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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 김경범56)에 대한 제문 祭大谷金景範文 오호라! 우리 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 늦게 동방에 태어나 이미 끊어진 학문을 잇고 이미 어두워진 의리를 밝혀 사설을 물리쳐 선비들의 추향을 바르게 하고 이단의 무리를 물리쳐 세도를 밝히니, 사람들은 군신부자의 인륜이 있는 줄 알고 선비들은 격물치지 성의정심의 학문이 있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가까이로는 영남과 호남으로부터 멀리로는 관서와 해서에 이르기까지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한 사람이 무려 수천 명이었습니다.공은 묘년(妙年)의 나이에 뜻을 세워 가족을 데리고 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독실하고 총명한 자질로 훈도하고 배양하는 가르침을 받은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30년이었습니다. 긍지(矜持)하던 것은 순수하고 견고해지고, 사색(思索)하던 것은 기쁘고 순해지고, 간단(間斷)하던 것은 접속되어 순수하게 사문의 성덕(成德)이 되고 성대하게 한 시대의 유종(宗儒)이 되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갑자기 한 번의 병으로 마침내 천고의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자연(子淵)57)이 죽고 백풍(伯豊)58)이 가버렸으니, 사문(師門)의 남은 실마리를 누가 수습할 것이며, 사문의 은미하고 깊은 뜻을 누가 발휘할 것입니까? 큰 의리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고 은미한 말이 분석되다가 다시 혼잡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사문(斯文)의 불행입니다. 세도가 분열되고 이단의 무리가 점점 불어나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 이 때와 같은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사특함을 배척하고 정도를 호위하는 것은 세상에 그러한 사람 보기 어려우니, 이것은 이 세상의 불행입니다. 노사 선생께서 돌아가심으로부터 원근의 학자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질정하고 덕을 고찰함에 오직 공에게 의지하여, 공경하여 감히 거만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방자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끝나버려 형세가 장차 흐트러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사문(斯文)의 불행입니다. 궁벽한 시골의 한 선비에게 시운(時運)의 비태(否泰)가 매이고 풍화(風化)의 오륭(汚隆)이 관계됨이 이와 같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의림(義林)은 몇 년 전부터 안으로는 부모님을 여의고 밖으로는 의귀할 분을 잃었고, 게다가 세상 변고는 점점 심해지고 학문은 날로 엉성해졌습니다. 오직 공이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에 있어 우러르기를 태산북두 같이 하고 공경하기를 시귀(蓍龜) 같이 하여 만년에 서로 의지할 계획으로 삼았는데, 어찌 나를 버림이 이같이 급작스럽게 하였습니까? 외롭고 쓸쓸하게 더듬거리며 길을 찾음에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소리 놓아 길게 불러봄에 눈물이 저승에 떨어집니다. 오호라! 말은 끝이 있지만 뜻은 무궁하니, 영령이여 지각이 있다면 이 제수 흠향하소서. 嗚呼。惟我蘆沙先生。晩出東方。繼已絕之學。明已晦之義。闢邪說而正士趍。攘異類而明世道。人知有君臣父子之倫。士加有格致誠正之學。近自嶺湖。遠至關海。及門請業。無慮數千人。公妙年立志。絜家從學。以篤實頴悟之資。受薰陶培養之教。首尾三十年。矜持者純固。思索者怡順。間斷者接續。粹然爲斯門之成德。蔚然爲一世之宗儒。誰知至於今日。而遽以一疾。竟作千古耶。子淵死矣。伯豊逝矣。師門緖餘。誰其收拾。師門微奧。誰其發揮。大義明而復晦。微言析而復混。此則斯文之不幸也。世道分裂。異類浸淫。生民塗炭。孰若此時。斥邪衛正。世難其人。此則斯世之不幸也。自先生沒後。遠近學者。質疑考德。惟公是倚。敬之而不敢慢。畏之而不敢肆。合焉已矣。勢將渙散。此則斯文之不幸也。誰知窮巷一布衣。繫時運之否泰。關風化之汚隆。有如是哉。義林年歲以來。內失怙恃。外失依歸。加以世故轉深。學問曰疎。惟公相望在邇。仰之如山斗。敬之如蓍龜。以爲晚暮相依之計。何其棄我。若是忽劇。踽踽擿埴。余將疇依。放聲長呼。淚落懸泉。嗚呼。言有盡而意無窮。靈其有知。歆此奠儀。 대곡(大谷) 김경범(金景範) 김석귀(金錫龜, 1835∼1885)를 말한다. 자는 경범, 호는 대곡,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정재규(鄭載圭), 정의림(鄭義林)과 함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노사학파의 3대 제자로 불렸다. 저서로는 《대곡집》이 있다. 자연(子淵)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의 자이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백풍(伯豊) 주자의 고제(高弟) 오필대(吳必大)의 자이다. 일찍 죽었으며 저서로 《사해집(師海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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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부사 박공59) 헌양 에 대한 제문 祭長興府使朴公【憲陽】文 오호라! 부사께서 우리 고을에 부임한 것이 옛날 어느 때였던가? 정직한 풍모와 자혜로운 덕과 엄격하고 밝은 다스림과 훈도한 가르침이 사람들의 이목에 익숙하고 사람들의 구설에 회자되었던 것이 전후로 20년이 하루 같았습니다. 심지어 아녀자들과 하인들도 추모하여 생각하며 노래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못하였습니다. 두루 맡아서 공적을 쌓았고 늙어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심에 남북으로 길이 멀어 인사드릴 길이 없었더니, 어찌 요망한 기운과 무지개[螮蝀]60)가 남쪽 지방에 들끓음에 얽힌 뿌리에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것61)이 또 우리 부사에게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백수(白首)의 조개(皁蓋)62)를 남쪽 백성들이 서로 경하하였습니다. 넉넉한 기량63)으로 복잡한 일 잘 처리하니 악한 무리들이 그칠 줄 알고 성을 지키는 조치는 오랠수록 더욱 견고하여 이웃 고을이 족히 힘입고 한 도가 매우 든든해졌습니다.오호라! 하늘의 마음은 알기 어렵고 시사(時事)는 평정하기 어려우니, 귀순한 도둑이 외부의 원조를 얻어 도리어 치성하고, 달아난 적이 내부의 호응을 믿어 난입[闖入]하였네. 괴뢰(傀儡)가 사방에서 모여들고 이무기[虺蝎]가 멋대로 독을 끼칩니다. 성이 함락되고 군대가 흩어짐에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하였습니다.64) 관산(冠山)은 광채를 더하고 호수는 문득 맑아졌습니다. 상중의 사람이 망극하여 천 리에 달려가 곡하였습니다. 태양이 밝고 밝아 원수를 이에 잡았습니다. 능주[綾陽]로 돌아오는 길에 유민들 달려가 모였습니다. 감당(甘棠)65) 같은 쌍백(雙柏)66)은 슬픔에 쌓인 채 풍상을 지났습니다. 제문을 가지고 제사 드리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집니다. 오호 통재라! 嗚呼。侯之來莅我鄕。在昔何時。正直之風慈惠之德。嚴明之治。董陶之教。慣人耳目。膾人口舌。前後二十年如一日。以至婦孺輿㒗。莫不追思歌詠。久而不忘。歷典積勞。退老養閒。南北脩夐。拜床無階。豈意妖氛螮蝀。南路鼎沸。而盤根利器之別。又在於我侯哉。白首皁蓋。南民相慶。恢刃剸劇。匪類知戢。城守調度。久而益固。隣壤足賴。一省差强。嗚呼。天心難知。時事難平。歸順之寇。得外援而反熾。敗遁之賊。恃內應而闖入。傀儡四集。虺蝎肆毒。城陷軍散。舍魚取熊。冠山增色湖水動淸。棘人罔極。千里奔哭。天日昭昭。仇讎斯得。綾陽歸路。遺民奔聚。甘棠雙柏。悲纒風霜。操文致侑。淚隕如泉。嗚呼痛哉。 장흥 부사(長興府使) 박공(朴公) 박헌양(朴憲陽, 1830∼1894)을 말한다. 자는 계정(繼正),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1858년(철종9)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여 호조 정랑을 거쳐 1894년 7월에 장흥 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월 동학군이 2차 봉기하고, 10월에 공주 우금치에서 패전한 후 수만 명이 웅치에서 장흥으로 진격하여 12월에 장령성이 함락되어 전사하였다. 《梅泉野錄 卷2》 무지개[螮蝀] 무지개는 음양의 기운이 부당하게 어울려 생기는 것이므로 천지의 음기(淫氣)를 표상한다. 《시경》 〈용풍(鄘風) 체동(螮蝀)〉에 "무지개가 동쪽에 있으니, 감히 이를 가리킬 수가 없네.[蝃蝀在東, 莫之敢指.]"라고 하였다. 얽힌……것 박헌양이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였다는 말이다. '반근(盤根)'은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준말인데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주로 외직(外職)으로 나가 맡기 어려운 고을을 잘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조개(皁蓋) 검은 비단으로 만든 수레 위에 치는 일산(日傘)으로 지방 관원의 행차를 뜻한다. 넉넉한 기량 본문의 '회인(恢刃)'을 풀이한 말인데, 이 말은 《장자》에 나온다.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고는 문혜군에게 주면서 "저는 칼을 잡은 지 19년에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칼날은 금방 숫돌에 간 듯합니다. 저 관절에는 반드시 사이가 있고 칼날은 두껍지 않으니, 두껍지 않은 칼날로 그 사이에 휘두른다면 반드시 넉넉함이 있습니다.[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라고 하였다. 《莊子 養生主》 물고기를……취하였습니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였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바라는 바요, 곰발바닥도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으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감당(甘棠) 지방관이 선정(善政)을 펼친 곳을 말한다. 주(周) 문왕(文王) 때 선정을 펼친 소공(召公)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며 감당나무 아래 머문 일이 있는데, 그 뒤 백성들이 소공의 덕을 그리워하여 감당나무를 보호하며 〈감당〉 시를 지어 읊고 제사를 지냈다. 《詩經 召南 甘棠》 쌍백(雙栢) 북송(北宋) 때 구준(寇準)이 파동현(巴東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관청 뜰에 손수 한 쌍의 측백나무를 심었는데, 그가 심은 측백나무를 백성들이 감당(甘棠)나무에 비겼다는 '내공백(萊公柏)'의 고사가 있다. 《與猶堂全書 第五集 政法集 卷29 遺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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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 홍공67)에 대한 제문 祭鳳南洪公文 공은 준수하고 시원한 자질로 가정에서 학문한 공을 익혀 위연(偉然)히 효우(孝友) 개제(愷弟)의 행실이 있었고, 의연(毅然)히 강방(剛方) 정직(正直)한 덕이 있었고, 충연(充然)히 경륜(經綸) 시위(施爲)의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가 때와 더불어 어긋나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 오솔길을 내어 꽃을 심고 산을 구입하여 정자를 지어 만년에 기오(寄敖)68)할 장소로 삼았는데, 조물주가 시기하고 좋은 일에 장난치는 일이 많아 오래도록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여 갑자기 이렇게 세상을 떠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오호라! 궁통(窮通)은 운명이고 사생(死生)은 하늘에 달렸으니, 하늘과 운명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 있고, 내가 한 덩이 혈기로 하여금 능히 그 명정(明淨)하고 순결(純潔)함을 보호하여 천지 부모에게 돌려놓는 것은, 공은 여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의림(義林)은 왕래하며 지낸 것이 가장 오래여서 지우를 받아 친밀하여, 꽃피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 바람 부는 대낮이나 눈 내리는 밤엔 생각하여 그리워하지 않은 때가 없었고, 글방이나 정자, 산과 들 시내와 다리에서 서로 연이어 함께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이나 기·차·운·율(記劄韻律)에 대해 경도되지 않은 말이 없었습니다. 서로 만나면 밤새도록 잠자는 것도 잊고 날이 다하도록 밥 먹는 것도 잊어 끊임없이 담론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고, 만나지 못하면 날마다 인편을 보내고 달마다 우체 편을 통해 서간이 이어지고 서찰이 쌓여 장황해도 그칠 줄 몰랐는데, 지금은 끝나버리고 끝나버렸습니다.여생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건대, 지금부터 이후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 만나는 온갖 감회는 누구에게 토로할 것입니까? 혹시 쌓아두고 또 쌓아두어 훗날 서로 만난다면 장차 황천의 달 아래서 악수하고 실컷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변하여 사라진 것은 형체이고 그 정영(精英)과 기상(氣爽)은 항상 상상하고 꿈꾸는 사이에 흘러 통하니, 장차 꿈과 생시가 섞이고 사생이 하나여서 형체나 외물의 얽매이는 밖에서 끊임없이 왕래하며 서로 노닐 것입니까?그 마을에 들어가니 누대와 연못은 옛날 같이 있는 것을 보겠고, 그 문에 들어가니 소나무와 국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겠고, 그 집에 들어가니 서책과 거문고가 어제같이 정연함을 보겠는데, 하나의 작은 방에는 유독 주인옹을 볼 수 없으니. 오호 통재라! 公以俊茂秀爽之姿。服詩禮學問之功。偉然有孝友愷弟之行。毅然有剛方正直之德。充然有經綸施爲之才。道與時違。世莫我知。開經栽花。買山結亭爲晩暮寄敖之所。誰知造物有猜。好事多戱。使未得久享其樂。而遽此謝世耶。嗚乎。窮通命也。死生天也。天與命有不在我。而我之所以使一團血氣。能保其明淨純潔。而交還於天地父母者。公其至此。庶乎無憾矣。義林過從最久。見知密勿。花朝月夕。風日雪夜。無時而不思想。庠塾亭樓。山野溪橋。無處而不牽連。經史子集。記劄韻律。無言而不傾倒。相見則竟夜忘寢。竟日忘食。娓娓而不知倦。不見則日便月禠。連簡累牘。張皇而不知止。今焉已矣。今焉已矣。顧念殘生。未知自此能保幾年。而其間所遇百感萬懷。向誰討破也。其或積之又積。使他日相逢。將握手劇談於泉臺夜月之下耶。抑所化者形也。而其精英氣爽。常常流通於想像夢寐之間。其將混夢眞一死生。而源源相遊於形骸物累之外也耶。入其洞。見䑓池如古。入其門。見松菊猶存。入其室。見書冊琴瑟。秩秩如昨。而一區方丈間。獨不見主人翁。嗚呼痛哉。 봉남(鳳南) 홍공(洪公)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저서로는 《봉남집》이 있다. 기오(寄敖) 오만한 마음을 부친다는 뜻으로, 자기 뜻대로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동진(東晉)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가에 기대어 오만함을 부치니, 무릎을 용납할 만한 곳이 편안하기 쉬움을 알겠노라.[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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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포 양공에 대한 제문 祭竹圃梁公文 생각건대, 우리 조선은 5백 년 동안 거듭 빛나고 은택이 흡족하여 거실세족(巨室世族)과 저명한 성씨와 집안이 능히 선대의 법을 지켜 오래도록 잃지 않은 이는 위로 경기지역으로부터 아래로 시골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 서로 바라보입니다. 이것은 지난 역사책에서도 그 비견할 이들이 드물게 보이니, 부터 유래한 것이 깊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오호라! 공은 호남의 저명한 성씨이고 능주(綾州) 지역의 명가로, 학포(學圃),75) 송천(松川)76) 두 선생으로부터 이후로 위유(偉儒)와 석덕(碩德)이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었고, 공에 이르러 문학과 행의가 또 능히 전대의 업을 이어 전술하여 아름다운 소문과 명망이 이른 나이에 자자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은 성시(城市)에 이르지 않았고 몸은 요직에 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바위 언덕과 시내 골짝의 사이에 깊이 감추고 멀리 떠나 한가로이 배회하며 여생을 마쳤으니, 그 무너진 풍속을 진정시키고 이 세상에 보탬이 있었던 것은 어찌 이른바 줄어들지 않는 유익함과 보답하지 못하는 은혜가 아니겠습니까.오호라! 의림(義林)의 선대 항렬의 세 분 형제가 여러 대 동안 유리하던 끝에 또 장차 이 땅에 와서 의지하려 하였는데, 그대 선공(先公) 운곡(雲谷) 어른이 실로 주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벗을 떠나 쓸쓸히 지내는 정경은 형용하기 어려웠는데 부축하고 도와주고 구휼하고 보살펴주어 끝내 편안한 집을 얻는데77) 이르게 하고 내가 들로 다니는78) 탄식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누구의 은혜입니까? 