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홍사증의 자설 洪士拯字說 옛적에 소환(蘇渙)의 표덕(表德 자(字))을 처음에는 '공군(公群)'으로 했었는데, 그의 동생 소순(蘇洵)이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루는지라 크게 길하다.[渙其群元吉]"41)에서 뜻을 취하는 것이 다만 "바람이 물 위에 불 때 문양을 이룬다.[風水成文]"라는 뜻을 취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인하여 '문보(文甫)'로 바꾸었다.내가 살펴보건대, 바람이 물 위에 부는 때를 만나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단지 그 문양만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만물이 흩어져 달라지지만 유행은 합쳐져 같게 되고, 억조창생이 지극히 많지만 정신은 감응하여 모이며, 예의(禮義)가 매우 많지만 모두 상세히 알아 통달하는 것은 또한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룬다는 뜻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군자가 하루라도 힘쓰지 않는 것이겠는가. 한가로이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오히려 화방(畫舫)을 명(銘)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데42), 하물며 흩어지는 때를 만나 어려움을 사양한 채 스스로 편안히 지낼 수 있겠는가.지극한 보배가 깊은 곳에 있거든 배를 타는 괴로움을 꺼려하지 않아서 솜으로 물이 새는 것을 대비하고 밧줄로 짐을 고정해 두면 하룻밤 봄물이 불어나는 때에 이르러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몽충(蒙衝) 같은 큰 전함이 하나의 터럭만큼이나 가볍게 떠 갈 것이니, 홍수나 큰 하천을 건너게 하더라도 거침없이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흩어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어느 때라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다.홍씨(洪氏)의 자손 승환(承渙)은 젊은 나이에 준걸차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나에게 표덕(表德 자(字))을 묻기에 내가 "흩어짐을 구제함에 무리를 이루는 것이 길하다.[用拯群吉]"라는 뜻을 취하여 '사증(士拯)'이라 명명하였다. 아, 사증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선대부(先大夫) 봉남공(鳳南公)이 명명한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昔蘇渙表德。初以公群。其弟洵以爲取諸渙其群元吉。不如只取風水成文之義。因以文甫易之。以予觀之當風行水上之時。不圖所以拯救之方。而任其渙散。只取其文者。未見其爲至當也。萬物散殊而流行合同。億兆至衆而精神感聚。禮義優優而纖悉會通者。亦莫非渙群之義也。豈君子一日而不勉者乎。人有燕居思危。而猶以畵舫爲銘。況當其渙而辭難自便乎。至寶在深。不憚勤航。袽以備其漏。維以固其載。至於一夜春水。不勞推移之力。而蒙衝巨艦。輕如一毛。則使之涉大浸濟巨川。沛有餘裕矣。然則吾之所以拯渙者。將無時不可矣。洪氏子承渙。妙齡雋異。問表德於予。予取用拯群吉之義。命之曰士拯。嗚呼。士拯顧名思義。必有不負其先大父鳳南公命名之義者矣。 흩어짐에……길하다 《주역》 〈환괘(渙卦) 육사(六四)〉에 나오는 말이다. 한가로이……있는데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조칙에 응해 글을 올려 여러 폐단을 진언하였다가 외직으로 좌천되어 활주(滑州)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자신의 집무실 곁에 방을 만들고 화방재((畫舫齋)라 명명한 뒤에 〈화방재기(畫舫齋記)〉를 지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감정을 서술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文忠集 卷39 畫舫齋記》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생 원경의 자설 李生元敬字說 이생(李生) 기일(基一)이 원경(元敬)을 표덕(表德 자(字))으로 삼았으니, 내가 일찍이 명명해 준 것이다. 하루는 그에 대한 설(說)을 지어 줄 것을 청하기에 그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의지할 곳이 없음에도 오히려 학문에 힘쓰고자 하는 뜻을 잊지 않는 것을 가엾게 여겨 삼가 '일(一)'에 부응하는 말을 들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지어 보낸다.아, '일'의 뜻은 한 가지가 아니다. 순수하여 섞임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로움이나 망령됨이 있다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간단(間斷)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눈을 한 번 깜박이거나 숨을 한 번 쉬는 짧은 시간이라도 간단함이 있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빠뜨린 것 없이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만 가지 선 가운데에 한 가지 선이라도 갖추지 않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천지조화의 근원이며, 성신(聖神)이 신묘하게 작용하는 본원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고 이것을 체득하게 하는 것은 오직 '경(敬)'일 뿐이다. '경'은 '주일(主一)'의 뜻이니,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는 것39)을 '경'이라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갖기만 하면 마음이 전일하게 된다."40)라고 하였다.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하는 것이 학자에게 주일(主一)의 시작이 되니, 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李生基一表德元敬。余嘗所命也。一日請爲其說。哀其早孤靡依。猶不忘勉學之志。謹擧一副語。以效其一分之助。嗚呼。一之義不一。純粹無雜之謂一。以爲纔有纖毫私妄。便不是一也。終始無間之謂一。以爲纔有瞬息間斷。便不是一也。該括無遺之謂一。以爲萬善之中。一善未備。便不是一也。此是天地造化之原。聖神妙用之本。然其所以致此而體此者。其惟敬乎。敬者主一之義也。不二以二。不三以三。惟心惟一。萬變是監。非敬之謂耶。程子曰。纔整齊嚴肅。則心便一。整齊嚴肅。是學者主一之始也。勉之哉。 두……것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 제6장에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라.[弗貳以二, 弗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라는 구절이 보인다. 외면을……된다 정이천(程伊川)이 제시한 수양법으로, 《근사록(近思錄)》 4권에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이현【장현】57)에게 답함 答朴而顯【章鉉】 금옥과 같은 형제들이 편지【雙魚】58)를 동봉(同封)하였고, 편지를 가지고 온 자는 또 그대의 당질이었습니다. 