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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태인현감(泰仁縣監) 서목(書目)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정치/행정-보고-서목 同治十二年十一月十二日 泰仁縣監 全州府 同治十二年十一月十二日 泰仁縣監 全州府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73년(고종 10) 11월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전주부(全州府)에 올린 서목으로 이태한(李太漢)과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 사건에 대해서 산지의 도형을 봉해 올린다는 내용. 1873년(고종 10) 11월 12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전주부(全州府)에 올린 서목이다. 이태한(李太漢)과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 사건에 대해서 산지의 도형을 봉해 올린다는 내용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이태한은 송진택의 친산 근처에 자신의 어머니 무덤을 썼다가 고발을 당하였는데, 이 문서는 바로 그 과정에서 생산된 것이다. 송진택의 소송을 접수한 전주부에서는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산지의 도형을 그려 올리라고 태인현에 명령을 내렸고, 태인현에서는 이 문서와 함께 도형을 제출하였다. 이 문서와 도형을 접수한 전주부에서는 14일에 "송진택의 전후 문서가 이와 같이 분명하니, 이태한의 억지를 알 만하다. 즉시 독굴하도록 할 일이다"라는 처분을 내렸다. 결국 이태현은 패소하게 되었고, 이달 19일에 이번 달 안에 이장하겠다는 뜻으로 관에 다짐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송진택의 친산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촌에 있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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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泰仁縣書目本縣李太漢與全州宋鎭澤山訟圖形紙堅封上 使狀同治十二年十一月十二日行縣監趙[着名]使[着押](題辭)宋民之前後文軸若是昭然則李民之生臆可知卽爲督掘向事癸酉十一月十四日[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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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보이다 見志 은사256)가 동으로 건너온 지 몇천 년인가 殷師東渡幾千年백색을 숭상하는 유풍이 오늘까지 전해졌네 尙白遺風此日傳더구나 나는 어버이를 여읜 적장자257)로서 矧我孤哀當室子차마 흑색의 옷을 몸에 입을 수 있겠는가 忍將黑服著身邊 殷師東渡幾千年, 尙白遺風此日傳.矧我孤哀當室子, 忍將黑服著身邊. 은사 은(殷)나라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사기》 권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의하면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였다고 한다. 어버이를 여읜 적장자 원문의 '고애(孤哀)'는 부모를 모두 여의어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실(當室)'은 아버지가 죽은 후 집안 일을 담당한 사람으로, 주로 적자(嫡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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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과 최여중의 방문을 받고 田士狷崔汝重見訪 동남에서 꽃다운 발걸음 때마침 찾아와서 東南芳躅適相求백설 속에 청등 켜니 밤이 더욱 그윽하네 白雪靑燈夜轉幽대지는 지금 문득 상전벽해 되었으니 大地如今飜桑海고사는 어느 곳 산림에서 늙어가는가 高士幾處老林邱뉘 알았으리 졸계가 신묘한 작용으로 귀결되고 誰知拙計歸神用또 광생이 상류를 차지하게 할 줄을 且許狂生占上遊휩쓸려 가는 세상 돌아보니 어디로 가야하나 環顧滔滔安所往시절 슬퍼하니 또 머지 않아 배를 타야 하리365) 傷時亦不遠乘舟 東南芳躅適相求, 白雪靑燈夜轉幽.大地如今飜桑海, 高士幾處老林邱.誰知拙計歸神用, 且許狂生占上遊.環顧滔滔安所往, 傷時亦不遠乘舟. 배를 타야 하리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살고 싶어하는 생각을 말한다.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論語 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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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 인수 의 시에 차운하다 次李君【仁洙】 바탕이 어리석다 한스러워 말고 莫恨質蚩蚩큰 일을 하는 데에 뜻을 두게나 志乎大有爲어느 곳에서나 성실로 통하고 誠通幽顯地어느 때나 공경으로 일관해야지 敬貫始終時이치를 궁구해 마음의 거울 열고 窮理開心鏡인륜을 두터히 해 덕의 기반 쌓게 敦倫積德基그대 부지런히 배우는 뜻에 감동해 感君勤學意진중히 새로운 시로 화답한다네 珍重和新詩 莫恨質蚩蚩, 志乎大有爲.誠通幽顯地, 敬貫始終時.窮理開心鏡, 敦倫積德基.感君勤學意, 珍重和新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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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일89)에 천태산에 오르다 기묘년(1939) 上巳日, 上天台山【己卯】 병든 몸으로 맑은 봄에 오른 건 登臨扶病趁春晴세속을 벗어난 동풍이 있어서네 爲有東風不世情원림 몇 곳엔 꽃이 활짝 피었고 幾處園林花亂發산야엔 일시에 풀이 많이 돋았네 一時山野草多生인심은 모두 양장90)처럼 험하고 人心盡是羊腸險부귀는 원래 깃털처럼 가볍다네 富貴元來羽翅輕하늘가의 낙조는 어쩔 수 없는데 落照天涯無柰矣제 경공은 어찌 홀로 눈물 흘렸나91) 齊公何獨淚縱橫 登臨扶病趁春晴, 爲有東風不世情.幾處園林花亂發, 一時山野草多生.人心盡是羊腸險, 富貴元來羽翅輕.落照天涯無柰矣, 齊公何獨淚縱橫?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 첫째 사일(巳日)을 말한다. 예부터 이날에는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불제(祓除)하는 수계(修禊)의 풍속이 있었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놀이를 했던 고사가 전한다. 양장(羊腸)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옛날의 판도(阪道) 이름으로, 세상길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의 〈고한행(苦寒行)〉에 "북쪽으로 태항산을 오르니, 길도 험하여라 어쩌면 이리 높은가?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길에, 수레바퀴가 부서지누나.〔北上太行山, 艱哉何巍巍? 羊腸阪詰屈, 車輪爲之摧.〕" 하였다. 하늘가의……흘렸나 해가 지듯 죽음은 필연적이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말로,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이 우산(牛山)에서 놀다가 아름다운 국토를 내려다보면서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晏子春秋 內篇 諫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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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과 이별하다 2수 別正錫【二首】 일 년 내내 한마음으로 서로 믿었으니 一心相信滿朞年평생에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오 庶謂生平不偶緣너의 깊은 정을 사랑하기에 옥 같은 사람을 기대하였고 愛汝深情期玉穀나의 묘한 비결을 구하기에 천인의 이치를 강론하였지 求吾妙訣講人天예로부터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았나니 從來好事多魔戱그 누가 사문을 회복하고 옛 현인을 배울까 誰復斯文學古賢천만뜻밖의 이별을 어찌 차마 말하리오 夢外別離那忍說일만 가지 시름이 오장육부를 휘감누나 萬端愁緖五臟纏뽕나무 활로 화살 쏘았던371) 해를 회상해보면 回憶桑弧射降年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라 하겠구나 惡因緣是好因緣오랑캐 나라라 해도 행해질 수 있으니372) 어찌 땅을 논하랴 可行蠻貊何論地몸과 마음을 잃지 않으면 또한 천리를 즐거워하는 것일세 不失身心亦樂天지혜는 곤란을 겪는 속에서 나오니 학문을 증진시키고 智出涉難加進學명성은 공업을 세우는 데서 떨쳐지니 현인을 바랄 수 있네 名揚建業庶希賢하나의 경을 가지고 상변을 통달할지니 惟將一敬通常變초탈하여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지어다 超脫無爲世累纏 一心相信滿朞年, 庶謂生平不偶緣.愛汝深情期玉穀, 求吾妙訣講人天.從來好事多魔戱, 誰復斯文學古賢?夢外別離那忍說? 萬端愁緖五臟纏.回憶桑弧5)射降年, 惡因緣是好因緣.可行蠻貊何論地? 不失身心亦樂天.智出涉難加進學, 名揚建業庶希賢.惟將一敬通常變, 超脫無爲世累纏. 뽕나무……쏘았던 원문의 상호(桑弧)는 저본에는 '상고(桑孤)'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고(孤)를 호(弧)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예기》 〈사의(射儀)〉에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 여섯 개로 천지와 사방을 쏘니, 천지와 사방은 남자가 일할 곳이기 때문이다.[男子生, 桑弧蓬矢六, 以射天地四方, 天地四方者, 男子之所有事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남아가 태어나거나 득남한 것을 의미한다. 오랑캐……있으니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말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弧:底本에는 "孤".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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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373) 제야에 생각이 일다 己丑除夜有思 옛날 한 관상가가 내 수명은 오십칠 세에 그칠 거라 했는데 昔有觀相人謂余壽止五十七선군께서 이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하게 여기셨네 先君聞之頗不悅또 한 담명가374)가 있어 又有談命人내가 사십칠 세에 죽을 거라고 하였는데 謂之四十七沒아우 억술375)이 돌아와 나에게 이 말을 고해주고 億弟歸告余그 종이를 가져다가 노여워하며 찢어버렸네 仍將其紙怒破裂또다시 한 어른이 있어 更有一長者집상할 때 나를 위해 명을 논하기를 爲我論命執喪日군의 수명은 오십사 세로 君壽五十四이 나이를 넘더라도 육십육 세에 그칠 것이니 過此止于六十六기한을 넘겨 누차 수명이 연장되더라도 過期延長亦累回육십육의 연수가 최대일 것이라 하였네 六六之數最其極올해가 바로 기한인 육십육 세가 되는데 今年正是六六期또 한 해의 제석인 오늘 저녁을 만났다오 又當今夕歲除夕병을 앓아 비록 거의 죽을 지경이지만 疾病雖濱死실낱같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네 一縷尙不滅원래 천운은 본디 정해진 바가 있나니 元來天運自有定분분하게 떠드는 술사들을 끊어야 한다오 紛紛術士宜掃絶명의 길고 짧음은 연수에 있지 않음을 더욱 알겠으니 更識脩短不在年전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볼 뿐이로세 只觀有無可傳述있다면 단명하여도 진실로 슬퍼할 것도 없고 有則短固不足悲없다면 장수하여도 또한 말할 것도 없다오 無則脩亦不足說스스로 생각건대 이내 몸에 이미 없으니 自念此身旣無得육십 넘고 칠십 바라보아도 즐거울 게 없네 過六望七非所樂비록 그러하나 상제가 하사한 걸 감히 잊지 못하니 雖然帝賜未敢忘부지런히 힘써 미쳐 연수가 아니라 그 덕으로 장수할 수 있기를 어찌 생각하지 않으랴 盍思孜孜勉而及庶致不以年脩以其德 昔有觀相人謂余壽止五十七, 先君聞之頗不悅.又有談命人, 謂之四十七沒.億弟歸告余, 仍將其紙怒破裂.更有一長者, 爲我論命執喪日.君壽五十四, 過此止于六十六.過期延長亦累回, 六六之數最其極.今年正是六六期, 又當今夕歲除夕.疾病雖濱死, 一縷尙不滅.元來天運自有定, 紛紛術士宜掃絶.更識脩短不在年, 只觀有無可傳述.有則短固不足悲, 無則脩亦不足說.自念此身旣無得, 過六望七非所樂.雖然帝賜未敢忘, 盍思孜孜勉而及庶致不以年脩以其德? 기축년 1949년으로, 후창의 나이가 66세이다. 담명가(談命家) 운명을 점치는 사람이다. 억술(億述)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로, 자는 여안(汝安), 호는 연강(蓮岡) 또는 척재(拓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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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이기호가 적삼과 바지 한 벌을 주기에 시를 지어 주어 학업을 권면하다 李姪奇鎬進以衫袴一襲 贈詩勉其學業 면포는 어찌 그리 선명하며 吉貝一何鮮적삼과 바지는 어찌 그리 잘 맞는가 衫袴一何適알겠어라 너의 어머니께서 認是汝慈堂손수 베 짜고 옷 꿰맨 줄을 手自縫且織어찌 그리 애쓰기를 이처럼 하여 一何勤若是자식 스승의 옷을 지었단 말인가 爲其子師服옛사람은 자신의 옷을 두고 말하기를 古人謂其衣한 올 한 올이 어머니의 덕이라 하였네 絲絲母之德풀의 마음이 봄볕의 은혜를 갚기 어렵나니448) 草心難報春시를 지으면서 여러 차례 탄식하였다오 作詩三歎息더구나 이 옷은 스승에게 이바지한 것이니 矧此供師長자식 위한 정성이 더욱 지극하구나 爲子誠復極너는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 汝將何以報마땅히 준칙이 있어야 할 것이로다 乃爲當凖則나는 남의 모범이 되지 못하니 我非人模範이 옷을 받고 몹시 부끄러웠다오 受之有愧色이문에선 회암이 나왔고 李門晦菴出호정에선 오봉을 얻었으니449) 胡庭五峰得네가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된다면 汝能靑勝藍나도 똑같이 아름다운 명예를 얻으리라 我同文繡餙어찌 이내 바람에만 부응할 뿐이리오 豈惟副吾望비로소 자식의 직분을 다하는 것일세 方是盡子職 吉貝一何鮮? 衫袴一何適?認是汝慈堂, 手自縫且織.一何勤若是, 爲其子師服?古人謂其衣.絲絲母之德.草心難報春, 作詩三歎息.矧此供師長, 爲子誠復極.汝將何以報? 乃爲當凖則.我非人模範, 受之有愧色.李門晦菴出, 胡庭五峰得.汝能靑勝藍, 我同文繡餙.豈惟副吾望? 方是盡子職. 풀의……어렵나니 당나라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한 치 되는 풀의 마음을 가지고, 삼춘의 따뜻한 햇볕에 보답하기 어렵구나.[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풀의 마음은 자식이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을, 삼춘의 햇볕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비유한다. 