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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阻爲念移寒甚緊連爲無事供任否此中姑安耳此去扶安金書房主方以移擇事下往而有冊中所去書客地踪迹似難通路書到日須善爲周旋無使遲滯之地爲好耳不一乙丑九月卄一日寺洞(背面)此家有兒病本魚骨芒碍於咽喉再昨日以手指揮去之際未知出不出吐痰多後更爲飮食一宿蘇醒後有咽中痰聲昨日所發如鉅喘急滋甚至今未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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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漢回靜中起居候萬安仰溯區區無任下誠外甥無撓還返親候粗安伏幸何達餘不備伏惟下察謹拜上書癸未四月七日外甥金落坤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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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모 군에게 주다 贈洪君錫模 두 형제396)가 부북397)에서 명성을 독차지하니 二難扶北擅名聲세운 뜻이 양정398)에 있음을 어찌 마다하리오 立志何辭在兩程참 맛은 반드시 맑고 담박한 데에서 얻게 되고 眞味定從淸淡得환란399)은 되레 순탄하고 편안한 데서 생기지 駭機還自坦安生몸을 단속함에는 먼저 마음의 병부터 다스리고 檢身先可治心疚발을 내딛으면 응당 세상의 화평을 이뤄야하리 出脚應將致世平고맙게도 그대가 번거롭게 다시 돌아봐 주니 多謝惟君煩再顧한 편의 시에 백년의 정을 담아 보낸다오 一章詩贐百年情 二難扶北擅名聲, 立志何辭在兩程.眞味定從淸淡得, 駭機還自坦安生.檢身先可治心疚, 出脚應將致世平.多謝惟君煩再顧, 一章詩贐百年情. 두 형제 홍석모(洪錫模)와 석규(錫奎) 형제를 가리킨다. 원문의 '이난(二難)'은 형제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뛰어나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진기(陳紀)와 아우 진심(陳諶)이 훌륭하여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던 데서 생겨난 말인 난형난제(難兄難弟)에서 온 말이다. 《世說新語 德行》 부북(扶北) 부안 북쪽을 말한다. 양정(兩程) 송(宋)나라 때 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를 지칭하여 그들의 학문을 비유한 것이다. 환란 원문의 '해기(駭機)'는 갑자기 발사하는 쇠뇌인데, 졸지에 발생하는 환란(患亂)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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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宋承【鎭鳳】 冀缺午分饁。淵明夕荷鋤。君今行古道。況復好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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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瀛洲李慶運【啓徵用下沙韻】 突兀瀛洲山。心存跡未到。蒼蒼白麓潭。送子若爲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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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이 방문해 이별한 후 뒤늦게 짓다 愼軒見訪 別後追題 문 밖에서 늙은 삽살개가 짖어대더니 門外蒼狵報一聲표연히 높은 나막신227) 시내 길로 왔네 飄然高屐躡溪程보기 싫은 누린내 요기228)에 단심이 끓고 厭看腥祲丹心沸해명 힘든 음험한 무고에 백발이 돋네 苦辨陰誣白髮生말세의 풍속에 인욕도 험해지니 어쩌랴 末俗其如人慾險곧은 도만 내 평생 스스로 믿어 왔다오 直道自信我生平백년인생 생사를 함께 전할만하니 百年存沒堪同傳헤어져도229) 애써 아쉬워할 것 없다네 雲樹無勞惜別情 門外蒼尨報一聲, 飄然高屐躡溪程.厭看腥祲丹心沸, 苦辨陰誣白髮生.末俗其如人慾險, 直道自信我生平.百年存沒堪同傳, 雲樹無勞惜別情. 높은 나막신 원문의 '고극(高屐)'은 신헌(愼軒)이 찾아온 것을 비유한 것이다. 진(晉)나라 이래로 사대부들은 나막신을 즐겨 신어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이것을 신었는데, 남조 송(南朝宋)의 사령운(謝靈運)이 명산을 유람할 적에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屐]의 앞굽을 떼어 버리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 걷기에 편리하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다. 《宋書 卷67 謝靈運列傳》 누린내 요기 원문의 '성침(腥祲)'은 오랑캐 즉 일본을 비유한 것이다. 헤어져도 원문의 '운수(雲樹)'는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 한 그루, 장강 동쪽 해 질 녘 구름이로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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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즉흥으로 읊다 早秋 卽事 때는 장차 칠월칠일 서늘한 초가을 時將七七早凉天또 일년에 반년이 조금 넘는구나 又是一年强半年오동잎 시들어 스친 바람에 떨어지고 梧葉微凋風剪下벼꽃은 막 피며 가는 비에 이어지네 稻花初發雨絲連거울 속엔 천 가닥 백발이 선명한데 鏡中的歷千莖雪변새 밖엔 만리에 낀 연기 아득하리 塞外蒼茫萬里烟봉도의 시의 풍격이 물처럼 맑으니 蓬島詩標淸似水근심 씻는데 술동이가 필요 없다네 滌愁無待酒樽邊 時將七七早凉天, 又是一年强半年.