누추한 저희집에 만 갈래의 빛이 드리우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만 당시에 마침 밖에 있어 서로 어긋났기에, 옛날 천 리 밖에서 정신으로 사귀는 것에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편지를 받은 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시탕(侍湯)하는 사이에 동정(動靜)과 기거(起居)는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먼 곳에서 염려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존종씨(尊從氏)59)가 순절(殉節)하신 거룩한 자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충분합니다. 우선 본장(本狀)60)에 근거하여 대략 서술하였는데 이는 구구하게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61)으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안(公案)으로 정본(定本)을 만들지 말고 거듭 대방가(大方家)의 큰선비를 구하여 후손에게 찬양하도록 하여 세도(世道)를 위한 계책으로 삼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각각의 편지에 답장을 드리는 것이 도리에 합당한 일이지만 이처럼 예(禮)를 생략하였습니다. 공경함이 부족하여 자못 황공합니다. 부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金昆玉季。雙魚同封。將之者。又其賢堂咸也。足令陋室光紫萬丈。但時適在外。交相差池。其有愧於古之千里神交者。多矣。信後有日。未審侍湯之餘。動靜起居。不至有損。遠外貢慮。不勝耿耿。尊從氏殉節偉蹟足以不朽百世。姑據本狀。而序述梗槪。此是區區緇衣之誠有不能自己也。勿以爲定本公案。更求之大方巨手。以揄揚於來許爲世道計。如何如何。理合各幅。而若是省禮。欠敬殊惶。俯諒如何。 박장현(朴章鉉) 호는 이현(而顯) 자는 정일(正一)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1916년에 출생하였고 고창(高敞)에 거주하였다. 스승으로 기우만(奇宇萬) 등이 있다. 편지【雙魚】 멀리서 보내 온 두 마리의 잉어 뱃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서신(書信)을 의미한다. 쌍리(雙鯉), 혹은 이소(鯉素)라고도 한다. 존종씨(尊從氏) 상대방의 조카에 대한 존칭이다. 본장(本狀) 편지에서는 박장현(朴章鉉)이 정의림(鄭義林)에게 존종씨(尊從氏)에 대한 글을 요구하였는데, 그 글을 쓰기 위한 근거가 되는 글로 보인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家狀)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 치의(緇衣)는 《시경》의 편명으로 현인(賢人)을 사모하는 뜻을 담고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김춘경【진호】에게 답함 答金春卿【震浩】 세월은 효자(孝子)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아 예복을 길복(吉服)으로 바꾸어 입은 것이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극한 마음으로 개확(慨廓)62)하셨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친구의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서 달려가 조문을 하는 예의를 갖추지도 못하였으니 이 무슨 이치이겠습니까? 실로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큰 도량으로 살펴주시고, 남들과 같지 않음을 따지지 않고서 욕되게 편지를 보내주시어 아주 정성스러운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감동하고 슬퍼서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어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절선(節宣)63)이 편안하고 진중해짐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은 소식이었습니다. 용렬한 저는 몸이 쇠퇴하여 부탁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예전에 그곳의 사우(士友)들과 고흥(高興)과 낙안(樂安) 사이에서 강론하러 모인 적이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 이미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함께 따라 노닐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지고 말았으니, 매번 그때를 떠올리면 매우 마음이 아파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또 나의 좌우(左右) 같이 어진 그곳의 사우들과 더불어 다시 예전 그날처럼 따라 노니는 즐거움을 도모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더없이 감격스럽습니다. 강회(講會)에 왕림(枉臨)하여주심을 미리 간절히 기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日月不爲孝子留。而巾堂就吉。計已久矣。伏惟至情慨廓。何以堪支。忝在知舊之末。而竟闕匍匐之儀。此何事理。愧負實深。然而盛鑑大度。不較不猶。辱賜惠存。致意繾綣。執書感惻。不知所以爲答。因審侍省節宣安重。尤叶願聞。義林衰頹淟劣。無足奉煩。竊念頃年與貴中士友。講聚於興樂之間者。累矣。而苒苒歲月。已四十餘年矣。所與遊從擧皆零散。每不勝追傷之至ㅡ豈知今日又與貴中士友賢如吾左右。復圖遊從之樂如前日耶。尤用感感。講會枉臨。預切欣企。 개확(慨廓)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을 지낸 것을 말한다. 상을 당한 처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충충(充充)'이라 하고, 빈소(殯所)에 봉안한 다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구구(瞿瞿)'라 하고, 소상 때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개(慨)'라 하고, 대상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확(廓)'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절선(節宣) 철에 따라 몸을 조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남간정사427)에서 우암과 수암428) 두 선생의 초상화에 참배하다 南澗精舍, 拜尤遂二先生遺像 회덕 남쪽 개울가에 정사가 있는데 懷南精舍澗之邊대로429)의 초상화가 엄숙히 임했네 大老遺眞臨肅然옥을 쪼듯 당시에 학업 닦은 곳이요 琢玉當年修業地들보 꺾이자 삼년간 상생한 자리네430) 摧樑三載象生筵텅 빈 산의 초목에도 광채가 남아 있고 空山草木留光彩온 나라의 사대부들은 경건함을 다했네 擧國衣冠致敬虔또한 같은 당에 의발431) 전한 제자 있으니 更有同堂衣鉢弟서로 전수한 심법이 일치하여 온전하였네 相傳心法一規全 懷南精舍澗之邊, 大老遺眞臨肅然.琢玉當年修業地, 摧樑三載象生筵.空山草木留光彩, 擧國衣冠致敬虔.更有同堂衣鉢弟, 相傳心法一規全. 남간정사(南澗精舍) 송시열(宋時烈)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3년(숙종9)에 회덕(懷德) 소제동(蘇堤洞)에 세운 강학당이다. 우암(尤庵)과 수암(遂庵) 우암은 송시열의 호이고, 수암은 권상하(權尙夏)의 호이다. 