢僕胥飭而守之則婉辭以語曰吾雖一愚婦三從大義已決於一片中心云而了無哀慽之形矣及夫是期適遭媤屬之喪慽顧語親戚曰今日卽吾矢歸之日而意外此喪先出於一門之內吾若今死則此家之景境倘如何哉吾身之死別無早晩也其後以今月初七日再定決歸之歸而前期數日灑掃庭宇沐浴潔身身後之事次第付度於媤叔當於是日潔具酒果哭訣於靈位衣裳一襲製新改着因邀宗族終日穩話迨暮則明燭寢室肆筵設褥欲使座上諸人各歸於家一室之人已知氷霜之志雖不可奪矜憐姸質之自處欲爲禁防而不肯以歸溫溫婉語使人無疑居然之頃嘔吐之聲出於外故驚惶入視藥已入口器亦在傍但如縷之音微出喉間而願言夫君速與同歸此言纔訖已無及矣嗚呼一府之人皆嘖嘖而歎曰卓卓哉具氏之行也哉具氏之義也以妙少婦女何其自處之盡道也以卑微婦女何其決歸之從容也古之烈婦非曰不多而矢死而決日者惟具氏而已昔之烈行非曰不美而盡禮而殉義者惟具氏而已亡夫喪葬盡誠而奉之身後凡事盡節而處之再定自處之日而不失其期而必殉烈烈其光可謂建天地不悖亘萬世長在也生等瞻聆所及不覺聳歎以一府人所共稱誦語略陳梗槩伏願 閤下採擇卓異之行勿以循例 題下且其子婦李氏往在丁亥爲夫殉烈狀卷成軸而今此二烈萃於一室更伏願幷爲啓聞之地謹冒昧以陳壬辰六月 日鄕校多士幼學李煥晶 柳錫祚 黃纘源 李宗爕 任南白 李怙永 柳錫洪 朴景煥 李相濡 李啓馨 金箕成 李鳳廷 宋仁煥 李晉烈 金天鑑 黃濟黙 鄭濟淵 李始一 鄭大榮 吳 憲 柳謂源 洪有慶 金學彬 崔致洵 李命九 朴明煥 李莢倫 宋相春 鄭履基 李光濂 梁 鉉 鄭陽來 柳元養 金啓哲 崔始永 李在九 梁潤德 金永玉 等使[着押][題辭]前狀▣…有嘉歎之題矣今見此狀莫知大同之公議從當有褒揚之時事十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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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전주부유생(全州府儒生) 유석조(柳錫祚)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辰六月 日 幼學柳錫祚 鄭 淙 黃纘源 城主閤下 壬辰六月 日 柳錫祚 全州守令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유석조(柳錫祚) 등 35명이 고을의 수령에게 올린 상서(上書).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유석조(柳錫祚) 등 35명이 고을의 수령에게 올린 상서이다. 작성연대가 임진년으로 적혀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해 이를 1832년으로 추정하였다. 유생들은 이 상서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서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지만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부도(婦道)를 공경히 지키고, 예(禮)로써 제사를 받들고 집안에서는 그 범절이 뛰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흔히 열부(烈婦)가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것은, 상을 당하여 급박한 때이거나 형편이 어쩔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구씨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구씨는 슬픔을 억누르고 모든 것을 마련하여 예에 따라 조처했으며 집안일에 서운한 데가 없게 하였으며, 가난한 친족들을 두루 도우며 의로움을 베풀며 서로 화목하게 지냈으며, 죽는 날짜를 정하여 꼭 그 날짜대로 약속을 지켰다. 구씨의 자부 이씨(李氏)는 지난 정해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정려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주의 유생들은 이들 고부(姑婦)의 열행을 영문(營門)에 알리고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전주의 성주는 이에 대하여 그 내용이 이전에 올린 면보(面報)와 동장(洞狀)에 다 실려 있는 바, 그 열행이 참으로 뛰어나지만 다시 널리 공의(公議)를 수렴하여 올리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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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전라도유생(全羅道儒生) 이중희(李重曦)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申七月 日 道內儒生幼學李重曦任基白李祜永 巡相閤下 丙申七月 日 李重曦 全羅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着押] 2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6년(헌종 2) 7월에 이중희(李重曦) 등 전라도 내 각 지역의 유생들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상서(上書). 1836년(헌종 2) 7월에 이중희(李重曦) 등 전라도 내 각 지역의 유생들이 순상(巡相) 즉,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병신년으로 적혀 있으나, 관련문서를 통해 이를 1836년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문서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왼쪽 면이 잘라져 있어서 연명자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유생들은 이 상서에서 전주(全州)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서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부도(婦道)를 공경히 지키고, 예(禮)로써 제사를 받들고 집안에서는 그 범절이 뛰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진년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는 18세 때 장문택의 아들 장유혁(張有爀)에게 시집을 와서 정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도리를 다하여 집안을 다스렸다. 