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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田愚)가 지은 노사선생 〈외필변〉을 변석함 辨田愚所著。蘆沙先生猥筆辨。 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율옹(栗翁)이 일찍이 말하기를, '음양(陰陽)의 동정(動靜)은 기(機)가 저절로 그러한 것이지 누군가가 부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노사(蘆沙) 〈외필(猥筆)〉에서 이를 심하게 논박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주자(朱子)가 평소에 '이(理)에는 조작(造作)이 없다.'라고 하였고 동정은 조작이므로 율옹이 '기(機)가 저절로 그러하다.'71)라고 한 것이다. 주자가 또 '작용(作用)이 있으면 곧 형이하자(形而下者)72)이다.'라고 하였고 동정은 작용의 뜻이므로 율옹은 '기가 저절로 그러하다.'라고 한 것이다.공자(孔子)가 '하늘이 만물을 태어나게 할 때는 심겨진 것은 길러 주고 기울어진 것은 덮어준다.'73)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그런데 주자는 도리어 말하기를, '이는 그렇게 하도록 하는 사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물이 태어나서 스스로 자라 나가는 과정이 흡사 그를 부지해주는 사물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쇠미해져서는 스스로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 흡사 그것을 밀어서 넘어트리는 것이 있는 듯하다. 이(理)가 본래 이와 같다.'74)라고 하였다. 맹자(孟子)가 분명히 '하늘이 만물을 낼 때 근본이 하나가 되게 하였다.'75)라고 했건만 주자는 도리어 '자연의 이치는 하늘이 그렇게 시킨 듯하다.'76)라고 하였다. 이윤(伊尹)이 분명히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았을 때 먼저 안 자에게 늦게 아는 자들을 깨우치게 하였다.'77)라고 했건만 주자는 도리어 '천리(天理)의 당연함은 마치 누군가가 그렇게 시키는 듯하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만 사람들이 '사(使)' 자가 작용의 뜻을 갖는 것처럼 잘못 인식한다면 도(道)에 크게 해가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별도로 '약(若)', '흡사(恰似)', '비유물사지연(非有物使之然)'을 덧붙여 작용이 없는 '사(使)'임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율옹(栗翁)은 '누군가가 부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율옹이 어찌 전수받은 곳 없이 망령되이 말하였겠는가.또 예를 들어 '사람이 도(道)를 선양(宣揚)하는 것'은 '기(機)가 저절로 그러한 것'에 해당하고 '도가 사람을 선양하는 것이 아님'은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에 해당한다. 대체로 인심(人心)에 지각(知覺)이 있는 것은 음양 동정(陰陽動靜)의 기(機)이고, '도의 본체가 무위한 것'은 태극 자연(太極自然)의 묘(妙)이다. 주자(朱子)는 《집주(集註)》에서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말78)을 실었지만, 후현(後賢)이 성(性)이 마음을 검속할 줄 모르는 것을 근거로 천명(天命)이 이미 소멸했다고 여기거나 마음이 성(性)을 다하는 것을 근거로 천명 외에 또 하나의 본령이 있다고 여기는데도 분연히 붓을 들어 꾸짖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만약 이(理)가 기(氣)의 주인이고 성(性)이 마음의 근본[心本]임을 논하자면, 율옹이 또 일찍이 '기(氣)가 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理)가 주재(主宰)한다.'79)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무위(無爲)하면서도 유위(有爲)의 주인이 되는 것이 이(理)이다.'80)라고 하였다. 또 '누가 그 기(機)를 주관하는가. 아, 태극(太極)이로다!'81)라고 하였다. 이러한 유형은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약 이에 대해서 안다면 '기가 저절로 그러하다.[機自爾]'라고 하더라도 그 저절로 그러한 까닭은 여전히 이(理)이고, '누군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非有使之]'라고 하더라도 '시키지 않으면서 시키는 것[不使之使]'은 여전히 이(理)이니, 그렇다면 어찌 〈외필(猥筆)〉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위연(魏延)과 양의(楊儀)가 함께 승상부(丞相府)에 있으면서 서로 어긋났던 변고82)가 발생하였겠는가?"〈변(辨)〉동정(動靜)을 곧바로 조작(造作), 작용(作用)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가. 동정(動靜)은 이기(二氣)의 양능(良能 본연의 능력)83)이니 어찌 조작이나 작용이 기력(氣力)을 범하고 배치(排置)하기에 힘을 쓰는 것에 견주겠는가. 하물며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가 이른 "움직이되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되 고요함이 없다.[動而無動 靜而無靜]"84)와 주자(朱子)가 이른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靜中有動, 動中有靜]"85)의 동정(動靜)이 모두 이(理)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던가.이(理)는 이미 형체가 없으니 어찌 조작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理)가 이와 같으면 기(氣) 또한 이와 같고 이(理)가 저와 같으면 기(氣) 또한 저와 같다. 기(氣)의 동정(動靜)과 운행(運行), 이루어진 형체와 드러난 자취가 모두 이(理)가 하는 일이다. 이것이 무위(無爲)의 위(爲)이고 시키지 않으면서 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理)를 너무 지나치게 존중하여 작용(作用)으로 인식하는 것을 보고는 "누군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세상에서 기(氣)를 중시하는 것이 너무 심하여 제멋대로 쥐고 흔드는 데 이른 것을 보고는 "실제로 누군가가 그렇게 시킨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율곡(栗谷)의 편지, 노사(蘆沙)의 〈외필(猥筆)〉은 모두 시대의 상황에 따라 이치를 밝히기 위한 말이었다. 오늘날 말에 얽매어 뜻을 혼동하고 고집스럽게 멈추지 않는 자들도 그 마음이 모두 이치를 밝히기 위함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사람은 도를 선양할 수 있다.[人能弘道]', '마음은 성(性)을 검속할 수 있다.[心能檢性]'의 마음[心]은 신명(神明), 주재(主宰)86)를 이른다. 사람의 신명(神明)은 본래 이(理)와 기(氣)가 합해진 상태에서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를 둔 곳이 이(理)이고 중시하는 것이 이(理)에 있으니, 이른바 신명, 주재라는 것이 어찌 '기(氣)'라는 한 자로 완결(完結)지을 수 있겠는가. 지금 심(心)을 오로지 기기(氣機)87)로 간주하여 기(氣)가 이(理)를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증명한다면 성인의 말씀을 크게 업신여긴 것이다. '사람이 도를 선양한다.'라는 말은 인신(人身)의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기(機)가 저절로 그러하다.'라는 말은 조화(造化)의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만약 '사람이 도를 선양한다.'를 '기(機)가 저절로 그러하다.'라는 말에 짝지어 "기(機)가 도를 선양할 수 있다."라고 하고 '도가 사람을 선양하는 것이 아니다.'를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짝지어 "도(道)가 기(氣)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과연 말이 되겠는가.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사물이 생겨나 저절로 자라고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저절 로 자라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종극에는 이(理)가 본디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음양(陰陽) 의 기(機)가 비록 저절로 움직이고 저절로 고요하다[自動自靜] 하더라도 저절로 움직이고 저절로 고요한 것 또한 이(理)가 응당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찌 깨닫기 어려운 이 치이겠는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주자(朱子)는 「자장자소(自長自消)」 다음에 「이자여차(理 自如此)」를 이어 놓았지만, 율옹(栗翁)은 이러한 일전어(一轉語)88)가 없기에 노사(蘆沙)의 의심을 초래하였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또한 그렇지 않다. 주자가 일찍이 '일기(一氣)가 유행(流行)하면 만물(萬物)이 스스로 생장(生長)하고 스스로 형색(形色)을 갖추니 어찌 일일이 단장을 하여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89)라고 하였다. '어찌 일일이 단장을 하여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는 곧 율옹의 '누군가가 부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율옹의 경우는 '이(理)는 본디 이와 같다.'라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이러한 율옹의 말을 또한 '스스로 가고 스스로 멈추어 천명을 거치지 않는다.'라는 것으로 꾸짖겠는가? 아니면 또한 '나는 기가 이(理)의 지위를 빼앗고 만사의 본령이 될까 두렵다.'라는 것으로 배척하겠는가?노사(蘆沙)는 '동(動), 정(靜)은 기(氣)이고, 동(動)하게 하는 것, 정(靜)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 동(動)하게 하고 정(靜)하게 하는 것이 부려서 그러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이(理)가 부린다.'라는 것은 단지 근저(根柢)가 됨을 말할 뿐 기(氣)에 정의(情意)가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옹(尤翁)은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일에 어찌 조작이 없겠느냐.'는 심명중(沈明仲)의 질문에 '이것은 본래 그러할 뿐이라고 하는 것에 불과하고 음양오행의 운용과는 흡사하지 않다.'90)라고 답하였다. 지금 노사(蘆沙)의 견해는 확실히 심명중과 같고 노사가 '동(動)하게 하고 정(靜)하게 하는 것이 이(理)이다.'라는 것은 또 '발(發)하는 것이 기(氣)이다.'91)라는 율곡(栗谷)의 말과 어세(語勢)가 동일하니 어찌 기(氣)가 이(理)라는 인식으로 귀착되지 않겠는가.대체로 이(理)가 주재(主宰)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재(自在)하는 것이고, 기(氣)가 동(動)하거나 정(靜)한다고 하더라도 실로 이(理)에 근본한다. 이것은 천지가 생기기 이전이건 나중이건 천고 만고(千古萬古)에 바뀌지 않는 정리(定理)이다. 그래서 율옹은 '형(形)이 없고 위(爲)가 없지만 형체와 행위의 주인이 되는 것이 이(理)이고, 형체도 있고 행위도 있지만 형체도 없고 행위도 없는 것의 기(器)가 되는 것이 기(氣)이다.'92)라고 하고, 또 '형체가 있고 행위가 있어 움직임이 있고 고요함이 있는 것이 기(氣)이고, 형체가 없고 행위가 없어 동(動)에도 있고 정(靜)에도 있는 것이 이(理)이다.'93)라고 하였다. 이 말은 본말(本末)을 아울러 다하고 체(體)와 용(用)을 빠트린 것이 없다고 이를 수 있으니, 도(道)의 본체를 꿰뚫은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것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이제 이처럼 간파(看破)하고 이처럼 체득(體得)하지 못하고 각각 주재(主宰)라는 한 가지 뜻만 위주로 삼아 이(理)에 조종(操縱)하는 힘이 있다는 것에 가까워지고 다시 이 기(氣)를 검속(檢束)하여 이(理)의 본연(本然)을 따르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에 어찌 빈틈이 없겠는가. 또 그 설을 따른다면, 말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입[口]이고 말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하는 것은 성(性)이다. 내가 듣건대, 성(性)은 말하거나 침묵하게 하는 이(理)이고 입과 혀는 이에 따라 말을 하거나 침묵한다. 이것이 주자(朱子)가 이른 '이(理)에 동(動)과 정(靜)이 있기 때문에 -전우가 보건대, 이(理)에는 이 기(氣)가 동정(動靜)하는 이(理)가 있음을 말한 것이지 이(理)에 먼저 동정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의 앞뒤에 대해서 자세히 살피지 않고 이해하는 독자가 많다.- 기(氣)에 동(動)과 정(靜)이 있다.'94)라고 하는 것이다. -전우가 보건대, 위와 아래 두 구의 동정(動靜)은 모두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지, 하나는 기(氣)에 속하고 하나는 이(理)에 속하여 2개의 동정(動靜)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성(性)이 스스로 말을 하거나 침묵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이 때문에 고자(告子)와 석씨(釋氏)의 지각95)과 작용(作用)이 성(性)96)이라는 주장과 양명(陽明)의 '저 시청언동(視聽言動)할 수 있는 것이 곧 천리(天理)이다.'라는 주장은 모두 기(氣)를 이(理)로 인식하는 것으로 귀착되어 우리 성인(聖人)과는 다르다. 주자(朱子)의 〈답호계수서(答胡季隨書)〉에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성찰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성찰하는 이(理)는 성(性)에서 나오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심(心)이지 성(性)이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 입언(立言)이 이와 같았겠는가. 사리(詞理)가 주도면밀하여 조그마한 흠결도 없지만 후인(後人) 가운데 〈외필(猥筆)〉의 설을 익숙히 들었던 자들이 착오를 일으켜 '스스로 가고 스스로 멈추어 성명(性命)을 거치지 않는다', '2개의 본령이 각각 스스로 핵심이 된다'는 내용 등으로 주자(朱子)에게 질문을 한다면 삼가 생각건대 노사(蘆沙)의 영령이 또한 당연히 저승에서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변(辨)〉주자가 "어찌 일일이 단장을 하여……"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말한 부분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만물에 부여했지만 자신은 거기에 공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97)라고 하고 또 "하늘은 온갖 형상에 대해서 사물마다 조각한 것이 아니다."98)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일본(一本)의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주재(主宰)의 오묘함은 이미 윗부분에 놓여 있으니 어찌 주재함이 전혀 없이 스스로 생장(生長)하는 것을 이르겠는가. 이 때문에 "어찌 일일이 단장을 하여……" 다음에 있는 문장은 "단지 대원 대본(大原大本)에서 흘러나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도리어 아래 문장을 제거하고 한 구절만을 적출하여 자기 주장을 펼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막아내는 무기로 삼고 있다.이(理)는 작위(作爲)가 없다는 것으로 말하자면 "동(動)과 정(靜)은 이(理)이고 동(動)하게 하고 정(靜)하게 하는 것은 기(氣)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理)가 주재(主宰)한다는 것으로 말하자면 "동과 정은 기(氣)이고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라고 한다. 관점에 따라서 각각 말에 타당함이 있다. 하물며 율곡(栗谷)의 〈천도책(天道策)〉과 〈역수책易數策)〉에 "동(動)하게 하고 정(靜)하게 하는 것이 이(理)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율곡 또한 일찍이 기(氣)가 이(理)라고 인식하여 그런 것인가. 