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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和蘆沙先生丈入山韻 湖省群山瑞嶽宗。瞻之慱厚仰之隆。主翁不敢靑城唾。表德如今喚作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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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에 유선암19)에 올라 을사년(1905) ○이하 같음 五月望日上遊仙菴 【乙巳○下同】 옛날 신선들 이곳에서 놀 때를 생각하니 憶昔仙人此地遊신선들 이미 떠나갔고 물만 공연히 흐르네 仙人已去水空流온 산은 검푸른 바다 밖에 아득하고 羣山縹渺滄溟外화각은 고을 성가퀴 앞에 삐죽빼죽 畫閣參差郡堞頭오월이 비로소 왔으나 꾀꼬리는 늦게야 오고 五月始來黃鳥晩십 년 또 흘렀는데 흰구름만 유연히 떠가는구나 十年重到白雲悠반나절 한가한 시간 얻었으니 맑음 넉넉하여 偸間半日淸眞足이로부터 세속의 인연은 누각에 오르지 못하리라 自是塵緣不上樓 憶昔仙人此地遊,仙人已去水空流.羣山縹渺滄溟外,畫閣參差郡堞頭.五月始來黃鳥晩,十年重到白雲悠.偸間半日淸眞足,自是塵緣不上樓. 유선암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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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初雪 점점이 바람 따라 떨어지더니 點點隨風落펄펄 내려 나무 가득 덮는구나 霏霏入樹冥배꽃처럼 천만송이 떨어지더니 梨花千萬朶순식간에 앞뜰 가득하구나 頃刻滿前庭 點點隨風落,霏霏入樹冥.梨花千萬朶,頃刻滿前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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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재명 【동생 김억술199)을 위해 지음. 경인년(1950)】 拓齋銘 【爲舍弟億述作 庚寅】 그 도량 넓고 크고 弘大其量,그 지향 높고 머니, 高遠其志,마치 이름난 장수처럼 有若名將,천리 땅을 새로 개척하고, 千里拓地,중니의 밝고 쾌활함을 仲尼明快,밀어 나아가서 끝내 얻으라. 推極可致.어찌 구구하게 구애되어 豈可規規,걱정근심을 일삼아 하랴. 事爲戚戚,시름과 가난을 하찮이 보는 憂貧若小,크고 늠름한 대장부 모습. 丈夫然哉!나 이제 척 여는 방이라 하여 我以拓齋,너의 평안한 방 편액 써주니. 扁汝安室,힘쓰거라 너의 자 여안(汝安)이 勖哉汝安,너의 실질에 딱 맞도록. 能副其實. 弘大其量, 高遠其志, 有若名將, 千里拓地。 仲尼明快, 推極可致, 豈可規規, 事爲戚戚, 憂貧若小, 丈夫然哉! 我以拓齋扁汝安室, 勖哉汝安, 能副其實, 김억술(金億述) 1899~1959, 김택술의 세째 아우로, 자는 여안(汝安)이고, 초호는 연강(蓮岡)이다. 마찬가지로 전우의 문인이다. 부인은 조양임씨(兆陽林氏)이고, 사남삼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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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봉 仙人峯 한 봉우리 우뚝 솟은 지 천년 만년 一峯聳立萬千年곧장 하늘에서 꽂은 듯 기세 깎아지른 듯 直揷蒼穹勢截然뜬구름 같은 세상 속인들은 부질없이 멀리 바라보고 浮世塵人徒遠望흰구름은 신선들과 짝을 이뤄 몇 번이나 머물렀던가 白雲仙侶幾留緣잘 갈은 검은 칼집에서 막 나온 듯 磨來劒鍔鞱中出막 딴 연꽃이 손 위에 전해진 듯 摘取蓮花掌上傳영험한 뿌리 늙지 않아 이곳에 있음을 알겠으니 不老靈根知在此시황제여 헛되이 해동에 배를 띄워 보냈는가20) 秦皇謾泛海東船 一峯聳立萬千年,直揷蒼穹勢截然.浮世塵人徒遠望,白雲仙侶幾留緣.磨來劒鍔鞱中出,摘取蓮花掌上傳.不老靈根知在此,秦皇謾泛海東船. 시황제여……보냈는가 진시황(秦始皇)이 서불(徐市)을 시켜 서인봉에 불로초(不老草)를 따올 것을 명했던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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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를 찾아가 스님 영호에게 줌 過龜巖寺贈僧暎湖 숨어 지내던 사람이 스님의 거처를 찾아왔더니 幽人來訪上人居궁벽한 협곡엔 가을 소리에 온 나무는 휑하네 窮峽秋聲萬木疎시율로는 재주도 좋고 필법 또한 오묘하며 詩律能才兼筆妙범선이 한가한 틈에 유학서 섭렵했네 梵禪暇隙理儒書석상에서 과일 먹다 보니 정은 오히려 두텁고 石牀喫果情猶厚오래된 절에서 새로운 얘기에 뜻이 넘쳐나네 古寺談新意有餘훗날 우리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他日吾行重到此이별에 어찌 굳이 슬퍼할 일 있겠소 別離何必悵然如 幽人來訪上人居,窮峽秋聲萬木疎.詩律能才兼筆妙,梵禪暇隙理儒書.石牀喫果情猶厚,古寺談新意有餘.他日吾行重到此,別離何必悵然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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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비가 내리기에 雨夜 구름 깊어 산에 비가 내리는데 雲深山有雨하늘은 컴컴 밤에 별 하나 없네 天黑夜無星적막한 숲속의 집에서는 寂寂林間屋책 보는 등불 하나 밝구나 書燈一點明 雲深山有雨,天黑夜無星.寂寂林間屋,書燈一點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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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경재 계옥 에 화답하다 和李顧敬齋【啓鉅】 마음으로 사귐은 원래 동서의 구분 없으니 心交元不限西東어찌 염량세태 향해 허덕허덕 쫓아가리오 肯向炎涼逐逐中이치를 따르면 평탄한 길 아닐까 어찌 걱정하리 順理何憂非坦道사익을 부수면 바야흐로 풍성한 공을 허락 받으리 破私方許是豊功영산의 달은 온 하늘을 나누어 비치나니 一天分照瀛山月수사299)의 풍화에 영원토록 함께 돌아가리 萬劫同歸洙泗風늘그막에도 생기가 넉넉하여 보기 좋으니 晩境好看生意洽서재300)에서 한 해가 간다 한스러워 말라 莫恨芸牕歲華窮 心交元不限西東, 肯向炎涼逐逐中.順理何憂非坦道, 破私方許是豊功.一天分照瀛山月, 萬劫同歸洙泗風.晩境好看生意洽, 莫恨芸牕歲華窮.