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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을 익히며 習靜 근래 일을 줄이고 마음61) 단련하는데 邇來省事鍊靈臺앞으로 세월이 재촉함을 깨닫는다오 覺得前頭歲月催일찍이 손으로 현묘한 이치의 굴 찾으려다 曾擬手探玄理窟도리어 몸이 옛 종이 더미에 빠졌음을 탄식하네62) 却嘆身沒古紙堆곤궁과 현달은 모두 천명에 달렸음을 알겠고 定知窮達皆由命총명과 강단은 타고난 재주와 무관함을 믿네 須信明剛不係才고요함을 익혀 무미한 맛을 즐긴다면 習靜還耽無味味초연한 맛은 봉래산 오르는 것보다 낫네 超然勝似躡蓬萊 邇來省事鍊靈臺, 覺得前頭歲月催.曾擬手探玄理窟, 却嘆身沒古紙堆.定知窮達皆由命, 須信明剛不係才.習靜還耽無味味, 超然勝似躡蓬萊. 마음 원문의 '영대(靈臺)'로,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영대를 침입하지 못한다.[不可內於靈臺.]"라고 하였는데, 곽상(郭象)의 주(注)에 "영대는 마음이다.[靈臺者, 心也.]"라고 하였다. 몸이……탄식하네 이치는 깨우치지 못하고 책 속에만 빠져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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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를 얻은 날에 짓다 得孫日有題 오십년 만에 처음 손자를 보았으니 五十年來始見孫장남은 조금 늦어 차남이 먼저였네 長房稍晩次房先복성198)이 비추어 늦고 빠르게 응하니 福星照降應遲速조상의 음덕 남겨주시어 번성하겠구나 祖蔭遺來庶茂繁갑작스런 부와 융성은 실로 원치 않고 猝得富隆良匪願현효를 이룬다면야 다시 무얼 논하랴 但成賢孝復何論유가에서 석하의 고사199)가 전해오니 孔庭析荷傳故事너를 축원하는 깊은 마음 어찌 잊으랴 祝汝深心豈遽諼 五十年來始見孫, 長房稍晩次房先.福星照降應遲速, 祖蔭遺來庶茂繁.猝得富隆良匪願, 但成賢孝復何論.孔庭析荷傳故事, 祝汝深心豈遽諼. 복성 목성(木星)으로, 옛날에 목성을 세성(歲星)이라 불렀는데 이 별이 비치는 곳은 모두 복을 받는다 하여 복성(福星)이라 하였다. 유가에서 석하의 고사 원문의 '공정(孔庭)'은 공자(孔子)의 뜰인데, 유가(儒家)를 가리킨다. '석하(析荷)'는 아비가 쪼개놓은 장작을 아들이 지는 것으로 가업을 계승하는 것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7년 조에 "옛사람의 말에 '그 아비가 장작을 쪼개 놓았는데, 그 아들이 능히 짐 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其父析薪, 其子弗克負荷.]"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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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보여주다 示兒曹 감정이 타오르면 몸은 열 길의 연기에 빠지고 情熾身沈十丈煙욕심이 사라지면 마음은 드넓은 연못 같단다 慾消心似一泓淵성인과 광인 청류와 탁류가 얼마나 서로 멀더냐 聖狂淸濁何相遠공경과 방종200) 사이의 작은 차이에 있을 뿐 只在毫釐敬肆邊 情熾身沈十丈煙, 慾消心似一泓淵.聖狂淸濁何相遠, 只在毫釐敬肆邊. 공경과 방종[敬肆] 주돈이(周敦頤)가 말하기를 "군자는 성인의 도를 애써 수행하기 때문에 길하고, 소인은 이 도를 패역하기 때문에 흉하다.[君子修之吉, 小人悖之凶.]"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를 수행하는 것과 패역하는 것은 또한 '공경과 방종[敬肆]'에 달렸을 뿐이다. 공경하면 욕심이 적어져 이치가 밝아지고, 욕심이 적어지고 또 적어져서 없는 데 이르면 고요할 때는 마음이 비워지고 움직일 때는 곧아져서 성인을 배울 수 있다." 하였다. 《近思錄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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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심정 남은 터를 찾아서 친족 선조 매당공께서 그곳에서 휴양하였다. ○소재지는 고부군 오공동 동쪽 기슭에 있다. 過滌心亭遺墟【族先祖梅堂公休養之○所在古阜五公洞東麓】 매당공께서 어느 해에 이곳에 띳집 엮으셨나 梅老何年此結茅척심정 아래에는 물이 도도하게 흐르는구나 滌心亭下水滔滔윤오음과 기고봉133)은 글과 술로써 풍류 넉넉히 하고 梧峯文酒風流足김모재와 이일재134)의 문하에는 재주와 지혜 넘쳐나네 金李門庭才智豪초수도 오히려 정묘하고 뛰어난 기상 머금고 草水猶含精彩氣어룡은 응당 성과 이름의 고고함을 알겠지 魚龍應識姓名高빛바랜 옛 글씨가 벼랑 사이에 남아있어 蒼然古篆崖間在비에 씻기고 이끼 침범해도 사라지지 않았네 雨洗苔侵也不消 梅老何年此結茅?滌心亭下水滔滔.梧峯文酒風流足,金李門庭才智豪.草水猶含精彩氣,魚龍應識姓名高.蒼然古篆崖間在,雨洗苔侵也不消. 윤오음과 기고봉 오음(五陰) 윤두수(尹斗壽)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을 말한다. 김모재와 이일재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일재(一齋) 이항(李恒)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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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존58)【기일】에게 보냄 與柳聖存【基一】 북풍에 내리는 눈이 어찌 이리도 온 세상에 가득합니까. 곤궁하게 사방을 떠돌며 천신만고를 겪는다는 말이 귓전에 종종 들리지 않은 적이 없건만 서쪽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어 좋은 말로 위로하려고 한 지 오래였으니 종이를 앞에 두고 생각이 치닫자니 애타는 심정을 어찌 가누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남극(南極)에 노인성(老人星)이 있어 장수를 누리고 강녕(康寧)하시며 기쁜 얼굴빛으로 정성스럽게 살피는 효성이 끊임없이 생겨나리니 비록 기수(氣數)가 뒤죽박죽 어수선한 날일지라도 길상(吉祥)에 감응하여 반드시 옥 술잔에 담긴 울창주(鬱鬯酒)를 누릴 것입니다. 의림(義林)은 부모를 잃고 형제도 없어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처지입니다. 작년 가을에는 또 외아들마저 잃었으니 늘그막에 곤궁하고 외롭기가 또 형용하기조차 매우 어렵습니다. 그저 어린 손자 둘이 눈앞에서 자라는 것이 그럭저럭 나를 지탱하는 바탕일 뿐입니다. 아, 오늘의 화란은 누가 그 발단이 되었습니까. 터럭만큼의 차이로부터 점점 참모습에서 벗어나 겉모습은 올바르지만 속이 그릇되었고 겉으로는 선량(善良)하지만 안으로는 사악(邪惡)하여 사사로운 탐욕을 채우는 자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물리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갑자기 이기지도 못하고 화만 당하게 되며, 물리치지 않으면 정도(正道)가 매몰되어 사람이 장차 하나같이 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이 여기에 이르러 어찌하겠습니까. 《역(易)》에 이르기를, "거친 것을 포용해 주고, 황하(黃河)를 맨몸으로 건너는 용맹을 발휘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친 것을 포용해 주는 도량이 아니라면 이른바 황하를 건너는 것은 거칠고 조급하게 화를 내는 사사로움일 뿐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감동케 하여 정도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겠습니까. 