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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 여중 이 나의 시 〈선사휘신〉에 차운한 절구 8수에 화답하다 和百拙【汝重】次拙詩《先師諱辰八絶》 곡조 높아 양춘곡39)에 화답하기 어려우니 調高難見和陽春온 세상에는 하리파인곡40)만 분분하네 擧世紛紛下俚人이 학문도 예로부터 이와 같았으니 此學從來亦如此조그만 사욕 다한 곳에 큰 지혜가 새로우리 纖私盡處大知新큰 지혜는 원래 천추에 드물지만 大知元是罕千春보통 지식은 어찌 몇 사람 없는가 常識如何無幾人다만 마음속에 조그만 사물이 있어서 只爲心中些有物옛것을 씻어 새것을 맞지41) 못해서라네 不能濯舊以來新맹자는 가을 숙살지기 안자는 봄기운 지녀42) 子輿秋殺子淵春천고토록 함께 아성으로 추대되었네 千古幷推亞聖人인보다 의를 높인 건 쇠한 세상에 대한 뜻이니 義尙於仁衰世意선현의 견식에서 문득 새로운 것을 알리라 前修見識却知新화도에는 해마다 풀이 절로 봄빛인데 華島年年草自春선생은 어찌 돌아오지 못한 사람 되었나 先生胡作未歸人오늘날 구원에서 만일 살려낼 수 있다면 九原如起而今日북을 울려 문장에서 내치라는 호령 새로우리43) 鳴鼓揮墻號令新발을 다쳐 부모 마음 상하게 함을 자춘이 걱정했으니44) 傷足傷親憂子春스승과 어버이는 본디 똑같은 사람이네 師親自是一般人곧장 스승의 도가 온전한 모습을 상하게 되었는데 直將師道傷全體어찌 개과천선45)하여 스스로 새로워지길 생각지 않으랴 盍思息黥圖自新송백이 변하여 도리의 봄이 되더니46) 松柏變成桃李春언행이 다른 사람이라 칭하면 더욱 성내네 更怒稱渠兩截人다행히 두남47)에 옛 견해 되돌릴 분 있으니 幸有斗南還舊見충고해 준 효과가 새로움을 이제야 알겠네 方知忠告奏功新부지런히 공부하다 청춘 지났다고 핑계대지 말게 勤工莫諉過靑春보불48)도 진실로 깨침을 이룬 사람으로 말미암나니 報佛亶由成得人악인을 미워하고 현인을 좋아하는 진절한 뜻을 疾惡好賢眞切意도리어 마음에 써서 덕이 새로워지길 구하세 反施方寸德求新이 세상에 태어나 백 년을 지내더라도 生來此世百年春마음 알아주는 한 사람을 얻기 어렵네 難得知心一箇人다만 끝내 서로 이루어 줌에 의지하여 但願相成終有賴이제부터 새로운 소문이 들리게 하세나 期令今後聽聞新 調高難見和陽春, 擧世紛紛下俚人.此學從來亦如此, 纖私盡處大知新.大知元是罕千春, 常識如何無幾人?只爲心中些有物, 不能濯舊以來新.子輿秋殺子淵春, 千古幷推亞聖人.義尙於仁衰世意, 前修見識却知新.華島年年草自春, 先生胡作未歸人?九原如起而今日, 鳴鼓揮墻號令新.傷足傷親憂子春, 師親自是一般人.直將師道傷全體, 盍思息黥圖自新?松柏變成桃李春, 更怒稱渠兩截人.幸有斗南還舊見, 方知忠告奏功新.勤工莫諉過靑春, 報佛亶由成得人.疾惡好賢眞切意, 反施方寸德求新.生來此世百年春, 難得知心一箇人.但願相成終有賴, 期令今後聽聞新. 양춘곡(陽春曲)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 명칭으로, 남이 따라 부르기 어려운 고상한 시가를 일컫는 말이다. 하리파인곡(下俚巴人曲) 격조가 낮은 촌스러운 노래를 말한다. 《문선(文選)》 〈송옥대초왕문(宋玉對楚王問)〉에, "객(客)이 영중(郢中)에서 맨 처음 부른 것이 하리파인곡이었는데 국중(國中)에서 따라 화답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고,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라고 하였다. 옛것을……맞지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의리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옛 견해를 깨끗이 씻어버려 새로운 생각이 나오게 해야 한다.〔義理有疑, 則濯去舊見, 以來新意.〕"라는 장재(張載)의 말이 보인다. 맹자는……지녀 《근사록(近思錄)》 〈관성현(觀聖賢)〉에 "공자는 원기요, 안자는 봄이 만물을 냄이요, 맹자는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까지 모두 드러낸 것이다.〔仲尼元氣, 顔子春生, 孟子幷秋殺盡見.〕"라는 정호(程顥)의 말이 나온다. 오늘날……새로우리 저자의 스승인 간재 전우가 살아 돌아온다면 자신의 뜻을 어기고 일제의 인가를 받아 문집을 발간한 오진영 일파를 문하에서 쫓아냈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계씨가 주공보다도 부자였는데, 공자의 제자 염구가 계씨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서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의 제자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치며 그를 성토하는 것이 옳다.'〔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고 한 것과 한유(韓愈)의 〈승려인 문창대사를 전송하며[送浮屠文暢師序]〉에서 이단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양웅(揚雄)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런 사람이 내 집 문이나 담장에 있다면 쫓아 버리고 오랑캐 땅에 있다면 나아오게 하겠다.