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강물 이름인데, 공자가 고향과 가까운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들어 공자와 유가(儒家)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서재 원문의 '운창(芸牕)'으로, 운(芸)은 다년생 풀인데, 좀을 물리치는 향기를 지녔으므로 서재나 장서실을 운각(芸閣) 또는 운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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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서 자책하며 病枕自訟 대장부 반백년에 이룬 것은 하나도 없고 丈夫半百一無成달팽이 집 세 칸만 고부 북쪽 성에 있네 蝸屋三間阜北城가업을 망치는 것은 망국의 죄와 같은데 敗業有同亡國罪경전 궁구하며 감히 집안 명성 이엇다 하랴 窮經敢曰繼家聲뭇 원망을 실컷 썼으나 전혀 없는 일 아니고 飽蒙羣讟非全罔좋이 남의 스승 되었으나 실제 행실 부끄럽네 好作人師愧實行병석에서 헤아리며 다시 스스로 책망하니 病枕商量還自訟괜히 읊으며 어찌 불평한 소리364) 내리오 謾吟何用不平鳴 丈夫半百一無成, 蝸屋三間阜北城.敗業有同亡國罪, 窮經敢曰繼家聲.飽蒙羣讟非全罔, 好作人師愧實行.病枕商量還自訟, 謾吟何用不平鳴. 불평한 소리[不平鳴] 불공평한 일을 당했을 때 내게 되는 불만의 소리를 말하는데 시(詩)가 그런 것이다.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대체로 사물이 그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동야가 시를 잘 지은 것을 '잘 울었다[善鳴]'라는 말로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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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474) 慶基殿 서양 누각과 일본 집들 세상에 넘치는데 洋樓日舘漲塵烟옛 전각은 처량하게 한 귀퉁이에 있구나 古殿蒼凉在一邊앞뒤로 어진475)과 신주는 항상 엄정한데 後主前眞常肅肅봄과 가을의 제사는 근근이 이어진다네 春祠秋享僅綿綿오목대의 달은 선천의 색을 비추는데 先天色照梧臺月패수의 냇물은 길이 한탄하며 흐르네 長恨聲流沛水川우리 선조가 옛날 언제 재랑을 했던고 吾祖齋郞昔何日목릉476)의 전성기가 정녕 아득하구나 穆陵全盛正茫然-11세조 죽계공이 학행으로 천거되어 경기전 참봉이 되었기에 말한 것이다.- 洋樓日舘漲塵烟, 古殿蒼凉在一邊.後主前眞常肅肅, 春祠秋享僅綿綿.先天色照梧臺月, 長恨聲流沛水川.吾祖齋郞昔何日, 穆陵全盛正茫然.【十一世祖, 竹溪公, 學行薦爲慶基殿參奉, 故云.】 경기전(慶基殿) 조선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한 곳으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다. 어진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어진(御眞)을 말한다. 목릉(穆陵) 선조(宣祖)의 능인데 선조 시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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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종 군을 면려하며 勉劉君三鍾 정통한 기를 부여받아 이 몸 이뤄졌으니190) 正通稟氣此身成남자는 단연코 큰 이름 세워야하리라 男子端宜立大名학문은 하늘과 사람의 미묘한 이치 궁구하고 學究天人微妙理마음은 주공와 공자의 척근한 정을 가져야지 心存周孔惕勤情천 조목 분석한 곳에서 뜻이 아주 세밀해지고 千條析處絲毫細한 맥이 전해져서 물 속의 달처럼 맑으리라 一脈傳來水月淸묻노니 그 근본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借問根基何自始저 밝은 창가에서 책 읽는 소리 들어보게나 明牕聽取讀書聲 正通稟氣此身成, 男子端宜立大名.學究天人微妙理, 心存周孔惕勤情.千條析處絲毫細, 一脈傳來水月淸.借問根基何自始, 明牕聽取讀書聲. 정통한……이뤄졌으니 《대학혹문(大學或問)》 권1 〈경일장(經一章)〉에 "이(理)로써 말하면, 만물이 일원으로 본디 인(人)과 물(物), 귀와 천의 다름이 없지만, 기(氣)로써 말하면, 바르고 통투한 기를 얻으면 인(人)이 되고 편벽되고 막힌 기를 얻으면 물(物)이 된다.[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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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81)에 대한 제문 祭朴學中文 하늘이 현철한 분 낸 것은 장차 큰일을 함이 있게 하기 위한 까닭인데 이에 그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그 행하는 것을 막히게 하여 혹 그 장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데 이르니, 조물주는 여기에 그 어떤 마음을 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어리고 장성할 때 효도하고 공손하며 늙어서 예를 좋아하였으니, 행실은 옥루(屋漏)82)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학문은 고금을 종합할 수 있으며, 인(仁)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 은택을 끼칠 수 있고, 지(智)는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릴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남과 절교하지 않고 화합하면서도 남과 얽매지 않는 것은 형이 거의 가까웠다고 하겠습니다. 오직 이 마경(馬卿)의 병83)과 현안(玄晏)의 질84)이 계속 이어져 남아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없어, 신음 속에 세월을 보낸 것은 겨우 요절을 면하는데 이르렀고 그 건강했던 날을 찾아보면 또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니, 어찌 덕은 넉넉하고 명에는 곤액을 당함이 이와 같습니까.오호라! 한 방에서 문을 닫은 채 고요히 지내며 병을 요양하여 사려는 점점 끊어지고 기욕은 점점 담박해져 본원의 자리에 조용하고 연구 탐색하는 즈음에 침잠하여 천하의 의리를 열람하고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을 알았던 것은 애초에 병을 요양하는 가운데로부터 터득한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혹 하늘의 뜻은 이런 질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무너진 풍속의 도도한 가운데 섞이지 않고 사도(斯道)에 힘을 다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면, 어찌 학문이 진보함에 병 또한 심해져 이런 지경에 이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오호라! 