지금 율곡(栗谷)을 위해서 변호를 하면서 도리어 율곡을 기(氣)를 이(理)로 인식한 부류로 여겼으니 어찌하여 이처럼 정론(定論)이 없는가."이(理)에는 동(動)과 정(靜)이 있다."의 동과 정은 체(體)가 없는 동이고 체가 없는 정이다. 그래서 《통서(通書)》에서는 "움직이지만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지만 고요함이 없으며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99)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이(理)의 동정(動靜)을 말하면,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고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는 것이 그 체(體)이고, 고요하면서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면서 고요할 수 있는 것이 그 용(用)이다."100)라고 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한둘이 아닐 정도로 많다. 지금 이(理)에는 동정이 있다고 하면서 이(理)의 동정을 기(氣)의 동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른바 이(理)라는 것은 유명무실한 사물이 아니겠는가. 그동안의 독자들이 모두 이를 살피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는 천고의 독창적 견해라고 자부하였다. 무릇 이(理)를 내치고 기(氣)를 위주로 삼는 학문이 옛날에 과연 있었는가. 이것이야말로 천고의 독단적 견해라고 이를 만하다.주재(主宰)의 의미를 어찌 사소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천지 간에 하나로 통일되어 고금을 관통하는 지극히 엄중한 도리이다. 지금 "주재라는 하나의 의미만을 위주로 하여 이(理)에 조종하는 힘이 있다는 것에 가까워지고 다시 이 기(氣)를 검속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주재를 막연하게 보아 긴요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氣)라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理)를 주로 하는 것은 곧 이 기(氣)를 검속하려는 것이건만, 기(氣)를 주로 여기면서 스스로 하는 것을 따른다면 이를 검속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理)를 주로 하는 것만이 비로소 소루함이 없건만 기(氣)를 주로 하면서 본원(本原)을 버려둔다면 소루함이 없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때가 된 다음에 말을 한다면101) 말하는 것은 입이고 말을 하게 하는 것은 이(理)의 주재이다. 예가 아니라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102) 침묵하는 것은 입이고 침묵하게 하는 것은 이(理)의 주재이다. 석씨(釋氏)가 기(氣)를 성(性)이라고 인식하고 양명(陽明)이 심(心)을 이(理)라고 인식한 것은 발(發)한 것의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개괄하여 성(性)으로 여긴 것이니 불가함이 분명하다. 선(善)에서 말미암은 지각 작용(知覺作用)과 시청언동(視聽言動) 같은 것도 이(理)라고 이를 수 없겠는가.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개괄하여 성(性)이라고 이르는 자들이 옛날의 고자(告子), 석씨(釋氏), 양명(陽明)의 부류이고 이(理)와 욕(欲)을 분별하지 않고 개괄하여 기(氣)라고 이르는 자들이 오늘날 스스로 천고의 독견(獨見)을 깨우쳤다고 이르는 자들이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성찰하는 것[自心自省], 이것은 주일무적(主一無適)103)을 이르는데 이 또한 어찌 전혀 주장하는 것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뜻이겠는가. 아, 구천에서 다시금 일어나지 못하니 주자(朱子)는 말이 없구나.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이치는 하나일 뿐이지만 기(氣)를 타면 그 나뉨이 만 가지로 다르다. 이것은 율옹(栗翁)의 설이다.104) 말하기를, '어찌 일(一)일 때는 애초에 탄 바가 없다가 만(萬)에 이르는 때에야 비로소 기(機)에 붙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만약 기(機)에 있는 태극(太極)을 단언(單言)한다면 이치는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사시(四時)의 기(氣)를 아울러 거론하여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말하자면 기(氣)를 타서 분(分)이 만 가지로 다를 뿐이다. 어찌 어제는 걸어 다니고 오늘은 말을 타는 것을 이르겠는가. 이제 〈외필(猥筆)〉에서는 도리어 말하기를, 「이것은 마치 태극(太極)이 아무런 주장이 없다가 문득 말이 앞에 있음을 보고 올라타는 것과 같다.」라고 하니 이것은 결코 율옹(栗翁)의 본의가 아니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이 말은 새옹(塞翁)이 얻은 것이지 원래 타던 말이 아니다. 그 뒤 형세상 반드시 이리저리 쏠릴 때 말의 머리만 쳐다보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 또한 반드시 자세히 생각해야지 간단히 지나쳐 버릴 수 없다.대체로 사람은 모두 태극(太極)을 지니고 있지만, 기품(氣稟)이 이미 다르다면 욕(欲)이 발동하고 정(情)이 우세해져 이(利)와 해(害)가 서로 공격하는 근심이 가는 곳마다 있게 된다. 이때 이른바 원래 탔던 말의 주인은 이미 조종(操縱)하는 힘이 있고 또한 적막(適莫 하려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고집함)이 없는 것이 아닌데 -조종(操縱)과 적막(適莫)은 모두 〈외필〉에 보인다.- 어찌 이처럼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는 것이 오직 말에 달려 있게 되는 잘못이 생기겠는가. 이것은 마땅히 명백히 살피고 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향하는 곳을 마부가 어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는 말을 사람들이 장차 믿지 않을 것이다. 아, 위태롭도다!"〈변(辨)〉일리(一理)는 사람의 일신(一身)과 같고 만리(萬理)는 일신(一身)의 백체(百體 인체의 온갖 뼈)와 같아 하나(一)라고 하여 부족한 것이 아니고 만(萬)이라고 하여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理)는 하나일 뿐이지만 사시(四時)의 기(氣)를 아울러 거론하여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말한다."라고 한다면 일(一)은 무분지일(無分之一)이니 반드시 아울러 거론한 다음에야 만리(萬理)가 된다. 예전에 이른 "분수(分殊)는 분명히 본연(本然)의 분(分)이다."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태극(太極)이 정말 주재(主宰)를 하는데도 욕(欲)이 발동하여 정(情)이 우세해지는 것은 기습(氣習)의 폐해이다. 기습의 폐단 때문에 태극이 주재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것은 물이 이마 위로 튀는 것105)을 보고 물의 성품은 아래로 흐르면서 만물을 적셔주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욕(欲)이 발동하여 정(情)이 우세한 상황에 있더라도 겸연하게 부족하고 삭연하게 불안한 뜻은 그 안에 있지 않은 적이 없다. 이것이 심령을 속일 수 없고 이(理)가 주재가 되는 까닭이다. 어찌 이것을 인용하여 이(理)를 위주로 하는 자들을 기롱하면서 "어찌 이처럼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는 것이 오직 말에 따르는 잘못이 생기겠는가."라고 하겠는가.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외필(猥筆)〉에 또 이르기를, '오늘날 이발(理發)이라는 말은 매우 금기로 여기고 기피 하면서 변화를 일으키거나 조리(條理)를 이루는 것을 보기만 하면 기(氣)라고 한다. 누가 주장(主張)하는지 물으면 「기(機)가 저절로 그렇게 하지 누가 부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이른바 이(理)는 어디로 떨어졌는지 물으면 타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이미 그렇게 시키는 묘(妙)가 없고 마지막에 또 조종하는 힘이 없으니 의지하고 붙어서 탈 뿐이지 어떤 일을 하겠는가. 있어도 도움이 되는 게 없고 없어도 부족할 게 없다. 아, 가련하다! 그 원인을 궁구하자면 '승(乘)' 자가 본지를 잃은 데 근본하여 점점 이(理)가 가벼워지고 기(氣)가 무거워지다가 곧장 기(氣)가 이(理)의 자리를 빼앗아 만사(萬事)의 본령이 되기에 이르고서야 그친다. 한 자의 본지가 잘못되어 그 화가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도다.'106)라고 하였다.내가 생각건대, 율옹(栗翁)도 일찍이 '누가 그 기(機)를 주관하는가. 아, 태극(太極)이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어찌 일찍이 기(氣)를 만사(萬事)의 본령으로 여긴 것이겠는가. 또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외필〉에서 운운한 것은 율옹(栗翁)이 이미 보았던 소릉(昭陵)107)이다. 다만 율옹이 이발(理發)을 잘못이라고 여긴 것은 곡절(曲折)이 있지만, 실제로는 퇴계의 이기호발(理氣互發)108)에 말미암아 말했을 뿐이다. 대체로 이(理)를 기저로 삼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氣)는 이(理)의 용(用)이다. 따라서 기발(氣發)일지라도 또한 이발(理發)이라고 이를 수 있으니 가는 것은 말이지만 주인은 사람인 것과 같다. 그래서 통언(統言)하자면 '사람이 간다.'라고 한다. 만약 기(氣)가 작용(作用)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이(理)는 실로 정의(情意)가 없다. 그래서 선한 감정[善情]일지라도 다만 기발(氣發)이라고 이를 수 있으며, 타고 있는 것은 사람이지만 가는 것은 말이기 때문에 변명(辨明)하여 '말이 간다.'라고 한다.만약 이(理)를 주로 삼으면서 용사처(用事處)에 이르러 또한 기발(氣發)이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막는 것은 실정에 맞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신하가 군주의 명령을 행하면 그가 행하는 일은 진실로 군주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행동하는 것은 결국 신하이지 군주가 아니다. 만약 기필코 행하는 일이 군주의 명이라는 이유로 신하의 행동을 가리켜 군주의 행동이라고 한다면 명칭이 바르지 못하고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된다. 하물며 성급하게 신하의 행동을 가리켜 신하가 군주의 지위를 빼앗았다고 여기고 주벌한다면 이것이 어찌 법리(法理)에서 나올 법한 일이겠는가."〈변(辨)〉변화(變化)하는 것이 기(氣)이건만 "건도(乾道)가 변화한다."109)라고 하고 유행(流行)하는 것이 기(氣)이건만 "천리(天理)가 유행한다."라고 한다. 어찌 이것을 명칭이 바르지 못하고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한 적이 있는가. 기(氣)가 법도를 따르는 곳치고 이(理)가 유행하지 않는 곳이 없고 기(氣)가 법도를 따르지 않는 단계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기질(氣質)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저이가 말하는 신하의 행동이라는 것은 어쩌면 법도를 어긴 신하가 되지 않겠는가.율옹(栗翁)이 일찍이 "누가 기(機)를 주관하는가. 아, 태극(太極)이로다!"라고 하였다. 또 "무형 무위(無形無爲)하여 유형 유위(有形有爲)의 주재가 된다."110)라고 하였다. 또 "각양 각종의 정(情)은 모두 이(理)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바뀔 수 없는 정론(定論)이다. 〈외필(猥筆)〉의 말은 또한 율옹이 이미 보았던 소릉(昭陵)이 아니겠는가. 다만 후대인들이 평상시의 정론(定論)을 버리고 단지 유행하는 측면에서 말한 한 조목의 설을 들어 자신의 주기(主氣)에 대한 증거로 성(性)은 체(體)이고 기(氣)는 용(用)이며, 체는 동일하지만 용은 다르다는 설을 펼쳐 인물(人物)이 태어날 때는 고정된 명분(名分)이 없고 음양오행(陰陽五行)은 본연(本然)이 아니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다방면으로 논설을 펼치는 것이 요컨대 '기(氣)'라는 한 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기필코 율옹의 말을 인용하여 실증하였다. 아, 율옹이 평소에 펼쳤던 이(理)를 위주로 하는 내용이 어떠하였기에 후대인들의 견강부회에 의해 도리어 주기(主氣)의 부류가 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였는가. 그렇다면 율옹을 위해 변호한 자들 가운데 율옹의 죄인이 되지 않을 이가 몇이겠는가.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외필(猥筆)〉에서 거론한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라는 두 구절을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다만 '사람이 도를 선양(宣揚)할 수 있지 도가 사람을 선양하는 것이 아니다.'111)라는 것은 공자의 말이 아니던가. 어느 하나를 고집하면서 어느 하나를 버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삼가 일찍이 생각해 보니, 향인(鄕人)으로부터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기에 이르는 것이 어찌 천지의 조화를 빼앗는 경우가 아니었던가. 그들의 공부가 비록 마음에 보존되어 있더라도 그 본원은 한결같이 성(性)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도가 사람을 선양한다.'라는 것 또한 어찌 불가하겠는가. 그런데 성인의 말씀이 이와 같으니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무릇 도는 '지극히 존귀한 실재'이고 '만물의 주재'이건만 도리어 이를 낮추어 작용(作用)이 있는 것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면 도(道)와 기(器)를 형이상과 형이하로 구분하는 것이 어지럽게 되고 이 마음이 분수를 넘보는 싹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아, 성인의 대의(大意)가 은미하도다! -이것으로 마음을 막아도 후세에는 여전히 이 마음을 대리(大理)로 보고 소리(小理)인 성(性)을 갖춘 것이라고 지칭하는 자가 있다.- 또 생각하자니 마음[心]이 할 수 있는 일은 '덕성(德性)을 존숭하고', '의리(義理)로 세교(世敎)를 부지(扶持)하며', '범인(凡人)을 성인(聖人)으로 만들고', '환간을 천도(天道)에 참여시키니, 마음의 공효가 사람에게 어느 정도인가. 비록 형이상(形而上)이라는 명칭을 빌어도 애석하게 여길 만한 일이 없는 듯하건만, 성인은 마음에 대해서 도리어 도(道)와 병행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석씨(釋氏)는 이(理)가 도(道)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늘 위, 하늘 아래에 오직 나보다 존귀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아(我)는 마음이 스스로를 아(我)라고 한 것이다. 마음은 매우 정밀하게 연마하더라도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는112)[沖漠無眹] 도(道)에 비하면 결국 미미하게라도 형적이 드러난다. 대체로 마음의 허령[靈]과 도(道)는 원래 분변이 있어 그런 것이다. 성인이 마음을 가리켜 도(道)라 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근엄한 의도가 어찌 이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우리 유자들의 첫 번째 의리(義理)이고 또한 첫 번째 방한(防閑 울타리)이다. 옛 철인에게 여쭙고 싶지만 이미 그러할 수 없으니 또한 같은 시대와 후대의 현자들에게 질정하기를 원한다."〈변(辨)〉사람은 본래 기(氣)로 이루어졌지만, 사람이 되는 까닭은 바로 이(理)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선양할 수 있다.'