대체도 옛날부터 신민(新民)의 도리 가운데 백성이 감동하여 정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그 효과가 깊지만, 두려워서 혁파하게 하는 것은 그 효과가 작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문정(門庭) 안과 종유(遊從)하는 곳에서 간혹 흠이 되는 말 한마디, 잘못된 일 하나가 있다면 더욱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조용히 경계하여 함께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이고 성급하게 배척하여 문정(門庭)을 세우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저 오늘날 동서남북으로 숨겨져 있는 화의 기미를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정맥(正脈)은 실로 벽계 선생(檗溪先生)59)에 의지하여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좌하(座下)께서는 또 애초에 벽계 선생의 적전(嫡傳)이시니 사문(斯文)과 세도(世道)에 대한 책임은 참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뒤로 수십 년 동안 음양(陰陽), 선악(善惡), 화이(華夷), 인수(人獸)에 관한 모든 분별에 대해서 눈을 부릅뜨고 담을 크게 펼쳐 큰 목소리로 외치지 않은 적이 없어 스스로 몸이 위기에 처하는 데 이르렀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조금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향배(向背)와 거취(去就)의 분별을 알아 급작스럽게 쇠락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제가 집사(執事)에게 평소에 일면식(一面識)도 없으면서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정분을 맺은 벗과 같을 뿐만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러나 사우(士友)들이 오가는 때 삼가 1, 2가지 일을 듣고서 계책이 지나치다는 염려를 이기지 못하여 감히 이렇게 언급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동기(同氣)가 담장 안에서 싸우면 업신여김을 막아내기가 어렵고,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쇠붙이를 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척사위정(斥邪衛正)의 급선무입니다. 평소에 의아스럽게 여겨 우러러 여쭈어야 하는 일이 어찌 한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심부름꾼을 번갈아 보내더라도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자 길이 서찰로 다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두루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北風雨雪。此何漫漫。顚沛流離。千辛萬苦。未嘗不種種於耳畔。而無人西歸。懷之以音久矣。臨紙馳想。曷任耿耿。伏惟南極有星。壽祿康寧。怡愉洞屬。生生烏已者。雖在氣數顚倒之日。而所以感召休祥。必有瑟瓚黃流之享。義林孤露終鮮。煢煢靡賴。至於昨秋。又折獨子。晩暮窮獨。又極難狀。只有稚孫二兒。藐藐在眼前。聊作支吾地耳。鳴乎。今日之禍。其作俑者誰也。毫釐之差。駸駸離眞。外是而內非。陽善而陰邪。以隮其貪欲之私者滔滔焉。然苟欲闢之則未必遽勝。而適以取禍。不之闢焉。則正道沈晦。而人將胥溺。志士仁人。至此奈何。易曰包荒。用憑河。夫非包荒之量。則所謂憑河者。不過爲暴戾狷忿之私而已。尙何望感其心而反於正哉。大抵自古新民之道。使之感而入者。其功深。使之畏而革者。其功淺。况在我門庭之內。遊從之地。而或有一言之疵。一事之失。尤宜含容包納從容規戒。使之爛熳同歸。切不可太露聲氣。遽加排擯。以立門庭也。彼東西南北爲今日伏線之禍者。豈不可戒乎。今日程朱正脈實賴檗溪先生。有不墜於地。而惟座下。又未始非其嫡傳。則斯文世道之責。固不可委之他人也。是以前後數十年間。凡於陰陽淑慝華夷人獸之分。無不明目張膽大聲長號。至於身觸危機。而所以抵死擔當者。不少已焉。使人人知有向背去就之分。而不至遽爾淪胥。此愚於執事無一面之雅。而區區慕悅。不啻爲金石之契也。但於士友之往還。竊聞有一二事。而不自勝其過計之慮。敢此及之。未知以爲何如。同氣鬩墻。難以禦侮。二人同心。可以斷金。此亦斥邪衛正之先務也。平日疑菀所可仰質者。何限。而非更僕可旣。非盈尺可罄。統惟照亮。 유성존(柳聖存) 성존은 유기일(柳基一, 1845~1904)의 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용계(龍溪)ㆍ용서(龍西)이다. 경기도 포천 출신이며, 조선 말기 학자이자 위정척사 운동가이다. 부친은 동지돈녕부사 문녕군(文寧君) 유병철(柳秉喆)이며,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벽계 선생(檗溪先生) 벽계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마을로, 벽계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난 이항로(李恒老, 1792~1868)를 가리킨다. 이항로의 초명은 광로(光老)이고, 자는 이술(而述)이며, 호는 화서(華西)이다.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1808년(순조8) 한성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포기한 채 향리에서 강학하여 최익현,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등을 길렀다. 동부승지, 공조 참판 등을 지냈다.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조선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로 꼽힌다.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화서집》,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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頃便 下書伏承伏慰間已有日伏未審侍中體候連衛萬安伏慕區區無任下誠外甥家嚴間作楸行姑未返次/歉歲行役實爲慮悶耳新禮漸迫凡百能無未備之歎幷憂若閑立故願進拜伏計而姑有不離之端則亦何不悶也餘聞便姑不備達己丑三月初二夜 外甥趙寫植拜大舅主前忙未上候伏悵悵(皮封)外舅主前 上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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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직【호원】에게 답함 答黃公直【浩源】 여러 조목에 대해 물은 것에서 조예의 일단을 볼 수 있네. 대저 문(文)과 질(質)은 비록 경중(輕重)과 본말(本末)의 구분이 있지만 과(過)와 불급(不及)이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네. 자공이 말한 '같다[猶]'는 것141)은 경중과 본말이 없는 것을 이름이요, 공자가 말한 '조화를 이룬다[彬彬]'142)고 한 것은 과와 불급을 두어서는 안 됨을 이르는 것이네. 형체가 있은 뒤에 기질지성이 있다는 말에서 이 형(形)자는 '기로서 형체를 이룬다.[氣以成形]'143)는 말의 '형(形)'자를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형상으로 드러난다.[事物形見]'144)는 말의 '형(形)'자의 의미가 아니네. '오랑캐에 처해서는 오랑캐에 맞게 행동한다.[素夷狄 行乎夷狄]'145)는 것은 소중랑이나 홍충선146) 같은 이가 이들이네. '소(素)'는 천명이니, 그렇다면 '행(行)'은 천명을 행한다는 의미이네. 천명과 인사(人事)는 그 실상은 같네. 그러나 어리석은 나의 말로 귀숙처를 삼지 말고 다시 그대 큰 형님에게 여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기(氣)가 리(理)를 따르면 참으로 기를 말할 필요가 없지만, 다만 리를 따르지 않는 곳에서 이에 기를 말하여 그 허물을 돌립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사람의 뜻을 따라 거스름이 없으면 말을 책망할 필요가 없지만 날뛰고 깨물며 뜻을 따르지 않게 되면 이에 채찍질을 하면서 탓을 하게 됩니다.답변 : 논한 바가 맞네. 다만 마지막 단락의 말은 뚜렷하지 않다네.질문 : 한 가지 이치와 만 가지 이치에서, 한 가지는 다만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 가지 이치를 거느려서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입니다. 만 가지는 각각 따로 만 가지가 아니라 한 이치를 나눠서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만 가지입니다. 비록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만 가지이고 비록 만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입니다.