대로(大老) 덕과 명망이 높은, 나라의 큰 어른을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백이와 태공) 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인데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간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그 자제들이 어디로 가겠는가.〔二老者, 天下之大老也, 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天下之父歸之, 其子焉往?〕" 하였다. 들보……자리네 원문의 '최량(摧樑)'은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꺾인다는 '산량퇴괴(山梁頹壞)'를 뜻하는 말로, 스승이나 철인(哲人)의 죽음을 의미한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은 죽은 자를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 의복과 기물 및 의식 절차를 살아 있는 이에 준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의발(衣鉢) 본디 불교(佛敎)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전법(傳法)의 표신으로 주는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특히 학문 전수(學問傳授) 등의 경우에 쓰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우연히 짓다 偶題 열 식구가 반경의 밭436)을 경작하니 十口佃治半頃田늙을수록 생계가 더욱 빈약해지네 老來活計轉蕭然미몽을 장주의 나비437)와 동일시 않고 不將迷夢同莊蝶홀로 깊은 원망을 품어 두견에게 묻네 獨有深冤問杜鵑취하고 깬 것은 사후에 논해야 하거늘 醉醒自應論死後달고 쓴 것을 하필이면 생전에 따지랴 苦甘何必較生前날씨가 무더운 걸 염려해서가 아니라 未須爲慮天時熱내 갓끈과 두건 씻으러 돌샘으로 가네438) 濯我纓巾向石泉 十口佃治半頃田, 老來活計轉蕭然.不將迷夢同莊蝶, 獨有深冤問杜鵑.醉醒自應論死後, 苦甘何必較生前?未須爲慮天時熱, 濯我纓巾向石泉. 반경(半頃)의 밭 50묘(畝)로, 면적이 좁은 밭을 표현한 말이다. 100보(步)를 묘(畝)라 하니, 이는 길이가 100보에 너비가 1보이며, 100묘를 부(夫)라 하니 이는 1경(頃)이니 길이와 너비가 100보이며, 3부를 옥(屋)이라 하니 이는 3경이니 너비가 300보에 길이가 100보이며, 3옥을 정(井)이라 하니 900묘이니 길이와 너비가 1리이다.〔步百爲畝, 是長一百步, 闊一步. 畝百爲夫, 是一頃, 長闊一百步. 夫三爲屋, 是三頃, 闊三百步, 長一百步. 屋三爲井, 則九百畝也, 長闊一里.〕 《禮記補註》 장주(莊周)의 나비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깬 뒤에, 장주가 나비로 되었는지 또는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판단하기에 애썼다는 고사가 있다. 《莊子 齊物論》 내……가네 세속을 벗어나 고상함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는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보성오씨 보의회안》 서문 寶城吳氏輔誼會案序 내가 항상 여씨(呂氏)의 향약(鄕約)124)과 범씨(范氏)의 의장(義庄)125)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삼고(三古) 시대126)의 남은 제도에 가장 잘 맞고, 지금의 시대에 행해질 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삼고 시대의 백성에게 행해졌던 정사(政事)는 물을 담아도 새지 않을 만큼 치밀했다고 이를 만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익을 좇아 시끄럽고 번잡하게 오가면서 점차 쇠락해져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땅을 쓴 듯 다 사라져 버려졌으니, 선비가 옛날의 도를 배웠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물러나 시골 마을의 친구들이나 집안의 친족들과 함께 강론하며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어찌 이 두 가지와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나의 벗 송봉옹(松峰翁)은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옛 이름)의 남쪽에 은거하며 함께 거주하는 친족 10여 사람과 의장의 규례를 모방해 모임을 창설하여 '보의회(輔誼會)'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모여 강습함에 때가 있게 하고, 가르치고 봉양함에 재물이 있게 하였으며, 길흉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게 하고, 환난에는 도움이 있게 하였으니, 은혜와 정분을 돈독히 하여 서로 지켜주고 돕는 것이 굳고 단단하면서도 주도면밀하고 상세하다고 이를 만하다. 오씨(吳氏)의 후손이 받게 될 복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나는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처지로 외롭게 떠돌아다니며 거처를 정할 겨를도 없는데, 힘입을 곳이 없는 외로운 사직(社稷)을 탄식하고, 구원을 요청할 곳이 없는 사신(使臣)들을 애통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이 모임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적으로 감동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어 삼가 이 글을 써서 오씨를 위해 축하한다. 余嘗愛呂氏之鄕約。范氏之義庄。最得三古之遺制。而可行於今日。蓋三古維民之政。可謂盛水不漏。而熙往穰來。漸次零替。至於今日。掃地盡矣。爲士者。學古之道。旣不得有爲於斯世。則退而與鄕黨知舊門闌族親。可以講行者。豈非此二事乎。余友松峰翁。隱居爾陵之南。與其族之同居者十餘人。倣義庄之規。倡以設之。命曰。輔誼會。使講聚有時。敎養有資。吉凶有須。患難有助。所以篤恩誼而相維持者。可謂鞏固而周詳矣。吳氏後祿。豈有量哉。余以孤根弱植。煢煢流離。不遑定居。歎杕社之無賴。哀原隰之無求。今於此會之設聞。不勝感艶之私。謹書此爲吳氏賀焉。 여씨(呂氏)의 향약(鄕約) 송(宋)나라 때 남전(藍田)에 살던 여대충(呂大忠)ㆍ여대방(呂大防)ㆍ여대균(呂大鈞)ㆍ여대림(呂大臨) 형제가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으로, 그 규범은 덕업(德業)을 서로 권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규계하고, 예속(禮俗)으로 서로 사귀고, 환란(患難)을 서로 구제한다는 네 조항이었다. 이것이 후대에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六 善行》 범씨(范氏)의 의장(義庄) 송(宋)나라 때 재상 범중엄(范仲淹, 989~1052)이 자신의 봉급과 재산 일부로 전지(田地) 수천 묘(畝)를 사들여 만든 전장(田莊)을 말하는 것으로, 범중엄은 이 땅에서 거둔 조(租)를 저축해 두었다가 혼가(婚嫁)나 상장(喪葬)을 치르지 못한 종족들에게 공급해 주었다고 한다. 《宋史 卷314 范仲淹列傳》 《小學 卷5 嘉言》 삼고(三古) 시대 중국 고대시대 때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는 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이 다스렸던 하(夏)ㆍ은(殷)ㆍ주(周)를 가리킨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兼任行縣令爲差定事來月初五日行 釋奠祭初獻官差定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 下前掌令金養黙 [準此]乙丑七月 日[官印]差定行縣令[着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二月 日 吏曺 承文院副正字金養黙 道光十二年二月 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8.0*8.