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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菴崔丈 양생(梁生)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답장을 받고서 덕후(德候)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멀리 있는 이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소생은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고 있기에 안목은 열 길이 없고, 마음은 넓힐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고 쇠병은 날로 깊어지는 가운데 그대로 답습하며 세상일에 골몰하니, 소인이 됨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다만 경기와 호남 사이에 큰 덕망을 지니신 한두 분이 산림에서 도를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시니, 비록 한번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말석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암(重庵)과 성재(省齋) 두 어른의 근래 안부는 어떠하신지요? 의론이 같지 않은 것은 이보다 앞서 대략 그 설을 들었는데, 보내 주신 편지를 읽고서 비로소 참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또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으니, 두 문하에서 변론한 것이 다만 '심(心)' 1자를 가지고 기(氣)와 이(理)로 구분하는 데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별도로 곡절이 있는 것입니까? 나머지 말을 한번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일찍이 망녕되이 생각하기를 '심이라는 것은, 당체(當體)로 말하면 기의 허령한 곳이고, 실두(實頭)로 말하면 이의 오묘한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理)로 말한 것이 있으니, 정자(程子)가 "심(心)은 생도(生道)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주자(朱子)가 "심(心)은 음양과 같다."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와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장자(張子)가 "심은 성(性)과 지각을 합한 것이다."라고 한 것34)이 이것입니다. 하늘과 같아서 형체(形體)로 말할 수 있고 주재(主宰)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벽계(檗溪) 선생의 말이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정자와 주자 등 여러 선생의 말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됨만 보고 그것이 이가 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기가 이의 자리를 차지하여 크게 잘못되었으니 어디를 간들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른바 물칙(物則)의 구분을 알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심은 물(物)이 되고 인(仁)은 칙(則)이 되며 심은 칙이 되고 신(身)은 물이 되니, 어찌 법칙이 있는데 물이 없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성옹(省翁)이 우연히 잘못 본 곳입니다. 아, 태극이 진면목을 잃고 이와 기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에 어두운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다행히 오직 벽계(檗溪), 노사(蘆沙) 두 선생이 참고하고 절충하며 주선하고 지휘하여 사문(斯文)의 명맥이 실추되지 않게 하였으니, 도가 행해진 지 몇 년 되지 않아 의론이 횡행하는 것이 문하의 고제자 사이에서 나올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중암(重庵)께서 세도를 근심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김없이 토론하여 계속하여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한계가 있고 개색(開塞)은 때가 있으니, 행함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곡진하게 강론하여야 천천히 그 효과를 볼 것입니다. 또 마땅히 자기에게서 돌이켜서 '내가 고한 것이 그 마음에 불성실함이 있는가? 그 말에 아뢰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 의리에 밝지 않은 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불가하다면 각자가 들은 바를 존중하여 더불어 분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저 천하의 시비는 잗단 말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시끄럽게 하면서 그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마땅함을 잃을 뿐만이 아니라 또 지나치게 따르는 자가 장차 이로 인하여 사단을 일으킬 염려가 있게 될 테니, 이는 예부터 편당을 짓는 습속이 점점 격렬해져서 수습하지 못한 이유인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보면 분명하니, 어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평소 곧은 말과 곧은 행실이 당대에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는데 지금 또 내부에서 서로 어긋나 갑자기 더욱 배척하니, 또 틈을 노리는 자가 스스로 손을 쓸 계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더구나 도리 쪽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속이고 사물을 해치며 터무니없고 법으로 삼지 못하는 설에서 나왔으니, 더욱 어찌 곡직을 비교하고 시비를 따지겠습니까. 밝은 일월을 한 조각구름이 어찌 가리겠으며, 낮은 돌은 밟는 이도 낮아지는 법입니다. 계속해서 논쟁하여 해만 있고 보탬이 없기보다는 차라리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서 공격하지 않고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처음에 이러한 내용으로 중암께 받들어 고하고자 하였는데 교분은 얕은데 말은 심오하니, 사체로 볼 때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문장(文丈)께서는 부디 강론하는 나머지에 조용히 서로 고하되, 말을 조심하는 경계를 지키고 비방을 막는 훈계를 생각하십시오.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훌륭한 계책을 고이 간직하신다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신묘해지고 광채가 날 것이니, 먼저 가신 스승님의 도를 세상에 크게 밝혀 사방의 학자가 의지하고 앙망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궁벽한 시골의 천박한 자취가 얼마나 하찮습니까마는, 지우를 받은 친밀함으로 지나친 염려가 이에 이르렀으니, 너무나 참람하고 망녕되어 죄송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 주십시오. 梁生廻。伏承下覆。仍審德候崇適。寶副遠情。生跧伏窮荒。耳目無由開發。胸懷無由展拓。加以世故日深。衰病日侵。因仍汨沒。恐無以免於小人之歸。但畿湖之間。有一二長德。守道林樊。獎進後學。雖未能一操几杖。趨走於唯喏之末。而所以爲究竟之計。實在於此矣。重庵省齋兩丈近節何若。其議論不同。前此粗聞其說。及讀下書。始知信然。而又未得其詳。未知兩門所辨。只在心一字爲氣爲理之分耶。抑別有委折耶。恨未得一聽緖餘也。愚嘗妄謂。心者言其當體。則氣之靈處也。言其實頭。則理之妙處也。是以有以理言者。程子云。心生道是也。有以氣言者。朱子云。心猶陰陽是也。有以理氣言者。張子云。合性與知覺是也。如天一也。而有以形體言。有以主宰言者也。此非獨檗溪先生之言如此。程朱諸先生之言。皆如此。今何獨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耶。氣占理位。大頭已差。則安往而不窒礙耶。且其所謂不知物則之分者。亦恐未然。心爲物。仁爲則。心爲則。身爲物。豈有有則無物之理乎。此是省翁偶失照管處。噫。太極失眞面。理氣昧界至者。久矣幸惟檗溪蘆沙兩先生。參訂折衷。指陳開揮。使斯文命脈。不墜於地。豈知行之未幾年。議論橫決。出於及門高弟之間哉。以重庵憂世衛道之心。宜其極言謁論。縷縷而不已也。然識量有分。開塞有時。行有不合。當委曲講討。徐來其效。又當反之於己。以爲吾之所以吿之者。其心有不誠歟。其辭有不達歟。其義有不明歟。然且不可。則各尊所聞。與之無辨。可也。夫天下是非。頰舌有非可辨。而若譊譊不止。則不惟自失語默之宜。且使過從者。將有夤緣生事之慮。此自古偏黨之所以轉輾層激而莫可收殺者也。前鑑昭昭。豈不可畏。平日之危言危行。恐不無見忤於時。而今又內相矛盾。遽加排擯。又安知無窺伺者。自以得下手之計也。況非道理邊語。而出於誣人害物無據不經之說。尤何足較曲直計是非也。日月之明。寸雲何傷。維扁斯石。履之亦卑。與其爭辨不置而有害無益。曷若靜而鎭之。不攻自熄之爲愈也。初欲以此。奉告重翁。而交淺言深。未知事體之何如。伏願文丈。幸於講聚之餘。從容相告。守括囊之戒。念息謗之訓。珠玉寶蘊。蓍龜珍藏歲。久年深。益神益光。使先先生之道。大明於世。而勿孤四方學者倚仰之情。如何。窮鄕賤迹。何等蟣虱。而受知之密。過慮及此。僭妄踰越。俟罪竢罪。伏乞下賜諒燭。 장자(張子)가……것 《장자전서(張子全書)》 권2〈정몽(正蒙) 1〉 태화편(太和篇) 제1에 "태허를 말미암아 천(天)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기화를 말미암아 도(道)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으며, 태허와 기화를 합해서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성과 지각을 합해서 심(心)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之名.]"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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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菴崔丈 박생(朴生)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보내 주신 답장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절기가 바뀌어 추위의 위엄이 맹렬해지려는 때 삼가 일상의 기거는 충양(沖養)하시며 기체후는 더욱 만중하십니까. 중암(重庵)이 세상을 떠난 뒤에 홀로 쓸쓸히 지내는 마음은 더욱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유 사문(柳斯文) 용계(龍溪)는 학문이 깊고 행실이 고아하며 거처가 매우 가까워 강습하는 즐거움은 오히려 의지할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생은 신세가 더욱 위축되고 궁박함이 더욱 심합니다. 동문수학한 벗 가운데 학식과 행실이 정후윤(鄭厚允) 애산(艾山)과 같은 자와는 또한 회합하지 못하니 외롭고 쓸쓸하며 따분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급급하게 만년을 수습할 계책이 매우 아니니, 어찌합니까. 성재(省齋) 어른의 심설(心說)은 다행히 보여 주신 은혜를 입어 삼가 대략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근세 이래로 변론한 것이 많으니,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35)를 주장하거나 본연(本然)과 기질(氣質)의 동이를 주장하거나 일본(日本)과 만수(萬殊)의 동이를 주장합니다. 대개 갑(甲) 쪽에서는 같은 것만 보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하며, 을(乙) 쪽에서는 다른 것만 보고 같은 것을 보지 못하니, 이것이 다툼의 단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심(心)' 자와 같은 것으로 말하면 선덕(先德)이 기(氣)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니고, 이(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어찌 유독 기가 되는 것만 보고 이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렇게 간사한 무리들이 다투어 나와 오도(吾道)가 실낱같은 때 선비가 한 가지 선(善)이 있으면 바로 마땅히 돕고 인도하여 그 학업을 성취하게 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 마디 말이 어긋난 것은 실로 금이나 구슬의 작은 하자에 지나지 않는 데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오직 마땅히 조용히 강구하여 천천히 합치되도록 해야지 갑자기 내치고 문파를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근일에 과거(科擧)를 공부하는 선비 가운데 나아가 과거에서 합격할 길이 없으므로 물러나 자취를 학문에 의탁하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 구습에 젖어 혹 명예를 구하는 폐단이 없지 않으니, 이는 바로 근심스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가 남을 대하는 도량은 실로 찾아오는 것을 허여할 뿐 물러간 뒤의 일은 허여하지 않습니다. 저의 고향 유생으로 문하에 출입하는 자는 학업과 조예가 혹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천 리 멀리 가서 배우는 것은 정성이 가상하니, 부디 재주에 따라 가르쳐 주시어 각각 학업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 실로 구구한 이의 바람입니다. 朴生廻便。伏承下復。旣而時令改易。寒威將綮。伏未審燕處沖養。氣候增重。重庵逝後。離索之懷。想益難狀。聞柳斯文龍溪學邃行高。居且密邇。講聚之樂。尙有所聊。遠外馳想。不任下情。生身事益蹙。棲泊益深。同門知舊。學識行誼如鄭厚允艾山者。亦且不得相聚。踽踽涼涼。索然無味。甚非所以汲汲收桑之計也。奈何。省丈心說。幸蒙示及。謹悉梗槩矣。近世以來。辨論多端。或以人性物性之同異。或以本然氣質之同異。或以一本萬殊之同異。蓋印邊見其同而不見其異。乙邊見其異而不見其同。此所以惹起爭端也。至若心字。先德有以氣言者不一。有以理言者不一。今何獨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耶。然方此群邪競逐。吾道如綫之日。士有一善。卽當扶接導引。以就其業。況一言之差。固不過爲金玉之微瑖。惟宜從容講究。徐求其合。最不可遽加排擯。以立門庭也。近日功令之士。進無所售於科第。故退而托跡於學問者。不少。其舊習所狃。或不無干名要譽之獘。此正可憂者。然君子與人之量。固可與其進。而不可與其退也。鄙鄕儒生出入門墻者。其學業造詣。或有未及。而千里趨從。誠力可佳。須隨材授敎。各就其業。實區區之望也。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을 같은 것으로 볼지 다른 것으로 볼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이 벌인 논쟁이다.]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의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주로 호서(湖西) 지방, 즉 충청도 일대에 거주하고,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의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주로 낙하(洛下) 지방, 즉 서울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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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초토사40)【종렬】에게 올림 上閔招討使【種烈】 삼가 아룁니다. 천하의 이치는 하나일 따름입니다. 