답변 : 한 가지는 참으로 한 가지이고, 만 가지는 참으로 만 가지이니, 어찌 다만 하나가 아닌 하나가 있으며, 각각 만 가지가 아닌 만 가지가 있겠는가. 다만 '비록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만 가지이고, 비록 만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란 말은 옳네.질문 : 리기는 먼저 리를 말하고, 물칙(物則)147)은 먼저 물(物)을 말하였습니다. 대개 리기는 만물이 탄생한 처음을 위주로 하여 위에서 위에서부터 아래를 말한 것이니, 이른바 순서대로 말한 것입니다. 물칙은 만물이 탄생한 이후를 위주로 하여 아래로부터 위를 말한 것이니, 이른바 도치하여 말한 것입니다.답변 : 옳네.질문 :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일러 주지 않는다."148)라 하였는데, '세 귀퉁이'는 아래 문장의 "내가 그 양쪽 실마리를 따져 빠짐없이 말해 줄 뿐이다."149)는 구절과 서로 상대가 됩니다. '세 모퉁이'는 '이미 말한 것을 미루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과 대략 같지 않습니까.답변 : 양쪽 실마리를 다 했다는 것은 성인이 사람을 위해 자세히 고하고 자세히 깨우쳤다는 의미이며, 세 모퉁이로 반증하였다는 것은 다만 문인을 위하여 학문에 나아가는 방법을 말한 것으로, 말이 각각 대상이 있네. 이미 말한 것을 미루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은 즉 세 모퉁이로 반증함을 이르는 것이네.질문 : "덕이 닦이지 못함과 ……"150)라는 말에서 위의 두 구에는 '능(能)'자가 없고 아래 두 구에는 '능(能)'자가 있습니다.답변 : 의를 옮기는 것과 허물을 고치는 것은 일을 행하는 실제에 나타나는 것이니 힘을 쓴다는 의미가 비교적 드러나네. 그러므로 '능(能)'자를 쓸 수 있으니, 능자는 힘을 갖춤이 되기 때문이네.질문 :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한다."'151)는 말은 맹자가 "오랫동안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았다."152)라 말한 뜻은 서로 같습니다.답변 :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한다."는 것과 "오랫동안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됨의 크고 작음은 서로 다르지만 밖으로 거짓되게 속인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네.질문 : 사단에는 절도에 맞지 않는 것과 절도에 맞는 것이 있는데, 맹자는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며, 절도에 맞는 것으로 다만 성품이 선한 것을 증명하였으니,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정(情)의 선한 것을 들어서 성이 선한 의미를 증명하였는데, 절도에 맞는 것이나 맞지 않는 것을 말할 겨를이 없었네. 俯問諸條。可見造詣一端。夫文質。雖有輕重本末之分。而不可使有過不及則均矣。子貢所謂猶。是無輕重本末之謂也。夫子所謂彬彬。是不可使有過不及之謂也。形而後有氣質之性。此形字。是氣以成形之形。非事物形見之形。素夷狄。行乎夷狄。如蘇中郞洪忠宣是也。素是天命。則行是行天命也。天命人事。其實則一也。然勿以瞽說爲歸宿。更稟於賢伯氏如何。氣順理。固不必言氣。特於不順理處。乃言氣以歸咎。譬如人乘馬行。馬從人意。無所違逆。則不必責馬。及其蹄齧不順。乃鞭策而執咎。所論得之。而但末段語句未瑩。一理萬里。一非單一。統萬里而言。則是一也。萬非各萬。分一理而言。則是萬也。雖一而實萬。雖萬而實一。一固一。萬固萬。豈有非單一之一。非各萬之萬乎。但雖一而實萬。雖萬而實一者。得之。理氣先言理。物則先言物。盖理氣。是主萬物有生之初。而自上說下。所謂正說物。則是主萬物有生之後。而自下說上。所謂倒說。是。不以三隅反則不復云。三隅下文。我叩其兩端竭焉句。相對。而三隅與告往知來。略有不同耶兩端竭。是聖人爲人申誥申諭之意也。三隅反。特爲門人而語進學之方也。語各有當也。告往知來。卽三隅反之謂。德之不修云云。上二句無能字。下二句有能字。徙義改過。是見於行事之實。而用力之意爲較著。故下能字。能字爲有力故也。居之不疑。如孟子之言久假而不歸之意。居之不疑。與久假不歸。大小雖殊而其僞飾於外。一也。四端有不中節中節。孟子不言不中節中節。但證性善而已。何也。擧情之善者。以證性善之義。中不中不暇言。 자공이 말한 같다는 것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 극자성(棘子成)이 말하기를, "군자는 질실하면 그만이지, 어찌 문식할 필요가 있겠는가。[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선생의 말이 군자답기는 하나, 실수한 것을 사마도 따라잡지 못하겠도다。문도 질과 같은 것이며, 질도 문과 같은 것이니, 범이나 표범의 털 벗긴 가죽은 개나 양의 털 벗긴 가죽과 같은 것이다。[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 猶犬羊之鞹也]"라 한 것을 가리킨다. 《論語 里仁》 공자가……이룬다 본바탕과 외양이 적절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군자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야(野)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니, 문과 질이 빈빈한 연후에 군자이니라.〔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기로서 형체를 이룬다 《중용장구》 제1장에서 주희가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경문을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하매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를 또한 부여한다.〔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 理亦賦焉〕"라고 해설하였다. 사물에 형상으로 드러난다 미상. 오랑캐에……행동한다 《중용장구》 제14장의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 하였다. 소중랑이나 홍충선 중랑은 한(漢) 나라 소무(蘇武)를 가리킨다. 그가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유폐되어, 눈과 전모(旃毛)를 씹으며 연명하였고, 북해(北海)로 옮겨진 뒤에는 들쥐와 풀 열매로 연명하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다. 홍 충선은 송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호(皓), 충선은 시호인데 금(金)에 사신으로 갔다가 15년간 유폐 당하였다. 물칙(物則) 《시경》 〈증민(蒸民)〉의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내실 적에, 누구나 하늘의 원리가 그 속에 깃들게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양심을 지니게 되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한 ……않는다 《논어》 〈술이(述而)〉에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일러 주지 않아야 한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則不復也〕"라고 하였다. 내가……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아는 것이 없다. 무식한 사람이 내게 물을 경우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쪽의 실마리를 따져 빠짐없이 말해 줄 뿐이다.〔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 하였다. 덕이 닦이지 못함과 《논어》 〈술이(述而)〉에 "덕이 닦이지 못함과 학문이 강습되지 못함과 의를 듣고 옮겨 실천하지 못함과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위선을……안주한다 《논어》 〈안연(顔淵)〉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자를 보면, 표면상으로는 인덕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행동은 딴판이요, 그런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하고 있는데, 그런 자들이 나라에서도 겉으로 이름이 나고 집에서도 이름이 나는 것이다.