선왕의 전례(典禮)가 하루아침에 쓸어버린 듯 없어져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은 극히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에 능히 초연(超然)히 먼저 가서 숭정(崇禎)의 유민85)과 우리나라[小華]의 완인(完人)이 되는 것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또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효성으로 편모를 모시면서 봉양을 마치지 못하였고 여러 아들에게 공부를 권면하여 학업을 마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노형의 눈은 생각건대 응당 지하에서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완인이 되었는데 또 완전한 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여러 아들이 어질고 효도하니 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소원을 족히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형께서는 마음 놓고 어두운 지하에서 걱정하지 마소서.아우는 부로를 잃은 외로운 처지에 쓸쓸히 지내고 있어 여생이 근심스러웠는데 중년 이후로는 오직 형에게 의지하였습니다. 경인년(1890, 고종27)에 식구들을 데리고 가까이 가서 살게 되었는데 형은 마침 병들었고, 지금 같은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형은 또 돌아가셨습니다. 애달픈 나의 박한 운명은 단지 붕우와 지내는 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또한 능히 그 끝을 보장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형과 작별한 이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사이 세월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험한 길이 앞에 있는데 맹인은 지팡이를 잃고 풍파가 끝이 없는데 외로운 배는 키를 잃었으니, 무엇으로 기대하고 면려하여 훗날 지하에서 보고할 것으로 삼겠습니까. 天生賢哲。將以有爲也。而乃拂欝其心。室塞其行。以至或不得其壽焉。造物於此。未知其何所用心耶。幼壯孝弟。老而好禮。行可以不愧屋漏。學可以經緯古今。仁可以利人澤物。智可以圖事揆策。貞而不絶於人。和而不泥於物者。兄其庶幾焉。惟是馬卿之病。玄晏之疾。沈綿彌留。無日可起。其所以捱過得呻吟中光陰者。僅至免夭。而求其康適之日。則又不得爲三之一矣。何其優於德而厄於命若是耶。嗚呼。杜門一室。靜居養病。思慮漸熄。嗜欲漸淡。從容於本源之地。沈潛於硏索之際。閱天下之義理。會天下之至樂者。未始不自養病中得來。或者天意降此疚疾。使之不雜於頹俗滔滔之中。而得以盡力乎斯道也。豈知學進而病亦進以至於此耶。嗚乎。先王典禮。一朝掃如。時象風色。極其叵測。乃能超然先逝。不失爲崇禎之遺民。小華之完人者。又安知非天意耶。孝奉偏闈。未得終養。勉課諸郞。未見卒業。老兄之目。想應不暝於地下矣。然旣爲完人。又求完福。其不難乎。況諸郞賢孝。足以了厥考未了之願。願兄釋然無虞於冥冥之中也。弟孤露離索。餘生惸惸。中年以來。所賴惟兄。庚寅之歲。絜家就近。而兄適病焉。今也來留同塾。而兄又逝焉。哀此薄命。只有朋友一樂。而亦不能保其終耶。別兄以後。屬纊以前。未知其間日月幾何。而將誰賴依。險路在前而盲人失相。風濤無涯而孤舟失柁。其何以期勉以爲他日下報之地耶。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자는 학중, 호는 우인당(愚忍堂)·즉이재(則以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옥루(屋漏)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방구석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마음속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네가 네 집에 있을 때에 보니 옥루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마경(馬卿)의 병 마경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현안(玄晏)의 질 현안은 진(晉)나라 황보밀(黃甫謐)의 호이다. 그는 일생 풍비(風痺)에 시달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서음(書淫)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은거하며 저술을 일삼았다. 《晉書 卷51 皇甫謐列傳》 숭정(崇禎)의 유민(遺民)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남긴 백성이라는 뜻으로, 명나라는 망하고 숭정제는 죽었지만 여전히 숭정제를 황제로 여기고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겨 그 백성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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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선생집(南坡先生集) 8권 3책 南坡集 南坡先生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표점영인 南坡先生集 [1898] 李僖錫 목활자본 『남파집(南坡集)』 3 有界 10行20字 註雙行 한자 上下內向2葉花紋魚 전남대학교도서관_불명처2 전남대학교도서관 1898년(광무 2)에 간행한 남파(南坡) 이희석(李僖錫, 1804∼1889)의 문집, 8권 3책(목활자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손자 이선원(李善遠)이 편찬하였다. 『남파선생집(南坡先生集)』 해제 1. 생애와 사상 이희석(李僖錫, 1804∼1889)의 자는 효일(孝一)이고, 호는 남파거사(南坡居士)이며,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시조인 휘(諱) 문화(文和)는 정희왕비(貞僖王妃)의 외조부로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을 지냈으며, 시호는 공도(恭度)이다. 이문화는 집안이 벌열(閥閱)이 되는 것을 경계하여 아들 6명을 모두 지방으로 내려 보냈다. 이때부터 장흥(長興)에 인천이씨가 거주하게 되었다. 청강(淸江) 휘 승(昇, 1556~1628)은 문장과 행의(行義)가 있어 호남으로 내려온 인천이씨의 현조(顯祖)가 되었다. 문집으로 『청강유집(淸江遺集)』이 전한다. 청강 이승을 추모하기 위해 장흥의 인천이씨는 영석재(永錫齋, 전라남도 문화재 제69호)를 설립하였다. 고조부는 휘 윤덕(潤德), 증조부는 휘 복현(復顯), 조부는 휘 능계(能啓), 부친은 휘 중집(重楫)이다. 