이문(李門)에선……얻었으니 회암(晦菴)은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호이고, 이문은 주희의 스승인 연평(延平) 선생 이동(李侗)을 가리킨다. 오봉(五峰)은 북송(北宋)의 학자인 호굉(胡宏)의 호이고, 호정(胡庭)은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호안국(胡安國)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제자는 스승을 능가하고, 자식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이른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사례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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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하다 痛恨 나의 아버지는 진실로 효자이고 我父固孝子나의 어머니도 현숙한 부인이니 我母亦賢媛살아서는 비록 보답을 받지 못했어도 生雖不食報죽어서는 하늘의 돌봄을 입어야 하는데 死當獲天眷어찌하여 기나긴 사십 년 세월 동안 胡然四十載길한 묏자리가 오래도록 안 나타나는가 吉阡久不現어찌 하늘이 돕지 않아서일 뿐이랴 豈直天不助불초한 이 몸이 정성이 없어서라오 不肖無誠力묘지가 귀하다고 말하지 말라 莫言佳城貴두 손까지도 모두 빈손이 되었네 幷與兩手赤옛날에 하자평447)이란 사람은 在昔何子平팔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는데 八年葬不得슬피 울부짖으며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아 悲號哭不已언제나 상차 곁에 있는 듯이 하였네 常如在喪側추울 때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고 寒不衣絮袍굶주려도 소금과 채소도 먹지 않았네 飢不鹽菜食자식이 능히 이처럼 할 수 있다면 有子能如此사람들이 어찌 감복하지 않으리오 人豈不感服이러한 까닭으로 회계 태수가 所以會稽守그를 위해 무덤을 마련해주었네 爲之營塜域사람이 이미 그날처럼 했다면 人旣如此日하늘도 응당 불쌍히 여겼으리라 天應亦矜惻너는 어찌 진즉 이 일을 본받지 않았는가 爾盍早鑑此부질없이 장탄식만 늘어놓고 있구나 徒然長太息지금은 병세가 이미 극심하니 今也病已極후회한들 끝내 무슨 소용 있으랴 噬臍竟何益 我父固孝子, 我母亦賢媛.生雖不食報, 死當獲天眷.胡然四十載, 吉阡久不現?豈直天不助? 不肖無誠力.莫言佳城貴, 幷與兩手赤.在昔何子平, 八年葬不得.悲號哭不已, 常如在喪側.寒不衣絮袍, 飢不鹽菜食.有子能如此, 人豈不感服?所以會稽守, 爲之營塜域.人旣如此日, 天應亦矜惻.爾盍早鑑此? 徒然長太息.今也病已極, 噬臍竟何益? 하자평(何子平)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뛰어났다. 60세가 다 된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여 기근과 전란으로 8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는데, 그 사이에 처음 초상 때처럼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더울 때는 시원한 곳을 피하고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으며, 하루에 적은 쌀로 죽을 만들어 먹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당시 회계 태수 채흥종(蔡興宗)이 이 일을 듣고 불쌍히 여겨 하자평을 위해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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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견【인환】에게 보냄 與安益見【仁煥】 선친의 유고는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 감히 서툰 솜씨를 부렸습니다만, 반드시 오류가 없으리라는 것을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유고(遺稿) 가운데 시편과 〈통문(通文)〉, 〈유북한록(遊漢北錄)〉 등의 작품은 모두 매우 거대하고 웅장하여 논평할 사항이 없습니다. 서한(書翰)과 서문(序文) 2~3편에 대해서는 감히 저의 생각으로 대략 몇 자를 고쳐서 새롭게 하였습니다. 마음이 매우 편치 못하지만 명을 하셨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또 연보(年譜) 중에서 '호군곤유(狐群鵾遊)', '제부(薺浮)' 등의 말은 만약 실제 자취라면 밝혀두는 것이 참으로 좋겠지만,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분명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이것은 효자가 부모를 현창(顯彰)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무릇 얼음 속에서 잉어가 솟구쳐 나오고 눈 속에서 죽순이 돋아나는 일은 천만고(千萬古)에 걸쳐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 때문에 주부자(朱夫子)께서 《소학(小學)》에 적어17)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을 권면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찌 근세 이래로 이를 모방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러한 효행에 대한 감응(感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은 염증이 나고 듣는 사람은 번거롭게 여겨서 실제 행적까지 아울러 믿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자질구레함은 진실로 말할 가치가 없습니다. 댁의 선조(先祖)께서 성취한 사업(事業)이 얼마나 높고도 컸습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위와 같은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성덕(盛德)을 갖춘 분에게 작은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은 비록 평소에 서로 친숙한 사이일지라도 또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다만 존공(尊公 상대방에 대한 존칭)에 대해서는 비록 평소에 일면식조차 없지만, 뜻이 구차하지 않다는 것을 순견(舜見 안국정(安國禎)의 자)에게 익히 들었습니다. 또 순견과 평생에 걸쳐 거스르지 못하는 의리를 지녀 실상을 감추고 말을 꾸미는 사이가 아니라서 감히 언급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탓하지는 않으실까 모르겠습니다. 할고(割股)18), 여묘(廬墓)19) 같은 일이 만약 여리(閭里)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참으로 가상합니다. 하지만 댁의 선조께서 이런 일을 하셨다면 그것은 전해도 되고 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찌 자질구레하고 구차하게 어려운 일을 하여 선조의 명예를 더하거나 덜 수 있겠습니까. 先稿重違尊敎。敢下拙手。安保其必無差謬。悚悚。遺稿中詩什通文。及遊漢北錄諸作。皆極宏偉。無容贊評。至於書序二三篇。敢以鄙意。略加點化。雖極未安。其於有命何。且年譜中。狐群鵾遊及薺浮等語。如其實跡。則著之固好。若或有涉於一毫含糊之地。此非孝子顯親之道也。夫氷鯉雪筍。此是千萬古曠絶之事。是以朱夫子著之於小學。以爲人子事親之勸。豈意近世以來。效嚬成風。此等孝感。不可勝計。觀者厭之。聽者煩之。竝與其實行。而不信之矣。他人區區。固不足言。惟尊先祖所就事業。何等磊落。而若不免小有如右之云。則豈非盛德之微疪耶。此等說。雖平日相熟之地。亦不敢吐口。但於尊公。雖無一面之雅。而其志尙不苟。於舜見聞之已稔且與舜見有平生莫逆之義。而非隱情餙辭之地。故敢及之。倘不以爲罪否。割股廬墓。此事若在於閭里尋常之人。則固爲可尙。若尊先祖而有是焉。則傳之可也。不傳可也。豈以區區苟難之行。有加損也。 주부자(朱夫子)께서………적어 얼음 속에서 잉어가 나왔다는 말은 진(晉)나라 왕상(王祥)이, 어머니가 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차가운 겨울에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 했는데, 얼음이 쪼개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것이다. 《小學 善行》 죽순이 돋아났다는 것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 맹종(孟宗)이 어머니가 죽순을 좋아하는데 겨울이라 구할 수 없자 대숲에 가서 탄식하고 슬피 우니 죽순이 솟아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것이다. 《三國志 卷48 吳書 三嗣主傳》 할고(割股) 효자(孝子)가 자신의 다리의 살을 베어, 부모의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당(唐) 나라 진장기(陳藏器)의 《본초습유(本草拾遺)》에 "사람 고기는 파리한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였으므로, 후세의 효자들이 이 말에 근거하여 병든 부모에게 자기의 살을 베어 먹였다. 여묘(廬墓) 상주(喪主)가 묘소 근처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면서 묘소를 지키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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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경【운환】에게 보냄 與權舜卿【雲煥】 헤어진 뒤 벌써 석 달이 지났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강녕하신지요. 콩죽을 먹고 물을 마시며20) 부모를 모시는 하루를 삼공(三公)의 자리와 바꾸지 않으시는 것21)을 멀리서 앙모(仰慕) 하려니 간절한 마음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접때 제가 변론한 형들의 《답문(答問)》 1책(冊)에 관한 말들은 생각하기에 잘못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모름지기 계남(溪南)과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의 호) 두 어른과 다시 토론하여 확정한 뒤 하나하나 알려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편지에서 언급하신 심의설(深衣說)은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꼼꼼하고 막힌 곳이 없음은 아마도 금일의 절충한 논의가 될 듯합니다. 지난번 산천재(山天齋)에서 올린 말씀은 우리 형께서 이미 소릉(昭陵)을 보듯 했으리라는 것22)을 모르지는 않지만 제가 경애하고 추앙하여 올린 말씀 또한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삼가 보건대 형께서는 학문은 넓지만 정밀함이 부족하고 실천은 올바르지만 돈독함이 부족하십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유유범범하여 갖가지 병통이 말미암는 곳입니다. 만약 하나의 큰 문제를 잡고 공격해서 깨트리지 않는다면23) 무슨 방도로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경계를 보겠습니까. 이에 미진한 생각을 함부로 추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別來月已三弦。省衛康寧。啜菽飮水。一日三公。遙遙馳仰。曷在懇情。向者鄙所辨論兄輩答問一冊語。想多件誤。與溪艾兩丈。更須商確。一一示及如何。所惠深衣說。姑未卒業。然其精詳博洽。恐爲今日折衷之論。向於山天齋所奉贈一語。非不知爲吾兄已見之昭陵。而區區愛仰。亦不爲全然無意。竊覸兄學問博矣。而欠精密。踐履正矣。而欠敦篤。此漫渙悠泛種種病痛所由出也。若不於一處大處攻得破。何由見得妥帖境界也。玆以未盡之意。漫加及之。以爲何如。 콩죽을……마시며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하는 자식의 기쁨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효도를 제대로 못 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라고 위로했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下》 부모를……않으시는 것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시 〈송교집중수재귀고우(送喬執中秀才歸高郵)〉에 "옛사람은 하루 동안 부모 봉양하는 기회를 삼공의 자리와도 바꾸지 않았네.【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臨川文集 卷9》 소릉(昭陵)을……것 수많은 학설을 모두 애모하는 마음으로 모두 독파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황후인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이다. 태종이 황후를 장사 지낸 뒤 후원(後苑)에 망대(望臺)를 만들어 놓고 늘 올라가 바라보다가 한번은 위징(魏徵)과 함께 올라갔었는데, 위징은 당 태종이 소릉을 가리키는데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뗐다. 위징의 본의도 모르고 당 태종이 저것이 아니냐고 답답한 듯이 말하자 위징이 비로소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부터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헌릉은 태종 어머니의 능이니, 이것은 태종이 어머니는 생각하지 않고, 부인만 생각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리하여 태종은 울면서 그 망대를 헐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唐書 魏徵列傳》 하나의……않는다면 《주자어류(朱子語類)》 권8 학(學)2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 "하나의 큰 문제를 잡고 공격해서 깨뜨릴 수만 있으면, 잡다한 다른 문제들도 단지 이 하나의 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속이 바야흐로 시원해질 것이다.【能於一處大處攻得破, 見那許多零碎只是這一箇道理, 方是快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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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회소의 통문에 답하는 글 答通長城會所文 음양의 성쇠는 비록 역대에 걸쳐 이미 그러했지만 나라에 미친 재앙이 지금보다 심한 시절이 언제 있었는가. 일성(日星)이 어두워지고 천지(天地)가 뒤집혀 500년 사직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위태롭고 3천 리 강산이 금수(禽獸)의 발굽에 어지럽혀졌다. 의사(義士)는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겠다는 뜻을 품고69) 필부(匹婦)도 도랑에서 목을 매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문신하거나 몸을 훼손하는 저 오랑캐들은 어찌하여 참으로 잠깐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온 나라를 죽음으로 시커멓게 물들이는가.애처로운 이 수많은 생령(生靈)이 다행히 선왕의 은혜로운 배양(培養)에 힘입어 다양한 방법으로 충의를 떨치는 거사를 일으켰다. 