〔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요순은 인의(仁義)의 성품을 타고났고, 탕왕과 무왕은 몸에 익혔고, 춘추 오패는 차용하였다. 오래도록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으니, 어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겠는가.〔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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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言久阻悵耿之際先施惠函慰荷萬千可知不遐之情也謹詢老炎尙劇仕體萬旺閤覃均謐仰溸且祝客年弄璋之慶仰賀仰賀罪弟頑命苟支而扶餘安候頻頻承珍新寓凡百萬不成樣可悶可悶第貴邊農形似未免歉而此近亦可謂大無到處皆然樣將奈何咄嘆之餘略此不備謝疏七月七日罪弟金敎彬謝疏再昨日過行先舍伯回甲茶禮悲感之懷益深如新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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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十二月初二日 前手標右標事切有緊用處右人前債錢拾參兩伍戔每朔五分例得用而限明年閏十月晦內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憑考事標主 金錫允[着名]證保筆 朴執仲[着名]此亦中一年利条六兩七戔五分除之成手標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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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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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荊願久切而菊香愈邈恒切瞻誦料表卽承惠狀謹審霜令侍餘制候連護万重閤節均得安旺區區慰祝實愜遠忱弟姑依劣狀而家季間以惡痘連尺男女毒感若此慘禍不忍說道當之者何以堪耐十起餘痛久愈難抑也令王考丈道狀間果行査否營中似可入量只自黯自黯祝手耳十筆之惠以若布衣之權何能辦此優數耶謹領珎感而還切不安明春或有慶科云伊時有戾洛期否豫爲顯望餘留不備謝禮己巳十月八日弟安橓拜(皮封)金碩士 朞服座前回納觀峴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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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西道秩再字畓五斗落所耕九卜三束庫果同字一斗落所耕一負五束庫乙幷以相換次加錢參兩備給而以新旧文二丈右人前永永相換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憑考爲乎事畓主幼學金炳憲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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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後間因德裕兄弟便槪聞平安信息而謹問凉節體上万衛神護仰溯區區不勝憧憧記下長夏以來身家不健悶事悶事就所托事今十五日陵幸爲之而却令李台載元當之矣間蒙快諾小無念慮須卽見此書上來如何此果自家事也卽刻戾洛然後似免窘速也諒爲之似好德裕伯氏定配事令人快闊而其子之初解尤喜餘在奉拜不備禮甲子八月初九記下安榏拜拜(皮封)扶安 安洞候書金碩士 炳憲 宅 入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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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望金太平本院秋享亞獻官乙卯八月二十二日道溪書院[道溪書院之印](皮封)望帖 道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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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형【남헌】에게 답함 答李乃亨【南憲】 어여쁜 댕기머리가 이따금 심목(心目)간에 오가니, 이는 인정상 참으로 당연한 것이네. 편지가 도착하니, 이에 부모를 모시면서 학문하는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부탁하고 싶던 바이네. 별지의 여러 조목에서 책을 읽으면서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차분히 살펴보면, 너의 재성(才性)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의향이 좋지 않음은 아니지만, 다만 몸가짐하는 방법에 깊이 힘을 쏟지 않으니, 이는 하찮은 일이 아니네. 만약 몸가짐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지 않고서 위로 향하는 공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는 비유하자면 모래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어찌 성공할 이치가 있겠는가. 절대로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하네. 별지의 물음에 대해 나의 생각을 대략 답하였으니, 보고서 세 번 더 생각하여 올바른 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예의를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자포(自暴)라고 이르고, 내 몸이 인에 거하고 의를 말미암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155)라고 하였는데, 자포는 예의에 대해 말하고 자기는 인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따로 해당한 바가 있습니까.답변 : 자포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예의가 일을 행함에 드러난 것으로 말하였고, 자기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인의(仁義) 체용(體用)의 실상을 겸하여 들어서 말하였네.질문 : 〈격군심장(格君心章)〉156)에서 먼저 사람 기용의 잘못을 말한 뒤에 정사의 잘못을 말하였는데, 사람 기용의 잘못이 있은 뒤에 정사의 실수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정자의 주에서는 먼저 정사의 실수를 말하고 뒤에 사람 기용의 실수를 말하였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사람을 기용하는 것은 정사를 행함에 중대한 일이니 그러므로 맹자는 그 중대한 것을 먼저 말하였고, 정사의 잘못은 사람 기용의 잘못에서 많이 일어나니 그러므로 정자는 먼저 그 많은 것을 말하였네.질문 : 〈감문우장(敢問友章)〉157)에서 '백승(百乘)의 집' 이하의 여러 내용들은 다만 귀함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니, 귀함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당시에 가장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급한 것입니다. 이른바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으며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것은 모두 이런 부류를 미뤄 넓힌 것입니까.답변 : 이 장은 임금이 선비를 대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니,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거나 형제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 어찌 이에 들어가겠는가.질문 : 선악을 말할 때 모두 선을 먼저하고 악을 뒤로하며, 길흉을 말할 때 모두 길을 먼저하고 흉을 뒤로하며, 시비를 말할 때 모두 시를 먼저하고 비를 뒤로하는데, 사정(邪正)을 말할 때는 사를 먼저하고 정을 뒤로하니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주역》에서 "사특함을 막아 그 성을 보존하다."158)라고 하였는데, 사정이라 이르는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네.