라는 것은 이(理)에 달려 있으며 기(氣)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지금 마음[心]을 전적으로 기분(氣分 기의 분수)으로 삼아 넘보지 못하도록 금하고 도(道)를 지존(至尊)으로 여겨 폄훼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그 의도는 근실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마음이 기(氣)가 된다는 것만 알고 이(理)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면 주재 묘용(主宰妙用)의 권한이 모두 기(氣)에 귀속되고, 이른바 지존(至尊)이라는 것은 도리어 양존(陽尊 거짓으로 존귀한 것)이 됨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권한을 기(氣)에 귀속시켜 넘보게 하고서 넘보지 않기를 바라고, 그 지위를 양존(陽尊)하여 폄훼되도록 하고서 폄훼되지 않기를 바라니 가능하겠는가.성인이 마음을 가리켜 도라고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맹자(孟子)는 어째서 "인(仁)이 사람의 마음이다."113)라고 하고, 소자(邵子 소옹(邵雍))는 어째서 "마음은 태극(太極)이다."라고 하고, 정자(程子)는 어째서 "마음은 생도(生道)이다."114)라고 하고, 또 어째서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 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성(性)이라 하며 몸에서 주재하면 심(心)이라 한다."115)라고 하고, 주자(朱子)는 어째서 "인(仁)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고 사람은 이를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다……"라고 하여 병행하게 하였겠는가. 맹자, 소자, 정자, 주자가 유독 우리 유자들의 첫 번째 의리, 첫 번째 방한(防閑)을 염두에 두지 않아 그랬겠는가. 이(理)를 버리고 기(氣)를 위주로 하는 것을 첫 번째 의리로 여기며 이것으로 옛 철인에게 여쭙고자 하고, 또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질정하고자 하고, 또 후세를 기다리고자 하였으니 부질없이 심력(心力)을 낭비했다고 이를 만하다. 또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라는 이름을 어찌 사람에게서 빌릴 수 있겠는가.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천지 만물의 이(理)는 홀로 있는 것이 없고 반드시 짝이 있다.'116)라고 하였다. 누군가 주자(朱子)에게 '태극(太極)은 곧 무엇과 짝을 이룹니 까?'라고 묻자, 주자는 '태극은 곧 음양(陰陽)과 서로 짝을 이룬다.'117)라고 하였다. 〈외필(猥筆)〉의 제5단락에서 이 뜻을 바로잡아 논하여 '기(氣)와 이(理)를 상대로 삼아 거론하니, 이것은 성인의 말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理)」 자를 보기만 하면 반드시 기(氣)를 찾아서 짝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래서 이(理)의 유행이라는 하나의 큰일이 모두 「기(氣)」 자의 영역에 속하게 되고, 남은 것이라고는 혼륜(混淪)하다느니 충막(沖漠 텅비고 고요함)하다는 말뿐이다. 이것이 두 개의 본령을 세운 시초이니 아, 슬프다.'라고 하였다.내가 생각건대, 노사(蘆沙)는 이(理)를 존중하여 이렇게 운운하였다. 그러나 사기(辭氣)에 오만함이 분수를 넘어서 성현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격식을 크게 손상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기(氣)가 이(理)를 잃은 부분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주자가 어찌 일찍이 성인을 비방하였으며, 어찌 일찍이 본령이 하나임을 비방하였던가. 그런데도 음양과 태극을 짝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또한 이(理)의 유행이라는 하나의 큰일을 빼앗아 기(氣)에게 부여하여 본령을 두 개로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고 말할 법한데, 노사의 「슬프다」라는 탄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변(辨)〉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마음에 존망(存亡)과 출입(出入)이 있다는 것은 성인의 말이 아니다."118)라고 하였다. 무릇 '쥐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사라지며 출입에 일정한 때가 없다.'119)라는 것이 공자(孔子)의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정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단지 이(理)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지 공자의 말을 바로잡아 논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선사(先師)의 말도 단지 이(理)에 근거하여 말을 한 것이지 주자(朱子)의 말을 바로잡아 논한 것이 아니다. 정자의 말 또한 오만함이 분수를 넘어섰다고 이르겠는가, 또한 기(氣)가 그 이(理)를 잃었다고 이르겠는가.천하에는 참으로 짝이 없는 존위(尊位)가 있으니 나라에 군주가 있고 집안에 아버지가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 짝을 어떻게든 말하고자 한다면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또한 짝이 아니라고 이를 수 없다. '마음은 짝이 없다', '도(道)는 짝이 없다', '의(義)는 짝이 없다'라는 것이 모두 주자의 말이 아니던가. 지금 짝이 있다고 한 주자의 말을 단거(單擧)하여 선사가 이 뜻을 바로잡아 논하였다고 이르고, 슬프다는 탄식을 주자에게 가하여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계책으로 삼고자 하니 군자가 되어 마음을 쓰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 술수를 부리는 것이 사람을 두렵게 한다.전우(田愚)가 말하기를, "〈외필(猥筆)〉에 이르기를, '성인(聖人)은 유행하고 발현하고 변화하고 환히 드러나는 것이 이 도(道)의 작용이 아닌 경우가 없음을 분명히 보았다.……'라고 하였다. '이 도의 작용'이라는 말은 따져보아야 할 듯하다. 주자(朱子)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도체(道體)는 무위(無爲)하다.'120)라고 하였다. 우옹(尤翁)은 〈답인서(答人書)〉에서 또 이르기를, '이 이(理)의 본체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지만 작용의 단계에 이르러 정의와 조작이 있다.'121)라고 하였다. 두 선생께서 어찌 도(道)가 유행하고 발현하는 것을 몰라서 이처럼 말하였겠는가. 응당 이것을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막비차도지위(莫非此道之爲)'에 몇 글자를 첨가하여 '차도지근저추뉴(此道之根柢樞紐)'라고 한다면122) 더욱 상세하고 분명할 듯하니 어떠할지 모르겠다.-"〈변(辨)〉자연(自然), 당연(當然), 필연(必然), 능연(能然)의 '연(然)'이 도(道)의 소위(所爲)이다. 어찌하여 반드시 '손발을 움직이고', '작용이 있는' 다음에야 비로소 '위(爲)'라고 이르겠는가. 주자는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소이(所以)가 모두 도체(道體)의 소위(所爲)이다."123)라고 하고 또 "한 가지 사물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진실한 이치의 소위(所爲)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위(爲)' 자도 다시 생각하고 의논해 보아야 하는가.전우(田愚)가 말하기를, "노사 기장(蘆沙奇丈)의 이기설(理氣說)은 근래 계운 김장(溪雲金 丈)124)이 보여준 변설(辨說)로 인해서 대략 한두 가지의 율곡 선생과 현저하게 대립하는 내용을 보았는데 매우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있었다. 대체로 그의 의도는 본래 '이(理)' 자를 높이고 싶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도리어 폄훼한 혐의가 있게 되었다.내가 삼가 생각건대, 모든 기(氣)에는 소위(所爲)가 있으면 반드시 소이위(所以爲)의 이(理)가 있는 다음에야 비로소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理)가 기(氣)를 주재한다는 뜻에 대해서 이미 저절로 여유가 있게 된다. 지금 '이(理)' 자를 논하면서 '적막(適莫 하려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고집함)이 있다.'라고 하고 또 '조종하는 힘이 있다.'라고 하고 또 '일을 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분명히 유위(有爲)하는 사물이 되니, 어떻게 유위(有爲)하는 것의 주인이 되겠는가. 가령 그 설을 따른다면 다른 것은 잠시 차치하고 다만 당(唐), 은(殷)의 수재(水災)와 한재(旱災), 공자와 맹자의 빈천(貧賤),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청(淸)과 화(和)에 치우쳤던 것125), 안연(顏淵)과 염유(冉有)가 인(仁)과 도(道)에 미치지 못한 것126) 등에서 이른바 이(理)는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관장하였는가? 적막함이 없고 조종함이 없이 한결같이 그 기(氣)가 스스로 하는 것을 따르는 듯하니 괴이하고 괴이하다!안자(顔子)의 마음은 성(性)을 위주로 하여 날마다 부지런히 힘을 기울였고, 명도(明道)는 그의 화기(和氣)가 자연스러웠음을 칭찬하였다127). 비록 우리 부자(夫子)께서도 그 마음이 발하는 근원을 캐보자면 또한 한결같이 여기에 근본을 두고 일찍이 자기 마음대로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주자(朱子)는 도리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랐지만 자연스럽게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초사(楚辭)》 〈천문(天問)〉128)에 주석을 달면서는 '한번 동(動)하고 한번 정(靜)하며, 한번 그믐이 되었다가 한번 초하루가 되는 것은 모두 음양이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129)라고 하였다. 그리고 《음부경(陰符經)》130)의 '인심기야(人心機也)'를 풀이할 때도 곧바로 '인심(人心)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이 기(機)이다.'131)라고 하였다. 정자(程子)와 주자 두 선생이 어찌 '기(氣)'와 '심(心)' 위에 다시 소이연(所以然)의 이(理)가 있다는 것을 몰라서 자연(自然)이라고 하였겠는가.또 성인께서 안자(顔子)를 칭찬하면서 '마음이 인(仁)을 어기지 않게 하였다.'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그의 마음은 인(仁)을 어기지 않았다.'라고만 하였다. 이것은 어기지 않는 소이연(所以然)이 성(性)에서 나오더라도 어기지 않는 기미[機]는 도리어 마음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만약 노사(蘆沙)의 주장을 따른다면 인을 어기지 않는 때 이 이(理)는 또 무엇 때문에 이와 같게 하는가? 또 어긴 것을 깨닫고 인(仁)에 귀의할 때 자신의 마음으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인(仁)에 귀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구방심명(求放心銘)〉132)의 '누가 놓아 버리고 누가 구하였으며', '뒤집고 엎는 것은 손이 하네.' 등의 말로 보자면 알 수 있다.- 아니면 이른바 이(理)라고 이르는 것이 이 마음이 인(仁)에 귀의하거나 인을 어기는 사이에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려는[適莫] 의도를 가지고 이처럼 조종한다고 여긴다면 괜찮겠는가. 이것을 근거로 반복해서 미루어본다면 그의 주장에 잘못이 없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다."〈변(辨)〉형체가 있는 일을 가지고 형체가 없는 오묘함을 형용하자면 말이 이와 같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형체가 없는 오묘함까지 아울러 없다고 여긴다면 이 도리는 공적(空寂)133)과 뒤섞이지 않겠는가. 이(理)는, 조종하는 형적은 없지만 조종하는 오묘함은 있고,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형적은 없지만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오묘함은 있고, 해낼 수 있는[做得] 힘은 없지만 해낼 수 있는 오묘함은 있다. 선인(善人)에게 복을 내리고 악인(惡人)에게 재앙을 내리며 차면 이지러뜨리고 겸손하면 보태 주는 것이 조종(操縱)이 아니겠는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는 것이 적막(適莫)이 아니겠는가. 사시(四時)의 운행과 온갖 사물의 생성(生成)이 주득(做得)이 아니겠는가. 만약 음양오행, 만물의 모든 유형을 본연의 분(分)이 아니라고 한다면 조종(操縱)이 없고 적막(適莫)이 없고 주득(做得)이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당(唐)과 은(殷) 대의 가뭄과 홍수, 공자와 맹자의 빈천이 이 이(理)의 본연이라고 이를 수는 없지만, 또한 이세(理勢)134)가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았다고 이를 수도 없다. 이세(理勢)가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은 선철(先哲)도 천(天)이라고 하였다. 안자(顔子)의 화기(和氣), 부자(夫子)의 종심(從心) 또한 의리가 가득 차고 쌓여서 그렇게 되었으니, 어찌 이(理)가 주인이 되지 않고 한결같이 기(氣)에 맡긴 것이라고 하겠는가. 이(理)가 주인이 되지 않고 기(氣) 스스로 이와 같다면 어찌 도척(盜跖)의 마음만 법도를 어기지 않음이 없었겠는가. 안자가 인(仁)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성찰한 것도 이(理)가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이미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고 사람이 선하지 않은 것을 이(理)가 기(氣)를 주재하지 않은 증거로 삼고, 또 당나라와 은나라의 가뭄과 홍수, 공자와 맹자의 빈천을 이가 기를 주재하지 않은 증거로 보았다. 대체로 당나라와 은나라의 가뭄과 홍수, 공자와 맹자의 빈천은 곧 기수(氣數)의 일시적인 변괴일 뿐이다. 일시적인 변괴를 가지고 만고에 바뀌지 않는 상도(常道)를 의심한다면 성인(聖人)의 수많은 말씀이 모두 시험되지 않아 징험이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이(理)가 정녕 주인이건만 여전히 이(理)를 어기고 산란함에 익숙하게 되는 변괴가 있다. 하물며 기(氣)를 주인으로 삼고 주재함이 전혀 없다면 그 변괴가 어떠하겠는가. 주자는 선비의 문체가 부박한 것을 세도의 근심거리로 여겼으니, 하물며 도리와 심술에 관한 말은 어떠하였겠는가. 이른바 사람이 시비의 근원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으면 그 재앙은 백만의 사람이 죽어 그 피가 천 리를 흐를 것이니 누가 오늘날의 우환이 아니라고 하겠는가.근래 주기설(主氣說)은 한둘이 아니다. 태극(太極)을 분(分)이 없는 일(一)로 여기기도 하고, 오성(五性)을 기(氣)를 띤 사물로 여기기도 하고, 명덕(明德)을 형이하(形而下)로 여기기도 한다. 일본 만수(一本萬殊)135)로 말하자면 만수(萬殊)를 기(氣)라 하고 대본 달도(大本達道)로 말하자면 달도(達道)를 기(氣)라 한다. 음양오행을 본연이 아니라고 하거나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을 정분(定分)이 아니라고 하여 주재하는 오묘한 작용과 조리의 단락을 하나같이 기에 귀속시키기도 한다. 입론이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기가 이의 지위를 빼앗았다고 말할 수 없겠는가.기(氣)가 이(理)의 지위를 빼앗는 것으로 보자면 신하가 군주의 지위를 빼앗고 자식이 부모의 지위를 빼앗고 아내가 남편의 지위를 빼앗고 소인이 군자의 지위를 빼앗고 오랑캐가 중화(中華)의 지위를 빼앗는 경우 또한 마찬가지 사례이다. 선사께서는 오직 이것을 근심하여 도리를 밝혀내고 잘못을 제거하며 차례대로 절충하여 천만 갈래로 나뉜 것을 하나로 귀착되게 하였다. 그런데 한쪽의 논의는 여전히 다시 논쟁을 일으켜 '작용(作用)이 성(性)이다.'라거나 '마음의 습정(習靜 항상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구한다.' 등의 말을 인용하여 기롱하는데, 도체의 본연을 밝히고 태극의 주재를 보존하는 것이 작용인가, 습정인가? 