〔在門墻則揮之, 在夷狄則進之.〕"라고 한 표현을 원용한 것이다. 발을……걱정했으니 증자(曾子)의 문인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일찍이 마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다친 뒤 발이 낫고도 수개월 동안 나가지 않고서 여전히 근심한 일을 말한다. 《禮記 祭義》 개과천선(改過遷善) 원문의 '식경(息黥)'은 식경보의(息黥補劓)의 준말로 형벌을 받아 훼손된 몸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는 뜻인데, 허물을 고쳐 새로워짐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주가 내 이마에 가해진 묵형의 흔적을 없애 주고 내 베어진 코를 보완해 주어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선생의 뒤를 따르게 해 주지 않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 使我乘成以隨先生耶?〕"라고 하였다. 송백(松柏)이……되더니 지조와 의리를 지키던 사람이 영화를 다투는 소인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영양별원단구지회양(潁陽別元丹邱之淮陽)〉 시에 "소나무와 잣나무는 아무리 춥고 고통스러워도, 복사꽃과 오얏꽃의 봄 좇기를 부끄러워한다네.〔松柏雖寒苦, 羞逐桃李春.〕"라고 하였다. 《李太白詩集 卷2, 卷14》 두남(斗南) 북두성(北斗星) 남쪽이란 뜻으로 천하(天下)를 의미하는데, 당(唐)나라 때 인인기(藺仁基)가 적인걸(狄仁傑)의 어짊을 일컬어 "적공의 어짊은 북두성 남쪽의 제일인자이다.〔狄公之賢, 北斗以南一人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舊唐書 卷89 狄仁傑傳》 보불(報佛) 불교에서 말하는 삼신(三身)의 하나인 보신(報身)으로, 과보와 수행의 결과에 의해 얻어진 공덕으로 갖추어진 부처의 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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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설이 도를 해치는 것을 한탄하다 歎異說害道 제가가 나불대며 어지러이 횡행하면서 喙喙諸家亂縱橫각기 당대의 문단 주도하기를 기대하네 各期一世主文盟인을 배우되 겸애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學仁莫道當兼愛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깝게 말라76)고 누가 말했나 爲惡誰言勿近刑다만 상도로 돌아가77) 끝내 바름 얻기를 바라노니 但願反經終得正모두가 이치를 정밀하게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네 總緣擇理未能精추현이 논변한 일을 창려가 기록하였으니78) 鄒賢之辨昌黎筆천년토록 높은 명성이 역사책79)에 빛나네 千載芳名耀汗靑 喙喙諸家亂縱橫, 各期一世主文盟.學仁莫道當兼愛, 爲惡誰言勿近刑?但願反經終得正, 總緣擇理未能精.鄒賢之辨昌黎筆, 千載芳名耀汗靑. 악을……말라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의 어느 한 쪽에도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견지함을 말한 것이다.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선을 행해도 명성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악을 행해도 형벌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하였다. 상도(常道)로 돌아가 원문의 '반경(反經)'은 떳떳한 도리를 회복한다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군자는 상도로 돌아갈 따름이니 일단 상도가 바르게 되면 사특함이 없어질 것이다.〔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斯無邪慝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추현(鄒賢)이……기록하였으니 '추현'은 추(鄒) 땅 사람인 맹자(孟子)를 가리키고, 창려(昌黎)는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의 〈상서 맹간에게 보낸 편지[與孟簡尙書書]〉에, "양자운이 말하기를, 옛날에 양주와 묵적이 정도(正道)를 막았는데 맹자께서 변론하여 물리쳐서 환하게 열어 놓았다.〔揚子雲曰: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고 하였다. 