경기(京畿)와 관동(關東)에서는 이미 군위(軍威)가 진동하고 영남(嶺南)과 호서(湖西)에서는 의로운 선전포고가 번갈아 일어나, 병들어 쇠약한 자, 늙어 파리해진 자도 죽지 않은 채 보기를 기다리고자 하고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도 모두 기운을 북돋아 달려 나가고자 하였다. 어찌하여 이 1천 리 호남 고을에서만 안진경(顔眞卿)70) 같은 의리를 지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가. 어찌 사력(事力)의 차이가 있는가. 아, 인정(人情)이 고르지 못하도다!다행스럽게 우리 노사 선생의 집안에서 침랑(寢郞)71)을 지낸 현손(賢孫)이 궐기하여 마침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계책을 내어 한 도 백성들의 마음을 창도(唱導)하였다. 문서(文書)를 돌려 오래도록 억눌려있던 바람을 달래주고 방법과 계략을 제시하니 진실로 군율을 갖춘 군대에 부합하였다. 우리 고을이 멀고 후미진 구석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또한 소화(小華)의 땅이다. 병이호덕(秉彝好德)72)의 성품이 자연히 무너지지 않았으니 휴양(休養)의 은혜 또한 어찌 일찍이 감히 잊었겠는가. 기약하지 않고도 서로 부합하였으니 단지 이를 알리고 주선하고자 한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알리고 또 선비, 서리와 함께 모의하였으니, 창졸간에 준비한다는 것이 가난한 시골에서는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고생스러운 주선이나마 스스로 구원병을 뒤따르고자 한다. 물고기를 먹고자 한들 어찌 곰 발바닥만큼 맛이 좋겠는가. 옥(玉)이면서 깨지는 것이 기왓장으로 온전하기보다는 낫다. 하물며 천도(天道)는 반드시 상도(常道)로 돌아오고 나라의 기틀은 재조(再造)의 운이 있음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 답하여 알리며 삼가 기일(期日)을 알려주기를 기다린다. 陰陽盛衰。雖已然於歷代。邦國喪亂。孰有甚於此時。日星晦沈。天地飜覆。五百年社稷。危如贅旒。三千里江山。交於蹄跡。義士懷蹈海之志。匹婦持經瀆之心。雕題毁形。豈願須臾喘息。黑死全局。哀此億萬生靈。幸賴先王培養之休。爰有多方奮忠之擧。畿輔關東。軍威已振。嶠南湖西。義聲迭興。癃疾老羸。願母死而俟見暗聾跛躄。皆增氣而欲趨。惟此湖南千里之鄕。胡無眞卿一人之義。豈事力之有異。嗟人情之不平。幸我蘆沙先生之門。第有寢郞賢孫之作。乃出萬死之計。以倡一路之心。輪廻文移。治慰久鬱之望。指授方略。允符以律之師。敝邑雖在遐僻之隅。亦是小華之地。彛好之性。自有所不墮。休養之恩。亦何嘗敢忘。有不期而脗合。第奉喩以周旋。旣輪告於村閭。又合謀於儒胥倉卒綢繆。雖甚難於巖邑之貧。艱關拮据。願自附於蟻援之後。魚之欲。曷若態之美。玉而碎。勝於瓦而全。況天道有必反之常。而邦基膺再造之運。玆庸答告。恭俟示期。 의사(義士)는……품고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 노중련(魯仲連)이 신원연(新垣衍)으로부터 진(秦) 나라를 황제(皇帝)로 받들자는 말을 듣고는 매우 분개하여, "불의한 진 나라가 황제가 되어 천하에 정사를 펴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魯仲連傳》 안진경(顏眞卿) 709~785.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신으로, 평원 태수(平原太守)로 있으면서 안녹산(安祿山)이 배반할 것을 알아차리고 미리 그에 대비하였다. 후에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북(河北)의 24개 군이 모두 무너졌지만, 안진경이 군사를 일으켜 적병을 토벌하였다. 현종이 기뻐하면서 "나는 안진경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53 顔眞卿列傳》 침랑(寢郞) 침랑(寢郞)은 능참봉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 왕릉(王陵) 및 원(園)의 관리를 맡은 참봉으로 종9품의 실직(實職)이다. 병이호덕(秉彝好德) 사람이라면 모두 천성적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시경》 〈증민(烝民)〉에서 "사람이 떳떳한 본성을 가진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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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지의 자에 대한 설 吳永之字說 무릇 인정(人情)은 나쁜 점을 미워하고 훌륭한 점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몸과 마음을 다해 애를 써서 훌륭한 점을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은 지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따지고 터럭만큼도 헤아려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고 한칸 한칸 더하여 반드시 천 리 멀리 뻗어나가고 만 장(丈)에 이르도록 높이 쌓고자 하여야 한다. 그러나 키우는 방법에는 가함과 불가함이 있으니 가한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키우는 방도가 도리어 줄이는 것이 된다. 곤궁함과 통달함, 높고 낮은 우열은 사물의 장단(長短)이고 선악(善惡), 사정(邪正)은 이치의 장단이다.천하의 사물은 모두 형통하기만 하고 막히지 않거나 높아가기만 하고 낮아지지 않은 법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본래 처음 생겨났을 때 얻은 것이고 지력(知力)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천하의 이치는 본래 모두 지선(至善)하고 악(惡)이 없으니 이 또한 처음 생겨났을 때 얻은 것이고 터럭만큼도 이지러트릴 수 없는 것이다. 저쪽에서 잘한 것이 많더라도 이쪽의 잘못을 보충할 수 없지만, 안에서 힘입은 것이 이미 깊다면 외부의 가벼운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사람은 그 물체를 볼 수는 있어도 그 이치를 보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각기 잘하는 것을 지키면서 스스로 만족해한다. 이는 마치 철 따라 나타나는 곤충이나 철새가 어지럽게 다투듯 울어대다가도 순식간에 아득히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아, 하늘과 땅이 장구(長久)한 까닭, 해와 달이 항구(恒久)한 까닭, 험준한 산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 강과 바다가 마르지 않는 까닭, 사람의 병이(秉彝)가 추락하지 않은 까닭은 과연 어째서인가? 이것이 예부터 뜻을 지닌 선비가 두려워하고 분발하여 물루(物累)에 얽매지 않고 형해(形骸)에 구애되지 않으며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고 천하의 큰길[大道]을 다니며 천하의 대장부가 된78) 다음에야 멈추었던 까닭이다.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존재하고79)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지 않아도 풍족하고 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교화를 이루고80) 처신은 매우 간략하면서도 지극히 광대하고 힘쓰는 바는 매우 비근하면서도 지극히 장대하니, 이것이 삶과 죽음을 떠나 끝까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이다.《주역(周易)》에 "항(恒)은 형통하다."81)라고 하고, 또 "원서(原筮)하여 크고 떳떳하고 올곧다."82)라고 하였다. 오군 장섭(吳君長燮)이 영지(永之)를 자(字)로 삼았으니 장구하고 항구한 뜻에 대해서 반드시 구별하고 힘을 쏟은 바가 있을 것이다. 삼가 나 자신의 고루함을 잊고 설(說) 한 편으로 거듭 면려한다. 夫人之情。莫不惡短而好長。其所以勞心勞力。使之趨於長長者。錙銖計量。毫釐揣摩。分分增累。寸寸附益。必欲引而至於千里之遠。築而至於萬丈之崇。然長有可不可。苟不擇其可。則其所以長之。適以短之。窮通軒輊。物之短長也。善惡邪正。理之短長也。天下之物。不能皆通而不窮。皆軒而不輊。則此固得於有生之初。而不可以知力推移者也。天下之理。本皆至善而無惡。則此亦得於有生之初。而不可以絲毫虧欠者也。得於彼者雖多。而不足補此之失。資於內者旣深。則可以見外之輕。但人能見其物。而不能見其理。是以各占所長。自多爲得。如候䖝時鳥。紛然競聒。而須臾之頃。漠然無有也。嗚呼。天地之所以長永。日月之所以恒久。山嶽之所以不頹。河海之所以不渴。人彛之所以不墜。其故果何爲哉。自古有志之士。所以惕勵奮拔。不囿於物累。不局於形骸。而居天下之廣居。行天下之大道。爲天下之大丈夫而後己者也。不下帶而存。不求人而足。不出家而成。所處至約而至廣。所務至近而至長。此是生死究竟太上第一着也。易曰。恒亨。又曰。原筮元永貞。吳君長燮。表德以永之。其於長永常久之義。必有所擇而用力者矣。謹以一副說。忘其固陋。而重加勉焉。 천하의……대장부가 된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것을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기에, 부귀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그 절개를 바꾸지 못하며, 위세나 무력이 그 지조를 꺾을 수 없을 때,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말은 평이하면서도 뜻은 심원한 것이 좋은 말이고, 지키기는 간단해도 베풀어질 수 있는 것이 좋은 도이니, 군자의 말은 눈앞의 일상을 얘기하지만 거기에 도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의 주에 "옛사람들은 시선이 허리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허리띠 위는 바로 눈앞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지극히 가까운 곳이다.[古人視不下於帶, 則帶之上, 乃目前常見至近之處也.]"라고 하였다. 이는 군자의 말은 눈앞에 보이는 일상적인 일을 말하지만 도는 항상 여기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집을……이루고 《대학장구》 전 9장에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나의 효(孝)를 신하가 본받으면 임금을 잘 섬기게 되고, 제(弟)를 본받으면 장관을 잘 섬기게 되고, 자(慈)를 본받으면 대중을 잘 부리게 된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항(恒)은 형통하다 《주역》 항괘 괘사(卦辭)에 보인다. 원서(原筮)하여……올곧다 《주역》 〈비괘 단(彖)〉에 "원서(原筮)하여 크고 떳떳하고 올곧아야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강중(剛中)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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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록 日誌錄 내 나이가 올해로 44살이다. 이 나이는 옛사람이 말한 불혹(不惑)과 지명(知命)의 시기15)이건만 학문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마음은 더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무지하고 어리석기가 곧 당시 동몽(童蒙) 시절의 우매한 식견일 뿐이다. 그러나 정신(精神)과 기백(氣魄)으로 말하자면 날이 갈수록 쇠퇴하여 예전과 어느덧 너무도 달라졌다. 생각하면 슬픈 탄식만 나올 뿐이니 이번 생을 어찌할까? 다만 평생에 걸친 학업을 늙은 나이에 이르러 바꿀 수도 없으니 그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뒤늦게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보고 들은 것을 앞뒤로 잊어버리고 놓쳐서 이해하여 무젖어 들 연고가 없다. 이에 조그만 책자 하나를 마련해 놓고 하루 중에 있었던 응대와 사색을 통한 모든 깨달음을 손이 가는 대로 간단하게 기록하여 한편으로는 온고(溫故)의 계책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취정(就正)16)의 자료로 삼는다.음양(陰陽)의 대대(對待)는 교역(交易)이고 유행(流行)은 변역(變易)이다.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유행 변역(流行變易)을 위주로 말을 하였지만 변역의 기(氣)는 곧 대대 교역(對待交易)의 기이다.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성(性)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있을 뿐이지 어찌 효제(孝弟)가 있겠는가."17)라고 하였다. 이 말에 근거하면 성(性)에는 효제(孝弟)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 넷의 이면에는 세세한 조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행(五行)에서 목(木)을 말하면 송(松), 백(柏), 상(橡), 장(樟)이 모두 그 이면에 포함되어 있고 수(水)를 말하면 강(江), 회(淮), 하(河), 한(漢)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되는 것과 같다.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몸에 가득찬 것이 측은(惻隱)하게 여기는 마음이다."18)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천지 만물이 일체(一體)임을 깨달은 것이 가장 적확하고 확실하다. 만약 몸[腔子] 밖에서 찾는다면 끝없이 광대하여 교섭(交涉)이 없다고 하였다. 사욕(私欲)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19)가 완전하면 미발(未發)일 때는 천지와 동체(同體)이고 이발(已發)일 때는 천지와 동류(同流)한다. 이른바 "공정하면 하나가 된다."20)라거나 "조용한 가운데 만물을 보면 모두 봄의 뜻을 지니고 있다."21)라는 것도 이러한 뜻이다.태극(太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하늘의 측면에서는 온갖 이치를 일컫는 총명(總名)이지만 사람의 측면에서는 온갖 선(善)의 총체(總體)이다.음양(陰陽)이라는 양단이 비록 만 가지로 변화하지만 생리(生理)가 두루 흐르지 않는 경우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용은 쟁기, 질그릇, 병기, 문서 따위일지라도 생리(生理)에 필요한 도구가 아닌 것이 없다."명(命)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22) 이 구절에서 '명(命)' 자는 기수(氣數)23)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위(人爲)를 범하는 일이 없으며, 길흉과 영욕(榮辱)의 도래에 터럭만큼도 스스로 취함24)이 없는 다음에야 명(命)에 맡길 수 있다. 이것을 안다면 이로움을 보고도 이로움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해로움을 보고도 해로움을 피하지 않으며 오직 의리(義理)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니 어찌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천하의 한 가운데에 서서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군자는 즐기지만,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25)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이미 여기에 있지 않다면 유독 다른 곳에 있겠는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천만인이 모두 같지만 지분(地分 지위(地位))은 천만인이 모두 다르다. 