그러나 도리(道理)는 반드시 한쪽의 논의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론(公論)은 반드시 한 때의 말에 현혹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만 드러날 뿐이다. 하물며 기극(忌克)136)의 마음으로 취멱(吹覓)137)의 계책을 세운다면 하는 말이나 의론이 어찌 공평하고 통창(通暢)하여 치우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아, 지금이 어떠한 때인가. 지금이 어떠한 때인가. 선비된 자라면 마땅히 한마음으로 몸을 닦고 반성하여 만 분의 일이라도 실줄기 같이 위태로운 도맥(道脈)을 지탱해야 하건만 도리어 이처럼 시끄럽단 말인가. 참으로 통탄스럽다. 田愚曰。栗翁嘗言陰陽動靜。機自爾。非有使之也。蘆沙猥筆深駁之。然以愚觀之。朱子雅言理無造作。動靜者造作也。故曰機自爾也。朱子又言纔有作用。便是形而下者。動靜者作用也。故曰機自爾也。孔子分明說天之生物。栽者培之。傾者覆之。而朱子却言此非有物使之然。但物之生。自長將去。恰似有物扶之。及其衰也。自消磨去。恰似箇物推倒他。理自如此。孟子分明說天之生物。使之一本。而朱子却言自然之理。若天使之然也。伊尹分明說天之生民。使先知覺後知。而朱子却言天理當然。若使之也。此何以故。只是恐人錯認使字爲作用之意。則害道大矣。故另下若字恰似字非有物使之然字。以見其無作用之使也。故曰非有使之也。栗翁豈無所受而妄言之哉。且如人能弘道。機自爾也。非道弘人非有使之也。蓋人心有覺。是陰陽動靜之機也。道體無爲。是太極自然之妙也。朱子於集註載張子語。而未聞後賢以性不知檢其心。爲天命已息。心能盡性。爲天命之外。又一本領。而奮筆肆罵也。若論理爲氣主。性爲心本。則栗翁又嘗言氣之所爲。必有理爲主宰。又曰。無爲而爲有爲之主者。理也。又曰孰尸其機。嗚乎太極。此類不一而足矣。人苟有見於此。雖曰機自爾也。而其自爾之所以然。則依舊是理也。雖曰非有使之。而其不使之使。則依舊是理也。何曾有魏延楊儀同府乖張之變。如猥筆之謂乎。以動靜。直喚做造作作用看。可乎。動靜是二氣之良能。豈造作作用。犯氣力費排置之比哉。況周子所謂動而無動。靜而無靜。朱子所謂靜中有動。動中有靜。此等動靜字皆非以理言之耶。理旣無形。安有造作。然理之如此。氣亦如此。理之如彼。氣亦如彼。氣之動靜運行成形著迹。皆理之所爲也。此是無爲之爲。不使之使也。見人之推理太過而認爲作用。則曰非有使之。見世之主氣太甚而至於獨擅。則曰實有使之。然則栗谷之書蘆沙之筆。皆所以因時明理之言也。未知今日之執言迷旨而斷斷不置者。其心亦皆出於明理否耶。人能弘道。心能檢性。此心字。是神明主宰之謂。人之神明。固是合理與氣而有者也。然所根在理。所重在理。則所謂神明主宰者。豈一氣字所能了當乎。今以心專喚做氣機看。以證其氣能制理之說。其爲侮聖言大矣。人能弘道。是人身上說也。其機自爾。是造化上說也。今以人能弘道。對其機自爾曰機能弘道。以非道弘人對非有使之曰非道使氣。則果可成說乎。田愚曰。物之生。雖曰自長自消。而其自長自消。究是理自如此。陰陽之機。雖曰自動自靜。而其自動自靜。亦是理當如此。此豈難曉之理乎。或言朱子於自長自消下。繼以理自如此。而栗翁無此一轉語。所以來蘆沙之疑。此又不然。朱子嘗曰。一氣流行。萬物自生自長。自形自色。豈是逐一粧點得如此。豈是逐一粧點得如此。卽栗翁非有使之謂。而更無理自如此之云。此亦將以自行自止不關由天命。罵之乎。亦將以吾懼夫氣奪理位而爲萬事本領。斥之乎。蘆沙曰。動者靜者氣也。動之靜之者理也。動之靜之。非使之然而何。竊謂理使云者。只是根柢之謂。非如氣之有情意者。故尤翁於沈明仲使動使靜。豈無造作之問曰。此不過曰自然而已。不似二五之運用也。今蘆沙之見。正與沈氏同。而其曰動之靜之者理。又與栗谷發之者氣。同一語勢。則豈不歸於認氣爲理乎。大抵理雖曰主宰。而實則自在。氣雖曰動靜。而實本於理。此前天地後天地。千古萬古不易之定理。故栗翁旣曰。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理也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氣也。又曰。有形有爲而有動有靜者。氣也。無形無爲而在動在靜者。理也。此可謂本末兼盡。體用無漏。非洞見道體者。其孰能與於此哉。今不能如是看破。如是體得。各只主主宰一義。而幾於理有操縱。不復檢束此氣。以循乎理之本然。則其功夫豈非有疎漏處乎。且如其說。則語者黙者口也。語之黙之者性也。吾聞性爲語黙之理。而口舌從而語黙。此朱子所謂理有動靜。【田愚按。謂理有此氣動靜之理。非謂理先自有動靜也。此句前後。讀者多不察而領會也。】故氣有動靜者也。【田愚按。上下兩句動靜。皆指氣言。非一屬氣一屬理。有兩箇動靜也。】未聞此性自會語黙也。是故告子釋氏之知覺作用是性。陽明之那能視聽言動。便是天理。皆歸於認氣爲理。而與吾聖人異矣。朱子答胡季隨書。有自心自省語。豈不知省之之理出於性。而其能省之者。心而非性。故立言如此。詞理俱到。無些子疵類。而後人有習聞猥筆之說者。誤以自行自止。不由性命。兩箇本領。各自樞紐等。奉疑於朱子。則竊意蘆沙有靈。亦應蹙頞於泉下也。朱子曰豈是逐一粧點云云。如此說處不一。如曰付與萬物。而已不勞焉。又曰。天之於衆形。非物物刻而雕之。此皆從一本上說來。而主宰之妙。已壓在上頭。豈漫無主宰而自生自長之謂哉。是故豈逐一粧點得下文。有只是大原大本中流出一句。今乃刪去下文。單摘一句以爲伸已禦人之話欛耶。以理無作爲者言。則曰動靜者理也。動之靜之者氣也。以理爲主宰者言。則曰動靜者氣也。動之靜之者理也。隨其地頭。語各有當也。況栗谷天道及易數策。有動之靜之者理也之語。栗谷亦嘗認氣爲理而然乎。今爲栗谷分疏。而反以栗谷爲認氣爲理之科。何其無定論若是乎。理有動靜。此動靜字。是無體之動。無體之靜。是以通書曰。動而無動。靜而無靜。非不動不靜。朱子曰。言理之動靜。則動中有靜。靜中有動。其體也靜而能動。動而能靜。其用也。如此說不一而多。今曰理有動靜。而以理之動靜。喚作氣之動靜。然則所謂理者。非有名無實之物耶。謂前後讀者。皆不能察。而自許以千古之獨見。夫黜理主氣之學。古果有之乎。此可謂千古之獨見也。主宰之義。豈可小之者哉。此是天地大一統。貫古貫今。至重至嚴底道理也。今曰只主主宰一義。而幾於理有操縱。不復檢束此氣云。視主宰藐然。若一箇沒緊要底物事。豈所重在氣而然耶。主理乃所以檢束此氣。主氣而聽其自爲。乃可謂檢束乎。主理乃可以無疏漏。主氣而遺却本原乃可謂無疏漏乎。時然後言。則語者口。而語之者理之主宰也。非禮勿言。則黙者口。而黙之者理之主宰也。釋氏之認氣爲性。陽明之認心爲理。是不擇所發之善惡。而槪以謂性也。其不可也固矣。若其知覺作用視聽言動之由於善者。亦不可謂之理乎。不擇善惡而槪謂之性者。古之告子釋氏及陽明之流也。不分理欲而槪謂之氣者。今之自謂得千古之獨見者也。自心自省。此是主一無適之謂。亦豈爲漫無主張而自行自止之意耶。噫。九原不作。朱子無語也。田愚曰。理一而已。乘於氣則其分萬殊。此栗翁說也。曰豈一之時。初無所乘。至萬之時。始上著機歟。曰不然。今單言機上之太極。則曰理一而已矣。兼擧四氣之時而言元亨利貞。則曰乘於氣而其分萬殊云耳。豈昔日徒行而今日跨馬之謂乎。今猥筆乃曰。此若太極漫無主張。忽見馬匹當前騰上者然。此決非栗翁之本意也。又曰。是馬爲塞翁之得。非元來所乘。此後勢必之東之西。惟馬首是瞻。此亦須消詳。未可草草打過。蓋人皆有太極而氣稟旣異。則欲動情勝利害相攻之患。往往而有。是時所謂元來乘馬之主人。旣有操縱之力。而亦非無適莫。【操縱適莫。此皆猥筆中。】奈何有此東西惟馬之失也。此宜明核而勘破。不然則其曰主之所向。僕焉得有不往者。人將不之信矣。嗚乎殆哉。一理如人之一身。萬里如身之百體。一非不足。萬非有餘。今曰理一而已矣。而兼擧四時之氣而言元亨利貞。然則一爲無分之一。必待兼擧而後爲萬里也。前所謂分殊固是本然之分者。顧安在耶。太極固主宰。而欲動情勝者。氣習之敝也。以氣習之敝。而疑太極之不爲主宰。何異於見水之過顙。而疑其性之不潤下也。雖在欲動情勝之中。而其歉然。不足索然不安之意。未嘗不在其中。此心靈之不可欺。而理之所以爲宰也。豈可引此而譏主理者曰。奈何有東西南北馬首之失也。田愚曰。猥筆又曰。理發二字。爲今日一大禁避語。而纔見行變化成條理者則曰氣也。問孰主張是則曰其機自爾。非有使之者。問所謂理者。落在何處。則曰乘之矣。始旣無使之然之妙。末又非有操縱之力。寄寓來乘。做得甚事。有之無所補。無之靡所闕嗚乎可憐矣。究其端由。原於乘字失其本旨。駸駸致得理輕氣重。直至氣奪理位。爲萬事本領而後已。一字之失。其禍乃至此乎。愚按。栗翁亦嘗言孰尸其機。嗚乎太極。此何嘗以氣爲萬事本領乎。又言性發爲情。則猥筆云云。栗翁已見之。昭陵也。但其以理發爲非者。却有曲折。實由理氣互發而云爾。蓋從理爲根柢上說。則氣爲理之用。故雖氣發亦可謂之理發。如行者雖馬而主者是人。故統而言之曰人行也。若據氣能作用上說。則理實無情意。故雖善情。但可謂之氣發。而乘者雖人而行者是馬。故辨而明之曰馬行也。若欲以理爲主。而至於用事處。亦禁不下氣發字。非其情實也。譬如臣行君令。其所行固出於君。然其行之。畢竟是臣而非君。如必以所行是君命。指臣行爲君行。則名不正而言不順矣。況遽指臣行二字。而爲臣奪君位誅之。則豈法理之所當出乎。變化者氣也。而曰乾道變化。流行者氣也。而曰天理流行。何嘗以此爲名不正言不順乎。氣之循軌處。莫非理之流行。至於氣不循軌而後。方說氣質。然則彼所謂臣行者。或不爲不軌之臣耶。栗翁嘗曰。孰尸其機。嗚乎太極。又曰。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又曰。萬般之情。皆出於理。此皆不易之定論也。猥筆之言。亦豈非栗翁之已見之昭陵乎。但後之人舍平日之定論。而特擧流行邊一條說。以爲自己主氣之證案。至有性體氣用同體異用之說。以人物之生謂無定分。陰陽五行謂非本然。橫說竪說。要不出於氣之一字。而必引栗翁語以實之。嗚乎。栗翁平日之主理。顧何如。而爲後人所傳會。反若不免爲主氣之科。然則爲栗翁分疎者。幾何不爲栗翁之罪人也耶。田愚曰。猥筆所擧一陰一陽之爲道。太極生兩儀兩句。誰曰不然。但人能弘道。非道弘人。獨非孔子之言乎。恐不必執一而棄一也。竊嘗思之。自鄕人而至於爲聖爲賢。豈非奪天地之造化者乎。其功夫雖存乎心。而其本原一出於性。然則謂之道能弘人。亦何不可。而聖人之言如此。此宜深思其故。夫道是至尊之實而爲萬物之主者。乃降而與有作用者同科焉。則道器上下之分亂。而無以社此心覬覦之萌矣。嗚乎。聖人之指微矣哉。【此以防心。後世猶有此心自稱大理具小理者。】抑又思之。心之能事。至於敬尊德性。義扶世敎。鑄凡作聖。竪人參天。其有功於人何如哉。雖假以形上之名。宜若無可惜者。而聖人之於心。乃不肯與道齊頭幷脚。是又何故。釋氏不知理之爲道。而天上天下惟我獨尊。我是心自我。心雖磨鍊得極精細。比之沖漠無眹之道。畢竟微有跡。蓋靈之與道。原自有辨而然也。聖人不欲指心以爲道。其謹嚴之意。豈不以是歟。此是吾儒第一義理。亦第一防閑。欲奉質於囊哲。而旣未可得。亦願幷世與後來之賢者。與之是正。人固氣也。而其所以爲人者。乃理也。然則所謂能弘者。是在於理。而不在於氣。不其明矣乎。今以心專作氣分而禁不得覬覦。以道爲至尊。而俾不欲貶降。其意可謂勤矣。然徒知心之爲氣而不知爲理。則是主宰妙用之權。一歸於氣。而所謂至尊者。還不免爲陽尊矣。歸權於氣。使之覬覦而欲其不覬覦。陽尊其位。使之貶降而欲其不貶降。得乎。聖人不欲指心爲道。則孟子何以曰仁人心也。邵子何以曰心太極也。程子何以曰心生道也。又何以曰在天爲命。在人爲心。主於身爲心。朱子何以曰仁者天地生物之心。人得之以爲心云云。而使之齊頭幷脚也。孟邵程朱。獨不念吾儒第一義理第一防閑而然耶。以遺理主氣爲第一義理。而欲以質於囊哲。又欲正於倂世。又欲俟於來後。可謂枉用心力矣。且形上形下之名。豈人所得以假之者哉。田愚曰程子曰天地萬物之理。無獨必有對。有問於朱子曰。太極便對甚底。曰太極便與陰陽相對。猥筆第五段。正論此義云。把氣與理對擧。此非聖人之言。今人纔見理字。必覓氣來作對遇。於是理之流行一大事。盡被氣字帶去作家計。所餘者只混淪也沖漠也。此雙本領之履霜也。悲夫。愚按。蘆沙尊理而有此云云。然辭氣之間。陵轢過越。大損尊畏聖賢之體。此豈非氣之失理處乎。況朱子何嘗非聖人。何嘗非一本領。而把陰陽太極做對。此亦謂奪却理之流行一大事。以與氣字。而爲雙本領之履霜。而受蘆沙悲夫之歎者耶。程子曰。心有存亡出入。非聖人之言。夫操則存舍則亡。出入無時。此非孔子之言耶。然而程子云然者。但據理而言。非正論孔子之言也。今先師之言。但據理而言之。非正論朱子之言也。程子之言。亦可謂陵轢過越耶。亦可謂氣失其理耶。天下固有無對之尊。如國之有君家之有父是也。然必欲究言其對。則君之於臣。父之於子。亦不可謂非對也。惟心無對。惟道無對。惟義無對。此皆非朱子之言耶。今也單擧朱子有對之一言。而謂先師正論此義。欲使悲夫之歎。加於朱子之身。爲陷人之計。君子而用心如是乎。其機關籠絡。令人可怕。田愚曰。猥筆曰聖人的見流行發見變化昭著。莫非此道之爲云云。此道之爲四字。恐合商量。朱子於論語集註旣云道體無爲。尤翁之答人書。又云此理其體無情意造作。而至於用。則有情意造作也。二先生。豈不知道之流行發見而其言如此耶。此宜再入思議看也。【莫非此道之爲。若添數字此道之根柢樞紐。則似更詳明。未知如何。】自然當然必然能然之然。是道之所爲也。何必運手運脚有作有用而後。乃謂之爲耶。朱子曰。所以一陰一陽者。是皆道體之所爲。又曰。一物之中。自始至終。皆實理之所爲。此等爲字。亦可再入思議看耶。田愚曰。蘆沙奇丈理氣說。近因溪雲金丈所示辨說。槪見一二顯與栗谷先生角立極有不可曉處。大抵其意。本欲尊理字。而不覺其反有貶降之嫌矣。愚竊意凡氣有所爲。必有所以爲之理。然後乃有是事。只如此說。其於理爲氣主之義。已自綽有裕矣。今論理字而曰有適莫。又曰有操縱之力。又曰做得事。然則其爲有爲之物明矣。何以爲有爲者之主乎。設如其說它姑無論只如唐殷之水旱。孔孟之貧賤。夷惠之偏於淸和。顔冉之未及仁道此等處。所謂理者。却去何處。句當甚事。而乃若無適莫沒操縱。而一任其氣之所自爲者然。可怪可怪。顔子之心。方且以性爲主而日勉焉。而明道稱其和氣自然。雖吾夫子。苟原其心之所發。則亦一本於此。而未嘗自用也。而朱子却謂其從心所欲。而自然不踰矩。至其註楚辭天問則曰。一動一靜。一晦一朔。皆陰陽之所爲。非有爲之者。解陰符經人心機也之語。又直云人心自然而然者機也。程朱二先生豈不知氣字心字以上。更有所以然之理。而謂之自然也哉。且聖人之稱顔子不曰仁使心不違。而但曰其心不違仁。此無乃不違之所以然。則雖出於性。而其不違之機。却只在於心故歟。若如蘆沙之說。則其不違仁之時。此理又何爲使之如此。又其覺違而依仁也。謂自心自覺而自依之可乎。【此以求放心銘。孰放孰求(反)覆惟手等語觀之。可見。】抑謂之所謂理者。於此心依違之間。有適有莫之意。而操縱之如是云爾可乎。以此反覆推究。見其說之不能無失也耶。以有形之事。形容無形之妙。其言不得不如此。若倂與其無形之妙而無之。則是道理不其淪於空寂乎。理無操縱之形。而有操縱之妙無適莫之跡而有適莫之妙無做得之力。而有做得之妙。福善禍淫。虧盈益謙。非操縱乎。種豆得豆。種瓜得瓜。非適莫乎。四時運行。百物生成。非做得之妙乎今以陰陽五行萬物庶類謂非本然之分則宜乎謂無操縱無適莫無做得事也。唐殷之水旱。孔孟之貧賤。雖不可謂此理之本然。而亦不可謂非理勢之使然也。理勢使然。先哲亦謂之天。顔子之和氣。夫子之從心。亦義理充積而然。豈理不爲主而一任於氣之謂耶。理不爲主而氣自如此。則盜跖之心。奚獨無不踰矩乎。顔子之或有所違而自心自省。亦理之爲主也。旣以國之不治。人之不善。爲理不主氣之證。又以唐殷之水旱。孔孟之貧賤。爲理不主氣之驗。夫唐殷之水旱。孔孟之貧賤。乃一時氣數之變耳。以一時之變而疑萬古不易之常。聖人千言萬語。皆爲不試無驗之書矣。理固爲主。而猶有背理習亂之變。況以氣爲主。漫無主宰。其爲變。顧何如哉。朱子以士者文體浮薄。爲世道憂。況道理心術邊說話乎。所謂人於是非之原。毫釐有差。則其禍至於伏尸百萬流血千里者。誰謂非今日之憂也。近來主氣之說不一。有以太極爲無分之一。有以五性爲帶氣之物。有以明德爲形而下。言一本萬殊。則萬殊爲氣。言大本達道。則達道爲氣。或以陰陽五行謂非本然。或以人物偏全謂非定分。使主宰妙用。條理段落。一歸於氣。立論如此。而猶不曰氣奪理位得乎。氣奪理位。則臣之奪君。子之奪父。妻之奪夫。小人之奪君子。夷狄之奪華夏。亦其一例事也。先師惟是之憂。發揮剔刮。次第折衷。使千橫萬決。庶歸于一矣。而一邊之論。猶復齗齗。至引作用是性求心習靜之語以譏之。明道體之本然。存太極之主宰者。是作用歟。是習靜歟。然道理必不爲一邊之論所可移易。公論必不爲一時之言所可眩惑。多見其不知量也。況以忌克之心。爲吹覓之計。則其出言立論。安得公平通達無所偏倚乎。嗚乎此何時也。此何時也。爲士者。所宜同心修省。以扶如綫之脈於萬分有一之中。而乃反齗齗如是耶。誠可歎也。 기(機)가 저절로 그러하다 '기자이(機自爾)'는 서경덕(徐敬德)이 《화담집(花潭集)》 〈원리기(原理氣)〉에서 기(氣)의 모이고 흩어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말이다. 《장자》 〈천운(天運)〉에 '기(機)'가 보이는데, 곽상(郭象)은 주석에서 "저절로 그럴 뿐[自爾]이므로 그 까닭은 알 수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그 어원은 장자의 기(機)와 곽상의 자이(自爾)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이다. '기'는 동기(動機)ㆍ활기(活氣)의 뜻으로 정지한 상태가 운동으로 전환하는 필연적인 추세를 가리키고, 물질 운동의 한 계기로서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능이(自能爾)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운동의 필연적인 내적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경덕은 이 말로 기(氣)의 동정(動靜)과 합벽(闔闢)을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기'의 속성은 시간적으로 시종(始終)이 없고 공간적으로도 무한(無限)하며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이이(李珥)도 기(氣)의 동정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 차용하였다. 형이하자(形而下者) 형이상(形而上)은 도(道)로서 무형(無形)인 것이고, 형이하(形而下)는 기(器)로서 유형(有形)인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형이상인 것을 도라 하고 형이하인 것을 기라 한다."라고 하고 정자(程子)의 주(注)에 "유형(有形)은 모두 기(器)이고 무형(無形)은 도가 된다."라고 하였다. 하늘이……덮어준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하늘이 만물을 내는 데는 반드시 그 바탕으로 인하여 후하게 한다. 그러므로 심겨 있는 것은 길러 주고 기울어진 것은 덮어준다."라고 하였다. 이는……같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3 〈중용(中庸)〉에 보인다. 하늘이……하였다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보인다. 자연의……같다 해당 구절에 대한 《맹자집주(孟子集註)》에 보인다. 하늘이……하였다 《맹자》 〈만장상(萬章上)〉에 보인다.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말 :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 "사람이 도(道)를 선양하지는 것이요, 도(道)가 사람을 선양하는 것은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한 경문에 대한 집주에 장재(張載)가 "마음이 성(性)을 다할 수 있으니, 이것은 사람이 도(道)를 크게 하는 것이요, 성(性)은 마음을 검속할 줄 모르니, 이것은 도(道)가 사람을 크게 함이 아닌 것이다.[心能盡性, 人能弘道也. 性不知檢其心, 非道弘人也.]"라고 한 말이 실려 있다. 기(氣)가……주재(主宰)한다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무위(無爲)하면서도……이(理)이다 《율곡선생전서》 권10 〈답성호원〉에 보인다. 누가……태극(太極)이로다 《율곡선생전서》 권1 〈이일분수부(理一分殊賦)〉에 보인다. 위연(魏延)과……변고 위연과 양의는 모두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 막하의 장수 이름이다. 제갈량이 죽자 각각 반역을 일으켰는데 결국 양의가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공격하여 한중(漢中)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三國志 卷40 蜀書 楊儀傳》 이기(二氣)의 양능(良能) 《중용장구》 제16장 제1절에 "귀신의 덕이 지극하다."