질문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해도 평안하고 안정되지 않습니다.……답변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지 않으면 초학자가 어찌 공부를 착수할 곳이 있겠는가.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면 오래 되어 저절로 평안하고 안정됨이 있을 것이네。또한 '마음을 기울인다.[着意]'는 두 글자에 대해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하니, 이미 거짓으로 꾸며서 좋게 보이려는 뜻이 없고 또한 남을 모방하면서 책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대는 뜻이 없다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만약 마음을 기울여 힘쓰지 않고서 앉아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네. 깊이 생각해보게나. 婉孌丱角。種種往來於心目間。此人情乏所固然。書來。仍諳侍傍學履佳迪。尤協願言。別紙諸條。可見讀書不放過。不然。安能會疑如此也。竊覵汝之才性。非不佳矣。意向非不好矣。但於持身之方。不甚着力。此非細故。若不持身端莊。而求向上之功。比如炊沙作飯。豈有有成之理。切宜識之。別紙。謹以鄙意略略答去。覽加三思。歸於稱停如何。言非禮義。謂之自暴。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自暴言禮義。自棄言仁義。別有所當耶。以自暴者言。故特以禮儀之著於行事者而言。以自棄者言。故兼擧其仁義體用之實而言。格君心章。先言用人之非然。後言政事之失。有用人之非然後。有政事之失故耶。程子註。先言政事之失。後言用人之非。何耶。用人大於行政。故孟子先言其大者。政事之失。多於用人之非。故程子先言其多者。敢問友章。百乘之家以下諸條。特言不挾貴。挾貴是當時最甚。故言之。所謂不挾長不挾兄弟。皆可類推耶。此章主言人君待士之道。挾長挾兄弟。何有於此。言善惡。皆先善而後惡。言吉凶。皆先吉而後凶。言是非。皆先是而後非。言邪正。反先邪而後正。何也。易曰閑邪存其誠。邪正之云。恐出於此。着意檢束。不得安帖云云。不着意檢束。則初學將安有下手處。着意檢束。久自有安帖處。且着急二字。儘有商量。旣無矯飾要好之意。又無依樣塞責之意。則着意何妨。若不着意勉强。而坐待其入聖。此妄人而已。念之念之。 예의를……한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보이는 말이다. 격군심장((格君心章)) 《맹자》 〈이루 상(離婁上)〉의 "등용한 인물을 군주와 더불어 일일이 다 허물할 수 없으며 잘못된 정사를 일일이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임금이 인(仁)해지면 모든 일이 인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임금이 의로워지면 모든 일이 의롭지 않음이 없게 되며 임금이 바르게 되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된다. 임금의 마음을 한 번 바루면 나라가 안정된다.〔人不足與適也 政不足間也 惟大人爲能格君心之非 君仁 莫不仁 君義 莫不義 君正 莫不正 一正君而國定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감문우장(敢問友章)〉 맹자의 제자 만장(萬章)이 벗에 대해 묻자, 맹자가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귀하다는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한다. 벗함은 덕(德)을 벗하는 것이니, 배경으로 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라고 대답하였다。이후로 그 실례를 들어 논의를 이끌어 가는데, 백승지가(百乘之家)인 맹헌자(孟獻子)와 작은 나라 임금인 비혜공(費惠公)과 큰 나라 임금인 진평공(晉平公)의 예를 들고 있다. 사특함을……보존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이(九二) 문언(文言)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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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25)에게 보냄 與鄭厚允 방장산(方丈山)에서 헤어진 뒤 두 해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형의 체후(體候)는 동정(動靜)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농사가 풍년이니 영남도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흉년이 거듭된 뒤라 위로가 될만할 듯하지만 시국이 이처럼 소란스러우니 앞으로 편안히 앉아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문(同門)의 옛 친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남아 있는 이가 이제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노쇠하여 수백 리 먼 곳에 떨어져 지내느라 서로 소식도 접하지 못하고 어려움에도 서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번 머리를 들어 동쪽을 바라볼 때마다 커다란 탄식을 이기지 못할 따름입니다. 면우(俛宇)26)가 세상에 나갔을 때 형도 더불어 나아갔으니 시사(時事)는 과연 어떤지, 처하는 곳은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늘 소식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아, 눈앞에 닥친 시색(時色)이 진펄에서 위태로움을 기다리고27) 칼이 살갗에 이른28) 듯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에 와서 절실합니다만 그럴 수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형은 근년에 산재(山齋)에 머무르셨습니까, 계정(溪亭)에 머무르셨습니까? 만년에 성정(性情)을 함양하는 운치, 영재를 키우는 즐거움이 작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난가을에 계획했다가 이루지 못한 호남행은 올가을에 다시 도모하시는지요? 저는 해마다 묶여 있는 채 벗어날 수 없어 상황이 고달프기만 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날개(새)가 앞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정(咏亭)에 기와를 얹는 일을 마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경비를 아직도 갚지 못하여 매번 이것이 근심이었습니다. 일전에 송사(松沙)29)의 편지를 받았더니 가족을 데리고 금계산(金雞山)으로 들어갈 생각이며 금계산은 옥과(玉果)와 담양(潭陽) 등에 걸쳐있다고 합니다. 연간에 황생 철원(黃生澈源)30)과 의견을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대체로 황생은 "영(靈)은 묘용(妙用)을 주재(主宰)하지 못하고 묘용을 주재하는 것은 신(神)이다. 영은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지 못하고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우는 이르기를, "이와 같다면 영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이(理)는 작용(作用)과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대체로 심(心)은 원래 허령(虛靈)한 것이고 허령한 것은 본래 오묘하게 합합니다. 이 때문에 당체(當體)로 보자면 기(氣)라고 하고 본체(本體)로 보자면 이(理)라 하고 묘처(妙處)로 보자면 신(神)이라고 합니다. 