같지 않기 때문에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같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또 저마다 행해야 하는 도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부족하고 저것은 풍족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굳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바라겠는가.유기(游氣)26)는 어떤 기(氣)인가? 천지 음양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만물이 유기가 되고 본체(本體)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음양이 유기가 된다.사악함을 막아내면 성(誠)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지27) 사악함을 막아내는 것 외에 별도로 성(誠)을 보존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또한 그러하다. 다만 선(善)으로 옮겨 가는 것,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본래 두 가지 일이다. 대체로 마음에서 발(發)하는 것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두 가지일 뿐이다. 천리가 아니면 곧 인욕이고 인욕이 아니면 곧 천리일 뿐, 이 둘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일에 응하는 것에는 선한 것이 있고 잘못한 것이 있어 만 가지로 다르다.주자(朱子)의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에 이르기를,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다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라고 논한 것은 의미가 또한 매우 합당합니다. 이것이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안 뒤 다시 마음을 비우고 뜻을 넉넉하게 하며, 생각을 바꾸어 비교하거나 헤아리지 말고 밖으로 향하여 뭇 이치를 널리 살피고 더욱 북돋아 준다면 뿌리는 매우 단단해지고 가지와 잎은 더욱 무성할 것이다. 정좌한 곳에서만 탐구한다면 도리어 미리 기대하고 마음에서 잊으며 조장(助長)하는 병통28)을 벗어나지 못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내 병에 들어맞는 것이 증상에 따라 조제(調劑)를 하는 듯하니, 천 년이 지난 뒤를 기다려 준비한 듯하였다. 여러 번 읽으려니 비통한 마음이 들어 이 말의 의미를 늦게 깨달은 것이 더욱 한스럽다.인욕(人欲)의 해로움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질(氣質)의 치우침[偏]이고, 둘째는 눈과 귀의 가림[蔽]이고, 셋째는 외물(外物)과 자신의 구별[形]이다. 나약하고 혼란스러우며 포악하고 경박한 것이 기질의 치우침이다. 탐욕과 인색에 빠져 경영에 골몰하는 것이 눈과 귀의 가림이다. 남을 시기(猜忌)하고 각박하게 대하며 잔인(殘忍)하게 구는 것, 교만하게 굴다 부끄러움에 위축되는 것이 외물과 자신의 구별이다. 이 세 가지가 거듭거듭 반복하여 더욱 심각하게 서로를 거들어 준다. 그러나 기질의 치우침이 그 본령이기 때문에 옛사람은 기질의 변화를 말하였다.마음에 편협한 바가 있으면 넓고 큰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허위가 있으면 진실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게으르고 산만한 바가 있으면 엄숙하고 장중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사곡한 바가 있으면 정직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한다. 하루하루가 이와 같아서 선(善)을 행하는 힘이 앞서 말한 것들을 이기기에 충분한 다음에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정자(程子)는 "성(性)에 어찌 일찍이 효제(孝弟)가 있었는가."29)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효제는 사람을 기다려 배정(排定)되는 사물인가? 그렇지 않다. 본성으로 여기는 것30) 안에는 천리(天理)가 온전히 갖추어지며 이 이치가 부모에게 베풀어지면 효(孝)라고 하고, 군주에게 베풀어지면 의(義)라고 하고, 연장자에게 베풀어지면 제(弟)라고 한다.다만 성(性)은 만물(萬物)의 일원(一原)이고 효제(孝弟)는 사람의 직분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원(一原)이라는 측면에서 효제라는 명칭을 덧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효제의 이치가 본래 일원(一原)에 달려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이나 연장자가 되는 까닭은 일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라고. "아버지와 아들, 군주와 신하, 형과 어른은 기(氣)이기 때문에 본래 일원(一原)에 있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과 어른이 되는 까닭은 이미 일원 안에 있다."라고.일본(一本)은 본래 천명의 전체(全體)이고 만수(萬殊)는 천명의 유행(流行)이다. 그렇다면 만수(萬殊)는 과연 기(氣)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가?일설에 따르면 궁리(窮理)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과 소이연(所以然)이 있다. 소당연(所當然)은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 같은 것이고 소이연(所以然)은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이 비롯된 곳이니 곧 천명의 성(性)이다. 일설에 따르면 소당연은 본래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이고 소이연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자애롭고 효성스러워야 하는 이유이다. 두 가지 설이 어떤지 모르겠다.내가 말한다. 궁리(窮理)의 도는 본래 일단(一端)이 아니다.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고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으며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다.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에서 궁구하는 것은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궁구하는 것은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의 효성스러움에서 보는 것은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만수(萬殊)에서 일본(一本)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있는가.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만수(萬殊)에 이른다. 만수(萬殊)의 소이(所以)는 이러한 곡절이 있는 것에서 말미암기 때문에 일본(一本)임을 알게 된다. 이치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소이연(所以然)이 정말 일본처(一本處)이다. 사물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곡절이 다름을 아는 것이 일본에 나아가는 방법이다.전에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보니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하게 되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혼자 생각하기를 이것은 유행(流行)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대대(對待)의 체(體)가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지나 생각해보니 '동(動)하고[動而]', '정(靜)하고[靜而]'라는 것은 유행(流行)의 용(用)이고 소자(邵子 소옹(邵雍))가 이르는 "용(用)은 천지보다 먼저 일어났다."31)라는 것이었다. '양(陽)을 낳고[生陽]', '음(陰)을 낳는다[生陰]'32)라는 것은 대대(對待)의 체(體)이고 소자가 이른 "체(體)는 천지보다 나중에 확립되었다."33)는 것이었다. 다만 한번 동(動)하고 한번 정(靜)하는 용(用)이 천지보다 앞서 일어나서 천지의 뒤에서 유행하는 것이지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뉜 이후에 유행하는 별도의 기(氣)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라고 한다.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다. 무릇 일신(一身)의 시청(視聽), 행보(行步), 의식(衣食), 어묵(語黙)은 천기(天機)가 아닌 것이 없지만 터럭만큼의 사의(私意)가 개입하게 되면 그것은 천칙(天則)이 아니다.기축년(1889, 고종26) 봄, 관산(冠山)의 사문(斯文)인 치운(穉雲) 위용규(魏龍奎)가 벽산 서사(碧山書舍)에서 나와 종유(從遊)하였다. 하루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뜻에 대해서 강론을 하였는데 치운(穉雲)이 말하기를, "예전에 남파(南坡) 이장(李丈)34)이 노사 선생(蘆沙先生)과 이 뜻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남파가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뜻을 가지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이것은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문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부에게 분별이 있는 다음에 부자간이 가까워진다.」35)라고 하고 또 「금수(禽獸)가 어미가 있음은 알지만, 아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부부의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36)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여태까지 나도 유별(有別)의 뜻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남파의 견해와 같았기에 이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실의(失意)에 빠졌다. 만약 한 쌍의 부부가 함께 지내는 뜻으로 말하자면 반드시 "부부 사이에는 은혜가 있다."라고 해야지 다만 "부분 간에는 분별이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어지럽히지 않는다."라는 것은 진실로 정당한 도리이고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것"은 단지 그 안에 포함된 세세한 조리이다. 아, 선생을 모시던 날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을 선생이 돌아가시고 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여서 강론하는 즐거움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돕는 것과 잊는 것은 항상 서로 의존한다. 잊기 때문에 돕고 돕기 때문에 잊는다. 잊지 않는다면 어찌 돕는 일이 있겠으며, 돕지 않는다면 어찌 잊는 일이 있겠는가. 모름지기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않는37) 사이가 곧 본심(本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경립(景立 박준기(朴準基)의 자)이 말하기를, "허다한 조리를 어찌 늘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일에 응할 때 또 어찌 유의하여 안배(安排)할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지만, 만상(萬象)이 늘 거울 안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먼지와 때를 닦아내어 깨끗하고 선명하여 막힘이 없이 두루 비추게 한다면 사물이 비록 이르지 않더라도 만상(萬象)이 여기에 잠겨있지 않다고 이를 수 없다. 어떤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 주장이 진실로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울을 닦는 방법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천에 공력을 들이는 쪽으로 향하지 않고 그저 두 눈을 부라리고 벽을 향한 채 심성(心性)만 관찰한다면 반드시 텅 비고 적막한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요컨대 사려(思慮)를 멈춰야 곧 다소간의 사려가 있게 된다. 장중함과 경건함으로 지키고 기르는 것38)이 가장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요긴한 일이다.묻건대, 격물(格物)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도 있고 소이연(所以然)도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대답한다. "발의 모습은 진중해야 한다[足容重]39)고 말한다면 발은 땅이다. 일신(一身)의 아래에서 허다한 것들을 떠받드니 그 모습이 진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소이연이다. 단정함과 침착함, 경솔하거나 성급하지 않은 것, 이것이 소당연이다. 또 잰걸음으로 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서 있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부모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군주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이 '족용중(足容重)' 안에 있는 세세한 조리이고, 또한 각각의 소이연이 없는 경우가 없다."인(仁)은 애초에 자연적으로 부여받아 본디 존재하는 것이지 천지 만물이 일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생(生生)40)과 지애(至愛)의 이치가 있기만 하면 곧 천지 만물은 저절로 일체가 되니, 한 개의 종자(種子)가 생생(生生)의 이치를 지니고 있어 수많은 천 개의 가지 만 개의 잎새가 돋는 이치가 저절로 완비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인(仁)하기 때문에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시용처(施用處)로 말하자면 이 또한 일체이기에 인(仁)하다고 이를 수 있다. 생생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부자의 분변이 있고 부자가 일체(一體)이기 때문에 자애(慈愛)와 효성(孝誠)의 도리가 있다. 