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귀신은 음양 두 기의 양능이다.[鬼神者, 二氣之良能也.]"라는 장재(張載)의 말을 인용한 뒤, "두 기로 말하면 '귀'는 음의 영이고 '신'은 양의 영이며, 한 기로 말하면 이르러 펴짐은 '신'이 되고 돌아가 되돌아감은 '귀'가 되니, 그 실제는 같은 것일 뿐이다.[以二氣言, 則鬼者陰之靈也, 神者陽之靈也; 以一氣言, 則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實一物而已.]"라는 내용이 보인다. 움직이되……없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제16, 〈동정(動靜)〉에 보인다. 고요함……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4, 〈주자지서(周子之書)〉에 보인다. 신명(神明), 주재(主宰)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8 〈장자서(張子書)〉에서 "마음은 신명의 집으로 일신을 주재한다.[心, 是神明之舍, 爲一身之主宰.]"라고 하였다. 기기(氣機) 천지의 일정한 질서에 따라 운행하게 하는 자연의 기능을 가리키는데, 주희(朱熹)의 〈감흥시(感興詩)〉에 "사람의 마음은 오묘하여 헤아릴 수 없으니, 드나드는 데 기기를 탄다.[人心妙不測, 出入乘氣機.]"라고 하였다. 일전어(一轉語) 원래는 불교에서 참선할 때 참선자가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말을 이르는 것으로, 사람들을 대오각성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기(一氣)가……있겠는가 《주자어류》 권45 〈논어〉에 보인다. 이것은……않다 《송자대전(宋子大全)》 권105 〈답심명중(答沈明仲)〉에 보인다. 발(發)하는……기(氣)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형(形)도……기(氣)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형체가……이(理)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2 〈답안응휴(答安應休)〉에 보인다. 이(理)에……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6 〈답정자상(答鄭子上)〉에 보인다. 고자(告子)와……지각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고자가 '생(生)을 성(性)이라 이른다' 하였다.[告子曰生之謂性.]"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주자는 "생은 인물이 지각하고 운동하는 바의 것을 가리켜 말한다.[生指人物之所以知覺運動者而言.]"라고 하였다. 작용(作用)이 성(性) 중국 남종선(南宗禪)의 홍주종(洪州宗)에서 내세운 말이다. '마음에는 변하지 않는 실체나 본성이 없으며, 마음의 작용이 바로 마음의 본성이다.'라는 말이다. 만물에……않는다 《논어집주(論語集註)》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하늘은……아니다 《주자어류》 권45 〈논어〉에 보인다. 움직이지만……아니다 주렴계(周濂溪)의 《통서(通書)》 제16 〈동정(動靜)〉에 보인다. 이(理)의……용(用)이다 《주자어류》 권94 〈주자지서(周子之書)〉에 보인다. 때가……한다면 《논어》 〈헌문(憲問)〉에 "그분은 꼭 말을 해야 할 때가 된 뒤에야 말하기 때문에 남들이 그의 말을 듣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예가……않는다면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이(程頤)가 경(敬)을 설명하기 위해서 쓴 말로, 주일(主一)은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고, 무적(無適)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는 것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주일을 경(敬)이라 하고, 무적을 일(一)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理)는……다르다 "이(理)는 비록 하나이나 이미 기(氣)를 탔으므로 그 나뉨이 만 가지로 다르다.[理雖一, 而旣乘於氣, 則其分萬殊.]"라는 구절이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ㆍ서(書)》 〈답성호원(答成浩原) 임신(壬申)〉에 보인다. 물이……튀는 것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만약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한다면 이마보다 더 높이 올라가게 할 수도 있고, 격동시켜 흐르게 하면 산 위에 있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발(理發)이라는……이르렀도다 《노사집(蘆沙集)》 권16 〈잡저(雜著)〉에 보인다. 소릉(昭陵) 수많은 학설을 모두 파악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황후인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이다. 태종이 황후를 장사 지낸 뒤 후원(後苑)에 망대(望臺)를 만들어 놓고 늘 올라가 바라보다가 한번은 위징(魏徵)과 함께 올라갔다. 위징은 당 태종이 소릉을 가리키는데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뗐다. 위징의 본의도 모르고 당 태종이 저것이 아니냐고 답답한 듯이 말하자 위징이 비로소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부터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헌릉은 태종 어머니의 능이니, 이것은 태종이 어머니는 생각하지 않고, 부인만 생각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리하여 태종은 울면서 그 망대를 헐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唐書 魏徵列傳》 이기호발(理氣互發)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하는데 기(氣)가 이에 따르는 것이고 칠정(七情)은 기(氣)가 발하는데 이(理)가 타는 것이라는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가리킨다. 건도(乾道)가 변화한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하늘의 도가 변화함에 각각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니,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여 이에 이롭고 정(貞)하다."라고 하였다. 무형 무위(無形無爲)하여……된다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 〈답안응휴천서(答安應休天瑞)〉에 보인다. 사람이……아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보인다. 텅 비고……없는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있는 말로, "지극히 고요하여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다.[冲漠無眹, 萬象森然已具.]"라고 하였다. 인(仁)이……이다 《맹자》 〈고자 상〉에 보인다. 마음은 생도(生道)이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심은 생도이다. 이 마음이 있어야 이 형체를 갖추어 생하니, 측은지심은 사람의 생도이다.[心生道也. 有是心, 斯具是形以生, 惻隱之心, 人之生道也.]"라는 정이천(程伊川)의 말이 나온다. 생도(生道)는 생리(生理)와 같은 말인데, 이 생(生)에 대해서는 생생불궁(生生不窮)의 생, 생물위심(生物爲心)의 생, 생활(生活)의 생 등 해석이 다양하다. 하늘에……한다 《근사록》 권1 〈도체〉에는 '在天爲命'과 '在人爲性' 사이에 '在物爲理'가 더 있다. 천지……있다 《이정집(二程集)》 〈유서(遺書)〉에 보이는 정호(程顥)의 말이다. 누군가가……이룬다 《주자어류》 권95, 〈정자지서(程子之書)〉에 보인다. 마음에……아니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가 '잡으면 보존하고 놔버리면 달아나 출입에 때가 없으며 그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말함이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정자는 "마음이 어찌 출입이 있겠는가. 다만 잡고 놓음으로 말한 것이다. 붙잡는 도는 경을 해서 안을 곧게 하는 것일 뿐이다.[心豈有出入? 亦以操舍而言耳.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라고 하였다. 쥐고……없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도체(道體)는 무위(無爲)하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 주(注)에 보인다. 이 이(理)가……있다 《송자대전》 권104 〈답김중고(答金仲固)丙辰〉에 나오는 말이다. 본문은 "이 이(理)가 본체는 정의와 조작이 없고 작용에는 정의와 조작이 있어 스스로 그 지극한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非謂此理其體, 則無情意造作, 而至於用, 則有情意造作, 自能到其極處也.]"로 되어 있다. 《간재집》 〈외필변〉에는 "莫非此道之爲, 若添數字云, 莫非此道爲之根柢樞紐, 則似更詳明.未知如何?"으로 되어 있다. 일음일양(一陰一陽)하는……소위(所爲)이다 《중용혹문》의 이 대목에서 "이른바 '성(誠)은 물(物)의 종시(終始)이니, 성실하지 못하면 사물이 없게 된다.'라는 것은 이(理)를 가지고 말하면, 천지(天地)의 이는 지극히 진실하여 한순간도 망녕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사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고, 한 사물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실리(實理)가 하는 바이다. 심(心)을 가지고 말하면 성인(聖人)의 마음도 지극히 진실하여 한순간도 망녕된 적이 없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고, 한 가지 일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실심(實心)이 하는 바이다.[所謂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者, 以理言之, 則天地之理, 至實而無一息之妄, 故自古及今, 無一物之不實, 而一物之中, 自始至終, 皆實理之所爲也. 以心言之, 則聖人之心, 亦至實而無一息之妄, 故從生至死, 無一事之不實, 而一事之中, 自始至終, 皆實心之所爲也.]"라고 하였다. 계운 김장(溪雲金丈) 김낙현(金洛鉉, 1817~1892)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정여(定汝)ㆍ계운(溪雲)이며 염계(念溪)는 호이다. 유신환(兪莘煥, 1801~1859)의 제자이다. 이조 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백이(伯夷)와……치우쳤던 것 맹자가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고, 이윤은 성인 가운데 자임한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 가운데 화합한 분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시중을 한 분이다."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下》 안연(顏淵)……못한 것 《논어》 〈옹야(雍也)〉에 "공자가 말씀하기를,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을 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날로 달로 거기에 이를 따름이다.' 하였다."라고 하였고, 염구가 "저는 부자(夫子)의 도(道)를 기뻐하지 아니함이 아니라, 힘이 모자랍니다." 하니, 공자가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서 폐하나, 지금 너는 한계를 그어놓고 가지 않고 있다."라고 하였다. 명도(明道)는……칭찬하였다 정호(程顥)가 "공자는 원기이고, 안연은 봄의 생기이고, 맹자는 가을의 쌀쌀함까지 모두 드러난다. 공자는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안연은 후세에 '우직하게 어기지 않은 공부'를 보여 주었으니 자연스러운 온화함이 있어 말하지 않고 화한 분이다. 맹자는 재기를 드러내었으니, 또한 그때가 된 연후에 한 번 일어난 것이다.[仲尼元氣也, 顔子春生也. 孟子幷秋殺盡見, 仲尼無所不包, 顔子示不違如愚之學於後世, 有自然之和氣, 不言而化者也. 孟子則露其才, 蓋亦時然一作焉.]"라고 하였다. 《二程遺書 卷5》 천문(天問) 굴원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이다. 굴원이 초(楚)나라 조정에서 쫓겨난 뒤 근심 걱정 속에 산택(山澤)을 방황하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며, 우주의 모든 사실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여 하늘에 묻는 형식으로 지은 글이다. 한번……아니다 주희(朱熹)의 《초사집주(楚辭集注)》 〈천문(天問)〉에 보인다. 《음부경(陰符經)》 황제(黃帝)가 찬술했다고 전해지는 도가류(道家類)의 책으로, 태공(太公), 범려(范蠡),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이전(李筌) 등이 주해하였다. 음(陰)은 암(暗), 부(符)는 합(合)이란 뜻으로 천기(天機)가 몰래 사기(事機)에 합치된다는 것인데, 이 책의 진위는 알 수 없다 한다. 주희(朱熹)는 제본(諸本)의 차이점을 살피고 그 글을 교정하여 《음부경고이(陰符經考異)》를 지었다. 인심(人心)이……기(機)이다 주희(朱熹)의 《음부경고이(隂符經考異)》 상편(上篇)에 보인다. 〈구방심명(求放心銘)〉 주희(朱熹)가 지은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으로, 《주자대전(朱子大全)》 권85에 수록되어 있다. 번양(番陽) 정정사(程正思)가 구방심재(求放心齋)를 건립하자 왕자경(汪子卿)과 축여옥(祝汝玉)이 이미 그 명을 지었고, 주자가 나머지 뜻을 수습하여 다시 이 명(銘)을 지었다. 공적(空寂) 모든 만물에 실체가 없어 생각하고 분별할 것도 없음을 말한다. 이세(理勢) 사리(事理)와 형세(形勢)를 아울러 이르며 자연의 운수를 뜻하기도 한다. 일본 만수(一本萬殊)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자어류》에 "만 가지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되는 것과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은,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나가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와 수많은 가지와 잎이 되는 것과 같다.[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子語類 卷27 論語9 里仁篇下 子曰參乎章》 기극(忌克) 남을 시기하고 능가하려는 마음을 이른다. 취멱(吹覓) 털을 불어 흠을 찾듯 남의 흠을 찾는다는 뜻으로, 아주 사소한 것을 들춰내서 억지로 남의 결점을 찾는 행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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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 卷之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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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2 卷之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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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 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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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諸同志 태극(太極)은 천지의 종조(宗祖)이고 조화(造化)의 주재자(主宰者)이며 만물(萬物)의 기저(基底)이고 천하 고금(天下古今)에 걸친 인사(人事)의 준칙이다. 지극히 미묘하지만 일용(日用)의 상도(常道)를 벗어나지 않고, 지극히 가깝고 절실하지만 실로 천명(天命)의 엄중함에 근원을 두고 있다. 세상의 치란(治亂), 인물의 현부(賢否), 풍속의 오륭(汚隆), 일의 성패가 오로지 이 도리가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나 도리(道理)는 형체가 없고 사람의 마음에는 가려짐[蔽]이 있다. 