성(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고, 도(道)는 군신부자(君臣父子)이고, 인(人)은 요순공맹(堯舜孔孟)이고, 교(敎)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이니, 이 이치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이치는 없고, 이 도 외에는 더 이상 다른 도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며 사교(邪敎)입니다. 선유(先儒)가 "육예(六藝)의 학문과 공자의 말씀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려서 세상에 함께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기강이 하나로 될 수 있고 법도가 밝아질 수 있다."41)라고 하였고, 또 "사람이 의리의 근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백성들에게 해가 되어 백만의 시체가 쌓이고 흐르는 피가 천 리에 이어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이 시비와 사정(邪正)을 판가름할 때 분변함이 매우 밝고 막는 것이 매우 엄격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는 자는 성인의 무리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며, 또 옳지 않은 방도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는 죽여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만고의 대방(大防)이며 역대의 지극한 경계입니다. 아, 근년에 이른바 동학(東學)이라는 것은 무슨 종교입니까. 예부터 이단이 많았지만 그 요사스럽고 허탄하며 비루하고 흉패한 것이 이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근래 백성들 가운데 도적과 금수로 돌변한 자가 날마다 천이나 만으로 헤아릴 정도이지만 군신 상하가 인습에 젖어 편안하게 여기며 금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흉악한 계략이 낭자하여 화색(禍色)이 하늘을 찌른 이후에야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합니다. 앞서는 한마디 말로 금할 수 있었지만 뒤에는 수만 명을 동원하더라도 힘이 부족하며, 앞서는 한 사람을 처벌하면 징계할 수 있었지만 뒤에는 수만 명을 죽이더라도 재앙이 풀리지 않습니다. 가령 이 역적이 무기를 들고 윗사람을 범하는 일이 없고 다만 사교(邪敎)를 가지고 몰래 서로 전파하는 것이 전일과 같았으면 아마도 조정에서 필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윗사람을 범하는 것이 죄가 됨만 알고 사교가 윗사람을 범하는 근본이 되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를 배양하면서 가지를 잘라내며, 물의 근원을 탁하게 하면서 지류를 맑게 하는 것이 어찌 이치이겠습니까. 오늘날의 거조가 반란을 구제하고 폭도를 주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척사위정(斥邪衛正)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추향할 바를 알게 하는 것으로 말하면 오히려 강구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미 지난 진부한 자취를 뒤미처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날의 잘못이 바로 오늘날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위한 계책은 정학을 높이고 천리를 밝히며, 사설을 배척하고 인심을 바로잡아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은 따를 만하고 저것은 피할 만하며, 이것은 지향할 만하고 저것은 배척할 만함을 환하게 알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잘못을 계속해서 되풀이하여 전혀 깨우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발각되는 대로 잡아서 무거운 형벌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교화된 자는 다 변화된 것이 아니고 태도를 바꾼 자는 결코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니, 후일의 화가 다시 오늘처럼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합하(閤下)께서는 큰 의리에 밝고 큰 절개가 있어 성대하게 사방에서 추앙을 받으니, 사문(斯文)과 세도의 책임은 절로 사양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부디 집집마다 깨우쳐 주어 한 도(道)의 이목을 일신하고, 또 이 뜻으로 성상께 아뢰어 저지되지 또는 기각되지 않는다면 실로 종사와 생령들의 무궁한 복이 될 것입니다. 伏以天下之理一而已。性則仁義禮智。道則君臣父子。人則堯舜孔孟。敎則詩書禮樂。此理之外。更無他理。此道之外。更無他道。外於此則異端也。邪敎也先儒有言曰。諸不在六藝之科孔子之術者。皆絶其道。勿使倂進。然後統紀可一。法度可明。又曰。人於義理之原。毫釐有差。則其爲生民之害。至於積尸百萬。流血千里。是以聖人於是非邪正之除。辨之甚明。拒之甚嚴。至謂能言拒楊墨者。聖人之徒。又謂。執左道以惑衆者。殺無赦。此是萬古大防。歷代至戒也。嗚呼。近年所謂東學。是何敎也。自古異端。非不多矣。而其妖怪狂誕。鄙俚凶悖。未有若是之甚者也。目下赤子化爲盜賊禽獸者。日以千萬計。而上下因循。恬不爲禁。至於凶計狼藉。禍色滔天然後。乃始興兵討之。前以費一辭而可禁。後則擧數萬衆。而力猶不贍。前以笞一人而可懲。後則誅數萬人。而禍猶未解。若使此賊無弄兵犯上之事。而但以邪敎。潛相傅染如前日。則恐朝廷必無興師討伐之擧。是則徒知犯上之爲罪。而不知邪敎之爲犯上之本也。培其根而剪其枝濁其源而淸其流豈理也哉。今日之擧謂之捄亂誅暴則有之矣。至於斥邪衛正。使民知所趨向則尙未之講也。今非欲追咎已往之陳跡。正以前日之失。乃今日之戒。爲今之計。莫若崇正學。明天理。斥邪說。正人心。使群黎百姓。昭然知此之可趨。彼之可避。此之可向彼之可背。或有襲訛踵誤。漫不回悟者。則隨現隨捉。旋以重典。不然則目今梗化者。未盡歸化。革面者未必革心。安知後日之禍。不更發如今日乎。伏惟閤下明大義。秉大節。蔚然爲四方所宗仰。斯文世道之責。自有所不得辭焉。須家喩戶曉。以新一路之耳目。又以此意。奏達天聰。不至見寢。則實宗社生靈無疆之福。 민 초토사(閔招討使) 민종렬(閔種烈)이다.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을 때 동학군에 대항하여 성을 굳게 지킨 공으로 1894년(고종31) 10월 28일에 호남 초토사(湖南招討使)에 임명된 사실이 있다.《高宗實錄 31年 10月 28日》《承政院日記 高宗 31年 10月 28日》 선유(先儒)가……있다 이 내용은 한 무제(漢武帝) 때 동중서가 올린 대책(對策)에 나오는 말이다.《漢書 董仲舒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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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균【태중】에게 답함 答丁德均【泰重】 여러 달을 타향의 서당에 묵으면서 생계 때문에 대단히 많은 괴로움을 겪었을 텐데,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서로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의지가 확고하고 추향이 구차하지 않음을 충분히 아는데, 만분의 일도 도움을 주지 못하니 부끄럽네. 이별한 뒤에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소식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을 더욱 풀 길이 없었네. 참으로 뜻밖에 한 통의 편지가 왔는데, 전달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도중에 옆으로 새지 않고130) 아무 탈 없이 우리 집으로 전달되었다네. 봉투를 열고 읽어보고서, 삼가 부모를 모시고 기거하면서 신령이 도와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는 위안이 되어 마음이 놓이는데 실로 듣고 싶었던 바이네. 나는 서당을 그만 둔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본래 병을 요양할 계획이었으니, 어찌 다시 이전처럼 서당에 거하며 학도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세상이 이처럼 험난하니 대단히 통탄스럽네. 그러나 이 어찌 우리 같이 쇠잔한 인생이 알 바이겠는가. 삶과 죽음, 재앙과 복은 한결같이 저 하늘에 맡겨두고 다만 내가 해야 할 것을 닦아 미진한 단서가 없게 해야 하니, 이것이 옛사람이 말한 '평이한 도리를 행하면서 천명을 기다린다.'131)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현이 남긴 가르침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충분히 힘을 쓸 만한 곳이네. 다만 하단의 '무슨 책을 먼저 읽고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네. 우리 벗의 명철함으로 과정과 절차, 수신하는 대강 등에 대해 먼저하고 뒤에 할 것의 순서를 알지 못함은 걱정할 것이 아니며, 다만 수립한 과정을 떠맡아서 용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뜻이 혹 조금이라도 물러날까 하는 것이네. 이것은 본령(本領)에 해당하니, 차선책을 마련해서는 안 되네. 이 뜻을 바라건대 우범(禹範)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만 리 앞길에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은데, 평범하지 않은 업적은 반드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니 힘쓰고 또 힘쓰시게나. 아득히 멀어 서로 만나기가 요원하니, 그리운 마음에 안타까울 뿐이네.대저 성(性)은 하나일 따름이네. 그러나 이른바 '하나[一]'라고 하는 것은 나뉨이 없다는 것을 이름이 아니네. 만약 이곳에 분명하게 본다면 이른바 개의 성, 소의 성, 사람의 성132)은 또한 처음부터 본연의 성이 아니네. 만약 본연의 성이 아니라면 개와 소의 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사람들이 그 같지 않은 것을 보고 으레 기질지성으로 귀결시키니, 이것이 근대 주기지설이 일어나게 된 까닭이네. 맹자가 고자와 변론할 때, 다만 사단만 들어서 성의 본래 선함을 밝혔지만 '악(惡)' 한 글자가 기인한 바에 대해서는 귀속시키지 않았으니, 이것이 정자가 '성을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았다.'133)는 말을 하게 된 것이네. 주자는 이르기를 "맹자가 은미하게 그 단서를 발하였으니, 대개 같지 않은 것[不同]은 참으로 이(理)가 나뉜 것인데, 같지 않은 곳에서 또한 그 기질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數朔旅齋。討喫無限辛苦。而所得果何事耶。相聚之久。足以見其志意之牢確。趨向之不苟。而愧無以資其萬一之益也。別後有月。聲息莫憑。悵菀之懐。尢不知所以爲遺也。一書眞料外也。未知傳之者何人。而不沈不浮。無恙入吾廬耶。披玩以還。謹審侍省起居。神相萬祉。區區慰豁。實叶願聞。義林破齋歸巢。本爲養病計。豈復有居齋授徒如前日乎。世險如此。極可痛歎。然此豈吾輩残生所可與知者耶。死生禍福。一付彼蒼而。只修其在我者。俾無未盡之端。是非古人所謂居易俟命者耶。聖賢遺訓。是爲下手處。果如來喩。但下段何書爲先。何事爲先之云。竊恐未然。以吾友之明。其於課程節度。修省梗槩。不患不知其先後之所在。而但擔當堅立。勇徃直前之意。或不能無少遜耳。此是本領田地。不可作第二義觀。此意幸與禹範共更量之如何。萬里前程。所望非細。而非常之功。必待非常之人。勉之勉之。相奉悠遠無階。瞻望馳悵而已。夫性一而已矣。然所謂一者。非無分之謂也。若於此處見透。則所謂犬之性牛之性人之性。亦始非本然之性也。若非本然。則犬牛之性。何處得來。人見其不同者。例歸之於氣質。此近世主氣之說所以作也。孟子與告子辨。特舉四端。以明性之本善。而於惡一字所從來。未有歸屬。此程子所以有論性不論氣之語也。朱子謂孟子微發其端云者。盖不同。固理之分也。而於不同處。亦可以見其氣質矣。深思之如何。 도중에……않고 진(晉) 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하였다. 평이한……기다린다 앞의 〈답황정후(答黃正厚)〉에 보인다. 개의……성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고자와 맹자가 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으니 "고자는 '생을 성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맹자가 '그대가 생을 성이라고 하는 것은, 백을 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가?'라고 물으니, 고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맹자가 또 '백우의 백은 백설의 백과 같으며, 백설의 백은 백옥의 백과 같은가?'라고 물으니, 고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맹자가 다시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은가?'라고 물었다.〔告子曰 生之謂性 孟子曰 生之謂性也 猶白之謂白與 曰 然 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 白雪之白 猶白玉之白與 曰 然 然則犬之性猶牛之性 牛之性猶人之性與〕"라 하였다. 성을……않았다 고자와 맹자의 앞의 변론 이후 세 번째 장의 장하주에서 정자가 한 말이다. 즉 "성만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으면 갖추어지지 않고, 기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다.[論性不論氣, 不備; 論氣不論性, 不明.]"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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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숙【환현】에게 답함 答朴亨叔【恒鉉】 편지가 5월 한여름에 왔는데 답장은 8월 한가을에 보내니, 한 번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에 세월이 이처럼 빨리 흐르는가. 티끌 바다의 부평초 같은 인생이 이에 상심한다네. 삼가 생각해보니, 현재 자당(慈堂)께서는 강녕하시며 큰 형의 숙환은 차도가 있으신가. 효제를 행하면서 거처하는데 건강이 줄곧 좋은 지 멀리서 걱정하고 있으니, 항상 소식 듣기를 간절히 원하네. 나는 여름 동안 혈종(血腫)127)을 앓아 오랫동안 괴로워하였는데, 지금 겨우 괜찮아졌네. 대저 학문은 특별히 다른 종류의 일이 아니라 다만 평소 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와 어른을 섬기고 사물을 상대하면서 크건 작건 많건 적건 간에 의리를 따라서 이를 어기거나 잃지 않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일을 다 물리쳐버리고서 문자에 몰두한 뒤에야 학문이라 이를 수 있는가. 다만 전심하여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행한 바가 간혹 사의(私意)에서 나오니, 그러므로 효제를 행한 남은 힘으로 학문을 해야 하는 것이네.128) 만약 이 마음을 굳게 지켜 외부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일에 대응함이 비록 번거로워도 남은 힘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학문 연구에 방해가 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뜻을 빼앗길까 걱정해야 한다.'129)라고 했는데, 어찌 이것을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부지런히 힘써야 하네.이 리(理)가 있은 뒤에 이 사물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은 것이 아닌가. 마음이 아니면 성(性)을 볼 수 없으니, 마음이 성과 정(情)을 거느리는 것이 아닌가. 전자는 원두(源頭)에 대해 말한 것이고, 후자는 당체(當體)에 대해 말한 것이네.도와 리(理)는 같은 것이고, 형(形)과 기는 같은 것이네.무릇 사물이 가지고 있는 형(形)은 참으로 기인데, 실제로는 리(理)가 한 것이네. 그러므로 한 개의 '형(形)'자에 나아가 도(道)라고 하고 기(器)라고 하니, 상(上)과 하(下)는 다만 그 경계를 말한 것이지 실로 상하가 있는 것은 아니네.