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김양묵(金養默)을 계공랑(啓功郞) 행승문원정자(行承文院正字)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832년(순조 32) 2월 28일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김양묵(金養默)을 계공랑(啓功郞) 행승문원정자(行承文院正字)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발급 일자 위에 이조의 관인이 답인(踏印)되어 있고, 이조 참의(參議)가 서압(署押)하였다. 계공랑은 종7품에 해당하는 문관의 관계이다. 승문원은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관서로 부정자는 종9품, 정자(正字)는 정9품 관직이다. 수취자의 품계인 계공랑이 관직인 승문원 정자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유민탄 流民歎 유랑민 유랑민이여 유랑민을 어이하나 流民流民柰流民삼남 땅 모든 곳이 적지137)가 되었구나 赤地三南率土濱부모 처자식이 곡하며 서로 부여잡기를 爺孃妻兒哭相持날 버리고 오늘 어디로 가려는가 하니 棄我今日欲何之말하기를 서북쪽으로 삼천리를 가면 爲言西北三千里공장이 곳곳에 있어 돈이 물 같다 하네 工場處處錢如水항아리의 곡식 팔아 여비를 마련했으나 傾放甁粟作盤纏돈을 입수하지 못해 곤궁하기만138) 하네 錢未入手徒顚連옛날에 맹자가 근심하고 탄식했던 것은 昔在鄒賢已憂歎노약자는 죽고 건장한 자는 흩어짐인데139) 老弱者死壯者散하물며 지금과 같은 변란에 있어서랴 矧在而今之變亂유랑민 유랑민이여 참으로 한탄스러우나 流民流民眞堪歎실로 하늘이 한 일인데 어찌하겠는가 天實爲之柰若何 流民流民柰流民? 赤地三南率土濱.爺孃妻兒哭相持, 棄我今日欲何之?爲言西北三千里, 工場處處錢如水.傾放甁粟作盤纏, 錢未入手徒顚連.昔在鄒賢已憂歎, 老弱者死壯者散.矧在而今之變亂, 流民流民眞堪歎, 天實爲之柰若何? 적지(赤地) 흉년이 들어 거둘 만한 농작물이 하나도 없게 된 땅을 말한다. 곤궁하기만 원문의 '전련(顚連)'으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것을 의미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온 천하의 쇠잔하고 병든 자, 고아와 독거노인과 홀아비와 과부가 모두 곤궁하여 하소연할 곳 없는 나의 형제들이다.〔凡天下疲癃殘疾, 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라는 표현이 있다. 맹자(孟子)가……흩어짐인데 맹자가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 제(齊)나라 대부 공거심(孔距心)을 질책한 것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에 "맹자가 말하기를 '흉년이 들어 그대의 백성 중에 노약자는 구렁이에 빠지고 흩어져 사방으로 가는 장성한 사람들도 몇 천 명이 된다.'라고 하자, 말하기를 '이것은 거심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지금 남에게서 소와 양을 받아 대신해서 기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목장과 꼴을 구할 것이다.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소와 양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또한 소와 양이 죽어 가는 것을 서서 볼 것인가?'라고 하자, 말하기를 '이는 거심의 죄입니다.'라고 하였다.〔凶年饑歲, 子之民, 老羸轉於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曰: 此非距心之所得爲也.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 則必爲之求牧與芻矣. 求牧與芻而不得, 則反諸其人乎? 抑亦立而視其死與? 曰: 此則距心之罪也.〕"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구암정150)에서 송심석151) 어른의 시에 차운하다 龜巖亭, 次心石宋丈韻 백일홍이 만발하여 맑은 물가에 잠겼는데 赬桐滿發蘸晴汀하늘이 이름난 정자 가져다 승지에 두었네 天把名亭勝地停맑은 절조는 당시에 세속을 일찍 벗어났고 淸節當年曾脫俗남긴 꽃다운 이름은 천년 뒤에도 향기 나네 遺芳千載尙聞馨옥봉에 달빛이 비추면 먼저 문을 열고 玉峯月照先開戶하포에서 바람 불어도 사립문 닫지 않네 荷浦風來不掩扃산인동의 바위는 얘기를 나눌 만하였으니 散人洞裏石堪語원방 계방 같은 형제라는 말도 들을 만하네152) 元季雙難更足聽 赬桐滿發蘸晴汀, 天把名亭勝地停.淸節當年曾脫俗, 遺芳千載尙聞馨.玉峯月照先開戶, 荷浦風來不掩扃.散人洞裏石堪語, 元季雙難更足聽. 구암정(龜巖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길 1028에 있는 정자로, 구암(龜巖) 양배(楊培)의 덕망을 흠모하여 1898년에 후손들이 지은 것이다. 송심석(宋心石) 심석은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동옥(東玉)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해 11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지어 전국 유림에게 배포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1906년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강당을 건립하여 많은 문인들에게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0년 한일합병 후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뒤 두문불출했다. 1912년 일본 헌병이 은사금을 가져왔으나 거절했고, 일제가 경학원 강사로 천거하자 거절한 뒤 일제를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저서에 〈학문삼요(學問三要)〉·〈사례축식(四禮祝式)〉·〈용학보의(庸學補疑)〉 등이 있다. 산인동(散人洞)의……만하네 연산군 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양배(楊培)와 양돈(楊墩) 형제가 벼슬에 나아갈 뜻을 끊고 순창군 구미리 서쪽의 산인동에 은거하여 자연과 벗한 일을 말한다. 산인동 물가에 이들이 분점(分占)하여 낚시했던 '배암(培巖)'ㆍ'돈암(墩巖)'이라는 형제바위가 있다. 《旅庵遺稿 卷4 散人洞記》 《頤齋遺藁 卷23 梅堂慕亭二楊公小傳》 원방(元方)과 계방(季方)은 후한(後漢)의 진기(陳紀)와 진심(陳諶)의 자(字)인데,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나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불렸다. 