역사책 원문의 '한청(汗靑)'은 옛날에 청죽(靑竹)을 불에 구워서 그 속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오게 해서 쓰기에 편리하고 좀이 슬지 않게 한 것을 말하는데, 보통 사책(史冊)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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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보름밤에 至月望夜 하늘이 좋은 때 보내 취해도 막지 않고426) 天遣良辰取不禁명승지에 더구나 구름과 숲도 좋구나 名區况復好雲林땅 밑 우레소리에 양기가 막 돌아오고427) 雷聲地底陽初復중천의 달빛에 밤이 이미 깊었구나 月色天中夜已深세상 걱정도 그만 두세 백발만 생기나니 憂世且休生白髮경서를 안고서 단지 단심을 보존해야지 抱經只可保丹心도리어 담박한 맛으로 참된 지취 이루고 還將淡味成眞趣작은 티끌도 자리를 침범치 못하게 하리 未許纖塵席上侵 天遣良辰取不禁, 名區况復好雲林.雷聲地底陽初復, 月色天中夜己深.憂世且休生白髮, 抱經只可保丹心.還將淡味成眞趣, 未許纖塵席上侵. 취해도 막지 않고 원문의 '취불금(取不禁)'은 취해도 금하지 않는 것으로,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 자연의 풍경을 마음껏 취하는 것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을 이루는데, 이를 취하여도 금하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창고이다.[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라고 하였다. 땅 …… 돌아오고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동지(冬至)가 되면 오음(五陰)의 아래 초효(初爻)에서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나 자라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룬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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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십사일 이승재에서의 좋은 모임 小春小望 以承齋雅會 얼마나 많은 선비가 풍상에 시달렸나 幾多韋布弊風霜달 아래 은근하게 초당을 찾았구나 月下殷勤訪草堂어찌 인간을 금수와 같게 만드는가 怎遣人羣同鳥獸한족의 얼굴에 오랑캐 마음 가진 자가 밉네 生憎漢面具胡腸사귐이 오랜 뒤에 깊고 얕음 논할 수 있고 定交久後論深淺도를 봄이 분명할 때 형체와 방소가 없지6) 見道明時無體方그대는 가을 뒤의 동리7)의 국화 보았나 君看東籬秋後菊시들고 말랐어도 남은 향기 품어 어여쁘네 却憐枯槀抱餘香 幾多韋布弊風霜, 月下殷勤訪草堂.怎遣人羣同鳥獸, 生憎漢面具胡腸.定交久後論深淺, 見道明時無體方.君看東籬秋後菊, 却憐枯槀抱餘香. 도를……없지 《주역》 〈계사전〉에 "천지의 조화를 본받아 지나치지 않으며, 만물을 곡진히 이루어 빠뜨리지 않으며, 주야의 도를 겸하여 안다. 그러므로 신(神)은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易)은 일정한 체(體)가 없는 것이다.[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 故神无方而易无體.]"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동리(東籬) 동쪽 울타리인데,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시에서 유래하여 국화를 심은 곳이나, 은거하는 곳을 이른다. 〈음주(飮酒)〉 다섯 번째 수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니, 아득히 남산이 보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명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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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 헐성루94)에서 정호음95)의 시를 생각하며 차운하다 正陽寺歇惺樓 思鄭湖陰詩 次韻 이 헐성루가 아니면 어디로 돌아갈까 微此歇惺誰與歸나그네가 속진 묻은 옷 털기 좋구나 好敎遊子拂塵衣쉬고 깨닫는 중에도 허실이 구분되니 歇惺中也分虛實혜안으로 보면 시비가 분별된다네 慧眼看來辨是非 微此歇惺誰與歸, 好敎遊子拂塵衣.歇惺中也分虛實, 慧眼看來辨是非. 정양사 헐성루 헐성루(歇惺樓)는 정양사 경내의 오른쪽에 있는 작은 누각으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다고 하여 금강산에서 가장 유명한 누각이다. 