리(理)의 묘용을 신(神)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신(精神)의 신(神)과는 같지 않네. 신(神) 안에 리(理)가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는데, 나의 소견으로는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네.칠정(七情)은 사람의 정에 이 일곱 가지가 있는 것을 통틀어 말한 것이요, 사단(四端)은 칠정의 가운데에 나아가 다만 선(善)한 쪽만을 가리키니, 칠정이 사단에서 발해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잘못되지 않으랴.예를 들어 "오성(五性)은 기(氣)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만수(萬殊)는 본연이 아니니, 그렇다면 태극은 사람이 억지로 주재(主宰)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것은 세유(世儒)가 상투적으로 하는 말버릇이네. 書出於仲夏。書復於仲秋。一徃復之間。光陰若是其飜耶。塵海浮生。無非所以傷心處。謹惟玆辰庭闈康寧。伯氏宿愼。進退何居。孝弟之餘。起居凡百。一直勝裕。遠外懸懸。每切願聞。義林夏間患血腫。爲苦者久矣。今纔見可耳。夫學問非別様物事。只是日用之間。事親事長應事接物。大小多少。遵循義理。勿違勿失而已。何嘗以掃却事物而汨沒文字然後。可以謂學哉。但專然不讀。則無以知義理之所在。而所行或出於私意。故不可不以餘力及之。若能堅固此心。不與外面事倶徃。則應事雖繁。而不患無餘力矣。古人所謂不患妨功。惟患奪志者。豈非謂此耶。勉勉焉。有是理而後有是物。則非太極生兩儀乎。非心無以見性。則非心統性情乎。一則源頭說。一則當體說。道與理一事。形與氣一事。凡物之有是形。固氣也。而實理之所爲。故就一形字。言道言器。上下特言其界至。非實有上下。理之妙用謂之神。其與精神之神差別也。神内有理之說。不知其出於誰氏。而以愚所見。恐欠妥當。七情。統言人之情有是七者。四端。就七情之中而特言其善一邊。以七情爲四端中發出者。豈不誤哉。若曰五性因氣有。萬殊非本然。則太極其非人之強名底主宰乎。此世儒口氣也。 혈종(血腫) 장기나 조직 속에 출혈하여 한 곳에 혈액이 괸 상태. 효제를……것이네 《논어》 〈학이(學而)〉에서 "제자는 들어가서는 효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친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나서도 여력이 있을 경우에는 학문을 하라.[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라고 하였는데, 그 집주에서 "여력은 가일이란 말과 같다.[餘力, 猶言暇日.]"라고 하였다. 학문‥‥걱정해야 한다 정이천(程伊川)이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학문 연구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더라도, 오직 자신의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科擧之事 不患妨功 惟患奪志]"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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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태휴】에게 답함 答李子謙【泰休】 붕우가 집을 떠나 이웃 서숙에서 머물고 있음을 이 편지를 받은 뒤에 비로소 알게 되었네. 이는 분명 책을 읽기 위한 생각에서 그러하였을 것이네. 더구나 어린 아동을 가르칠 때 네 가지 이익138)이 있음을 장자(張子)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가르치고 학문하는 여가에 이전 학업을 다시 익히면서 날마다 과정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는가. 덕 있는 가문의 대대로 전해지는 시와 예의 학문을 현재에 있어서 계승할 자의 책임은 자겸과 그 주위 사람들에게 있지 않겠는가. 자겸도 또한 응당 헤아렸을 것이니, 분발하고 노력함에 힘을 남기지 말게나.질문 : "망명한 사람은 보물로 삼을 것이 없고, 다만 어버이를 인하게 대함을 보배로 삼는다."139)는 말의 주에서 "인(仁)은 사랑함이다. '사랑한다[愛]'고 말하지 않고 다만 '인하게 대한다.[仁]'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인(仁)'자는 뜻이 비교적 깊고 '애(愛)'자는 뜻이 비교적 얕네.질문 : 〈현현역색장(賢賢昜色章)〉140)에서 먼저 어진 이를 어질게 대하고 뒤에 부모 섬김을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중용》에서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이 어버이를 친히 하는 것의 앞에 있고 사람을 아는 것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의 앞에 있으니,141) 또한 이 뜻과 같네. 故人之旅留隣塾。得此書而後。乃始知之。此必出於讀書之計而然也。況敎小兒有四益。非張子之言乎。須於斆學之餘。溫理舊業。俾有逐日課程如何。德門世世詩禮之業。在今日而可以繼述者。其責不在於子謙一隊人乎。想子謙亦應諒之。而奮發振勵。不遺力也。亡人無以爲寶。仁親以爲寶。註曰。仁愛也。不曰愛。而特言仁伺。仁字義較深。愛字義較淺。賢賢昜色章。先言賢賢。後言事父母。中庸尊賢在親親之先。知人在事親之前。亦是此意。 네 가지 이익 《근사록(近思錄)》 권10 〈정사(政事)〉 64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횡거 선생(橫渠先生)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도 또한 유익함을 취할 수 있으니, 자기를 옭아매어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사람을 여러 번 가르침에 자신도 글 뜻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아이들을 대할 적에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항상 자신으로 인해 남의 인재를 파괴함을 근심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人敎小童, 亦可取益, 絆己不出入, 一益也, 授人數數, 己亦了此文義, 二益也, 對之, 必正衣冠, 尊瞻視, 三益也, 常以因己而壞, 人之才爲憂, 則不敢墮, 四益也.]"라고 하였다. 망명한……삼는다 《대학장구》 전 10장의 〈강고(康誥)〉 단락에 이어서 나오는 구절이다. 현현역색장((賢賢昜色章) 《논어》 〈학이(學而)〉에 보이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인군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와 더불어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중용에서……있으니 《중용》의 구경(九經)을 말하는 순서는 수신(修身), 존현(尊賢), 친친(親親), 경대신(敬大臣), 체군신(體群臣), 자서민(子庶民), 래백공(來百工), 유원인(柔遠人), 회제후(懷諸侯)로 존현이 친친의 앞에 있다. 《중용장구》 제20장 제6절에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을 닦지 않을 수 없으니, 자신을 닦을 것을 생각한다면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어버이를 섬길 것을 생각한다면 사람을 알지 않을 수 없고, 사람을 알 것을 생각한다면 천도를 알지 않을 수 없다.[故君子不可以不修身.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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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0 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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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9) 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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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새 봄이 저물어 가는데 소식이 없으니 애타게 그리운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인편에 편지 한 통이 이러한 때 전해지니 위안과 감사함을 어떻게 형용할지 모르겠네. 더구나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학문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다고 함을 알았음에랴. '자신을 얽어맨다.'3)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가난을 참고 견디는 본래 모습으로 면할 수 없는 것이네. 다만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말한 사익(四益)과 같이 하면서 실로 더욱 공부를 더한다면 그대가 말한 '망령된 계책'이란 것이 또 어찌 올바른 계책이 아니라고 장담하겠는가. 마음이 흔들려서 사물에 이끌려 가버리는 것은 이 또한 보통 사람들이 다 같이 겪고 있는 걱정거리이네. 무릇 사물이 자신에게 닥쳐올 때 반드시 리(理)로 이겨서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네. 그러나 마음을 존양하고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가 없다면 이(理)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며, 또한 비록 알더라도 그 힘이 이기지 못하니, 이는 실로 일상생활에서의 제일가는 중요한 일이네. 힘쓰고 또 힘쓰게나. 향당의 학교를 '상(庠)'이라고 하고 주의 학교를 '서(序)'라 하며 나라의 학교를 '학(學)'이라고 하며, '교(校)'는 가르친다는 의미라네. 상(庠), 서(序), 학(學)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 아님이 없으니, 그러므로 연달아 거론하여 문장을 이룬 것이네. 또한 교(校)는 하(夏)나라의 학교이니, 헤아릴 때 빼서는 안 되네. 우(虞)는 순(舜)의 씨이며, 하(夏)는 우(禹)의 씨이니, 이는 상고 시대의 다른 씨족류의 의미이네. 은(殷)과 주(周)는 나라 이름이요, 씨족의 호칭이 아니네. 나의 견해가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네만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나 독서는 반드시 대의를 힘써 궁구해야 하니, 만약 한 글자의 위 아래와 한 구의 같고 다른 곳에 대의가 있지 않으면 참으로 급급할 필요가 없네. 정자가 말하기를 "대개 문장을 이루려고 하면 형세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하니, 반드시 매 글자마다 각각 그 의미를 구할 필요는 없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네. 가르치고 공부하는 여가에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존양하는 공부를 더하여 나의 힘으로 하여금 저 한가롭고 태만한 것을 이기게 하고 한가롭고 태만한 것이 나를 이기게 하지 말게나. 新春向暮。音聞寂然。懷想憧憧。曷以勝堪。便頭一幅。際此來至。慰豁感沃。又不知所以爲諭。矧詢重省學履。連序佳告者乎。且示絆已之云。此固固窮本色。而有不得免者。只得如橫渠四益之云。而實加功焉。則賢所謂妄計者。又安知不爲得計也。戚戚牽引。此亦衆人通患。凡事物之來。必以理勝而不與俱往。爲可爲可。然非有存養窮索之功。則不知理之所在。雖知之。而其力又不能以勝之矣。此實日用第一事。勉之勉之。黨曰庠。州曰序。國曰學。而校者敎也。庠序學。無非所以敎人者。故連擧成文。且校是夏學。而不可以關數也。虞是舜之氏。夏是禹之氏。此是上古氏別族類之義。殷與周是國名。非氏號也。鄙見如此。未知何如。然讀書必須務窮大義。若其一字上下。一句同異。非大義所存。固不必汲汲爾也。程子曰。盖欲成文。勢須如此。不必每字。各求其義。正爲此也斅學之暇。更加端莊存養之功。使吾之力。足以勝彼之優優。而勿爲優優之所勝也。 자신을 얽어맨다 《근사록(近思錄)》 권10 〈정사(政事)〉 64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횡거 선생(橫渠先生)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도 또한 유익함을 취할 수 있으니, 자기를 옭아매어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사람을 여러 번 가르침에 자신도 글 뜻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아이들을 대할 적에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항상 자신으로 인해 남의 인재를 파괴함을 근심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人敎小童, 亦可取益, 絆己不出入, 一益也, 授人數數, 己亦了此文義, 二益也, 對之, 必正衣冠, 尊瞻視, 三益也, 常以因己而壞, 人之才爲憂, 則不敢墮, 四益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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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이전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못한 지가 석 달이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이번에 편지를 받게 되니 부끄러운 마음을 말할 겨를도 없네. 그런데 우리 벗은 그에 대해 따지지 않는 도량을 지녔는데, 이는 실로 일반적인 사람보다 만 배가 큰마음에서 나왔으니 고마움과 우러름이 함께 이르네. 지난번에 한번 만난 것은 오랫동안 격조한 뒤에 이뤄진 것인데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곧바로 헤어졌으니, '또한 이미 군자를 보았으니 내 마음 안정되네.'5)라고 할 수 있겠는가. 뒤미처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더욱 깊네. 잘 모르겠네만 집안에 돌아간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은 줄곧 평안한가. 그렇다는 소식을 듣고픈 마음 놓을 길이 없네. 노쇠하고 저열하며 형편없는 나는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어찌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질 만한 것이 있겠는가. 두 장의 문목(問目)을 길게 나열하여 수백 조목에 이르는데 누에 실이나 소털처럼6) 남김없이 분석하였으니, 마음을 정밀한 곳에 두고 공부를 애써 부지런히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네. 이제부터의 성취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질문들은 성인이 평소 한 말로 학자들이 항상 강론하며 토론해야 할 것들이네. 고답적이고 심원하며 학문의 단계를 뛰어넘는 논의들에 비하면 백 배 그 이상으로 절실하네. 다만 학문이 지리멸렬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헤아려서 답할 만한 지식이 없으며 또한 어린 동몽들이 몰려들어 왼쪽에서 다투고 오른쪽에서 떠들어 잠시라도 고요히 있을 때가 없으니, 어찌 정밀하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고증하여 정성스럽게 질문한 우리 우경(宇卿)의 뜻에 만분의 일이라도 부응하겠는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니, 바라건대 귀숙처로 삼지 말고 더욱 더 연구하여 다시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간절히 바라네.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7)는 말에 대해,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네. 즉 주렴계는 〈태극도설〉에서 "성인이 중(中), 정(正), 인(仁), 의(義)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였다."라는 하였는데, 주자는 해석하기를 '중과 인은 동(動)에 속하고, 정와 의는 정(靜)에 속한다.'고 하였네. 