梧葉微凋風剪下, 稻花初發雨絲連.鏡中的歷千莖雪, 塞外蒼茫萬里烟.蓬島詩標淸似水, 滌愁無待酒樽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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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명과 유계뢰, 하로익에게 써서 주다 書贈姜汝明柳季雷河魯益 사군자가 마음을 세우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에는 본래 그 방도가 있으니, 평탄하거나 험난하다고 해서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고, 영화롭다거나 괴롭다고 해서 나아가거나 등지지 않아서 넘어지고 떠도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 비록 만 가지로 매우 많다 하더라도 나의 의리를 행하는 것은 본디 그대로이다. 그러나 학문으로 앎을 열고 성경(誠敬)으로 마음을 길러서 지킴을 견고하게 하고 행함을 독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뜻이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고 기운이 몸에 충만하지 못하여 평상시 생활하는 사이에 저절로 뜻과 기운이 쇠퇴하고 게을러져서 열에 칠팔은 새어 버리는 폐단이 있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인데, 하물며 창졸간의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내어 우리가 지키던 것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이른바 옥중에서 《상서(尙書)》를 읽고 배 안에서 《대학》을 읽었다는 것이 오활한 유자(儒者)의 졸렬한 방법인 것 같지만, 진실로 환난에 처해서 환난대로 행하는 제일의 일인 것이다.세 군이 사문(師門) 애산(艾山)22)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의 명으로 오백 리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부춘(富春)의 영귀정(詠歸亭)을 찾아온 것은 대체로 세한(歲寒)의 풍상에 매우 고생하여 영결(永訣)을 알리기 위한 뜻이었다. 떠나려 하면서 한마디 말을 해 줄 것을 청하니, 아, 비록 군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구구하게 서로 돈후하게 대하는 뜻이 또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다만 세상의 변고가 이와 같아서 앞으로 만날 일을 알 수 없으니, 우리들이 서로 알려 주고 권면하는 것이 어찌 다른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진부하다고 해서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 준다면 다행이겠다. 士君子立心行己。自有其道。不以夷險而前却。不以榮悴而向背。以至顚沛流離。雖極萬端。所以行吾義者。固自如矣。然非有學問而開其知。誠敬而養其心。使守之固而行之篤。則志不率氣。氣不充體。尋常日用。自不免有衰颯偸惰七漏八滲之弊。況於倉卒緩急。何以爲力而不失吾所守哉。古人所謂獄裏尙書。舟中大學。似涉於迃儒拙法。而實是素患行患第一事。三君以其師門艾山之命。跋涉半千里。相訪於富春之咏歸亭。蓋致其歲寒風霜辛勤告訣之意也。臨發。請以一言之贈。嗚呼。雖靡君敎。而區區相厚之意。又豈量哉。但世變如此。前頭遭遇。有不可知。則吾輩所以相告而相勉者。豈容有他般義諦哉。勿以陳腐忽之幸矣。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ㆍ물계(勿溪)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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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수재 재연 에게 주다 贈文秀才【載淵】 효는 인륜 중에 가장 가깝고 쉬워 어린아이도 행할 수 있는 것이고, 우매한 사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덕(先德 덕망이 있는 선배)의 말 중에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하니,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덕을 이루는 이상의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가깝고 쉽다.'라는 것이 이처럼 높고도 먼 것인가?무릇 효의 뜻은 포함된 바가 매우 넓으니, 말 한마디와 행실 하나라도 진실로 효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효의 지극한 경지를 말한다면 본성을 다한 성인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여기에 해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순(舜)에게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공경과 점점 다스려지게 하는 덕이 없었다면 어찌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으니, 단지 내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덕이 순만 못하며, 지혜가 순만 못할 뿐이로다. 