부친은 천성이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에 전력하지 못하였기에 자식 교육에 더욱 힘을 쏟았다. 모친은 평강채씨(平康蔡氏)로, 채석후(蔡錫垕)의 딸이다. 이희석은 1804년(순조 4) 5월 15일 전남 장흥군 용산면 접정리 청적(聽笛)마을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재주가 걸출하고 성격이 꼿꼿하고 호걸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어 이름만 듣고 만난 적이 없던 사람도 우연히 만나면 단번에 남파를 알아볼 정도였다. 사람들과 교유할 적에 구차히 영합하지 않았고 평소 불의한 사람과는 애초에 스스로 교분을 맺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나 어린 학생이 질의하면 온화한 기색으로 자상히 알려주었다. 10세를 전후로 문리가 통달하여 제자백가 등을 남김없이 두루 통했는데, 사서와 오경에 더욱 공력을 다해 주소(註疏)가 아무리 많은 글도 자기 말처럼 외웠다. 이희석은 노사 문하에 나아가 스승의 말을 듣고 스승의 덕을 보자 마치 시원스럽게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아 의귀처(依歸處)로 삼아 자신의 학업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희석은 노사 기정진보다 여섯 살 적었는데, 기정진은 이희석을 벗으로 대우했고, 그는 스승으로 받들었다. 1851년(철종 2) 홍수로 전토를 잃고 장흥에서 나주 사호(沙湖,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로 이거하였다. 기정진의 거주지 근처로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기정진의 거처에서 매달 29일은 숙식을 하며 강학에 열중하였다. 1879년 기정진 사후에 다시 장흥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1880년(고종 17) 77세 되던 해에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또 조정에서 고령이라고 하여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하였다. 이에 대해 이희석은 임종 전에 하신 어버이 말씀이 귓가에 뚜렷이 남아 저버릴 수 없어 죽기 전에 과거에 응시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향에 돌아와 어버이 묘소에 가서 고유(告由)만 했을 뿐 당상관(堂上官)의 비단 관복과 옥관자(玉貫子)를 몸에 걸치지 않았다. 1889년(고종 26) 7월 17일에 묵동(墨洞) 우사(寓舍)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흥 천관산 수정암(水晶菴) 선영에 장사하였다. 부인은 광산김씨로 김상희(金相禧)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가 있는데 아들은 인호(麟浩)이고, 첫째 딸은 낭주최씨(朗州崔氏) 최면식(崔冕植), 둘째 딸은 철원주씨(鐵原周氏) 주방일(周邦一)에게 시집갔다. 큰딸과 아들 인호는 안타깝게도 이희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인호는 2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선원(善遠)과 학근(學根)이다. 둘째 아들 학근은 인천이씨 족보에 학원(學遠)으로 실려 있다. 선원이 이희석의 유고를 수집, 문집 간행을 주도하였다. 이희석은 시(詩)에 뛰어났는데, 『남파집』에는 성리설이 거의 없는 점이 특징이다. 기우만의 행장에서 이희석이 직접 언급한 문장에 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새롭고 기이함을 좋아하고 화려한 문장을 숭상하는 것은 문장가의 큰 병통이다. 글을 지을 때는 우임금의 치수(治水)처럼 일삼은 바가 없이 자연스러운 형세를 따를 뿐이다. 만일 부화(浮華)한 표현에만 마음을 쓰고 남을 기쁘게 하는 데 힘쓴다면 부인이나 여자가 용모를 치장하는 정도의 기량에 불과하니 나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 산수 유람과 기행에 관한 시와 글이 많은 것은 노사학파의 문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희석 역시 문집 안에 다양한 지역을 유람하며 남긴 시문이 있고, 특히 「원유록」은 여행하며 지은 시문을 종합한 것으로서 이희석의 산수에 관한 사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2. 문집 구성과 내용 『남파집(南坡集)』은 남파(南坡) 이희석(李僖錫)의 문집으로 8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98년(광무 2) 전남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에 있는 인천이씨 재실인 영석재(永錫齋)에서 손자 이선원(李善遠)에 의해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책별로 권두에 차례가 있고, 시가 권1에 140제 247수, 권2에 129제 193수, 총 369제 440수가 있다. 권3에는 서 34편, 권4에 잡저 9편, 권5에 서(序) 9편, 기(記) 12편, 발(跋) 6편이 있다. 권6에는 행장 3편, 묘지명 1편, 제문 7편이 있으며, 권7에는 「원유속록후서(遠遊續錄後序)」와 「원유록(遠遊錄)」이 실려 있다. 권8은 부록으로 남파의 행장과 전, 묘지명, 발문, 후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과 권2에 수록된 한시 440수는 스승인 노사 기정진과 그 문인, 친족이나 친구, 그리고 동향의 장흥위씨(長興魏氏)들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 기정진(奇正鎭), 기우만(奇宇萬), 기양연(奇亮衍), 김평묵(金平黙), 조의곤(曺毅坤), 오상봉(吳相鳳), 김한섭(金漢燮), 김영택(金永澤), 안달삼(安達三), 소치(小癡) 허련(許鍊) 등 많은 인물에게 준 시들이 있어 그의 교유관계를 보여준다. 유람시가 많은 분량은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시에서 그가 추구하였던 인지지락(仁智之樂)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장흥 인근에 있는 천관산, 제암산, 월출산 등 산천을 두루 유람하였다. 천관산에 올라 쓴 시 「유관산(遊冠山)」과 청산도와 거금도, 진도 등지에서 바다를 보며 읊은 「고금도(古今島)」, 「등고금도가마치망한라산(登古今島駕馬峙望漢拏山)」이 있다. 또 합천 삼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강학처인 뇌룡정(雷龍亭)을 방문하여 조식의 시에 차운하였다. 주변의 풍광에 자신의 감정을 담은 「사인정풍영계회(舍人亭風詠契會)」, 「장천재수창(長川齋酬唱)」 등은 대표적인 장편시이다. 