그러므로 나는 공자의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정(靜)자의 의미를 형용하였으니, 이는 비록 《논어》 본문의 뜻은 아니지만,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은 참으로 그러한 예가 있네. 또한 의가 바탕이 되는 것은 동(動) 가운데의 정이 아님이 없으니, 간괘(艮卦)의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보지 못한다.'8)라는 의미와 같네. 내가 인용하여 활용한 뜻은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으니, 이치에 어긋난 지는 잘 모르겠네.질문 : 마음이 허령(虛靈)할 수 있고 신명(神明)할 수 있고 지각할 수 있고 정상(精爽)9)할 수 있는 것은 기(氣)가 하는 것입니다. 허령할 수 있는 까닭과 지각할 수 있는 까닭과 정상할 수 있는 까닭은 이(理)가 하는 것입니다. 능히 주재하는 것은 허령과 신명과 지각과 정상이 하는 것이요, 주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즉 성(性)과 이(理)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심(心)이 이(理)와 기(氣)를 합한 것이라고 이르는 것입니까.답변 : 대단히 옳게 보았네. 주자가 이른바 '능히 지각하는 것은 기의 령(靈)이요, 지각하게 만드는 것은 심의 리(理)이다.……'10)라고 한 것은 또한 이러한 뜻이네.질문 : 정자는 진실하여 망령됨이 없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으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라고 하였습니다.11) 또한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방 귀퉁이에서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두 경(敬)의 일이다."12)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과 경은 그 실상은 같은 것입니까.답변 : 감히 태만하지 않고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음을 경이라고 일러도 옳으며, 성이라고 일러도 또한 옳네. 만약 세밀하게 구분한다면 감히 태만하지 않는 것을 경이요,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성이네.질문 : 하나에 집중하는 것[主一]을 경(敬)이라고 이르는데, 이에서 '일(一)'자는 심(心)이니, 일(一)은 리(理)요 주(主)는 심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답변 : 주(主)와 일(一)을 심이라고 해도 옳은 말이며 리라고 하여도 옳네. 만약 세밀하게 구분한다면 주는 심이요, 일은 리이네.질문 : 사특함을 막는 것과 성(誠)을 보존하는 것은 다만 한 가지 일입니다. 예를 들면, 담장을 보수하면 도적이 스스로 이르지 않을 것이니, 경(敬)은 담장이요, 사특함은 도적이요, 성은 집안의 물건입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사특함을 막아 성을 보존한다는 것은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은 뜻이 성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은 성(誠)이다."13)라고 하였는데, 오씨(吳氏)가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을 성의에 해당시키고 사특함을 막아 성을 보존한다는 것을 정심(正心)에 해당시킨 것14)은 다만 사(思)와 존(存) 두 글자를 중시하였기 때문입니다.답변 : 그대의 논의가 옳으니, 오씨의 말은 과연 의심스럽네.답변15) : 사사로운 욕심[私欲]과 사특하여 망령됨[邪妄]은 참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네. 그러나 만약 구분지어 말한다면 사특하여 망령됨이 근본이 되고 사사로운 욕심은 지엽이 되니, 사욕이 없기는 쉽고 사망이 없기는 어렵네.질문 : "반드시 일삼아 노력을 하되 조장하지 말라."16)는 부분에서 맹자는 기를 기르는 것으로 말하였고, 정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기르는 이외에 별도로 기를 기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르면 기는 자연스럽게 커지게 됩니다.답변 : 마음을 기르는 것과 기를 기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니, 모두 안팎과 동정(動靜)을 겸하여 말한 것이네. 예를 들면 맹자는 기를 기르는 것을 말하면서 "그 뜻을 잡고도 그 기를 해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그 뜻을 잡는 것은 경(敬)을 주장함을 이른 것이 아닌가.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을 말하면서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17)라 하였는데,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의를 모으는 것이 아니겠는가.질문 : 명덕(明德)을 말하면 성정(性情)을 포함하여 그 안에 있고, 성정을 말하면 명덕을 포함할 수 없습니다.답변 : 성정은 체용(體用)을 나눠서 말한 것이요, 명덕은 체용을 통합하여 말한 것이네. 만약 '성정이 명덕을 포함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성정 밖에 또 다른 명덕이 있는 것이 옳겠는가.질문 : 지(知)는 심(心)의 신명으로 여러 이치를 오묘하게 운영하고 만물을 주재합니다.18) 심(心)은 사람의 신명으로 여러 이치를 갖춰서 만 가지 일에 대응합니다.19) 갖추고 응하는 것은 성정(性情)에 중점이 있고, 오묘하게 운영하고 주재하는 것은 심(心)에 중점이 있습니다.답변 : 지(知)로써 말하였으므로 '오묘하다.' '주재한다.'고 하였고, 심(心)으로써 말하였으므로 '갖추었다.' '대응한다.'고 하였으니, 그 실상은 같네. 어찌 심에 중점을 두거나 성정에 중점을 둔 구분이 있겠는가. 또한 심(心)은 지각하는 사물이니, 지각을 제외한다면 이 심(心)이 없네. 지금 '지(知)가 심과 성과 정을 거느린다.'고 하니, 대단히 말이 되지 않네. 어찌 우리 벗이 이처럼 보고서 논한단 말인가. 깊이 생각하길 바라네.질문 : "그 근본이 참되고 고요하며……"20)라고 한 것에 대해 주자는 "오성(五性)은 바로 진(眞)이며, 발하지 않았을 때가 바로 정(靜)이다."21)라고 한 것은 다만 거듭하여 말한 것이지만, 깊이 따져보면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대개 앞 단락은 태극의 원두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므로 먼저 진(眞)을 말한 후에 정(靜)을 말하였습니다. 아래 단락은 성분(性分)의 당체(當體)에 나아가 말하였으므로 먼저 미발을 말한 후에 오성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중용집주》에서 "이(理) 또한 부여하였다."라 한 것은 진(眞)이며, "건순오상의 덕으로 삼았다."라 한 것은 오성(五性)인 것과 같습니다.22) 천지가 정(精)을 쌓아 오행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니, 또한 어찌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탄생시킴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는 것에 해당하지 않겠습니까.답변 : 이 단락의 분변은 대단히 의의가 있네.답변23) : 하늘에 있어서 원, 형, 리, 정으로 성(性)을 삼고 따뜻함, 시원함, 추위, 더위로 정(情)을 삼는데,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 의, 예, 지로 성을 삼고 희, 노, 애, 락으로 정을 삼는 것과 같네. 하늘에 있어서 원과 형은 정이 되고 리와 정은 성이 되는데,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과 중이 정이 되고 의와 정이 성이 되는 것과 같네. 가로로 말하거나 세로로 말하거나 하늘과 사람과 사물이 모두 다 똑같네.답변 : 공용(功用)과 묘용(妙用)은 본래 다른 것이 아니네. 묘용은 공용에 나아가 특별히 그 묘처(妙處)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질문 : 주자가 말하기를 "나눠서 말하면 원과 형은 성(誠)의 통함이며, 리와 정은 성의 회복이다.24) 그 본체와 작용이 본래 있는 것이다. 작용으로 말하면 원이 주가 되고, 본체로 말하면 정이 주가 된다."25)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성의 통함과 성의 회복은 즉 '잇는 것은 선이요 이룬 것은 성(性)이다.'26)는 것에 해당하며 본체와 작용을 함께 말한 것입니다. 다만 이는 유행(流行)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만약 원두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원, 형, 리, 정은 체가 되고,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것은 용이 되니, 태극이 주가 됩니다.답변 : 이는 유행이나 원두로써 말할 수 없네. 음양 동정의 단서로써 말하자면 리와 정은 체가 되고 오행 중의 하나를 각각의 성으로 삼은 것으로 말하자면 원, 형, 리, 정은 모두 체가 되네. 대개 오성은 서로 상대되는 것으로 말한 것이 있으며 유행으로 말한 것이 있네.27)질문 : 〈겸괘(謙卦)〉의 단사(彖辭)에서 "천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겸허한 것을 채워준다.……"28)라는 말 이하에서 천도, 지도(地道), 인도(人道) 등 모두 '도(道)'자를 말하였는데, 오직 귀신에서는 도(道)를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하늘과 땅과 사람은 모두 형체로써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도(道)자를 말하였네. 귀신은 운용의 오묘함과 조화의 실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도자를 말하지 않았네. 한편 혹은 그 문장의 기세가 순한 것을 취하였을 수도 있네.질문 : 〈간괘(艮卦)〉의 상전(象傳)에서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생각함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29)라 하였으니, 무릇 사물이 닥쳐올 때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것과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이 모두 생각함이 그 지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답변 : 이에서 미뤄나가 아주 조금의 어긋남이나 한번 숨 쉴 때의 멈춤도 모두 그 지위에서 벗어난 것이네. 前書未復。至三朔之久。而又此承貺。私情愧恧。有不暇言。而吾友不較之量。實出尋常萬萬。感仰交至。向者一面。出於阻久之餘。而未交一語。旋卽告別。亦可曰亦旣見止。我心則降乎。追惟增悵。未審還庭有日。侍省節宣。連膺安吉。不任願聞之情。義林衰劣無狀。姑且捱過而已。安有一半分可聞者哉。問目二紙。娓娓臚列。至數百條。而蠶絲牛毛。分析無遺。如非宅心精細。爲學勤苦者。不能。從此進就。曷其量哉。況此是聖人所雅言。而學者所常講討者也。其有切於幽深高遠。躐等淩節之論。不啻百倍。但區區滅裂。無所知識可以上下於此。而又以蒙率叢冗。左鬧右聒。無霎刻靜帖時節。其安能精思細考。以副我宇卿勤意之萬一哉。其爲失答。想必不少。幸勿視爲歸宿。益加硏窮。復以見示如何。切望切望。義以爲質。鄙意以爲濂溪太極說。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朱子解之。以中與仁。屬之動。以正與義。屬之靜。故愚引孔子義以爲質之語。以形容靜字之義。此雖非論語本文之義。而斷章取義。固有其例。且義之爲質。未嘗不是動中之靜。如艮之不獲其身也。區區取用之意。不過如此。所未知其不至悖理否也。心之能虛靈。能神明。能知覺。能精爽者。氣之爲也。所以虛靈所以神明。所以知覺。所以精爽者。理之爲也。能主宰者。卽虛靈神明知覺精爽之爲也。所以主宰者。卽性理之爲也。此其所謂心合理氣者耶。見得甚好。朱子所謂能覺者。氣之靈。所覺者。心之理云云。亦此意。程子眞實無妄之爲誠。不欺其次。又曰。不敢欺。不敢慢。尙不愧于屋漏。皆是敬之事。然則誠敬其實一也。不敢慢不敢欺。謂之敬亦得。謂之誠亦得。若細分之。不敢慢是敬。不敢欺是誠。主一之謂敬。此一字是心。似不可謂一是理而主是心。主與一。謂之心亦得。謂之理亦得。若細分之。主是心。一是理。閒邪存誠。只是一事。如修其墻垣。則寇自不至。敬者垣墻也。邪者寇賊也。誠者家內什物。說得乎。閑邪存誠者。誠意也。思無邪者。意誠也。故程子曰。思無邪者誠也。吳氏則以思無邪。當誠意。以閑邪存誠。當正心者。只以思與存兩箇字爲重看。賢論得之。吳氏說。果可疑。私欲邪妄。固非二物。然苟欲分以言之。則邪妄爲根本。私欲爲枝葉。無私欲易。無私妄難。必有事焉。勿助長。孟子以養氣爲言。程子以養心爲言。然養心外。非別有養氣。養心。氣自然浩大養心養氣。非有異事。而皆兼內外動靜言之。如孟子言養氣而曰。持其志。無暴其氣。持其志。非主敬之謂耶。孟子言養心而曰。莫善於寡欲。寡欲非集義之云耶。言明德則包性情在其中。言性情則包明德不得。性情分體用言。明德統體用而言。若曰性情包明德不得。則是性情外。別有明德。其可乎。知則心之神明。妙衆理宰萬物。心則人之神明。具衆理應萬事。具應重在性情上。妙宰重在心上。以知言故曰妙曰宰。以心言故曰具曰應。其實一也。豈有重在心重在性情之分。且心是知覺底物事。除了知覺則無此心。今曰知者統心性情。不成說不成說。豈以吾友之見而所論如是乎。千萬人思。其本也眞而靜云云。朱子曰。五性便是眞。未發便是靜。只是疊說。然深究之不然也。盖上段是就太極原頭上說下來。故先言眞而後言靜。下段是就性分當體上說上去。故先言未發而後言五性。如中庸集註。理亦賦焉。是眞也。以爲健順五常之德。是五性也。天地儲精。得五行之秀者爲人。又豈非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氣以成形者耶。此段所辨。其有意義。在天以元亨利貞爲性。而以溫涼寒暑爲情。猶在人以仁義禮智爲性。而以喜怒哀樂爲情也。在天以元亨爲情。而以利貞爲性。猶在人以仁中爲情。而以義正爲性也。橫說竪說。天也人也物也。皆是一般。功用妙用。本非二物妙用是就功用中。特指其妙處而言。朱子曰。分而言之。則元亨誠之通。利貞誠之復。其體用固有在矣。以用言。則元爲主。以體言。則貞爲主。夫誠之通。誠之復。卽繼之者善。成之者性。而體用之云。但以流行邊說話。若以原頭說。則元亨利貞爲體。生長遂藏爲用。太極爲主。此不可以流行原頭言也。以陰陽動靜之端言。則利貞爲體。以五行各一之性言。則元亨利貞。均之爲體。盖五性有以對待言者。有以流行言者。謙之彖。天道虧盈而益謙以下。皆言道字。而獨於鬼神不言者何。天地人。皆以形體言。故言道字。鬼神有運用之妙。造化之柄。故不言道字。且或取其順文勢耳。象曰。君子以思不出其位。凡事物之來。不當爲而爲之者。所當爲而不爲者。皆思出其位也。推而至於一毫之差。一息之斷。皆爲出位。 또한……안정되네 《시경》 〈초충(草蟲)〉에 "찌르르 찌르르 우는 풀벌레며, 팔짝팔짝 뛰는 메뚜기로다。군자를 만나 보지 못한지라, 근심하는 마음 아프노라. 또한 이미 군자를 보며, 또한 이미 군자를 만난다면, 내 마음 안정되도다。〔喓喓草蟲, 趯趯阜螽。未見君子, 憂心忡忡。亦旣見止, 亦旣覯止, 我心則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누에 실이나 소털처럼 원나라 학자 오징(吳澄, 1249~1333)이 주희의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讚)〉을 본떠 주희의 화상을 그려 놓고 〈회암선생 주문공 화상찬(晦庵先生朱文公畵像讚)〉을 지었는데, 거기에 "현묘하고 은미한 의리는, 누에실과 소털처럼 자세히 분석했네. 마음은 넓고 넓어서,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았네. 호걸스러운 재주요, 성현의 학문이었도다. 경성과 상서로운 구름이요, 태산과 교악이셨네.[義理玄微, 蠶絲牛毛. 心胸恢廓, 海闊天高. 豪傑之才, 聖賢之學. 景星慶雲, 泰山喬嶽.]"라고 하였다.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군자는 의로써 바탕을 삼고, 예로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라고 하였다. 간괘의……못한다 《주역(周易)》 〈간괘(艮卦)〉에서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보지 못하여 그 뜰을 지나더라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라고 하였다. 정상 주자는 심을 기(氣)의 정상(精爽)이라 하였다. 능히……리이다 《주자어류》 권5 〈성리〉2에 보인다. 진실하여……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근사록》 〈도체(道體)〉에 보인다. 감히……일이다 《심경(心經)》에서 《주역(周易)》의 '경이직내(敬以直內)'를 논한 부분에서 정자는 "주일(主一)을 경이라 이르니,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은 바로 주일의 뜻이다. 