신(神)과 영(靈)이 어찌 일찍이 별도의 방향이나 처소가 있고 별도로 시기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황생은 여전히 그렇다고 믿지 않으니 또 제 견해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형께서 상세히 분변하여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체로 심(心)은 기(氣)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 진실로 각각 한 쪽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다만 기(氣)를 위주로 말하는 오늘날에는 그러한 주장을 바로잡을 근거를 도리(道理)의 측면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사(先師)께서 '정상(精爽)은 피상적인 것이다.'31)라고 말씀하신 까닭이고, 노형(老兄)이 '기(氣)를 자조(資助 돕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황생의 견해는 대체로 여기에 근원을 두면서도 지나쳐 이렇게 허령한 것은 심(心)이 아니라는 말까지 하였으니 옳겠습니까. 삼가 기억하건대 요 몇 해 사이에 형께서 황생에게 편지를 보내서 "묘용(妙用)의 운행과 정영(精英)의 발현이 곧 이른바 심(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제 생각에는 매번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묘용의 운행이 비록 이(理)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정영(精英)을 포괄하고 있으니 하단에 별도로 정영을 말하여 짝지은 것은 지나친 췌언(贅言)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理)만 말하고 정영은 간여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른바 이(理)는 작용(作用)으로 귀결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기자이(機自爾 기(機) 자체의 작용)라고 말하고 이어서 이승(理乘 이가 기를 타고 주재하는 것)의 의리를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듯합니다. 지난번에 면우(俛宇)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보았더니 간간이 지나치게 이(理)를 위주로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혼자 제멋대로 개탄하기를, "나에게 있는 도가 대공지정(大公至正)하더라도 한 번 전해지고 두 번 전해지다 보면 착오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나에게 있는 것이 먼저 잘못되었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후학들에게 이와 같은 폐단이 결코 없으리라는 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方丈一別。星霜再周。未審秋高。兄體動止何似。年形得稔。想嶺中如之耶。荐凶之餘。有若可慰。而時騷如此。未知前頭可以安坐飽喫否也。同門舊契。零星餘存。見無幾人。而又皆衰老。相滯於落落數百里之遠。音聞不相接。痛癢不相關。每矯首東望。不勝浩歎而已。俛宇之出。兄與同升。未知其時事果何如而所處又何如。遠未相悉。每切願聞。嗚乎。目前時色。如需之至泥。如剝之到膚。惠好同歸之思於斯爲切。而不可得。奈何奈何。兄近年住着在山齋乎溪亭乎。晩年恬養之趣。英育之樂。想有不淺淺者矣。前秋所營湖行而未就者。更於今秋圖之耶。弟年年絆已。出脫不得苦況苦況。未知縶籠之翼。其將有任意翶翔之日乎。咏亭蓋瓦了已有年。而債費尙未了刷。每以爲悶曰。前得松沙書。有絜家入金雞山中之意。山在玉果潭陽等地云耳。年間與黃生澈源有所論說者。蓋黃生以爲靈不能主宰妙用。而主宰妙用者。神也。靈不能具衆理應萬事。而具衆理應萬事者。神也。弟以爲如此。則靈爲無用之長物。理爲作用之別事。夫心合下是虛靈底。虛靈合下是妙合。是以以其當體則謂之氣。以其本體則謂之理。以其妙處則謂之神。神與靈。曷嘗是別有方所別有時節者哉云云。而黃生猶不信之然。又安知鄙見不有差誤處耶。願兄詳辨以示之也。大抵心有以氣言者。有以理言者。固不可各執一邊與之嘵嘵也。但在今世主氣之日。而所以捄之者。不得不於道理上加詳焉。此先師所以有精爽皮殼之語。老兄所以有氣爲資助之說。黃生之見。蓋源於此而過之。至爲此虛靈非心之語者。可乎。竊記頃年兄與黃生書。有曰妙用之行。精英之發。卽所謂心。此語於鄙意。每不能無疑。妙用之行。雖是理。而包精英在其中。下段別言精英以配之。不已贅乎。若曰專言其理。而精英無與云爾。則所謂理者。不其歸乎作用乎。此與說其機自爾。而繼言理乘之義。恐無異矣。曩見俛宇與人書。間間有主理太過處。私竊慨嘆。以爲道之在我。大公至正。而一傳再傳。猶不無差失。況在於我者。已不免先有差失乎。此後學之敝。不可保其必無也。如何如何。 정후윤(鄭厚允)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또 다른 자는 영오(英五)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 애산(艾山), 물계(勿溪)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정방훈(鄭邦勳)의 아들로 1864년(고종1) 경상도 합천에서 전라남도 장성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제자로는 정면규(鄭冕圭), 권운환(權雲煥) 등이 있으며, 합천 경덕사(景德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 《노백헌집(老柏軒集)》 49권이 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호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명원(明遠)으로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이다. 25세 때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3년 통정대부, 비서원 승에 제수되었고 저서로는 《면우문집(俛宇文集)》이 있다. 진펄에서 위험을 기다리고 《주역》 〈수괘(需卦) 초구(初九)〉에 "먼 들녘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이(九二)〉에 "모래밭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삼(九三)〉에 "진펄에서 기다린다."라고 하여, 점점 험난한 지역에 접근함으로써 위험에 빠지게 됨을 비유하였다. 칼이 피부에 이른 《주역》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니 흉하다."라고 하고, 그 상전(象傳)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는 것은 재앙이 매우 가까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2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가학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95년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저항하였다. 황생 철원(黃生澈源)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綾州) 운곡(雲谷)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이고 자는 경함(景涵)이며 호는 중헌(重軒), 은구재(隱求齋)이다. 정상(精爽)은……것이다 《노사집(蘆沙集)》 권6 〈답박형수(答朴瑩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호흡(呼吸)의 나가고 들어옴, 영위(榮衛)의 오르고 내림이 모두 이 기(氣)입니다. 반드시 '기(氣)' 자 아래에다 '정상(精爽)'이란 글자를 붙여야 '심(心)' 자의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정상'이란 글자도 피상적인 설명에 불과합니다.【就人身而言, 噓吸之出入, 榮衛之陞降, 皆是物也. 必氣字下, 著精爽字, 方說入心字境界.然精爽亦是皮殼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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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보냄 與鄭厚允 연전의 편지에 대해서 인편(人便)이 없어서 오랫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형의 체후(體候)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울분에 차 있고 감정이 격앙되어 여지가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때문에 몸이 손상되지 않기만 바랍니다. 먼 곳에서 걱정스러운 마음만 절실합니다. 