「자민(自憫)」, 「초도음(初度吟)」 등은 자신을 돌아보며 불우한 인생에 대한 회한과 학문 성취의 한계를 표현한 시이다. 「학문(學問)」, 「감회(感懷)」, 「도통탄(道統歎)」 등 설리적(說理的) 시도 있다. 「독좌(獨坐)」와 「유회(幽懷)」는 은일 생활의 고독을 읊은 것이며, 「애국음(愛菊吟)」과 「조일대국(朝日對菊)」은 도연명의 전원 취미를 본받아 국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읊은 시이다. 이밖에 「석별(惜別)과 「억추려(憶秋旅)」 등은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 중 「하사좌상증조천관안행오(下沙座上贈朝天館安行五)」는 제주도에서 노사에게 공부하러 온 안달삼(安達三)에게 준 오언고시로 면암 최익현이 제주도 유배 중에 이 시를 처음 보았다고 『남파집』 발문에서 그 인연을 소개하였다. 병인양요 때인 1866년(고종 3) 10월, 이희석이 장성에 있을 때 출전(出戰)하려고 가는 고제홍(高濟洪)에게 감격하며 써준 시 「고중범부의지행(高仲範赴義之行)」과 서양의 이양선 소식을 듣고 탄식을 하는 시 「문양선소식발탄(聞洋船消息發嘆)」 등은 그의 현실 인식을 잘 보여준 시이다. 권3에는 서(書) 34편이 실려 있다. 스승인 기정진에게 올린 편지와 자식과 친족 동생에게 보낸 편지, 고향의 벗 김대원(金大源), 사돈 최득수(崔得洙), 영남의 동문 조성가(趙性家), 이항로의 문인 김평묵 외 장흥부사로 부임했던 한치조(韓致肇), 이학래(李鶴來), 송기로(宋綺老)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안부를 묻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대원에게 보낸 편지는 김대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위로를 보냈고, 최득수의 경우 최득수의 며느리이자 이희석의 딸이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소회를 적었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거려설(蘧廬說)」은 이희석이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작품이다. 거려(蘧廬)는 누추한 여관이란 뜻이다. 이희석은 30세 이전에는 어버이가 살던 집에서 살다가 30세 이후에는 어산(語山) 묵촌(墨村)에 살았고, 그 후에는 장성, 나주에서 살다가 10여 년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회갑설(回甲說)」은 회갑을 사치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고 효도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날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쓴 글이다. 「거긍설(去矜說)」은 자랑과 과시를 의미하는 '긍(矜)'자로 재능과 과시의 상관 관계를 언급하면서 자랑하는 마음을 없애고 좋은 독서를 해야 한다고 논설하고 있다. 「거긍설」에서 양웅(揚雄)의 "책을 좋아해도 중니(仲尼; 공자)에게 구하지 않으면 책 가게일 뿐이고, 말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말일 뿐이다."라는 구절과 사상채(謝上蔡)가 이천(伊川) 선생과 작별한 지 1년 만에 찾아가 뵈었는데 이천 선생이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 하고 묻자, 사씨가 "다만 '긍(矜; 자랑하고 과시하는 마음)' 자(字)를 없애려 하였습니다."라는 일화를 인용하였다. 「정설증영석재제생(貞說贈永錫齋諸生)」은 이희석이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 중 정(貞)을 가지고 영석재(永錫齋) 여러 학생에게 당부한 글이다. 『주역』 곤괘(坤卦)에서 '정(貞)'의 의미와 영석재가 위치한 풍수지리적 환경을 연관하여 논하면서 '정(貞)'의 자세로 노력해 공부하라는 취지가 담겨있다. 「김민수기실(金敏受記實)」은 흉년에 마을과 친척들을 구제한 김영택(金永澤)의 공로가 알려져 수령 윤용(尹墉)과 관찰사 이돈상(李敦相)이 조정에 알린 사실 등을 기록한 글이다. 「설계(舌誡)」는 온몸에 병이 들었는데 그중 혀를 잘못 놀려 말을 함부로 하는 병이 가장 큰 병이라는 논의를 편 글이다. 주자의 '이렇게 하는 것이 병통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若知如此是病 則不如此是藥]'라는 말을 인용하여 끝맺었다. 「의석서(擬惜誓)」는 『초사(楚辭)』 중 하나인 「석서(惜誓)」를 본떠 자신을 경계한 의고문(擬古文)이다. 「의주군신하궁인작관저시(擬周群臣賀宮人作關雎詩)」는 주나라 신하들이 관저시(關雎詩)를 쓴 궁인에게 경하하는 모습을 전문(箋文) 형식으로 쓴 글이다. 「선왕고부군신천록(先王考府君新阡錄)」은 부친의 묘소를 이장한 경위를 소상히 밝히며 후손을 경책한 글이다. 권5에는 서(序) 9편, 기(記) 12편, 발(跋) 6편이 실려 있다. 「사호이택서(沙湖移宅序)」는 이희석이 1851년 여름 대홍수를 만나 전토(田土)를 잃고 금성(錦城; 나주) 사호(沙湖)로 이사하게 된 경위를 『주역』의 논리를 발려와 기록한 글이다. 「애국서(愛菊序)」는 국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도연명 못지않다며 도연명을 경앙(景仰)하는 마음을 드러낸 글이다. 「지운서(止雲序)」는 이희석의 벗 김경현(金擎鉉)의 호인 '지운(止雲)'에 대해 써준 글이다. 김경현의 자는 국민(國敏), 호는 지운(止雲),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이리저리 떠도는 구름의 속성을 언급하며 정자(程子)의 「정성서(定性書)」와 『주역』 「간괘(艮卦)」 단사(彖辭)의 말을 인용하여, 공자가 말한 출처(出處)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피력하였다. 「가암서(可菴序)」는 김영하(金永夏)의 호인 '가암(可菴)'의 '가(可)'자에 관해 썼고, 「묵헌서(黙軒序)」는 박인환(朴寅煥)의 자호(自號)인 '묵헌(黙軒)'의 '묵(黙)'자에 대해 썼으며, 「죽사서(竹史序)」는 둘째 사위 주운지(周雲之)의 자호인 죽사(竹史)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당부한 글이다. 그 밖에 「묵헌김공유집서(默軒金公遺集序)」는 해남 출신으로 사헌부 장령을 지낸 묵헌 김재일(金載一, 1749~1817)의 시문집의 서문이고, 「묵와위공유고서(默窩魏公遺稿序)」는 장흥 위수택(魏守澤)의 유고집 서문이다. 「영보동계서(永保洞契序)」는 이규호(李圭浩)를 대신해서 지은 글이다. 영보동계는 영암 덕진면 영보동에서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의 내외 후손을 중심으로 결성된 계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무실해졌다가 당시 수령의 도움으로 다시 동약(洞約)이 정해져 이를 기념한 글이다. 