만약 한 터럭만큼이라도 순에게 미치지 못함이 있다면 자식으로서의 직분에 본분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다.문생(文生) 재연(載淵)이 나를 따라 공부하였는데, 어느 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물었다. 문생은 법도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 가정에서 보고 배우는 바에 반드시 나 말고도 다른 스승이 있을 것이니, 어찌 비루한 나의 말을 기다릴 것이 있겠는가.《주역ㆍ고괘(蠱卦)ㆍ구이(九二)》에 이르기를, "어머니의 일을 주관함이니,  고집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고, 《정전(程傳)》18)에 이르기를, "자식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마땅히 유순함과 공손함으로 보좌하고 인도하여 의리에 맞게 해야 하니,  순하지 않아서 패고(敗蠱)를 초래하면 이는 자식의 죄이다."라고 하였다.무릇 은미하게 간하는 일은 있되 위엄을 범하여 간언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기미를 보아 간하되 은미하게 풍간해야 한다. 이것이 어버이를 섬기는 절도인데, 하물며 어머니와 자식 사이는 오직 순도(順道)로 서로 받들 뿐, 더욱 알직(訐直)19)을 용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에랴. 반드시 온화한 기운을 흡족할 만큼 흘러넘치게 하고 정성스러운 뜻을 측은하게 여길 만큼 간절하게 하여 말을 곡진하게 하고 사리를 상세하게 밝힌다면 저절로 어버이의 뜻이 순하게 되어 일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다.대저 학문을 하는 것과 효를 하는 것은 본래 두 가지 일이 아니다. 학문이 한 걸음 진보하고, 효가 한 걸음 진보하여 몸을 성실하게 하는 데에 이른다면 어버이에게 순종함이 지극할 수 있을 것이니,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문생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일을 맡은 적자(嫡子)로서 지금 한창 어머니의 일을 주관하는 자이기 때문에 삼가 〈고괘(蠱卦)〉의 말로 고한다. 孝於人倫。最近且易。孩提之所能行。愚蒙之所能知。然先德之言曰。不誠乎身。不順乎親。誠身是成德以上事也。所謂近且易者。若是其高且遠耶。夫孝之爲義。所包甚廣。一節一行。固不可謂非孝。而語其至。則非聖人盡性。不足以當之。若使舜無夔慄之敬。烝乂之德。何以能底豫其父。天下無不是底父母。但吾所以愛親者。不如舜乎。敬親者。不如舜乎。養親者。不如舜乎。德不如舜乎。智不如舜乎。如有一毫不及舜。便於子職有不盡分處。文生載淵從余遊。一日問事親之道文生法家子孫。其所擩染。必有餘師。而何待於鄙說哉。蠱卦九二曰。幹母之蠱。不可貞。傳曰。子之於母。當以柔順輔導之。使得於義。不順而致敗蠱。則子之罪也。夫有隱無犯。幾諫微諷。此是事親之節。況母子之間。專以順道相承。尤非可容訐直之地。必使和氣浹洽。誠意懇惻。言辭委曲。事理詳明。則自然親意順而幹務得矣。大抵爲學爲孝。本非兩事。學進一分。孝進一分。至於誠身。可以爲順親之至。勉之勉之。文生早孤當室。方是幹母之蠱者。故謹以蠱卦說告之。 정전(程傳) 송(宋)나라 유학자 정이(程頤)가 《주역》을 해설한 것이다. 알직(訐直)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정직함을 삼는 것을 말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불손한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어 정직하다고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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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에게 써서 주다 書贈金龜淳 회암(晦庵 주희(朱熹)) 선생이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이 부귀와 빈천에 대해 입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입문하자마자 곧 어긋나게 된다." 하였다. 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성품이니, 부귀하다고 해서 풍부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인색해지지 않으며, 부귀하다고 해서 행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폐기되지 않는다. 진실로 그 만남을 편안하게 여겨 나의 법을 행할 수 있다면 사립문이나 옹기로 만든 창문은 곤궁함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말채찍을 잡거나 문을 지키는 것은 비천함이 되지 않을 것이다.아, 나에게 있는 지극히 존귀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외면을 향해 바삐 내달리면서 의리와 분수를 침범하여 대낮부터 저물녘까지 말단 벼슬을 추구한다면 어찌 심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배우는 사람이 입장을 세우는 초기에 분별하여 취사와 향배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어긋나면 큰 근본을 이미 상실한 것이니, 다시 무슨 일을 배우겠는가.