《後漢書 卷62 陳寔列傳》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제병 열 폭의 그림 뒤에 삼가 쓰다 병서 ○신묘년(1951) 敬題祭屛十幅圖畵後【幷序 ○辛卯】 제병 열 폭에 선조(先祖)의 덕행을 열거해 쓰고 아울러 그림을 그려서 추모의 뜻을 부쳤다. '금강산(金剛山)의 충의[金剛忠義]'란 것은 원조(遠祖) 마의태자(麻衣太子)402)의 일이며, '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란 것은 24대조 복야공(僕射公)403)의 일이며, '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란 것은 23대조 문정공(文貞公)404)의 일이며, '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란 것은 15대조 첨지공(僉知公)405)의 일이며, '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란 것은 13대조 생원공(生員公)406)의 일이며, '모당(慕堂)과 월사(月沙)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란 것은 11대조 죽계공(竹溪公)407)의 일이며, '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란 것은 10대조 참봉공(參奉公)408)의 일이며, '낙요당(樂要堂)409)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란 것은 선고(先考) 벽봉공(碧峰公)410)의 일이다. 각각 오언절구(五言絶句)로 그 행실을 대략 기록하였다. 신묘년 맹춘(孟春)에 택술이 삼가 쓰다.금강산이 사해에 이름난 건 金剛名四海참으로 까닭이 있으니 良有厥由而마의태자의 사적이 아니라면 不是麻衣蹟한갓 기이한 수석일 뿐이라네 徒然水石奇-금강산의 충의[金剛忠義]-바위틈 샘물은 밤낮으로 내리는 비요 石泉日夜雨소나무에 걸린 달은 고금의 등불일세 松月古今燈복야공이 영은암에서 시 읊으니 僕射靈菴詠천추의 풍아411)에 등재되었도다 千秋風雅登-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원각경》에서 주장하는 이단의 설을 啾啾圓覺經일필휘지로 남김없이 쓸어버렸다오412) 一筆掃淸之아득히 멀리 창려413)의 뒤를 이으니 邈爾昌黎後사문에 공이 참으로 작지 않도다 斯文功不微-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맑고 깨끗한 연적암414) 아래에 淸絶硯巖下몇 칸의 공자 사당이 있다오 數間夫子祠해동의 아름다운 추로 풍속415)이 海東鄒魯俗이곳을 뿌리 삼아 가지를 뻗었네 根此達其枝-문묘(文廟)를 창건하여 초상을 봉안하다[創廟奉像]416)-신복이 되지 않음은 태사의 절의이니417) 罔僕太師節그 풍모를 들었고 또 공을 보았네 聞風又見公당시에 덕을 함께한 벗으로는 當時同德友정문충공418) 같은 분이 계셨다오 有若鄭文忠-신복(臣僕)이 되지 않고 귀향하다[罔僕歸鄕]419)-북쪽 변방에 전란이 일어나니420) 北塞風塵起조정의 근심이 참으로 깊었네 朝廷憂正深문무의 재주를 모두 완비했으니 全材文武備산해의 요기를 말끔히 제거했다오 山海淨氛祲-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대나무는 깨끗하여 속되지 않고 竹兮淸不俗매화도 정결하여 티끌 한 점 없다오 梅亦潔無塵담박하기 그지없는 선생의 풍취여 淡泊先生趣진실로 매죽과 짝할 만하여라 固亦與作隣-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유문에는 모당옹421)이 있고 儒門慕堂老문원에는 월사옹422)이 있는데 文苑月沙翁같은 소리와 기운은 서로 찾는 법이니423) 聲氣相求處정신으로 교유해 한 몸과 같았다오 神交一體同-모당과 월사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적현424)의 운수가 다하려 할 때 赤縣運將訖청구425)가 먼저 해를 입었다오 靑邱先受傷호남에 뜻있는 선비 많으니 湖南多志士의로운 군대426)가 명성을 길이 떨쳤도다 師直義聲長-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초당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草堂何所事교재427)에 글 읽는 소리 울리누나 橋梓有書聲간옹의 글이 진중하기 그지없으니 珍重艮翁筆낙요명을 대대로 전하리라428) 世傳樂要銘-낙요당(樂要堂)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 祭屛十幅, 列書先德, 幷作圖畵, 以寓追慕.其曰'金剛忠義'者, 遠祖麻衣太子事也; 其曰'靈隱題詠'者, 二十四世祖僕射公事也; 其曰'斥佛嘲經'者, 二十三世祖文貞公事也; 其曰'討賊安邦'者, 十五世祖僉知公事也; 其曰'梅竹高致'者, 十三世祖生員公事也; 其曰'慕月道交'者, 十一世祖竹溪公事也; 其曰'龍城倡義'者, 十世祖參奉公事也; 其曰'要堂講學'者, 先考碧峰公事也.各以五言小絶, 略記其實.辛卯孟春, 澤述謹識.金剛名四海, 良有厥由而.不是麻衣蹟, 徒然水石奇.【金剛忠義】石泉日夜雨, 松月古今燈.僕射靈菴詠, 千秋風雅登.【靈隱題詠】啾啾圓覺經, 一筆掃淸之.邈爾昌黎後, 斯文功不微.【斥佛嘲經】淸絶硯巖下, 數間夫子祠.海東鄒魯俗, 根此達其枝.【創廟奉像】罔僕太師節, 聞風又見公.當時同德友, 有若鄭文忠.【罔僕歸鄕】北塞風塵起, 朝廷憂正深.全材文武備, 山海淨氛祲.【討賊安邦】竹兮淸不俗, 梅亦潔無塵.淡泊先生趣, 固亦與作隣.【梅竹高致】儒門慕堂老, 文苑月沙翁.聲氣相求處, 神交一體同.【慕月道交】赤縣運將訖, 靑邱先受傷.湖南多志士, 師直義聲長.【龍城倡義】草堂何所事? 橋梓有書聲.珍重艮翁筆, 世傳樂要銘.【要堂講學】 마의태자(麻衣太子)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태자인 김일(金鎰)로, 마의(삼베옷)를 입고 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부안 김씨(扶安金氏)의 중시조(中始祖)가 된다. 경순왕이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왕건(王建)의 신흥 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어 항복하자, 태자가 이에 반대하여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복야공(僕射公) 고려 때 우복야(右僕射)를 지낸 김의(金宜)이다. 다른 이름으로 정립(挺立) 또는 정립(鼎立)이 있다. 말년에 변산(邊山)의 영은사(靈隱寺)에 있었는데, 〈영은사〉 시 한 수가 전한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 1211~1278)로, 자는 차산(次山), 초명은 백일(百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의 명현으로, 문장과 도덕이 당대에 으뜸이었다. 첨지공(僉知公) 세조(世祖) 때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김보칠(金甫漆)이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공을 세웠다. 지방관으로 16개 고을을 잘 다스렸다. 생원공(生員公) 김종(金宗, 1471~1538)으로, 자는 사앙(士仰),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과업(科業)을 폐하였다. 매죽(梅竹)을 심고 가꾸면서 청고(淸高)함으로 자신을 수양하였다. 죽계공(竹溪公) 김굉(金鋐)으로, 자는 여기(汝器), 호는 죽계이다.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과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학덕(學德)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 등에 제수되었다. 참봉공(參奉公)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낸 김정길(金鼎吉, 1576~1645)로, 자는 응구(應九)이다.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하하여 의병을 거느리고 청주(淸州)까지 진격하였다가,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군대를 해산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이 《호남창의록(湖南倡義錄)》 등에 실려 있다. 낙요당(樂要堂) 후창의 부친인 김낙진(金洛進, 1859~1909)이 강학(講學)했던 초당(草堂)이다. 