세시(歲時) 때마다 안부를 묻고 살펴서 행차가 서로 이어졌고, 한가한 날에는 심회를 펼쳐 술잔과 소반이 교차하였습니다. 당시 소자는 이를 갈 나이의 어린아이로 한두 번 곁에서 모실 수 있었는데, 그 기뻐하는 기색과 정연한 위의를 기억함에 지금도 여전히 어제의 일과 같았습니다.오호라! 두 집안의 선대 어른은 모두 이미 천고의 사람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공이 또 갑자기 이 세상을 버렸습니다. 어두운 거리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갈팡질팡 갈 곳이 없는데 한 분의 연세 높고 덕이 많은 분을 잃었으니, 이것은 이 세상의 애통함입니다. 부모 잃은 여생에 외로워 의지할 곳이 없는데 한 분 선대 항렬의 우아한 교분을 잃었으니,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애통함입니다. 그러나 의림 또한 늙어, 저승에 선군자를 따를 날이 장차 멀지 않았으니, 두 집안의 2,3세가 어찌 끝내 저승 누대 위에서 함께 모여 옛날처럼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애통함은 이 세상 사람에게 맡기고 내 개인적인 애통함은 또한 거의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의림은 병이 들어 문을 닫고 문밖을 나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영원히 돌아가게 되는 때에 의리상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병을 무릅쓰고 포복하여 가서 하늘이 다하도록 무궁한 슬픔을 곡하며 고합니다. 惟我朝重熙。累洽五百年。而巨室世族。著姓名家。能守先法。久而不失者。上自畿甸。下至鄕曲。在任相望焉。此在往牒。鮮見其比。而可以見其有所自者深矣。嗚呼。公湖省著姓。綾鄕名家。自學圃松川兩先生以來。偉儒碩德。世濟其美。至于公。文學行義。又能紹述前業。令聞令望。早年藉藉。然足不到城市。身不見要人。而深藏遠引於巖。阿澗谷之間。婆娑徜徉。聊以卒歲。其所以鎭定頹俗。有補斯世者。豈非所謂不損之益不報之恩耶。嗚乎。義林先行三昆季。在累世流離之餘。而又將來依此土也。尊先公雲谷丈。實爲之主焉。離索踽凉。情景難狀。而扶之翼之。恤之存之。使至於其究安宅。而無我行其野之歎。是誰之賜歟。歲時存省。杖屢相尋。暇日敍暢。盃盤交錯。伊時小子。以毁齒之年。得一再侍惻矣。記其怡怡之色。秩秩之儀。至今依依然如昨日事。嗚呼。兩家先公。皆已千古矣。至於今日。公又遽棄斯世耶。昏衢群蒙倀倀莫往。而失一耆舊宿碩。此爲斯世之慟也。風樹餘生。煢煢靡賴。而失一先行雅契。此爲私情之慟也。然義林亦老矣。從先君子於九原。行將不遠。則兩家二三世。豈不終當會聚於泉臺之上。歡然如平昔耶。然則斯世之慟。付諸斯世之人。而私情之慟。亦庶有可以自慰者矣。義林病廢。杜門不出戶庭久矣。而今於永歸之辰。理不可以但已。故力疾匍匐。哭告終天無窮之悲。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호이다. 자는 대춘(大春),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중종조에 수찬, 교리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1519년(중종14)에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을 위하여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가 삭직되어 고향인 능주(綾州)로 돌아와 학포당(學圃堂)을 짓고는 독서로 소일하였다. 1630년(인조8) 능주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818년(순조18) 순천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學圃遺集)》이 있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호이다. 자는 공섭(公燮)이다. 시문에 능하여 선조 때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다. 공조 좌랑, 진주 목사, 공조 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송천집》, 《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 등이 있다. 끝내……얻는데 《시경》 〈소아(小雅) 홍안(鴻雁)〉에 "비록 고생은 하더라도, 끝내 편안한 집을 얻으리라.[雖則劬勞, 其究安宅.]"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내가 들로 다니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 〈아행기야(我行其野)〉에서 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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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 이공80)에 대한 제문 祭芝南李公文 祭芝南李公文오호라! 공은 여기에서 그친단 말입니까, 공은 여기에서 그친단 말입니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고 귀신은 어찌 갑자기 빼앗아 가는 것입니까! 만류해도 할 수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저승에서 끝내 다시 일어날 수 없고 긴 밤은 끝내 다시 새벽이 오지 않는 것입니까? 예순이 멀지 않으니 그 나이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며, 두 아들이 관례를 치르고 결혼을 하였으니 그 빚을 끝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잘것없는 내가 공을 위해 애통해 하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과거 시험에 합격여부는 족히 비교할 것 없고 공명과 득실은 족히 따질 것 없지만 오직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이단의 설이 날로 치성하니,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개탄하고 담당하여 부축하고 호위하려는 뜻은 늙어서도 조금도 쇠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문의 큰일에 관계되어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평탄하고 험난함을 가리지 않고 좌우로 주선하고 전후로 허겁지겁 힘을 다하였지만 혹 시행하였으나 능히 수정 윤색하지 못한 것이 있고, 혹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나 능히 시행하지 못한 것이 있고, 혹 기약하여 하려고 하였으나 능히 시작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이 한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시행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장차 상숙(庠塾)이 이루어져 향음주례의 향약이 흥성할 것을 보고 선현의 문집이 또 장차 차례로 간행되어 한 가닥 사문(斯文)으로 하여금 회태(回泰)의 조짐이 있게 할 것 같았는데, 뜻을 가지고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막힘이 이와 같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의림(義林)은 외람되이 고을 이웃에 있으면서 지우를 받아 친밀하여 낡은 집으로 나를 위로하고 예를 행하는 곳에 나를 맞이하고 강론하는 모임에 나를 불러 담론하고 토론한 것이 정성스러웠고 아취와 즐거움이 진진하여, 봄가을로 기약을 두어 혹 두세 차례 모여서 여생에 서로 지킬 계획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향리에서는 누구에게 의뢰하며 붕우들은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상여가 이미 출발하여 유명간이 장차 막힐 것인데 병으로 상여 줄을 잡지 못하니 저버린 죄 산과 같습니다. 바람에 임하여 절하고 영결하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집니다. 오호라, 슬프도다! 영령께서는 흠향하소서.祭芝南李公文嗚呼! 公其止於斯耶, 公其止於斯耶! 天不憗遺, 鬼何遽奪? 挽之不得, 喚之不應, 九原終不可復作, 大夜終不可復曉耶? 六旬不遠, 其年紀非不多矣;二子勝冠, 其債業非不了矣, 而區區所以爲公痛惜者, 其意何居? 科第陞沈, 不足爲輕重;功名得失, 不足爲有無, 而惟是世道日下, 異說日熾, 其所以憂懼慨歎擔着扶衛之意, 不以老而少替也。凡係斯文大事, 有可以裨補萬一者, 不顧利害, 不擇夷險, 左右周章, 前後竭蹶, 或有施行而未克修潤者, 或有經始而未克施行者, 或有期擬而未克經始者, 非一二事也。行未幾年, 將見庠塾之就, 飮射鄕約之興, 而先賢文獻, 又將次第見行, 使一線斯文, 有回泰之漸, 豈知齎志未伸, 中路遽閼其若是耶? 義林忝在鄕鄰, 知遇密勿, 弔我乎弊廬, 邀我乎禮塲, 會我乎講社, 譚討款款, 趣樂津津, 春秋有期, 或再或三, 而爲餘年相守之計也。今焉已矣, 鄕里誰賴, 朋徒奚依? 靈輿已駕, 幽明將隔, 病未執紼, 辜負如山。臨風拜訣, 淚隕如泉。嗚呼哀哉! 靈其尙饗。 嗚呼。公其止於斯耶。公其止於斯耶。天不憗遺。鬼何遽奪。挽之不得。喚之不應。九原終不可復作。大夜終不可復曉耶。六旬不遠。其年紀非不多矣。二子勝冠。其債業非不了矣。而區區所以爲公痛惜者。其意何居。科第陞沈。不足爲輕重。功名得失。不足爲有無。而惟是世道日下。異說日熾。其所以憂懼慨歎擔着扶衛之意。不以老而少替也。凡係斯文大事。有可以裨補萬一者。不顧利害不擇夷險。左右周章。前後竭蹶。或有施行而未克修潤者。或有經始而未克施行者。或有期擬而未克經始者。非一二事也。行未幾年。將見庠塾之就。飮射鄕約之興而先賢文獻。又將次第見行。使一線斯文。有回泰之漸。豈知齎志未伸。中路遽閼其若是耶。義林忝在鄕鄰。知遇密勿。弔我乎弊廬。邀我乎禮塲會我乎講社。譚討款款。趣樂津津。春秋有期。或再或三。而爲餘年相守之計也。今焉已矣。鄕里誰賴。朋徒奚依。靈輿已駕。幽明將隔。病未執紼。辜負如山。臨風拜訣。淚隕如泉。嗚呼哀哉。靈其尙饗。 지남(芝南) 이공(李公) 이지호(李贄鎬, 1836∼1892)를 말한다. 자는 동현(東賢), 호는 지남(芝南),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지만 처사 이공 행장(芝南處士李公行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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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범1)【석귀】에게 보냄 與金景範【錫龜】 겨울철이 이미 저물어 가는 가운데 모친을 모시고 강녕(康寧)하시며, 험난한 시대에 어떤 능력으로 자신을 지탱해가십니까. 저는 상중에 첩거하면서 힘이 닿는 대로 책을 펼치는 것을 감히 스스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다만 곁에 든든한 벗이 없으니 어찌 끝내 퇴보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겠습니까. 지금부터 20일이 지나면 40세가 됩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고인이 두려워하지 않은 바입니다.2) 설령 이로부터 계속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진보가 있겠습니까. 다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는 말로 만년을 보전할 계책으로 삼지만 선인과 선사의 뜻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는 것이 구구한 이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노형께서는 저를 애처롭고 가련하게 여겨 끝까지 깨우쳐 주십시오. 저는 이전에 공부한 것은 조장(助長)하는 곳에서 몹시 그르쳤기에 마음이 늘 수고로웠으니, 도리어 잊어버리고 아무 일 없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3) 근래 이러한 병통을 깨달았으니 힘 쓸 곳이 있을 듯합니다. 대저 심(心)은 활발발(活潑潑)4)한 것인지라 자연스러운 주재(主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사로운 뜻으로 부질없이 더 집착하여 억지로 별도의 주재(主宰)를 만들었으니, 천기(天機)를 빼앗고 주인의 자리를 침탈하는 것이 너무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주자(朱子)가 임택지(林擇之)에게 보낸 편지에 "몸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라면 몸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滿腔子是惻隱之心 腔子外是甚底]"라고 한 구절을 근래 보고서 저는 스스로 '몸 밖에는 천지의 측은지심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회일(會一)은 이사한 나머지에 모든 일이 무사한지요? 후윤(厚允)에게서 근래 서신을 받았습니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느 때에 기약하겠습니까. 동오(東塢)와 운람(雲藍)은 종종 서로 모입니까? 경산(經山)이 세상을 떠난 뒤로 우리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니, 끝까지 서로 교유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 백언(伯彦)에게 보내는 편지는 삼가 이미 전하였습니다. 冬候已暮。奉慈康寧。險歲事力。何以友吾。弟哀蟄之餘隨力開案。不敢自已。但傍無疆輔。安保其終不退轉也。此過二十日。便是四十歲。到此無聞。古人所不畏。設或從此接續。其所進果幾何哉。但以朝聞夕死爲桑楡之計。而少酬先人先師萬一之意者。是區區之至願也。願老兄爲之哀矜。終始警策也。弟前日工夫。於助長處。偏受其害。心下常常勞撓。反不如忘之之爲無事。近覺得此病痛。似有用力處。大抵心是活潑潑自然底主宰。人以私意謾加把持。彊作別樣主宰。其奪天機侵主位。不已勞乎。近閱朱子抵林擇之書。有曰。滿腔子。是惻隱之心。腔子外。是甚底。弟因自思以爲腔子外。是天地惻隱之心。未知得否。會一搬寓之餘。凡節無撓。厚允近有得信否。闊焉涯角。際晤那有期耶。東塢雲藍種種相聚否。自經山頹。吾儕渙散。未知有可以終始相從者。幾人也。向者所與伯彦書。謹已傳去耳。 김경범(金景範) 김석귀(金錫龜, 1835~1885)로,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 호는 대곡(大谷),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맹자(孟子)》에 통달하여 '김맹자(金孟子)'로 불렸다.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담양군 대전면 대곡리로 이사하였고, 27년간 기정진의 문하를 왕래하였다. 고인이……바입니다 《논어》〈자한(子罕)〉에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라고 했다. 조장(助長)하는……것입니다 맹자가 사람이 의리를 쌓는 데 있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 가라는 뜻에서 "반드시 하는 일이 있어야 하되 결과를 미리 기약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빨리 자라도록 돕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勿助長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孟子 公孫丑上》 활발발(活潑潑) 천리(天理)가 한곳에 응체되어 있지 않고 활발하게 운행하고 있는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중용장구》 제12장에서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시경》의 시를 인용한 것에 대해, 정호(程顥)가 "자사가 긴요하게 사람을 위한 곳으로 매우 생동감이 있다.[子思喫緊爲人處, 活潑潑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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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8)【재규】에게 답함 答鄭厚允【載圭】 구진(邱珍)이 짐을 꾸려 돌아간 지 지금 얼마나 되었습니까? 소년 시절과 장년 시절에 서로 떨어져 있다가 노쇠한 나이에 서로 그리워하니, 평소 애틋한 심정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난겨울에 보내신 편지는 초가을에 초지(草枝)에서 도착하였고, 이어서 오장(吳丈)이 돌아오는 편에 또 존신(尊訊)과 여러 형들이 보낸 편지 수십 통을 받았습니다. 삼가 읽고 감축하며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가. 그런데도 외람되이 당대 현덕(賢德)에게 버림을 받지 않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습니까. 삼가 연래에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중에 복됨을 알았으니, 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저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다만 중제(重制)9)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극한 마음 더욱 융중(隆重)할 것이니, 애통한 마음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크게 흉년이 든 것은 영남도 호남과 같을 것이니, 숙수(菽水)의 어려운 정상10)이 눈에 선합니다. 다만 아무도 모르게 홀로 깨달은 실상이 날로 더욱 드러나 믿고 따르는 자가 많으니, 바야흐로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해진 나머지에 한 도맥을 부지하여 사방에서 추앙을 받는 것은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생도들이 운집하였는데 뜻을 부칠 수 있는 자는 몇입니까? 대저 자품이 온후한 자는 과감함이 부족하고 영특한 자는 독실함이 부족하니, 행실이 중도에 맞는 사람을 얻기 어려움은 예전에도 이미 그러하였습니다. 오직 형세에 따라 잘 인도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다만 근래 과거의 규정이 옛날과 달라 과문을 익힌 자가 나아가 과거를 보지 않으므로 물러나 여기에 의탁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겉으로는 성대한 기풍이 있는 듯하지만 이욕을 추구하여 따르니, 그 폐단이 아마 역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 '의리(義利)' 2자는 말이 매우 간절합니다. 