정호음(鄭湖陰) 호음은 정사룡(鄭士龍, 1491~1570)의 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로, 사간ㆍ부제학ㆍ예조 판서ㆍ대제학ㆍ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칠언율시에 능하였으며, 당시 문단에서 그와 신광한(申光漢)을 쌍벽으로 꼽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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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又次板上韻 일만 이천 봉우리 진면목이 萬二峯眞面누대에서 역력히 보이구나 樓頭歷歷看행인이 이곳에 오르지 않으면 行人不登此금강산에 헛되이 온 것이리라 枉到金剛山 萬二峯眞面, 樓頭歷歷看.行人不登此, 枉到金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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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포가 있어 육언362) 有懷【六言】 맑은 강에 백사장이 십리나 펼쳐져 있는데 淸江十里明沙가랑비 실바람 속에 삿갓 도롱이 차림으로 낚시하누나 細雨絲風笠簑비록 엄릉의 기절363)에는 부끄러워도 縱愧嚴陵氣節어찌 장수의 연파364)를 잊으리오 豈忘張叟煙波서늘한 바람 쐬는 언덕 위엔 버들이 늘어져 있고 納凉岸上垂柳쓰러져 누워 있는 물가에는 푸른 잔디가 가득하네 頹臥磯邊綠莎이 역시 인간세상의 몹시 유쾌한 일이건만 此亦人間快適회포를 풀지 못한 채 많은 세월만 흘렀구나 有懷未遂年多 淸江十里明沙, 細雨絲風笠簑.縱愧嚴陵氣節, 豈忘張叟煙波?納凉岸上垂柳, 頹臥磯邊綠莎.此亦人間快適, 有懷未遂年多. 육언(六言) 구마다 6자로 이루어진 고체시(古體詩)로, 서한(西漢)의 경학자(經學者) 곡영(谷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엄릉(嚴陵)의 기절(氣節) 엄릉은 엄자릉(嚴子陵)을 줄여 쓴 말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을 가리킨다. 엄광은 어렸을 때 광무제와 동문수학했던 인연으로 광무제가 즉위한 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응하지 않은 채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여 낚시질을 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113 嚴光列傳》 장수(張叟)의 연파(煙波) 장수는 당(唐)나라의 은자(隱者) 장지화(張志和)를 가리킨다. 연파는 안개가 낀 물결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피해 은거하는 강호(江湖)를 비유한다. 그는 잠시 벼슬살이를 하다가 물러나와 강호에 노닐며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하고는 낚시로 소일을 하였는데, 그의 시 〈어가자(漁歌子)〉에 "푸른 부들 삿갓에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필요 없네.[靑蒻笠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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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 松柏 사방으로 에워싼 푸른 송백이 울창하니 四環松柏碧森森바람 불면 늘 웅장한 용 울음이 들리누나 風至常聞龍壯吟지금 세상도 나갈 만하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誰道今時猶可出이 땅이 더 깊숙한 곳이 아님을 외려 꺼린다오 飜嫌此地不加深삼천 가지의 예법359)은 모두 묵은 자취가 되고 三千禮法皆陳跡예닐곱 명의 관동360)은 예전 흥취가 그대로일세 六七冠童尙舊心산수의 고고한 가락361)이 나에게 있는 듯하니 山水高音如在我거문고를 간직만 하고 타지 않은들 어떠하리 何妨藏置勿彈琴 四環松柏碧森森, 風至常聞龍壯吟.誰道今時猶可出, 飜嫌此地不加深.三千禮法皆陳跡, 六七冠童尙舊心.山水高音如在我, 何妨藏置勿彈琴? 삼천 가지의 예법(禮法) 《중용장구》 제27장에 "예의는 삼백 가지요, 위의는 삼천 가지이다.[禮儀三百, 威儀三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의는 경례(經禮) 즉 큰 예법을 말하고, 위의는 곡례(曲禮) 즉 작은 예법을 말한다. 