벽봉공(碧峰公) 김낙진으로, 자는 치일(致一), 호는 벽봉이다. 약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 겸와(謙窩) 홍주후(洪疇厚)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풍아(風雅) 국풍(國風) 및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를 뜻하는 것으로, 《시경》을 가리킨다. 원각경에서……쓸어버렸다오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항(崔沆)이 김구(金坵)에게 《원각경(圓覺經)》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청하자, 김구는 바른 도리를 지켜 굽히지 않고 시(詩)를 지어 최항을 꾸짖으니, 최항이 이에 앙심을 품고 김구를 제주 통판(濟州通判)에 좌천시킨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 고사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正祖實錄 14年 2月 13日》 창려(昌黎)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그는 〈원도(原道)〉,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지어서 유학을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하였다. 연적암(硯滴巖) 강릉 향교 옆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4》 추로(鄒魯) 풍속 추로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태어난 고향으로, 학문과 예악이 성대한 풍속을 이른다. 문묘(文廟)를……봉안하다 후창의 22대조 김여우(金汝盂)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여우의 다른 이름은 종우(宗盂),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다. 원(元)나라로부터 문묘 제도를 도입하여 강릉(江陵)에 문묘를 처음 세웠다. 이 유문(儒門)의 공로로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되었다. 신복(臣僕)이……절의이니 원문의 망복(罔僕)은 망국(亡國)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이 되지 않는 절의를 이른다. 태사(太師)는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숙부로 태사 벼슬을 지낸 기자(箕子)를 이른다. 은나라가 망할 무렵 기자가 "은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주(周)나라의 신복이 되지 않으리라.[商其淪喪, 我罔爲臣僕.]"라고 하였다. 《書經 微子》 정문충공(鄭文忠公)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이다. 고려조의 충신으로서 훗날 조선의 태조가 된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를 숙청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신복(臣僕)이……귀향하다 후창의 17대조 김광서(金光敍)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광서는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 형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를 지키며 부안읍(扶安邑) 옹정(瓮井)에 살았다. 북쪽……일어나니 1467년(세조13) 함경도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가 북방 지역 사람의 차별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 이른바 '이시애의 난'을 두고 말한 것이다. 모당옹(慕堂翁) 홍이상(洪履祥, 1549~1615)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祥), 자는 군서(君瑞), 호는 모당,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경덕(徐敬德)의 제자인 행촌(杏村) 민순(悶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양의 문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월사옹(月沙翁) 이정귀(李廷龜, 1564~1635)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장에 뛰어나 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힌다. 같은……법이니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뜻한다. 적현(赤縣)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청구(靑丘)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고 동방은 오행(五行)에 있어 청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의로운 군대 원문의 사직(師直)은 군사의 명분이 바르다는 말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에 "군사의 명분이 바르면 사기가 왕성하고, 명분이 없으면 사기가 쇠한다.[師直爲壯, 曲爲老.]"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재(橋梓) 교목(橋木)과 재목(梓木)으로, 아버지와 아들, 부도(父道)와 자도(子道)를 의미한다. 주(周)나라 백금(伯禽)이 아버지인 주공(周公)을 찾아갈 때마다 회초리를 맞고 돌아왔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현인(賢人)인 상자(商子)의 가르침을 듣고서, 남산의 양지에 의젓하게 있는 교목을 보고서 부도를 깨닫고, 음지에서 겸손하게 고개 숙인 재목을 보고서 자도를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說苑 建本》 간옹(艮翁)의……법이니 간옹은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가리킨다. 낙요명(樂要銘)은 간재가 김낙진을 위해 지어준 〈낙요재명(樂要齋銘)〉을 이른다. 《艮齋集 前編續 卷5》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군 원경 갑열 이 방문해주어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보여주다 4수 崔君元敬【甲烈】見訪有贈, 次韻示之【四首】 군과 처음 안 뒤로 이십 년이 흘렀는데 與君始識廿年多지금 새 시를 지어준 마음은 어떠한가 今贈新詩意如何감응하여 서로 통함이 신묘한 이치인데 感應相通神妙理한 마음만 온갖 화기를 헛되이 보내누나 一心虛送萬般和천추 뒤에 동생433) 무리를 다시 보게 되니 千秋復見董生儔주경야독하는 참된 사업을 남기누나 暮讀朝耕實業留바라건대 시종 한결같이 공력을 다 기울여 惟願加功終始一우리 무리에게 수치를 끼치지 않을 수 있기를 免敎吾黨或貽羞현인 되기 바라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으니 希賢不易亦無難어렵건 쉽건 간에 어찌 감히 안일하게 지내랴 難易之間豈敢安단지 시비를 헤아리고 취사를 분간하고서 但問是非分取舍모두 바쁜지 한가한지 따지지 말고 즉시 행하라 卽行幷勿較忙閒군의 집안에 본디 의방434)의 규범 있으니 德門自有義方規나 같이 견문 없는 자를 어찌 의뢰하랴 如我無聞何所資학문이 끊어진 지금 거의 황년곡435)과 같으니 絶學殆同荒年穀좋은 종자 이루어 훌륭한 말을 길이 전할지어다 須成嘉種永傳辭 與君始識廿年多, 今贈新詩意如何?