지난해 계원(繼元)41)과 이 뜻을 논의하느라 서신을 꽤 많이 주고받아 소소한 결론이 없지 않았다.먼저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대해 사색을 하고 눈앞 가까운 곳에서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근거로 삼아 지키는 곳이 있게 된다. 만약 그저 고묘(高妙)한 곳을 향해서 성(性)을 말하고 이(理)를 말한다면 전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게 된다.사(邪)와 정(正)은 본래 병립하지 않고 공(公)과 사(私)는 본래 병행하지 않는다. 날마다 대공지정(大公至正)한 이치를 보고 날마다 대공지정한 영역으로 나아간다면 자질구레한 편벽함이나 사특함은 저절로 용납될 곳이 없게 된다.몸가짐이 반듯한 다음에 예의(禮義)가 행해진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 것42)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일신(一身)은 태극(太極)의 상(象)이고 형기(形氣)는 음양(陰陽)의 상이다. 기혈(氣血)과 골육(骨肉)은 오행(五行)의 상이고 백해(百骸)와 만규(萬竅)43)는 만물(萬物)의 상이다.허공에 매달린 이치가 없으므로 일찍이 별도로 통체(統體)로서의 태극도 있었던 적이 없다. 다만 양(陽)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음(陰)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오행(五行)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고, 만물(萬物)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며, 음양ㆍ오행ㆍ만물을 합쳐 통체의 태극이 된다. 그러나 통체의 태극은 각구(各具)44)의 태극보다 많지 않고 각구의 태극은 통체의 태극보다 적지 않다. 이는 각구 안에 절로 통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하늘은 만물에 대해서 사물 하나하나를 조각(雕刻)하지 않는다. 또한 아득히 만물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다. 천지 만물은 단지 일체(一體)이고 다시 분별이 없으니, 사람의 일신 사체(一身四體)에 생리(生理)가 두루 돌면서 서로 관여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성선(性善)을 분명히 하고 충신(忠信)을 주로 하는 것, 이것은 "먼저 그 대체(大體 心)를 확립한다."45)고 하는 것이니, 선유(先儒)가 긴요하게 사람들을 위해 말해준 것이다. 학문을 하는 도가 어찌 이것보다 더하겠는가. 이것이 《대학(大學)》이 초학자가 덕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까닭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불성무물(不誠無物)46) 4자를 자세히 완미하고 탐구해야 한다.사심(私心)이 사라지면 동정(動靜), 어묵(語黙)이 모두 천기(天機)이다. 장자(莊子)가 이른 "기욕(嗜欲)이 깊은 사람은 천기(天機)가 낮다."47)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이다.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정(正)을 중(中)에 짝지어 놓으면 중(中)이 중요하고, 의(義)를 인(仁)에 짝지어 놓으면 인(仁)이 근본이 된다.……"48)라고 하였다. 정(靜)을 위주로 한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주정(主靜)의 설로 보자면 정(正)과 의(義)가 주가 될 듯하건만 주자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인가? 대체로 음양(陰陽)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49)은 인의(仁義)가 서로 체(體)가 되기 때문이다. 정(正)과 의(義)를 근본으로 삼으면 중(中)과 인(仁)이 용(用)이 되고 중(中)과 인(仁)을 체(體)로 삼으면 정과 의가 용(用)이 된다."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는 이치상 말하는 것이고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지만, 만상(萬象)이 빽빽하게 이미 갖추어져 있다."50)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성(性)은 곧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음양 동정(陰陽動靜)이 지닌 본연(本然)의 묘(妙)이다. 그러나 유독 미발(未發)을 성(性)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미발은 성(性)이 아니다. 다만 미발한 상태에 갖춰진 것이 성이다. 미발한 상태에서는 기(氣)가 용사(用事)하지 못하고 도의(道義)가 온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에 성(性)이라고 이른다.일본(一本 하나의 근본)51)은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대본(大本 큰 근본)52)은 심(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구(各具)에 일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불가하다.혹자가 "만수(萬殊) 외에 별도로 일본(一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천(天)은 만물(萬物)의 일본이고 심(心)은 만사(萬事)의 일본이니 천(天)과 심(心)은 사(事), 물(物)과 구별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한다. "천(天)은 만물에 대해서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심(心)은 만사에 대해서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대체로 천(天)과 심(心) 또한 만수(萬殊) 안에 있는 일물(一物)이다. 나는 일찍이 천지 만물을 합한 것을 일본으로 여기고 천지 만물을 나눈 것을 만수라고 생각하였다. 지금에 와서 보자니 매우 타당하지 못하다. 일본과 만수는 애초에 위계와 등급이 없다. 다만 일본 안에 만수가 있고 만수 안에 일본이 있을 뿐이다."사람이 태허(太虛)와 음양(陰陽)의 기(氣)에 뿌리를 두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뿌리를 두고 나무가 흙에 뿌리를 두는 것과 같아 활동과 휴식, 호흡이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다.마음이 장중하면 목소리가 편안하고 마음이 화평하면 목소리가 평안하다. 강론과 연구가 정밀하면 그 말이 조리가 있고 후련하며 존심 양성(存心養性)이 익숙해지면 그 말이 느긋하고 진중하다.묻건대,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지만53),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하늘에서 양을 받고 땅에서 음을 받는 것은 어째서인가? 천일(天一)과 지이(地二)는 대대(對待) 안의 착종(綜錯)이고, 양을 받고 음을 받는 것은 착종 안의 대대이다. 음양이 있은 다음에 오행(五行)이 있고 오행이 있은 다음에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그러므로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는 것은 그 위의 하나의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생겨날 때 처음에는 청허(淸虛)했다가 조금씩 견실해져 수(水), 화(火), 금(金), 목(木)이 차례로 생성되는 상(象)이 있게 된다. 기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이(理)는 일시에 모두 갖추어져 완전하고 자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거나 남는 것이 없다. 기질의 변화는 이(理)를 분명히 알고 함양이 숙련되는 것에 달려있다. 만일 이(理)임을 알고서도 함양하지 않는다면 구이지학(口耳之學)54)일 뿐이니 어찌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무릇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는 것은 모두 본래부터 절로 있던 도리이다. 바르고 반듯하여 깨달음이 분명하다면, 이는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 두는 것이니55) 어찌 사사로운 뜻에 이끌리는 근심이 있겠는가.만물을 생성(生成)하니 그 덕이 천지보다 위대한 것이 없건만, 천지가 어찌 일찍이 오만한 마음을 가졌던가. 일세(一世)를 빚어내니 그 공이 성인보다 성대한 것이 없건만, 성인 또한 어찌 일찍이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녔던가. 비록 효성이 대순(大舜)과 같더라도 이 또한 자식의 당연한 직분이고 학문이 공자(孔子)와 같더라도 이 또한 학자의 당연한 직분이니 어찌 오만하거나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겠는가. 오만하고 만족하는 자는 단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余年今四十有四矣。此是古人不惑知命之日。而學不加進。心不加存。其蚩蚩貿貿。卽當日蒙蔀童昏之見耳。然至於精神氣魄。則日衰月頹。與疇昔遽已大不相同。撫念悲歎。此生何爲。但平生之業。不可到老改轍。只有黽勉不舍。庶幾餘效。而聞見所及。先忘後失。無緣會得浹洽。於是置一小冊子。凡日間應接及思索得失。隨手箚記。一以爲溫故之計。一以爲就正之資也。陰陽之對待者。是交易也。流行者。是變易也。周子太極圖說。是主流行變易而言。然變易之氣。便是對待交易之氣。程子曰。性中只有箇仁義禮智。曷嘗有孝弟來。據此似若性中無孝弟。然四者裏面。細條里都包在了。如五行言木則松柏橡樟都包在裡面。言水則江淮河漢都。包在裏面。程子曰。滿腔子是惻隱之心。於此見天地萬物一體最爲的實。若去腔子外尋覓。浩浩茫茫。無交涉云。夫私欲淨盡。生理渾全。則其未發也。與天地同體。其已發也。與天地同流。所謂公則一。所謂靜中觀萬物皆有春意者。亦此意。太極不是一箇可見之物。在天爲萬理之總名。在人爲萬善之統體。陰陽兩端。雖極萬變。而莫非生理之周流。人生日用。雖耒耟陶冶甲兵簿書之類。莫非生理所須之具。不知命。無以爲君子。此命字。指氣數而言也。人生一循天理。無犯人爲。凡吉凶榮辱之來。無一毫自取。而後可諉於命。知此則見利不趨。見害不避。惟知有義理而已。豈不爲君子乎。中天下而立。定四海之民。君子樂之。所性不存。所性旣不存於此。則獨可存於彼乎。所性者。千萬人皆同。地分者。千萬人皆不同。不同故所性不存。而因其不同。又莫不各有當行之道。不爲此嗇而彼豊。何必捨此而慕彼哉。游氣何氣也。以天地陰陽之氣爲主。則萬物爲游氣。以萬物當體之氣爲主。則陰陽爲游氣。閑邪則誠自存。不是閑邪之外。別有存誠也。克己復禮亦然。但遷善改過。自是二事。蓋發於心者。則天理人欲二途而已。非天理便是人欲。非人欲便是天理。無兩相對峙故也。應於事者。則有善底有過底有萬不同也。朱子答呂子約書曰。所論必有事焉。鳶飛魚躍。意亦甚當。知得如此。已是不易。更且虛心寬意。不要回頭轉腦。計較論量。却向外博觀衆理。益自培殖。則根本已固。而枝葉愈茂矣。若只於靜坐處尋討。却恐不免正心助長之病云云。此言偏中我病。如對證下劑。千載之下。似爲等待而準備者。三復悲悵。益恨得味此言之晩。人欲之害。大槪有三。一則氣質之偏也。二則耳目之蔽也。三則物我之形也。柔懦昏濁。曓戾剛輕者。氣質之偏也。貪嗇浸淫。經營汨沒者。耳目之蔽也。忌克殘忍。虛驕羞縮者。物我之形也。三者輾轉因仍。相助益深。然氣質之偏爲其本領。故古人以變化氣質言之。意有所褊隘。則以廣大底意思克之。有所虛僞。則以眞實底意思克之。有所怠散。則以嚴凝底意思克之。有所邪曲。則以正直底意思克之。日日如此。使爲善之力。足以勝彼。然後可以有進。程子曰。性中曷嘗有孝弟來。然則孝弟是待人排定底物事耶。曰不然也。所性之中。天理全具。而此理之施於親者。謂之孝。施於君者。謂之義。施於長者。謂之弟。但性爲萬物之一原。而孝弟是人分上說。故不可就一原上以孝弟之名加之也。曰孝弟之理。固在一原上。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者。則不在於一原耶。曰父子君臣兄長。是氣也。固不在於一原。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之理則已在於一原中矣。一本固天命之全體。而萬殊是天命之流行也。然則萬殊果是因氣而有者哉。一說窮理之道。有所當然所以然所當然。如父之慈子之孝所以然。是慈孝之所從來。卽天命之性也。一說所當然。固爲父之慈子之孝。而所以然。是就父子上所以慈孝之故也。未知二說何如。曰窮理之道。固非一端。有就理上看者。有就物上看者。有就事上看者。就慈孝上窮究。是理上看。就父子上窮究。是物上看。就父慈子孝上窮究。是事上看。自萬殊至一本。中間甚有多少曲折。有如此曲折。故至於萬殊。所以萬殊者。由其有此曲折。故知其一本。就理上窮究。則所以然。固是一本處。就事物上窮究。則知其曲折不同。所以造乎一本。向看太極圖說。動極而靜。靜極復動之語。竊疑此是流行一邊說。而非對待之體。追後思之。動而靜而者。是流行之用。邵子所謂用起天地先者也。生陽生陰者。是對待之體。邵子所謂體立天地後者也。但一動一靜之用。起於天地之先。而行於天地之後。非分陰分陽之後。別生一箇流行之氣也。是故曰靜極復動也。此身非我私物。凡身之視聽行步喫着語黙。莫非天機。纔着一毫私意。不是天則。己丑春。冠山魏斯文穉雲龍奎。從我游碧山書舍。一日講及夫婦有別之義。穉雲曰。昔聞南坡李丈與蘆沙先生論此義。南坡以一夫婦居內居外之義言之。先生曰。非也。此是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之義也。是以有曰夫婦有別。然後父子親。又曰禽獸知有母而不知有父。以其無別也。予從來解認有別之義。亦如南坡之見。及聞此語。不覺怳然。若以一夫婦相與之義言之。則必曰夫婦有恩。不但曰夫婦有別也。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者。此固正義。而一夫婦居內居外。特其中細條理也。嗚呼。摳衣之日。未及聞之。而至於山頹十年之後。乃得聞之。此講聚之樂不可無也。助忘常相因。忘故助。助故忘。不忘則何助之有。不助則何忘之有。須知勿忘勿助之間。乃是本心。景立說許多條理。安能常常記念。應事時。又安能着意安排。比如明鏡照物。不成萬象常在鑑中。但洗磨塵垢。使淸明通徹。則物雖不至。而不可謂萬象不涵於此。未知何如。余謂此說固好。但磨鏡之方。不向格致踐履上用功。而若只撑眉努眼。向壁觀心。則必入空寂寂地去矣。要息思慮。便有多少思慮在。惟莊敬持養四字。最不煩而要。問格物之道。有所當然所以然。是如何。曰如說足容重。則足者地也。在一身之下。而承載得許多。其容不得不重。此所以然也。端重安詳。不輕躁不草率。此所當然也。且趨時當如何。立時當如何。升降時當如何。進退時當如何。在親前當如何。在君前當如何。此是足容重中細條理。又莫不各有所以然。仁者合下天然自有之物。不爲天地萬物一體而有也。然纔有生生至愛之理。則便是天地萬物自然一體。如一箇種子。只有生生之理。所以千枝萬葉之理。自然完具此其仁故一體也。若以施用處說。則亦可謂一體故仁也。有生生之理。故有父子之分。而且父子一體也。故有慈孝之道。昔年與繼元論此義。頗費往復。不無小小歸宿。先就日用事物上。窮索得仁義禮智。見眼前至近天理流行。然后方有據守處。若只向高妙處說性說理。都無着摸。邪正本不倂立。公私本不竝行。日觀大公至正之理。日就大公至正之域。則區區邪私。自無容處。容體正然后禮義行。不遷怒。自正容體始。一身太極之象。形氣陰陽之象。氣血骨肉。五行之象。百骸萬竅。萬物之象也。無懸空之理。故亦不曾別有統體之太極。只是在陽爲一太極。在陰爲一太極。在五行亦各一太極。在萬物亦各一太極。合陰陽五行萬物爲統體之太極。然統體之太極。不多於各具之太極。各具之太極。不少於統體之太極。是各具中自有所謂統體者。天於萬物。非物物刻而雕之也。亦非汗漫不關聽其自爾也。天地萬物只是一體。更無分別。如人之一身四體。生理周流。無不相管。明性善而主忠信。此是先立乎大者云者。此是先儒喫緊爲人處也。爲學之道。豈有以加於此乎。此大學所以爲初學入德之門。可不勉哉。不誠無物四字。當仔細玩求。私意消化。則動靜語黙。皆是天機也。莊子所謂人於嗜欲深者。其於天機淺亦此意。朱子曰。以正配中。則中爲重。以義配仁。則義爲本云云。以周子主靜之說觀之。似以正義爲主而朱子之言如是何耶。蓋陰陽互爲其根者。是仁義互爲其體故也。以正義爲本。則中仁爲用。以中仁爲體。則正義爲用。無極而太極。是理上說。沖漠無眹。萬象森然已具者。心上說。性卽太極也。太極是陰陽動靜本然之妙也。然獨以未發爲性何也。曰未發非性也。但具於未發者。是性也。未發則氣不用事。而道義全具。故謂之性。一本以理言。大本以心言。故各具中。謂有一本則可。謂有大本則不可。或曰。萬殊之外。非別有一本云爾。則天爲萬物之一本。心爲萬事之一本。而天與心。非別於事與物耶。曰天於萬物。謂之一本則可。