기(記)는 12편인데 「율정공비음기(栗亭公碑陰記)」는 선조 율정공 이두(李斗)의 비문 뒷면에 쓴 글이다. 율정공 이두의 자는 천추(天樞), 호는 율정, 또는 장춘오(藏春塢)이다. 율정공은 장흥에 내려와서 자제와 문하생과 강학만 하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의 글은 병란으로 인해 없어져 1573년(선조 6)에 쓴 족보의 서문 1편만 남아있다. 「연원중수기(淵院重修記)」는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과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의 위패를 모신 연곡서원(淵谷書院, 현 전남 장흥군 장흥읍 원도리)이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뒤에 다시 중수한 사실을 쓴 글이다. 「덕암재기(德巖齋記)」와 「낙영재기(樂英齋記)」는 모두 장흥에 있는 강학처에 관한 글이다. 장흥 묵촌의 덕암재는 이희석의 장흥 묵촌 친족들이 자제들의 공부를 위해 설립한 글방이고, 낙영재는 장흥 용산면에 있는 용강사(龍岡祠)의 강당으로 월산재(月山齋)와 더불어 우수(愚叟) 김상범(金尙範)의 5, 6대손이 세운 것이다. 그밖에 「송석당기(松石堂記)」, 「도곡서실기(道谷書室記)」, 「최씨용호정기(崔氏龍湖亭記)」, 「금구열녀정씨정려기(金溝烈女鄭氏旌閭記)」, 「노원기(鹵園記)」, 「화봉기(華峯記)」, 「유관산기(遊冠山記)」, 「유사산기(遊獅山記)」가 있다. 「노원기(鹵園記)」는 바닷가에 살던 김경여(金景汝)라는 사람에게 '노원(鹵園)'이라는 호를 지어주면서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한 글이다. 특히 「유관산기」과 「유사산기」는 유람을 좋아했던 이희석이 천관산과 사자산을 유람하고 쓴 글로 문학적 필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발문은 6편이 실려 있는데, 족조 이적(李績)에 관한 「족조퇴옹공비문발(族祖退翁公碑文跋)」이 있고, 「영모재유집서발(永慕齋遺集序跋)」, 「서양성재선효자언행록후(書養性齋宣孝子言行錄後)」, 「서고씨삼효문기후(書高氏三孝門記後)」, 「서경주최씨효열록후(書慶州崔氏孝烈錄後)」, 「서영천굴결사기후(書靈泉窟結社記後)」가 있다. 그중 「영모재유집서발」은 1875년(고종 12) 1월 18일 삼가(三嘉)에 사는 친족 이양년(李亮年)과 이붕석(李鵬錫)이 영모재 문집 관련 일로 방문하자 써준 글이다. 「서경주최씨효열록후」는 판서 오준영(吳俊泳)을, 「서영천굴결사기후」는 무산도호부사(茂山都護府使) 고제환(高濟煥)을 대신해서 지어준 글이다. 권6에는 행장 3편, 묘지명 1편, 제문 7편이 실려 있다. 「삼종대부초당처사공행장(三從大父草堂處士公行狀)」은 이희석이 8세 때 『사략(史略)』을 배웠던 이상계(李商啓)의 행장이다. 이희석이 노사 기정진에게 부탁하였으나 근거할 만한 글이 없어 감히 행장을 쓰지 못하고 사양하면서 집안사람들이 사실을 모아 기록하라고 권유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소암처사위공행장(素菴處士魏公行狀)」은 위영우(魏榮禹)의 생애를, 「반천거사염공행장(磻泉居士廉公行狀)」은 염한기(廉翰琪)의 생애를 기록한 글이다. 행장 3편 모두 장흥에 거처했던 인물들이다. 묘지명은 부친 이중집(李重楫)에 대한 묘지명이 있으며 스승 기정진의 제문 2편과 기장일(奇章一), 도곡처사(道谷處士) 송종운(宋鍾雲) 제문이 있다. 그리고 「용산기우문(蓉山祈雨文)」은 기우제에 관한 글이고, 「제당산문(祭堂山文)」은 가뭄에 병충해 제거를 기원하는 글이고, 「축호문(逐虎文)」은 산신령에게 호랑이를 물리치게 해달라는 기원문이다. 「축호문」은 장흥부사 신석유(申錫裕)를 대신하여 쓴 글이다. 권7에 실린 『원유록(遠遊錄)』은 이희석이 1866년(고종 3) 3월 2일부터 6월 15일까지 약 4개월간의 여행기록이다. 「원유속록후서(遠遊續錄後序)」에 의하면, 원래 1858년(철종 9) 기문현(奇文鉉), 기봉진(奇鳳鎭)과 함께 수개월 동안 관서(關西) 유람을 하고 돌아오던 중 칠원(漆原)에서 쉬다가, 마침 그곳에서 만난 김녹휴(金錄休)가 관동(關東) 유람을 청하였다. 이희석은 즉시 승낙하였지만, 기봉진이 내년 봄에 가자고 하고서는 끝내 아무런 말이 없어 결국 무위에 그쳤다. 그러던 중 1866년(고종 3) 3월 고종의 가례(嘉禮)로 인한 증광시에 응시하기 위하여 한양으로 왔다가 김회현(金會鉉)과 함께 강화도를 유람하고, 한양으로 다시 들어온 뒤 김우(金玗)와 함께 세 사람이 금강산을 다녀오고, 다시 한양으로 와서 김회현과 함께 영서(嶺西)를 따라 남으로 내려가 조령을 넘어서 영남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권7 마지막 부분에는 이희석이 경유지와 거리를 기록해 두었다. 장흥 남면에서 출발, 한양, 강화(정족산성, 마니산), 한양 동대문, 금강산 장안사, 마하연, 유점사, 신계사, 총석정, 금성(金城), 창도(昌道), 원주, 조령, 대구, 합천 삼가, 진주 월횡(月橫), 하동, 구례 간전, 순천, 장흥 남면 묵촌까지 3,360리에 달하는 긴 거리이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 중 「성단음(星壇吟)」, 「정양사음(正陽寺吟)」, 「마하연음(摩訶衍吟)」 등은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실려 있다. 또한 「산림학자변(山林學者辨)」, 「조성하순소등비로변(趙成夏舜韶登毗盧辨)」, 「삼신산설(三神山說)」과 같은 논변문(論辨文)도 실려 있는데, 그 중 「산림학자변」은 산림(山林)이라는 용어와 의미 등을 사적(史的)으로 서술하였으며, 오늘날에 산림이 붕당의 희생양이 되어 위로는 공로를 펼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은택을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리고 「조성하순소등비로변」은 도동(桃洞)에서 이희석이 조성하(趙成夏, 1845~1881)의 『금강록(金剛錄)』을 보고, 동행했던 중들에게 지난해 조성하가 비로봉에 올라간 경위에 대해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글이다. 조성하의 본관은 풍양,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이다. 병조판서 조병준(趙秉駿)의 아들로 조병귀(趙秉龜)에게 입양되었으며,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친정 조카이다. 편서로 『금강산기(金剛山記)』가 전해오는데, 이것이 이희석이 언급한 『금강록』일 것이다. 영남 지역에서는 주로 자신의 친족들이 와서 안내하거나 도움을 주어서 영남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합천 삼가에서는 선조 이문화(李文和)를 모신 서계서원(西溪書院), 남명 조식의 강학처인 삼가 토동(兎洞)의 뇌룡정(雷龍亭)을 방문하였으며, 하동 월횡에서는 10여 일간 머무르면서 하달홍(河達弘, 1809~1877)과 동문인 조성가(趙性家, 1824∼1904) 등과 함께 시문을 주고받았다. 