감히 속이지 않으며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방 귀퉁이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두 경의 일이니, 다만 이것을 보존하여 함양하면 오래 할 경우 자연히 천리가 밝아진다.[主一之謂敬, 直內乃是主一之義. 至於不敢欺, 不敢慢, 尙不愧于屋漏, 皆是敬之事也. 但存此涵養, 久之, 自然天理明.]"라 하였다. 생각에……성이다 《논어》 〈시삼백(詩三百)〉장의 주에서 정이천이 한 말이다. 오씨가……해당시킨 것 오씨는 임천 오징(吳澄)이다. 그가 말하기를 "정자가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 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사' 자는 사욕과 악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천리만 있고 인욕이 없으며 선만 있고 악이 없는 것, 이것이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간사함이 없으면 망녕되지 않으며 망녕되지 않은 것을 성이라 이르니, 《대학》의 조목으로 말하면 성의의 일이다. 《주역》 〈문언전〉에 '사를 막아 그 성을 보존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사' 자는 사욕과 악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성이란 성인의 망령됨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다. 외물이 밖에서 접해 오매 그것을 막아서 안을 범하지 않게 하여, 안의 마음이 두 갈래로 가지 않고 잡되지 아니하여 성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니, 《대학》의 조목으로 말하면 정심의 일이다.[程子謂思無邪者, 誠也, 此邪字, 指私欲惡念而言. 有理無欲, 有善無惡, 是爲無邪. 無邪, 斯不妄, 不妄之謂誠, 以大學之目, 則誠意之事也. 易文言傳曰閑邪存其誠, 此邪字, 非私欲惡念之謂. 誠者聖人無妄眞實之心也. 物接乎外, 閑之而不干乎內, 內心不二不雜, 而誠自存, 以大學之目, 則正心之事也.]"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1 易 閑邪存誠章》 답변 질문은 싣지 않고 답변만 실었다. 반드시……말라 《맹자》 〈호연지기〉의 조장(助長) 부분에 보이는 말이다. 욕심을……없다 《맹자》 〈진심하〉에 보인다. 지는……주재합니다 《대학장구》 서의 '인의예지의 성〔仁義禮智之性〕'에 대한 운봉 호씨(雲峯胡氏)의 주석에서 주자가 인의예에 대해서는 풀이를 하였는데 유독 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없다고 하면서 "일찍이 주희의 뜻을 취하여 보충하기를, '지는 심의 신명이니 중리를 묘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 하였다.〔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 智則心之神明 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는 말이 보인다. 심은……대응합니다 《대학장구》의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고〔大學之道 在明明德〕"에 대하여 주희는 주에서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모든 이치를 갖추고서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그 근본이 참되고 고요하며 《근사록》 〈위학(爲學)〉에서 정이천이 한 말로 "천지가 정기를 축적하여 만물을 내는데, 이때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얻은 것이 바로 사람이 되니, 그 근본은 역시 참되고 고요하다고 할 것이다.〔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 眞而靜.〕"라 하였다. 오성은……정이다 주자는 "본(本)은 본체(本體)이며, 진(眞)은 인위(人僞)가 섞이지 않은 것이다……오성(五性)이 곧 진(眞)이고 발하지 않았을 때가 곧 정(靜)이다.[本是本體, 眞是不雜人僞……五性便是眞, 未發時便是靜.]"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30 論語》 《晦庵集 卷42 答胡廣中》 이(理)……같습니다 《중용장구》 경 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이른다."라고 한 데 대한 주희의 주에 "명(命)은 영(令)과 같고, 성은 바로 리이다. 하늘이 음양(陰陽)ㆍ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하매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리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이 태어나매 각기 부여받은 리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ㆍ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이다.〔命 猶令也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라고 하였다. 답변 질문은 실려 있지 않고 답변만 있다. 이후로 이와 같은 경우가 다시 나오면 주를 달지 않는다. 나눠서……회복이다 주자가 인용한 이 말은 원래 주돈이의 《주원공집(周元公集)》 권1 〈통서(通書)〉에 보인다. 나눠서……된다 《주역》 〈건괘〉 단사(彖辭)의 주에 보이는 말이다. 잇는……성이다 《주역》 〈계사전 상〉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하니 이것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선이요, 이것을 이루어 갖춘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也]"라 하였다. 원형이정은……있네 이와 같은 질문이 《노사집》 권8 〈답정국언(答鄭國彥)〉에 보인다. 이에 대해 노사는 "원형 운운한 것은 춘하추동과 같고, 인의 운운한 것은 동서남북과 같으니, 대체로 유행하는 것과 상대되는 것은 본래 같은 맥락이다."라고 답하였다. 천도는……채워준다 《주역》 〈겸괘(謙卦) 단(彖)〉에 이르기를 "천도는 차서 넘치면 허물어뜨리고 겸허하면 더해 주며, 지도는 차서 넘치면 변화시키고 겸허하면 계속 흘러가게 하며, 귀신은 차고 넘치면 재앙을 내리고 겸허하면 복을 주며, 인도는 차고 넘치면 싫어하고 겸허하면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라 하였다. 군자가……않는다 《주역》 〈간괘(艮卦)〉에서 "산이 거듭함이 간이니, 군자가 본받아 생각함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兼山, 艮, 君子以思不出其位.]"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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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1)에 대한 제문 祭蘆沙先生文 삼대(三代) 시대 여러 성인이 나온 뒤에 공자께서 나오셨고, 염락(濂洛)2)의 여러 철인이 나온 뒤에 주자가 나왔고, 동방의 여러 유자들이 나온 뒤에 선생께서 태어나셨으니, 대개 하늘이 성대하게 일어난 뒤에 한 사람을 낳아 절충하고 집성하게 하여 사문(斯文)을 위한 만세의 계획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의리는 어두워져 막히고 추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진 것이 이에 춘추(春秋) 시대와 남송(南宋) 때 보다 심함이 있으니, 하늘이 선생으로 하여금 한번 다스려지는 운수를 담당하게 한 것은 또 어찌 우연이겠습니까.오호라! 선생께서는 운수에 응한 것이 황하와 같고 신령함을 모은 것이 산악과 같아 오백 년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기와 천만 년의 오랜 유정유일(惟精惟一)3)의 학문은 장엄하기가 마치 암벽이 천 길 높이 솟은 것과 같고, 넓고 아득하기가 마치 바다가 만곡(萬斛)을 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仁)은 봄기운이 생동하는 것 같고 의(義)는 가을 기운이 엄숙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금과 정결한 옥처럼 순수하여 조탁한 흔적이 없고 광풍제월(光風霽月)4)처럼 깨끗하여 속진을 벗어난 모습이 있습니다. 출처[行藏]는 나라의 시운과 관계되었고 문장(文章)은 천지의 원기에 참여하였습니다. 곡절이 만 번 변하였으나 응답함은 큰 종소리가 메아리에 응하는 것 같았고 현우(賢愚)가 다르지만 교육시킴은 조물주가 빠뜨림이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오호라! 성인이 멀어지고 말씀이 인몰되며 세도는 떨어지고 풍속은 오염되어 사람들이 그 의론을 달리하고 선비는 그 학문을 사사롭게 여겨 종횡으로 분열되어 천만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오직 선생께서는 동서남북의 밖으로 나와 도덕(道德)과 인의(仁義)의 근원에 앉아 밝은 견해로 분명하게 비추어보고 담소하며 물리쳐 마치 백천(百川)의 미친 물결이 그 길을 얻어 호연(浩然)히 동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오호라! 나라에서 의뢰함이 시귀(蓍龜)5)와 같았고 사람들이 우러르기를 마치 태산북두같이 하고 백성들이 바라보기를 마치 상서로운 해와 구름같이 보았는데, 어찌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이 세상으로 하여금 갑자기 안방(安放)의 애통함6)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까.소자가 선생을 섬긴 지 지금 십여 년입니다. 아껴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꾸짖으시고 바라심에 그 간절한 마음 지극히 하셨는데, 소자가 보답한 것은 어떤 일입니까? 빙호수월(氷壺水月)7)을 다시 볼 수 없으니, 규구(規矩)와 준승(準繩)8)을 어디에서 본받으랴. 태산이 무너지자 개미언덕이 높아지고 태양이 사라지자 반딧불이 빛을 내니, 사문과 세도가 장차 어느 곳에 멈출지 모르겠습니다.오호라! 선생께서 계시지 않지만 그 행의(行義)와 언범(言範)이 세상에 남아 해와 별같이 빛나니, 이것이 갱장(羹墻)의 사모9)와 강한(江漢)의 생각10)을 깃들여 장차 여기에서 몸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라! 흠향하소서. 三代群聖之後。孔子作。濂洛群哲之後。朱子出。東方群儒之後。先生生。蓋天生一人於蔚興輩出之餘。使折裏集成。爲斯文萬世計者也。況義理之晦塞趍向之多門玆有甚於春秋南宋之時。則天之所以使先生當一治之運者。又豈偶然哉。嗚呼。先生膺運河瀆。鍾靈山岳。五百年至大至剛之氣。千萬古惟精惟一之學。儼儼若壁立千仞。蕩蕩若海涵萬斛。仁如春生。義如秋肅。良金精玉。粹然無雕琢之痕。光風霽月。灑然有出塵之標。行藏係邦國之時運。文章參天地之元氣。曲折萬變。而酬答如洪鍾之應響。賢愚不齊。而敎育如化工之無遺。嗚呼。聖遠言湮。世降俗汚。人異其論。士私其學。縱橫分裂。千蹊萬逕惟先生出乎東西南北之外而坐於道德仁義之源。洞見昭晣。談笑摩之。如百川狂瀾。得其道而浩然東注也。嗚呼。邦國賴之若蓍龜。士林仰之若山斗。輿民望之若瑞日祥雲。豈不憖遺。使斯世遽遭安放之痛也耶。小子事先生。十數年于玆矣。其愛之敎之。責之望之。極其懇惻。而小子之所以報答者。爲何事也。氷壺水月。不可復覿。規矩準繩。於何可倣。泰山頹而邱垤高。大明沒而螢爝光。斯文世道。將不知稅駕於何地。嗚呼。先生不在。而其行義言範之在世。炳如日星。此可以寓羹墻之慕江漢之思。而將終身於斯焉。嗚呼。尙饗。 노사 선생(蘆沙先生)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서경덕, 이황, 이이, 임성주, 이진상과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꼽힌다. 저서로는 《노사집》이 있다. 염락(濂洛) 염(濂)은 염계(濂溪)로 주돈이(周敦頤)가 살았던 곳이고, 낙(洛)은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살았던 낙양(洛陽)을 말한다. 유정유일(惟精惟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제위(帝位)를 넘겨주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書經 大禹謨》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주돈이(周敦頤)를 평하면서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고 가슴속이 깨끗하여 마치 비 온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시귀(蓍龜) 점을 칠 때 쓰는 시초(蓍草)와 거북 껍데기를 말하는데, 옛날에 일의 시비와 길흉을 점치던 것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뜻하며, 나아가서 모든 의문을 판별해 주는 원로나 국사(國士)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안방(安放)의 애통함 스승이 세상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어진 데 따른 애통함을 말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는데, 자공(子貢)이 이 노래를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가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대들보가 꺾이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가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빙호수월(氷壺水月) 빙호추월(氷壺秋月)과 같은 뜻이다. 얼음으로 만든 호리병에 맑은 가을 달이 비친 것과 같이 티 없이 고결한 정신을 뜻하는 말로, 주자(朱子)의 스승인 연평(延平) 이동(李侗)의 인품을 형용한 말에서 나왔다. 《朱子大全 祭延平李先生文》 규구(規矩)와 준승(準繩) 규(規)는 원(圓)을 만드는 기구요, 구(矩)는 방형(方形)을 만드는 기구이며, 준(準)은 측평기(測平器)요, 승(繩)은 먹줄이다. 갱장(羹墻)의 사모 국과 담장을 보기만 하여도 사모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로 돌아가신 선왕이나 현인을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뜻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옛적에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이 3년 동안 우러러 그리워하여 앉으면 담장에서 요 임금을 보았고, 밥을 먹으면 국에서 요 임금을 보았습니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墻, 食則睹堯於羹.]"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강한(江漢)의 생각 스승을 애타게 추모는 생각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미하여 "선생님의 덕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는 것과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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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대부 석당 선생11)에 대한 제문 祭族大父石塘先生文 선생은 몇 세대에 한번 나오는 기상과 하늘이 준 빼어난 재주로 멀리로는 수사(洙泗)12)의 전함을 거슬러 올랐고 가까이로는 낙민(洛閩)13)의 실마리를 궁구하여 안으로는 종애(鍾崖)14)와 노학(老學) 같은 어진 선조의 학업을 계승하고, 밖으로는 사계(沙溪)15)와 제강(堤江16)) 같은 선정의 통서를 접하여 연원이 이미 바르고 문로가 매우 컸습니다. 이(理)와 의(義)가 밝고 정밀하여 하늘과 사람의 깊은 뜻에 묵묵히 계합하였고, 도(道)와 덕(德)이 높고 높아 일찍 공보(公輔)의 명망17)을 지고 있었습니다. 둥글고 모난 규구(規矩)로 만고의 모양과 법도를 보존하고, 봄같이 온화하고 가을 같이 엄숙하여 사시의 원기를 갖추며, 봉장(封章)18) 항의(抗義)하여 음양의 숙특(淑慝)을 구분하고, 글을 저술하여 어리석음 깨우치니 족히 경전에 우익(羽翼)이 되며, 아름다운 산수에 오매(寤寐)의 즐거움 길이 맹세하고, 서울[洛陽]의 옥백(玉帛)19)은 초빙[聘辟]하는 명을 부질없이 수고롭게 하였으며, 동산에 해가 지니 다시 창생의 희망이 없고, 하루 저녁에 기둥을 꿈꾸어20) 갑자기 철인(哲人)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오호라! 