예닐곱 명의 관동(冠童)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산수(山水)의 고고한 가락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인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곡조를 아양곡(峨洋曲), 산수곡(山水曲)이라고도 한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종자기는 "높디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종자기는 "넓디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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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1591) 봄날에 우연히 쓰다 辛卯春日偶書 우리 선조 문정공437)께서는 惟我文貞祖육십팔 세에 돌아가셨는데 六旬有八沒평생토록 수립한 바가 平生所樹立탁월하게 출중하셨으니 卓然衆類出문장은 나라를 빛내고 文章華邦國정견은 선불을 배척하였네438) 正見斥禪佛아아 나 불초한 후손은 嗟余不肖孫선조의 수와 나이가 꼭 같은데 祖壽洽相埒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喫得許多年학업은 완전히 지리멸렬하네 學業全蔑裂옛사람의 벗을 조문한 뇌사에 昔人誄友詞안연의 짧은 수명에 광휘가 있다 하였네439) 顔壽有光烈하나의 병이 지금 고황에 들어 一病今膏盲거의 산 넘어가는 해와 같다오 殆同下山日한 번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니 等是一番死다행히도 금년에 죽을 수 있다면 幸得今年滅이 역시 선조 자취를 계승함이니 是亦繼先跡아마도 들을 만한 이야기 되리라 庶足聽聞說 惟我文貞祖, 六旬有八沒.平生所樹立, 卓然衆類出.文章華邦國, 正見斥禪佛.嗟余不肖孫, 祖壽洽相埒.喫得許多年, 學業全蔑裂.昔人誄友詞, 顔壽有光烈.一病今膏盲, 殆同下山日.等是一番死, 幸得今年滅.是亦繼先跡, 庶足聽聞說. 문정공(文貞公) 후창의 23대조 김구(金坵, 1211~1278)로, 자는 차산(次山), 초명은 백일(百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의 명현으로, 문장과 도덕이 당대에 으뜸이었다. 정견(正見)은 선불(禪佛)을 배척하였네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항(崔沆)이 김구(金坵)에게 《원각경(圓覺經)》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청하자, 김구는 바른 도리를 지켜 굽히지 않고 시(詩)를 지어 최항을 꾸짖으니, 최항이 이에 앙심을 품고 김구를 제주 통판(濟州通判)에 좌천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 고사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正祖實錄 14年 2月 13日》 안연(顔淵)의……하였네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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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누이442)를 애도하다 悼二姊 두 아우443)가 병술년에 모두 죽으니 二弟俱亡丙戌歲지금도 두 어깨를 벤 것처럼 아픈데 至今痛若割雙肩작년 겨울과 올 봄에 두 누이의 죽음이 昨冬今春二姊逝병술년처럼 몇 달 사이에 잇달아 있었네 連在數月如丙年전후로 만난 것이 모두 이와 같으니 前後所遭皆如此거듭되는 재앙은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서라오 荐禍以我獲戾天큰 누이는 일흔세 살 작은 누이는 일흔한 살로 長位七三次七一수명이 길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壽命非不得長延전란을 만나 생사가 갈리는 때인지라 時適兵火死生中허둥지둥 북망산에 갈장444)하고 말았네 草草渴葬北邙阡병중에 전혀 모르다가 뒤늦게 부음을 들으니 病不能知訃追聞나는 또 앓아누워 숨이 끊어질 듯하였네 我又臥病奄奄然상생445) 앞에서 곡하는 걸 무슨 수로 할 수 있으랴 象生一哭那由得태산을 넘고 대천을 건너는 것처럼 어렵도다 艱若泰山與大川이 몸은 본디 여섯 남매 중 장남으로 此身本以六同胞늙도록 모두 살아 있어 드문 인연이었는데 到老俱存亦稀緣그 누가 알았으랴 다섯 해가 바뀌는 동안 誰知五換星霜間봉래 바닷가에 한 아우446)만 남아 있을 줄을 只有一弟蓬海邊애도하는 나머지 외로운 이내 신세 서글퍼하니 悼逝之餘悲身孤베개 위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떨어지누나 枕上不覺淚自先 二弟俱亡丙戌歲, 至今痛若割雙肩.昨冬今春二姊逝, 連在數月如丙年.前後所遭皆如此, 荐禍以我獲戾天.長位七三次七一, 壽命非不得長延.時適兵火死生中, 草草渴葬北邙阡.病不能知訃追聞, 我又臥病奄奄然.象生一哭那由得? 艱若泰山與大川.此身本以六同胞, 到老俱存亦稀緣.誰知五換星霜間, 只有一弟蓬海邊?悼逝之餘悲身孤, 枕上不覺淚自先. 두 누이 후창에게는 손위 누이 둘이 있었는데, 큰 누이는 광산(光山) 김재봉(金在鳳)에게 출가하였고, 작은 누이는 고흥(高興) 유동기(柳東起)에게 출가하였다. 두 아우 후창은 장남으로 세 아우를 두었는데, 그중에 병술년(1946)에 죽은 첫째 아우 김봉술(金鳳述), 둘째 아우 김만술(金萬述)을 가리킨다. 