맹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인 의(義)를 행하면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절개를 바뀌게 하지 못하며, 위엄과 무력이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니, 이러한 사람을 대장부라 이른다."21)라고 하였으니, 아름답구나. 이 말이여!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읊조리면 사람으로 하여금 끝없이 감개한 마음을 갖게 한다.김생(金生) 귀순(龜淳)이 수개월 동안 나를 따라 공부하였는데, 이별할 때에 남은 회포를 이길 수 없기에 이 글을 써서 줄 것을 청하였다. 晦庵先生曰。學者不於富貴貧賤上。立得定。則是入門便差了。夫富貴貧賤。人生所必有之分。道德仁義。人生所必有之性。不以富貴而豊焉。不以貧賤而嗇焉。不以富貴而行焉。不以貧賤而廢焉。苟能安其遇而行吾法。則蓽門甕牖不爲窮。執鞭抱關不爲賤。嗚呼。不求其至尊至貴之在於我者。而向外奔走。犯義犯分。以求一資半級於黃昏白日之間。豈非不思之甚耶。此學者立脚之初。所當分別劈破而爲取舍向背者也。若於此差却。則大本已失。更學何事。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謂大丈夫。旨哉言乎。三復諷詠。令人有感慨不盡之意。金生龜淳從余遊數月矣。於其別也。不勝餘懷。請書此以贈。 천하의……이른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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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道面堂北里化民金炳憲右謹言近來偸葬雖曰弊痼其境界之壓逼情理之隘迫未有如民所遭之罔測者矣本面中方里西麓卽民高祖父母以下世世聚骨之地眞所謂韓氏之河陽也數百年守護無一雜塚矣不意數昨夜不知何漢暗然偸葬於祖父山右傍拶逼之地而隱避不見夙宵搜覓終不現捉情私崩迫言外可想矣伏乞 孝理之下特發將差卽刻掘移一以雪幽明之寃一以懲偸葬之習無任祈恳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甲子十一月 日官[署押](題辭)塚主搜覓率待事卄四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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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7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정해생으로, 안장일은 10월 18일로 되어 있다. 상주는 아내와, 맏며느리와 손자, 둘째아들, 둘째아들 며느리, 셋째아들, 셋째아들 며느리, 넷째아들 등이다. 본문에 '구묘(舊墓)'의 방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장(移葬)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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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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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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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8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丁酉 丁酉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갑진생으로, 안장일은 정유년 2월 30일로 되어 있다. 상주는 망자의 며느리 혼자뿐이다. 처와 자식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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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과 금강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하고 約子貞將遊金剛山 금강산 절경은 맑은 유람할 만하니 金剛絶勝可淸遊자자한 명성은 해외로도 흘러갔지 藉藉名聲海外流만 이천 봉은 옥 홀을 뽑아놓은 듯 萬二千峯抽玉笏서 남 북국의 수레와 배가 뒤엉켰네92) 西南北國錯車舟언제나 생각하며 봄꿈에 수고로웠는데 幾時念念勞春夢반평생을 허둥대다 흰머리가 되었다오 半世悤悤到白頭그대에 힘입어 나란히 갈 날을 정하니 賴子聯筇行有日상쾌한 기운이 양미간에 이미 떠올랐네 已看爽氣兩眉浮 金剛絶勝可淸遊, 藉藉名聲海外流.萬二千峯抽玉笏, 西南北國錯車舟.幾時念念勞春夢, 半世悤悤到白頭.賴子聯筇行有日, 已看爽氣兩眉浮. 서……뒤엉켰네 동쪽의 금강산을 관광하기 위해 사방에서 찾아온 많은 수레와 배가 북적이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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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입추날에 도암68) 선생의 〈입자〉에 차운하다 立秋日次陶菴先生《立字》韻 위대하다 우리 스승이시여 大哉吾夫子서른 살에 우뚝 자립했는데 三十卓而立나는 쉰 살이 되고서도 而余五十歲뜻이 이미 섰다고 감히 말하랴 敢云志已立기풍을 백세 위에 떨치니 風奮百世上나약한 자도 자립하길 생각하는데 懦者亦思立하물며 이처럼 쇠퇴한 세상에 矧玆頹波日어찌 지주69) 세울 이가 없겠는가 那無砥柱立내 삶도 진정 얼마 남지 않았는데 人生諒無幾오늘 아침이 또 입추로구나 今朝秋又立늙어서도 끝내 알려짐이 없으니 老而終無聞어떻게 천지간에 설 수 있겠는가 何以兩間立도암 선생에게 힘입은 바 많아 陶翁多有賴세 번 감탄하며70) 일어선다네 三歎爲起立 大哉吾夫子! 