대저 천고 만고에 치란과 흥망이 애초에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고 성현의 천언만어도 다만 이 경계를 발명한 것입니다. 노형(老兄)께서 이것을 제일의 의체(義諦)로 삼으시니 번다하지 않고 요체를 얻어 힘쓸 바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용한 태사공(太史公)의 설은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한번 크게 탄식을 자아내게 합니다. 세상에서 장각(章閣)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비록 우리 유자 가운데 실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에도 종종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니,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저 거경(居敬)은 의리를 정밀하게 하는 것이니, 이미 거경 공부가 없는데 어떻게 의리를 정밀하게 하겠습니까. 이는 일에 임할 때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 시비와 사정(邪正)이 늘 전도되는 것이니, 이는 우리들이 바로 급급하게 처방법을 강구해야 할 곳입니다. 이로써 마음을 보존하고 단속하는 공부를 더욱 알아 초학자가 제일의 법문으로 삼으면 신체에 지키는 바가 있어 이 마음이 바야흐로 머물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기본이 이미 확립되면 위로는 덕에 나아갈 수 있고, 아래로는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가 되는 데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문군 송규(文君頌奎)는 이달 15일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으니, 실로 우리들에게 있어 불행입니다. 통탄스럽고 애석합니다. 《답문유편(答問類編)》은 이미 완성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사문(斯文)의 다행입니다. 그 범례(凡例)를 보건대 휘류(彙類)는 조리가 있고 칭정(稱停)11)은 정밀하니 물을 담아도 새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지나친 곳을 찾아내라고 한 말은 우매하고 용렬한 제가 어찌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제가 이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은 비록 형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기갈 든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의 견해로 헤아려 보건대 권질(卷帙)이 너무 방대한 듯합니다. 모름지기 질문한 말 가운데 지리하고 중복되는 것은 일체 삭제하여 정밀하고 간결함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원집(元集)은 아직 간행하지 않은 책이니 원집과 중첩된 곳은 줄일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이쪽의 사우가 늦게 나아갔으니, 백언(伯彦)은 맨 앞에 서는 것을 사양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사람은 박식하고 정밀하며 모든 거취에 매우 조리가 있습니다. 이 형과 함께 한번 나아가 질정하고자 하지만 이 형도 세파에 시달리느라 몸을 빼기 쉽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근년에 겪은 일을 모두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몸을 빼기 어려운 점은 또한 이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초에 제가 조금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였을 때 백언이 스스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여 남에게 자기를 얽매이는 것을 가지고 오유(迃儒)라고 하자, 백언은 내가 사람마다 역량이 각각 조금 차이가 있어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나를 오유라고 하였으니, '오유' 2자를 서로 미룬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뒤에 경범(景範)이 듣고서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백언의 말을 따르겠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경범의 처지가 백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어찌 나 역시 백언의 말을 따라야 함을 모르겠습니까. 평생 사업은 끝내 성취한 것이 없고 쇠퇴하는 조짐은 날로 달로 달라지는 것을 매양 매우 스스로 근심하였습니다. 이번 겨울에 벽산서실(碧山書室)에 갔는데 박생 준기(朴生準基)라는 사람이 그 주인이었습니다. 또 김홍기(金弘基), 박용동(朴容東), 홍승환(洪承渙), 송광수(宋光壽)가 있어서 바야흐로 함께 교유하였는데 모두 단정하여 사랑스러웠습니다.문군(文君)이 죽기 전에 편지를 보내 영결의 말을 청하였습니다. 제가 벗들과 함께 즉시 달려갔지만 병이 이미 깊었습니다. 제가 형이 보낸 위장(慰狀)을 전하니, 문군이 눈물을 머금고 감격하여 말하기를 "애산(艾山) 어른을 한번 보는 것은 이미 가망이 없고, 정신은 온전하지 않으며 호흡은 가빠 또 답장을 쓰지 못하겠다. 후일 애산 어른을 보거든 나를 위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몹시 슬펐습니다. 그가 죽자 향리에서 매우 애석하게 여겨 신위를 만들어 곡하거나 제문을 지어 애도를 표하거나 했으니, 본성을 지니고 덕을 좋아하는 것이 아직 민멸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뒤에 인편이 있다면 형께서 혹 제문을 지어 보내 이 슬픈 혼백을 위로해 주십시오. 邱珍治任。今機日月。少壯相分。衰暮相思。其尋常飢渴。謂何如。前冬惠書。初秋自草枝來到。繼而吳丈之廻。又拜尊訊及僉兄書數十度。伏讀感祝。以爲此是何等無狀。而猥爲一時賢德所不棄若是也。恭尋年來省歡百福。實慰遠情。但重制聞之恒然。惟至情加隆。哀痛何堪。年侵大無。嶺亦如湖。菽水戞戞之狀。如在目前。惟闇然獨覺之實。日以益章。信從者衆。方世衰道微之餘。所以扶持一脈而爲四方依仰之地者。顧不大歟。生徒坌集。可以寄意者。幾人。大抵資稟溫厚者。欠果敢開悟者。少篤實。中行之難。在古已然。惟因其勢而利導之。在乎敎者之如何耳。但近來科規不古。爲詞令者。進無所售。故退而託於此者。甚多。外若有蔚然之風。而懷利從逐。其敝想亦不細矣。示中義利二字。語甚切至。夫千萬古治亂興亡。未始不由於此。而聖賢千言萬語。只是發明此箇界至者也。老兄以此作第一義諦。可謂不煩而要。知所務矣。所引太史公說。不覺令人喟然一晞也。世上章閣之勿說。雖吾儒中稱爲實心人。往往出脫此關不得。可謂咄咄怪事矣。夫居敬所以精義。旣無居敬。何以精義。此於臨事之際。含胡籠罩。是非邪正。常爲迭用此吾輩正當汲汲用方處也。以此益知持斂之功。爲初學者第一法門。身體有所持循。此心方有頓放處。基本旣立。上可以進德。下不失爲謹勅之士矣。文君頌奎。今十五日。竟不起。實吾輩之不幸。痛惜痛惜。答問類編聞已斷手。誠斯文之幸。見其凡例。彙類條理。稱停精密。可謂置水不漏矣。櫛過之云。以弟昧劣。豈爲敢然。但區區願見之心。雖靠兄敎。不啻飢渴矣。然以愚料之卷帙似爲浩大。須於問語中。其支離者重複者。一切刪去。以存精約。如何。且元集是不刊之書。與元集疊見處。亦可減裁也。竊念此邊士友晩來進就。恐伯彦不得讓其頭矣。此人博洽精詳。凡百去就。甚有條理。欲與此兄一晉相訂。而此兄亦是困於世放者。抽身不易。奈何。弟年來經歷。都不擧似。而其抽身之難。亦與此人無異。當初弟稍有家力特以伯彦不能自獄家計。而絆已於人。謂之迃儒。伯彦以予不知人之事力。各有分寸。不可强謂予爲迃儒。以迃儒二字相推久之。其後景範聞之笑曰。吾則從伯彦之言。蓋景範身體與伯彦同故也。以今觀之。豈知吾亦從伯彦之言也。平生志業。迄無所就。而衰頹之徵。月異而日不同。每切自悶。今冬住碧山書室。蓋有朴生準基者。其主人也。又有金弘基朴容東洪承渙宋光壽者。方與同遊皆端勅可愛。文君未死之前。走書請訣。予與諸友卽馳往。病已劇矣。予傳兄所抵慰狀。文君飮泣感激。且曰。一見艾丈。已矣無望。而神短氣促。又未修答。日後見艾丈。幸爲我謝焉。其意極可悲也。其沒也。鄕里痛惜。或設位而哭。或操文而侑。可見彛好之不泯也。如有後便。則兄或爲之製送侑文。以慰此哀魂也。 정후윤(鄭厚允):정재규(鄭載圭, 1843~1911)이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후윤(厚允), 호는 애산(艾山) 또는 노백헌(老栢軒)이다. 중제(重制) 상례 복제(喪禮服制)에서 사촌이나 고모 또는 고종사촌 등 대공친(大功親) 이상의 상사 때 입던 상복(喪服)이다. 숙수(菽水)의 어려운 정상 숙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식이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함을 말한다.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下》 칭정(稱停) 내용이 과장됨이 없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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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답함 與鄭厚允 세월이 머무르지 않아 선부인(先夫人)의 연사(練事)12)가 이틀 뒤에 행해질 것이니, 삼가 생각건대 애모(哀慕)함이 망극한 가운데 어떻게 견디십니까. 먼 외지에서 사모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영남에서 2월 7일에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 다음 날에 숙부님의 상을 당하였으니 지극히 통탄스러운 마음 어떻게 말로 형용하겠습니까. 유명(遺命)에 따라 돌아가신 다음 달에 선산에 장사 지냈습니다. 기력은 날마다 떨어지고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니, 구구한 이의 평소 마음은 그 가운데 한둘도 부합하지 못하였고, 지금 또 시골 숙사(塾舍)에 머무르며 사람들을 응대하느라 분분하게 날로 마음이 치달리니 어찌 침체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만난 것은 십수 년 만이었으니 정히 크게 논의가 있을 때였는데 저는 구덩이에 빠지는 것에 가까웠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형께서는 언론이 분명하고 의리가 밝으며, 행동거지와 법도가 정연하여 본받을 만하였습니다. 편찬한 《언행록(言行錄)》및 논한 바 심성론(心性論) 등의 책 약간 편을 보니 세밀하고 자세히 분석하여 이치는 분명하고 말은 사리에 맞았으니,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이러한 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공경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문답편(答問編)」은 지난번에 송사(松沙)의 편지를 받으니 간행하여 유포할 뜻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을 아직 주석하지 않았으니, 행여 다소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서"라는 말13)을 인용하여 고하였는데, 송사(松沙)의 답장에 "《역전》은 정자가 스스로 지은 것이므로 신중함이 실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는 다만 종류대로 덧붙여 편을 만든 것이니, 그 의체(義諦)와 아주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견해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옛날에 두 분 정자(程子)의 유서(遺書)는 전사하는 과정에서 진면목을 잃은 것이 많아 구산(龜山)이 삭제하여 바로잡고자 하였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했고, 남헌(南軒)은 《희안록(希顔錄)》14)을 편찬하면서 문득 삭제한 것이 많았습니다. 오봉(五峯) 호자(胡子)는 이에 대해서 "이는 종신토록 해야 할 일이니, 곧 함부로 삭제해선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15) 그렇다면 삭제하여 바로잡는 것과 스스로 논의를 세우는 것은 어렵게 여기거나 쉽게 여기는 데에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이 편지는 지난번에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헤아려 볼 점이 없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원하건대, 형이 비록 갑자기 광범위하게 수정하지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가까이 사는 노성하고 박아(博雅)한 몇 사람과 며칠의 일정을 정하여 다시 세밀하게 다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서 명덕(明德)을 논하여 기(氣)라고 하는 자는 그 설이 《대학(大學)》에서 허령(虛靈)하다 운운한 것16)을 잘못 알고 말한 것입니다. 그 설에 "허령하고 어둡지 않은 것[虛靈不昧]은 심(心)이요, 심은 기(氣)의 맑은 것이니, 명덕은 기(氣) 쪽에 속한 것이지 이(理) 쪽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허령하고 어둡지 않다는 이 한 단락은 사람이 태어나서 정(靜)하다는 이하의 말이다. 덕(德)은 얻는 것이다. 이는 마음에서 얻고 자기에게서 얻는 것을 이르니, 주자(朱子)가 '덕(德)' 자에 근거하여 풀이하였으므로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면서 정(靜)한 상태 이전에는 본래 태극이 있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하여 음(陰)을 낳으니, 모름지기 명덕이 태극과 같아서 동정은 태극 가운데의 일이고 허령은 명덕 가운데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이 어떠합니까? 회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슬픔을 절제하고 변화에 순응하여 멀리 있는 저의 바람에 부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日月不留。先夫人練事。行將隔日。伏惟哀慕罔極。何以堪支。遠外慰戀。不任下誠。弟自嶺中。二月初七日始返巢。再明日遭叔父喪。至情之痛。夫何言喩。從遺命。以翌月葬於先麓耳。年力日替。世故日深。區區宿心未有以副其一二今又住接村塾耳目酬應。紛然日馳。其何不爲汨沒之歸耶。向日相奉。是出於十數年之後。正是大有議論之日。而弟則不啻墮坑而落塹矣。但老兄言論光明。義理昭晣。動靜規矩。粹然可則。及觀所撰言行錄及所論心性等書若干篇。其毫析縷分。理明辭達。眞有德之言。未知今日域中有此等文字耶。敬感萬萬答問編。向得松沙書。有刊布之意。弟引程子易傳未傳。尙覬有進之語以告之。松沙答云易傳是程子所自作。故審愼固有如此者。此則只是類附成編。與其義諦逈別。然以愚思之。恐未然。昔二程子遺書。多傳寫失眞處。龜山欲刪正。而未敢下筆。南軒編希顔錄。輒多刪去。五峯胡子謂之曰。此是終身事。不可便容易而削之也。然則夫刪正與自己立說。其難易似無異矣。此書向日雖未了閱。追來思之。恐不無合商量處。願兄縱未能遽加廣訂。須與居近老成博雅幾許人。定爲幾日之規。更加細櫛。如何世之論明德爲氣者。其說誤認大學虛靈云云而發焉。其說曰。虛靈不昧。心也。而心是氣之精爽。則明德是屬氣邊底。非屬理邊底。余曰虛靈不昧此一段是人生以靜以下語。德者得也。是得於心得於己之謂。則朱子據德字而解之。故其勢不得不從地盤上說來。然人生而靜上面。自有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須知明德猶太極也。而動靜是太極中事。虛靈是明德中事。未知此說何如回敎之爲望。只祝節哀順變以副遠望。 연사(練事) 연제(練祭), 즉 소상제(小祥祭)를 말한다. 연(練)은 삼베를 마전하는 것으로 소상부터는 마전한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행여……말 《근사록》 권3 〈치지(致知)〉에 보인다. 희안록(希顔錄) 장식(張栻)이 정자(程子)로부터 오도(吾道)를 맡을 사람이라고 크게 권면하는 편지를 받은 뒤 고무되어 옛 성현을 목표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안자(顔子)의 언행을 수집하여 엮은 책이다. 《성리전서(性理全書)》 권41 〈장식(張栻)〉에 실려 있다. 오봉(五峯)……하였습니다 호자(胡子)는 송(宋)나라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오봉 선생이라고 일컬어졌던 호굉(胡宏)을 가리킨다. 그의 문집인 《오봉집(五峯集)》 권2 〈여장경부(與張敬夫)〉에 이 말이 수록되어 있다. 대학(大學)……것 《대학장구(大學章句)》 경(經) 1장 주희(朱熹)의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온갖 이치를 구비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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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보냄 與鄭厚允 연전에 장(蔣) 노인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맏아들이 돌아가는 편에 여러 통의 편지를 부쳤는데 잘 도착하였습니까? 봄 사이에 담헌(澹軒)의 강회에 갔다가 형이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로 이사한 나머지에 황량한 곳의 절선(節宣) 등 모든 일이 어떠하십니까? 어디를 간들 가난하지 않겠으며, 어디에 거처한들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이는 선대의 고향이니, 생각건대 끝없이 흠모하는 생각을 붙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현종(賢從 상대방의 종제)과 침상을 나란히 하여 함께 정담을 나누며 만년에 정신을 함양하는 곳으로 삼은 것은 그 뜻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저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하고 전혀 의지할 곳이 없이 아침저녁 사방으로 떠도는 것이 마치 낙엽이 바람에 따라 굴러다니는 것과 같은 신세입니다. 구구한 이의 생각은 다만 옛집으로 돌아가 선영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늘그막의 여생을 보낼 계책으로 삼고자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노형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이루었습니까. 