사문은 누구를 의지하며, 세도는 어디를 우러르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백여 년부터 이래로 날로 쇠퇴하였습니다. 선생께서 일찍이 이를 위해 개연해 하여 집안을 위한 계획으로 소자에게 거듭 당부한 것이 간곡할 뿐만이 아니었으니, 어찌 오늘 갑자기 소자를 버리고 소자로 하여금 의귀할 곳이 없게 하는지요. 받은 말씀 마음에 남아 있어 비록 저버리지 않고자 하나 누가 조치하여 인도해 주며, 누가 성취시켜 줄 것입니까? 사문과 세도의 걱정은 실로 이루 말할 수 없고, 집안의 계책은 어찌하며 저를 위한 계획은 어찌하겠습니까? 모습이 영원히 막혔고 전형(典刑)은 살필 곳이 없습니다. 성묘하며 곡하니 호산(湖山)이 처량하고 암담합니다. 슬픈 마음 엮어 제문을 잡고서 감히 제사를 올립니다. 先生以間世之氣。天挺之才。遠溯洙泗之傳。近究洛閩之緖。內而襲鍾崖老學賢祖之業。外而接沙溪堤江先正之統。淵源旣正。門路甚大。理明義精。默契天人之蘊。道尊德高。早負公輔之望。規圓矩方。存萬古之樣轍。春溫秋肅。備四時之元氣。封章抗義。分陰陽之淑慝。著書開蒙。足羽翼於經傳。嘉林山水。永矢寤寐之樂。洛陽玉帛。虛勞聘辟之命。東山落日。無復蒼生之望。夢楹一夕。遽遭哲人之萎。嗚呼。斯文誰賴。世道安仰。吾門自百餘年來。日就衰替。先生嘗爲之慨然。而以門戶之計。申申於小子者。不啻懇惻。豈今日遽棄小子。而使小子俾無所依歸耶。受言在心。雖欲不負。而誰其指引之。誰其成就之。斯文世道之憂。固不可勝言。而門户之策奈何。自身之計奈何。儀容永隔。典刑無稽。展墳號哭。湖山凄黯。綴哀操文。敢奠侑儀. 석당(石塘) 선생 정의림의 족대부(族大父) 정귀석(鄭龜錫, 1790∼?)을 말한다. 수사(洙泗)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노(魯)나라에 있었던 두 물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곳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으므로, 곧 공자 및 유학(儒學)을 일컫는다. 《禮記 檀弓上》 낙민(洛閩) 낙(洛)은 낙양(洛陽)으로 정호(程顥)·정이(程頤)가, 민(閩)은 민중(閩中)으로 주희(朱熹)가 거주하던 곳이다. 종애(鍾崖) 정부(鄭敷, 1659~1712)의 호이다. 자는 대재(大哉),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호이다. 자는 희원(希元),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이다. 서인 명문의 대학자로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정진하였고, 인조반정 이후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써 아들인 김집(金集)을 비롯해 송시열(宋時烈), 이유태(李惟泰), 장유(張維) 등 걸출한 서인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사계전서(沙溪全書)》, 《가례집람(家禮輯覽)》, 《상례비요(喪禮備要)》,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제강(堤江) 충청북도 제천(堤川)의 황강(黃江) 가에서 강학한 권상하(權尙夏, 1641~1721)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ㆍ한수재(寒水齋),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로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이며,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인 호락논변(湖洛論辨)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660년(현종1) 진사가 되었고, 스승 송시열이 관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는 상황 속에서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청풍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1703년부터 1717년까지 해마다 대사헌, 이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에 임명되었고, 1721년(경종1)에는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는 《한수재집》 이 있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공보(公輔)의 명망 대신이 될 것이 기대되는 명성과 인망을 이른다. 공보는 삼공(三公)과 사보(四輔)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삼공은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이르고, 사보는 전의(前疑)·후승(後丞)·좌보(左輔)·우필(右弼)로 군주의 좌우에서 보필하는 신하들이다. 봉장(封章) 밀봉하여서 올리는 건의를 말한다. 고대에 관료들이 임금에게 기밀의 사안을 건의할 때 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검정 주머니에 담아서 밀봉하여 올렸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봉사(封事)이라고도 한다. 옥백(玉帛) 예의를 갖추어 어진 이를 부르는 것을 뜻한다. 기둥을 꿈꾸어 사람이 죽는 꿈을 말한다. 공자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제수를 받는 꿈을 꾸고[夢坐奠於兩楹之間]' 얼마 뒤에 죽은 고사에서 유래한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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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인에게 답함 答尹季仁 편지에 답장이 늦어진 채 지금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궁벽한 곳에 우거하느라 세상의 습속에 빠졌으므로 그 퇴락한 모습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겠습니다. 혹독한 더위가 위세를 거두고 시원함이 잠깐 생겨나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부친의 기력은 강녕하시며, 시봉하는 정황은 기쁘고 즐거우며, 체후는 더욱 다복하신지요? 가르치고 배우던 시절에 소견이 얕지 않으니 매번 성대히 축원하였습니다. 의림(義林)은 긴 여름 동안 숨 가쁜 더위에서 온갖 고생을 하였는데, 지금은 가을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으나 또 학귀(瘧鬼)가 번뇌롭게 하여 원기를 다 빼앗긴 채 골골하며 죽을 지경일 따름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여러 조목의 문목(問目)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날 마주하고 공부할 적에 이미 논파(論破)했던 것들이 아닌지요? 이에 사의(謝儀)를 써서 감히 함께 언급합니다. 예(禮)에서는 증조부(曾祖父)는 현고부(顯考父)로, 고조부(高祖父)는 황고부(皇考父)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의 주(註)에서는, "현고(顯考)에게는 사당이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氣)가 지(志)를 움직이는 것은 마치 사람이 지나치게 취하면 뜻이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으니 완물상지(玩物喪志)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志)가 기(氣)를 움직이면 사람이 장중하고 공경함이 날로 강해지는 것과 같으니 덕(德)을 행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이것입니다. 부리지포(夫里之布)87)는 곧 한 사람의 지아비와 1리(里)에 부과되는 세금이니, 만약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벌하여 이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전국(戰國) 시대에 이미 이를 벌하였습니다. 또한 시장이나 주택이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가을볕을 여름볕처럼 하는 것은 아마도 매우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정삭(正朔)을 고치되 월수(月數)를 고치지는 않았으니, 하물며 여름을 가을로 고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맹자(孟子)》에, "이 기(氣).……"88)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몰라 감히 억측하여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맹자(孟子)가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 묵은 것은 장차 현인을 감히 부를 수 없는 뜻을 말하여 제(齊)나라 왕이 그것을 듣게 하려고 한 것이었지, 맹중자(孟仲子)의 둘러대는 말을 따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닙니다.89) 一紙稽復。今幾月矣。居寓僻左。墮在世臼。其頹落之狀。卽此可驗。酷炎收威。新凉乍生。未審尊庭氣力康寧。侍旁怡愉。節宣增祉。斅學時節。見到不淺。每用翹祝。義林長夏喘暑。喫盡苦況。今則秋涼入戶。而又爲瘧鬼所惱。元氣見奪。㱡㱡欲盡耳。奈何。問目諸條。未知向日面穩時。業已論破耶。玆修謝儀。敢此倂及。禮以曾祖爲顯考。以高祖爲皇考。故中庸註曰。顯考無廟。氣動志。如人過醉亂志。玩物喪志是也。志動氣。如人莊敬日疆。作德心逸是也。夫里之布。是一夫一里之布。若有無業之人。則罰之使出此布也。戰國時。旣有此所罰。又一切施之於市宅之民。秋陽之爲夏陽。似甚不然。古者。改正朔而不改月數。況可改夏爲秋乎。在孟子是氣云云。愚所未瑩。不敢臆說。宿景丑氏。將以語不敢召之義。使齊王聞之也。非爲欲遂仲子之權辭也。 부리지포(夫里之布)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부포(夫布)와 뽕나무나 삼(麻)을 심지 않은 사람에게 부과하는 이포(里布)를 가리킨다. 이 기(氣)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의 특징을 설명한 부분을 가리킨다. 맹자가 …… 것이 아닙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 2장인 장조왕장(將朝王章)의 내용으로, 임금이라도 현인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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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 김 어른에 대한 제문 祭重庵金丈文 천하에 인간이 살아온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려짐에 진실로 성인이 위에 있어 그 도를 행함이 있었고, 그 혼란해 짐에 또한 성인이 아래에 있어 그 도를 호위함이 있었습니다. 만약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않아 그 절로 되는대로 맡겨두고 그 가는대로 놓아두었다면 인류가 멸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등급이 점점 낮아져 치우치고 방탕한 말들이 더욱 성하여 온 천하가 날마다 긴 밤으로 달려가, 산악이 꺾이고 상하며 해와 별이 어두워지고 잠겨 깨끗함을 조금 보존한 한 모퉁이의 우리나라까지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될 지경입니다.오직 선생께서는 화양(華陽)23)을 사숙하였고 벽문(蘗門)24)의 적전으로 천고를 안아 짊어지고 한 시대를 담당하였습니다. 후덕(厚德) 대도(大道)와 위론(偉論) 직절(直節)은 산같이 높고 바다가 품은 듯,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도깨비나 짐승 같은 이들로 하여금 비록 방자함을 지극히 하더라도 능히 유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되돌리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호전(胡銓)25)의 상소와 진동(陳東)26)의 일은 과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소청(疏廳)에 편지를 보내 격려하고27)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28) 또 이는 어떤 일입니까? 천지의 정대한 기운과 국가의 강상(綱常)의 책임은 벽계(蘗溪)의 문정(門庭)에서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강토(講討)하고 찬조(贊助)한 바의 힘은 또 누군들 선생에게 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오호라! 긴 밤이 끝나지 않았는데 큰 횃불이 문득 꺼지고, 여러 음(陰)이 바야흐로 성한데 미약한 양(陽)이 갑자기 막혀,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이 나날이 더욱 심한데도 이것을 강화시키고 저것을 어렵게 만들어 유지하고 보호할 사람이 없으니, 인륜과 세도가 또 장차 어느 곳에 도달할지 모르겠습니다.아! 오직 소자는 일찍 높은 의리를 강론하였으나 아직 덕에 나아가기를 미루고 있으니, 광풍제월(光風霽月)29)의 기상을 비록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남쪽 바닷가와 북쪽 모서리에 떨어져 있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멀리서 향하여 바라보고 절하며 단지 천만 무강한 장수를 누려 사문과 세도를 위한 계획을 축원하였는데, 어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부고가 갑자기 들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슬프도다! 우리들 누구를 통하며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산도 슬퍼하고 물도 시름하니, 만고에 아득합니다. 天下之生久矣。不得不一治一亂。然其治也。固有聖人在上而行。其道。其亂也。亦有聖人在下而衛其道。若危而不持。顛而不扶。任其自爲。聽其所之。則人之類滅己久矣。世級浸降。詖滛愈熾。寰宇率濱。日趍長夜。山岳摧剝。日星晦沈。至於一隅靑邱稍保乾凈者。亦將不免。惟先生以華陽私淑。蘖門嫡傳。抱負千古。擔當一世。厚德大道。偉論眞節。如山高而海涵。冰清而玉潔。使魑魅魍魉羽毛鱗介之屬。雖極恣睢。而不能。迴冠儒服儒之視聽久矣。胡銓之疏陳東之舉。果是何人。疏廳之書。海島之行。又是何事。天地正大之氣。國家綱常之責。不可謂不盡出於蘖溪門庭之間。而所以講討贊助之力。又孰謂不在於先生耶。嗚呼。長夜未艾。而巨燭旋滅。群陰方盛。而微陽遽閼。時象風色。日甚一日。而無強此艱彼維持調護之人。未知人倫世道。又將稅泊於何地耶。嗟惟小生。夙講高義。尚稽就德。光風霽月。雖切寤寐之思。而南涯北角。其奈事力之未逮。遙向瞻拜。只祝千萬無彊之壽。爲斯文世道計也。豈意天不憗遺。凶音遽聞耶。哀我人斯。誰因誰極。山哀浦思。萬古悠悠。 화양(華陽) 화양동으로 우암(尤菴)이 강학했던 곳인데, 여기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를 말한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우재(尤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생원시를 거쳐 산림(山林)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조 판서와 죄의정 등의 벼슬을 지냈다. 저서로는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이항로의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초명은 광로(光老)이다. 1808년(순조8) 한성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포기한 채 향리에서 강학을 하여 최익현,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등을 길렀다. 동부승지, 공조 참판 등을 지냈다.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조선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로 꼽힌다.