뒤에 불행하게도 남편이 이상한 병에 걸렸을 때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밤낮으로 부축하며 병 구완을 하였으며, 남편이 운명하려고 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마시게 하여 며칠을 연명할 수 있었다. 남편이 운명하자 정성과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유복자인 어린 딸뿐이었지만, 그마저도 3년이 못되어 요절하자 이씨는 살아갈 희망을 잃고는 곡기를 끊고 채 열흘이 못돼서 죽고 말았다. 지난 정해년에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으니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태인, 고부, 곡성, 옥과 등 전라도 내 각 지역의 유생들이 뜻을 모아 순상에게 글을 올려 두 사람의 열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순상은 이에 대하여 고부의 열행이 참으로 가상하지만, 다시 널리 열행을 모아 관에 알리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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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전라도유생(全羅道儒生) 이석채(李錫采)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申八月 日 全羅道儒生幼學李錫采柳奎輔宋仁煥 大宗伯閤下 丙申八月 日 李錫采 禮曹判書 전라북도 전주시 禮曺[着押] 2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6년(헌종 2) 8월에 이석채(李錫采) 등 전라도 각 지역의 유생 여러 명이 대종백(大宗伯), 즉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올린 상서(上書). 1836년 8월에 이석채(李錫采) 등 전라도 각 지역의 유생 여러 명이 대종백(大宗伯), 즉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올린 상서이다. 문서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왼쪽이 훼손되어 연명자의 상당수를 알 수 없으며, 제사[題辭]의 뒷부분도 훼손되었다. 그리고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병신년으로 적혀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해 이를 1836년으로 추정하였다. 유생들은 이 상서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서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부도(婦道)를 공경히 지키고, 예(禮)로써 제사를 받들고 집안에서는 그 범절이 뛰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임진년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남편을 따라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구씨의 며느리 이씨(李氏)는 18세 때 장문택의 아들 장유혁(張有爀)에게 시집을 와서 정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도리를 다하여 집안을 다스렸다. 뒤에 불행하게도 남편이 이상한 병에 걸렸을 때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밤낮으로 부축하며 병 구환을 하였으며, 남편이 운명하려고 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마시게 하여 며칠을 연명할 수 있었다. 남편이 운명하자 정성과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유복자인 어린 딸뿐이었지만, 그마저도 3년이 못되어 요절하자 이씨는 살아갈 희망을 잃고는 곡기를 끊고 채 열흘이 못돼서 죽고 말았다. 이에 원근의 유생들이 공의를 수렴하여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이씨에게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지만 아직 정려를 받지 못했다. 이에 전라도 각처의 유생들은 다시 공의를 모아 예조판서에게 상서를 올려 두 고부의 열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조판서는 고부의 열행이 참으로 감탄스럽다고 하였지만, 문서의 훼손으로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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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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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8년 기우만(奇宇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寅九月六日 奇宇萬 管村 戊寅九月六日 奇宇萬 管村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78년(고종 15) 9월 6일에 월송(月松)에 사는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모인에게 보낸 서간(書簡). 