듣자니 승룡(乘龍)의 짝은 명호(明湖)의 조카로 정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의 기골은 일찍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양가는 덕을 짝한 것이니 남은 복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 편지에서 논한바 완이(莞爾) 어른과 주고받은 몇 가지 조목과 산석(山石)이 보여준 우리들이 주고받은 부분의 말은 이미 보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라건대 절충하여 이렇게 몽매함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산강록(鍾山講錄)》17)과 제가 지은 《영행록(嶺行錄)》18)은 또한 일일이 밝게 살피고 헤아려 보신 다음 아울러 돌려보내 주십시오. 병자년(1876, 고종13) 여름에 우리 두 사람이 송별한 글은 이는 선사(先師)의 명이니, 심상하게 저술한 것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체제는 좋지 않으니, 다시 편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참으로 형의 말과 같습니다. 저는 돌아와 분주하여 이에 힘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인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비로소 창졸간에 붓을 들었지만 오히려 20년 전 옛말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학업의 진보가 없는 것이 도리어 이와 같단 말입니까. 지난번에 면암(勉菴) 어른의 편지를 받고서 성재(省齋)가 논한바 심설(心說)이 자못 자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개 성재의 뜻은 '심(心)은 물(物)로 말할 수 있지만 칙(則)으로 말할 수 없다. 화장(火臟 심장)으로 말하면 화장은 실로 물이고 인의(仁義)는 칙(則)이 되며, 신명(神明)으로 말하면 신명도 물이고 인의는 칙(則)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사 벽계(檗溪) 선생이 일찍이 신명을 가지고 기(氣)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물칙(物則)의 구분에 대해서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형도 근래 이 설을 보았습니까? 이 어른은 평소 수학(邃學)이라고 불렸는데 그 언론이 도리어 근세의 그릇된 폐단을 답습한단 말입니까. 대저 기(氣)의 묘용(妙用)을 실로 신(神)이라고 하고, 이(理)의 오묘한 곳을 또한 신(神)이라고 하니, 비록 기의 묘용이라고 말하더라도 또한 이 이가 운행하는 손발에 불과합니다. 심은 물(物)을 가지고 말하는 자가 있고 칙(則)을 가지고 말하는 자가 있습니다. 물을 가지고 말한다면 인(仁)은 그 칙(則)이 되고, 칙으로 말하면 신(身)이 그 물(物)이 됩니다. 맹자가 이른바 인은 인심(人心)이라고 한 것과 정자(程子)가 이른바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 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성(性)이라 하고, 몸에서 주재(主宰)하면 심(心)이라 한다."19)라고 한 이러한 '심(心)' 자는 또한 모두 물(物)로 간주하는 것입니까? 평소 이해하지 못하여 감히 이렇게 우러러 여쭙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년 봄에 쌍계(雙溪)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앞으로 또한 머지않았습니다. 약속을 정할 때 그 사이의 시간을 보니, 넉넉히 공부하여 만날 때 문변(問辨)할 자료로 삼을 수 있을 듯하였는데, 곧이어 다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끝내 쓸데없이 어울리는 것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종산(鍾山)의 모임에서 이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강론하는 본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처럼 세월을 보낸다면 몇 년 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채 생을 마치지 않겠습니까. 두려워할 만합니다. 또 두세 동지가 조용히 서로 약속해도 그 끝내는 필시 큰 모임이 될 텐데, 더구나 빽빽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약속하는 것이 이미 많은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때 두 도(道)의 인사(人士)가 필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형은 미리 조약(條約)을 정해 번거롭고 산만한 폐단이 없이 보고 느끼는 실제가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더 아끼십시오. 年前蔣老人事。想已聞之矣。其遺胤回便付上諸札。不至浮沈耶。春間赴澹軒講會。聞兄搬移之報矣。未審新移之餘蕪處節宣。凡百何如。安往而不貧。何處而不困。惟是桑梓故邱。計寓贍慕無窮之思。而又與賢從聯兀對討。爲晩年游養之所者。其意豈偶然哉。弟蕩失先業。漫無聊賴。朝東暮西。如落葉隨風。區區之念。只欲返舊庄瞻近墳墓。爲殘生終老之計。而不能得未知老兄何以辨此耶聞乘龍之擇。在明湖之姪。此郞氣骨。曾所艶見。兩德作述。餘祿可量。前書所論莞爾丈往復數條。及山石所示吾輩往復一段語。想已照及。幸爲折衷。祛此蒙部如何。鍾山講錄反弟所述嶺行錄。亦爲一一澄裁。倂以見還也。丙子夏吾兩人送別文字。此是先師之命。則非尋常著述之比。而但其體裁未善。不可不更爲修潤者。誠如兄敎矣。弟歸來役役無暇及此。今聞有便。及始倉卒下筆。而猶不免再誦二十年舊語。其業之不進。及如是耶。向得勉菴丈書。知省齋所論心說頗詳。蓋省齋之意。以爲心可以物言。不可以則言。以火臟言。則火臟固物也。而仁義爲則。以神明言。則神明亦物也。而仁義爲則。至謂其師檗溪先生。未嘗以神明言氣者。於物則之分。不甚端的云。未知兄亦近見此語否。此丈素號邃學。而其言論反襲近世謬獘耶。夫氣之妙用。固謂之神。而理之妙處。亦謂之神雖曰氣之妙用。而亦不過此理運行底手脚也。心有以物言者。有以則言者。以物言則仁爲其則。以則言。則身爲其物。孟子所謂仁人心。程子所謂在天爲命。在人爲性。主於身爲心。此等心字。亦皆以物看耶。尋常未瑩。敢此仰布。以爲如何。明春雙溪之約。將亦不遠矣。定期之初。見其間日月。若可以優着功夫。爲供臨時問辨之資。而旋復因循。竟未免一場閒追逐。其於鍾山之會。已可見矣。此不惟非吾輩講聚之本意。而如是捱過。未幾年。其不終於無聞耶。可懼。且二三同志。從容相約。其終必至於浩大。況稠座衆諾所及已多乎。其時兩省人士必將不少。願兄預定條約。無繁渙之獘。有觀感之實。如何更乞珍重加愛。 종산강록(鍾山講錄) 권기덕(權基德, 1856~1898)이 벗들이나 문하생들과 역사, 예절, 성리학, 경전 등에 대해 문답한 것으로 현재 《삼산유고(三山遺稿)》에 실려 있다. 영행록(嶺行錄) 정의림이 영남을 유람하고 기록한 책이다. 하늘에……한다 이 말은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어떤 이가 심(心)에도 선악(善惡)이 있는가를 물었는데, 정이(程頤)가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고 하고 사물에 있으면 이(理)라고 하고 사람에 있으면 성(性)이라고 하고 몸에서 주재하면 심(心)이라고 하니, 그 실제는 하나이다. [在天爲命, 在物爲理, 在人爲性, 主於身爲心, 其實一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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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보냄 與鄭厚允 변방의 적막한 모퉁이에 현인군자가 한번 왕림해 주시어 산천초목으로 하여금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소식이 막혀 적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7월 사이에 을지(乙枝)에 도착하여 비로소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로 고요히 수양하시는 체후는 시절과 더불어 강녕하시며, 영종씨(令從氏)는 어떠하십니까?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 산석(山石 김현옥(金顯玉)), 순경(舜卿), 자후(子厚) 및 알고 있는 벗들은 모두 편안합니까. 농사가 흉년이 든 가운데 귀중(貴中)은 어떠하신지요? 동쪽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날마다 마음이 달려갑니다. 저는 현재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나머지는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날로 몸은 노쇠하고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구구한 이의 구업(舊業)은 만분의 일도 수습하지 못하니, 슬픔과 탄식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작년 2월에 은혜로이 보내 주신 편지는 지금 하형(夏兄)이 왔을 때 비로소 받았지만 바쁘고 어수선하여 자세히 보지 못하다가 나중에 보니 또한 다소 논의할 것이 없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전 편지에서 "원두(源頭)로 말하면 이 이(理)가 있고 이 기(氣)가 있으니, 이는 이(理)가 주재(主宰)가 되는 소이(所以)이다. 당체(當體)로 말하면 이 기가 있어 이 이를 갖추고 있으니, 이는 심이 주재가 되는 소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형이 논박하여 말하기를 "이가 주재가 되는 것은 다만 원두에서 말할 수 있지만, 품부받은 이후는 한결같이 기가 주(主)가 되는 것이니 이른바 이가 주재가 된다는 것은 다만 근거가 없는 허황된 말이어서 실사(實事)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이 이(理)가 있으면 이 신(神)이 있으니, 신이라는 것은 이(理)의 오묘한 것입니다. 그 묘용을 헤아릴 수 없어 절로 일에 따라 교부(交付)하여 소이(所以)가 없어도 절로 이(以)가 되는 것이 이(理)가 주재가 되는 소이입니다. 나중에 《율리만록(栗里漫錄)》을 구했는데, 형이 산석(山石)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를 보니 "만약 이가 절로 주재가 되어 사람을 기다림이 없다고 한다면 성현이 논한바 극(極)을 세워 성(性)을 정하여 도심(道心)으로 하여금 주가 되게 한다는 여러 가지 말씀은 모두 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전 편지의 뜻과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전 편지에서 말한 원두(源頭)니 당체(當體)니 하는 것은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체에 나아가 그 본연을 궁구한다면 이것이 곧 원두입니다. 이미 이 이(理)가 있은 뒤에 이 기가 있는 것이니 이 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가 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심이 주재가 되더라도 주재가 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理)이니, 사람은 도를 넓힐 수 있고 심은 성을 단속할 수 있습니다. 형께서 인용한 "극을 세워 성(性)을 정한다.", "도심으로 하여금 주가 되게 한다."라는 등의 말은 모두 이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理)의 자연함은 실로 소이(所以)가 없고 본래 이(以)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의 신령함이 있은 뒤에 바야흐로 이 오묘함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은 고목과 불이 꺼진 재도 이 오묘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사(事)와 물(物)의 뜻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를 말하면 물이 그 가운데 있고, 물을 말하면 사가 그 가운데 있지만, 사와 물을 상대하여 말하면 사는 절로 사이고 물은 절로 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심성(心性)" 2자의 뜻도 이와 같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부동심(不動心)을 정심(正心) 이후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니, 비록 성인의 지극한 공이라도 정심 이후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정심장(正心章)」에서 이른바 우(憂), 환(患), 공(恐), 구(懼) 등의 말20)은 동심(動心)의 공이 아님에 있어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을지(乙枝)에서 《대곡유집(大谷遺集)》21)을 본 다음 가지고 와서 깨끗하게 써서 편을 완성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 노형(老兄)께서 교정하고 교감하고 산석(山石)이 편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도 당시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어찌 홀로 조금이라도 보충하고 성과를 내는 수고로운 정성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격언(格言)과 요어(要語) 및 논변한 것이 정밀한 곳은 아침저녁으로 펴서 읽을 수 있어서 손에서 놓지 않고자 합니다. 행장(行狀)은 송사(松沙)가 이미 기술하였고, 전(傳)은 제가 형의 말씀대로 또한 집필하였습니다. 《정암집(靜菴集)》 2질은 삼지재(三芝齋)에게 부탁하였지만 다만 일을 주관한 사람들이 지금 경락(京洛)에 있으므로 운반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내년 봄 뇌용정(雷龍亭) 유람은 송사(松沙)께서 장차 옮겨서 황산재(凰山齋)22)에서 모임을 가지려 하니, 아마도 그때 선사의 묘비(墓碑)에 관한 일이 마무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天荒寂寞之隅。得賢人君子一番光顧足令草水勤榮。駕旋消息。寂然無際。七月間到乙枝。始得聞之矣。未審伊後燕養候節。與時康泰。令從氏何狀。溪南山石舜卿子厚及所知諸益。一齊平適耶。年事不均。未知貴中何如。瞻向東雲。無日不馳情。弟見樣依舊。餘無可道。惟是衰徵日侵。世故日深。而區區舊業。未見有萬一之收。悲憤憂嘆。曷有涯極。去年二月所惠書。今夏兄來時。始已得之。而拘於怱撓未得仔細追後見之亦不無多少商確處鄙前書有曰以源頭而言。則有是理而有是氣。此理之所以爲主宰也。以當體而言。則有是氣而具是理。此心之所以爲主宰也。兄駁之曰。理爲主宰。只可以言於原頭。而稟賦以後。一是氣爲之主。則所謂理爲主宰者。只是懸空虛說。而無實事也。夫有是理。斯有是神。神也者。理之妙也。其妙用不測。自有隨事交付。無所以而自以者。此理之所以爲主宰也。其後得栗里漫錄。見兄所抵山石第二書。有曰。若以理自爲主宰。而謂無待乎人。則聖賢所論立極定性使道心爲主諸般說話。皆可廢歟云云。此與前書之意。不其大相懸絶耶。弟前書所云源頭當體。非有判然地頭。卽此當體而究其本然。則這便是源頭也。旣有是理而后有是氣則是氣之自始至終。非理之所爲耶。然則。雖曰心爲主宰。而其所以爲主宰。理也。人能弘道。心能檢性。及兄所引立極定性使道心爲主等語。皆非此義耶。理之自然。固無所以而自以然必須氣之靈而後。方有是妙。不然。枯木死灰。亦可謂有是妙耶。朱子言事物之義曰。言事則物在其中。言物則事在其中。事物對言。則事自事物自物弟以爲心性二字之義。亦如是云耳。且以不動謂之正心以後事。不可。雖聖人之極功。於正心以後。更無可去處。況正心章所論憂患恐懼等語。其非不動心之功耶。幸加敎之也。向於乙枝見大谷遺集。因以袖來。思欲淨書成篇耳。嗚乎。老兄勘校之。山石編輯之。而弟亦不可謂非當日知舊之一。則安獨無一分補效之勞乎。況其格言要語。及論辨精微處。有可以晨夕披玩而不欲離也。行狀松沙已述之傳。則弟依兄敎。亦爲下筆耳。靜菴集二帙。託于三芝齋。但其主事諸員。今在京洛。故未得運送耳。明春雷龍之游。松沙將欲移爲凰山之會。蓋其時先師墓碑役。將就故也。 정심장(正心章)에서……말 《심경부주》 권2 〈정심장(正心章)〉에 "우환(憂患)과 공구(恐懼)는 똑같은 뜻인 듯하다고 묻자, 주자가 똑같지 않다. 공구는 당장에 핍박함이 긴급한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공구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게 하는 것이요, 우환은 장래에 큰 화복과 이해가 있음을 사려하여 미리 방비하는 것이다.[ 問憂患恐懼四字, 似一般. 曰不同, 恐懼是目下逼來得緊底, 使人恐懼失措. 憂患是思慮預防將來有大禍福利害.]"라고 한 내용을 이른다. 대곡유집(大谷遺集) 김석귀(金錫龜)의 문집으로 1902년에 간행하였다. 황산재(凰山齋)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 황산마을에 있는 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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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보냄 與鄭厚允 영남과 호남은 동떨어져 있어 인편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상(時象)은 헤아릴 수 없고 도로가 막혔습니다. 세간의 일이 쇠락하고 종유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남이 이와 같단 말입니까. 문을 닫은 채 병으로 신음함에 다만 한없는 회포가 밀려오니, 마치 늙은 누에 뱃속의 실처럼 쌓이고 또 쌓여 답답할 따름입니다. 지난번에 함안(咸安) 박군(朴君) 편에 인편이 급하여 겨우 몇 글자를 적어 보냈는데 받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논변한 전변(田辨)은 과연 너무나 소략합니다. 형이 분별한 것에 의지하여 대략 수정하여 조만간에 나아가 질정할 계획입니다. 삼가 형이 분별한 것을 보니, 인용한 것이 매우 넓고 헤아린 것이 매우 합당합니다. 