이희석과 조성가가 서로 창화(唱和)하며 지은 28운의 연구(聯句) 「여월재연구(與月齋聯句)」가 있는데, 특히 하달홍은 이를 기념하며 「파월연구서(坡月聯句序)」를 써주었다. 하달홍은 금강산의 뛰어난 절경과 여행 중 들었던 이야기가 여기에 다 실려 있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라고 칭하였다. 「원유록」을 보면, 강화도 기록에는 '추보(追補)'라는 작은 글자가 종종 보인다. 아마 문집을 편집할 당시 『원유록』 원편이 있었는데, 편집하면서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고 해당 내용 끝에 '추보'라고 써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인명이나 지명에 세주(細註)를 달아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권8은 이희석의 생애와 문집 출간에 관한 각종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행장을 비롯하여 기삼연(奇參衍)의 「남파이선생전(南坡李先生傳)」, 이승욱(李承旭)이 지은 묘지명, 그리고 김평묵(金平默), 최익현(崔益鉉), 송기로(宋綺老), 조성가(趙性家)로부터 받은 문집 발문 및 후서(後敍)가 실려 있다. 마지막 부분에 실린 삼종손(三從孫; 칠촌 조카의 아들) 이주원(李周遠)의 발문에 의하면, 이선원(李善遠) 등이 선조 이희석 문집을 출간하지 못해 한스럽게 여기다가 1898년(광무 2) 『인천이씨장흥파세보(仁川李氏長興派世譜)』를 출간하면서 집안 종형제인 이대원(李大遠)·이정원(李正遠) 등과 발간에 대해 논의하여 『남파집』을 함께 출간하였다. 『남파집』 맨 마지막 장에 '장흥부 어산(語山) 영석재에서 시간(始刊)'라는 기록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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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坡集目錄 序(寄宇萬)卷 1詩(五言絶句) : 家君生辰獻壽, 讀書永思齋(三首), 大明梅, 春夜與淡圃雅會(二首), 贈長興文雅, 老梅, 松下聽鸎, 過長興寶林寺, 南坡亭十詠, 贈長水秋童, 愛白髮, 次黃頤齋絶澗梅韻(二首), 老人會(三首), 種竹, 種松, 種梅, 種菊, 種瓜, 次柏下臨別韻, 贈別同福曺華瑞韻(三首), 敬次靜庵先生蘭竹屛韻(八首), 贈白雲洞主人, 奉和曾王考農圃公舟韻, 次南谷朴圭尙韻, 又次難昜韻, 綿鳥(二首), 門扉(二首), 歲寒, 淸夜, 無心筆, 安分, 謹次南湖公韻, 言志, 訪柳參奉漢五韻, 歲暮, 見兒子吟詠因以示意, 登三洲亭遺墟(二首), 贈光州朴友景瑞(삼수), 斥東學, 見人壁上有詩次其韻, 次三山齋(九曲十絶嘉卉十絶), 別密陽諸族叔, 白鷗(二首), 次黃德五蓮溪韻(二首), 呈知州閔永采生朝, 喜雨, 秧歌, 農家, 聽蟬, 淸溪(二首), 竹風, 松月, 扇, 寶劔, 白玉, 陌上花, 黃栗, 冬, 足蔡李通戒子詩, 又足謫道州詩, 庚戌八月哀吟(二首), 白龍山, 信傑山, 兄弟峯, 贈別魯城尹松雲(相卨三首), 附松雲韻(三首), 憶松雲, 憶黙忍齋吳正言, 見朱夫子無題四首韻效嚬(四押韻各五首), 立春, 夏夜遣懷, 贈從孫女壻吳郞(二首), 見治木自喻, 坐遊金剛錄(三十首), 無題(寓自警), 雨晴(三首), 素安齋韻, 贈別, 待人, 愧白髮, 綠陰, 喜晴, 問農, 答農, 郊行卽事詩(五言四律) : 老人會, 次不換亭韻, 望月, 村居, 春夜, 屈於會園還鄕偶吟, 守歲, 見明齋集八吟感作, 謹效放翁詠物(十首), 贈楓亭書齋諸生韻, 贈大谷書齋諸生韻, 次蓮溪族叔韻, 春興, 與張羅金黃四友吟(二首), 贈斗湖齋諸生韻, 贈東村諸生韻, 贈橫山諸生韻, 齒痛, 贈潘溪諸生韻, 追輓崔參奉丈(二首), 聾巖韻, 贈永村諸生韻, 贈玉洞尹哲成韻, 惜老(二首), 素安齋韻(二首), 與尹巖溪羅錦坡雅懷, 滯雨賡吟, 春祝(二首), 風雨夕思義征壯士, 幽居卽事(六首), 夜話, 雞雛, 東村書齋雅會, 橫山書齋雅會, 與羅錦坡張石聾雅會, 贈金參奉方孝, 偶吟, 大谷書齋雅會, 贈黑巖諸生韻, 憶李敬和, 藏春亭檻外風帆爲題, 贈諸生, 松村書齋雅會, 巨漲, 登大朴山, 臨別, 與會津林兄士善朴兄君日往于坪山夜話, 向玉洞, 相別用前韻, 庚戌秋夜吟, 黙忍齋韻, 次林兄炳彦春庵韻, 次錦坡令孫加冠宴韻, 偶題, 老柏, 穉桐, 題羅氏墓閣韻(二首), 挽客, 言志, 次咸平李箕隱奎還婚宴韻(二首), 贈尹松雲, 挽柳公榮沃氏, 追挽博山梁栢下(相衡)卷 2詩(七言絶句) : 生朝感吟(二首), 思故人, 偶題, 示竹池諸生, 與張石聾羅錦坡雅會, 次張石聾與諸生論懷, 用前韻贈張醫石聾, 兒子讀書, 雨雪中偶吟(三首), 幽居, 書懷(二首), 索綯, 臘梅(二首), 贈兒曺一絶, 詠懷(三首), 贈醫師(三首), 贈地師(二首)咏巫師, 咏卜師·咏樂師, 戱贈羅松皋(二首), 與張石聾雅會(二首), 秋雨, 瞽負躄, 感懷, 示諸生, 別張石聾, 消遣世慮, 餞歲, 迓歲 , 霖蛙, 梳, 雞, 詠黃橘, 次閔侯芝潭松菊韻, 見柳子厚哀溺文感作, 春寒, 秋蘭, 戱贈或人, 贈人, 次閔侯夢得八字韻(二首), 次崔友與諸生敘懷(二首), 冬至, 大雪, 雪月, 冬雨, 次道林春齋難窩韻, 讀濂洛詩謹倣程明道及諸賢詩(二十二首), 倣拙齋和不欺堂韻(二首), 倣朱子題胡氏客舘韻, 倣伊川謝王佺期贈丹, 倣橫渠芭蕉韻, 倣康節暮春吟, 倣龜山江上夜行, 倣橫渠我欲韻, 倣涑水崇德久待不至, 倣龜山閒居書事, 倣呂榮公大雪不罷講, 倣朱文公題眞, 倣呂成公晩春, 倣王文憲題張子房, 倣王立齋査林對月, 倣楊船山幽居, 倣胡五峯利欲, 倣李延平柘軒, 倣王文憲冬菊, 倣胡致堂和唐人未到五更猶是春, 倣陣了翁雜詩, 倣尹和靖過种明逸故居, 過興德李魯瞻家, 八吾詩, 謝竹池先生所惠海墨, 聞主倅丈(宋正希)重修望華樓有感, 次主倅登海月樓韻, 次成眞逸齋漁父韻, 秋入新修洞永思齋吟, 次李容齋聽子規韻, 哭兦弟聖直墓, 榮江船遊, 謝錦城李使君所惠(二首), 輓登臨岳丈, 燈花, 次樂軒韻, 寒風韻示諸生, 謝崔自重送河豚, 贈別龍仁吳一洙, 次柳參奉漢五正月韻, 三月晦登大朴山(二首), 次公州閔都事泳夏韻, 贈別閔都事(二首), 見龜峯集詠月韻謹題, 老人會韻(三首), 贈同庚柳致奎, 見退溪集野池韻感作, 附原韻, 又見咏懷韻感作, 附原韻, 次魯龍起觀瀾齋韻(二首), 敬次退溪先生韻(七首), 又效退溪吟, 次柳參奉漢五韻(三首), 贈光陽朴熙權, 贈朴述齋三從孫鍾賢, 贈別石城宗人健緖, 次楊柳詞, 次朴圭尙難易韻, 次蓮溪諸生韻(二首), 次溫陽金恒鎭韻, 草洞風景十詠, 見兒子蜂桶斥蟻有感, 贈洪州金承旨雲庵韻, 次黃德五韻, 寒食途中用淸明韻, 贈黃友, 夜與張羅金黃四友吟, 效姜秋琴落花詩(十首), 池塘, 靈臺, 次藏春亭韻(三首), 理氣, 夜雨, 齒痛(二首), 與尹巖溪諸公雅會, 登大朴山, 聞養老之說偶題(二首), 與張石聾羅錦坡雅會, 臨別, 大朴小朴山(二首), 靑林山, 兄弟峯, 錦城山, 聽啞聾歌感懷(二首), 謹次讓寧大君詠梅韻, 聾盲歎, 芭蕉, 挽玉洞尹泰獻(二首), 詠懷(二首), 宿不老峙敬睦齋, 素安齋韻, 次松隱(三首), 松篁幽居(四首), 八月三日夜, 有所思, 客至夕話(三首), 贈咸平甑山金雅(三首), 聽秧歌, 次尋香寺會韻(三首), 憶寶林寺松臺舊遊(二首), 聽乳犢哀鳴, 觀禾鳥, 開硯, 敦睦齋老人會韻, 次張石聾韻, 與羅錦坡金醉松雅會, 冬柏, 次靈光李進士韻(二首), 尹本倅小石來訪, 題長城蛾睂巖, 見明人蚌鷸詩次一絶 , 贈潘南羅德咸, 