1878년(고종 15) 9월 6일에 월송(月松)에 사는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옛사람(李白)이 오주(吳洲)에서 달을 보거든 천리 밖에서 나를 생각하기 바란다고 한 것이나, 상대방이 서석(瑞石)에 비유한 것은 다 같이 서로를 깊이 생각함을 이른 것이라면서, 상대방의 동생이 방문하여 전해 준 편지를 보니 경서(經書)에 더욱 참맛을 얻었음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조부의 환후가 오래 낫지 않고 어머니도 여름 석 달을 앓고 계시니 애가 타고, 또한 토목공사로 번민스럽다고 하였다. 기우만은 장성 황룡면 하사(下沙), 갈전(葛田), 하리 월송(月松, 지금의 진원면 고산리)로 거처를 옮겼다. 하사에서 살다가 새로 월송에서 살았다 하여 송사(松沙)로 자호(自號)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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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冠村靜座執事月松謹謝古人以吳洲之月爲相思之資尊丈瑞石之喩不啻切矣可見相思之深令季氏委訪兼承惠書因審靜裏經味益得眞腴 荷垂 存裏仰慰仰慰生重庭患候長時彌留慈癠浹三夏伏切蕉煎無已又營土木擾惱滿心而已指病不能備謝戊寅九月六日 生奇宇萬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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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조성희(趙性憙)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未九月三十日 趙性憙 菅基 安生員 宅 乙未九月三十日 趙性憙 安生員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HIKS_Z018_01_A00060_001 1895년(고종 32) 9월 30일에 남치(藍峙)에서 조성희(趙性憙)가 관기(菅基)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생원(安生員)에게 보낸 안부 편지. 1895년(고종 32) 9월 30일에 藍峙에서 趙性憙가 菅基에 사는 順興安氏 집안의 安生員에게 보낸 안부 편지. 남치는 현재 화순군(和順郡) 북면 남치리(北面 藍峙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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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告事段氏族之有譜所以尊祖收族合親疏壹近遠之道也苟或於是而有忽則同自出而塗人如也可不懼哉吾宗修譜今爲四十年之久有生長老死而不見於譜者則繼舊譜而重修豈非吾宗今日之急務乎玆以自京宗中先此會議發論後卽爲通告于京鄕 僉宗中以爲重刊之道而苐念舊譜刊行時遠鄕諸派單子多到譜刊已完之後以■■於原譜其所合族之擧反多向隅之歎况今財力不敷尤不可부歲持久幸望 僉宗 諒此事勢派單急速修送俾無後時不及之獘如何凡例條目別錄于 左伏惟 僉宗以此 諒悉而覽通後輪次傳示于同鄕宗中俾無不知不及之歎癸酉閏六月 日發通有司 承旨 東臣叅奉 能瑗郡守 宜朋府使 宜絢判書 承澤碩士 厚澤叅判 舜澤此通文傳達後派系雖不同若居在一鄕姓旣同貫則以此通文專人轉示必勿獨見而항同派則尤當卽速傳示至親之間或分在他鄕不及同見此通則亦隨便相通譜單急急修送事一各派單自本派中定有司收錄攷正成冊于譜所名錢同爲收納事一諸派中有一二家零落他鄕及無識不能錄單者有司一一搜覓攷正俾無漏落舊譜刊行時家無主張不及納單以致漏譜而明有攷據者同爲修單以來事一譜單冊井間依舊譜以七階爲之子女小註書式並依舊譜勿改冊紙長廣依舊譜勿差事一名下錢以冠二兩童一兩排定事一名錢雖入前譜人若生存則與新入人一例排出事一名下錢來納譜所時受宗有司標蹟轉送于掌錢有司如有中間乾沒不納譜所者宗中施罰更徵于本派事一譜役若遷延歲月則非但百獘俱典物力必有不足停止之慮期於甲戌年內竣役計料役事遲速專係譜單收合京畿及近道必於八月內來納遠道以十月爲限若過時則雖見漏不得稱寃事一無譜所文蹟自稱有司往來收錢者勿爲受接査名施罰事一譜所來間于安洞京有司家事右收單條目一名字有犯先諱者已故則依舊譜或省一邊或書半字生存則改名後許錄事一諸派中兄弟行有名同者年卑者改名若年卑者已故則雖年長生存者改名事一雖童子者以冠名載錄勿書兒名事一有名載舊譜而今改者旁註以初名某事一被罪伸雪人書以某年某事被罪某年伸雪一配位四祖及女婿書式並依舊譜書之事一諸派中行列惟燮字最卑其下限十世預定書于卷尾以爲諸派合行之道餘在舊譜凡例一依遵用一仁壽府尹以上派譜單納于譜所縉紳有司以爲攷正事右刊譜凡例縉紳有司判書 承澤叅判 舜澤各派校正有司仁壽府尹公諱澄派典簿公諱鎬派 宜宗叅奉公諱鉉派 宜魯縣監公諱錦派 能弼宜俊祺澤部將公諱安智派 宜吉安孝公諱溫派領樞公諱濬派 東岳學慶在顯益銖監司公諱演派 泳秀牧使公諱友正派 相萬叅議公諱潾派 宜英相琦郡守公諱鐩派 能恒郡守公諱仁謙派 宜弘靑陽君諱義謙派 定澤府使公諱禮謙派 永澤贈正郞公諱智謙派 魯冕府使公諱信謙派 鼎澤忠翼公諱忠謙派 能肯郡守公諱孝謙派 宜中判官公諱悌謙派 能肅同敦公諱逢源派 雨啇都正公諱順道派 種之靑雲君諱命世派 能恪佐郞公諱安世派 能晩貞敏公諱長世派 能晉佐郞公諱挺世派 性澤府尹公諱 棇派 聲澤僉樞公諱 檍派 相駿 [靑松沈氏譜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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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송병선(宋秉璿)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酉三月念日 宋秉璿 安生員 乙酉三月念日 宋秉璿 安生員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85년(고종22) 3월 20일에 원계(遠溪)에 사는 송병선(宋秉璿)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생원(安生員)에게 보낸 서간(書簡). 