갈장(渴葬) 장사를 서둘러 급히 치르는 것으로, 사람이 죽어서부터 장사 지내기까지 일정한 기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간을 당겨 장사 지내는 것을 이른다. 상생(象生) 궤연(几筵)을 이르는 말로,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 아우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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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3) 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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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상34)【승정】에게 답함 答李道常【承鼎】 지난달 나아갔을 때 병환이 매우 위중하신 것을 알았지만 일시적이고 갑작스럽게 생긴 병이니 반드시 오래지 않아 일상을 회복할 것이고, 또 덕문(德門)이 여러 대에 쌓은 공덕으로 어찌 신명(神明)의 도움과 보살핌이 없겠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염려는 절실했더라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오래도록 낫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 병의 이 고통은 하루도 견디기 어렵건만 하물며 이렇게 석 달이라는 오랜 시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놀라 실색(失色)하여 즉시 달려가 문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참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모진 고통으로 수고롭고 괴로운 가운데 어떻게 우생(友生)을 잊지 않고 이처럼 간절하게 마음을 쓰십니까. 편지를 쥐고 반복해서 보려니 감격에 겨운 눈물이 옷깃을 적십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이 천한 목숨은 떠돌아다니며 곤궁함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벗이었습니다. 평생토록 종유한 문견(文見), 순견(舜見 안국정(安國禎)의 자)이 모두 이미 나를 버리고 저세사으로 떠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형이 또 병에 걸리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천지를 우러러 탄식하려니 쇠약한 몸의 창자가 끊어질 지경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병증(病證)은 날짜가 반드시 오래가는 법입니다. 아마도 짧은 기간에 효과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마음을 편히 갖고 조리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영랑(令郞)이 밤낮으로 시중을 들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정성과 효심이 이와 같은데 하늘이 돌보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前月進去時。見愼節雖甚沈重。而意謂一時無妄。必將不久復常。且以德門積累之餘。豈無神明扶佑者乎。爲慮雖切。而所恃者在。誰謂至於今日。而尙爾彌留耶。此病此苦。一日爲難。況此三朔之久耶。驚愕失色。卽欲趨走省之。而不可得也。一書之惠。眞望外也。痛楚勞惱之中。何以不忘一友生。而致意若是懇惻耶。執書反復。感淚沾衿。自惟賤命。流離窮獨。所恃惟友。豈知平生遊從如文見舜見皆。已棄我。而至今日。兄又告病耶。俯仰噓唏衰腸欲斷。然重證大病。爲日必久。恐不可責效於霎刻片隙之間。須安心攝理以待之。如何。況聞令郞晝夜扶持。暫不離側。安有誠孝如此。而天不見佑者乎。區區祈祝。 이도상(李道常) 도상은 이승정(李承鼎, 1856∼1899)의 자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호는 신암(莘菴)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신암이군묘갈명(莘菴李君墓碣銘)〉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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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심39)【회일】에게 보냄 與梁海心【會一】 옛날부터 위태로운 때를 만난 열사(烈士)가 어찌 한량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험난함과 괴로움을 두루 경험하기로야 누가 좌우(左右)와 같겠습니까. 