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저서로는 《화서집》,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호전(胡銓) 1102∼1180.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직신(直臣)이다. 상소하여 왕륜(王倫), 진회(秦檜), 손근(孫近) 세 사람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가 축출되었다. 《宋史 卷374 胡銓列傳》 진동(陳東) 송(宋)나라의 태학생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태학생의 신분으로 흠종(欽宗) 때에는 간신인 채경(蔡京) 등을 논박하였고, 고종(高宗)이 강남으로 천도(遷都)한 후에는 명재상인 이강(李綱)을 등용하고 황잠선(黃潛善) 등을 파면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수십 번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참형을 당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 청(疏廳)에……격려하고 1881년 김평묵이 63세 때에 영남 유생 이만손 등 1만 3천여 명이 대궐에 이르러 조정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중암은 유중교와 같이 연명하여 소청(疏廳)에 글을 보내 격려하였다.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일로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던 일을 말한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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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 祭勉庵崔丈文 갓과 신발이 도치되는 것은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화(禍)는 송나라가 망한 것보다 참혹함이 없고, 금수의 자취30)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만 변고는 오늘의 혼란함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미 비상한 화와 비상한 변고가 있으니, 반드시 비상한 현인이 나와 부지하여 강상(綱常)의 한 맥으로 하여금 천하 만세토록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이 있으니, 송나라 문산 선생(文山先生)31)과 지금의 면암 선생勉庵先生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선생은 벽문(蘗門)32)의 고제로 중옹(重翁)과 종유하여 연원과 문로가 가장 확실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함양한 것이 두텁고 힘입은 것이 깊었으니, 온축함에 덕행이 되고 행함에 사업이 된 것이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대하고 광명한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일용의 전례(典禮)로부터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고, 상고의 전훈(典訓)으로부터 근세 유자의 의론에 이르기까지 망라하여 깊이 체득하고 해박하게 관통하였는데 그 원위(原委)와 곡절(曲折), 향배(向背)와 취사(取舍)는 모두 스승의 설을 독실하게 믿어 지켜서 전하여 유가의 한 가닥 정맥을 보존한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선생이 조정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보고 걱정과 울분이 강개(慷慨)하여 전후의 40년 동안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곧은 말이 아님이 없어 비록 정확(鼎鑊)33)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34)가 뒤에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비록 쓰이지는 못했지만 천한 사람이 보는 것을 용동시키고 한 시대의 마음과 눈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한가한 숲속에 물러나자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하는 이들이 온 나라에서 몰려들었는데, 타일러 부축하고 가르쳐 이끌어줌에 순순하게 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후생과 후손들로 하여금 방향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선생이 부지해준 덕분이니, 어찌 오늘의 일에만 알맞을 뿐이겠습니까. 유운(遺韻)과 여열(餘烈)이 드러나 책에 있고 전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천년을 지나고 만세를 지나더라도 태산과 그 높음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해와 별과 그 광채를 다툴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선생이 이 세상을 버리시니, 이 세상은 끝내 오랑캐 지역이 될 것인가? 선생이 이 사람들을 버리시니, 이 사람들은 끝내 금수 같은 부류가 될 것인가? 하늘이 이미 선생을 낳아 강상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강상의 도가 이에 다시 천하에 크게 밝아질 것인가?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의 운수는 기필할 수 없으니, 모르겠으나 선생의 영령이 원기를 되돌려 조진(朝眞)35)하여 귀신을 합하고 조화를 도와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만회하고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의림(義林)은 기구하게 남은 목숨이 천리에 떨어져 있어 비록 책상을 지고 문하에 찾아가 배운 날은 없지만 편지를 올려 가르침을 청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쇠하지 않았으니, 지금 30여 년이 됩니다. 재작년에 이르러서는 질병과 상사가 이어지고 거듭하여 1년 사이에 거의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로는 같은 도내에서 달려가 위로 드리지 못하였고, 멀리로는 절역(絕域)의 밖에 달려가 안부도 드리지 못하였으며, 크게 두렵고 크게 놀라운 일이 종종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집에 있으면서 알지도 못하였으니, 저버린 죄가 여기에 이르러 속죄할 수 없습니다. 제 사가의 전후 상장(喪葬)은 올해에 비로소 끝났으니, 이로부터 거의 한가한 날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는데, 문득 몸에 병이 심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을 시켜 제문을 가지고 가 감히 저의 무궁한 슬픔을 고하게 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冠屨倒置。古或有之。而禍莫慘於有宋之亡。蹄迹交横。世或有之。而變莫甚於今日之亂。旣有非常之禍。非常之變。則必有非常之賢。出而扶持之。使綱常一脉。不墜於天下萬世。宋之文山先生。今之勉庵先生。卽非其人耶。先生以蘖門高弟。重翁遊從。淵源門路。最爲端的。口傳心授。涵厚資深。蘊之爲德行。行之爲事業者粹然一出於正大光明之域。自日用典禮。至古今事變。自上古典訓。至近儒議論。包羅浸淹. 該貫愽通。而其原委曲折。向背取舍。皆篤信師說。守而傳之。以存儒門一條正脉者。先生賜也。先生立朝。曾未幾日矣。見時事日非。憂憤慷慨。前後四十年。知無不言。言無不讜。雖鼎鑊在前。嶺海在後。而莫之顧也。其言雖不見用。而有以聳褐夫之觀瞻。醒一世之心目者。先生賜也。其退閑林樊也。及門請業。傾國坌集。誘掖提絜。諄諄不倦。使後生來裔。知有方向者。先生扶持之力。豈適今日事而已哉。遺韻餘烈。著之在書。傳之在人。經千秋閱萬世。而可以與泰岳爭其高矣。可以與日星爭其光矣。嗚呼痛哉。先生棄斯世。斯世其終爲夷狄之域耶。先生棄斯人。斯人其終爲禽獸之類耶。天旣降先生。使綱常不墜。則或者因此而綱常之道。乃復大明於天下耶。天心未可知。氣運未可必。未知先生之靈。返元朝眞。合鬼神贊造化。有以挽回轉移於㝠㝠之中也耶。痛矣痛矣。義林崎嶇殘生。隔在千里。雖未有負笈踵門之日。而納書請敎。源源不賛。今三十有餘年耳。至再昨歲。疾病喪禍。連綿荐疊。一年之內。殆無間日。是以近焉。而不得奔勞於同省之內。遠焉而不得趍候於絕域之外。大震懼大驚動。種種至此。而恬然在家而不知。辜負至此。無以可贖。私家前後喪葬。臨歳始畢。自謂從此而庶有間日。旋以身憂沈苦莫振。竟不免因人操文。敢告區區無窮之悲。 금수의 자취 오랑캐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나라나 일본 등의 외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나라 구규(丘葵, 1244∼1333)의 시에 "거북 규범, 말 그림 같은 상서가 모두 안 보이니, 짐승과 새 발자국만 참으로 분분하네.[龜範馬圖俱寂寂, 獸蹄鳥跡正紛紛.]"라고 하였다. 《釣磯詩集》 문산 선생(文山先生)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문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송 이종(宋理宗) 때 우승상(右丞相)으로 화의(和議)하러 원(元)의 궁중에 갔다가 포로가 되었으나 밤에 도망쳐서 온주(溫州)로 돌아왔다. 익왕(益王)이 즉위하여 그를 좌승상(左丞相)에 임명하고 강서(江西)의 도독(都督)으로 삼았으나 또 원군에게 패전하였다. 위왕(衛王)이 즉위하여서는 신국공(信國公)의 봉(封)을 받고 조양(潮陽)에 주둔하였다가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抑留)되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忠節)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정확(鼎鑊) 형벌의 도구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가마솥이다. 영해(嶺海) 중국 오령(五嶺)의 남쪽이나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험난한 땅 혹은 궁벽한 귀양지를 가리킨다. 조진(朝眞) 도교에서 진인(眞人)을 알현하는 것, 혹은 불가(佛家)의 좌선(坐禪)처럼 도가의 방식대로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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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 최원칙에 대한 제문 祭溪南崔元則文 오호라! 공은 말세에 우뚝하게 태어나 천품이 도에 가까웠고 문로가 이미 발라 능히 함양함에 방도가 있었습니다. 단후(端厚)하고 장묵(莊黙)하여 위대하게 산립(山立)36)의 기상이 있었고, 온량(溫良)하고 화락[愷弟]하여 성대하게 봄기운이 불어오는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라봄에 공경할 만하니 도가 있는 기상이 되는 줄 알겠고, 나아감에 사랑할 만하니 덕 있는 군자가 되는 줄 알겠습니다. 나이가 더욱 들수록 덕은 더욱 성대하고, 몸이 더욱 막힐수록 도는 더욱 형통하여 사문의 일맥을 우주가 회양(懷襄)37)하는 가운데서 실추되지 않도록 함이 있었으니, 공은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 유감이 없어 생순사안(生順死安)38) 처를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사촌(沙村)39)에서 입설(立雪)40)하고 진구(珍邱)에서 스승을 모셨으니, 옛적 어느 날이었던가? 산이 무너졌으니 누구를 우러를까?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지 몇 년이 되자, 옛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동지들이 더욱 멀어짐을 개탄하여, 이에 수시로 강론하며 모일 계획을 하였는데, 영남의 신안사(新安社)·뇌룡정(雷龍亭)과 호남의 담대헌(澹對軒)·영귀정(詠歸亭), 방장산·쌍계사·화엄사 등이 모두 그런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선 세상이 혼란하다고 정지하였으니, 어찌 혼란이 끝날 기약이 없고 공이 이미 먼저 갈 줄 알았겠습니까. 우리들이 백수(白首)의 여생에 간관(間關)41)으로 서로 따르며 구구한 세한(歲寒)의 계획42)으로 삼았던 것이 지금은 모두 선천(先天)의 뜬구름이 되었습니다. 뒤에 남은 모래와 자갈 같은 사람43)은 누구를 통하며 누구44)를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회양(懷襄)의 경색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눈으로 차마 볼 수 없고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음에랴! 단지 덜컥 죽어 공과 함께 팔뚝 잡고 나란히 유람하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하려고 하니, 조만간 공은 기다리시라. 嗚呼。公挺生叔世。天資近道。門路旣正。克養有方。端厚莊黙。偉然有山立之象。溫良愷弟。藹然有春噓之氣。望之可敬。知其爲有道氣象。卽之可愛。知其爲有德君子。年彌衰而德彌盛。身益否而道益亨。使斯文一脉。有以不墜於宇宙懷襄之中者。公其於此。庶乎無憾。而可以爲生順死安處矣。嗚呼痛哉。沙村立雪。珍邱侍瑟。昔何日矣。山頽安仰。離索有年。歎舊業之未卒。慨同志之愈遠。乃爲隨時講聚之計。嶺之新安雷龍。湖之澹對詠歸。方丈雙溪華巖。皆非其地耶。行之未幾。姑以世亂停止。豈知亂無了期而公已先逝耶。吾輩以白首殘年。間關相從。以爲區區歲寒之計者。今皆爲先天浮雲矣。沙石在後。誰因雖依。況懷襄景色。日甚一日。目不忍見。耳不忍聞。只欲溘然歸化。與公把臂倂遊。如在世時。早晚公其待之。 산립(山立) 주희(朱熹)의 〈정명도화상찬(程明道畫像贊)〉에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였네.[揚休山立, 玉色金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회양(懷襄) 회산양릉(懷山襄陵)의 준말로, 재앙이 매우 큼을 뜻한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널리 해를 끼쳐 거세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는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생순사안(生順死安) 도에 입각하여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논어》 〈이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에 대해서 주희(朱熹)가 "도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참으로 이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하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다시 남은 한이 없을 것이다.[道者事物當然之理, 苟得聞之, 則生順死安, 無復遺恨矣.]"라고 주석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천리(天理)에 따라 일을 행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 편히 부끄러움이 없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사용하였다. 사촌(沙村)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마을이다. 입설(立雪)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준말이다. 송나라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문입설'이라는 유명한 고사로,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간관(間關) 《시경》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덜커덩 수레 걸쇠여, 예쁜 막내딸을 생각하여 가도다.[間關車之舝兮, 思變季女浙逝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수레에 걸쇠를 설치하는 소리이다. 