三十卓而立.而余五十歲, 敢云志己立?風奮百世上, 懦者亦思立.矧玆頹波日, 那無砥柱立?人生諒無幾, 今朝秋又立.老而終無聞, 何以兩間立?陶翁多有賴, 三歎爲起立. 도암(陶菴) 이재(李縡, 1678~1746)의 호이다. 자는 희경(煕卿),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벼슬이 대제학을 거쳐 의정부 좌참찬에 이르렀는데,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숙부 이만성(李晩成)이 처형되자, 벼슬을 버리고 설악(雪岳)에 들어가 성리학을 닦는 데 힘썼다. 1725년(영조1) 여러 차례 소명(召命)을 받자 소를 올려 소론(少論) 세력을 몰아낼 것을 청했으나 영조가 받아들이지 않자, 용인(龍仁)으로 퇴거하여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저서에 《도암집》 등이 있다. 지주(砥柱) 보통 한 몸에 중책을 지고서 난국을 수습하는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중국 삼협(三峽)의 지주산(砥柱山)을 말하는데, 이 산이 탁한 황하(黃河)의 급류 속에 우뚝 버티고 서서 거센 물결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뜻을 취하였다. 세 번 감탄하며 삼탄(三歎)은 일창삼탄(一倡三歎)의 준말로, 《예기》〈악기(樂記)〉에 "청묘(淸廟)의 슬(瑟)은 붉은 현〔朱絃〕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서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음(餘音)이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시문이 뛰어남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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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241)를 면려하며 勉觀兒 공부를 함은 높은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做工有若築高山차츰 쌓는데 어찌 잠시 쉴 틈이 있겠느냐 積累寧容息暫間끊어진 사문242)을 잇는 일은 양보 못하니 不讓斯文將繼絶누가 천운이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나 誰言天運去無還이름과 실질에서는 주객을 먼저 구분하고 名實最可分賓主마음과 입243)에서는 경중을 우선 분별해라 心口先須辨緊閒만약 집안의 명성이 너로 인해 커진다면 若使家聲由汝大훗날 덕분에 선친의 얼굴을 뵐 수 있으리 他時藉手拜先顔 做工有若築高山, 積累寧容息暫間.不讓斯文將繼絶, 誰言天運去無還.名實最可分賓主, 心口先須辨緊閒.若使家聲由汝大, 他時藉手拜先顔. 관아 김택술의 3남인 형관(炯觀)을 말한다. 사문(斯文) 유학을 가리킨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가 광(匡) 땅에서 곤궁에 처했을 때, "하늘이 사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는 바에야,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마음과 입[心口] 마음으로 하는 공부와 입으로만 하는 공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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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로 돌아가는 김군 성유를 송별하는 서문 送金君聖惟歸關西序 옛날 사마자장(司馬子長)은 20세에 남쪽으로 강회(江淮)를 유람하였는데103), 지금 박천(博川)의 김군(金君) 성유(聖惟)가 수천 리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남쪽으로 영호남 사이를 유람하기에 나이를 물어보니, 그도 20세였다. 이는 전후의 취지가 일치하고, 고금의 자취가 똑같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강회의 유람은 평상시의 일이었고, 영호남의 유람은 변란 때의 일이니, 그 마음을 세우고 일을 성취하는 것이 옛사람보다 더욱 어렵지 않았겠는가. 다만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멀리 나가지 않으니, 이는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변란과 우환이 눈앞에 가득하여 길목마다 저지당하고 부딪히는 때임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저녁으로 마을 어귀의 문에 기대어 자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에게 끼쳐드릴 수고로움이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빨리 수레를 돌려 산으로 돌아갈 계책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는가?기성(箕聖)의 옛 도읍104)은 내가 평소에 유람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늙었다. 만약 혹시라도 하늘이 몇 년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어지러운 시세가 조금 안정된다면 오늘날 다하지 못한 유람이 대동강(大同江)과 연광정(練光亭)105)사이에서 다시 이어지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昔司馬子長。