소해문옥(蘇海文獄)도 이와 같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하늘이 도와서 속박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문간에 기대어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부합하였으니 소식을 듣고 감동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거듭 고초를 겪은 나머지 건강이 크게 손상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이 절절하여 매우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몇 년의 세월 사이에 재앙이 거듭 이르고 질병이 끊이지 않아 이에 얽매여 구차하게 지내면서 문밖을 나서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에 한 번 달려가서 문안을 여쭙는 도리를 갖추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과 예법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지금은 제집에 몸을 붙이고 있는데 숙질(宿疾)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 추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서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한 통의 서찰로 대신하여 근래의 안부를 여쭙습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自古烈士遭罹危會者。何限。而其備經險苦。孰有如左右。未知蘇海文獄亦如此否。旣而自天佑之。解桎還鄕以副倚閭無窮之忘。足令聞之者動情。未審積苦之餘體度不至有大損否。切切慰戀。殊不勝堪。義林年歲之間。禍故荐仍。疾病連綿。坐此淟忍。不出戶外久矣。玆未能一者趨走。以有相省之道。此豈情禮耶。愧悚而已。今則寄身窮齋。宿疾尙不退聽。觸寒作行。力所不逮。竟不免替修一書。以問近節。幸可恕諒否。 양해심 해심(海心)은 양회일(梁會一, 1856∼1908)의 자(字)이다. 양회일의 호는 행사(杏史)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화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가산뿐만 아니라 친척의 토지까지 팔아 군자금을 조달해서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양열묵(梁烈默), 임노복 등과 더불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1906년 가을부터 창의를 준비하여 쌍산의소(雙山義所)를 결성해서 1907년 4월 능주(綾州), 화순(和順)을 차례로 공격하여 군아(郡衙)와 주재소(駐在所)를 점령하였다. 여세를 몰아 광주를 공격하려고 의병을 이끌고 행군하다가 판치(板峙, 현 너릿재) 전투에서 동지 5명과 함께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고, 1907년 12월 특사로 석방되었다. 1908년에 다시 의거를 모색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장흥경찰서에 구금되어 단식 중에 절명하였다. 1990년에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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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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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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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5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己丑 己丑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경인생으로, 안장일은 기축년 10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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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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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己酉十二月十三日 手標右標事切有緊用故伏在中方里前坪穆字畓四斗落旧文一丈果同坪涑字畓三斗落旧文一丈典當是遣右人前錢伍拾兩以每朔五分例得用而限來年十月備報之意如是成標事標主幼學 字克和 