그 말은 조리가 있고 뜻은 엄밀하여 사문(斯文)의 우익(羽翼)이 되고 후학의 사표가 될 수 있으니, 비단 한쪽 사람만 거울삼아야 할 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쓸쓸히 홀로 지내는 나머지에 입으로는 강론하는 것이 없고 귀로는 경계하는 말을 듣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강론하거나 크게 경계하는 말을 집을 나가지 않고 여기에서 누릴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비록 자리를 함께하는 때라도 곡진하고 섬세함은 필시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가운데 소소하게 흐릿한 곳이 없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대략 아뢰겠습니다. 대저 '심(心)' 자의 본래 면모는 영(靈)과 이(理)를 합하여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이른바 "성과 지각을 합해서 심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合性與知覺 有心之名]"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그러나 심(心)을 영(靈)이라고 하더라도 실로 불가하지 않고, 심을 이(理)라고 하더라도 불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신령한 바는 이(理)에 있고 중요한 바도 이에 있으니, 형이 이른바 성정 밖에는 더 이상 달리 심이 없다는 것과 영이 도움이 된다는 등의 말은 모두 지나친 의론이 아니고, 제가 종전에 이것이 지나친 의론이라고 의심한 것이 바로 참으로 지나친 의론입니다. 그러나 '심(心)'과 '성(性)' 자를 가지고 대거(對擧)하여 말하면 또한 분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자(孔子)가 이른바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저절로 법도를 넘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한 말, "안회는 그 마음이 인을 어기지 않았다.[回也 不違仁]"라고 한 말, "사람이 도를 크게 할 수 있다.[人能弘道]"라고 한 말과 장자(張子)가 이른바 "심은 성을 검속할 수 있지만 성은 심을 검속할 줄 모른다.[心能檢性 性不知檢其心]"라고 한 말과 주자가 이른바 "허령한 것이 심이고 성실한 것이 성이다.[靈底是心 實底是性]"라고 한 말은, 이는 대거하여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심(心)' 자는 오로지 이(理)로 간주해서는 안 될 듯하니, 허령한 뜻이 많은 듯합니다. 이미 법도를 넘지 않고 인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하였으니, 넘지 않고 어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물(物)이 있어야 합니다. 심과 이는 하나여서 혼연히 간격이 없으니, 여기에서 법도를 넘지 않는 것이 신묘함이 됨을 알 수 있고, 기가 그 법도를 따라 오래 하여도 잃어버리지 않으니, 여기에서 인을 어기지 않는 것이 공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넘지 않고 어기지 않는 것을 뭉뚱그려 이(理)라고 한다면 순치(馴致)하고 순숙(純熟)한 공을 볼 수 없고, 넘지 않고 어기지 않는 것은 굳이 성현이 된 뒤에 가능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넘지 않고 어기지 않는 것은 두 물건이 상대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 물건일 뿐이라면 어찌 어기지 않고 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형은 지(知)로써 시작하고 예(禮)로써 지키는 것을 가지고 이(理)로써 이(理)를 갖추고, 이로써 이를 오묘하게 한다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지로써 시작한다.[知以始之]"의 '이(以)'와 "예로써 지킨다.[禮以守之]"의 '이(以)'는 이것이 무슨 물건입니까. 게다가 "이로써 이를 갖춘다.[以理具理]"의 '이(以)'와 "이로써 이를 오묘하게 한다.[以理妙理]"의 '이(以)'는 또 무슨 물건입니까. 만약 이러한 '이(以)' 자를 뭉뚱그려 이(理)라고 한다면 이(理)에 대해서 허탄하다는 비난이 없겠습니까.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다.[人能弘道]"의 '능(能)'과 "마음은 성을 단속할 수 있다.[心能檢性]"의 '능(能)'은 또한 전적으로 이(理)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와 영을 합한 뒤에 바야흐로 일신의 주재가 되니 영이 아니면 주재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주재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이 되는 소이와 심이 심이 되는 소이는, 이 이(理)때문이니, 심이 주재하고 이가 주재하는 소이입니다. 이처럼 주장한다면 저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또 이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될 듯합니다. 형께서는 "다만 이것은 한 이(理)인데 주재하여 항상 정해진 것은 심이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은 성(性)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그 뜻이 허령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그 주장의 귀착점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쪽 사람은 다만 심이 기가 되는 것만 알아서 심이 인을 어기지 않고 심이 성을 단속할 수 있다는 설을 인용하여 주기(主氣)의 증거로 삼으니, 실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전적으로 이(理)라고 인식할 수 없는 곳에서 또한 전적으로 이(理)라고 인식한다면 본문의 뜻을 잃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신명(神明)은 전적으로 이라고 할 수 없으니, 주자 문인이 신명을 물로 삼은 것에 대해서 주자가 그렇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大學)》, 《맹자(孟子)》의 주(註)에 모두 허령과 신명으로 뭇 이치를 갖추고 온갖 일에 응한다고 하였으니,23) 여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저 정상(精爽), 허령(虛靈), 신명(神明)은 다만 한 가지 일일 뿐이고 신(神)은 다만 그 묘처(妙處)입니다. 일심(一心) 내에 어찌 정상이 있고 또 허령이 있으며, 또 신명이 있고, 또 신(神)이 있겠습니까. 형이 이른바 허령은 신명의 정상(情狀)이라고 한 것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이러하니, 이렇게 한가하게 말해선 안 되지만 마음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멈출 수 없으니, 형은 합당한 때가 아니라고 배척하지 말고 상세하게 가르쳐 주어 몽매함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실낱같은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지극의 의론을 듣는 것이 또한 저의 바람입니다. 嶺湖厓角。便禠落落。況時衆區測。途路阻搪。人事之衰替。游從之零散。如此乎。杜門吟病。惟有無窮之懷。如老蠶腹中之絲。積之又積而已。向於咸安朴君便。便急僅付數字。未知人照耶。弟所辨田辨。果疎略甚矣。依倣兄辨略加修潤。爲早晩就正計耳。竊覵兄辨。其援引甚博。稱停甚當。其辭條暢。其義嚴密。足以爲斯文之羽翼。後學之準的。非但爲一邊之人所當鑑也。弟離索之餘。口絶講討。耳絶規警。久矣。誰知大講討大規警。不出戶而得之於此耶。雖有合席之日。其委曲纖悉。想必不能如是也。但於其中。不能無小小未瑩。請略陳之。大抵心字本來面目。合靈與理而得名者也。張子所謂合性與知覺。有心之名。卽此意也。然喚心爲靈。固無不可。喚心爲理。亦無不可。況所靈在理。所重在理。則兄所謂性情之外。更別無心及靈爲資助等說。皆非過論。而弟之從前疑其爲過論者。及眞過論也。然把心性字。對擧而言。則亦不容無分別。孔子所謂從心所欲不踰矩。及回也其心不遠仁。及人能弘道。張子所謂心能檢性。性不知檢其心。朱子所謂靈底是心。實底是性。此非對擧而言者耶。此等心字。似不當專作理看。而恐靈底意爲多也。旣曰不踰不違。則其能不踰不違者。必有其物。心與理一。渾然無間。此可以見不踰矩之爲妙也。氣循其軌久而不失。此可以見不違仁之爲功也。若倂其不踰不違者而謂之理。則無以見其馴致純熟之功。而不踰不違。不必聖賢而後可也。是知不踰不違。是兩物相待之名。若只一物而已。則安有不違不踰之可言哉。兄以知以始之禮以守之。爲以理具理。以理妙理之證。然其知以始之之以。禮以守之之以。是甚物耶。且以理具理之以以理妙理之以。又是甚物耶。若以此等以字。倂謂之理。則理其無懸空之嫌耶。人能弘道之能。心能檢性之能。亦不可專謂之理。必合理與靈而後。方爲此身之主宰。非靈不能主宰。非理無所主宰。然人之所以爲人。心之所以爲心。是理也。則心之主宰。及理之所以主宰也。如此立說。恐爲不偏於彼。又爲不偏於此矣。兄曰只此一理。而主宰常定者。心。發出不同者。性。此其意非不知靈之包在裏許。而其立言所歸。不其有偏乎。一邊之人。只知心之爲氣。而引心不違仁。心能檢性之說。以爲主氣之證案。固不足道。若於不可專認爲理處。亦且專認爲理。恐亦不能無失乎。本文之義也。且神明不可專謂之理。朱門人以神明爲物。朱子不以爲不然。而於大學孟子註。皆以虛靈與神明爲具衆理應萬事。此可見也。夫精爽也。虛靈也。神明也。只是一事。而神特其妙處也。一心之內。安有精爽。又有虛靈。又有神明。又有神哉。兄所謂虛靈是神明之情狀者。未知其何如也。世色如此。不宜有此等閒說話。而心有所疑。自住不得。願兄勿以非其時而斥之。詳細永及。以祛蒙蔽。如何。一縷未泯之前。得聞至論。亦區區之願也。 대학(大學)……하였으니 《대학장구》 경 1장의 '재명명덕(在明明德)'에 대한 집주에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중리(衆理)를 갖추고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하였고, 《맹자》 〈진심 상(盡心上)〉 제1장의 집주에 "심(心)이라는 것은 사람의 신명(神明)이니, 중리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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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정후윤에게 답함 答鄭厚允 몇 년 전부터 저와 가정의 모든 일은 늙은 형의 모습을 보고 저의 노쇠함을 알 수 있고, 가난한 저의 사정을 통해 형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구구하게 서로 끝을 볼 수 있는 계획을 삼기로 기약한 것은 날로 달로 퇴락하여 더 이상 여지가 없으니, 이것이 형과 비슷하지 않는 점일 따름입니다. 서글프고 한탄스러워도 어찌하겠습니까. 앞서는 여정(汝正)이 갔었고 뒤에는 송사(松沙)의 행차가 있었습니다. 같은 도(道)와 동향에서 인편이 이처럼 있었는데 모두 한 자의 안부 편지가 없었으니, 세상사에 골몰하여 칩거하는 정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중(處中), 경함(景涵) 두 벗이 질문한 것에 기대어 형의 많은 말을 볼 수 있었으니 다행스러웠습니다. 기질 운운한 것에 대해 두 벗이 모두 미발(未發)일 때에는 기질이 없다고 하였으므로 제가 "기질은 태어날 적에 얻으니 때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수는 없다. 다만 기(氣)가 작용하지 않으면 보존된 성(性)은 순수하여 하자가 없다. 이를테면 더러운 그릇에 물을 담아 물이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흙탕물이 일어나지 않아 담은 물이 깨끗한 그릇에 있는 것과 차이가 없지만 그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고 할 수 없다. 이로써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은 기질상(氣質上)에서 말한 것이 아닌 줄 알겠다. 정자(程子)가 이른바 '사람이 태어나면서 기를 품부 받으므로 이치상 선악이 있게 마련이다.[人生氣稟 理有善惡]'라고 하였으니, 이는 기품상에서 말한 것이다. 하단에서 바야흐로 심성을 말하면서 '여기에서 볼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일찍이 이(理)에 선악이 있는 것을 미발 때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형의 의론을 보면 모두 저의 뜻과 합치합니다. 다만 사람이 태어날 때 기를 받으므로 이에 선악이 있는 것을 발용상에서 말한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매우 옳다고 여긴 것은, 이는 조금 분명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이에 선악이 있는 것은 다만 그 기품의 이를 논하였을 따름이니, 어찌 모름지기 발용과 발용하지 않은 것을 말하겠습니까. 형이 이른바 "형기(形氣) 이전에 있어서 굳이 이 성의 미발을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한 것이 이 뜻이 아니겠습니까. 경함(景涵)이 또 영(靈)은 주재할 수 없고 구응(具應)할 수 없고 오직 신(神)만 주재가 되고 구응한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그 뜻은 영(靈)을 주재로 삼는다면 이(理)가 주재를 잃지만 영(靈)이 주재가 되는 소이가 바로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듯합니다. 저는 '영이 아니면 죽은 고목과 식은 재일 따름이니, 고목과 식은 재가 무슨 주재함이 있겠는가. 오직 영한지라 이 때문에 곧 주재할 수 있고 곧 구응할 수 있다. 신(神)은 다만 묘용(妙用)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의 명칭이니, 어찌 영 밖에 또 별도로 신(神)이 있어 더불어 대대(待對)하겠는가.'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또한 형의 뜻과 합치합니다. 다만 주재가 된다는 설은 대개 묘맥(苖脈)이 있습니다. 형은 몇 해 전 신안(新安)의 간소에서 밤에 이야기할 때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형과 제가 앉아 있을 때 벗 권군오(權君五)가 곁에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군오가 말하기를 "주재자는 심이고 주재하는 것은 성(性)이다."라고 하였고, 저는 "그렇다면 심은 양쪽으로 주재함이 있는가?"라고 하고, 인하여 이것은 누구의 말인지 물으니, 군오가 말하기를 "주자(朱子)의 말이다."라고 하였는데, 형은 묵묵히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물러나 생각하기를 "군주는 한 나라의 주인이지만 명직(命職)을 받지 않으면 주인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 주가 되는 소이는 명직이니, 어찌 이것으로 양쪽의 주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마침내 군오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보잘것없는 이의 정견(定見)을 삼아 경함(景涵)과 말하여 과연 이렇게 운운한 것이 있었으니, 이 뜻은 이미 자세합니다. 지금 형의 편지를 보니 오히려 애매모호합니다. 또 말하기를 "한 영인데 양쪽으로 사용하여 기분(氣分)의 일이고, 이의 묘용이다."라고 하였으며, 단언하여 "과연 무슨 영(靈)을 가리키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영이 있는 듯합니다. 형께서 이미 경함(景涵)이 영(靈)과 신(神)을 두 물로 보는 그릇됨을 말해 놓고서 도리어 한 영(靈)을 나누어 두 개로 만든 것입니까. 인(仁)하므로 영(靈)합니다. 영의 체는 실로 이(理)이니, 이와 영이 합해야지 바야흐로 묘용이 있습니다. 영(靈)의 용(用)도 이(理)입니다. 한 '영(靈)' 자에 나아가 주(主)로 하여 말한 바의 것은 기분(氣分)과 이분(理分)이 같지 않은 것이 있어서이니, 어찌 양개(兩箇)와 양용(兩用)에 대해서 말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미발(未發)은 심(心)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동정(動靜)은 물(物)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무릇 물이 동하지 않는 것을 모두 정(精)이라고 하면 정과 미발은 그 간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태극음양권(太極陰陽圈) 운운한 것은 매우 소상합니다. 다만 심(心)은 음양(陰陽)과 같으니 정히 태극이 된다는 한 구는 견강부회한 뜻이 있는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말하기를 "심(心)이라는 것은 신(身)을 주재하여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 몸이 없으면 이 심이 없어서 기를 풀어버리고자 해도 그럴 수 없고, 그 진체(眞體)의 묘용은 이 이의 묘용이고 신(神)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이미 매우 지당합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 또 말하기를 "이는 절로 신이 있다.[理自有神]"라고 하였으니, 이 4자는 지나치게 고원한 폐단이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또한 "심(心)은 성(性)과 지각(知覺)을 합한 이름이니, 지각은 영(靈)이다. 영을 제외하고는 단지 성이라 할 수 있으며, 성을 제외하고는 단지 영이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두 가지를 합한 뒤에야 심이라고 이른다. 이 때문에 혹 영(靈)을 가지고 심이라고 말하지만 이(理)는 일찍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은 적이 없고, 혹 이를 가지고 심을 말하지만 영(靈)은 일찍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삼가 심을 이(理)로 인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가 되는 것만 알고 기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며, 심을 기로 인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가 되는 것만 알고 이가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한쪽 사람은 그 기가 되는 것만 보고 이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한쪽 사람은 그것이 이가 되는 것만 보고 기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서로 실수한 것입니다. 