마음이 이미 가려졌다면 비록 형기의 거친 흔적마저 명백히 볼 수 없다. 하물며 형체가 없는 오묘한 도리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경(經)을 짓고 현인(賢人)이 전(傳)을 찬술하여 천언 만어(千言萬語)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펼쳤던 것은 이 이치를 밝혀서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그러나 삼대(三代) 이후로 세교(世敎)가 밝지 못하여 순경(荀卿), 양웅(揚雄)과 같이 세상에 드문 호걸조차도 기(氣)를 성(性)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니, 하물며 그들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오랜 세월 어둠에 뒤덮여 헤매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송(宋)나라 때에 이르러 낙양(洛陽)과 민중(閩中)1) 사이에서 2~3명의 선각자가 역량을 발휘하여 성선(性善)의 뜻을 세상에 크게 밝혀놓았다.우리 동방에서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 여러 선생께서 이를 독실하게 믿고 신중하게 지켜 노맥(路脈)이 안정되었다. 아, 유풍(遺風)이 점점 멀어지면서 미언(微言)이 쉽게 가리어져 태극(太極)이 기(氣)를 띤 사물이라고도 하고, 오성(五性)이 기(氣)로 인하여 있다고 하기도 하고, 명덕(明德)이 형이하(形而下)라고 하기도 하고, 만수(萬殊)가 기분(氣分)이라고 하기도 하며, 달도(達道)가 기발(氣發)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다면 성정(性情)과 체용(體用), 시종과 본말은 기(氣)가 주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른바 태극의 주재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대강(大綱)이 이미 어그러졌으니 나머지가 어떨지는 모두 알 수 있다. 선성(先聖)과 선현(先賢)이 몹시 애를 태우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미언(微言)이 가리어진 상황에서 이것을 밝혀놓았건만, 이제 이미 밝아진 뒤에 다시 드러나지 않게 되었으니 탄식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이치를 강구하고 토론하여 눈앞에 밝게 드러나도록 했더라도 운용(運用)의 과정에 이르면 쉽게 잘못을 저지른다. 하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형기(形氣)가 거칠고 조악한 사물이니 정밀하고 순수한 민이(民彝 사람의 도리)에는 어떠하겠으며, 세도(世道)에는 어떠하겠는가.오직 우리 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 일찍이 이를 개탄하고 구원할 방도를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납량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을 지으신 까닭이다. 변석(辯析)하고 회통(會通)하여 선철(先哲)의 미지(微旨)가 세상에 다시 밝게 드러나기를 바랄 만하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건만 영남의 권(權)2), 최(崔)3) 등 여러 사람이 어구(語句)를 지적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거짓된 사실로 전현(前賢)을 헐뜯었다. 이 사람들의 이 행위가 공심(公心)에 의해 일어났는지 아니면 시기와 혐의(嫌疑)에 부림을 당해서인지 모르겠다. 이제 《외필》이 간행되어 사방에 널리 퍼졌으니 눈이 있는 자라면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애오(愛惡)가 차츰 쇠미해졌으니 공의(公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저 입을 닫고 혀를 묶어둔 채로 청정(淸靜)한 마음을 지키고 분변을 하지 않으면서 백세(百世) 뒤의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그러나 다만 오당(吾黨) 선비들이 오늘날 변론을 벌이는 이기설(理氣說) 등을 시험 삼아 본다면 어느 것이 득(得)이고 어느 것이 실(失)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후대에 맡길 수 없으며 즉시 사실을 규명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자기는 지식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칭찬에 따라 편리함을 택하고 좋아하는 대로 편든다면 인습(因襲)과 구차스러움을 행하는 사이에 이 몸이 혹여 한쪽에 치우치는 죄과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도리(道理)는 형체가 없는 오묘함이다. 모름지기 침착하고 독실한 태도로 오래도록 존심 양성(存心養性)을 해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힘쓰라! 이것이 학문(學問)의 기본 법칙이고 자신과 집안을 위한 중대한 계책이니 또 어찌 이 하나의 일만 해내고 말 뿐이겠는가. 太極是天地之宗祖。造化之主宰。萬彙之根柢。天下古今人事之準則也。至微至妙。而不離乎日用之常。至近至切。而實原乎天命之嚴。世之治亂。人之賢否。俗之汚隆。事之成壞。只在乎此箇道理明不明如何耳。然道理無形而人心有蔽。心旣有蔽。則雖形器粗迹。見且猶不得了了。況無形之妙乎。是以聖賢作之經。述之傳以至於千言萬語。娓娓而不已者。無非所以明此理。使人人得以見之。然三代以降。世敎不明。雖間世豪傑如荀卿揚雄之徒。猶不免認氣爲性。至有性惡之說。況其下者乎。百世長夜。擿埴倀倀。至宋。洛閩間有二三先覺出而發揮之。使性善之義大明於世。曁于我東。如靜退栗尤諸先生。篤信謹守。路脈坦然。嗚呼。遺風浸遠。微言易晦。或以太極爲帶氣之物。或以五性爲因氣而有。或以明德爲形而下。或以萬殊爲氣分。而以達道爲氣發。如此則性情體用始終本末。無非氣爲之主。而所謂太極主宰者。果安在哉。大綱旣差。餘皆可知。先聖先賢。苦心苦口。所以明之於旣晦之餘者。今不免復晦於旣明之餘。可勝歎哉。人於此理講之討之。使昭然在目。至運用之際。易致差失。況目前所見。無非形氣鹿粗之物。則其於民彝何。其於世道何。惟我蘆沙先生。嘗慨然於此。思有以救之。而納凉猥筆之書所以作也。析以辨之。會而通之。使往哲微旨庶幾復明於世。不意嶺中權崔諸人。指摘句語。眩惑視聽。以爲誣毁前賢。未知此人此擧是公心所發耶。是猜嫌所使耶。今猥筆之書。刊布在四方。有眼者。皆可得以見之。況時移歲久。愛惡稍衰。則所餘者公議而已。只有緘口結舌。守靜無辨。以俟百世之人可也。然惟吾黨之士。試觀今日所辨如理氣之說。以爲何者爲得。何者爲失。此則不可委之於後。而所當卽下究覈者也。若已無知識。而隨人毁譽。惟便是擇。惟好是阿。則因仍苟且之頃。安知此身或不陷於偏側之科乎。但道理是無形之妙也。須從容沈索。積久存養。乃可以見。勉之勉之。此是學問大法。身家大計。又豈足止爲了此一事而已耶。 낙양(洛陽)과 민중(閩中) 낙양은 정호(程顥)ㆍ정이(程頤)가, 민중은 주희(朱熹)가 거주하던 곳이다. 권(權) 《일신재집》 〈통고영남열읍장보문〉에 따르면 권봉희(權鳳熙)를 가리킨다. 최(崔) 《일신재집》 〈통고영남열읍장보문〉에 따르면 최동민(崔東敏)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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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기우록 湖上奇遇錄 갑술년(1874, 고종11) 가을에 친족인 사문(斯文) 백언(伯彦)4)이 사상(沙上)5)에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노선생(老先生)께서 계방(季方 정의림(鄭義林)의 자(字))의 안부를 매우 자세히 물으셨다. 인하여 서찰 봉투 하나를 가리키면서 말씀하기를, '이것은 삼가(三嘉)에 사는 정재규(鄭載圭)6)의 편지이다. 이 사람은 의림(義林)과 성씨도 서로 같고 나이도 서로 비슷하며 재능과 성격도 서로 닮았으며 사는 곳의 지명 또한 다르지 않으니 참으로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관했다가 의림에게 보이고자 한다.'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삼가(三嘉)에 정 사문(鄭斯文)이라는 현자가 있다는 말은 이보다 앞서 이미 익히 들었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몸으로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있고 나란히 사문(師門)의 칭찬을 받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사정(私情)이 두려워 감히 사문의 뜻을 받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정 사문을 우러러 흠모하는 나의 마음은 이때부터 더해갔다. 이에 전편(轉便)을 통해서 삼가 통성명은 하였으나, 직접 뵙는 일까지는 아득하여 기약이 없었다.다음 해인 을해년(1875) 겨울 10월에 내가 사상(沙上)으로 가서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후윤(厚允 정재규(鄭載圭)의 자)이 3일 전에 당도해 있었다. 그다음 해 여름 4월에 내가 진구(珍邱)의 우사(寓舍)로 가서 선생을 찾아뵈었더니 후윤이 또 3일 먼저 당도해 있었다. 이것이 어찌 사람이 꾀한다해서 되는 일이겠는가. 얼굴을 마주하고 약속을 하며 손을 맞잡고 언약을 하면서 매우 간절하게 둘이서 응낙하더라도 끝내는 서로 형편이 어긋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이다. 하물며 아득히 먼 500리 땅에서 애초에 한마디의 약속도 없던 사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앞서지도 않고 뒤서지도 않으며 메아리처럼 합치된 것이 귀신과 같아 한 번, 두 번 기약이라도 한 듯이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예사로운 입장에서도 신기하고 절묘한 일이건만 도리어 함께 하는 것이 있고 스승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참으로 진귀하고 소중한 일이다.선생께서 두 제자를 돌아보고 이르시기를, "이것은 세상에 드문 신기하고 절묘한 일이다. 어찌 각자 기록을 남겨서 잊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이에 삼가 전말(顚末)을 서술하고 이로 인하여 후윤의 학문과 지절(志節)을 돌이켜 기억하자니 실로 나처럼 어리석은 자가 미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앞뒤로 이어진 기이한 우연이 이처럼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니 후윤은 자기만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는 공자의 교훈7)을 고집스럽게 지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처럼 무능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은혜롭게 대하고 멀리하지 않으며 이끌고 일깨워주어 자기와 함께 돌아가도록 한다면 이처럼 세상에 드문 우연에 부응할 뿐만이 아니며, 또한 우리 선생께서 끊임없이 칭찬하신 뜻이 아니겠는가. 이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네 가지가 같다는 말씀은 부끄럽지만 堪愧四同說두 번씩이나 만난 우연이 더욱 기이하구나 最奇再遇緣선생께서 기록으로 남기라 명하시니 先生命以記이 뜻이 참으로 깊고도 깊도다 此意正淵淵 歲甲戌秋。鄙族伯彦斯文。自沙上過余而言。老先生問季方安否甚悉。因指一幅封題曰。此是三嘉鄭載圭書也。此人與義林。姓氏相同。年紀相近。才性相似。至於所居地名亦不異。甚非偶然。故留此欲爲義林示之也。三嘉有鄭斯文之賢。前此蓋已稔聞。豈知醜差之身。與有所同。而倂見稱道於師門哉。私情悚惕。固知不敢承膺。而區區嚮仰之心。自此而有加矣。玆因轉遞。謹以姓名自通。而至於一番承接。則闊然無期。越明年乙亥冬十月。余往拜先生於沙上。厚允先三日至。明年夏四月。余往拜先生於珍邱寓舍。厚允又先三日至。是豈人謀所及哉。面以證期。手以置契。兩諾俱應。極其丁寧。而終至汗渙緯繣不如吾意者。十居八九。況漫漫半千里。初無一言之約哉。然不先不後。嚮合如神。至一至再。奉接如期。此在尋常之地。猶爲奇絶。乃有所同而見道於師門。曾是珍重者耶。先生顧謂二子曰。此是曠世奇絶事。盍各記諸以示不忘也。於是謹序述顚末。而因念厚允學問操守。實非如愚所可及者。然前後奇遇。若是種種。則厚允於母友不如之訓。似不當膠守矣。矜此不能。惠爾不遐。提挈警覺。俾與之同歸。則不惟爲副此曠絶之遇。而亦豈非我先生眷眷稱道之意耶。仍有詩曰。堪愧四同說。最奇再遇緣。先生命以記。此意正淵淵。 백언(伯彦) 정시림(鄭時林, 1833~1912)의 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월파(月坡)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보성(寶城)에 거주하였다. 사상(沙上) 기정진이 거처하던 노산(蘆山) 아래 하사(下沙)를 이른다. 정재규(鄭載圭) 1843~1911.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ㆍ애산(艾山)이다. 청계(淸溪)는 초계의 이칭(異稱)이다. 김홍집(金弘集) 등 개화파에 의한 개화운동이 시기상조임을 밝히고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유림에게 통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키자고 호소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후 최익현(崔益鉉) 등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저서로 《노백헌집(老柏軒集)》이 있다. 자기만……교훈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군자가 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우는 것 또한 견고하지 못하다. 충(忠)과 신(信)을 주로 하며, 자기만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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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중【봉환】에게 답함 答文翊中【鳳煥】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 회합(會合)을 마련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강학(講學)을 위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예를 익히기 위한 것입니다. 회원(會員)들의 마음이 모두가 성의에서 나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참으로 선(善)하고 그 거조(擧措)가 참으로 좋습니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더욱 정성을 다하도록 권면하고 행동에 실효(實效)가 없으면 더욱 그 효과를 독려하여 바로잡고 경계하며 벗끼리 서로 연마하고 바로잡아 주어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하면 됩니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면 선을 행할 길이 없다."9)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까지 아울러 그만두겠습니까. 아우가 생각하기에도 예를 익히는 일은 의절이 매우 광대하여 갖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중지하였습니다. 강규(講規)는 학자들의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여러 형에게 고하여 수일 동안 강규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약 강규에 관한 일까지 아울러 그만둔다면 한바탕 질펀하게 먹고 마시는 회합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형의 말씀대로 10년에 한 번 행하고 5년에 한 번 행한다면 형세상 반드시 날이 갈수록 해이해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서(漢瑞) 등 여러 벗과 충분히 상의하여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기 바랍니다. 중양절(重陽節)을 맞아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일은 실로 듣기를 바라던 일입니다. 다만 이 몸이 그때에는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일지를 모를 뿐입니다. 示喩謹悉。以愚思之。此會之設。一則講業也。一則習禮也。會員之心。雖不能皆出於誠。而其意則固善。其擧則固好。心有不誠。則益勉其誠。行無實效。則益責其效。規警切磨。俾不至於漫浪之爲可也。古人曰避好名之嫌。則無爲善之路。夫豈以好名之嫌。而竝廢其所當爲者哉。弟意亦以爲習禮一事。其儀浩大。有難種種。故姑爲停止。至於講規。則此是學者日用平常事。故告于僉兄擬爲數日之計矣。今若竝與講規一事而廢之。則其不爲一場酒食流連之會耶。若依兄敎。十年一行。五年一行。則其勢必日涉頹弛。不過幾年。蕩然無有。願與漢瑞諸友爛商歸好也。重陽泛菊。實所願聞。但未知此身其時作何處人耳。 명예를……없다 송(宋)나라 때 범순인(范純仁)이 한 말이다. 