1885년(고종22) 3월 20일에 원계(遠溪)에 사는 송병선(宋秉璿)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안생원(安生員)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멀리서 보낸 편지를 받고 돌보아주심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마침 성묘 가는 길이라 답장하지 못하여 송구하였다. 농사일도 저물어 가는 때에 삼가 안부를 묻고 계절 따라 만호(萬護)하시기를 바란다. 자신은 항상 심난하고, 이번 달 초에는 친산(親山) 가까운 데로 이사를 하여 번민스럽게 지낸다. 상대방의 동생이 지난번 왔다가 헛걸음하여 편치 않았는데 인편이 있어 급히 사람을 시켜 편지를 쓴다고 하였다. 원계(遠溪)는 충청도 옥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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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安生員宅回納遠溪寓人謹謝嚮蒙遠顧繼以惠問深荷厚眷何日敢忘適値楸行未修謝儀居常悚愴必何可喩書出已久春事向暮謹詢玆者靜候震艮循序萬護旋庸溯仰不任區區記下一味憒憒而月初移築于親山近地擾惱度日良憐奈何 季氏向枉虛歸懷甚缺然愈久靡快因褫忙倩餘不備謝上乙酉三月念日記下秉璿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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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승학(李承鶴)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巳月四日 侍生 李承鶴 戊戌巳月四日 李承鶴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1898년(고종 34) 4월 4일에 이승학(李承鶴)이 모인에게 보낸 서간. 1898년(고종 34) 4월 4일에 李承鶴이 보낸 서간. 상대방이 兩湖지방을 여행한 것과 건강한 것을 축하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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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정하종(鄭河鍾)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辰十月念三日 罪弟鄭河鍾 安斯文德洙氏 壬辰十月念三日 鄭河鍾 安德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1952년 10월 23일에 구례(求禮)에 사는 정하종(鄭河鍾)이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의 안덕수(安德洙)에게 보낸 서간. 1952년 10월 23일에 求禮에 사는 鄭河鍾이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의 安德洙에게 보낸 서간. 정하종은 鄭琦(1879-1950)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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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신기선(申箕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亥復月十二日 申箕善 安碩士 丁亥復月十二日 申箕善 安碩士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87년(고종 24) 11월 12일에 여주(呂洲)에서 신기선(申箕善)이 남원(南原) 관촌(筦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석사(安碩士)에게 보낸 서간(書簡). 1887년(고종 24) 11월 12일에 여주(呂洲)에서 신기선(申箕善)이 남원(南原) 관촌(筦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안석사(安碩士)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궁벽한 시골에 오랫동안 칩거하여 당세(當世)에는 생각이 없으나 항상 호외(湖外) 군자들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았다. 절반을 읽기도 전에 온축(蘊蓄)한 것이 대단하고 은근함을 알만 하였다. 다만 자신을 비유한 것이 적합하지 않고 과분하여 부끄러웠다. 세모에 무료히 책을 보거나 시를 짓고는 있지만, 함께 대화할 사람이 없던 차에 상대방 같은 사람이 논변하고 질문해 주니 가슴 속이 후련하다. 대방(帶方)은 이름난 고장이고 문학지사가 많으며 상대방이 후진을 잘 이끄니 호좌(湖左)의 독서자들은 의뢰할 데가 있다고 하였다. 남원(南原) 관촌(筦村)은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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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安碩士文幌回呈 南原筦村呂洲遷客謝函跧伏窮海久無當世之念而惟常側耳於湖外之君子不自意獲承古道之書披讀未半已知蘊抱之珍非尋常可窺而殷勤存撫及於罪累垂菀之踪信乎仁人之用心也但比擬非倫期望過分讀之悚赧不能自定歲暮天寒憂愁無聊時披塵卷吟哦竟日或有意會而無人與語安得大雅君子如執事者而講辨叩質以豁襟懷也帶方名鄕也多文學之士而有執事爲之講明期道提誘後進則吾知湖左一區讀書者有所依賴矣此私心所喜也可望而不可親臨書耿耿書不盡意統希丁亥復月十二日 累生 申箕善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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