以不可謂之大本。心於萬事謂之大本則可。而不可謂之一本。蓋天與心。亦萬殊中一物。予曾以合天地萬物爲一本。分天地萬物爲萬殊。以今觀之。殊甚未穩。一本萬殊。初無堦位等級。只是一本中有萬殊。萬殊中有一本。人根於太虛陰陽之氣。如魚根於水。木根於土。其動息呼吸。未嘗須更間斷。心莊則聲宏。心和則聲平。講治精則其言條暢。存養熟則其言舒重。問天一生水。地二生火。然而人物之生。稟陽於天。稟陰於地何耶。天一地二。是對待中綜錯也。稟陽稟陰。是綜錯中對待也。有陰陽然後有五行。有五行然後萬物化主。則天一生水。地二生火。是其上一節事也。然凡物之生。莫不初淸虛而漸堅實。有水火金木次第生成之象。氣則推行有漸。而理則一時都具。完全自足。更無欠剩。變化氣質。只在見理明涵養熟。若見理而無涵養。則只是口耳之學而已。何氣質之可變哉。凡有物有則。皆合下自有底道理。方方正正。見得分明。則此是物各付物。安有私意牽引之患哉。生成萬物。其德莫大於天地。而天地何嘗有驕矜之心。陶鑄一世。其功莫盛於聖人。而聖人亦何嘗有滿足之意。雖孝如大舜。而亦人子分內當然底。學如孔子。而亦學者分內當然底。何驕矜滿足之有。人之驕矜滿足者。只是心狹故也。 불혹(不惑)과……시기 '불혹(不惑)'은 《논어》 〈위정(爲政)〉의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가리키며 '지명(知命)'은 "오십 살에 천명을 알았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취정(就正) 스승을 찾아가 학문의 옳고 그름을 질정(質正)하는 것으로, 공자(孔子)는 "군자가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고 도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질정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學而》 성(性) 안에……있겠는가 《논어》 〈학이(學而)〉 2장의 주자 주(朱子注)에 보인다. 몸에……마음이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권3 〈답장경부문목(答張敬夫問目)〉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니, 이는 사람의 몸에서 이 이치가 충만한 곳을 가장 절실히 가리킨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깨닫는다면 만물이 일체이며 안팎의 구별이 없게 되고,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가슴속을 떠나 밖에서 찾느라 아득히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滿腔子是惻隱之心, 此是就人身上指出此理充塞處最爲親切. 若於此見得, 卽萬物一體更無內外之別, 若見不得, 却去腔子外尋覓, 卽莽莽蕩蕩無交涉矣.]"라고 하였다. 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 천지가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자연의 이치를 이른다. 공정하면……된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지니, 인심이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다른 것은 다만 사심 때문이다.[公則一, 私則萬殊, 人心不同如面, 只是私心.]"라는 이천(伊川) 선생의 말이 보인다. 조용한……있다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류(存養類)에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봄 뜻이 있게 된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라고 한 정이(程頤)의 말이 나온다. 명(命)을……없다 《논어》 〈요왈(堯曰)〉에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기수(氣數) 기운(氣運) 또는 운수(運數)를 말한다. 스스로 취함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동자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겠다.'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 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 하셨다."라고 하였다. 천하의……않다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말이다. 유기(游氣)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음기와 양기의 양단은 천지의 큰 의리를 세운다.[游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 其陽陰兩端, 循環不已者, 立天地之大義.]"라고 하였다. 사악함을……것이지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평소의 말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도 삼가며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미리……병통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다. 성(性)……있었는가 《논어집주》 〈학이(學而)〉에 "성 가운데에는 다만 인ㆍ의ㆍ예ㆍ지 네 가지만 있으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겠는가.[性中, 只有箇仁義禮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라는 정자(程子)의 말이 보인다. 본성으로 여기는 것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비록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보태지지 않으며 비록 궁하게 살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인의예지로서 마음속에 뿌리박혀 그 빛남이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며 사체에 베풀어져서 사체가 말하지 않아도 깨달아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用)은……일어났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 "체(體)는 천지 이후에 확립되나, 용은 천지 이전에 일어난다.[體在天地後, 用起天地先.]"라고 하였다. 양(陽)을……낳는다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해지며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였다. 체(體)는……확립되었다 소옹(邵雍)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에 나오는 말이다. 남파(南坡) 이장(李丈) 이희석(李僖錫, 1804~1889)이다.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효일, 호는 남파(南坡)이다. 장흥군 청적리(聽笛里)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그를 스승은 벗으로 대하고 이희석은 스승으로 섬겼다. 《남파집》을 남겼다. 부부에게……가까워진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남자가 친영을 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가는 것은 강유의 뜻이다.……예물을 들고 만나는 것은 공경하여 분별을 밝히는 것이다. 남녀가 분별이 있은 뒤에 부자가 친하고, 부자가 친한 연후에 의가 생겨나고, 의가 생겨난 연후에 예가 일어나고, 예가 일어난 연후에 만물이 편안하니, 분별이 없고 의가 없는 것은 금수의 도이다.[男子親迎, 男先於女, 剛柔之義也.……執摯以相見, 敬章別也. 男女有別, 然後父子親; 父子親, 然後義生; 義生, 然後禮作; 禮作, 然後萬物安. 無別無義, 禽獸之道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금수(禽獸)가…… 때문이다 위 〈교특생〉의 구절에 대한 진호(陳澔)의 집설(集說)에 나오는 말이다. 잊지도……않는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이 일에 전념하되, 미리 정해서도, 마음에 잊어서도, 억지로 자라는 것을 도와서도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장중함과……기르는 것 《예기》 〈표기(表記)〉에 "군자가 장중하고 경건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구차해진다."라는 말이 보이고, 《근사록》에는 정호(程顥)가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하여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해서 천지 같은 체가 되고, 그다음은 오직 장중함과 경건함을 잡아 길러야 하니, 그 지극함에 이르면 똑같다.[質美者, 明得盡, 査滓便渾化, 却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持養, 及其至則一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발의……한다 《예기》 〈옥조(玉藻)〉에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인 구용(九容)에 속하는 것으로, "발의 모습은 진중하고, 손의 모습은 공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생생(生生)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易)'이라고 이른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원(繼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귀암(龜巖)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하락이수(河洛理數)와 천문(天文)의 물상을 확연하게 융회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심성과 이기의 묘리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노여움을……않는 것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학문하는 즐거움을 버리지 않았다는 안연(顔淵)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 묻자, 공자가 "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만규(萬竅) 땅 위에 있는 모든 구멍이나 사람 몸에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가리킨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거대한 땅덩어리가 기운을 내뿜으면 그 이름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온갖 구멍들이 여기에 응해서 성내며 부르짖는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통체(統體)와 각구(各具) 통체는 전체로서의 태극을, 각구는 개별 물(物) 속에 있는 태극을 뜻한다. 즉 이일분수(理一分殊)와 같은 말이다. 《성리대전》 권1 〈태극도〉에 "남녀의 처지에서 보면 남녀가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남녀가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의 처지에서 보면 만물이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 합하여 말하면 만물이 통합된 본체로서 하나의 태극이고, 나누어 말하면 일물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自男女而觀之, 則男女各一其性, 而男女一太極也; 自萬物而觀之, 則萬物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라고 하였다. 성선(性善)을……것이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爲學)〉에 보이는 내용이다. 원문은 "知性善, 以忠信爲本, 此先立其大者."로 되어 있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 "진실함은 사물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니,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기욕(嗜欲)이……낮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이다. 정(正)을……된다 《주자대전》 권31 〈답장흠부서(答張欽夫書)〉에 보인다. 음양(陰陽)이……되는 것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텅 비고……있다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있는 말로, "지극히 고요하여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다.[冲漠無眹, 萬象森然已具.]"라고 하였다. 일본(一本 하나의 근본) 《논어집주》 〈이인(里仁)〉에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는 증자(曾子)의 말에 대한 주희의 주에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는 것'은 도의 체이니 만 가지 다름이 하나의 근본인 것이며, 만물이 각기 제 곳을 얻는 것은 도의 용이니,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 다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의 실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 可見矣.]"라고 하였다. 대본(大本 큰 근본) 《중용》에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를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음을 '화'라고 이르니, 중은 천하의 대본이고 화는 천하의 달도이다. 중과 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 잡히고 만물이 길러진다."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章》 천일(天一)이……낳지만 《근사록》 권1 〈도체(道體)〉의 주희주에 "오행이 생겨남은 대개 두 가지 기(氣)가 서로 변하고 합하여 각각 이루어진다. 천일은 수(水)를 낳고, 지이는 화(火)를 낳고, 천삼은 목(木)을 낳고, 지사는 금(金)을 낳고, 천오는 토(土)를 낳는다. 이것이 이른바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다.'는 것이다.[五行之生也, 蓋二氣之交變合而各成. 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天五生土. 所謂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 是也.]"라고 하였다. 구이지학(口耳之學) 남에게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옮기기나 하는 천박한 학문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1 〈권학(勸學)〉에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의 사이는 4촌일 뿐이니, 어찌 7척의 몸을 아름답게 하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하였다. 