범순인이 일찍이 간신 장돈(章惇)의 비위에 거슬려 영주(永州)로 폄출되었는데, 그 당시 눈병을 앓아 완전히 실명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폄출 명령을 받고 기꺼운 표정으로 길에 올랐는데, 어떤 이가 명성을 가까이하는 짓이라고 하자, 이를 듣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칠십의 나이에 두 눈이 모두 멀었으니, 만 리 길을 떠나는 것이 어찌 원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나의 마음이 다하지 않아서일 따름이다. 만약 명성을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고자 한다면 선을 행할 길이 없을 것이다.【七十之年, 兩目俱喪, 萬里之行, 豈其欲哉? 但區區之愛君, 有懐不盡. 若避好名之嫌, 則無爲善之路矣.】"라고 하였다. 《宋史 卷314 范純仁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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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承嘉命許以令愛貺室僕之堂姪赫哲玆有先人之禮謹行納幣之儀 不宣伏惟尊照 上狀乙亥十二月初七日扶寧後人金直拜(皮封)崔生員上狀執事宅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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閱歲阻拜瞻仰政溸意表惠䟽忽至奉讀數回如敵良晤山川之綿邈不能間人心曲也矧審哀體動止連護万支覃節均得泰旺區區仰慰實愜願聞弟昨冬以家季憂擾幾涉危境近幸差復以身家以滯祟屢朔呻苦氣血從又脫落甚可畏也方試藥餌而亦未能其必效也就先孝事一層節示是大關嶺而旣已順過幸莫大矣然前頭之嶺尤有甚焉者將奈何奈何如渠病孱者有心而不能助一臂之力可恨可悵未知何以則爲好耳五筆中書不能如意之際繼而有功甚緊甚緊其緊不可量矣然吾傳本色俱是淸寒者此亦不容易得者其感且悚難以形喩也餘留不備謝禮庚午四月三日 弟安橓拜拜(皮封)堂邨 哀座執事觀峴謹謝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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忝親扶寧后人金彩相再拜忝親彩相白伏承尊慈不鄙寒微許以令愛貺室僕之第二孫洛恒玆有先人之禮敬遣使者行納幣之禮不備伏惟尊慈特賜鑑念謹上狀崇禎後丁卯四月十三日(皮封)上狀崔生員 執事 方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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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寧后人金載相再拜恭承嘉命許以 令愛貺室于僕之子龍煥年旣長成玆有先人之禮謹行納幣之儀不備伏惟尊照 狀上辛丑十一月二十九日(皮封)謹封上狀李生員 下執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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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경【달환】에게 답함 答文德卿【達煥】 세상에 얽매였던 곳을 떠나 고요한 곳으로 나아가니 새로 마련한 집터가 한가롭고 자유스럽습니다. 더구나 가을을 틈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오랜 세월 사귄 친구의 얼굴을 함께 대하였으니 위안이 되고 마음이 놓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돌아온 이래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형의 체후는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 또한 평온하신지요? 매양 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이 절실합니다. 아우는 병세가 날로 심해져 바로 서산(西山)에 지는 해와 같으니 가련합니다. 아, 남은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마땅히 부지런히 노력하여 죽기 전에 좁은 소견이라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어찌 지극한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처지와 형편이 이와 같은 데다가 또다시 쓸쓸하고 적막하여 답답하고 의지할 곳도 없으니 어떠하겠습니까. 매양 세상일은 전부 쓸어버리고 형처럼 학식이 뛰어나고 견문이 넓은 또래들과 차분하게 서로 보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조물주가 평생에 걸쳐 곤궁했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특별히 만년에 여지를 갖게 해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습습니다. 악(惡) 역시 이(理)가 주재(主宰)합니다. 이것이 저의 본의는 아니지만 자세히 말하자면 역시 얘기할만한 곡절(曲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발(發)하여 곧게 이루어진 것은 분명히 이(理)가 주재한 것이고 곧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기(氣)가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위선(爲善)과 위악(爲惡)'의 분명한 경계입니다. 참으로 용납할 수 있는 다른 평설(評說)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理)라는 것은 본래 사물을 주재하되 그렇지 않은 때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위쪽의 반은 이가 주재하고 아래쪽의 반은 기가 주재한다면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는 것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자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분명 이의 본연(本然)이지만 튀겨서 이마 위로 올라가게 하고 힘을 가하여 산에 있도록 하는 것을 본연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또한 사리와 형세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맹자(孟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부림을 받고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부림을 받는 것을 모두 하늘의 이치라고 보았고,5) 주자(朱子)는 기화의 성쇠와 인사의 치란을 상리(常理)라고 하였으니6) 이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선을 따르면 길하고 악을 따르면 흉하며,7) 천리를 따르면 여유가 있고 인욕을 따르면 위태로우니8) 이(理)가 주재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理)에 나아가 깊이 탐구하여 말한 것입니다. 위의 한 조목과 각각 하나의 의미가 되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謝繫就靜。新寓蕭散。矧且乘秋溯涼。共對知舊積年之面。其慰豁之情。爲何如哉。歸來。月已再弦矣。未審兄體何如。惟憂亦平和否。每切願聞。弟病情日深。正是下山之日。可憐。嗚呼餘日幾何。固宜汲汲勉力。企得一管之見於未死之前。豈非至願。而身事如此。又復落落離索。無聊無賴。奈何。每欲掃却外事。與如兄年輩老宿之人。爲從容相觀計。而不可得。未知造物矜其平生蹇滯。而特許其晩年一副餘地耶。可呵。惡亦理爲之主宰。此非鄙之本意。而究言之。亦不無曲折可言處。發而直遂。固理之爲主。而其不直遂者。爲氣所勝故也。此是爲善爲惡八字界至也。固無他說之可容更評。然理者。是合下主宰物事而無時不然者也。今以上一半。理爲之主。下一半。氣爲之主。則烏在其無時不然者乎。比之水潤下。固理之本然。而其搏之以過顙。激之以在山。謂之本然則不可。而亦不可謂非理勢之使然也。孟子以小役大弱役强。同謂之天。朱子以氣化盛衰。人事治亂。謂理之常。此可考也。況惠迪吉。從逆凶。順理則裕。從欲惟危無非理爲之主也。此是就理上深探而究言之者也。與上一條自不妨各爲一義。如何如何。 맹자(孟子)는……보았고 《맹자》 〈이루 상〉에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에는 소덕(小德)이 대덕(大德)에게 부림을 당하고 소현(小賢)이 대현(大賢)에게 부림을 당하며,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나라가 작은 자가 나라가 큰 자에게 부림을 당하고 약자가 강자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이치와 형세)이니,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보존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하였으니 《맹자집주》 〈등문공 하(滕文公下)〉 제9장의 "천하에 사람이 살아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웠다.【天下之生久矣, 一治一亂.】"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웠다는 것은 기화의 성쇠와 인사의 득실이 반복하여 서로 찾아오는 것이니, 이치의 떳떳함이다.【一治一亂, 氣化盛衰ㆍ人事得失, 反覆相尋, 理之常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선을……흉하며 《서경》 〈대우모(大禹謨)〉의 "선을 따르면 길하고 악을 따르면 흉하다."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천리를……위태로우니 정이(程頤)가 지은 〈사물잠(四勿箴)〉 가운데 동잠(動箴)에 '철인은 기미를 알아 생각할 때에 성실히 하고, 지사는 행실을 힘써 행함에 지조를 지킨다. 천리를 따르면 여유가 있고 인욕을 따르면 위험하니, 창졸간에도 능히 생각해서 전전긍긍하여 스스로 잡아 지키도록 하라. 습관이 성(性)과 더불어 이루어지면 성현과 함께 돌아가리라.【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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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아에게 부치다 4수 寄復兒【四首】 만물은 오히려 한몸인데 萬物猶同體하물며 친한 이에게 융숭한 사랑을 받음에랴 矧於親愛隆묵자는 머리부터 갈아서 발꿈치에 이르는데293) 墨生磨頂踵이것을 중도에 지나친 것은 아니라 하네 用此非過中친아버지와 숙부는 親父與叔父간발의 차이도 없다네 其間不以髮숙부를 배반함은 아버지를 배반함과 같으니 貳叔猶貳父아버지를 배반한다면 다시 무슨 말을 하랴 貳父更何說불손함은 악덕이니 不遜是惡德절로 사치하고 난폭함이 생기네 乃自奢豪生이를 만약 반우294)할 수 있다면 此若反隅得공경함은 검소함으로 이루어지리 恭敬由儉成너의 나이 불혹295)에 가까우니 爾年近不惑한평생 가운데 절반의 나이이네 中半一平生옛날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舊習如不改서글프게 끝내 성취함이 없으리라 可痛竟無成 萬物猶同體, 矧於親愛隆?墨生磨頂踵, 用此非過中.親父與叔父, 其間不以髮.貳叔猶貳父, 貳父更何說?不遜是惡德, 乃自奢豪生.此若反隅得, 恭敬由儉成.爾年近不惑, 中半一平生.舊習如不改, 可痛竟無成. 묵자(墨子)는……이르는데 묵자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인 묵적(墨翟)은 모든 사람을 평등히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이를 극도로 비고아서 "자기의 정수리부터 갈아서 발 끝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하였다. 《孟子 盡心上》 반우(反隅) 한 가지를 일러 주면 그와 유사한 것은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논어》〈술이(述而)〉에 "한 모퉁이를 들어 일러 주었는데 세 모퉁이를 반증하여 알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불혹(不惑) 나이 마흔 살을 말한다. 《논어》 〈위정(爲政)〉의 공자 말씀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疑惑)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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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을 그리워하며 懷汝安 네가 집을 떠난 지 반년이나 되니 自汝離家半歲長내 마음은 서글프지 않은 날이 없었네 我心無日不悲傷전주283)에선 궁핍한 생활284)로 몸이 야위고 沛城桂玉身生瘦오산 골짜기에선 무더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네 鰲峽蒸炎汗滴漿같이 병들어 급한 형편을 풀어주지 못해 同病未能紓方急가난이 싫어 혹 떳떳함을 잃을까 걱정했었네 厭貧恐或失其常어느 때나 휘장 맑게 하여 서실로 돌아갈까 何時淸帳歸書屋《시경》〈소완〉285)을 즐겨 강론하네 好講毛詩小宛章 自汝離家半歲長, 我心無日不悲傷.沛城桂玉身生瘦, 鰲峽蒸炎汗滴漿.同病未能紓方急, 厭貧恐或失其常.何時淸帳歸書屋? 好講《毛詩 小宛》章. 전주(全州) 원문의 '패성(沛城)'은 풍패(豐沛)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전주를 말한다. 풍패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고향인 패(沛) 땅 풍읍(豐邑)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제왕의 고향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흔히 함경도 함흥(咸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왕족인 이씨(李氏)의 본향이라 하여 전주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궁핍한 생활 원문의 '계옥(桂玉)'은 계수나무 땔나무와 옥으로 지은 밥이라는 말로, 물자가 부족하여 생활하기 곤란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초(楚)나라 왕에게 "초나라의 밥은 옥보다도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보다도 비싸다. 지금 내가 옥으로 지은 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 今臣食玉炊桂, 不亦難乎?〕"라고 불만을 토로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楚策3》 시경(詩經) 소완(小宛)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세상의 난리를 만난 뒤에 몸가짐을 공손히 하여 날로 덕을 닦으며,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화를 면하기를 경계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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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에게 부치다 寄汝安 사람들은 분수에 편안함이 좋다고 하지만 人言安分好일에 임해서는 말과 같지 않다네 臨事不如言낭당286)에 이르게 된 뒤에야 及到郞當後분수가 편안할 수 있음을 깊이 안다네 深知分可安백 번 참으며 가법을 보호해도 百忍保家法옛날에는 미진하다고 여겼네 昔謂未盡焉참는 것을 오히려 지금은 볼 수 없으니 忍猶今未見비로소 옛사람이 어렵게 여김을 알겠네 始識古人難을 집에 바둑 두는 사람은 어두웠으나 乙家當局暗태수가 곁에서 볼 땐 분명했네287) 太守傍觀淸얻기 어렵고 구하기 쉬운 이치는 難得易求理정녕 천명을 따르면 밝아지리라 定從天命明마음 알아주는 천륜의 친속은 知心天屬親예로부터 흔히 볼 수 없었네 從古不多覿쉬운 듯하나 도리어 어려우니 似易還復難궁구해도 얻지 못함을 늘 탄식하네 長嘆莫究得내가 들으니 필부의 뜻은 我聞匹夫志분육288)도 빼앗을 수 없다 하네 賁育莫能奪궁귀289) 때문에 바뀌었다면 如爲窮鬼移그 뜻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其志安足說옳고 그름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니 無是非非人원래 잠시도 버리는 것이 아니라네 元非暫棄者회우290)가 변고도 많은 날에 晦尤多故日육윤291)을 버렸다는 말 듣지 못했네 陸尹未聞舍큰 죄를 지으면 서로 버릴 수 있으나 大故可相棄놓아준다면 악역292)이라 말하리라 釋之謂惡逆이는 영원히 막아 끊을 일은 아니니 非玆永阻絶너무 각박한 것이 아니겠는가 無乃太爲刻 人言安分好, 臨事不如言.及到郞當後, 深知分可安.百忍保家法, 昔謂未盡焉.忍猶今未見, 始識古人難.乙家當局暗, 太守傍觀淸.難得易求理, 定從天命明.知心天屬親, 從古不多覿.似易還復難, 長嘆莫究得.我聞匹夫志, 賁育莫能奪.如爲窮鬼移, 其志安足說?無是非非人, 元非暫棄者.晦、尤多故日, 陸、尹未聞舍.大故可相棄, 釋之謂惡逆.非玆永阻絶, 無乃太爲刻. 낭당(郞當) 죄인을 묶는 쇠사슬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자기 논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승자박의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낭당(鋃鐺)'이라고도 한다. 을(乙)……분명했네 옛 속어에, "곁에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세심하고,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헷갈리게 된다.