세한(歲寒)의 계획 세한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를 이르는 말인데, 노년의 지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의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뒤에……사람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누구 저본에는 '雖'로 되어 있으나 '誰'의 오류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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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30) 유 어른【중교】께 올림 上省齋柳丈【重敎】 연전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은 실로 오랫동안 앙망해 오던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매번 전해지지 못할까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함평(咸平)의 인편을 통해 뜻밖에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 종이 가득 온갖 말을 나열해 주시니, 그 순순하고 측달한 말씀은 비록 10년 동안 강석 사이에서 부지런히 배우며 정성을 다한 자라도 어찌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아,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한 문장(文丈)께서 멀리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 지극한 뜻을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렇게 무능하고 어둡고 용렬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삼가 사양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소생은 젊어서 노사(蘆沙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학업을 마치기 전에 갑자기 스승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만났습니다. 저는 삼가 생각건대, '천하가 도도하게 흐르니, 이 몸을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화서(華西) 문하의 두세 군자일 따름이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신일신과 집안은 채무로 나락으로 떨어져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느라 거처할 겨를이 없는 지 십수 년 되었습니다. 비록 문하에 찾아가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기대하고 기다리며 어찌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위엄이 매우 엄절하고 예수(禮數)가 본디 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총애를 믿고 갑자기 번거롭게 해 드리는 죄를 짓겠습니까. 이것이 이전 편지에서 아뢰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감히 소략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윽고 편지를 주고받을 길이 열려 묻고 가르치는 교분을 이미 맺었으니 구구한 마음에 위로되고 흡족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학문을 논하자면 주리(主理)를 큰 종지(宗旨)로 삼고, 시의(時義)를 논하자면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을 제일의로 삼는다."라고 하였고, 또 "우리 유자의 학문은 실로 나아감에 바름을 얻는 것을 급선무로 여기고 바름을 얻은 뒤에는 또 반드시 덕을 증진하고 학업을 닦는 절도가 두루 다하여 치우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천고에 폐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고 오늘날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처방전이니, 감히 명심하여 좌우명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고 살피는 방도로 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리(主理)" 2자는 소생이 일찍이 노사 선생의 문하에서 들었고, 나중에 또 벽계(檗溪) 선생의 편지에서 보았습니다. 아, 이(理)는 실로 기(氣)의 주재이니, 어찌 사람이 주재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세상에 주기(主氣)의 폐단이 지극합니다. 태극을 논하면 대기(帶氣)라고 하고, 오상(五常)을 논하면 인기(因氣)라고 하며, 명덕(明德)을 논하면 형이하(形而下)라고 하며, 중화(中和)를 논하면 화(和)를 기로 삼고, 비은(費隱)을 논하면 비(費)를 기로 삼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이르러서는 무릇 용(用)에 발하여 행(行)에서 베풀어지는 것이 조금이라도 조리가 있고 조금이라도 신묘하면 모두 기라고 하면서 마침내 이(理)를 미련하고 흐릿한 것으로 삼아 기식(氣息)이 없는 한 덩어리 죽은 물체로 여기니, 이것이 과연 강충(降衷), 병이(秉彛), 서질(敍秩), 명토(命討)의 의리입니까. 두 선생이 고심하여 매우 힘써서 사문(斯文)과 세도를 위해 계책을 세운 것이 실로 굳건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질정해도 의심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벽계(檗溪)의 문하에 다행히 여러 노련하고 덕이 훌륭한 분들이 있어 또 이어서 밝게 서술하였고, 영호남의 선비들이 또 왕왕 믿고 따르는 자가 있어 두 선생의 논의가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연간에 삼가 문장(文丈)의 말씀을 들으니 심(心)은 기(氣)이지 이(理)가 아니며, 물(物)이지 칙(則)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설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장께서 사문(師門)의 종지(宗旨)를 받아 힘써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시지만 그 논의가 만약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그 사이에 달리 의의가 있는 것입니까? 대략 비루한 견해를 아뢰어 가부의 명을 듣겠습니다. 대저 이와 기는 통틀어 말한다면 기는 다만 이 가운데의 일이니 나란히 하거나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말한다면 형상(形上) 형하(形下)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자(朱子)가 이 형상 형하의 뜻을 논하여 말하기를 "형의 유무를 가지고 말하면 물과 이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형체가 없는 것이 이가 되는 것을 알고 형체가 있는 것은 처음에 도가 아님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단절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심이라는 물건은 지극히 허령하여 당체(當體)에 있어서는 실로 기의 정상(精爽)31)이 되고 기타 질실(質實)한 골자(骨子)는 어찌 일찍이 이 이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선각(先覺)이 어떤 때는 이로 말하였다가 어떤 때는 기로 말한 것이 실로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되는 것만 인정하고 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게다가 일찍이 문장(文丈)께서 완이(莞爾) 어른과 저의 스승님께서 문인과 문답한 몇 조항의 말을 논한 것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을 경계하여 깨우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가만히 노사(蘆沙)의 뜻을 살펴보면 흡사 선과 불선이 함께 태극에 근본하는 듯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스승님의 뜻이 전혀 아닙니다. 스승님의 말씀 가운데 "'선악은 모두 천리(天理)이다.'라고 한 것은 두 가지가 나란히 하여 각자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천하에는 본래 악이 없다는 것인데 이른바 악이란 것은 바로 선의 얼자(孼子)이니, 얼자는 일찍이 자기의 혈통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악 또한 천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32)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하에는 두 가지 종자가 있을 수 없으니, 악이라 할지라도 또한 선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원두(原頭)로부터 말한다면 이(理)는 본래 기를 낳고 유행(流行)으로부터 말한다면 기는 혹 이를 해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평소에 늘 하신 말씀입니다. 「답김경범문목(答金景範問目)」에 "우매한 자를 위해서 한 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선한 것은 이(理)에 근본하고 불선한 것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평상적으로 말한다면 불선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지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불선 또한 이(理)에서 생겨납니다. 이를테면 정자(程子)가 이른바 "악 또한 성(性)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대저 어찌 정자의 말을 가지고 선악이 태극에서 함께 근본하였다고 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다면 그래도 성악설을 주장하지는 않을 텐데 어찌 스승님께서 이러한 말을 하였겠습니까. 또 완이(莞爾) 어른의 문목을 보니 "일(一)은 이(理)가 관통함이요, 만(萬)은 형(形)이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어찌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있은 이후에 만 가지 다름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설은 저의 생각에 선명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일(一)이라는 것은 만 가지가 모인 것이고, 만(萬)이라는 것은 일이 나누어진 것이니, 어찌 일을 이(理)로 삼고 만을 형(形)으로 삼겠습니까. 만(萬)은 일(一)이 나누어진 것이니 만 가지로 나뉘는 이치가 이미 일(一)에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본래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없어서 때에 임하여 배정해서 만 가지 다름에 응하겠습니까. 문장(文丈)의 답서를 보니, 한마디 말도 옳지 않다고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 부(副)의 강토(講討)가 이미 답서 외에 있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재량하여 가르쳐 주시어 몽매한 이를 깨우쳐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다시 바라건대 도를 위해 더욱 보중하십시오. 年者再度奉書。固出於積仰之私。而程途遙夐。每疑其不免浮沈。月前咸平便。不謂辱賜惠幅。滿紙臚列極其諄惻。雖十年席間服勤致情者。何以加此。於以見文丈德盛禮恭。不忘遐遠。不遺細微之至意也。顧此悾悾昧劣。何以當之。切欲解使去已而不可得也。生少師蘆沙先生。未及卒業。而遽遭山樑之痛。區區竊念寰宇滔滔。可以爲此身依歸之地者。惟是華西門庭數三君子而已。然而身家債業。墜在於水山雲雷之中。流離瑣尾。不遑其居。以來十數年矣。雖未能抱刺踵門。而期擬等待者。何嘗一日而忘也。然等威切嚴。禮數自在。則豈敢自恃隻愛。而遽犯煩瀆之罪乎。此前書所以不能不達。而亦不敢不略也。旣而一往一復。書路已開有問有敎。契分已定。區區慰洽。不容名喩。下喩有曰。論學問則以主理爲大宗旨。論時義則以斥羊爲第一義。又曰吾儒之學。固以趨向之得正爲急先務。而及其待正。則又必以進修節度之周盡無偏爲貴。此是千古不刊之典要。今日對證之眞劑。敢不書紳銘座。爲日夕顧諟之方也。然主理二字。生嘗聞之於蘆沙先生之門矣。後又得見於檗溪先生之書矣。嗚呼。理固氣之主。何待乎人之主之也。世之主氣之獘極矣。論太極則謂之帶氣。論五常則謂之因氣。論明德則謂之形而下。論中和則和爲氣。論費隱則費爲氣。以至三綱五倫。凡發於用施於行者。才有條理。才涉神妙。皆謂之氣。遂以理爲冥頑儱侗。没氣息底一塊死物。此果降衷秉彛敍秩命討之義耶。二先生所以苦心極力。爲斯文世道計者。實可以建不悖而質無疑矣。檗溪之門。幸有諸老長德。又從而紹述之。嶺湖士子。又有往往信從者。庶幾二先生之論。見行於世矣。年間伏聞文丈之言。以爲心氣也。非理也。物也。非則也。未知此說果爾否。文丈受師門宗旨。力主主理之論。而其論若果如此。則抑別有意義於其間耶。略陳鄙見以聽可否之命。夫理與氣。統言之。則氣只是理中事。非比倂對峙之物也。分言之。則形上形下是也。然朱子論此上下之義曰。若以無形有形言之。則便是物與理相間斷了。若知無形之爲理。而不知有形之未始非道。則不其幾於間斷乎。心之爲物。至虛至靈。在當體。固爲氣之精爽。而其他骨子實頭處則何嘗不是理耶。此先覺所以或以理言或以氣言者。固不一二矣。今何獨與其爲氣而不與其爲理也。且曾得文丈與莞爾丈論鄙師門與門人問答數條語。讀之。其警發人。甚多。但其中有曰。竊觀蘆沙之意。恰似善不善同根於太極。此則甚非先師之意也。先師之言曰。善惡皆天理云者。不是兩端倂立。各自出來。正以天下本無惡。而所謂惡者。乃善之孼子。孼子未嘗非已之血脈。故惡亦不可不謂之天理也。又曰。天下不容有兩種子。雖慝亦根於淑而生者也。又曰。自原頭言。則理本生氣。自流行言。則氣或害理。此其平日雅素之言也。至若答金景範問目有曰。爲昧者言。不得不曰。善者根於理。不善者作於氣云云。夫平說則謂不善作於氣可也。極言之則不善亦生於理。如程子所謂惡。亦不可不謂之性也。夫豈以程子之言謂善惡同根於太極乎。稍有知識者。猶不爲性惡之說。豈先師而有是言乎。又見莞爾丈問目有曰。一者理之通萬者。形之異。又曰。豈有萬分之理而後。可以酬應萬殊乎。此說。於鄙意多未塋。一者萬之總。萬者一之分。豈以一爲理而以萬爲形乎。萬爲一之分。則萬分之理。已具於一矣。豈本無萬分之理。而臨時排定。以應萬殊乎。見文丈答書。無一言以爲不然者。未知一副講討。已在於答書之外耶。望乞俯賜裁敎。以開蒙蔀。如何。天氣漸寒。更乞爲道增重。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이다. 한말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였고, 심설(心說)에 대한 학술 논쟁을 전개하는 등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상(精爽)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마음은 기의 정상이다.[心者, 氣之精爽也.]"라고 하였는데, 정상은 일종의 신명(神明)과 같다. 마음은 이 신명이 있어서 지각운용(知覺運用)의 묘(妙)를 발현하게 된다. 선악은……없다 이 내용은 《노사집(蘆沙集)》「담김경범(答金景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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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서(2) 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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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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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己巳十二月初七日 前手標右手標事亡夫生時得用錢未報条二十兩每朔五分例限明年九月晦內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憑考事標主自筆喪人朴在文 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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