바르고……것이니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 "사람이 어떤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다른 일에 구애된 나머지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면 이는 내가 사물을 부리는 것이지만, 사물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면 이는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이다.[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 不能使物各付物. 物各付物, 則是役物, 爲物所役, 則是役於物.]"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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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 通告嶺南列邑章甫文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고 하고 유하혜(柳下惠)를 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믿겠는가. 아마도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사설(辭說)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며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다. 이것이 성인이 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56)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며57) 아첨하는 자를 멀리한58) 까닭이다.오직 우리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께서 세도(世道)가 쇠미해진 뒤에 태어나 선학을 계승하고 후학을 인도하였으니 그 공이 적지 않았다. 멀리로는 사수낙민(洙泗洛閩)59)을 받들고 가까이로는 동방의 제현(諸賢)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율곡 선생(栗谷先生)을 더욱 독실하게 믿으셨다. 이(理)에 대한 논의는 율곡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60)을 종지(宗旨)로 삼고 성정(性情)에 대한 논의는 율곡이 말한 "수만 가지의 정(情)이 모두 이(理)에서 발(發)한다."61)는 것을 명확한 의론으로 여기셨다. 〈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62)를 보고는 만세(萬世)를 위해서 비태(否泰 행(幸)과 불행(不幸))의 소장(消長)에 대하여 전하는 것으로 여기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외우고 본받는 것을 보고는 《논어(論語)》, 《맹자(孟子)》에 견주어 논의하셨다. 이와 같은 부류는 일일이 적을 수 없으며 문집(文集)을 펼치면 뚜렷하게 볼 수 있다.다만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63)라는 단락의 말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매번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본의를 살펴 이해한 뒤 이것은 유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여겼다. 근래 주기설(主氣說)이 세상에 성행하면서 태극(太極)과 천명(天命)의 본체(本體)가 가려지고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몹시 탄식하시고 문답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깊이 분변하고 통렬히 질책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는데, 혹자가 그때마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끌어들여 주기(主氣)의 관련 증거로 삼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비로소 조어(措語)가 타당하지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여 잘못된 뜻에 이르렀음을 분변하고 이로 인하여 "전현(前賢)께서 이에 대해 본디 명쾌하게 말씀하셨으나 훗날의 폐단이 여기에 이를 줄을 살피지는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현이 다하지 못한 뜻을 펴서 요즘 사람들의 무궁한 폐단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다.그러나 여전히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못하여 외필(猥筆)이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전단(專斷)하지 못하여 "실로 질정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못하여 "내가 의심하는 바가 사라지면 유문(儒門)의 다행이겠다."라고 하셨다. 말씀이 간절할수록 예는 더욱 공손하였으며 의지가 간절할수록 뜻은 더욱 겸손하였으니 전현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고 선철(先哲)을 실제로 존숭한 방도가 어떠하였는가. 만약 이것을 가지고 율곡을 헐뜯었다고 여긴다면 주자(朱子)의 《본의(本義)》는 정자(程子)를 헐뜯고 회재(晦齋)의 《보유(補遺)》64)는 주자를 헐뜯은 것이 되는가. 율곡 또한 성정(性情)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분변에 대해서 어찌 한결같이 퇴계(退溪)의 설을 따르지 않았던가.일전에 영남 사람인 최동민(崔東敏), 권봉희(權鳳熙)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통문(通文)을 돌려 노사 선생이 지은 《외필》이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다고 하였다. 아, 이것이 무슨 일인가! "기(氣)가 이(理)의 지위를 빼앗았다.", "두 개의 본령", "허명(虛名)만 있고 실사(實事)는 없다." 등의 말은 이(理)가 통솔하고 기(氣)가 부림을 받는다는 뜻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논척한 것이라고 하였다. "치우치고 지나치고 부정하고 회피한다.[詖淫邪遁]"65)와 "전도되고 제 멋대로이다.[顚倒昌披]"는 오늘날의 주기론(主氣論)이 야기하는 폐단이 장차 이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 것이라고 하였다.이 몇 마디 말만으로도 이미 매우 거짓이건만 또 다른 당(黨)의 도움을 끌어내고자 하여 "퇴계를 침해하고 배척하였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하였다"라고 하였다. 사설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고 시비를 변환(變幻)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하였으니, 《예기(禮記)》에서 이르는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견고하여 대중을 현혹하면 사형에 처하고 사면하지 않는다."66)는 것이 이 무리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남들은 그의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않건만 자식인 자가 스스로 욕설(辱說)을 만들어 불러들인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율곡을 헐뜯는 것이 이쪽에 있는가, 저쪽에 있는가? 또 노사 선생은 4조(朝)에 걸쳐 예우를 받은 유신(儒臣)으로 존귀함이 삼달(三達)67)을 겸하고 온 나라에 명망(名望)이 높았건만 보잘것없는 저 후생(後生)들이 도리어 감히 성명(姓名)을 지적하면서 끝없이 욕보이고 있으니, 이것 또한 세도(世道)와 관련된 커다란 변괴이다.영남은 예부터 추로(鄒魯)의 문명(文明)을 보존한 고을로 일컬었건만, 저 괴이한 무리가 이처럼 날뛰는 것을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는단 말인가. 참으로 매우 통탄스럽다! 이에 고하여 알리니 영남의 군자들이 그들의 죄를 성토하여 사류(士類)의 지위에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면 사문(斯文)에 큰 다행이고 세도(世道)의 큰 다행이겠다. 謂伯夷貪。謂柳惠暴。則人將信之乎。恐人之不信。而文致辭說。巧引援據。玲瓏閃忽。致人眩惑。此聖人所以畏巧言惡利口遠侫人者也。惟我蘆沙奇先生。生於世衰道微之餘。而繼往開來。其功爲不少矣。遠宗洙泗洛閩。近法東方諸賢。而於栗谷先生尤篤信焉。其論理。則以栗谷所言理通氣局爲宗旨。其論性情。則以栗谷所言萬般之情。皆發於理爲確論。見伸捄栗谷疏。則以爲此是爲萬世傳否泰消息。見誦法擊蒙要訣。則以論語孟子。擬而議之。若此之類。不可殫記。而放諸文集。歷歷可見。但於陰靜陽動。其機自爾。非有使之一段語。有少未契而每活看而通之。以爲此特流行邊說話矣。近來主氣之說。盛行于世。而太極天命之本體。掩蔽而不明。故先生深加憂歎凡於問答往復之際無不深辨而痛斥之。則或者輒引非有使之之語。以爲主氣之證案。於是先生始辨其措語之未妥。以至輾轉差謬之意。而因曰前賢於此。發之太快。而未究乎後蔽之至此也。此所以發前賢未盡之意。微今人無窮之蔽者也。然猶不敢自安而曰猥筆。猶不敢自專而曰實有奉質之願。猶不敢自是而曰吾之所疑者忘。則儒門之幸也。辭益切而禮益恭。志愈苦而意愈遜。所以增光前賢。實尊往哲。爲何如耶。若以此爲誣毁栗谷。則朱子之本義。爲誣毁程子。晦齋之補遺。爲誣毁朱子耶。栗谷於性情四七之辨。亦何不一從退溪之說乎。日者嶺中人崔東敏權鳳熙輩。先後投通。以蘆沙所著猥筆爲攻斥栗谷。噫嘻。此何擧也。曰氣奪理位。曰兩箇本領。曰有虛名無實事等語。是說理氣帥役之義。而謂之攻斥栗谷。曰詖淫邪遁。曰顚倒昌披。說今人主氣之弊獘。將至於斯。而謂之攻斥栗谷。只此數語。已極誣虛。而又欲招引黨援。則曰侵斥退溪。曰譏切尤庵。文致辭說。巧引證據。變幻是非。眩惑視聽。禮所謂學非而博。行僞而堅。以惑衆。則殺無赦者。非此輩之謂耶。人不辱其父。而爲子者。自做辱說以徵成之。則是自辱其父者也。然則今日之誣毁栗谷。在此乎在彼乎。且蘆沙先生。以四朝禮遇之儒臣。尊兼三達。望重一國。而以彼幺麽後生。乃敢指斥姓名。詬辱罔極。此亦世道之一大變怪也。嶺中古稱鄒魯文明之鄕。而任他怪鬼輩之跳踉如是而不恤乎。誠極痛歎。玆以奉告。惟嶺中僉君子。聲討其罪。俾不置士類之地。斯文幸甚。世道幸甚。 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 《주역》 태괘(兌卦)에 "구오는 양(陽)을 해치는 박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정이천(程伊川)이 전(傳)에서 "비록 순임금과 같은 성인이라도 말을 교묘하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쁨이 사람을 미혹하게 함은 받아들여지기 쉬워 이처럼 두려워할 만하다.[雖舜之聖, 且畏巧言令色, 安得不戒也? 說之惑人, 易入而可懼也如此.]"라고 하였다. 말재주……미워하며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미워하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이 많은 자를 미워함은 진실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을 미워함은 정색(正色)인 주색(朱色)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함은 진정한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아첨하는……멀리한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 말하기를 '하(夏) 나라의 책력을 행하며, 은(殷) 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周) 나라의 면류관을 쓰며, 음악은 소무(韶舞)를 써야 한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해야 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이니,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다.'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사수낙민(洙泗洛閩)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 곡부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근처에서 공자가 강학을 하였기 때문에 '사수(洙泗)'는 공자와 그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낙민(洛閩)'은 송나라 때의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이통기국'은 이(理)는 형체도 없고 작위도 없어 만물에 두루 통하여 내재하지만, 기(氣)는 형체도 있고 작위도 있어 만물에 국한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서 이르기를,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아 한 물건인 것 같으나 다른 까닭은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이다. 무형과 무위이면서 유형과 유위의 주(主)가 되는 것은 이(理)이고, 유형과 유위이면서 무형과 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氣)이다.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되는 것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것이다.[理氣元不相離, 似是一物, 而其所以異者, 理無形也, 氣有形也, 理無爲也, 氣有爲也. 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 理也; 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 氣也.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理無爲而氣有爲, 故氣發而理乘.]"라고 하였다. 수만……발(發)한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9 〈답성호원 임신(答成浩原壬申)〉에 보인다. 원문은 "情雖萬般, 夫孰非發於理乎?"이다. 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 하락(河洛, 1530~1592)이 지었다. 하락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선조 때 진사 시험에 장원하여 왕자사부로 지내다가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이 무고를 받아 조정을 떠나자 그들을 신구(伸捄)하는 소를 지었다. 《노사집》 권20에 〈환성재유고서(喚醒齋遺稿序)〉가 실려 있다. 음(陰)이……아니다 《율곡전서》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보유(補遺)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를 가리킨다. 이언적이 1549년(명종4) 강계(江界)로 귀양 가서 지은 글로, 주자의 《대학장구》의 편차를 일부 개정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제기한 글이다. 치우치고……회피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한쪽으로 치우친 말에서 그의 마음이 가려 있음을 알며, 지나친 말에서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며, 부정한 말에서 마음이 도(道)와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다."에서 유래하였다. 배운……않는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행동이 거짓되면서도 견고하고, 말이 거짓되면서도 논리적이고,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문식을 잘하여 유려해서, 이런 것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면 사형에 처한다." 