〔傍觀者審, 當局者迷.〕"라는 말이 있다. 분육(賁育) 전국(戰國) 시대 제(齊)나라의 용사인 맹분(孟賁)과 주(周)나라의 역사(力士)인 하육(夏育)의 병칭이다. 맹분은 맨손으로 쇠뿔을 뽑았고, 하육은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한(漢)나라의 충신 급암(汲黯)의 절의(節義)를 칭송하면서 "스스로 분육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뜻을 뺏을 수 없을 것이다.[雖自謂賁育, 弗能奪也.]"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汲黯傳》 궁귀(窮鬼)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송궁문(送窮文)에서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를 내쫓으려다가 포기하고 그들을 상좌(上座)에 앉혔다는 말이 있다. 《古文眞寶 後集 送窮文》 회우(晦尤) 회암(晦菴) 주희(朱熹)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윤(陸尹) 육상산(陸象山, 1139~1192)과 윤증(尹拯, 1629~1714)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상산은 남송의 유학자 육구연(陸九淵)이다.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이고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관직에 올랐지만 곧 물러나 귀계(貴溪)의 상산에 강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주자(朱子)와 대립하여 전체를 양분하는 학문적 세력을 형성했지만, 사상적 계보로는 모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학문을 계승했다. 저서에 어록과 서간, 문집을 수록한 《상산선생전집》이 있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ㆍ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윤증(尹拯)이 부친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을 스승 송시열에게 부탁하였는데, 송시열이 윤선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묘갈명을 소홀하게 지은 일로 인하여 스승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종국에는 배사(背師)하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서인(西人)이 송시열을 두둔하는 노론과 윤증을 두둔하는 소론으로 분열되어 싸우게 되었다. 악역(惡逆) 부모 또는 조부모 등을 구타하거나 죽인 죄로,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 큰 죄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죄이다. 열 가지 큰 죄는 모반(謀反)ㆍ모대역(謀大逆)ㆍ모반(謀叛)ㆍ악역(惡逆)ㆍ부도(不道)ㆍ대불경(大不敬)ㆍ불효(不孝)ㆍ불목(不睦)ㆍ불의(不義)ㆍ내란(內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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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의 자에 대한 설 朴元實字說 정(鼎)이라는 그릇은, 귀[耳]는 양의(兩儀 음양(陰陽))를 본뜨고 발[足]은 삼덕(三德)132)을 본떴으며 몸체는 오행(五行)을 두루 갖추고 담긴 물건은 구주(九州)에 응하고 바탕은 금옥(金玉)의 자질을 갖추었으며 의리는 화덕(火德)과 풍덕(風德)을 나타낸다. 성인(聖人)이 만들고 종자(宗子)가 주관하니, 이것은 그릇 가운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안에 채우고 있는 것이 조강(糟糠 지게미나 쌀겨), 소려(蔬糲 궂은쌀로 지은 밥) 같이 추잡하고 열악한 물건이라면 저구(苴屨 풀로 엮은 신발)에 장보(章甫)를 갖추고 토우(土偶 흙으로 빚은 인형)에 화려한 예복(禮服)을 입히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모름지기 명자(明粢)와 향기(香萁)133)로 밥을 짓고 양[柔毛]과 돼지[剛鬣]로 음식을 마련하고 다섯 가지 훈채(葷菜)와 여덟 가지의 조리법으로 맛을 조절한 다음에야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134)는 뜻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상(法象)을 갖춘 지극히 귀한 기물(器物)에 이렇게 진귀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음식을 담으면 장차 천신 지기(天神地祇)에게 바치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 상제(上帝)와 선왕(先王)을 흠향하며, 흠향하여 드신 뒤의 은택이 천하에 미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주역》에서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라는 말 다음에 "가는 곳을 삼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 까닭이다.아, 사람의 몸은 정(鼎)이라는 기물이며 도덕과 재업(才業)은 그 내용물이며, 군주의 신임을 얻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것은 가는 곳이다. 박군(朴君)은 그것을 아는가? 박군 정현(朴君鼎鉉)이 원실(元實)을 자(字)로 삼았으니 그 뜻을 대체로 여기에서 취하였지만 나아가는 곳을 삼가는 뜻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가 이 내용을 적어 보충한다. 힘쓰거라! 鼎之爲器也。耳象兩儀。足象三德。體周五行。物應九州。質具金玉。義著火風。聖人制之。宗子主之。此器之貴重者也。然其實於中者。若有糟糠蔬糲鹿雜劣惡之物。則其不類於章甫之苴屨。華袞之土偶乎。須以明粢香萁。供其炊爨。柔毛剛鬣。具其烹飪。五葷八珍。調其旨否。然後可以副羲經鼎有實之義也。以此法象至貴之器。具此珍重至美之饍。則將以薦之郊社。奠之宗廟。以享上帝先王。而其餕餘之澤。足以及於天下矣。此羲經所以鼎有實之下。有愼所之之語也。嗚呼。人之身。其鼎器也。道德才業。有其實也。得君澤民。其所之也。朴君知之乎。朴君鼎鉉表德以元實。其意蓋取諸此。而於愼所之之義有不及。故謹書此以足之。勉旃勉旃。 삼덕(三德)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이른다. 《서경》 〈홍범(洪範)〉에 "삼덕은 첫 번째는 정직함이요, 두 번째는 강으로 다스림이요, 세 번째는 유로 다스림이다."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은 위엄을 보이고 복을 주며, 주고 빼앗으며, 억제하고 드날리며, 올리고 물리치는 쓰임이다."라고 하였다. 명자(明粢)와 향기(香萁) 명자(明粢)는 종묘(宗廟)의 제사에 바치는 깨끗한 기장이고, 향기(香萁)는 제사에 쓰이는 기장이다. 《禮記 曲禮 下》 《周禮 春官 大祝》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 《주역》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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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의 자에 대한 설 鄭元卿字說 원(元)은 모든 선(善) 가운데 으뜸이다.124) 하늘에 있어서는 큰 시작의 뜻[義]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온전히 하는 덕이다. 이것은 모든 변화의 중심이고 만물의 시초이며 무극(無極)의 은미함에 근원을 두고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마음의 은밀한 곳에 쌓여서 사물의 밖에 드러난다. 공자(孔子)가 이른 천지의 큰 덕125)이고 맹자(孟子)가 이른 하늘의 높은 작위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126)이다. 책을 읽고 경적(經籍)을 연찬(硏鑽)하는 것은 이 이치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고, 놓친 마음을 수습하고 마음을 일깨우는 것은 이 마음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치가 분명하면 취사(取捨)가 어긋나지 않고 마음이 보존되면 운용(運用)이 어지럽지 않다. 오랜 시일에 걸쳐 익숙해지고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하늘이 부여한 큰 덕과 높은 지위가 나에게 다시 온전할 수 있다.정군 현춘(鄭君鉉春) 원경(元卿)은 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의 맏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초례(醮禮)를 치르고 이름을 지을 때 '춘(春)' 자로 이름을 정하고 '원(元)' 자로 자(字)를 지은 것은 커다란 의리(義理)와 커다란 부담을 자신의 임무로 책임 지우고자 함이었다. 무궁한 애정과 면려의 뜻이 참으로 이와 같았다.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더라도 또한 그의 아버지와 벗인 사람이다. 연연(戀戀)하는 정이 아들을 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유독 그 뜻을 밝혀주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경은 밤낮으로 경계(警戒)하여 명명(命名)한 이 뜻을 저버리지 말라. 元者善之長也。在天爲大始之義在人爲全心之德。此是萬化之機軸。品彙之權輿。原乎無極之微。而塞乎天地之間。蘊乎方寸之密。而著乎事物之表。孔子所謂天地之大德。孟子所謂天之尊爵。人之安宅。讀書窮經。所以明此理也。收放喚惺。所以存此心也。理明而取舍不差。心存而運用不亂。久久積習。無容間斷。則天之所以賦畀者。大德尊爵。可以復全於我矣。鄭君鉉春元卿。艾山翁主器也。竊念其設醮而肇錫也。名之以春。字之以元。使大義理大擔負。責之爲己任。其無窮愛勉之意。固應如此。余雖無似。亦其父友之一也。戀戀視猶之地。獨不爲之發明其義以爲萬一之助乎。惟元卿夙夜惕厲。毋負此命名之義焉。 원(元)은……으뜸이다 《주역(周易)》 〈건괘 문언(乾卦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대덕(大德)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라고 하였다. 하늘의……편안한 집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인은 하늘의 높은 작위이고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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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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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42년 김재상(金載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寅二月 日 金載相 城主 壬寅二月 日 1842 金載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6.5*6.5(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2년(헌종 8) 2월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하리에 사는 김재상이 부안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1842년(헌종 8) 2월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하리(堂北下里)에 사는 김재상(金載相)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산송 소지(山訟所志)이다. 김재상은 일도면 중방리(中方里)의 서쪽 기슭에 친산(親山)이 있어서 여러 해 동안 관리해 왔으며, 이곳에 다른 사람이 무덤을 쓴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지난 해 12월에 그 친산의 섬돌 바로 아래 쪽에 누군가가 밤을 틈타 몰래 투장을 하고는 소나무와 향목을 마구 베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김재상은 밤낮으로 투장자를 물색하였지만 그 종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관에 소지를 올려 부디 관에서 투총을 파내어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안현감은 투장자를 잡아오면 대질 심문하겠다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김재상은 그 뒤에도 같은 내용의 소지를 올렸으나 관으로부터 관굴(官掘)은 법에 저촉된다는 제사를 받았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임인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재상이 여러 차례 시장(柴場)을 사면서 받은 명문(明文)들이 전하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의 임인년을 1842년으로 추정하였다. (1815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1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4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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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一道面堂北下里化民金載相右謹言至寃情由段近來偸葬者雖云許多而豈有甚於如此拶逼者乎民之先山在於中方里西麓累世繼葬守護矣今月初旬間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親山階砌下不容尺之地而斫伐香木與播松豈有如此切迫者乎民罔夜搜探是乎矣永無形迹故不獲已掘漑計料以待偸葬者之自現緣由仰訴 處分行下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辛丑十二月 日官(署押)(題辭)塚主搜覓以待本官還衙更訴事二十七日[官印][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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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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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1년 김채상(金彩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亥二月 日 金彩相 城主 辛亥二月 日 1851 金彩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6.5*6.5(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1년(철종 2) 2월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하리에 사는 김채상이 부안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1851년(철종 2) 2월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하리(堂北下里)에 사는 김채상(金彩相)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산송 소지(山訟所志)이다. 그는 지난달 우산내면(右山內面) 서두리(西斗里)의 뒷산 기슭을 같은 면에 사는 최흥득(崔興得)으로부터 매입하였다. 그리고 소지를 올린 바로 오늘, 김채상이 산일을 하러 개토(開土)한 곳에 가 보니, 하서면(下西面) 해창리(海倉里)에 사는 김봉관(金奉寬)이란 자가 장정들과 부녀자들까지 포함하여 수십 명을 데리고 무덤을 쓰지 못하게 막고 식주인(食主人)까지 두들겨 패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김재상은 관련 수표(手標)를 첨부하여 관에 소지를 올려, 차사(差使)를 보내 이같은 폐단을 막고 산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관에서는 이에 대하여 최흥덕이 판 산의 경계와 김봉관이 산일을 막은 까닭을 적간(摘奸)하고 측량하여 그림을 그려서 보고하라고 면임(面任)과 동임(洞任)에게 지시하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해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채상이 '崇禎後丁卯', 즉 1867년(고종 4)에 최생원댁(崔生員宅)에 보낸 혼서(婚書)가 전하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의 신해년을 1851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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