感應相通神妙理, 一心虛送萬般和.千秋復見董生儔, 暮讀朝耕實業留.惟願加功終始一, 免敎吾黨或貽羞.希賢不易亦無難.難易之間豈敢安?但問是非分取舍, 卽行幷勿較忙閒.德門自有義方規, 如我無聞何所資?絶學殆同荒年穀, 須成嘉種永傳辭. 동생(董生)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는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은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이렇게 훌륭한 동소남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小學 善行》 의방(義方) 의로운 방도라는 뜻으로, 자식을 가르칠 때 쓰는 방법이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방자하게 굴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자식을 사랑하되 그를 의로운 방도로 가르쳐서 사악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년곡(荒年穀) 흉년에 얻기 어려운 곡식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구제할 만한 재능을 가진 드문 인재를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예(賞譽)〉에 "세상에서 유문강을 풍년옥이라고 하고, 치공을 황년곡이라고 한다.[世稱庾文康爲豐年玉, 稚恭爲荒年穀.]"라고 하였다. 문강은 유량(庾亮)의 시호이고, 치공은 유익(庾翼)의 자로, 유량은 재상이 될 큰 기국을 지녔고, 유익은 세상을 구제할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宋鎭澤右謹言痛迫情由事民之慈母墳山在於泰仁南面盤龍村前麓而定山直守護累十餘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偸葬於靑龍白虎麓壓近之地者間或有之然而義理之爭訟之下渠輩皆爲掘去事蹟所載於 營邑文蹟與圖形紙也不意去月良中不知何許漢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朴平仲李東英等五六塚已掘處世豈有如許昧法無據之人心乎不得不圍棘掘漑然後塚主現露乃已故前後文券帖連仰訴于 明政之下伏乞參商敎是後另加 嚴題行下使他官孤蹤之民無至呼冤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己卯四月日官[着押][題辭]掘漑法外搜覓塚主更爲來訴卽當督掘向事卄一日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夫爲民者屈於訟▣…▣爲不遵 官令則必也兇獰人也民之親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古阜韓性浩乘夜犯▣…官 城主在在時屢次對卞而重落科則渠自萬端哀乞而今年二月內掘去之意成手記矣自今三月將盡終不掘去此無乃之故也不勝▣…連仰籲一一 參商敎是後同性浩發差捉致嚴囚督掘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三月 日泰仁官[着押][題辭]旣有手記當此▣▣▣何故也…▣督掘次捉▣…狀二十一日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지재의 〈인일〉 시에 차운하다 次止齋人日韻 오늘은 인일519)이라 일컬을 만하니 今日可稱人日也내 옛말을 가지고 반복하여 본다오 我將古語反之看수만 군중이 전란을 만난 걸 어찌하리오 柰如萬衆遭兵火수천 가호가 기한에 시달림을 거듭 탄식하네 重歎千家迫飢寒웅략 있는 주운의 검을 의지한다는 말을 못 들었고520) 雄略未聞朱劍仗빼어난 인재인 공우의 관을 털어낼 희망이 끊어졌다오521) 秀才絶望禹冠彈천시가 예전과 같아 세상이 소란스러우니 天時如舊世擾攘이 좋은 날을 저버리는 게 어렵기만 하구나 負此良辰亦堪難 今日可稱人日也, 我將古語反之看.柰如萬衆遭兵火? 重歎千家迫飢寒.雄略未聞朱劍仗, 秀才絶望禹冠彈.天時如舊世擾攘, 負此良辰亦堪難. 인일(人日) 음력 1월 7일을 말한다. 1일은 닭, 2일은 개, 3일은 양, 4일은 돼지, 5일은 소, 6일은 말, 7일은 사람의 날이라 한다. 점치는 날 기후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평안하고 풍년이 들며, 기후가 흐리거나 추우면 질병이 있고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荊楚歲時記》 웅략(雄略)……들었고 주운(朱雲)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직신(直臣)이다. 주운이 성제를 만난 자리에서 상방(尙方)의 참마검(斬馬劍)을 빌려주면 성제가 총애하는 간신(奸臣) 장우(張禹)를 베겠다고 간언하였고, 성제가 노하여 끌어내라고 명하였는데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간쟁하였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67 朱雲傳》 빼어난……끊어졌다오 한(漢)나라 때 공우(貢禹)와 왕길(王吉)은 서로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던 때문에 왕길이 출사하면 공우 또한 자기도 응당 등용될 것을 믿고 관(冠)의 먼지를 미리 털어내어 출사를 준비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72 王吉傳》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재홍 규상 을 애도하다 哀崔載洪【圭相】 아아 군의 효성은 하늘에 근본하니 嗟君之孝根於天비록 배우지 못했다 해도 나는 배웠다고 하겠네515) 雖曰未學吾謂學십 년 동안 병든 부친의 뜻과 몸을 잘 받들었고 病父十年適志體초상과 제사를 경건히 하여 다시 덕이 후하게 되었네516) 愼終追遠復厚德품삯을 먼저 지급하여 제실을 지었으니 傭金先下作祭室헌청의 창과 벽은 어찌 그리 밝고 깨끗한가 軒廳牕壁何明潔당상의 편모께서 근심이 없으셨으니 堂上偏慈無戚戚털끝만큼도 어기는 경우가 없었다오 一毫無或有違越근본이 서고 나면 도가 절로 생겨나니 本之旣立道自生언행이 대부분 은연중에 시의적절하였네 言動于時多暗合오늘날 세상에는 패악한 자식이 넘쳐나니 滔滔悖子今世界미친 듯이 날뛰어 방자하기 그지없다오 陸梁挑達恣活躍아아 군은 한창 때인데 하늘이 빼앗아 가니 嗟君盛年天奪去어찌 저 무리를 위해 원수를 갚듯이 했는가 胡爲此曹仇報復의심되고 한탄스러워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니 且疑且歎意莫定하늘에 묻고 크게 혼을 부르는 걸 내 하고자 하네 天問大招我欲作군의 가정에 준수한 두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聞君庭下秀二蘭어질고 효성스러워 훗날 부친의 자취를 이으리라 賢孝他日繼父迹최씨 집안이 대대로 창대할 것을 기약할 수 있으니 崔門世世期昌大이로써 황천에 있는 군의 넋을 위로하노라 以是慰君泉下魄 嗟君之孝根於天, 雖曰未學吾謂學.病父十年適志體, 愼終追遠復厚德.傭金先下作祭室, 軒廳牕壁何明潔?堂上偏慈無戚戚, 一毫無或有違越.本之旣立道自生, 言動于時多暗合.滔滔悖子今世界, 陸梁挑達恣活躍.嗟君盛年天奪去, 胡爲此曹仇報復?且疑且歎意莫定, 天問大招我欲作.聞君庭下秀二蘭, 賢孝他日繼父迹.崔門世世期昌大, 以是慰君泉下魄. 비록……하겠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진 이를 존경하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군주를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와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초상(初喪)과……되었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버이의 초상을 신중하게 치르고 먼 선조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면 백성의 덕이 후함에 돌아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조중직의 자에 대한 설 曺仲直字說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너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편안히 하라.", "보필하는 신하는 정직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직함[直]은 살아가는 이치이고107) 마음의 덕이며 귀신의 정령(精靈)이다. 