영(靈)을 가지고 이(理)라고 한 것은 중하게 여기는 바가 이에 있고, 심을 가지고 이라고 한 것은 중하게 여기는 바가 이에 있고, 주재를 가지고 이라고 한 것은 중하게 여기는 바가 이에 있는 것이니, 어찌 한 '이(理)' 자를 뽑아내어 영(靈)이라고 하고 심(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理)는 절로 신(神)이 있다고 말하니, 이와 같다면 한쪽에서 작용(作用)이라는 비난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겠습니까. 또 어찌 말류의 폐단이 과연 작용으로 귀결됨에 이르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겠습니까. 경함의 이른바 영(靈)은 구응(具應)할 수 없다는 설은 또한 처음 노형이 열어준 것입니다. 기억하건대, 예전에 형이 경함에게 보낸 편지에 "묘용(妙用)이 행해지는 것과 정영(精英)이 발하는 것이 바로 이른바 심(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설이 많습니다. 지금 뒤미처 기억할 수 없지만 그 가운데 "묘용이 행해진다면 정영은 그 가운데 있다."라고 하면서 도리어 정영을 들어서 대대(對對)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묘용이 행해지는 것은 오로지 이(理)에 속하여 정영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다만 진체(眞體)의 묘용이라고 운운한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또 "이(理)는 절로 신(神)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오로지 이에 속하게 됩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신(神)이라 하고 이(理)라고 하는 것은 도리어 옳지 않은 듯하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신(神)을 가지고 전적으로 기(氣)로 간주하는 것은 또 그릇되었다."라고 하였으니, 다만 이 두 가지 말을 보면 신(神)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근세에 주기설(主氣說)이 성행하는데, 입언(立言)하여 지향하는 것이 곧 이단의 학문과 같습니다. 오직 우리 선생님과 화서(華西), 한주(寒洲) 두세 선생이 밝힌 것이 명확합니다. 다만 한주의 말은 지나친 곳이 있는 듯합니다. 함께 교유한 반열로 곽면우(郭俛宇)와 같은 이는 따라서 또 지나쳤습니다. 이를테면 정영(精英)을 이로 삼고, 부곽(郛郭 외성)을 주재로 삼고, 심(心)은 음양과 같다는 것을 가지고 기록의 오류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곳이 실로 많습니다. 하지만 노형의 말이 또 종종 조금 지나친 곳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노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에게 있는 것이 비록 십분 칭정(稱停)하여 조금도 치우침이 없더라도 한 번 전하고 두 번 전하다 보면 반드시 착오가 없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구부러진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하는 것은 또한 굽은 것일 따름입니다. 어떻게 한쪽의 마음을 복종시켜 타성일편(打成一片)24)에 이르겠습니까. 이는 바로 오늘날 노형의 책임입니다. 저는 다행히 노형께서 알아주시어 그간에 받은 은혜가 많을 뿐만이 아닙니다. 더구나 선생님이 떠나신 뒤에 붕우들은 흩어지고 오직 노형만 우뚝하여 오늘날의 영광이 되니, 비록 계속해서 따르고 좇지 못했지만 일심으로 향해 가서 어찌 일찍이 잠시라도 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매양 형의 논의를 보고서 혹 마음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기에 우리 두 사람의 견해는 조금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우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삼가 죽기 전에 급급하게 나아가 질정하여 천추의 한이 되는 것에는 이르지 않고자 하였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원하건대 노형께서 자세히 분석하여 지당한 의론을 내려 주시어 아침에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구구한 저의 뜻에 부응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별지보여 주신 아무개의 변론에 대해 삼가 어리석은 저의 견해로 대략 분변하였으니, 원하건대, 형께서 일일이 보시고 가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변론을 분변하면서 다시 결점이 있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분변하겠습니까. 영(靈)은 심(心)의 측면에서 말할 수 있지만 성(性)의 측면에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理)가 아니면 영한 바가 없으니, 영한 것이 바로 이입니다. 그렇다면 기의 영(靈)은 바로 이의 묘(妙)이니, 어찌 일찍이 두 영(靈)이 있겠습니까. 묘용(妙用)할 수 있고 주재할 수 있으니, 주재하지 못하는 것이 형의 말씀과 같겠습니까. 음(陰)의 영(靈)과 양(陽)의 영은 또한 다만 이 영이고,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한 것도 다만 이 영입니다. 다만 가장 영한 가운데 영한 것은 상문(上文)의 태극과 상대하므로 혹 태극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가장 영한 것은 태극이 아닙니다. 가장 영하기 때문에 태극의 전체가 갖추어졌을 따름입니다. 하늘은 행위가 없으므로 태극으로 말하고, 사람은 행위가 있으므로 가장 영한 것으로 말하니, 공자(孔子)의 이른바 "사람은 도(道)를 크게 할 수 있다.[人能弘道]"와 장자(張子)의 이른바 "심은 성을 검속(檢束)할 수 있다.[心能檢性]"라는 것이 모두 이 뜻입니다. 그렇다면 "크게 할 수 있다.[能弘]"의 '능(能)'과 "검속할 수 있다.[能檢]"의 '능(能)'이 이른바 주재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반드시 그러한 결과가 있을 것이니, 어찌 이것을 가지고 양단이 있다고 하면서 집에는 두 주인이 있고, 나라에는 두 군주가 있는 것처럼 하겠습니까. 언젠가 저와 형 및 대곡(大谷)이 선생님을 강상(江上)에서 모셨을 적을 기억해 보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사람들은 이(理)가 어떤 물건인지 모르고 다만 '소이(所以)' 2자를 이(理)로 간주한다. 오늘날 소이(所以)를 가지고 말하는 자는 모두 이(理)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제가 신안(新安)에 갔을 적에 어떤 사람이 '소이(所以)' 자를 말하자, 형이 꾸짖으면서 "소이(所以)의 뜻은 곧 이단(異端)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수선하여 제가 비록 더 이상 말하지 못했지만 내심 삼가 의심을 품어 '소이(所以)'를 가지고 이를 말한 것은 사서(四書)의 훈석(訓釋) 및 여러 선생님의 기록에 드러난 것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당시 사람들의 폐단을 구제한 것이니 실로 이와 같아야 어찌 하지만 노형께서 따라서 이처럼 잘못하시는 것입니까. 노형의 오늘날 말은 또한 당일의 견해가 아님이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비록 매우 어리석지만 대략 주기(主氣)의 그릇됨을 아니, 어찌 전적으로 심(心)을 기(氣)로 인식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실로 이(理)로 여기지만 형이 "이(理)는 절로 신(神)이 있다."라고 한 말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부디 살펴 주십시오. 이전 편지에서 이미 완성하였지만 또 여운이 남아 있어 감히 이렇게 언급합니다. 대개 인편을 구하기 어려우니, 또 어느 때 이것을 논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운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만 우선 그칩니다. 年歲以來。身家凡百。以兄之老。而可以知弟之衰。以弟之貧。而可以知兄之生。但區區相期以爲究竟之計者。日頹月落。更無餘地。此爲不似兄處耳。悲嘆何爲。前有汝正之去。後有松沙之行。同省同鄕。便禠若此。而皆未有一字之問。其滾蟄之狀。從可知矣。賴有處中景涵二友所質問。得見兄多少說話爲幸。氣質云云。二友皆以爲未發無氣質云。故弟謂氣質得於有生。不可以隨時有無。但氣不用事。則所存之性。純粹無瑕。如汗器貯水。水止不動。則泥滓不起。而所貯之水。與在潔器者。無異。但其器。則不可謂之潔器也。是知未發已發。非氣質上說。程子所謂人生氣稟。理有善惡。是氣稟上說。至下段方說心性。此可見也云云。而未嘗以理有善惡爲未發時。今見兄論。皆與鄙意合。但以人生氣稟。理有善惡。爲發用上說。爲極是。此則小有未瑩。理有善惡。特論其氣稟之理而已。何須說發用與未哉。兄所謂及在於形氣上面。而不必言此性未發者。非此意耶。景涵又以爲靈不能主宰。不能具應。惟神爲主宰爲具應。蓋其意。若以靈爲主宰。則恐理之失主宰。而不知靈之所以爲主宰者。卽理也。弟謂非靈。則枯木死灰耳。枯木死灰何主宰之有。惟其靈也。是以便能主宰。便能具應神只是妙用不測之名。豈靈之外。又別有神與之待對哉。此亦與兄意合。但所以爲主宰之說。蓋有苖脈。兄不記昔年新安刊所夜話時乎。兄與弟坐。權友君五在傍語次。君五曰主宰者心。主宰底性。弟曰。然則心有兩主宰乎。因問此誰語也。君五曰。朱子語也。兄則黙然無語。弟退而思之。以爲君爲一國之主。而非所受之命職。則無以爲主。此所以爲主者。命職也。豈可以此而爲兩主乎。遂以所聞於君五者。爲區區之定見。而與景涵語。果有是云云矣。此意已熟。今見兄書。而猶瞢然也。又云一靈而兩用之。曰氣分事。曰理之妙。而斷之曰。果指甚箇靈。詳其語意。似有兩箇靈。兄旣言景涵靈神二物之非。而乃析一靈爲兩箇耶。仁故靈。靈之體。固是理。理與靈合。方有妙用。靈之用亦是理。是就一靈字。而所主而言者。有氣分理分之不同。曷嘗有兩箇兩用之可言乎。未發是心上說。動靜是物上說。凡物之不動者。皆謂之靜靜與未發不其有間乎太極陰陽圈云云極爲消詳。但心猶陰陽正爲太極一句。似有些牽强底意。未知何如。又曰。心者主乎身而得名者也。無是身則無是心。卸却氣者不得。而其眞體妙用。乃此理之妙。至神而不測者也。此語。已是十分亭當。而其下又曰。理自有神。此四字。不其無過高之敝耶。弟亦以爲心是合性與知覺之名。知覺則靈也。際了靈。只可謂之性。除了性只可謂之靈。必合二者而後。方謂之心。是以或以靈言心。而理未嘗不在其中。或以理言心。而靈未嘗不在其中。弟嘗竊謂認心爲理。非病也。知爲理而不知爲氣。是病也。認心爲氣。非病也。知爲氣而不知爲理。是病也。今一邊之人。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一邊之人。見其爲理而不見其爲氣。蓋胥失之也。以靈爲理者。以所重在理也以心爲理者。以所重在理也。以主宰爲理者以所重在理也。豈可剔撥出單理字。而謂之靈。謂之心乎。今曰理自有神。如此則何以解一邊作用之譏。又安知未流之敝果不至作用之歸乎。景涵所謂靈不能具應之說。亦未始非老兄啓之也。嘗記昔年兄與景涵書。有曰。妙用之行。精英之發。卽所謂心。如此說多矣。而今不可追記。但曰。妙用之行。則精英在其中矣。而及擧精英曰對之。然則妙用之行。專屬於理。而無俟乎精英矣。今但曰眞體妙用云云。則好矣。而又曰理自有神。然則至神不測。專屬乎理也。朱子曰。謂神謂理。却恐未然。又曰將神專作氣看。又誤。只此二語。神之爲義。不其瞭然乎。近世主氣之說盛行。其立言指歸。便同異學。惟我先師及華西寒洲一三先生發揮之廓如也。但寒洲之言。恐有過處。其游從之列。如郭俛宇因以又過之。如以精英爲理。以郛郭爲主宰以心猶陰陽爲記錄之誤。如此處固多矣。不意老兄之言。又不無種種微過處。未知老兄以爲如何。在我雖十分稱停。無一毫之偏。一傳再傳。不可保其必無差失。況矯枉過直。是亦枉而已。何以服一邊之心。而至於打成一片乎。此正今日老兄之責也。弟幸爲老兄所辱知。而前後受賜。不啻多矣。況師門逝後。朋知零散。而惟老兄巍然。爲今日之靈光。雖不能源源從逐。而一心向逞。何嘗以斯須而忽忘哉。每見兄論。或不能無疑於心。以爲吾兩人之見。不宜有絲毫之差爽。兩且乃爾耶。切欲汲汲就正於未死之前。無至爲千古之恨。而迄未遂矣。願老兄細細分析。垂賜至當之論。以副區區朝聞夕可之意如何。別紙俯示某辨。謹以愚意。略加辨焉。願兄一一視至。以可否之也。辨人之辨。而不免復有疵類則何以辨爲夫靈可以言心。不可以言性。然非理則無所靈。所靈乃理也。然則氣之靈。卽理之妙也。曷嘗有二靈。有能妙用者。有能主宰者。有不能主宰者如兄敎乎。陰之靈陽之靈。亦只是此靈。得其秀而最靈。亦只是此靈。但最靈之靈。與上文太極相對。故或認以爲太極。然最靈非太極最靈。故太極之全體。具焉耳。天無爲。故以太極言。人有爲。故以最靈言。孔子所謂人能弘道。張子所謂心能檢性。皆此意也。然則能弘之能。能檢之能。非所謂主宰處乎。旣有其能。必有其所。豈可以此而謂有兩層。如家之有二主國之有二君乎。嘗記弟與兄及大谷侍先師于江上也。先師曰。今人不識理爲何物。但將所以二字作理看。今之言所以字者。皆不識理之人也。其後弟之往新安也。有人言所以字。兄責之曰。所以之義。便同異端云云。稠擾之中。弟雖不能更請。而心竊疑之。以爲以所以言理。著於四書訓釋及諸家者。不啻多矣。先師之言。捄時人之敝。固當如此。而豈老兄因以過之如此乎。老兄今日之言。亦未始非當日之見也。如何如何。弟雖至愚。粗知主氣之非。豈有專認心爲氣之理乎。弟固以爲理而但不似兄所謂理自有神之語耳。千萬諒察。前書旣成而又有餘菀。敢此及之。蓋便人難得。又不知何時可以論此故也。餘菀非止於此。而姑止之耳。 타성일편(打成一片) 불교(佛敎)의 용어로, 피아(彼我)ㆍ주객(主客)ㆍ선악(善惡)ㆍ호오(好惡) 등 모든 상대적 대립 관념을 타파하여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로 조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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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김이수【덕희】에게 답함 答金而修【德熙】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의 행적을 염려하여 편지를 보내 위로함이 이와 같음에 이르니, 젊은 청년이 오랜 교의를 잊지 않는 의리에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네. 또한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한데다가 서당을 청소하고서 책을 읽은 지가 상당히 되었다고 하니, 더욱 듣고 싶었던 바이네. 사람이 그 누가 허물이 없겠는가마는 고치는 것이 가치가 있네. 더구나 젊은 나이에 자잘한 실수를 참으로 고쳐서 다시 싹트지 않게 한다면, 거울에서 때를 씻어내어 거울이 다시 밝아진 것과 같으니, 어찌 높게 치지 않으랴. 모름지기 오래 묵은 습관을 통렬하게 씻어내고 굳은 의지로 공부를 행하여 전날의 비웃음과 비난을 자자한 칭송으로 바꾸는 실상이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평소 사색하다가 통하지 못하면 일단 한쪽으로 제쳐두고서 간혹 그 쉬운 것을 먼저 생각하던가 혹은 그 어려운 것을 먼저 생각하다보면 반드시 비슷한 것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날이 있을 것이네. 더구나 어진 스승과 신실한 벗은 세상에 적지 않으니 때로 교유하면 어찌 질문에 답을 얻을 날이 없겠는가.질문 : 주자는 "심(心)은 동정(動靜)을 관통하여 있지 않음이 없다."51)라고 하였고, 정자는 "심은 본래 선하지만, 사려로 발하게 되면 이것을 정이라고 해야 하고 심이라 할 수 없다."52)라고 하였습니다. 주자의 말로 보자면 심이 미발과 이발을 겸하기 때문에 심에 선과 불선이 있는 것이고 정자의 말로 보자면 미발일 때에는 심이지만 이미 발한 뒤에는 즉 심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에는 불선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답변 : 정자는 심(心)을 이발처로 삼은 것이 있고 또한 심을 미발처로 삼은 것이 있으니, 다만 그 본문의 뜻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하네. 그러나 개괄하여 심(心)자의 뜻을 말한다면 미발과 이발을 아울러 거느린 것이네. 하단의 '선, 불선' 운운한 것은 아마도 옳은 듯하네.질문 : 정자는 "천지 만물의 이(理)는 홀로 있는 것은 없고 반드시 상대가 있으니, 안배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한밤중에 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춤을 추고 발로 뛰게 된다.……"53)라 하였습니다. 대개 정자가 평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매우 절실하고 긴요한 것을 깨우침이 대단히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다만 '홀로 있는 것은 없고 반드시 상대가 있는데 안배한 것이 아니다.'는 이것에 대해 어찌하여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고 발을 구르게 된다고 하였습니까.답변 : 생각을 지극히 하다가 이치가 순해져서 얼음이 풀리는 경우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쁜 마음이 솟구치니, 다만 '홀로 있는 것은 없고 상대가 있다.'는 것에만 그런 것이 아닌데, 특별히 '홀로 있는 것은 없고 상대가 있다.'는 것에 기인하여 이런 뜻을 드러낸 것이네.질문 : 태극은 음양의 주재(主宰)가 되고 심(心)은 성정의 주재가 되는데, 주자는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다."54)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은 심의 주재가 되는 것입니까.답변 : 심은 그 성을 검속하고 성이 그 심을 검속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을 심의 주재자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원두로써 말한다면 성은 주재가 되고 심은 활용하는 그릇이 되며, 당체로써 말한다면 심은 주재가 되고 성은 담아놓은 리(理)가 되네.질문 : 리는 함이 없고 기는 함이 있는데,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정하여 음을 낳는다면 다만 함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태극은 어떻게 동정을 합니까.답변 : 동하지만 동함이 없고 정하지만 정함이 없는 것이 바로 태극의 오묘함이네.질문 : 이미 "성이 선하다."55)고 하였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사람이 태어나 고요할 때 이상의 단계를 말한 것입니다. "잇는 것이 선이다."56)라는 말은 아마도 성에 선악이 섞여 있다는 말인 듯합니다.