아우는 지난여름 초에는 손자며느리의 상을 치르고 겨울 초입에는 집사람의 상을 치렀습니다. 1년 안에 질병과 시름이 거의 거르는 날이 없었으며 뒤이어 신병(身病)으로 여러 달에 걸쳐 고통을 겪고 있건만 아직도 이렇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제 상황이 참으로 의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말하지 않으니만 못하니 모두 그만두겠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형이 찬술한 〈기의(記疑)〉32)는, 해박하고 적합하며 정밀하고 상세하며 명백하고 강직한 것을 보니 선사(先師)의 지결(旨訣)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일세의 몽매한 자들을 깨우치게 하신 것이 참으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아, 오늘날의 성안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한쪽 사람들이 본다면 세 치 혀가 있더라도 다시 무슨 말로 형을 힐난하겠습니까. 한쪽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아우처럼 오래도록 고심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던 자일지라도 안개가 걷히듯 확연해지니 어찌 위안이 되고 다행스럽지 않겠습니까. 다만 시대의 조짐이 이와 같고 육신의 쇠함이 이와 같으니 강론과 토론의 자리에서 자주 뵙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쭙고자 하는 한 가지 조목이 있습니다. 심(心)은 분명히 이(理)이고 영(靈)은 그 본지(本旨)입니다. 만약 영(靈)을 자조(資助)로 여긴다면 본지에 대해서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조목에 "성정(性情) 이외에는 다시 따로 심(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아마도 지나칠 정도로 명쾌하게 말씀하신 듯합니다. '인으로 사랑하고 예로 공경하고'33)에서 이 '이(以)' 자는 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쌓인 회포가 가득하지만 종이에 세세하게 다 늘어놓을 수 없으니 그저 서글픔만 절실합니다. 어느 때가 되어야 한자리에 같이 앉아 이 마음을 펼치게 될까요? 농산(農山)34) 형은 근래 안부가 어떠십니까? 겨를이 없어 아직 안부를 묻지 못하였더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年前書。無便未復久矣。未審兄體何似。憂憤慷慨。想無餘地。幸不以此致損否。遠外馳慮。徒切下情。弟去夏初哭孫婦。冬初哭室人。一年之內。疾病憂戚。殆無間日而繼以薪憂。數朔叫苦。尙此不退。殘年身況。誠難聊賴。時象不如不言。都閣之。兄所述記疑。荷此俯示。見其該洽精詳明白截直。使先師旨訣足以不墜於地。而開一世之瞽蒙者。甚不偶爾也。嗚乎誰知今日域中。有此等文字乎。使一邊之人見之。雖有喙三尺。更有何言相詰乎。不惟警一邊之人。雖如弟而宿苦疑菀。確然霧除。曷不慰幸。但時氛如此。身衰如此。未能源源於講討之末也。然有一節奉質者。心固理也。而靈其本旨也。若以靈爲資助。則其於本旨。果何如也。目曰。性情之外。更別無心。此等處。恐或不爲發之太快耶。以仁愛。以禮敬。此以字。非心之謂耶。積懷滿腔。不能縷悉臨紙只切悵恨。何時合席。以敍此意。農山兄近節何如。忙未修候。不安不安。 기의(記疑) 《노백헌선생문집(老栢軒先生文集)》 권28 〈잡저(雜著)〉 '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을 가리키는 듯하다. 전우(田愚)가 기정진의 〈납량사의(納涼私議)〉와 〈외필(猥筆)〉에 대한 변론을 지어 유포하자, 이에 대해 변무하는 글을 지어 기정진이 주리론의 입장에서 이이의 학설을 계승 보완하였음을 밝힌 글이다. 인으로……공경하고 《회암집(晦菴集)》 권67 〈잡저(雜著)〉 '원형이정설(元亨利貞說)'에 나오는 말이다.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은 성(性)이고, 생(生)하고 장(長)하고 수(收)하고 장(藏)하는 것은 정(情)이며, 원(元)으로 생(生)하고 형(亨)으로 장(長)하고 이(利)로 수(收)하고 정(貞)으로 장(藏)하는 것은 심(心)이다.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는 성(性)이고, 측은과 수오와 사양과 시비는 정(情)이며, 인(仁)으로 애(愛)하고 의(義)로 오(惡)하고 예(禮)로 양(讓)하고 지(智)로 지(知)하는 것은 심(心)이다.【元亨利貞性也, 生長收藏情也, 以元生以亨長以利收以貞藏者, 心也. 仁義禮智性也, 惻隱羞惡辭讓是非情也, 以仁愛以義惡以禮讓以智知者, 心也.】" 농산(農山) 정면규(鄭冕圭, 1850~1916)의 호(號)이며 정면규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사촌형인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의 문인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을 방문하여 충남 노성(魯城)에서 의거(義擧)를 계획하였으나 외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곽종석(郭鍾錫), 허유(許愈),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조성가(趙性家), 권병구(權秉球) 등과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저서로는 《농산문집(農山文集)》 15권 8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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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四年甲午四月十四日金順弼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年年耕食是如可妻喪債急急故勢不得已西十作悚字畓五斗落只所耕七[負]五[束]㐣折價文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三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之獘則以次文記告 官卞呈事畓主 朴春實[着名]訂筆 尹龍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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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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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再昨惠復拜悉又新惠如對淸儀卽拜審刻下仕候萬重仰賀仰賀弟狀公擾甚苦家憂連綿何歎如之示來民藉謄本依敎仰呈考覽而所謂担任面書記自陰正月以來久日缺勤金正成入家申告爲未整理於籍簿以玆老眼亦昧於處理且考入家申告與京城府民籍謄本而入家者與入家戶主間昭穆未詳執筆躊躇不得已以愚見所到登載於民籍後謄送者也詳覽後如有妄記處卽爲返送而其誤謬處指的示之如何如何旣已處理則京城府尹殿餘籍通知待担任書記出勤後使卽手續發付計料以此諒之如何如何餘不備謝上庚元月卄七日弟辛圭錫拜謝朝者出面時家兒更爲專送矣所懇事何以另念否雖有千萬難處之端拔例期施切企切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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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35)【우만】에게 보냄 與奇會一【宇萬】 늦봄에 복중(服中)의 체후36)가 우위(友衛)하시다니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 우제(虞祭)37)와 부제(祔祭)38), 그리고 졸곡(卒哭)39)이 차례대로 지나갔습니다. 아, 우리 선생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은 세월이 어느덧 지금에 이르렀습니까. 화창한 바람과 밝은 달40) 같은 모슷ㅂ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면봉산(面凰山)의 새 무덤에는 이미 풀빛이 푸르릅니다. 애처롭게 남아 있는 이 목숨은 어리석기만 하니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아우는 정성이 깊지 못하고 형편에 구애받아 움막을 짓고 궤연을 모시지41) 못하고 급하게 되돌아와 내 집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으니 이것이 한결같이 섬기는 도리42)이겠습니까. 