만약 경(敬)하여 잘못됨이 없으면 마음에 보존되는 것이 정직하고, 의(義)를 으뜸으로 여긴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직하다. 이것으로 사람을 대하면 내가 남을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되고, 이것으로 벗을 취하면 남이 나를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된다. 혹시 군주의 신임을 받고 때를 만나서 조정의 반열에 서게 된다면 허물을 다스리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를 순치(馴致)108)하는 것 또한 어찌 원개(元凱)109) 등 여러 용110)이 모여서 국사(國事)를 논의하던 성대한 모습에 뒤지겠는가?조생 필승(曺生弼承)이 중직(仲直)을 자(字)로 삼았으니, 취한 뜻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겠다. 평소에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적어 조생에게 알리고자 한다. 虞書曰。安汝止。其弼直。直。生之理也。心之德也。鬼神之情也。苟能敬而無失。則存乎中者直矣。義以爲上。則形於外者直矣。以之而接人。則吾所以弼人者直矣。以之而取友。則人所以弼我者直矣。其或得君遇時。而立於朝著之間。則所以繩愆糾繆而馴致大猷者。亦何讓於元凱群龍。濟濟都兪之盛也。曺生弼承字以仲直。其取義。知不外此。而尋常顧勉。亦豈有窮己哉。請書此而相諗焉。 정직함[直]은……이치이고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사람이 살게 되는 이치는 곧은 데에 있다. 곧지 않은데도 살게 되는 경우는 요행히 면한 것일 따름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순치(馴致) 점차로 진행하여 극성한 데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주역》 〈곤괘(坤卦) 상(象)〉에,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곧 이르게 됨은 음이 비로소 얼기 시작함이니, 그 도를 순조로이 점차로 익히어 가서 단단한 얼음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원개(元凱) 팔원팔개(八元八凱)의 약칭이다.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고신씨(高辛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원'이라고 하였고, 고양씨(高陽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개'라고 하였다. 이들의 후손들이 그 명성을 이어가자, 순 임금이 요 임금에게 이들을 천거하여 등용하였는데, 훌륭한 통치로 이름을 떨쳤다. 여러 용 현신(賢臣)을 비유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0 〈낭의전(郞顗傳)〉에 "요 임금이 제위에 있자 여러 용들이 쓰였고,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덕을 개창함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보필하였다.[唐堯在上, 群龍爲用, 文武創德, 周召作輔.]"라고 보이는데, 이현(李賢)의 주(注)에 "여러 용은 현신을 비유한다.[群龍, 喩賢臣也.]"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백순의 자에 대한 설 朴伯順字說 내가 일찍이 우인(友人) 박 사문(朴斯文)을 위하여 그의 이름을 효동(孝東)이라 명명하고 자(字)를 백순(伯順)이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사문(斯文)이 나에게 말하기를, "제 이름을 지어 주신 이래로 부형(父兄)이나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고 저의 자(字)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마다 항상 척연히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이름이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대야나 물그릇, 지게문이나 창호(窓戶)에 적는 명문(銘文)보다 큽니다. 자(字)를 지어 주고 설명을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일입니다. 어찌 저를 위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그래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서(天舒)와 천질(天秩)105)은 그 단서가 끝이 없이 많지만, 벼리가 되는 큰 이치는 오직 효(孝)가 그것이다. 효는 천하의 대순(大順)이고 순(順)은 천하의 지당(至當)이다. 이는 천심(天心)과 인리(人理)가 끝없이 생겨나 두루 흘러서 바뀌거나 그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효라고 이르는 것이 어찌 단지 슬하에서 부모의 뜻을 받들거나 힘든 일을 하고 봉양하는 것을 이를 뿐이겠는가. 부모가 나에게 온전한 성명(性命)을 남겨주었으니 내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은 모두 효이다. 모름지기 미루어 넓혀나가 흠결이 되는 것이 없으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경지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여 도덕이 완벽한 군자다운 사람이 된다면 효(孝)를 행하고 순(順)을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106)라고 하였다. 사문(斯文)은 힘쓰라!" 余嘗爲友人朴斯文。命其名曰孝東字伯順。久之。斯文向余道。一自錫嘉。在父兄師友之間。聞其名我字我。輒不無惕然愧懼自反自省之意。嘉名之有助於人。過於盤盂戶牖之有銘遠矣。字之有說古也。盍爲我加惠焉。余曰。天舒天秩。其端無窮。而綱理之大。惟孝是己。孝者天下之大順也。順者天下之至當也。此天心人理。生生周流。不容易不容已處。然所謂孝者。豈但承順膝下服勞致養之謂而已耶。父母以性命之全。遺之於我。我之身所當爲者。皆孝也。須推而擴之。無所虧欠。立其身於光明正大之域。而爲全德君子之人。則其爲孝爲順。顧何如哉。程子曰。孝弟順德也。斯文勉之。 천서(天敍)와 천질(天秩) '천서'는 하늘의 윤서(倫敍)로,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ㆍ붕우(朋友)의 윤서를 이르고, '천질'은 하늘의 품질(品秩)로,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의 높고 낮은 품질을 이른다. 《서경》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이 윤서로 법을 두시니 우리 오전을 바로잡아 다섯 가지를 돈후하게 하시며, 하늘이 품질로 예를 두시니 우리 오례로부터 하여 다섯 가지를 떳떳하게 하소서."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학이(學而)〉에 보이는 구절이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