답변 : 인의예지는 원형리정(元亨利貞)에 짝하여 우리 마음에 갖춰진 것이니, '사람이 태어나 고요할 때 이상의 단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이를 수 없으며, 또한 '잇는 것은 선이라는 이하의 단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고 이를 수 없네.질문 :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和)라고 하니, 중은 리(理)요, 화는 기(氣)이며, 중은 체요 화는 용이며, 중은 성이요 화는 정입니까.답변 : 이미 발했다면 혹 기를 말할 여지가 있지만 화(和)는 기가 발한 것은 통틀어 말한 것이 아니네. 발하여 절도에 들어맞은 연후에 화가 되니, 이윽고 절도에 맞는다면 선이라 이를 수 있지만 악이라 이를 수 없으며 리라고 이를 수 있지만 기라고 이를 수 없네. 念此萍水羈寓之跡。專書委問。至於如此。妙年存舊之義。至爲感感。且審重省康寧。而掃塾讀書。且又有日。尤副願聞。人孰無過。改之爲貴。況此初年少少之失。苟能改革而不復萌焉。則如鑑之去塵。鑑復明焉。豈不可尙。須痛洗宿習。刻意下功。使前日之嗤訕。一變爲藉藉稱賞之實如何。日間思索。不通且置之。或先其易者。或先其難者。必有類會傍通之日。況賢師良朋。世不乏人。時節相從。豈無辨質之日乎。朱子曰。心則貫乎動靜而無不在焉。程子曰。心本善。發於思慮。則可謂之情。不可謂之心。以朱子之言。則心兼未發已發。故心有善不善。而以程子之言。則未發時是心。而已發後。便不是心也。故曰心無不善云云。程子有以心爲已發處。有以心爲未發處。惟看其本文所指之義如何耳。然槪言心字之義。則統未發已發者也。下段善不善云云。恐得之。程子曰。天地萬物之理。無獨必有對。非有安排也。每中夜而思。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云云。盖程子於平日思爲之間。則其親切緊要處。想爲許多。而只於此無獨有對非有安排。謂不知舜蹈耶。致思而到理順氷釋處。自不覺有油然喜悅之意。非獨於無獨有對而然。特因無獨有對而發此義耳。太極爲陰陽之主宰。心爲性情之主宰。而朱子曰。性猶太極也。心猶陰陽也。然則性爲心之主宰耶。心能檢其性。性不知檢其心。則豈可謂以性爲心之主宰耶。以源頭說。則性爲主宰。而心爲資用之器。以當體說。則心爲主宰。而性爲該具之理。理無爲。氣有爲。而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則只此無爲無有者。有何動靜耶。動而無動。靜而無靜。此太極之妙。旣曰性善。則仁義禮智。是人生而靜以上說也。而若曰繼之者善云。則恐或有性混善惡之說也。仁義禮智。配元亨利貞而具於吾心。則不可謂非人生而靜以上說。亦不可謂非繼之者善以下說也。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者理。和者氣。中者體。和者用。中者性。和者情耶。已發則容或有言氣之地。而和者不是統言氣發也。發而中節然後謂之和。旣而中節。則可謂之善。而不可謂之惡。可謂之理。而不可謂之氣也。 심은……없다 《주자대전》 권41 건도 8년의 〈답풍작숙(答馮作肅)〉에 보인다. 심은……없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어떤 이가 심(心)에도 선악(善惡)이 있는가를 물었는데, 정이(程頤)가 답하기를,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고 하고 사물에 있으면 이(理)라고 하고 사람에 있으면 성(性)이라고 하고 몸에서 주재하면 심(心)이라고 하니, 그 실제는 하나이다. 심(心)은 본래 선하지만 사려로 발하게 되면 선함과 불선함이 있게 되니, 만약 이미 발하였다면 정(情)이라고 해야 하고 심(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在天爲命, 在物爲理, 在人爲性, 主於身爲心, 其實一也. 心本善, 發於思慮, 則有善有不善, 若旣發, 則可謂之情, 不可謂之心.]"라고 하였다. 천지……된다 《근사록》 〈도체(道體)〉에 보이는 말이다. 성은……같다 《주자어류》 권5 〈성리 이(性理二)〉에 나오는 말이다. 성은 선하다 바로 앞의 주에 보인다. 잇는 것이 선이다 《주역》 〈계사전 상〉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하니 이것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선이요, 이것을 이루어 갖춘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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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문【규덕】에게 답함 答裵純文【奎悳】 헤어진 뒤로 그리움에 답답한 마음은 오래될수록 더욱 깊어지네. 한 통의 편지가 이르니 수많은 보배를 얻은 것 그 이상으로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신 듯하여 나도 모르게 마음이 트였네. 인하여 부모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니 이 때문에 걱정스럽네. 좋은 의원을 맞아들이고 약을 쓰는 데 방법이 있을 것이며 정성스런 효도에 신령이 도울 것이니, 아마도 크게 웃고 나는 것처럼 다니는 것57)은 평상을 회복한지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라 생각되네. 우러러 간절히 듣기 원하는 바네. 부모를 모시고 남은 힘으로 이치를 연구함이 응당 멈추지 않았을 것인데, 그대처럼 빼어난 자질로 항상 민첩하게 공부를 행한다면 그 발전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노력하고 더욱 노력하게나. 다만 학문하는 방법은 지난번 서로 만났을 때 그 대략을 말하였으니, 반드시 내가 말한 것이 그대의 처지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소홀하게 여기지 말게나. 나는 노쇠함이 날로 심하여 모든 생각이 재처럼 식어버렸으니, 때가 지나가버려 제 때 공부하지 못한 한스러움이 간절할 따름이네. 다만 바라건대 나를 종유하는 젊은이로 우리 순문 같은 이가 나를 위해 분발하여 그 빛이라도 쬐고 싶네. 영남의 벗인 정주경(鄭周京)이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는데, 과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다 이야기하였는가. 근래 가뭄 때문에 학도들이 흩어져 떠났으니, 이런 한가로운 틈을 타서 삼산(三山)으로 가려고 하는데, 만일 그렇게 한다면 며칠 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네. 《소학》에서 '도(道)'를 말하거나 '방(方)'을 말하였는데 서로 뜻이 심하게 다르지 않으니, 도는 대강 말한 것이요, 방은 행하는 방법이네. 공자 문하에서 육예(六藝)58)를 어찌 급하게 말한 것이 있겠는가. 예를 들면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하는 것은 예가 아님이 없으며, 길게 읊조리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는 것은 음악 아님이 없으니,59) 이는 참으로 초학자들이 공부를 시행할 곳이네. 부모가 계시면 멀리 놀지 않는다60)는 것은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는 일반적인 법이며, 공자가 천하를 수레로 떠돈 것은 성인이 당대를 구제하려는 권도(權道)이네. 더구나 공자께서 천하를 수레로 떠돈 것이 어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였겠는가. 아울러 자세히 살펴보기 바라네. 別後戀菀。久而彌至。一書何啻百朋。如渴得飮不覺豁然仍審庭候欠和。是用貢慮。迎合有方。誠孝有相想。矧翔復常。亦已久矣。仰切願聞餘力溫理。計應不住。以若秀爽之資。有此時敏之功。其進可量。勉之勉之。但爲學之方。向日相聚時。槪以奉告。必不以不恕而忽之也。義林衰頹日甚。百慮灰冷。只切過時未逮之恨而已。只願年少遊從如吾純文者。爲之奮勵以被餘光也。嶺友鄭周京歷路相面。果能傾倒津津否。近因旱故。學徒散去。竊欲因此暇隙。欲作三山行。如果則歷訪有日耳。小學之言道言方。無甚異義。道是大綱說。方是爲之之法。孔門六藝。何驟語之有。如灑掃應對。莫非禮也。詠歌舞蹈。莫非樂也。此正初學下手處。父母在不遠遊。此孝子事親之常法。孔子轍環天下。此聖人濟時之達權。況孔子轍環。豈必親在時耶。倂加詳焉。 나는 것처럼 다니는 것 어버이 병이 나았다는 의미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서 "부모가 병환이 있으면 갓을 쓴 자는 머리를 빗지 않고 나는 듯한 모습으로 걷지 않으며, 웃을 때 이끝이 보이지 않는다.〔父母有疾, 冠者不櫛, 行不翔, 笑不至矧.〕"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육예(六藝) 중국 주 나라 때 행해진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6가지 교육 과목을 말한다. 물 뿌리고……없으니 《소학(小學)》의 제사(題辭) 즉 머리말에 "소학의 교육 방법으로 말하면,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동작이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고 나서 여력이 있으면, 시(詩)를 외우고 서(書)를 읽으며, 읊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어, 생각이 혹시라도 지나침이 없게 하는 것이다.〔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라고 하였다. 부모가……않는다 《소학》 〈명륜〉에 "부모가 계실 때에는 멀리 나가서 노닐지 말 것이요, 나가서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 하였는데, 원래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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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여【순룡】에게 답함 答鄭雲汝【淳龍】 자주 찾아준 뜻에 감사하여 항상 한번을 찾아가 답례를 하려고 하였는데, 지척의 거리에서도 성의가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찾아가지 못하였으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네. 그런데 어찌 어진 그대가 자신처럼 하지 않은 것을 따지지 않고 편지로 안부를 이처럼 지극히 정성스럽게 물어보는지 대단히 감사하네. 인하여 삼가 세모에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으며, 봉양하고 남은 힘으로 이치를 연구하여 한결같이 크게 발전한다고 하니 실로 듣고 싶었던 바이네. 나는 병든 몸으로 여관에서 체류하고 있는데, 온갖 감회로 번뇌하고 있네. 다만 처중(處中)과 아침저녁으로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다소간 유익함을 있음을 알게 되니, 이로써 위안을 삼네. 마음이 장수가 되고 뜻이 장수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두 장수가 아니라 다만 본 바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네. "천군(天君, 마음)이 태연해져서 온 몸이 그 명령을 따른다."36)는 말은 마음이 장수가 되고 기(氣)가 졸병이 됨을 이르네. "뜻이 이르는 바에 기가 반드시 따른다."37)는 말은 뜻이 장수가 되고 기가 졸병이 됨을 이르네. 마음과 뜻은 서로 다른 두 물건이 아니며, 병졸은 서로 다른 군진(軍陣)이 아니네. 기에는 맑음과 탁함이 있으니 갖춰진 리(理)도 그에 따라 맑고 탁해지며, 기에는 순수함과 잡박함이 있으니 갖춰진 리(理)도 그에 따라 순수하고 잡박해지네. 만약 사물 상에 나아가 본연의 리(理)를 가리킨다면 기에는 치우치거나 온전한 서로 다른 경우가 있으나 리에는 치우치거나 온전한 서로 다른 경우가 없으며, 기에는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있으나 리에는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없으니, 비록 식은 재나 마른 나무의 리라도 양의와 사상과 팔괘의 조종(祖宗)이 됨에 해가 되지 않네. '사람이 나서 고요한 것'이란 구절은 천도의 성(誠)이요,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인다.'38)는 구절은 성인의 성이네. 크게 말하자면 성(性)은 모든 사물의 한 가지 근원이니, 어찌 성 밖의 사물이 있으랴. 작게 말하자면 모든 사물이 모두 나에게 갖춰져 있으니 또한 어찌 성 밖의 사물이 있으랴.질문 : "덕을 천성적으로 타고나서 아무런 불편 없이 행하는 분을 성인이라 하고, 덕을 회복하여 고수하려 하는 이를 현인이라 한다."39)는 말에서, 첫 부분은 성인에 대해 말하고 다음 부분은 현인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에는 신(神)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현인이 도리어 성인과 신의 중간에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신은 단계적으로 논하면서 확정한 명칭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말하였네. 하루에는 네 계절의 상(象)이 있고 한 때에도 네 계절의 상이 있으니, 한 번 눈을 깜박거리거나 한 번 숨을 쉴 동안에도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네.답변 : 정(靜)은 천지의 마음이 아니며, 동(動)도 천지의 마음이 아니네. 다만 동하기 시작할 때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네.40) 또한 이른바 '본다.'는 것이 어찌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하겠는가.질문 : 감(感)과 응(應)41)은 다만 기의 굴신(屈伸)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굴(屈)하거나 신(伸)하는 이치가 있으니, 어찌 다만 한 개 감과 응에 불과할 따름이겠습니까.답변 : 감(感)하고 응(應)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지만 감하고 응하게 시키는 것은 리(理)가 아니겠는가. 그 종을 보지만 그 주인을 보지 못하며 또한 주인과 종이 하나인 것을 보지 못하니, 아마도 온당하지 않은 듯하네.질문 : "안자는 성냄을 옮기지 않았다."42)는 주에서, 주자가 "성인은 성냄이 없으니 어찌 타인에게 옮기지 않음을 기다릴 것인가.……'43)라고 하였습니다. 혈기의 성냄은 성인은 참으로 없지만 의리의 성냄은 성인이 어찌 다만 없겠습니까.답변 : 만약 의리의 성냄까지 아울러서 없다고 한다면 이는 호흡이 없이 죽은 사람이네. 순(舜)이 삼묘(三苗)를 정벌하고44) 문왕이 숭(崇)나라를 정벌하고45) 주공이 무경(武庚)을 주살한 것46)은 모두 어째서이겠는가.질문 : "천지의 떳떳함은 그 마음이 만물에 두루 미치되 사사로운 마음 씀이 없기 때문이요, 성인의 떳떳함은 그 정(情)이 만사를 따르되 사사로운 뜻이 없기 때문이다.……"47)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나아가서는 마음[心]을 말하고, 사람에 나아가서는 정(情)을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주에서 "확연히 크게 공정함은 바로 고요하여 동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고, "이른바 만물에 두루하고 만사에 순응한다는 것은 바로 확연하여 크게 공정함을 이른다.……"라 하였는데, 만사에 순응하는 것은 정(情)입니다. 정도 또한 고요하여 동하지 않습니까.답변 : 하늘은 의도한 것이 없으므로 마음[心]이라 말할 수 있으며 사람은 의도한 것이 있으므로 정(情)이라 말할 수 있네. '확연하여 크게 공정한 것'은 '사물이 오면 순히 응한다'는 것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주에서 '고요하여 동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하였네. 그러나 그 실상은 미발(未發)이나 이발(已發)이나 확연하게 크게 공정하지 않음이 없네. 感屢顧之意。每欲一造修謝。而咫尺落落。尙爾未就。念念不安。豈意賢者不較不猶。而書尺存訊。若是勤至乎。愈用感感。謹審歲暮侍旁經履。連膺茂祉。餘力溫理。一味長長。實叶願言。義林病滯旅榻。百感惱人。惟與處中。晨夕相守。不無相觀多少之益。以是爲慰耳。心爲帥。志爲帥。此非二帥。惟在所見之如何。天君泰然。百體從令。此心爲帥而氣爲卒徒也。志之所至。氣必至焉。此志爲帥氣爲卒徒也。心志非二物。而卒徒非別陣也。氣有淸濁。則所具之理。亦隨而淸濁。氣有粹駁。則所具之理。亦隨而粹駁。若就物上。指其本然之理。則氣有偏全。而理無偏全。氣有增減。而理無增減。雖煨燼枯槁之理。不害爲兩儀四象八卦之宗祖也。人生而靜以上。天道之誠也。感物而動以下。聖人之誠也。大而言之。則性者萬物之一原。豈有性外之物乎。小而言之。則萬物皆備於我。亦豈有性外之物乎。問性焉安焉之爲聖。復焉執焉之爲賢。首言聖。次言賢。終言神。賢反在聖神中何也。神不是階級確定之名。故別言之。一日有四時之象。一時有四時之象。在於一瞬一息。莫不皆然。靜非天地之心。動非天地之心。但於動之始。乃見天地之心也。且所謂見者。豈目見之見耶。感與應。只是氣之屈伸而已。其上有所以屈所以伸之理。豈只有一箇感與應而已哉。感與應固氣也。而使之感與應。非理耶。見其僕而不見其主。又不見主僕之爲一。恐未安。問顔子不遷怒註。朱子曰。聖人無怒。何待不遷云云。血氣之怒。則聖人固無。義理之怒。則聖人豈獨無耶。若倂與義理之怒而無之。則是沒氣息底死人。舜之征苗。文王之伐崇。周公之誅武庚。皆何以哉。天地之常以其心。普萬物而無心。聖人之常以其情。順萬事而無情云云。就天言心。就人言情何耶。註曰。擴然大公。是寂然不動。又曰。所謂普萬物順萬事者。卽擴然而大公之謂云云。順萬事者情也。情亦寂然不動耶。天無爲故可言心。人有爲故可言情。擴然大公。對物來順應說。故註以寂然不動釋之。然其實未發已發。無非擴然大公。 천군이……따른다 송(宋)나라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 "군자가 마음속에 참된 뜻을 보존하고서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공경하면, 천군이 태연해져서 백체가 그 명령을 따를 것이다.〔君子存誠 克念克敬 天君泰然 百體從令〕"라는 말이 나온다. 뜻이……따른다 《논어》 〈이인(里仁)〉 6장의 집주에 "인을 함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고자 하면 바로 되는 것이니, 지가 이르는 바에 기도 반드시 이른다.[蓋爲仁在己, 欲之則是, 而志之所至, 氣必至焉。]"라고 한 데 나온 말이다. 사람이……움직인다 《예기》 〈악기〉에 "사람이 나서 고요한 것은 하늘의 성이고, 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은 성의 욕이다.〔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본문에서 이상, 이하라고 하였는데, 이상은 앞 구절을 가리키고 이하는 뒷 구절을 가리킨다. 