金洛晋[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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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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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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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4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乙未 乙未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임진생으로, 안장일이 을미년 5월 초 7일이므로, 네 살 난 어린 계집아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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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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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선사의 기일에 홀로 앉아 밤을 세우며 2수 先師諱辰 獨坐達夜 【二首】 빈 당에서 닭 울 때까지 근심스레 앉으니 空堂悄坐達鷄鳴모기 침이 어지러이 찔러대 밤새 놀랐네 亂鑽蚊針終夜驚한가닥 마음의 향을 사르며 공경 다하니 一瓣心香多少敬후산이 옛날 증선생을 위한 것과 같다네499) 後山昔爲曾先生머나먼 북쪽 바라보며 곡배하고 돌아오니 北望迢迢哭拜歸눈물 흔적 이슬에 섞여 홑옷을 적시누나 淚痕和露滴單衣이웃 친구는 오지 않고 학동은 잠자는데 隣朋不到書童宿찌륵찌륵 벌레 소리가 내 슬픔을 돋구네 喞喞蟲聲助我悲 空堂悄坐達鷄鳴, 亂鑽蚊針終夜驚.一瓣心香多少敬, 後山昔爲曾先生.北望迢迢哭拜歸, 淚痕和露滴單衣.隣朋不到書童宿, 喞喞蟲聲助我悲. 한가닥 …… 같다네 '일판향(一瓣香)'은 불교의 선종에서 당(堂)을 열어 불법을 강할 때 한가닥 판향을 공경히 받들어 도법(道法)을 전수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말로,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사승하거나 흠앙한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북송(北宋) 진사도(陳師道)의 〈연국 문충공 집에서 육일당의 도서를 보고[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라는 시에 "지난날 한가닥 판향을 올리었거니, 공경히 증남풍을 위한 것이네.[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는 구절이 보인다. 증남풍은 증공(曾鞏)으로 진사도의 스승이었는데, 그가 별세하였으므로 와서 향을 사른 것이다. '후산(後山)'은 진사도(陳師道)의 호이다. 진사도가 증공을 위해서 그랬듯이 김택술이 자신의 스승인 전우(田愚)를 위해 심향을 사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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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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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만경대500)에서 포은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萬景臺 次圃隱鄭先生韻 층대의 바위 길이 중천에 비꼈는데 層臺石逕半天橫바람 타고 한 번 올라 숙원을 풀었네 一上乘風償夙情강상에 몇 곳이나 우리 땅이 남았던고 幾處江上餘我土관문 방어하려 당년에 이 성을 쌓았지 當年關防築玆城남아가 유람을 하니 되레 번뇌 많아져 男兒周覽還多惱세상사 헤아리니 늦게 났음을 느끼네 世事商量感晩生이전과 이후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나 前往後來相不見포옹의 높은 운치 누가 이보다 크리오 圃翁高韻孰能京 層臺石逕半天橫, 一上乘風償夙情.幾處江上餘我土, 當年關防築玆城.男兒周覽還多惱, 世事商量感晩生.前往後來相不見, 圃翁高韻孰能京. 만경대 전라북도 전주의 남고산성이 위치한 남고산에는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중 만경대 남쪽 바위 벼랑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남긴 우국시를 찾아볼 수 있다. 《전주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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