아, 선생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고, 선생의 도를 실추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어찌 우리가 독실하게 힘을 다해야 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노형(老兄)께서 더욱 스스로 힘을 쏟아 덕을 상고하려는 천하 학자들의 행렬이 선생의 뜨락에 끊이지 않게 하고 모두 선생께서 훌륭한 손자를 두셨다고 한다면 노형(老兄)께서 선생의 뜻과 공업을 이어 나가는 것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당일에 문하에 이르렀던 선비들 또한 흩어지지 않고 귀의하는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상이 내리는 치제(致祭)는 과연 이달 안에 거행하겠습니까? 유고(遺稿)를 간행하는 일은 성급하게 논의하기 어렵더라도 1년, 2년의 기한을 두고 사방에서 널리 구하여 수합하고 교감한 다음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이미 완성되었을 때 거사(居士)라고 적은 것은 제 마음에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널리 듣고 예에 밝은 선비가 반드시 신중하게 살펴서 반드시 절충해야 하겠기에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거사(居士)는 선생께서 평소에 자신을 낮추는 말이었으니 스승을 받드는 후학의 처지에서도 자신을 낮췄던 말로 스승을 일컫겠습니까. 유서(遺書)에 "노사 거사(蘆沙居士)로 충분하다."라고 하신 것은 주된 의미가 별도로 다른 데 있지 거사(居士)라는 두 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 같은 백세 종사(百世宗師)를 단지 거사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또 명정(銘旌)43)에 이미 노사 선생이라고 일컬었으니 신주(神主)의 앞면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명정과 신주의 앞면이 달리 일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선유(先儒)의 논의가 있습니다. 다시 상의하여 확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春暮服體友衛。慰慕無任。襄奉之餘。虞祔卒哭。次第經過。鳴乎。我先生不在世者。歲月已至此耶。光風霽月。日遠一日。而凰山新阡。草色已靑矣。哀此餘生。蠢蠢奚依。弟誠淺勢拘。未得築場侍几。而遽然退歸。燕處私室。此其事一之道耶。鳴乎先生之望。不可負也。先生之道。不可墜也。此豈非吾輩慥慥盡力之日耶。惟老兄益加自勵。使四方學者考德之行。不絶於先生之庭。而皆曰先生有孫。則非但老兄之所以繼述者。至矣。而當日及門之士。亦將不至渙散。而有所依歸者矣。自上致祭。果爲月內行之耶。遺稿登刊。雖難遽議。限以一年二年。廣求四方收聚校勘然後。可以下手矣向於旣成時。書以居士者。於愚意不能無疑。但博聞長禮之士。極其愼審。必有所折衷者。而不敢開喙。退而思之。終始未瑩。夫居士者。先生平日所自謙者。則後學宗師之地。亦以自謙者稱之乎。遺書有云蘆沙居士足矣者。其主意。別有所在。而不在居士二字矣。以我先生百世宗師。只稱居士者。果為穩當耶。且銘旌旣稱蘆沙先生。則粉面亦當如之。銘旌粉面。不可二稱者。又有先儒之論矣。更加商確。如何。 기회일 회일은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자이다. 기우만의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이며 호는 송사(松沙)이다. 저서로는 《송사집》이 있다. 늦봄에 복중(服中)의 체후 조부인 기정진(奇正鎭)이 사망한 것이 1879년 12월이다. 여기서 말하는 늦봄은 1880년을 가리킨다. 우제(虞祭) 체백(體魄)을 떠난 혼령을 안정시키기 위한다는 뜻에서 매장 당일부터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신분에 따라 9번, 7번, 5번, 3번 지낸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낸다.【三虞】"라고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우(虞)는 상제(喪祭)의 이름이다. 우는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정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효자는 그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세 번 제사를 지내 안정시킨다. 아침에 장례를 치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우제를 지내는 것은 차마 하루라도 혼령이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虞, 喪祭名. 虞, 安也. 骨肉歸於土, 精氣無所不之, 孝子爲其彷徨, 三祭以安之. 朝葬, 日中而虞, 不忍一日離.】"라고 하였다. 부제(祔祭) 졸곡제 다음날 지내는 제사의 명칭으로, 소목(昭穆)의 반차에 따라 제사 지내는 것이다. 진호(陳澔)는 《예기집설(禮記集說)》에서 "부(祔)라는 말은 덧붙인다는 뜻이다. 부제(祔祭)란 조부에게는 다른 묘(廟)로 옮겨야 함을 알리고, 이번에 죽은 이에게는 이 묘로 들어가야 함을 알리는 것이다.【祔之爲言附也. 祔祭者, 告其祖父, 以當遷他廟, 而告新死者, 以當入此廟也.】" 하였다. 졸곡(卒哭) 우제(虞祭)를 모두 마친 다음 첫 번째 강일(剛日)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슬픔이 줄어들어 이후로는 무시(無時)로 하던 곡을 그치고 조석곡(朝夕哭)만 하므로 졸곡제라고 한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의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卒哭.】"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졸곡(卒哭)은 삼우제(三虞祭) 뒤에 지내는 제사 명칭이다. 처음에는 조석곡을 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밀려오면 곡을 하지만, 이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그치고 조석곡만 할 뿐이다.【卒哭, 三虞之後祭名. 始朝夕之間, 哀至則哭, 至此祭, 止也, 朝夕哭而已.】"라고 하였다. 화창한……밝은 달 황정견(黃庭堅)이 《산곡집(山谷集)》에서 주돈이(周敦頤)를 두고 "주무숙은 속이 시원스러워 비가 갠 뒤의 화창한 바람이나 밝은 달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인품의 뛰어남에 대한 비유이다. 움막을……모시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다음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갔지만, 자공(子貢)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홀로 3년을 거처한 다음에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한결같이 섬기는 도리 부모와 임금, 그리고 스승은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대부 난공자(欒共子)의 말 가운데 "백성은 부모, 임금, 스승 셋의 은혜로 살아가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國語 晉語》 명정(銘旌) 생전에 사용하던 깃발이나 따로 마련한 비단 또는 베에 죽은 사람의 관직, 성씨 등 호칭을 써서 표시한 상례(喪禮)의 기물이다. 명(銘) 또는 명정(明旌)이라고도 한다. 《가례 상례 입명정(立銘旌)》에 "강색(絳色) 비단으로 명정(銘旌)을 만든다. 너비는 온폭이고, 3품 이상은 9자, 5품 이하는 8자, 6품 이하는 7자이다. '모관모공지구(某官某公之柩)'라고 쓰고, 관직이 없으면 살아 있을 때의 호칭을 따른다.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되 명정의 길이만큼 하여 영좌의 오른쪽에 기대 놓는다.【以絳帛爲銘旌. 廣終幅, 三品以上九尺, 五品以下八尺, 六品以下七尺. 書曰某官某公之柩, 無官即隨其生時所稱. 以竹爲杠, 如其長, 倚於靈座之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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