덕을……한다 주돈이의 《통서(通書)》에 보이는 말로 "덕을 천성적으로 타고나서 아무런 불편 없이 행하는 분을 성인이라 하고, 이러한 덕을 회복하여 고수하려 하는 이를 현인이라 하며, 발동해도 은미해서 볼 수가 없고 사방 공간에 두루 충만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을 신이라 한다.[性焉安焉之謂聖 復焉執焉之謂賢 發微不可見 充周不可窮之謂神]"라고 하였다. 정은……있네 주희가 장식(張栻)에게 답한 글에서는 "마음이 보존되어 있을 때는 사려가 아직 싹트지 않았어도 지각은 어둡지 않다. 이것은 정(靜) 가운데의 동(動)으로서, 복괘를 통해서 천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方其存也 思慮未萌而知覺不昧 是則靜中之動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라 하였다. 감(感)과 응(應) 정명도(程明道)의 "천지 사이에는 단지 하나의 감과 응이 있을 뿐이니, 또 무슨 일이 있겠는가.〔天地之間 只有一箇感與應而已 更有甚事〕"라는 말이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 34〉에 실려 있다. 안자는……않았다 《논어》 〈옹야(雍也)〉에 보인다. 성인은……것인가 《어류》 권30 〈논어〉에 보인다. 순이 삼묘를 정벌하고 순(舜) 임금 때 남방의 오랑캐인 삼묘(三苗)가 동정호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정벌하여 삼위(三危)로 내쫓았다. 문왕이 숭(崇)나라를 정벌하고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은(殷)나라 말엽 서백(西伯)으로 있을 때 숭후(崇侯) 호(虎)가 시기하여 주왕(紂王)에게 무고하여 유리옥(羑里獄)에 갇힌 일이 있었다. 후에 숭을 토벌하였다는 내용이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에 보인다. 주공이……한 것 주 무왕(周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렸으므로, 주공이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였다. 그러자 주공의 형 관숙(管叔)과 아우 채숙(蔡叔)이 '주공이 장차 어린 왕에게 불리할 것이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므로, 주공이 두려워서 동도(東都)로 피해가 살았다. 그 뒤에 성왕이 주공을 맞이하여 돌아왔을 적에, 관숙과 채숙이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이 군사를 출동하여 무경과 관숙을 죽이고, 채숙은 귀양을 보내어서 난이 비로소 평정되었다. 천지의…… 때문이다 《근사록》에서 정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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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문에게 답함 答裵純文 뜻밖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는 참으로 나를 돌아보는 마음에서 나왔으니, 고마운 마음 한량이 없는데 또한 무슨 말로 표현하랴.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온화하고 화열하며, 줄곧 건강하다고 하니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네. 실로 듣고 싶었던 바이네. 나는 용렬한데다 노쇠하여 들어서 보여줄 만한 것이 없네. 공부가 끊어지는 것은 쉽고 지속하는 것은 어려우니, 이는 참으로 일반 사람들이 모두 겪는 근심거리이네. 그러나 끊어짐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속하는 곳이니, 어찌 별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힘쓰고 더욱 힘쓰게나. 문목에 대해서는 조목에 따라 답을 하였으니, 만약 온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귀신은 음양의 굴신(屈伸)으로써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공용(功用)'이라 하였네. 신은 음양의 헤아릴 수 없음으로써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묘용(妙用)'이라 하였네61)삼획을 그은 후에 음이 되고 양이 되네. 낮은 양이지만 정오 이후로 음이 되고 밤은 음이지만 자정 이후로 양이 되네.무릇 날짐승과 물짐승은 상을 취함에 음양이 한결같지 않네. 한 가지 사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 가지 사물에 각자 절로 음양이 있으며, 만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에 각자 절로 음양이 있으며,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도 모두 음양이네.이미 "양은 음을 겸할 수 있지만, 음은 양을 겸할 수 없다."62)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어찌 곤괘의 덕이 항상 건괘의 반으로 줄어든 것이 아니겠는가.도와 기(器)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네. 형이상과 형이하에서 형(形) 한 글자는 합하여서 하나인 것이요, 상하(上下) 두 글자는 나뉘어서 둘인 것이네.건(健)은 용(用)을 말하고 곤(坤)은 체(體)를 말한 것은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기 때문이네. 발산과 수렴은 건괘와 곤괘가 같네. 이른바 '천지가 어긋나도 그 일은 같다'63)고 하였으니, 어찌 건괘만 홀로 발산하고 곤괘는 발산하지 않으며, 곤괘만 홀로 수렴하고 건괘는 수렴하는 이치가 없겠는가.비괘(比卦)의 아래 네 개의 음을 선천(先天)이 아니라고 이를 수 없다면, 가장 위의 한 개의 음을 유독 후천(後天)이 아니라고 이를 수 없는 것이 아닌가.대축(大畜)은 쌓임이 많은 것이네. 그러므로 극에 달하면 흩어지는 것이네. 소축(小畜)은 쌓임이 적은 것이네. 그러므로 극에 달하면 이뤄지는 것이네. 이 때문에 앞에서 비가 내리지 않다고 하였다가 후에 이윽고 비가 내린다고 한 것이네.64)삼묘(三苗)와 관숙(管叔), 채숙(蔡叔)65)은 참으로 망동하지 않는데도 생긴 병이네. 그렇지만 순(舜)이 양쪽 섬돌 앞에서 간우(干羽)로 춤을 추고,66) 주공(周公)은 붉은 신을 신고 걸음이 진중하였다67)는 것은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68)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謂外一書。寔出情眷。感感沒量。又何可喩。仍審侍省怡愉。連膺貞謐。何慰如之。實協願言。義林碌碌頹榻。無足擧似耳。間斷易。接續難。此固衆人通患。然覺得間斷。便是接續處。豈有別樣方法哉。勉之勉之。問目逐條答去。如有未穩。更爲回示。如何如何。鬼神以陰陽屈伸言。故曰功用。神以陰陽不測言。故曰妙用。後三畵爲陰爲陽。如晝陽也。而日中以後爲陰。夜陰也。而夜半以後爲陽。凡飛潛之物。取象陰陽不一。以一物觀之。一物各自有陰陽。以萬物觀之。則萬物各自有陰陽。以人觀之。則萬物皆是陰陽。旣曰陽得兼陰。陰不得兼陽。則此豈非坤之德。常減於乾之半者耶。道與器。一而二。二而一。形上形下。形一字。是合而一者也。上下字。是分而二者也乾言用。坤言體。以天動地靜故也。發散翕聚。乾坤一也。所謂天地睽而其事同也。豈乾獨發散而坤不發散。坤獨翕聚而乾不翕聚之理。比卦下四陰。不可謂非先天則上一陰獨不可謂非後天大畜。畜之大。故極而散。小畜。畜之小。故極而成。此所以先不雨而後旣雨也。三苗管蔡。固爲無妄之疾。然舜之干羽兩階。周公之赤舃几几。非勿藥之謂耶。 귀신은……하였네 《근사록》 〈도체〉에서 정자는 "하늘을 오로지 총체로서 말하면 도이니 하늘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요, 나누어 말할 경우 형체로써 말하면 천(天)이라 이르고 주재(主宰)로써 말하면 상제(上帝)라 이르고 공용(功用)으로써 말하면 귀신(鬼神)이라 이르고 묘용(妙用)으로써 말하면 신(神)이라 이르고 성정(性情)으로써 말하면 건(乾)이라 이른다.〔天, 專言則道也, 天且弗違是也. 分而言之, 則以形體謂之天, 以主宰謂之帝, 以功用謂之鬼神, 以妙用謂之神, 以性情謂之乾.〕이라 하였다. 양은……없다 《주역정의》 〈건괘〉 초구(初九)의 소(疏)에 보이는 말이다. 천지가……같다 〈규괘(睽卦)〉의 단사(彖辭)에 보이는 내용이다. 앞에서……한 것이네 〈소축(小畜)〉에서 "소축은 형통하니 구름은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나의 서쪽 교외로부터 왔기 때문이다.〔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라고 하였으며, 〈상구(上九)〉에 "이미 비가 오고 이미 비가 그쳤다. 이는 덕을 숭상하여 가득 쌓이게 된 것이니, 부인이 견고하게 이것을 지키면 위태로울 것이다.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군자가 동하면 흉하리라.〔旣雨旣處 尙德載 婦貞 厲 月幾望 君子征 凶〕"라고 하였고, 그 상(象)에 "이미 비가 오고 이미 비가 그친 것은 덕이 쌓여 가득한 것이요, 군자가 동하면 흉하다고 한 것은 의심할 것이 있어서이다.〔旣雨旣處 德積載也 君子征凶 有所疑也〕"라고 하였다. 삼묘와 관숙, 채숙 앞의 〈답정운여(答鄭雲汝)〉의 주를 참조. 순이……추고 간우(干羽)'는 방패를 쥐고 추는 간무(干舞)와 새의 깃을 쥐고 추는 우무(羽舞)를 합칭한 말이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舜) 임금이 일찍이 문덕을 크게 펴고 방패와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었는데, 그런 지 70일 만에 완악한 묘족이 감복하였다.[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의 훌륭한 덕화(德化)를 의미한다. 주공은……진중하였다 《시경(詩經)》 〈빈풍(豳風) 낭발(狼跋)〉에서 "공(公)은 겸손하고 크고 아름다우니, 적석(赤舃)의 걸음이 진중하다.[公孫碩膚 赤舃几几]"라 하였고, 시의 서(序)에, "주공을 아름답게 여겨 지은 것이다."라 하였다. 약을…… 것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에 이르기를, "예기치 않았던 병이다. 약을 쓰지 말라. 기쁨이 있으리라.〔无妄之疾 勿藥 有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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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문【교신】에게 답함 答具士文【敎信】 인편이 있으면 항상 편지를 보내주니 오랜 벗이 나를 향하는 마음에 대해 실로 감탄이 이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학문을 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다고 하니 더욱 마음에 위안이 되네. 나는 한 가지 병도 차도가 없어서 날로 더욱 심해지니 염라대왕의 부름이 반드시 머지않을 것이기에 다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네. 머리를 감추고 자취를 숨길 때 독서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대단히 지극한 논의이네. 참으로 이미 이와 같다면 꿋꿋이 서서 새로 출발함이 다만 자신에게 달렸으니 이는 마치 팔을 굽히고 펴는 것처럼 쉬울 것이네.72) 어찌 다시 훗날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어진 그대가 근래 책을 읽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할 수는 없으니, 보아야 하는 책을 어떻게 정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또한 그대가 스스로 헤아려 처리함에 달려 있네. 다만 바라건대 이렇게 젊은 좋은 시절에 의지를 굳게 세워서 끝내 원대함에 이르러 집안의 기대하는 뜻에 부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사랑을 지극히 하면 마음에 보존되고 정성을 지극히 하면 나타나게 된다.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73)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정성을 지극히 한다[致慤]는 말에서의 정성은 곧 경(敬)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는 애(愛)와 경(敬)을 겸하여 말하였는데, 뒤에서는 경 한 글자로 문장을 맺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각(慤)'은 참으로 정성스럽다는 뜻이니, 사랑을 지극히 하고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경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네.질문 : "어른이 주시면 어린이와 천한 자는 감히 사양할 수 없다."74)고 하였는데, 대개 사양한 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예의로 보면 참으로 그렇습니다만 '감히 사양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사양한 후에 받는 것은 붕우의 예이며, 어른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네. 有便每有垂訊。故人相向之意。實可感歎。因詢侍中學履。連護增祉。尤以爲慰。義林一疾不退。日益沈劇。閻羅消息。行必不遠。只惟俟之而已。縮首晦蹤。莫如讀書。此誠切至之論。誠旣如此。則着足發軔。只在自家如臂屈伸而已。何用復爲等待之有。近來賢者讀書程曆。未及詳知。則所看之書。何以指定耶。此亦在賢者自料之如何耳。惟願趁此靑陽好時節。牢着脊梁。卒究遠大。以副家庭責望之意如何。致愛則存。致慤則著。著存不忘乎心。夫安得不敬乎。盖致慤之慤卽指敬。然則上以愛敬兼言。而下以敬一字單結何。慤是誠慤之意。致愛致慤。非敬不能。長者賜。少者賤者不敢辭。盖辭而後受。禮固然也。而不敢辭云者何。辭而後受。朋友之禮。非事長之道。 팔을……쉬울 것이네 《심경부주(心經副註)》 〈안연문인(顔淵問仁)〉에서 "그러나 기(己)는 인욕(人欲)의 사(私)이고 예는 천리의 공(公)이니, 한 마음의 가운데에 두 가지가 병립할 수 없으나 그 서로간의 차이는 털끝만큼도 못된다. 여기에서 나오면 저기로 들어가고, 저기에서 나오면 여기로 들어오니, 이는 극(克)과 불극(不克), 복(復)과 불복(不復)이 손을 뒤집는 것과 같고 팔뚝을 굽히고 펴는 것과 같이 쉽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실로 하고자 할진댄 그 기틀이 참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타인이 관여할 바이겠는가.〔己者 人欲之私也 禮者 天理之公也 一心之中 二者不容竝立 而其相去之間 不能以毫髮 出乎此則入乎彼 出乎彼則入於此矣 是其克與不克 復與不復 如手反覆 如臂屈伸 誠欲爲之 其機固亦在我而已 夫豈他人之所得與哉〕"라고 하였다. 사랑을……있겠는가 《예기》 〈제의(祭義)〉에 "선왕의 효도는 부모님의 안색을 눈에 잊지 못하며, 소리가 귀에 끊이지 않으며, 마음과 좋아하시던 것을 마음에 잊지 못하니, 사랑을 지극히 하면 보존되고 정성을 지극히 하면 나타나듯이 된다. 나타나고 보존하는 것을 마음에 잊지 않는데,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先王之孝也, 色不忘乎目, 聲不絶乎耳, 心志嗜欲, 不忘乎心, 致愛則存, 致慤則著. 著存不忘乎心矣, 夫安得不敬乎?〕"라는 하였는데, 이 구절은 《소학》 〈명륜〉에 다시 실렸다. 어른이……없다 《소학》 〈명륜〉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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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정화보 영하 를 이별하며 줌 贈別丁友華甫【永夏】 푸른 눈85)으로 옛 친구 오는 것을 바라보니 靑眼驚看故人來온갖 마음이 쌓여 몇 겹이 되었네 萬端情緖積成堆일평생 묘한 마음 조화롭기 어려우니 一生妙闋難爲和옛날 맑은 술자리 얼마나 함께 열었던가 舊日淸樽幾共開목포에 서쪽 바람 부니 마음껏 바라보고 木浦西風騁眺望오성의 가을 달 뜨니 기쁘게 배회하네 筽城秋月喜徘徊지금 무슨 일로 다시 가볍게 이별하는가 如今底事旋輕別장폭의 새로운 시를 짓지 못해 한스럽네 長幅新詩恨未裁 靑眼驚看故人來,萬端情緖積成堆.一生妙闋難爲和,舊日淸樽幾共開.木浦西風騁眺望,筽城秋月喜徘徊.如今底事旋輕別,長幅新詩恨未裁. 푸른 눈 원문 '청안(淸眼)'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니, 상대방을 만난 반가움이 눈빛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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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 최병심 께서 자책시를 내게 보여주었기에 차운하여 올림 계묘년(1903) ○이하 같음 欽齋【崔秉心】以自責詩示余次韻以呈 【癸卯○下同】 학문은 정도를 따름을 보고 學問看趨正사귐은 자기 알아줌을 귀하게 여기지 結交貴己知서로 만남에 구십 리16)나 멀지만 相尋三舍遠두 사람 사적으로 만난 건 아니네 非直兩人私운곡의 산은 여전히 푸르고 雲谷山猶碧석담의 달도 어그러짐 없네 石潭月不虧은근히 나아가는 뜻은 같았으니 殷勤同進意자주 찾아뵙던 때를 어찌 잊으리오 豈忘介然時 學問看趨正,結交貴己知.相尋三舍遠,非直兩人私.雲谷山猶碧,石潭月不虧.殷勤同進意,豈忘介然時. 구십 리 원문 '삼사(三舍)'는 90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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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부를 지나다 過全州府 십년 만에 풍패지문130)을 지나가는데 十載曾過豊沛門사람과 성곽은 아직도 그대로구나 人民城郭尙依存지금은 산하가 변하여 감정도 뒤집혀 今來翻感山河異풍천지감131) 탄식에 원통함 곱절이라 歎息風泉一倍寃 十載曾過豊沛門,人民城郭尙依存.今來翻感山河異,歎息風泉一倍寃. 풍패지문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관문 이름이다. 풍천지감 《시경(詩經)》 회풍(檜風) 비풍편(匪風篇)과 조풍(曹風) 하천편(下泉篇)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시들은 모두 제후국 사람들이 주(周) 나라를 생각하여 지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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