삼달(三達) 삼달존(三達尊)의 약칭으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숭하는 작위, 연령, 덕망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서 "천하에는 보편적으로 존경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작위가 그 하나이고 연령이 그 하나이고 덕망이 그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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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 通告湖南列邑章甫文 세상에 미워할 만한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마는 성인(聖人)께서 특별히 겉으로는 비슷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자를 미워한68) 까닭이 무엇인가? 대체로 옳은 듯하면서 그른 것이 대중을 쉽게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머리 위에는 선정(先正)을 떠받들고 명분은 현인을 존경한다고 일컬으면서 시비(是非)를 어지럽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자가 겉으로는 비슷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자들이 아니겠는가.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는 일생에 걸쳐 율곡(栗谷)을 우러러 흠모하며 태극(太極), 이기(理氣)에 관한 학설이나 천명(天命), 성정(性情)에 관한 논의가 서로 부합하고 일치하여 독실하게 믿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문집(文集)을 살펴보면 하나하나 징험할 수 있다. 다만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매번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본의를 살펴 이해한 뒤 이것은 특별히 유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여겼다. 오늘날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오로지 이 말에 집착하여 자기 견해를 입증하는 증거로 삼고 있지만, 선생께서 비로소 이 구절의 조어(措語)가 타당치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다 잘못된 뜻에 이르렀음을 분변하였으니, 이것은 곧 전현(前賢)의 도를 명백히 밝히고 오늘날의 폐단을 바로잡는 방도였다.뜻하지 않게 근래에 영남 사람인 최동민(崔東敏), 권봉희(權鳳熙) 무리가 이 말을 가리켜 율곡을 헐뜯었다고 하면서 열군(列郡)에 통문(通文)을 보내 방자하게 노사 선생을 논척(論斥)하였다. 버릇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도리는 무궁하지만 시세(時世)가 다르기 때문에 앞뒤의 성현께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 대략 차이가 없을 수 없었으니, 예를 들자면 정자(程子)의 《역전(易傳)》, 주자(朱子)의 《주역본의(周易本義)》 등등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만약 이것을 가지고 전현(前賢)을 헐뜯었다고 한다면 정자, 주자부터 이후의 제현(諸賢)은 전현을 헐뜯는 방자함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다.또한 노사 선생은 4조(朝)에 걸쳐 예우를 받은 신하로서 존귀함은 삼달(三達)을 겸하고 온 나라에 명망이 높았건만, 저 보잘것없는 후생(後生) 무리가 감히 직접 성명(姓名)을 지적하면서 극도로 욕을 보였다. 이 또한 세도(世道)의 큰 변괴이다.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물리쳐야 하는 자들이니, 하물며 선생의 고을에서 유자(儒者)의 관을 쓰고 유자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도내의 군자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함께 분개하고 함께 미워하는 마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모쪼록 9월 17일에 능주(綾州)의 영귀정(詠歸亭)에 모두 모여 한 차례 충분히 상의한 뒤 일제히 죄를 성토하는 자리로 삼는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天下之可惡者何限。而聖人特言惡似而非者何耶。蓋似是而非。易以惑衆故也。今頭戴先正。名稱尊賢。而眩亂是非。熒惑視聽者。非似是而非耶。惟蘆沙先生一生尊慕栗谷。而於太極理氣之說。天命性情之論。無不脗合而篤信焉。考之文集。歷歷可徵。但於陰靜陽動非有使之一句語。有少未契。而每活看而通之。以爲此特流行邊說話矣。及見今人之主氣者。專執此語。以爲己見之證案。則先生始辨此句下語之未妥。以至輾轉差謬之意。是乃所以講明前賢之道。而矯捄今日之弊也。不意近者嶺人崔東敏權鳳熙輩。指摘此語。以爲誣毁栗谷。飛通列郡。肆其詆斥。人之無狀。一至於此乎。道理無窮。而時世有異。是以前後聖賢。捄世立言。不得不略有異同。如程子易傳朱子本義之類。不可殫記。若以此而誣毁前賢。則自程朱以後諸賢。無一人免於誣毁前賢之肆矣。且蘆沙先生。以四朝禮遇之臣。尊兼三達。望重一國。而彼幺麽後生輩。敢自指斥姓名。極其誣辱。此亦世道之一大變怪也。擧國人人所與共斥者。而況在先生之鄕冠儒服儒者乎。道內僉君子聞之。想不無同憤共疾之心。須以九月十七日齊會于綾州之詠歸亭。以爲一席爛商。齊聲致討之地。幸甚。 겉으로는……미워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요,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다."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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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洪士拯 학자(學者)는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배우고자 했다면 반드시 먼저 성인(聖人)의 뜻을 구하는 것이 마치 활 쏘는 자가 과녁을 보듯 하고 나그네가 집을 향해 가는 듯한 다음에야 지향이 있어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성인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평상시 짧은 시간을 통해 대략만 알고서 함부로 말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쪼록 진실하게 감당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 천만인을 능가하는 정신과 기력을 갖추어 용이나 뱀을 사로잡듯 하고 호랑이나 표범을 때려잡듯 하며 하루 24시간 동안 조금도 나태함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을 일러 뜻을 지킨다[持志]고 한다. 이와 같다면 이른바 경(敬)을 주로 삼는 공부도 안배나 탐구에 기대지 않아도 이 과정에서 저절로 갖추어진다.무릇 경(敬)은 주일(主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이르고 일(一)은 무적(無適 다른 데로 가지 않는 것)을 이른다. 이것이 학문(學問)의 밭이고 만사(萬事)의 본령이다. 항상 보존하여 수신 양성(修身養性)에 익숙해지면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이 모두 여기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치지(致知)는 학문을 하는 관건이고 성문(聖門)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반드시 일용(日用)의 절실한 곳과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에 나아가 차례대로 지선(至善)에 꼭 들어맞는 곳을 궁격(窮格)83)하여 마음과 눈에 밝게 드러나도록 해야만 세월이 지난 뒤에 응당 패연(沛然)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 요지와 핵심은 단지 '신독(愼獨)' 2자에 있다. 이것을 놓치면 보존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돌아가 끝내 덕을 닦는 단계로 들어갈 방도가 없다. 《중용(中庸)》에서 "군자의 미칠 수 없는 점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입지(立志), 주경(主敬), 치지(致知), 신독(愼獨), 이 네 가지는 형세로 볼 때 서로 의존하므로 있으면 전부 있게 되고 없으면 전부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조리(條理)와 두서(頭緖)는 또 각각 진력(盡力)하지 않을 수 없다.가만히 사증(士拯)이 학문으로 시작하는 정로(正路 정도(正道))를 보건대 연력(年力)이 매우 넉넉하니,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이단 사설(異端邪說)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아마도 옛사람이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기쁜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의림(義林)은 오랜 세월 힘을 기울이지 않아 40, 50의 나이에 이르도록 알려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보면 놀랍고 부끄러울 뿐이며 죽더라도 따라잡을 길이 없다. 다만 그를 아끼는 나의 처지를 참람되고 망령되다는 이유로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삼가 그의 청으로 인하여 내 생각을 대략 얘기해주어 한거(閑居)하면서 수양하는 것을 거드는 방도로 삼는다. 學者不學則已。旣欲學之則必須先有求爲聖人之志。如射者之視的。行者之赴家。然后有所向望而不差矣。所謂求聖人之志者。不是尋常霎時略知漫說而已也。須是眞實擔當。奮迅激勵。有聳千萬人底精神氣力。如捕龍蛇。搏虎豹。使一日十二時。無少懈怠。此之謂持志也。如此則所謂主敬之功。亦不待安排尋覓而卽此自在矣。夫敬者主一之謂。一者無適之謂。此是學問之田地。萬事之本領也。常常存存。涵養得熟。則致知力行。皆從此中出。自然充將去。然致知是爲學關鍵。入聖路脈。必須就日用切近心術隱微處。次第窮格得至善恰好處。令其昭著於心目之間。日累月積。自當沛然。然其要歸肯綮。只在於愼獨二字。於此放過。則所存所知。皆歸虛假。而終無以入德矣。中庸曰。君子之所不可及者。其惟人之所不見。可不勉乎。大抵立志主敬致知愼獨四者。其勢相須。有則俱有。無則俱無。然其條理頭緖。又不可不各致其力也。竊覵士拯發軔正路。年力甚富。不爲曲技所泥。不爲異說所劫。進進不已無容間斷。則古人所謂平生一大歡喜事者。庶乎有以見之矣。嗚呼。義林悠悠不力。至於四十五十。猶是無聞人。俯仰駭慙。有死莫追。但區區相愛之地。必不以僭忘見斥。故謹因其請而略道鄙意。以爲燕居潛修之助云爾。 궁격(窮格) 궁리 격물(窮理格物)의 준말로, 사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하여 물리(物理)의 극치에 도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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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경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閔子敬 집안에서의 일상생활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이 낮 동안의 첫 번째 일이다. 몸은 먼지와 때를 깨끗이 씻어내어 더럽게 하지 말고, 의관(衣冠)은 단정하게 정리하여 흐트러트리지 않게 하고, 집안은 깨끗하게 청소하여 산만하거나 난잡하게 하지 않고 책상은 가지런히 정리하여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용모와 몸가짐은 매우 단정하고 낯빛은 매우 엄숙하고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매우 장중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장엄하고 남을 대하는 태도는 온순하고 공경스럽기에 힘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의(義)와 이(利)를 변별한다.모든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집안에 무익한 일을 헤아려 일체 제거해야 하니, 예를 들자면 쓸데없는 출입과 쓸데없는 말 따위가 그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전심치지(專心致志)하여 의미(意味)와 종지(宗旨)를 궁구하기에 힘쓰고 대강만 훑어보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간혹 생각해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그때그때 적어 놓아 나중에 질문할 기회를 기다린다. 독서와 궁리(窮理)의 여가에는 늘 정신을 보양(保養)하여 깊이 생각하는 듯 진지한 태도를 취한다.대체로 하루 열두 시각 자신을 일깨우고 각성하여 조금도 방탕 안일(放蕩安逸)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저절로 보존될 것이다. 마음이 보존되면 대본(大本)이 확립된다.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는 이르기를, "지극히 고귀한 것이 도(道)이고 지극히 존귀한 것이 덕(德)이다."84)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이르기를, "세상만사는 잠깐 사이에 바뀌고 사라지니 모두 마음에 둘 필요가 없고 오직 궁리(窮理)와 수신(修身)을 구경법(究竟法)으로 삼아야 한다."85)라고 하였다. 아, 힘쓰거라! 마을에 흔히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말라. 居家夙興夜寐。昏定晨省。爲日間第一事。在身則洗濯塵垢。毋令汚穢。在衣冠則整齊緊束。毋令寬慢。在室庭則灑掃潔淨。毋令殽雜。在几案則秩秩整勑。毋令紛散。容體極其端莊。顔色極其齊肅。坐立極其凝莊。言語極其簡重。接人務令和敬。處事辨別義利。凡日用之間。度其無益於身事家事者。一切裁省。如閒出入閒說話之類是也。讀書則專心致志。務窮義趣。不可涉獵放過。其或有思不得處。隨卽箚記。以俟後日質問。讀書窮理之餘。常常休養精神。儼然若思。大抵一日十二時。提撕警覺。母令少有放逸。則心自存。心存則大本立矣。周子曰。至貴者道。至尊者德。朱子曰世間萬事。須臾變滅。皆不足置胸中。惟有窮理修身爲究竟法。嗚呼勉之。母止爲閭巷間尋常人也。 지극히……덕(德)이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만사는……한다 《주자전서(朱子全書)》 권1 학일(學一) 〈소학(小學)〉에 "세간의 온갖 일은 잠깐 사이에 변화하여 없어지는 것인 만큼 모두 가슴속에 담아 둘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오직 궁리하고 수신하는 것이야말로 구경법이라고 하겠다.[世間萬事, 須臾變滅, 皆不足置胸中. 惟有窮理修身, 爲究竟法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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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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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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