雪中梅花, 落照, 寒風, 種樹, 初月, 林間新花, 初雪, 積雪, 西樓感懷, 次柳參奉韻, 懷春, 雨夜與閔友雅懷, 除夜, 正月穀日大雨溪漲, 過長洞酒店, 松湖雨夜憶族從士平, 喜雨夜與諸益雅會, 靈光行過古幕浦, 村居, 雨夜呼酒, 丁丑元朝偶題, 十二日偶吟, 冬暖, 冬至, 雨晴, 叢竹, 霖雨, 百日紅, 老柳, 蓮花, 夢中作, 偶吟, 大雪風, 次楓亭書齋會遊韻, 勉諸生, 怪石, 南瓜, 一經齋七夕詩會, 次再從弟木浦韻, 憫老, 自警, 自笑, 初夏盛事, 燈火, 縱筆, 石磨, 端午, 斗湖齋會吟(二首), 有感, 放言, 次人韻, 過馬山崔國鳴家詠霜菊(二首), 與林友及張石聾敘懷(二首)卷 3詩(七言律詩) : 南坡亭韻(二首), 望慕庵韻, 學心堂韻, 倚斗齋韻, 與南平洪亨植偶吟, 謹次寶山精舍韻, 與譜所諸族相和(十首), 次錦樵天然亭韻(二首), 附原韻, 次南山韻, 附韋堂靑湖韻, 南山歸路, 次錦樵(二首), 題金溝西溪張氏家, 登泰仁披香亭, 呈譜所諸君子, 憶譜所諸族, 夙夜齋韻, 贈諸生, 敬次崔參奉晬辰韻, 次次李父回甲韻, 龍山暮雨贈諸生, 與金相夏雅會, 贈南原金澤烈韻, 次南原李上舍元泓燭詠, 又次紙繩韻, 次族叔回甲韻, 次宋山丈八音八卦韻, 十月太雪中聞雷聲, 次崔有聲敘懷韻, 西樓感懷, 次柳參奉書齋韻, 次道林吳二兄韻, 次新堂林元詩會韻, 見林老泉集效碁韻, 次登臨林(基洪)韻, 用前韻憶吳諸兄, 與諸老少登大小朴山, 輓蘭石朴先生, 贈梧隱梁相烈, 次東隱先生回甲韻, 往登臨遊魚登山, 田家, 生日契韻, 次務安雲庵書齋韻, 自寶山紋巖, 登錦城峙, 與海南尹鍾敏氏雅會, 庭試行曉過四街, 過詩山, 三月時祀後登周流峯, 老梧, 村居, 次(炳愚)最高亭韻(二首), 永思齋韻, 贈別綿城李使君雲夏, 宗人汝冠雨後適至, 輓登臨岳丈, 與綿城倅趙駿九遊東湖, 鄕校次主倅金炳愚韻, 崇禮門外與梁博山, 入登臨滯雨, 題務安朴氏遊山亭, 過寶林寺贈离峯上人, 次潘南羅友楠堂韻, 放言, 用前韻聽兒子夜課, 用前韻憶光汝去公州, 示兒子, 次七星洞崔西山韻, 次興德黃寒悶世韻, 怪石, 次淸一齋韻, 雨夜與黃德五敘話, 次白羊寺雙溪樓韻, 與黃德五敘話, 族兄璋憲氏回甲韻, 題柱聯詩, 見退溪集謹效問業韻, 安分, 憫老, 谷城李友三人來訪, 次蓮溪詩話, 輓南松崔監役, 次族叔晩軒韻, 敦睦齋韻, 逍遙亭韻, 次崔安中韻, 次楓亭書齋韻, 次永村書齋韻勉諸生, 次斗滿齋韻勉諸生, 觀書有感, 次錦莎亭重修韻, 次不老峙敬睦齋韻, 農隱齋韻, 贈漢樵鄭進士斗鎔, 次不換亭雅會, 贈曺漢明秉奎, 次李友洞晩悟亭, 回甲韻, 次再從弟入島韻, 登碧流, 次吳難窩回甲韻, 楓亭齋雅會, 隨占堂原韻, 次潭陽俛仰亭韻, 次赤碧望美亭韻, 次風詠亭韻, 次長城金同甫巖窩韻, 次長城德亭水聲韻, 自戒, 言志, 寄笑, 示同閈諸生 重陽對菊, 次蓮溪雅會韻, 次扶安鄭(碩好)韻, 次或人韻, 贈斗湖齋諸生韻, 示兒子, 贈楓亭齋諸生韻, 縱筆, 幽居, 贈大谷書齋諸生韻, 贈竹池書齋諸生韻, 贈南原諸友韻, 次鄭振聲幽居亭韻, 次(朴準承)養老堂韻, 復次萬人屛韻, 次朴氏永慕齋韻(作人代), 謹次石串亭韻, 輔義契韻, 詠竹坡, 和(朴準承)冬至與鄕士韻, 大谷書齋雅會(二首), 輓勉庵先生(二首), 人日, 上元, 逢黃德五說處世道(二首), 次張石聾感時, 黃德五同奇友來並和, 與金醉松夜話, 與黃石東吟, 觀雉雛, 盆梅, 歎世吟(二首), 贈別黃德五, 次芝岡, 次白雲汀送奇松沙韻, 次白雲汀韻偶吟, 古木, 贈門中諸少韻(二首), 與龍仁吳一泳雅會, 謹次申閤丈桂田韻, 次晩悟韻, 次藥隱韻, 次吳氏永慕齋韻, 與曲江金參奉雅會, 再從弟亨憲回甲韻, 藏春亭謹用高峯韻, 次崔氏永慕齋韻, 贈松臯羅正字韻, 挽錦陽居士林公(瀯相), 思美人, 觀高峯集四七論, 四端, 七情, 理氣, 送松臯羅兄赴慕聖契會, 挽南平戚弟李熙, 次歸樂齋韻, 次朴聖汝回甲韻, 贈玉洞靑龍齋尹哲成, 輓族弟樹憲, 追輓奇公三衍, 狂歌行卷 4書 : 上沈判書(相薰)二, 上朴承旨(昌壽)四, 與尹承旨(相翊), 上校理族叔(敏英), 答珍島倅族弟(命憲), 上密陽族兄(志憲), 與本倅閔(種烈 二), 答本州義所李(鶴相), 答義所柳紀淵, 與舍弟輔憲, 上朴司諫(淇鍾), 與寄傲亭朴(寅陽), 與雙汀金在淇, 與奇松沙(八), 與吳後石, 答吳難窩, 與梁草史(相衡), 贈族姪啓宖, 答密陽宗中, 與南松崔基相, 與本倅金(天洙), 答朴駿相, 與應敎李(炳鋈), 與主倅閔(泳采), 答主倅金(聖基), 與朴參奉(準一), 答冰月堂刊所(二), 與崔洛喜, 答咸恩君宗孫(啓元), 答族人(令憲)記 : 南坡亭記, 三山齋記, 夙夜齋小記, 遊登魚登山記, 望慕庵紀, 一經齋記, 隨占堂記, 石串亭記, 永慕齋記, 靑龍齋記, 倚斗齋記, 學心堂記, 祠山書院記卷 5序 : 錦沙公墓契案序, 沙隱公遺稿序, 海史公從遊簡編序, 海史公墓契案序, 麟谷白馬山兩村契案序, 世寶錄序, 草譜序, 花樹錄序, 洞約序, 老人會案序, 聞尹參判(相翊)分福下比志行上方語感而序, 修齊輯要序, 洞契別庫重刱序, 鄕約案序, 鶴洞門案序, 輔門案序, 學禊序, 興德張氏直長公派門案序, 聾巖小序, 黙忍齋序, 春齋序, 晩悟序, 藥隱序, 黙窩序, 蒙學句語序, 文月溪(錫容)孝行錄後序, 觀張餘力齋集感而爲序, 一心齋序, 訪李君京彦甫聽彈琴序, 贈柳參奉漢五序, 自警序,箴 : 南坡亭壁上箴, 戒子啓元箴, 贈諸生箴, 憑几箴, 食色箴, 晝寢箴銘 : 明鏡銘, 自警銘, 座右銘說 : 人心道心說, 心字說, 竹說贈魯竹坡仲敬, 張友志敎石聾說, 黃德五號石東說, 離孫高在天字說上樑文 : 南坡亭上樑文, 孝子崔公旌閭上樑文, 石串亭上樑文祭文 : 祭高氏妹文, 祭蘭石朴承旨(昌壽)文, 祭崔監役(鳳翰)文, 祭竹圃朴司諫(淇鍾)文狀 : 祖考莎隱公府君家狀, 先考海史公府君家狀, 學生崔公行狀, 義士贈敎官張公行狀, 上舍羅公行狀墓碣銘 : 先祖蒿巖公府君墓碣銘(幷序), 附先祖參議公世系事實錄墓表 : 先祖節度公府君墓表, 宣武原從 扈聖建功, 將軍節制使李公墓表附錄 : 輓詩(十四首), 祭文, 行狀, 墓表 跋(李孟範, 李啓善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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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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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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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謁邵城伯墓祗 昔聞文鶴山。今見看雉島。千里湖南孫。暮春始展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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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呈立齋奇丈 梅花未放柳梢遲。春日行人雪映眉。三到鰲山非學步。函筵薰炙已多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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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承旨崔益鉉以眞言恩譴濟州 通國齊心越視秦。脂帚軟熟保其身。何處得來崔益鉉。封章唐突感重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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