二十南遊江淮。今博川金君聖惟。不遠數千里。南遊嶺湖之間。問其年亦二十。此可謂前後同調。今古一轍。然江淮之遊。平時事也。嶺湖之遊。亂時事也。其所以立心就事。不爲尤難於古人乎。但親在不遠遊。此在平時猶然。況艱虞滿目。途塗阻搪之日乎。其貽尊庭朝暮倚閭之苦。想亦不少矣。迨天氣未寒。早爲回轅還山之計如何。箕聖舊都。余平生所願遊。而今已老矣。如或天暇數年。而時紛稍帖。則今日未盡之遊。安知不復續於大同練光之間耶。 옛날……유람하였는데 사마자장(司馬子長)은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으로, 자장은 그의 자이다. 그는 20세 때에 남쪽으로 강회(江淮)ㆍ회계(會稽)ㆍ우혈(禹穴)ㆍ구의(九疑)ㆍ원상(沅湘)을 유력하고 북쪽으로는 문사(汶泗)를 건너고 제노(齊魯)의 땅에서 강학(講學)하고 양초(梁楚)를 지나 돌아왔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기성(箕聖)의……도읍 기성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 기자(箕子)를 말하고, 기성의 옛 도읍은 평양을 가리킨다. 기자는 은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고 조선의 평양(平壤)으로 옮겨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연광정(練光亭) 평양부의 대동강(大同江) 가 덕암(德巖) 위에 있는 정자로, 감사 허굉(許硡, 1471~1529)이 지었다고 한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1권 평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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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83)과 찬 강에서 함께 읊다 與可石寒江共賦 셋이 앉아 머리털 세었다고 서로 동정하니 鼎坐相憐鬢髮明어떤 사람이 기영회84)에 잘못 견주겠는가 何人錯比會耆英지금 세상 신문물에 빙탄85)처럼 번뇌하고 炭氷今世新文物평생 옛 성인의 책을 추환86)처럼 즐기네 芻豢平生古聖書입은 현묘한 도를 지켜 문을 닫듯이 하고 口可守玄如閉戶시는 의당 백전87)이라 무기를 들지 않네 詩宜戰白不持兵맑음과 깨어있음은 본디 마음속의 일이니 淸醒自是心中事창랑에서 나의 갓끈을 씻을 필요가 없네88) 未必滄浪濯我纓 鼎坐相憐鬢髮明, 何人錯比會耆英?炭氷今世新文物, 芻豢平生古聖書.口可守玄如閉戶, 詩宜戰白不持兵.淸醒自是心中事, 未必滄浪濯我纓. 가석(可石) 박상구(朴爽九, 1882~1948)의 호이다.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선명(善明)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저서에 《가석유고(可石遺稿)》 4권 2책이 있다. 기영회(耆英會)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한다. 이 모임은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고사를 본떠 13인의 노인이 모여 만든 것으로, 관직은 무시한 채 나이로만 서열을 매긴 뒤 술과 시로 즐겼다고 한다. 《宋史 文彦博列傳》 빙탄(氷炭)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번뇌를 비유한 말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기쁨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싸우는데, 이는 원래 인간의 오장 속에 얼음과 숯이 한데 엉겨 있기 때문이다.〔喜懼戰于胸中, 固已結氷炭于五臟矣.〕"라는 말이 나온다. 추환(蒭豢) 풀을 먹여 기르는 소ㆍ양과 곡식을 먹여 기르는 개ㆍ돼지 등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육류를 비유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의리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함이 추환이 내 입을 즐겁게 함과 같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백전(白戰) 시를 지어 서로 솜씨를 겨루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취성당(聚星堂)에서 빈객들과 눈〔雪〕에 대한 시를 지으면서, 눈과 관련된 글자들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그 뒤 소식이 빈객들과 함께 시를 지을 때에 구양수가 정했던 규칙을 지키며 〈취성당설(聚星堂雪)〉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 시의 끝 구절에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은 따를지니, 맨손으로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안 되네.〔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 하였다. 맑음과……없네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다 흐리거늘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하였고,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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